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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공초[ 全琫準供草 ]


설명 :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재판기록. 규장각도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재판기록. 전 1책. 8,000자 안팎의 간략한 책자이다. 내용은 심문 순서에 따라 초초문목(初招問目)·재초문목(再招問目)·3초문목·4초문목·5초문목에 걸치고 있다.


 초초문목은 1895년(고종 32) 2월 9일, 재초문목은 2월 11일, 3초문목은 2월 19일, 4초문목은 3월 7일, 5초 문목은 3월 10일에 있었던 심문 내용이다. 초초문목에서 재판관은 전봉준에 대한 심문에서 주로 1894년 정월의 고부민란과 3월의 동학농민 봉기와의 관계, 농민과 동학교문과의 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여기에서 전봉준은 처음 고부민란의 단계에서는 봉기한 농민 중 동학교도는 적었고 원민(寃民)이 더 많았고 지방관의 가렴주구에 대한 항거로 봉기가 불가피했다고 답변하였다.


 이 초초문목에서 전봉준은 동학교문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있지 않지만, 재초문목에서는 자신이 동학의 접주임을 분명히 밝히고 손화중(孫和中)·최경선(崔慶善) 등 다른 동학 접주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또한 동학의 교리적 성격, 교단의 직제까지 설명하고 그가 동학교문에 입도하게 된 까닭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3·4·5초문목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심문의 대부분이 그와 대원군과의 관계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봉준은 대원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밖에 동학농민혁명의 원인, 경과 등에 걸친 그의 진술이 잘 나타나 있다.


 전봉준 공초는 그에 대한 다른 기록인 재판 판결문 원본과 함께 그의 사상 및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봉준 공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1959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를 대본으로 하여 한국사료총서 10, ≪동학란기록≫ 상·하 2권 중 하권에 수록하였다.


≪참고문헌≫ 東學亂記錄 上下(國史編纂委員會, 韓國史料叢書 10, 1959)

≪참고문헌≫ 全琫準供草의 分析-東學亂硏究-(金容燮, 史學硏究 2, 1959)

≪참고문헌≫ 東學思想과 民衆蜂起(金昌洙, 崇山朴吉鎭博士古稀紀念, 韓國近代宗敎思想史, 1984)

≪참고문헌≫ 全琫準과 東學農民革命(金昌洙, 韓國近代의 民族意識運動, 同和出版公社, 1987)


 


전봉준 공초 심문내용 


전봉준 공초  

全捧準 初招問目(제1차 심문과 진술)

開國 五百四年 二月 初九日(서기 1895년 2월 9일(음))   

開國 五百四年 二月 初九日 

(서기 1895년 2월 9일(陰)) 


問 : 汝姓名爲誰 


너의 이름은 누구인가? 


供 : 全琫準 


전봉준이다.  


問 : 年幾何 


나이는 몇 살인가? 


供 : 四十一歲 


41세이다.  


問 : 居在何邑 


살고 있는 곳은 어느 고을인가? 


供 : 泰仁면山外面東谷 


태인 산외면 동곡리이다. 


問 : 所業何事 


하는 일은 무슨 일인가? 


供 : 以士爲業 


선비로서 일하고 있다. 


問 : 今日法官員 日本領事會同審判 公正決處矣一一直告 


오늘은 법무관원과 일본영사가 회동심판하여 공정히 처결할 터이니 일일이 바로 고하라. 


供 : 當一一直告 


일일이 바로 고하겠다. 


問 : 俄旣明諭 東學事 非徒一身相關 卽國家大關 雖有關係 於何等高官 勿隱諱直告 


아까 이미 명유하였거니와 동학사는 일신에만 상관할 일이 아니라 즉 국가에 크게 관계되는 것이니 비록 어떠한 높은 지위에 관계되는 것이 있어도 숨기지 말고 바로 고하라. 


供 : 當依所敎爲之 當初出於本心之事 與他人無關係 


마땅히 소교에 의하려니와 당초 본심에서 나온 일로 타인과 더불어 관계가 없다. 


問 : 汝是全羅道東學魁首云 果然耶 


너는 전라도 동학의 괴수라 하는데 과연 그런가? 


供 : 初以倡義起包 無東學魁首之稱 


처음은 창의로 기포하였고 동학괴수라 일컬은 것은 없었다. 


問 : 汝於何地 招集人衆乎 


너는 어디 곳에서 인중을 불러 모았느냐? 


供 : 於全州·論山地招集矣 


전주, 논산 땅에서 의병을 모았다. 


問 : 昨年三月間 於古阜等地 都聚民衆云 有何事緣而然乎 


작년 3개월간 고부 등지에서 민중을 도취하였다 하는데 어떤 사연이 있어 그렇게 하였는가? 


供 : 其時古阜 額外苛斂幾萬兩 故民心寃恨 而有此擧 


그 때 고부군수는 액외의 가렴이 기만량인 고로 민심의 원한으로 이 거사가 있었다. 


問 : 雖曰貪官汚吏 名色必有然後事 群言之 


비록 탐관오리라 하여도 반드시 명색이 있었을 것이나 상세하게 말하라. 


供 : 今不可盡言其細目 而略告其槪 一, 築洑民洑下 以勒政傳令民間 上畓則 一斗落收二斗稅 下畓則一斗落收一斗稅 都合租七百餘石 陳荒地許其百姓耕食 自官家給文券 不爲徵稅云及其秋收時 勒收事 一, 勒奪富民錢葉二萬餘兩 一, 其父曾經泰仁 故爲其父建造碑閣云 勒斂錢千餘兩 一, 大同米民間徵收以精白米十六斗式準價收斂 上納則貿 米 利條沒食事 此外許多條件 不能盡爲記得 


지금 그 세목을 다 말하지 못하겠으나 그 대개를 간단히 고하리라. 일(一)은 민보아래 축보하고 늑정으로 민간에 고시하여 상답인즉 일 두락에 이수세를 거두고 하답인즉 일두락에 일두세를 거두니 벼가 도합 700여 석이요 진황지를 백성들에게 그 경식을 허하고 거두니 관가로부터 문권을 주어 징세아니한다 하더니 그 추수시에는 늑징한 일이요 일(一)은 부민에게 돈을 2만냥을 늑탈한 일이요 일(一)은 그의 부가 일찍이 태인현감을 지낸고로 그 부의 비각을 건립한다고 돈을 늑렴한 것이 천여량이요. 일(一)은 대동미를 민간에서는 정백미로 16두씩을 준가로 수렴하고 상납시에는 추미로 바꾸어 이조를 몰식한 일이요. 이외 허다한 조건은 이루다 기득할 수가 없다. 


問 : 今所告中之二萬餘兩勒奪錢 行以何名目乎 


지금 고한 가운데 2만냥의 늑탈한 돈은 어떠한 명목으로 행하였는가? 


供 : 以不孝·不睦·淫行及雜技等事 構成罪目而行矣 


불효 불목 음행 및 잡기 등 명목으로 죄목을 구성하여 행하였다. 


問 : 此等事行於一處乎 且行於各處乎 


이 같은 일은 한곳에서만 행했나? 또는 각처에서 행하였나. 


供 : 此等事非止一處 爲數十處 


이 같은 일은 한곳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수 십처가 된다. 


問 : 至爲數十處 其中或有知名者耶 


수십 처에 이른다니 그 가운데 혹 이름을 아는 자가 있는가? 


供 : 今不可記得姓名 


지금은 이름을 기득할 수 없다. 


問 : 此外古阜 行何等事耶 


이 외에 고부군수가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가? 


供 : 今所陳事件 皆民間貪虐事 而築洑時勒斫他山數百年邱木 築洑役之民丁不給一錢勒役矣 


지금 진술한 바 사건이 모두 민간탐학의 일이나 축보 시에 타산(他山)에서 수 백년된 거목을 늑작(勒斫: 늑탈해 베는 것)하고 축보하는 역사(役事)에 민정을 일전도 주지 않고 늑역하였다. 


問 : 古阜 姓名誰 


고부군수 이름은 누구냐? 


供 : 趙秉甲 


조병갑이다.  


問 : 此等貪虐事 但止於古阜  耶 抑或無吏屬輩作奸耶 


이러한 탐학의 일은 다만 고부군수에게만 그쳤느냐 혹 이속배들의 작간은 없었는지? 


供 : 古阜 獨行矣 


고부군수 단독으로 행하였다. 


問 : 汝居生泰仁地 何故起?古阜乎 


너는 태인 땅에서 거생 했는데 어찌하여 고부에서 기요했느냐? 


供 : 居生泰仁 移寓古阜爲數年矣 


태인에서 살다가 고부로 이사한지 수년이 되었다. 


問 : 然則古阜有汝宇乎 


그런즉 고부에는 너의 집이 있느냐? 


供 : 入於燒灰中矣 


불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고부에 있는 집은 불타버리고 없다고 진술했다. 안핵사 이용태가 태웠다는 뜻) 


問 : 汝於其時 無勒徵被害耶 


그때 너는 늑징의 피해가 없었느냐? 


供 : 無有矣 


없었다.  


問 : 一境人民 皆被勒斂之害 汝獨無有者何故 


일경 인민이 다 늑렴의 피해를 입었는데 네 홀로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以學究爲業 所謂田畓 只不過三斗落之故 


학구로써 업을 하기 때문에 전답이라고는 삼두락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問 : 汝之家屬幾名 


너의 가족은 몇 명이나 되느냐? 


供 : 家屬分六名 


가족은 합해서 6명이다. 


問 : 一境人民皆被勒斂之害 汝獨無有者 誠甚訝惑 


일경 인민이 모두 늑렴의 해를 입었는데 너만 홀로 없다하니 참으로 심히 의혹이 간다. 


供 : 矣身朝飯夕粥而已 何有勒斂之物 


나는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을 먹을 정도이니 어찌 늑렴할 것이 있겠는가? 


問 : 古阜 到任 何年何月 


고부 군수가 도임한 것은 몇 년 몇 월인가? 


供 : 再昨年至·臘兩月間矣 


재작년 동지 섣달·양월간이다. 


問 : 到任的在何月 


도임이 꼭 어느 달인가? 


供 : 未詳 居年則爲一周年矣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거년이 일년이다. 


問 : 自到任之初 卽時行虐政乎 


도임하자마자 처음부터 곧 학정을 행하였는가? 


供 : 自初行之 


처음부터 행하였다. 


問 : 虐政自初行之 則何故不爲卽時起乎 


학정을 처음부터 행하였다면 무엇 때문에 즉시 기요하지 않았느냐? 


供 : 一境人民 忍之又忍 終末不得已而行之 


일경 모든 인민이 참고 또 참고 견디다가 종말에 부득히 행하였다. 


問 : 汝無被害 何故起 


너는 피해가 없었다 하는데 무엇 때문에 기요하였느냐? 


供 : 爲一身之害 而起包 豈可爲男子之事 民衆 歎 故欲爲民除害 


한 몸의 해를 위해 기포하는 것이 어찌 남자의 일이라 하겠는가? 중민이 원탄하는 고로 백성을 위해 재해코자 하였다. 


問 : 起包時 汝何以爲主謀乎 


기포 시에는 무엇 때문에 주모하였는가? 


供 : 衆民皆推矣身 使爲主謀 故依民言 


중민이 모두 나를 추대하여 주모로 삼은 고로 민언을 따랐다. 


問 : 衆民以汝爲主謀之時 至汝家乎 


중민이 너를 주모로 삼았을 때 너의 집에 왔었는가? 


供 : 衆民數千名 都聚矣家近處 故自然爲之 


중민 수 천 명이 나의 집 근처에 모인 고로 자연히 이를 하게 되었다. 


問 : 數千名衆民 何故推汝爲主謀乎 


수 천명 중민이 무엇 때문에 너를 추대하여 주모로 하였는가? 


供 : 衆民雖曰數千名 皆是愚農民 矣身則文字粗解之緣故 


중민은 비록 수 천명이나 모두가 어리석은 농민으로 나는 문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問 : 汝住接古阜時 不行敎東學乎 


네가 고부에 주접해 있을 때 동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았는가? 


供 : 矣身訓導如干童蒙 無東學行敎之事 


나는 훈도로서 어린 소년과는 관계하였으나 동학을 가르친 일은 없다. 


問 : 古阜地無東學乎 


고부 땅에는 동학이 없었는가? 


供 : 東學亦有 


동학이 역시 있었다. 


問 : 古阜起包時 東學多乎 民多乎 


고부 기포 시에는 동학이 많았는가? 원민이 많았는가? 


供 : 起包時 民·東學雖合 東學少 而 民多 


기포 시에는 원민 동학이 비록 합하였으나 동학은 적고 원민이 많았다. 


※ 봉기군중의 성분은 동학교인은 소수였고 대다수가 농민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주도세력은 동학의 지도인물들이다.(사발통문) 


問 : 起包後行何事乎 


기포 후에는 어떤 일을 하였는가? 


供 : 起包後陳荒勒徵稅還推 而官築洑毁破矣 


기포 후에는 진황늑징세를 민간에 돌려주고 관에서 축조한 보를 파괴하였다. 


問 : 其時何時 


그때는 어느 때인가? 


供 : 昨年三月初 


작년 3월초이다. 


問 : 其後行何事乎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散落 


그 후 흩어졌다. 


問 : 散落後 因何事更起包乎 


흩어진 후 무슨 일로 다시 기포하였는가? 


供 : 其後長興府使李容泰 以按  使來本邑 起包人民 通稱以東學列名捕捉燒灰其家舍 無當者 則捕其妻子 而行殺戮故更起包 


그 후 장흥부사 이용태가 안핵사로서 본 읍에 와 기포 인민을 동학으로 통칭해서 이름을 나열하여 체포하고 그 가옥을 불사르며 당사자가 없으면 그 처자를 붙잡아 살육을 자행하는고로 다시 기포하였다. 


問 : 然則汝自初一次呈狀于官庭乎 


그런즉 너는 처음 일차적으로 관정에 소장을 올린 일이 있었는가? 


供 : 初次四十餘名等訴 而被捉囚 六十餘名當驅逐矣 


처음에는 40여명이 소를 제기하였으나 붙잡혀 갇히고 재차 60여명이 호소를 하니 또 쫓겨났다. 


問 : 等訴何時 


등소한 것은 어느 때인가? 


供 : 初次再昨年十一月 再次同年十二月 


처음의 호소는 재작년 11월이었고 재차는 동년 2월이었다. 


(이상 2개항의 문답에 의하면 전봉준은 2차에 걸쳐 진정을 했다. 첫 번째는 1893년 11월 농민 40여명이 진정하였다가 구속되고 두 번째는 동년 12월 60여명이 진정했다가 또 쫓겨났다.) 


問 : 再次起包 由按 使 而汝爲主謨乎 


재차 기포는 안핵사 때문이었는데 그때도 네가 주모했느냐? 


供 : 然矣 


그렇다.  


問 : 再次起包後 行何等事乎 


재차 기포 후 어떤 일을 하였는가? 


供 : 營軍萬餘名 欲屠戮古阜人民 故不得已爲接戰矣 


영군 만 여명이 고부 인민을 도륙코자 하는 고로 부득이 접전하였다. 


問 : 何處接戰 


어디서 접전했나? 


供 : 於古阜地接戰矣 


고부땅에서 접전했다.(황토현 싸움을 말함) 


問 : 軍器·軍粮 自何處區劃乎 


군기·군량은 어느 곳에서 구획했는가? 


供 : 軍器·軍粮 皆民間措辦矣 


군기 군량은 모두 민간에서 마련했다. 


問 : 古阜軍器庫軍物 汝不爲奪取耶 


고부 군기고의 군물 역시 네가 탈취하지 않았느냐? 


供 : 其時則無奪取 


그 때는 탈취한 일이 없었다. 


問 : 其時亦汝爲主謀乎 


그 때도 역시 네가 주모하였느냐? 


供 : 然矣 


그렇다.  


問 : 其後則長在古阜耶 


그 후 오래도록 고부에 있었느냐? 


供 : 前往長成矣 


장성으로 갔었다. 


問 : 於長成爲接戰乎 


장성에서도 접전하였느냐? 


供 : 與京軍爲接戰矣 


경군(洪啓薰招討使)과 더불어 접전하였다.(黃龍 싸움) 


問 : 與京軍接戰 孰勝孰敗 


경군과 더불어 접전하여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패했나? 


供 : 我軍聚食時 京軍以大砲射擊 故我軍死者四五十名 我軍一追逐 京軍敗走 取來大砲二座 如干彈丸矣 


아군이 취식할 때 경군이 대포로 사격하여 아군의 4,50명이 죽자 아군은 일제히 추축하니 관군은 패주하여서 대포 이(二)좌와 탄환을 탈취하여 왔다. 


問 : 其時兩軍數各幾何 


그 때 양군의 수는 각각 얼마나 되었던가? 


供 : 京軍七百 我軍則四千餘名 


경군은 7백명이고 아군은 4천명이었다. 


問 : 其時長成所行事 一一直告 


그 때 장성에서 행한 일을 바른대로 일일이 고하라. 


供 : 京軍敗走後 我軍倍道 先京軍入全州守成矣 


경군이 패주한 후 아군은 배도(발걸음을 두 배로 빨리 하는 것)하여 경군보다 먼저 전주에 들어가 수성하였다. 


問 : 其時監司無矣 


그때 감사는 없었는가? 


供 : 監司見我軍來而逃走 


감사는 우리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도주했다. 


問 : 守成後行何事乎 


수성 후 무엇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京軍隨後至完山 留陳龍頭峴 向成中以大砲攻擊 毁傷慶基殿 故以此緣由詐及京軍矣 自京營中 作曉諭文 謂以從汝所願 故感激解散 


그 후 경군이 뒤따라 완산에 이르러 용두현에 유진하고 성중을 향하여 대포로 공격하므로써 경기전이 훼상되었다. 이 연유를 경군에게 허급하였더니 경중에서는 효유문을 만들어 [너희 소원대로 따르겠다]하므로 감격하여 해산하였다. 


問 : 其後行何事乎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則各歸其家力農 其餘不恒之徒 有剽掠民間 


그 후에는 각기 집으로 돌아가 농사에 힘쓰고 그 나머지는 불항의 무리가 되어 민간에 표략한 것도 있었다. 


問 : 不恒之徒剽掠軍 與汝無關係乎 


불항의 도 표략군은 너와는 관계가 없었느냐? 


供 : 無關係 


관계가 없다. 


問 : 其後更無所行事 


그 후 다시 행한 일은 없었느냐? 


供 : 昨年十月分 矣身則起包全州 孫化中則起包光州 


작년 10월 나는 전주에서 기포하고 손화중은 광주에서 기포하였다. 


問 : 更起包何故 


다시 기포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供 : 其後聞則貴國稱以開化 自初無一言半辭 傳布民間 且無檄書率兵入都城 夜半擊破王宮 驚動主上云 故草野士民等忠君愛國之心 不勝慷慨糾合義旅 與日人接戰 欲一次 請問此事實 


그 후 들은즉 귀국(일본)이 개화를 한답시고 처음엔 민간에게 일언반사의 알림도 없었고 또 격서도 없이 솔병하고 도성에 들어와 야반에 왕궁을 격파 주상(임금)을 경동케 하였다는 말이 들리는 고로 시골선비 등은 충군애국의 마음으로 분개를 이기지 못하여 의병을 규합 일본인과 더불어 접전하여 일차적으로 이 사실을 청문하고자 하였다. 


問 : 其後更行何事乎 


그 후 다시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고? 


供 : 其後思量 則公州監營阻山帶河 地理形勝 故雄據此地爲固守之謀 則日兵必不能容易擊拔 故入公州 傳檄日兵欲爲相持 日兵先己確據公州 事勢不可無接戰 故二次接戰 後 萬餘名軍兵点考 則所餘者不過三千餘名 故敗走至 


그 후 곰곰이 생각하니 공주 감영은 산이 막히고 강이 둘러 있어 지리가 형승하기 때문에 그 땅에 웅거하여 고수를 도모한다면 일병이 용이하게 처들어 오지 못할 것을 알고 공주로 들어가 일병과 상치코자하였는데 일병이 먼저 공주에 확거하였으므로 사세는 불가피 접전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런고로 2차 접전 후 1만여명의 군병을 점고한 즉 남은 자가 불과 3천명이요. 그 후 또다시 2차 접전 후 점고한즉 5백명에 불과하였다. 그런고로 패주하여 금구에 이르러 다시 초모한즉 수효는 좀 증가였으나 기율이 없어 다시 개전하기는 극히 곤란하였다. 그런데 일병이 뒤따라와서 2차 접전하여 패주하고 각기 해산하였다. 금구 해산 후 나는 경중(서울)의 이면을 상세히 알고 상경할려고 하다가 순창 땅에서 민병에 의하여 붙잡혔다. 


問 :入全州時 招募軍士 全羅一道人民都聚乎 


전주에 들어가 군사를 초모하였을 때 전라일도 인민이 도취하였는가? 


供 :各道人民梢多 


각도 인민이 조금 많았다. 


問 :向公州時 亦各道人民梢多乎 


공주로 향하였을 때 역시 각 도 인민이 좀 많았는가? 


供 :其時亦然 


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問 :再次招募時 以何方策糾合乎 


재차 초모할 때는 어떠한 방책으로 규합하였는가? 


供 :招募時 以忠義之士 同倡義之意渴榜矣 


초모할 때는 충의의 선비로서 같은 창의의 뜻을 방문으로 내어 걸었다. 


問 :招募時 但自願者糾集耶 或제驅耶 


초모할 때 다만 자원자만 규합하였나 혹은 강제로 몰아 모았나? 


供 :矣身本來所四千名 則自願者 而其外各處通文辭意則若不此擧者 不忠無道 


내가 거느린 4천명의 군졸은 자원자이니 그 외는 각처에 통문으로서 [만약 이 거의에 불응 하는 자는 불충무도]라 하였다. 


問 :昨年三月起包古阜 而向全州之間 經幾邑而接戰次乎 


작년 3월 고부에서 기포하여 전주로 향하는 동안 몇 읍을 경우하고 접전은 몇 차례 하였나? 


供 :所經邑則由茂長 古阜 經泰仁 金溝 而欲란全州 聞경 兵萬餘名下來之言 往扶安 還至古阜 與%軍接戰 


경유한 읍은 무장 고부와 태인 금구를 거쳐 전주에 달하려 하였는데 영병(營兵) 만여명이 내려온다기에 부안으로 갔다가 되 돌아와 고부에 이르러 영군과 더불어 접전하였다. 


問 :其候則向何處乎 


그 후에는 어느 곳으로 갔나? 


供 :自井邑經高敞 茂長 咸平 低長城 與京軍接戰 


정읍으로부터 고창 무장 함평을 거쳐 장성에 이르러 경군과 더불어 접전하였다. 


問 : 入全州何時 解散何時 


전주에 들어간 것은 언제며 해산한 때는 어느 때인가? 


供 :作年四月二十六 七日間入全州 五月%五 六日間解散 


작년 4월 26일부터 27일간에 전주에 들어왔으며 5월초 5일∼6일간에 해산하였다. 


問 :再次起包時 始於何處사 


재차 기포할 때는 어느 곳에서 시작했는가? 


供 :始於全州 


전주에서 시작했다. 


供 :再次起包時 招募則幾許名乎 


재차 기포할 때 초모한 사람은 전부 몇 명인가? 


問 :四千餘名 


4천여 명이다. 


供 :至公州時幾許名乎 


공주에 이르렀을 때에는 몇 명이나 되었는가? 


問 :萬餘名 


만여 명이었다. 


供 :公州接戰何時 


공주접전은 어느 때인가? 


問 :去年十月二十三 四日間 


거년 10월 23일∼24일이다. 


供 :當初古阜起包時 則同謀者皆雖也 


당초 고부 기포시의 동모자는 모두 누구 누구인가? 


供 :孫化中 崔慶善某某人 


손화중 최경선 모모인이다. 


問 :此外更無他人乎 


이외 또 다른 사람은 없는가? 


供 :此三人外許多人 不可勝% 


이 삼인 외 허다인으로 그 수는 헤아릴 수 없다. 


問 :四千名糾合時 不止此三人矣 詳言其人 


4천명이 규합했을 때는 이 세 사람에게만 그치지 않았을 것이니 그 외 사람을 상세히 말하라. 


供 :此外 屑之人 何足言乎 


이외 쇄설(전것)의 사람을 다 말할 수 있는가? 


問 :昨年十月起包之時 無同謀者乎 


작년 10월 기포했을 때 동모자는 없었느냐? 


供 :此外只孫如玉 趙駿九等而己 


이외 다만 손여옥 조준구 뿐이다. 


供 :孫化中 崔慶善 其時無相關乎 


손화중 최경선은 그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나? 


問 :此二人以光州事緊急 未及來也 


그 두사람은 광주일이 긴급하였으므로 오지 못했다. 


供 :孫 崔兩人 在光州行何事乎 


손, 최 양인은 광주에서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問 :此二人 卽時向公州 聞日兵來自海路 使之海防 故但固守光州 


이 두 사람은 즉시 공주로 행하였다가 일병이 바다로 온다는 말을 듣고 해안을 막아 광주를 지키도록 하였다. 


(일본군이 남도해안에 상륙한다는 오보가 있어 혁명군이 중구인물인 손화중과 최경선으로 하여금 광주지방을 고수토록했다 하였으니 혁명군의 작전 규모와 치밀의 도를 짐작케 한다.)

 


全捧準 再招問目(제2차 심문과 진술) 

乙未 二月 十一日(서기 1895년 2월 11일(음)) 

  

供 :汝昨年三月起包之意 以爲民除害爲意 果然사 


너의 작년 3월에 행한 기포의 뜻은 백성을 위해 재해할 뜻으로 하였다하는데 과연이냐? 


問 :果然矣 


그렇다.  


問 :然則居內職者輿幸外任之官員 皆貪虐사 


그런즉 내직에 있는 자들이나 제외임의 관원도 모두 더불어 탐학인가? 


供 :居內職者以賣官육爵爲事 勿論內外皆貪虐也 


내직에 있는 자들도 매관육작을 일삼으니 내외를 물론하고 다 탐학이다. 


問 :然則欲除全羅一道貪虐之官吏而起包사 欲八道一體爲之之意向사 


그런즉 전라일도 탐학의 관리를 제거코자 기포했느냐 그렇지 않으면 팔도를 한 가지로 이같이 할 의향이었느냐? 


供 :除全羅一道貪虐 屛遂內職之賣爵權臣 八道自然爲一體矣 


전라일도 탐학을 제거하고 또 내직의 매작권신을 쫓아내면 팔도가 자연히 한 몸이 될 것이다. 


問 :全羅道監事以下各邑守幸皆貪虐官사 


전라도 감사 이하 각 읍의 수재가 모두 탐학인가? 


供 :十居八九 


십 중 팔 구이다. 


問 :指自何事而謂貪虐사 


무슨 일을 가리켜 탐학이라 하는가? 


供 :各邑守幸%以上納 或加斂結卜 橫徵戶役 有稍%之民空然構罪 勒奪錢財 橫侵田좌非一非再 


각 읍 수재는 상납을 칭탁하여 혹 가렴 길복하여 횡징호역하며 좀 부요민이 있으면 공연히 죄를 만들어 전재를 늑탈하며 전장을 횡침하는 것이 비일비재이다. 


問 :內職賣官者誰 


내직 매관자는 누구인가? 


供 :惠堂閔泳駿 閔泳煥 高永根等是也 


해당 민영준, 민영환, 고영근 등이 이들이다. 


問 :止於此等人사 


이들 뿐인가? 


供 :此外亦許多 不可盡記得 


이외 역시 허다하나 다 기억할 수 없다. 


問 :此等人之爲賣官 何以分明知之사 


이들이 매관한 것을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는가? 


供 :一世喧藉 無人不知 


온 세상이 다 훤자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 


問 :汝以何計策 欲除貪官사 


너는 어떤 계책으로 탐관을 제거코자 하였느냐? 


供 :非有別計策 本心切於安民 見貪虐則不勝憤歎 而行此事 


별도로 계책이 있는 것은 아니라 본심의 간절한바가 안민이 있으므로 탐학을 본즉 분탄을 이기지 못해 이 일을 하였다. 


問 :然則不爲呈訴稱면사 


그런즉 소를 드려 청원하지 않았는가? 


供 :呈營邑不知幾次 


영읍에 진정한 것은 몇 차례인지 모른다. 


問 :呈營呈邑 汝親行之乎 


영읍에 진정할 때 네가 친히 이곳에 갔는가? 


(영은 전라감영. 읍은 고부군을 말함) 


供 :每次所志 則矣身製作 而呈則使  民爲之 


매차의 소장(진정서)은 내가 제작하고 드린 것은 원민으로 하여금 하게하였다. 


問 :然則於조정 亦爲訴면乎 


그런즉 조정에도 역시 소(진정서)를 제기하였는가? 


供 :呈訴無굴 洪啓勳(薰)大將全州留陳時 呈此緣由 


진정할 길이 없어 홍계훈 대장이 전주에 유진하고 있을 때 이 연유를 써서 드렸다. 


(홍계훈이 전라감사를 지냈음) 


問 :其時守幸皆是貪虐 雖爲呈訴 豈有聽시 


그때는 모든 수재가 탐학했는데 어찌 비록 정소해도 청시함이 있으리라 그러하였는가? 


供 :雖然 呼訴無處 不得已呈訴其處 


비록 그러하나 호소할 곳이 없어 부득이 그곳에 정소하였다. 


問 :呈營呈邑 何時乎 


영, 읍에 진정한 것은 어느 때인가? 


供 :昨年正 二 三月間 


작년 2,3월간이다. 


問 :正月以前則不爲呈訴사 


정월 이전에는 정소하지 않았느냐? 


供 :正月以前 古阜一邑民狀而已 不爲大端呈訴 


정월 이전의 고부에는 민장 뿐이었기 때문에 대단한 정소는 하지 않았었다. 


問 :屢次呈營呈邑 而終是不爲聽施之 故起包사 


누차 영에 드리고 읍에 드렸으나 끝내 청시하지 아니하는 고로 기포하였는가? 


供 :然矣 


그렇다.  


問 :汝於古阜 被害不多 緣何意見而行此擧사 


너는 고부군수에게서 피해가 많지 않았는데 어떠한 의견으로 연유하여 이 거사를 행했는가? 


供 :世事日非 故慨然欲一番濟世意見 


세상살이가 날로 그릇되어 가는 고로 개연히 한번 세상을 건져보고자 하는 의견이었다. 


問 :汝之同謀孫化中 崔慶善等 皆酷好東學者사 


너와 동모한 손화중, 최경선 등은 모두 동학을 대단히 좋아했는가? 


供 :然矣 


그렇다.  


問 :所謂東學 何主意 何道學乎 


소위 동학이라는 것은 어떤 주의이며 어떤 도학인가? 


供 :守心 以忠孝爲本 欲輔國安民也 


마음을 지켜 충효로 본을 삼고 보국안민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問 :如亦酷好東學者사 


너도 동학을 대단히 좋아하는 자인가? 


供 :東學是守心敬天之道 故酷好也 


동학은 이에 수심경천의 도이기 때문에 매우 좋아한다. 


問 :東學始自何時 


동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供 :東學之始 始於三十年前 


동학의 시초는 30년 전에 비롯되었다. 


問 :始於何人乎 


어떤 사람이 시작했는가? 


供 :始於慶州崔濟愚矣 


경주에 사는 최제우가 시작했다. 


問 :至今亦全羅道內 尊%東學者多乎 


지금 역시 전라도 내에 동학을 존중하는 자가 많은가? 


供 :經亂之後 死亡相幾 至今太減 


난을 겪은 후 죽는 자가 계속 있어 지금은 크게 감해졌다. 


問 :汝起包時所率 皆是東學사 


네가 기포할 때 거느린 바는 모두가 동학인가? 


供 :所謂接主 皆是東學 其餘率下 稱以忠義之士居多 


소위 접주는 다 동학이나 그 나머지 솔하는 충의의 사로써 일컬은 자가 많았다. 


問 :接主司何名色 


접주사란 어떤 명색인가? 


供 :領率之稱 


영솔의 호칭이다. 


問 :然則起包時 軍器 軍粮 措瓣者사 


그런즉 기포 시에는 군기 군량을 조관하는 자인가? 


供 :凡於事皆爲指揮者也 


무슨 일에 있어서나 다 지휘한다. 


問 :接主 接司 自本來有사 


접주와 접사는 본래부터 있었는가? 


供 :개往固有 而起包時或有創設 


이미 전부터 본래 있었으나 기포 시에는 혹 창설한 것도 있다. 


問 :東學中領率名色 接主 接司而己乎 


동학 중 영솔명색이 중 접주 접사뿐인가? 


供 :接主 接司之外 有敎長 敎授 執綱 都執 大正 中正等六種矣 


접주.접사 이외 교장 교수 집강.도집.대정.중정 등 6종이 있다. 


問 :所謂接主者 平居時行 何事乎 


소위 접주라 하는 사람은 평상시에는 어떤 일을 하는가? 


供 :別無以行之事 


별로 행하는 일이 없다 


.問 :所謂法軒何職責 


소위 법헌이란 어떤 직책인가? 


供 :非職責 而乃長老別號 


직책이 아니라 장로의 별호이다. 


問 :以上六種之稱 行何事乎 


이상의 여섯 직책은 각각 어떤 일을 하는가? 


供 :敎長 敎授則敎導愚民者 都執則有風力 明紀綱 知經界 執綱則明是非 執紀綱 大正則恃公平 %厚員中正能直言剛直云矣 


교장, 교수는 우민을 교도하는 자이고 도집은 풍력있고 기강에 밝아 경계를 알아야 하고 집강은 시비에 밝아 기강을 잡고, 대정은 공평을 갖고 삼가 후원하며 중정은 직언 강직을 말하는데 능해야 한다. 


問 :接主 接司則同職責乎 


접주와 접사는 같은 직책인가? 


供 :接司聽行接主指揮者也 


접사는 접주가 지휘하는 것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다. 


問 :以上許多名色 誰差出乎 


이상 많은 명색은 누가 차출을 하는 것이냐? 


供 :自法軒視敎徒多少 第次差出矣 


법헌으로부터 교도가 많고 적은 것을 보아 차례로 차출한다. 


問 :東學中有南接 北接云 依何而區別南北乎 


동학 가운데 남접. 북접이라고 말하는데 무엇으로 구별하여 남.북이라고 하느냐? 


供 :湖以南稱以南接 湖中稱以北接矣 


호(湖) 이남을 남접, 호중(湖中)을 북접이라고 한다. 


問 :昨年起包時 於以上各種名色等 指揮何事件乎 


작년 기포 시에는 이상 각종 명색 등에 있어서 어떠한 사건들을 지휘하였느냐? 


供 :行以各其職掌矣 


각기 직장으로써 행하였다. 


問 :各其職掌 皆聽行汝之指揮乎 


각기 직장이 모두 너의 지휘를 듣고 행하였는가? 


供 :矣身皆爲指揮矣 


내가 모두 지휘했다. 


問 :修心敬天之道 何以稱東學乎 


수심경천의 도를 일컬어 무엇 때문에 동학이라고 하는가? 


供 :五道出於東 故稱以東學 自初本意 則始作之人 分明知得 矣身則隨他人之稱而稱之耳 


우리 도는 동에서 나온 고로 동학이라 일컫는다. 자초 본의인즉 시작한 사람은 분명히 얻어서 아나, 나는 다른 사람의 일컬음을 따라 이를 일컬은 것이다. 


問 :投入東學 能%怪疾云 然乎 


동학에 들어가면 능히 괴질을 면한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供 :東學書云中 三年%疾在前 敬天守心 可%云矣 


동학서 가운데 말하기를 3년 괴질이 앞으로 있으니 경천수심하면 가히 면한다고 한다. 


問 :東學 八道皆傳布사 


동학은 팔도에 다 전포하였는가? 


供 :五道전진행교의 서북삼도즉부지의 


5도에는 모두 교가 행하여져 있으나 서북 3도는 모른다. 


問 : 동학을 배운즉 병을 면하는 외 다른 이익은 없는가? 


供 : 다른 이익은 없다. 


問 : 작년 3월 기포 시에는 탐관을 제거한 후 어떤 일을 하려고 하였는가? 


供 : 다른 뜻은 없었다. 


問 : 작년 절목을 홍대장(홍계훈)에게 드렸다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供 : 그렇다.(全州和約後의 弊政改革案) 


問 : 절목을 드린 후 탐관을 제거한 징험이 있었던가? 


供 : 별로 징험이 없었다. 


問 : 그런즉 홍대장이 백성을 속인 것이 아닌가? 


供 : 그렇다. 


問 : 그런즉 백성은 무엇 때문에 다시 칭원이 없었는가? 


供 : 그 후 홍대장은 서울에 있었으니 다시 무엇을 칭원하겠는가? 


問 : 재차 기포한 일병이 범궐(왕궁을 침범함)의 연고로 인하여 재기했다고 하였는데 제거 후 어떤 거조를 하고자 하였는가? 


供 : 범궐의 연유를 힐문하고자 하였다. 


問 : 그런즉 일병과 경성에 유주하고 있는 각국인을 더불어 모두 구축하려 하였는가? 


供 : 그렇지 않다. 각국인은 다만 통상만 할 뿐인데 일인은 솔병하여 경성에 유진하는 고로 우리나라 국토를 침략하는 것으로 의아하였다. 


問 : 이름은 이건영이라고 일컫는 사람을 아는가? 


供 : 잠시 만나기는 하였다. 


問 : 만났을 때 어떤 말을 하였는가? 


供 : 소모사라고 일컫는 고로 내가 말하기를 [소모사라면 마땅히 어느 곳에 있는 소모영을 설치하라]고 하였지만 나와는 더불어 상관이 없다하니 금산으로 갔었다. 


問 : 어느 곳에서 만났는가? 


供 : 삼례역에서 만났다. 


問 : 그때 만나서 이건영의 말이 어디서 왔다고 하던가? 


供 : 경성으로부터 왔다고 말했다. 


問 : 누가 보냈다고 하던가? 


供 : 정부로부터 보내더라고 하였는데 3∼4일 후 들으니 즉 가칭 소모사인 고로 잡으라는 명이 있었다고 하였다. 


問 : 소모사를 증거할 만한 문적이 있던가? 


供 : 증거할 만한 문적을 보지는 못했다. 


問 : 그때 너의 도당은 몇 명이었나? 


供 : 수 천여 명이었다. 


問 : 그 외 소모사라 일컫고 기포를 권한 사람은 없었는가? 


供 : 그런 사람은 없었다. 


問 : 송정섭을 아는가? 


供 : 다만 충청도 소모사라고만 소문으로 들었다. 


問 : 재차 기포할 때는 최법헌에게 의논하였던가? 


供 : 의논이 없었다. 


問 : 최법헌은 동학의 괴수인데도 동학당을 규합하는데 어찌 의급하지 않았는가? 


供 : 충의는 각기 본심인데 하필 법헌에게 의논한 후에 이 일을 해야 하는가? 


問 : 작년 8월에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 


供 : 태인 집에 있었다. 


(이평면에 있는 자기 집이 이미 소실되었기 때문에 태인면 산외면 동곡리에 우선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問 : 그 나머지 도당은 어느 곳에 있었던가? 


供 : 각각 본가에 있었다. 


問 : 충청도 천안 지방에는 너의 도당이 있었던가? 


供 : 그곳에는 도당이 없었다. 

 


全捧準 三招問目(제3차 심문과 진술) 

乙未 二月 十九日(서기 1895년 2월 19일(음))


問 : 네가 일전에 고한 바 송희옥을 모른다고 하였는데 희옥 두자는 이름인가? 호인가? 


供 : 희옥은 이름이고 칠서는 자이다. 


問 : 송희옥과 이미 삼례역에서 이와 더불어 동모했은즉 그 이름자를 어찌하여 상세히 모르는가? 


供 : 송희옥은 본시 허망한 사람으로 홀연히 가고 홀연히 오고 하여 실제의 거처가 확실하지 않다. 


問 : 송희옥은 이에 전라도 일도의 도집강이라 들었고 또 너와는 친척이 된다는데 지금 고하는 것은 오직 장찬(허물을 감추려고 숨기는 것)이니 바르게 실고하지 않는 것이 의심되며 항차 네 죄의 경중은 송희옥의 장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희옥의 죄안이 네가 숨겨 보호하는 것이 아니니 비록 오로지 믿어야 하는데 이는 진실로 어떤 마음에서냐? 


供 : 아까 고한 바와 같다. 송은 본시 부황의 유로 지난번 일본 영사관 물음에 답변할 때 영사가 한 글을 내어 보이는데 희옥의 필적이다. 그 글에 일컫기를 운현변(대원군 측을 말함)과 상통한 것으로 되어 스스로 생각해 보니 그가 이 말을 위조하여 시국의 힘을 빌리려 한 것으로 이 불근지설을 만드니 실로 남자의 일이 아니며 역시 존엄을 모독하고 공연히 때의 물의를 일으키게 되는 고로 잠깐 이를 꾸며서 말한 것이다. 


問 : 남자의 말은 비록 참말을 백번하였어도 만일 한 마디의 말에 속임이 있은 즉 백 마디 말을 다 속인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본즉, 어제는 모른다고 한 것이나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어찌 다 속인 것이 아니겠는가? 


供 : 마음과 정신이 혼미하여 과연 착오한 바가 있다. 


問 : 송희옥은 갑오 9월 서(書)에 말하기를 [어제 저녁 또 사람이 비밀리 하래했는데 전말을 상고한즉 과연 개화파에 눌려 먼저 효유로 보호하면 뒤에 비기가 있을 것이다.]했는데 이는 누가 보내온 글인지 역시 네가 모르는 것인가? 지난 너의 고한 바는 [작년 10월 재기한 것은 일인이 군대를 거느리고 입궐하여 이해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고로 우리가 신민이 되어 감히 한시도 안심할 수가 없어 이에 이 거의를 한 것이다.]고 말하였은즉 대원군의 뒷 비밀편지가 따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역시 너의 재기와 암합한 것이 아닌가? 


供 : 그간에는 비록 혹 이 같은 무리들의 내왕이 있었으나 본래 그 면을 알지 못한즉 중대 사건을 어찌 의급하겠는가? 그런고로 행적이 특별히 수상한 자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問 : 남원부사 이용헌 장흥부사 박헌양이 입은 피해는 모두 누구의 소행인가? 


供 : 이용헌은 김개남의 소위이고 박헌양은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는지 모른다. 


問 : 은진에 사는 김원석이 입은 피해는 누구의 짓인가? 


供 : 공주의 동학 괴수 이유상의 소위이며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問 : 작년 재 기포 시 조정으로부터 하송해온 그 효유문을 너는 보지 못했는가? 


供 : 대원군의 효유문은 보았으나 조정에서 내려온 효유문은 보지를 못했었다. 


問 : 비록 조정의 효유문은 보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대개 대원군의 효유문을 보았은즉 시사를 알 것인데 사기의 여하를 생각지도 않고 임의로 백성을 움직여 무단 야요하여 백성들을 물불에 빠뜨리고 이은 어찌 신민이 가히 할 일인가? 


供 : 상세한 내막을 몰라 임의로 백성을 움직였으니 과연 이는 주착이었다. 

 


全捧準 三招問目(제3차 심문과 진술)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二月 十九日(서기 1895년 2월 19일(음)) 

  

::: 三招의 繼續 ::: 


問 : 송희옥의 글 가운데 대원군의 비기의 허실을 어떻게 정확하게 아는가? 


供 : 송은 본래 부랑자인 고로 미루어 보아 말한 것이고 또 대원군 쪽에서 혹 이러한 일이 있다면은 마땅히 나에게 먼저 통지할 것이지 송에게 먼저 하지 않았을 것이다. 


問 : 송은 너의 수하이냐 수상이냐? 


供 : 별로 상하로 일컬을 만한 것이 없고 서로가 똑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다. 


問 : 송과는 재기 시에 같이 더불어 의논하지 않았는가? 


供 : 내가 기포할 때에 간혹 참석하였으나 처음 좌가 옳다, 우가 옳다 말을 하였다. 


問 : 송의 이 일이 만약 좌가 옳다 우가 옳다 한 말이 없은즉 대원군측 비기를 가칭 타인에게 기서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송의 기서는 혹인이 처음 일포로 시작되었고 비록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기는 어려우나 나의 일에 있어서는 방관하였다. 


問 : 송은 나와 더불어 이미 같은 포가 아닌즉 피차 행한 바 일에는 반드시 서로 알지 못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供 : 그렇다 


問 : 그런즉 송이 가칭한 비기를 너는 어찌 능히 밝게 아는가? 


供 : 송은 처음 서울에 머문 일이 없고 또 저명한 인사가 아닌고로 스스로 생각해서 말한 것이다. 


問 : 전후의 진술한 것을 합하여 본즉 송과 너와는 본래부터 서로 친한데 줄곧 모른다고 하니 역시 의심이 간다. 


供 : 지난번 귀관(일본영사)에게 답변할 때, 내어보인 글은 부랑에 관계되는 것 같아 역시 모르는 바이다. 그런고로 만약 친지자로서 대한다면 반드시 그 글의 내력을 물을 것이니 변혹하기 어려운 고로 잠시 여기에 만고(속여서 고함) 했다. 


問 : 그런즉 너에게 이로운 것을 물으면 대답하고 너에게 해로운 것을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니 되겠는가? 


供 : 이해로 마음 먹은 것은 아니나 특별한 사연으로 변혹하기 어려운 것은 그렇다. 


問 : 전라도내 사람이 반복무상하다고 일찍이 들은바나 지금 네가 고하는 것은 역시 그대로 상투적이다. 


그러나 질문이 오래되면 정상은 스스로 나타날 것이며 비록 일언반사라도 속여 고한 것은 반드시 얻지는 못할 것이다. 


供 : 송희옥의 건은 비록 속여서 고하였다고 하드라도 그 나머지는 처음부터 한마디 말도 꾸미고 속인 것이 없었다. 


問 : 지금의 이 재판은 양국에 관계되는 심판으로서 반드시 조금이라도 편벽된 청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구태여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속여 만들어 한때를 넘기고자 한즉 출간지설을 징탐하리니 모두가 믿을 것이 없다. 


供 : 사로 잡힌 것이 수삭, 또 병에 묶인 몸이라 한마디 말의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問 : 송과 너와는 척분이 안되는가? 


供 : 처족 7촌이다. 


問 : 기포 시 비로소 어디서 보았나? 


供 : 비록 삼례에서 보았으나 실지 같은 포의 일은 없었다. 


問 : 비로소 보았을 때 어떠한 의논을 한 일이 있는가? 


供 : 비로소 보았을 때 행해야 할 일을 말하고, 나도 역시 추후에 기포해 올라오겠다고 말하였다. 


問 : 그때는 어느 때인가? 


供 : 작년 10월 재기 때이나 일자는 자세히 모르겠다. 


問 : 너의 재기는 무슨 일을 할려고 하였느냐? 


供 : 앞서 고한대로 이미 다 이야기 하였다. 


問 : 네가 송과 더불어 삼례에서 상견했을 때 혹 대원군의 말을 칭탁한 것은 없느냐? 


供 : 송이 대원군으로부터 내려왔다고 일컬으면서 2월에 속히 올라오면 좋을 것 같다 한다고 말하기에 내가 묻기를 글이 있었느냐고 하였더니 대답이 없었다. 나에게 문자를 보이지 않으므로 책망했더니 힁설수설하여 실로 황당하는 눈치였다. 또 반드시 대원군이 가르쳤다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일을 마땅히 행할 것은 내가 스스로 여기에 당하겠다고 말하였다. 


問 : 삼례에서 기포할 때는 군중은 얼마나 되었는가? 


供 : 4천여 명이었다. 


問 : 그 후 접전은 어느 날에 있었는가? 


供 : 삼례에서 일어나 20여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서 접전하기 시작하였다. 


問 : 송이 말한 운현궁(대원군을 칭함)으로부터 내려온 두 사람의 이름은 누구인가? 


供 : 그때는 들어서 알았으나 지금은 기억하기 어렵다. 


問 : 두 사람의 이름은 모두 들을 수는 없으나 성과 이름은 끝끝내 기억할 수 없느냐? 


供 : 그 성은 박.정 같은데 상세하지 않다. 


問 : 박.정은 곧 이가 박동진 정인덕이 아닌가? 


供 : 박동진은 이가 분명하나 정은 상세하지 않다. 


問 : 박.정은 송을 보고 어떠한 말을 하였나? 


供 : 송이 일컬으기를 [운현궁(대원군)이 역시 네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問 : 송희옥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供 : 금번 올라올 때 듣기로는 고산 민병에게 죽었다고 하였는데 상세하지 않다. 


問 : 운현궁 효유문은 어떻게 얻어 보았나? 


供 : 9월 태인의 본집에 있을 때 접솔한 사람이 등초하여 와서 보았다. 


問 : 그 때는 바로 기포를 펼 때인가? 


供 : 그때는 집에서 병을 치료할 때로 기포의 생각은 없었다. 


問 : 그 도내 동학도의 자요가 없었느냐? 


供 : 그 때는 김개남 등이 열읍에서 작요하였다. 


問 : 열읍은 곧 어느 읍인가? 


供 : 순창.용담.금산.장수.남원 등이고 그 나머지는 상세하지 않다. 


問 : 대원군 효유문을 다만 한번만 보았었나? 


供 : 그렇다. 


問 : 효유문에는 어떤 말이 들어 있던가? 


供 : [너희들이 오늘날의 이 기요는 실로 수재의 탐학과 중민의 원굴로 말미암은 것이니 지금으로부터 이후 관의 탐학은 반드시 징치하고 백성의 원굴한 것은 반드시 펼 터이니 각기 돌아가 안업하면 가하나 만일 부준하면 곧 마땅히 왕정으로써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問 : 효유문에는 인적이 었던가? 


供 : 내가 본 것은 등초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없었으나 관에 도착한 원본에는 이것이 있다고 하는데 방곡에 게시하여 붙였다. 


問 : 방곡에 게시하여 붙인 것은 누가 하였는가? 


供 : 관에서 하였다고 한다. 


問 : 효유문은 누가 가지고 갔는가? 


供 : 주사의 직함을 띄고서 가지고 갔다고 하였다. 


問 : 그때 효유문을 네가 보니 진짜던가? 가짜던가? 


供 : 이것은 관에서 게시하여 붙였는데 어찌 가짜로 보겠는가? 


問 : 너는 이미 이를 진짜로 알았으면 어찌하여 재기하였는가? 


供 : 귀국(일본 영사관)의 속을 상세히 알고자 그렇게 하였다. 


問 : 가히 상세히 속을 안 다음 장차 어떤 일을 계획하려 했나? 


供 : 보국안민의 계책을 하고자 하였다. 


問 : 너의 재기에는 이미 대원군의 효유문을 불신하지 않았는가? 


供 : 이에 앞서 조정의 효유문은 1.2차에 그치지 않았으나 끝내 실시한 것이 없으니 하청을 상달하기가 어렵고 상택(임금의 은덕)은 하구하기가 어려운 고로 꼭 일차 서울에 이르러 민의를 상진하려 했다. 


問 : 이미 효유문을 보고도 구태여 일을 재기한 것은 이를 소실한 것이 아닌가? 


供 : 눈으로 친히 보고 귀로 친히 듣지 않고서는 깊이 믿기 어려운고로 이에 일을 재기하였는데 어찌 소실이 있겠는가? 


問 : 아까 고한 바 소실한 것이란 어떤 일인가? 


供 : 아까 소실이라 일컬은 것은 시사의 이면에 상세하지 못한 것을 가리킨 것이지 효유문의 보고 안 본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問 : 너의 재기에는 대원군 효유문으로써 개화파가 압박한 것으로 보고 겸하여 운현궁(대원군)으로부터 너희들이 상래를 기다린다고 하였으므로 이에 이를 행한 것인가? 


供 : 효유문의 개화파로부터 압박됐던 안됐던 관계가 없는 것이고 재기한 일에 이르러서는 본심에서 우러러 나왔고 또 비록 대원군의 효유문이 있어도 깊이 믿을 수가 없는 고로 재기를 힘써 도모하였다. 


問 : 일병의 범궐은 어느 때 들었는가? 


供 : 7-8월간에 들었다. 


問 : 어느 사람한테 들었는가? 


供 : 소문이 널리 퍼져 있으므로 자연히 이를 알 수가 있었다. 


問 : 이미 이르기는 창의라 하였은즉 듣고서도 즉시 행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10월까지 기다렸는가? 


供 : 때마침 몸이 아프고 또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겸하여 신곡이 나오지 않아 자연 10월에 이르렀다. 


問 : 대원군이 동학의 일과 관계가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며 또 대원군은 지금 권한이 없은 즉 네 죄의 경중은 오직 이 장소에 있고 대원군에 있는 것이 아닌데 너는 끝끝내 솔직히 말하지 않고 대원군의 암호를 깊이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과연 어떠한 뜻에서인가? 


供 : 대원군은 다른 동학 몇 백과 있을지언정 나에 관하여서는 처음부터 관계된바가 없다. 


問 : 대원군은 동학과 더불어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인데 네가 홀로 듣지 못하였던가.? 


供 : 실로 듣지 못한 바이다. 


問 : 대원군이 동학과 더불어 상관한 것을 처음부터 한 가지도 들은 바가 없었단 말인가? 


供 : 그렇다. 나의 것도 숨기지 않는데 항차 다른 사람의 것이랴? 


問 : 송희옥이 대원군과 더불어 서로 관계된 바가 있는 것을 너도 역시 알고 있었겠지? 


供 : 송희옥은 반드시 서로 관계된 것이 없을 것이다. 


問 : 네가 어찌해서 그 서로 관계된 것이 없는 것을 아는가? 


供 : 송희옥과 대원군과의 증표가 있다면은 모르겠으나 스스로 자세한 것인즉 반드시 서로 관계가 없다. 

 

  

全捧準 四招問目 日領事問(제4차 심문과 진술)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三月 初七日(서기 1895년 3월 7일(음))

 

問 : 너의 이름이나 호가 하나 둘이 아닐터인데 몇 개인가? 


供 : 전봉준 하나 뿐이다. 


問 : 전명숙은 누구의 이름인가? 


供 : 나의 자이다. 


問 : 전녹두는 누구인가? 


供 : 세상 사람들이 가리키는 이름이지 내가 지은 이름은 아니다. 


問 : 너는 별호가 있는가? 


供 : 없다. 


問 : 이외 별호 몇 소자의 칭호가 없는가? 


供 : 없다. 


問 : 네가 매양 사람에게 글을 써 붙일 때는 이름으로 쓰는가? 자로써 쓰는가? 


供 : 이름으로 쓴다. 


問 : 네가 작년 10월 재기의 일자는 어느 날인가? 


供 : 10월 12일간 같은데 잘 모르겠다. 


問 : 삼례재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供 : 내 집에 있었다. 


問 : 너는 전주에서 초토병과 접전하고 해산한 후 어디로 향하였는가? 


供 : 10여읍을 들러 귀화하라 권하고 곧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問 : 전주로부터 해산한 것은 어느 날인가? 


供 : 5월 초 7-8일이다. 


問 : 전주에서 해산한 후 처음 이른 읍은 곧 어느 읍인가? 


供 : 처음 금구로부터 김제. 태인 등지에 이르렀다. 


問 : 처음 금구로부터 이른 것은 어느 날인가? 


供 : 금구에는 곧 잠간 지나는 길에 거쳤고 5월 초 7.8일간 김제에 이르고 초 10일간에 태인에 이르렀다. 


問 : 태인에 이르른 후 거친 고을은 어느 고을인가? 


供 : 장성.담양.순창.옥과.남원.창평.순천.운봉을 거쳐 그 후 내 집으로 돌아왔다. 


問 : 집으로 돌아온 것은 몇월 몇일인가? 


供 : 7월 그믐, 8월 초간이다. 


問 : 열읍을 돌아다닐 때 네 혼자 이던가? 동행자가 있었던가? 


供 : 기솔 아울러 20여명이 있었다. 


問 : 그때 최경선도 동행하였나? 


供 : 그렇다. 


問 : 손화중도 역시 동행하였나? 


供 : 손은 동행하지 않았다. 


問 : 전주 해산 후 손화중은 어느 곳으로 향하였던가? 


供 : 그 때 손은 우도 열읍을 돌아다니면서 귀하를 권하였다. 


問 : 손이 전주에서 해산한 것은 너와 더불어 같은 날인가? 


供 : 그렇다. 


問 : 전주로부터 해산하고 너는 손을 보지 못하였는가? 


供 : 4-5개월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였다. 


問 : 4-5개월 후 어데서 만났는가? 


供 : 8월 그믐 경 순상의 명령을 띄고 먼저 나주로 가 민보의 해산을 권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성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만났다. 


問 : 손과는 만난 후에 의논한 적이 있는가? 


供 : 그때 나는 이르기를 [순상으로부터 별도로 부탁받은 바가 있으니 같이 영문에 갔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의논을 하였다. 


問 : 그런즉 손은 어떠한 말로 대답하던가? 


供 : 지금 병중에 있으므로 같이 갈 수가 없으니 병이 완쾌되는 것을 기다려 뒤따라 가겠다고 말했다. 


問 : 이외 다른 것을 의논한 바는 없었는가? 


供 : 그렇다. 


問 : 일병의 범궐은 언제 어느 곳에서 들었는가? 


供 : 7월경 남원땅에서 들었다. 


問 : 그런즉 열 읍을 돌아다니고 귀화할 때 이 소리를 들었는가? 


供 : 이는 도청도설에 의한 것이다. 


問 : 이 소리를 들은 후 군중을 일으켜 일본을 치는 일을 비로소 의논한 것이 어느 곳이던가? 


供 : 삼례역이다. 


問 : 특히 삼례역에서 이 일을 의논한 것은? 


供 : 전주부 외에 주막이 얼마간 많은 것이 삼례 같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問 : 삼례에 이르기 전에는 혹 도회지가 없는가? 


供 : 원평에 이르러 하루 밤 묶고 곧 삼례에 이르렀다. 


問 : 집으로부터 처음 출발한 날은 언제인가? 


供 : 10월 초순경이다. 


問 : 네가 삼례로 행할 때 동행자는 누가 있었던가? 


供 : 없었다. 


問 : 길을 가던 중 만난 사람도 없었는가? 


供 : 없었다. 


問 : 그때 최경선은 동행하지 않았던가? 


供 : 최는 추후에 왔었다. 


問 : 삼례에 이르러 누구 집에서 모였는가? 


供 : 주막에서 모였다. 


問 : 삼례 땅에는 본래 친구의 집이 있었는가? 


供 : 처음에는 친한 친구가 없었다. 


問 : 삼례의 호수(戶數)는 얼마나 되었던가? 


供 : 1백여 호이다. 


問 : 네가 사는 근처에도 반드시 1백여호의 촌장이 없지 않을 터인데 특히 이곳에 모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이 땅은 도로가 사방으로 통했고 겸하여 역촌이기 때문이다. 


問 : 최가 삼례에 이른 후 며칠이나 같이 유숙했는가? 


供 : 5-6일 머문 후 곧 광주 나주로 향했다. 


問 : 무엇 때문에 광주 나주로 향하였는가? 


供 : 기포의 일 때문이었다. 


問 : 최의 광주 나주에 간 것은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내가 시킨 것은 아니다. 그가 광주. 나주지방에는 많은 친지가 있어 기포하는데 용이했기 때문이다. 


問 : 삼례도회 때 동학도의 가장 저명한 자는 누구인가? 


供 : 금구의 조진구 전주의 송일두 최대봉 몇 사람이 가장 저명한 자였으나 그 나머지 허다한 사람은 지금 다 기억하기가 어렵다. 


問 : 그때 삼례에서 소위 의병으로 모인 자는 얼마나 되었던가? 


供 : 4천여 명이다. 


問 : 이들 군중을 거느리고 처음 어느 곳으로 향하였는가? 


供 : 처음 은진, 논산으로 향하였다. 


問 : 논산에 도착한 날은 언제인가? 


供 : 지금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10월 그믐쯤 될 것이다. 


問 : 논산에 이르러 어떠한 일을 했는가? 


供 : 논산에 이른 후 역시 널리 군을 모집하는 일을 했다. 


問 : 이곳으로부터 다시 어디로 향하였는가? 


供: 공주로 직행했었다. 


供 : 그 달 초 6∼7일쯤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問 : 공주에 이른 후에는 무슨 일을 하였는가? 


供 : 공주에 이르지 못하고 접전하여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問 : 네가 사람들에게 글을 부칠 때는 언제나 친서로서 하는가 아니면 대서인가? 


供 : 때로는 친서로 하고 때로는 대서로 한다. 


問 : 혹 대서 시에는 꼭 너의 도장을 찍었는가? 


供 : 피봉에는 도장을 찍을 때가 많으나 대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이 있다. 


問 : 네가 삼례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부친 글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친서인가? 대서인가? 


그리고 대서로 할 때는 너의 도장을 찍었는가? 


供 : 모두 통지문으로 부치고 사간은 하지 않았으나 오직 손화중한테 부친 글은 있다. 


問 : 처음 한자도 사간으로써 사람에게 부친 글이 없었는가? 


供 : 만약 그 서간을 보면 알 수가 있으나 지금은 자세히 모르겠다. 


問 : (영사가 서간을 내어 보이면서)이것은 네 친선인가 대서인가? 


供 : 대서이다 


問 : 누구를 시켜서 대서했는가? 


供 : 접주의 필적인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사람을 자세히 모르겠다. 


問 : 너는 일찍이 최경선으로 하여금 대서케 한 일이 있는가? 


供 : 최는 글에 능숙한 자가 아니다. 


問 : 이 편지는 삼례로부터 낸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이 편지의 년 월 일은 분명히 9월 18일인데 인데 어찌 10월 삼례로 나와서 모였다고 하는가? 


供 : 전에 10월이라고 말한 것은 9월인 것 같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내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네 친서인가 대서인가? 


供 : 이것도 역시 대서이다. 


問 : 그 편지는 누가 대리로 쓴 것인가? 


供 : 이것 역시 접주를 시켜 썼으나 지금은 그 사람을 기억하기 어렵다. 


問 : 오늘의 진술을 너는 솔직히 고하라 그런 연후에야 안이 속결될 것이다. 여러 가지로 속여 고하면 일이 괴롭고 싫증만 날 뿐 역시 너의 자신에게도 많은 해가 있을 것이다. 


供 : 월.일은 과연 자세히 기억하기 어려우나 그 나머지는 무릇 관계한 것을 어찌 조금이라도 속여 고했다 하겠는가? 


問 : 대서를 할 때에는 어찌 반드시 소정의 사람이 있을 터인데 어찌 몰라서 되겠는가? 


供 : 그 때 나는 졸필이라 매양 사람으로 하여금 대서케 했으나 본래 정해진 사람은 없다. 


問 : 이 두 편지는 모두 다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삼례의 규합은 모두 너로부터 나왔는가? 


供 : 그렇다. 


問 : 그러면 모든 기포에 관한 것은 모두 네가 주모했는가? 


供 : 그렇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것도 역시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것도 역시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전날 진술한 바 너는 김개남과 상관없다 했는데 지금 이 편지를 본즉 두 사람 사이에 상관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떠한가? 


供 : 김은 내가 왕사에 합력하자고 권하였으나 끝끝내 들어주지 않는 고로 비로소 상의한 바 있으나 마침내는 끊고 상관하지 않았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 두 종이의 필법은 한 사람의 붓인데 앞은 글은 네가 했다고 진술하고 지금의 것은 어떻게 하여 모른다고 하는가? 


供 : 지금 이 글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問 : 아까 말하기를 삼례의 일은 모두 너로부터 나왔다. 하였는데 지금 녹편을 보이자 그렇지 않다니 실로 모호하구나. 


供 : 녹편중 서학이라고 한 것은 서병학을 말하는 것인데 서병학은 이미 나와 더불어 끊어져 왕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가 시킨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問 : 동학도 가운데 접주를 차출하는 것은 누가 하는가? 


供 : 모두 최법헌이 한다. 


問 : 네가 접주가 된 것도 역시 최가 차출하였는가? 


供 : 그렇다. 


問 : 동학접주는 모두 최가 낸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호남과 호서가 전부 같은가? 


供 : 그렇다. 


問 : 도집. 집강의 임명 같은 것도 전부 최가 차출하는가? 


供 : 비록 최로부터 많이 나오나 때로는 접주들이 차출하기도 한다.  

 


全捧準 五次問目 日領事問 

(제5차 심문과 진술·일본영사 심문)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三月 初十日(서기 1895년 3월 10일(음))

 

問 : 오늘도 전과 같이 사실을 조사할테니 숨기지 말고 바르게 들어라. 


供 : 잘 알았다. 


問 : 작년 9월 삼례에 있을 때 별도로 대서인이 없고 접주 중에서 바꾸어 가면서 썼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供 : 별도로 대서인은 없으나 접주에서 바꾸어 가면서 이를 썼다. 처음 임오남으로 하여금 이를 쓰게 하였으나 그가 무식하므로 이를 두고 또 김동섭으로 하여금 잠시 쓰게 하였다. 


問 : 대서인은 오직 김동섭, 임오남 두 사람뿐인가? 아닌가? 


供 : 접주 가운데 문계팔. 최대봉. 조진구가 혹 대서하였으나 몇 차례의 편지를 쓴데 불과하다. 


問 : 너는 최경선과 서로 친한 것이 몇 년이나 되는가? 


供 : 동향이므로 서로 친한 것이 5∼6년이 된다. 


問 : 일찍이 최가 너에게 상사의 분이 있는가? 없는가? 


供 : 다만 친구로서 상종할 뿐이지 가르침을 받는 일은 없었다. 


問 : 너의 진술이 부실한 곳이 있는 것 같은데 공연히 재판을 끌고 또 네게 해가 없을터인데 무엇 때문에 이같이 하는가? 


供 : 별로 정상을 속인 것은 없으나 일전 송희옥의 일로 잠시 숨겼으나 다시 명백히 말하였다. 


問 : (하나의 종이를 내어 보이면서)이는 너의 친필이 아닌가? 정상을 속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供 :이미 나의 것은 진술하였다. 글은 나의 글이나 필적으로 말하면 나의 필적이 아니다. 어찌 나에게 유익한 것이 있어서 속이겠는가? 과연 내가 쓴 것이 아니다. 


問 : 최경선의 진술로는 이것은 너의 필적이라고 하는데 너는 아니라고 말하니 어찌 정상을 속인 것이 아닌가? 


供 : 다시 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또 습자를 시켜보면 필체의 획은 가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問 : 일전 너를 심문할 때 너는 삼례에 있을 때 서기라는 명색이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서기라는 명백이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앞서는 대략 말하였던 것이고 지금은 상세히 이를 묻는 고로 그때 잠시 대서한 것을 서기라고 말하였다. 


이상이 법무아문 재판관(法務衙門 裁判官)과 일본영사(日本領事)가 심문(주로 日本領事)한 진술의 내용이다. 모두 275개 문항이다. 


제3차 심문부터는 어디까지나 전봉준(全琫準)과 대원군(大院君)과의 관계를 캐내려고 파고들었으며 또 전봉준의 가까운 심복을 알려고 애썼다. 


그러나 전봉준은 대원군과의 관계를 전적으로 부인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건들을 직면할 대마다 책임을 자기 동료들에게 돌리지 않고 전봉준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지려고 애쓴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상 5차 공초기록(供招記錄)에서 갑오동학혁명(甲午東學革命)의 성격을 비롯하여 동학교(東學敎)와의 관계도 짐작할 수 있다. 

  


판결문  

제삼십칠호(일팔구오년삼월십구일) 선고문 


::: 판결선언서 (원문) ::: 


전라도 태인 산외면 동곡 거 농업 평민 


피고 전봉준 년 사십일 


우기자는 전봉준을 대하여 형사피고사건을 심문(審問)하여 본 즉 피고난 동학당이라 칭하고 부도의 거두 접주라 부르고 개국 오백일년 정월에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이가 처음 도임하여 자못 학정을 행하매 해지방인등이 병고를 견디지 못하고 익년 십일, 이월분에 군수를 향하여 기구정을 고쳐달라하고 애간(哀懇)하였더니 비단 소원을 이루지 못할뿐더러 두루혀 다 잡히고 옥(獄)에 갓치고 그 후에도 수삼차 청원하였건마난 즉시 물리치고 호발(毫髮)도 효험이 없난 고로 인민 등은 매우 분하여 수 천명이 못되어 장차 거사(擧事)하여 할 때 피고도 맛참 그 무리에 드러 드듸여 중인이 밀려 접주(接主)로 삼아 작년(昨年) 삼월상순(三月上旬)에 영솔기도(領率基徒)하여 고부(古阜) 외촌(外村) 창고(倉庫)를 헐고 전곡(錢穀)을 빼셔 진수(盡數)히 인민을 배급(排給)하고 일, 이처에 작경(作梗)한 후 한 번 해산(解散)하였으나 기후 안핵사(按 使) 장흥부사(長興府使) 이용태가 고부로 드러와서 몬져 작경하거슨 다 동학당의 소위라 하고 동학수도하난 자를 잡아 살육(殺戮)을 과히 하므로 이에 피고난 다시 기도를 규합하여 모집(募集)하되 만일 불응자(不應者)난 불충불의(不忠不義)된 사람이니 반드시 벌을 주리라 하고 다른 사람을 협박(脅迫)하여 기도 사천여명(四千餘名)을 어더가지고 각기 소유한 흉기(凶器)를 가지고 양식(糧食)은 기지방 부민에게 징봉(徵捧)하여 시년 사월 상순분(上旬分)에 피고가 친히 기도를 영솔(領率)하여 전라도 무장(茂長)의셔 니러라 고부(古阜), 태인(泰仁), 원평(院坪), 금구(金溝), 등처(等處)를 갈새 전라감영 포군(砲軍) 일만여명(一萬餘名)이 동도(東徒)를 치러 온단 말을 듣고 한 번 고부(古阜)로 몰려 갔다가 하루 밤낮을 접전 후 영문포군(營問砲軍)을 파하고 전진하여 정읍(井邑), 흥덕(興德), 고창(高敞), 무장(茂長), 영광(靈光), 함평(咸平)을 지나 장성(長城)을 니르니 경군 칠백여명을 만나 또 격파(擊破)하고 화야겸행( 夜兼行)으로 행차하여 사월 이십육, 칠일게 관군보담 몬져 전주성을 드러가니 기시(其時) 전라감사는 임이 도망하여 간 곳슬 모르거날 기익일(其翌日)의 다더러 초토사(招討使) 홍재희가 군사를 다리고 성하의 박도(迫到)하여 성밧거셔 거포(巨砲)를 놋코, 공격(攻擊)하기로 피고가 기도(其徒) 더부러 응전(應戰)하여 쟈못 관군을 괴롭게 하니라. 


이에 초토사가 격문(檄文)을 지어 성중으로 던지고 피고 등의 소원을 드러줄터이니 속히 해산하라 효칙(曉飭)하엿난대 피고 등이 곳 전운소핵파사(戰運所革罷事), 국결부위가사(國結不爲加事), 금보부상인작폐사(禁褓負商人作弊事), 도내 환전구백위봉거(還錢舊伯爲捧去) 즉부득재징어민간사(則部得再徵於民間事), 대동상납전각포구잠상무미금단사(大同上納前各浦口潛商貿米禁斷事), 동포전매호춘이양식정전사(洞布錢每戶春秋二兩式定錢事), 탐관오리병파출사(貪官汚吏竝罷黜事), 옹폐상층매관매작조국권지인일병축출사(雍蔽上聰賣官賣爵操國權之人一竝逐出事), 위관장자부득입장어해경내차부위매답사(爲官長者不得入蔣於該境內且不爲買沓事), 전세의전사(田稅依前事), 연호잡역감성사(煙戶雜役減省事), 포구어람세혁파사(浦口魚籃稅革罷事), 보세급관답물시사(洑稅及官沓勿施事), 각읍졸하래민인산지륵표투장물시사(各邑 下來民人山地勒標偸葬勿施事). 이십칠수목(二十七脩目)을 내여 가지고 상주(上奏)하기로 청하였더니 초토사(招討使)가 즉시 承諾한 고로 동년(同年) 오월(五月) 초오(初五), 육일(六日)께 쾌히 그 무리를 해산(解散)하여, 삼례역(三禮驛)을 니르러 그곳으로 기병(起兵) 각기(各其) 취업(就業)하게 하고 또 기시에 피고난 최경선(崔景善) 이하(以下) 이십여명(二十餘名)을 다리고 전주로부터 금구(金溝), 금제(金堤), 태인(泰仁), 장성(長城), 순창(淳昌), 옥과(玉果), 창평(昌平), 순천(順川), 남원(南原), 운봉(雲峰) 등 각처를 열력(閱歷) 유설(遊說), 하여 칠월하순(七月下旬) 태인(泰仁) 제집으로 귀거(歸去)하니라. 기후(其後) 피고난 일본(日本) 군대(軍隊)가 대궐(大闕)로 드러갓단 말듯고 필시 일본인이 아국(我國)을 병합(倂合)코저 한난 뜻신 줄 알고 일본병(日本兵)을 쳐물리고 기거유민(其居留民)을 국외(國外)로 구축(驅逐)할 마음으로 다시 기병(起兵)을 도모(圖謀)하여 전주(全州) 근처(近處) 삼례역(三禮驛)이 토지(土地) 광활(廣闊)하고 전라도(全羅道) 요충지지(要衝地之地)기로 동년(同年) 구월분(九月分)에 태인(泰仁)을 발정(發程) 원평(院坪)을 지나 대도소(大都所)로 삼고 진안거(鎭安居) 동학접주(東學接主) 文季八(文季八), 김영동(金永東), 이종태(李宗泰), 금구거접주 조준구(金溝居接主 趙駿九), 전주거접주 최대봉(全州居接主 崔大奉), 송목두(宋目斗), 정읍거(井邑居), 손여옥(孫汝玉), 부안거(扶安居), 김석윤(金錫允), 김여중(金汝中), 최경선(崔慶善), 송희옥(宋喜玉), 등과 동모(同謀)하여 상년삼월이후(上年三月以後) 피고(被告)와 동사(同事)한 비도거괴(匪徒巨魁) 손화중(孫化仲) 이하(以下) 전주(全州), 진안(鎭安), 흥덕(興德), 무장(茂長), 고창(高敞) 등처(等處) 원근(遠近) 각지방(各地方) 인민(人民) 더러 혹(或) 격문(檄文)을 돌리며 혹(或) 전인(專人)하여 유설(遊說)하고 전라우도(全羅右道)의셔 군사(軍士)를 모흐기를 사천여명(四千餘名)이 되매 처처관아(處處官衙)의 드러가셔 군기(軍器)를 강탈(强奪)하고 또 각지방(各地方) 부민(富民) 한띄 전곡(錢 )을 징봉(徵捧)하여 삼례역(參禮驛)을 떠나가면서 도당(徒黨)을 모집(募集)하고 은진(恩津), 논산(論山)을 지나 당수만여명(黨數萬餘名)을 거느리고 동년(同年) 십월(十月) 이십육일(二十六日)쯤 충청도(忠淸道) 공주(公州)를 다다럿더니 일본병(日本兵)이 몬져 공주성(公州城)을 웅거(雄據)하여 잇기에 전후(前後) 이차접전(二次接戰)하여 보앗건마난 두 번 다 대패(大敗)하였는지라 그러나 피고(被告)난 더 일본병(日兵)을 치려 하였더니 일본병(日本兵)이 공주(公州)의 있셔 움직이지 안코 기간(其間)의 피고(被告) 포중(包中)이 점점(漸漸) 도산(逃散)하여 수습(收拾)치 못하게 되엿기로 부득이(不得已)하여 한번 고향(故鄕)으로 도라가 다시 모병(募兵)하여 전라도(全羅道)의셔 일병(日兵)을 막으려 하엿더니 응모자(應募者)가 없는 타스로 동모(同謀) 삼(三), 오인(五人)과 의논(議論)하고 각기(各其) 변복(變服)하여 가만이 경성(京城)으로 드러가 청탐(淸探)코져 하여 피고(被告)난 상인(商人)맨도를 하고 단신(單身)으로 상경차(上京次) 태인(泰仁)을 떠나 전라도(全羅道) 순창(淳昌)을 지날 새 민병(民兵)한대 잡힌 거시니라. 


우(右)에 기록(記錄)한 사실(事實)은 피고(被告)와 밋 기동모자(其同謀者) 손화중(孫化仲), 최경선(崔慶善) 등(等)이 자복(自服)한 공초(供招) 압수(押收)하나 증거문적(證據文籍)이 분명(分明)한지라. 


기소위(其所爲)는 대전회통형전중(大典會通刑中)의 군복기마작변관문자불대시참(軍服騎馬作變官門者不待時斬)이라 하난 율(律)을 조(照)하여 (處罪)할 거시니라 


우(右)에 이유(理由)로써 피고(被告) 전봉준(全琫準)을 사형(死刑)에 처(處)하노라. 



개국(開國) 오백사년(五百四年) 삼월(三月) 이십구일(二十九日) 


법무아문권설재판소선고(法務衙門說栽判所宣告) 


법무아문(法務衙門) 대신(大臣) 서 광 절(徐光節) 


협판(協辦) 이 재 정(李在正) 


참의(參議) 장 박(張 博) 


주사(主事) 김 기 조(金基肇) 


오 용 묵(吳容默)

[켄 윌버 Ken Wilber의 이 책은 암투병의 아내와 함께 했던 헌신적인 노력의 과정과 감동적인 사랑에 대한 글이자 심리치료 및 영성치유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Grace and Grit                    

발표자: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조옥경 교수

 

• 켄윌버에 대한 간단한 소개

자연과학을 전공하던 윌버는 어느 날 우연히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큰 충격을 받으면서 동양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동서양의 정신문화에 대한 수많은 서적을 섭렵하면서 이들을 통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운데 개인적인 수행을 꾸준히 지어나갔다. 그는 동서양의 심리학을 통합한 사람으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으며, 현재 가장 널리 읽히고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또 그는 진정한 세계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윌버는 자신은 판디트(학자)이지 구루(깨달은 영적인 스승)는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구루로 오인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으며 은둔지에서 명상과 독서, 저술에 집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 독일의 한 편집자가 왜 인터뷰에 응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인터뷰를 하면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집필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있다. 


이 책은 윌버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트레야와 보낸 암과의 눈물겨운 투병과정을 그리고 있다. 윌버는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5년 동안 극진히 보살폈는데 그 과정에서 윌버가 보인 환자를 돌보는 성실한 노력, 아내를 향한 식지 않는 사랑, 인간적인 따뜻함과 섬세함이 이 책에 감동적이고도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또 트레야의 죽음을 통해 우아함과 용기, 존재와 행동, 열정과 평정심이라는 존재의 양극성이 어떻게 두 부부의 삶 속에서 조화롭게 통합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트레야는 윌버의 영적 성장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식의 발달과정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는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트레야와의 만남,  트레야의 투병과정, 트레야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시련은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기회를 마련하였고 이를 통해 윌버의 경험과 사고의 지평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암을 치료하려고 두 부부가 성실하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과정은 어떻게 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병을 다루는지, 어떻게 우아함을 유지한 채 용기를 잃지 않고 병마와 싸우는지, 어떻게 병을 미워하지 않고 삶의 한 모습으로 감싸 안는지, 어떻게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으로 인도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윌버는 아내의 죽음을 통해 육체적 죽음은 에고의 마지막 소멸이며 영혼을 영원히 해방시키는 관문임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 또 아내를 전심으로 간호하면서 진정한 수행은 자신을 없애고 타인에게 오롯이 헌신하는 가운데 완성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다.



1. 잠시의 포옹, 잠시의 꿈  

윌버와 트레야는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로저 월쉬와 프란시스 본의 집에서 1983년 여름에 만났다. 트레야가 윌버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살아있는 윌버의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1m 93cm의 키에 머나 먼 혹성에서 온 것 같은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초월론자와 결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는 아주 특이한 겉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매우 남다른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마음은 또 어찌나 따사로운지! 게다가 빛나는 재능도 갖추고 있었다. 과거에 내가 사귀었던 다른 남자들의 경우,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는 재능이 없었고 재능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남자를 찾았다. (pp. 23) 


첫 만남에서 서로가 가볍게 포옹을 했을 때 두 사람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녀를 감싸 안았을 때, 나는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분리감이나 거리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우유와 물이 섞여 혼연일체가 되는 듯 말이다. 과거 여러 생 동안 테리와 함께 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pp. 29) 


그 날 밤 두 사람은 거의 똑같은 시간에 쿤달리니 Kundalini라고 불리는 영적인 에너지가 깨어나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런 경험은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나 만남이 있을 때 흔히 일어난다. 보통 사람은 잘 경험하지 못하지만 영혼이 순수하거나 이미 오랫동안 영적인 수행을 해 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현상이다. 그 때 트레야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수행을 하고 있었고 윌버는 15년 동안 명상을 해오고 있었다. 그 날 이후 그들은 거의 서로 떨어지지 않고 같이 지내게 된다. 


“그 날 후로 우리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거의 함께 있었다. 잠시라도 헤어져 있는 것을 못 견뎌했다.”(pp. 33) 

처음 만난 지 열흘이 지난 후에 윌버는 테리에게 청혼을 했고 테리는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테리는 “만약 당신이 청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에게 했을 거예요.”(pp. 40)라고 윌버에게 말한다 

     


2. 고통을 안고 찾아든 행복

그 후 넉 달이 지나 그들은 결혼식을 올린다. 이 때 윌버는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현대물리학의 위대한 선구자들에 관한 책 “양자적 물음 Quantum Question"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는 현대물리학의 성과와 신비주의를 비교하면서 왜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신비주의자인지를 탐구하면서 그들은 물리학을 넘어선 메타물리학으로서의 신비주의를 원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를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이 둘은 존재의 다른 수준을 다루고 있을 뿐 신비주의를 물리학으로 환원시켜도 안 되며, 물리학을 신비주의로 격상시켜서도 안 된다는 점을 경고하였다. 윌버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리학으로 신비주의를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개의 꼬리로 개를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pp. 49) 


결혼식전 건강진단을 받기위해 병원에 간 트레야는 가슴에 응어리를 발견하였고, 안심시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10일 후에 그 응어리가 암으로 판명되어 두 사람은 행복의 절정에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암 진단을 받은 날 트레야는 다음과 같이 일기에 쓰고 있다. 

“밤이 깊었다. 켄이 차를 만들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세상은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었다. 이것은 현실이고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켄이 부엌에서 돌아와 나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옆에 앉더니 두 팔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둠을 응시했다.” (pp. 71) 

 


3장. 의미에 속박되어 

아내의 암에 직면한 윌버는 병의 의미에 대해 사색한다. 그는 질환(illness)과 병(sickness)를 구분하여 질환은 가치중립적인 것으로써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질환이 병으로 되면 사회적인 가치가 부과되어 두려움, 희망, 신화, 이야기, 가치, 그리고 특정 사회가 질환에 부여하는 의미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 환자는 의학적 질환 뿐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의미가 부여된 병을 다루어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왜 질병에 걸렸는가, 하필 왜 나인가? 이 일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어떻게 이것이 생겼는가? 등등 자신의 질환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 환자는 사회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질병에 걸릴 때 마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의미와 판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병을 이해하게 되는데 사회적 의미를 지닌 병은 지나치게 자기 완성적이며 독선적인 모습을 띤다. “왜 하필 나인가? 왜 나는 병에 걸렸나?” “당신이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야.” “당신은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지?” “당신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지.”라는 식이다. 


이렇게 질환과 병으로 구분한 윌버는 다문화적 시각을 갖고 각종 문화나 사회가 질병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탐색하였다. 

1) 기독교 원리주의자, 2) 뉴에이지 3) 서양의학 4) 업(까르마) 5) 심리학 6) 그노시스파 7) 실존주의 8) 전체론적 의학 9) 마술 10) 불교 11) 과학 (p 83-85) 


윌버는 인간에게는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실존적, 영적 차원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할 때 이들 각 차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암을 예로 들면 

1) 육체적 차원 : 식사, 환경유해물질, 방사능, 흡연, 유전적 요인 

2) 감정적 용인 : 우울증, 엄격한 자기억제, 극도의 독립심 

3) 정신적 원인 : 자기비판, 비관적 세계관, 우울증 

4) 실존적 원인 : 죽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5) 영적인 원인 :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윌버부부는 암의 의미를 다루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느끼면서 “암과 즐겁게 지내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4장. 균형의 문제 

윌버와 트레야는 정통의학과 대체의학(p82)에 관한 정보와 서적들을 모두 섭렵해서 의지할 수 있는 유용한 사실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대체의학과 전체론적 의학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두 사람은 먼저 정통적인 서양의학을 치료를 받은 후에 전체론적 치료를 보조방법으로 이용하면서 두 치료법을 적절하게 조화시켜나갈 결심을 한다. 


질병의 심리적 요인을 다루어 가던 두 사람은 ‘존재(Being)'와 ’행동(Doing)"의 대립이라는 고전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 존재(여성성) : 현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람을 능력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기, 관계성, 포괄성, 포용성, 공감, 배려의 가치 

• 행동(남성성) : 생산하고, 만들고, 성취하는 것, 공격적, 경쟁적, 계층적. 미래지향적, 규칙과 판단에 의존. 현 상태에 변화를 주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이라는 이슈에 직면한 트레야는 자신이 행동/남성성을 과대평가해온 나머지 자신의 여성적인 존재의 부분을 소홀히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원래 이름인 테리가 남성적인 인상을 주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 자신의 여성성을 오롯이 수용하면서 트레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


 • 디먼(daemon)과 데몬(demon)의 문제 

1) 디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내적인 신을 말하며 한 개인이 그를 잘 따라서 행동하면 그 사람의 수호령이 되어, 그가 하고 있는 일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지만,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데몬이 되어버려, 성스러운 에너지와 재능이 자기 파괴적인 모습으로 변화한다. 지옥의 불꽃은 거부된 신의 사랑이며, 악마는 천사가 타락한 모습이다. 윌버는 자신의 디먼을 이미 찾았음을 트레야에게 고백한다. 

“내 나이 23살, 내 집을 찾아와 나 자신을 발견했고, 내 목적을 찾았으며, 나의 신을 찾았다. 그 후 나는 이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pp. 100) 


트레야는 자신의 디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고통을 받았으며 암 선고를 받은 후 줄곧 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간다. 그녀는 “기적수업”에서 강조하는 ‘신이란 내 용서 안에 있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용서와 사랑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기른다. 이런 트레야의 태도를 윌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행동과 존재, 저항하는 것과 열어놓은 것, 싸우는 것과 항복하는 것, 원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그들 간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은 암에 직면한 테리의 중심과제가 되었다.”(pp. 105) 


이런 문제는 다음의 기도문(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의 기도문?)에서 잘 드러나 있다 

신이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온과 바꿔야 할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 당시 윌버는 “의식의 변용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를 집필했고 뉴욕타임즈는 ‘마침내 가장 중요하고 학술적인 동서양 심리학의 통합적 결정판이 나왔다”며 호평을 하였다.    

 


5. 내적인 우주 

•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은 긴장을 풀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또 깨어있음(awareness)을 훈련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방법, 자신에게 의식을 집중해 초점을 맞추는 방법, 언어적 사유를 멈추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 중추신경을 가라앉히는 방법, 스트레스를 없애고 자부심을 기르며 불안감을 줄이고 우울함을 완화하는 방법이라도 한다. 

이 모든 말이 사실이다. ...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명상자체는 영적인 훈련이라는 점이다....  영혼의 내면을 향해,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신성과 합일되는 길을 찾는 방법이다... 명상은 영적인 것이지 종교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 명상은 영적이고, 기도는 종교적이다.” (pp. 122-123)


• 영원의 철학에 대한 트레야와 윌버의 대화 

영원의 철학 : 세계의 위대한 영적 스승, 철학자, 사색가, 과학자들이 채택한 세계관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문화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1) 영적인 것은 존재한다 (2) 영적인 존재는 내면에서 발견된다 (3)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내면에 있는 영적인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와 분리와 이원론의 세계, 즉 타락과 무지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4) 죄와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 해탈의 길이 존재한다. (5) 그 길을 끝까지 간다면 윤회, 혹은 깨달음, 내면의 영적 존재를 체험할 수 있고 종국엔 최상의 자유를 성취하게 된다. (6) 그것은 괴로움과 죄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7) 따라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자비심을 가지고 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pp. 127) 


윌버는 영원의 철학의 핵심은 “작은 자아”를 넘어서 “큰 자아”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나아가는 방법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1. 자아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방법 --. 지식(지혜)의 길, 자력의 길 

오로지 자신의 알아차림이나 집중력에 의지해서 자아를 투과한 보다 광대한 본성에 이르는 길 : 방법 - 위빠사나, 즈나나 요가 

‘나는 신이고, 보편적인 진리다’ 

2. 자아를 무로 축소해나가는 방법 -- 헌신(신앙)의 길, 타력의 길 

스승의 힘이나 신을 의지해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길 : 예 :기독교, 박티요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이여, 당신이 전부입니다’ 

(참고 : 트레야의 어린 시절의 경험. 이것은 트레야의 영적인 수준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pp. 141-142) 

 


6장. 심신탈락 

트레야는 10일 동안의 고엔카 위빠사나 수련을 다녀와서 알아차림의 의미를 깊이 체험한다. 

“고엔카는 말한다. 당신은 감각을 발명할 수 없다. 감각을 선택할 수 없다. 감각을 창조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지켜본다. 무상의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붙들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pp. 150) 


이 수련을 하면서 트레야는 생각이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마음과 몸이 사라지는 체험을 한다. 윌버도 유사한 체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도겐선사는 스승이 귓전에 ”심신탈락!“이라고 속삭였을 때 깨달았지. 당신이 말한 것처럼 분리된 심신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생각이 떨어져나간 거요. 그것과 아주 비슷해요. 나도 그런 체험을 몇 번 했었고, 그 체험들은 아주 현실적이었소. 거기에 비하면 자아는 정말 실제적이지 않지.” (pp. 151쪽) 


심신탈락의 경험을 통해 진아 혹은 지켜보는 자를 일별할 수 있는데, 생각이나 이미지는 볼 수 있어도 이것들이 궁극적인 지켜보는 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과 경험을 통해 자아는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이로써 개인적 자아에서 진정한 주체로, 진정한 자아, 진아인 비개인적인 지켜보는 자로 바뀌기 시작한다. 

“육체는 물질을 알아차리고, 마음은 육체를 알아차리지요. 영혼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영성은 영혼을 알아차린다오. 보다 높은 단계에 오를수록 알아차림은 더 많아질 수 밖에. 즉 보다 크고 넓은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가장 높은 정체성과 보편적 알아차림, 이른바 ‘우주의식’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오.”(pp. 158) 

 


7장. 갑자기 뒤틀린 내 인생 

트레야와 윌버의 성실하고 다방면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이 재발되고 4기의 악성 암세포임이 밝혀진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암환자였던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암이 재발한 사람이 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켄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집단, 다른 동료, 다른 통계, 다른 미래에 놓이게 되었다. 내 인생은 갑자기 뒤틀려버렸다.” (pp. 162) 


재발로 인한 유방절제 수술 후에 윌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왠지 모르지만, 테리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는 것이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만은 그 누구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 어느 때 보다 힘이 필요한 이 때,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빈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울었다... 테리가 불쌍하기 때문에, 안됐다는 생각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용기가 그만큼 자랑스럽기 때문에 나오는 눈물이었다. 그녀는 낙담하지 않고, 다만 당당하게 전진해 나갈 뿐이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냉혹한 상황을 이겨내려는 그녀의 용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pp. 170) 


• 윌버와 트레야가 실행에 옮긴 대체의학과 전체론적 요법 : 175쪽 

유방을 절제한 후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은 가장 질나쁜 전이성 암으로 악화되었으며 그 치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8장. 나는 누구인가? 

항암치료제인 레글란을 투여 받은 후의 강력한 히스타민 반응으로 트레야는 공황상태와 자살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이 때 두 부부는 “무경계 No Boundary"의 “보는 자”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참고 pp. 189-190) 


“당신 안의 자신이라는 깊은 내적 감각은 당신의 기억도 생각도 아니고, 당신의 마음도 몸도 아니며, 당신의 환경이나 감정, 갈들이나 감각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적 자신에게 본질적인 영향을 주는 일 없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내적인 자신은 시간이 흘러도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있는 것으로 자아초월적인 <보는 자>이자 “진아”다.” (pp. 195) 

 


9장. 나르시스, 혹은 자기 수축 

윌버 부부는 타호 호수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살면서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는 데 이 때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이 시기는 암과 싸우는 두 부부 뿐 아니라 윌버 개인에게도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을 맞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윌버는 몇 개월 동안 끊임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나는 타호 호수 남쪽의 파크가에 있는 앤디의 스포츠 용품점에 가서 총을 살 것이다. 이런 상태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정말이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pp. 210) 


윌버는 명상도 하지 못하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면서 심한 우울상태에 빠져드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마을에 창궐했던 이름모를 전염병 때문이었다. 윌버는 근육경련, 발작에 가까운 몸부림, 만성발열, 임파선 장애, 식은땀과 탈진증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1년 6개월 동안 전혀 집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으며 명상을 통해 열려있는 순수의식과의 연결을 유지할 수도 없는 절망적이 상태였다. 윌버는 이것을 자기수축, 즉 자기모습에 절망적으로 빠져든 나르시스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단순하고 파괴적인 잘못은 내 고통을 테리 탓으로 돌리며 그녀를 비난한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의 흥미를 구석에 박아둔 채 그녀를 돕는 길을 선택했으면서도, 저술이나 편집활동, 명상 시간을 잃는 것에 대해 테리를 비난했던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실존주의자가 말하는 ‘나쁜 신념’이다. 이것의 나쁜 점은 자신의 선택으로 생긴 책임을 회피한다는 데 있다” (pp. 213) 


이 때 트레야도 화학요법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화학요법의 가장 나쁜 면은 그것이 내 영혼에 독을 쏟아 붓는다는 점이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그리고 영적으로 나를 해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너무도 지쳐서 전혀 자신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pp. 221) 


서로 심신이 탈진될 때로 탈진된 두 부부는 결국 위기의 정점을 맞게 되고 급기야 윌버는 난생 처음으로 여성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손찌검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때리고 만 것이다. (pp. 229-230) 

 


10장. 치유할 시간 

위기의 정점이 지나자 윌버부부는 자신들 만으로는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로저 월쉬, 프란시스 본, 특히 세이무어 부어스틴의 도움을 받아 서로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은 “기적수업”을 중심으로 ‘수용과 용서’라는 덕목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참고 pp. 235-236) 


“신은 내가 용서하는 사랑 속에 있다.” (기적수업의 문구) 

트레야는 자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 자신에게 치료할 시간을 주는 것. 개방적이고 조용한 공간이 지나가도록 그냥 내버려둔 채, 그곳에서 무엇이 나올까 그저 지켜보고 있다.” (pp. 239) 


• 두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수행을 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 : (pp. 249) 

두 사람이 함께 모실 수 있는 스승을 찾던 중에 칼루 린포체를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즉시 그 분이 자신들의 스승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pp.250) 


• 윌버가 가타기리 선사 밑에서 견성을 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 : 

“아주 작은 경험이었소. ” 켄은 설명했다. 그 깨달음은 선사가 이런 말을 했을 때에 일어났다고 한다. “보는 자는 자아의 마지막 저항이다.” (pp. 252) 

 


11장. 심리치료와 영성 

서독에서 에디스 준젤이라고 하는 편집자가 윌버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망설이던 끝에 인터뷰에 응하게 된다. 

“모두가 저를 스승이나 구루 또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판디트는 될지언정 구루는 아닙니다. 실천에 관한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초보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5년간 고작 4번밖에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어요.” (pp. 234) 


에디스 준델과의 인터뷰를 통해 윌버는 심리치료와 영성의 관계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융과 조셉 켐벨의 문제점을 지적(pp. 226, 269, 270) 

• 윌버의 의식의 9단계를 간단하게 설명 (pp. 272-276) 

• 전초오류에 대한 설명 (pp. 279-) 

• 각 단계 마다 일어날 수 있는 심리적 장애에 대한 치료법 설명(pp. 280-291) 

• 의식의 스펙트럼 각 단계에 고유한 세계관에 대한 설명(pp. 294-296) 


• 명상과 심리치료의 관계 

심리치료는 1-6단계까지의 발달장애로 인해 생긴 심리적 장애를 치료할 수는 있지만 7-9단계까지의 발달을 도와주거나,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장애를 적절하게 다룰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총체적인 발달을 위해서는 심리치료와 명상이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 


“대체로 명상과 심리치료는 영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아도, 목적으로 삼는 단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선이 반드시 노이로제를 제거한다고 할 수 없고, 또 그런 목적을 위해서 고안된 기법도 아닙니다. 더욱이 아무리 보는 자의 감각을 발달시켜도 여전히 노이로제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삶의 감정적인 명이 망가지고 있다 해도, 선은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주지 못합니다. 선은 그런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 선은 노이로제와 잘 지내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pp. 291-292) 

“프로이드는 붓다가 아니고, 붓다 또한 프로이드가 아닙니다.” (pp. 293) 

 


12장. 다른 목소리로 

마침내 트레야는 화학요법의 스트레스로 인해 당뇨병에 걸리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덮친 당뇨병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자신의 영적 진화를 위한 여정을 계속한다. 이 때 트레야는 남성의 영성에 대응하는 여성만의 영성 계발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자신과 뜻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작은 모임을 시작한다. 


• 여성의 영성에 관한 주제 : (pp. 309-312) 

그 모임에서 트레야는 자신들이 원하는 암환자 지원센터(CSC; Cancer Support Community)를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우리는 여성적인 접근을 통해, 암과 싸우거나 암에서 회복하는 것을 강조하기보다 전반적인 삶의 질을 강조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암을 치료하지 못한 것이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pp. 318) 

이 때 트레야는 꿈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 자신의 디먼을 찾는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여자, 예술가, 장인, 행위자가 아니라 제조자,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 작품의 결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커다란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 (pp. 320) 

“나의 것은 조용하고, 형태가 없으며, 부드럽다. 배경적이고, 여성적이며, 보이지 않는다. 몸과 관련된, 대지와 관련된 그것. 그러나 내게는 더욱 실제적인!” (pp. 323) 

 


13장. 에스트레야 

암이 다시 재발되어 뻐, 뇌, 폐로의 전이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 트레야는 자신의 낡은 남성적 자아인 테리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자아인 트레야가 태어났음을 느꼈다. 이 때부터 테리는 자신을 트레야로 불러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를 새로운 부활로 여기게 되었다. 

“남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자. 나 자신을 테리라고 부르지 말자. 트레야가 되기. 장남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기. 그날 밤 나는 경이로움과 흥분에 가득 찬 꿈을 꾸었다. 기억에 남는 유일한 말은 “안녕, 내 이름은 트레야야.”였다.” (pp. 333) 


윌버부부는 델마에서 심령치유사 크리스를 만났고 이 경험을 통해 테리에서 트레야로의 전환이 완성되었다. 크리스가 실시한 심령치유(기 치료)에서 윌버의 기 상태를 읽을 수 있다. 

“한동안 켄의 머리를 진찰하던 그녀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뇌의 양측에 각각 10개의 통로가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에겐 통로가 2-3개 정도이며 아무리 많아야 4개란다. ... 인간 뇌의 양측이 10개까지 열리는 것은 2000년에 한 번 뿐인 일이며, 그녀 이전의 마지막 인간이 바로 붓다라고 했다. 그런데 켄의 뇌에는 한쪽에 10개 다른 쪽엔 7개의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pp. 343-344) 


• 심령치유에 대한 윌버의 태도를 볼 수 있는 부분. 

“나는 그런 종류의 에너지가 있고 때로는 그 에너지의 효과가 꽤 크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소. 단지 나는 그들의 이야기나 이론에 의문을 가질 뿐이오. 그들이 하는 일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의문이 생긴다고.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이론들은 보통 물리학에서 따온 어설픈 이론들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오. 나는 그런 일에 반발할 뿐이오.” (pp. 341) 


심령치유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던 윌버는 크리스에게는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된다. 

“그녀의 끊임없는 황당한 이야기는 트레야와 내가 모든 걸 더 가볍게 보게 만들었다. 크리스의 주변에서는 진실이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모든 것은 하나같이 사실이거나 거짓이며, 똑같이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음에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모든 게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트레야는 병들고 나는 붓다가 되었다!” (pp. 345) 


• 발달의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병리와 높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병리와의 차이점(예: 제 3지렛목 병리 vs. 제 8지렛목 병리) (pp. 348-349) 

  


14장. 어떤 것이 실제로 도움을 주나?

트랜스퍼스널 심리학회지와 뉴에이지에 실린 트레야의 글은 잡지사상 최고의 반응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트레야는 오프라윈프리 쇼의 주목을 받았다. 


• 질병을 바라보는 자비로운 관점 

암에 걸린 어머니에게 트레야는 아내로만 지나치게 충실했던 반면, 자기 자신으로서는 살지 못했다는 이론을 늘어놓았던 트레야에게 암에 걸린 또 다른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너는 어머니에게 이론을 적용하면서, 어머니를 물건처럼 다뤘던 거야.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 자신을 침해한다고 느꼈을 수 있어. 나는 알아. 왜냐하면 나도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친구들이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야.... 그 이론들은 결국 나를 돕는 게 아니라 자기들을 돕는 거야. 난 그 이론들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워.”(pp. 363) 

“때때로 치료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원한다. 내가 자신에게 대안을 제시하거나 관습적인 치료들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 그러나 일단 일정한 치료방법을 선택하면, 그것이 가장 쉽고 매우 안전한 정보일지라도 그들은 나의 정보를 원치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이다.” (pp. 364) 


“당신 자신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단순한 선언이 사실이기에는 삶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그것은 나와 우리를 길러주는 관계의 망을 통제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는 것이다....우기의 현실에 우리 자신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야 옳다. 이것이 진리에 더 가깝다.” (pp. 365-366) 

“죄와 죄책감을 강조하는 유대 기독교에서는 질병을 잘못에 대한 징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현상을 자비심을 키우고 타인에게 봉사할 기회로 삼는 불교적 입장을 선호한다... 진실로 두려워 할 수 있게 스스로 허용한다면 아무리 끔찍한 일이 닥쳐도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질병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질병과 친숙해지는 방법을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이다” (pp. 366-367) 


• 불교에 대한 윌버의 입장 

“나는 딱히 불교도가 아니다. 오히려 베단타 힌두교나 기독교 신비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내가 수행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불교다.” (pp. 356) 

• 불교를 소승, 대승, 금강승으로 나누어 각각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단점과 수행법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pp. 356-362) 

• 자비심을 기르는 통렌 tonglen 수행(암이 악화되자 트레야는 이 수행을 적극적으로 실천에 옯겼다.) (pp. 358) 

 


15장. 뉴에이지 

이 장에는 뉴에이지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다. 이 글은 “우리가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뉴에이지에 실렸다.(pp. 375-385) 


“그들이(뉴에이지) 말하는 원리에 따르면 현재의 삶은 이전 생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다. 하지만 힌두교와 불교에 따르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특정한 업의 관점을 믿지 않는다. ... 남카이 노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업 때문에, 혹은 개인의 이전 조건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서, 외부에서 온 에너지로 인해 생기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과 같이 환경의 일시적인 원인들로 야기되는 질병도 있고 사고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환경과 연관된 온갖 종류의 질병이 있는 셈입니다.“... 당신 스스로 자신의 실재를 창조한다는 신념은... 모두 과대망상, 전능을 포함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유아적이고 마술적인 세계관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고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한다는 주장은 (발달의) 2 단계를 정의하는 자아경계의 불완전한 분화의 직접적 결과라고 본다.” (pp. 380-381) 


“뉴에이지 운동은 마치 얼룩덜룩한 큰 짐승 같다. 거기에는 진정한 신비주의, 트랜스퍼스널 원리에 바탕을 두는 측면도 있다. 진정한 트랜스퍼스널 운동은 항상 전개인적인 요소를 상당 부분 끌어들인다. 왜냐하면 둘 다 비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과 ‘초’ 간의 혼동은 뉴에이지 운동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인  것 같다.” (pp. 382) 


“우리는 전개인적 신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신념들을 초개인적인 것인 양 포용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 곤란할 뿐이다... 실제로는 전이성, 치성, 초이성이라는 3개의 진영이 있다. 사실 우리는 전이성주의자보다는 이성주의자에 가깝다. 상위수준은 하위수준을 초월하면서 포함한다.... 모든 초개인적인 신조들은 논리의 검증을 견뎌내야 한다. 그 때, 오로지 그때서야 논리를 넘어선 통찰이 가능하다. ”(pp. 384-385) 

그러는 사이 트레야는 암이 뇌로 전이되어 더욱 공격적인 화학요법을 받게 되고 이를 위해 두 부부는 고용량 단기 화학요법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얀커병원으로 치료를 위해 떠나게 된다. 

 


16장. 저 새들이 노래하는 걸 들어봐! 

“트레야와 나는 본에서 마지막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나는 이 어려운 시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세이무어에서 통렌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노력했다... 나의 가슴은 트레야를 위해, 나를 위해 산산이 부서졌다” (pp. 395)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본에 도착한 후 일주일 동안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것은 지속적인 것이었고 심지어 그녀는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방문객들이 자주 그 사실을 언급할 정도였다. 그녀는 환희를 내뿜고 있었다.” (pp. 4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영혼은 행복하고 삶을 즐기고 있다. 창밖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고,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끝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올 한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저 새들의 노래를 들어보라!” (pp. 401) 

 


17장.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윌버 부부는 트레야 부모님과 함께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파리로 여행을 간다. 

“독일을 지나 파리에 가까워지자, 내 눈은 봄날의 전경을 탐욕스럽게 담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라임 빛깔의 초원, 시내를 따라 늘어선 새잎이 돋은 나무들과 띠를 두른 들판, 느낌표 모양으로 흩어진 노란 개나리, 꽃을 피우는 벚나무, 가파른 언덕과 강둑을 따라 꽃으로 장식된 포도원, 계곡들을 따라 물결치며 변신하는 대지. 오랫동안 굶주린 내 눈과 영혼은 모든 것을 들이마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었는데, 이제는 봄이, 부드럽고 밝은 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인가?” (pp. 418) 


“이제 나는 봄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가을의 금빛 불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봄은 내 가슴 깊숙이 와 닿는다. 내가 새로운 기회를, 내 삶의 새봄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pp. 442) 


본으로 돌아온 윌버 부부에게 암을 치료하는 긴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 사이 윌버는 트레야를 간호하는데 지쳐 쾨니히스빈터의 드라헨펠스라는 고대의 장엄한 요새로 관광을 간다. 요새의 탑에 올라간 윌버는 다음과 같이 사색에 빠진다. 


“올려다보면 하늘이, 내려다보면 땅이 있었다. 하늘과 땅, 하늘과 땅. 트레야가 떠올랐다. 지난 몇 년에 걸쳐 그녀는 땅에 있는 자신의 뿌리, 자연에 대한 사랑, 몸, 만들기, 자신의 여성성, 기초가 단단한 개방성, 신뢰, 돌봄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있고 싶어 하는 곳, 내 스스로 편안하게 느끼는 곳에 머물렀다. 신화로 치자면 영의 세계가 아니라 관념, 논리, 개념, 상징이라는 아폴로적 세계를 의미하는 하늘에. 하늘은 마음과, 땅은 신체와 관련된다. 내가 느낌을 포착해서 개념으로 연결했다면, 트레야는 개념들을 포착해서 느낌으로 연결했다. 내가 끊임없이 특정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움직였다면, 트레야는 항상 보편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움직였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트레야는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문화를, 그녀는 자연을 사랑했다. 나는 바하를 들으려고 창문을 닫았다면, 그녀는 새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바하를 껐다.” (pp. 434) 

 


18장. 죽은 스승은 아니다! 

다시 볼더로 돌아온 윌버부부는 트레야의 삶이 일년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수용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미래에 살기를 거부하면서 의식적으로 죽음과 함께 현재를 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라. 죽음은 무엇보다도 미래가 없는 조건이다. 마치 미래가 없는 듯이 현재를 살아감으로써, 그녀는 죽음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pp. 444) 


트레야의 이런 삶에 대한 태도는 선사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윌버에게 상기시킨다. 

“유명한 선의 화두가 있다. 한 제자가 선사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죽은 후에는 무슨 일이 생기나요?” 그러자 선사는 “모른다”고 말했다. 놀란 제자가 다시 “모른다고요. 당신은 선의 스승이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 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지만 죽은 스승은 아니다.”  (pp. 445)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가면서 윌버의 수행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트레야와 나는 명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라도 비통함이나 적의감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다. 그렇게 2,3시간이 지나면 돌보는 이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것 같다.... 좋든 싫든, 삶이든 죽음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간에 모든 드러남은 똑같이 ‘일미(一味)’다.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 (pp. 447) 

유방절제 수술을 받은 아내와 함께 살면서 성과 관련해 윌버가 겪었던 심적 갈등과 방황이 독일 나이트클럽에서의 경험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pp. 453-461) 


“여인의 온전한 가슴을 본 건 거의 3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아래를 보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봇물이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내 마음은 육체와 살의 세계, 그것이 의미할 수 있는 것, 암이 육체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 정신을 잃었다.” (pp. 458) 

 


19장. 열정적 평정심 

독일에서 받았던 매우 공격적인 화학요법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이 치료되지 않자 그들은 대체요법의 하나인 켈리-곤잘레스 프로그램을 시도할 결심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췌장효소를 100만 단위로 다량 섭취할 경우, 종양을 해체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주 혹독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트레야는 평정심을 가지고 이를 성실히 수행해간다. 


“나는 카르멜파가 열정을 강조하고 불교도들이 평정심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불현듯 ‘열정’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이해가 매달림,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걸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소유라는 생각에 물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없는 열정, 애착이 없는 열정, 깨끗하고 순수한 열정을 갖는다면 어떨까?... 그때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두개의 단어가 짝을 이루었다. 열정적 평정심. 삶의 모든 측면, 영과의 관계에 충분히 열정적이고, 존재의 심연을 돌보면서도 매달리거나 붙잡지 않는 것. 내게 그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pp. 474) 

“토마스 키팅 신부가 한 말도 생각합니다... “애쓴다는 것은 기도자의 성장에 필요한 수용성이라는 기본성향을 희석시킨다. 수용성을 비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활동으로서 일상적 의미에서의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신지를 기다리는 태도다...” 이런 ‘적극적 비활동’이 내가 ‘열정적 평정심’이라고 생각하는 한 예입니다. 켄은 도교도들이 이것을 ‘위무위(爲無爲)라 표현한다고 말해주었지요.” (pp. 477) 

 


20장. 간호하는 사람 

효소 프로그램이 지속적인 효과를 내고 있었지만 그 해석에 대한 공방이 극에 달해 윌버도 무엇을 믿어야할지 혼란에 빠져버린다. 

“시간이 갈수록 검사결과는 점점 더 극적으로 변했으며 두 진영(정통의학과 대체의학)의 해석은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에 따라 내 마음도 둘로 분열되었다. 하나는 곤잘레스를 믿었고, 다른 하나는 종양전문의들을 믿었다. 어떤 쪽도 확실히 옳거나 그르다는 증거는 없었다.” (pp. 495-496) 


윌버는 트레야가 설립한 CSC 친구들에게 간호하는 사람으로서의 고충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면서도 이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글은 트랜스퍼스널 심리학 잡지에 실려 독자들의 상당한 반응을 얻게 된다. (pp. 499-509) 


“나는 지금부터 환자를 간호하는 일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특히 위험한 문제는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지 약 2,3달이 지나서 찾아듭니다....간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 다루기 어려운 일은 정서적, 심리적 수준에서 쌓이기 시작하는 내적 혼란입니다.... (병간호하는 고된 일이라는) 원래 문제와 더불어 그 문제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가장 좋은 상대는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간호하는 사람들 집단, 즉 간호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지집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어두운 감정, 분노, 적개심 아래에는 대부분 상대를 향한 커다란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간호하는 사람은 오래전에 뛰쳐나가 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노, 적개심, 쓰라림이 출구를 막고 있는 한 그 커다란 사랑이 표면으로 자유롭게 떠오를 수 없다는 겁니다.” (pp. 502) 


“사랑은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므로 간호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존재를 막는 분노, 적개심, 미움, 쓰라림, 부러움과 질투까지도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지집단은 무척 소중한 존재입니다. 지지집단이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간호하는 사람인 당신을 위해서도 개인 심리치료를 받으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의논해서는 안 될 일들이 생길 테니까요.” (pp. 503) 


“훌륭한 간호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 하나는 간호하는 사람은 정서적인 스폰지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언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도와주고, 저녁식사를 만들고, 차를 몰아주는 것 등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모두 정서적인 스폰지의 뒷전에 있습니다. 치명적인 질병과 직면한 사람은 매우 강력한 정서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때로 근 이런 감정들, 즉 공포, 분노, 히스테리, 고통들로 압도되어버리곤 합니다. 이때 당신이 할 일은 사랑하는 이를 붙잡아 주고, 그 사람과 함께하며, 그런 정서들을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는 겁니다. 말해서는 안 되고,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도움이 될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충고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슨 일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거기에 있으면서 그들의 고통이나 공포, 상처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스폰지처럼 말입니다.(pp. 504) 


“나는 언제라도 어려운 상황에서 뛰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병동에 묶어두지 않았으며, 내가 떠난대도 나를 협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트레야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선택을 나 스스로 한 겁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녀가 이 과정을 겪어내는 걸 지켜볼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선택을 잊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나는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나쁜 신념(bad faith)을 보이고 말았으며 진짜가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는 실재가 아니었습니다. 나쁜 신념으로 인해 나는 내 자신의 선택을 망각했고, 거의 즉각적닌 비난의 태도를 보였으며, 또 그 결과로 생기는 자기연민에 빠졌습니다.” (pp. 506-507) 


“공(空)이라는 불교적 개념 또한 내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습니다. 공은 공백이나 허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장애가 없고 자발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비영원성 혹은 무상(anicca)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불교인들은 실재가 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안전이나 지지를 위해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금강경은 '삶은 물방울, 꿈, 영상, 신기루 같다‘고 말합니다. 요점은 신기루를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놓아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매달릴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트레야의 암은 나에게 ’죽음은 위대하게 놓아버리기‘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pp. 507-508) 


이 시기에 윌버는 족첸수행에 깊이 빠지게 된다. 

• 족첸수행에 대한 설명 (511-515) 

“족첸에서의 주된 가르침은 명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상은 상태의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깨달음은 상태의 변화가 아닌 현상태의 성질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족젠 가르침의 대부분은 ‘왜 명상이 효과가 없는가’, ‘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가’, ‘그것은 이미, 그리고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노력은 당신의 발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pp. 512) 

“족첸은 명상을 특별히 추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족첸 가르침에 입문할 때쯤이면 수행의 8단계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 8단계가 명상의 모든 단계임을 지적해야겠다. 그들은 마음의 덕성, 집중력, 알아차림, 통찰력을 기르는데 명상이 매우 중요하고 이로우며, 따라서 명상을 하나의 훈련과정으로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명상은 깨달음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pp. 514) 

“일단 제자에게 그런 자각이 일어나면, 스승은 그 자각을 삶의 모든 측면에 적용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명상을 사용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족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당신의 진정한 얼굴을 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사는 것은 어렵다.’ 내가 수행을 시작한 것은 정확히 ‘그것을 사는 것’이었다.” (pp. 515) 

 


21장. 우아하게 그리고 용기있게

켈리-곤잘레스 효소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뇌 조직이 한없이 팽창하면서 트레야는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트레야는 한두 달 동안 뇌의 팽창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스테로이드 데카드론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효과가 없어질 것이다. 그 마지막 기기에 트레야의 뇌 조직은 박살날 것이다. 날이 갈수록 뇌 기능은 상실되고 고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져 불가피하게 모르핀을 계속 투여해야 할 것이다.” (pp. 533) 


극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자신의 열정과 평정심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녀는 조금도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포기하거나 조금도 물러서려는 의도가 없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제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그녀는 몸을 뒤집어 죽은 척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태도를 통해 내가 깨닫게 된 가장 유명한 공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 제자가 선승에게 물었다. “무엇이 절대적인 진실입니까?” 그러자 선승은 “계속 걸어라!”라고만 했다.” (pp. 534) 


서로에게 깊이 몰입하는 가운데 윌버와 트레야 사이에는 깊은 심령적 유대가 생긴다. 윌버는 트레야가 원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미리 알고 처리를 하면서 트레야를 극진히 보살핀다. 

“아마도 경험에만 의존하는 보통 의사들은 그것이 번개처럼 빠른, 잠재의식적인 논리적 추론일 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례들이 비논리적이고 신기했다. 아니다.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여기 이 집에 오직 하나의 마음, 하나의 가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 내가 그 사실에 놀라야 하는가?” (pp. 534) 


끔찍한 두통을 호소하고 몸 전체를 떨면서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힌 트레야는 마침내 뇌에 있는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받는다. 

“수술로 인해 트레야는 더 이상 예전처럼 볼 수가 없었다. 오른쪽 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전체적 시야가 매우 협소해진 것이다. 그녀는 예술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선 하나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때때로 나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별로예요, 그렇죠?“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pp. 536) 


•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설명(536-537) 

“당신의 어떤 부분이 신성에 참여한다고 믿는다면, 어떤 의미에서든 죽을 수밖에 없는 신체를 초월하는 일종의 영에 접근한다고 믿는다면, 죽음의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신체가 사라진 후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발견할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다. 안 그런가?” (pp. 537) 

뇌와 간에 종양이 퍼져가면서 트레야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일과를 빠짐없이 성실하게 실천해간다. 

“날이 갈수록 폐와 뇌, 간에서 종양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뇌수술의 여파는 트레야의 몸에 끔찍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속했으며 걷는 기구를 이용해 하루에 수 km를 걸었다.” (pp. 538)


• 트레야가 죽어가는 부분(540-542)

“새해 첫날 트레야와 나는 카우치에 앉아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트레야가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여보, 이제 멈춰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더 이상은 가고 싶지 않아요. 효소가 별 효과를 못 내는 것 같아요.“...... “트레야. 하지만 일주일만 더 기회를 가져보자고 말하고 싶어. 만일을 위해서...”......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좋아요. 일주일만 더 해봐요. 할 수 있어요. 일주일만 더.”, 트레야는 맑고 투명하게 빛났다.” (pp. 540)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트레야는 계단조차 오를 힘이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계단 하나도 오르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산소 줄을 떨어뜨리고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안아 올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 여보... 이 정도까진 오지 않길 바랐어요. 여기까지 오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혼자 걷고 싶었어요.“ 트레야는 내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일인 걸, 트레야.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요. 그러니 자, 내 아가씨를 안고 계단을 오르게 해줘요.” (pp. 541) 


“트레야는 약속을 지켰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 모르핀을 거절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각하며 존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종종 머리를 높이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계속 걸어라!”였다. 그녀는 용기와 각성된 평정심을 보여주었으며, 조금도 보태지 않고 말하건대 나는 그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 

“주말 저녁,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갈래요, 여보.” 

그 순간 내가 한 말은 그저 ‘좋아’ 한 마디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2층으로 데려가려고 안아 올렸다. 

“잠깐만요, 여보. 일기를 쓰고 싶어요.” 

나는 그녀에게 일기장과 펜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매우 진하고도 분명한 글씨체로 이렇게 썼다. 

“‘우아함, 그리고... 그렇지, 용기가 필요해!” (pp. 541-542) 


“숭고한 괴테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글귀를 남겼다. ‘잘 익은 것들은 모두 죽고 싶어 한다.” 트레야는 잘 익었으며 죽고 싶어 했다.... 우아함과 용기. 존재하기와 행동하기, 평정심과 열정, 포기와 의지. 완전한 수용과 사나운 결심... 그녀 영혼의 양면성. 일생 동안 그녀가 씨름해온 양면성, 그녀가 마침내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통합한 양면성, 그것이 그녀가 남기고 싶어 했던 마지막 메시지였다. 나는 그녀가 그 양면을 결합하는 것을 보았고, 균형 잡힌 조화로움이 그녀 삶의 모든 면에 스며있음을 보았고, 열정적인 평정심이 그녀의 영혼을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하고 중요한, 지배적인 삶의 목표를 성취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수준 낮은 깨달음이었다면 산산조각 났을 상황에서, 그녀의 성취는 잔인하게 검증되었다. 그녀는 그걸 해낸 것이다. 그녀는 지혜로 무르익은 것이다. 그래서 죽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트레야를 2층으로 데려갔다.” (pp. 542) 

 


22장. 빛나는 별을 위하여

트레야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과 친지들은 그녀의 우아하고 용기 있는 모습을 하나같이 칭송한다. 윌버는 트레야의 영혼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 날 저녁 나는 트레야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 옆에 앉았다. 그녀는 거의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이제 나는 가요.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갑니다.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마지막 해방의 만트라처럼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나는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그녀의 얼굴 전체가 밝아졌다. 그녀는 빛났다. 그리고 바로 내 눈 앞에서 그녀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1시간에 5kg 정도가 줄어든 것 같았다. 마치 몸이 그녀의 의지에 순종하여 스스로 오그라드는 것처럼... 그녀는 서서히 자신의 생명체계를 닫으며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꺼이 떠날 준비를 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그녀는 결심이 확고했으며 매우 행복해했다. 그녀의 마음에 전염된 것일까? 그녀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돌연히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켄. 당신을 떠날 수 없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 역시 흐느꼈다. 지난 5년 동안의 모든 눈물이, 트레야를 위해 강해지려고 참았던 눈물이 모두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 우리 둘을 만들어준 사랑, 우리 둘을 더 강하고 좋고 현명하게 만들어준 사랑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아주 메마르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와 그토록 다정한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여보, 갈 시간이면 갈 시간인 거야.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을 찾아낼 거요. 이전에도 찾아냈잖소. 약속하오, 또 다시 당신을 찾아낼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고 가고 싶으면 가요.” 

“약속하죠?” 

“약속하오.” 

5년 전 결혼식장으로 가는 중에 그녀에게 말했던 것. 나는 지난 2중 동안 그 이야기를 거의 강박적으로 되풀이했다. 나는 다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동안 어디 있었소? 몇 생에 걸쳐 당신을 찾아 헤맸는데. 당신도 알잖아. 당신을 찾아내기 위해 난 용들을 죽여야만 했단 말이오. 그러니 걱정 말아요. 반드시 당신을 찾아낼 거요.” 

그녀는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약속하죠?” 

“약속할게.” 

나는 왜 그런 말이 필요한지 알지도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지난 몇 주 동안 트레야는 계속해서 내게 약속을 끌어냈다. 그것이 그녀에게 깊은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내가 약속만 지킨다면 그녀에겐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이다. 

“나를 찾겠다고 약속했죠?” 

“그래, 약속해.” 

“영원히?” 

“영원히.” 

“그렇다면 갈 수 있어요. 아, 나는 아주 행복해요... 여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아주 어려웠어요. 여보, 너무 힘들었어요.” 

“알아, 트레야. 나도 알아.” 

“이제는 떠날 수 있어요. 정말 행복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행복해요. 켄.” 

그날 밤 나는 그녀의 방에 있는 탁자에서 잠을 잤다. 꿈을 꾼 것 같다. 눈 덮인 산에 천 개의 태양이 빛날 때처럼, 빛나는 흰빛의 거대한 구름이 집 위에서 맴도는 꿈을. (pp. 545-547)  

“트레야가 눈을 감았다. 모든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가슴이 무너졌다. 다 프리 존의 구절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진정한 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완전히 취약하게 열어놓는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훨씬 넘어선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사랑이 당신을 산산조각 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사랑을 모르는 거다. 우리는 둘 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했고 나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되돌아보면 그 단순하고 직접적인 순간에 우리는 둘 다 죽어버린 것 같다.” (pp.  549) 


“나는 그날 밤 트레야의 방에 있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빗방울 하나가 바다로 떨어져 바다와 하나가 되는 꿈을. 어찌보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단순한 영상 같기도 했다. 나는 이 꿈이 트레야가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의미라고, 트레야가 깨달음의 바다와 하나가 된 빗방울이라고 생각했다. 의미가 통했다. 

하지만 나는 곧 이 꿈에 더욱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빗방울은 나였으며 트레야는 바다였다. 그녀가 해방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작 해방되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봉사했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해방된 것이다. 

그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트레야가 자신을 찾아내라는 약속을 내게 끈질기게 요구한 이유였다. 그녀는 단지 내가 자신을 찾길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약속을 통해 그녀가 나를 찾겠다는, 계속 반복해서 나를 돕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일을 회상해보았다. 나는 내가 약속을 함으로써 그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녀가 분명하게 말한 영을 내가 인정하고 깨달을 때까지 트레야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뜻이었다.“ (pp.  557) 

“그 삶에서, 그 몸에서 나는 위대한 다섯 꼭지점의 우주별을, 마지막 해방의 빛나는 별을 보았다. 내게는 항상 그 이름으로 남을 별... 

‘트레야’ 

알로하, 나의 행운, 내 사랑하는 트레야. 나는 언제나 당신을 찾아낼 거야. 

“약속하죠?”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속삭였다. 

“약속하지. 나의 사랑, 트레야.” 

“약속하오.” (pp.  563)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항상 고요하게 깨어있기를!

역자가 두 손 모아.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 - 광우병보다 더 위험한 공장 가공식품

기린원 출판사 / 낸시 드빌 지음, 이강훈 옮김 / 2008년 9월 25일 초판 2쇄 발행 


낸시 드빌 - 건강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보스턴에 거주하며 참먹거리 운동을 펼치고 있다.


8쪽 - 나는 전염병처럼 확산되는 비만이 소비자의 탓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오히려 소비자는 마음을 조종당하고 강제로 음식을 섭취하며 이상한 실험을 당하는, 우리에 갇힌 실험용 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별 저항 없이 우리를 살찌게 하고 병들게 하는 산업체에 우리도 모르게 굴복해온 것이다.

 

92쪽 - 이 책을 준비하면서 나는 백악관에서 몬산토 사로, 국회에서 몬산토 사로, 연방기관에서 몬산토 사로, 그리고 다시 몬산토 사에서 바이오테크 산업으로, 다시 정부 요직으로 옮겨간 수십 명의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액상과당과 아스파탐

 

(액상과당 = 고과당 옥수수 시럽, 설탕보다 싸면서 설탕보다 달고 설탕보다 혈당을 더 빨리 올리는 식품.)

 

43쪽 - 고과당 옥수수 시럽의 약 80퍼센트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효소 발효시키고 균류와 화학물질들을 이용해서 만들어진다. 

44쪽 - 처음 소개된 197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고과당 옥수수 시럽 소비는 100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44쪽 - 고과당 옥수수 시럽의 유입은 동일한 기간 동안 제2형 당뇨병을 47퍼센트, 비만도를 80퍼센트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44쪽 - 시장에 나와있는 어떤 음식첨가제보다도 병적인 허기를 불러일으키는 물질이 고과당 옥수수 시럽이다.

 

46쪽 - 감정 때문에 폭식을 한다는 것은 핵심에서 벗어난 말이다. 폭식을 하는 것은 우리가 인공식품에 중독되어 있고, 우리의 뇌가 여기에 길들여져 신체와 뇌의 요구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것마다 먹어치우게 만들기 때문이다.

 

49쪽 - 수많은 여성들이 임신 중에 탄산음료를 마시고 화학물질과 고과당 옥수수 시럽이 들어간 가공식품을 먹으며, 출산 후 아기에게 주로 분유를 먹이거나 모유 수유를 해도 조기에 중단하고 있으며, 아이들에게 당분 덩어리의 합성 음식을 먹인다. 우리는 유전자에 입력된 대로 온전히 성장한 뇌를 가질 수 없다. 

 

가게에서 음료수를 살 때는 백설탕이 들어갔는지 액상과당이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액상과당의 단 맛은 설탕보다 부드럽고 아이들이 더욱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 맛에 중독되는 경향도 더 강하면서 비만을 유발하는 효과 또한 더 강합니다. 그런데 값은 설탕보다 싸지요. 더구나 액상과당의 원료는 유전자조작 옥수수. 따라서 아이들에게 음료수를 사준다면, 적어도 액상과당이 아닌 백설탕이 들어간 걸 사세요. 우리가 가공식품을 고를 때 이 작은 행동을 하게 된다면 결국 자연식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에 들어간, 이름도 한번 들어보지 못한 수십 가지 화학첨가물들.

그것이 입으로 들어오면 그냥 똥오줌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혈당시스템을 교란시키고, 일부는 우리 몸의 일부가 되고, 또는 세포를 죽게 만들거나 신경세포를 교란시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액상과당입니다.

아이들이 마시는 음료수에는, 그리고 요구르트에도 거의 빠짐없이 들어가니까요.

(어떤 요구르트에는 액상과당과 아스파탐, 둘 다 들어있는 걸 직접 확인했습니다.)

액상과당은 식품첨가물이 아닌 일반 식품으로 분류되지만 (설탕이 식품첨가물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피해야 할 위험한 화학첨가물 못지 않게 해롭습니다. 

 

그리고 합성 감미료, 아스파탐의 문제를 보겠습니다.

제가 일년에 한두 번씩 막걸리를 사먹는데요, 예외없이 아스파탐이 들어있습니다.

최근에 전통주를 만드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시중에 파는 막걸리는 제대로 발효시킨 막걸리에 비해 제조기간이 1/3밖에 걸리지 않는답니다. 그러다보니 맛이 안 좋은데 그걸 감추기 위해서 아스파탐을 넣는 거라고 합니다. 

 

몇년 전에 아는 약사분한테 아이들 먹는 비타민제제를 받았는데 보니까 아스파탐이 들었어요. 비타민제제도 먹이기 싫은데 아스파탐이 들어간 것까지 보니 미련없이 버렸습니다. 아스파탐은 이렇게 의약품에도 들어있습니다. 자, 그럼 조금만 살펴보겠습니다.

  

77쪽 - 아스파탐의 전설은 1965년 12월, ‘서얼’이라는 화학자가 칼로리는 없으면서 설탕보다 200배나 단맛을 내는 물질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칼로리가 없다는 점 때문에 다이어트 관련 제품에 많이 첨가됩니다.)

 

77-78쪽 - 1970년 11월, 단맛을 내는 인공 감미료 시클라메이트가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뒤이어 사카린도 조사를 받게 되었고, 결국 아스파탐이 그 빈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얻었다.

 

78쪽 - 1996년 6월 27일, 식품의약국(FDA)은 아스파탐에 대한 모든 제한을 풀어버렸다. 모든 음식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79쪽 - 엠에스지와 마찬가지로 아스파탐을 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치약, 와인쿨러, 변비약, 비타민, 처방약 등에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79쪽 - 보건복지부는 기침, 뇌종양, 만성피로, 우울증, 불면증, 기억상실, 졸도, 체중증가, 시력저하 등 아스파탐과 관련된 92종의 증상들을 기록했다. 게다가 알츠하이머, 집중장애, 만성피로, 당뇨병, 간질, 파킨슨병 등의 증세를 더욱 악화시키거나 유사 증세를 초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스파탐의 유해성은 아직 논쟁 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분명히 해롭다고 결정나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걸리고, 그 기간동안 판매는 ‘일시중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분명히 해롭다고 결정난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아요.

일부 배상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시장에서 퇴출된 여러 가지 약들처럼 치명적인 부작용은 각자가 부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병들거나 장애인 되거나 죽거나.

 

 

2. 두유

 

125쪽 - 10권의 책을 저술한 캐롤 사이먼타치(앞에서 소개한 책의 지은이)는 과거에는 콩을 장려했지만 지금은 그 주장을 철회했다고 내게 말했다.

 

125쪽 - 임상영양학자인 로빈 마지. “사실 콩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콩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콩에 무슨 짓을 했느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연상태의 콩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가공된 어떤 것을 먹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

 

127쪽 - 연구결과에 따르면 합성 비타민 디-2는 자연적인 비타민 디와 달리 뼈를 약화시키며 동맥경화의 원인이 된다. 유제품 업계는 우유에 디-2를 첨가하다가 유해성을 깨닫게 되자 덜 유해한 디-3로 슬며시 바꾸었다.

 

127쪽 - 어떤 두유에는 카놀라 기름이 첨가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열과 화학적 공정을 거친 불포화지방으로서 여기에는 관상동맥 플라그의 원인이 되는 산화 유리기가 포함되어 있다.

 

127쪽 - 두유를 진하게 하기 위해 카라기닌이라는 물질이 첨가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궤양이나 악성 종양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물질이다.

  

여기서 주장하는 내용은 식품업체에서 파는 가공식품인 두유가 해롭다는 겁니다.

콩이 건강식품이니까 그 콩으로 만든 두유 또한 건강식품이라고 광고를 하지만요.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빠져있습니다.

미국에서 두유는 유전자조작농산물이 아닌 콩으로 만들지만 한국의 두유제조업체에서 원료로 쓴 수입산 콩은 유전자조작농산물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죠.

유전자조작농산물이 아닌 콩조차도 가공식품이 된 것은 몸에 해로운데, 수입산 콩으로 만든 국내 제조 두유는 그보다 훨씬 해로울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유전자 조작 밥상을 치워라

김은진 (지은이) | 도솔 | 2009-02-09



지난 10년 동안 GMO 문제에 매달려온 국내 최고 전문가 김은진 박사가 쓴 국내 최초의 GMO 종합 보고서!


GMO에는 대장균, 살모넬라균과 같은 유해 박테리아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이 GMO를 먹은 가축들이 죽어나간다는 것, 그리고 그 배후에는 몬산토 같은 거대 생명공학농업기업이 괴물처럼 버티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GMO에 관한 거의 모든 국면을 다룬 완결된 구성의 이 책은 GMO 농산물이 가공식품 형태로 우리 밥상에 교묘하게 침투한 사실을 폭로하는 것을 넘어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GMO로 본 우리 밥상의 실태]

GMO는 이미 우리 밥상을 점령하고 있다. 우리 “밥상을 오염시킨 것은 가공식품이고 (…) 이 모든 가공식품들이 바로 GMO 덩어리들이다.”(9쪽) 가공식품은 대부분 수입농산물로 만들어진다. 우리나라는 식용, 가공용, 사료용으로 GMO를 수입하는데,(57쪽) 이는 식량자급률이 25퍼센트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식량자급률을 높여 식량 주권을 되찾는 것이 “GMO의 위험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한다.(9쪽) 


우리나라는 GMO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가공식품은 ‘유전자 재조합’이라는 말로 표시하게 되어 있다. 두부에 GMO 콩을 썼다면 원재료명이나 제품명에 ‘유전자 재조합 콩’이라고 표시한다. 그런데 2001- 2005년 GMO 표시 실태 조사에 따르면, GMO 표시제는 유명무실화되어 있는 실정이다.(95쪽) 그 이유는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규정이 너무 많아 기업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97쪽) 2008년 12월 식약청은 모든 GMO에 대해 예외 없이 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어 2012년이나 되어야 제대로 된 표시제가 가동될 것이다(109쪽).

특히 제조, 가공 중에 고도로 정제하여 DNA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에는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이 있다. 수입되는 콩, 옥수수, 면화, 카놀라(유채)는 국내 식품가공업체들에 의해 식용유로 가공되는데 이 규정 탓에 표시 대상이 아니다. 최근에 소비가 늘고 있는 카놀라유는 전부 캐나다산 GMO로 만들고(148쪽), 참치 캔에 들어가는 무색의 면실유는 GMO 면화씨로 만든다.(106쪽) 더구나 이 같은 유채나 면화는 표시대상 품목이 아니다. GMO 섭취를 줄이기 위해서는 음식을 튀겨 먹는 식습관을 바꿀 필요가 있다.(162쪽) 시중의 간장도 거의 수입산 콩으로 만든 것인데, 식용유와 같은 이유로 표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기업들은 GMO 콩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모든 음료수에는 과당이 들어가 있는데, 이 과당은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다. 그런데 이 옥수수 전분이 바로 GMO이다. 이것들 역시 같은 이유로 표시 대상이 아니다.(106-107쪽) 


이외에도 식약청이 식용으로 승인한 GMO 식품첨가물이 모두 14가지인데, 이들도 표시 대상이 아니다. 이처럼 GMO는 이미 우리 식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한편, GMO는 다른 경로로도 우리 식탁에 오른다. GMO는 대부분 사료로 쓰인다. 따라서 GMO 문제는 축산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 먹는 소, 돼지는 GMO 사료를 먹을 뿐 아니라 GMO로 만든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자란 것들이다. 축산업자들은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성장호르몬을 이용해 가축을 1년 이내에 키워 내다 판다. 유럽에서는 소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고 자란 미국산 쇠고기를 먹은 아이들에게서 2차 성징이 일찍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해 금수 조치를 내렸다가 WTO에 제소한 미국에 패소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일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나 돼지에게 GMO 사료를 먹였다거나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힌 것은 표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152-156쪽)


아이들이 즐겨 먹는 돈가스나 햄버거는 GMO의 결정체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고기는 물론 기타 부재료들이 대부분 GMO를 원재료로 하는 것들이다.(157-159쪽) “2002년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암연구소인 웰컴/시아르시연구소는 (…) GMO의 알레르기 유발 문제에 관한 연구결과 보고서에서 이유기의 어린아이들이 GMO가 들어간 이유식을 먹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167쪽) 어른들보다 면역 기능이 약한 아이들에게 GMO는 더 치명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농업진흥청과 대학교, 종자회사 등이 GMO를 개발하고 있는데, 벼, 밀, 감자, 호박, 고추, 마늘, 배추, 오이, 콩, 참깨, 들깨, 양배추, 토마토, 상추, 수박, 사과, 감귤, 인삼 등 우리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될 작물들이 그 실험 대상이어서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165-166쪽) 


GMO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

“GMO의 안전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만드는 방법부터 알아야 한다. 첨단과학이므로 굉장히 그럴듯해 보이지만, 만드는 방법은 반생물적이다.”(25쪽) 예를 들어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제초제 내성 GMO를 만든다고 하면, 그것이 옥수수든 감자든 해당 식물세포에 제초제에 견디게 하는 기능이 있는 유전자(대부분 미생물에서 분리해 냄)를 집어넣는 방법을 쓴다. (그 유전자는 다른 생물체에서 빌려온 것이므로 결국,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생물체가 아닌 정체불명의 인공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다. 이 생명체가 생태계에 옮겨져 농작물로 재배될 경우 주변 생태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131-136쪽, 194쪽 참고].) 


그 특정 기능 유전자를 식물세포에 집어넣는 방법은 그야말로 불결하고 반생명적이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아그로박테리움법의 경우는, 먼저 대장균이나 살모넬라균과 같은 유해 박테리아에서 분리해낸 플라스미드(항생제 내성 정보를 갖고 있는 유전자로서 나선형이 아닌 원형 구조를 갖고 있음)에 유전자를 끼워 넣은 다음 아그로박테리아처럼 스스로 식물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박테리아에 넣어 식물세포에 침투시킨다. 이 식물세포를 항생제가 녹아 있는 액체 속에 집어넣으면, 항생제 내성 정보를 지닌 플라스미드와 결합한 그 유전자가 식물세포에 자리를 제대로 잡은 경우 그 식물세포는 살아남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항생제 액체 속에서 죽고 만다. 이 과정을 통해 제초제 내성 유전자를 지닌 GMO가 성공적으로 얻어진다. 유해 박테리아에서 항생제 내성 정보를 가진 플라스미드를 분리해 이를 특정 유전자와 결합시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전자의 안착 여부를 검사하는 수단으로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이용하는 것인데, 이 유전자가 GMO 섭취를 통해 인체에 들어와 활성화된다면 세균에 감염되었을 경우 항생제가 듣지 않아 사망하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25-27쪽)


GMO의 태생적 한계와 예측불가능성

위의 예처럼 성공한 GMO들은 삽입 유전자는 같아도 그 유전자를 삽입한 위치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특정 유전자가 콩이나 옥수수 등의 작물에 들어가서 제구실을 할 수 있는 자리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여기서 GMO의 태생적 한계가 드러난다. 블루길이라는 외래 어종이 국내에 유입되어 처음에는 한곳에만 머물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나라 전역의 저수지를 점령했듯이 삽입 유전자도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삽입 유전자는 콩이나 옥수수의 원래 유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자리가 따로 없다. 단지 인위적으로 자리를 만들어주면 마치 제자리인 양 꿰차고 앉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인데, 과연 그 자리에 얌전히 있을지, 블루길처럼 마구 설치고 다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말없는 물고기들이 블루길에 당하는 것은 낚시꾼들 덕에 금방 발견했다지만, 콩이나 옥수수와 같은 식물의 경우 사람들이 그 만행을 알아채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 마치 광우병이 발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말이다. (40-41쪽) 


국내에도 GMO가 시험 재배되고 있다

“일단 새로운 종자가 개발되면 과학자들은 그것을 시험 재배해보고 제한된 조건 속에서 얻은 결과를 가지고 종자를 보급하게 마련이다.”(57쪽) 저자는 본인이 직접 방문한 몇 군데 국내 GMO 시험재배장의 실태를 고발한다. 농촌진흥청 시험재배장의 경우에는 격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GMO 꽃가루가 근처의 비슷한 식물에 날아가 교차 수분될 우려가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농촌진흥청 등에서 벼, 감자, 고추, 들깨 등 우리가 주로 먹는 농작물들이 GMO로 개발되어 노지에서 시험 재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모른다는 사실이다(60쪽). 


제주대학교(골프장용 제초제 내성 GMO 들잔디 재배), 고려대학교 등 대학에서도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시험 재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격리가 되지 않으면 인근 생태계로 퍼져나갈 위험이 크고, 인도처럼 인근 농지에서 200미터 이상 격리를 한다 해도 꽃가루가 퍼져나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2006년에 미국에서는 GMO 쌀 사건이 발생했는데, 2000-2002년 안전성 평가를 위해 시험 재배되던 것이 퍼져나가 4년 만에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스코틀랜드 작물연구소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GMO 작물이 심어진 곳에서 26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벌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한 적이 있다. 유전자 이동은 생태계 내에서 너무도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다.”(117쪽)이런 사례들을 통해 GMO의 안전성은 연구 ? 개발 단계에서부터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61-64쪽). 


GMO의 유해성을 드러내는 사례들

GMO 면화로 유명한 인도에서는 2006년에 GMO 면화밭에서 기르던 가축들이 면화 줄기를 먹고 떼죽음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소식은 2007년과 2008년에 국내에서도 TV로 방송이 되었고, 2008 5월 전분당협회가 물엿·포도당·과당 등 식품첨가물 제조용으로 미국산 GMO 옥수수를 수입한 것과 관련해 논란이 되었다. 전분당협회는 식약청의 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반론을 제기했다. 즉 미국에서도 소, 돼지, 닭이 GMO 옥수수나 콩을 사료로 먹고 있지만 괴사했다는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다. 인도 농가에서 기르는 가축은 미국처럼 식용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므로 최대한 빨리 키워 GMO의 영향이 나타나기도 전에 바로 잡아먹는 미국의 가축들과 달리 더 오래 살기 때문에 GMO를 장기간 섭취한 결과가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84-86쪽) 


“1999년 5월 미국의 코넬대학교에서는 살충성 GMO 옥수수인 Bt 옥수수의 Bt 유전자가 원래 죽이려고 했던 나방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군주나비의 유충까지도 죽인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 발표는 2000년 8월 아이오와주립대의 연구 발표에 의해 재확인되기도 했다”(117쪽). 세계 최초로 GMO의 위험성을 알린 영국의 푸츠타이 박사는 1998년 유전자 조작 감자의 안전성 실험을 했다. 그 감자는 렉틴을 강화한 것으로서, 그는 이 감자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했다. 이 감자를 쥐에게 먹인 결과 면역 체계에 이상을 가져오는 등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가 소속된 로웨트연구소는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푸츠타이 박사는 해고되었다.(120쪽)


과학자, 기업, 정부 간의 결탁

푸츠타이 박사는 GMO 문제의 또 다른 중요 측면을 건드렸다. 그는 2007년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출판하는 한 계간지의 부탁을 받아 GMO와 관련해 과학자들이 보이는 비양심적 처신을 주제로 글을 썼지만 결국 실리지 못했고, 편집 부주간은 멀리 인도로 발령이 나게 되는 일련의 사건을 겪는다. 그가 쓴 글은 과학자들이 어떻게 기업이나 정부와 결탁하는지, 그로 인해 실험 결과가 어떻게 왜곡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122-123쪽) 과학자들이 GMO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유전자 삽입 과정에서 4만 번 정도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므로 그에 맞는 실험실과 재정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과학자들은 학교, 기업, 정부 등의 지원을 등에 업고 연구에 임하지만, 그 대가로 뭔가를 해주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연구결과를 왜곡하고 학자적 양심을 속이는 일이 발생한다.(216-218쪽) 


미국 내에서 재배하는 GMO 옥수수가 옥수수의 원산지인 멕시코의 토종 옥수수를 오염시킨 사건이 일어나자 버클리대학교의 두 연구원이 2001년 이를 《네이처》지에 보고하지만 그들의 논문은 결국 실리지 못했다. 《네이처》지의 광고주인 노바티스 사의 입김 때문이었다. 이후 미국의 여러 잡지들은 과학자들을 주무르는 기업, 특히 농생명공학기업의 음모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기업의 자금 지원을 받는 학교가 기업에 유리한 연구 결과를 내놓는 것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와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135-137쪽)


저자는 2008년 5월 독일 본에서 열린 바이오안전성당사국 총회에 참석했다가 보게 된 과학자들의 비양심적인 행태를 고발한다. GMO를 옹호하는 과학자들은 회의석상에서 안전성 문제는 논외로 하고 오직 GMO가 식량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만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GMO는 지금까지 식량 증산 효과가 없었다. 어느 농민도 생산성 향상을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제초제나 살충제 절약 효과만이 있을 뿐이다. GMO를 개발한 과학자와 기업만이 아프리카처럼 식량문제가 심각한 곳에서 GMO 작물이 구원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미국은 콩 재배 면적의 94퍼센트가 GMO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콩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오히려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줄어든 경우가 많다.(75-76쪽, 185-186쪽) 


한편, 정부와 농생명공학기업이 얼마나 깊은 유착 관계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미국 정부와 몬산토 사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저자가 나열한 사례들을 보면 몬산토 연구원이 미국 식품의약청(FDA)으로 옮겨 몬산토 사의 보고서를 검토하는 등 경악을 금치 못할 사례들이 부지기수다(257-261쪽).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서울대학교 작물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이 정부, 대학, 기업 삼자의 결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약 10년간 10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자본을 지원 받아 약 50개의 GMO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17개 대학과 기업의 GMO 연구개발도 지원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안전성 평가에 관한 연구는 단 2개뿐이다.(262쪽)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자면, 제주대학교와 공동으로 제초제 내성 잔디를 개발해 특허를 받은 금호환경생명과학연구소는 몬산토와 결탁한 금호석유화학의 산하에 있다가 전남대로 이관되었고, 이때 연구소 소장은 소속을 제주대학교로 옮겨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제주대학교의 유전자 조작 잔디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141쪽).


GMO의 대안: '토종 씨앗 지키기'

농생명공학기업들은 이처럼 정부의 권력과 과학자들의 투항을 등에 업고 종자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종자의 70퍼센트는 서울종묘, 흥농종묘, 중앙종묘 등 국내 종자회사를 인수한 신젠타와 몬산토가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시장 점유율 20퍼센트를 차지하는 농우종묘는 토종 종자를 지키겠다는 기존 입장을 버리고 농우바이오로 개명한 뒤 GMO 종자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경기도 여주 근방에서 바이러스 저항성 수박과 고추를 시험 재배하고 있다.(290-291쪽)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우리도 인도처럼 종자상에 가면 GMO 종자 외에는 일반 종자를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인도의 반다나 시바는 세계적인 GMO 반대 운동가로서 자국의 토종 종자를 발굴하고 재배하여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고 있다.(249, 289쪽) 우리도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토종 종자 전문가로 잘 알려진 안완식 박사를 주축으로 ‘토종씨드림’이라는 모임이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335쪽). 저자는 이 모임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운동은 저자가 6년에 걸친 “대안 없는 GMO 강의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느끼던 차에” 이르게 된 희망의 대안이다(333쪽). 



관련 기사를 소개합니다.  

김은진 교수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콩의 98%가 GMO이지만, 중요한 것은 나머지 2%의 재래종 Non-GMO 콩을 자국민이 소비하고, 98%의 GMO 콩은 모두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고 맞받아치는 한편 “동물실험 역시 최소 10여 년은 지나야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데, 2~3년만 지나면 다 잡아먹을 텐데 어떻게 확인이 가능한가”라고 말해 방청객들의 야유와 함께 공분을 샀다.

http://www.thinkfood.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874 

 

김은진 교수는 유전자조작농산물 반대운동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야유를 보낸 저 방청객들은 식품제조업체 사장님들이겠죠? 

저를 비롯해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은 이런 것일 겁니다.

유전자조작농산물이 정말 해로운지, 해롭다면 어느 정도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적어도 유해성이 의심된다면 일단 식품으로 쓰이는 것을 보류해야 되지는 않겠는가 말이죠. 

 

수은을 넣어 만든 백신제조업체는 극미량의 수은이 인체에 별 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내놓은 자료를 보여주면서 소비자한테 믿으라 하면,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마찬가지로 유전자조작농산물이 그동안 제대로 검증받지도 않은 채 이미 우리 식탁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위험성이 확실하지 않으니 ‘GMO’ 표시를 하지 말라구요?

  

위에 나온 카놀라유는 유채씨 기름입니다.

유전자조작농산물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옥수수, 콩, 유채라고 합니다.

옥수수는 가축의 사료로 쓰이니까 육식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오고 있구요, 콩도 간장과 된장, 그리고 햄과 소시지 같은 데 쓰이기 때문에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콩기름, 옥수수기름이 식용유로 쓰이는 건 아시죠? 카놀라유도 그렇구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음식들

중앙북스 출판사 / 캐롤 사이먼타치 지음, 석기용 옮김 / 2009년 7월 30일 초판 3쇄 발행

 

캐롤 사이먼타치 -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저자는 임상영양학자로 미국의 저명한 강연자이자 교육자이다. 현재 테네시 녹스빌의 헌팅턴 건강과학대학 외래교수인 저자는 음식이 사람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과 가공식품의 유해성을 널리 알리고, 그 해결책을 찾는 일에 온 삶을 바치고 있다. 지금껏 수많은 저서와 교육프로그램을 집필하였으며, 특히 『당신의 지방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와 『여성의 건강한 심장을 위한 지침서』는 이 책과 함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음식들』은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되어 정크푸드(쓰레기 음식)를 대량 생산하여 판매하는 각종 가공식품 제조회사들의 야만성을 폭로하고, 가공식품의 유해성분을 분석해 건강한 식단과 비교하고 있다. 또한 태아부터 유아,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아이들의 두뇌와 정서를 밝고 맑게 키울 수 있는 방법들을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식단을 바꿔 건강을 되찾고 정신적 삶도 변했다는 내용의 수많은 편지를 받기도 했다. (이하 생략)

  

41쪽 - 무언가 먹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체험이며, 말 그대로 육체와 정신을 살찌우는 일이었다. 

  


1. 임산부의 식사가 아이의 평생 정신건강을 결정한다 


84쪽 - 인간의 일생에서 두뇌 발달의 가장 결정적인 시기는 임신 28주째가 시작되는 임신 3기부터 출생 후 24개월까지의 기간이다. 

87쪽 - 임산부와 성장기 유아의 식사는 어린이가 향후 일생에 걸쳐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하는데 매우 근원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88쪽 - 임산부가 본인과 아기에게 충분한 양의 지방, 단백질, 반수화물, 비타민, 미네랄, 그리고 수분을 섭취하지 못할 경우 아기 두뇌 발달의 일부분은 미완에 그치게 될 것이다. 어떤 구조는 만들어지지 않게 될 것이고, 어떤 기능은 작동하지 않게 될 것이다. 


99쪽 - 우리는 영양소가 죽어버린 음식을 먹는다. 자라나는 아기들의 두뇌를 발달시키는데 필요한 구조적인 재료들이 결여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아기들이 왜 그렇게 심하게 울거나 혹은 그렇게 침착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지 궁금해 한다. 


102쪽 - 인공식품은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에서 두뇌에 영구적인 상처를 입힌다.

  


2. 아기의 정서장애, 엄마의 영양이 좌우한다

 

115쪽 -모유의 성분은 모유를 수유하고 있는 도중에도 순간순간 바뀌며, 하루 중에도 시간마다 달라져서 아이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게 된다. 모유에 들어있는 아미노산의 균형은 두뇌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아미노산을 선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그 점은 젖소 우유에 근육과 지방조직의 성장을 촉진하는 아미노산의 함량이 높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116쪽 - 모유에는 모유의 소화를 쉽게 하는 활동성 효소들이 함유되어 있다. 반면, 분유에는 이런 효소들이 결여되어 있다. 

120쪽 - 모유 대신에 합성 분유를 먹었을 때... 두뇌 건설에 필요한 기초 재료가 없어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125쪽 - 연구결과는 젖병으로 자란 아이들이 엄마 젖을 먹은 아이들에 비해 학업에 뒤처지고 더 많은 정서장애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기가 모유로 자라느냐 젖병으로 자라느냐 여부는 아기의 일생에서 지능의 차이를 만든다.

 

 

3. 어린이의 똑똑한 뇌는 음식에 달려있다 

 

186쪽 - 우리가 가장 흔히 먹는 식품은 밀과 유제품이다. 그런 식품을 우유, 치즈, 버터, 파스타, 시리얼, 케이크, 쿠키 등의 형태로 날마다 먹는다. 우리가 보는 두번째 문제는 몇몇 영양사들이 서구인의 식단에서 가장 알레르기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한다는 것이다.

 

191-192쪽 - (어느 아홉 살 어린이) 검사를 통해 우리는 아이가 밀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이의 식사에서 쌀을 제외한 모든 곡류를 제거하자, 늘 문제투성이이던 아이는 며칠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성적도 나아지고, 교장실과도 안녕을 고했고, 친구도 사귀었으며, 유쾌하고 상냥한 아이로 돌아왔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 아이는 학교에 갔다가 분노를 참지 못하는 예전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싸움을 해서 교장실로 불려갔던 것이다. 놀란 어머니는 오랫동안 다그쳤고, 마침내 아이는 점심으로 휘트씬 크래커를 먹었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그것이 아이를 폭죽처럼 터뜨려버린 것이다.

 

198쪽 - 나는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관해 좀더 책임감을 갖게 되길 권한다. 당신은 부엌에서 당신에게 주어진 올바른 권위를 지켜내야 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시종일관 두뇌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가공식품의 유해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뇌 건강은 학습능력뿐만 아니라 인내심, 행복감, 안정된 정서 같은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뇌 건강을 위해 질 좋은 지방이 풍부한 식품을 충분히 먹어야 한다고 여러 곳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한이 자급할 수 없는 건 경제개발 전략만이 아니라 가장 큰 무역 상대인 미국에게 오랫동안 의존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남한이 아시아의 경제적 문화적 강대국으로 빠르게 변화하며 나타난 농업의 역할, 식량안보, 사회운동을 조사한 첫번째  글이다. 이 글은  어떻게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단 50년 만에 부유한 나라가 되면서 가장 혜택을 입지 못한 것이 농민과 농촌사회라는 관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다.



인구 1000만 이상(수도권에 2450만)이 사는 남한의 수도 서울을 걸어다니면 많은 식당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외식은 식품이 싸고 풍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늦게까지 일하기 때문에 집에서 먹는 것만큼 일상적이다. 서울은 한국의 심장이다. 그곳은 삼성, 현대, 대우, 엘지와 같은 대기업과 정부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유행에 밝고, 현대적이고, 빠르게 세계의 코스모폴리탄의 하나가 되었다. 한국 음식은 또한 특히 미국에서 대중적인 민족요리가 되었다. 사실 남한 정부는 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문화적 위치를 바탕으로 활발히 한국음식을 해외시장을 겨냥하여 홍보하기 시작했다.


한국 요리는 이웃한 중국과 일본과 다르기에 국가 자존심의 근원이다. 당신은 남한에서 수백 개의 케이블 방송을 휙휙 돌려봐야 한다. 거의 모든 다양한 방송이 남한의 많은 지역적 요리법에 관한 것이다. 가을에 내가 캐나다 몬트리올을 방문하여 나의 오래된 거리를 걸었을 때, 나는 한국식당이 내가 살던 곳에서 몇 블럭 떨어져 문을 연 것을 보았다. 식당의 이름은 한국의 옛 음식 전통만이 아니라 이웃한 두 거인의 나라의 지배에 대한 저항을 뜻하는  “5000 Years”이었다. 한국 요리는 그 나라의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 주변 제국으로부터 독립국으로 살아남기 위한 빈번한 투쟁을 상징한다. 그러나 남한은 거의 어떠한 식량도 기르지 않는다. 안보 차원으로 자급하는 쌀을 빼고 한국은 90%의 식량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남한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빠른 산업화를 겪은 한 나라이다. 1950년에 인구의 70~80%가 농업 부문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늘날 8% 이하의 인구가 농업 부문에서 일하고, 남한은 세계에서 가장 도시화되고 현대의 산업화된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 지난 몇 년 전에 남한은 중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두바이 등과 같은 나라와 함께 식량안보라는 명목으로 토지를 수탈하던 일로 관심을 받았다. 어떻게 식민지에서 벗어나 가장 가난했던 이 나라가 세계에서 최근 가장 큰 토지수탈자의 하나가 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국내 농업 부문에 대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은 식민지, 빠른 경제개발, 농촌경제에서 산업경제로 빠르게 전환을 이루어 현저히 대조되는 흥미로운 연구대상이다.



소농의 생계와 토지변형은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다. 본질이 밝혀지는 결정적인 순간은 소농이 부패한 정부관료와 무거운 세금에 반대하여 일으킨 1894년 동학혁명이다. 그혁명은 조선 정부와 지배적인 토지소유 계급의 요청으로 건너온 일본군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되었다. 일본에 의해 조선의 모든 직업이었던 소농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일본의 유일한 관심은 조선을 식량과 그들 제국의 야심을 채울 다른 생산물의 공급지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일본인 관리자들은 지배적인 토지소유자 계급과 연합했다. 1920년대까지 조선에서 소농의 대부분은 수확의 50%까지 떼이는 소작인으로 전락했다.


조선에서 소작농은 편안히 앉아 있지 못했고, 일본인 식민지 개척자는 농경지를 사들여 조선에 여전히 존재하던 매우 계층화된 봉건사회 구조를 강화시켰다. 한국의 소농은 일제와 그 협력자들에게 대항해 수없이 들고 일어났다. 사실 소작농은 2차대전이 끝난 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운동을 이끌었다. 소련이 점령한 북쪽에서 과감한 토지개혁이 1940년대 말에 이루어졌다. 9000평 이상의 모든 농장은 몰수되었고, 마을의 소농위원회가 소농에게 토지를 재분배했다. 이러한 토지개혁은 이승만이 이끈 남한 국수주의자의 보수적인 정권을 위협했다. 그러나 미국 군정은 거대한 소농 봉기에 대한 두려움(그리고 적화통일을 이유로)으로 그들이 소유한 토지에 대한 개혁을 시행하라고 남한 정부를 압박했다. 남한에서 토지개혁은 북한처럼 포괄적이 아니라 소농의 불만을 달래는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중요한 개혁에도 남한은 한국전쟁 이후 농업 부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 농촌 인구는 국가의 아찔한 산업화를 위한 값싼 식량과 노동력의 원천으로 취급되었다. 토지개혁은 소농의 운동을 진정시키는 데 이용된 반면, 농업에 대한 투자는 적절한 생계수단을 제공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몇몇 기근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농민은 빈약한 삶을 자수성가하고자 노력했고, 1960년대 이후 젊은 세대의 대부분은 도시로 이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권이었다. 젊은 여성들은 시골을 떠나 노동력 착취의 현장에서 끔찍한 조건을 견디며 그들의 일가친척에게 돈을 부치기 위해 일했다.


남한 농촌이 제공하는 값싼 식량과 노동력은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가 산업혁명을 이룬 결정적인 요인이다. 반면 시골은 방치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은 농사를 퇴보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본다.  차이는 아주 놀랍다: 한편으로 남한의 도시 중심가는 공식적으로 "반짝이는 한국"의 상징이고, 다른 한편으로 모험적으로 귀농하는 일은 농촌 지역사회의 어려운 삶이라 본다. 남한에서 평균 농민은 구식 기계로 약간의 땅을 일구는 50세 이상이다. 빈곤은 모든 곳에서 발견되고, 농사짓는 삶은 경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많은 농촌의 한국인은 시골을 떠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성들과 결혼한다. 농촌 지역에서는 세 가구 가운데 하나는 현재 한국인과 외국 여성의 가정이다.


농민과 소비자 모두는 한국에서 주류인 개발논리에 맞서 대안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종류의 삶을 꿈꾸고 있다: 사회적으로 옳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며, 농촌 생활의 역사와 전통에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귀농운동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유기농업과 식량주권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협동조합을 세우고  있다. 우리는 다음 기사에서 이러한 현상의 일부를 분석할 것이다. 이번 시리즈에서 다음 기사는 식량위기에 대한 한국의 대응을 살필 것이다.


By Anders Riel Muller


남한의 개발 모델은 어떻게 이 나라가 50년도 안 되어서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경제적 강대국의 하나가 되었는지 종종 외부인을 놀라게 한다. 그 모델은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적, 환경적 비용을 지불한 빠른 산업화의 가장 좋은 사례로 일컬어졌다.  분명 이러한   관찰자는 서울 외곽으로 가보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인간적, 환경적 비용은 당신이 도심에서 더 멀리 나서면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은 1980년대 말 마침내 연이은 정부에서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더 많든 적든 똑같은 경제 궤도를 밟아갔다. 역동적이고, 세계적이고 첨단기술 사회인 듯한 한국의 공식적인 인상은 대개의 방문자와 주류 한국인들이 보는 것이다.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정책은 한국을 현대사회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한국의 농촌은 이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증가하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한 농지에 대한 압력은 주요한 쟁점이다: 농지는 사상 최저로 줄었다(farm land). 도시와 산업개발을 위해 토지에 우선순위를 매긴 최근 사례는 40년 뒤 마침내 실현된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401㎢ 사업은 쌀 생산량을 위한 농지를 늘리고자 1971년 제안되었다. 2011년 3월 정부는 이미 한국의 쌀 생산은 충분하다는 논거를 기반으로 그 땅의 오직 30%만 농지로 보존하고 나머지 70%는 주거용, 산업용, 상업용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러한 논거는 쌀 생산을 위한 해외기지를 얻으려고 정부 스스로 개입하는 데에서 극명하게 대조된다(landoverseas). 한국의 경관을 바꾸고 있는 다른 주요한 사업은 4대강 사업이란 이름의 어마어마한 물 사업이다. 정부는 농민과 도시지역이 똑같이 혜택을 보고 심지어 UNEP에서 좋은 기후 적응의 사례로서 갈채를 받았다고 이러한 거대한 물길 복원 사업을 홍보했다. UNEP는 나중에 한국의 환경단체들의 강력한 비판을 받고서 그들의 지지를 철회했다. 비판자들은 농지를 더욱 감소시키고, 수많은 문화역사유산(heritage)을 파괴한다고 역설한다. 두 사례는 정부가 도시지역에 집중하고 농민과 농촌주민의 필요와 요구는 무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농업의 위기에 기여하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은 주로 도심지의 식습관 변화이다. 서구식 먹을거리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즐기게 되었다. 한식에 대한 자부심은 남아 있지만, 서구식 요리법은 부와 세계적 생활방식의 상징이다. 유제품, 빵, 고기는 수요가 높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빵집은 골목마다 있다. 한국 농업생산과 한정된 토지의 양이란 구조에서는 이러한 많은 생산물을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치즈와 고기의 생산은 훨씬 많은 자원이 집중되고, 이렇게 하여 토지, 물, 사료에 대한 수요를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농촌에 있는 가족을 찾아갈 때, 고기는 여전히 가끔 먹는 호사로 여겨진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주로 구워 먹는 고기를 먹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가 어려울 정도다. 



식량위기에 대한 ‘해결책’: 시장 개방과 해외기지 확대


시간이 지나면서 산업개발과 인구압이 토지의 수용력 너머로 한국의 식량 수요를 밀어붙였다. 2008년 식량 가격의 위기 이후, 남한은 해외의 농지를 얻으려는 중국, 일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나라들 사이에서 가장 적극적인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farm land acquisitions). 최근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해외의 농지를 확보하여 세계 농산물 시장의 투기(speculation)에 대응해 나라를 보호하고 식량 공급을 안정적으로 하려는 남한의 시도를 독려했다. 이러한 점은 한국이 20세기 초반 일제에 강점되며 한국의 소농들을 엄청난 이주와 빈곤에 빠지게 만든 토지수탈에 저항했던 역사를 고려하면 흥미롭다. 


이렇게 토지를 얻는 곳은 대부분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다. 토지 구매의 자세한 사항은 접근하기 어렵고, 그러한 거래의 대부분은 수단처럼 인권 침해가 의심스러운 나라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남한의 가장 큰 식품기업의 대부분은 종종 협상을 돕는 등 남한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한국 농촌공사와 같은 공기업이 직접 이러한 농지를 소유하고 경영한다. 가장 유명한 토지 거래는 2008년 발표된 남한의 대우가 마다가스카르의 농지 130만 헥타르(경작할 수 있는 땅의 거의 절반)를 99년 동안 임대한 일이다. 그 제안은 마다가스카르에서 광범위한 사회불안을 불러일으키고 대통령인 Marc Ravalomanana이 떨어지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새로 선출된 반대편 지도자는 서둘러 토지 거래를 뒤집어버렸다(land deal).


그런데 남한이 자급하지 못하는 것을 경제개발 전략의 탓이라고만 할 수 없고 -곧 도시 인구와 농업을 두고 산업 개발을 우선시하는- 가장 큰 무역 상대인 미국과 장기적으로 유대 및 의존한 결과이다. 미국 식량 수입에 대한 남한의 의존성은 한국전쟁의 종료로 거슬러올라간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반도는 연합군과 공산군 사이의 엄청난 전투로 폐허가 되었다. 특히 미공군은 군인과 민간인을 목표로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퍼부었다. 사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내내 그러했듯이 한국전쟁에서도 네이팜탄을 더 많이 사용했다. 그 전쟁은 한국을 폐허로 만들었고, 이 나라는 전쟁이 끝난 뒤 오랫동안 미국의 막대한 구호식량을 받았다. 미국의 식량원조는 처음에는 가난하고 굶주린 수백만 전쟁 피해자를 먹여 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미국의 식량원조는 곡물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이에 따라 남한의 농업 부문은 침체되었다.


이 글에 썼듯이, 그 마무리는 미국과 남한 사이의 자유무역협정이다. 협상은 오래전인 2007년 시작되었고, 남한에서 광범위한 시위의 주제가 되었다. 특히 2007년 미국산 소고기 수업에 반대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US beef). 남한이 2005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이후 한국의 농민은 값싼 수입품으로 농촌 생계가 점점 어려워지는 압력을 느껴왔다(rural livelihood). 미국 농무부는 자유무역협정의 승인이 한국으로 수출되는 식량을 상당히 늘릴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미국 농산물을 위한 다섯번째 큰 시장인 한국으로 이미 50억 달러를 넘게 식량을 수출하고 있다. FTA가 체결됨에 따라 전통적으로 남한의 농업이 가장 보호하던 쌀을 포함하여(protected area) 거의 모든 농업 무역 관세는 사라질 것이다.



파도와 싸우기


해외의 토지 취득과 자유무역협정은 기업의 이윤, "식량안보"와 "현대의" 강대국으로 한국을 확립하려는 끈질긴 추구라는 명목으로 전국 방방곡곡 농촌사회의 관 속으로 손톱을 더욱 깊숙이 밀어넣을 것이다.


그러나 농민은 강력히 맞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나라 안에서만이 아니라 점점 더 국제 무대에서 들려주고 있다. 남한 농민의 역경이 처음 국제적으로 조명을 받은 것은 2003년 칸쿤에서 열린 장관회의에서였다. 협상장 밖에서 농민활동가 이경해는 울타리에 올라가 WTO의 소농에 대한 폭행에 항의하는 수천의 시위대와 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후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은 세계의 식량 체계에 대한 신자유주의 무역정책과 농산업 지배에 대항하는 세계적인 투쟁에서 강력한 목소리가 되었다. 


또한 소비자는 점점 한국의 개발노선이 농민과 농촌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23만 이상의 소비자 회원과 1700의 생산자가 함께하는  생태적인 지향의  협동조합 한살림은 농민과 도시 소비자들의 직접적인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일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개발노선에 환멸을 느낀 도시와 농촌의 활동가들이 급속한 산업화와 끊임없는 부의 추구로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문화, 역사, 토지, 음식에 대한 연결을 회복하고자 그들 스스로 농촌 지역에 설립하고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에 시작했다(recover the connection).


남한은 근대화와 세계화를 추구하며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 역사, 문화를 존중하는 대안적인 방법이 있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출처: http://www.foodsovereigntytours.org/2011/04/south-korea-part-ii-modernization-and-global-ambitions/

Miguel A. Altieri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농업생태학 교수이고, 농업생태학에 대한 많은 기사와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http://www.agroeco.org). 그는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의 여러 지역과 NGO의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프로그램 기획을 돕고 있다.



세계적인 힘이 자급을 위한 개발도상국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많은 국가는 그들의 경제를 주로 대규모 단작에 기반한 경쟁적인 수출주도형 농업으로 조직해 왔다. 브라질의 대두 같은 작물의 농업 수출이 해외에서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경화를 벌어옴에 따라 국가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농의 형태는 또한 공중보건, 생태계의 무결성, 식품의 질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과 대개의 경우 수많은 농부가 부채를 지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농촌 생계의 붕괴를 포함한 여러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문제를 불러온다.

산업형 농업과 세계화로 밀어붙이는 성장—수출 작물의 강조, 최근 유전자조작 작물, 바이오연료 작물의 빠른 확장과 함께(사탕수수, 옥수수, 대두, 팜유, 유칼립투스 등)—은 잠재적으로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 충격 및 위험과 함께 세계의 농업과 식량 공급을 점점 더 재편하고 있다. 그러한 재편은 개발도상국의 열대지역에서 확실히 작물 생산성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 예상되는 기후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나고 있다. 저지대의 높아지는 홍수 위험, 반건조지대의 더욱 빈번하고 극심해지는 가뭄과 지나치게 더운 상태, 이런 모든 위험요소가 농업생산성을 제한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녹색혁명은 작물 생산량을 강조하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생물다양성과 전통 지식의 엄청난 손실을 야기하며, 부유한 농민에게 선호되고 많은 가난한 농민을 더욱 깊은 부채의 늪에 빠지게 한 지속불가능한 농업이라고 입증되었다.1 아프리카에서 녹색혁명을 위하여 다중 기관 연합(multi-institutional Alliance for a Green Revolution in Africa)을 통하여 제안된 새로운 녹색혁명은, 기적의 종자에 의존하는 화학비료로 인해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가난한 농민은 살 여유가 없는(예를 들면 화학비료 값은 지난해 거의 270% 올랐다) 외국의 투입재와 특허권을 보호받는 품종과 외국의 원조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진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할 운명인 듯하다.2


그러한 세계적 경향의 측면에서, 식량주권과 생태학에 기반한 생산 체계란 개념은 지난 20년 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다. 수많은 농민, NGO, 일부 정부와 학문기관이 선봉에 서서 현대의 농업생태학적 과학과 토착 지식 체계를 혼합하여 적용하는 것을 수반하는 새로운 접근법과 기술들이 몇몇 지역의 많은 농촌사회에서 자연자원과 생물다양성, 흙과 물을 보존하면서 식량안보를 향상시켰다는 것을 밝혔다.3 그 농업생태학의 과학—지속가능한 농업생태계의 기획과 관리를 위한 생태학적 개념과 원리의 적용—은 농업생태계의 복잡성을 평가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이런 접근법은 지상과 흙속에서 작물의 해충(풀, 곤충, 질병, 선충류)에게는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이로운 생물을 촉진시킴으로써 강하고 건강한 식물을 생산할 수 있게 향상시킨다.4


몇 세기 동안 개발도상국의 농업은 토종과 토착 지식뿐만 아니라 땅과 물, 기타 자원과 같은 지역적인 자원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이는 급변하는 기후변화, 해충, 질병 등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다양성으로 건강함과 탄력성으로 작용하며 소농을 먹여 살려왔다.5 높이 올린 밭, 계단식, 복합영농(같은 땅에 여러 작물을 기르는), 혼농임업 체계 등의 형태로 고대부터 전통적인 관리법이 지속되는 대부분의 농경지는 성공적인 전통농업의 전략을 입증했고, 전통적인 농민의 “창조성”에 대한 찬사로 이어졌다. 이러한 전통농업의 소우주는 생물다양성을 촉진하고, 농약 없이도 잘 자라며, 연중 수확량을 지속하기에 다른 지역을 위한 유망한 모델을 제공한다. 인류는 더욱 생태적이고, 생물다양성이 확보되고, 지역적이고, 지속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농업의 형태를 포함하는 농업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할 것이다. 그들은 성공적인 지역사회 기반의 지역적 농업으로 오랫동안 인정받은 사례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소규모 농업의 생태학적 근거에 기반할 것이다. 그러한 체계는 몇 세기 동안 세계의 대부분을 먹여 살려 왔고, 이 행성의 많은 곳에서 계속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6


다행히도 수많은 전통적인 작은 농장이 여전히 제3세계 농촌 풍경의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농업생태계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은 농업생태학적 접근법으로 최대한 적합하게 활용할 수 있고, 따라서 그들은 생산적이고 문화적인 다양성에 부합하는 기본적인 식량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유지하고 개발하는 각 나라 또는 지역의 권리로 정의되는 식량주권의 기초를 구성할 수 있다. 최근 생겨난 식량주권이란 개념은 지역 자치, 지역시장, 지역적 생산-소비의 순환, 에너지와 기술의 주권과 농민과 농민 사이의 연결망에 초점을 맞추면서 농민의 토지, 씨앗, 물에 대한 접근을 강조한다. 



지역적인 식량안보를 위한 중요한 배우인 소농

라틴아메리카에서 1980년대 후반 약 1600만 소농의 생산 단위가 모든 경작지의 34.5%인 6050만 헥타르 가까이 차지했다. 소농의 인구는 라틴아메리카 모든 농촌 인구의 2/3를 나타내는 7500만 명을 포함한다. 이러한 단위의 평균 농지 규모는 약 5400평이지만, 소농의 농업이 지역의 일반적인 식량 공급에 기여하는 역할은 중요하다. 이러한 작은 생산 단위는 국내 소비를 위한 농업생산의 41%를, 지역적인 수준에서 옥수수의 51%, 콩의 77%, 감자의 61% 생산하며 책임지고 있다.7 이러한 작은 농장 부문의 식량안보에 대한 기여는 25년 전만큼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아프리카는 지역에서 모든 농장의 80%를 나타내는 거의 3300만이 소농이었다. 아프리카 농민의 대부분(그들은 거의 여성임)은 모든 농장의 2/3가 6000평 이하이고 농장의 90%는 3만 평 이하인 소농이다. 대부분의 소농은 주로 외부 투입재의 사용이 그다지 대단하지 않을 수 있는 지역적 자원을 사용하는 “저-자원low-resource” 농업을 실행한다. 저-자원 농업은 곡물의 대부분, 거의 모든 뿌리식물, 덩이식물, 플렌테인 작물과 콩과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가장 기본적인 식량작물은 비료와 개량종을 거의 또는 아주 조금만 쓰면서 소농이 기르고 있었다.8 그러나 이런 상황은 아프리카에서 최근 20년 동안 1인당 식량생산이 감소함으로써  변하고 있다. 일단 곡물 자급에서 현재 아프리카는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수백 톤을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수입의 증가에도 소농은 여전히 아프리카 식량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은 홀로 세계 소농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1억 9300만 헥타르), 다음으로 인도가 23%,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순이다. 아시아에 사는 2억 명 이상의 벼농사 농민 대부분은 6000평 이하의 벼를 경작한다. 중국은 아마도 7500만의 벼농사 농민이 여전히 1000년 전에 쓰던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을 것이다. 고지대 생태계나 천수답 상태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토종은 아시아 소농이 생산하는 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9



소규모 농장은 더 생산적이고 자원을 보존한다

비록 기존의 지식이 작은 가족농은 낙후되고 비생산적이라고 하지만, 연구는 만약 한 작물의 수확량보다 전체 산출을 고려하면 작은 농장이 큰 농장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작부체계에서 옥수수 수확량은 3000평에 약 2톤 또는 전형적인 5~7명의 식구가 필요로 하는 연간 식품을 충분히 충족하는 약 432,0692칼로리이다. 1950년대 멕시코의 치남파스chinampas(호수나 늪에서 두둑을 높여 농사짓는)는 3000평에 3.5~6.3톤의 옥수수를 수확했다. 그 당시 이는 멕시코의 어느 곳보다 가장 높은 장기적인 수확량을 달성한 것이었다. 비교하면, 1955년 미국의 평균 옥수수 수확량이 3000평에 2.6톤이었고, 1965년까지 3000평에 4톤이 넘지 않았다.10 남아 있는 치남파스의 각각의 땅은 여전히 현대적인 생활 수준에서 1년에 15~20명이 먹을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다. 


전통적인 복합경작 체계는 현대 식량 공급의 20% 정도 제공한다. 복합경작은 적어도 서아프리카에서 개간된 지역의 80%에 이르는 한편, 라틴아메리카에서 주식 작물 생산의 대부분 또한 복합경작으로 이루어진다. 똑같은 밭이나 텃밭에서 소농이 곡물, 과일, 채소, 사료, 동물 생산물을 생산하는 이러한 다각적인 농업 체계는 대규모 농장에서 하나만 기르는 옥수수와 같은 단작의 단위당 수확량을 능가한다. 거대한 농장은 작은 농장의 콩, 호박, 감자, 사료를 포함한 복합경작의 일부로 기르는 옥수수보다 면적당 더 많은 옥수수를 생산할지 모른다. 그러나 소농이 개발한 복합경작의 단위면적당 수확할 수 있는 생산물이란 측면에서 생산성은 똑같은 수준의 관리라면 단작 체계보다 더 높다. 수확량의 이점은 20~60% 사이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섞어짓기는 풀(풀이 자랄 공간을 차지함으로써), 곤충, 질병(여러 종류가 있기에)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고, 물과 햇볕, 영양분이란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쓰도록 만들기 때문이다.11


더 집중적으로 적은 자원을 관리함으로써, 소농은 산출 단위당 더 많은 이윤을 만들 수 있고, 따라서 더 많은 전체 이윤을 만든다—각 농산물의 생산량이 더 적더라도.12 전체적인 산출에서 다각화된 농장은 훨씬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 미국에서 가장 작은 6000평의 농장은 3000평에 1,5104달러를 생산하고, 2902달러의 순이익을 올린다. 평균적으로 4674,3000평인 커다란 농장은 3000평에 249달러를 생산하고, 52달러의 순이익을 올린다. 중소 규모의 농장은 관행적인 대규모 농장보다 더 높은 수확량을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 소농이 토양침식을 줄이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연자원을 더 잘 관리한다고 밝혔듯이 환경에 부정적인 충격을 훨씬 덜 준다. 그러나 미국에서 작은 농장의 면적당 더 높은 수입의 중요한 부분은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일반인, 식당, 시장으로 직거래하는 경향에 있다. 그들은 또한 그들의 지역, 흔히 유기농 생산물이란 프리미엄을 받는 경향이 있다.


농장 크기와 산출 사이의 반비례 관계는 소농이 땅, 물, 생물다양성, 기타 농업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산출로 투입을 나누어 전환시키는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소농이 더 나을 수 있다. 생산적인 소규모 농업에 기반한 세계의 남국에서 강한 농촌 경제를 세우는 것은 남국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식구들과 함께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충분한 일자리가 없는 도시의 빈민가로 이주해 나가는 흐름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의 인구가 계속 성장하기에, 농지를 재분배하는 것은 특히 대규모 농업이 성장하고 있는 농연료 공급원료로 자동차를 먹여 살리는 데 헌신하고 있는 이때 우리의 행성을 먹여 살리기 위한 핵심일 수 있다.



작은 농장은 유전자조작 생물이 없는 농업생물다양성의 보호구역이다

전통적인 소농은 여러 가지 많은 품종을 기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식물의 대부분은 획일적인 형식의 현대적 품종보다 유적전으로 더 다양하고 대물림하는 씨앗에서 얻은 토종이다. 이러한 토종은 취약성에 대항하는 더 큰 방어력을 제공하고, 질병과 해충, 가뭄 및 기타 압박 속에서 더 튼실한 수확을 보장한다.13 27가지 작물을 포함하는 농장에서 작물 품종의 다양성에 대해 조사한 세계적인 조사에서, 과학자들은 많은 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이 전통적인 작물 품종, 특히 주요한 주식 작물의 형태로 계속 유지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대부분의 사례에서 농민은 미래의 환경 변화나 사회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호수단으로 다양성을 유지한다. 많은 연구자는 품종의 풍부함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수확량의 가변성을 줄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양성의 가운데로 유전자조작 작물의 침투를 고려할 때, 쟁점이 되는 것은 토착 농민에게 중요한 특성(가뭄 저항성, 경쟁하는 능력, 섞어짓기 체계에서의 성능, 저장 품질 등)이 농약을 쓰지 않는 농민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유전자조작 품질(예를 들어 제초제 저항성)과 교잡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14 이러한 각본에 따라 위험은 증가할 수 있고, 농민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외부의 투입재를 최소로 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확량을 생산하는 그들의 능력을 잃어 버릴 수 있다. 유전적 오염으로 인한 토종의 유전적 무결성에 변화가 생긴 결과로 토종 작물의 부족이란 사회적 충격은 개발도상국의 마진margin에 상당할 수 있다. 


소농의 농업이 유전자조작 작물에 오염되지 않는 소농의 농업 지역을 보호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타가수정이나 획일적인 유전자조작 작물로 인한 유전적인 오염의 어떠한 가능성으로부터도 지리학적으로 외떨어진 유전적 다양성의 보고를 유지하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게이츠-록펠러 AGRA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점점 도입되는 제2의 녹색혁명으로부터 유래된 잠재적인 생태학적 실패에 대한 보호장치로 작용하는 온전한 유전자원의 “섬”을 창출할 것이다. 이러한 유전적 보호구역인 섬은 또한 유전자조작 농업의 발전으로 필연적으로 오염될 것인 북국에서 유기농 농장을 다시 살리는 데 필요할 유전자조작 생물에서 자유로운 씨앗의 유일한 자원으로 기여할 것이다. 과학자와 NGO의 도움으로 세계의 남국에 있는 소농과 토착 지역사회는 온 행성의 음식문화를 풍부하게 해주는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다양성의 창조자와 파수꾼으로 계속 존재할 수 있다. 



작은 농장은 기후변화에 더 탄력적이다

대부분의 기후변화 모델은 손상이 소농, 특히 제3세계의 빗물에 의존하는 농업전문가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아무리 낙관해도 기존의 모델은 예상되는 영향의 개괄적인 근사치만 제공하고 내부 적응 전략의 거대한 가변성은 은닉한다. 날씨의 변동에도 많은 농촌 사회와 전통농업의 농가는 극한 기후에 대처할 수 있을 듯하다.15 사실 많은 농민이 대처할 수 있고, 심지어 가뭄 저항성의 토종, 집수법, 광범위한 나무심기, 섞어짓기, 혼농임업, 김매기, 야생식물 모으기와 일련의 기타 전통농업 체계의 기술을 더욱 활용해 흉작을 최소화하며 기후변화에 대비할 수 있다.16


전통적인 농업생태계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작부체계의 보급은 환경적으로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작물이 인정할 만한 생산성 수준에 이르도록 하여 소농의 농업체계를 안정시키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농업생태계는 다양한 작물 품종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다양하게 배치하여 기르기 때문에 비극적인 손실에 덜 취약하다. 연구자들은 수수/땅콩과 기장/땅콩의 섞어짓기가 대규모 단작의 사례보다 가뭄 기간 동안 더 높은 수확 안정성과 더 적은 생산성 감소를 보이는 것을 밝혔다.


그러한 실험의 결과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는 “초과-수확over-yielding”의 측면이다—두 가지나 그 이상의 작물을 함께 기를 때 한 가지만 기를 때 이상의 수확량이 발생한다(예를 들어, 수수와 땅콩을 섞어 3000평에 기를 때 수수만 1500평에 땅콩만 1500평에 기를 때보다 이상의 수확량이 난다). 모든 사이짓기는 재배철 동안 물이 297~584mm의 범위로 적용되는 수분 유용성의 다섯 레벨에서 지속적으로 초과-수확한다. 아주 흥미롭게도, 실제로 대규모단작과 복합경작 사이 생산성의 상대적인 차이인 초과-수확의 비율은 압박이 증가함으로써 더욱 두드러지는 물에 대한 압박과 함께 증가했다.17 많은 농민은 혼농임업을 설계한 나무 덮개로 극심한 미기후와 토양 수분 변동에 대항하여 작물을 보호하면서 기른다. 농민은 나무를 유지하고 심어서 온도, 풍속, 증발을 감소시키고, 햇볕에 직접 드러나는 것과 우박과 비를 가로막아 미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치아파스Chiapas에서 농업생태계의 커피나무는 그늘이 드리워져 멕시코의 온도, 습도, 태양 방사선 변동이 줄어드는 것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그늘이 직접적으로 커피나무를 위한 미기후의 가변성과 토양 수분의 완화에 관련된다는 것을 가리킨다.18


1998년 허리케인 밋치가 중앙아메리카를 강타한 뒤 산비탈에서 실시된 조사는  콩과인 “무쿠나mucuna”란 덮개 작물, 사이짓기, 혼농임업과 같은 농민이 사용하는 지속가능한 실행법이 관행적인 이웃보다 덜 “손상”을 입도록 했다는 것을 밝혔다. 니카라과, 온두라스, 과테말라의 360개 지역사회와 24개 부서에 이르는 연구는 다각화된 밭은 그들의 관행적인 이웃들보다 25~40% 더 많은 겉흙, 더 높은 토양 수분, 덜한 침식, 더 낮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것을 밝혔다.19 이것은 토착 기술의 재평가는 작은 농장에 의해 드러나는 적응력과 탄력적인 능력에 대한 정보의 중요한 근원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는 세계 농민을 위한 전략적 중요성의 특징. 또한 토착 기술들은 종종 서유럽의 유산보다 더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자연세계에 대한 우리의 세계관과 이해를 반영한다.



농업생태학으로 작은 농업 체계의 생산성을 강화하기

소규모 전통농업 체계가 탄력성과 생산성에 이롭다는 증거에도 많은 과학자와 개발전문가 및 조직들은 자급농업의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생산의 농화학과 유전자조작 강화가 자급에서 상업적 생산으로 이행하기 위한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그러한 강화 접근법이 많은 실패와 만났지만, 연구는 전통적인 작물과 동물의 조합이 종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더 효율적으로 노동력과 지역의 자원을 사용하면서 건강한 식물 성장, 해충 압박, 이로운 생물 북돋기를 촉진시켜 서식지를 향상시키는 생태학적 원리가 작은 농장의 재기획에 사용될 때의 사례이다.


몇몇 보고서는 소농이 기후변화와 급증하는 에너지 비용의 속에서도 농촌과 이웃한 도시 지역사회를 위해 필요한 식량의 대부분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뒷받침한다.20 증거는 확실하다: 세계의 농민, NGO, 지방정부에 의해 선봉에 선 새로운 농업생태학적 접근법과 기술은 이미 가구, 지역과 국가 차원에서 식량안보를 위한 충분한 기여를 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농업생태학적인 참여형 접근법의 다양성은 불리한 환경상태에서조차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잠재력은 다음과 같다: 50~200% 곡물 수확량을 올리기, 다양화를 통해 생산의 안정성을 높이기, 식사와 수입을 개선하기, 국가의 식량안보(심지어 수출까지)와 자연자원 기반 및 생물다양성의 보존에 기여하기. 이런 증거는 유기농업이 아프리카 식량안보를 북돋을 수 있다는 무역과 개발 상태에 대한 유엔 회의의 최근 보고서에 의해 강화되었다. 아프리카의 114개 사례에 대한 분석에 기반한 그 보고서는 유기농이나 유기농에 가까운 생산방식으로 농업을 전환하면 농업생산성이 116%까지 높아진다는 것을 밝혔다.


게다가 유기적인 생산 체계로의 전환은 농촌사회에서 자연, 인간, 사회, 금융, 물적자변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계은행과 FAO에 위임을 받은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gricultural Knowledge, Science and Technology(AKST)는 농업생태학적 과학 쪽으로 ASKT를 강화하는 것이 생산성을 유지하고 높이면서 환경적인 쟁점을 다루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추천했다. 그 평가는 또한 전통적이고 지역적인 지식 체계가 농경지의 토질과 생물다양성만이 아니라 영양분, 해충, 물 관리, 기후와 같은 환경적인 압박에 대응할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강조했다.


농업생태학적 혁신의 잠재력과 확산 여부는 여러 요인과 정책, 기관, 연구와 개발 접근법의 주요한 변화에 의존하여 실현된다. 제안된 농업생태학적 전략은 생산을 높이고 자연자원을 보존하는 목표만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적 투입재와 지역 시장에 대한 접근을 제공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업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어떠한 진지한 시도도 연구 과정에 지역 지식과 기술을 떠맡기 위한 것을 가져와야 한다.21 특정한 강조는 연구 의제의 공식화에 직접적으로 농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기술적인 혁신 과정에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경험의 공유와 지역적 연구의 강화, 문제해결력에 초점을 맞춘 농민에서 농민으로 보급하는 모델을 갖추어야 한다. 농업생태학적 과정은 농촌 사회에 의해 권한과 지속적인 혁신을 위한 기초를 세우는 참여와 그들의 농사와 자원에 관한 농민의 생태학적 능력 향상이 요구된다.22


공평한 시장 기회는 또한 농민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인구의 나머지와 더욱 연대하는 지역적 상업화와 분배 계획, 공정한 가격, 기타 메타니즘을 강조하는 것을 개발해야 한다. 궁극적인 과제는 농업생태학에 대한 투자와 연구를 늘리고 이미 수많은 농민이 성공적이라고 입증한 프로젝트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수입, 식량안보, 모든 인구의 환경적인 참살이, 특히 현대 관행농을 위한 정책, 기술, 그리고 제3세계에 깊숙히 침투한 다국적 농기업 때문에 불리한 입장에 처한 소농에게 의미있는 영향을 발생시킬 것이다.23



농촌의 사회운동, 농업생태학, 식량주권

지속가능한 농업의 개발은 기술적 혁신, 농부와 농부의 연결망, 농부와 소비자의 연대에 덧붙여 중요한 구조적 변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요구되는 변화는 현재 지속가능한 농업의 개발을 저지하고 있는 제도와 법령을 분해하고 변형시키기 위한 의사결정자들 사이의 정치적 의지를 만드는 사회운동 없이 할 수 없다. 농업의 더욱 근본적인 변화는 농업의 생태적인 변화가 농업을 결정하는 것을 돕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무대에서 비교할 만한 변화 없이 촉진시킬 수 없다는 개념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조직된 소농과 토착 기반의 농민운동—국제적인 소농운동 La Vía Campesina와 브라질의 토지없는 소농운동(Landless Peasant Movement)과 같은—은 농민은 그들 자신의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해 식량을 생산할 땅이 필요하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이러한 까닭으로 그들은 높아지는 식량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역사회에 가장 중요할 땅, 물, 생물다양성에 접근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진정한 농업개혁을 지지해 왔다. 


Vía Campesina는 생계, 일자리, 사람들의 식량안보, 건강만이 아니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식량 생산은 소규모 지속가능한 농민의 손에 남아 있어야 하고 거대 농기업 회사나 슈퍼마켓 유통망의 통제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오직 수출주도형 자유무역에 기반한 거대 농장의 산업형 농업 모델을 바꿔야만 빈곤, 저임금, 농촌-도시 이주, 기아, 환경 악화란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회적 농민운동은 세계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공평한 국제 무역이 필요하다고 믿는 신자유주의적 접근에 대한 대안으로서 식량주권이란 개념을 강조한다. 대신 그것은 지역 자치권, 지역 시장, 지역적 생산-소비의 순환, 에너지와 기술의 주권, 농민과 농민의 연결망에 초점을 맞춘다.


“녹색화”란 녹색혁명은 기아와 빈곤을 줄이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기아, 빈곤, 불공평의 근본원인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공정한 개발과 생태적으로 건전한 보존 사이의 긴장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 플렌테이션의 대규모 단작 환경에 도전하지 않는 유기농 체계와  외부의 투입재만이 아니라 외국에 대한 의존과 값비싼 인증 도장, 또는 공정무역 체계는 오직 외부의 투입과 외국과 변덕스런 시장에 종속되는 매우 적은 소농에게만 제공되는 수출농업을 위한 것이다. 농민들이 유기농에 대한 투입재 대체 접근법에 의존함으로써, 투입재 사용의 미세 조정은 외부의 투입재에 대한 종속을 벗어나려는 농민을 농업생태계의 생산적인 재설계 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게 할 것이다. 북국의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틈새시장은 식량주권을 우선시하지 않는 어떠한 수출농업 계획도 의존성과 기아를 영구화시킨다는 똑같은 문제를 드러낸다.


농민의 사회운동은 산업형 농식품 복합체를 해체하고 지역의 식량 체계를 회복하는 것은 소규모 생산자와 저소득 비농업인구의 필요에 어울리고, 기업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통제에 반대하는 농업생태학적 대안의 건설에 동반해야 하는 것이라 이해한다. 농업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의 위급성을 고려할 때, 농민, 시민사회단체(소비자를 포함한) 사이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연합만이 아니라 유의미하고 열성적인 연구 단체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더 공장하고, 경제적으로 실행할 수 있으며, 환경적으로 건전한 농업 쪽으로의 이동은 최근 일어난 이러한 농민운동의 목표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동맹한 농민 부문 사회운동의 조화된 행동의 결과일 것이다. 조직된 농민과 다른 사람들의 끊임없는 정치적 압력의 결과로, 정치인들이 식량주권을 강화하고, 자연자원 기반을 보존하며, 사회적 공평성과 경제적 농업생존력을 보장하려 개발하고 있는 정책에 더욱 관심을 보이게 되기를 바랄 수 있다. 

중동부터 마다가스카르까지, 높은 가격은 토지수탈을 낳고 독재자를 몰아내고 있다. 21세기 식량 전쟁에 어서오라.



지난해처럼 세계의 밀 가격이 75%까지 오를 때, 미국에서는 2달러짜리 빵 한 덩어리와 원가 계산한 2.10달러 사이의 차이를 뜻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뉴델리에서 산다면, 그것은  비용이 치솟는 진짜 문제이다: 실제로 세계의 밀 가격이 두배가 된다는 것은 차파티 값이 두배가 되어 손으로 가루를 내기 위하여 시장에서 집으로 밀을 날라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쌀도 마찬가지다. 만약 세계의 쌀값이 두배가 된다면, 그렇게 자카르타에서 네 인근 시장의 쌀값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인도네시아인 가족의 저녁 밥상에서 밥 한 그릇의 값이 된다.


2011년 새로운 식량 경제에 온 걸 환영한다: 가격은 오르고 있지만, 충격은 똑같이 느끼지 않는다. 자기 수입의 1/10 이하를 슈퍼마켓에서 쓰는 미국인에게 올해 우리가 본 것 같은 치솟는 식량 가격은 재앙이 아니라 짜증일 뿐이다. 그러나 자기 수입의 50~70%를 먹을거리에 소비하는 이 행성의 가장 가난한 20억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치솟는 가격은 하루 두 끼니가 한 끼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 경제란 사다리의 낮은 단계에 간신히 매달린 그들은 완전히 자신의 손을 놓아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이것은 혁명과 격변을 지속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렇다.


2011년에 이미 유엔 식량가격 지수(Index)는 예전 사상 최고의 수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3월부터 8개월 연속으로 올랐다. 올해 수확이 충분하지 않을 거란 예측, 가격 폭등의 결과로 불안정한 중동과 아프리카의 정부, 그리고 연이은 충격을 입어 불안해 하는 시장과 함께 식량은 빠르게 세계 정치의 보이지 않는 동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위기들은 점점 일상적인 일이 되어 간다. 식량의 새로운 지정학은 예전보다 훨씬 더 변덕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훨씬 더 논쟁적이다. 부족함이 새로운 표준이다.


최근까지 세계의 대부분에 걸쳐 20세기 후반의 정치적 안정을 돕도록 상대적으로 낮은 식량 가격으로 빠르게 되돌아가도록 함으로써 급작스러운 가격은 그만큼 문제로 밀어닥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의 원인과 결과는 불길하게도 다르다.


여러 방면에서 2007~2008년 식량 위기의 재개이다. 당시 식량 부족 사태는 세계가 어떻게든 이를 해결하려고 최종적으로 힘을 합쳤기 때문에 해결된 것이 아니라, 호의적인 날씨가 농민이 최고의 풍작을 기록하는 바로 그 순간  큰 불황이 수요의 성장을 완화시켰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가격 폭등은 거의 이상기후로 추동되는 경향이 있었다 -인도의 이상한 계절풍, 옛 소련의 가뭄, 미국 중서부의 무더위. 그러한 사건은 늘 지장을 주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드물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가격 폭등은 높아지는 수요와 생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경향에 의해 추동된다: 그 가운데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 작물을 말려 죽이는 기온 상승, 관정의 말라버림. 매일 밤 세계의 저녁 식탁에는 먹여 살려야 하는 21만 9000명의 사람이 추가되고 있다.


여전히 더욱 걱정스러운 건 세계가 부족함의 영향을 약화시키기 위한 그 능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 가격 급등에 대한 대답에서, 세계의 가장 큰 곡물 생산자 미국은 잠재적인 재앙에서 떨어져서 효과적으로 조종할 수 있었다. 20세기 중반부터 1995년까지 미국은 곤경에 빠진 나라들을 구출하기 위해 주입할 수 있던 잉여 곡물이나 유휴 농경지를 가졌다. 예를 들어 1965년 인도의 계절풍이 찾아오지 않았을 때, Lyndon Johnson 대통령의 행정부는 미국 밀 작물의 1/5을 인도로 수송하여 성공적으로 기근을 피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안전 방석은 사라졌다.


그것이 2011년의 식량 위기가 진짜인 까닭이고, 여전히 더 많은 식량 폭동 겸 정치적 혁명을 불러올 수 있는 이유이다. 만약 튀니지에서 Zine el-Abidine Ben Ali, 이집트에서 Hosni Mubarak, 리비아에서 Muammar al-Qaddafi(곡물의 90%를 수입하는 국가)라는 독재자를 내모는 격변이 그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면, 그것의 시작이라면 어떻겠는가? 농부와 외무장관은 식량 부족이 점점 세계의 정치를 형성하는 새로운 시대에는 비슷하다.




2007년 초반 이후 세계의 곡물 가격이 두배가 된 것은 주로 두 가지 요인에 의해서였다: 수요의 성장이 가속화된 것과 빠르게 확대된 생산의 어려움이 증가한 것. 그 결과는 지난 세기의 풍부한 세계 곡물 경제와는 뚜렷하게 달라 보이는 세계이다. 무엇이 부족함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에 나타날 듯한 식량의 지정학일까? 이 초기 단계에서조차 우리는 적어도 신흥 식량 경제의 폭넓은 윤곽을 볼 수 있다.


수요의 측면에서, 농민은 증가하는 압력의 명백한 근원에 직면했다. 첫번째는 인구성장이다. 해마다 세계의 농민은 8000만의 추가된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 그들의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 산다. 세계의 인구는 1970년 이후 거의 두배가 되었고 이번 세기의 중반까지 90억에 육박할 것이다. 한편 일부 30억 명은 또한 더 많은 고기, 우유, 달걀을 소비하며 먹이사슬을 높이려고 시도하고 있다. 중국의 중산층에 들어온 더 많은 가족들이 더 잘 먹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곡물이 집중된 가축 생산의 세계적 소비가 늘어나, 그 수요 덕에 추가적인 옥수수와 콩이 가축의 먹이로 필요해지고 있다(예를 들어 미국에서 1인당 곡물 소비는 적은 곡물이 고기 단백질로 전환되는 인도보다 4배이다. 당분간은.)


이와 함께 한때 어느 곳에 흉년이 들면 세계의 완충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미국은 현재 많은 곡물을 자동차 연료로 전화시키고 있고, 세계의 곡물 소비도 이미 1년에 대략 22억 미터톤으로 오르며 가속도를 높이고 있다. 10년 전 소비의 성장은 1년에 2000만 톤이었다. 더 최근에는 해마다 4000만 톤까지 올랐다. 그러나 미국에서 그 속도는 곡물을 에탄올로 전환시키면서 전보다 빨라졌다. 2010년에 미국은 거의 4억 톤의 곡물을 수확하여, 그 가운데  1억 2600만 톤을 에탄올 연료 증류장으로 보냈다(2000년 1600만 톤에서 오름). 이러한 연료로 전화시키는 거대한 곡물의 용량은 곡물 가격이 현재 석유 가격에 묶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만약 석유가 1배렬에 150달러나 그 이상이 되면, 곡물 가격은 석유 대체물로 곡물을 전화시켜 더 이윤이 남음으로써 그것을 따라 치솟을 것이다. 그건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사탕수수로 에탄올을 증류하는 브라질은 미국 다음으로 생산하는 두번째 국가이다. 또한 2020년까지 재생가능한 주로 바이오연료로 수송 에너지의 10%까지 해결하는 유럽연합의 목표는 식량작물로부터 땅을 다른 용도로 쓰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단지 음식에 대한 수요가 확 늘었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줄어들고 있는 지하수부터 침식되고 있는 흙과 지구온난화의 결과와 같은 모든 것은 세계의 식량공급이 우리의 총괄적으로 높아지는 욕구를 버틸 수 없을 듯하다는 것을 뜻한다. 기후변화를 보자: 작물 생태학자들의 경험법칙은 농사철에 최고온도가 1도씨 오를 때마다 농민은 곡물 수확량의 10%가 감소될 것을 예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2010년 무더위로 곡물 수확의 40%까지 감소된 러시아에서 아주 극적으로 증명되었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지하수는 농민이 관개를 위해 지나치게 퍼올리면서 줄어들고 있다. 이는 인위적으로 짧은 기간에 식량 생산을 부풀려 대수층이 말랐을 때 터져버릴 식량 거품을 만들고 있으며, 펌프 사용은 필연적으로 재충전 속도를 감소시킨다. 건조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관개는 놀랍게도 20년 넘게 밀을 자급하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재 밀 생산은 그 나라에서 관개를 위해 쓰는 대수층이 보충되지 않고 매우 줄어들면서 추락하고 있다. 사우디는 곧 그들의 곡물 모두를 수입하게 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물을 기반으로 하는 식량 거품의 18개국 가운데 단 하나일 뿐이다.  절반 이상의 세계 인구가 지하수가 부족해지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많은 아랍의 중동은 물 부족과 계속 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곡물 생산이 정점을 찍고 감소하기 시작한 첫번째 지정학적 지역이다. 곡물 생산은 이미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떨어지고 있고, 예멘도 곧 감소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식량 거품은 인도와 중국에 있다. 약 2000만 개의 관정을 뚫은 농민이 있는 인도에서, 지하수는 부족해지고 있으며 관정은 마르기 시작했다. 세계은행은 1억 7500만 명의 인도인이 지나친 지하수 사용으로 생산한 곡물을 먹고 있다고 보고했다. 중국에서 지나친 펌프 사용은 북부 평원에 집중되어 있고, 여기서 밀의 절반과 옥수수의 1/3을 생산한다. 1억 3000만의 중국인이 현재 지나친 펌프 사용으로 먹고 산다고 추정된다. 어떻게 이러한 나라들이 대수층이 고갈되었을 때 필연적인 부족량을 벌충할 것인가?


우리의 우물이 마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린 또한 우리의 흙을 잘못 관리하여 새로운 사막을 만들고 있다. 과도한 쟁기질과 땅을 잘못 관리한 결과인 토양침식은 세계 농경지 1/3의 생산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얼마나 심각하냐고? 거대한 두 곳의 새로운 건조지대를 보여주는 위성사진을 보라: 하나는 중국의 북부와 서부 및 몽골의 서부에 펼쳐져 있다;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 중부에 걸쳐 있다. 중국 사막학회를 이끄는 왕타오Wang Tao는 해마다 중국 북부의 약 2240평방킬로미터의 땅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몽골과 레소토에서 곡물 수확은 지난 몇 십 년에 걸쳐 절반 또는 그 이상 줄어들었다. 북한과 아이티 또한 심각한 토양 유실로 고통받고 있다; 두 나라는 국제적인 식량 원조를 잃으면 기근에 직면한다. 문명은 석유 매장량을 잃어도 생존할 수 있지만, 흙을 잃으면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일이 더 어려워지게 만드는 환경적 변화 너머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무형의 요인이 있다: 지난 반 세기에 걸쳐 또는 그쯤, 우린 농업의 진척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높아지는 토지생산성으로 꾸준히 곡물을 뒷받침했다. 정말로 세계의 1200평당 곡물 수확량은 1950년 이후 3배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 그 시대는 농민이 이미 수확량을 올리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과학기술을 쓰고 있는 농업적으로 더욱 진보된 일부 국가에서 종말이 찾아오고 있다. 사실상 농민은 과학자의 발목을 잡았다. 세기를 지나며 일본에서 1200평당 벼 수확량은 16년 동안 전혀 오르지 않았다. 중국에서 수확량은 곧 잠잠해질 수 있다. 단 두 나라가 세계 벼 수확의 1/3을 차지한다. 한편 밀 수확량은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정체기에 빠졌다 -서유럽의 가장 많은 밀을 생산하는 세 나라.




세계의 식량 공급이 긴축되고 있는 이 시대에 식량을 기르는 능력은 빠르게 새로운 지정학적 수단의 형태가 되고 있으며, 국가들은 공유재산의 비용으로 자신의 지역주의적 이해관계를 안전하게 만들고자 재빨리 움직이고 있다.


첫번째 문제의 징후는 농민이 세계의 곡물 수요의 성장을 맞추기 어려워지기 시작한 2007년에 나타났다. 곡물과 콩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여, 2008년 중반 3배가 되었다. 이에 호응하여 많은 수출국들이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국내 식량 가격의 상승을 조절하고자 시도했다. 그들 가운데 러시아와 아르헨티나는 밀 수출을 이끄는 두 나라이다. 세계 2위의 벼 수출국 베트남은 2008년 초기에 몇 개월 동안 완전히 수출을 금지했다. 그리고 몇몇 다른 작은 곡물 수출국들이 그렇게 했다.


2007년과 2008년 수출국의 수출 제한과 함께 수입국에서는 극심한 공포가 일어났다. 더 이상 그들이 필요로 하는 곡물의 공급을 위하여 시장에 의존할 수 없었던 몇몇 국가들은 수출국과 신기한 장기간의 곡물공급협정을 맺으려고 시도하는 행보를 보였다. 예를 들어 필리핀은 베트남과 1년에 벼 150만 톤을 받는 3년 협정을 맺었다. 예멘의 대표단은 비슷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동했지만, 운이 없었다. 판매자가 유리한 시장에서 수출국은 장기적인 약속을 맺는 걸 꺼림칙해 했다.


시장에서 필요한 곡물을 살 수 없을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 그들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남한, 중국을 위시한 더욱 부유한 국가들의 일부는 2008년 자신을 위해 곡물을 기를 수 있는 다른 나라의 토지를 사거나 임차하려는 특이한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토지 획득의 대부분은 일부 정부가 1년에 1200평당 1달러 이하로 농경지를 임대하는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주된 목적지 가운데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유엔 세계식량계획에서 주는 식량으로 살아가는 에티오피아와 수단였다. 이러한 두 나라의 정부는 국민들이 굶주린다는 슬픈 실황으로 외국의 관심에 자신의 토지를 팔고자 했다.


2009년 말까지 수백 개의 토지 획득거래가 체결되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약 12억 평을 넘었다. 이러한 "토지 수탈"을 분석한 2010년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모두 약 17억 평이 연관되었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옥수수와 밀을 기르는 농경지를 초과하는 지역. 그러한 획득은 또한 일반적으로 물 이용권을 수반하여, 토지수탈은 모든 하류의 국가들에게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현재 이집트에 이르지 않았으나 에티오피아나 수단에서 나일강 상류의 유역으로부터 얻는 모든 물은 이집트와 협상해야 하는 새로운 나라들이 추가됨으로 인하여 섬세한 나일강의 물 정치를 거꾸로 뒤집고 있다.


충돌 -단지 물만이 아니라- 가능성은 높다. 토지 거래의 대부분은 비밀스럽게 이루어졌고, 대개의 사례에 포함된 팔거나 임대차한 토지는 이미 마을사람들이 쓰고 있다. 그들이 이미 농사짓고 있는 땅은 논의의 대상도 아니고 심지어 새로운 협의 사실조차 알리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공식적인 토지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땅을 잃은 농민은 법정 소송을 통해 되찾을 방법도 없다. 영국의 Observer에 글을 쓴 리포터 John Vidal은 에티오피아 Gambella 지역에 사는 Nyikaw Ochalla의 말을 전한다: "외국 회사들이 엄청나게 들어와서 우리가 몇 세기 동안 사용하던 토지를 빼앗고 있다. 토착 주민과 전혀 상의하지도 않는다. 그 거래는 몰래 이루어진다. 지역민들이 보는 유일한 것은 자신의 땅을 침략하기 위한 수많은 트랙터와 사람들이 오는 모습뿐이다."


그러한 토지 수탈에 대한 지역의 적개심이 예외없이 일반적이다. 2007년 식량 가격이 오르기 시작할 때, 중국은 필리핀과 자국으로 운송할 식량작물을 위해 계획된 약 36억 평의 땅을 임대차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한번 소문이 새어나갔고, 대중의 항의 -필리핀 농민의 대부분- 가 협정을 중단시키고자 마닐라를 압박했다. 비슷한 대혼란이 남한의 회사 대우 로지스틱이 36억 평 이상의 땅에 대한 권리를 얻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있었다. 거래의 소문이 정부를 쓰러뜨리고 협정을 취소시킨 정치적 분노를 부추겼다. 실제로 몇 가지가 사람들에게서 토지를 탈취한 것보다 더 내란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농기계는 쉽게 파괴된다. 만약 곡물이 익은 농경지에 불을 내면 순식간에 타버린다.


이러한 거래는 외국 투자자에게 위험할 뿐만 아니라, 나라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굶주린 사람들이 어떻게 곡물을 생산하느냐는 또 다른 정치적 문제에 직면한다. 마을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곡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항구도시로 가도록 놔두겠는가? 자기의 땅과 생계를 잃은 마을사람들이 있는 나라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할 가능성이 높다. 충돌은 투자자와 초대한 나라 사이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획득은 500억 달러로 추산되는 개발도상국의 농업에 대한 잠재적 투자를 나타낸다. 그러나 상당한 생산 이득을 실현시키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걸릴 수 있다. 현대의 시장지향형 농업을 위한 공공 사회기반시설이 아프리카 대부분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국가에서 단지 비료와 같은 농업투입재와 수출 농산물을 옮길 도로와 항구만 건설될 것이다. 그 너머로 현대적 농업은 그 자신의 사회기반시설을 필요로 한다: 농기계 보관소, 곡물 건조시설, 곡물 저장고, 비료 저장시설, 연료 저장시설, 농기계 수리소와 유지 서비스, 관정 뚫는 기구, 관개용 펌프, 펌프를 돌릴 에너지. 전반적으로 지금까지 획득된 토지의 개발은 매우 천천히 진행되는 듯하다.


그러면 이런 모든 것이 세계 식량 산출을 얼마나 확대할 것인가? 우린 알 수 없지만, 세계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식량작물에 노력을 기울이는 프로젝트는 단 37%뿐이다. 토지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바이오연료와 다른 산업형 작물을 생산하는 데 쓰려고 매수되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일부가 결국 토지생산성을 확 높이더라도 누가 혜택을 보겠는가? 만약 거의 모든 투입재 -농기계, 화학비료, 농약, 종자- 가 외국에서 들어오고 모든 산출이 해외로 반출되면, 초대한 나라의 경제에는 매우 적은 기여를 할 것이다. 기껏해야 지역민들은 농장노동자로서 일을 찾을 것이지만, 고도로 기계화된 작업에서 일자리는 몇 가지뿐일 것이다. 최악의 경우 모잠비크와 수단처럼 빈곤한 국가들은 이미 굶주리고 있는 자국 인구를 먹여 살릴 더 적은 토지와 물만 남을 것이다. 따라서 토지 수탈의 심화는 식량 생산의 확대보다는 더욱 심하게 불안을 자극하는 기여를 할 것이다.


이런 부유한 나라-가난한 나라의 나눔은 더욱 확연해질 수조차 있다 - 그리고 곧. 식량을 안정화하려는 수입국들 사이의 재빠른 움직임에서 새로운 단계가 펼쳐지기 시작한 올해 1월, 곡물의 70%를 수입하는 남한은 곡물의 일부를 얻기 위한 책임을 지는 새로운 공공-민간기관을 창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카고에 최초의 사무소와 함께, 그 계획은 미국 농부에게서 직접 곡물을 사들여 커다란 국제 무역회사를 우회하고자 한다. 한국인은 그들 자신의 대형 곡물창고를 얻음으로써, 고정된 가격으로 밀, 옥수수, 콩의 명시된 양을 사들이는 데 동의하는 농부와 다년간의 납품계약을 제대로 맺을 수도 있다.


다른 수입국들이 시장에 도착하기 전에 미국 곡물 수확의 일부를 묶어 놓으려는 남한의 시도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진취적인 한국인에게 곧 중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선도적인 수입국들이 합류할 것이다. 비록 남한의 최초 초점이 단연코 세계의 가장 큰 곡물 수출국인 미국에 맞춰져 있지만, 나중에는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와 다른 주요 수출국과의 중개거래까지 고려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이 잠재적으로 거대한 곡물 수입국으로서 미국 시장에 들어오려고 할 수 있기에 일어날 것이다. 많은 미국인의 생득권으로 보이는 곡물 수확과 값싼 식량을 놓고 미국 소비자와 경쟁하기 시작한 점점 부유해지는 중국의 14억 소비자와 함께 끝날 수도 있다.


이렇게 식량 공급을 위해 심해지는 경쟁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몇 십 년에 걸쳐 진화된 국제적인 협력에서 모든 나라가 혼자 힘으로 한다는 철학 쪽으로 옮겨갈 듯하다. 식량 민족주의는 개별적인 풍요로운 국가들에게는 식량 공급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세계의 식량안보를 향상시키는 데는 거의 보탬이 되지 않는다. 정말로, 토지 수탈을 불러오거나 곡물을 수입하는 저소득 국가들은 그들의 식량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두 세계대전의 대학살과 대공황을 야기한 경제적 실수 이후 국가들은 현대 세계에서 고립되어 살 수 없다는 인식이 부추겨 마침내 1945년 유엔을 만들어 함께 합류했다. 국제통화기금은 통화 체계의 관리를 돕고 경제적 안정과 발전을 촉진하고자 창설되었다. 유엔 체제 안에서 세계보건기구부터 식량농업기구(FAO)까지는 오늘날 세계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 모두는 국제협력을 조성해 왔다.


그러나 FAO가 세계의 농업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기술 지원을 제공했지만, 세계 식량 공급의 타당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직적 노력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최근까지 농업 무역에 관한 대부분의 국제적 협상은 시장에 대한 접근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는 끈덕지게 고도로 보호된 농업 시장을 열도록 유럽과 일본을 압박했다. 그러나 이번 세기의 첫 10년 동안, 공급에 대한 접근은 잉여 식량의 시대에서 식량 부족이란 새로운 정치로의 세계적 이행이 최우선시되는 쟁점으로 드러났다. 그와 함께 어디서나 기근이 위협하는 것을 막고자 일하던 미국 식량원조프로그램은 주로 미국이 기부를 이끄는 유엔 세계식량프로그램(WFP)으로 대체되었다. WFP는 현재 70개국에서 연간 40억 달러의 예산으로 식량 원조 활동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적인 협력은 적다. 프랑스 대통령 Nicolas Sarkozy -G20의 군림하는 대통령- 는 상품 시장의 투기를 억제함으로써 식량 가격의 상승을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은 유용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식량 불안정의 증상만 다룰 뿐 인구 증가와 기후변화와 같은 근본 원인을 치료하진 않는다. 세계는 현재 농업정책만이 아니라, 식량 안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각각의 에너지, 인구, 물 정책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대신 토지와 물이 부족해짐에 따라, 지구의 기온이 오름에 따라, 세계의 식량 안보가 악화됨에 따라, 식량 부족의 위험한 지정학이 드러나고 있다. 토지 수탈, 물 수탈, 수출국에서 농민에게 직접적으로 곡물을 사는 것은 현재 식량 안보를 위한 세계적 권력투쟁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곡물 재고량의 하락과 기후 변동의 증가와 함께 위험 또한 높아지고 있다. 우린 현재 식량 체계가 언제라도 고장날 수 있는 위기에 매우 가까워졌다. 예를 들어 2010년 모스크바 한가운데에서 일어났던 무더위가 시카고에서 있었다고 생각해보라. 어림수로 러시아에서 예상되는 수확량이던 약 1억 톤에서 40% 감소하여 세계 곡물의 4000만 톤을 잃었지만, 훨씬 더 많은 4억 톤이란 미국 곡물 수확에서 40%가 감소하면 1.6억 톤을 잃게 된다. 세계 곡물의 이월 재고량(새로운 수확이 시작될 때 통 속의 양)은 딱 52일 소비량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 수준은 사상 최저일 뿐만 아니라, 2007~2008년 세계 곡물 가격이 3배가 되었던 단계인 62일치 이월량의 훨씬 아래이다.


그럼 무엇인가? 세계 곡물 시장에 혼돈이 올 것이다. 곡물 가격은 통상적인 기준을 넘어 오를 것이다. 국내의 식량 가격을 억제하려고 시도할 일부 곡물 수출국들은 2007년과 2008년에 했듯이 수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기조차 할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는 러시아 교외에서 일어난 수백의 화재가 아니라, 저소득 곡물 수입국에서 일어난 식량 폭동의 화면과 통제 불능으로 기아가 확산됨으로써 쓰러지고 있는 정부에 대한 보도가 지배해 왔다. 곡물과 석유를 교환하려고 시도해 온 곡물이 중요한 석유 수출국, 그리고 저소득 곡물 수입국들은 손해를 볼 것이다. 실각하는 정부와 세계 곡물 시장에 대한 신뢰가 산산히 부수어져, 세계 경제는 흐트러지기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늘 운이 좋을 수 없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가 악화되는 식량 상황이란 증상에만 집중하는 것 너머로 나아가, 그 대신 근본적인 원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더 적은 물과 비옥한 흙을 보존하면서 더욱 높은 작물 수확량을 생산하지 못하면, 많은 농업 지역은 실행가능성이 중단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농민을 완전히 넘어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기후를 안정시키기 위한 전시 속도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린 식량 가격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더 적은 가족으로 전환시키고 차라리 일찌감치 세계의 인구를 안정시킬 수 없다면, 기아자의 수는 거의 틀림없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행동할 시간은 지금이다 -2011년의 식량 위기가 새로운 정상 상태가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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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화(共進化)는 한 생물 집단이 진화하면 이와 관련된 생물 집단도 진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진화생물학의 개념이다. 공진화는 작게는 아미노산의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서부터 크게는 진화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종들 사이에 일어나는 형질 변화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의 모든 규모에서 관찰된다. 공진화에 관여하는 한 생물의 진화는 이와 관련이 있는 생물에 대해 자연선택의 요소로서 작용하여 진화를 촉발시킨다. 숙주와 기생 생물의 관계, 상리 공생을 하는 생물의 관계 등이 공진화의 사례이다.


공진화는 포식자와 먹이 생물, 숙주와 기생 생물, 공생 생물 등과 같이 생물 간에 일대일 관계가 형성되어 서로 영향을 주는 진화 과정이다. 따라서 기후 변화와 같은 비 생물적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한 진화는 공진화에 포함되지 않는다. 생물의 상호작용이 진화에 뚜렷한 영향을 준 사례가 있는 반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호작용으로 인해 상호작용의 영향이 뚜렷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뚜렷히 드러나는 공진화를 "종 특유의 공진화"(llang|en|species-species coevolution}}이라하고 뚜렷하지지 않는 공진화를 "확산공진화"(영어: diffuse coevolution)라 한다. 자연환경에서는 확산공진화가 보다 일반적인 현상이다.


공진화의 개념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고《난초의 수정》에서 다시 소개되었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리 반 발렌은 1973년 공진화의 한가지 모델로서 붉은 여왕 가설을 제시하였다. 한편, 프랑스의 생물학자 시에리 로데는 적대적 공진화가 성 경쟁을 촉발한다고 보았다.


공생과는 달리 공진화는 생물 간의 상호의존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포식자와 먹이, 숙주와 기생 생물의 경우에서 처럼 서로의 생존을 위해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공진화가 발생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과는 다른 별도의 DNA를 가지고 있어 진핵생물의 발현과정에서 이루어진 공진화의 결과 세포소기관으로 편입되었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를 세포내 공생설이라 한다.


공진화의 개념은 인공생명에도 도입되었는데 데니얼 힐스는 소프트 프로그램 인공생명에 공진화 알고리듬을 사용하였고 칼 심스는 컴퓨터 상의 가상 생물에 공진화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진화하는 가상 생명의 동영상





더불어 산다

조개와 물고기의 공생


물은 물고기의 집일뿐더러 조개의 집도 된다. 온 세상의 강과 호수에 사는 물고기와 조개, 곧, 어패류(魚貝類)는 절묘한 ‘더불어 살기’, ‘서로 돕기’를 한다. 공생(共生), 공서(共棲)라는 것 말이다. 조개는 물고기 없으면 못 살고 물고기 또한 조개 없으면 살 수 없다. 불가사의하다고나 할까,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오면서 ‘공진화’를 한 탓이다. 

 

 

공진화, 조개는 물고기 없이 못 살고 물고기는 조개없이 못 산다

여기서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란 생물들이 서로 생존이나 번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진화하는 것이다. 포식자와 피식자, 기생자와 숙주끼리 한 쪽의 적응적 진화에 대해서 대항적 진화 또는 협조적인 진화를 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긴 세월 질곡의 삶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나 없인 너 못 살고 너 없이는 내가 못 산다? 악연이던 선연(善緣)이던 간에 둘이 이렇게 연을 맺고 산다니 정녕 신묘하다.

 

우리나라 강에 살고 있는 민물고기 210여종(외래종 포함) 중에 유독 납자루아과(亞科)에 속하는 납줄개속(屬) 4종, 납자루속 6종, 큰납지리속 2종 등 12종과 모래무지 아과의 중고기속 3종, 모두 합쳐 15종의 어류가 조개에 알을 낳는다. 물고기는 다 물풀이나 돌 밑에다 알을 낳는데 이 무리들은 기이하게도 반드시 조개에 산란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17종 조개 중에서 말조개, 작은말조개, 칼조개, 도끼조개, 두드럭조개, 곳체두드럭조개, 대칭이, 작은대칭이, 귀이빨대칭이, 펄조개 등 6속 10종의 석패과(石貝科,Unionidae)의 돌처럼 야문 조개들은 유생(幼生)을 물고기에 달라 붙인다. 조개는 껍대기 2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매패라고 한다. 조개를 꼭지 끝이 위로 가게 두고 볼 때 오른 쪽 끝에 수관 두 개가 있다. 위에 자리 잡은 가는 것이 출수관(出水管)이고 아래 굵은 것이 입수관(入水管)이다. 물은 입수관으로 들어와서 아가미를 거쳐 출수관으로 나간다.


두드럭조개, 한국고유종, 멸종위기야생동물1급.<사진: 최병래 명예교수>

 

 

물고기가 조개 속에 알을 낳는다


임실납자루 수컷. 혼인색이 선명하다.<사진: 김익수 명예교수>


앞서 이야기 한 이들 물고기들은 산란시기가 되면 갑작스레 암수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수컷은 몸 색이 아주 예쁜 혼인색(nuptial color)을 띠어 멋쟁이가 된다. 암컷은 여태 없던 산란관(産卵管, 알을 낳는 관)이 항문 근처에 늘어나니 줄을 길게 달고 다니는 산불 끄는 헬기 꼴이 된다. 산란관의 길이는 종(種)에 따라 달라서 큰 조개에 산란하는 놈은 제 몸 길이보다 긴가 하면 작은 것에 산란하는 녀석들은 제 몸길이의 반이 안 된다. 이 산란관은 수란관(輸卵管)이 길어진 것이고, 산란 후엔 몸으로 빨려 든다. 이렇게 멋진 혼인색과 긴 산란관은 발정의 신호다.

 

잘 생기고 건강해야 좋은 짝을 만날 수 있고, 그래야 훌륭한 후사를 보게 되는 것이니 ‘성(性)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곱씹어 말하지만 물고기나 사람이나 후손을 잇지 못하면 도태하고 만다. 헌데, 요상하게도 이 물고기들은 언제나 산 조개에만 알을 낳는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진짜 닮은 가짜 조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물론 조개를 찾아내는 것은 수놈 몫이다. 제가 차지한 조개 가까이에 다른 수컷이 나타났다가는 난리가 난다. 휙~~휙! 주둥이로 들이박거나 몸을 비틀어 후려쳐 텃세를 부린다. 그러다가 관심을 보이는 암놈이 나타나면 가까이 다가가 부라린 눈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방아 찧기, 곤두박질치기, 지그재그로 갖은 교태(嬌態)를 다 부려 암놈을 산란장(조개)으로 유인한다. 다 그런 거지! 곡진한 애정이다.

 

눈치 빠른 암놈은 순간적으로 벌어진 조개수관에 산란관을 꼽아 넣어 알을 쏟고 내뺀다. 어물거리면 조개가 입을 닫으니 동작이 재빠르다.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여기저기에 알을 낳는다. 중고기 무리는 입수관에, 납자루 무리는 출수관에 산란한다. 옆에서 지켜본 수놈은 잽싸게 달려가 입수관 근방에다 희뿌연 정자를 뿌린다. 입수관으로 물과 함께 들어간 정자는 외투강(중고기 무리의 알이 듦)이나 아가미관에 끼어있는(납자루 무리의 알들임) 알을 수정시킨다. 아가미에 가득 끼어있는 물고기 알들이 조개의 숨쉬기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임실납자루 암컷. 산란관이 늘어져 있다.<사진: 김익수 명예교수>

 

 

조개에서 태어난 물고기는 다시 그 조개를 찾는다

물고기의 모정과 부정이 가득 고여 있는 조가비, 조개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다른 자식을 품은 대리모(代理母)가 된 셈이다. 무슨 이런 기구한 운명인가! 조개 몸 속의 알(한두 개에서 30~40개 정도)은 다른 물고기에 먹히지 않고 고스란히 다 자라서 나오는 지라 여읜 자식이 하나도 없다. 강물에는 조개를 통째로 꿀꺽 삼키는 동물이 없지 않은가. 인큐베이터(incubator) 속에서 자라 나온 미숙아(未熟兒)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들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서 알을 적게 낳는다. 예로, 붕어 한 마리가 평균 67,827개를 낳는 것에 비해 이들은 알을 300~400여개 정도밖에 안 낳는다. 이런 것을 보상작용이라고 하는데, 요새 사람들이 유아사망률이 낮아진 것 때문에 출산을 적게 하는 것과 똑 같다. 수정란(受精卵)은 조개 속에서 약 한 달간 자라서 약 1cm정도의 어린 물고기가 되어 밖으로 나온다.

 

이 어린물고기가 다 자라 어른 물고기가 되어 새끼 칠 때가 될라치면 제가 태어난 안태본(安胎本)인 조개를 찾는다. 연어가 모천(母川)을 찾아들 듯이 자기를 탄생시켰던 바로 그 조개들을 찾아가 알을 낳는다. 유전인자(DNA)에 각인되어 있는 것으로 일종의 귀소본능이요 회귀본능인 것이다. 너무나 신비로운 어류들의 비밀스런 생태다.

 

 

조개 유생은 새끼를 낳으러 온 물고기를 따라 여행을 떠난다 

아무튼 세상에 공짜 없다. 반드시 갚음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조개가 물고기에게 신세를 질 차례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물고기와 조개의 산란시기가 거진 반 일치하니 말이다. 석패과 조개는 어린 물고기 시절 한 달 가까이 붙어 살았던, 돌아온 어미 물고기(母魚)의 향긋한 젖내를 잊지 못한다.

 

글로키디움. 왼쪽 위쪽으로 유생사를 볼 수 있다.<사진: 권오길 명예교수>


물고기가 조개에 산란키 위해 주변에 얼쩡거리면 재빨리 알을 훅 훅! 내뿜는다. 여기서 '알'이라고 했지만, 실은 이미 꽤나 발생이 진행한 1.5mm가량의 '유패(幼貝)'로, 이를 갈고리라는 뜻의 ‘글로키디움(glochidium)'이라 부른다.

 

클로키디움에는 이미 두 장의 여린 껍데기가 있고, 그 끝에 예리한 갈고리(hook)가, 그 갈고리에 수많은 작은 갈고리(hooklet)가 있다. 그 갈고리로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비늘을 쿡 찍어 물고 늘어진다. 그뿐 아니다. 글로키디움은 가늘고 긴 유생사(幼生絲,larval thread)라는 실을 늘어뜨려 놓는다. 일종의 올가미인 셈인데, 종에 따라서는 몸길이의 60배나 된다. 물고기가 근방을 지나치면서 올가미에 걸리면 몸을 감아서 무전여행(無錢旅行)을 한다. 

 

물고기는 숙주이고 글로키디움은 기생충이다. 녀석들은 물고기의 몸 속 깊숙이 헛뿌리(haustorium)를 박아서 체액이나 피를 빤다. 글로키디움이 더덕더덕 떼거리로 많이 달라붙으면 까뭇까뭇 육안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러면 숙주인 물고기가 기진맥진 죽는 수도 있고, 2차 세균 감염으로 생채기가 심해 형편없는 몰골이 되기도 한다. 정말 갚음하기 어렵다! 한편 조개마다 글로키디움의 크기나 모양이 다르기에 종(種)분류의 검색(檢索)열쇠(key)가 된다. 새끼를 물고기에 붙여놓은 조개는 제 새끼가 다른 동물들에게 잡혀 먹힐 걱정이 없다. 게다가 기동성 좋은 물고기 배달부가 종횡무진 새끼들을 멀리까지 옮겨주니 얼마나 좋은가. 신천지를 개척하는 유리한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을 하는 것이다. 조개 유생은 역시 근 한 달간 탈바꿈하여 조개 모양새를 갖추면 강바닥에 떨어져 거기서 살아간다. 제2의 탄생인 것이다.

 

 

조개와 물고기의 주고 받기는 숙명적 만남, 뗄 수 없는 상생이다

이들 두 동물의 주고받기는 유전인자에 프로그래밍(programming)되어 있는 것. 숙명적인 만남, 뗄 수 없는 상생(相生)이다. 그래서 강에 조개가 절멸하면 물고기가 잇따라 전멸하고 물고기가 없어지는 날에는 조개도 따라 사라진다. 도미노 같은 것이다. 찬탄이 절로 나온다. 서로 없이는 못사는 이런 관계를 두고 인연이라 하는 것. 모든 사물은 다 연에 의해서 생멸(生滅)한다. 넌 물고기 난 조개, 부디 우리의 귀한 연분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



생물 환경은 ‘공진화’하므로 물리적 환경 변화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나는 지난 글에서 자연선택이 생명체를 완벽하게 만들 수 없는 첫째 이유로 환경 변화를 꼽았다. 생물의 환경이 늘 변한다고 말할 때 ‘환경’은 온도, 습도, 일조량 등의 이른바 물리적 환경(physical environment)이다. 하지만 생물의 환경에는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생물들이 형성하는 생물 환경(biotic environment)도 있다. 생물 환경에 대비하여 물리적 환경은 다른 말로 비생물 환경(abiotic environment)이라고도 한다. 비생물 환경과 생물 환경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생물 환경은 그것이 둘러싸고 있는 생물과 함께 변화한다, 즉 공진화(coevolution)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물리적 환경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공진화의 예로 가장 잘 알려진 관계는 단연 현화식물과 그들에게 꽃가루받이(pollination)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꿀을 얻는 벌, 나비, 박쥐, 새 등의 동물이 맺고 있는 관계이다. 꽃가루받이는 서로 이득을 주고 받는 상리공생(mutualism) 형태의 공진화이지만 서로 쫓고 쫓기는 관계인 포식(predation)과 기생(parasitism)의 상대들도 끊임없이 밀고 당기며 함께 진화한다. 날로 속도가 느는 치타의 추격을 따돌리려 영양도 점점 빨라지고, 늘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여 공격하는 기생생물에 대항하여 기주생물(host)도 새로운 유전자 조합으로 면역력을 키운다. 이 관계는 마치 옛날 소련과 미국이 벌였던 군비경쟁을 방불케 한다. 소련이 새롭고 더 강력한 미사일을 개발하면 미국은 그걸 공중에서 격침시킬 수 있는 요격미사일을 개발하곤 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와 흡사하게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군비경쟁을 진화적 군비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이라고 부른다.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

"...문화는 공동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지만 이때 개별 마음은 유전적으로 조성된 인간 두뇌의 산물이다. 따라서 유전자와 문화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연결은 유동적이다. 얼마나 그런지는 불명확하지만 말이다. 또한 이 연결은 편향되어 있다. 즉 유전자는 인지발달의 신경회로워 규칙적인 후성 규칙(後成規則, epigenetic rules)을 만들어 내고 개별 마음은 그 규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직한다. 마음은 태어나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성장한다. 물론 자기 주변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런 성장은 개체의 두뇌를 통해 유전된 후성 규칙들의 안내를 받아 이뤄진다.


 문화는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부분으로서 각 세대 구성원 개인의 마음 속에서 집합적으로 재구성된다. 구전 전통이 글쓰기와 예술을 통해 증보되면 문화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고 세대를 건너 뛸 수도 있다. 그러나 후성 규칙이 주는 영향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인 것이며 제거될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하게 유지된다.


어떤 이들은 주변 문화와 환경에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하도록 해 주는 후성 규칙들을 대물림한다. 그리고 그런 규칙을 전혀 갖지 않은 사람이나 있어도 약한 규칙을 가진 이들은 생존과 번식에서 밀려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좀 더 성공적인 후성 규칙들은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 규칙들을 규정하는 유전자들과 함께 개체군 내에서 널리 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인간 두뇌의 해부/생리적 구조가 진화해 왔듯이 행동도 자연 선택에 의해 유전적으로 진화해 왔다.


 유전적 속박의 본성과 문화의 역할은 이제 다음과 같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어떤 문화 규범은 경합하는 다른 규범들보다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한다. 이때문에 문화는 유전적 진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화하지만 그 속도는 일반적으로 훨씬 더 빠르다. 문화적 진화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전자와 문화 사이의 연결은 더 느슨해진다. 하지만 그런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는 법은 없다. 문화는 정확한 유전적 처방 없이 고안되고 전달되는 정교한 적응들을 통해 완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에드워드 윌슨, 통섭, 232-233p 



공진화의 개념 확장과 산업적 의미

공진화 개념이 발전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공진화의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은 기업 및 산업의 발전에 대한 통창력을 제공하여 준다.

 

내성의 증가에 대한 대비

인체와 세균과의 관계도 경쟁적 공진화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류는 1928년 페니실린의 발명 이후 세균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듯이 보였으나, 세균이 다시 진화하여 어떤 항생제로도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인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하였다. 따라서 항생제를 남용하여 세균이 진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는 조직 및 사회 발전에도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악 등 조직이나 사회에서 억제하고 싶은 행동이나 조직들도 억제책에 대응하여 진화할 수 있으므로, 초기에 너무 강한 억제 정책을 시행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악 억제책이 사회악을 억제하기 보다는 다른 곳으로 이전시킨다는 ‘풍선 효과’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정책을 입안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급진적 변화의 부작용에 대한 대비

공진화의 사례 연구는 오랜기간 공진화한 부분들은 예상하기 어려운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제거하였을 경우,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표적인 연구가 기생충과 인체의 공진화에 관한 연구이다. 영국과 베트남 연구진은 기생충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이 알레르기 발생률이 매우 낮은 것을 파악하고, 이들에게 구충제로 기생충을 제거한 결과 집먼지진드기에 대한 알레르기가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기생충이 수백만 년 동안 인간과 공진화하면서 인체의 면역반응을 무디게 해 더 오래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에, 몸 안에 기생충이 없어지면 면역체계가 균형을 잃으면서 알레르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기업이나 사회에서 급진적인 개혁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점을 깊이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2006년 나이키는 축구공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도 어린이들의 노동을 착취한다는 비난에 직면하였다. 이후 나이키는 수제 축구공을 하청생산하던 인도의 사가 스포츠가 노동시간과 근로 환경 기준 등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을 종료시켰다. 사가의 형편없는 경영으로 나이키가 어린이 노동과 다른 노동위반 행위와 관련 있는 기업처럼 인식되는 점에 대한 부담이었다. 사가 스포츠 노동력의 70%가 나이키 제품 생산을 위해 고용되었기 때문에 나이키와의 계약 종료는 이 어린이들에게 더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니스벳(Nisbett)과 코헨(Kohen)은 미국의 남부 지역이 북부보다 폭력적인 이유를 사례로 문화가 유전자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였다. 미국 남부는 이민 초기에 주로 목축업자들이 정착하였고, 목축업의 특성상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력 등의 공식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웠고, 소유하고 있는 동물이 전 재산이기에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어떠한 위험이라도 감수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부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라든지, 모욕적인 언행에 대항할 때는 기꺼이 폭력을 행사하는 경형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명예를 중요시하는 문화(Culture of honor)'로 인하여 자신이나 가족 등에 대한 모욕에 대항하기 위한 범죄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또한 통제된 상황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남부 사람들은 모욕을 당했을 때 북부 사람들에 비해 코르티졸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훨씬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나서, 문화가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 것을 증명하였다. 이러한 ‘명예를 중요시하는 문화(Culture of honor)'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폭력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은 예상외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인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보이드(Robert Boyd)와 피터 리처슨(Peter J. Richerson) 교수는 문화를 인류의 진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생물학적인 개념으로 보고, 유전자의 변형은 심리학적, 동물행동학적 요인뿐 아니라 문화적 환경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즉 인간을 개개인이 모인 집단인 개체군으로 보고, 이 개체군의 문화가 다시 그 안의 개개인을 변형하면서 인류가 진화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 행동을 유전적ㆍ문화적ㆍ환경적 원인의 상호 작용으로 설명하였다. 통섭(consilience)'의 주창자로 유명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gene-culture coevolution)’을 주장하면서 문화의 단위(모방자)가 의미 기억의 연결점과 그것의 뇌 활동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말하였다. 인간의 마음이 작용해 만들어진 문화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지고 인간의 유전자는 다시 인간의 마음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이며, 이 과정을 통해 마음도 문화도, 유전자도 진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즉, 문화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가 서로 피드백 관계로서 공진화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확보를 위한 준비

예측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하여서는 조직이나 기업내에 다양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경영전략에서는 순혈조직으로 구성된 경영진이 운영하는 기업들은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경영진이 운영하는 기업들보다 변화에 대한 적응을 잘 하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이러한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공진화는 많은 역할을 한다.


지구에 다양한 광물이 존재하는 것도 생명체와 광물간의 공진화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태양계 행성이 만들어지던 45억 6천만년 이전에는 겨우 60여 종의 광물만이 존재했지만, 지구 행성이 생긴 뒤 화산 폭발과 물의 작용 등으로 광물의 종류가 수백 종으로 늘어났고, 이후 원시생물이 탄생하고 바다에 조류와 말류가 번창하면서 광합성 작용으로 산소가 배출됐고, 대기 중에 자유산소(O₂)는 금속산화물의 출현을 촉진했다. 조개류가 죽고 나서 쌓이며 생긴 석회 광물도 지구에 흔하게 됐으며, 미생물의 신진대사를 통해 생긴 점토 광물도 지구에서만 볼 수 있는 광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억 년 전 무렵에 지구에 금속산화물을 만들 만큼 충분한 산소가 만들어진 후, 4,200여종인 지금의 상태로 진화해 왔다.


카우프만(Kauffman)은 공진화 원리를 기업과 기업, 혹은 기업과 시장 또는 기업과 소비자 등 개체 수준을 넘어선 집단 범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으로까지 확장되었고, 비생명체인 기술 영역까지 확대하였다. 그는 생명의 기원에서 시작해서 수정난의 형태형성에 이르기까지, 캄브리아기의 대번성에서 기술혁명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주제들의 근저에 깔려있는 질서를 보여주면서 공진화 원리를 설명하였다.



자기조직화

'자기조직화는 복잡성 과학의 이론을 토대로 하여 출현한 이론이다.


자기조직화를 행정시스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란 시스템의 구조가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관련이 없이 스스로 혁신적인 방법으로 조직을 꾸려나가는 것을 말한다. 즉, 한 시스템안에 있는 수많은 요소들이 얼기설기 얽혀 상호관계나 복잡한 관계를 통하여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자기조직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일리아 프리고진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는 점균류 곰팡이를 관찰하여 자기조직화 이론을 도출해내었는데, 점균류 곰팡이는 영양분이 모자라게 되면 서로 신호를 보내어 수만 마리가 일제히 요동을 시작하여 한 곳에 모여 어떤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그들은 응집 덩어리를 형성하고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기어다니며 영양을 섭취한다. 이 후에, 환경이 다시 나아지면 다시 흩어져서 단세포 생물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조직화 이론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혁신을 주도하는 세계의 흐름속에서 주목 받는 이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동물행동학의 근원은 유전자에 있다

윌슨의 가장 주목할 만한 이론 중의 하나는 많은 동물 집단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이타적 행위조차도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진화되었을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다윈의 진화 이론에 의하면 자연선택은 각각의 생물 개체에 작용하여 그 개체로 하여금 생식의 기회를 증가시키는 육체적․행동적 특징들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한 생물체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타적 행위는 자연선택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렇지만 윌슨은 그런 이타적 행위들이 사실상 서로 밀접한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 집단 속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비록 자신은 죽지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다른 개체들에게 보다 많은 생존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동물들의 이타적 행위도 진화적 입장에서 본다면  결국 후손들에게 더 많은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행위라는 것이다. 윌슨은 진화의 전략이 개체보존이 아닌 유전자 보존에 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이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선택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확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행동의 대부분은 각 개체들에 내장된 유전자들에 의해서 통제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개미들이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엄격한 위계질서를 구축하고 고도의 분업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나 대부분의 동물들이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행위나 최고의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수컷끼리 생명을 걸고 혈투를 하는 행동 등이 모두 그 내면에는 자신이 소유하는 유전자를 보다 많이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전략전술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이 등장한 이래 1970년대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던 이유는 분명하다. (1975년 이후 30년 동안 사회생물학을 주제로 해서 발간된 책만 해도 수백 권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우리 인간도 동물계의 일원인 분명한 바, 인간이라고 해서 사회생물학이 제시하는 이론에서 자유로울 수는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회생물학은 불가피하게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유발하게 되었는데, 이런 논쟁의 중심에 선 연구자의 입장에서 윌슨은 1978년 또 한번 화제의 책 <인간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를 내아서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책의 발간으로 윌슨은 처음으로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의 두 번째 퓰리처상 수상은 1990년 <개미들(The Ants)>의 출간으로 이루어졌다.



인간행동 역시 결국은 진화의 산물이다

<사회생물학>과 <인간본성에 대하여>라는 두 책에서 윌슨은 일관된 입장을 피력한다. 인간은 행동과 사회 구조를 획득하는 성향을 유전에 의해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데 이런 성향은 말하자면 대개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특성에는 남녀간의 분업, 부모자식간의 유대, 가까운 친척들에게 행하는 고도의 이타성, 근친상간 기피, 여러 다양한 윤리적 행동들, 이방인에 대한 의심, 부족주의, 집단내 순위제, 남성 지배 등이 포함된다. 사람들은 비록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선택을 행사하지만 이런 결정에 관계하는 심리적 발달의 경로는 비록 우리 자신이 아무리 다른 길로 들어서고자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우리 몸 속에 깃들어있는 유전자들에 의해서 어떤 일정한 방향을 지향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다.


윌슨에 따르면 인류 문화가 제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결국은 이런 특성을 향해 부득이 수렴되는 것이 당연하다. 예를 들어서 서울 도심에 사는 사람이나 남태평양의 원시부족의 일원이나를 막론하고 설령 그들이 수만 년을 격리되어 있었다고 해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공통적인 유전자들로 인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간본성에 대한 이런 윌슨의 관점은 1970년대의 시대조류에서 볼 때 대단히 예외적인 관점이었다. 사실상 서구사회에서는 20세기 내내 천성인가 양육인가 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당시에는 양육론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와중에 제기된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천성론에 더할 수 없는 힘을 실어주게 되었는데, 이 논쟁은 지금까지도 곧잘 과학논쟁의 주제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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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fractal)은 일부 작은 조각이 전체와 비슷한 기하학적 형태를 말한다. 이런 특징을 자기 유사성이라고 하며, 다시 말해 자기 유사성을 갖는 기하학적 구조를 프랙탈 구조라고 한다. 브누아 만델브로가 처음으로 쓴 단어로, 어원은 조각났다는 뜻의 라틴어 형용사 ‘fractus’이다. 프랙탈 구조는 자연물에서 뿐만 아니라 수학적 분석, 생태학적 계산, 위상공간에 나타나는 운동모형 등 곳곳에서도 발견되어 자연이 가지는 기본적인 구조이다. 불규칙하며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상을 배후에서 지배하는 규칙도 찾아낼 수 있다. 복잡성의 과학은 이제까지의 과학이 이해하지 못했던 불규칙적인 자연의 복잡성을 연구하여 그 안의 숨은 질서를 찾아내는 학문으로, 복잡성의 과학을 대표하는 카오스에도 프랙탈로 표현될 수 있는 질서가 나타난다.


프랙탈은 수학적 도형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프랙탈 도형은 종종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재귀적이거나 반복적인 작업에 의한 반복되는 패턴으로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프랙탈 도형에는 만델브로 집합, 칸토어 집합, 시에르핀스키 삼각형, 페아노 곡선, 코흐 눈송이 등이 있다. 프랙탈은 결정론적이거나 추계학적일 수 있으며, 카오스 시스템과 연관지어 발생할 수도 있다.


프랙탈 기하학은 프랙탈의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 분야의 하나이다. 이는 과학, 공학, 컴퓨터 예술에 적용되기도 한다. 자연계에서도 프랙탈 구조가 자주 발견되며, 구름, 산, 번개, 난류, 해안선 및 나뭇가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프랙탈은 실용적인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며, 현실 세계의 매우 불규칙한 물체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쓰일 수 있다. 프랙탈 기법은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는 물론, 기술적으로 이미지 압축 등에서도 사용된다.








유래

1872년, 칼 바이어슈트라스는 전역에서 연속이지만 미분 가능한 점이 없는 함수를 소개했다. 이 함수는 바이어슈트라스 함수라고 불리며, 이후에 프랙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883년에 게오르그 칸토어는 칸토어 집합이라는 예시와 함께 프랙탈의 개념을 소개했다. 한편 1904년에는 바이어슈트라스 함수의 추상적 정의에 만족하지 않은 헬게 폰 코흐가 코흐 곡선을 만들었으며, 바츨라프 시에르핀스키는 1915년에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을, 1916년에 시에르핀스키 카펫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런 자기 닮음인 곡선에 대한 아이디어는 1938년에 폴 레비가 발표한 C 곡선으로 이어진다. 한편 복소평면상의 반복된 함수에 관한 활발한 연구들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앙리 푸앵카레, 펠릭스 클라인, 피에르 파투, 가스통 쥘리아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없이 그들이 발견한 대상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프랙탈(fractal)이라는 용어는 1975년 만델브로트(Benoit B. Mandelbrot)에 의해 고안되었다. 만델브로트는 1967년 영국의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영국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선의 총 길이는 얼마인가」라는 논문을 통해 프랙탈 이론을 설명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영국의 프랙탈적인 해안선(리아스식 해안선)의 길이는 어떤 단위의 자(尺)로 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증명했다. 프랙탈은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으로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반복하는 순환성(Recursiveness)의 특성을 가진다. 또,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생성될 수 있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특징

프랙탈의 대표적인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자기 유사성은 부분을 확대할 때 전체와 닮은 모습을 보여주는 성질이다. 프랙탈 도형은 '자기 닮음'의 성질을 지닌 도형이다. 크기를 변화시켜도 같은 형태를 띄며 반복한다. 카오스 안에서도 찾을 수 있는 질서있는 구조이며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유사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이다. 이는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순환성(recursiveness)’이라는 속성을 기하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프랙탈 기하학에서는 고전적 기하학에서와 달리 특정된 크기나 축척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복이란 동일한 요소가 둘 이상 배열되는 상태이다. 형태와 형태사이, 공간과 공간사이 동일한 형태와 공간이 나타나 연속적인 패턴을 형성한다. 프랙탈의 반복성을 잘 보여주는 예로는 시에르핀스키 가스켓과 시어핀스키 카펫이 있다.

프랙탈에는 질서가 있으나 혼돈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규칙적이지만 불규칙적이고 무작위적인 것이 프랙탈의 특징 중 하나이다. 무작위성은 복잡성의 세계를 잘 나타내주며 실제 존재하는 계의 예측불가능함과도 관련이 있다. 프랙탈의 무작위성은 불규칙한 뿌리, 혈관, 신경계 등에서 예를 찾을 수 있다.


소수 차원을 갖는다. 프랙탈은 공간을 불완전하게 사용하므로, 프랙탈 공간은 정수의 차원이 아닌 소수 차원의 공간으로 간주된다. 힐버트는 3차원 유클리드 공간을 이라보고, 이를 확장하여 n차원의 공간 을 설정하며, 여기서 n을 자연수에서 실수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개념을 프랙탈 차원이라고 한다. 프랙탈 차원은 기존의 유클리트 기하학이 설명하지 못한 도형의 복잡도를 수치화할 수 있다. 분수부분이 커질 수록 도형의 복잡성이 늘어나며, 복잡한 도형이 된다. 또한 프랙탈 차원 개념을 통해, 1차원과 2차원 사이, 2차원과 3차원의 사이 등의 기존의 차원 사이를 매우고 있는 소수 차원이 설명 가능해졌다.



분류

프랙탈을 네 가지 생성 기법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시간매개형 프랙탈(Escape-time fractals, 궤도 프랙탈): 대개 복소평면 상에서, 각각의 점이 발산하는 속도를 색으로 나타낸 이미지. 만델브로 집합


반복함수계(Iterated function system): 기하학적 대체 규칙에 의해 만들어진 도형. 칸토어 집합, 시에르핀스키 삼각형과 시에르핀스키 카펫, 코흐 곡선(코흐 눈송이), 페아노 곡선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이한 끌개(Strange attractors): 주어진 사상이나 방정식의 해를 이용해 초기값을 반복적으로 변환한 것.


무작위적 프랙탈(Random fractals): 결정론적이지 않고 추측 통계학적으로 만들어진 것.


이들 중 기하학적 프랙탈만이 완벽한 자기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만델브로 집합은 느슨하며, "통계적인" 자기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확대할 때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프랙탈은 자기 유사성의 강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뉠 수도 있다.


준-자기유사적 프랙탈(통계학적 프랙탈): 자기 유사성의 강도가 가장 낮은 것이며 자연에서 찾은 프랙탈처럼 부분과 전체가 대략적으로 비슷한 것이다.


완전-자기유사적 프랙탈(규칙적 프랙탈): 자기 유사성의 강도가 가장 높은 것이며, 부분과 전체의 모양이 정확하게 같다. 규칙적 프랙탈의 예로서 시어핀스키 삼각형과, 코흐 곡선이 있다.


시간매개형 프랙탈

만델브로 집합과 줄리아 집합은 아래 점화식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z와 c는 복소수이다. 만델브로 집합은 정해진 c에 대해 위 점화식을 수렴시키는 z의 초기값을, 줄리아 집합은 정해진 z의 초기값에 대해 위 점화식을 수렴시키는 c를 의미한다. 발산 속도에 따라 점의 색을 다르게 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프랙탈의 사례

자연에서는 자기 닮음으로 표현될 수 있는 유한한 구조물들이 자주 발견된다.


번개: 번개는 같은 길을 반복해서 계단을 이루듯이 방전한다. 습도,기압,온도 등 여러 조건에 의해 복잡하게 경로가 결정되기 때문에, 일직선이 아니고 구불구불한 형태를 지닌다. 불규칙해 보이지만, 전체적인 모습과 가지 하나하나가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즉, 자기닮음의 프랙탈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강줄기: 강의 부분과 전체는 닮았다. 나일강의 모습과 한강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비슷하고, 어느 지역에서건 강의 모습은 비슷한 형태를 지닌다. 지류와 전체적인 강줄기의 모습은 닮았다. 수많은 비가 내리면서 산에 많은 분기점이 생긴다. 이 하나하나가 작은 강이 되어 큰 줄기로 만났다가 작은 줄기로 뻗어나가는 행위를 반복한다.



나무: 나무는 큰 가지가 나뉘어지면서 여러 가지가 생기고, 이 작은 가지에 또 여러 작은 가지들이 갈라 진다. 나무는 저마다의 프랙탈 차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나무의 프랙탈 형태는 물과 영양분의 운반을 전체에 고르게 보내는 역할을 한다.


뇌의 표면: 뇌의 표면에는 여러 주름이 져있다. 커다란 주름에 다시 작은 주름들이 계속되어 나간다. 지적 능력의 향상을 위해 여러 주름으로 최대한 공간을 만들어서 뇌세포를 배치시킨다. 이런 뇌의 주름의 패턴은 여러 주름이 자기닮음의 형식으로 뻗어나간다는 점에서 프랙탈의 형식을 띄고 있다.



프랙탈과 불교 철학

20세기 과학은 불교의 사상에는 '제법무아', '일즉다 다즉일', '제행무상'이라는 철학이 있다. 이 세가지 철학은 부분의 부분, 혹은 그 부분을 반복해서 확대해 가도 그 구조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자기유사성'을 지닌 카오스와 맥을 같이 한다.


'제법무아'는 모든 형상에는 본질이 없다는 철학이다. 프랙탈은 수많은 자기복제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원본과 복제본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지금 시점의 하나의 것은 이전의 것의 복제본이고 앞으로의 것의 원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랙탈에는 절대적, 유일한 본질한 사라지고, 수많은 복제본들이 있다. 이런 면에서 '제법무아'와 프랙탈은 상통한다.


'일즉다 다즉일'은 하나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곧 하나라는 철학이다. 프랙탈은 부분이 곧 전체임을 나타낸다. 나무의 예에서 봤듯이, 하나의 줄기는 전체의 나무 줄기의 한 부분이지만, 그 모양과 형태는 유사하다. 프랙탈에서 부분은 전체의 모습을 하고 있고, 전체는 부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의 일즉다 다즉일의 개념과 일치한다.


'제행무상'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해가므로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철학이다. 프랙탈은 일정한 비율로 축소되거나 확대되어 간다. 한 순간이 고정되어 있는 정적 이미지가 아닌, 지속적으로 자기 유사성이 이루어지는 동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을 따로 떼어놓고 보거나 하나의 찰나의 순간만 보는 것으로는 제대로 프랙탈을 관찰할 수 없다. 프랙탈의 규칙적인 요동의 모습 자체를 있는 그대로 봐야하고 또, 이렇게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제행무상'과 프랙탈은 맥을 같이 한다.



응용 분야

프랙탈이나 카오스 이론을 적용한 기술들은 인공지능,시뮬레이션,우주분야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험적 예술등에도 적용되고 있다.


프랙탈 시각예술

프랙탈의 형태적 특징을 기하학적 조형성으로 이용하여 만든 디자인이다. 프랙탈의 성질은 형태적으로 "반복", "자기유사성", "회전"이며, 질서, 통일, 반복, 조화같은 기본적인 디자인 원칙하에 프랙탈의 형태적 특성이 나타난다.


프랙탈 디자인에서 자기유사성은, 기본적 형태요소의 크기를 늘리거나 줄이면서 배열되는 데에서 드러난다. 이런 기본형태요소는 끝없이 반복되며, 이 가운데서 통일성과 질서 조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느끼게 해준다.


프랙탈 디자인은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같은 컴퓨터 그래픽 툴로 만들 수 있다. 그래픽 툴로 프랙탈 디자인을 만드는 방법은 기본형태를 복사해서 크기를 점점 줄이거나, 점점 늘리면서 반복해서 확장시키는 것이다.


프랙탈 디자인이 적용된 대표적인 예로 John Maeda 가 디자인한 Morisawa poster 가 있다.





프랙탈 음악

Richard F.Voss와 John Clarke가 물질직인 소리 신호에 대한 수학연구를 하였다. 그들은 연구에서 파워 스팩트럼(노이즈) 중에서 주파수 변화량 f에 따라 1/f 특성을 가진 pink noise가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적인 자연현상과 유사한 형태를 가짐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1/f 패턴을 갖는 음악을 프랙탈 음악이라 한다.


Voss와 Clarke는 pink noise (프랙탈 음악)이 적절한 보통의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프랙탈 음악도 자연에서의 프랙탈처럼 전체 구조와 유사한 작은 구조가, 전체 안에서 반복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프랙탈적인 공간채움과 조화로운 음 연결도 프랙탈 음악의 특성이다.


프랙탈 음악에는 바하가 작곡한 클래식부터, 컴퓨터로 작곡한 현대 음악 등이 있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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