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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iPhone/1세대 : Say Hello to iPhone.

Apple이 2007년 1월 9일(한국 시각 1월 11일)에 공개한 첫번째 iPhone. iPhone OS를 장착했다. 스마트폰의 원조라고 칭해도 좋을 제품으로, 많은 혁신점으로 대중적인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2007년 6월 29일부터 판매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통신망이 호환되지 않는 문제로 출시되지 않았다. 한국에는 2G를 GSM으로 서비스했던 이동통신사가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 

사양

프로세서 - 삼성 S5L8900 SoC. ARM11 412 MHz CPU, PowerVR MBX Lite 3D GPU

메모리 - 128 MB LPDDR1 SDRAM, 4 / 8 / 16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3.5인치 HVGA(480 x 320) RGB 서브픽셀 방식의 TFT-LCD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 - GSM & EDGE

근접통신 - Wi-Fi 802.11b/g, 블루투스 2.0+EDR

카메라 - 후면 200만 화소

배터리 - 내장형 Li-lon 1400 mAh

운영체제 - iPhone OS 1.0 → 1.1 → 2.2 → 3.1.3

규격 - 61 x 115 x 11.6 mm, 135 g

단자정보 - USB 2.0 Apple 30-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가속도계, 근접 센서 탑재


여러면에서 진일보한 스마트폰이었는데, 세계 최초의 정전식 멀티 터치 스크린을 탑재한 제품으로 Quad band GSM 버전으로 미국, 유럽 일부 국가에만 판매되었다.

당시 기준으로 200만화소의 쓸만한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3.5인치 디스플레이는 당시로썬 꽤 큰 편이었고, 무엇보다 별도의 키패드가 없는 전면 정전식 터치스크린은 최초였다. 스티브 잡스가 발표하면서 했던말이 "버튼은 너무 거추장스럽다. 스타일러스(터치펜)는 대체 왜 써야 하냐?"

문자메시지에도 영향을 주었다. 다른 기기들은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마치 이메일을 받듯이 순차적으로 문자를 받게 되는데, 아이폰의 메시지 앱은 인물별로도 분류를 하는 것. 그래서 대화 내용을 종합해서 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이런 방식이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소프트웨어 부분은 그야말로 애플이 매킨토시에서 얻은 경험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키노트의 설명대로 스마트하면서도 사용하기 쉬운 컨셉을 제대로 구현한 기념비적인 휴대폰이다. 단순히 터치로 뭔가를 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쉽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조작되게끔 연결하였으며, 최적화 등도 매우 신경썼다. 안드로이드 초기 버전이 스크롤 등에서조차 버벅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폰의 OS는 초기부터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제품의 디자인 면에서도 굉장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애플의 컴퓨터나 아이팟에서 떠오르고 있던 미니멀한 디자인을 한층 더 세련되게 다듬어 물리적 버튼은 단 하나만 남긴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아이폰의 디자인은 핸드폰 제품 디자인을 비롯한 광범위한 분야에 미니멀리즘의 유행을 촉발했다.


스티브잡스 프리젠테이션 키노트

아이폰이 처음 소개된 프리젠테이션도 화제였다. 간결한 화면과 딱딱하지 않으며 유머스러운 잡스의 연출은 다른 CEO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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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iPhone 3G : Twice as fast. Half the price.

Apple이 2008년 6월 9일에 공개한 두번째 iPhone. 역시 iPhone OS를 장착했다.

한국에서는 2009년 11월 28일 SHOW를 통해 8 GB 모델만이 iPhone 3GS와 함께 출시되었다.

사양

프로세서 - 삼성 S5L8900 SoC. ARM11 412 MHz CPU, PowerVR MBX Lite 3D GPU

메모리 - 128 MB LPDDR1 SDRAM, 8 / 16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3.5인치 HVGA(480 x 320) RGB 서브픽셀 방식의 TFT-LCD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 - HSDPA & UMTS, GSM & EDGE

근접통신 - Wi-Fi 802.11b/g, 블루투스 2.0+EDR

카메라 - 후면 200만 화소

배터리 - 내장형 Li-lon 1150 mAh

운영체제 - iPhone OS 2.0 → 3.1.3 → iOS 4.0 → 4.2.1

규격 - 62.1 x 115.5 x 12.3 mm, 133 g

색상 - 블랙, 화이트

단자정보 - USB 2.0 Apple 30-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가속도계, 근접 센서, GPS 탑재


첫 아이폰의 재질은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이었는데, 3G부터 플라스틱으로 변경되었다. 이 때부터 GPS가 추가되었다. 앱스토어는 처음에는 500개의 애플리케이션의 간소한 규모로 시작했지만 이후로 수많은 앱들이 새로 등록되었다.

첫 아이폰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시범작이었다면 아이폰 3G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마트폰의 형태를 갖춘 첫 제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이폰 3GS와 함께 뒤늦게 출시되었는데, 이전 버전이었기 때문에 8GB 모델만 판매되었다. 한국에서는 소비자들이 아이폰의 영향을 꽤 뒤늦게 접하게 된 셈이다.

아이폰/1세대 와 아이폰 3G 사이에 아이폰 2 가 없다고 궁금해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름이 아이폰 3G 인 이유는 해당 기종이 3G 를 최초로 탑재한 아이폰이여서 그렇다고 한다. 때문에 그 다음 시리즈는 4, 5와 같은 숫자만 붙을 뿐 끝에 G를 붙히지 않는다. 참고로 아이폰/1세대는 2G까지만 지원했었다.

2015년 6월 9일 부로 기술 지원이 중단되었다. 후속 기종과 함께 SHOW인터넷접속기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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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iPhone 3GS : The fastest, most powerful iPhone yet.

The fastest, most powerful iPhone yet. 현재까지 가장 빠르고 강력한 iPhone.

2009년 6월 8일 발표된 Apple의 세번째 iPhone. 이전 세대인 iPhone 3G와 외형은 동일하지만 스펙이 대폭 향상되었다.

한국에서는 2009년 11월 28일 KT SNS 마케팅팀 황태선 팀장이 런칭에 성공해서 출시되었다. 초기에는 SK가 들여온 블랙베리처럼 망하거나 일부 매니아층에서만 호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폭발적인 소비자들의 반응으로 삼성의 본진을 털어버리며 국내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을 알리며, 이동통신 시장에서 KT의 점유율 확대와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 개발의 신호탄이 된다. 사실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KT와의 협상에서 Wi-Fi를 제거해 달라고 했다는 등 또 동시에 SKT가 협상에 들어갔다는 등 자꾸 이런 저런 핑계로 출시가 밀려 담달폰이라는 별명을 얻고 한참이 지나서야 출시되었다. 간단하게 [삼지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S의 의미는 speed.

2012년 9월 아이폰 5 출시와 함께 마침내 단종되었으며, 2013년 iOS 7 미지원 발표로 사후 OS 메이저 버전 업그레이드 지원이 마침내 끝을 맺었는가 했는데 2014년 2월에 새로 알려진 보안 이슈를 해결한 6.1.6 버전을 업데이트 해주었다.

2017년 6월에 애플의 '구식(vintage and obsolete)' 제품으로 분류되어 수리 등 서비스 지원을 중단한다.

사양

프로세서 - 삼성 S5PC100 SoC. ARM Cortex-A8 600 MHz CPU, IT PowerVR SGX535 GPU

메모리 - 256 MB LPDDR eDRAM, 8 / 16 / 32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3.5인치 HVGA(480 x 320) RGB 서브픽셀 방식의 TFT-LCD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 -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근접통신 - Wi-Fi 802.11b/g 블루투스 2.1

카메라 - 후면 300만 화소 AF

배터리 - 내장형 Li-lon 1219 mAh

운영체제 - iPhone OS 3.0 → 3.1.3 → iOS 4.0 → 4.3 → 5.1 → 6.1.6

규격 - 62.1 x 115.2 x 12.3 mm, 135 g

색상 - 블랙, 화이트

단자정보 - USB 2.0 Apple 30-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가속도계, 근접센서, 자기센서 탑재


속도가 빨라지고 동영상 촬영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여 홍보한 모델. 카메라 기능을 강화하여 터치포커스가 추가되었고 비디오 촬영도 할 수 있다. 비디오가 상당히 부드러워 호평. 배터리 용량이 늘어났고 CPU가 빨라졌다. ARM Cortex-A8은 2010년 기준으로도 최고 성능을 가진 모바일 CPU 아키텍처인데, 배터리 때문에 다운클럭 되어 있다. 이것은 아이폰 4에 달려있는 A4도 마찬가지. RAM도 두 배로 늘어 애플리케이션 실행이 빨라졌다.

특히나 그래픽 성능이 아이폰 3G에 비하여 비약적으로 상승하여, 3GS 에서는 구동이 가능하지만, 3G 에서는 구동이 안되는 애플리케이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단 게임 구동 성능부터가 다른 모든 스마트폰을 압도했다. 게다가 앱스토어에 구동할 만한 게임도 이미 많이 출시된 상태였고. 많이 알려진 게임 중 하나가 바로 N.O.V.A.라는 FPS 게임이었다. 나중에는 인피니티 블레이드 1과 2까지도 지원 기기였다. 그래픽 처리 유닛이 아이폰 4와 같은 PowerVR SGX 535 인데 해상도는 아이폰 4 대비 1/4 밖에 되지 않아 GPU의 처리 부담이 적어서 일부 게임은 아이폰4 보다 3GS에서 더 원활하게 실행 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옴니아 II는 ARM 11 기반의 800 MHz고 아이폰은 Cortex-A8 기반의 600 MHz라 클럭당 성능비가 배 가량 차이나는 아이폰이 우세할수 밖에 없고, 옴니아 II는 결정적으로 3D 가속은 없는거나 마찬가지라 비교가 안된다.

2010년 아이폰 4의 출시와 함께 iPhone OS는 iOS로 이름이 바뀌었고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던 4.0 버전이 출시되었는데, 이게 아이폰 3GS에도 지원되면서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모바일 디바이스의 OS를 무료로 업데이트한다는건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업데이트 또한 컴퓨터에 연결하여 바로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했기 때문이다. 워낙 절차가 단순해서 그냥 하던대로 아이튠즈 연결해서 사용하던 중 아이폰 OS가 바뀐걸 보고 놀랐다는 경험담도 올라오곤 했다.

그와 동시에 iOS 5.0의 지원 대상이라는 발표에 또한번 사용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더욱이 Over The Air(OTA)라는 업데이트 방식을 선보여서 컴퓨터에 연결할 필요도 없이 와이파이 연결만 되어 있으면 설정 들어가서 업데이트 버튼 한번 누르 것으로 간단하게 설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로 역시 아이클라우드 지원을 들 수 있겠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WWDC 2012에서는 iOS 6의 지원 대상이 됨으로써 결국 승리의 노익장임을 증명했다. 갤럭시 S가 아이폰 4 대항마라고 선전하던 것에 비해 펌웨어 지원 2년 후 버려졌는데 그보다도 이전 모델이 아이폰 3GS는 3년 넘게 새로운 OS 지원중이라는 것은 애플의 사후지원이 뛰어난 것을 보여준다. 한편 옴니아는 OS 제조사도 단말기 제조사도 포기했다. 일단 윈도우 모바일이 너무 구렸고 다음 버전과 호환성이 아예 없었다.

2015년 6월 9일 부로 기술 지원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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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iPhone 4 : This changes everything. Again.

This changes everything. Again.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2010년 6월 8일 발표된 Apple의 네번째 iPhone. 한국에서는 2010년 9월 10일 KT를 통해 출시되었다. 2011년 3월 16일부터는 SK텔레콤을 통해서도 구매가 가능해졌다.

사양

프로세서 - 삼성-Intrinsity Apple A4 APL0398 SoC. ARM Cortex-A8 800 MHz CPU, PowerVR SGX535 GPU

메모리 - 512 MB LPDDR SDRAM, 8 / 16 / 32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3.5인치 DVGA(960 x 64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Display (IPS TFT-LCD 방식 & 326 ppi)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 - 기본: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VZ: CDMA & EV-DO Rev. A

근접통신 - Wi-Fi 802.11b/g/n, 블루투스 2.1+EDR

카메라 - 전면 30만 화소, 후면 500만 화소 AF 및 LED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1420 mAh

운영체제 - iOS 4.0(4.2.6) → 4.3 → 5.1 → 6.1 → 7.1.2

규격 - 58.6 x 115.2 x 9.3 mm, 137 g

색상 - 블랙, 화이트

단자정보 - USB 2.0 Apple 30-pin x 1, 3.5 mm 단자 x 1


6월 8일 WWDC'10에서 발표. 디스플레이는 해상도가 4배로 높아지고 명암비가 800:1로 늘어난 광시야각 IPS액정. 애플이 PPI수치를 언급하며 특별히 이름까지 붙여주었으니, 그 이름하여 레티나 디스플레이이다. 덕분에 텍스트 읽기가 아주 좋아졌다. 실질적으로 모바일 기기의 해상도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키고 주도한 기기라고 볼 수 있다.

500만화소 카메라에 각종 센서를 떡칠했고, 720p @ 30 fps HD 비디오는 유료 앱 iMovie를 사용해 편집할 수 있다. 발매전 유출된 버전의 영상을 보고 입떡벌어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작과 달리 후면도 강화유리로 둘러버린 애플다운 디자인을 자랑한다. 출시된 지 7년이 지난 2017년의 시각으로 봐도 정말 질리지 않고 꽤나 미래적인 디자인이다. 특히 화이트 색상은 역대 아이폰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역대급 디자인으로 손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 독특한 디자인은 후속작인 아이폰 4S까지 이어지게 된다.

일명 안테나 게이트, 혹은 데스 그립이라고 불리는 이슈가 존재하는데 그 원인은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로 만들어진 옆면 부분에 있다. 이 금속 부분은 셀룰러 데이터, 와이파이 등 네트워크의 송수신을 담당하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하여 아이폰 4가 많이 얇아졌다. 하지만 이 안테나 때문에 사용중에 손으로 가리게 되면 심각하게 수신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그런 식으로 휴대폰을 잡지 않으면 된다'며 망언을 하였고, 비난이 계속되자 결국 애플은 수신률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아이폰 4용 범퍼케이스를 무료로 배포하였다.

배터리 용량이 1420 mAh로 늘었다. 그리고 여전히 일체형이지만 그래도 분해해본 결과 배터리 교체 자체는 요긴한 형태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면에 30만 화소 영상통화용 카메라도 증설되어 이를 이용한 영상통화 FaceTime은 아이폰 4끼리 Wi-Fi로만 가능하다. 차후 3G망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으며, Mac과 아이팟과는 연동이 되기 시작했으며, 아이패드 2에서도 연동이된다. Wi-Fi를 사용하므로 국경을 초월하여 무제한 무료이며, iPod touch나 맥과 통화할 때는 Apple ID(Email주소)를 이용해 다이얼하면 된다. 그 외에 자이로스코프 기능이 내장되어 PS3의 컨트롤러와 동일하게 6축 감지를 할 수 있다. 이미 가속도계가 있으므로, 사실상 위리모트와 동일하게 속도와 위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카메라의 경우 위에서 서술한대로 터치스크린으로 측거점의 이동이 가능하며 동영상 촬영시에도 AF를 지원해서 초점거리의 변화에 따른 초점문제는 없다고 보면된다. 사진 촬영의 경우 HDR기능을 지원함으로서 좀더 밝게 사진을 찍을수있다. 

미국과 몇몇 국가에서는 예약 첫번째 날에 60만대가 예약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해버렸다. 이 한국 2010년 1분기 스마트폰 판매량이 80만대 가량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이다. 

이 아이폰의 단점이 몇 가지 존재했는데, 첫번째로는 음성과 데이터가 함께 안됐다는 것. 두번째로는 로밍 할 경우 CDMA 네트워크에서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로밍할 수 있는 국가들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2016년 11월 2일 애플에서 공식적으로 유상 서비스 지원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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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iPhone 4s : It's the most amazing iPhone yet.

It's the most amazing iPhone yet. 지금까지 가장 놀라운 iPhone.

스티브 잡스의 유작.

2011년 10월 4일 발표된 Apple의 다섯번째 iPhone이다. 한국에서는 2011년 11월 11일 SK텔레콤과 KT를 통해 출시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 모바일 게임기이기도 하다. iPhone 4의 미국 버라이즌 전용 모델이 iPhone 4s로 넘어오면서 '글로벌 CDMA 모델'로 격상되어 글로벌 CDMA 주파수를 사용하던 일본의 KDDI와 중국의 차이나텔레콤이 iPhone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소프트뱅크 독점 출시가, 중국에서는 차이나유니콤 독점 출시가 깨져버렸다. LG U+ CDMA는 국내에서만 사용하는 주파수라서 지원하지 않는다. Apple 최초로 인공지능인 Siri가 공개되었다.

2014년 가을에 출시한 iOS 8의 지원 대상이 되었고 iOS 9도 주요 특징으로 구형 기종의 원활한 지원 강화를 내세우며 2015년 iOS 9의 지원대상에도 포함되었다. 이로서 아이폰 4s는 2011년 부터 5년간 지원을 받게 되었다. 2013년 9월 10일(한국 시각 9월 11일)에 아이폰 5s, 5c 발표와 함께 펫 네임이 iPhone 4S에서 iPhone 4s로 소문자로 변경되었다.

사양

프로세서 - 삼성 Apple A5 APL0498 SoC. ARM Cortex-A9 MP2 800 MHz CPU, PowerVR SGX543 MP2 GPU

메모리 - 512 MB LPDDR2 SDRAM, 8 / 16 / 32 / 64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3.5인치 DVGA(960 x 64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Display (IPS TFT-LCD 방식 & 326 ppi)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 -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CDMA & EV-DO Rev. A

근접통신 - Wi-Fi 802.11b/g/n, 블루투스 4.0

카메라 - 전면 90만 화소, 후면 800만 화소 AF 및 LED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1420 mAh

운영체제 - iOS 5.0 → 5.1 → 6.1 → 7.1 → 8.4 → 9.3.5

규격 - 58.6 x 115.2 x 9.3 mm, 140 g

색상 - 블랙, 화이트

단자정보 - USB 2.0 Apple 30-pin x 1, 3.5 mm 단자 x 1


한때 4s가 'for Steve'를 뜻한다는 말이 있었으나 4s에서 s는 Siri를 의미한다고 애플의 CEO 팀 쿡이 밝혔다.

아이폰 4s에 실망하는 입장은 1년 4개월동안 아이패드 2 때 넣었던 A5칩을 추가하고 카메라 업그레이드, GPS 성능 향상, 안테나 수정한게 다가 아니냐는 반응과 신중한 입장에서는 그래도 A4와 A5는 성능에서 차이가 크며 카메라도 확실히 좋아졌고 Siri라는 개인 비서 기능은 분명 다른 어떤 스마트폰과도 차별화된다는 점에 무게를 뒀다.

아이폰은 480x320 해상도를 유지하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채용한 아이폰 4부터 해상도를 960x640으로 변경하였다. 앱 개발의 통일성등을 고려해 시대에 뒤떨어진 해상도를 오랜기간 유지했었던 전례가 있는데 아이폰 4 이후 1년 4개월이 지났다 하더라도 더 큰 액정을 도입하자면 일장일단이 있다. 애플이 그렇다고 다른 스마트폰들처럼 해상도가 떨어진다고 해도 액정 크기는 무리하게 키우자는 선택을 할리도 없었다. 즉, 시장 분위기에 휩쓸려 애플이 액정 크기를 키울 것이라는 기대는 사용자들만의 일방적인 기대였다. 

스테인리스 스틸 안테나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상황에 따라 심지어 통화를 하는 도중에도 안테나를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 데스그립 문제를 해결하고카메라가 800만 화소가 되었으며 푸른 멍 현상도 개선되었다고 한다.

또한 Siri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음성 인식 기능이 추가되어 아이폰의 거의 모든 기능을 음성 인식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건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주요 기능을 손하나 까딱 안하고 음성만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 것은 타 스마트폰에서는 볼 수 없는 아이폰만의 기능이며 단연 돋보인다. 안타깝게도 이 기능 또한 한국 사용자들에게는 거의 와닿지 않는 부분이었으나 iOS 6부터 한국어 기능도 추가되어 시리 버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64GB 대용량 모델이 첫 등장한 버전이기도 하며 아이폰 중 마지막으로 30핀 케이블을 사용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가 4s 발표 다음날 별세하자, "iPhone for Steve"라는 별명이 붙었다. 잡스의 유작이 되어버리면서 갑자기 인기가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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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iPhone 5 : The biggest thing to happen to iPhone since iPhone.

The biggest thing to happen to iPhone since iPhone. iPhone 이래 가장 획기적인 iPhone.

2012년 9월 12일에 발표된 Apple의 여섯번째 iPhone.

전전작 iPhone 4의 혁신성에 비하면 덜하지만 전작 iPhone 4S보다 상당한 개선을 가져온 iPhone.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은 리부트 버전 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양

프로세서 - Apple A6 APL0598 SoC. Apple Swift MP2 1.3 GHz CPU, PowerVR SGX543 MP3 350 MHz GPU

메모리 - 1 GB LPDDR2 SDRAM, 16 / 32 / 64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4.0인치 1136 x 64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Display (IPS TFT-LCD 방식 & 326 ppi)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In-cell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 - LTE Cat.3,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CDMA & EV-DO Rev. A

근접통신 - Wi-Fi 802.11a/b/g/n, 블루투스 4.0

카메라 - 전면 120만 화소, 후면 800만 화소 AF 및 LED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1440 mAh

운영체제 - iOS 6.0 → 6.1 → 7.1 → 8.4 → 9.3 → 10.3.3

규격 - 58.6 x 123.8 x 7.6 mm, 112 g

색상 - 블랙/슬레이트, 화이트/실버

단자정보 - USB 2.0 Apple Lightning 8-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WideBand Audio 지원


아이폰 4, 4s보다 18% 얇아지고 20% 가벼워졌다. 두께가 7.6 mm로 얇은 축에 속하며, 무게는 112 g으로 아이폰 4s나 갤럭시 S III에 비해 약 20g정도 가벼우며, 출시 당시의 주요 경쟁작들과 비교하면 가장 얇고 가볍다. 다른걸 다 제쳐두고서라도 두께와 무게 하나만큼은 만족스럽다는 평.

액정의 경우 루머대로 326 ppi 레티나 디스플레이에 16:9 비율의 4인치 화면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화면이 가로세로 전부 크기만 한 스마트폰은 이미 널리고 널렸으니, 휴대성과 화면크기를 동시에 잡는 길을 택하는 것은 애플로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단순히 비율만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영상 매체를 볼 때 상당히 크게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기존 아이폰 시리즈가 3:2 비율로 16:9 영상을 볼때 위아래로 여백이 생겨 재생 크기가 3.2인치밖에 되지 않았던 것으로 16:9 와이드 스크린 비율로 넘어오면서 4인치 그대로 감상하게되어 체감상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화면이 길어짐으로써 모바일 게임기로서도 조작이 좀더 용이해졌다. 이전 모델에 비해 터치 스크린을 넓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 게다가 무게가 눈에 띄게 감소함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중력센서를 이용한 게임을 오래 해도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그 외의 특징으로는 인셀(In-cell) 터치 기술이 적용되었다는 점에 있다. 인셀 터치 기술은 디스플레이와 터치 센서를 하나로 통합한 것으로, 디스플레이와 터치 센서가 별개의 층으로 존재하는 기존의 온셀(On-cell) 기술에 비해 두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리고 풀 sRGB를 지원해 전작에 비해 44% 증가한 채도를 보여 이전 모델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마이크가 2개에서 3개로 늘어났으며 위치가 조금 바뀌었다. 이전에는 상단면과 하단면에 마이크로폰이 위치했다면, 이제는 전면부, 후면부, 그리고 하단면에 위치한다. 이를 통해 하드웨어적으로 노이즈 캔슬레이션을 지원하며, 화상 통화에서 좀더 높은 음질을 가능케 하였다.

충전 단자가 기존의 30핀 단자에서 라이트닝이라는 이름의 8핀 규격의 단자로 교체되었다. 이 커넥터는 단자의 앞뒤 모양이 같으므로 어느 방향으로도 쉽게 연결할 수 있다. 아이폰의 크기를 줄이면서 기존 30핀 독 커넥터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서 부득이하게 변경한 면이 있다고도 한다. 

후면 카메라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800만 화소이고 1080p 촬영이 가능하며, 낮은 조명에서 좀더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A6 칩 덕분에 사진 촬영도 이전 모델에 비해 40% 더 빨라지는 등 전반적으로 속도 향상이 이루어졌다. 동영상 촬영 시 뉴 아이패드처럼 촬영 중 흔들림을 자동으로 보정한다. 렌즈 재질은 시계 등에 사용되는 사파이어(산화알루미늄) 재질로써 기존의 구형 모델보다 스크래치에 더 강해졌으며 더 얇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아이폰 5와 아이팟 발표와 함께 새롭게 디자인된 번들 이어폰인 EarPods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약 3년이 걸린 개발과 함께 600여명의 테스터를 대상으로 각기다른 124개의 프로토타입을 사용해보도록 하였다고 한다. 

아이폰 4의 디자인과 비슷해 보이지만 깔끔한 투톤 유니바디 몸체, 다이아몬드 절삭 가공된 챔퍼(chamfer)가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평. 이건 디자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루미늄 재질이 아노다이징 처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홈버튼도 재설계되어 좀더 높은 내구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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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iPhone 5c : For the Colorful

For the Colorful 인생은 컬러풀.

사양

프로세서 - Apple A6 APL0598 SoC. Apple Swift MP2 1.3 GHz CPU, PowerVR SGX543 MP3 350 MHz GPU

메모리 - 1 GB LPDDR2 SDRAM, 8 / 16 / 32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4.0인치 1136 x 64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Display (IPS TFT-LCD 방식 & 326 ppi)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In-cell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 - LTE Cat.3 TD-LTE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TD-SCDMA GSM & EDGE CDMA & EV-DO Rev. A

EV-Do Rev. B

근접통신 - Wi-Fi 802.11a/b/g/n, 블루투스 4.0

카메라 - 전면 120만 화소, 후면 800만 화소 AF 및 LED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1510 mAh

운영체제 - iOS 7.0 → 7.1 → 8.4 → 9.3 → 10.3.3

규격 - 59.2 x 124.4 x 8.97 mm, 132 g

색상 - 그린, 화이트, 블루, 핑크, 옐로우

단자정보 - USB 2.0 Apple Lightning 8-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WideBand Audio 지원


애플이 공개한 아이폰 5의 파생모델. 2013년 9월 20일 1차 출시국에 아이폰 5s와 같이 출시되었다. 다수 컬러로 나온 최초의 아이폰이자 최초의 파생모델이다. 

애플 아이폰의 경우, 신제품이 출시가 되면 전작의 가격을 낮춘다. 조금 오래된 모델을 8 GB 모델로 새로 출시한다. 별도 제품군이지만 이동통신망이 불필요하다면 아이팟 터치도 대체재로 활용한다. 와 같은 방법으로 중저가형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헌데, 이번에는 아이폰 5의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재질을 달리한 아이폰을 제작하여 대체재로 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이 주요 분석이다.

아이폰 5c가 아이폰 5의 대체제로 나온 이유 중 유력하게 제기되는 것은 아이폰 5의 원가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외장을 플라스틱으로 바꾸고 나왔다는 것이다. 즉 100달러를 낮춰 팔면 마진이 얼마 안 남는다는 것. 또한 기존의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는 이전의 아이폰을 용량만 낮추어 그대로 출시된 것에 비해 5c는 새로 출시되었다는 인상을 주어 소비자들에게 신제품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함도 있다. 

몸체는 폴리 카보네이트 유니바디로 만들어졌으며 아이폰 역사상 최초로 무채색 이외의 컬러 제품이 출시되었다. 안쪽면의 강철 프레임은 안테나 역할을 하여 아이폰 5보다 수신율이 좋아졌다고 한다. 또한 클리어 레커 하드코팅을 이용하여 유광재질의 뒷면을 완성했다. 제품 규격은 아이폰 5보다 더 무겁고 조금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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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iPhone 5s : You're more powerful than you think.

You're more powerful than you think. 당신의 능력은 당신의 생각보다 큽니다.

애플이 2013년 9월 10일(한국 시각 9월 11일)에 공개한 iOS 기반 스마트폰으로 7번째 아이폰이다. 한국에는 2013년 10월 25일에 출시되었다. 공식 명칭이 iPhone 5s이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잡스의 진정한 유작.

모바일 기기 중에선 꽤 유명한 영상물 제조기이다. 매킨토시 30주년 기념 영상, 벤틀리 광고, 영화에 이르기까지 별별 영상물이 이 조그마한 기기로 촬영되었다.

사양

프로세서 - Apple A7 APL0698 SoC. Apple Cyclone MP2 1.3 GHz CPU, PowerVR G6430 375 MHz GPU

메모리 - 1 GB LPDDR3 SDRAM, 16 / 32 / 64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4.0인치 1136 x 64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Display (IPS TFT-LCD 방식 & 326 ppi)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In-cell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 - LTE Cat.3 TD-LTE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TD-SCDMA GSM & EDGE CDMA & EV-DO Rev. A EV-DO Rev. B

근접통신 - Wi-Fi 802.11a/b/g/n, 블루투스 4.0

카메라 - 전면 120만 화소, 후면 800만 화소 AF 및 True Tone LED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1570 mAh

운영체제 - iOS 7.0 → 7.1 → 8.4 → 9.3 → 10.3 → 11.2

규격 - 58.6 x 123.8 x 7.6 mm, 112 g

색상 -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

단자정보 - USB 2.0 Apple Lightning 8-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WideBand Audio 지원, 에어리어 방식 지문인식 Touch ID 지원, 모션 인식 프로세서 M7 탑재


소형 스마트폰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과 보루였던 폰.

CPU는 자체 아키텍쳐인 Cyclone 아키텍쳐를 사용한다. ARMv8 명령어 셋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ARMv8 명령어 셋 기반 아키텍쳐 중 최초로 모바일 AP에 내장되었다. 때문에 ARMv8 명령어 셋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64-bit 지원도 CPU 아키텍쳐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모바일 AP로는 최초로 적용된다.

M7이라는 MCU 유닛이 탑재된다. MCU 자체는 기존 SoC나 스마트폰에도 내장된 적이 있기 때문에 딱히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아니다. 다만, MCU 유닛 탑재로 모션센서나 GPS 등 모듈의 정보를 연산할때 비교적 적은 리소스를 사용하는 코어를 사용하게 되므로, 전체적인 배터리 효율이 향상되었다. 애플에서 설계한 것이 아니며 NXP 社의 LPC1800을 납품받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iPhone 5s 정식 발매 이후 벤치마크 결과 iPhone 5에 비해 두 배 정도의 점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iPhone 5s에서 동일한 코드를 64-bit로 재컴파일하여 32-bit와 비교한 벤치마크에서도 비교적 차이가 나는 결과를 보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ARMv8의 64-bit 아키텍처가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다. 애플이 A7칩을 통해 경이적인 성과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이는 벤치마크 테스트가 증명하고 있고 그걸 제쳐두고서라도, ARMv8과 64-bit를 그 누구보다 빨리 엔드유저용 제품으로 완성시켰다는 자체가 경쟁사들을 제대로 물먹인 것이기 때문이다. ARM의 로드맵에 따라 예상되던 시기에서 적어도 1년은 빨리 완성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며, 이것만으로도 애플의 칩 설계 능력이 삼성이나 퀄컴에 뒤지지 않는 업계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한것으로 보아도 좋다. 경쟁사들이 하드웨어적으로 64-bit 지원을 할 때 즈음해서 iOS 기기들은 이미 소프트웨어적으로도 완전한 이주가 완료되었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카메라에 상당히 많은 기능이 추가되어서 키노트에서도 카메라 설명에 분량이 많이 할애되었다. 카메라의 경우 화소 수치는 아이폰 5와 동일하지만, 센서 등 다른 부분에서 상향되었다. 조리개는 f/2.2로 더 커지고 빛에 대한 감도가 아이폰 5대비 33% 상승했다. 자동 보정 기능이 들어갔지만 OIS는 탑재하지 않았다. 이미지센서 역시 15% 커졌는데, 센서 내 픽셀 크기가 1.5 마이크론이 되어 경쟁 스마트폰들에 비해 상당히 커졌다. 

True Tone이라는 새로운 플래시를 탑재했는데, 특이하게도 플래시가 백색과 황색 LED 2개로 이뤄져 있다. 기존 카메라 플래시의 경우 백색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색온도를 가진 주변 환경과 이질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피부 톤이 가장 이질적으로 나오는데 스킨톤이 다 다른 사람들의 피부를 전부 하얗게 띄워버리기 때문이다. 백색과 황색 LED 2개를 장착하고 색온도에 맞춰 플래시 색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은 비단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카메라 업계 전체에서도 최초로 시도된 것이라 꽤 큰 의미가 있다.

색상의 경우 기존 아이폰 시리즈의 블랙, 화이트와는 다르게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로 3색으로 공개되었다. 블랙이 그레이로 대체되고, 화이트가 실버로 대체되는 수준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골드 색상이 발매된 최초의 아이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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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iPhone 6 : Bigger than bigger. The two and only.

Bigger than bigger 크다는 것 그 이상

The two and only. 오직 하나뿐인 둘.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잡스의 그림자에서 탈피한 애플의 상징

사양

프로세서 - Apple A8 APL1011 SoC. Apple Typhoon MP2 1.4 GHz CPU, PowerVR GX6450 430 MHz GPU

메모리 - 1 GB LPDDR3 SDRAM, 16 / 32 / 64 / 128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4.7인치 1334 x 75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HD Display (IPS TFT-LCD 방식 & 326 ppi)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Ion-X 글라스

네트워크 - LTE-2CA Cat.4,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TD-LTE, TD-SCDMA CDMA & EV-DO Rev. A

근접통신 - Wi-Fi 802.11a/b/g/n/ac, 블루투스 4.0→4.2, NFC

카메라 - 전면 120만 화소, 후면 800만 화소 위상차 검출 AF 및 True Tone LED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1810 mAh

운영체제 - iOS 8.0 → 8.4 → 9.3 → 10.3 → 11.2

규격 - 67 x 138.1 x 6.9 mm, 129 g

색상 -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

단자정보 - USB 2.0 Apple Lightning 8-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VoLTE 및 Wideband Audio 지원, 에어리어 방식 지문인식 Touch ID 지원, 모션 인식 프로세서 M8 탑재


전반적인 디자인은 아이팟 터치 5세대와 비슷하게 라운딩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으며 전작인 아이폰 5s가 가졌던 디자인적 요소는 찾기 어렵다. 전면은 라운딩 처리가 되어있는 강화유리, 후면 역시 라운딩 처리가 되어있는 알루미늄 재질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카툭튀'와 '절연 테이프'처럼 보이는 외관 때문에 디자인의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카메라의 경우, 모듈의 두께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고, 카메라 품질까지 포기하면서 모듈 경량화를 할 수 없기에 나름대로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절연 테이프 디자인이라 불리는 안테나 라인의 경우, 아이폰 5와 아이폰 5s를 볼 때 이렇게 선이 두드러지지 않았는데, 이는 안테나 선을 기점으로 위아래는 유리로 처리하고 투톤 처리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처리하지 않고 완전 유니바디 디자인을 선택했기 때문에 부각이 된 것이다. 기본 색상은 전작과 동일한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로 총 3종이다.

AP로 Apple A8 APL1011을 사용한다. 64-bit를 지원하는 Apple Cyclone 듀얼코어 CPU와 이매지네이션 테크놀러지의 PowerVR GX6450 GPU를 사용한다. TSMC 20nm SoC 공정에서 생산이 되는 최초의 모바일 AP이자 애플 A 시리즈 중 최초로 20nm 공정에서 생산된 모바일 AP다. 

디스플레이는 4.7인치 1334 x 750 해상도를 지원하며 16:9 비율에 근접한 화면 비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패널은 IPS TFT-LCD 계열의 Retina HD Display를 사용하며 픽셀 배치의 경우 RGB 서브픽셀 방식을 사용하나, 듀얼 도메인 픽셀 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기존 Retina Display에서 패널 구조가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베젤이 조금 줄긴 했지만 디스플레이가 커지면서 기기 자체의 면적도 더욱 커졌다.

배터리 용량은 내장형 1810 mAh이다. 전작이 1570 mAh인 것과 기기 두께가 약 0.7mm 정도 얇아진 것을 고려할 때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기기의 크기가 커진것과 비례하게 용량이 증가했다. 

후면 카메라는 800만 화소에 위상차 검출 AF를 지원하는 카메라로, Phase Detection AF(PDAF)가 새롭게 적용된 소니의 엑스모어 RS IMX145 센서를 사용한다. 이는 아이폰 6 Plus와 동일한 센서다.

한가지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아이폰 6부터 기본 내장 카메라앱의 셋팅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이다. 아이폰 5s까지는 노이즈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디테일을 살리는 쪽으로 셋팅되어 있었고, 실제로 저조도 및 야간 촬영 시 노이즈가 종종 발견되지만 디테일이 무너지지 않고 잘 보존된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폰 6은 야간 촬영 시 순정 카메라앱을 사용하면 사진이 완전히 뭉개지며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는 기염을 토한다. 디노이징 프로세싱이 너무 강해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노이즈는 현저히 줄어든 반면 디테일이 전혀 살지 않아 오히려 사진 품질이 아이폰 5s에 비해 나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이는 Cortex Cam이나 다른 서드파티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 해결되나, 대다수의 사용자들이 기본 카메라앱을 사용한다는 점을 들어 이는 아이폰 6 카메라의 심각한 단점이라고 꼽을 수 있다.

에어리어 방식의 지문인식 모듈, 총칭 'Touch ID'가 아이폰 5s와 동일하게 전면 홈버튼에 내장되어 있다. 또한, 모션 인식 프로세서인 M8 프로세서가 내장되어있다. 기압계가 새롭게 내장되어 건강 앱과 연동하여 오른 계단 수 역시 측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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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iPhone 6 Plus : Bigger than bigger. The two and only.

사양

프로세서 - Apple A8 APL1011 SoC. Apple Typhoon MP2 1.4 GHz CPU, PowerVR GX6450 475 MHz GPU

메모리 - 1 GB LPDDR3 SDRAM, 16 / 64 / 128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5.5인치 2208 x 1242→FHD(1920 x 108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HD Display (IPS TFT-LCD 방식 & 401 ppi)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Ion-X 글라스

네트워크 - LTE-2CA Cat.4,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TD-LTE, TD-SCDMA CDMA & EV-DO Rev. A

근접통신 - Wi-Fi 802.11a/b/g/n/ac, 블루투스 4.0→4.2, NFC

카메라 - 전면 120만 화소, 후면 OIS 기술 탑재 800만 화소 위상차 검출 AF 및 True Tone LED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2915 mAh

운영체제 - iOS 8.0 → 8.4 → 9.3 → 10.3 → 11.2

규격 - 77.8 x 158.1 x 7.1 mm, 172 g

색상 -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

단자정보 - USB 2.0 Apple Lightning 8-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VoLTE 및 Wideband Audio 지원, 에어리어 방식 지문인식 Touch ID 지원, 모션 인식 프로세서 M8 탑재


애플의 2014년도형 아이폰이자 최초의 대화면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하는 iOS 기반 스마트폰이다.

RAM은 LPDDR3 SDRAM 방식이며 1 GB다. 내장 메모리는 16 GB 모델, 64 GB 모델 그리고 128 GB 모델로 나뉘어지며 32 GB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128 GB가 기본 용량으로 사용되는 최초의 아이폰 중 하나다. 

디스플레이는 5.5인치 Full-HD 해상도를 지원한다. 정확히 말하면, 기기 소프트웨어는 16:9 비율의 2208 x 1242 해상도로 인식하고 있으나 이를 다운스케일링해서 Full-HD 해상도로 송출하고 있다고 한다. 패널은 IPS TFT-LCD 계열의 Retina HD Display를 사용하며 픽셀 배치의 경우 RGB 서브픽셀 방식을 사용하나, 듀얼 도메인 픽셀 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존 Retina Display에서 패널 구조가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디스플레이 크기가 5.5인치인 반면에, 전체 사이즈가 5.7인치인 갤럭시 노트4보다 크고, 5.9인치인 G Pro 2와 비슷해서 크기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배터리 용량은 내장형 2915 mAh로 대형화된 기기에 맞게 배터리 용량도 커졌다. 아이폰 5s 대비 약 1.5배에서 2배가량 높은 배터리 타임을 보여준다고 한다.

후면 카메라에는 기존에 수율 등 대량 생산의 문제로 사용할 수 없었던 OIS 모듈이 추가되었다. 800만 화소에 위상차 검출 AF를 지원하는 카메라로 이는 아이폰 6와 동일한 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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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iPhone 6s : The only thing that's changed is everything.

The only thing that's changed is everything.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전부입니다.

사양

프로세서 - Apple A9 APL0898 & APL1022 SoC. Apple Twister MP2 1.85 GHz CPU, IT PowerVR GT7600 600 MHz GPU Apple M9 모션 인식 프로세서

메모리 - 2 GB LPDDR4 SDRAM, 16 / 32 / 64 / 128 GB NVMe 규격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4.7인치 1334 x 75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HD Display (IPS TFT-LCD 방식 & 326 ppi) 멀티터치 및 Taptic Engine 기반 3D Touch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Ion-X 글래스

네트워크 - LTE-2CA Cat.6, TD-LTE,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TD-SCDMA, GSM & EDGE, CDMA & EV-DO Rev. A

근접통신 - Wi-Fi 802.11a/b/g/n/ac, 블루투스 4.2, NFC

카메라 - 전면 500만 화소, 후면 1,200만 화소 위상차 검출 AF 및 True Tone LED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1715 mAh

운영체제 - iOS 9 → 9.3 → 10.3 → 11.2

규격 - 67.1 x 138.3 x 7.1 mm, 143 g

색상 -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 로즈 골드

단자정보 - USB 2.0 Apple Lightning 8-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VoLTE 및 Wideband Audio 지원, 에어리어 방식 지문인식 Touch ID 지원


전통적으로 애플은 숫자 넘버링이 올라가는 라인업과 숫자 넘버링은 유지한 채 S를 접미시킨 일종의 개선판 라인업으로 격년 주기로 출시하는 만큼, 상당 부분이 아이폰 6와 유사하게 만들어졌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아이폰 6와 동일하다. 다만, 전작에서 알루미늄 6000 시리즈를 사용해 밴드 게이트로 홍역을 겪었기에 소재를 알루미늄 7000 시리즈을 사용해 내구도 향상을 이루었다. 전작에 비해 기기의 무게가 증가했는데, 무게 증가에 대한 이유로 처음에는 소재 변경으로 추정되었으나, 소재와는 무관하며 디스플레이 패널의 무게가 전작인 아이폰 6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새로운 진동 센서를 탑재하면서 최종적으로 무게가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기본 색상은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에 새로이 로즈 골드 색상이 추가되어 총 4종이 되었다.

애플은 Apple A8 APL1011 대비 CPU 성능은 약 70% 상승했고 GPU는 약 90%가량 상승했다고 밝혔다. 모션 인식 프로세서인 Apple M9가 외장 칩셋으로 탑재되던 기존과는 달리, 아예 모바일 AP 내부에 내장되어 있어서 전력 소모율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RAM은 LPDDR4 SDRAM 방식이며 2 GB다. 약 3년 만에 아이폰의 RAM 용량을 증가시켰다. 상대적으로 적은 RAM 용량으로도 잘 굴러가도록 개발된 iOS에서 절대적인 RAM 용량이 증가되었기에 멀티테스킹 작업이 상당히 쾌적하다. 내장 메모리는 16 GB, 64 GB 그리고 128 GB로 나뉘어지며 이는 전작인 아이폰 6와 동일한 구성이다. 낸드 플래시 컨트롤러로 SSD 등에 사용되는 NVMe를 애플이 스마트 디바이스에 맞게 직접 개발해 탑재했다. 

디스플레이는 4.7인치 1334 x 750 해상도를 지원하며 패널 형식은 IPS TFT-LCD 방식의 Retina HD Display이다. 또한, 애플 워치와 2015년도 12인치 맥북에 적용된 새로운 터치 스크린 기술인 포스 터치가 탑재되었다. 다만, 애플 워치의 디스플레이와 2015년도 12인치 맥북의 트랙패드에 쓰이던 포스 터치를 한 단계 개선했기 때문에 3D 터치라는 별도의 명칭을 사용한다.

애플 워치와 맥북에 들어간 바 있는 탭틱 엔진을 진동 모터 대용으로 탑재했다. 보통 진동 모터는 최대의 힘을 내기 위한 가속이 붙을 때까지 10번 정도의 사이클이 필요한데 탭틱 엔진은 구조상 단 한 번에 최대 가속이 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애플 워치처럼 미세하고 정확한 촉각 피드백을 주는 데 사용할 수 있고 일반 진동 모터처럼 강한 진동을 줄 때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일반 진동 모터와 비교해서 월등히 조용하다.

배터리 용량은 내장형 1,715 mAh이다. 이는 전작인 아이폰 6의 1,810 mAh보다 약 95 mAh 적어진 용량으로, 탭틱 엔진과 3D 터치를 위한 각종 부품들의 영향으로 내부 공간이 협소해져서 배터리 용량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다만, 14nm FinFET LPE 공정 및 16nm FinFET 공정이라는 기존보다 더욱 미세화된 공정에서 생산된 모바일 AP와 LPDDR4 SDRAM 탑재 등 전력 소모율이 줄어든 부품들을 탑재해서 전작인 아이폰 6보다 우위에 있다.

전면 카메라인 FaceTime HD 카메라도 아이폰 5부터 3년 간 사용되던 120만 화소에서 대폭 상승한 500만 화소를 탑재했다. 또한, 전면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디스플레이가 빛나면서 플래시의 역할을 대신한다. 

에어리어 방식의 지문인식 모듈, 총칭 'Touch ID'가 기존 아이폰 시리즈와 동일하게 전면 홈 버튼에 내장되어 있으며 2세대로 개선되었다. 1세대보다 다양한 환경에서 인식이 가능하며 인식률도 약 2배 상승했다고 한다. 다만,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잠금화면의 알림마저도 확인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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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iPhone 6s Plus : The only thing that's changed is everything.

사양

프로세서 - Apple A9 APL0898 & APL1022 SoC. Apple Twister MP2 1.85 GHz CPU, IT PowerVR GT7600 600 MHz GPU Apple M9 모션 인식 프로세서

메모리 - 2 GB LPDDR4 SDRAM, 16 / 32 / 64 / 128 GB NVMe 규격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5.5인치 FHD(1920 x 108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HD Display (IPS TFT-LCD 방식 & 401 ppi) 멀티터치 및 Taptic Engine 기반 3D Touch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Ion-X 글래스

네트워크 - LTE-2CA Cat.6, TD-LTE,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TD-SCDMA, GSM & EDGE, CDMA & EV-DO Rev. A

근접통신 - Wi-Fi 802.11a/b/g/n/ac, 블루투스 4.2, NFC

카메라 - 전면 500만 화소, 후면 1,200만 화소 위상차 검출 AF 및 True Tone LED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2750 mAh

운영체제 - iOS 9 → 9.3 → 10.3 → 11.2

규격 - 77.9 x 158.2 x 7.3 mm, 192 g

색상 -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 로즈 골드

단자정보 - USB 2.0 Apple Lightning 8-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VoLTE 및 Wideband Audio 지원, 에어리어 방식 지문인식 Touch ID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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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iPhone SE : A big step for small.

A big step for small. 작은 크기. 거대한 도약.

사양

프로세서 - Apple A9 APL0898 & APL1022 SoC. Apple Twister MP2 1.85 GHz CPU, IT PowerVR GT7600 600 MHz GPU

Apple M9 모션 인식 프로세서

메모리 - 2 GB LPDDR4 SDRAM, 16 / 32 / 64 / 128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4.0인치 1136 x 64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Display (IPS TFT-LCD 방식 & 326 ppi)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 - LTE Cat.4, TD-LTE,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TD-SCDMA, GSM & EDGE, CDMA & EV-DO Rev. A

근접통신 - Wi-Fi 802.11a/b/g/n/ac, 블루투스 4.2, NFC

카메라 - 전면 120만 화소, 후면 1,200만 화소 위상차 검출 AF 및 True Tone LED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1624 mAh

운영체제 - iOS 9.3 → 10.3 → 11.2

규격 - 58.6 x 123.8 x 7.6 mm, 113 g

색상 -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 로즈 골드

단자정보 - USB 2.0 Apple Lightning 8-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 VoLTE 및 Wideband Audio 지원, 에어리어 방식 지문인식 Touch ID 지원


애플이 2016년 3월 21일(한국 시각 2016년 3월 22일)에 공개한 아이폰 시리즈 소속의 스마트폰으로, 아이폰 5c 이후로 공개된 두 번째 비주력 아이폰이다. 아이폰 5c가 아이폰 5를 대체했던 것처럼 아이폰 5s를 대체하는 포지션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4.0인치 아이폰 중 가장 최고사양이었던 아이폰 5s와 패밀리룩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컷팅 부분이 아이폰 5s와는 달리 무광으로 처리되었으며 후면 애플 로고가 아이폰 5s 이후의 아이폰 시리즈처럼 스테인리스 강철 소재로 만들어지는 차이점이 있다. 특히, 기존에는 알루미늄 소재의 기기 본체에 애플 로고 모양으로 광을 낸 것이지만, NFC 안테나 기능 내장을 위해 애플 로고 모양으로 구멍을 만들어서 집어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알루미늄 소재 역시 아이폰 6s & 아이폰 6s Plus와 동일한 소재로 변경되어 조금 더 단단하고 속이 빈 느낌을 준다고 한다. 기본 색상은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 로즈 골드로 총 4종 이다.

2015년도 주력 아이폰인 아이폰 6s & 아이폰 6s Plus에 탑재된 모바일 AP와 동일한 것이다. 게다가 크기가 작아졌기에 발열 관리 및 배터리 타임에서 손해를 보게되지만 모바일 AP는 다운클럭되지 않고 탑재되어 동일한 성능을 내준다고 한다. 그리고 GPU 온스크린 벤치마크 결과는 같은 모바일 AP를 탑재한 아이폰 6s보다 해상도가 낮기 때문에 더더욱 높을 수밖에 없었기에 출시 당시 기준으로, 스마트폰 중에서는 가장 높은 벤치마크 수치가 나왔다. 세계 최초로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아닌 스마트폰 중에서 14nm/16nm 공정에서 생산된 모바일 AP를 탑재했다.

RAM은 LPDDR4 SDRAM 방식이며 2 GB다. 내장 메모리는 16 GB와 64 GB로 나뉘어진다. 이후, 애플의 내장 메모리 정책 변경으로 32 GB와 128 GB가 기존 용량을 대체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4.0인치 아이폰 중 128 GB 모델이 존재하는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아이폰 5s와 동일한 1세대 Touch ID가 탑재되었다. 다만, 실질적인 속도는 2세대 Touch ID와 비슷하다는 평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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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iPhone 7 : This is 7.

This is 7. 이것이 바로 7.

사양

프로세서 - Apple A10 Fusion APL1W24 SoC. ARM big.LITTLE↓, IT PowerVR GT7600 900 MHz GPU Apple Hurricane MP2 2.3 GHz + Apple Zephyr MP2 1.1 GHz CPU // Apple M10 모션 인식 프로세서

메모리 - 2 GB LPDDR4 SDRAM, 32 / 128 / 256 GB NVMe 규격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4.7인치 1334 x 75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HD Display (IPS TFT-LCD 방식 & 326 ppi) 멀티터치 및 Taptic Engine 기반 3D Touch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Ion-X 글래스

네트워크 - LTE Cat.9, TD-LTE,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근접통신 - Wi-Fi 802.11a/b/g/n/ac, 블루투스 4.2, NFC

카메라 - 전면 700만 화소, 후면 OIS 기술 탑재 1,200만 화소 위상차 검출 AF 및 쿼드-LED True Tone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1960 mAh

운영체제 - iOS 10 → 10.3 → 11.2

규격 - 67.1 x 138.3 x 7.1 mm, 138 g

색상 - 실버, 골드, 로즈 골드, 블랙, 제트 블랙, PRODUCT (RED) & 레드

단자정보 - USB 2.0 Apple Lightning 8-pin x 1

기타 - VoLTE 및 Wideband Audio 지원, IP67 등급 방수 방진 지원, 에어리어 방식 지문인식 Touch ID 지원


전통적으로 애플은 숫자 넘버링이 올라가는 라인업과 숫자 넘버링은 유지한 채 s를 접미시킨 일종의 개선판 라인업을 격년 주기로 출시했었지만, 숫자 넘버링이 올라가는 라인업임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6s와 비교해 외관상 큰 변화가 없다. 소재를 포함해 대부분이 아이폰 6s를 그대로 계승했으며, 디자인에서의 차이점은 절연띠 디자인 및 다소 심해진 일명 카툭튀 현상이 전부이다. 기본 색상은 블랙, 제트 블랙, 실버, 골드, 로즈 골드로 총 5종이다. 기존에 존재했던 스페이스 그레이 색상이 삭제되고 블랙과 제트 블랙 색상이 추가되었다. 아이폰 5 이후로 거의 4년 만에 풀 블랙이 돌아온 셈이다. 블랙 색상은 일반 무광 검정 계열, 제트 블랙 색상은 유광 검정 계열로 차이가 있으며 제트 블랙 색상은 고도의 광택 기술이 적용되어 유리 소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다만 제트 블랙 색상의 경우 흠집에 취약한 편이라 기기를 보호하는 케이스 악세서리를 사용이 권장된다고 한다.

iOS 디바이스로는 최초로 방수 방진을 지원한다. 등급은 IP67로, 방진 등급은 최고레벨이지만, 방수 등급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IPX8 등급보다 1단계 낮다. 또한, iOS 디바이스로는 최초로 3.5 mm 이어폰 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음성 출력은 Apple Lightning 8-pin이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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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iPhone 7 Plus : This is 7.

사양

프로세서 - Apple A10 Fusion APL1W24 SoC. ARM big.LITTLE↓, IT PowerVR GT7600 900 MHz GPU Apple Hurricane MP2 2.3 GHz + Apple Zephyr MP2 1.1 GHz CPU // Apple M10 모션 인식 프로세서

메모리 - 3 GB LPDDR4 SDRAM, 32 / 128 / 256 GB NVMe 규격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5.5인치 FHD(1920 x 108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HD Display (IPS TFT-LCD 방식 & 401 ppi) 멀티터치 및 Taptic Engine 기반 3D Touch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Ion-X 글래스

네트워크 - LTE Cat.9, TD-LTE,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근접통신 - Wi-Fi 802.11a/b/g/n/ac, 블루투스 4.2, NFC

카메라 - 전면 700만 화소, 후면 OIS 기술 탑재 1,200만 화소 x 2 듀얼 렌즈 위상차 검출 AF 및 쿼드-LED True Tone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2900 mAh

운영체제 - iOS 10 → 10.3 → 11.2

규격 - 77.9 x 158.2 x 7.3 mm, 188 g

색상 - 실버, 골드, 로즈 골드, 블랙, 제트 블랙, PRODUCT (RED) & 레드

단자정보 - USB 2.0 Apple Lightning 8-pin x 1

기타 - VoLTE 및 Wideband Audio 지원, IP67 등급 방수 방진 지원, 에어리어 방식 지문인식 Touch ID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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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iPhone 8 : A new generation of iPhone.

A new generation of iPhone. iPhone의 새로운 세대.

사양

프로세서 - Apple A11 Bionic APL1W72 SoC. ARM big.LITTLE↓, Apple 1st Design GPU Architecture MP3 780 MHz GPU Apple Monsoon MP2 2.4 GHz CPU + Apple Mistral MP4 1.3 GHz CPU // Apple M11 모션 인식 프로세서

메모리 - 2 GB LPDDR4X SDRAM, 64 / 256 GB NVMe 규격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4.7인치 1334 x 75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HD Display (IPS TFT-LCD 방식 & 326 ppi) 멀티터치 및 Taptic Engine 기반 3D Touch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고릴라 글래스 5, Dolby Vision 및 HDR 10 지원

네트워크 - LTE Cat.9, TD-LTE,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근접통신 - Wi-Fi 802.11a/b/g/n/ac, 블루투스 5.0, NFC/FeliCa

카메라 - 전면 700만 화소 AF, 후면 1,200만 화소 위상차 검출 AF 및 쿼드-LED True Tone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1821 mAh

운영체제 - iOS 11 → 11.2

규격 - 67.3 x 138.4 x 7.3 mm, 148 g

색상 - 골드, 실버, 스페이스 그레이

단자정보 - USB 3.1 Gen1 Apple Lightning 8-pin x 1

기타 - VoLTE 및 Wideband Audio 지원, 무선충전 Qi 규격 지원, IP67 등급 방수 방진 지원, 에어리어 방식 지문인식 Touch ID 지원


전통적으로 애플은 숫자 넘버링이 올라가는 라인업과 숫자 넘버링은 유지한 채 s를 접미시킨 일종의 개선판 라인업을 격년 주기로 출시했었지만, 이번에는 바로 숫자 넘버링이 올라가는 방식으로 정식 발매명이 명명되었다. 따라서 전반적인 디자인은 아이폰 7과 패밀리룩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아이폰 4s 이후로는 처음으로 후면 패널로 유리 소재를 사용하는 등 차별화를 주었다. 기본 색상은 골드, 실버, 스페이스 그레이로 총 3종 이다.

사양은 우선 AP로 Apple A11 Bionic APL1W72를 사용한다. Apple Monsoon 듀얼코어 CPU와 Apple Mistral 쿼드코어 CPU에 big.LITTLE 솔루션을 적용한 HMP 모드 지원 헥사코어 CPU와 애플의 1세대 자체 GPU 아키텍처를 사용한 트리플코어 GPU를 사용한다. CPU의 경우, 전작인 Apple A10 Fusion APL1W24 대비 성능을 중시하는 빅 클러스터의 성능은 약 25% 향상되었다고 하며 효율을 중시하는 리틀 클러스터의 성능은 약 70%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CPU 성능을 전문적으로 측정하는 벤치마크 프로그램인 Geekbench 4에서 멀티코어 점수가 모바일 AP 사상 최초로 약 1만 점을 돌파했다.

소프트웨어에서 True Tone Display와 HDR 10 형식의 HDR 영상 디터링 처리를 전작인 아이폰 7과는 달리 추가적으로 지원한다. 

USB Power Delivery 2.0 규격의 고속충전 솔루션과 자기유도 방식의 표준 규격인 Qi 규격의 무선충전 솔루션을 지원한다.

카메라 센서가 더욱 커져서 픽셀 당 83%의 빛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방수 방진을 지원한다. 등급은 IP67로, 방진 등급은 최고레벨이지만, 방수 등급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IPX8 등급보다 1단계 낮다. 또한, 3.5 mm 이어폰 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음성 출력은 Apple Lightning 8-pin이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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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iPhone 8 Plus : A new generation of iPhone.

사양

프로세서 - Apple A11 Bionic APL1W72 SoC. ARM big.LITTLE↓, Apple 1st Design GPU Architecture MP3 780 MHz GPU Apple Monsoon MP2 2.4 GHz CPU + Apple Mistral MP4 1.3 GHz CPU // Apple M11 모션 인식 프로세서

메모리 - 3 GB LPDDR4X SDRAM, 64 / 256 GB NVMe 규격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5.5인치 FHD(1920 x 1080) RGB 서브픽셀 방식의 Retina HD Display (IPS TFT-LCD 방식 & 401 ppi) 멀티터치 및 Taptic Engine 기반 3D Touch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고릴라 글래스 5, Dolby Vision 및 HDR 10 지원

네트워크 - LTE Cat.9, TD-LTE,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근접통신 - Wi-Fi 802.11a/b/g/n/ac, 블루투스 5.0, NFC/FeliCa

카메라 - 전면 700만 화소 AF, 후면 OIS 기술 탑재 1,200만 화소 x 2 듀얼 렌즈 위상차 검출 AF 및 쿼드-LED True Tone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2691 mAh

운영체제 - iOS 11 → 11.2

규격 - 78.1 x 158.4 x 7.5 mm, 202 g

색상 - 골드, 실버, 스페이스 그레이

단자정보 - USB 3.1 Gen1 Apple Lightning 8-pin x 1

기타 - VoLTE 및 Wideband Audio 지원, 무선충전 Qi 규격 지원, IP67 등급 방수 방진 지원, 에어리어 방식 지문인식 Touch ID 지원


후면 카메라는 OIS 기술이 적용된 카메라 모듈에 1,200만 화소 카메라를 35 mm 환산 28 mm 초점거리를 가지고 있도록 설정해 기본 카메라로 탑재하고 별도의 1,200만 화소 카메라를 35 mm 환산 56 mm 초점거리를 가지고 있도록 설정해 망원 카메라로 탑재하여 이 둘로 듀얼 렌즈를 구성했다. 그리고 위상차 검출 AF를 지원한다. 또한, 조리개 밝기는 기본 카메라가 F/1.8이고 망원 카메라가 F/2.8이다. 또한, 기본 카메라와 광각 카메라를 조합해 광학 및 디지털 줌 최대 10배까지 지원한다. 또한, 듀얼 렌즈의 시차와 소프트웨어의 피사체 감별 기술을 이용한 배경 흐림 효과도 지원한다. 여기에 쿼드-LED True Tone 플래시 역시 전작인 아이폰 7 Plus와 동일하게 탑재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작인 아이폰 7 Plus와 동일한 제원을 가지고 있으나, 기본 카메라 기준으로 카메라 센서가 더욱 커져서 픽셀 당 83%의 빛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전면 카메라인 FaceTime HD 카메라는 700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했다. 여기에 AF를 지원하며 Deep Trench Isolation 기술도 전작인 아이폰 7 Plus와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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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iPhone X : Say hello to the future.

Say hello to the future. 미래와의 조우.

애플이 2017년 9월 12일(한국 시각 2017년 9월 13일)에 공개한 iOS 스마트폰. 아이폰 시리즈 10주년 기념 제품이다.

사양

프로세서 - Apple A11 Bionic APL1W72 SoC. ARM big.LITTLE↓, Apple 1st Design GPU Architecture MP3 780 MHz GPU Apple Monsoon MP2 2.4 GHz CPU + Apple Mistral MP4 1.3 GHz CPU // Apple M11 모션 인식 프로세서

메모리 - 3 GB LPDDR4X SDRAM, 64 / 256 GB NVMe 규격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 - 5.8인치 2436 x 1125 다이아몬드 형태 RG-BG 펜타일 서브픽셀 방식의 삼성D Super Retina Display (AMOLED 방식 & 458 ppi) 멀티터치 및 Taptic Engine 기반 3D Touch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고릴라 글래스 5, Dolby Vision 및 HDR 10 지원

네트워크 - LTE Cat.9, TD-LTE, HSPA+ 42Mbps, HSDPA & HSUPA & UMTS, GSM & EDGE

근접통신 - Wi-Fi 802.11a/b/g/n/ac, 블루투스 5.0, NFC/FeliCa

카메라 - 전면 700만 화소 AF, 후면 듀얼 OIS 기술 탑재 1,200만 화소 x 2 듀얼 렌즈 위상차 검출 AF 및 쿼드-LED True Tone 플래시

배터리 - 내장형 Li-Ion 2716 mAh

운영체제 - iOS 11.1 → 11.2

규격 - 70.9 x 143.6 x 7.7 mm, 174 g

색상 -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단자정보 - USB 3.1 Gen1 Apple Lightning 8-pin x 1

기타 - VoLTE 및 Wideband Audio 지원, 무선충전 Qi 규격 지원, IP67 등급 방수 방진 지원 TrueDepth 카메라 인식 방식 얼굴인식 Face ID 지원


애플의 스마트폰 브랜드인 아이폰 시리즈가 2017년을 기점으로 10주년을 맞이하여 애플이 2017년형 아이폰인 아이폰 8 & 아이폰 8 Plus와 같이 공개한 아이폰 시리즈 10주년 기념 스마트폰이다. Mac OS X라는 선례와 같이 'X'를 알파벳 X가 아닌 로마숫자 10을 지칭하도록 만들어서 iPhone X로 표기하고 '아이폰 텐'으로 읽는다.

아이폰 시리즈 최초로 베젤리스 디자인을 적용했다. 또한, 10년 동안 아이폰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로 군림하던 기본 디자인 요소인 물리 홈 버튼 구조가 아예 사라지면서 모든 조작을 스와이핑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폰 8 & 아이폰 8 Plus와 마찬가지로 아이폰 4s 이후로는 처음으로 후면 패널로 유리 소재를 사용했다. 기본 색상은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총 2종이다. 

RAM은 LPDDR4X SDRAM 방식이며 3 GB다. 내장 메모리는 NVMe 규격의 낸드 플래시를 사용하며 64 GB와 256 GB로 나뉘어진다. 최저 용량이 64 GB로 증가했으며 기존 아이폰 시리즈가 세 종류의 용량 옵션을 가졌던 관례를 깨고 두 종류의 용량 옵션으로 공개되면서 기존에 예측되던 내장 메모리 용량 옵션인 512 GB는 포함되지 않았다. 

디스플레이는 5.8인치 19.5:9 비율의 2436 x 1125 해상도를 지원하며 패널 형식은 AMOLED 방식의 Super Retina Display이다. IPS TFT-LCD 기반의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던 기존 아이폰 시리즈와는 다르게 아이폰 시리즈 최초로 AMOLED 기반의 디스플레이를 탑재했으며 베젤리스 디자인으로 4.7인치인 아이폰 8과 비슷한 가로 길이를 가지고 5.8인치라는 디스플레이 사이즈를 실현했다. 여기에다 디스플레이가 전면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상단에 탑재되어야 할 전면 카메라와 각종 센서들의 위치 배치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다만, 이러한 디자인이 호불호가 나뉘고있다. 하지만 AMOLED 디스플레이 특유의 우월한 다이나믹 레인지를 이용해 추가적으로 Dolby Vision과 HDR 10 형식의 HDR 영상을 지원한다. 또한 전년도 아이폰 시리즈인 아이폰 7 & 아이폰 7 Plus의 2배인 120 Hz의 터치 샘플링 레이트를 제공한다. 패널 공급사는 삼성 디스플레이이며 탑재되는 기기의 하드웨어에 맞도록 설계한 것을 바탕으로 생산되었다. 그래서 과거 TFT-LCD에서 애플이 독자적으로 서브픽셀 단위로 색상을 조절하던 기술을 그대로 도입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색감에서 아이폰 7 & 아이폰 7 Plus와 동일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한다. 픽셀 배열은 삼성 디스플레이가 기존에 사용하던 다이아몬드 형태 RG-BG 펜타일 서브픽셀 방식를 사용한다. 또한, 번인 현상의 원인인 청색 인광소자 수명을 늘리기 위해 유기재료도 삼성 디스플레이에서 기존에 양산 중에 있던 M8이 아닌 차세대 유기재료인 M9 썬플라워를 미리 당겨서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갤럭시 노트8보다 디스플레이 품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구글과 마찬가지로 보증 기간 내에 번인 현상이 발생할 경우 무상으로 디스플레이 패널을 교체해준다고 밝혔다.

TrueDepth 카메라를 통해서 인식하는 방식의 얼굴인식 솔루션, 총칭 'Face ID'가 아이폰 시리즈로는 최초로 전면 상단에 탑재되어 있다. 하지만 에어리어 방식의 지문인식 모듈, 총칭 'Touch ID'는 탑재되지 않았다. 대신 두 기술은 API를 공유하기 때문에 Touch ID를 지원하도록 만든 소프트웨어 및 애플리케이션의 기능들을 Face ID로 대체할 수 있다. 

Face ID

애플의 새로운 보안 솔루션으로, TrueDepth 카메라의 적외선을 통해 사용자의 얼굴 형태를 인식한다. 이를 위해 모바일 AP인 Apple A11 Bionic APL1W72에 뉴럴 엔진을 내장시켜 기기가 사용자의 외모 변화에 적응하도록 자가학습을 하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다만, 사용자가 TrueDepth 카메라가 위치한 기기 전면을 바라볼 때에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이 잠들어있는 사용자의 얼굴을 이용하는 등 사용자가 눈을 감는 등의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에어리어 방식의 지문인식 솔루션인 'Touch ID'가 50,000 분의 1 확률로 뚫리는 것과는 달리 이쪽은 1,000,000 분의 1 확률로 뚫릴 정도로 보안 수준이 훨씬 향상되었다고 한다. 다만, 지문을 최대 5개까지 등록할 수 있었던 Touch ID와는 달리 등록 가능한 얼굴의 갯수는 하나라고 한다. 또한, Touch ID로 대체할 수 있었던 각종 보안 관련 기능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인물 사진 모드

인공지능을 이용해 피사체와 배경을 구분한 후 배경을 블러 처리해서 날려주는 기능이다. 기존에는 듀얼 렌즈 구성의 후면 카메라 중 망원 카메라를 이용해서만 작동하는 기능이었지만, Face ID 지원 등을 이유로 탑재된 TrueDepth 카메라 덕분에 전면 카메라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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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blog.electricitybid.com


전기가 도입된 이래 현재까지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1초에 60번씩 전기의 (+)와 (-) 극성이 바뀌는 교류 전기를 쓰고 있다. 130여 년 전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전기 표준에 관한 논쟁에서 에디슨이 패배한 뒤 니콜라의 교류 송전이 한 세기 넘게 세계적인 추세로 굳어져 왔다.


LS산전의 HVDC변환용 변압기 설치작업 모습


직류(DC)와 교류(AC) ‘백년 전쟁’

188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테슬라와 에디슨 사이에 교류(AC)와 직류(DC) 중 어떤 것을 표준 전기 시스템으로 채용할 지에 대한 치열한 주도권 싸움, 이른바 전류전쟁(War of Currents)이 벌어졌다. 당시로서는 에디슨이 주장한 방식은 120V의 직류로 전기를 생산해 전압을 높이기가 어려운 반면 테슬라의 교류 방식은 상대적으로 전압을 높이기가 쉬웠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장을 밝힐 25만개의 전구를 감당할 기술로 최종적으로 교류전기가 첫 승리를 거둔 이후, 1896년 나이아가라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42km 떨어진 도시 버팔로로 수송하는 경쟁에서도 다시 교류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교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여 년 후, 교류에 밀려 한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직류가 다시 부상하게 된다. 신재생에너지원과 분산전원, 에너지저장장치 등의 DC 전원(電源)이 급속 증가한 데다 정보화 사회가 빠른 속도로 확대되면서 직류전원을 소비하는 정보통신 부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교류는 변압기라는 설비를 이용해 손쉽게 전압을 바꿔 먼 거리로 보낼 수 있지만 전력 전송 손실이 크고 지하 매설 (지중화)로 인해 거리가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항상 일정한 전압과 극성을 가지는 직류 송전은 전력손실이 적고, 지하 또는 해저 매설에 따른 거리 제한이 없다. 또 사고가 났을 경우 손쉽게 전력망을 분리해 운영할 수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직류는 전압을 바꾸기 위한 특수한 반도체로 구성되는 전력 변환 설비가 필요해 송전설비 비용이 고가라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직류송전의 핵심인 반도체 기술은 물론 정보통신 및 전력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어 에디슨이 주장했던 직류 송전이 현실화되고 있다.


왜 HVDC 기술인가?

HVDC(초고압직류송전 ; High Voltage Direct Current)이란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고압의 교류전력을 전력 변환기를 이용해 고압의 직류전력으로 변환시켜 송전한 후 원하는 수전(受電) 지역에서 다시 전력 변환기를 이용해 교류전력으로 재 변환시켜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기존 고전압 교류전력(HVAC) 전송방식에서 고전압 직류전력(HVDC) 전송방식으로 변경함으로써, 전력운용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확보해 국가적 대정전 사태 사전 방지와 전력시장의 수급 안정화를 위한 핵심기술을 말한다.


제주HVDC실증단지 한림변전소 전경


HVDC의 장점

직류전압은 교류전압의 최대값에 비해 크기가 약 70%에 불과해 기기의 절연이 용이하고, 전압이 낮기 때문에 각 기기에 설치돼 있는 절연체의 수량 및 철탑의 높이를 줄일 수 있다.

동일한 전력을 보내는 경우 교류방식에 비해 직류방식이 송전 손실이 적기 때문에 송전 효율이 좋아진다. 

전선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고, 송전선로의 면적을 줄일 수 있어 효과적으로 송전할 수 있다. 특히 직류가 교류에 비해 2배 이상의 전류를 흘릴 수 있게 된다.

전압이나 주파수가 다른 두 교류 계통 사이를 연결하여 계통의 안정도를 향상 시킬 수 있고 교류계통 고장 시 인접 연결 계통으로 사고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2003년 미국 동부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정전 사태는 HVDC를 사용하게 되면 한쪽 편의 사고가 다른 편으로 전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송전거리에 대한 제약이 없고, 특히 450km가 넘는 육지 전력전송이나 40km가 넘는 해저를 통한 전력전송에 있어서 교류송전에 비해 직류송전 방식이 건설비가 저렴하다. 중국, 인도 등지는 발전소와 전기 사용자 사이의 거리가 1,000km 이상이 되기 때문에 HVDC 보급이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류송전 방식에 비해 송전선로의 전자파 발생이 줄어 통신선 및 각종 기기에 발생하는 오작동 및 잡음을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최근 들어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 송전선 건설 문제의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제주HVC실증단지 설비


직류 기술이 가져다 줄 새로운 미래

교류는 100여 년 전 에디슨이 발명한 직류보다 변압기로 손쉽게 변환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하지만 전력을 안정화시키기가 더 복잡하고, 전력 전송 손실이 큰 데다 지하 매설에 따른 거리 제한이라는 뚜렷한 단점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이용되는 컴퓨터나 일반 가전부터 산업용 인버터와 향후 대량 보급될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직류를 이용할 때, 더 효율적이고 안정화시키기 쉽다.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원에도 직류가 더 적합하고 효율적이다.

따라서 현재의 전력시스템을 교류 중심에서 직류 중심으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송전, 배전, 그리고 각 건물과 가정 내부 시스템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직류 중심의 전력시스템이 일반화되면 미래 사회에 많은 변화와 새로운 발전 모델이 생겨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HVDC 사업 및 연구개발 현황

현재 세계 HVDC 시장은 지멘스와 ABB, 알스톰 등 3대 글로벌 기업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이미 40~50년 전부터 HVDC 기술을 상용해 세계 각국에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LS산전_HVDC 싸이리스터밸브 


우리나라는 알스톰 기술을 도입해 지난 1997년 진도-제주간 300MW급 제 1 HVDC 구축에 이어 2014년 양방향 전력송전이 가능한 400MW급 제 2 HVDC를 구축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9년 한국전력과 LS산전(변환기술), LS전선(해저케이블), 대한전선(케이블)이 공동으로 국산화 기술개발을 위한 합동연구에 착수하며 HVDC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어 2013년에는 한국전력과 알스톰이 HVDC 기술협력을 위한 조인트벤처 KAPES를 설립하고, 핵심기술 이전 사업자로 LS산전을 선정하며 사업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KAPES는 이듬해인 2014년 총 사업비 3,180억 원 규모의 충남 북당진과 평택 고덕 간 HVDC 구축을 위한 계약을 체결, 2018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개발 측면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전기연구원과 LS산전은 2013년부터 직류 전력망을 구성하는 데 있어 가증 큰 기술적 장애로 꼽히는 직류차단기 개발과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해 공동연구센터를 운영, 최근 전기연구원이 개발한 직류차단 관련 기술을 LS산전에 이전한 바 있다. 전기연구원은 현재 배전급 전압의 직류차단기 개발에 성공했으며 다음 단계로 송전급 전압의 직류차단기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LS산전은 이에 앞선 2011년 총 1,100억 원을 투자해 부품 입고부터 성능검사, 조립, 시험, 시운전까지 가능한 HVDC 전용공장을 부산 진해 경제자유구역 화전산업단지에 부지 1만 1,157여㎡(3,375평), 건축 연면적 5,910㎡(1,788평) 규모로 건설, 핵심설비 국산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어 같은 해 ±80kV HVDC 변환용 변압기를 성공적으로 개발 완료하고 최종 시험을 거쳐 최근 한국전력공사와 협동연구로 진행하고 있는 HVDC 실증단지인 제주 금악변환소에 성공적으로 설치 완료했다.

이후 ±250kV / 200MW 시스템까지 적용이 가능한 싸이리스터 밸브, C&P(Control & Protection) 시스템 플랫폼을 차례로 국산화 시키는 등 HVDC 시스템의 핵심 부품 개발을 모두 완료하고 지난해 제주 HVDC 실증단지에 Pilot 시스템에 대한 실증 운전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LS산전은 이와 같은 HVDC 핵심기기 국산화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10월 ‘2012년도 대한전기학회 전력기술부문회 정기총회 및 추계학술대회’에서 기술상을, 12월에는 경북대에서 개최된 ‘2012년도 전력전자학회 정기총회’에서 HVDC 싸이리스터 밸브 기술로 ‘올해의 전력전자제품상’, ‘기술상’, ‘감사패’ 등 총 3개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시장 전망과 시사점

현재 전력망은 교류(AC)가 주축을 이루고 일부에서 직류(DC) 망이 이용되고 있다. 향후 차세대 전력망은 교류와 직류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예측된다. 중첩된 직류 전력망은 나라와 대륙을 연계하고 전력 부하 균형을 조정하며, 기존 교류 송전망을 보강하게 된다. 직류 전력망은 그리드 신뢰성 및 기존 교류 네트워트의 용량 또한 향상시킨다.


현재 약 30조원 규모인 세계 HVDC 시장은 ABB(50%), 지멘스(30%), 알스톰(15%) 등 3대 글로벌 기업이 지난 50년간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이 시장은 오는 2020년 730억 달러(약 81조 원), 2030년 1,430억 달러(약 159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6월 현재, 1달러 = 1,117원 기준)

▲장거리 송전 증가(중국, 인도, 남미) ▲해상풍력 증가(유럽) ▲국가간 계통 연계 증가(유럽) ▲계통 안정화 수요 증대 및 스마트그리드 활성화(범 세계적) 등으로 인해 지속적인 성장분야로 전망된다.

다양한 전력기기 기술 및 Turn-key 솔루션 사업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나,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만큼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사업이다.


물론, 교류시스템를 당장 직류로 변화시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미 구축된 많은 전력 간접시설을 교체하기 위한 비용과 시간은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특장점을 가진 직류가 대세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며, 많은 세계 유수의 연구자와 기업들이 직류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직류 기술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고 성공적인 기술개발의 성공적인 결실을 위해서는 국제 표준화에 적극적인 참여와 정부의 개발의지 그리고 산학연 연구협력이 보다 요구되고 있다.


현재 정부도 창조경제 산업엔진 프로젝트로 직류송전기술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직류송전은 초고압 케이블, 반도체 및 고도의 통신 기술 외에 많은 부품들이 집약된 기술로서 원거리 송전, 국가간 전력연계 및 대규모 신재생 에너지의 활용에 필수적이다. 교류를 대신해서 전세계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는 직류송전기술은 전력산업의 새로운 시장을 열고 국가 성장 먹거리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출처: 전력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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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직류전기' 토머스 에디슨 vs '교류전기' 니콜라 테슬라

세상을 밝힌 빛의 혁명가


‘전류전쟁(War of Currents)’. 구글 검색창에 ‘에디슨(Edison)’과 ‘테슬라(Tesla)’를 치면 가장 먼저 뜨는 구절이다. 1880년대 미국 뉴욕에서는 니콜라 테슬라를 필두로 한 웨스팅하우스와 토머스 에디슨 사이에 전기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일생일대의 ‘전류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이라는 표현에서 짐작되듯 양측의 싸움은 매우 치열했고 주도면밀했다. 싸움의 내용은 직류와 교류 중 어떤 것을 전기 시스템의 표준으로 삼느냐는 것. 에디슨은 직류(DC·Direct Current)를, 테슬라는 교류(AC·Alternating Current)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싸움에서는 ‘발명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에디슨의 내면에 감춰진 추악함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인류 역사에 빛의 혁명을 가져다준 에디슨이지만 그의 삶은 언론에 의해 미화되고 왜곡됐으며, 테슬라의 천재성은 에디슨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두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라이벌이었던 셈이다.  



악연의 시작 

세계 최초로 백열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1931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1100여 개에 달하는 발명품을 내놨다. 하지만 그는 사실 천재라기보다는 노력파였다. 그가 남긴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명언은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던, 노력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1876년 에디슨은 세계 최초로 미국 뉴저지의 멘로파크(Menlo Park)에 산업연구 실험실을 세웠다. 그곳에서 조수들과 함께 오늘날 거대한 음반 산업의 기초가 된 축음기와 전구를 발명했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에디슨을 ‘멘로파크의 마법사(The Wizard of Menlo Park)’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곳에서 테슬라와의 악연도 시작됐다. 테슬라는 에디슨과 달리 어릴 때부터 물리, 수학, 음악, 언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였다. 발명을 할 때도 먼저 정확한 이론을 바탕으로 계획서를 작성한 뒤 일을 진행했고 시행착오를 거의 겪지 않았다. 1856년 세르비아 스미즈란 지역(오늘날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테슬라는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테슬라는 그곳에서 에디슨의 유럽 자회사에서 근무하며 이름을 날렸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불린 그의 실력은 본사에까지 알려졌고 1884년 6월 테슬라는 미국 에디슨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뽑혔다.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이 ‘전류전쟁’을 벌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의 관계는 틀어졌다.  


오스트리아 그라츠공대에 다니던 시절부터 테슬라는 교류를 이용하면 직류 전동기의 스파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다페스트 전신국에서 근무하면서 대학 시절의 막연한 생각을 실제로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실행에 옮겼다. 즉 변화하는 자기장의 원리를 이용해 교류 유도 모터를 발명한 것이다. 테슬라의 자서전에 따르면 이 아이디어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읊조리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한다. 테슬라는 1882년 파리 에디슨 전화회사로 옮겼을 때 평소 생각만 해오던 모터를 제작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 에디슨연구소로 온 뒤 에디슨에게 교류전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 축음기, 전화송신기, 직류전기를 발명하고 전자공업 발달의 원동력이 된 ‘에디슨 효과(도체나 반도체를 가열하면 전자가 밖으로 나오는 현상)’를 발견해 부를 축적하고 있었던 에디슨에게 교류전기는 자신의 명성과 부를 앗아갈 수도 있는 위협적인 전류시스템이었다. 테슬라는 직류전기가 일반인이 쓰기에 비싸서 전기의 대중화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교류전기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직류전기 시스템에 많은 투자를 한 에디슨은 테슬라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에디슨, 교류 위험성 알리는 캠페인 벌여 

특히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모터와 발전기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설계를 요구했고 이를 실현시킬 경우 테슬라에게 5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몇 개월 뒤 테슬라가 결국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에디슨에게 약속대로 보너스를 요구했지만 에디슨은 “테슬라, 자네는 미국식 유머를 이해 못하나보군”이라며 약속했던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에디슨은 1주일에 18달러를 받고 있던 테슬라에게 매주 10달러를 더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이 제안을 바로 거절했고 그 자리에서 에디슨연구소를 뛰쳐나왔다. 


에디슨에게 몹시 실망한 테슬라는 1886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1887년 교류 시스템에 필요한 발전기, 모터, 변압기를 모두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테슬라는 ‘테슬라코일’이라는 세계 최초의 교류 전기 모터의 특허를 획득한 발명가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 뒤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은 조지 웨스팅하우스의 투자로 한층 발전했고 이를 계기로 직류 시스템을 고집한 에디슨과의 전류전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이때가 1888년이었다.


이 무렵 에디슨은 백열전구, 전선, 전기 모터, 발전기 등 직류를 이용한 전기 시스템에 사용되는 모든 것을 개발해 전기 산업을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 웨스팅하우스는 기차에 사용되는 공기 브레이크를 발명해 백만장자가 된 후 테슬라에게서 교류 변압기의 특허를 사들여 전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웨스팅하우스는 테슬라에게 현금으로 5000달러를 줬고, 회사 주식 50주에 교류전기를 팔 때마다 생기는 로열티를 지불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했다. 발명가이자 타고난 사업가였던 에디슨에게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을 앞세운 웨스팅하우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분야에서 2등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에디슨은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에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고 했다. 직류 방식과 교류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할 때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직류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전송하면 전류를 세게 하기는 쉽지만 전압을 높이기는 어렵다. 에디슨은 120V의 전기를 생산해 각 지역으로 전송했다.

하지만 전기를 전송하는 전선에는 저항이 있어 전기를 멀리 전송할수록 전기량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전기를 소비하는 지역과 매우 가까운 곳에 직류 발전소를 설치해야 했다. 반면 교류 방식은 전류를 세게 만들긴 어려워도 전압을 높이는 건 쉽다. 테슬라의 교류 발전기는 수천 볼트(V)에 이르는 고전압도 만들 수 있었다. 전선에 저항이 있어 전기량이 감소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발전소를 전기 소비 지역 가까이에 지을 필요 없이 중앙 발전소에서 전기를 전송한 뒤 각 지역에 설치된 전신주의 변압기에서 전압을 110V로 전환했다. 이 덕에 발전에 필요한 석탄이나 물만 있으면 어디든 발전소를 세울 수 있었다. 

 

테슬라의 발전 방식이 전기를 싸고 편리하게 공급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교류 전기는 에디슨의 직류 시장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큰 시장인 뉴욕은 처음에 교류를 외면했다. 에디슨이 이미 뉴욕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교류의 장점이 입소문 나면서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은 에디슨의 직류 시장을 잠식해갔다.  


에디슨은 곧바로 교류에 흠집 내기 ‘캠페인’을 벌이며 반격에 나섰다. 가령 에디슨은 ‘에디슨전기회사로부터의 경고(A Warning from the Edison Electric Company)’라는 팸플릿을 제작해 사람들에게 뿌렸는데, 팸플릿에는 고전압 교류전선에 가까이 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면서 고압 교류전선에 감전된 사람들의 명단을 실었다.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은 전선을 땅에 묻는 방식이어서 감전될 위험이 없었다. 반면 당시 뉴욕 하늘은 고압선과 전화선으로 검게 뒤덮여 있었고 매년 수십 명의 사람이 고압선에 감전돼 죽었다. 에디슨은 팸플릿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무서운 교류를 가정에서 사용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교류 대신 직류를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피력했다. 직류와 교류를 놓고 사태가 인간의 생명에 관련된 문제로 확대되자 과학자들이 심판으로 나섰다. 시카고 전기클럽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직류와 교류를 과학적으로 비교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미 에디슨의 로비에 매수당한 상태였다. 이들은 직류가 사용 범위가 넓고 안전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직류를 전기 시스템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시카고 전기클럽의 토론 직후 상황은 테슬라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프랑스 기업이 구리 시장을 장악하면서 구리 가격이 3배나 껑충 뛰었는데, 직류 방식은 전기를 굵은 구리선에 보내야 하는 반면 교류 방식에서는 구리선이 가늘어도 됐기 때문이다. 상황은 점점 교류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전기의자로 교류 폐기 노렸지만 실패 

궁지에 몰린 에디슨에게는 교류를 폐기시킬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경제적인 면이나 과학적인 논리로 교류를 폐기시킬 수 없다면 교류의 위험성을 강조해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에디슨의 눈에 해럴드 브라운(Harold P. Brown)이라는 인물이 띄었다. 브라운은 어린 시절 고압 교류 전화선에 사람이 감전돼 죽는 것을 직접 본 뒤 직류 신봉자가 된 인물이었다. 그는 ‘뉴욕 포스트’에 자신의 경험을 기술한 편지를 보내며 교류는 저주받은 위험한 것으로 법으로 금지해야 하며 직류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 포스트에서 이 편지를 본 에디슨은 즉시 브라운을 고용했다. 에디슨은 자기 회사의 최고 기술자를 브라운의 조수로 붙여주며 교류가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입증하도록 부추겼다. 브라운은 이번엔 ‘뉴욕 타임스’에 공개적으로 광고를 냈다. 말이 광고지 사실은 테슬라를 향한 일종의 결투 신청서였다. 브라운은 “내 몸에 직류를 흘려보내는 동안 당신의 몸에는 교류를 흘려보내 누가 오래 견디는지 알아보자”며 “100V에서 시작해 50V씩 올리고, 둘 중 먼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자신의 전류 방식의 결점을 공개적으로 시인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테슬라 측은 브라운의 결투를 무시했다. 오히려 테슬라는 몇 백만V가 흐르는 전기 불꽃 밑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사진 한 장을 공개해 에디슨의 꼼수를 잠재우려 했다.  


사실 이 사진은 교류 송전의 안전성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전기의 특성을 제대로 모르는 대중에게 교류가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에디슨은 지치지 않고 계속 다른 방법을 찾았다.  


마침 1887년 미국 뉴욕 주 사법당국은 전통적 사형집행 방법인 교수형의 대안을 찾고 있었다. 당시 뉴욕 주가 교수형 집행에서 몇 차례 심각한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교수용 올가미가 너무 느슨해 사형수가 천천히 고통스럽게 질식사하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때로는 올가미가 너무 꽉 조여 사형수가 교수형이 아닌 참수형을 당하는 끔직한 경우도 발생했다. 에디슨은 원래 사형제도에 반대해왔지만 사업 앞에서는 달랐다. 사업가로서 에디슨은 무자비하고 악랄했다. 그는 뉴욕 주 사형집행에 자신이 직접 고안한 전기의자를 사용하도록 로비를 벌였다. 뉴욕 주지사는 다양한 사형집행 방법을 검토한 후 전기를 이용한 사형집행을 위해 연구위원회를 구성했고, 위원회는 전기 방면의 대가인 에디슨에게 자문을 구했다. 


에디슨은 “고압 전류가 가장 빠르고 고통 없이 사형수에게 죽음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교류를 의자에 흘리는 전기의자를 쓰자고 제안했다. 전기의자에 전압이 높은 교류를 흘려 사형수를 죽이면 테슬라의 교류 전류는 ‘사람을 죽이는’ 전류로 인식될 게 뻔했다. 에디슨의 작전은 성공했다. 에디슨은 브라운을 시켜 사형집행용 전기의자를 만든 뒤 동물에 감전시키는 실험을 보여주며 뉴욕 주를 설득했다. 처음엔 길거리에서 한 마리에 25센트를 주고 산 개와 강아지 같은 작은 동물로 시작했다. 그러다 브라운은 점점 동물의 크기를 키워 송아지와 말을 에디슨의 실험실로 끌고 와 교류에 감전시키는 실험을 했다.


신문들은 일제히 “15초 만에 송아지는 쇠고기 덩어리로 변했다”고 보도하면서 “보라! 인간보다 더 큰 포유동물을 죽이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 인간도 이들 동물만큼 빠르게 처형시킬 수 있다”는 브라운의 주장을 실었다.  

결국 뉴욕 주도 전기의자를 사형집행에 쓰기로 결정했다. 물론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교류 발전기를 팔지 않았다. 그러자 에디슨은 자기 회사의 가장 뛰어난 기술자인 아서 켈리(Arthur Kelly)를 시켜 전기의자를 설계하고 발전기도 다른 방식으로 구입하게 했다. 전기의자의 첫 희생양은 내연녀를 도끼로 죽인 죄로 감옥살이를 하던 윌리엄 케믈러(William Kemmler)라는 죄수였다. 1890년 8월 6일 케믈러는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몸으로 교류 안전성 입증한 테슬라 

드디어 집행이 시작됐고 17초 동안 1000V가 전기의자에 흘렀다. 케믈러는 비명을 질러댔고 곧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살아 있었다. 이번에는 72초 동안 전류를 흘렸다. 하지만 연기만 솟아오른 뒤 전기는 끊어졌다. 전기의자를 이용한 사형은 실패였다. 에디슨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에디슨의 전기의자가 실패한 것은 전기를 흘린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디슨은 사형수의 손을 소금물이 담긴 그릇에 담근 뒤 그 그릇에 전류를 흘려보내게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치명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 사형수의 머리에서 종아리로 전류를 보내는 처형 방식이 채택됐다. 


에디슨의 전기사형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테슬라의 교류 방식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하지만 에디슨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1903년에도 조련사 3명을 죽인 코끼리를 교류에 감전시켜 죽이면서 끝까지 직류를 고집했다. 

하지만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전쟁’ 2라운드에서 에디슨은 직류의 단점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장에서 벌어졌다. 당시 시카고 만국박람회는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열린 터라 규모가 매우 컸다. 박람회에 켤 전구만 25만 개나 됐다. 에디슨과 테슬라 측은 서로 이 사업을 따려고 노력했다. 테슬라는 고주파 교류 전력이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실험을 진행해 교류 전기의 안전성을 입증했다. 


결국 25만 개의 전구를 켜는 행사는 테슬라 측에 돌아갔고, 웨스팅하우스는 테슬라가 특허권을 무상으로 양도하면서 자금난이 해소돼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일로 에디슨 진영은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이후 에디슨의 재정적 후원자였던 JP모건은행은 에디슨전기회사를 다른 회사와 합병해 대형 전기회사로 만들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이렇게 탄생했다. GE의 주식 5%를 얻은 에디슨은 이때부터 전기사업에서 멀어졌고 미국의 전력산업은 테슬라와 에디슨의 손을 벗어나 웨스팅하우스와 GE 간의 경쟁으로 커나갔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전쟁’은 ‘나이애가라 대결’로 완전히 끝이 났다. 당시 캐터랙트라는 기업이 나이애가라 폭포의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해 발전소를 설치했는데, 약 42㎞ 떨어진 버팔로 시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송전 사업자를 물색했고 여기서 에디슨의 GE와 테슬라의 웨스팅하우스가 한판 대결을 벌이지만 승리의 여신은 또다시 웨스팅하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전류전쟁은 테슬라와 교류의 승리로 끝났고 교류 시스템은 전력 공급 방식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흥미롭게도 에디슨과 테슬라의 ‘악연’은 노벨상까지 이어진다. 1915년 뉴욕타임스는 노벨상 수상자로 에디슨과 테슬라가 내정됐다는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둘은 앙숙을 넘어 원수로 불릴 만큼 반목이 심한 상태였다. 기사가 나간 이후 에디슨과 테슬라는 공동 수상을 거부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고, 그해 노벨상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게다가 190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리프만은 최초로 컬러사진을 만들어 노벨상을 받았는데 이게 오늘날 컬러사진의 원리와 전혀 다른 바람에 노벨위원회는 이후 발명에 대해서는 수상을 꺼리게 됐다.  

발명가인 에디슨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데는 이런 점도 작용했다는 해석이 있다. 말년에 에디슨은 테슬라와 사이가 틀어진 것을 후회하며 그를 존중하지 않았던 점을 뉘우쳤다고 한다. 


테슬라는 뛰어난 천재였지만 특이한 성격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며 1943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빚에 시달리다 쓸쓸히 숨을 거뒀다. 에디슨은 당대에 화려한 삶을 누렸지만 테슬라는 죽은 뒤에야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  

오늘날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테슬라의 이름을 딴 T(테슬라)를 쓰는 것도 테슬라의 천재성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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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5년의 주인공이 될 제조사별 최신 미러리스 카메라

(소니 A5100,삼성 NX3000,파나소닉 GM5(출시예정), 후지 XT-1, 올림푸스 E-M10)



신상 미러리스 카메라에 놀아나지 말지어다

이제 더 이상 최신 카메라 산다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세상도 아닌데, 카메라 하나 사기 뭐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지식이 없어서 그런가? 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겁니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스펙을 아무리 쳐다봐도 뭐가다른지 모른 제품들 뿐이니 정보가 부족한 자기 탓을 할 수도 있겠죠. 


정보부족을 해결하려 커뮤니티를 찾았더니 보이는 정보라곤 "신상이 최고임", "구형 어떻게 씀? 모름지기 미러리스는 초당 11연사를 동체추적 AF로 갈기는 A6000이 짱임" 같은 말 뿐입니다. 짱이라니까 사야죠. 그렇게 큰맘먹고 산 신상 미러리스 카메라, 사기만 하면 사진이 작가처럼 확 바뀐다고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전에 쓰던 똑딱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자책을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사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실력이 미천할 뿐이라며. 


신상 미러리스카메라를 사는게 정말 최선 일까요? 



벌써 6년, 미러리스 카메라는 건강하게 성장해 왔는가? 


2008년 부터 지금까지 발매된 제조사별 미러리스 카메라 리스트


자료를 만들어놓고 보니 재미있더군요. 바디의 왕국 소니라고들 핀잔 받았는데, 실상 신제품 발매 갯수나 평균 발매주기는 삼성도 비슷합니다. 그리고 미러리스 카메라 주요 제조사 6곳 모두 신제품 발매 주기가 평균 4개월 전후로 짧습니다. (후지가 6.4개월로 표기되어있으나 X100시리즈까지 포함하면 평균 4개월 입니다.) 소비자들의 제품선택이 어려워지고 헷갈리는건 당연합니다. 


미러리스 카메라가 직접 경쟁이 가능한 DSLR등급이 2자리수 모델 까지라 하고, 500D부터 700D,50D부터 70D 그리고1000D/1100D/ 100D까지 캐논은 6년간 총 11기종을 발표해 발매주기는 8개월로 미러리스진영보다 2배나 더 여유롭습니다. 게다가 5년간 센서 한번 제대로 바뀌지 않고 외형과 사양만 조금씩 바꾸면서 장사를 했고, 점유율 마저 미러리스 진영의 최초 예상보다 크게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무려 6개의 회사가 일년에 서너개씩 신제품을 발표 해가면서 들인 노력과 돈을 생각하면, 지난 6년간 계속된 미러리스와 DSLR의 치열한듯 했던 싸움은 사업성에 있어서 만큼은 캐논의 여유롭고 느긋한 승리였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한 것 아닙니다. 시장에 강력히 자리한 기성 선두업체를 완전히 끌어내린다는게 쉬운건 아니니까요. 문제는 지난 6년간 그렇게 치열했던 미러리스 제조사들의 노력 과정이 더 나은 미래를 기약 할 만큼 건강했느냐, 그리고 기존 제품 구매한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 만큼 가치가 있는 신제품들을 발표했냐 입니다. 


위 표에 제조사별로 색칠을 해 놓은건 신제품 중 소비자에게 인상적인 가치를 제공하거나 시장 반응이 좋았던 제품들을 표시 한 것입니다.소니는 6년 내내 모든 제품이 타 제조사에 비해 좋은 반응을 이끌었기 때문에 모두 색칠을 한 것이고, 나머지 제조사들은 파나소닉을 제외하면 인상적인 제품이 고작 2~3제품 뿐입니다. 16가지나 되는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소비자에게 유의미하게 어필 할 수 있는 괜찮은 카메라를 2개 밖에 만들지 못했고, 나머지 제품들은 이슈를 이어가기 위한 신제품일 뿐이었는데, 미러리스 카메라가 소비자들에게 인상깊게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요? 


지난 6년간, 삼성은 팔기위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데 급급했고, 올림푸스는 마포의 선입견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허덕였으며, 파나소닉은 어느방향으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았고, 니콘은 팔 생각이 없었고, 후지는 잘 할 수 있는걸 했지만, 그것이 이기는 방법은 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소니는? 소니는 그냥 하는만큼만 해도 나머지가 못 쫒아와서 땅짚고 헤엄쳤다고 해야겠죠.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있을 동안 세상은 과연 계속 미러리스 카메라에게 열린 기회의 땅으로 남아있었을까요? 



작지만 최상급 화질을 자랑하는 "미러리스 카메라"의 가치, 아직도 유효한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미러리스카메라가 시장에 선을 보이고 6년동안 별로 탐탁치 않은 행보를 보여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렌즈교환 시장 점유율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작고 가볍지만 DSLR과 동일한 화질" 이라는 명제가 틀림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러리스 카메라가 80만원 정도의 금액을 지불하는 카메라 중 휴대가 간편하면서도, 업계 최상급의 화질을 얻을 수 있는 카메라라는 사실이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 할까요? 제 대답은 "이제 더이상 그렇지 않다" 입니다. 


1인치 하이엔드 카메라 시장의 포문을 연 소니 RX100의 등장은 카메라 시장에 많은 부분을 변화 시켰습니다. 당장이라도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컴팩트 카메라 시장을 살려냈음은 물론, 렌즈교환 카메라로 일원화된 시장에 다양성을 부여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저 사양 번들렌즈에 묶인 보급형 미러리스카메라/DSLR과의 관계입니다. 


코구멍이 머리통만해지도록 멀쩡한 사진 200% 확대하고, 뭔지도 모를 숫자로 도배된 프로그램으로 분석하면 분명 미러리스 카메라의 사진이 1인치 카메라의 사진보다 뛰어날 겁니다. 단 보통의 1인치 하이엔드 카메라가 보유한 F2.0이하의 렌즈로 누리는 촬영 편의성과 사진찍는 과정의 퀄리티는 미러리스보다 1인치 카메라가 더 좋습니다. 


한 장이라도 사진을 더 찍을 수 있는 휴대성이 월등하고, 초보가 겪는 악조건일 수록 흔들릴 가능성이 더 적은 카메라라는 사실. 캐논이 가세하기 시작해 가격하락까지 시작 될것임을 고려하면 더 이상 1인치 하이엔드 카메라를 두고 허울만 좋은 번들렌즈 뿐인 미러리스 카메라를 살 이유는 없습니다. 언제든 렌즈를 교환 할 수 있는 "가능성"에 기댈 이유가 없다는 뜻 입니다. 



아웃포커싱 가능한 렌즈 함께 살 것 아니라면, 미러리스 카메라 사지 마라 

아웃포커싱에만 매달리는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기 스펙 홍보에 치중된 현재의 중급이하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면서 30mm이상 F2.0이하의 단렌즈를 함께 구매하지 않는다면 초싣자들에게는 카메라로서 가지는 가치가 1인치 카메라에 비해 더 나은점이 없다는 뜻 입니다. 


최신미러리스의 광속 AF덕분에 아이들이 뛰어다녀도 훨씬 잘 찍을 수 있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차분하게 따져봅시다. 어둑어둑한 실내나 방에서 아이를 찍는데 광속 AF의 F.3.5렌즈와 다로 느린 AF의 F1.8의 렌즈 중 어느쪽이 촬영자가 더 만족스러운 사진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용자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렌즈를 구매해서 확장 할 수 있는 가능성에 구매 이유를 찾는 것도 더이상은 의미 없습니다. 대부분의 초심자가 그 가능성에 혹해서 "일단"번들렌즈만 사고 결국 그렇게 계속 번들렌즈만 씁니다. 


앞으로 몇년 후 판도가 또 변할 수 도 있겠지만, 지금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려고 마음먹은 초심자 분들이 있으시다면, 내가 무엇을 위해서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려고 하고 있는지 따져보십시오. "사진이 잘나온다고 해서" 라면 그 잘나온 사진의 기준이 무엇인지 다시 따져보세요. 


내가 잘 나온다고 생각한 사진이 배경이 예쁘게 날아간 아웃포커싱 사진이라면 미러리스 카메라와함께 꼭 단렌즈를 함께 사세요. 그것이 아니라면, 미러리스 카메라 사지마시고 50만원 전 후의 1인치 하이엔드 카메라를 알아보는게 맞습니다. 현재의 미러리스 카메라는 렌즈를 교환해서 사용 하는 렌즈교환 카메라 일때만 그 존재의 가치가 있습니다. 웃긴건, 렌즈를 함께 살 경우 여러브랜드 중 미러리스 카메라 1위인 소니가 가장 좋지 못한 조건을 가진 브랜드라는 사실 입니다. 어디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단지 그 카메라를 가지고 싶은 소유욕이 아니라면, 더 이상 신상 미러리스 카메라에 놀아나지 마세요. 본인이 누리고 싶은 가치에만 집중하세요. 

출처: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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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 VOGELSTEIN

Published: October 4, 2013 


Campbell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55 마일 길은 정말 멋지다. 산타 크루즈 산맥 동쪽과 인접한 광활하고도 비어 있는 고속도로인 Junipero Serra Freeway를 지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자기 페라리 자동차의 속도 테스트를 벌이는 실리콘 밸리 신생 기업 창업자들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휴대폰이 정말 안 터지는 최악의 장소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앤디 그리뇬(Andy Grignon)에게는 2007년 1월 8일의 순간을 되새길 완벽한 장소였다.


그가 원래 출근하는 길이 이 길은 아니다. 그는 Campbell 서쪽 동네에 있는 쿠퍼티노의 애플 수석 엔지니어였다. 그의 아침 출근길은 7 마일 정도, 15분 거리였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르다. 그의 보스이자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쇼에서 역사를 만들 스티브 잡스를 보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애플 팬들은 그동안 아이포드 안에 휴대폰 넣어주기를 잡스에게 간청하고 있었다. 그래야 두 가지의 기기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잡스가 그날 그 소원을 채워줄 작정이었고, 그리뇬과 그의 동료들은 근처 호텔에서 밤을 보낸 후, 그 다음 날 오전 10시에 다른 이들과 같이 잡스가 첫 번째 아이폰을 선보이는 광경을 지켜 봤다. 


하지만 북쪽으로 운전해 가는 느낌이 별로 흥분되진 않았었다. 오히려 무서웠다. 실리콘밸리에서 무대에서 선보이는 제품 대부분이 잘리기 때문이었다. 열악한 인터넷과 통신망 때문에 좋은 프레젠테이션이 왜 잘릴까? 그래도 잡스는 생방송을 고집했다. 그래야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제품 시연 중에 눈에 띄는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잡스 전설의 일부이기도 했지만, 그리뇬처럼 무대 뒤에서 움직이는 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한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리뇬은 아이폰의 모든 주파수 대역의 라디오파를 맡은 관리자였다. 정말 큰 일이었다. 오늘날 휴대폰은 정말 유용한 존재이지만, 제일 기본 기능은 송수신 라디오였다. 그리뇬은 전화기가 전화기일 수 있게 만드는 장비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만약 통화가 안 된다거나 블루투스 헤드셋이나 와이파이가 안 되는 경우 그리뇬은 답변을 해야 할 위치였다. 아이폰 초기 엔지니어 중 하나로서, 그는 2년 반(종종 1주일 내내였다)을 이 프로젝트에 투신했다.


그리뇬은 아이폰 리허설 팀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잡스가 90분 동안 프레젠테이션하는 광경을 많이 봤지만, 실수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잡스는 5일 내내 기조연설을 연습했고, 심지어 리허설 마지막 날에 아이폰은 여전히 통화가 잘 안 되거나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고, 얼어서 꺼야 할 때가 있었다. 그의 말이다.


"처음에는 리허설 자체가 정말 멋진 일이었어요. 뭔가 선택됐다는 느낌을 주니까요. 정말 참가가 허락된 인원은 소수였습니다만, 순식간에 그 느낌이 불안으로 바뀌었습니다. 잡스가 그토록 분노했을 때를 본 적이 없었어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는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단히 직접적이고 크고 엄중한 목소리로 '네가 내 회사를 [욕 삭제]되게 만들었어'라거나 '우리가 실패하면 너 때문이야'라 말했습니다. 그토록 진지했었죠. 키가 1인치로 줄어드는 느낌이랄까요." 


리허설에 참가했던 다른 이들처럼 그리뇬도 실제 프레젠테이션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잡스는 단순히 비난에서 멈추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이다. 


"시연을 100번 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뭔가 문제가 생겼죠. 좋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은 최고 기밀 사항이었다. 목요일부터 그 다음주 말까지 애플은 모스코니(Moscone)를 모두 다 잡고 있었고, 무대 뒤에 애플은 아예 전자 연구소를 설치하여 아이폰을 테스트했다. 그 옆에는 잡스를 위해 소파가 설치된 휴게실을 세웠다. 이들 방 앞과 빌딩 주변에는 하루 24시간 내내 보안 경호원 열 댓 명이 서 있었다. 자신의 전자 체크 카드를 가지고 와서 잡스가 개인적으로 승인한 목록과 비교해서 통과된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었다. 잡스가 리허설을 하는 곳은 소규모의 간부들만 볼 수 있었다. 잡스가 워낙 누출에 대해 집착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애플이 고용한 모든 계약직들(부스를 담당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의 조명, 음성을 맡는 이들)마저 프레젠테이션 이전에는 모스코니 안에서 잠자게 하려 했지만, 보좌진들이 겨우 잡스를 설득 시켜서 그 일만은 막았다.


그리뇬은 아이폰이 평범한 제품 발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폰의 발표가 그렇게 중대한 순간이 될지 아는 이는 없었다. 7년 동안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이제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중대한 혁신의 반열에 올랐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더부룩했던 휴대폰 업계를 뒤바꿨다. 새롭고 거대한 이윤이 남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플랫폼을 제공한 것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며, 모바일 앱은 2008년 판매를 시작한 이래, 10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고, 이는 수 십억 달러의 개인용 컴퓨터 업계를 뛰어넘는 실적이었다. 아이패드 판매를 데스크톱과 노트북에 포함한다면, 애플은 현재 지구상 최대의 PC 업체이다. 지난해 팔린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전세계에서 팔린 자동차의 두 배 이상인 2억 대 이상이다. 


그 충격은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이기도 하다. 애플의 혁신에는 인간이 머신과 어떻게 감응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단순히 마우스 대신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다. 특히 스마트폰은 우리 두뇌의 확장이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책과 신문, 전화기, 라디오, 테이프 녹음기, 카메라, 비디오 카메라, 나침반, 텔레비전, 비디오, DVD, 개인용 컴퓨터, 휴대폰 비디오 게임, 아이포드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해 보시라. 스마트폰은 이들 모두를 주머니 안에 집어 넣었다. 게다가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방식, 의사가 환자들을 다루는 방식, 우리가 여행하고 탐색하는 방식을 스마트폰이 바꿔버렸다. 오락과 미디어 접근과 경험 또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됐다.


그런데 애플은 여전히 포위돼 있다. 2007년 하순, 구글이 안드로이드 모바일 기기 및 휴대폰으로 세상을 지배할 계획을 발표했을 때, 구글은 아이폰과의 경쟁만 벌이려 하지 않았다. 구글은 실제로 아이폰과의 경쟁에서 성공을 거뒀다. 2010년부터 안드로이드는 유명세를 폭발적으로 확장 시켰으며, 구글의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80%에 달하고 있으며 애플은 20% 이하로 줄어들었다. 아이패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경향이 흐르고 있다. 2010년 아이패드는 태블릿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60%를 넘지 않는다. 안드로이드 태블릿들 때문이다.


애플 팬들이 제일 걱정하고 있는 바는 애플의 방향일 것이다. 잡스가 2011년 10월 서거했을 때 뭣보다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문은 팀 쿡이 그를 계승할 것이 아니라, 도대체 누구라도 잡스를 이어 받을 수 있겠느냐였다. 잡스가 애플에 있을 때 애플은 혁신 머신이었다. 3년~5년마다 혁명적인 제품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전기작가인 월터 아이잭슨(Walter Isaacson)에 따르면 잡스는 TV 혁명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하지만 쿡의 애플은 아직 그런 제품을 선보이지 않았으며,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그만큼 뚜렷해졌다. 애플 제품 발표는 으레 주가를 올렸었다. 9월 쿡이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 5c와 아이폰 5s를 발표했을 때 애플 주가는 10% 하락했다. 1년 전, 애플 주가는 주당 $702어서 애플이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기업이 됐지만 현재는 정상(頂上)에 있을 때보다 25% 하락한 상태다.


물론 스티브 잡스와의 비교는 불공정하다. 2년째 지나가면서 애플 CEO 쿡은 잡스가 자기에게 했던 말을 되새겼다. 잡스는 그에게 잡스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하지 말고, 쿡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바를 행하라고 분명히 말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다. 아이폰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돌이켜 보면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구와 범상치 않은 힘, 도대체 복제해낼 수 없는 한 사내와 모든 것이 관련돼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007년 1월 아이폰을 선보이기로 한 결정은 분명 도박이었다. 잡스는 새로운 종류의 휴대폰(애플이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종류였다)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그 휴대폰은 잘 작동하지도 않는 프로토타입이었다. 비록 아이폰의 실제 판매는 6개월 후부터였지만 잡스는 세상이 곧바로 아이폰을 갖고 싶어하기를 원했다. 사실 작업이 더 필요한 부분은 실로 방대했다. 생산 라인도 세워야 했고, 화면과 플라스틱 접합 부분의 눈에 띄는 차이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으며, 화면상의 흠집도 발견됐었다. 게다가 휴대폰용 소프트웨어가 버그 투성이었다.


아이폰은 노래나 영상의 일부를 재생할 수 있었으나, 전체 클립을 안정적으로 재생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메일을 보낸 후의 웹서핑 정도는 괜찮았지만, 그 반대 순서는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그래서 엄청난 시도와 실수 끝에 엔지니어들이 일컫는 "골든 패스(golden path)"가 만들어졌다. 특정 방식으로 특정 순서에 따라 아이폰을 움직여서 마치 아이폰에 버그가 없는 양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매뉴얼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잡스가 골든 패스를 따랐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아이폰에 대한 손질이 필요했다. 발표 당일, 그리뇬의 라디오를 다루는 소프트웨어와 아이폰 메모리 관리 소프트웨어에는 버그가 여전했다. 게다가 잡스가 시연용으로 별도로 한 요구 때문에 문제는 더 악화됐다.


잡스는 무대 위에서 사용할 시연용 아이폰 화면을 자기 뒤의 대형 화면에 그대로 미러링 시키기를 원했다. 큰 화면에 기기를 비추기 위해, 기업들 대부분은 비디오 카메라를 제 위치에 붙이곤 하지만, 잡스는 그런 방식을 원하지 않았다. 그 경우 조작하는 손가락이 보이기는 해도, 프레젠테이션의 외양을 망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잡스는 애플 엔지니어들에게 서킷 보드와 아이폰용 비디오 케이블을 고쳐서 무대에 그대로 시연이 가능토록 명령했다. 당시는 프로젝터에 비디오 케이블이 연결됐기 때문에 잡스가 아이폰의 달력 앱 아이콘을 터치할 경우 손가락은 나타나지 않고, 손가락의 명령에 반응하는 큰 화면 이미지가 무대 뒤에 떴다. 효과는 마술 같았다. 청중은 자기 손에 실제로 아이폰을 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단 아이폰의 다른 큰 문제점을 고려해 보면, 오류 없이 설정하기가 당시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이폰의 와이파이 라디오 소프트웨어는 너무나 불안정해서 그리뇬과 그의 팀은 아이폰의 안테나를 무대 뒤의 전선에 연결 시킬 정도로 확대했다. 무선 신호의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해당 주파수에 대한 접근은 금지됐다. 그의 말이다. "심지어 베이스스테이션 ID을 숨긴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러니까 노트북의 무선 신호에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조연설 청중 5천명이 다 컴퓨터 광들입니다. 어떻게 신호를 해킹할 방법을 알아내겠죠." 그래서 그는 에어포트 소프트웨어를 수정하여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운영하는 것인 양 만들었다. 미국에서 허용 안되는 주파수를 일본 와이파이가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잡스가 무대 위에서 할 전화 송신이 잘 될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뇬과 그의 팀은 좋은 신호가 잡히기만을 기도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이폰용 통신사인 AT&T가 휴대용 통신탑을 가져왔기 때문에 신호 자체는 강력할 터였다. 잡스의 결재에 따라 그들은 신호 강도를 나타내는 다섯 개의 막대가 실제 강도와는 관계 없이 언제나 다 채워지도록 했다. 90분의 기조연설 중 잡스가 전화기를 사용하는 동안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았지만 어느 때라도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았다. 그리뇬의 말이다. "우리 의심대로 만약 라디오가 충돌돼서 재시작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실제 막대바를 보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하드코딩을 하여 항상 다섯 개 막대가 보이도록 해 놓았죠."


그런데 아이폰 최대의 문제, 한 번에 몇 가지 이상 작업을 할 때 메모리 부족으로 재시동된다는 문제는 해결책이 없었다. 잡스는 이 문제의 관리를 위해 무대 위에 몇 가지 시연용 아이폰을 다 갖고 올라갔다. 한 기기의 메모리가 낮아진다면 첫 기기가 재시작할 동안 다른 기기로 바꿀 요량이었다. 그렇지만 잡스가 계획한 시연이 몇 가지 있었기에 그리뇬은 실패할 잠재적 시점이 너무 많다고 우려했다. 10여 가지 중 한 가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폰 최고의 기능이 같은 폰에서 같은 순간 일어나는 피날레 중에는 반드시 잘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재생하고 전화를 하며, 한 통화를 그대로 두고 다른 통화를 하고, 검색 및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면서 첫 번째 통화자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음악으로 돌아간다는 순서였다. 그리뇬의 말이다. "저와 팀원들 너무나 조바심을 가졌어요. 당시 시연용 아이폰 메모리가 128 메가바이트 뿐이었습니다. 128 메가바이트라면 커다란 디지털 사진 20여장 정도였어요. 아직 마감이 안 됐기 때문에 모든 앱에 버그가 여전했습니다."


잡스가 원래 배수의 진을 치는 인물은 아니다. 그는 관리 감독으로 잘 알려졌으며, 직원들을 어떻게 몰아서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케 하는지 아는 인물이라는 의미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안 됐을 경우를 대비한 플랜 B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당시 애플에서 작업하고 있었던 유일한 멋진 무언가는 아이폰 뿐이었다. 아이폰은 모든 것을 능가하는 프로젝트였으며, 백업 계획도 없었다. 그리뇬의 말이다. "애플 TV나 아이폰이었습니다. 만약 맥월드에 애플 TV만 선보여야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이튠스와 텔레비전에 연결되는 신제품만으로는 도대체 뭔 말을 하려는 것이냐는 반응을 얻었을 겁니다."




자기 커리어에서 최대의 순간이 파멸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뇬은 위통을 겪을 정도였다. 2007년까지 그는 거의 모든 커리어를 애플이나 애플 제휴사에 두고 있었다. 아이오와 대학교에 다닐 시절인 1993년 그와 친구인 와일드(Jeremey Wyld)가 뉴튼 메시지패드를 재-프로그래밍하여 인터넷 무선 연결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뉴튼은 비록 제품으로서 성공하진 않았지만, 뉴튼을 최초의 주류 휴대용 컴퓨터로 간주하는 시각은 여전히 많다. 그리뇬과 와일드의 해킹은 그 시절 상당한 위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둘 다 애플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와일드는 실제로 뉴튼 팀에 들어갔다. 그리뇬은 애플의 그 유명한 진보기술그룹(Advanced Technology Group)에 들어가서 화상회의 기술을 다뤘다.


2000년 그리뇬은 전직 애플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설립한 Pixo로 옮겼고, 그곳에서 휴대폰 외 소형기기용 운영체제를 작업했다. 2001년 최초의 아이포드에 Pixo가 들어가자, 그리뇬은 다시금 애플로 들어가게 됐다.


당시 Pixo에서의 작업 덕분에 그는 화상회의 기술 말고도 컴퓨터 라디오 트랜스미터(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그리고 휴대폰과 같은 휴대기기용 소프트웨어 작업이라는 유망한 분야 두 곳의 전문가가 돼 있었다. 그리뇬은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살고 있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대부분은 그들의 코드가 하드드라이브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거나 칩에 과부하를 준다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다. 데스크톱과 노트북 컴퓨터 하드웨어는 강력하고 수정이 자유로우며 저렴했다. 메모리와 하드 드라이브, 심지어 프로세서도 저렴하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고, 벽의 전원이나 거대한 배터리에 컴퓨터를 연결해서 사용하던 때였다. 그리뇬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는 고정돼 있었다. 너무 큰 코드는 돌아갈 수 없었고, 특히나 노트북이라면 몇 분 정도 밖에 못 버틸 소형 배터리에는 하루 내내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아이폰 작업 시작은 2004년 말에 이뤄졌으며, 그리뇬은 프로젝트 초기 엔지니어가 될 정도로 완벽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2007년, 그는 심정적으로 지쳤다. 몸무게도 50 파운드가 늘었다. 결혼때문이라 강조하지만 말이다. 아이폰 팀은 애초부터 휴대폰 만들기가 컴퓨터나 아이포드 만들기와는 전혀 다르지 않음을 발견했었다. 그리뇬의 말이다. "정말 극적이었습니다. 애플에서 나올 차세대 빅 히트라는 생각이 모두에게 심겨졌으니까요. 그러니까 이 모든 영리한 인물들을 매우 좁은 방 안에 다 집어 넣었죠. 그런 압박 하에 미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울정도로, 잡스는 이미 전화기 한 번 만들어 보라는 설득을 받아 왔었다. 전화기는 잡스의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대화 주제 중 하나였고, 애플이 아이포드를 만들었던 2001년부터 계속 제기돼 왔었다. 개념은 분명했다. 소비자들이 이메일과 사진, 음악용 기기로 하나를 원하지 두 세 개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잡스와 그의 경영팀이 그 아이디어를 자세하게 알아볼 때마다 전화기 제조는 자살에 가까웠다. 휴대폰용 칩과 속도는 너무나 느려서 인터넷이나 음악, 영상 다운로드를 휴대폰 통신망으로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메일 정도만 전화기에 붙일 만했지만 RIM의 블랙베리가 이미 그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뭣보다 잡스는 무선 통신사 그 누구하고도 파트너를 맺고 싶어하지 않았다. 통신사들이 당시 휴대폰 업체와의 파트너십을 지배했으며, 그들이 통신망을 갖고 있기에 모든 것이 그들 마음이었다. 유명한 통제광으로서 잡스는 통신사에게 휘둘린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2003년 모토로라 인수를 생각했다가 결국 당시 애플로서는 인수하기에 너무나 크다고 결론 내리기도 했었다. (몇 년 후, 애플과 모토로라는 협력을 하기는 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2004년 가을, 통신사와의 사업 얘기가 좀 통하기 시작했다. Sprint는 통신망을 도매로 팔기 시작했으며, Sprint로부터 광대역을 사들였다가 되팔면 애플도 통신사("가상 이동망 사업자(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전화기를 만들어서 통신사와 논의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잡스 자신이 이사로 앉아 있는 디즈니는 이미 자사의 무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Sprint와 협상중이었다. 잡스는 애플도 이동망 사업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대단히 많은 질문을 했다. 결국 애플은 Cingular(후에 AT&T가 인수한다)와 2006년, 계약을 맺기는 했지만, 그러기까지 1년 이상 걸렸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 계약은 아이폰 자체를 만들기보다는 쉬운 일이었다.


수많은 간부와 엔지니어들은 아이포드의 성공으로 한껏 고양돼 있었기 때문에 휴대폰 만들기는 조그마한 매킨토시 만들기와 비슷하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대신 애플은 2005년과 2006년, 세 가지 별다른 버전의 아이폰을 디자인했었다. 모 프로젝트 관련자에 따르면 애플은 당시 실제로 돌아가는 프로토타입을 6가지 만들어 놓았다. 각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이 각기 달랐다. 온힘을 다 쏟은 사람들 중에는 아이폰이 실제 판매에 들어간 후, 회사를 나간 경우도 있었다. 프로젝트의 주요 인물이었던 터니 포델(Tony Fadell, 그도 2010년 Nest라는 자기 회사를 차렸다)의 말이다. "최초의 달 착륙과 비슷했습니다. 저도 이골이 나 있었습니다만, 새로운 일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가만 있을 수 없더군요."


잡스는 아이폰에 수정된 버전의 오에스텐(모든 맥에 탑재돼 있다)이 들어가기 바랬다. 그렇지만 아무도 오에스텐과 같은 거대한 프로그램을 휴대폰 칩에 올려 놓을 시도를 하지 않았었다. 오에스텐을 거의 1/10로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코드 수 백만 줄을 없애거나 다시 작성해야 했으며, 칩이 2006년에나 나왔기에 엔지니어들은 칩 속도와 배터리 수명을 시뮬레이션하여 작업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무도 소비자용 제품으로 멀티터치를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정전식 터치 기술(손가락이나 전도성 물체가 하는 "터치") 1960년대부터 있었다. 단 손가락 두 세 개를 사용하되 독립적으로 인식되는 정전형 멀티터치는 훨씬 더 복잡했다. 연구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으며, 애플이 아이폰에 터치 화면을 넣고 대량 생산하는 것이 큰 도전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감히 아무도 그런 데에 대량 투자를 할 자가 애플 말고는 없었다. 보이지 않는 기술을 유리 안에 집어 넣어서 자동 수정이 이뤄지는 가상 키보드를 뜨게 하고 사진과 웹 페이지를 부드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도 문제였다. 즉, 제대로 돌아가는 프로토타입을 만들기가 대단히 비쌌다. 그런 멀티터치 화면을 대량 생산한 경험이 있는 생산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비자용 전자제품에서 터치스크린은 보통 스타일러스나 손톱을 통해 조작하는 감압식이 대세였다. (Palm Pilot과 Palm Treo같은 기종들이 이 기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설사 멀티터치 아이폰 화면을 만들기 쉽다 하더라도, 화면상 키보드나 "탭으로 확대하기" 등과 같은 기능이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일지에 대한 확신도 분명치 않았다.


2003년 초, 애플 엔지니어들은 태블릿에서 멀티터치를 어떻게 구현할지 알아냈다. 당시 프로젝트 참여자 중 하나였던 스트리콘(Joshua Strickon)의 말이다. "스티브는 화장실에 있을 때 이메일을 볼 수 있는 장비를 원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제품 사양이었죠. 하지만 충분한 배터리 없이는 만들 수 없었습니다. 유용하도록 충분한 그래픽 성능을 낼 칩도 구할 수 없었죠. 뭘 할지 일단 정리하는 데에 시간을 매우 많이 보냈습니다." 2003년 애플에 들어오기 전, 스트리콘은 MIT 석사 논문을 위해 멀티터치 장비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애플 내부부터 그와 그의 동료들이 개발한 프로토타입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는 2004년 그 기술 갖고 애플이 아무것도 못하리라 예상한 채 애플을 떠났다. 


당시 애플의 수석 간부진 중 하나였으며 애플 내 최대의 멀티터치 옹호자였던 부커(Tim Bucher)는 프로토타입이 사용한 소프트웨어인 오에스텐이 손가락이 아니라 마우스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프로토타입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맥미니와 비슷한 10인치, 혹은 12인치 화면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다른 멀티터치 제스처를 이 화면에서 돌려야 했죠. 한 시연에서 키보드 애플리케이션이 밑에서 나오는데 2년 후에 나올 아이폰과 대단히 유사한 모습이었습니다. 문제는, 예쁘지가 않았어요. 무슨 선을 감은 것 같았어요."


잡스가 2005년 중순, 멀티터치 아이디어를 강하게 추진하기 전까지, 터치스크린 기술이 새로운 종류의 휴대폰의 핵심 기술이 되리라는 생각을 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퍼델의 말이다. "잡스가 한 번은 제게 이리 와 보라더군요. 작업하는 것이 있는데, 무슨 생각이냐, 우리가 이걸로 휴대폰을 만들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이 이어졌어요. 잡스가 가리키고 있는 시연을 보니까 거대했어요. 방을 다 채울 정도였죠. 천장에 프로젝터가 달려 있었고, 이 프로젝터는 맥 화면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한 3이나 4 스퀘어피트 정도 됐을까요. 맥 화면을 터치해서 물체를 움직이거나 그릴 수 있었습니다." 퍼델은 터치스크린 프로토타입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몰랐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맥 제품이기 때문이었고, 그는 아이포드 책임자였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앉아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논의를 시작했죠."


퍼델은 그토록 거대한 프로토타입을 휴대폰을 줄이고, 또 대량생산까지 할 수 있을지 강한 의심을 품었다. 그러나 그는 스티브 잡스에게 아니오라고 말하기보다 더 알고 있었다. 그는 애플의 수퍼스타 중 하나였으며, 최초의 아이포드 제작을 돕기 위해 애플에 2001년에 처음, 고문으로 들어왔었고, 골치 아픈 기술적 문제 앞에 소심한 인물이 아니었다. 2005년까지는 아이포드 판매가 치솟았고, 이제 36세인 그는 이제 애플 내 간부진 중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 돼 있었다. 그의 말이다.


"어떻게 할지는 이해하고 있었습니다만, 방을 다 채울 정도로 거대한 특별한 기기를 작게 만들고, 그것을 또 백만 대 수준으로 비용-효율적이면서 신뢰감 있는 생산이 가능할지가 고려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 목록부터가 아주 길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유리 기술이 있는 LCD 업체에 가서 그들 라인에 남는 시간이 있는지도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터치스크린을 만드는 픽셀 전자의 알고리즘을 보정하고 보상하는 알고리듬도 알아 봐야 하죠."


"즉, LCD가 우선 문제였습니다. 터치스크린 기기를 만들기 위한 전체적인 프로젝트였어요. 실제로 터치스크린을 만들 두 세 가지 방법을 고려해 봤습니다만, 대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이어야 했습니다."


오에스텐을 줄이고 멀티터치 스크린을 제조하기란 혁신적이기는 해도 어려웠다. 적어도 기업으로서 애플이 당시 갖고 있던 기술로는 말이다. 오에스텐 디자인을 다시 생각해서 집어 넣어줄 회사는 애플 말고 없었다. 액정이야 모든 노트북과 아이포드에 LCD를 넣으니 LCD 업체들을 애플도 알고 있기는 했지만, 휴대폰은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그리고 2006년 아이폰 작업을 하고 나서야, 애플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애플은 실험실과 장비를 지어서 아이폰 안테나를 테스트했다. 인간 머리 모형도 만들고 인간 두뇌를 모방하기 위해 끈적거리는 것까지 머리 모형 안에 집어 넣었다. 전자파가 실제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한 수석 간부는 최초의 아이폰을 만드는 데에만 들어간 비용이 1억 5천만 달러를 넘었으리라고 관측했다.


잡스는 아이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실제 제품화된 것과 유사한, 오에스텐을 돌리는 터치 스크린형 아이폰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 희망했다. 그렇지만 2005년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지 갈팡질팡했다. 그래서 애플 최초의 아이폰 프로토타입은, 잡스가 실제로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 장난 삼아 보여줬던 다이얼 달린 아이포드에 더 가까웠다. 그리뇬의 말이다. "시장에 내보낼 쉬운 방법이기는 했지만,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처럼 쿨하지는 않았죠."


두 번째 아이폰 프로토타입은 2006년 초에 나왔으며, 잡스가 실제로 선보인 것에 훨씬 가까운 형태였다. 터치스크린과 오에스텐이 들어갔지만, 브러시드 알루미늄으로 제조했었다. 잡스와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 조너선 아이브는 알루미늄 디자인을 대단히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나 그들 둘 다 라디오 전파의 전문가는 아니었으며, 그들이 아름다운 벽돌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 라디오파는 금속을 잘 통과하지 못한다. 2008년에 애플을 떠난 엔지니어인 키어니(Phil Kearney)의 말이다. "저와 애플의 안테나 전문가인 카발레로(Ruben Caballero)가 이사진 방에 올라가서 스티브와 아이브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금속을 라디오파가 통과 못 한다고요. 설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디자이너들 대부분은 예술가이거든요. 그들이 공부했던 과학은 중2때가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애플에서 권력자는 디자이너에요. 그래서 '라디오파가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라고 질문들 합니다. 왜 안 되는지 설명을 해 드려야 하죠."


당시 애플의 하드웨어 책임자였던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은 전화기 크기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매우 길었다고 말했다. "저는 아이포드와 마찬가지로, 아이폰과 아이폰 미니, 두 가지로 나와야 한다는 쪽이었습니다. 하나는 스마트폰으로, 하나는 그냥 전화기로 하면 된다 여겼거든요. 그렇지만 작은 쪽은 주목을 전혀 못 받았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완수를 위해서는 하나에다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야 했어요."


아이폰 프로젝트는 너무나 복잡해서 애플 전체에 위협을 가할 때도 종종 있었다. 애플 내 수석 엔지니어들이 아이폰 프로젝트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다른 일의 시한을 늦춰야 할 때가 발생해서였다. 아이폰이 애플을 다 덜어내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애플은 당시 대규모적인 제품 발표를 아이폰 외에 갖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폰 프로젝트의 한 수석 간부에 따르면 아이폰이 실패할 경우, 애플의 수석 엔지니어들이 실패 때문에 좌절하여 애플을 떠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온갖 기술적 난관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잡스의 비밀주의였다. 주당 80 시간을 일하는데 지쳤어도 아이폰을 작업하는 수 백 명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은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다. 만약 친구들과 바에서 대화하거나, 배우자에게 얘기하는 장면을 애플이 본다면, 곧바로 해고도 가능했다. 혹시 한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싶냐고 물어볼 때, 현재 속한 팀 사무실 내에서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비공개 서약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 그 프로젝트가 뭐냐고 물어 보면, 별도의 비공개 서약에 서명을 하여 프로젝트가 뭔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겠다는 서류를 다시 만들어야 했었다. 지난 10월까지 애플 iOS 소프트웨어 책임자이자 수석 부사장이었던 스콧 포스탈의 말이다. "아이폰 빌딩인 자주색 빌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인을 해야 했어요. 거기는 '파이트 클럽'이라 불렸습니다. 파이트 클럽의 첫 번째 규칙은 아무에게도 파이트 클럽을 얘기하지 않는다였잖습니까." 


포스탈은 2012년 애플 대 삼성 재판에서 증언도 했었다. "스티브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작업을 위해 애플 외부 고용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게 회사 내부에서 고용을 하라 일러뒀죠. 그래서 저는 몇 사람 제 사무실로 불러서 앉힌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네들이 현재 역할에서 수퍼스타들인 셈인데,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여러분이 고려해 주기 바라지만 그것이 뭔지 알려 줄 수는 없다. 말해줄 수 있는 것은 퇴근과 주말을 포기해야 하며, 다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초기 아이폰 엔지니어의 말이다. "와아피이 라디오 칩은 Marvell에서, 블루투스 라디오 칩은 CSR에서 만들었죠. 그들도 자기네들이 뭣 때문에 칩을 공급하는지 몰랐었어요. 그저 새로운 아이포드를 만들겠거니 여겼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가짜 도해와 가짜 디자인을 제공했었어요. 그런데 아이폰 다음 날 다들 말하는 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리뇬은 애플이 심지어 출장가는 직원들 회사를 바꿔서 출장 보낼 때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Cingular로 갈 때 그랬다. "프론트나 우연히 만날 모두가 애플이라는 이름을 안 보기를 원했죠."


비밀주의에 대한 잡스의 집착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있다. 애플 본사 내의 폐쇄된 구역이다. 아이폰 참여자가 아니면 아예 갈 수가 없는 구역이다. 그리뇬의 말이다. "스티브가 이런 걸 좋아했습니다. 부서 만들기를 좋아했죠. 하지만 거대한 [욕설 삭제] 뭔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어요. 회사 내 록스타들이 저기 다 모여 있는 거 뻔히 알지만 보려고 가 보면 당신은 접근권이 없다고 못 들어가는, 그런 식이었죠. 느낌은 안 좋았습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 스스로도 서로 간의 대화가 불가능했다. 전자 부문을 디자인하는 엔지니어들은 소프트웨어를 볼 수 없었고, 테스트를 위해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경우, 실제 코드가 아니라 프록시 코드를 받았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를 작업한다면 하드웨어 성능 평가를 위해 시뮬레이터를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조너선 아이브가 있는 2번 빌딩의 1층이 있다. 잡스의 최측근들 말고는 누구도 그곳을 방문할 수 없었다. 아이브의 프로토타입을 둘러싼 보안은 너무나 엄격해서, 들어가려 할 때 인증을 못 받으면 곧바로 보안 요원이 들이닥치리라고 믿는 직원들도 있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받은 첫 번째 임무가 아이폰이었던 한 엔지니어의 말이다. "피할 수 있으면 된다는 식이 아니기 때문에 이상했습니다. 로비 바로 앞에 거대한 금속문이 달려 있어요. 지금이나 그 때나 문이 열려 있으면 들여다보려 할 겁니다만, 그 이상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포스탈은 증언하는 동안 "카드 기록"을 4번 해야 하는 연구실이 있다고 말했다.


잡스의 시한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은 너무나 강해서 평범한 토의도 이내 싸움박질로 변하기 일쑤였다. 기진맥진한 엔지니어들은 일을 그만 뒀다가 잠 좀 자고 며칠 후에 다시 출근하곤 했다. 포스탈의 보좌 수석이었던 보랏(Kim Vorrath)은 한 번 너무나 문을 세게 닫는 바람에 아예 방에 갇혀 버린 적이 있어서, 동료들이 한 시간도 넘게 그녀를 꺼내 주려 한 적도 있었다. 그리뇬의 말이다. "우리 모두 서서 지켜 봤었죠. 재미있기도 했지만, 일단 물러서서 [욕설 삭제] 도대체 뭔지 알아야 하기도 했으니까요."


2007년 1월 9일, 잡스가 아이폰을 얘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제가 2년 반 동안 꿈꿔 왔던 날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소비자들이 어째서 자기 휴대폰을 싫어하는지 잔뜩 이야기를 들려 줬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 모든 문제를, 분명히 풀어냈다고 말했다. 


잡스가 아이폰으로 음악과 영상을 재생하고 아이폰의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줬을 때, 그리뇬과 다른 이들은 청중 속에서 초조해 하며 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발명해낸 주소록과 보이스메일을 보여 주며 전화를 걸었고, 문자와 이메일을 보냈으며, 터치-스크린 키보드가 얼마나 타자 치기에 쉬운지도 보여줬다. 그는 여러 사진을 스크롤 하면서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크게, 작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단순한지 보여주고,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웹사이트를 보여 주면서 아이폰용 인터넷 브라우저가 자기 컴퓨터의 브라우저만큼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구글 지도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하고는 무대 위에서 스타벅스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폰이 없으면 왜 안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마지막이 되자 그리뇬은 안도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예 그는 취했다. 스카치 한 병을 사서 자신의 초조함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다. "엔지니어, 관리자 등 우리 모두는 다섯 번째 열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시연이 끝날 때마다 스카치 한 잔씩 했죠. 대 여섯 명 쯤 있었을 겁니다. 시연이 한 번씩 지날 때마다 해당 기능 책임자가 원샷 했어요. 마지막이 되자 우리는 스카치를 다 비웠습니다. 모두가 잘 흘러갔고, 정말 우리가 봐 온 시연 중 최고였어요. 나머지는 그냥 전체 아이폰 팀에게는 [욕설 삭제] 날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도시에서 하루 내내 마시며 보냈어요. 엉망진창이었지만, 정말 근사했습니다."


Fred Vogelstein is a contributing editor for Wired. His book “Dogfight: How Apple and Google Went to War and Started a Revolution” will be published in November.


Editor: Dean Robinson


A version of this article appears in print on October 6, 2013, on page MM36 of the Sunday Magazine with the headline: AND THEN STEVE SAID, ‘LET THERE BE AN iPHONE’.


http://www.nytimes.com/2013/10/06/ma...nted=all&_r=3&

출처: http://www.albireo.net/threads/4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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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인터넷 산업의 세계 최강국이라 자부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와 5G 무선 인터넷망 구축 계획을 자랑하고, 싸이월드는 페이스북보다 5년 먼저 소셜네트워크 문화를 구축했으며, 온라인 게임은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스포츠리그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인터넷 문화의 다른 면은 분명 암흑기에 빠져있습니다.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세계 각국의 인터넷 자유도를 보면 한국의 인터넷은 “부분적 자유”로 분류되고 (관련 뉴스페퍼민트 기사) 국경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의 “인터넷의 적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검열 수준은 이집트, 태국, 러시아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미래지향적인 문화의 한국에서 인터넷은 되려 퇴보하고 있는 걸까요?


작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인터넷 페이지 23,000개를 삭제하고 63,000개의 페이지를 차단했습니다. 음란물과 도박을 막기 위해 설립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민간 독립기구지만 대통령이 위촉한 9명 심의위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자정 넘어 16세 미만 청소년의 게임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가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언론을 차단하고 (공식적으로 휴전 중이기에) 디지털 지도 정보를 공유하는 데도 제약이 가해집니다. 그래서 구글맵은 한국 내에서 네비게이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죠. 2010년 UN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실상의 국가 검열조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다. 2011년 박경신 방송통신 심의위원은 남성의 음부를 드러낼 수 없다는 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하기 위해 블로그에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 그림을 올렸다가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2012년 15세 프로게이머가 프랑스 시간으로 진행된 스타크래프트 경기 도중 한국시간 자정을 넘겨 게임이 강제종료되고 결국 패한 사건도 있었죠. 같은 해 트위터에서 북한의 트위터 계정을 조롱하며 리트윗한 사진가가 10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기도 했습니다. 2008년에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원화가치 하락을 예고한 박대성 씨(필명 미네르바)가 “허위사실 유포”죄목으로 104일 동안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인터넷은 중요하게 활용됩니다. 2004년 선거에 관해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네티즌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했습니다. 2009년에는 하루 10만 명 이상 방문자를 갖춘 웹사이트에 댓글을 다는 모든 네티즌에게 같은 법이 적용되었다 결국 폐지되었죠. 그렇다고 인터넷에 대한 감시를 늦춘 건 아닙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1 년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담당하는 조직을 신설하여 전년 대비 13배로 증가한 4,500개 답글을 삭제하였습니다. 국가정보기관의 요원들은 2012년 선거 당시 현 박근혜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인터넷 댓글로 여론 몰이를 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있습니다. 작년 12월 박대통령은 철도민영화와 관련된 논의 과정에서 정부는 “소셜 미디어에 허위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속도를 누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아직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The Economist)


원문보기

[출처: http://newspeppermint.com/2014/02/13/korea-internet-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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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유명 과학매체 파퓰러사이언스는 인간 뇌에 천재성 발현에 대해 다뤄 흥미를 끌었다. 

극히 일부 뇌손상 입는 사람들에게서 기이한 놀라운 능력이 발견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2006년 세일즈관련 직의 데릭 아마토(39세)는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놀다 수영장 바닥에 부딪혀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중증 뇌진탕 증세를 보였다.

  

그는 그 후, 기억상실과 청력의 30%이상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놀라운 일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그가 관심도 없었던 피아노를 능숙하게 다룬 것이었다.

 

이렇게 장애 가진 사람 특정 부분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것을 [서번트 증후군],

그런 사람을 흔히 '서번트(savant)'라 불러진다.

 

이러한 우연한 뇌사고로 후천적 천재성을 보인 현재 공식 알려진 사례로만 30여건 이상 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들 능력은 예술 분야 음악, 미술 뿐만 아니라 수학, 그리고 뛰어난 기억력 등이 나타났다고 한다.

 

무엇이 그런 서번트를 발생케 하는 것일가?

그에 대해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관련 흥미로운 것으로 일련의 과학자들이 '인간 뇌에 숨겨진 천재성'이 있지 않을가' 추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로 캘리포니아대학 행동신경학자 브루스 밀러는 그의 연구에서 치매를 보이는 노인들 중에 특별한 재능이 나타나는 사례들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과 서번트들과 유사함을 발견한 것.

즉, 치매로 언어, 고수준 명령처리 등 담당 뇌가 퇴행하자  에술적 재능이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인간의 특정 능력 향상 시킬때 뇌피질을 그 부분에 할당하는 뇌작용(신경가소성)때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밀러 교수는 서번트 경우 그와는 다른 구조의 '좌뇌와 우뇌'의 제어때문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논리적 등을 관장하는 좌뇌 힘이 저하되자, 창의력 등 예술부분 우뇌가 활성화 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즉, 보통 뇌는 효율성을 위해 신경회로들이 서로 연결 또는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뇌질환자(치매)나 서번트들 뇌는 그런 억제가 사라지자 예술적 부분이 표출된 것이란 것이다.

 

또 다른 주장도 있는데, 

미국 미주리대학 신경학자 베리트 브로가드 교수는 그러한 뇌손상-천쟁성 발현을 '뇌충격에 의한 신경전달물질 방출'때문으로 보았다.

즉, 충격에 의해 강력한 신경물질이 대량 방출되 뇌의 여러 부분을 재배열시켜 그동안 사용되지 못한 부분이 활성화 된 것이란 것이다.

 

그 예로, 앞서 아마토 경우,

그는(베리트) 아마토가 아마 무의식적으로 여러 음악을 뇌에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뇌에 충격 당한후 신경망이 재열되, 그러한 저장된(잠재된) 음악에 접속 활성화 시켰을 것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 사람들의 뇌에서 그런 서버트적 능력을 발현시킬 수 없을가?

 

그 관련 호주 시드니대학 신경학자 '엘런 스나이더'가 있는데, 그는 대다수 학자들이 꺼려하는 정상인의 뇌에서 천재성을 끌어내는 부분까지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작년 연구보고서는 큰 주목을 받았는데, 그의 실험에서 28명의 피실험자로 하여금 처음 아주 어려운 기하학 문제를 풀게 하였다고 한다.

예상대로 모두 풀지 못하였다.

이후 그피실험자들의 뇌를 경두개 전류자극을 이용해 그들 뇌 일부를 마비시켰다.

- 그것은 서번트들에게 나타난 영역.

 

그러자, 놀랍게도 그 시행 받은 피실험자들 40%이상 그 문제를 풀었다.

반면, 시술받지 않는 그룹은(다른 처리받은) 여전히 전혀 그 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한다.

 

이의 실험은 서번트에 나타난 뛰어난 재능 등은 누구나 잠재되 있으며 적절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그러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스나이더 박사 등은 믿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뇌의 비밀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고, 또한 인간에 대한 높은 위험성과 윤리적 문제로 대다수 학자들이 그러한 연구를 꺼리고 있어, 뇌에서 천재성 발현 방법이나 도구는 먼 이야기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여러 뛰어난 잠재능력들을 가지고 있음을 위의 연구들은 보여준 것일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켤(발동시킬) 킬스위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줄 모른다. 

http://blog.naver.com/paust21/5016732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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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연과 구리, 심지어 은을 습지의 이끼를 적용해 폐수에서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끼의 놀라운 특성에 대해서 시베리아 학자들이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바이칼호 습지에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이탄이 이 금속들과 일부 다른 금속의 이온을 잘 흡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습지는 시베리아지방에서 담수의 주요원천이며 그 저장량은 수십만 입방미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습지로부터 많은 하천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서부시베리아의 유명한 와슈간 습지는 면적으로 보아 스위스보다 더 큽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입니다. 이탄의 광범위한 량은 공기의 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온실효과를 방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러시아전문가들은 습지의 또 하나의 특성을 발견했습니다. 습지는 희귀금속을 <채취하는>성분을 소유하고있습니다. 그들은 바이칼호 지방 브드린 습지에서 아연과 구리의 이상적 집중을 발견했습니다. 건 물질 1천 톤 에 500-600 그램의 금속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알아본즉 금속은 식물의 세포벽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은의 보유량은 현저히 적었으며 오직 0,4그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수도 희금속에 있어서 높다고 해야겠습니다. 지각에 그 보유량은 1톤 당 평균 오직 0,07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금속<채취자들>의 놀라운 성분에 대해서 러시아과학원 지질학 및 광물학연구소 보리스 셰르바 연구사가 본 방송과의 회견에서 말했습니다.


<이끼의 세포구성이 그렇습니다. 실례로 풀은 아무것도 흡수하지 않습니다. 만일 풀에 먼지와 함께 무엇인가 내렸다해도 나중에 물로 씻어집니다. 그러나 이끼는 이것을 흡수해 축적하고 있습니다.>


금속을 축적하는 것은 식물의 보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끼는 지나치게 많은 은 집중이 해롭기 때문에 벌써 세포벽에서 보다 덜 해로운 형태로 변화하고 독물질의 흡수를 봉쇄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식물들은 사람들도 유독 물질로부터 보호해주고 있습니다. 통례로 산림들을 지구의 폐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 이끼들이 바로 산업적 분출물의 유독성에 대처할 수 있으며 대형 화재의 영향을 극소화할 수 있게 한다고 보리스 셰르바는 설명합니다.


<2010년 모스크바에서 그리고 올해 여름에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때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납, 카드뮴, 수은, 비소 등은 에어러졸 형태로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에 날렸습니다. 이끼들은 상공에서 날리는 이 모든 해로운 물질들을 흡수하는 성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끼는 생물화학적 장벽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끼의 성분은 오염된 물이나 폐수 정수에 사용될 수 있으며 산업폐수와 폐물에서 일부 희금속을 얻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희금속은 이끼에 보다 원유에 몇 십 배로 더 많이 보유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원유는 전략적 연료이며 재생되지 않습니다. 대신 시베리아의 습지들은 1만 년 전에 발생했으며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습지의 75%는 나이가 500년을 넘지 않습니다. 없지 못해 장래에 이끼로 광물을 채취하는 기술이 필요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 러시아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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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항공기가 널리 사용되기 전이나 그 성능이 미약했을 때 거대한 풍선이라고 할 수 있는 비행선 (Airship) 은 운송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힌덴부르크호 참사 이후 비행선의 시대는 저물었고 그 자리에 대신 대형 점보 여객기들이 하늘을 누비고 있습니다. 

  

힌덴부르크호 같은 비행선 참사는 수소 대신 헬륨 가스를 사용하므로써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해도 비행선은 여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그 크기 때문에 측풍에 약해 지상에서 고정하는데 꽤 애를 먹을 수 있으며 속도 역시 시속 100 - 200 km 수준이 최고라 현대의 아음속 제트 여객기에 비교할 바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장점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비행선은 오랬동안 공중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에 관광용으로 적합하며 무엇보다 자체적으로 부력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공중에 뜨기위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같은 거리를 이동한다면 항공기 대비 에너지 효율이 매우 높습니다. 또 공중에서 호버링 하는 경우에도 훨씬 안정적이며 헬기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또 헬기처럼 바로 아래에 아주 큰 풍압을 가하지 않는 장점도 있어 특수한 용도로는 매우 이상적입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이고르 파스테르나크 (Igor Pasternak) 가 창립한 Aeros 사는 비행선 및 개인 비행기등을 생산하는 회사로 비행선 부분에 상당한 노하우를 가진 회사입니다. 현재 CEO 이기도한 이고르 파스테르나크의 꿈은 초대형 비행선을 이용해서 화물 및 사람을 수송하는 미래입니다. 수년전부터 거론된 에어로스사의 Aeroscraft Heavy Lift Air Vehicle 의 프로토 타입인 드림 드래곤 (Dream Dragon) 이 이제 비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드림 드래곤 프로토 타입  Credit : Aeros


 

 

이 프로토 타입은 2013 년 비행 예정이며 거대한 행거 안에서의 테스트는 완료했습니다. 실제 2배 크기인 완성형은 2016 년 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풀스케일 Aeroscraft 는 4800 km 의 항속 거리에 66 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으며 최고 시속 140 마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화물 수송기에 비해 인상적인 능력은 아니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비행선만이 가질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특수한 환경에서의 화물 수송입니다.  

 

예를 들면 현대의 대형 풍력 발전기들은 거대한 블레이드를 수송하는데 매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지름 100 미터 이상급 풍력 발전기도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이를 그 위치까지 수송하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대형 비행선이라면 어디든지 수송이 가능합니다. 또 석유나 가스 파이프의 경우도 비슷한데 접근 도로도 없는 오지라고 해도 비행선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지상에서 거대한 터빈 블레이드를 수송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점차 블레이드가 커지면서 이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Turbine Blade Convoy for Scout Moor Wind Farm passing through Edenfield   Credit : Paul Anderson)  



(Credit : Aeros)

  

그외에도 쉽게 화물을 수송할 수 없는 산꼭대기에 건물을 짓거나 물자를 수송해야 하는 경우라든지, 비행기가 내릴 수 없고 헬기로도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지역에 물자를 수송하는 용도로 안성맞춤입니다. 예를 들어 밀림 한가운데서 벌목을 하는 경우 벌목 자체보다 접근 도로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나무를 베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런 비행선으로 필요한 물자를 수송하고 대신 벌목한 나무를 실어 나른다면 훨씬 친환경적 벌목이 가능합니다. 

 

에어로스는 미래에 500 톤급의 초대형 비행선에 대한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꿈은 이전에 DARPA 의 지원하에 등장했던 왈루스 (Walrus) 비행선의 후속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초대형 비행선을 군사적인 수송 용도로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지만 2010 년 계획이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사용하려고 했던 기술들이 에어로스크래프트 비행선에 적용될 것이라고 합니다. 

  

에어로스의 비행선은 이전에 비행선에 비해서 한가지 기술적 혁신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내부에 헬륨 가스를 따로 저장하는 밸러스트 탱크가 있어 화물을 탑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체적으로 부력을 조절해서 안전하게 착륙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과거 비행선의 경우 부력 조절이 힘들어서 화물을 실지 않은 상태에서는 위로 날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지상요원들이 이를 고정하기 위해 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비행선 유지 운영에 너무 많은 비용과 인력이 필요하게 되는데 에어로스크래프트의 신형 비행선은 내부의 헬륨 가스를 압축해서 스스로 부력을 조절할 수 있어 필요한 인력을 대폭 줄였다는 것이 제조사 측의 설명입니다.  

 

대형 비행선이 실제로 다시 상용화 된다면 생각보다 응용범위가 꽤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에어로스 이외에도 몇몇 회사들이 다시 비행선 르네상스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됩니다. 

 

참고  

http://www.aeroscraft.com/

http://www.prweb.com/releases/2013/1/prweb10314373.htm

http://en.wikipedia.org/wiki/Aeroscraft

- 고든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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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가 미국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다. 최근의 한 시장조사에의하면 LG가 지난 12월 핸드폰 시장 (스마트폰 + 피처폰)에서 점유율 13%로 애플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LG는 2011년 3분기 까지는 2위자리를 고수하였으나 iPhone 4S가 나온 이후에는 애플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LG는 최근 Optimus G 스마트폰이 선전하고 있고, 구글과 손잡고 만든 넥서스 4도 시장에서 품귀현상이 일어날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삼성과 애플에 밀려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당히 고전해왔던 LG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http://techneedle.com/?p=8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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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마트폰 게임인 템플런의 후속작인 템플런 2가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목요일 애플 앱스토어에 출시된 이 게임은 불과  4일만에 2천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며 신기록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Imangi Studios가 만든 이게임은 주인공이 장애물을 피해 끊임없이 달려가거나 점프를 하는 게임으로, 템플런 2에서는 언덕, 곡선 길, 계단, 카트 타기등 다양한 재미요소가 추가되었다.


Imangi Studios는 워싱턴 DC 지역의 한 부부가 창업한 회사로 아직 직원이 몇명되지 않는 소규모 업체이지만, 템플런에 이어 템플런 2도 큰 인기를 끌고 있어 주위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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