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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철학의 왕국이었다.



인문학으로 살아가기 - 전 세계인이 조선선비들에게 배워야 하는 이유


조선시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영적이고 진보적인 사회였다. 이 글에서는 조선의 알려지지 않는 좋은 면들을 재조명함으로써 한민족의 전통문화를 복구해보고자 한다.


1.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영적인 민족이 사는 국가였다

옛날 조선에서는 ​아이가 새벽에 오줌을 싸면 다음 날 동네에서 소금을 받아오게 시켰다. 얼핏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미신적인 풍습 같지만 여기에는 조선인들의 심오한 사상이 반영되어 있었다. 음양오행상 새벽은 수기(水氣)가 지배하는 시간대이므로, 수기운이 약하면 신방광 계통에 이상이 온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이 때 오줌을 지리기가 쉬운 것이다. 반면, 염기의 양이온인 Na+와 산의 음이온인 Cl-가 만나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소금은 활동전위를 발생시켜 신경물질을 전달하고, 삼투압을 조절하고, 신체 내 노폐물을 해소시키는 기능을 하는 원소인데 오행상 생명력을 주관하는 수기로 본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아이의 부족한 수기를 채우라는 의미에서 아침에 이웃집을 돌며 소금을 받아오게 한 것이다. 순수한 연역적 추론(음양오행)에 의거한 조선인들의 과학성이 놀랍지 않은가?


조선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영적인 민족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사람들만큼  이음양오행 이론을 철저하게 지킨 민족이 없었다.

먼저 음양이 합하여 이루어진 태극은 한민족이 예로부터 건물, 가구, 일상용품에 애용하는 문양이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국기로 이어지고 있다. 

 

오행은 목(木, 봄;동쪽), 화(火, 여름;남쪽), 토(土, 중앙), 금(金, 가을;서쪽), 수(水, 겨울;북쪽)의 다섯 기운이 서로 상생하고 상극하며 우주의 조화를 이룬다는 사상으로, 오행설에 따라 유난히 5를 좋아했던 민족이 한민족이다.

​부여와 고구려의 5부족, 고구려의 중앙의 5부와 지방의 5부, 백제의 5부 5방제의 행정구역, 통일전 신라의 지방 5주제, 발해의 5경 제도, 조선의 한양을 5방으로 나눈 것과 장시가 5일장으로 열린 것 등이 오행설과 관련이 있다. 오행설은 상생과 상극의 원리 속에서 우주만물이 생성, 변화, 발전한다는 이론이지만, 한국인은 토(황제)-목(하)-금(은)-화(주)-수(진)-토(한)로 상극적이고 투쟁적인 중국보다 평화적인 상생의 측면을 선호한다. 그래서 사람도 상생의 순서에 따라 태어난다고 보아 목→화→토→금→수의 원리로 이름을 짓는다. 이것이 항렬인데 예를 들어 조부대에 흠(欽)과 같이 쇠금(金)변으로 이름을 지었으면 아들대의 항렬은 연(淵)과 같이 물 수변이 들어가게 짓고, 손자대는 동(東)·상(相)·식(植)자와 같이 나무목(木)변이 들어가게 작명을 한다.

한편 왕조의 교체도 상극의 논리인 중국과 달리 상생논리로 이해하여 신라는 금, 후고구려와 고려는 수, 조선은 목의 왕조로 인식해 각 왕조는 이를 상징하는 9, 6, 8의 숫자를 애용하였다. 예를 들어 박-석-김으로 왕위가 교체되다가 김(金)으로 왕위가 세습된 신라는 금(4, 9)을 선호하였는데, 지방의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고, 중앙의 군사도 9서당으로 편재하여 금의 왕조임을 나타내었다. 수는 후고구려와 고려가 사용하여 후고구려의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로 사용했고, 고려는 전국을 6도(5도 양계)로 나누었다. 또한 숙종때 수도를 개경에서 지금의 서울인 남경으로 천도하고자 하였으나 남경의 주인은 목성을 가진 자가 주인이 된다는 설 때문에 수도를 옮기지 못하였다. 인종때 일어난 이자겸의 난(1126년)도 목성인 이씨로 정권을 잡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목성을 가진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하게 된다. 

목(木, 3·8)을 표방한 조선은 유난히 3자를 선호했는데. 3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 삼사(홍문관·사헌부·사간원), 삼법사(형조·사헌부·한성부), 3년마다 자(쥐띠해), 오(말띠해), 묘(토끼해), 유(닭띠해)년에 과거를 보는 식년시를 시행하고, 전국을 8도로 나눈 것과 장시가 5일장으로 열린 것은 모두 음양오행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오행을 오상(인·의·예·지·신), 방위(동·서·남·북·중), 빛깔(청·백·적·흑·황), 짐승(청룡·백호·주작·현무·황룡), 오장(간장·폐·심장·신장·비장)과 관련시켜 받아들이는 자세도 매우 진지했다. 

사실상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서울)은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세워진 계획도시였다. 북쪽에 백악산(북현무)을 주산으로, 왼쪽에 낙산(좌청룡),  오른쪽에 인왕산(우백호), 남쪽에 남산 목멱산(남주작)이 서 있었다. 


가장 중요한 궁전인 경복궁의 3개 문을 차례로 지나면 왕의 정사를 돌보던 근정전이 나온다. 근정전 중앙은 토(土), 황제의 자리다. 그 뒤쪽 깊숙한 곳에 왕비의 침실인 교태전이 있다. 교태전의 모습은 태극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천지의 음양의 기운이 한데 어울려 만물의 근원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동쪽에는 세자의 거처인 동궁이 있다.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곳으로 오행의 목(木)을 뜻하며, 세자는 자라서 왕이 된다는 뜻이다. 서궁(경운궁)은 경복궁 서쪽에 위치하는데 대비의 거처로, 대비는 지는 해라는 의미로 오행의 가을(金)을 나타내고 있다. 

궁실의 ​대문은 우주의 기운이 흐르는 입구로 건춘문, 오행에서 목(木)으로 봄을 마주하는 문이다. 서쪽에는 영추문, 오행의 금(金)으로 가을을 보낸다는 뜻이다. 


광화문을 지키고 있는 한쌍의 해태의 눈은 관악산을 응시하고 있는데, 왜 광화문 앞에 세워진 것일까? 해태는 물을 관장하는 신으로써 물은 오행상 수(水)에 해당되면서 한강 너머의 관악산은 화(火)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수(水)와 화(火)가 있어서 물로써 불을 제압하기 때문에 해태상을 양쪽으로 세워 관악산의 화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남대문의 옛 이름은 숭례문(崇禮門)으로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이다. 예(禮)는 오행중 불인 화(火)로써 방향으로는 남쪽을 나타내는데, 숭(崇)은 글자의 모습 자체가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현판이 세로로 걸려 있는 이유는, 세로 현판으로서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한 이열치열의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임진왜란과 6·25전쟁도 무사히 넘겼지만 2008년 2월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북쪽의 동대문의 현판 역시 특이하다. 다른 곳의 현판이 세 글자인 데 비해 흥인지문(興仁之門)은 네 글자다. 한양의 가장 큰 약점은 동쪽 약산의 기세가 약하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동대문을 통해 들어오는 왜구들을 통해 서울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1869년 고종 때 '흥인문'을 다시 지으면서 이름에 산맥을 뜻하는 '갈 지(之)' 자를 넣어 좌청룡의 약한 기운을 보강했다고 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음양오행에 따라 설계된 것이 왕궁이 터를 잡고 있던 강북이었기 때문에 강남보다 지진 빈도가 현저히 낮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한국의​ 산천 곳곳에서도 음양오행 사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산은 그 기세에 따라 양산과 음산으로 나뉘어 진다. 탑의 둥근 모양은 음탑, 각진 모양 양탑이라 불린다. 남근석은 대표적인 양의 기운이다. 양기를 누르기 위해 물을 갔다 붓는다. 좋은 기운은 더욱 북돋아 주고, 약한 기억은 보충하는 것이 풍수지리의 원리이다. 

​마이산은 80여개의 다양한 돌탑이 쌓여있는데, 특이하게도 양산과 음산이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축조된 탑들은 우주순행의 이치를 담고 있다. 천지탑(음양탑)은 마이산에서 규모가 가장 큰탑으로 음양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행탑은 동서남북으로 한쌍으로 음돌과 양돌을 싸놓고 있다. 마이산의 탑들이 200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태극 모양으로 안고 도는 형세로 마을 입지 조건으로 최고로 꼽힌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장승을 만나게 된다. 장승은 남녀를 상징하는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 마주 보거나 나란히 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양인 천하대장군은 양각으로 깎고, 음인 지하여장군은 음각으로 깎는다. 이 역시 음양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다. 정승과 함께 마을을 수호하는 솟대는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서도 음양론에 따라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했다. 대문을 중심으로 동쪽에 사랑채가 있고 서쪽에 안채가 있다. 안채로 들어가면 남성의 출입이 제한되는 여성만의 공간이다. 안채는 여자들의 주 생활 공간이다. 가사 공간이기도 하다. 마루를 따라가면 사랑채가 나온다. 사랑채는 남자들의 주 생활 공간이다. 그래서 사랑채는 건축에서 하늘에 해당된다. 사당은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죽음은 탄생을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오행론적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아이들의 거처인 동채는 탄생에 해당하는 동쪽에 해당한다. 곳간은 모으는 힘이 강한 금(金)의 방향인 서쪽에 위치한다. 

북쪽에는 부엌이 있다. 아궁이는 생산을 의미하는 자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엌은 집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으로, 신앙의 대상이었다. 불을 다루는 부엌에는 화재 예방을 위해 숫자나 한자를 써붙었다. 장독대는 북쪽 제일 끝에 위치해 있다.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는 오행의 수(水)를 뜻한다. 고추의 붉은색은 양색으로 음인 악귀를 쫓는 힘이 있고, 숱의 검은 빛은 음색으로 귀신들을 흡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장독대는 성역처럼 여겨졌기에 금줄로 잡귀의 침입을 금하고 있다.


 

​한국의 집은 천지인 세계관을 반영한 소우주다. 하늘에 닿기 위한 계단은 신성한 장소이며, 기둥은 권위를 상징하고, 지붕은 하늘의 상징이다. 네개의 기둥이 둘러싸여진 단은 신성한 영역을 상징한다. 

 

공동우물은 마을의 생명줄로 마을의 정기가 모인 곳이다. 예로부터 우물을 잘못파면 마을에 병고가 생긴다고 믿었다.그래서 재앙을 막고 1년내내 물이 잘 솟으라는 샘굿은 동신제(洞神祭)에서도 가장 좋은 볼거리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에서 농기의 삼색은 각기 천지인을 상징하는 삼태극이다. 농악은 음양오행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우리의 민속음악이다. 

​혼례(婚禮)는 저물 때 행하는 예식이라는 뜻이다. 결혼이 남자와 여자, 즉 양과 음의 결합이기 때문에, 시간도 양인 낮인 양과 밤인 음이 만나는 저녁 때 하는 것이다. 신랑이 입는 청색은 태양을 상징하는 동방이기 때문에 양기가 왕성한 것을 상징한다. 신부의 다홍색은 기쁨을 표현하고 액혼을 막고, 흙을 상징하는 노란 저고리는 탄생과 새출발을 의미한다. 전통 혼례복은 부부금실과 자손들의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음과 양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결합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 

​음양이 끝없이 돌며 태극을 만드는 강강술래는 이러한 생명의 과정을 재현하는 민속놀이이다.

​한복에도 음양오행의 이치가 숨어있다. 윗옷과 아래옷으로 나뉘어 만든 것은 양인 상채와 음인 하채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녹색 저고리(활옷), 홍색치마는 목생화(木生火)의 상생의 원리를 담고 있다. 고구려 벽화를 보면 3세기 초에 이미 오색을 갖춘 색동옷이 출연하고 있다. 아이들이 주로 입는 색동옷은 오행을 두루 갖춤으로써 나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오방색이 잘 들어간 것이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로 궁중 무용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을 상징하는 오방처용무는 음양오행의 방향을 나타내고 있다. 목(木)을 상징하는 동반신장은 청색 의복을 입고, 화(火)를 상징하는 남방신장은 적색 의복을 입으며, 금(金)을 상징하는 서방신장은 백색 의복을 입으며, 수(水)를 상징하는 북방신장은 흑색 의복을 착용한다. 중심에 위치한 중앙신장은 토의 색깔인 황색 의복을 입고 있다. 다섯 신장은 원을 돌면서 오행의 상생 상극을 그려낸다.

우리의 주식인 밥 속에도 오행의 기운이 다 들어있다. 적당한 양을 맞추어 붓는 물은 수기(水氣), 나무의 불을 피는 밥음으로 화기(火氣)와 목기(木氣)를 고루 갖추게 된다. 또 밥을 짓는 가마솥은 쇠로 만든 금기(金氣)다. 음식이 놓이는 단상은 주로 둥근 상태로 하늘을 나타낸다. 다리가 네 개인 것은 땅을 상징하고 음을 상징한다. 둥근 숫가락은 양, 긴 젓가락은 음으로, 수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나타낸다. 어륙은 불에 구은 것으로 화기(火氣)가 포함되어 있고, 국과 찌개 간장 동치미 등은 수기(水氣)가 포함되어 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은 쇠(金氣)나 흙(土氣)으로 만든 도자기다. 이렇듯 음식과 식재료로 이루어진 상차림에는 음양오행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쌀, 보리, 수수, 콩, 조 오곡밥은 오행의 원리를 두루 갖는다. 김치는 오색은 물론이고 오미를 두루 갖추고 있다. 대추의 쓴맛과 단맛, 고춧가루의 매운맛, 젓갈과 소금의 짠맛 익었을 때의 신맛 등 김치는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완벽한 식품이다. 


음양오행 말고 조선의 무속신앙은 어떤가? 무신도 속의 붓다와 보살 등 무속신앙은 중국의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 가장 오래된 한국적인 신앙이다. '신난다'는 말과 그 어원인 '신명(神明)난다'도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다. 한국의 멋의 원류인 풍류나 요즘 유행하는 한류나 월드컵 때 붉은 악마도 결국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신바람(神氣)은 샤머니즘(巫氣)과 통한다. 



2. 조선은 세계에서 손꼽을 만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조선 중기 선조 이후 사림의 정권 독점이 이어지면서 조선은 예송논쟁 등 하찮은 이념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국가로 전락하였지만, 조선초 훈구파, 관학파에 의해 구축된 조선의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놀랍고 역동적인 것이었다.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조선시대를 이해하면,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윤리관, 생활방식 등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조선은 개천에서 용 나는 기회평등지향 사회였다​.

500년간 유지된 조선의 과거제도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정승과 판서에 오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조선사 연구의 권위자인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겸 서울대 명예교수는 양반뿐 아니라 평민과 서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도 대거 과거에 합격했음을 증명하는 연구서 <과거, 출세의 사다리>를 출간했다. 이 책을 보면 조선 전기 태조∼선조 대에 선발된 문과 급제자는 모두 4527명이며, 이 가운데 신분이 낮은 급제자는 1100명으로 전체 급제자의 24.3%를 차지한다. 신분이 낮은 1100명 중 3품 이상 고관에 오른 급제자는 306명에 이른다.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은 태조∼정종 대에 40.4%, 태종 대에 50%였다가 광해군 대에 이르면 14.6%로 낮아지고 다시 점차 증가해 고종 대에 이르면 58%대에 이르는 U자형 추이를 보인다. 조선 중기인 17세기를 전후로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문벌가문이 득세하면서 신분이 낮은 급제자들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시험을 통한 신분 이동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역동적이었다.

애초에 조선시대는 천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등한 양천제를 지향했다(이후 변질된 것이 문제였다). 양반가에서 태어났더라도 오랫동안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집안에 벼슬한 사람이 없거나 집안에 돈이 없으면 평민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양반은 농사 짓고, 남의 집 허드렛일도 해주며 살았다.

 

또 조선시대는 노비고 여인이고 할 것 없이 왕에게 글로 상소를 할 수 있었다. 글을 못 쓰는 서민들은 왕궁 옆에 매달아 둔 신문고를 울려 형조의 당직관리에게 민원을 제기할 수 있었고, 보고 내용은 왕의 귀에 들어갔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이러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 '격쟁'이라는 제도가 생겼는데,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제도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인데 그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이다.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 시대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었으며, 최소한도의 합리성도 갖고 있었다. 세종대왕 때도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는 등 법의 공포와 시행에 수 년이 걸렸다.​

조선 시대의 법제도도 상당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이었다. 조선 왕조는 사형수에 한해 3복제를 실시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간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는데,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 왕들은 사형수가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 무수히 노력을 했고,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법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3. 조선은 세계적인 복지 국가, 공동체주의 사회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애아를 양육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라"는 말을 했고, 플라톤은 "장애아는 사회에서 격리시켜라"는 말했다. 중세 유럽에서 장애인은 신에게 벌을 받은 사람으로 장애인에게 고문과 사형 집행이 가해졌다.

 

서양에서 자행되었던 장애인의 잔혹한 역사에 비해 조선은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국가의 기본 정책 기조로 삼았다.

 

독질인(篤疾人) - 매우 위독한 병에 걸린 사람

잔질인(殘疾人) - 몸에 질병이 남아있는 사람

폐질인(廢疾人) -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

 

이처럼 장애를 질병 중의 하나로 여겼던 조선시대 왕들은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했는데 세종 14년(1432년 8월 29일)에는 이런 법령이 반포되었다.


'부모가 나이 70세 이상이 된 사람과 독질이 있는 사람은

나이가 70세가 차지 않았더라도 시정(侍丁)한 사람을 주고...'

(시정 - 조선시대에 나이가 많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군역에서 면제된 사람)

 

장애인과 그 부양자에게는 각종 부역과 잡역을 면제 (오늘날의 병역면제), 장애인을 정선껏 보살핀 가족에게는 표창제도 실시되었다.

 

반면 장애인을 학대하는 자에게는 가중 처벌을 내리는 엄벌제도를 시행해서 장애인이 무고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고을의 읍호(邑號)를 한 단게 강등시켰다. 장애인을 천시했던 서양과 달리 선진적인 복지 정책을 펼쳤던 것이 우리 선조들의 나라 조선이었다.

 

특히, 장애인의 자립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점복사, 독경사, 악공 등 장애인을 위한 전문직 일자리 창출이 그 예다.

 

세종 16년(1434년 11월 24일)에는 '관현(관악기와 현악기)을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에 천인인 자는 재주를 시험하여잡직에 서용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장애인은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 위주의 채용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명통시(明通寺)가 설립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단체가 만들어졌다. 명통시에 소속된 장애인들은 기우제 등 국가의 공식 행사를 담당 그 대가로 노비와 쌀을 받았다. 장애인에 대해 편견과 차별없는 사회였던 조선시대의 국가관 때문에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척추장애인 허조 - 조선 초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허조

간질장애인 권균 -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권균

지체장애인 심희수 -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심희수

청각장애인 이덕수 - 영조 때 대제학, 형조판서에 오른 이덕수

 

조선시대,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종 13년 (1431년), 박연이 아뢰기를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에게 현송(거문고를 타며 시를 읆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밖에도 조선이 이상적인 공동체사회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다.


조선 후기에 정착된 '두레'는 농촌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마을·부락 단위로 둔 조직이다. 두레는 어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이겨내는 공동체 생활의 본보기였다. 절기마다 빚어먹는 과자와 떡, 술과 명절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벌이는 각종 놀이와 굿판도 이웃끼리 나눔을 위한 것들이었다. 떡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고 소외된 이웃을 감싸주었다. 노동요와 타령, 육자배기, 판소리, 농악, 살풀이 등의 춤사위도 심신의 조화를 이루게 하며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공동체의 건강법이었다. 박정희 정부가 실시한 '새마을 운동'이 농촌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4. 조선은 세계적인 인문 국가였다


조선시대 왕은 바로 곁에 사관을 두고 있었다.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정리한 문서를 목판활자로 찍고,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정본을 남겨주려고 하였다. 이렇게 조선시대 500년 역사가 실록으로 남았다. 

왕에게 올릴 보고서를 정리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도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다.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2억 5,000만)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난다고 한다. 

왕들이 쓰는 일기였던 일성록(日省錄)도 정조 때부터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150여년간 계속 쓰여졌다. 선대왕들이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고민해서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다. 

이렇게 각종 문서에 적힌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이다.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약진)에서부터,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다양한 표현법이 있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다. 

조선의 세계적인 인문학적인 수준보다는 다소 떨어지는 감은 있지만, 조선의 과학기술 역시 서양을 제외한 세계 어떤 국가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이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물리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한 일이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 갈릴레오의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다. 결국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이 그로부터 100년 뒤인 1767년이다. 

 

한국에서는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가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고 말해 지동설을 선언했다. 이것이 1400년대이다. 서양의 1632년, 또는 1767년보다 한참 앞서 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을 다룬 책으로,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이순지가 1,444년에 만든 달력은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낸 뒤 만든 것인데,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이순지의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다. 1,400년대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이다. 

 

조선에서는 국학의 명산과(수학과)를 졸업하면 공무원이 될 수 있었는데, 이것을 산관(算官)이라고 했다. 산관들은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정밀한 수학적 지식을 이용했다. 이런 제도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시대 때 수학교재로 썼던 책 중 하나인 <구장산술(九章算術)>을 보면, 2차 방정식과 미지수 다섯개(5원 바정식), 피타고라스의 정리(구고의 정리), 원주율(밀률), 삼각함수 문제 등 다양한 수학 문제들이 나온다. 우리는 벌써 삼국 시대 때부터 이 정도 수준의 수학 교육을 실시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수학자 홍대용이 쓴 <담헌서(湛軒書)>에도 cos, sin, tan 등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다.  



5. 조선의 조공 시스템은 만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이 청나라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을 이야기하면서 조선의 사대주의를 문제삼는다. 또 조선의 조공도 문제삼는다. 조공을 사대주의의 징표라 하며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괜한 역사적 열등감에 빠져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나 이는 일제 식민사관에 기반한 왜곡된 역사교육이 남겨준 인식상의 오류이다. 조공은 일방적인 상납이 아니라 물물교환 형식의 정부주도형 무역이다. 

무역형태의 주류는 조공무역이었다. 조공국에서 조공을 바치면 사대국에서는 사여(賜與)를 내린다. 사여품이 조공품보다 몇 배 많은 것이 원칙이었다. 조선은 조공을 1년에 3번 바치던 것을 1년에 4번 바칠 것을 요청했으나 명은 월남처럼 3년에 1번만 바치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명나라 멸망의 주요원인의 하나는 과도한 사여품의 방출로 인한 국고의 탕진이었다. 중국은 책봉 관계(상명하복관계가 아닌, 의례적인 외교형태)에 있는 나라에 대해서만 조공무역을 허용하였다. 이와 반면에 일본은 극히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싶어도 바칠 수가 없었다. 조선은 사대주의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명나라와 청나라에게 조공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건축 양식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초라하고 보잘 것 없기가 그지없다. 당장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이 빈약하다. 그러나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만들었던 시황제의 만리장성이나,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 비하면, 조선의 볼품없는 건축은 역설적으로 조선에서 백성들을 억압하는 정치인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끝으로, 조선의 조경 양식은 화려한 중국, 섬세한 일본에 비해 시각적인 임팩트는 떨어지지만,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동화되도록 만들어졌다. 정원을 조성할 때는 지형을 함부로 변형시키지 않았으며, 물의 이용에 있어서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법칙을 이용했고 인공적인 힘을 가하여 하늘에 쏘는 분수를 만들지 않았다. 꽃이나 나무는 생성하는 생물이므로 관상수 따위를 심어 인공의 수형을 만드는 가지치기 작업을 피하였다. 정자나 누각을 배치 할 때도 자연의 조화를 먼저 생각하여 연못이나 강가, 산자락에 세워 원을 감상하는 장소로 삼았다. 무심한듯 자연스러운 조선의 조경양식은 한민족의 솔직하고 순수한 본래의 성격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stratic007/220426988803



철학왕국과 조선선비 이야기



인문학 고전콘서트 -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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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이래 늘 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혁명은 그들삶의 전부였다. 내 젊은 시절에도 함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다. 혁명이라는 단어 속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혁명이란 말은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남한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노맹이 대부분 검거되고 나서부터였을까? 아니면,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부터였을까?


아무튼, 혁명은 우리에게 추억처럼 조금씩 멀어지고 대신 ‘제 3의 길’이니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을 자주 듣게 되었다. ‘혁명’이란 단어가 멀어지고 난 후에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격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은 ‘공동체’, ‘지속가능성’, ‘생명’, ‘평화’, ‘평등’ 같은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설명하지만, ‘혁명’을 말하던 그 때 만큼 명쾌하지도 역동적이지도 않다. 1980년 대 스테디셀러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쓴 박세길이 15년을 각고 한 끝에 ‘혁명’에 불을 지피는 새로운 저작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세상에 내놨다.



이 책은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 마르크스주의의 태동, 세계 1차대전과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조선혁명, 베트남혁명, 68혁명, 쿠바혁명, 브라질 노동자당,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소연방해체와 현실사회주의 붕괴,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도전, 멕시코 사파티스타 봉기, 반세계화 공동투쟁, 세계사회포럼, 쿠바농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이후 일어난 크고 작은 혁명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지만,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은 단순한 혁명사가 아니다. 지은이는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그리고 민중이 주체로 우뚝 서서 역사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는 조건과 비전을 제시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소련이 무너지던 즈음, 처음 ‘혁명’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한 이래 <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세상에 내 놓기까지 15년을 각고하였다고 한다.


지난 15년간, 1만매에 이르는 초고를 썼다가 마침내 2,600매에 이르는 원고로 갈무리하기까지 저자의 고심참담은 각별하였다고 한다. 


“세상의 변혁을 꿈꾼 사람 입장에서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런 광정일 수 있다. 그 속에는 분명하게도 쓰라린 패배의 장명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때는 더없이 고결하게만 느껴졌던 혁명의 역사가 숱한 오만과 편견, 어리석음과 우유부단함을 가득품고 있음을 수긍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저자 여는 글 중에서)


박세길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근대 이후 혁명사를 “전 지구적 관점과 역사적 맥락 비추어”반추하면서 새로운 반전, 곧 미래혁명에 대한 전망을 세우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역사발전이란 과거의 부정을 통해 미래를 새롭게 창조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답습으로는 결코 새로운 혁명에 성공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마땅히 지난한 재창조의 과정이 있어야하며 신자유주의 이후에 올 새로운 세계를 ‘혁명’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모든 혁명은 프랑스로 통한다. 


박세길은 670쪽에 이르는 대작인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쓰면서 그 첫 장에 프랑스 대혁명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일컬어 근대혁명의 ‘빅뱅’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음악의 아버지를 바하로 철학의 아버지를 탈레스로 혹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를 데카르트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혁명 중의 혁명, 모든 혁명의 아버지 격인 혁명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라고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봉건적 특권에 맞서 민주주의 원칙을 옹호하는 것으로써 시민혁명의 보편적 가치를 선명하게 창출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프랑스 대혁명은 각종 특권의 확대로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끊임없이 부활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이 되었다.”(본문 중에서)


루이 16세의 군대소집에 맞선 국민회의의 민병대 조직과 자치위원회 구성에 뒤이은 1789년 7월 14일에 일어난 바스티유 점령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지배질서가 일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스티유 점령 이후 군중은 격렬한 형태로 지존질서와 지배세력을 공격하였으며, 농촌에서는 폭동이 확산되고 귀족습격, 봉건문서 폐기, 지방행정조직 파괴와 같은 봉건체제에 대한 저항이 다반사로 일어났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현상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된 정치클럽이다. 1789년과 1795년 사아에 5500개 지역에 약 6000개의 정치 클럽이 존재하였으며, 구성원은 대략 50만에서 6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프랑스혁명이 표류하면서 혁명전쟁을 통해 부상한 나폴레옹이 집권하게 되는데, 이것은 대혁명과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전제군주제의 부활로 나타났다. 


지은이는 나폴레옹을 “군주형 혁명 지도자”의 첫 번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자 유능한 정치가였기 때문에 대혁명의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길임을 정확히 간파하였다는 것이다. 


“나폴레옹 법전 편찬을 통해 법 앞에서 만인의 평등, 양심과 종교 선택의 자유, 재산권 보장, 농노제 폐지 등 대혁명 과정에서 구호로 제기된 사항들은 법체계에 담았다. 그밖에도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법원, 학교 등에서 근대적 모델을 확립하는 등 적잖은 성과를 남겼다.”(본문 중에서)


그러나, 혁명의 적이었던 전제군주제는 혁명이 추구했던 참정권 확대를 극도로 제약하고 보통선거제를 후퇴시켰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노동자계급을 형성시키고 자본주의를 태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생산력 발전을 비약적으로 이끌어내어 수많은 위기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을까?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돈을 버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고 마음만 먹으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회적 환경이 바로 그것이다. 곧 부르주아적 질서와 문화의 확립이야말로 산업혁명을 야기한 결정적 요인이었다.”(본문 중에서)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에서 지은이는 명예혁명 등 일련의 정치혁명을 통해 대륙 국가들에 비해 부르주아의 지배가 일찍 확립되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토대 가 되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후 영국 부르주아들의 이익 증대는 수백 퍼센트, 수천 퍼센트에 이르는 수직상승이 이루어졌으며,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한 상황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자본가들이 거둔 엄청난 이윤 축적은 노동자들에 대한 극단적이 착취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이후 노동자들은 여러 혁명에서 계급투쟁의 주력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대륙으로 넘어와 프랑스로 퍼져나갔고, 선거법에 대한 불만이 촉발시킨 1848년 혁명으로 분출되었다. 그러나 2월 혁명에서 정권을 잡은 부르주아는 노동자들 권력으로부터 소외시켰고, 그해 6월 새로운 봉기를 일으키지만 좌절로이어진다.


좌절된 듯이 보였던 노동자들의 혁명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전시민이 참여하는 보통선거 실시로 이어지는 파리 코뮌으로 이어진다. 파리 코뮌은 선출된 의원이 입법과 집행을 동시에 책임지는 형태였으며, 철저한 인민주권 원칙에 입각한 직접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였다고 한다. 가히 혁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혁명은 1968년 이른바 68혁명으로 이어진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항상 세계 혁명사의 중심에 있었다. 


혁명에 날개를 단 마르크스와 공산당선언 


한편, 지은이는 자본주의 이후 시작된 ‘혁명’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마르크스’라고 평가한다.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선언은 그 엄청난 파급효과를 감안한다면 그 자체를 역사의 일부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848년 공산당선언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대략 150년의 세월은 바로 그 메시지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난 150년의 역사는 공산당선언을 검증한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본문 중에서) 


1848년 2월 25일 런던에서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후, 유럽은 급속히 혁명의 폭풍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프랑스, 남서독일, 바이에른, 베를린, 빈, 헝가리, 밀라노를 거쳐 불과 몇 주일 만에 유럽 10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바다 건너 남미로 번져갔다고 한다. 또한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본원적 모순을 정확히 진단함으로써, 이후 일어난 모든 ‘혁명’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무엇을 혁명의 성공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어쨌든 역사상 최초로 집권에 성공하는 혁명은 러시아 혁명이다. 1917년 10월 마침내 볼세비키가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이후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 패망을 딛고 동유럽일대로 사회주의혁명이 확산되었다.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이 혁명에 성공한다.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쓴 박세길은 앞서 일어난 혁명이 어떻게 새로운 혁명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지에 주목하여 혁명역사를 되돌아본다. 러시아혁명을 딛고 이루어지는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조선 그리고 베트남 혁명, 프랑스 68혁명, 쿠바혁명과 남미혁명을 조망하면서, 그 한계와 파급효과를 냉철하게 분석한다.


실패로 보이는 혁명이, 초기부터 국가사회주의 병폐를 안고 출발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다른 나라, 다른 혁명에서 어떻게 극복되는지를 살펴보는데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은이는 성공한 혁명에 면죄부를 주는 경우도 없고, 실패한 혁명에 굴레를 씌우는 일도 없다. 실패로 보이는 혁명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미래의 혁명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또한 혁명에 반대편에 서 있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공고하게 지탱하기 위하여 자기변혁의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세계자본주의의 중심이 된 미국자본주의의 성장, 케인즈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의 태동 그리고 그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개혁개방노선과 중화주의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고르바초프실험의 실패, 중소분쟁과 소련의 고립, 정체의 늪에 빠진 소련체제 그리고 소연방의 해체에 이르는 혁명을 거꾸로 돌려놓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하여도 역사적 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혁명은 ‘새로운’ 혁명이다. 


세상의 어떤 혁명도 앞서 이루어진 혁명을 그대로 따라서 성공한 경우는 없다. 모든 혁명은 다른 조건, 다른 상황에서 각기 다른 세력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서 새로운 혁명의 모델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피억압 계층은 늘 혁명을 통해 민주의의를 확장하고 새로운 분배를 실현해나가고 인민이 중심이 되어 복지를 확장해나간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표적인 사건은 러시아 혁명과 소련붕괴라고 한다. 러시아 혁명은 인간의 힘으로 기존의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지만 소련붕괴는 정반대의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소련 붕괴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실험을 지극히 허망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에 따라 사회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은 극심한 혼돈과 지적 공황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소련 붕괴와 함께 전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마지노선이 함께 붕괴된 것이다.”(본문 중에서)


결국 소련붕괴는 20세기에 자본주의의 승리를 확정짓는 사건이 되었고, 자본주의는 아무런 제약없이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67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중에서 300여 쪽은 지나간 ‘혁명’을 반추하는 내용이다.


지은이는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여 소련붕괴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규명하고, 다시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꿈꾸는 새로운 사례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도전을 살펴본다. 또한 지식정보사회에서 노동계급이 새로운 선진계급으로 등장하는 과정과 기업혁명을 통해서 주주독재에서 민주적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당위성을 짚어본다.


박세길은 기업혁명, 자본혁명, 시장혁명을 통해서 생태주의, 문화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가 실현되는 사회, 세상의 중심축이 자본에서 사람으로 이동하는 여러 가지 징후들을 발견하고 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실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기업혁명, 자본혁명, 시장혁명의 사례들을 낱낱이 찾아내어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새로운 혁명을 이루어가는 방안으로 주주(자본)의 절대권력을 타파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해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새로운 시대 사회혁명은 과거와 같은 소수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연대에 기초한 인민의 자주적 해결 능력을 고양시킴으로써” 이루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회연대가 중심을 이루고 국가는 지원과 조정 임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서 ‘사회연대국가’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기업, 자본, 시장 혁명을 통해 ‘사회연대국가’로 


아울러 소수 엘리트에 권력이 집중되는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구성원의 연대와 협력을 통한 자치실현이 국가의 강제기능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민에 의한 권력통제가 가능한 조건으로 전자민주주의 도입,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 제도화, 그리고 의원숫자를 대폭 늘리는 의회기구 개혁과 의원에 대한 특권폐지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에 해당된다고 한다. 아울러 지역 공동체에 기초한 복지모델과 자치권력을 강화하는 현존하는 제도로서 스위스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위스는 최고 7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수백에서 수천 명 규모의 3072개의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공동체는 직접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운영되며, 스위스 연방의 실질적인 최고 주권기관으로서 지위를 갖고 있다. 연방정부는 이러한 공동체의 연대를 보장하는 공동사무국의 형태를 띨 뿐이다. 말하자면 스위스는 현존하는 코뮌 국가라고 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그리하여 지은이는 생태, 문화, 여성, 평화와 같은 대안의제에 기반을 둔 사회권력과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자치권력이 국가권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회권력과 자치권력은 사회연대를 기반으로 직접 행사하는 권력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을 쓴 박세길은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사회연대국가’라는 새로운 길을 가는 지도를 내놨다. 이 책이 가진 탁월함은 신자유주의가 가진 문제점과 모순을 나열하는데서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데 있다. 소련이 붕괴한 후 누구도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못한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내놨다.그는 자신이 내놓은 밑그림이 “다양한 토론을 촉발시키고 사고의 혁신을 자극하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짧지 않은 서평이지만 내 글을 통해<추억의 혁명, 미래의 혁명>을 온전히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사회연대국가로 나아가는 기업혁명, 사회혁명, 시장혁명에 대한 구체적 방안과 사례는 찾아 읽는 것은 독자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신자유주의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단언하건데, 소련붕괴 이후 나온 그 어떤 책보다 가장 분명하게 다시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박세길의 해박한 지식과 사회변혁을 향한 뚜렷한 지향이 담긴 책이다.



목차


여는 글 혁명, 추억의 반추 그리고 미래의 전망 


PART 01 혁명의 열정, 역사를 바꾸다


CHAPTER 01 근대혁명, 계급투쟁으로 뿌리를 내리다 

근대혁명의 빅뱅,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과 노동자계급의 형성 

혁명에 날개를 달아준 마르크스주의 


CHAPTER 02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시련을 먹고 자라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극한을 넘나드는 혁명의 물결 

스탈린 시대의 빛과 그림자 


CHAPTER 03 동아시아 혁명, 새로운 꽃을 피우다 

중국혁명, 그 기나긴 장정 

파란과 곡절을 딛고 선 조선혁명 

작은 거인의 분투, 베트남혁명 


PART 02 역사는 한계를 딛고 전진한다 


CHAPTER 04 자본주의 세계의 3중주, 기묘한 역설을 말하다 

미국, 자본주의 세계의 중앙정부 

케인스, 자본주의의 도약대 마련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 68혁명 


CHAPTER 05 제3세계, 새로운 지평을 열다

냉전의 최전선 한반도, 그 격정의 드라마

혁명의 활화산 

미국의 개입 

민중의 반격


CHAPTER 06 중국의 변신, 새로운 전범을 만들다 

역사를 거꾸로 돌린 대약진운동

극단을 향해 치달은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의 길

표면화되는 중화주의 


CHAPTER 07 소련의 붕괴, 한쪽 날개가 사라지다 

중소분쟁과 소련의 고립 

정체의 늪에 빠진 소련 체제 

고르바초프 실험의 실패 

기묘한 소연방의 해체 


PART 03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닥을 드러내다


CHAPTER 08 자본주의, 위기에서 탈출하다

장기 불황과 신자유주의의 부상 

초국적자본의 세계 정복

주주자본주의의 태동 


CHAPTER 09 포획당한 한국 경제, 허울만 남다 

성장의 원동력과 시스템 사이의 모순 

새로운 점령군

저성장의 구조화 


CHAPTER 10 신경제 10년 천하, 무덤이 가까워지다 

퇴로를 상실한 신경제 

무너지는 달러 제국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저항의 세계화


PART 04 대반전, 이제 다시 ‘사람’이다


CHAPTER 11 전환기, 창조적 파괴의 현장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회민주주의

베네수엘라의 대담한 도전 

쿠바, 농업에서 출구를 찾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북한 


CHAPTER 12 

세상의 중심축 이동, ‘자본’에서 ‘사람’으로 

노동혁명, 기계의 노예에서 생산의 주인으로

기업혁명, 주주독재에서 민주적 공동체로 

자본혁명, 착취의 도구에서 사회혁명의 동력으로 

시장혁명, 탐욕의 기지에서 사회화의 무대로 


CHAPTER 13 미래가치의 구현, 관점의 혁명으로부터 

생태주의, 생존의 조건 

문화주의, 행복의 조건

여성주의, 미래가치의 모태 

평화주의, 공존의 조건 


CHAPTER 14 사회연대국가, 주권재민의 실현 

‘창조적 다수’의 소통과 연대 

인민에 의한 권력 통제 

공동체에 기초한 복지 모델과 자치권력 

생존 철학으로서의 공유와 협력

[출처: http://www.ymca.pe.k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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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를 따라 고리끼 공원으로 내려갔지요. 
변화의 바람에 귀를 기울이면서. 

팔월의 한 여름밤 행진해 가는 군인들. 
변화의 바람을 들으면서. 

세계는 가까이 모여서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우리가 이렇게 형제처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내일은 불확실하지만
나는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어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순간의 마법으로 나를 데려가세요. 
영광스러운 밤에 미래의 어린이들이 
변화의 바람속에서 꿈결같은 시절을 보낼 수 있는 곳. 

길을 따라 걸으면서 
아득한 추억들을 영원한 과거 속에 묻고 

모스크바를 따라 고리끼 공원으로 내려갔죠. 
변화의 바람을 들으면서 

순간의 마음 속으로 나를 데려 가세요. 
영광스러운 밤에 그 꿈을 당신과 내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변화의 바람은 시대에 직면하여 강하게 불고 있어요. 
마음의 평화를 위해 자유의 종소리를 울릴 폭풍처럼. 
당신의 발라라이카가 노래하게 하세요. 
내 기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I follow the Moskva down to Gorky Park 
Listening to the wind of change 
An August summer night, soldiers are passing by 
Listening to the wind of change 

The world is closing in 
Did you ever think 
that we could be so close like brothers 
The future’s on the air I can feel it everywhere 
Blowing with the wind of change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on a glory night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dream away 
In the wind of change 

Walking down the street 
Distant momorise are buried in the past forever 
I follow the Moskva down to Gorky Park 
Listening to the wind of change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on a glory night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share their dreams 
With you and me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on a glory night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dream away 
In the wind of change 

The wind of change blows straight into the face of time 
Like a stormwind that will ring the freedom bell 
For peace of mind 
Let your balalaika sing what my guitar wants to say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on a glory night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share their dreams 
With you and me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on a glory night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dream away 
In the wind of change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on a glory night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share their dreams 
With you and me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on a glory night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dream away 
In the wind of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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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 Ubuntu란 말을 아시나요? 아마 이공계 전공을 한 분이라면 리눅스 소프트웨어나 요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운영소프트로 유명해진 이름인데요. 그보다는 더 숭고한 의미의 말입니다. 아프리카 남부지역 반투어에 있는 말로서 우분투란 아프리카인의 공동체 정신으로 알려진 유명한 사상입니다. 그게 뭔지 설명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인류학자가 아프리카의 한 부족에서 실험을 하였다. 그곳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멀리 떨어진 나무에 음식을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달려가서 그 나무에 제일 먼저 도달한 사람만 음식을 먹으라 했다. 엄청난 경쟁과 치열한 다툼을 기대했던 인류학자는 의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이들은 손에 손잡고 다 함께 음식이 매달린 나무에 가서 사이좋게 나눠 먹는 게 아닌가. 충격을 받은 인류학자가 왜 욕심을 내지 않았는지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달려가서 나 혼자 일등하면 많은 사람들이 슬프잖아요.' (우분투,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째서 한 명만 행복해질 수가 있어요?)



우분투는 사람들 간의 관계와 헌신에 중점을 둔 인본주의 사상으로 아프리카의 전통적 사상이며 평화운동의 사상적 뿌리이기도 하다. 실제 넬슨 만델라는 이 우분투 사상을 근간으로 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자칫 자신을 위해 일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일을 하다 보면 그 공동체에 속한 자신의 위치도 그만큼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1999년과 2008년에 각각 우분투의 뜻을 다음과 같은 명쾌한 해석을 하였다. 


'우분투 정신을 갖춘 사람은 마음이 열려 있고 다른 사람을 기꺼이 도우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할 줄 압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뛰어나고 유능하다고 해서 위기 의식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더 큰 집단에 속하는 일원일 뿐이며 다른 사람이 굴욕을 당하거나 홀대를 받을 때 자기도 마찬가지로 그런 일을 당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을 알기에 우분투 정신을 갖춘 사람은 굳은 자기 확신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 1999년 No Future Without Forgiveness에서


'우리 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격언 중에는 우분투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지요.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바로 우분투의 핵심입니다. 우분투는 우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홀로 떨어져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라고 할 수 없고, 우분투라는 자질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관용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개인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서로 이어져 있으며 우리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세상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좋을 일을 하면 그것이 번져 나가 다른 곳에서도 좋은 일이 일어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 전체를 위하는 일이 됩니다.'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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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화(共進化)는 한 생물 집단이 진화하면 이와 관련된 생물 집단도 진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진화생물학의 개념이다. 공진화는 작게는 아미노산의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서부터 크게는 진화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종들 사이에 일어나는 형질 변화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의 모든 규모에서 관찰된다. 공진화에 관여하는 한 생물의 진화는 이와 관련이 있는 생물에 대해 자연선택의 요소로서 작용하여 진화를 촉발시킨다. 숙주와 기생 생물의 관계, 상리 공생을 하는 생물의 관계 등이 공진화의 사례이다.


공진화는 포식자와 먹이 생물, 숙주와 기생 생물, 공생 생물 등과 같이 생물 간에 일대일 관계가 형성되어 서로 영향을 주는 진화 과정이다. 따라서 기후 변화와 같은 비 생물적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한 진화는 공진화에 포함되지 않는다. 생물의 상호작용이 진화에 뚜렷한 영향을 준 사례가 있는 반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호작용으로 인해 상호작용의 영향이 뚜렷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뚜렷히 드러나는 공진화를 "종 특유의 공진화"(llang|en|species-species coevolution}}이라하고 뚜렷하지지 않는 공진화를 "확산공진화"(영어: diffuse coevolution)라 한다. 자연환경에서는 확산공진화가 보다 일반적인 현상이다.


공진화의 개념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고《난초의 수정》에서 다시 소개되었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리 반 발렌은 1973년 공진화의 한가지 모델로서 붉은 여왕 가설을 제시하였다. 한편, 프랑스의 생물학자 시에리 로데는 적대적 공진화가 성 경쟁을 촉발한다고 보았다.


공생과는 달리 공진화는 생물 간의 상호의존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포식자와 먹이, 숙주와 기생 생물의 경우에서 처럼 서로의 생존을 위해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공진화가 발생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과는 다른 별도의 DNA를 가지고 있어 진핵생물의 발현과정에서 이루어진 공진화의 결과 세포소기관으로 편입되었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를 세포내 공생설이라 한다.


공진화의 개념은 인공생명에도 도입되었는데 데니얼 힐스는 소프트 프로그램 인공생명에 공진화 알고리듬을 사용하였고 칼 심스는 컴퓨터 상의 가상 생물에 공진화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진화하는 가상 생명의 동영상





더불어 산다

조개와 물고기의 공생


물은 물고기의 집일뿐더러 조개의 집도 된다. 온 세상의 강과 호수에 사는 물고기와 조개, 곧, 어패류(魚貝類)는 절묘한 ‘더불어 살기’, ‘서로 돕기’를 한다. 공생(共生), 공서(共棲)라는 것 말이다. 조개는 물고기 없으면 못 살고 물고기 또한 조개 없으면 살 수 없다. 불가사의하다고나 할까,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오면서 ‘공진화’를 한 탓이다. 

 

 

공진화, 조개는 물고기 없이 못 살고 물고기는 조개없이 못 산다

여기서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란 생물들이 서로 생존이나 번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진화하는 것이다. 포식자와 피식자, 기생자와 숙주끼리 한 쪽의 적응적 진화에 대해서 대항적 진화 또는 협조적인 진화를 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긴 세월 질곡의 삶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나 없인 너 못 살고 너 없이는 내가 못 산다? 악연이던 선연(善緣)이던 간에 둘이 이렇게 연을 맺고 산다니 정녕 신묘하다.

 

우리나라 강에 살고 있는 민물고기 210여종(외래종 포함) 중에 유독 납자루아과(亞科)에 속하는 납줄개속(屬) 4종, 납자루속 6종, 큰납지리속 2종 등 12종과 모래무지 아과의 중고기속 3종, 모두 합쳐 15종의 어류가 조개에 알을 낳는다. 물고기는 다 물풀이나 돌 밑에다 알을 낳는데 이 무리들은 기이하게도 반드시 조개에 산란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17종 조개 중에서 말조개, 작은말조개, 칼조개, 도끼조개, 두드럭조개, 곳체두드럭조개, 대칭이, 작은대칭이, 귀이빨대칭이, 펄조개 등 6속 10종의 석패과(石貝科,Unionidae)의 돌처럼 야문 조개들은 유생(幼生)을 물고기에 달라 붙인다. 조개는 껍대기 2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매패라고 한다. 조개를 꼭지 끝이 위로 가게 두고 볼 때 오른 쪽 끝에 수관 두 개가 있다. 위에 자리 잡은 가는 것이 출수관(出水管)이고 아래 굵은 것이 입수관(入水管)이다. 물은 입수관으로 들어와서 아가미를 거쳐 출수관으로 나간다.


두드럭조개, 한국고유종, 멸종위기야생동물1급.<사진: 최병래 명예교수>

 

 

물고기가 조개 속에 알을 낳는다


임실납자루 수컷. 혼인색이 선명하다.<사진: 김익수 명예교수>


앞서 이야기 한 이들 물고기들은 산란시기가 되면 갑작스레 암수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수컷은 몸 색이 아주 예쁜 혼인색(nuptial color)을 띠어 멋쟁이가 된다. 암컷은 여태 없던 산란관(産卵管, 알을 낳는 관)이 항문 근처에 늘어나니 줄을 길게 달고 다니는 산불 끄는 헬기 꼴이 된다. 산란관의 길이는 종(種)에 따라 달라서 큰 조개에 산란하는 놈은 제 몸 길이보다 긴가 하면 작은 것에 산란하는 녀석들은 제 몸길이의 반이 안 된다. 이 산란관은 수란관(輸卵管)이 길어진 것이고, 산란 후엔 몸으로 빨려 든다. 이렇게 멋진 혼인색과 긴 산란관은 발정의 신호다.

 

잘 생기고 건강해야 좋은 짝을 만날 수 있고, 그래야 훌륭한 후사를 보게 되는 것이니 ‘성(性)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곱씹어 말하지만 물고기나 사람이나 후손을 잇지 못하면 도태하고 만다. 헌데, 요상하게도 이 물고기들은 언제나 산 조개에만 알을 낳는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진짜 닮은 가짜 조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물론 조개를 찾아내는 것은 수놈 몫이다. 제가 차지한 조개 가까이에 다른 수컷이 나타났다가는 난리가 난다. 휙~~휙! 주둥이로 들이박거나 몸을 비틀어 후려쳐 텃세를 부린다. 그러다가 관심을 보이는 암놈이 나타나면 가까이 다가가 부라린 눈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방아 찧기, 곤두박질치기, 지그재그로 갖은 교태(嬌態)를 다 부려 암놈을 산란장(조개)으로 유인한다. 다 그런 거지! 곡진한 애정이다.

 

눈치 빠른 암놈은 순간적으로 벌어진 조개수관에 산란관을 꼽아 넣어 알을 쏟고 내뺀다. 어물거리면 조개가 입을 닫으니 동작이 재빠르다.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여기저기에 알을 낳는다. 중고기 무리는 입수관에, 납자루 무리는 출수관에 산란한다. 옆에서 지켜본 수놈은 잽싸게 달려가 입수관 근방에다 희뿌연 정자를 뿌린다. 입수관으로 물과 함께 들어간 정자는 외투강(중고기 무리의 알이 듦)이나 아가미관에 끼어있는(납자루 무리의 알들임) 알을 수정시킨다. 아가미에 가득 끼어있는 물고기 알들이 조개의 숨쉬기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임실납자루 암컷. 산란관이 늘어져 있다.<사진: 김익수 명예교수>

 

 

조개에서 태어난 물고기는 다시 그 조개를 찾는다

물고기의 모정과 부정이 가득 고여 있는 조가비, 조개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다른 자식을 품은 대리모(代理母)가 된 셈이다. 무슨 이런 기구한 운명인가! 조개 몸 속의 알(한두 개에서 30~40개 정도)은 다른 물고기에 먹히지 않고 고스란히 다 자라서 나오는 지라 여읜 자식이 하나도 없다. 강물에는 조개를 통째로 꿀꺽 삼키는 동물이 없지 않은가. 인큐베이터(incubator) 속에서 자라 나온 미숙아(未熟兒)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들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서 알을 적게 낳는다. 예로, 붕어 한 마리가 평균 67,827개를 낳는 것에 비해 이들은 알을 300~400여개 정도밖에 안 낳는다. 이런 것을 보상작용이라고 하는데, 요새 사람들이 유아사망률이 낮아진 것 때문에 출산을 적게 하는 것과 똑 같다. 수정란(受精卵)은 조개 속에서 약 한 달간 자라서 약 1cm정도의 어린 물고기가 되어 밖으로 나온다.

 

이 어린물고기가 다 자라 어른 물고기가 되어 새끼 칠 때가 될라치면 제가 태어난 안태본(安胎本)인 조개를 찾는다. 연어가 모천(母川)을 찾아들 듯이 자기를 탄생시켰던 바로 그 조개들을 찾아가 알을 낳는다. 유전인자(DNA)에 각인되어 있는 것으로 일종의 귀소본능이요 회귀본능인 것이다. 너무나 신비로운 어류들의 비밀스런 생태다.

 

 

조개 유생은 새끼를 낳으러 온 물고기를 따라 여행을 떠난다 

아무튼 세상에 공짜 없다. 반드시 갚음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조개가 물고기에게 신세를 질 차례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물고기와 조개의 산란시기가 거진 반 일치하니 말이다. 석패과 조개는 어린 물고기 시절 한 달 가까이 붙어 살았던, 돌아온 어미 물고기(母魚)의 향긋한 젖내를 잊지 못한다.

 

글로키디움. 왼쪽 위쪽으로 유생사를 볼 수 있다.<사진: 권오길 명예교수>


물고기가 조개에 산란키 위해 주변에 얼쩡거리면 재빨리 알을 훅 훅! 내뿜는다. 여기서 '알'이라고 했지만, 실은 이미 꽤나 발생이 진행한 1.5mm가량의 '유패(幼貝)'로, 이를 갈고리라는 뜻의 ‘글로키디움(glochidium)'이라 부른다.

 

클로키디움에는 이미 두 장의 여린 껍데기가 있고, 그 끝에 예리한 갈고리(hook)가, 그 갈고리에 수많은 작은 갈고리(hooklet)가 있다. 그 갈고리로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비늘을 쿡 찍어 물고 늘어진다. 그뿐 아니다. 글로키디움은 가늘고 긴 유생사(幼生絲,larval thread)라는 실을 늘어뜨려 놓는다. 일종의 올가미인 셈인데, 종에 따라서는 몸길이의 60배나 된다. 물고기가 근방을 지나치면서 올가미에 걸리면 몸을 감아서 무전여행(無錢旅行)을 한다. 

 

물고기는 숙주이고 글로키디움은 기생충이다. 녀석들은 물고기의 몸 속 깊숙이 헛뿌리(haustorium)를 박아서 체액이나 피를 빤다. 글로키디움이 더덕더덕 떼거리로 많이 달라붙으면 까뭇까뭇 육안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러면 숙주인 물고기가 기진맥진 죽는 수도 있고, 2차 세균 감염으로 생채기가 심해 형편없는 몰골이 되기도 한다. 정말 갚음하기 어렵다! 한편 조개마다 글로키디움의 크기나 모양이 다르기에 종(種)분류의 검색(檢索)열쇠(key)가 된다. 새끼를 물고기에 붙여놓은 조개는 제 새끼가 다른 동물들에게 잡혀 먹힐 걱정이 없다. 게다가 기동성 좋은 물고기 배달부가 종횡무진 새끼들을 멀리까지 옮겨주니 얼마나 좋은가. 신천지를 개척하는 유리한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을 하는 것이다. 조개 유생은 역시 근 한 달간 탈바꿈하여 조개 모양새를 갖추면 강바닥에 떨어져 거기서 살아간다. 제2의 탄생인 것이다.

 

 

조개와 물고기의 주고 받기는 숙명적 만남, 뗄 수 없는 상생이다

이들 두 동물의 주고받기는 유전인자에 프로그래밍(programming)되어 있는 것. 숙명적인 만남, 뗄 수 없는 상생(相生)이다. 그래서 강에 조개가 절멸하면 물고기가 잇따라 전멸하고 물고기가 없어지는 날에는 조개도 따라 사라진다. 도미노 같은 것이다. 찬탄이 절로 나온다. 서로 없이는 못사는 이런 관계를 두고 인연이라 하는 것. 모든 사물은 다 연에 의해서 생멸(生滅)한다. 넌 물고기 난 조개, 부디 우리의 귀한 연분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



생물 환경은 ‘공진화’하므로 물리적 환경 변화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나는 지난 글에서 자연선택이 생명체를 완벽하게 만들 수 없는 첫째 이유로 환경 변화를 꼽았다. 생물의 환경이 늘 변한다고 말할 때 ‘환경’은 온도, 습도, 일조량 등의 이른바 물리적 환경(physical environment)이다. 하지만 생물의 환경에는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생물들이 형성하는 생물 환경(biotic environment)도 있다. 생물 환경에 대비하여 물리적 환경은 다른 말로 비생물 환경(abiotic environment)이라고도 한다. 비생물 환경과 생물 환경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생물 환경은 그것이 둘러싸고 있는 생물과 함께 변화한다, 즉 공진화(coevolution)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물리적 환경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공진화의 예로 가장 잘 알려진 관계는 단연 현화식물과 그들에게 꽃가루받이(pollination)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꿀을 얻는 벌, 나비, 박쥐, 새 등의 동물이 맺고 있는 관계이다. 꽃가루받이는 서로 이득을 주고 받는 상리공생(mutualism) 형태의 공진화이지만 서로 쫓고 쫓기는 관계인 포식(predation)과 기생(parasitism)의 상대들도 끊임없이 밀고 당기며 함께 진화한다. 날로 속도가 느는 치타의 추격을 따돌리려 영양도 점점 빨라지고, 늘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여 공격하는 기생생물에 대항하여 기주생물(host)도 새로운 유전자 조합으로 면역력을 키운다. 이 관계는 마치 옛날 소련과 미국이 벌였던 군비경쟁을 방불케 한다. 소련이 새롭고 더 강력한 미사일을 개발하면 미국은 그걸 공중에서 격침시킬 수 있는 요격미사일을 개발하곤 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와 흡사하게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군비경쟁을 진화적 군비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이라고 부른다.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

"...문화는 공동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지만 이때 개별 마음은 유전적으로 조성된 인간 두뇌의 산물이다. 따라서 유전자와 문화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연결은 유동적이다. 얼마나 그런지는 불명확하지만 말이다. 또한 이 연결은 편향되어 있다. 즉 유전자는 인지발달의 신경회로워 규칙적인 후성 규칙(後成規則, epigenetic rules)을 만들어 내고 개별 마음은 그 규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직한다. 마음은 태어나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성장한다. 물론 자기 주변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런 성장은 개체의 두뇌를 통해 유전된 후성 규칙들의 안내를 받아 이뤄진다.


 문화는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부분으로서 각 세대 구성원 개인의 마음 속에서 집합적으로 재구성된다. 구전 전통이 글쓰기와 예술을 통해 증보되면 문화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고 세대를 건너 뛸 수도 있다. 그러나 후성 규칙이 주는 영향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인 것이며 제거될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하게 유지된다.


어떤 이들은 주변 문화와 환경에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하도록 해 주는 후성 규칙들을 대물림한다. 그리고 그런 규칙을 전혀 갖지 않은 사람이나 있어도 약한 규칙을 가진 이들은 생존과 번식에서 밀려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좀 더 성공적인 후성 규칙들은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 규칙들을 규정하는 유전자들과 함께 개체군 내에서 널리 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인간 두뇌의 해부/생리적 구조가 진화해 왔듯이 행동도 자연 선택에 의해 유전적으로 진화해 왔다.


 유전적 속박의 본성과 문화의 역할은 이제 다음과 같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어떤 문화 규범은 경합하는 다른 규범들보다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한다. 이때문에 문화는 유전적 진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화하지만 그 속도는 일반적으로 훨씬 더 빠르다. 문화적 진화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전자와 문화 사이의 연결은 더 느슨해진다. 하지만 그런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는 법은 없다. 문화는 정확한 유전적 처방 없이 고안되고 전달되는 정교한 적응들을 통해 완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에드워드 윌슨, 통섭, 232-233p 



공진화의 개념 확장과 산업적 의미

공진화 개념이 발전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공진화의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은 기업 및 산업의 발전에 대한 통창력을 제공하여 준다.

 

내성의 증가에 대한 대비

인체와 세균과의 관계도 경쟁적 공진화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류는 1928년 페니실린의 발명 이후 세균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듯이 보였으나, 세균이 다시 진화하여 어떤 항생제로도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인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하였다. 따라서 항생제를 남용하여 세균이 진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는 조직 및 사회 발전에도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악 등 조직이나 사회에서 억제하고 싶은 행동이나 조직들도 억제책에 대응하여 진화할 수 있으므로, 초기에 너무 강한 억제 정책을 시행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악 억제책이 사회악을 억제하기 보다는 다른 곳으로 이전시킨다는 ‘풍선 효과’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정책을 입안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급진적 변화의 부작용에 대한 대비

공진화의 사례 연구는 오랜기간 공진화한 부분들은 예상하기 어려운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제거하였을 경우,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표적인 연구가 기생충과 인체의 공진화에 관한 연구이다. 영국과 베트남 연구진은 기생충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이 알레르기 발생률이 매우 낮은 것을 파악하고, 이들에게 구충제로 기생충을 제거한 결과 집먼지진드기에 대한 알레르기가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기생충이 수백만 년 동안 인간과 공진화하면서 인체의 면역반응을 무디게 해 더 오래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에, 몸 안에 기생충이 없어지면 면역체계가 균형을 잃으면서 알레르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기업이나 사회에서 급진적인 개혁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점을 깊이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2006년 나이키는 축구공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도 어린이들의 노동을 착취한다는 비난에 직면하였다. 이후 나이키는 수제 축구공을 하청생산하던 인도의 사가 스포츠가 노동시간과 근로 환경 기준 등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을 종료시켰다. 사가의 형편없는 경영으로 나이키가 어린이 노동과 다른 노동위반 행위와 관련 있는 기업처럼 인식되는 점에 대한 부담이었다. 사가 스포츠 노동력의 70%가 나이키 제품 생산을 위해 고용되었기 때문에 나이키와의 계약 종료는 이 어린이들에게 더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니스벳(Nisbett)과 코헨(Kohen)은 미국의 남부 지역이 북부보다 폭력적인 이유를 사례로 문화가 유전자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였다. 미국 남부는 이민 초기에 주로 목축업자들이 정착하였고, 목축업의 특성상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력 등의 공식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웠고, 소유하고 있는 동물이 전 재산이기에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어떠한 위험이라도 감수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부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라든지, 모욕적인 언행에 대항할 때는 기꺼이 폭력을 행사하는 경형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명예를 중요시하는 문화(Culture of honor)'로 인하여 자신이나 가족 등에 대한 모욕에 대항하기 위한 범죄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또한 통제된 상황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남부 사람들은 모욕을 당했을 때 북부 사람들에 비해 코르티졸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훨씬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나서, 문화가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 것을 증명하였다. 이러한 ‘명예를 중요시하는 문화(Culture of honor)'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폭력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은 예상외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인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보이드(Robert Boyd)와 피터 리처슨(Peter J. Richerson) 교수는 문화를 인류의 진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생물학적인 개념으로 보고, 유전자의 변형은 심리학적, 동물행동학적 요인뿐 아니라 문화적 환경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즉 인간을 개개인이 모인 집단인 개체군으로 보고, 이 개체군의 문화가 다시 그 안의 개개인을 변형하면서 인류가 진화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 행동을 유전적ㆍ문화적ㆍ환경적 원인의 상호 작용으로 설명하였다. 통섭(consilience)'의 주창자로 유명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gene-culture coevolution)’을 주장하면서 문화의 단위(모방자)가 의미 기억의 연결점과 그것의 뇌 활동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말하였다. 인간의 마음이 작용해 만들어진 문화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지고 인간의 유전자는 다시 인간의 마음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이며, 이 과정을 통해 마음도 문화도, 유전자도 진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즉, 문화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가 서로 피드백 관계로서 공진화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확보를 위한 준비

예측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하여서는 조직이나 기업내에 다양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경영전략에서는 순혈조직으로 구성된 경영진이 운영하는 기업들은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경영진이 운영하는 기업들보다 변화에 대한 적응을 잘 하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이러한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공진화는 많은 역할을 한다.


지구에 다양한 광물이 존재하는 것도 생명체와 광물간의 공진화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태양계 행성이 만들어지던 45억 6천만년 이전에는 겨우 60여 종의 광물만이 존재했지만, 지구 행성이 생긴 뒤 화산 폭발과 물의 작용 등으로 광물의 종류가 수백 종으로 늘어났고, 이후 원시생물이 탄생하고 바다에 조류와 말류가 번창하면서 광합성 작용으로 산소가 배출됐고, 대기 중에 자유산소(O₂)는 금속산화물의 출현을 촉진했다. 조개류가 죽고 나서 쌓이며 생긴 석회 광물도 지구에 흔하게 됐으며, 미생물의 신진대사를 통해 생긴 점토 광물도 지구에서만 볼 수 있는 광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억 년 전 무렵에 지구에 금속산화물을 만들 만큼 충분한 산소가 만들어진 후, 4,200여종인 지금의 상태로 진화해 왔다.


카우프만(Kauffman)은 공진화 원리를 기업과 기업, 혹은 기업과 시장 또는 기업과 소비자 등 개체 수준을 넘어선 집단 범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으로까지 확장되었고, 비생명체인 기술 영역까지 확대하였다. 그는 생명의 기원에서 시작해서 수정난의 형태형성에 이르기까지, 캄브리아기의 대번성에서 기술혁명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주제들의 근저에 깔려있는 질서를 보여주면서 공진화 원리를 설명하였다.



자기조직화

'자기조직화는 복잡성 과학의 이론을 토대로 하여 출현한 이론이다.


자기조직화를 행정시스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란 시스템의 구조가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관련이 없이 스스로 혁신적인 방법으로 조직을 꾸려나가는 것을 말한다. 즉, 한 시스템안에 있는 수많은 요소들이 얼기설기 얽혀 상호관계나 복잡한 관계를 통하여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자기조직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일리아 프리고진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는 점균류 곰팡이를 관찰하여 자기조직화 이론을 도출해내었는데, 점균류 곰팡이는 영양분이 모자라게 되면 서로 신호를 보내어 수만 마리가 일제히 요동을 시작하여 한 곳에 모여 어떤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그들은 응집 덩어리를 형성하고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기어다니며 영양을 섭취한다. 이 후에, 환경이 다시 나아지면 다시 흩어져서 단세포 생물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조직화 이론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혁신을 주도하는 세계의 흐름속에서 주목 받는 이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동물행동학의 근원은 유전자에 있다

윌슨의 가장 주목할 만한 이론 중의 하나는 많은 동물 집단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이타적 행위조차도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진화되었을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다윈의 진화 이론에 의하면 자연선택은 각각의 생물 개체에 작용하여 그 개체로 하여금 생식의 기회를 증가시키는 육체적․행동적 특징들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한 생물체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타적 행위는 자연선택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렇지만 윌슨은 그런 이타적 행위들이 사실상 서로 밀접한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 집단 속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비록 자신은 죽지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다른 개체들에게 보다 많은 생존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동물들의 이타적 행위도 진화적 입장에서 본다면  결국 후손들에게 더 많은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행위라는 것이다. 윌슨은 진화의 전략이 개체보존이 아닌 유전자 보존에 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이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선택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확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행동의 대부분은 각 개체들에 내장된 유전자들에 의해서 통제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개미들이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엄격한 위계질서를 구축하고 고도의 분업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나 대부분의 동물들이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행위나 최고의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수컷끼리 생명을 걸고 혈투를 하는 행동 등이 모두 그 내면에는 자신이 소유하는 유전자를 보다 많이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전략전술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이 등장한 이래 1970년대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던 이유는 분명하다. (1975년 이후 30년 동안 사회생물학을 주제로 해서 발간된 책만 해도 수백 권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우리 인간도 동물계의 일원인 분명한 바, 인간이라고 해서 사회생물학이 제시하는 이론에서 자유로울 수는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회생물학은 불가피하게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유발하게 되었는데, 이런 논쟁의 중심에 선 연구자의 입장에서 윌슨은 1978년 또 한번 화제의 책 <인간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를 내아서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책의 발간으로 윌슨은 처음으로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의 두 번째 퓰리처상 수상은 1990년 <개미들(The Ants)>의 출간으로 이루어졌다.



인간행동 역시 결국은 진화의 산물이다

<사회생물학>과 <인간본성에 대하여>라는 두 책에서 윌슨은 일관된 입장을 피력한다. 인간은 행동과 사회 구조를 획득하는 성향을 유전에 의해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데 이런 성향은 말하자면 대개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특성에는 남녀간의 분업, 부모자식간의 유대, 가까운 친척들에게 행하는 고도의 이타성, 근친상간 기피, 여러 다양한 윤리적 행동들, 이방인에 대한 의심, 부족주의, 집단내 순위제, 남성 지배 등이 포함된다. 사람들은 비록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선택을 행사하지만 이런 결정에 관계하는 심리적 발달의 경로는 비록 우리 자신이 아무리 다른 길로 들어서고자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우리 몸 속에 깃들어있는 유전자들에 의해서 어떤 일정한 방향을 지향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다.


윌슨에 따르면 인류 문화가 제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결국은 이런 특성을 향해 부득이 수렴되는 것이 당연하다. 예를 들어서 서울 도심에 사는 사람이나 남태평양의 원시부족의 일원이나를 막론하고 설령 그들이 수만 년을 격리되어 있었다고 해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공통적인 유전자들로 인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간본성에 대한 이런 윌슨의 관점은 1970년대의 시대조류에서 볼 때 대단히 예외적인 관점이었다. 사실상 서구사회에서는 20세기 내내 천성인가 양육인가 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당시에는 양육론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와중에 제기된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천성론에 더할 수 없는 힘을 실어주게 되었는데, 이 논쟁은 지금까지도 곧잘 과학논쟁의 주제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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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마을에 가서 추장의 집을 찾으려거든 마을에서 제일 허름한 집을 찾아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부족사람들의 일을 챙기다 보니 자신의 살림조차 제대로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낮에는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지, 밤에 집에 등짝이라도 붙이려고 하면 사람들이 찾아와 ‘이 일 어떻게 하면 좋냐?’고 도움을 청하기 일쑤이다. 심지어 잠자고 있는 새벽 4시에도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이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어려운 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다 보면 자기의 생계를 위해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추장이나 주술사들은 가난하다. 그들이 결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이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일을 도와준 지도자들에게 감사하다며 먹거리며 옷가지 등을 손수 만들어 선물로 가져온다. 하지만 추장이나 주술사들은 그것들조차 자신보다 더 어렵거나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지도자의 자리는 고달프고, 힘든 자리다.

 

그럼에도 많은 아메리카 젊은이들이 추장이나 주술사 같은 지도자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지도자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이 정치야말로 ‘최고의 영적인 행위’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 북미 이로쿼이 인디언들은 여인들이 지도자를 뽑는다. 그녀들은 부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주의깊게 관찰한다. 아이가 친구들과 잘 노는지, 여자아이를 놀리거나 울리지는 않는지, 또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거나 말을 거칠게 하지는 않는지, 동생들을 데리고 잘 노는지, 또는 쓸데없이 칭얼대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는지, 아이가 유순하고 착한지, 아니면 심술궂은지 등등.... 


그렇게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을 면밀하게 관찰한 다음, 그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그중에서 지도자를 뽑는다. 그때 어렸을 적에 동생들을 때리거나 여자아이들을 못살게 군 적이 있는 아이들, 또 쓸데없이 짜증을 잘 내거나 칭얼대던 아이나 유달리 욕심이 많았던 아이들은 우선적으로 지도자의 후보에서 제외시킨다. 


비록 어린 시절의 그런 좋지 않은 품성을 털어버리고 훌륭한 젊은이로 자랐다고 해도 어린 시절의 그런 품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습성들이 잘 다스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뒤 힘을 갖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린 시절의 못된 성질들이 다시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어려서부터 착하고 성격이 원만하고 동생들을 잘 챙기며, 어른들의 말에 순종하고, 부락의 일에 헌신적으로 나섰던 아이들 중에서 미래의 지도자를 점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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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호 평전- 사회변혁을 꿈꾼 민중경제학자의 삶

조용래 (지은이) | 인물과사상사




‘경제민주화 주장’ 유인호 교수, 평전으로 기리다

20주기 기념 추모집도 발간… 민중경제학자의 삶 재조명


“어느 날 목사님들이 모여 ‘유 교수는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얘기한 지 20년이 지났는데 아직 망하지 않은 걸 보니 거짓말 아니냐’고 농을 걸었습니다. 교수님은 되레 ‘목사님들은 예수 재림을 20년 가까이 주장하고 있는데 내가 한 것이 무슨 대수냐’는 위트를 보여줬어요. 자본주의 위기가 세계적 규모로 퍼지고, 종주국인 미국에서조차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니 교수님의 예언에 가까워진 셈입니다.”


김병태 건국대 명예교수는 민중경제학자 일곡 유인호 전 중앙대 교수(1929~1992)를 이렇게 회상했다. 지난 5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는 유 교수의 2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330㎡(약 100평) 규모의 행사장은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가득 들어찼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함세웅 신부, 박형규 목사, 한승헌 변호사,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김세균 서울대 교수 등 많은 이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추모식에 이어 고인의 삶과 사상을 집대성한 <유인호 평전>과 지인들의 추모사를 엮은 <진보를 향한 발걸음>(각 인물과사상사)의 출판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무엇이 오랜 세월을 지나고도 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일까.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경제민주화를 처음으로 제기한 학자가 바로 유 교수였다. 재벌을 비롯한 소수 1%의 정치·경제적 장악력이 강해졌고, 중소상공인·자영업자·노동자·농민의 생활이 어려움을 더해가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평전을 집필한 조용래 박사는 “한국경제는 유 교수가 본격적으로 주장을 펴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줄곧 제기해 온 문제군(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당면 과제로 경제민주주의 실현을 꼽았다. 1980년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뒤 ‘서울의 봄’이 일어나자 유 교수는 유신헌법을 폐기하고 새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제 기본권 7가지 규정’을 제기했다. 여기에는 ‘국가 권력은 경제력 집중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의 사상은 ‘박정희 신화’를 만들어낸 고도성장의 허상을 지적하는 데서 비롯됐다. 유 교수에게 당시의 성장은 자본과 기술, 시장을 외국에 의존한 ‘종속적’인 성장에 불과했다. 수출과 국민총생산(GNP)이라는 숫자 증대에만 매달리면서 재벌을 비롯한 일부의 배만 불리고 대다수를 피폐하게 만드는 허깨비뿐인 성장이었다. 대신 유 교수는 “진정한 의미에서 생활경제의 풍부함”(김종걸 한양대 교수)을 이야기했다. 그는 ‘민중’ ‘민족’ ‘민주’의 경제학자로 불렸다. 대다수 민중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민중경제’, 세계화 시대에도 강력한 국내 자본을 육성하는 ‘민족 경제’가 돼야 하고, 그 모든 것을 추진하는 데 ‘민주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벌어진 뒤 박정희 군부세력은 정유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당시 동국대에 재직하던 32살의 유 교수에게 계획안을 맡겼다. 유 교수는 외자를 일절 배제하고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건설할 것을 주장했으나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안에 밀려 채택되지 못했다. 훗날 1970년대 유신경제가 수출은 16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늘었지만, 외채를 220억달러나 도입해야 했으며 무역적자도 136억달러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유 교수의 혜안을 보여준다.


유 교수는 ‘국내 자원 활용 주도형’ 경제 발전을 주창했다. 그는 ‘자본주의적 기업농’ 육성책에 반대해 ‘농업 협업화를 통한 농민들의 연합’을 주장했다. 농민들이 일정한 토지와 농기구를 공동 소유하고 생산의 결과를 나눠가지는 방법이다. 유 교수는 새마을 운동을 농업 협업화의 방향으로 전개하자고 박정희 정부에 건의했으나 정치적 목적을 우선한 집권세력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는 재벌을 소규모 기업들로 해체하기보다 재벌의 소유를 ‘총수’로부터 ‘사회’로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을 국유화시켜 관료들에게 맡기는 방법이 아니다. 농업 협업화처럼, 공장도 구성원들에게 운영을 맡기는 소유의 민주화를 뜻한다. 리쓰메이칸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공부한 유 교수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구소련식의 계획경제가 아니었다. 

계급이 사라진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이루는 사회에 가까웠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일곡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명료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고 표현한다.

 

   

▲ 1974년 10월 한 일간지에 ‘연료정책의 모순’이라는 칼럼을 쓰기 위해 연탄공장을 찾은 유인호 교수. 유 교수는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 인물과사상사 제공


유 교수는 자신의 최대 연구과제가 “나와, 겨레와, 인류의 가난과 슬픔과 비참을 극복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했다. 그는 실천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1980년에는 민주화를 촉구하는 ‘134인 시국선언’을 주도했다가 신군부가 만들어낸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추모집에서 “민중을 위한 스스로의 학문적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고행의 길을 살다 간 용기있는 사람”이라며 “그 발자취가 역사의 한 구석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 글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 황경상 기자가 경향신문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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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 역사를 바꾼 고대 농법의 수수께끼

요시다 타로 (지은이) | 김석기 (옮긴이) | 들녘




한국에서는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안철환 선생님에게서 "위험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전통농업의 본래 목적이다."라는 견해를 들었는데, 이 책을 쓰면서 세계 각지의 전통농업도 '생산성'과 '안정성'을 저울질했을 때 안정성과 지속성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효율이냐 위험이냐'라는 본원적인 질문은 농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칼럼에서 잠시 소개한 '회복력'이란 개념을 이 자리를 빌려 약간 보충하여 설명하고 싶습니다. 원자력발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의 선진적인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회복력이 화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력이란 자연재해와 재해 등의 충격을 받았을 때 공황을 일으키지 않고 유연히 대응하는 힘 또는 타격을 모두 흡수할 수 없어도 즉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 '극복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염된 하천과 호수도 오염 유입을 중지시키면 다시 정화되고 다친 사람도 세월이 충격을 완화시키듯이, 자연에도 사회에도 개인에게도 회복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복력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어느 한계를 넘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그림을 봅시다. 2009년 회복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지구 체계의 경계, 인류가 안전히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탐구하다'에서 발표한 그림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환경에는 아홉 가지 넘을 수 없는 한계(그림 안쪽의 선)가 있는데, 그 가운데 기후변화, 생물다양성의 감소, 질소순환의 변화는 인류의 부하로 인하여 이미 지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외의 두 가지는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기에 그 경고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의 생명은 38억년 전 탄생한 이후 전례 없는 대멸종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공룡의 멸종으로 유명한 2억 5000만년 전의 폐름기 말에도 모든 생물종의 90~95%가 멸종하는 등 지구의 역사에서는 과거 5번 정도 대량 멸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멸종 속도는 과거보다 100~1000배나 빠르고, 더욱이 이번 세기의 멸종 비율은 10배 이상으로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질소의 혼란도 심각합니다. 인간은 대기의 질소를 공업적으로 암모니아로 전환시켜 화학비료(8000만 톤/년)를 생산하고, 콩과작물을 재배하여 고정(4000만 톤/년)시키고, 화석연료를 연소(2000만 톤/년)시켜서 질소의 자연적인 순환을 교란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현재의 25%인 1년에 약 3500만톤이 한계라고 합니다.


인도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미네랄인데 인 오염으로 인한 부영양화로 작은 호수의 바닥이 산소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듯이, 풍화로 자연적으로 유입되는 양을 넘어서 바다로 인이 흘러 들어가면 '해양 무산소 사태'를 일으킵니다.


폐름기의 대량 멸종은 이것이 요인의 하나였다고 생각되는데, 겨우 20% 늘어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화학비료로 쓰려고 인을 1년에 2000만 톤이나 땅속에서 캐어 900만 톤이나 바다로 유입시키고 있습니다. 무산소 사태를 일으키는 22만 톤의 40배나 되어, 지금 유입되는 양의 1/10 이하로 억제하지 않으면 앞으로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농지 개발도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지구에서는 얼어붙은 땅을 제외하고 약 12%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그 이상 개발할 수 있는 곳은 앞으로 3%(약 4000억 평)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이상 개발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면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무리하게 개발하면 지구 표면의 에너지 균형이 변하고 제트기류에도 변화를 일으켜, 티베트의 기온과 강수량이 변화하며 중국과 인도의 수자원에도 영향을 준다는 모의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구는 안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위약한 체계입니다.


이 책의 칼럼에서도 소개한 캐나다의 생태학자 버즈 홀링 박사는 "지금과 같은 초밀도 정보사회는 사고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상태이다."라고 훨씬 이전부터 경고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홀링 박사의 경고 내용을 읽을 때마다 이번 일본의 원자력발전 사고도 미리 예언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건너뛰어 처음 방문한 한국에 대한 저의 첫 번째 인상은 옛날 일본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30년 전의 일본처러럼 전통적인 공동체의 장점도 남아 있고, 또 경제적인 경쟁력도 있으며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는 등 사회에 성장에 대한 꿈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편 지금의 일본은 세계화 속에서 공동체의 기반은 끊어지고, 경제적인 활력도 잃고 젊이이들도 경쟁에 대한 의욕을 잃었으며, 사회 격차는 벌어지고, 이번 원자력발전 사고로 더욱 몰락해 나아가지 않을까 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앞에 이야기했듯이 지구 환경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이 더 이상 경제성장을 하더라도 좋을 것이 없고, 한국도 실패한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그 뒤를 따를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살아가려면 에너지도 식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회복되지 않는 지구의 경계를 넘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계속 늘어나는 에너지와 물과 식량 수요를 충당하여 인류가 살아남을 것인가? 


회복력 연구의 대가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라이언 워커 박사는 그 해결책은 '효율화'에 있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효율화와 합리성으로만 돌진하면 위험이 높아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경고합니다.


이 책의 칼럼에서도 이야기하는 '영고성쇠' 곧 자연 생태계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을 무리하게 경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합니다. 홍수를 댐으로 무리하게 막더라도 언젠가 그것을 뛰어넘는 큰 홍수가 일어납니다. 산불을 계속 억제하면 타기 쉬운 낙엽이 쌓여서 오히려 큰불이 일어납니다. 해충의 발생을 농약으로 방제한다면 더욱 피해를 높입니다. 


세계 각지의 생태계를 연구한 회복력 연구자들이 제창하는 철학은, 기존의 서양적인 자원 경영의 발상과는 매우 다른 언뜻 보면 쓸모없어 보이는 '중복성(필요 최저한도가 아니라 중복되고 여분이 있는)'을 소중히 하라고 합니다.


이 '회복력'을 주제로 2005년 가을에는 영국 남부 데번주의 작은 마을 토트네스에서 기후변화와 석유 생산정점이란 '두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 사회의 회복력을 높이는 '소도시 전환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영국 각지는 물론 유럽 각국 및 오세아니아와 세계 각지에서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 생태학을 검토한 회복력 연구자들이 도출한 최첨단 공동체 만들기와 사회 관리의 결론이 우리 동아시아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은 김석기 씨의 전문이기도 한 '동양철학', 특히 노장사상과 묘하게도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이 책은 농법이 중심 주제인데, 만약 전통농법과 생태농업의 추진만이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버리고 에너지 절약에 노력하며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고, 금전적인 경제 성장이 아니라 문화적인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서울대나 연세대에 진학하기 위한 시험공부를 위한 학력이 아니라 예술과 음악을 누리기 위한 교양 육성을 목표로 하고, 또한 재해 등의 위험에 강한 사회 만들기를 국가의 목표로 삼으면 어떻까?


이야말로 회복력을 갖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모델의 하나가 오랫동안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쿠바입니다.


카트리나보다 강한 허리케인이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만전의 준비와 공동체의 상부상조에 의하여 쿠바에서는 거의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자 요시다 타로.




'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 귀농총서' 30번째 신작. 


고대 농업 기술과 선주민들의 지혜를 돌아보고, 장단점을 찾아 비판하고 또 수용하면서 그것들이 지금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살핀다. 또 지속가능한 인류사회를 위한 지속가능한 농경법을 다룬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국내에 이미 소개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의 저자이다. 그는 2010년 9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농수산대학과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쿠바의 전통농법,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을 소개했다. 그때 들녘출판사와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는 “전통농업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며 집필을 의뢰했다. 한·일 양국의 전통농업에 대한 관심이 빚어낸 역작이라 하겠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_변경 농업의 탐색을 권유

현대농업은 석유로 움직이는 공업이다 | 2012년을 경계로 문명은 전환한다 | 문명 전환의 열쇠는 변경과 고대에 잠들어 있다


Ⅰ. Back to the Future

1. 왜 생태농업과 전통농업인가

유기농업이 번성하기에 생태농업으로 전환 | 농업생태계의 구조를 활용한 생태농업

라틴아메리카에는 500가지 농법이 있다

2. 세계 농업유산

위기에 처한 전통 유산 | 인류에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은

3. 생태농업과 전통농업을 평가하는 국제평가

녹색혁명에도 유전자조작에도 미래는 없다 | 생태농업을 평가하는 유엔 식량 고문 | 구미의 농업사관을 넘어서

전통농법 칼럼1 왜 가을이 되면 산이 물들까 ―질소와 에너지


Ⅱ. 미래의 유산 ―마야, 아즈텍, 아마존, 잉카

1. 고대 농법의 부활로 마을을 되살림

농업의 근대화로 마을을 버리고 떠난 농민들 | 세계에서 가장 앞선 농법 밀파·솔라

2만 종의 옥수수를 보전 | 풀투성이 옥수수밭 |고대 수로의 부활로 토양침식을 막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사람들을 설득하다

2. 거대 도시를 부양한 물위의 채소밭



책소개


전통농업은 아직까지도 변경농업, 혹은 문명의 한계지에서나 가능한 농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탈석유화를 달성함으로써 생태농업을 정착시킨 쿠바, 재래품종을 적절히 섞어지음으로써 식량과 환경은 물론 홍수문제까지 극복한 아즈텍의 전통농업, 토종종자의 부활로 마을을 되살린 인도의 전통농업 등은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농법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이고, 토양침식을 막으며, 병해충을 방제하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서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릴 수많은 슬기가 깃들어 있다. 


이 책은 ‘고대 농업 기술’과 선주민들의 ‘지혜’를 돌아보고, 장단점을 찾아 비판하고 또 수용하면서 그것들이 지금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살핀다. 또 지속가능한 인류사회를 위한 지속가능한 농경법을 다룬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국내에 이미 소개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의 저자이다. 그는 2010년 9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농수산대학과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쿠바의 전통농법,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을 소개했다. 그때 들녘출판사와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는 “전통농업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며 집필을 의뢰했다. 한·일 양국의 전통농업에 대한 관심이 빚어낸 역작이라 하겠다.


전통 농업이 희망이다 

석탄도 원자력도 석유를 대신해서 공업사회와 현대농업을 유지할 만한 힘이 없다. 안타깝게도 석유 생산은 2012년을 기점으로 생산량이 정점에 달했다가 급하락할 전망이다. 따라서 종자 생산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농사의 전 과정을 석유에 의존하는 현재의 농경법으로는 인류의 식량을 담보할 수 없다. 하지만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미래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옛날로 돌아가면 좋은 것이 있을까, 전통 농업으로 모든 세상사가 쉽게 해결될까?”라고 물음을 던지면서 쿠바, 마야, 인도, 스리랑카, 뉴기니, 발리 등 각 나라의 전통 농업을 소개한다. 


전통농업이란 몇 천 년에 걸쳐 시행착오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복잡한 농업생태계 안에서 축적하여 온,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기술이다. 불행히도 과거의 이러한 뛰어난 지혜의 대부분이 선진국에서는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는 아직 수많은 노하우가 남아 있다. 그는 또 전통 농업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사례들을 충분히 소개하면서 현대 사회는 이제 ‘전체론’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즉 농업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삶 자체가 ‘전통으로 회귀하든지 근대 과학을 추진하든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벗어나 과학이든 사회든 경제든 ‘통합’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위험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전통농법의 본래 목적인 바 세계 각지의 전통농법도 ‘생산성’보다는 안정성과 지속성을 중시했음을 밝히고 있다. 


회복력을 갖춘 전통사회 

자연재해나 재해의 충격이 있을 때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고 유연히 대응하거나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을 회복력이라 한다. 자연과 사회, 개인에게도 회복력이 있지만 어느 한계를 넘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특히 기후변화·생물다양성의 감소·질소순환의 변화는 이미 한계를 뛰어넘었고,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농지개발도 한계에 이르렀다. 질소순환 및 농지개발의 한계는 인간의 에너지원인 식량생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세계 각국의 전통농업은 우리 인류가 오래 전에 잊어버린 공동체와 전통사회의 미덕을 일깨우면서 동시에 가장 생태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농경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 토종종자 부활로 마을을 살린 인도농업, 생산성과 생물다양성 보존에 성공을 거둔 스리랑카, 두둑을 이용한 이어짓기로 수확량을 보장한 뉴기니의 흙무더기 농법 등 고대 전통사회에서는 자연의 특성, 지역과 기후의 특수성을 십분 수용한 전통농업을 발전시켰다. 또한 이들 공동체의 일원은 자연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고, 다 같이 사는 사회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생산성에 목을 매지 않아도 공동체가 충분히 먹고 살만큼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명실공히 자연과 조화한 농경에 기초한 평등사회를 구현했다. 그야말로 자생력과 회복력을 갖춘 사회체계였고, 진정한 의미의 문명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변경 농업의 탐색을 권유하다

저자는"문명의 기초는 사람을 부양하는 먹을거리이다. 먹을거리를 낳는 것은 농법이다. 따라서 농법이야말로 문명의 요람이라 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메소포타미아가 염해鹽害로, 고대 그리스가 토양침식으로 멸망했듯이 문명의 중심지는 농법에 따라 변동한다. 20세기의 개막과 함께 시작되어, 평원을 지배한 석유농법도 석유생산정점(peak oil)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질 운명이다."고 주장한다. 또 유전자조작과 녹색혁명에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이제 전통농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 영화의 땅에 매장된 전통농업에서 미래 문명을 뒷받침할 농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통에 묻힌 슬기를 되찾아오는 것, 고대인의 지혜를 재발견하는 것은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시대착오적인 노스탤지어도 아니다. 환경 파괴, 인구 증가, 빈부 격차, 빈곤의 증대 등 목전에 다가온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 석유생산정점과 함께 도래할 총체적인 전 지구적인 위기를 탈석유 시대 농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보면 어떨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문명의 돌파구는 정녕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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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본래 옛적부터 소규모 단위의 자족적인 생활을 영위해왔다. 그런 삶에 자연은 부족함이 없었지만,
산업혁명과 대규모 생산.소비 즉 자본주의가 발생하며 새로운 불행이 커지게 됐다. 대다수가 아닌 소수만이 독점적 부와 쾌락을 누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결코 대다수 모두가 독점적 부와 쾌락을 누릴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세뇌되거나 믿고 있으며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그 모든 걸 감내할 수도 없고 감내하지도 않을 것인데,
지속적이지 않은 삶은 그 나락의 끝에 다다를 것이고 모두가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를 받을 것이고 살아남은 인류는 예전의 방식을 찾아 자족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자연의 모든 생물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시대의 사람이라는 존재만이 자연 속에 살면서 스스로를 분리시켜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문명이라는 것을 누린다고 생각하며 마음 속 공허함을 쾌락으로 채우며 하루 하루를 버텨간다.

조금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문명이라는 틀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삶인지를 자각하게 된다. 대규모의 집단적 시스템은 그만큼의 리스크를 안고가야 한다.

절대적 안정을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를 안다면 나는 결코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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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 장수농부 <좋은 마을>



내가 땅을 사게 만들도록 역할을 한 게 멧돼지였습니다. 왜 그런지 짐작이 갑니까? (제가 사는 곳은) 골짜기 위에 논을 작했는데, 첩첩산중인데 일조량이 굉장히 좋습니다. 된장발효조건도 좋습니다. 고르다보니까 좋은 곳을 골랐습니다. 멧돼지가 벼 익은 것을 좋아합니다. 복숭아도 익은 것 좋아합니다. 벼가 익으니까 멧돼지가 분탕을 쳐버립니다. 그래서 전 주인이 멧돼지 때문에 농사를 못 짓겠다고 해서 제가 그곳을 사게 됐습니다. 멧돼지 아니었으면 거기 자리 잡기 어려웠을 것입니다(웃음).

작년에 이사 온 분이 저보다 한 살 위입니다. 이 분이 얼마나 부지런한 지 (뒷산에 저는 한 번도 못 올라가봤다), 이 분은 등산로를 만들어서 9부등산로까지 개척했습니다. 이 분이 지난 등산하러 가셨다가 멧돼지를 만난 모양입니다. 산중에서 만나면 겁나죠. 백두대관 뒤에가 봄이 되면 나물이 좋아요.

봄나물 말씀해보셔요? (취나물, 머위, 두릅, 고사리..)우리 부부만 살 때는 산나물에 관심이 없었어요. 요새 이사 온 두 집이 다 좋아하셔요. 전에는 밑에 동네서 나물을 다 따왔는데, 이사 온 사람들이 따니까 신경이 쓰이는가 봐요. 알려져서, 이제 판도가 달라졌습니다.

점점 나물캐는 게 빨라졌다. (여담인데), 아주 나물이 좋습니다. 나물 캐러 갔다 이웃 아주머니가 금방 내려왔다, 멧돼지 소리가 난다고. 요즘은 (멧돼지 소리가 나니까) 조를 짜서 올라갑니다.

저는 5년간 (멧돼지)구경 한번 못해봤어요. 멧돼지가 제일 천적이에요, 사과밭도 그렇고. 이듬핸가 발자국은 많이 봤어요. 고구마를 심었는데, 좋게 말하면 자연농법이고 방치였다. 일을 굉장히 많이 하다보니까, 고구마에 신경을 못 써 풀이 엄청 났어요, 억센 풀들이 꽉 찼습니다. 언제 고구마밭에 가봤더니, 발자국이 많더라구요. (멧돼지가)고민한 흔적이 보여요. 고구마밭인가? 풀밭인가? 풀이 굉장히 많아서요. 우리 밭에는 못 들어가더라구요.

풀밭을 만들어보세요(웃음). 잠깐, 산골생활에 대해 스케치삼아 이야기 했습니다. 재밌습니다.


(
몇평 쯤 되십니까?) 다섯 집이 다 들어와서 사용할 수 있는 땅은 5천 평 정도. 아침에 나가보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각종 꽃, 새소리, 다 좋아요. (저희 집이)가공하니까 항아리사고, 원료 값 줘야 하고, 통장에 돈이 떨어지면 경치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시골사람들이 정도 많은 것 같지만 굉장히 타산적입니다. 옛날 인심 좋은 것 생각하면 실망도 많이 하게 됩니다. 굉장히 비합리적 기성이 대단합니다. 억지요, 억지. 그것과 만나서 속앓이 할 때는 경치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일을 심하게 해서 피곤하면 경치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그런 삶도, 돈 걱정 안하고 이웃사람과 불화하지 않고 일이 힘들지 않는 조건이 될 때, 자연 환경이 살려집니다. (그때) 농촌생활의 즐거움, 행복이 느껴집니다.


요즘 생각하는 게, 적어도 귀농을 해서 행복목표를 달성 하려면, 세 가지가 박자가 맞아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그렇고, 주변 귀농하는 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첫째, 동기랄까, 다른 말로하면 의욕이 분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귀농하려는 꿈이 분명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 말로 로망이 분명해야 합니다. 로망이 뭡니까?
(‘산을 좋아합니다. 산 가까이 가서 동물을 많이 키우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자연이 좋아서요. 아침에 해 뜨는 것 보고 저녁에 해 지는 것 보고. 자연과 살고 싶어서요.’ ‘모든 플랜을 남편에게 따라 가려구요.’) 결혼하신 분들은 자연과 살기 이전에 부부와 함께 살겠다는 로망이 중요합니다. 한분만 더? (정년도 했구요. 원래부터 그렸던 시골생활이 그리워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혼 안 하신 분, 결혼에 대한 로망은 없습니까? (생각 안 해봤습니다) 이걸

여쭤보는 이유는, 아주 현실적입니다. 로망이 서로 같은 게 귀농성공에 가장 중요합니다. 자연하고는 처음에는 좋지만, 오래 살다보면 너무 익숙해져버립니다. 처음에는 생명에 환희를 느낍니다. 오래가다보면, 몇가지 걱정 (돈 걱정, 부부싸움, 힘든 일)으로 자연이 눈에 안 들어옵니다. 보다 현실적인 로망을 생각해보십시오. 쓸 만한 남자를 구해서 같이 들어간다. 그게 단순한 삶입니다. 문화운동이, 소유로부터 존재의 삶을 살겠다는 겁니다.

경쟁, 갈등의 삶에서 벗어나서 단순, 존재의 삶으로 해보겠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문화혁명이죠. (저는)귀농을 은퇴해서 내려가는 은둔자의 삶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 혁명가들이라고 봅니다.



로망은 누가 억지로 갖게 할 수 없습니다. 진짜 힘듭니다. 많이들 말씀 나눴을 겁니다. 소박, 단순, 존재의 삶. 이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귀농합니다. 귀농자들 중에 가장 실패하기 쉬운 예가, 귀농해서 그린 로망 때문에 간절해서 귀농하는 게 아니고 무엇무엇으로부터 탈피하려고 귀농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확률이 많습니다. 서울생활이 싫어서, 사람관계가 싫어서 그렇다면, 행복한 경우가 쉽지 않습니다.


이보단 낫겠지, 하고 갔더니, 이보단 나은 정도가 아니고. (엄청나게 좋다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구리광산정도 일 줄 알고 갔더니 금광이다는 분도 소수 있습니다. 뭐가 싫어서, 탈피하려고 간 사람들은 오히려 확률로 보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도, 도시와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는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한테 치어서 시골 가겠다는 건 크게 오산입니다. 그렇다면, 서울 사는게 좋습니다. 서울은 익명성 공간이 확보돼 있잖아요. 시골은 집들이 띄움 띄움 있습니다. 익명성이 없어요. 안 좋게 말하면 프라이버시 보호가 잘 안 돼요. 관심이지만, 나쁘게는 간섭이 심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인사하면, “저쪽에서 어디 가느냐?”, “장에 갑니다.”, “뭐 사러 갑니까?”, “뭐 삽니다.”, “사서 뭐하게?” 아주 관심이 대단합니다.

나중에는 가다가 남원시장에 장화 사러 가는데, 밭에 갈 때 신으려고 사러 갑니다. 한꺼번에 얘기했더니, 재미가 없어. 처음부터 다시 얘기했습니다. 관심이 많아, 심지어 숟가락이 몇 갠가까지 압니다. 이건 사람 많지 않은데,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사이가 안 좋으면 지내기 참 힘들어집니다. 뭘 피해서? 예를 들어 경쟁이 싫다면, 경쟁대신에 앉아들일 것이 준비 안돼서 갑니다. 그게 없으면 자립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어져요. 그래서 확대해서 말하면 사회진보운동도 마찬가지이구요.

무엇무엇에 반대해서, 싫어서가 아니라 무엇이 좋아서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귀농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망이 간절하고 절실할수록 성공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 로망은 느리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신가요? (저는 그렇습니다) 좋은 로망입니다. 왜 느리게 살고 싶으세요? 000 (스피드 사회에서 모든 걸 몰아넣는 것 같에서요. 설명보다는 체험으로 다가오는 느낌으로 살고 싶어서요) 좋은 로망입니다. 이것이 가지고 있는 함정이 있습니다.

사실은 느리게 산다는 것은 그동안 산업사회 패턴들에 대한 반성, 성찰적 반성으로부터 나온 목표이기도 합니다. 크게 말하면, 인간중심으로부터 자연을 수탈해온 산업문명, 특히 한국 사람들이 가진 빨리빨리를 넘어서서 살고 싶다는 겁니다. 도 그렇게 살고 싶거든요. 주인의 삶, 주체적인 삶. 빨리빨리는 자기주체적인 삶이 아닙니다. 쫓기는 삶이 아닌 게 느리게 사는 삶입니다.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게 게으름입니다. 느리게와 게으르게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달라요.

요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게으름과 느리게는 전혀 다릅니다. 게으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구요.

느리게라고 할 때 연상되는 동물이 있습니다. (거북이) (나는 연상되는게) 호랑이와 사자는 느립니다. 두려운 게 없어요. 빠를 땐 기가 막히게 빨라요.

느리게 산다는 로망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겠다. 빨리빨리는 전부 강요된 삶입니다. 이걸 게으르단 것과 혼돈하면 굉장히 큰 함정에 빠집니다. 농촌에선 게으르게 살 수 없습니다.


주위가 24시간 보고 있는데, 그것을 견딜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 풀 때문에 스트레스가 아니고, 주변사람들 시선을 견딜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 농사일이 적기가 있어요. 시기를 놓쳐 버렸다하면, 일이 엄청 힘들고 수확도 못합니다. 그래서 호랑이와 사자처럼 느리지만 빠를 때는 전광석화같이 (시기를)맞춰져야 됩니다. 정말로 그 시기에 맞춰해야 할 일은 정말로 빨리 움직여야 됩니다.

그것이 바탕이 된 느림입니다. 느림을 게으름으로 생각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 로망이 어떤 로망인가가 첫째로 중요합니다. 사람이 행복을 그릴 때 사람마다 다 달라 객관화시킬 수 없습니다. 자기만의 로망을 절실하고 간절하게 아름답게 꿈꾸세요. 그랬을 때 성공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시골사람들이)어떤 말을 듣기 싫어하냐면, ‘나이 먹었으니 농사나 지어야지하는 말입니다. 농사일이 진짜 힘들어요.

귀농하려는 로망이 뚜렷할수록,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포기합니다. 로망은 구체적이고 절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실력입니다. 꿈만 있지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기도 힘들지만 주위가 힘들어요. 특히 가족단위에서 잘 봐야 합니다. 크게 두 가지 입니다. 로망은 절실하고, 아름다운데, 구체화시킬 실력은 준비가 안 되고 없을 때 그 꿈 자체가 공허해져요. 쉽게 말하면, 일은 벌려 놓은데, 제대로 땅을 활용하고 농사를 지을 실력이 뒷받침 안 되면 같이 가는 사람이 힘듭니다.

실력은 다 갖추고 태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적어도 실력을 닦아 보겠단 생각을 해야 됩니다. 예전에 도산 안창호선생은무실역행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이)너무 실무적인 능력이 없는 거예요.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실천의 발이 준비 안 되면 정말 힘들어집니다. 본인도 힘들뿐 아니라 주위사람들도 힘들어집니다. 귀농하려면, 서서히 그 로망과 함께 로망에 맞아떨어지는 실력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는 돈도 있습니다. 돈을 넉넉하게 준비하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자연과 주변사람과 더불어 즐길 수 있습니다. 돈 못지않게 실력을 준비해야 합니다. 농사기술은 배우면 됩니다.
 
그중 실력은 체력과 끈기입니다. 체력을 많이 준비하셔야 됩니다. 실력중 하나예요. 제가 아는 역귀농한 친구 중 하나가 헬스클럽에 가서 체력을 다졌습니다. 실제 농사는 그것과 다릅니다. 단기적인 힘쓰는 것은 젊은 사람에게 지는데, 일을 하면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서서히 체력을 준비해가야 합니다.



그 다음이, 소통의 실력입니다. 아까 농사방법도 얘기했지만, 실제로 농촌에 가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소통을 잘 해야 합니다.
문화혁명에서 핵심 하나가 소통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과 스트레스를 피해서 도시처럼 복잡하게 얽혀 사는 곳이 아닌 농촌 환경을 선택하려고 하지만 그것과는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문화적요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경쟁, 갈등하는 관계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맘을 여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소통이 있는 곳이라면, 이게 모두 공동체예요. 어떤 형태가 있는게 아니라, 사람사이에 소통이 원활하게 있는 곳이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준비를 해야 됩니다. 준비는 마음가짐의 변화라고 할까요. 아까 로망 얘기 하다 떠올랐는데,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로망이 뭘까요. 성인이 되고 싶은 로망입니다. 동의하십니까? 하십시다.

우리 성인이 시다. 괜찮습니까. 사실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겁니다. 기왕 귀농하실 거 성인이 돼 봅시다. 마음자체를 변화시키는 거예요. 귀농, ()으로 돌아간다. 인간본연의 가장 깊은 곳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봄은 어떨까. 왜 마음이 안 당깁니까.

정말 소통을 잘하려면 자기 스스로가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혹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 사례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을 변화했다면, 내가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결심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은, 아집이 있는 인간끼리 소통하려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 실력이 쌓이면 성인의 실력입니다.

사실, 면벽구년하고, 참선도 하고 명상도 하는데, (이것들도)굉장히 마음의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면벽보다는 대면입니다. 깨달은 사람이 내려와서 누가 더 깨달은지를 놓고 싸운다면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진짜 중요한 것은 소통이 되는 사람입니다. 공자는 몇 살 때 소통이 가능했다고 했습니까. 이순 (60), 귀가 뚫렸다는 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들린다는 겁니다. 요즘 소통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무소유, 사람간의 소통의 자유, 이것이 동기라면 이 길이 성인의 길이다. 여기서 실력을 쌓으면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기왕에 귀농하면, 이 같은 목표를 넌지시 가져봄이 어떤가 싶습니다. 의무감, 사명감으로 가지면 결코 즐겁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실력입니다. 로망이 실력을 갖출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소통을 연습하는데, 멀리서 할 필요 없습니다. 가장 연습하기 좋은 상대가 부부예요.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소통의 파트너를 만나야 되요.

옛날 사람들은 성인의 길을 가려면 집을 버리라고 했잖아요. 성인의 길을 가려면 악처를 만나라고. 멀리 있는 사람은 달라도 삽니다. 안 맞으면 그만이야. 하지만, 귀농은 부부가 24시간 같이 있어야 됩니다. 각오해야 됩니다. 귀농해보셔요, 24시간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귀농은 성인의 길입니다. 그래서 이게 안 되면 힘들다니까. 올해로 저는 결혼한 지 31년째 됐습니다. 그런데, 삼십년 살면서 장수에서만큼 오래 같이 살았던 적이 없습니다. 반경 500미터 안에서 늘 같이 사니까요. 같이 살면서 소통의 실력이 뭔지를 생각해봤습니다. 마을같이 만드는 사람들과 논어를 일주일에 한 번씩 연찬강독을 했습니다. 제가 한 2년 동안 공자에게 푹 빠져 지냈습니다. 성찰과 소통에 대해서는 우리가 같이 강독하면서 연찬할 수 있는 내용으로 논어를 권장하고 싶습니다. 그걸 통해서 서로 성찰도 하고 소통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제자들이 공자에게선생님, 평생동안 간직해야 할 한마디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서슴치 않고 공자가 대답하길용서할 서()”입니다. 무엇이 연상됩니까? 어떤 때 합니까? 네가 잘못했지만, 내가 용서할께. 이것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용서는 내가 옳다는 게 바탕이 돼 있어요. 요새말로 하면, (이 의미는)용서라기보다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이 서()예요. 이게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이에요. 내가 기준이 돼서 나는 옳다, 바르다는 기준으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막힘이 없어요.

내가 옳다하면 막힘이 있어요. 그러면 뭔가 부자연스러움이 있어요. 부부간에 가족 간에 잘 연습을 해보시면, 진짜 인생자체가 질적으로 업그레이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집사람 예를 듭니다만, 서로 성격이 많이 달라요. 성격도 다르고 로망도 달라요. 집사람이 (가공공장)사장이고, 제가 종업원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일이 먼저 떠오릅니다. 집사람은 꽃밭에 가 있습니다. (이걸) 한참 이해를 못 했다니까요.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구요. 나중에는 이래저래 생각을 하다, (서라는 건 뭐냐?)저 사람이 꽃 가꾸는 것을 참 좋아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였더니 이해가 되었어요. 집사람한테는 가공 일보다는 꽃 가꾸는 데 관심이 더 많고 하고 싶어 한다는 걸 받아들였어요. 근데 맘속에서는 뭐가 올라와요. 어느 순간에 정리되는 계기가 있더라구요. 머리로 할게 아니라, 꽃밭 가꿀 때 같이 해보니까, 그 즐거움이 나한테 비로소 들어오더라구요. 물론, 집사람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바탕이 됐을 때 되더라구요.

어느 기특한 순간에 내가 저 사람이 꽃밭 가꾸는 걸 맘 놓고 하게하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게 서()인 것 같더라구요. 진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하게하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는 사랑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고. 이럴 때 비로소 사람간의 소통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가족, 특히 부부 그리고 정말 가까운 사람들하고 소통의 연습을 하십시요. 이게 귀농할 때 중요하게 갖출 실력입니다. 구리광산인 줄 알았는데, 금광산이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귀농이 문화운동이고 혁명이라면, 소통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연습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셋째가 책임입니다.

요새 느끼는 게 젊은 분들은 어떤 일을 끝까지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분들 볼 때 제일 안타까운 게 유시무종(有時無終)입니다. 시작을 했는데, 끝이 없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책임져 보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물론 다 그렇단 얘기는 아닙니다.
 
실제 중요한 것은 끝까지 책임있게 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주인의식입니다. 주인은 끝까지 합니다. 자기인생의 주인인데, 스스로 그것을 못 하는 겁니다. 주인의식이 약한 이유 중 하나가 어떤 어려움에 닥쳤을 때, 금방 시선이 다른 사람과 환경으로 갑니다. 실제로 목표가 분명하면, 환경 탓, 남 탓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할까 골몰합니다. 대체로 어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바로 환경 탓, 남 탓으로 가버립니다. 그러면 중도에서 끝납니다.

사실, 귀농 자체가 삶의 전환, 문화혁명이라면, 끝까지 해보겠단 주인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삶에 충실한 삶이어야 합니다.

가끔 여러 가지 세상사를 보면서 떠오르는 우화가 솔로몬우화, 친자소동이 생각납니다. 친어머니의 태도 있잖아요. 진짜 친어머니의 자세예요. 실제 참된 주인의식은 남 탓, 환경 탓으로 돌리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골몰합니다. 실제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논어에서,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도 내 맘이 동요가 없을 때 군자다 (이게 주체적인 인간). 요새 얼마나 남의 평가에 흔들리기 쉽습니까. 화가 날 때 하나가, 다른 사람이 나를 몰라줄 때 내 맘이 요동을 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것은)자기를 뺏기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주인의식은 다른 사람이 나를 뭐라고 하든지 그것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로망을 끝까지 실천해가는 게 아닌가요. 요새 제가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두서없이 말씀드렸습니다.


로망을 절실히 갖추고, 실력 중 중요한 게 소통의 실력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일을 해나가는 주인의식, 주체적인 태도.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귀농이 성공적으로 다가옵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리시겠지만, 이게 잘 안되면 귀농이 만만치 않습니다. 저도 조화롭지 않습니다. 다만, 노력하는 과정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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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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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가서 장류를 한 계기는?

무소유공동체에서 나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했을 때 제일 걱정이 경영이었습니다. 예순때 왔으니까, 농사 짓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사짓는 것 보다는 노동이 적고 수입도 생겨서 택했습니다. 귀농할 때 자기가 가진 적성들을 살려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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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음식만드는 데 관심있어서 장만들기에 관심이 갑니다. 평소에 해보셨던 겁니까. 집사람도 이것을 할 줄 몰랐습니다.
고추장이 한번 염도가 안 맞으니까, (신맛이 돌아버리니까) 일곱, 여덟 항아리 땅에 묻었습니다. 지금은 대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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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은 직접 농사 짓습니까.

다 못 짓습니다. 고추는 유기농으로 지은 걸 사서 쓰고, 콩은 제것이랑 주변이랑 합해서 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장류는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청국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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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녹취록에서 공동체 안에서 가구들이 농작물을 분담해서 짓는다고 읽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또 하나는 야마기시공동체 나와 지금까지 사시면서 무소유 삶에 대한 지향을 여전히 가지고 계신지요?


저희 마을은 개별 시스템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스템에 맞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무소유 삶이 지금 시스템에 맞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소유 삶에 로망이 있었습니다. 무소유가 자본주의를 넘어선다는 데 확신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인간에게는 아집이 있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는 무소유 실험이 안 맞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어느 정도 제가 하고 있느냐는 모르겠습니다. 그 실태에서 출발해서 나도 준비하고 서로가 준비하면 어느 날은 (무소유를 실현할)때가 되지 않겠냐고 봅니다. 다섯 집이 협의체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전부 각자 하고 싶은 작물을 짓습니다. 제일 편합니다. 대신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한테서 자발적으로 양보하는 기풍을 일으켜야 합니다. 서로 감흥 하는 분위기. 양보의 이니셔티브를 연습해보려고 합니다. 자율적으로 조종하려고 합니다.

사실, 가공은 어느 한 집이라도 같이 하면 좋다는 마음은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걸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더 육체적으로 힘들어지니까요. 그러나 집마다 로망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개별 가정들이 완전히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서로 알게 모르게 조화를 이뤄 가려고 합니다.

얼마전에는 양계하려는 사람이 이사를 왔습니다. 정해져 있는 규칙으로 서로를 구속하는 게 없이 정말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조화되는 모습이 (제가 그리는) 우리 마을의 모습입니다. 규약, 협의체 전혀 없습니다. 8년간 시스템에서 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거기서 오는 반작용인줄은 모르겠습니다. 짜임새가 필요하면 그렇게 할 겁니다. 현재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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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빈곤으로 공동체안에서 관계문제도 어렵다고 하든데요. 다섯 가구에서 상대적 박탈감, 관계에서 어려움은 안 생겼나요?

저도 신경 쓰이는 점들입니다. 아마 그것이 하루하루 사람과 만나 살면서 하는 새로운 경험들일 겁니다. 전부 부채가 많아요. (전부) 넉넉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저도 협동조합을 하자고 생각을 해봤어요. 아직은 불편하단 거예요. 그래서 두 가지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필요에 따라 할 거예요.

자유노동, 자발적인 자유의지로. 품앗이는 댓가가 없는 게 아니예요. 품앗이도 일종의 교환이에요. 노동의 교환, 품앗이보다 진일보 한 것 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집이 하나둘씩 해보면, 같이 살면서 성인의 길을 가는 거예요. 정말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는 거예요.

공동의 지갑, 1%를 넣자. 정말 자유의지에 따라 마을의 공동기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게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노인복지, 교육, 육아, 질병에 대한 대처가 되겠죠. 이렇게 해서 자유노동과 마을공동의 지갑 만들기가 진척되면 의식이 향상돼서 협동, 무소유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지요. 너무 염려하지 말고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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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삶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쉽게 말하면, 분배, 급료가 없는 시스템입니다. 자기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씁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공동체에서 무소유하는 데는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소유의식과 아집이 있는 상태에서는 부자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 실태하고 다르다보니까 생기는 부작용들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일은 못하는데, 씀씀이가 많은 사람을 보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수강생그게 불가능합니다.

불교, 카톨릭종교기관에서도 못하고 있잖아요. 그걸 다섯 세대, 열 세대가 모였다고 하겠습니까?”) 인간이 가진 특권이라고 봅니다. 미래는 보통사람들이 성인이 되는 시대라고 봅니다. 실제로 가능한 목표로 왔다고 봅니다. 아직은, 지금 인간의 실태와 안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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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살아보려면?

지금 땅이 없습니다. 근방에 알아볼 수 있죠. 나는 30분 거리에는 모두 이웃으로 봅니다. 산내면쪽으로 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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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로개척은?

생협, 수도권 생협, 개별적 가구들입니다. 채소를 하는 이웃은 가족회원제도를 시험해보려고 합니다. 가족회원제도는 회비형태로 받고 채소를 1년간 공급하는 겁니다. 1년에 40만원이면, 삼십 가구 되면 1200만원 됩니다. 이 돈으로는 단순 소박한 삶 정도는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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