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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부학에 따르면, 사람 몸의 근육 구조는 두 종류가 있다. 근육의 가장 작은 부분에서 매끈매끈한 실들을 보여주는 민무늬근이 있고, 가장 작은 부분에서 규칙적인 가로무늬를 보여주는 가로무늬근이 있다. 그런데 민무늬근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근육이다. 예를 들어 매끄러운 내장의 근육은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으깨어진 음식물을 앞으로 밀어 보내는데, 인간의 의지는 이 운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밖에 눈의 홍채에 있는 근육도 매끄럽다. 눈은 이 홍채 근육에 의한 움직임을 통해서 적은 빛에 노출되면 동공이 확장되고 많은 빛이 흘러들면 동공이 수축된다. 이런 움직임 또한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다. 


반면에 인간의 의지에 따라 움직임을 조정하는 근육, 예컨대 팔다리를 움직이는 근육은 가로무늬근이다. 심장은 근육이면서도 이런 일반적인 특성에서 예외인 경우이다. 현재의 인간 발달기에는 심장이 의지의 지배를 받아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심장은 가로무늬근이다. 정신과학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제시한다. 심장이 늘 지금처럼 그렇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심장은 미래에 전혀 다른 형태와 변화된 기능을 갖게 될 것이다. 심장은 수의근이 되어가는 중이다. 미래에 심장은 인간 내면의 영혼적 충동의 결과가 될 그런 움직임을 실현할 것이다. 바로 지금 심장은, 심장의 움직임이 현재 팔을 들어 올리거나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의지의 표현이 될 미래에 얼마만한 중요성을 가질 것인지를 이미 그 구조를 통해 보여준다.


심장을 이와 같이 바라보는 것은, 이른바 혈액 순환과 심장의 관계에 대한 정신과학의 포괄적인 인식과 관련이 있다. 기계론적 · 물질주의적 생명론에서는 심장을 규칙적으로 혈액을 온몸에 보내는 일종의 펌프 장치로 본다. 여기서는 심장이 혈액 이동의 원인이다. 정신과학적인 인식은 매우 다른 것을 보여준다. 정신과학적 인식에서 혈액의 맥박과 전체적인 내적 가동성은 영혼적 과정의 표현이자 작용이다. 영혼적인 것은 혈액이 특정한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이다. 공포감으로 얼굴이 하얗게 되고 부끄러움을 타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핏속에서 영혼적 과정들이 거칠게 작용한 결과이다. 핏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혼 활동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표현일 뿐이다. 다만 혈액의 맥박과 영혼의 내적 자극들 사이의 관계가 신비스러울 만치 아주 깊을 뿐이다. 그리하여 심장의 움직임은 맥박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미래에는 심장이 인간의 영혼 속에 짜 넣어진 것의 효과를 자발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외부세계로 운반할 것이다.


·········· 발달의 오르막에 있는 또 다른 기관이 호흡기관, 그러니까 발화 도구인 호흡기관이다. 오늘날 인간은 이 호흡기관을 통해서 자신의 사고를 공기의 파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로써 인간은 내면에서 체험하는 것을 외부 세계에 새겨넣는다. 인간은 자신의 내적인 체험을 공기의 파동으로 변화시킨다. 이 공기의 파상운동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의 재현이다. 미래에 인간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내적인 본성을 점점 더 많이 바깥으로 형상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 방향의 발달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날 결과는 인간이 완벽의 경지에 도달한 자신의 발화기관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 - 자기 같은 사람 - 을 산출해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 발화기관들은 미래에 생식기관을 자기 안에 배아로 품고 있다. 그리고 남성 개체의 경우 사춘기에 변성(목소리의 변화)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발음 도구와 생식의 본질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관계의 결과이다.


·········· 내가 어떤 소식을 듣고 그에 관해 곧바로 어떤 판단을 내린다고 가정하자.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동일한 사태에 관해 첫 번째 소식과는 일치하지 않는 더 많은 소식을 듣게 된다. 이 때문에 나는 이미 내린 판단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 불리한 영향이 미친다. 맨 처음에 판단을 자제했더라면, 완전히 확실한 판단 근거를 가질 때까지 일 전체에 관해 내적으로 생각하는 데에서나 외적으로 말하는 데에서 ‘침묵’했었더라면, 사태는 전혀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판단하고 말할 때 신중을 다하는 것은 점차 ·········· 수행자의 특징이 된다. 


   ·········· 수행에서는 어느 한쪽의 감각만 육성되는 법이 결코 없다. ·········· 자연의 운행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도 나타난다. 성장과 발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은 모두 영혼의 온기를 발산한다. 쇠퇴와 파괴와 몰락 가운데 있는 것은 모두 영혼의 냉기라는 특성을 띠고 나타난다.


   이러한 감각의 육성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촉진된다. 이와 관련하여 ·········· 수행자가 준수하는 첫 번째 일은, 사고의 진행 과정을 통제하는 것이다(이른바 사고의 제어). ·········· 의미 있는 진실한 사고를 통해 개발되듯이, ·········· 사고의 진행을 내적으로 지배함으로써 개발된다. 의미 없고 논리적이지 못하고 순전히 우연적으로 어우러져 오락가락하는 사고가 ·········· 형태를 망쳐 놓는다.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에서 논리적으로 전개되면 될수록, 비논리적인 것이 배제되면 될수록, 이 감각 기관은 그만큼 더 그에 합당한 형태를 띠게 된다. 비논리적인 생각을 듣게 될 경우 ·········· 수행자는 곧바로 올바른 것을 차근히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발달을 촉진할 목적으로, 어쩌면 비논리적일 수 있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아무런 애정도 없이 벗어나서는 안 된다. 또 자기 주변에 있는 비논리적인 것을 즉각 교정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껴서도 안 된다. 그는 오히려 아주 조용하게 자신의 내면 속에서, 외부로부터 자기에게 밀려들어 오는 생각들에 대해 논리적이고 시종일관한 방향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의 생각 속에서 늘 이러한 방향을 엄수하려고 노력한다.


   두 번째 일은 자신의 행동에도 그와 똑같은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행동의 제어). 행동에서의 불안성과 부조화는 지금 말하고 있는 ·········· 망쳐 놓는다. ·········· 수행자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이어지는 행동이 앞선 행동에 대해 논리적인 일관성을 가지도록 한다. 어제와는 다른 의미에서 오늘 행동하는 사람은, 앞서 그 특징을 말한 감각을 결코 개발하지 못한다.


   세 번째 일은 지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이다. ·········· 수행자는 이런저런 영향 때문에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서 멀어질 수 없는 법이다. 그가 그 목표를 올바른 것으로 여기는 동안에는 말이다. 그에게 장애란 그것을 극복하려는 요구이지, 포기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네 번째 일은 인간들, 다른 존재와 사물들에 대한 관대함(관용)이다. ·········· 수행자는 불완전한 것, 악한 것과 나쁜 것에 대한 불필요한 비판을 일체 억제하며,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자 애쓴다. 태양이 나쁜 것과 악한 것 모두에 두루두루 그 빛을 던지듯이, 그는 모든 일에 대해 이해심에 찬 관심을 보인다. 어떤 불쾌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는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필연적인 것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그의 힘이 미치는 한 사태를 좋은 쪽으로 돌리고자 노력한다. 자신과는 다른 의견들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려고 한다.


   다섯 번째 일은 생활 현상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믿음’ 또는 ‘신뢰’ 라고들 말하기도 한다. ·········· 수행자는 어떤 인간,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이러한 신뢰로써 대한다. 행동할 때 그는 그러한 신뢰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일을 전해 듣게 될 경우, ·········· 수행자는 그것이 기존의 자기 견해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법이 결코 없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새로운 견해에 비추어 항상 시험하고 바로잡을 태세가 되어 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에 대해 늘 마음을 열어 두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의 유효성을 신뢰한다. 소심증과 의심벽을 자신의 존재에서 추방한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러한 의도의 힘에 대한 믿음 역시 가지고 있다. 수백 번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는 이러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산이라도 옮길 수 있는 믿음’이다.


   여섯 번째 일은 생활에서 확실한 균형(침착함)을 획득하는 것이다. ·········· 수행자는 고통이 닥치는 기쁜 일이 닥치든 한결같은 기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늘을 오를 듯이 기뻐함과 죽고 싶은 만큼 슬퍼함’ 사이를 오가는 버릇을 버린다. 그는 불행이나 위험에 처해도 행운이나 후원을 만난 것과 마찬가지의 마음가짐을 가진다.



   꽃잎들의 발달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때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영혼이 어떤 특정한 과정에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 과정은 여덟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과정은 관념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통 인간은 전적으로 우연에 자기를 내맡긴다. 그는 이러저러한 것을 듣고 보며, 그에 따라 자신의 개념을 만들어 낸다. 그가 그런 식으로 처신하는 한,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그의 연꽃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에 따라 자기 교육에 착수할 때 비로소 그의 연꽃은 활동적으로 되기 시작한다. 이를 목적으로 그는 자신의 관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각각의 관념이 그에게 의미를 갖게끔 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그는 외부 세계의 사물들에 관한 특정한 메시지나 정보를 보아야 한다. 그는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관념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개념 생활 전체를 조정해서, 그것이 외부 세계의 충실한 거울이 되게끔 해야 한다. 그는 잘못된 관념을 자신의 영혼에서 멀리 떼어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혼의 두 번째 과정은, 첫 번째 과정과 비슷한 방향에서, 인간의 결단과 관계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충분히 숙고하여 근거를 가지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모든 행동,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모든 행위를 자기 영혼에서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 모든 일에 대해 그는 충분히 숙고된 근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의미 있는 근거가 없는 일이라면 그만두어야 한다. 


   세 번째 과정은 말과 관계 있다. ·········· 수행자는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 말만을 해야 한다. 말을 위한 말은 그를 수행의 길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수행자는 무분별하고 잡다하게 모든 것이 뒤죽박죽 말해지는 통상적인 대화를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위 사람과 교류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바로 그 교류 속에서 그의 말이 의미 있게 전개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지만 생각을 충분히 하고 모든 방향에서 숙고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근거 없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너무 많이 하려하지 않으면서 너무 적게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영혼의 네 번째 과정은 외적 행동의 조절이다. ·········· 수행자는 주위 사람의 행동과 주변 상황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거나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과 모순되는 행동은 자제한다. 그는 자기 행동이 주변과 생활 상황 등등에 조화롭게 편입되도록 행동하려고 한다.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 무언가 다른 것에 의해 행동이 유발될 때, 그는 어떻게 하면 그 유발 동기에 가장 잘 부합할 수 있을지를 깊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관찰한다. 자발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자신의 행위 방식이 끼치는 효과를 아주 명학하게 고려한다.


   여기에서 고찰되는 다섯 번째 과정은 생활 전체의 수립과 관련된다. ·········· 수행자는 자연과 정신에 부합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는 너무 서두르지도 않고 너무 게으르지도 않다. 지나치게 많이 일하는 태도와 지나치게 게으른 태도 모두 다 그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생활을 수련의 수단으로 여기며, 이에 부합하도록 살아간다. 건강 관리, 습관 등등을 조정해서 조화로운 생활이 되도록 한다.


   여섯 번째 과정은 인간적인 노력과 관계 있다. ·········· 수행자는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시험하며, 그러한 자기 인식의 의미에서 행동을 취한다. 그는 자기 힘이 닿지 않는 일은 하려고도 하지 않지만, 자기 힘이 미치는 일을 그만두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그는 여러 가지 이상, 인간의 위대한 의무와 관련된 목표를 설정한다. 그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기를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인간 동력 장치 속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있는 자신의 과제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의무를 점점 더 훌륭하고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노력한다.


   영혼 생활에서의 일곱 번째 과정은, 인생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려는 노력과 관계 있다. ·········· 수행자에게는, 그의 삶에 유익한 경험을 모을 계기를 제공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그가 어떤 일을 부정확하고 불완전하게 행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중에 비슷한 일을 정확하게 또는 완벽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볼 때에도 그는 이와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그들을 관찰한다. 그는 경험이라는 풍성한 보물을 모으고, 그것을 끊임없이 신중하게 이용하고자 한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착수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체험들을 되돌아보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 수행자가 매순간 자기 내면을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여덟 번째 과정이다. 그는 자기 안에 깊이 들어가 신중하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생활 원칙을 세우고 시험하며, 경험적 지식을 철저히 사고하고 그의 의무를 숙고하며 인생의 내용과 목적에 관해서 깊게 사유하는 등등의 일을 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이미 앞에 있는 장에서 말했다. 여기에서는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의 발달과 관련해서 열거할 따름이다. 수행을 통해서 연꽃은 점점 더 완전하게 된다. ·········· 능력의 육성이 그러한 수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외부 세계에서의 발전 과정과 일치하면 할수록, ·········· 능력은 더 빨리 개발된다. 참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의 싹을 죽이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진실성, 올곧음, 정직성은 이러한 측면에서 건설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며, 허위, 기만, 불성실은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 수행자는 이때 ‘좋은 의도’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행동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내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을 사고하고 말하면, 비록 여전히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는 믿음이 있더라도, 정신적 감각 기관 속에 있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비록 모르고 한 일이라도 불 속에 손을 집어 넣으면 화상을 입는 것과 같다. 


   앞서 말한 영혼의 과정이 그 특징이 묘사된 방향으로 실행된다면,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은 장려한 색채로 빛을 발하게 되고 합법칙적인 운동을 부여받게 된다. 그렇지만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영혼이 일정 정도 육성되기 전에는 ··········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활을 이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여전히 애쓰는 동안에는 이러한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앞서 서술된 과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한, 그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언급된 방식의 삶을, 마치 습관적으로 하듯이, 그렇게 살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 첫 흔적이 나타난다. 그러면 그런 일들은 더 이상 애쓸 필요가 없는 자명한 생활 방식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자기 자신을 계속 관찰하고 몰아쳐 가며 그런 식으로 살도록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모든 것은 습관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을 다른 방식으로 발달시키는 모종의 지침들이 있다. 참된 신비학은 그러한 모든 지침들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몸의 건강을 파괴하고 도덕적 파탄을 낳기 때문이다. 그 지침들은 여기에서 서술되는 것보다 실행하기가 더 쉽다. 여기에서 서술되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목표로 인도해 주며 도덕적인 힘을 강화시킬 수 있다.


   연꽃의 왜곡된 육성은 모종의 ·········· 능력이 나타날 경우에 환상과 공상적 관념을 낳을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을 미망을 빠뜨리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런 식의 육성을 통해서 사람들은 겁이 많고 질투와 허영심이 강하며 거만하고 아집에 가득 찬 사람이 되는데, 이 모든 속성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열여섯 장의 연꽃잎 가운데 여덟 장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개발되었으며 이것들이 ·········· 수행 과정에서 다시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다. 이제 ·········· 수행자의 노력에서 모든 관심은 다른 여덟 장의 꽃잎에 쏟아져야 한다. 잘못된 수행에서는 이전에 개발된 꽃잎들만 쉽게 나타나며 새로이 형성되어야 하는 꽃잎들은 위축되어 있다. 이는 수행 과정에서 논리적, 이성적 사유에 너무 무관심할 때 특히 자주 생기는 일이다. ·········· 수행자가 명료한 사유를 중시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말을 할 때 최대한 분명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뭔가 초감각적인 것을 예감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게 된다. 그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올바른 발달을 가로막는다. 이 일에 관해 말을 적게 하면 적게 할수록 더 낫다. 어느 정도 분명한 인식을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말해야 할 것이다.



가장 복잡하고 자연스러운 유기체를, 즉 인간 유기체를 여기서 언급되는 관점에서 고찰하는 사람은, 인간 유기체의 전반적인 존재가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체계로 드러나며, 그 체계들이 각기의 독립성을 지니고 작용한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상호 간에 작용하는 그 세 가지 체계들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성격화할 수 있다. 

인간의 자연적인 유기체 내에서 그 체계의 한 영역으로서 작용하는 것이 신경 생활감각 생활을 내포한다. 인간 유기체에서 가장 중요한 지체인 머리에 신경 생활과 감각 생활이 어느 정도까지는 집중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머리-유기체라 부를 수 있다. 

인간 조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고자 한다면, 리듬 체계라 명명할 수 있는 것을 인간 조직의 두 번째 지체로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호흡-혈액 순환이다. 즉 인간 유기체의 리듬 과정에서 표현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다. 

세 번째 체계로는 그 활동과 기관으로서 사실상의 신진대사에 연결된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세 체계가 상호 간에 조직되어 있다면, 인간 유기체의 전체 과정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 안에 존재한다.(여기에서 의미하는 지체는 공간적으로 경계지을 수 있는 그런 신체 지체가 아니라 유기체의 활동(기능)에 따른 것이다. 머리에 우선은 신경-감각 생활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머리 유기체>를 다룰 수 있다. 다른 신체 지체에도 신경-감각 활동이 존재하듯이, 머리에도 당연히 리듬 활동과 신진대사 활동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의 세 가지 양식이 그 본성에 따라 상호 간에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

인간 유기체에 하나의 절대적인 집중이 존재하지 않고, 세 가지 체계들이 제각기 하나의 고유한, 외부 세계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관계를 지님으로써, 세 가지 지체가 - 머리 체계, 순환 체계 혹은 가슴 체계, 신진대사 체계 - 일정한 독립성 속에 작용함으로써 어떻게 인간 유기체 내부의 전체 과정을 유지하는지 조망하였다. 머리 체계는 감각을 통해서, 순환 체계 혹은 리듬 체계는 호흡을 통해서, 그리고 신진대사 체계는 영양 섭취 기관과 운동 기관을 통해서.

··········

세계를 표상하는 전반적인 양식이, 즉 우리의 사고습관이 예를 들어서 인간 유기체 내에서 자연 작용의 내적인 본성으로 드러나는 것에 아직은 완전히 적합하지 않다. ·········· 각기의 인간 영혼 내부에 - 각기의 인간 영혼이 사회적 유기체를 위한 작용에 참여하기 때문에 - 사회적 유기체를 위한 불가피한 사항에 대해서 적어도 본능적인 인식이 존재해야만 한다. 사회적 유기체가 건강해야 한다면 자연적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그것도 삼지적이어야만 한다는 점을 비록 다소간에 단순히 본능적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만, 사회적 유기체의 형성과 관련해서 건강한 사고와 감각, 건강한 의지와 욕구가 발달될 수 있다.

··········

자연적인 유기체의 고찰에서 삶의 가능성을 인간의 사고가, 인간의 감각이 느낄 수 있도록 배우고, 그 다음에 그 느낌의 방식을 사회적 유기체에 적용하기를 추구한다. 자연적 유기체에서 배웠다고 믿는 것을 흔히 하듯이 단순하게 사회적 유기체에 적용한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적 유기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유기체 역시 그것 자체의 법칙에 따라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고찰하고 연구하려는 능력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보여 준다. 자연 과학자가 자연적 유기체를 마주 대하듯이, 사회적 유기체 자체의 법칙을 감지하기 위해서 사회적 유기체를 그 독립성에 따라 진정 객관적으로 대상화하는 순간에, 바로 그 순간에 고찰의 진지함을 대면해서 모두 유추 해석 놀이가 멈추게 된다.

··········

사회적 유기체의 힘들이 어떻게 작용해야 그 유기체가 생존 능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지를 건강하게 느끼도록 배우기, 바로 그것을 지금부터는 사람들이 요구할 것이다. 그런 느낌이 없이 사회적 유기체에 발을 디디려 한다면, 바로 그 자체가 반사회적이고 건강하지 않다는 느낌을 습득해야만 할 것이다.

정신 생활이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 사회적 공생에는, 사회적 유기체의 생존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힘 중에 하나가 결여된다는 사실의 무게를 진정으로 느끼도록 배워야, 이 영역에서 오늘날 생각하는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적 유기체는 정신 생활의 무기력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 정신 생활의 무기력에 대한 인정을 혐오하기 때문에 그 병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사회 운동에 적합한 사고를 발달시킬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흡사 강렬한 계시라도 받은 듯 그의 시각은 오로지 경제 생활만 바라보도록 이끌어졌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곳에, 정신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에 사회 운동의 영역에서 필수적으로 들어서야 할 동인이 존재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비정신적이고, 비영적인 경제 생활의 발달을 통해서만 그가 인간 존엄적이라 느끼는 상태가 생겨날 수 있다고 유일하게 믿고 있다. ·········· 자신의 구원을 오로지 경제 생활의 개혁에서만 찾도록 몰아대어졌다. 사적 기업과 개별적 고용주의 이기주의, 그리고 피고용인 내에 존재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권리 요구를 정당화시키지 못하는 개별적 고용주의 무능에 기인하는 모든 손상이 오로지 경제 생활의 개혁을 통해서만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 몰아대어졌다. ·········· 모든 정신적, 영적인 것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순수하게 경제적인 과정으로만 시각을 향하도록 함으로써 그런 의견이 생겨났다. 


그로 인해서, ·········· 모순적인 모든 것이 들어서게 되었다. ·········· 최종적으로 완벽한 인간 권리를 그에게 줄 모든 것이 경제에서, 경제 생활 자체에서 발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바로 그 완벽한 인간 권리를 위해서 그는 투쟁한다. ·········· 사람들은 그 어떤 것이 경제 생활 자체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지만, 결코 유일하게 경제 생활로부터만 그것이 솟아날 수 없으며, 오히려 고대 노예 제도에서 봉건 시대의 농노 제도를 거쳐서 현대 ·········· 노동자에 이르는 직선적 발달선상에 존재한다. 현대 생활을 위해서 상품 순환, 통화 유통, 자본 조직, 소유, 토지와 부동산 제도 등등이 형성되었듯이, 그렇게 분명하게 말해지지 않는 어떤 것이, ·········· 역시 의식적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가 지니는 사회적 의지의 실제적인 근본 자극이 되는 어떤 것이 현대 생활 내부에 형성되었다. 


··········


전반적인 현대 ·········· 사회 운동의 근본 자극 중에 하나로서, 시장에서 상품을 팔듯이 자신의 노동력을 고용주에게 팔아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수요와 공급을 따르는 시장의 상품처럼 자신의 노동력이 노동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대한 혐오감이 그들의 본능 속에, 잠재 의식적인 느낌 속에 얼마나 강하게 살고 있는지를 한번만이라도 일별할 수 있다면,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대한 그 혐오감이 현대 사회 운동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만 있다면, ·········· 거기에 작용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자유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 그 ·········· 자극이 오늘날의 사회 문제를 압박하면서 몰아대고 격렬하게 타오르도록 만든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에는 노예가 있었다. 인간 자체가 상품처럼 팔렸다. 조금 적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이 농노제를 통해서 경제 과정으로 편입되었다. 자본주의는 인간 존재의 나머지에 상품적 성격을 들러 붙이는 권력이 되었다. 바로 노동력이다. ·········· 경제 생활에 편입되는 모든 것은 상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이 경제 생활 자체 내에 어떻게 놓여 있는지는 보지 않는다. 상품의 생산과 실용적인 소비에 경제 생활이 존재한다. 인간 노동력을 경제 과정에서 분리시킬 가능성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그것에서 상품의 성격을 벗겨낼 수가 없다. 경제 과정을 재형성해서 그 과정 내에서 인간 노동력이 그에 정당한 권리를 얻게끔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노동력을 경제 과정에서 분리해 내어서, 그것에서 상품적 성격을 덜어 내는 것을 사회적인 힘에 의해 규정되도록 하는가? 바로 이것이 추구되어야만 한다. ·········· 자신의 노동력이 적절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경제 생활 상태를 갈망한다. 그렇게 갈망하는 이유는, 자신의 노동력이 지니는 상품적 성격이 본질적으로 보아서 경제 과정에 완전히 얽매여 있는 자신의 상태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그 과정에 완전히 양도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 과정 안에서 자신의 전체 인간으로 몰두한다. 노동력의 조정을 그 내부에 둘 수 있는 한 경제 생활은 그 자체적인 성격으로 인해, 마치 상품이 소비되듯이 바로 그렇게 노동력을 적절한 방식으로 이용하기를 추구한다. 현대 경제 생활의 힘에 마취나 된 듯 사람들은 오로지 그 내부에서 작용할 수 있는 것만 주시한다. 


어떻게 노동력이 더 이상 상품이 될 필요가 없는지를 그 시각으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경제 형태는 단지 다른 방식으로 노동력을 다시금 상품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생활 내에서는 그 영향권이 인간 노동력으로까지 확장되지 않아야 할 이해관계를 통해서 규정되는 법칙에 따라 상품 생산, 상품 유통, 상품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 한, 노동 문제를 그 진정한 형상에서 사회 문제의 한 부분으로 만들 수 없다. 


한편으로는 노동력으로서 인간에 결부된 것이 경제 생활에 어떻게 편입되는지,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상품이 흘러가는 그 길에서 원천적으로 보아 인간과 무관한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완전히 상이한 이 두 양식을 구분할 수 있도록 근대의 사고가 배우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이 방향으로 가는 건강한 사고 양식을 통해서 노동 문제의 진정한 형상이 드러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고 양식을 통해서 건강한 사회적 유기체에서 경제 생활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지도 역시 분명해질 것이다.


·········· 참된 인내력을 갖춘 온화함과 과묵함을 통해 영혼은 영혼 세계에 대해, 정신은 정신 세계에 대해 열린다. 

   “평정과 고독 속에 머물러라. 수행 이전에 그대에게 전해졌던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을 닫아라. 이전의 습관에 따라 떠올랐다 사라지는 모든 상념을 정지시켜라. 내적으로 완전히 정숙하고 과묵한 채 참을성 있게 기다려라. ·········· 곧바로 보고 듣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대가 행하는 것만이 ·········· 기여하기 때문이다. ·········· 한동안 평정과 고독 속에 머물렀다면, 이제 그대의 일상적 업무에 착수하라. ‘나에게 이루어져야 할 일은, 내가 그러기에 적합하게 성숙해 있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게 된다’는 생각을 그대 마음 속 깊이 새기면서, 그대의 자의에 의해 무언가 ·········· 힘을 끌어 오려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마라.”

이것은 모든 수행자가 길을 시작할 때 스승으로부터 받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에 따르노라면 그는 자신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은 허사다. 참을성과 지구력이 없는 사람은 이 가르침을 따르기 힘들다. 각자가 스스로 길 속에 갖고 들어오며 또 정말로 피하려고 한다면 누구든 피할 수 있는 것들 이외의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은 거듭 강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비의 오솔길에 있는 난관들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전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행 없이 가장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보다 이 오솔길의 첫 단계를 넘어서기가 어떤 의미에서는 더 쉽다. 

·········· 물론 목표에 더 빨리 다다르는 다른 길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그러한 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왜냐하면 그 길은 수행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추구하지 않는 그런 영향을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길 가운데 몇몇은 계속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탓에,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확실히 경고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러한 길의 진정한 모습은 절대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단편들은 유익함을 낳을 수 없으며, 건강, 행복, 영혼의 평화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 그 진정한 본질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완전히 어두운 힘들에 자신을 내맡길 생각이 없는 사람은, 그러한 것들과 관계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루돌프 슈타이너. 번역:최혜경

종속 개념을 판단의 근거로 삼게 되면, 한 인간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속에 대한 가장 집요한 편견은 인간의 성에 관한 문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성은 여성에서, 여성은 남성에서 이성의 일반적인 성격을 항상 강조해서 더 많이 보게 되고, 개인적인 것은 거의 무시한다. 그것은 실생활에서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손해를 입힌다.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대부분 비인도적인데, 그 이유는 많은 면에서 개별적인 여성의 개인적 고유성으로부터가 아니라, 여성의 자연적 과제와 욕망에 대해서 우리가 취하는 일반적인 표상을 통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 남성의 행위는 그의 개인적인 역량과 소질에 따라 판가름되는 반면, 여성의 행위는 바로 여성이기 때문에 한결같이 주변의 상황에 따라 규정된다. 여성은 종속적인 것의 노예, 일반적으로 여성적인 것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여성이 그 자질에 따라 이러저러한 직업에 적합한지에 대해서 남성들에 의해 논의되는 한, 소위 말하는 여성 문제가 그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성이 그 천성에 따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여성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여성들이 현재 그들에게 걸맞다고 여겨지는 직업에만 적합하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들은 자신에서 벗어나서 다른 것에는 거의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여성은 무엇이 그들의 천성에 걸맞는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여성이 종속적 인간이 아니라 개인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면 사회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의 절반이 비인간적인 현존을 누리고 있는 사회적 상황은 그야말로 절박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이 그런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북돋우도록 유의하라는 것이다. 한 인간이 얼마나 건강한가 하는 것은 물론 처음에는 자기 자신에게 달린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그 방향으로 자신을 북돋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건강한 인식은 건강한 인간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수행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수행자가 건강하게 살려는 의지를 갖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 속에서 사람은 가능한 한 최대한의 자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 대게는 묻지도 않았는데 -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는 좋은 충고를 하더라도 듣지 말라. 그런 충고는 대체로 아무 쓸모가 없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 수행자에게 향락이 의무와 같은 자리를 차지해서는 결코 안 된다. 수행자에게 향락은 건강과 생활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자기 자신을 아주 성실하고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금욕적 생활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향략과 비슷한 이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 많은 사람들은, 고차적 인식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방해하는 듯이 보이는 모든 것을 자신들의 생활 환경 탓으로 돌린다. 그들은 “이런 처지에서 나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어.”라고 말한다.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사람의 경우 생활 환경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비 수행을 목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바로 현재 있는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몸과 영혼의 건강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하면 된다. 모든 일은 인류 전체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일은 나에게 너무 맞지 않아, 나는 다른 일이 맞아.”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영혼보다, 보잘것없고 누추할 수도 있는 어떤 일이 인류 전체를 위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분명히 아는 인간의 영혼이 훨씬 더 위대하다.


  수행자에게는 완전한 정신적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불건전한 정서 생활과 사고 생활은 항상 고차적 인식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명료하고도 평정(平靜)한 사고, 확실한 지각과 감정이 수행에서 토대가 된다. 공상벽이나 격양된 존재, 신경질, 흥분, 광신 등에 치우치는 성향만큼 수행자가 멀리해야 할 것은 없다. 그는 모든 생활상에 대한 건전한 시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는 생활 속에서 올바른 길을 확실하게 찾아야 한다. 그는 사물들이 조용히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영향을 끼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는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생활의 요구에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판단과 지각에서 과장된 것, 단면적인 것은 일체 피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수행자는 고차 세계 대신 자기 자신의 상상력의 세계 속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진리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생각이 유효하게 될 것이다. 흥분을 잘하거나 공상적이기보다는 ‘냉정한’ 편이 신비 수행자에게는 더 좋다.


··········


  두 번째 조건은, 자기 자신을 전체 생명의 한 부분으로 느끼는 것이다. ·········· 내가 교사인데 학생이 내가 바라는 바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내 감정을 먼저 학생에게 퍼부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나는 학생과 내가 하나임을 느끼면서, “학생에게 나타나는 불만스러운 점이 내 자신이 행한 행동의 결과는 아닌가?”라고 자문해야 한다. 나는 내 감정을 학생에게 돌리는 대신, 장차 그 학생이 내 요구에 더 잘 부응할 수 있도록 하려면 나 자신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숙고할 것이다. 그와 같은 의향에서부터 인간의 사고 방식 전체가 점차적으로 변해 나간다. 이는 극히 사소한 일과 큰일에 다 적용된다.


  예를 들어, 범죄자를 보더라도 나는 그러한 의향이 없을 경우와는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나는 판단을 삼가면서 다음과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 “나 또한 이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다. 환경을 통해 나에게 이루어진 교육이 아마도 그의 운명을 걷지 않게 나를 지켜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나에게 노력을 기울였던 스승들이 그에게도 똑같은 노력을 베풀었다면 이 인간 형제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모자란 것이 나에게 제공되었다는 것, 나의 좋은 점은 그에게는 모자란 바로 그 상황 덕택이라는 것을 고려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전체 인류의 한 구성원일 따름이며 만사에 다 책임이 있다는 관념 또한 더 이상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게 된다. ·········· 그런 사고는 조용히 영혼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것은 아주 점차적으로 한 인간의 외적 태도에 아로새겨진다. 그런 가운데 각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 속에서 개혁을 시작할 수 있다. ·········· 수행자가 하는 일은 표면에서가 아니라 심층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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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조건은, ·········· 수행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그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대해 의미를 지닌다는 관점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웃 사람을 증오하면 그를 때리는 것과 같은 정도로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면, 나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도 뭔가를 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세계는 나의 선행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과 똑같이 나의 순수한 감정과 생각으로써 이롭게 된다. 세계에 대해 나의 내면이 지니는 의미를 믿을 수 없는 한, 수행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그 영혼적인 것을 외적인 것과 적어도 동일한 정도로 현실적인 양 다룰 때, 비로소 나는 나의 내면, 나의 영혼의 의미에 대한 올바른 믿음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나의 감정이 나의 손이 하는 일과 똑같은 영향력을 지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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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조건은, 인간의 본래적인 본질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스스로를 외적 세계의 산물로서만, 물리적 세계의 결과로서만 여기는 사람은, 수행에서 어떠한 성취도 거둘 수 없다. 스스로를 영혼적 · 정신적 존재로 느끼는 것은 그러한 수행의 기초이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내적 의무와 외적 성공을 구분할 수 있다. 그는 전자가 후자에 의해 바로 측정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수행자는, 외적 조건이 규정하는 것과 그가 자신의 태도와 관련하여 적합하다고 인식하는 것 사이에서 올바른 중용을 찾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환경에 대해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해서도 안 되지만, 이 환경에 의해 인정될 수 있는 것만 행하려는 욕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는 오로지 인식을 추구하는 성실한 영혼의 목소리 속에서만 자신의 진리에 대한 인정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는 환경에 무엇이 도움이 되고 이로운지를 찾아내기 위해 가능한 한 환경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 ‘정신의 저울’이라 부르는 것을 자기 자신 속에서 발달시킨다. 그 저울의 접시 한쪽에는 외부 세계의 필요에 대해 ‘열린 가슴’이, 다른 한쪽에는 ‘내적인 확고함과 불굴의 지속력’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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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조건은, 한번 결심한 것을 꿋꿋하게 따르는 것이다. 결심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신비 수행자로 하여금 결심한 것을 어기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결심은 다 하나의 힘이다. 이 힘은 바라는 직접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작용한다.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을 할 때에만 성공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고차 세계에서는 오로지 행동에 대한 사랑만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수행자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는 모든 것은 이 사랑 속에서 펼쳐져야 한다. 그러면 그는 아무리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결심을 거듭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시들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기 행동의 외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자체에서 만족을 누리게 된다. 그는 그의 행동, 아니 그의 존재 전체를 세계에 바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세계가 그의 희생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말이다. 수행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와 같은 희생적 헌신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여섯 번째 조건은, 자신에게 생기는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현존재가 우주 전체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 각자가 생명을 받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가! 우리는 자연과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고 있는가!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고차적 인식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무한한 사랑을 자기 속에서 기를 수 없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나는 내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감사에 가득 찬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들로써 내가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


일곱 번째 조건은, 이상의 조건이 요구하는 대로 삶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다듬어 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행자는 자신의 삶에 통일적인 특징을 부여할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그의 개별적인 생활 표현들은 모순됨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는 수행의 첫 단계에서 도달해야 할 평정함을 위한 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들을 충족시키려는 진지하고도 성실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수행을 결심할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내적인 것은 외적인 것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떤 그림이 화가의 머릿속에만 있을 때에는 아직 존재한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표현 없는 수행은 있을 수 없다. 외적인 것 속에서 내적인 것이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엄격한 형식을 경시한다. 어떤 사상(事象)의 정신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은 진실이다. 그러나 정신이 빠진 형식이 가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형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정신 또한 아무 쓸모도 없는 것으로 존재할 것이다.


  여기에 제시된 조건들은 수행자를 강하게 만들기에 적합하다. 이를 통해 그는 정신 수행이 그에게 가하지 않을 수 없는 더 많은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기를 수 있다. 그에게 이러한 조건들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는 새로운 요구가 주어질 때마다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필요한 인간에 대한 신뢰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신뢰와 진정한 인간애 위에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신뢰와 진정한 인간애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의 영혼의 힘에서 솟아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구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애는 모든 존재, 아니 모든 현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점차 확장되어야 한다. 앞에서 거론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건설과 창조에 대한 완전한 사랑도, 모든 파괴와 부정 그 자체를 그만두려는 경향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깨어있는 인간이 되도록 습관 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몇 가지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곧바로 한 가지만 유의해 봅시다. ·········· 근본적으로 보아 단 하루도 우리 삶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채 지나가는 적이 없다는 점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문장을 뒤집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느 날 기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저녁에 여러분의 하루를 되돌아 보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돌아 보면 여러분 스스로 크고 작은 사건들, 보통 정도의 사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내 삶에 정말로 기이한 것이 등장했다. 정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여러분이 그저 충분히 포괄적으로만 생각하신다면, ·········· 삶의 연관성을 충분히 포괄적으로 고찰하신다면 그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의 삶에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무엇이 어떤 계기로 인해 저지되었는가?”라고는 물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지된 일이, 발생했더라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보통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에서 제거되는 것들의 배면에 우리를 깨어있는 인간으로 교육하는 요소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내게 과연 무슨 일들이 모두 일어날 수도 있었을까? 매일 저녁 이렇게 질문하면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일어나게 할 수도 있었을 개별적 사건들을 고찰해보면, 자기 수련에 주의력을 더해주는 생활 고찰이 그 질문에 연결됩니다. 이런 연습은 시작에 해당될 수 있는 어떤 것입니다. 

그런데 저절로 점점 더 멀리 이끌어가서 마침내 우리 삶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탐색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오전 열한 시 반에 외출을 하려고 하는데 마침 그 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외출을 할 수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생각했던 대로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어서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내가 생각했던 그 시간에 외출을 했더라면, 집을 나섰더라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은 보통 하지 않습니다. 그랬더라면 과연 내 삶에서 무엇이 변했을런지는 물어보지 않습니다.

··········

언젠가 이 자리에서 그런 것들에 관해 제가 상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부정적인 것, 발생하지 않은 것, 하지만 우리 삶의 지혜에 찬 지도에 대한 증거를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관찰하기, ·········· 그 양자 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길, 직통으로 연결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우리가 선택해서 갈 수 있는 확실한 길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드레 후에 지부의 두 번째 강연에서 제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


·········· 바로 그것이 의식 영혼 시대의 커다란 위험입니다. 사람들이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으려고 하면 세 번째 천 년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입니다. 그 세 번째 천 년대의 시작은 우리의 현시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 번째 천 년대는 서기 2000년부터 시작됩니다. ·········· 인간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그 일에 동참한다면, 일이 그런 식으로는 되지 않도록 할 터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인간이 동참하지 않아서 ·········· 그 일을 처리해야만 하는 경우에 과연 무엇이 등장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삼중적인 상황이 인류 발달에 들어섭니다. 그 첫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간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앞에 주어진 것으로서 항상 어떤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자유-의식이 아니라 본능이 됩니다. 바로 그래서 위험합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본성으로 들어서야 할 특정하게 본능적인 인식이, 수태와 임신, 출생의 신비, 전반적인 성생활과 관계하는 특정하게 본능적인 인식이 파괴적으로 될 위험이 있습니다. ·········· 그런데 다음과 같은 사실은 밝혀도 됩니다. “인류 발달 내에서 일어나는 것이 맑게 깨어있는 의식 내에서 유용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성생활과 성 문제에서 나오는 특정 본능들이 해롭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 본능이 단순한 미혹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사회 생활로까지 전이되어서 형상화 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성생활의 결과로서 인간의 혈액 내로 들어오는 것,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지구 상에서 어떻든 간에 아무 형제애도 발달시키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형제애를 점점 더 거역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성향이 본능이 될 것이다.”


··········


이제 특정한 의미에서 결정적인 지점에 이릅니다. 오른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깨어나야만 합니다. 아니면 왼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본능이 등장합니다.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본능이, 그런 본능이 등장하면, 그러면 자연 과학자들은 과연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자연적 불가피성이다. 그런 것이 인간 발달에 속하기 때문에 생겨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자연 과학을 통해서는 그런 문제를 주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천사가 된다면 그 역시 자연 과학을 통해 해명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마귀가 된다 하더라도 역시 해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양자 모두에 대해 자연 과학은 똑같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것에서 나온 결과다.” 인과적 자연 해명이라는 위대한 지혜! 자연 과학은,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린 사건을 눈꼽만큼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본능으로 인해 거의 성적인 악귀가 된다 하더라도 자연 과학은 그런 것을 당연히 자연적인 불가피성으로 여길 터라서 입니다. 사정이 어떻게 되든 자연 과학적으로는 문제를 전혀 해명할 수 없습니다.


·········· 이제 두 번째가 있습니다. ·········· 그것은 바로 특정 의약품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입니다. 그런데 파괴적으로 유해한 인식입니다. 의학과 연결된 모든 것이 엄청난, 물질주의적인 의미에서 엄청난 장려를 받게 됩니다. 특정 질료의 치료 효과와 특정한 처리 과정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이 생겨나서 엄청난 손상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손상을 유용하다고 여깁니다. 병을 건강이라 부를 것입니다. 특정한 처리 과정에 이를 것이고, 또한 그것을 마음에 들어합니다. 특정 경향에 따라 인간을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이끌어가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게 됩니다. 특정한 처리 과정의 치료 효과에 대한 인식, 바로 그 인식이 고도의 수준에 이릅니다. 그런데 아주 위험한 항로로 들어섭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특정 질료와 특정 처리 과정이 질병을 위해 야기하는 것을 특정한 본능을 통해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질병을 유발시킬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완전히 이기주의적인 의도에 따라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


세 번째 결과가 있습니다. ·········· 아주 특정한 힘들을 알게 되어서 그 힘을 통해, 저는 아주 작은 촉발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특정 진동들을 조화시킴으로써 세상에 엄청난 기계력을 방출시킬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런 방식을 통해 기계적 · 역학적 존재의 특정한 정신적 조종을 본능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전반적인 그런 기술이 황폐하기 짝이 없는 항로로 들어설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황폐한 항로가 인간의 마음에 들고, 인간의 이기주의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이용될 것입니다.


··········


이것은 현존의 발달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한 부분입니다. ·········· 그 비정신적인 인생관은 그런 것을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인류를 손상시키는 의학, 성적 본능으로 인한 끔찍한 미혹, 정신력을 통한 자연력의 이용에 있어서 순수한 세계 기계주의 내에서의 소름끼치는 장치, 그 모든 것들이 일단 도래한다 해도 비정신적인 인생관은 전혀 투시하지 못합니다. ·········· 어떤 사람이 잠든 동안 도둑이 들어와서 도둑질을 합니다. 그런데 잠을 자기 때문에 도둑이 옆에서 도둑질을 해도 모릅니다. 비정신적 세계관 역시 그와 꼭 마찬가지로 어떻게 진실한 길을 벗어나는지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나중에 깨어난 후에야 잠든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깨어난다는 것은 인간에게 상당히 괴로운 일입니다. 특정 과정과 질료의 치료력에 대한 지식을 본능적으로 확장시키면서 기뻐 날 뛸 것입니다. 성적 본능에 있어서의 특정한 미혹 속에서 더할나위 없는 쾌감을 맛볼 것입니다. 모든 인간을 초월한, 편견없이 공평한 태도를 특별히 고도로 형태화하는 것이라고 그 성적인 미혹을 미화하고 칭송할 것입니다. 특정 관계에서 보아 추함이 아름다움이 되고 아름다움이 추함이 됩니다. 그 모든 것을 자연적인 불가피성이라 간주하기 때문에 미와 추의 전도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류 자체 내에서 인간의 고유 본성을 위해 규정된 길을 벗어난 미혹일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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