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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파솔라시도를 말로 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것들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기는 어렵다. 


진리를 이야기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을 체험하고 실천하기는 어렵다.



빈 그릇에 물을 부으면 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릇이 차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신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신의 존재와 그 본질에 대한 무익한 논쟁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일단 신을 체험하게 되면 

말없이 신의 은총에 젖어 있다.



잔치에 초대되었을 때 처음에는 왁자지껄하다.

그러나 그 왁자지껄한 소리는 음식이 들어오기 전까지이다. 

음식이 들어오게 되면 조용해 진다. 

식사가 다 끝나고 다과가 들어오게 되면 더욱 조용해 진다.

마지막으로 후식이 나오게 되면 이제 오직 먹는 소리밖에 들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잔치가 다 끝나고 손님들이 할 일은 잠자러 가는 일 뿐이다.


신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질문과 이유가 적어진다. 

신을 체험하게 되면, 

그때는 이 모든 논쟁이며 이유들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그 다음은 잠자러 갈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신과의 靈的 교섭에 젖을 시간이다.



오직 다음의 두 종류의 사람들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첫째, 자기가 배운 모든 지식에 방해받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빌려온 생각들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지 않는 사람. 


두 번째, 이 모든 경전과 과학을 공부한 후에

자기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



신의 사랑 속으로 깊이 침잠하고자 열망하는 사람, 

그것을 위해서 인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속적인 일들과 신을 체험하기 위한 그 명상과 기도를 

구별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우 몇 권의 책을

읽고는 남을 가르친답시고 동으로 서로 뛰곤 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인데... 


진정으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신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은 사람, 

신을 깨달은 사람, 오직 그만이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우선 첫째로 그대 가슴의 사원에 신을 모셔라.

첫째, 신을 깨달아야 한다. 

강연, 강론 등은 신을 깨달은 후에 하라. 

사람들은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으면서도 

브라흐만(신)에 대해서 아주 유창하게 지껄인다.


결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사원 안에는 신의 이미지도 없으면서 

신을 찬양하는 빈 소리만 드높은 것과 같다.



꽃의 향기가 미풍에 실려 사방으로 퍼지면 

그 향기에 따라 벌들이 온다.

단 것이 떨어져 있으면 

그 단 냄새를 맡고 개미들이 온다. 

일부러 벌이나 개미를 초대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순수하고 완전하게 되면, 

그의 따뜻함이 사방에 퍼지게 되며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히 그에게 모여 든다. 

그러므로 굳이 청중들을 붙잡고 외쳐댈 필요는 없다.



불을 켜면 어디선지 나방이들이 날아온다. 

그 불꽃 속으로 들어가려다 타 죽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른다. 

불은 나방이들을 부른 일이 없다. 


완전한 가르침의 경우가 바로 이렇다. 

그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에 무리지어 모여든다. 

그러나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처마의 물은 양철로 만든 

새의 주둥이를 통해서 땅으로 떨어진다. 

양철새의 입에서 쏟아지는 물은 

그러나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이다. 


저 성인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가르침은 

실은 신이라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다.



스프링 의자를 보라. 사람이 앉게 되면 푸욱 들어가지만, 

그러나 사람이 일어서게 되면 다시 부풀어 원 상태로 된다. 

세속적인 사람도 이와 같다. 

그들은 진리의 말을 듣는 동안만은 신앙심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다시 일상생활로 들어가게 되면 고귀하고

간절한 그 생각들을 모두 잊어 버리고 

전과 마찬가지로 먼지낀 상태에 있다.



어떤 농부가 온종일 사탕수수밭에 물을 주었다.

일을 다 끝내고서야 

그 물들이 모두 쥐구멍들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을 알았다. 

그는 온종일 헛탕만 친 것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세속적인 야망을 품고 있으면서

신을 찾는 사람의 경우가 이와 같다. 


매일같이 기도를 할지 모르지만 그의 영적 세계는 전혀 진전이 없다.

신을 향한 그의 열정이 이 세속적인 야망의 쥐구멍 속으로 

모두 빨려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써봐도 그는 이전과 같은 차원에 머물 따름이다.



때묻은 거울은 햇빛을 반사시킬 수 없다. 

그 영혼이 순수하지 못하고 불결한 사람과 

마야에 현혹되어 있는 사람은 

결코 신의 영광을 지각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영혼이 순수한 사람은 

맑은 거울에 햇빛이 반사되듯 신을 지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이 순수해야 한다.



겨울 하늘을 보라. 

수많은 연들이 날고 있다. 

그 수많은 연 중에서 몇 개의 연만이 

연줄에서 끊어져 자유롭게 날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명상수련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세속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정한 구도자는 혼자 있을 때조차 

어떤 죄악도 짓지 않는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신은 그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외딴 곳에서 돈 뭉치를 발견했을 때 

갖고 싶은 그 유혹을 뿌리치는 사람,

그는 진정한 구도자다. 

그러나 일반의 눈이 무서워, 

일종의 전시효과를 위하여 

종교인이 되는 사람은 진정한 구도자라 할 수 없다. 



이 세상과 신,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가. 

저 목공의 아내를 보라.

그녀는 잡다한 일로 얼마나 바쁜가. 

한 손으로는 절구통 속의 다 찧은 쌀을 꺼내는가 하면 

또 한 손으로는 아기를 본다. 

동시에 그녀는 찧은 쌀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이처럼 그녀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은 오직 한가지에만 집중되어 있다. 

절구공이가 그녀의 손에 떨어져서 손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아라. 그러나 언제나 신을 기억하라. 

결코 신의 길을 등지지 말라



이 세상에 살면서 구제받으려 하는 사람은 

성 안에서 싸우는 군대와 같다.

신을 깨닫기 위해서 이 세상을 포기한 고행자는 

들판에서 싸우는 군대와 같다.


들판에서 적과 싸우는 것 보다 

성안에서 적과 싸우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용서, 

이것이야말로 수행자의 진정한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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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잭 웨더포드 지음·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 432쪽 | 1만8000원




한때 몽골은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 전역과 유럽까지 호령한 제국이었지만,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칭기스 칸’을 칭송하는 흘러간 팝음악, 몽골에 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승마 이야기, 한국에 온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정도다. 800년 전 대제국의 문화가 이토록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정주보다 이주를 선택한 유목민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머무는가 싶으면 떠나길 반복하는 노마드인 몽골인들은 최대한 짐을 줄였고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물론 정주의 유혹이 없지 않았다. 한족을 몰아내고 중국에 세운 원나라가 바로 그 유혹을 받아들인 사례다. 그러나 길들여진 늑대는 늑대가 아니라 개다. 원나라는 100년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다. 


미국 매칼레스터대의 인류학 교수인 잭 웨더포드는 부족민 연구 전문가다. 칭기스 칸과 몽골제국이 동서 문명 교류에 미친 영향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1998년 서구 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칭기스 칸의 고향인 부르칸 칼둔 산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2005년 출간된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원제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 Queens)는 몽골 역사의 흥미로운, 그러나 베일 뒤에 있던 사실들을 알려준다. 바로 몽골 여성 왕족의 활약상이다. 칭기스 칸은 제국을 세웠지만, 그의 아들들은 술 마시는 재능만 있을 뿐 군사·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칭기스 칸의 뒤를 이어 제국을 움직인 이들은 그의 딸과 며느리들이었다. 


책은 역사서이지만 마치 소설같이 흥미로운 장면으로 시작한다. 13세기 후반, 미지의 검열자가 <몽골비사>의 한 부분을 삭제했다. 칭기스 칸의 발언을 기록한 이 책은 훗날 제국의 기본 법률 역할을 했고, 더 먼 훗날에는 사료가 됐다. 잘려나간 부분은 1206년의 발언이었다. 검열자는 실수인지 악의인지 삭제분에 들어있던 한 문장만을 남겨두었다. “우리의 여자 후손들을 칭송하기로 하자.” 삭제분의 바로 앞에는 칭기스 칸의 아들, 형제 등의 능력, 공적에 따라 관직·작위·영지를 수여하는 대목이 있으니, 삭제된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칭기스 칸의 네 아들은 아버지가 세운 제국을 사실상 ‘말아먹었다’. 그럼에도 역사에 분명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딸들은 수, 이름, 생몰연도조차 정확하지 않다. 몽골의 작가와 학자들이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삭제했기 때문이다. 


칭기스 칸의 딸들은 진취적이고 현명했다. 직접 말을 타고 전장에 나서 병사들을 지휘했고, 재판관이 돼 형사사건 판결을 내렸으며, 넓은 영토를 다스렸다. 같은 시기 인근 문화권의 여인들이 전족으로 발을 학대하거나 베일로 얼굴을 가린 것과는 크게 비교된다.


저급한 증오, 끝없는 다툼으로 분열돼 있던 몽골을 통합한 칭기스 칸은 곧 제국 경영이라는 과제에 부딪힌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건 역사의 상식이다. 계속된 정복 사업에 매진해야 했던 칭기스 칸은 딸들에게 제국의 경영을 맡겼다. 네 명의 딸들은 몽골의 동서남북에 위치한 이웃 국가로 시집을 갔다. 이것은 일종의 ‘결혼 동맹’이었지만, 칭기스 칸의 딸들이 왕실 사이 우호의 증표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딸들은 내실의 안락함을 즐기는 대신 직접 국가를 통치했다. 경제를 활성화시켰고, 법을 정비했으며, 관료 조직을 챙겼다. 칭기스 칸은 딸들을 시집보내면서 딸들의 통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나라를 경영하는 데는 남성의 힘보다는 여성의 지혜가 중요함을 칭기스 칸은 일찌감치 깨달았다. 


칭기스 칸의 딸들이 다스린 왕국들은 영토 확장에 목매지 않았다. 대신 중요 접촉 지점과 이동 방향을 예측해 그곳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실크로드 상권을 장악한 이들은 제국이라기보다는 현대의 다국적기업에 가까웠다. 그들은 다른 자매들의 나라에서 나오는 물품에 일정 지분을 갖고 있었다. 


제국의 창업자는 태생에 의한 귀족제를 믿지 않았다. 칭기스 칸 자신이 납치해온 여자의 아들이었다. 

몽골에서는 적통이니 서얼이니 하는 구분도 없었다. 부인이 납치된 사이에 낳은 아이라 하더라도 “내가 내 아이라고 하는데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했다. 누가 아이를 낳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아이를 잘 키웠는지만을 따졌다. 


칭기스 칸은 딸의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의 평등을 이야기했다. “만약 수레에서 어느 한쪽의 채가 부러진다면, 황소는 수레를 끌 수 없다.” 힘과 힘, 칼과 칼로 부딪치는 백병전이 아니라 말을 타고 가다가 먼 곳에서 활을 쏘는 몽골 전사들의 전투방식도 여성의 참여에 유리했다. 


칭기스 칸의 뒤를 이은 우구데이 칸 시절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칭기스 칸은 어린 나이에 결혼한 소녀라 하더라도 16세 이전까지는 성관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우구데이는 누이의 나라에서 소녀 4000명을 소집해온 뒤 자신의 병사들에게 집단 강간을 시켰다. 이는 누이의 땅을 빼앗기 위한 선전포고와 같았다. 이후 몽골 전역에서 집단 학살과 고문이 이어졌다. 위대한 아버지가 죽자 못난 아들들은 서로를 물어뜯었다. “칭기스 칸이 한평생에 걸쳐 창조한 것이 또 다른 한평생 사이에 파괴되었다.” 모두들 입으로는 칭기스 칸을 숭배했지만, 그의 정신은 받들지 않았다. 


칭기스 칸의 정신은 그가 죽은 지 200여년 뒤 부활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여성의 몸에 깃들어 있었다. 웨더포드는 1998년 몽골 현지 조사 과정에서 어느 노파의 말을 들었다. “당신은 칭기스 칸이 여자로 환생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그렇게 환생한 분이 우리의 왕비 만두하이랍니다.”


만두하이는 16세의 나이에 25세 연상의 만둘 칸과 결혼했다. 그러나 당시 제국은 이미 전성기를 지난 상태였다. 남쪽으로는 한족의 명나라가 세워졌고 서쪽으로는 이슬람 군벌 세력이 발흥했다. 만둘 칸은 바깥의 적은커녕 가족조차 온전히 다스릴 수 없었다. 늙은 칸은 곧 죽었고, 23세의 만두하이는 과부가 됐다. 주변에는 다음 칸의 후보가 보이지 않았다. 


여러 곳에서 유혹의 입질이 왔다. 만두하이와 재혼하는 자가 제국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의 2인자로 군림한 귀족 장군이 있었고, 강한 무슬림 군벌이 있었다. 명나라에서는 투항하면 문명국에서의 호화로운 여생을 보장하겠다고 제안했다. 만두하이는 재혼을 권하는 측근의 머리 위로 뜨거운 찻잔을 내던졌다. 그리고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제국을 이끌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홀로 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만두하이는 칸의 핏줄을 이은 다섯살 아이 바투 뭉케를 찾아냈다. 외진 곳에서 방치된 채로 자라난 아이는 허약했다. 바투 뭉케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만두하이는 아이의 대칸 즉위식을 올렸다. 그리고 새로 옹립된 다얀 칸을 통해 섭정했다. 


만두하이와 다얀 칸은 세상에 단 둘만 있었다. 적들은 칸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고, 백성들은 지도자의 능력을 못미더워했다. 만두하이는 군사와 정치 양 분야에서 능력을 입증해야 했다. 젊은 왕비는 첫 원정을 나서기 위해 머리 장식을 벗고 말 위에 올랐다. 어린 다얀 칸은 작은 상자에 담겨 말에 올랐다. 몽골의 아이들은 서너 살이면 말을 타기 시작한다지만, 병약한 다얀 칸은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만두하이는 칸을 전장에 동행시켰다. 누가 전투를 이끄는지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만두하이와 다얀 칸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이후 둘은 승승장구했다. 만두하이는 성인이 된 다얀 칸과 결혼했다. 그들은 적들을 차례로 제압했으나 불필요한 복수는 하지 않았다. 많은 아들들을 낳아 동맹 세력인 다른 부족 사이에서 자라게 했다. 아들들은 그곳의 소식을 전해왔고, 자연스럽게 그곳 지도자 역할도 맡았다. 


만두하이와 다얀 칸은 서로를 제거하고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둘은 자발적으로 해로했다. 칭기스 칸은 몽골의 스텝 지역을 넘어서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나 만두하이와 다얀 칸은 지배할 수 있는 지역만 장악하기로 했다. 다얀 칸 치하의 몽골은 불교, 이슬람교, 초기 그리스도교 중 어느 것을 믿어도 되는 나라였다. “하늘은 그녀(만두하이)에게 위대한 운명을 부여하지 않았다. 몽골 연대기의 표현에 의하면, 그 대신 하늘은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운명’을 만들어나가도록 허용했다.” 


만두하이와 다얀 칸의 후예들은 17세기에 만주족에 정벌당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했다. 왕실 사람들은 청나라 통치 아래서도 권력을 누리다가, 20세기 몽골과 중국의 혁명기에 그 핏줄을 이유로 시련을 겪었다. 


몽골의 유산은 남아있다. 레슬링에서 자기를 이기는 남자하고만 결혼하겠다고 한 여전사 쿠툴룬 공주의 이야기는 투란도트(투르크의 딸)로 서유럽에 소개됐다. 이 호랑이 같은 여인에 대해 실러, 괴테, 푸치니가 관심을 갖고 작품을 남겼다. 지금도 몽골 남자들은 전통 레슬링을 하기 전에 특별한 조끼를 입는다고 한다. 앞면이 완전히 노출된 이 조끼는 가슴을 통해 상대방이 남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방대한 문헌 조사와 성실한 현지 리서치에 기반하되, ‘공식 기록’에서 빠진 부분은 민간 전승 이야기와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복원했다. 말 위에서 창업한 제국의 흥망성쇠가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세계 그 어느 문명권의 여성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몽골 여성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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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그리하여 전반적으로 애국심, 덕, 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 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가 나가면 더 악한 자가 들어선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여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헨리 죠지 Henry George

진보와 빈곤, 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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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호수, 매사추세츠.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만을 마주하면서 삶이 가르쳐 주는 것들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진정한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p.15~16)


나는 숲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의 중요한 이유로 숲을 떠났다. 내 앞에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삶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그래서 숲에서의 생활에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쉽게 어떤 정해진 길을 밟게 되고 스스로를 위해 다져진 길을 만들게 되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숲 속에서 살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내 오두막 문간에서 호수까지 내 발자국으로 인해 길이 났다. 이 세상의 큰길은 얼마나 닳고 먼지투성이며, 전통과 타협의 바퀴 자국은 또 얼마나 깊이 패였겠는가! 나는 선실에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생의 돛대 앞에서, 갑판 위에 있기를 원했다. 이제 갑판 아래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p.16~17)



월든 호수, 매사추세츠.


자신이 믿는 올바른 삶을 추구하고, 그것에 다가설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십시오. 마치 개가 주인을 따르듯,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십시오. 자신이 원하는 뼈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아내십시오. 그것을 파고들고, 묻어두었다가 다시 파내고, 또다시 파고드십시오. (p.23)


평범한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육신을 부양하기 위해 일 년 내내 삽으로 땅을 파는 일에 열중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범한 사람은 1년의 하루하루를 온전히 자신의 영혼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심지어 신의 대리인인 성직자들조차 자신의 육체를 지탱하는 일에 열중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면 자신의 영혼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앞서 있는 실질적인 사람입니다. (p.79)



월든의 오두막


엎드려서 책만 읽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이 또 있겠는가. 장작 패는 법이라도 배우라. 학자도 땀 흘려 일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며,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 봐야 한다. 노동은 책 읽는 것 못지 않게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신의 글 속에서 쓸데없는 잡담과 감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몸을 움직여 일을 하면 당신은 그 시간 동안 생각의 흐름이 끊어졌다고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녁에 방 안에 앉아 그 날의 경험을 단 몇 줄로라도 적어 보라. 상상력은 뛰어나지만 게으른 공상에 불과한 글보다는 더 힘 있고 진실성이 담긴 글이 될 것이다. 작가란 노동의 경험을 글로 옮겨야 하며, 그 자신의 삶의 원칙도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p.84)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여행자! 나는 이말을 사랑한다. 여행자는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존경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여행만큼 우리의 생을 상징하는 말은 없다. 개인의 역사란 결국 '어디'에서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닌가. (p.127)


늘 다니던 길을 습관적처럼 다시 밟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당신의 발길로 닳은 안정되고 익숙한 길에는 독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모든 길을 낯설고 새로운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밥을 먹고 옷을 입는 이유입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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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동학혁명가의 후손이셨네요.

그러하기에 동학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이 크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또한 삶 속에서 그 정신을 충분히 실천하셨습니다. 


다른 나라 국가원수들을 만났을 때 '동학혁명에 대해서 아시느냐'고 자주 물었다는 일화도, 우리 역사와 선조에 대한 자긍심이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밑에 글은 노무현님과 수운 최제우, 유시민님과 해월 최시형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글입니다. 

의미있는 시각이라 생각되어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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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응규(盧應奎, 1861년 3월 15일 ~ 1907년 1월 4일)는 조선말기의 문신, 유학자이며 구한말의 의병장이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종증조부이기도 하다.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하였고, 을미사변 당시에는 일본의 만행에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규장각 주사와 동궁시종관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의 수하 의병들 중 일부는 진주와 안동에서 약탈과 난리를 일으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본관은 광주(光州)으로 호는 신암(愼菴)이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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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에게 길을 묻다.


수운 최제우의 개벽세상과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


수운 최제우가 만든 동학(東學)의 요체는 한마디로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시천주라는 말은〈동경대전>의 21자 주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최제우가 종교체험을 할 때 상제(上帝)로부터 받은 '지기금지원위대강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至)이 원문(주문)이다. 시천주 사상이란 하늘님을 모심(侍天主)이라고 하는 것은 곧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바로 이 <하늘님의 자유>를 가지신 하늘님을 모시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하늘님을 모심(시천주)이라고 하는 것은 곧 가장 본질적인 자유를 자각하여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이 성취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존엄적인 자유사상이다. 


수운 최제우는 이 한울님이 바로 양반, 상민, 천민 등의 신분차등 없이 모든 사람이 자기 몸 안에 한울님을 모신 존재라는 인간 존엄의 신분평등 사상을 설파했다. 실제로 수운은 이를 몸소 실천하여 노비문서를 없애 모든 노비를 해방시켰다. 더 나아가 노비 중 한 여자(朱씨부인)를 수양딸로 삼기에 이른다. 이는 신분제가 공고했던 조선왕조 후기를 감안해보자면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혁명적 사건이며 동시에 기득권들에게는 좌빨(?) 수괴로 처단해야할 죄인 중에 죄인이 아닐 수 없었다.


수운은 150년 전 외세의 침탈과 조선왕조의 권력과 관권의 폐해, 먹물들의 삽질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목도하고 백성들에게 민중해방의 이정표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후천개벽을 통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 새로운 세상은 세상의 모순을 치유하는 수단이었으며 민중 각자가 ‘삶의 틀’을 바꿔나가는 참세상의 전형이자 실천적 규범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도대체 동학이 무엇이었기에 민중들은 그렇게 폭발적 반응을 보이며 다투어 경주 용담으로 몰려갔을까? 민중들은 동학으로, 동학으로 다투어 달려갔다. 그리하여 경주 용담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던” 세상을 안타깝게 여기는 조선 민중들의 귀의처가 되었고, 수운은 그런 민중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신인(神人)이자 진인(眞人)이 됐다. 그러나, 당시의 지배층들은 이 같은 민중들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안목이 없었다. 그들은 도리어 수운을 체포해 처형함으로써 민중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따지고 보면 여러 정황들이 수운이 살던 때와 지금이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강대국(청, 일, 척양)들의 틈바구니에서 허우적대던 조선 왕조, 매관매직이 성행하여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고 사는 관리들의 부패상, 경도된 지방 호족들의 왜곡된 여론몰이 등 국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모든 부면에서 성상과 인걸만 바뀌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양상은 비슷했다.


수운과 노무현의 진단과 고민은 대체로 일치한다. 이 두 선각자가 꿈꿨던 세상이 곧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동학농민혁명에서 3.1운동으로 5.18광주항쟁에서 6.10항쟁으로 그리고 참여정부에서 촛불로 관통하며 기저에 흐르는 아젠다가 곧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동학의 민중 민주주의적 성격, 만민평등,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사람이 사는 세상. 구시대 질곡의 개혁 등, 동학적 가치관은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관과 일치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제적으로 동학정신의 실천자였던 것이다. 참여정부(동귀일체), 평등사상(시천주), 통일지향성(동귀일체),탈권위주의(무위이화). 그가 지향한 가치는 바로 동학이 지향하는 가치와 일치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수운 선생의 모습을 본다.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수운의 향기가 난다.



수운을 부활시킨 해월과 노무현을 부활시킬 유시민 


해월 최시형은 1827년 3월 경주 황오리에서 태어났다. 해월은 온몸으로 사람 사랑과 만민의 평등사상을 실천한 겨레의 스승이자 민중의 힘을 북돋우며 동학의 기틀을 다잡아낸 위대한 혁명가이며, 탁월한 종교사상가였다. 그는 스승 수운 최제우가 연 개벽의 길을 더욱 뚜렷이 했으며, 동학의 기틀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강력한 지도자였다.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지내면서도 사후 가장 높은 평가의 자리를 차지했다.


해월은 33세 때(1861년, 철종12년) 친구들과 경주 용담정에 찾아간 게 동학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이후 2년 만에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임명됐고, 이어서 수운의 도통을 이어받아 35세의 나이로 동학의 2대 교주가 될 정도로 뛰어난 수행력과 인간됨됨이를 드러냈다. 이 때 수운의 나이 40세. 처형되기 직전이었다. 죽음을 예감하고 제자에게 자신의 모든 걸 전수한 것이다.


그는 우리 역사상 가장 긴 수배생활을 하며 평생을 도망다니면서 조직을 짜고 교세를 넓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땅의 외진 골짜기마다 그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는 데마다 새끼를 꼬고, 짚신과 멍석을 짰고 나무를 심었다. 이를 통해 “도는 높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생활하는 그 속에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언제나 남을 위해 기도하고, 베푸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그런 자세로 억눌린 백성들에게 평등과 인간존엄의 원리를 제시했다. 


또한 동학사상을 당대 현실의 대안으로 확실하게 인식시켜 근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중운동으로 꼽히는 동학농민운동의 사상적, 조직적 기반을 다졌다.


해월 사상의 근간은 ‘사람의 곧 하늘’이란 말로 집약된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은 사람은 곧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당시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반상의 계급을 인정하지 않고, ‘상놈’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한울님’ 곧 삶의 주체자로서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당시 현실에서는 가히 개벽과도 같은 혁명적인 사상을 들어보였다.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니의 살같이 하라” “밥 한 그릇에 세상만사가 다 들어있다”고 평소 그가 강조했던 말은 곧 생태주의적 관점과 생명사상의 요체로서 최근 크게 대두되고 있는 환경문제를 풀어낼 사상의 기반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새 세상이 되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니, 인위적으로 폭력을 행사해선 안된다”고 무저항 사상을 주장하기도 했다. 해월 사상의 위대성은 이처럼 논리적이거나 현학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민중 속에서 일하고 함께 도모하는 데서 구하고 드러낸 것에 있다.


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 귀향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나와 같은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한사람 있는데 그가 바로 유시민이라며 애써 그를 무대에 세웠다. 자신의 뜻을 이을 정치인으로 대중 앞에서 유시민을 당당하게 선언한 셈이다. 절차야 어떻든 수많은 지지자 앞에서 ‘나와 똑 같은’이라고 했으니 당신(유시민)은 내 뜻을 상속하여 실천하라는 노 대통령의 준엄한 명령으로 봐야한다. 


이런 사실만 가지고 유시민을 해월과 병치시킨다는 것이 다소 무리한 비교일지는 모르겠으나 노무현의 유지를 실천할 정치인으로는 유시민이 가장 적자라는 점에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게다. 


흥미로운 사실은 해월과 유시민은 똑같은 경주 태생이다. 수운은 효수되기 1년 전에 많은 제자들 앞에서 해월에게 대통을 물려주는 요식을 거친다. 일종에 대통 전수식을 통해서 지지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수운은 해월의 고향과 가까운 경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가 고향이다.  경주 용담서사는 동학의 창도지요 시대 담론의 시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의 실천적 운동은 되레 전라도에서 가장 왕성했다는 점은(동학 농민 운동)은 의미심장하게 시사하는 바이다.


자,

이제 나는 유시민에게 길을 묻는다.


*이랑


출처: http://blog.daum.net/tea4u/16318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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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와 작은 나 (大我와 小我)


단재 신채호



왼편에도 하나 있고 오른편에도 하나 있어서 가로 놓이고 세로 선 것을 나의 '이목'이라고 하고, 위에도 둘이 있고 아래도 둘이 있어서 앞으로 드리운 것을 나의 '수족'이라하며, 벼룩이나 이만 물어도 가려움을 견대지 못하는 것을 나의 '피부'라 하며, 회충만 동하여도 아픔을 참지 못하는 것을 나의 '장부'라 하며, 8만 4천의 검은 뿌리를 나의 '모발'이라 하며, 1분 동안에 몇 번식 호흡하는 것을 나의 '성식'이라 하며, 총총한 들 가운데 무덤에 까마귀와 까치가 파먹을 것을 '해골'이라 하며, 개미와 파리가 빨아먹을 것을 나의 '혈육'이라 하여, 이 이목과 수족과 피부와 장부와 모발과 성식과 해골과 혈육을 합하여 나의 '신체'라 하고, 이 신체를 가리켜 '나'라 하나니, 오호라. 


내가 과연 이같이 희미하며 이같이 작은가. 이 같을진대 한편에 있는 내가 열 곳에 널리 나타남을 얻지 못할 것이요, 일시에 잠깐 있는 내가 만고에 길게 있음을 얻지 못할지니, 오호라. 내가 과연 이같이 희미하며 이같이 작은가.


이 같을진대 바람과 같이 빠르고 번개같이 번복하며 물거품 같이 꺼지고 부싯돌 같이 없어지는 내가 몇십 년을 겨우 지내고, 형용과 그림자가 함께 없어질지니, 오호라. 내가 과연 이같이 희미하고 이같이 작은가. 과연 이 같을진대 나는 부득불 나를 위하여 슬퍼하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미칠 만도 하며, 이를 갈고 통곡을 할 만도 하고, 나를 창조하신 상제를 원망할 만도 하도다.


오호라. 내가 과연 이러한가. 가로되 그렇지 않다. 저것은 정신의 내가 아니요 물질의 나이며, 저것은 영혼의 내가 아니라 껍질의 나이며, 저것은 참 내가 이니요 거짓 나이며, 큰 내가 아니요 작은 나이니, 만일 물질과 껍질로 된 거짓 나와 작은 나를 나라 하면 이는 반드시 죽는 나라. 


한 해에 죽지 아니하면 10년에 죽을 것이며, 10년에 죽지 아니하면 20세 3,40세 6,70세에는 필경 죽을 것이요, 장수를 하여도 100세에 지나지 못하나니, 오호라. 이 지구의 있을 2천2백만 년 동안에 나의 생명을 100세로 한정하여 백세 이전에 나를 구하여도 없고 100세 이후에 나를 구하여도 없거늘, 그 중에서 가로되 부귀라, 빈천이라, 공명이라, 화액이라 하여 이것을 길하다 하고 저것을 흉하다 하며, 이것을 낙이라 하고 저것을 근심이라 하나니, 오호라. 


이를 말하매 나는 가히 슬퍼도 하고 울기도 할 만하다 할지나, 이제 이 


물질과 껍질로 된 거짓 나와 작은 나를 뛰어 나서 

정신과 영혼으로 된 참 나와 큰 나를 쾌히 깨달을진대, 

일체 만물 중에 죽지 아니하는 자는 오직 나라.

천지와 일월은 죽어도 나는 죽지 아니하며, 

초목과 금석은 죽어도 나는 죽지 아니하고, 

깊은 바다와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질 지라도 

작은 나는 죽으나 큰 나는 죽지 아니하며, 

예리한 칼과 날랜 탄환을 맞으면 

작은 나는 죽을지언정 큰 나는 죽지 아니하며, 

독한 질병과 몹쓸 병에 걸리더라도 

작은 나는 죽으나 큰 나는 죽지 아니하며, 

천상천하에 오직 내가 홀로 있으며 

천변만겁에 오직 내가 없어지지 아니하나니, 

신성하다 나여, 영원하다 나여. 

내가 나를 위하여 즐겨하며 노래하며 찬양함이 가하도다.


작은 나는 죽는데 큰 나는 어찌하여 죽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작은 나를 의논할진대 이목과 수족이 곧 나라. 보고 들으매 벽으로 막힌 데를 능히 통하지 못하며, 뛰어도 한 길 되는 담을 넘지 못하고 현미경을 대고 보아도 몇억만의 희미한 티끌을 다 보지 못하며, 화륜차를 타고 행하여도 한날에 천리를 더 가지 못하거니와, 큰 나는 곧 정신이며 사상이며 목적이며 의리가 이것이다. 


이는 무한한 자유자재한 나이니, 가고자 하매 반드시 가서 멀고 가까운 것이 없으며, 행코자 하매 반드시 달하여 성패가 없는 것이 곧 나라. 비행선을 타지 아니하여도 능히 공중으로 다니며, 빙표(여행허가증)가 없어도 외국을 능히 가며, 사기(史記)가 없어도 천만세 이전 이후에 없는 대가 없나니, 누가 능히 나를 막으며 누가 능히 나를 항거하리요.


내가 국가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면 눈물을 흘리는 나의 눈만 내가 아니라, 천하에 유심한 눈물을 뿌리는 자가 모두 이 나이며, 내가 사회를 위하여 피를 토하면 피를 토하는 나의 창자만 내가 아니라 천하에 값있는 피를 흘리는 자가 모두 이 나이며, 내가 뼈에 사무치는 극통지원의 원수가 있으면 천하에 칼을 들고 일어나는 자가 모두 이 나이며, 내가 마음에 새겨 잊지 못할 부그러움이 있으면 천하에 총을 메고 모이는 자가 모두 이 나이며, 내가 싸움의 공을 사랑하면 천백 년 전에 나라를 열고 땅을 개척하던 성제 명왕과 현상 양장이 모두 이 나이며, 내가 문학을 기뻐하면 천만리 밖에 문장명필과 박학거유가 모두 이 나이며, 내가 봄빛을 좋아하면 수풀 가운데 꽃 사이에 노래하고 춤추는 봉접이 모두 이 나이며, 내가 강호에 놀기를 즐거하면 물속에 왕래하는 어별과 물가에 조는 백구가 모두 이 나이라.


한량없이 넓은 세계 안에 한량없는 내가 있어서 동에도 내가 있고 서에도 내가 나타나며, 위에도 내가 있고 아래도 내가 나타나서 내가 바야흐로 죽으매 또 내가 나며, 내가 바야흐로 울며 또 나는 노래하여 나고 죽으며, 죽고 나며, 울고 웃으며, 웃고 우는 것이 대개 나의 참면목이 본래 이 같은지라.


슬프다. 온 세상이 어찌하여 자기의 참면목을 알지 못하고 혹 입과 배를 나라 하여 진진한 고량으로 이것만 채우고자 하며, 혹 피육을 나라하여 찬란한 의복으로 이것만 따뜻이 하고자 하며, 혹 생명이 나라 하고 혹 문호를 나라 하여, 부끄럽고 욕이 오든지 자유치 못함을 당하든지 이것만 보전하고 이것만 유지코자 하다가 조상에게는 패류의 자손이 되고 국가의 죄인도 되며 동포의 좀과 도적도 되고 인류의 마귀도 되나니, 오호라, 자기의 참면목이 나타나는 날이면 어찌 서러워 울고 이를 갈지 아니하리요.


울지어다 울지어다. 내가 이 한 붓을 들고 천당의 문을 열고 분분히 길을 잃은 자들을 부르노니, 울지어다 울지어다. 나의 이르는 바 천당은 종교가의 미혹하는 별세계의 천당이 아니라, 나의 참면목을 나타내는 것을 깨닫는 것이 곧 이것이라.


이 참면목만 나타내는 날이면 저 구구한 일개 신체는 모이어 연기가 되어도 가하고 흩어져서 구름이 되어도 가하며, 피어서 꽃이 되어도 가하고 맺어서 열매가 되어도 가하며, 단련하여 황금이 되어도 가하고 부수어서 모래가 되어도 가하며, 물에 잠겨서 어별이 되어도 가하며 산과 들에 행하여 호표 세상이 되어도 가하고, 하늘에 오름도 가하며 땅으로 들어감도 가하고, 불에 던짐도 가하며 물에 빠짐도 가하니, 성인의 말씀에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다 하심이 곧 이를 이르심이거늘, 애석하다. 


저 어리석은 사람들이며, 그 눈을 감으면 이르되 내가 죽었다 하며, 그 다리만 넘어지면 이르되 죽었다 하고, 반드시 죽는 나를 잠깐 살기 위하여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나를 욕되게 하며, 반드시 죽는 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죽지 아니하는 나를 괴롭게 하고, 반드시 죽는 나를 편안히 하기 위하여 죽지 아니하는 나를 타락케 하니 어찌 그리 어리석으냐.


내가 인간에 유람한 지 20여년에 이 세상 사람을 보건대, 그 누가, 이 반드시 죽는 나를 위하여 구구한 자가 아니리요. 이 사람들이 필경에는 죽는데, 혹 주리다가 죽기도 하고, 혹 배부르다가 죽기도 하고, 혹 근심하다가 죽기도 하고, 혹 즐기다가 죽기도 하고, 혹 초췌하여 죽기도 하고, 혹 발광하여 죽기도 하고, 혹 신음하다가 죽기도 하고, 혹 낭패하여 죽기도 하는도다. 


어찌 다만 나의 눈앞에 사람만 이같이 죽으리요. 혹 나의 이전 사람도 이같이 죽었으며, 장래의 사람도 장차 이같이 죽으리니, 슬프다. 이 지구상 인류의 대략 총계 십오억만 명 중에, 세계에 뛰어난 영웅이나 천명을 아는 성인이나, 단장한 미인이나 재주 있는 선비나, 황금이 산 같은 부자나, 세력이 흔천동지하는 귀인이라도 세상에 나던 날, 이미 하늘이 정한 한 번 죽는 것이야 어찌하리요, 그런즉 반드시 죽는 나를 생각지 말고 죽지 아니하는 나를 볼지어다.


반드시 죽는 나를 보면 마침내 반드시 죽을 것이요, 죽지 아니하는 나를 보면 반드시 길이 죽지 않으리라.


비록 그러나 나의 이 의논이 어찌 철학의 공상을 의지하여 세상을 피하는 뜻을 고동함이리요. 다만 우리 중생을 불러서 본래 면목을 깨달으며, 살고 죽는데 관계를 살피고 쾌활한 세계에 앞으로 나아가다가 저 작은 내가 칼에 죽거든 이 큰 나는 그 곁에서 조상하며, 작은 내가 탄환에 맞아 죽거든 큰 나는 그 앞에서 하례하여 나와 영원히 있음을 축하기 위함이로다.


1908년 9월 16일, 17일 대한매일신보 국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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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웠다

- 오마르 워싱턴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받을만한 사람이 되는 것 뿐임을

사랑을 받는 일은 그 사람의 선택에 달렸으므로


나는 배웠다.

아무리 마음 깊이 배려해도 어떤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을


인생에선 무엇을 쥐고 있는가 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 배워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또 무슨 일이 일어 나는가 보다 그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한 것을.


그리고 정말 나는 배웠다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의 믿는 바를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것

그러나 이 두 가지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의 그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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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에너지 - 신과학총서 2

콜럼 코츠 (지은이) | 유상구 (옮긴이) | 양문



지구상에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각종 환경재해에 관한 해법을 소개한 저서. 빅터 샤우버거의 자연관과 사상에 깊이 매료된 저자가 자연의 신비와 이를 바탕 으로 한 과학원리를 제시한 저서.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 물의 본성, 물의 순화과정 등을 체계있게 기술했다.


목차


001. 빅터 샤우버거, 그는 누구인가? 

002. 에너지란? 

003.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 

004. 운동이란? 

005. 태양 

006. 지구를 감싸고 있는 대기 

007. 온도 

008. 물의 본성 

009. 물의 순환과정 

010. 샘물의 형성과정 

011. 돌이 물에 뜨는, 물살에서 송어가 휴식을 취하는 원리 

012. 통나무 운송수로 

013. 물의 흐름에 관한 동역학적 고찰 

014. 물 공급방법 

015. 음용수의 공급 현황 

016. 나무와 빛 

017. 삼림경영학, 고귀한 학문인가 하찮은 잡학인가? 

018. 나무의 신진대사 과정 

019. 농업에 응용되는 생명의 기술 

020. 숙성 에너지의 생성 

021. 응폭 

022. 마지막 회고 

023. 역자후기 

024. 용어설명 

025. 참고문헌 

026. 찾아보기



인상깊은 구절들


빅터는 물을 지구를 구성하는 단순한 물질이 아닌 '모든 생명체의 모체에 해당하는 대지의 혈액'이라고 보았으며, 모체의 자궁이라 할 수 있는 양질의 숲에서 물이 생산된다고 보았다. 물은 모든 생명체들의 체내에서 활동하면서 놀랍게도 모든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근본이다. 생명이란 운동이며 내적 혹은 외적으로 일정한 흐름과 변화의 상태를 의미한다. --- p. 161


뉴턴경은 사과가 땅으로 떨어진 이유를 생각하기 이전에 사과가 어떻게 나무에 매달려 있게 되었는지를 먼저 의심했어야 한다. -p.99


통상적으로 태양은 아주 뜨겁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에 비추어 볼 때, 태양은 아주 차갑다고 추정된다. -p.116


제방을 쌓아서 물길을 조절한다는 생각은 원인과 그에 따른 결과를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만 파악하려는 일차원적인 발상이다. -p.222


그러나 자연은 경쟁보다는 상호조화를 바탕으로 운행되는 체계다. -p.282


벌목한 후 나무가 좀먹지 않기를 바란다면 일년중 벌목이 가능한 날은 불과 사흘뿐이다. -p.304


최근 20-30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강력한 전자기파를 널리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무의 내부 통신체계와 유기체들간의 신호체계에 극심한 교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p.316


빅터가 개발한 비행접시는 아무런 입력 없이도 저절로 회전하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기존의 정통과학적 입장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으로서 지금의 과학적 한계를 벗어나는 내용이다. -p.389 



리뷰


현대 문명의 위기에 공감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매우 좋은 책입니다.

 

20세기 이후  인류는 비약적인 과학 기술에 의해 편리한 물질문명을 이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의 과학 기술은 지구의 자원을 고갈 시키고, 환경을 오염시킬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과학기술로 인간의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와 결합함으로써, 지구의 환경과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하였습니다.  

 

사실 지구는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무생물, 미생물, 식물, 동물, 인간 등을 세포로 한 매우 커다란 생명체인데, 지금까지 인류는 인간 중심 이기주의로 지구를 포함하여 인간 이외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인류에 의해 지구의 세포가 대량으로 파괴됨에 따라 생명체인 지구의 균형을 깨뜨려서 지구는 중병에 걸렸으며 지구는 스스로 살기위한 자기 치유를 시작했습니다. 지구의 몸살은 인류에게는 기상이변과 지진,화산 등 천재지변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갈 수록 심해지는자연재해로 인류는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벌써 이러한 인류 문명의 위험성을 예견하고, 지구를 생명체로 인식하여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청정 과학기술을 제시한 위대한 선각자가 빅터 샤우버거입니다.

 

"살아있는 에너지" 책은 빅터 사우버거의 삶과 철학, 과학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20세기의 화려한 전기 문명의 시대를 열은 사람은 니콜라스 테슬라이고, 상대성이론으로 원자시대를 열은 사람은 아인슈타인입니다. 테슬라와 아인슈타인은 매우 뛰어난 과학자이었으나, 불행히도 이들이 제시한 교류전기와 무선장치, 원자에너지는  전자파와 방사선 물질로  지구의 공간을 오염시키는 한계성을 가진 기술이었습니다.

 

반면, 빅터샤우버거가 제시한  응축 에너지(Implosion) 기술은 오염없이도 우주 공간으로부터 기존의 폭발(Explsion)에너지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끌어올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20세기 인류는 자연과 공존하면서 인류 문명을 도약시킬 수 있는 이러한 과학 기술을 알아보지 못하고 빅터 샤우버거의 연구 결과를 사장시켰습니다. 

 

빅터 샤우버거는 통탄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내가 미쳤다고 한다. 정말이지 그들의 말이 옳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보잘것없는 한 인간이 의미없이 지구상을 헤매고 다닌다 해도 그것은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만약 내가 옳고 오늘날의 과학이 틀렸다면, 만약 그렇다면, 오 하느님! 제발 인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빅터버거가 발명한 주요 내용을 보면,

 

제트엔진의 원리를 세계 최초로 제안했으며.

1930년대에 지구는 생명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삼림이 파괴되면 지구온난화가 오고 기상이변이 올것을 경고 했으며,

물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고 자연의 원리대로 사용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하천 직선화,하상정비,댐) 수질이 오염되고 생태계가 파괴됨을 경고하였으며,

현대의 화석연료와 원자핵 분열을 사용한 폭발(Explosion) 에너지의 위험성(오염)을 알려주고, 소용돌이(보텍스,Vortex) 방식의 새로운 청정에너지인 응폭(Implosion) 방법을 제시하였으며,

상대성원리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정신과 생명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우주 원리를 제시하였습니다.

  

책이 나온지 약 15년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빅터샤우버거가 제시한 이러한 방법들을 인류는 현재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류는 그동안 지구를 무생명체로 보고 인간 중심 이기주의로 지구 가족인 하늘, 땅, 바다의 모든 환경과 생명체들의 균형을 파괴한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자연과 상생하고 인류와 상생하는 삶으로 전환해야만 할 것입니다. 지구를 생명체로 인식하여, 지구를 오염시키는 쓰레기를 절반이하로 줄이고, 육식을 자제하고, 친환경 기술을 적용할 때 인류는 현재의 위기를 해소하고 새로운 도약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인류는 현재의 환경을 오염시키는 과학 기술을 대체할 새로운  과학 기술을 찾아야 하는 데, 빅터 샤우버거가  제시한 방법이 가장 가능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빅터 샤우버거는 방대한 연구를 통해 많은 기록을 남겼으나, 관리 소홀로 현재 이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주요 원리 등의 자료가 남아 있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연구를 한다면 새로운 기술을 통해 현재 지구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기술은 물질과학이 주는 당장의 눈 앞의 물질적인 이익 대신, 자연과 상생을 하고, 인간의 사회를 풍요롭게 하여 인류를 살리는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뜻 있는 많은 분들이 새로운 과학 기술 연구에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로 이 책은 콜럼코츠라는 과학자가 빅터샤유버거 사후 20년이 지나  자료가 매우 부족한 가운데서도 15년의 자료 수집과 연구를 통해 발간한 책으로, 대단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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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 역사를 바꾼 고대 농법의 수수께끼

요시다 타로 (지은이) | 김석기 (옮긴이) | 들녘




한국에서는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안철환 선생님에게서 "위험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전통농업의 본래 목적이다."라는 견해를 들었는데, 이 책을 쓰면서 세계 각지의 전통농업도 '생산성'과 '안정성'을 저울질했을 때 안정성과 지속성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효율이냐 위험이냐'라는 본원적인 질문은 농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칼럼에서 잠시 소개한 '회복력'이란 개념을 이 자리를 빌려 약간 보충하여 설명하고 싶습니다. 원자력발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의 선진적인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회복력이 화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력이란 자연재해와 재해 등의 충격을 받았을 때 공황을 일으키지 않고 유연히 대응하는 힘 또는 타격을 모두 흡수할 수 없어도 즉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 '극복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염된 하천과 호수도 오염 유입을 중지시키면 다시 정화되고 다친 사람도 세월이 충격을 완화시키듯이, 자연에도 사회에도 개인에게도 회복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복력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어느 한계를 넘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그림을 봅시다. 2009년 회복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지구 체계의 경계, 인류가 안전히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탐구하다'에서 발표한 그림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환경에는 아홉 가지 넘을 수 없는 한계(그림 안쪽의 선)가 있는데, 그 가운데 기후변화, 생물다양성의 감소, 질소순환의 변화는 인류의 부하로 인하여 이미 지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외의 두 가지는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기에 그 경고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의 생명은 38억년 전 탄생한 이후 전례 없는 대멸종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공룡의 멸종으로 유명한 2억 5000만년 전의 폐름기 말에도 모든 생물종의 90~95%가 멸종하는 등 지구의 역사에서는 과거 5번 정도 대량 멸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멸종 속도는 과거보다 100~1000배나 빠르고, 더욱이 이번 세기의 멸종 비율은 10배 이상으로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질소의 혼란도 심각합니다. 인간은 대기의 질소를 공업적으로 암모니아로 전환시켜 화학비료(8000만 톤/년)를 생산하고, 콩과작물을 재배하여 고정(4000만 톤/년)시키고, 화석연료를 연소(2000만 톤/년)시켜서 질소의 자연적인 순환을 교란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현재의 25%인 1년에 약 3500만톤이 한계라고 합니다.


인도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미네랄인데 인 오염으로 인한 부영양화로 작은 호수의 바닥이 산소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듯이, 풍화로 자연적으로 유입되는 양을 넘어서 바다로 인이 흘러 들어가면 '해양 무산소 사태'를 일으킵니다.


폐름기의 대량 멸종은 이것이 요인의 하나였다고 생각되는데, 겨우 20% 늘어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화학비료로 쓰려고 인을 1년에 2000만 톤이나 땅속에서 캐어 900만 톤이나 바다로 유입시키고 있습니다. 무산소 사태를 일으키는 22만 톤의 40배나 되어, 지금 유입되는 양의 1/10 이하로 억제하지 않으면 앞으로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농지 개발도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지구에서는 얼어붙은 땅을 제외하고 약 12%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그 이상 개발할 수 있는 곳은 앞으로 3%(약 4000억 평)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이상 개발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면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무리하게 개발하면 지구 표면의 에너지 균형이 변하고 제트기류에도 변화를 일으켜, 티베트의 기온과 강수량이 변화하며 중국과 인도의 수자원에도 영향을 준다는 모의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구는 안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위약한 체계입니다.


이 책의 칼럼에서도 소개한 캐나다의 생태학자 버즈 홀링 박사는 "지금과 같은 초밀도 정보사회는 사고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상태이다."라고 훨씬 이전부터 경고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홀링 박사의 경고 내용을 읽을 때마다 이번 일본의 원자력발전 사고도 미리 예언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건너뛰어 처음 방문한 한국에 대한 저의 첫 번째 인상은 옛날 일본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30년 전의 일본처러럼 전통적인 공동체의 장점도 남아 있고, 또 경제적인 경쟁력도 있으며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는 등 사회에 성장에 대한 꿈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편 지금의 일본은 세계화 속에서 공동체의 기반은 끊어지고, 경제적인 활력도 잃고 젊이이들도 경쟁에 대한 의욕을 잃었으며, 사회 격차는 벌어지고, 이번 원자력발전 사고로 더욱 몰락해 나아가지 않을까 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앞에 이야기했듯이 지구 환경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이 더 이상 경제성장을 하더라도 좋을 것이 없고, 한국도 실패한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그 뒤를 따를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살아가려면 에너지도 식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회복되지 않는 지구의 경계를 넘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계속 늘어나는 에너지와 물과 식량 수요를 충당하여 인류가 살아남을 것인가? 


회복력 연구의 대가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라이언 워커 박사는 그 해결책은 '효율화'에 있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효율화와 합리성으로만 돌진하면 위험이 높아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경고합니다.


이 책의 칼럼에서도 이야기하는 '영고성쇠' 곧 자연 생태계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을 무리하게 경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합니다. 홍수를 댐으로 무리하게 막더라도 언젠가 그것을 뛰어넘는 큰 홍수가 일어납니다. 산불을 계속 억제하면 타기 쉬운 낙엽이 쌓여서 오히려 큰불이 일어납니다. 해충의 발생을 농약으로 방제한다면 더욱 피해를 높입니다. 


세계 각지의 생태계를 연구한 회복력 연구자들이 제창하는 철학은, 기존의 서양적인 자원 경영의 발상과는 매우 다른 언뜻 보면 쓸모없어 보이는 '중복성(필요 최저한도가 아니라 중복되고 여분이 있는)'을 소중히 하라고 합니다.


이 '회복력'을 주제로 2005년 가을에는 영국 남부 데번주의 작은 마을 토트네스에서 기후변화와 석유 생산정점이란 '두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 사회의 회복력을 높이는 '소도시 전환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영국 각지는 물론 유럽 각국 및 오세아니아와 세계 각지에서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 생태학을 검토한 회복력 연구자들이 도출한 최첨단 공동체 만들기와 사회 관리의 결론이 우리 동아시아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은 김석기 씨의 전문이기도 한 '동양철학', 특히 노장사상과 묘하게도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이 책은 농법이 중심 주제인데, 만약 전통농법과 생태농업의 추진만이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버리고 에너지 절약에 노력하며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고, 금전적인 경제 성장이 아니라 문화적인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서울대나 연세대에 진학하기 위한 시험공부를 위한 학력이 아니라 예술과 음악을 누리기 위한 교양 육성을 목표로 하고, 또한 재해 등의 위험에 강한 사회 만들기를 국가의 목표로 삼으면 어떻까?


이야말로 회복력을 갖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모델의 하나가 오랫동안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쿠바입니다.


카트리나보다 강한 허리케인이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만전의 준비와 공동체의 상부상조에 의하여 쿠바에서는 거의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자 요시다 타로.




'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 귀농총서' 30번째 신작. 


고대 농업 기술과 선주민들의 지혜를 돌아보고, 장단점을 찾아 비판하고 또 수용하면서 그것들이 지금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살핀다. 또 지속가능한 인류사회를 위한 지속가능한 농경법을 다룬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국내에 이미 소개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의 저자이다. 그는 2010년 9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농수산대학과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쿠바의 전통농법,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을 소개했다. 그때 들녘출판사와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는 “전통농업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며 집필을 의뢰했다. 한·일 양국의 전통농업에 대한 관심이 빚어낸 역작이라 하겠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_변경 농업의 탐색을 권유

현대농업은 석유로 움직이는 공업이다 | 2012년을 경계로 문명은 전환한다 | 문명 전환의 열쇠는 변경과 고대에 잠들어 있다


Ⅰ. Back to the Future

1. 왜 생태농업과 전통농업인가

유기농업이 번성하기에 생태농업으로 전환 | 농업생태계의 구조를 활용한 생태농업

라틴아메리카에는 500가지 농법이 있다

2. 세계 농업유산

위기에 처한 전통 유산 | 인류에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은

3. 생태농업과 전통농업을 평가하는 국제평가

녹색혁명에도 유전자조작에도 미래는 없다 | 생태농업을 평가하는 유엔 식량 고문 | 구미의 농업사관을 넘어서

전통농법 칼럼1 왜 가을이 되면 산이 물들까 ―질소와 에너지


Ⅱ. 미래의 유산 ―마야, 아즈텍, 아마존, 잉카

1. 고대 농법의 부활로 마을을 되살림

농업의 근대화로 마을을 버리고 떠난 농민들 | 세계에서 가장 앞선 농법 밀파·솔라

2만 종의 옥수수를 보전 | 풀투성이 옥수수밭 |고대 수로의 부활로 토양침식을 막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사람들을 설득하다

2. 거대 도시를 부양한 물위의 채소밭



책소개


전통농업은 아직까지도 변경농업, 혹은 문명의 한계지에서나 가능한 농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탈석유화를 달성함으로써 생태농업을 정착시킨 쿠바, 재래품종을 적절히 섞어지음으로써 식량과 환경은 물론 홍수문제까지 극복한 아즈텍의 전통농업, 토종종자의 부활로 마을을 되살린 인도의 전통농업 등은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농법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이고, 토양침식을 막으며, 병해충을 방제하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서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릴 수많은 슬기가 깃들어 있다. 


이 책은 ‘고대 농업 기술’과 선주민들의 ‘지혜’를 돌아보고, 장단점을 찾아 비판하고 또 수용하면서 그것들이 지금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살핀다. 또 지속가능한 인류사회를 위한 지속가능한 농경법을 다룬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국내에 이미 소개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의 저자이다. 그는 2010년 9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농수산대학과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쿠바의 전통농법,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을 소개했다. 그때 들녘출판사와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는 “전통농업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며 집필을 의뢰했다. 한·일 양국의 전통농업에 대한 관심이 빚어낸 역작이라 하겠다.


전통 농업이 희망이다 

석탄도 원자력도 석유를 대신해서 공업사회와 현대농업을 유지할 만한 힘이 없다. 안타깝게도 석유 생산은 2012년을 기점으로 생산량이 정점에 달했다가 급하락할 전망이다. 따라서 종자 생산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농사의 전 과정을 석유에 의존하는 현재의 농경법으로는 인류의 식량을 담보할 수 없다. 하지만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미래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옛날로 돌아가면 좋은 것이 있을까, 전통 농업으로 모든 세상사가 쉽게 해결될까?”라고 물음을 던지면서 쿠바, 마야, 인도, 스리랑카, 뉴기니, 발리 등 각 나라의 전통 농업을 소개한다. 


전통농업이란 몇 천 년에 걸쳐 시행착오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복잡한 농업생태계 안에서 축적하여 온,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기술이다. 불행히도 과거의 이러한 뛰어난 지혜의 대부분이 선진국에서는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는 아직 수많은 노하우가 남아 있다. 그는 또 전통 농업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사례들을 충분히 소개하면서 현대 사회는 이제 ‘전체론’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즉 농업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삶 자체가 ‘전통으로 회귀하든지 근대 과학을 추진하든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벗어나 과학이든 사회든 경제든 ‘통합’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위험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전통농법의 본래 목적인 바 세계 각지의 전통농법도 ‘생산성’보다는 안정성과 지속성을 중시했음을 밝히고 있다. 


회복력을 갖춘 전통사회 

자연재해나 재해의 충격이 있을 때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고 유연히 대응하거나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을 회복력이라 한다. 자연과 사회, 개인에게도 회복력이 있지만 어느 한계를 넘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특히 기후변화·생물다양성의 감소·질소순환의 변화는 이미 한계를 뛰어넘었고,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농지개발도 한계에 이르렀다. 질소순환 및 농지개발의 한계는 인간의 에너지원인 식량생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세계 각국의 전통농업은 우리 인류가 오래 전에 잊어버린 공동체와 전통사회의 미덕을 일깨우면서 동시에 가장 생태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농경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 토종종자 부활로 마을을 살린 인도농업, 생산성과 생물다양성 보존에 성공을 거둔 스리랑카, 두둑을 이용한 이어짓기로 수확량을 보장한 뉴기니의 흙무더기 농법 등 고대 전통사회에서는 자연의 특성, 지역과 기후의 특수성을 십분 수용한 전통농업을 발전시켰다. 또한 이들 공동체의 일원은 자연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고, 다 같이 사는 사회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생산성에 목을 매지 않아도 공동체가 충분히 먹고 살만큼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명실공히 자연과 조화한 농경에 기초한 평등사회를 구현했다. 그야말로 자생력과 회복력을 갖춘 사회체계였고, 진정한 의미의 문명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변경 농업의 탐색을 권유하다

저자는"문명의 기초는 사람을 부양하는 먹을거리이다. 먹을거리를 낳는 것은 농법이다. 따라서 농법이야말로 문명의 요람이라 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메소포타미아가 염해鹽害로, 고대 그리스가 토양침식으로 멸망했듯이 문명의 중심지는 농법에 따라 변동한다. 20세기의 개막과 함께 시작되어, 평원을 지배한 석유농법도 석유생산정점(peak oil)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질 운명이다."고 주장한다. 또 유전자조작과 녹색혁명에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이제 전통농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 영화의 땅에 매장된 전통농업에서 미래 문명을 뒷받침할 농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통에 묻힌 슬기를 되찾아오는 것, 고대인의 지혜를 재발견하는 것은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시대착오적인 노스탤지어도 아니다. 환경 파괴, 인구 증가, 빈부 격차, 빈곤의 증대 등 목전에 다가온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 석유생산정점과 함께 도래할 총체적인 전 지구적인 위기를 탈석유 시대 농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보면 어떨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문명의 돌파구는 정녕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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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루돌프 슈타이너

마리 슈타이너 (Mari Steiner)
바젤, 1932년 12월

이번 달 우리는 어느 인간 집단을 지도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일이 루돌프 슈타이너의 운명이 된지 30주년이 되는 날(역주1)을 축하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결의가 이루어진 것은 정신과학에 관한 일과 더불어, 자유로운 인격들을 높은 도덕적 이상에 이를 때까지, 예술을 살아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파악할 때까지, 인간의 의무와 봉사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보다 포괄적인 의식에 이를 때까지 교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수많은 폭풍우와 험난함을 피할 수 있도록, 그는 인류의 현재와 미래의 발달에 적합한 신지학을 담당하는 일을 목표로 하는 협회라는 배의 키를 잡았습니다. 그것은 고대 지혜의 신성함을 날카롭게 이해하면서도 서양의 과제와 목표를 포괄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충동의 중심적인 뜻에 대한 인식이 탄생할 수 있는 신지학입니다. 

그러한 이해를 구축하는, 피로를 잊은 세월이 취임일부터 계속 되풀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동양으로 기울어진 신지학 협회의 활동은 현재와 미래의 과제에 대한 감정에 눈을 뜨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향해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고, 현재의 힘과 이후 인간성에 발생하여 인간의 진보에 공헌해야 하는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블라바츠키에 의해 새롭게 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이해되지 못한 고대의 지혜를 교조적으로 고집하는 자세를 보면서 슈타이너는 당장은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신지학 그룹의 구도자들은 그들의 길 위에서 밀어닥치는 수수께끼를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동양과 서양과 그리스도교가 신지학을 통해서 만나지 않을까하는 정확한 물음이 제기되었습니다.(역주2)

깊은 마음의 인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유기적 발달, 인과의 연쇄, 그리고 그리스도의 행위에 빛을 비출 수 없을까? 그 때에 비로소 슈타이너는 그러한 사람들의 초대를 받아들여, 그들과 함께 일할 가능성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와 동경이 우선 그에게도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존재하고 나서야 비로소 서양의 그리스도교적인 비교(秘敎)가 동양에 경도된 신지학에게 주어져야 할 충동으로서, 그에게 있어서도 명확하게 공식화 된 과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신지학은 이 충동에 의해 한없이 풍부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많은 사람들은 지식이 풍부해진 것을 기분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양과 서양, 소우주와 대우주를 인식 가운데서 결합하기 위해서, 자아의식에 이르는 이 길을 위해서 「인지학」이라고 하는, 보다 꾸밈없는 이름이 선택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겸허한 마음에서, 또 인간으로부터 신에 이르는 인식의 길이 자기 인식으로부터 우주 인식에 이르기 때문에 선택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충동에 명확한 성격부여가 행해졌습니다. 「인지학은 인간의 영성을 우주의 영성으로
이끌 수 있는 인식의 길이다.」

헤아릴 수 없는 사고의 풍부함, 루돌프 슈타이너가 그의 강의에 부여한 이상할 정도로 풍요로운 정신적
재산은 그의 연속 강의를 단일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좁은 정의의 틀 안에 집어넣기 곤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한 강의는 응축된 에너지원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가까운 곳이나 먼 곳도 비추어내고, 근원의 시작에 뛰어들어, 시공보다 더 깊이 침잠하고, 그러고 나서 정밀하고 세세한 부분을 끄집어내지만, 그것들은 때로는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암시적인 중요성과 새로운 빛의 힘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세한 부분의 축적된 역동적인 힘 전체로부터 무언가가 운명의 엄격한 법칙과 같이 폭풍우를 품고 있으면서도, 정화의 불을 잉태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어려운 때에 앞서 세계대전으로 폭발하고, 그 후에도 전대미문의 쟁란이 되어 가까운
장래에도 지속될 세력들(역주3)의 작용에 보다 깊은 의미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왜 초래되어야
했던 것일까, 어떤 과오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에게 무엇이 요구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이해합니다. 혹은 못 본채하고 있는 상세한 부분을 이와 같이 정밀하게 구성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인간적인 사상(事象)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강력한 우주적-인간적 배경으로부터 끝없는 인상적인 역사
그림이 우리의 앞에 떠오릅니다.

이러한 전망은 우주의 원형적 역사와 아득한 태고의 인간 역사에 침잠하면서도 가장 밝은 빛으로 현재를 비추어, 인지학협회의 회원을 위한 강의에 특별한 힘을 띠고 나타납니다. 슈타이너가 많은 여행에 할애하면서도 그가 상주했던 장소, 즉 베를린과 도르나흐에서 그러한 강의가 때로는 중단되면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리듬으로 행해졌습니다. 

이러한 강의를 통해서 적어도 작은 인간집단의 양심이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우리가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살아 있는 이 순간의 한없는 중요함에 눈을 뜨게 해야 했던 것입니다. 실증에 의해 진지하고 인상적으로 생활의 상세한 모든 부분을 묶어, 슈타이너는 우리에게 운명 그 자체의 소리로서, 새롭게 각성 된 인간의 양심으로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이와 같이 견고하다고 믿어지던 온갖 지원이 눈앞에서 비틀거렸을 때, 제동이 걸리지 않는 본능의 반동이 근원적인 힘에 생겼을 때,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서 축적과 구축을 가져오는(다시 쌓아올리고 구성하는) 사상을 형성하는 일에 노력한 이가 바로 그였습니다. 인간성은 그의 소리를 듣기에는 너무 미숙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도에서 소수의-확실히 미숙한-그러나 의욕에 불타는 인간집단에 의해 빛을 혼돈에 가져와야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오히려 실천적 상황에 참가하는 시도가 행해졌습니다. 오늘날의 자칭 실천적 현실주의자들은 나태라고 하는 무자비한 무기의 모든 것을 이용해 자신에게는 기묘하게 생각되는 것, 영계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을 경멸을 담아 물리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살아있는 사고는 그 순간을 초월해 살며,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일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과조차 기대하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살아있는 사고의 의무입니다. 

그것과 관련된 문제가 인류의 구원입니다. 그 사고는 그 순수함으로 고난과 시련의 시기를 통과하면서 서서히 눈을 뜨고 있는 영혼들에게 이르는 길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의 영시(靈視)가 소원해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던 생활의 실천과 이해 그 자체로부터 슈타이너는 생의 모든 영역을 포괄해, 정력적이고 창조적인 충동으로 과학, 예술, 세계관과 종교적 활동이라는 다양한 영역에 침투할 수 있는 인식의 과학을 창조했습니다.

이 모든 것에 참여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차의 삶을 느끼는 일입니다. 눈에 의해 깨끗해지고,
태양의 빛에 의해 생기를 얻은 공기를, 힘을 주고 치유해 주는 공기를 호흡하는 일입니다. 이 고차의 현실 영역에, 인간의 생명에 쏟아져 내리는 우주적으로 준비된 현실 영역에 참여할 때, 사람은 숨을 깊게 들이 마십니다. 우주적 실재가 인간의 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지금도 인간 운명의 미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인간은 사고를 통해 더욱 더 고차 존재의 영역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공포를 가져오는(두려울 정도로) 광휘를 내뿜는 영적보물을 양도받았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암흑시대-갈리유가의 힘을 쳐부수고 극복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실제로
내부에 어둠을 품고 있지만, 빛은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둠에 빠진 인간이라도 멀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충동의 새로운 계시를 통해 슈타이너가 우리에게 준 빛은 인류에게 2번째 영적 각성(역주4)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 빛을 위해서 인간 의식은 새로운 형식의 주형이 만들어져야했으며, 그 새로운 의식에 빛은 자신을 쏟아 부을 수 있습니다. 영적 각성만이 구제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더 이상 감각혼(역주5)의 모든 힘은 합리주의 시대가 초래한 장애를 극복하는데 충분치 않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교 비의입문의 길을 걷는 성인과 신비가가 경험한 것과 같은 열정, 중세에 알려져 있던 가장 신성한 감정의 광휘도, 열렬한 생각도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신의(神意)와 인류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다가올 미래의
요구에 맞추어 사람들의 영혼을 서서히 준비하게 될 그리스도교 비의입문의 새로운 길을 열었던 것입니다.

이 길, 그리스도교적 장미십자의 길은 특히 의식혼(역주6)의 힘에 호소합니다. 따라서 인간 인격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 인간에게 인생의 1회성에 대한 의미를 충분히 느끼게 하는 일 또한 그 과제였습니다.깊은 연구에 의해서, 상상인식과 관상(觀想)에 의해서, 그것이 인간을 대우주로 이끌고, 인간은 자신의 내부가 대우주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한 것입니다.

인격의 힘에 대한 완전한 의미는 서서히 자아를 영성의 의식적인 파악으로 이끌 수 있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인격의 힘을 발달시켜야했던 인간성의 그 부분으로부터, 재육화의 인식을 당분간 숨길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신시대의 개막에 필요한 것은 다시 요가의 길을 채용하는 길로 돌아가는 것도, 지나가 버린
시대의 발달에 적합한 모습을 취한 그리스도교 그노시스의 길도, 장미십자의 길도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장미십자의 길에 새로운 충동이 주어져야합니다. 장미십자의 길(역주7)은 가장 험난한 인식의 길이며, 그 본질은 그 이름을 부당하게 빼앗은 모든 모조품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충동이 재육화와 가르마(업業)이라고 하는 위대한 진리를 밝힐 것입니다.

장미십자는 신중하게 이러한 진실을 숨겨왔습니다. 슈타이너가 그것을 고지하는 사명을 받아들일 때까지 그것에 대한 침묵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장미십자의 활동 결과, 수세기가 경과하는 가운데 엄격한 사고 훈련의 결실로서, 예민하고 지적인 사고의 귀결로서 유럽의 인간 의식에 이러한 진리가 빛을 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성의 전체와 관계하는 깊은 관심사입니다. 

그것에 의해서 인간 발달의 역사가 그 진실한 의의와 의미를 획득할 것입니다. 그것은 불교에서와 같이 윤회전생의 수레바퀴로부터 해방하는 목적을 짊어진 한 존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괴테와 레싱(Lessing)(역주8)에 주목하라고 말해두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되풀이되는 지상의 생을 통해 진보하고, 그렇게 해서 완성된 개아(個我)를 구출하는 것, 인간에게 신적 자아를 재탄생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슈타이너는 그를 지배하는 이루 말할 수없는 인식력으로 되풀이하고 되풀이해서 이 행위를 우리의 눈앞에 제시했습니다. 

슈타이너는 오랜 망설임 끝에 독일의 신지학자들의 탄원에 동의하여 그들 사업의 지도자가 되기로 결단했지만, 신지학 협회가 재육화와 카르마의 교설을 선도하는 자로서 세상에 참여하는 일을 사명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독일에서의 이 운동의 지도자로 초대된 이유가 「유럽 중세의 신비가와 근대적 세계관」과 「신비적 사실인 크리스트교」강의였습니다. 그가 그 운동에 가져와야했던 충동은 이와 같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었으며, 가르치는 것에 관한 절대적인 자유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 자신은 현존하는 영적인 공헌과 인연을 가진 모든 시대의 진정한 오컬티스트의 정신으로 그 공헌을 살리고, 진보의 길에서 그것을 더욱 더 짊어지고 가기 위해 일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충동으로 신지학 협회를 교조적 경직성으로부터 구출하고, 거기에 신선한 힘을 불어넣어 부족한 그리스도교 비의에 대한 이해에 눈을 뜨기를 아직 바랬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차례차례 초석을 쌓아 그 이해의 기초를 견고히 하는 일을 했나갔습니다.
고찰하고, 숙고하고, 시행하는 의식이 청중에게 발달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청중에게 익숙한 용어를 사용해 서서히 사물에 대한 이해를 확대시키고, 이념을 생기 있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하여 보다 능동적인 의식 형태와 근대정신에 순응한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러한 기초가 완성되었을 때, 새로운 빛이 비쳐지듯, 보다 넓은 전망을 열 수 있었고, 지구의 사명과 인간으로서 우리의 과제를 지금까지 귀로 들은 적이 없는 말로 분명히 밝힐 수 있었습니다.
슈타이너가 전해준 연속강의 하나하나는, 특히 연대순으로 읽는다면, 새롭게 정신과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연대순으로 읽었을 때에 비로소 그의 사고의 살아있는 유기적인 힘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은 먼 과거가 된 당시의 일상 사건에 관해서 여기저기 흩어진 비평조차 높은 도덕적 힘과 교육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어, 빠져들고 싶어지는 의의를 띠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진실을 흐리게 하는 방침과 당파외교, 개인적 야심의 작용으로 신지학 협회가 좀먹어 들어가는 것에 강한 반대의 태도를 취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현재 이것을 읽는 사람은 그러한 의견의 진심을 진실로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육체로 출현하는 구세주를 내세우고, 그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조차 내어준, 그 한심스러운 행동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인도의 소년, 크리슈나무르티(역주9)가 이 역할로 선택되어,「동양의 별」이 떠들썩하게 설립되고, 신지학협회는 이 방침에 숨겨진 목적에 봉사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조잡한 방식에서 슈타이너에 의한 그리스도교적 비교의 해석에 마음을 연 영혼들을 구해내는 것이 요망되었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슈타이너를 향해 온갖 중상모략을 이용한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국제 신지학 회의가 1911년 제노바에서 개최될 예정이었고, 슈타이너에 의한 「20 세기의 부처」와
「20 세기의 그리스도」에 관한 두 강의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중지되었습니다. 슈타이너의 말이 영향을 주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명백한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당시 많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슈타이너는 그 해의 강의에서 몇
번인가 언급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신지학협회의 레벨을 매우 통탄할 만큼 타락시킨 그 방식과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역설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 말은 슈타이너 박사에 의해 강한 아픔을 수반한, 그러나 강한 힘을 담아서 발표되었습니다. 깊은 감동을 담아, 마음의 모든 것을 말속에 담아 그는 인생의 소망으로서
그가 지도하는 협회가, 오컬트결사가 매우 빠지기 쉬운 흔히 있는 함정에 떨어지지 않도록 되풀이해서
말했습니다. 그들은 엄격한 진리의 요구로부터 일탈하여 허영과 야심이라는 옆길로 빠져버렸습니다.

그러한 말은 그 일(신지학협회)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정화의 불꽃으로 살아서 따스함을 가져오는 추억으로서 혼 앞에, 그 말을 언제라도 들을 수 있습니다.
1912년에 베를린에서 열린 강의는 정신과학을 목표로 하는 운동에서 정신의 순수함을 구하기 위해서·슈타이너가 해야만 했던 고투로 여러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정신과학을 목표로 하는 운동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공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제 신지학협회의 퇴폐는 결과적으로 중부유럽에서 인지학 사업이 자립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외적형태로도 1912년 12월이 저물 무렵 「인지학연합」이 정식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지나간 세월이 리드미컬하게 추억의 앞에 특별한 힘으로 다시 떠오릅니다.
30년 전, 1902년 10월20일, 슈타이너는 베를린에서 인지학에 관한 최초의 강의를 열고, 10월21일에는
애니 베산트(역주10)의 신지학강의를 요약했습니다. 애니 베산트는 나중에 그녀에게 작용할 불건전한
영향에 아직 빠져있지 않았습니다. 20년전 슈타이너는 그가 창시한 인지학적으로 방향을 부여한 정신운동의 정신을, 아디야르로부터의 오칼트정책에 관한 급작스런 공격을 막기 위한 발언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말은 유산으로서 우리에게 울려 퍼지는, 지금 새롭게 당시 하루하루의 추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 발언은 쾰른에서 같은 해 12월 마지막 강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슈타이너는 「바가바드기타와 성 바울로 서간」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눈앞에 그리스도교 인식의 빛으로 본 순수한 동양의 지혜를 꿈에도 생각지 못한 위대함으로 비추어냈습니다. 맺는말에서 그는 그가 창설한 운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인식을 성취하고 겸허한 자세를 유지하기를 재삼재사 간절히 원했습니다.

반대세력도 자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922년 그믐 괴테아눔이 불타올랐습니다.
뒤로 물러서는 적들 사이에 서있던 인간의 대표인 나무 조형물들만이 구출되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이 조형물들을 그에 어울리는 괴테아눔의 홀에 소중하게 보관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1912년에 열린 많은 강의(역주11)에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예술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영상적인 힘으로 그려졌습니다. 당시 그것을 구상적으로 실현할 가능성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때였습니다. 지금 예술작품이 되어 볼 수가 있는 것은 말의 힘에 의해 우리 앞에 생생하게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이와 같이 외적으로, 구상적으로 표상하는 것-외적으로 ‘어떻게’ 그리스도를 그려야할 것인가-그것은 지금부터 해결해야 하는 물음입니다.」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온 많은 기획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더할 수 있기 전에, 우선 많은 감정이 인간의 혼들을 통해서 흘러야합니다.

그 계획은 이 지구의 발달과 스스로 합체 하려고 하고 있는 초감각적 충동인 그리스도의 본성을 어떠한
방법으로 나타내는 계획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달성된 것에는 그리스도의 그러한 표상에 관한 첫번째 맹아조차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성장하는 외적 모습에 체현되어, 「경이의 충동」,「공감의 충동」,「양심의 충동」 이들 유기적인 힘들이 결집하여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모양(역주12)은 바로 그 표정이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로 생생하게 한 것이 되어야합니다. 여기, 이 표상이 ‘인간을 대지의 인간으로 만드는 모든 것이, 감각적 욕망에 관계하는 모든 것이, 구석구석까지 빛을 내뿜는「영성」에 의해 극복된다. -이 얼굴모양을 영화(靈化)시킨 것에 의해 극복된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생생한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 얼굴에는 「승화된 힘」이 있어야합니다. 

그 힘은 양심이 최고로 발달했다고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턱과 입의 독특한 형태로 드러냄으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입은-그 앞에 서면, 화가나 조각가가 그것을 만들고 싶다고 바랄 때-그 입이 있는 것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성 안에 육성되어 온 도덕과 양심과 같은 모든 것을 표출하기 위한 것으로 느끼게 할 것입니다. 모든 골격, 이과 아래턱이 같은 것을 표출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러한 얼굴에 표출될 것입니다. 

얼굴의 아래쪽 반의 형태에는 매우 강력한 힘이 있어, 그것이 흘러나오면, 인체의 나머지의 모든 부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그것이 이윽고 새로운 형태가 되어, 그렇게 함으로써 특정한 에테르 힘이 극복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입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에 오늘날 육체적 인간과 유사한 몸의 형태를 주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는 「만능의 공감(共感)(모든 것에 통하는 공감)」을 이야기하는 눈을 주어야합니다. 그러한 눈만이 내적인 존재를 볼 수 있습니다. 인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과 함께 다른 사람의 기쁨과 괴로움에 참여하기 위해서 밖으로 향하는 눈입니다. 또한 이 그리스도는 땅의 감각인상에 관한 사념을 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이마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눈썹은 일부분이 튀어나와 뇌의 어느 부분에 아치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눈썹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사고하는 「사상가의 눈썹」이 아니라, 오히려 경이로움이 눈 위로 튀어나와 완만하게 아치를 그리며 머리 부분으로 돌아오는 이 눈썹에 표출 되고 있어, 그것으로부터 이른바 세상의 신비를 둘러싼 경이로움을 표출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머리 부분은 육체를 짊어진 인간에게서는 만날 수 없는 머리 부분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그리는 행위 하나 하나가 실제 그리스도상(像)의 이상(理想)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이 이상을 달성하려고 노력할 때에는 반드시 이 이상을 지향하는 감정-정신과학의 도움을 받아 인간이 이 최고의 이상을 예술적으로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한, 다음과 같은 감정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그리기 원한다면, 그대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그대는
세상의 영적인 행로에 영적으로 몰입함으로써 3개의 중요한 충동-경이와 공감과 양심-에 의해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힘이 되도록, 자신의 내부에서 활동하게 만들어, 자신의 전존재에 침투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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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슈타이너:(1867-1948) 마리 슈타이너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반려자이며, 오이리트미, 언어형성
등 모든 무대예술 발달의 출발점에 서있다. 이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루돌프 슈타이너가 신비학에 관련된 일을 하는 출발점에도 그녀가 있었다. 생전의 슈타이너 저작은 그녀가 설립한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슈타이너의 강의록이 그의 사후에 출판된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헌신에 의해서다. 그녀가 적는 서문은 언제나 슈타이너의 강의를 읽는데 있어서 큰 지침과 통찰을 주고 있다.

역주1) 30주년:루돌프 슈타이너가 신지학의 그룹에서 강의를 시작했던 것이 1902년 10월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고 하는 의미이다.
역주2) 정확한 물음이 제기되었습니다:영국과 인도의 지성에 편중된 신지학 협회에 대해서, 서양의
사변과 예술에 뿌리를 내린 신비학이 가능하지 않을까, 서양사상의 성과인 그리스도교와 서양철학을
감안한 신비학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와 같은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마리 폰 지펠스, 후에
슈타이너의 반려자가 된 여성이었다.
역주3) 세력들:물론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 대전이다. 마리 슈타이너의
표현에서, 같은「세력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려 하고 있는 것 또한 명백하다. 하지만 당시
그것을 꿰뚫어볼 수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역주4) 두 번째 영적각성:최초의 영적 각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물질영역: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한
골고다의 비의이다. 그러므로「두번째의」영적 각성된다. 단 슈타이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재래는
물질세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에테르영역, 생명영역에 출현한다고 말했다. 그 출현을
자각하는가, 그렇지 못하는가, 그것이 개인의 길을 나누게 된다.
역주5) 감각혼:인지학용어. 루돌프 슈타이너가 가장 이지적으로 정신과학의 용어를 정의 한《신지학》
에서 인용해 보자.「사방팔방에서 다가오는 자극에 반응해, 감각작용이 생긴다. 이 활동의 토대가 되는
것을 감각혼이라고 부르겠다.」인간이 감각혼을 발달시켰던 시대는 그리스-로마 시대이다.
역주6) 의식혼:역시 인지학 용어. 이하 《신지학》에서 인용.「혼에서 빛나는 영원한
것을 ‘의식혼’이라고 부른다. …가장 평범한 일상의 감각작용조차 의식과 관련된다. 이같은 의미에서
동물도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인간 의식의 핵심, 바꾸어 말하면「혼의 내적인 혼」, 그것을 여기서는
의식혼이라고 한다.」지금이야말로 인간은 의식영혼을 발달시킬 때라고 슈타이너는 주장하고 있다.
역주7) 장미십자의 길:마리 슈타이너가 구술하고 있듯이 현재「장미십자」라고 칭하고 있는 것은
루돌프 슈타이너가 그렇게 부른 길과는 무관하다. 장미십자는 중세 유럽의 과학자였다. 그들은 물질의
작용을 객관적으로 추구했다. 당시의 연금술이 근대화학의 기초를 쌓았다는 것을 상기하자. 뉴턴이나
데카르트도 연금술이나 당시의 신비사상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이다. 물론 당시
연금술문헌을 읽으면, 기묘한 시적인 기술로 되어있지만, 거기에는 깊은 의의가 있었다. 보다 많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 물질의 작용을 영적인 이미지로 파악하는 일이 이용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장미
십자의 비교' 참조.
역주8) 괴테와 레싱:괴테(1749-1832), 말할 필요도 없는 독일문학의 거장. 루돌프 슈타이너는 유기과학의 아버지로서 괴테를 재평가했다. 괴테의 변태론은 분명히 장미십자의 지혜를 근거로 하고 있다. 재육화 이념과 관해서는「파우스트」를 거론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레싱(1729-81)도 독일의 거장.「라오콘」에 재육화에 대한 통열한 생각이 명기되어 있다.
역주9) 크리슈나무르티:크리슈나무르티(1895-1986). 정신세계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언변, 그 영혼의 아름다움에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루돌프 슈타이너와 마리 슈타이너는 결코 크리슈나무르티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크리슈나무르티 소년을 이용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확실하다.「동양의 별」그룹에 관한 인지학측의 증언이 일본어로 거의 공표되어 있지 않은 현 상황을 생각하면, 이 문헌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역주10) 애니 베산트:(1847-1933) 버나드 쇼와의 연애로도 유명. 블라바츠키 사후 신지학 협회 회장으로 활약했지만, 리드비터의「영시」에 근거해서 크리슈나무르티를 「세계교사」의 재래로 정한 것이 슈타이너의 반발을 불렀다. 후에 인도국민회의의 리더가 된 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역주11) 1912년에 열린 많은 강의:크리슈나무르티 문제는 많은 혜택도 가져왔다. 바로 1912년 슈타이너가 성서에 관한 연속 강의를 열고, 많은 풍부한 인식을 주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슈타이너가 크리슈나무르티 사건으로 신지학 협회를 이탈해 인지학 협회를 만들었다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사실에 반한다. 우선 슈타이너가 지도하고 있던 신지학 협회 독일지부는 신지학 협회로부터 제명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독일지부는 거의 그대로 인지학 협회로 이행했지만, 루돌프 슈타이너는 새로운 「인지학 협회」에 대해서 명예직을 얻었을 뿐이었다. 새로운 그룹으로부터도 주의깊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정치적 흥정을 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주12) 그리스도의 얼굴모양:슈타이너의 손에 의한 그리스도의 목조, 거기에 조각되어 있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은 이상한 표정을 띠고 있다. 서양미술사에 나타난 많은 명화에 그려진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 표정의 의미를 마리 슈타이너만큼 친밀하고 구체적으로 해명한 예를 나는 본적 없다.「경이의 충동」,「공감의 충동」,「양심의 충동」을 겸비한 「인간의 대표」인,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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