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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잎들의 발달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때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영혼이 어떤 특정한 과정에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 과정은 여덟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과정은 관념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통 인간은 전적으로 우연에 자기를 내맡긴다. 그는 이러저러한 것을 듣고 보며, 그에 따라 자신의 개념을 만들어 낸다. 그가 그런 식으로 처신하는 한,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그의 연꽃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에 따라 자기 교육에 착수할 때 비로소 그의 연꽃은 활동적으로 되기 시작한다. 이를 목적으로 그는 자신의 관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각각의 관념이 그에게 의미를 갖게끔 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그는 외부 세계의 사물들에 관한 특정한 메시지나 정보를 보아야 한다. 그는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관념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개념 생활 전체를 조정해서, 그것이 외부 세계의 충실한 거울이 되게끔 해야 한다. 그는 잘못된 관념을 자신의 영혼에서 멀리 떼어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혼의 두 번째 과정은, 첫 번째 과정과 비슷한 방향에서, 인간의 결단과 관계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충분히 숙고하여 근거를 가지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모든 행동,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모든 행위를 자기 영혼에서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 모든 일에 대해 그는 충분히 숙고된 근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의미 있는 근거가 없는 일이라면 그만두어야 한다. 


   세 번째 과정은 말과 관계 있다. ·········· 수행자는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 말만을 해야 한다. 말을 위한 말은 그를 수행의 길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수행자는 무분별하고 잡다하게 모든 것이 뒤죽박죽 말해지는 통상적인 대화를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위 사람과 교류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바로 그 교류 속에서 그의 말이 의미 있게 전개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지만 생각을 충분히 하고 모든 방향에서 숙고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근거 없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너무 많이 하려하지 않으면서 너무 적게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영혼의 네 번째 과정은 외적 행동의 조절이다. ·········· 수행자는 주위 사람의 행동과 주변 상황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거나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과 모순되는 행동은 자제한다. 그는 자기 행동이 주변과 생활 상황 등등에 조화롭게 편입되도록 행동하려고 한다.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 무언가 다른 것에 의해 행동이 유발될 때, 그는 어떻게 하면 그 유발 동기에 가장 잘 부합할 수 있을지를 깊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관찰한다. 자발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자신의 행위 방식이 끼치는 효과를 아주 명학하게 고려한다.


   여기에서 고찰되는 다섯 번째 과정은 생활 전체의 수립과 관련된다. ·········· 수행자는 자연과 정신에 부합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는 너무 서두르지도 않고 너무 게으르지도 않다. 지나치게 많이 일하는 태도와 지나치게 게으른 태도 모두 다 그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생활을 수련의 수단으로 여기며, 이에 부합하도록 살아간다. 건강 관리, 습관 등등을 조정해서 조화로운 생활이 되도록 한다.


   여섯 번째 과정은 인간적인 노력과 관계 있다. ·········· 수행자는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시험하며, 그러한 자기 인식의 의미에서 행동을 취한다. 그는 자기 힘이 닿지 않는 일은 하려고도 하지 않지만, 자기 힘이 미치는 일을 그만두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그는 여러 가지 이상, 인간의 위대한 의무와 관련된 목표를 설정한다. 그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기를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인간 동력 장치 속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있는 자신의 과제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의무를 점점 더 훌륭하고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노력한다.


   영혼 생활에서의 일곱 번째 과정은, 인생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려는 노력과 관계 있다. ·········· 수행자에게는, 그의 삶에 유익한 경험을 모을 계기를 제공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그가 어떤 일을 부정확하고 불완전하게 행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중에 비슷한 일을 정확하게 또는 완벽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볼 때에도 그는 이와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그들을 관찰한다. 그는 경험이라는 풍성한 보물을 모으고, 그것을 끊임없이 신중하게 이용하고자 한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착수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체험들을 되돌아보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 수행자가 매순간 자기 내면을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여덟 번째 과정이다. 그는 자기 안에 깊이 들어가 신중하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생활 원칙을 세우고 시험하며, 경험적 지식을 철저히 사고하고 그의 의무를 숙고하며 인생의 내용과 목적에 관해서 깊게 사유하는 등등의 일을 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이미 앞에 있는 장에서 말했다. 여기에서는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의 발달과 관련해서 열거할 따름이다. 수행을 통해서 연꽃은 점점 더 완전하게 된다. ·········· 능력의 육성이 그러한 수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외부 세계에서의 발전 과정과 일치하면 할수록, ·········· 능력은 더 빨리 개발된다. 참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의 싹을 죽이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진실성, 올곧음, 정직성은 이러한 측면에서 건설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며, 허위, 기만, 불성실은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 수행자는 이때 ‘좋은 의도’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행동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내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을 사고하고 말하면, 비록 여전히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는 믿음이 있더라도, 정신적 감각 기관 속에 있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비록 모르고 한 일이라도 불 속에 손을 집어 넣으면 화상을 입는 것과 같다. 


   앞서 말한 영혼의 과정이 그 특징이 묘사된 방향으로 실행된다면,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은 장려한 색채로 빛을 발하게 되고 합법칙적인 운동을 부여받게 된다. 그렇지만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영혼이 일정 정도 육성되기 전에는 ··········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활을 이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여전히 애쓰는 동안에는 이러한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앞서 서술된 과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한, 그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언급된 방식의 삶을, 마치 습관적으로 하듯이, 그렇게 살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 첫 흔적이 나타난다. 그러면 그런 일들은 더 이상 애쓸 필요가 없는 자명한 생활 방식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자기 자신을 계속 관찰하고 몰아쳐 가며 그런 식으로 살도록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모든 것은 습관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을 다른 방식으로 발달시키는 모종의 지침들이 있다. 참된 신비학은 그러한 모든 지침들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몸의 건강을 파괴하고 도덕적 파탄을 낳기 때문이다. 그 지침들은 여기에서 서술되는 것보다 실행하기가 더 쉽다. 여기에서 서술되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목표로 인도해 주며 도덕적인 힘을 강화시킬 수 있다.


   연꽃의 왜곡된 육성은 모종의 ·········· 능력이 나타날 경우에 환상과 공상적 관념을 낳을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을 미망을 빠뜨리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런 식의 육성을 통해서 사람들은 겁이 많고 질투와 허영심이 강하며 거만하고 아집에 가득 찬 사람이 되는데, 이 모든 속성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열여섯 장의 연꽃잎 가운데 여덟 장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개발되었으며 이것들이 ·········· 수행 과정에서 다시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다. 이제 ·········· 수행자의 노력에서 모든 관심은 다른 여덟 장의 꽃잎에 쏟아져야 한다. 잘못된 수행에서는 이전에 개발된 꽃잎들만 쉽게 나타나며 새로이 형성되어야 하는 꽃잎들은 위축되어 있다. 이는 수행 과정에서 논리적, 이성적 사유에 너무 무관심할 때 특히 자주 생기는 일이다. ·········· 수행자가 명료한 사유를 중시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말을 할 때 최대한 분명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뭔가 초감각적인 것을 예감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게 된다. 그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올바른 발달을 가로막는다. 이 일에 관해 말을 적게 하면 적게 할수록 더 낫다. 어느 정도 분명한 인식을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말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회화>가 시대에 필수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 적어도 인간의 가슴에, 인간의 영혼에 사회적 유기체의 삼지성이 지니는 필수성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이 들어서지 않는다면, 필시 그런 사회화는 심지어 파괴 과정이 될 것이다. 사회적 유기체가 건강하게 작용해야 한다면, 그 세 가지 지체들이 법칙적으로 양성되어야 한다.

그 지체들 중에 하나가 경제 생활이다. 경제 생활이 아주 분명하게 모든 나머지 생활을 지배하면서 현대 기술과 현대 자본주의에 의해서 인간 사회 내부에 구축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경제 생활의 고찰로 시작하고자 한다. 경제 생활은 사회적 유기체 내에서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지체여야만 하며, 신경-감각 체계가 인간 유기체 내에서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듯이 그렇게 상대적으로 독립적이어야만 한다. 경제 생활은 상품 생산, 상품 유통, 상품 소비에 대한 모든 것과 관계한다.

사회적 유기체의 두 번째 지체로서 공공 권리 · 법률 생활, 사실상의 정치 생활이 고찰될 수 있다. 구시대적 법치국가의 의미에서 실제상의 국가 생활로서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이 정치 생활에 속한다. ·········· 사회적 유기체의 이 두 번째 지체는 순수하게 인간적인 저변에서 나오는, 인간과 인간이 지니는 관계에 대한 모든 것과 연관된다.

오로지 인간적 저변에서 나오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관계에만 연관되는 공공 권리 · 법률 체계와, 오로지 상품 생산, 상품 유통, 상품 소비에만 관계하는 경제 체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안다는 것은 사회적 유기체의 지체를 인식하기 위해서 본질적이다. 이 점을 생활에서 느끼면서 구분해야만 하며, 그 느낌의 결과로서, 인간의 자연적 유기체 내부에서 폐의 활동이 외부 공기를 처리하기 위해서 신경-감각 활동에서 일어나는 과정으로부터 구분되듯이, 경제 생활이 권리 · 법률 생활로부터 구분된다.

이 양 지체와 더불어 마찬가지로 독립적으로 자리 잡아야만 하는 세 번째 지체로서 정신 생활에 관한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아마도 사회적 유기체에서 <정신문화>라는 표현이나, 정신 생활에 관한 모든 것이 전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명확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각각의 인간 개인이 지니는 자연적 재능에 근거하는 모든 것, 각각의 인간 개인이 지니는 신체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자연적 재능의 근거에서 사회적 유기체 내부로 들어가야만 하는 모든 것이 정신 생활이다."

첫 번째 체계인 경제 체계는, 인간이 외부 세계에 대해서 지니는 물질적인 관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해야만 하는 모든 것과 관계한다. 두 번째 체계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관계를 위해서 사회적 유기체 내부에 존재해야 하는 것과 관계한다. 세 번째 체계는 각각의 인간 개인성으로부터 솟아나서 사회적 유기체 내부로 편입되어야 하는 모든 것과 관계한다.

현대 기술과 현대 자본주의가 실제로 현대에 들어서야 우리의 사회 생활을 각인했던 것이 진실이듯이, 그 측면에서 인간 사회에 불가피하게 가해졌던 그 상처를, 인간과 인간적 공동체 생활이 사회적 유기체의 삼지체에 대해 올바른 관계를 지니도록 함으로써 회복시키는 일 역시 필수적이다. 

현대 경제 생활은 근대 들어 단순히 그 자체를 통해서 아주 특정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아주 강력하게 인간 생활에 자리 잡았다. 

사회 생활의 두 가지 다른 지체들은 지금까지도 그렇게 자명하게 그 자체의 법칙성에 따라 올바른 방식으로 사회적 유기체로 편입될 수 있는 상태에 있지 않다. 그 양 지체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인간이 위에 암시된 느낌을 가지고 사회적 지체화를 시작해야만 한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위치한 바로 그 자리에서.

사회 문제에 대해 여기에 의도되는 해결 방안의 의미에서는 모든 개별적 인간이 오늘과 미래에 대한 자신의 사회적 과제를 지니기 때문이다.

가장 복잡하고 자연스러운 유기체를, 즉 인간 유기체를 여기서 언급되는 관점에서 고찰하는 사람은, 인간 유기체의 전반적인 존재가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체계로 드러나며, 그 체계들이 각기의 독립성을 지니고 작용한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상호 간에 작용하는 그 세 가지 체계들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성격화할 수 있다. 

인간의 자연적인 유기체 내에서 그 체계의 한 영역으로서 작용하는 것이 신경 생활감각 생활을 내포한다. 인간 유기체에서 가장 중요한 지체인 머리에 신경 생활과 감각 생활이 어느 정도까지는 집중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머리-유기체라 부를 수 있다. 

인간 조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고자 한다면, 리듬 체계라 명명할 수 있는 것을 인간 조직의 두 번째 지체로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호흡-혈액 순환이다. 즉 인간 유기체의 리듬 과정에서 표현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다. 

세 번째 체계로는 그 활동과 기관으로서 사실상의 신진대사에 연결된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세 체계가 상호 간에 조직되어 있다면, 인간 유기체의 전체 과정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 안에 존재한다.(여기에서 의미하는 지체는 공간적으로 경계지을 수 있는 그런 신체 지체가 아니라 유기체의 활동(기능)에 따른 것이다. 머리에 우선은 신경-감각 생활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머리 유기체>를 다룰 수 있다. 다른 신체 지체에도 신경-감각 활동이 존재하듯이, 머리에도 당연히 리듬 활동과 신진대사 활동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의 세 가지 양식이 그 본성에 따라 상호 간에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

인간 유기체에 하나의 절대적인 집중이 존재하지 않고, 세 가지 체계들이 제각기 하나의 고유한, 외부 세계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관계를 지님으로써, 세 가지 지체가 - 머리 체계, 순환 체계 혹은 가슴 체계, 신진대사 체계 - 일정한 독립성 속에 작용함으로써 어떻게 인간 유기체 내부의 전체 과정을 유지하는지 조망하였다. 머리 체계는 감각을 통해서, 순환 체계 혹은 리듬 체계는 호흡을 통해서, 그리고 신진대사 체계는 영양 섭취 기관과 운동 기관을 통해서.

··········

세계를 표상하는 전반적인 양식이, 즉 우리의 사고습관이 예를 들어서 인간 유기체 내에서 자연 작용의 내적인 본성으로 드러나는 것에 아직은 완전히 적합하지 않다. ·········· 각기의 인간 영혼 내부에 - 각기의 인간 영혼이 사회적 유기체를 위한 작용에 참여하기 때문에 - 사회적 유기체를 위한 불가피한 사항에 대해서 적어도 본능적인 인식이 존재해야만 한다. 사회적 유기체가 건강해야 한다면 자연적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그것도 삼지적이어야만 한다는 점을 비록 다소간에 단순히 본능적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만, 사회적 유기체의 형성과 관련해서 건강한 사고와 감각, 건강한 의지와 욕구가 발달될 수 있다.

··········

자연적인 유기체의 고찰에서 삶의 가능성을 인간의 사고가, 인간의 감각이 느낄 수 있도록 배우고, 그 다음에 그 느낌의 방식을 사회적 유기체에 적용하기를 추구한다. 자연적 유기체에서 배웠다고 믿는 것을 흔히 하듯이 단순하게 사회적 유기체에 적용한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적 유기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유기체 역시 그것 자체의 법칙에 따라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고찰하고 연구하려는 능력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보여 준다. 자연 과학자가 자연적 유기체를 마주 대하듯이, 사회적 유기체 자체의 법칙을 감지하기 위해서 사회적 유기체를 그 독립성에 따라 진정 객관적으로 대상화하는 순간에, 바로 그 순간에 고찰의 진지함을 대면해서 모두 유추 해석 놀이가 멈추게 된다.

··········

사회적 유기체의 힘들이 어떻게 작용해야 그 유기체가 생존 능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지를 건강하게 느끼도록 배우기, 바로 그것을 지금부터는 사람들이 요구할 것이다. 그런 느낌이 없이 사회적 유기체에 발을 디디려 한다면, 바로 그 자체가 반사회적이고 건강하지 않다는 느낌을 습득해야만 할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세네카(Seneca), 에픽테토스(Epictetus)와 같은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은 "악의 사전 계획 (premeditation of evils )"으로 해석되는 premeditatio malorum(최악 상황 예상)으로 알려진 운동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

이 운동의 목표는 인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스토아 학파들은 직장을 잃고 노숙자가 되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마비가 되거나 평판을 망치고 사회적 지위를 잃는 것이 어떨지 상상할 것이다.

스토아 학파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상상함으로써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를 방지 할 수있는 더 나은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을 달성하는 방법에 중점을 두었지만, 스토아 학파는 또한 그들이 실패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고려했다. 내일 모든 일이 잘못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당신이 원하는 것의 반대를 고려하는 이 ​​사고 방식은 반전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강력 할 수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내가 그것을 더 공부하면서, 내가 그것을 좀 더 연구하면서, 나는 반전이 거의 모든 훌륭한 사상가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희귀하고 결정적인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위대한 사상가가 얼마나 현재 상황을 변화시키는가

독일 수학자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Carl Jacobi)는 그의 커리어 동안 다양한 과학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그는 멍청한 남자의 전략에 따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능력으로 잘 알려져 있었으며, 느슨하게 번역하면,"반전, 항상 뒤집어 짐"으로 알려졌다.

야코비는 여러분의 생각을 명확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수학 문제를 반비례하는 형식으로 다시 설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그가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문제의 반대편을 적어 보곤 했고 해결책이 그에게 더 쉽게 다가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전은 강력한 사고 수단인데,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았던 오류와 장애물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만약 그 반대가 사실이라면? 내가 이 상황의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무엇을 하는 방법을 물어보는 대신에, 그것을 하지 않는 방법을 물어보라.

위대한 사상가, 아이콘, 그리고 혁신가들은 앞과 뒤로 생각을 한다. 때때로 그들은 그들의 뇌를 거꾸로 운전한다.

위대한 사상가, 아이콘, 그리고 혁신가들은 앞과 뒤로 생각을 한다. 그들은 사물의 반대쪽을 생각한다. 때때로 그들은 뇌를 거꾸로 움직인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혁신을 위한 매력적인 기회를 드러낼 수 있다.


예술은 좋은 본보기를 제공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장 큰 음악적 변화 중 하나는 Nirvana에서 왔는데, Nirvana는 완전히 새로운 음악 장르인 Alternative Rock을 만들었고, Nevermind 앨범은 의회 도서관에서 문화적, 역사적, 20 세기의 가장 "미적으로 중요한" 녹음물이다.

너바나는 주류 락과 팝 음악의 관습들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Poison과 Def Leppard와 같은 헤어 메탈 밴드들이 수백만 달러를 소비하여 각 레코드를 제작하고 홍보한 곳에서 Nirvana는 Nevermind 를 65,000 달러에 판매했다. 헤어 메탈이 화려해지면, 너바나는 벗겨지고 날것이 되었다. 

반전은 종종 위대한 예술의 핵심이다. 언제나 사회에서 현상이 존재하고, 두드러지는 예술가와 혁신가들이, 압도적인 방식으로 표준을 뒤집는 경우가 많다.

위대한 예술은 이전의 규칙을 어기는 법이다. 그것은 전에 온 것을 반전시킨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의 비밀은 현상을 뒤집는 것일 뿐이다.

이 전략은 글쓰기와 같은 다른 창의적인 일에도 똑같이 효과가 있습니다. 많은 멋진 헤드 라인과 제목들은 역으로 일반적인 가정을 뒤집어 놓는 힘을 사용합니다. 개인적인 예로, 더 인기 있는 두가지 기사,"목표 설정에 대한 잊기"와 "동기부여는 과대 평가 되어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머리 위에 돌려 보세요.


성공은 과대 평가되어 있다. 실패를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유형의 역 논리는 많은 삶의 영역으로 확장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야망 있는 젊은이들은 종종 성공을 성취하는 방법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억만 장자 투자자인 Charlie Munger는 성공의 반대를 대신 생각해 보라고 권장한다.

"무엇을 피하고 싶니?"라고 그가 물었다. "아주 쉬운 대답은 바로 게으름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즉시 폭로할 것이다. 충실히 행동하는 것은 나태함의 일부이다."

실수를 피하는 것은 개선하는 데 있어 충분히 인정되지 않은 방법이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주어진 영역에서 특별히 똑똑하거나 빠르거나 재능이 없어도 사전 예방적이고 안정적이기만 하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때때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보다 왜 실패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생각과 과거에 대한 생각의 이점

반전은 특히 직장에서 유용 할 수 있다.

지도자들은 스스로에게 "만약 그들이 형편없는 관리자라면 누군가 매일 무엇을 할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들은 이런 것들을 피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혁신이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요소라면 "어떻게하면 이 회사의 혁신성을 떨어 뜨릴 수 있을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이러한 장벽과 장애물을 제거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빨리 발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마케팅 부서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고자 하지만, "핵심 고객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는 것이 유용할 수도 있다. 다른 관점에서 놀라운 통찰력을 발견 할 수 있다.

여러분은 무엇이 효과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피하고 싶은 실수, 오류, 잡동사니는 무엇인가? 반전은 좋은 충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충고를 찾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다음은 일과 삶에서 반전을 활용하는 몇 가지 추가적인 방법이다.

프로젝트 관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전 응용 프로그램 중 하나가 실패 사전Failort Premortem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현대적인 회사를 위한 Evils의 전제 조건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목표 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상상해라. 이제는 6개월 앞당겨 프로젝트나 목표가 실패했다고 가정한다.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라. 무엇이 잘못 되었나? 어떤 실수를 했나? 어떻게 실패했나?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주된 목표를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무엇이 이것을 끔찍하게 잘못되게 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보라.

이 전략은 회사에서 실패 할 수있는 정확한 방법을 설명하기 때문에 조직에서 "회사를 죽이는" 운동이라고도 합니다. Evils의 Premeditation과 마찬가지로, 아이디어는 도전과 실패 지점을 식별하여 미리 예방할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생산력

대부분의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고싶어 한다. 생산성에 대한 반전을 적용하면 "내 집중력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하면 혼란스러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매일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제거할 수있는 것들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전략은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종종 성공을 추구하는 것보다 안전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약물이나 정신적 흥분제를 복용한다. 이러한 방법이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용자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다른 방에 휴대 전화를 두거나, 소셜 미디어나 웹 사이트를 차단하거나, TV를 뽑을 위험이 거의 없다. 두 가지 전략 모두 동일한 문제를 다루지만 반전을 사용하면 다른 각도에서 위험을 덜어 공격할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은 보다 일반적인 원칙을 드러냅니다. 맹목적으로 성공을 좇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실패를 막는 것은 보통 매우 적은 위험을 수반한다.


정리 Decluttering

블록 버스터 베스트 셀러 "인생을 바꿔 놓는 마술"의 저자인 마리 곤도Marie Kondo는 사람들이 집을 정리하는 것을 돕기 위해 반전을 사용한다. 그녀의 유명한 대사는 "우리는 우리가 없애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이다.

다른 말로하면, 당신의 삶에서 "기쁨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것을 멀리하는 것이 기본값입니다. 사고 방식의 이러한 변화는 폐기하려는 것보다는 유지하고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관계들

결혼 생활을 망치는 행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 신뢰 부족.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각자가 개인적인 사람이 될 시간을 주지 않는 것. 당신의 모든 시간을 당신의 아이들에게 쓰고, 당신의 관계에 함께 투자하지 않는 것. 돈과 소비 습관에 대해 열린 의사 소통을 하지 않는 것. 좋은 결혼 생활을 반전시키는 것은 나쁜 결혼 생활을 피하는 방법을 보여 줄 수 있다.


개인 금융

모든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문제를 뒤집어 보면 어떨까? 어떻게 하면 당신의 재정 상태를 해칠 수 있을까요?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는 것이 실패로 가는 입증된 길이다. 돈이 얼마나 있든지 상관 없어요, 계산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풀리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누적되는 부채는 가능한 빨리 해결해야 할 위기 상황이다. 그리고 점점 통제되지 않은 쇼핑과 소비 습관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은 스스로 자초하는 재정적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방법에 대해 너무 많이 걱정하기 전에 돈을 잃지 않는 방법을 찾았는지 확인하라.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문제들을 피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앞설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여러분 자신이 겪는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줄 것이다.


반대 방향을 고려하라

반전은 반직관적인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명백하지 않다.

하지만 반전은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중요한 도구입니다. 스토아 학파들은 부정적인 결과를 시각화한다. 획기적인 예술가는 현상 유지를 뒤집는다. 효과적인 지도자들은 성공을 가속화하는 기술을 추구하는 것만큼이나 성공을 가로막는 실수도 피한다.

반전은 특히 자신의 신념에 도전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결정을 법의 재판소처럼 다루도록 강요한다.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양측의 주장에 귀을 기울여야 한다. 반전은 이와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증거가 당신이 믿는 것을 왜곡했다면?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는 관점을 파괴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반전은 당신이 첫번째 결론을 내린 후에 마음을 결정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것은 확인 편견의 중력을 중화하는 방법이다.

반전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삶을 이끌어내는데 필수적인 기술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생각의 정상적인 패턴을 벗어나 다른 각도에서 상황을 볼 수있게 한다. 당신이 직면하고있는 문제가 무엇이든, 항상 사물의 반대편을 고려하라.

정신 생활이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 사회적 공생에는, 사회적 유기체의 생존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힘 중에 하나가 결여된다는 사실의 무게를 진정으로 느끼도록 배워야, 이 영역에서 오늘날 생각하는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적 유기체는 정신 생활의 무기력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 정신 생활의 무기력에 대한 인정을 혐오하기 때문에 그 병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사회 운동에 적합한 사고를 발달시킬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흡사 강렬한 계시라도 받은 듯 그의 시각은 오로지 경제 생활만 바라보도록 이끌어졌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곳에, 정신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에 사회 운동의 영역에서 필수적으로 들어서야 할 동인이 존재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비정신적이고, 비영적인 경제 생활의 발달을 통해서만 그가 인간 존엄적이라 느끼는 상태가 생겨날 수 있다고 유일하게 믿고 있다. ·········· 자신의 구원을 오로지 경제 생활의 개혁에서만 찾도록 몰아대어졌다. 사적 기업과 개별적 고용주의 이기주의, 그리고 피고용인 내에 존재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권리 요구를 정당화시키지 못하는 개별적 고용주의 무능에 기인하는 모든 손상이 오로지 경제 생활의 개혁을 통해서만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 몰아대어졌다. ·········· 모든 정신적, 영적인 것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순수하게 경제적인 과정으로만 시각을 향하도록 함으로써 그런 의견이 생겨났다. 


그로 인해서, ·········· 모순적인 모든 것이 들어서게 되었다. ·········· 최종적으로 완벽한 인간 권리를 그에게 줄 모든 것이 경제에서, 경제 생활 자체에서 발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바로 그 완벽한 인간 권리를 위해서 그는 투쟁한다. ·········· 사람들은 그 어떤 것이 경제 생활 자체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지만, 결코 유일하게 경제 생활로부터만 그것이 솟아날 수 없으며, 오히려 고대 노예 제도에서 봉건 시대의 농노 제도를 거쳐서 현대 ·········· 노동자에 이르는 직선적 발달선상에 존재한다. 현대 생활을 위해서 상품 순환, 통화 유통, 자본 조직, 소유, 토지와 부동산 제도 등등이 형성되었듯이, 그렇게 분명하게 말해지지 않는 어떤 것이, ·········· 역시 의식적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가 지니는 사회적 의지의 실제적인 근본 자극이 되는 어떤 것이 현대 생활 내부에 형성되었다. 


··········


전반적인 현대 ·········· 사회 운동의 근본 자극 중에 하나로서, 시장에서 상품을 팔듯이 자신의 노동력을 고용주에게 팔아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수요와 공급을 따르는 시장의 상품처럼 자신의 노동력이 노동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대한 혐오감이 그들의 본능 속에, 잠재 의식적인 느낌 속에 얼마나 강하게 살고 있는지를 한번만이라도 일별할 수 있다면,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대한 그 혐오감이 현대 사회 운동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만 있다면, ·········· 거기에 작용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자유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 그 ·········· 자극이 오늘날의 사회 문제를 압박하면서 몰아대고 격렬하게 타오르도록 만든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에는 노예가 있었다. 인간 자체가 상품처럼 팔렸다. 조금 적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이 농노제를 통해서 경제 과정으로 편입되었다. 자본주의는 인간 존재의 나머지에 상품적 성격을 들러 붙이는 권력이 되었다. 바로 노동력이다. ·········· 경제 생활에 편입되는 모든 것은 상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이 경제 생활 자체 내에 어떻게 놓여 있는지는 보지 않는다. 상품의 생산과 실용적인 소비에 경제 생활이 존재한다. 인간 노동력을 경제 과정에서 분리시킬 가능성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그것에서 상품의 성격을 벗겨낼 수가 없다. 경제 과정을 재형성해서 그 과정 내에서 인간 노동력이 그에 정당한 권리를 얻게끔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노동력을 경제 과정에서 분리해 내어서, 그것에서 상품적 성격을 덜어 내는 것을 사회적인 힘에 의해 규정되도록 하는가? 바로 이것이 추구되어야만 한다. ·········· 자신의 노동력이 적절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경제 생활 상태를 갈망한다. 그렇게 갈망하는 이유는, 자신의 노동력이 지니는 상품적 성격이 본질적으로 보아서 경제 과정에 완전히 얽매여 있는 자신의 상태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그 과정에 완전히 양도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 과정 안에서 자신의 전체 인간으로 몰두한다. 노동력의 조정을 그 내부에 둘 수 있는 한 경제 생활은 그 자체적인 성격으로 인해, 마치 상품이 소비되듯이 바로 그렇게 노동력을 적절한 방식으로 이용하기를 추구한다. 현대 경제 생활의 힘에 마취나 된 듯 사람들은 오로지 그 내부에서 작용할 수 있는 것만 주시한다. 


어떻게 노동력이 더 이상 상품이 될 필요가 없는지를 그 시각으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경제 형태는 단지 다른 방식으로 노동력을 다시금 상품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생활 내에서는 그 영향권이 인간 노동력으로까지 확장되지 않아야 할 이해관계를 통해서 규정되는 법칙에 따라 상품 생산, 상품 유통, 상품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 한, 노동 문제를 그 진정한 형상에서 사회 문제의 한 부분으로 만들 수 없다. 


한편으로는 노동력으로서 인간에 결부된 것이 경제 생활에 어떻게 편입되는지,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상품이 흘러가는 그 길에서 원천적으로 보아 인간과 무관한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완전히 상이한 이 두 양식을 구분할 수 있도록 근대의 사고가 배우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이 방향으로 가는 건강한 사고 양식을 통해서 노동 문제의 진정한 형상이 드러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고 양식을 통해서 건강한 사회적 유기체에서 경제 생활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지도 역시 분명해질 것이다.


몇 가지 그래프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떤 회사의 주가 그래프입니다. $7였던 주가가 1년만에 $105까지 1,500%나 수직상승합니다. 그런데 그 후 $15로 폭락하고 맙니다. 그 뒤로도 1년 넘게 주가는 $15에서 회복되지 않습니다. 잡주도 이런 개잡주가 없습니다.

 

 

다른 그래프입니다. $38였던 주가가 1년만에 $93로 폭등했지만, 두 달만에 다시 원래 가격이었던 $38로 떨어집니다. 또 다른 개잡주의 전형입니다.

 


역시 다른 그래프입니다. 폭등했던 주가가 제 자리로 돌아와 무려 1년 넘게 횡보하는 모습입니다. 재수가 없으려니 계속 개잡주만 걸립니다. 주가가 폭등하는 시기에 진입한 사람들은 폭락 후 무려 1년 넘게 횡보하는 이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멘탈 관리를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위에 보여드린 개잡주 3인방은 사실 같은 종목입니다. 좀 떨어져서 큰 그림을 볼까요?

 


바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마존의 지난 20년간의 주가 트렌드입니다. 37세에 은퇴 자금 1억원을 맡기고 까먹고 있었던 사람은 57세가 된 지금 1,500억원의 자산가가 되었습니다.

 

결국 돈을 잃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세 상승기에 몰빵한 후 하락 후 지루한 횡보장을 견디지 못하고 손절한 사람들입니다.

 

돈을 번 사람들은 채굴한 월급을 잘 저축해서 모아두었다가 시장의 대하락이 올 때마다 조금씩 주워가면서 먼훗날을 도모했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주식시장 투자에서도 유사한 접근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형주만 분산 투자하므로 한방에 일확천금 같은 것은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시장의 평균보다 높은 수익율을 가지고 우상향하였습니다.

 

작년 6월 비트코인에 처음 투자하면서도 2020년 청산이라는 3년 투자 목표를 가지고 접근했습니다.

 

작년 6월 말에는 $4,000를 향해가던 비트코인이 폭락하여 $2,000 밑으로 떨어지기에 열심히 주웠고, 이후 9월 즈음에는 $6,000을 넘보던 시세가 중국발 악재로 $3,000 밑으로 폭락하기에 열심히 주웠습니다. $20,000에 육박하던 비트코인이 $10,000 밑으로 떨어지던 올해 1월에도 열심히 주웠습니다.

 

향후에도 여러 다른 경로로 벌어들인 자금을 잘 충전하면서 원기옥을 모았다가 시장의 폭락이 올 때마다 주우면서 2020년의 그 날까지 우상향의 그래프를 따라 최대한 수익을 초과달성하며 따라갈 것입니다.

 

지금의 지루한 횡보장, 혹은 알트코인의 무덤장에서 존버해라 손절해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긴 인생을 통털어 적절한 자금 계획과 투자 전략을 세우고 현실 생활을 꾸준히 하다보면 누구나 손쉽게 자산가가 될 수 있다는 간단 명료한 역사적 사실을 말씀 드리는 것뿐입니다.

 

인생은 깁니다. 떼돈을 벌 기회는 영원히 계속 옵니다. 잠시의 손해는 지나고보면 아무것도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고 그 간의 투자전략을 잘 복기 하신 후 향후 투자 전략의 발판으로 삼으셨으면 합니다.

- 출처: 땡글


[독서] - [인터뷰] 워런 버핏 Warren Buffett: 주식은 적금처럼 투자하라.

- CNBC

버크셔해서웨이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 워렌 버핏을 모셨습니다. 오늘 아침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시장에 대해 간략하게만 말씀하셨죠. 그러나 지난번에 모셨을 때 이후로 시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장 변동성이 다시 커졌고 겁먹은 시장 참여자들이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냐고 질문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변동성과 그에 관한 상품에 관련해서 그게 걱정할 만한 것인지, 왜 그런거죠?


글쎄요, 만약 당신이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땅이나 집처럼 매일 매주 가격을 물어보면 안됩니다. 대신 비즈니스를 봐야 하죠. 미국 기업의 가치는 현재와 지구종말 사이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자에게 가져다 주냐 입니다. 비즈니스를 보고 투자한다면 나는 장래의 그 가치가 두달 안에 10%나 변할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시장에선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말그대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돈을 빌려서 투자해선 안됩니다. 시장이 내일부터 열리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어떤 이상한 일도 일어난다는 이야기죠.

제 생각에는 어떤, 예를 들면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상품을 통해 투자하고 엄청난 화력(레버리지)을 가진 그것이 방아쇠를 당겨서(변동성을 가지고 만든 파생상품을 말하는군요.) 그걸 가지고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을 하고 있는 겁니다. 변동성 지수를 사는건 투자라고 볼 수 없어요. 몇몇 supercharged 인덱스나 VIX 지수 같은, 그들에게 그런 지수가 필요하다고도 할 수 없죠. 알다시피 월스트리트는 그런 상품을 만들어왔고, 투자자들은 그들만 믿고 상품을 사겠죠. 1792년 버튼우드 나무 아래서 증권거래소를 설립했을 때부터 월스트리트는 그래왔어요.

그래서 '투자'를 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내가 맥도날드 지분의 절반을 인수하고 당신이 프랜차이즈를 경영하는 경영자라면 나는 비즈니스를 봅니다. 내가 올바른 투자결정을 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러면 나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는지 앞으로 경영은 어떻게 할 지 걱정이 될겁니다. 비즈니스를 보고 있으니까요. 만약 당신이 단지 가격만을 보고 투자한다면, 그건 투자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암호화폐)에 투자할 때도 그것이 무엇을 만들어내는 자산인지, 그 자산 자체를 잘 들여다보지 않죠. 아파트를 사면 아파트를 둘러보고 땅을 살 땐 땅을 둘러보고 회사를 통채로 살때는 그 회사에 대해 뭐하는 회사인지 보는 것 처럼요. 만약 비즈니스의 일부(주식)을 사더라도 그 회사가 어떻게 운영될지를 들여다보고 사야겠죠. 사람들이 그 기업에 얼마나 매력을 느끼는지, 혹은 여러가지를 유동적으로 고려 해야겠죠. 

시장에 파급효과를 주는 예를 들어, 변동성지수를 추종하는 AETN 협약을 맺건 어쩌건 90%의 돈을 하루 아침에 잃게 만들 수 있는 그런 파생상품은 '투자'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죠. 그것은 도박에 가까운 행위입니다.


전에 말씀하셨죠. 주말에 연례서한에서 말씀하셨고 이 쇼가 시작되기 전에도 말씀하셨듯이 살만한 비즈니스가 있는지 둘러보았을 때 매력적인 가격의 비즈니스가 없다고 하셨죠. 그런데 투자내역을 보면 벅셔해서웨이는 주식을 매수하기 좋은 상황인 듯한 순매수를 올해 즉, 2018년에 보여주고 있고 이건 현시점의 변동성 장에서 매수가 적절하다고 보시는 것처럼 해석됩니다.


아마도... 전체 비즈니스(지분 100%)를 사는 것 대신 비즈니스 일부(51%)를 살 수도 있고 (전체 비즈니스를 사려면 프리미엄을 내야 하니까요) 큰 이득이죠. 회사를 통째로 비싸게 사서 투자자가 얻는 효익에 비하면 말이죠.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주식에 접근할 때 움직이는 가격과 같은 작은 것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비즈니스의 일부를 산다고 여기면 마음이 훨 편할거에요.

버크셔해서웨이 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주주로 등재되어 있고 그들은 단지 버크셔를 하나의 비즈니스로, 마치 하나의 예금계좌로 봅니다. 20년, 30년, 40년 전에 돈을 넣고 우리가 그것을 보유하면서 재투자 해주는 형식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저축계좌 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찰리(벅셔해서웨이 부회장)가 주식투자를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수년 간 강세장을 유지할 거라고 말씀해오신 이유 중 하나로 물가상승기 속 이자율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자율이 주가에 중력처럼 작용해서 이자율이 낮으면 주가는 반드시 오른다고 하셨죠. 이상하게도 갑자기 시장에서 실업률에 관한 좋은 뉴스가 이자율을 끌어올릴 거라고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Fed가 기대보다 이자율을 더 올릴거라는군요. 또한 걱정하는 바는 우리가 매번 눈으로 확인하는 10년물 국채 금리가 다시 3%를 찍느냐가 투자자와 트레이더들을 염려시키기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채권을 생각하면, 만약 당신이 30년물 국채를 산다면 이자가 잔뜩 붙어있고, 옛날에는 진짜 종이였지만 지금은 전자식이죠. 어쨌든 이자가 잔뜩 붙어있고 이자가 3%건 얼마건 그 이자가 30년간 지급된 뒤에 원금을 돌려줄 겁니다. 주식은 뭔가요? 주식도 비슷한 겁니다. 이자(시세차익+배당)가 잔뜩 붙어있고 그게 얼마인지 아직 적혀있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그 주식의 투자자라면 그 숫자를 맞추는 것이 여러분의 일이 되겠죠.

만약 그 숫자가 10%라면?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그들의 유형자산을 이용해서 연 10% 이상을 벌긴 합니다. 만약 그게 10% 라면? 그것은 3% 짜리 채권 수익률보다 오지게 큰 수익률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국채 수익률이 10%로 오른다는 것은 지분 증권의 가치를 바꾸는 것입니다. 지분 증권을 사는 것은 주식을 사는 것이고 제너럴모터스 혹은 벅셔해서웨이 외에도 그 어떤 주식이 될 수 있는 것인데요. 그리고 그것은 긴 시간동안 돈이 되어 돌아오겠죠. 벅셔는 더 오래걸릴 수도 있지만 수익은 클겁니다.

그리고 그 이자(차익+배당)는 당신에게 달려있죠. 투자자로서 당신의 일은 그 이자가 얼마일지 결정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식'을 사는 것이고 당신은 미래의 모든 원금과 이자를 현재의 할인된 주가로 사는 것이죠. 그리고 (길이를 재는)야드 자가 오를 수록, 여기서 야드자는 국채를 말합니다. 야드자(국채금리)가 오를수록 주식은 덜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고 이것은 단지 기초적인 경제 원리인 것이죠.

1982~3년에 국채 보유가 연 15% 수익률 이었을 때, 연 15%를 가져다 주는 주식을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이만큼이 평타였지만 만약 연 15% 수익을 가져다 주는 30년 만기 채권을 살 수 있다면 연 12%짜리 수익률의 주식투자는 보통수준 이하의 투자였죠. 그 시절에는요. 그러나 비즈니스에 투자해서 12%를 벌 때 지금처럼 국채 수익률이 3%라면 그것은 멋진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고 그게 주가를 여태껏 밀어올린 이유이죠.


그러면 3%는 15%가 되기엔 멀었다는 말씀이군요.(물론이죠, 저는 3%에서 15%까지 오르는 걸 본적이 있기도 합니다) 연례보고서에서 말씀 하셨지만, 수많은 투자자들이 채권을 몇 퍼센트 정도 담아야 한다고 듣는다고 하네요. 아마 주식:채권 60:40이나 70:30 비중으로 말이죠. 그렇게 해야만 하고 그게 안전한 방법이라고요. 뭘 놓치고 있는거죠.


가격 변동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주식을 안하는게 낫습니다. 주가가 내려간다고 바보같은 짓을 할거라면 주식 접어야죠.(잠깐, 바보짓은 뭔가요? 주식이 내려간다고 파는거요?) 예. 단순히 내려가니까 파는거요. 내말은 만약 20,000달러를 주고 집을 샀는데 누군가가 다음날 와서 15,000불에 집을 팔라고 해도 당신은 안팔겠죠. 왜냐면 집을 아무리 둘러봐도 15,000불은 말이 안되거든요. 그러나 누군가는 감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주식판에서 이런 결정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교육을 받는다면 주식을 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사는건지 바로 비즈니스를 사는건데 그리고 오래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래 채권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것도 말이죠.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그 메세지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을까요. 제가 이번에 올림픽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선수들이 하는 것들이 너무 쉬워보이더군요. 공중 곡예를 하고 얼음 위에서 엄청난 회전을 하는데 그걸 보고나서 연례보고서를 읽었는데, 오, 그래 주식투자는 쉽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뒤돌아서니 다시 어렵던걸요.


심리적으로 장기보유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21살 때부터 투자를 가르쳐왔어요. 그리고 지난 주에 한 수업은 11개 학교의 220명 학생을 가르쳤는데 몇몇은 알아듣는듯 했고 몇몇은 아닌거 같더군요. 그렇더라도 도박을 하려고 합니다. 6개월 안에 자산을 두배 불리려는 생각이, 그런 생각이 그들을 경마장에 가게하고 라스베가스에 가게하는 겁니다.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도박을 하죠. 단시간 내에 부유해지고자 하는 것은 강한 본능입니다. 그런데 난 그런거 할 줄 몰라요.


- 호호월드


··········


워런버핏 투자 원칙 9가지

1. 투자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선의로 투자에 임해라. 

- 기업과 친해지고 기업이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

2.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3. 단순한 투자스타일을 추구하라.

4. 성공한 사람과 한 배를 타라. 

- 독점적인 사업체인가(2.3.4등 합친 것보다 크게 1등인가)

- 높은 수익성과 증가세(돈은 해가 갈수록 잘 버는지)

- 보수적으로 자산을 운용(빌린 돈 자기 돈을 신중하게 투자하는지)

- ROE가 지속적으로 높은가(돈을 꾸준히 잘 버는지)

- 수익을 유보하는가(돈 아껴놔야할 때 아껴놓을 줄 아는지)

- 유보 수익의 재투자 여부(돈을 써야할 데에 쓸 줄 아는지)

- 유보 수익이 기업의 시장가치를 상승 시킬 수 있는지

- 영업활동 비용이 어느정도(꼭 필요한데만 돈을 쓰는지)

- 물가 상승시 제품 가격을 바로 올릴 수 있는지(고객에게 대체불가능하고 스페셜한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지)

- 경영진의 신뢰도

- 자신의 직감

5. 가치평가는 투자의 기본

- PBR, PER, 현금흐름 평가법 등

6. 시장에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

- 자제력=성공, 탐욕+두려움=실패, 다른이들이 욕심을 낼 때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때 욕심을 내라.

7. 우량주에 집중 투자

- 계란을 한바구니에 몰아 넣어라, 3~5개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투자해라.

8. 장기 보유 전략

- 결혼상대자를 고르듯 주식을 고르고, 일단 소유했다면 계속 보유하라.

9. 안정성이 첫째, 수익은 그 다음

- 안전마진 확보, 위험회피·원금보존 전략, 기업가치를 시장이 알아주지 않는 때가 바로 안전마진을 최대 확보할 수 있는 기회, 예를 들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가 (투자자에게) 최대의 찬스


- 호호월드

·········· 참된 인내력을 갖춘 온화함과 과묵함을 통해 영혼은 영혼 세계에 대해, 정신은 정신 세계에 대해 열린다. 

   “평정과 고독 속에 머물러라. 수행 이전에 그대에게 전해졌던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을 닫아라. 이전의 습관에 따라 떠올랐다 사라지는 모든 상념을 정지시켜라. 내적으로 완전히 정숙하고 과묵한 채 참을성 있게 기다려라. ·········· 곧바로 보고 듣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대가 행하는 것만이 ·········· 기여하기 때문이다. ·········· 한동안 평정과 고독 속에 머물렀다면, 이제 그대의 일상적 업무에 착수하라. ‘나에게 이루어져야 할 일은, 내가 그러기에 적합하게 성숙해 있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게 된다’는 생각을 그대 마음 속 깊이 새기면서, 그대의 자의에 의해 무언가 ·········· 힘을 끌어 오려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마라.”

이것은 모든 수행자가 길을 시작할 때 스승으로부터 받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에 따르노라면 그는 자신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은 허사다. 참을성과 지구력이 없는 사람은 이 가르침을 따르기 힘들다. 각자가 스스로 길 속에 갖고 들어오며 또 정말로 피하려고 한다면 누구든 피할 수 있는 것들 이외의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은 거듭 강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비의 오솔길에 있는 난관들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전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행 없이 가장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보다 이 오솔길의 첫 단계를 넘어서기가 어떤 의미에서는 더 쉽다. 

·········· 물론 목표에 더 빨리 다다르는 다른 길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그러한 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왜냐하면 그 길은 수행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추구하지 않는 그런 영향을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길 가운데 몇몇은 계속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탓에,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확실히 경고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러한 길의 진정한 모습은 절대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단편들은 유익함을 낳을 수 없으며, 건강, 행복, 영혼의 평화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 그 진정한 본질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완전히 어두운 힘들에 자신을 내맡길 생각이 없는 사람은, 그러한 것들과 관계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루돌프 슈타이너. 번역:최혜경

종속 개념을 판단의 근거로 삼게 되면, 한 인간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속에 대한 가장 집요한 편견은 인간의 성에 관한 문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성은 여성에서, 여성은 남성에서 이성의 일반적인 성격을 항상 강조해서 더 많이 보게 되고, 개인적인 것은 거의 무시한다. 그것은 실생활에서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손해를 입힌다.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대부분 비인도적인데, 그 이유는 많은 면에서 개별적인 여성의 개인적 고유성으로부터가 아니라, 여성의 자연적 과제와 욕망에 대해서 우리가 취하는 일반적인 표상을 통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 남성의 행위는 그의 개인적인 역량과 소질에 따라 판가름되는 반면, 여성의 행위는 바로 여성이기 때문에 한결같이 주변의 상황에 따라 규정된다. 여성은 종속적인 것의 노예, 일반적으로 여성적인 것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여성이 그 자질에 따라 이러저러한 직업에 적합한지에 대해서 남성들에 의해 논의되는 한, 소위 말하는 여성 문제가 그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성이 그 천성에 따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여성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여성들이 현재 그들에게 걸맞다고 여겨지는 직업에만 적합하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들은 자신에서 벗어나서 다른 것에는 거의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여성은 무엇이 그들의 천성에 걸맞는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여성이 종속적 인간이 아니라 개인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면 사회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의 절반이 비인간적인 현존을 누리고 있는 사회적 상황은 그야말로 절박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이 그런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북돋우도록 유의하라는 것이다. 한 인간이 얼마나 건강한가 하는 것은 물론 처음에는 자기 자신에게 달린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그 방향으로 자신을 북돋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건강한 인식은 건강한 인간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수행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수행자가 건강하게 살려는 의지를 갖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 속에서 사람은 가능한 한 최대한의 자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 대게는 묻지도 않았는데 -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는 좋은 충고를 하더라도 듣지 말라. 그런 충고는 대체로 아무 쓸모가 없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 수행자에게 향락이 의무와 같은 자리를 차지해서는 결코 안 된다. 수행자에게 향락은 건강과 생활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자기 자신을 아주 성실하고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금욕적 생활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향략과 비슷한 이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 많은 사람들은, 고차적 인식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방해하는 듯이 보이는 모든 것을 자신들의 생활 환경 탓으로 돌린다. 그들은 “이런 처지에서 나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어.”라고 말한다.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사람의 경우 생활 환경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비 수행을 목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바로 현재 있는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몸과 영혼의 건강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하면 된다. 모든 일은 인류 전체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일은 나에게 너무 맞지 않아, 나는 다른 일이 맞아.”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영혼보다, 보잘것없고 누추할 수도 있는 어떤 일이 인류 전체를 위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분명히 아는 인간의 영혼이 훨씬 더 위대하다.


  수행자에게는 완전한 정신적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불건전한 정서 생활과 사고 생활은 항상 고차적 인식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명료하고도 평정(平靜)한 사고, 확실한 지각과 감정이 수행에서 토대가 된다. 공상벽이나 격양된 존재, 신경질, 흥분, 광신 등에 치우치는 성향만큼 수행자가 멀리해야 할 것은 없다. 그는 모든 생활상에 대한 건전한 시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는 생활 속에서 올바른 길을 확실하게 찾아야 한다. 그는 사물들이 조용히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영향을 끼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는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생활의 요구에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판단과 지각에서 과장된 것, 단면적인 것은 일체 피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수행자는 고차 세계 대신 자기 자신의 상상력의 세계 속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진리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생각이 유효하게 될 것이다. 흥분을 잘하거나 공상적이기보다는 ‘냉정한’ 편이 신비 수행자에게는 더 좋다.


··········


  두 번째 조건은, 자기 자신을 전체 생명의 한 부분으로 느끼는 것이다. ·········· 내가 교사인데 학생이 내가 바라는 바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내 감정을 먼저 학생에게 퍼부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나는 학생과 내가 하나임을 느끼면서, “학생에게 나타나는 불만스러운 점이 내 자신이 행한 행동의 결과는 아닌가?”라고 자문해야 한다. 나는 내 감정을 학생에게 돌리는 대신, 장차 그 학생이 내 요구에 더 잘 부응할 수 있도록 하려면 나 자신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숙고할 것이다. 그와 같은 의향에서부터 인간의 사고 방식 전체가 점차적으로 변해 나간다. 이는 극히 사소한 일과 큰일에 다 적용된다.


  예를 들어, 범죄자를 보더라도 나는 그러한 의향이 없을 경우와는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나는 판단을 삼가면서 다음과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 “나 또한 이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다. 환경을 통해 나에게 이루어진 교육이 아마도 그의 운명을 걷지 않게 나를 지켜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나에게 노력을 기울였던 스승들이 그에게도 똑같은 노력을 베풀었다면 이 인간 형제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모자란 것이 나에게 제공되었다는 것, 나의 좋은 점은 그에게는 모자란 바로 그 상황 덕택이라는 것을 고려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전체 인류의 한 구성원일 따름이며 만사에 다 책임이 있다는 관념 또한 더 이상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게 된다. ·········· 그런 사고는 조용히 영혼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것은 아주 점차적으로 한 인간의 외적 태도에 아로새겨진다. 그런 가운데 각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 속에서 개혁을 시작할 수 있다. ·········· 수행자가 하는 일은 표면에서가 아니라 심층에서 이루어진다.


··········


세 번째 조건은, ·········· 수행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그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대해 의미를 지닌다는 관점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웃 사람을 증오하면 그를 때리는 것과 같은 정도로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면, 나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도 뭔가를 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세계는 나의 선행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과 똑같이 나의 순수한 감정과 생각으로써 이롭게 된다. 세계에 대해 나의 내면이 지니는 의미를 믿을 수 없는 한, 수행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그 영혼적인 것을 외적인 것과 적어도 동일한 정도로 현실적인 양 다룰 때, 비로소 나는 나의 내면, 나의 영혼의 의미에 대한 올바른 믿음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나의 감정이 나의 손이 하는 일과 똑같은 영향력을 지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네 번째 조건은, 인간의 본래적인 본질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스스로를 외적 세계의 산물로서만, 물리적 세계의 결과로서만 여기는 사람은, 수행에서 어떠한 성취도 거둘 수 없다. 스스로를 영혼적 · 정신적 존재로 느끼는 것은 그러한 수행의 기초이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내적 의무와 외적 성공을 구분할 수 있다. 그는 전자가 후자에 의해 바로 측정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수행자는, 외적 조건이 규정하는 것과 그가 자신의 태도와 관련하여 적합하다고 인식하는 것 사이에서 올바른 중용을 찾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환경에 대해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해서도 안 되지만, 이 환경에 의해 인정될 수 있는 것만 행하려는 욕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는 오로지 인식을 추구하는 성실한 영혼의 목소리 속에서만 자신의 진리에 대한 인정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는 환경에 무엇이 도움이 되고 이로운지를 찾아내기 위해 가능한 한 환경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 ‘정신의 저울’이라 부르는 것을 자기 자신 속에서 발달시킨다. 그 저울의 접시 한쪽에는 외부 세계의 필요에 대해 ‘열린 가슴’이, 다른 한쪽에는 ‘내적인 확고함과 불굴의 지속력’이 놓여 있다.


··········


다섯 번째 조건은, 한번 결심한 것을 꿋꿋하게 따르는 것이다. 결심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신비 수행자로 하여금 결심한 것을 어기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결심은 다 하나의 힘이다. 이 힘은 바라는 직접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작용한다.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을 할 때에만 성공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고차 세계에서는 오로지 행동에 대한 사랑만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수행자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는 모든 것은 이 사랑 속에서 펼쳐져야 한다. 그러면 그는 아무리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결심을 거듭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시들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기 행동의 외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자체에서 만족을 누리게 된다. 그는 그의 행동, 아니 그의 존재 전체를 세계에 바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세계가 그의 희생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말이다. 수행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와 같은 희생적 헌신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여섯 번째 조건은, 자신에게 생기는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현존재가 우주 전체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 각자가 생명을 받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가! 우리는 자연과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고 있는가!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고차적 인식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무한한 사랑을 자기 속에서 기를 수 없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나는 내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감사에 가득 찬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들로써 내가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


일곱 번째 조건은, 이상의 조건이 요구하는 대로 삶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다듬어 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행자는 자신의 삶에 통일적인 특징을 부여할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그의 개별적인 생활 표현들은 모순됨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는 수행의 첫 단계에서 도달해야 할 평정함을 위한 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들을 충족시키려는 진지하고도 성실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수행을 결심할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내적인 것은 외적인 것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떤 그림이 화가의 머릿속에만 있을 때에는 아직 존재한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표현 없는 수행은 있을 수 없다. 외적인 것 속에서 내적인 것이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엄격한 형식을 경시한다. 어떤 사상(事象)의 정신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은 진실이다. 그러나 정신이 빠진 형식이 가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형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정신 또한 아무 쓸모도 없는 것으로 존재할 것이다.


  여기에 제시된 조건들은 수행자를 강하게 만들기에 적합하다. 이를 통해 그는 정신 수행이 그에게 가하지 않을 수 없는 더 많은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기를 수 있다. 그에게 이러한 조건들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는 새로운 요구가 주어질 때마다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필요한 인간에 대한 신뢰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신뢰와 진정한 인간애 위에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신뢰와 진정한 인간애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의 영혼의 힘에서 솟아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구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애는 모든 존재, 아니 모든 현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점차 확장되어야 한다. 앞에서 거론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건설과 창조에 대한 완전한 사랑도, 모든 파괴와 부정 그 자체를 그만두려는 경향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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