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 가장 복잡한 미디어인 텔레비전은 완벽하게 정해진 틀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텔레비전을 역설적으로 '간결한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간결함'은 원래 광고업계에서 사용하던 용어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 문장으로 생각을 집약시켜야 합니다. 생각을 통제하기 위한 아주 교묘한 기법입니다. 

따라서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당신 생각을 세 문장으로 집약시킬 기회가 생기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슬로건을 반복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냐, 아니면 당신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후자를 택하면 당신은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신 주장을 뒷받침해줄 최소한의 증거를 제시한 시간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테러에 관한 프로그램에 당신이 초대받았다고 해봅시다. 당신은 카다피가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1분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증거를 따로 제시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빌 클린턴은 테러리스트다'라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생전 처음 듣는 주장일 테니까요. 하지만 텔레비전에서는 당신에게 그 이유를 설명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미치광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으로 대우받으려면 모두가 알고 있는 말만 떠벌리면 됩니다. ··········


·········· 정보Information는 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흔히 정보라 표현되는 것은 대개 '왜곡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언론은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근본적 한계를 갖습니다. 따라서 제도적 관점에서 언론은 민간 기업에 시청자를 파는 또 하나의 민간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언론은 이해관계가 밀접히 연결된 국가권력에도 종속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한계를 지녔음에도 언론이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직업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스스로를 관찰하는 사람은 이 7년 주기의 급변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한 주기의 길이는 곧이곧대로 똑같지 않고 대략적입니다. 마흔아홉, 마흔둘, 서른다섯 살 적을 돌아보면 아주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네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다. 그 이전에는 네가 지녔던 자질로 절대 이를 수 없었을 것을 그 일로 인해서 체험하거나 느끼도록 배웠다. 그것은 마치 영구치를 얻기 전에는 영구치로 씹을 수 없는 바와 마찬가지다." 인간이 삶을 구체적인 것으로서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이 인류 발달의 경로에서 소실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스스로에게서 그것을 관찰하기 위해서 내적으로 수련을 하지 않으면 서른 살 이후의 주기들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십대 초반까지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상당히 어렵기는 하지만 이십대 후반까지도 그 내적인 변화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간조직이 그러하기를 사실 스물예닐곱, 스물여덟 살이 될 때까지만 자연적인 발달에 의해 이끌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한계가 점점 더 낮은 연령으로 밀려 내려가는 추세입니다. 아득한 옛 시절의 사람들은 그들의 조직 내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타고났기 때문에 그런 것을 겪어야만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자연을 통한 그런 규정성이 지양되었기 때문에, 오직 그런 이유로 해서 자유가 가능해졌습니다. 자연의 규정성이 멈추는 그 정도만큼만 자유가 가능해집니다. 먼 옛날에는 사람이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 먹을수록 자연 법칙에 따라 그 정신적인 것이 자연스럽게 싹텄습니다. 반면에 이제는 인간이 스스로의 내적인 노력을 통해서 정신적인 것을 찾는 길에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런 상황을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며칠 동안 논했던 그 모든 이유로 인해서 구세대가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들이 과연 무엇이 되었는지를 더 이상 강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지성주의에 머물고 맙니다. 그 지성주의가 대략 열여덟살, 열아홉 살 사이에 이미 완전히 발달되어서 그 나이에 이르면 지적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성주의와 관련해서 보자면 기껏해야 더 나은 숙련에나 이를 수 있지 질적인 진보는 이를 수 없습니다. 지성적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거나 반박하려는 유혹에 일단 한 번이라도 빠져들면, 그 증명과 반박에서 어떤 진보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래서 어떤 사람이 수십 년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 낸 것을 지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면, 열여덟 살밖에 먹지 않은 녀석도 지적으로 반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십에 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열여덟, 열아홉 나이에도 벌써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성주의는 의식 영혼 시대 동안에 일단은 이르렀어야만 하는 단계일 뿐입니다. 그런데 심화라는 의미에서는 아무 진보도 없습니다. 단지 숙련의 의미에서만 진보가 있을 뿐입니다. "나는 아직 당신처럼 그렇게 똑똑하지 못합니다. 아직은 당신이 나를 기만할 수 있습니다." 라고 젊은이가 말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 젊은이는 상대방이 지성주의의 영역에서 자기보다 더 능력이 있다고 믿지는 않을 겁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과격하게 표현해야만 합니다. 저는 비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자연적인 발달이 과연 무엇인지 설명을 드릴 뿐입니다. 현시대가 어떤 성격을 띠는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인간이 내적인 능동성으로부터 발달을 추구하면서 그 발달을 깨어 있으면서 유지하지 않는다면, 이십대 이후에는 단순한 지성주의와 더불어 녹슬고 맙니다. 그러면 인간이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통해 단지 인위적으로만 연명하게 됩니다.

상황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자주 극장에 가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영화를 보려는 욕구, 모든 것을 외적인 방식으로 보고자 하는 그 욕구 자체가, 인간이 내적으로 수동적이고 비활성화되어서 내적인 활동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바와 같은 정신과학은 항상 내적으로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이나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를 않습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사진과 함께>>라고 덧붙여진 행사나 강연에 갑니다. 그리고 거기에 멍하니 앉아서 사고 활동을 가능한 대로 조용히 쉬도록 버려둡니다. 모든 것들이 그냥 그렇게 사람을 지나쳐 갑니다. 사람이 완전히 수동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우리의 수업 전체가 그것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교육학적인 이유에서 오늘날의 실물 수업이 지니는 진부함에 반대하면 그가 누구든 간에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 취급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런 실물 수업에 반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단순한 관조 기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기구가 아닙니다. 인간은 오로지 내적인 활동성으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학적인 것을 제시한다 함은, 인간이 영적으로 스스로 일하도록 초대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 들지를 않습니다. 모든 정신과학은 그런 내적인 활동으로 초대해야만 합니다. 달리 말해서 정신과학은, 외적·감각적 관조에서는 더 이상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어서 내적인 힘들이 자유롭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지점으로 모든 고찰들을 몰아가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그 내적인 힘들의 작용 속에서 사고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이 형상적 상상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안 됩니다. 

모든 인지학적 정신과학의 근거는 말하자면 그 내적인 활동성입니다. 내적인 활동성으로의 일깨움입니다. 모든 감각이 일단 침묵하고 오로지 만활한 사고 활동만 남아 있는 경우에 인간 내면에서 여전히 활동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에 호소해야 합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학령기에 이른 어린이들은 삶에서 그들의 영혼 상태가 의미심장한 변화를 거치는 단계에 놓여있다. 태어나서 6, 7세가 되기까지의 시기에 인간은 직접적인 주변환경에 있는 모든 것에 몰두하는 자질을 지닌다. 그렇게 모방하는 본능으로부터 자신의 되어 가는 힘을 형성한다. 6, 7세가 되면 교육자와 교사가 자명한 권위를 바탕으로 해서 어린이에게 작용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영혼이 열린다. 그의 내면에서도 역시 살아야 하는 것이 교육하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내면에 살고 있다는 불분명한 느낌에서 어린이가 권위를 수용한다. 모방 본능에서 자명한 권위 관계를 근거로 하는 습득력으로의 변화를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 없이 어린이를 대한다면 교육자나 교사가 될 수 없다. 

단순한 자연관에 근거하는 현대 인류의 인생관은 인간 발달에서 드러나는 그런 사실들에 완전히 의식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인간 본성이 지니는 삶의 표현 중에서 가장 섬세한 것을 위한 감각이 있는 사람만 그런 것에 필수적인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그런 감각이 교육과 수업 예술을 지배해야 한다. 그 감각이 교과 과정을 형성해야 하고, 교육자와 어린이를 합일시키는 정신 속에 살고 있어야 한다. 교육자가 하는 일은, 추상적 교육학의 일반적인 기준에 의해 고무된 것에 아주 적은 정도로만 의존할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교육자는 활동하는 매 순간 되어 가는 인간에 대한 생동적인 인식으로부터 항상 새로이 태어나야만 한다. 

그렇게 활기에 찬 교육과 수업은 많은 어린이들이 있는 학급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이의를 당연히 제기할 수 있다. 특정한 한도 내에서 그 이의는 분명히 옳다. 그런데 특정한 한도를 넘어서까지 그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추상적인 정규-교육학의 관점에서 말한다는 사실만 증명할 뿐이다. 어린이 각자의 내면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진정한 인간 인식에 접하는 생동적인 교육 예술과 수업 예술을 관철함으로써,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가르침을 통해 어린이를 주제에 붙들어 놓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교육과 수업에서 작용하는 것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하는 것이 충분이 강하게 생동적일 필요만 있을 뿐이다. 진정한 인간 인식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되어 가는 인간이 아주 고도로 그가 풀어야만 하는 삶의 수수께끼가 되어서, 그 수수께끼를 풀어보려는 시도에 어린이들이 동참하도록 일깨운다. 그런 동참이 개별적인 가르침보다 더 풍부한 결과를 가져온다.

개별적인 지도는 진정한 자아 활동과 관련하여 어린이를 너무 쉽게 마비시키고 만다. 물론 일정한 한도 내에서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인간 인식에 의해 완전히 고무된 삶을 사는 교사가 가르치는 가득찬 학급이, 그런 삶을 발달시킬 능력이 없어서 정규-교육학으로부터 출발하는 교사가 가르치는 적은 학생 수의 학급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 어린이 답게-예술적인 교육에서 얼마나 강하게 지적인 것을 건져낼 수 있는지를 간파한다면, 초등학교 첫 학년의 수업에서 예술에 적절한 위치를 부여하려는 경향을 지니게 된다. 음악 예술과 조형 예술을 수업 영역에 올바르게 위치시키고, 신체적인 연습에 예술적인 것을 적합하게 연결할 것이다. 체조와 운동을 음악적인 것이나 낭송에 의해 고무되는 감정의 표현으로 만들 것이다. 단지 육체의 해부학적이고 생리학적인 것만 근거로 하는 것의 자리에 오이리트미적인 것, 의미에 찬 움직임이 들어선다. 그러면 수업의 예술적인 구성에 의지 형성과 감성 형성을 위해 얼마나 강한 힘이 내재하는지 알게 된다. 

특정한 삶의 단계에서 현시하는 발달력과 방법론 간에 존재하는 관계를 투철한 인간 인식으로 통찰하는 교사만 여기에 암시된 방식으로 풍부한 결과를 가져오면서 수업을 할 수 있다. 어린이를 다루는 학문으로 교육학을 배운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교육자나 교사가 될 수 없다. 인간 인식을 통해 내면에서 교육자가 깨어나야 그 사람이 진정한 교사가 된다. 


·········· 가르치는 내용을 어린이가 모두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고 기회만 되면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서까지 애를 쓸 때 역시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런 노력에는 분명히 훌륭한 의지가 들어 있다. 그러나 그런 의지는, 인간이 어린 시절에 순수하게 기억으로만 습득한 것을 나중에 나이가 좀 든 후에 다시 일깨우고, 그 동안 노력해서 얻은 성숙도를 통해서 비로소 스스로 이해할 수 있다고 깨닫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억력으로 수업 내용을 습득하는 경우에 흔히 어린이가 보이는 그 염려스러운 무관심을 교사가 활기에 찬 방식을 통해 필수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교사가 자신의 존재 전체로 수업 활동에 내재한다면, 어린이가 나중에서야 완전히 이해를 해서 희열에 찬 체험을 할 수 있는 주제도 어린이에게 가르칠 수 있다. 바로 그 나중의 신선한 체험 속에 삶의 내용을 간단없이 강화시키는 것이 들어 있다. 교사가 그런 강화를 위해 작용할 수 있다면, 그는 현존의 노정을 위해 잴 수 없이 커다란 삶의 자산을 어린이에게 준비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또한, 어린이의 <이해>를 겨냥하느라 <실물 수업>을 지나치게 적용해서 진부해지는 것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런 수업이 어린이의 자립적인 활동을 참작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열매는 어린 시절을 위해 아주 불쾌한 맛을 지니기 마련이다. 특정한 관계에서 아직은 어린이의 <이해>를 넘어서서 존재하는 것을 어린이 내면에서 교사의 활력에 찬 불꽃으로 불을 지피는, 바로 그 일깨우는 힘이 인생 전체를 거쳐 작용하면서 머문다. 

- '사회 문제의 핵심' 중에서


··········


[1919년 8월과 9월,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 학교 개교에 즈음한 14일 간의 교사세미나를 마친 후에 행한 슈타이너의 "결어"]

[독일어 번역입니다. - 최혜경 옮김]

이제 제가 말하자면 여러분의 마음에 명심시키고 싶은 것에 다시 한 번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오늘 이 고찰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네 가지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교사가 크고 작은 것에서 자신의 직업을 완전하고 철저하게 정신화 함에서, 교사가 하나하나의 단어를 어떻게 말하는지, 하나하나의 개념과 모든 개별적인 감각을 어떻게 발달시키는지, 바로 그 양식에서 자신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교사는 발안하는 인간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교사가 절대로 게을러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달리 말하자면, 교사가 학교에서 행하는 것과 어린이들을 대하는 처신에 완전히 현존해야 한다는 점을 숙고하십시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즉 교사는 크고 작은 전체에서 발안하는 인간이어야 합니다. 

그 두 번째는, 사랑하는 여러분, 교사로서 우리는 세상에 있는 것과 인간에 관한 것이라면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있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세상사에 대해서, 인간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해서 우리는 교사로서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인간을 위해서 흥미로울 수 있는 것에 어떤 식으로든 등을 진다면, 그런 것이 교사에게서 자리잡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극히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인류의 커다란 문제와 가장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관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개별적인 어린이들의 커다란 문제와 가장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 두 번째입니다. 교사는 세상과 인간존재를 위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렇습니다. 교사는 자신의 내면에서 진실이 아닌 것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내면 깊숙이 참된 인간이어야만 합니다. 절대로 진실이 아닌 것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수많은 경로를 통해서 진실이 아닌 것이, 특히 방법론에서 우리의 수업으로 흘러들어오는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진실한 것을 추구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쓸 경우에만, 우리의 수업이 진실한 것의 각인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실현되기 보다는 쉽게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러나 역시 교사라는 직업을 위해서 황금률인 것이 있습니다. 교사는 메마르거나 시대에 뒤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메마르지 않은 신선한 영혼정서! 메마르지 않고, 시대에 뒤 떨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교사가 추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그에 더해서 인간은 지상의 현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배워야만 한다. 

그 첫 번째로 인간은 자신의 신체성을 공간 내에 적응시키기를 배운다. 사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전적으로 간과한다. 인간이 자신의 신체성을 공간 내에 적응시킨다는 사실에서 인간과 동물 간에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 중 하나를 건드리게 된다. 동물은 공간 내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균형 상태를 발달시키도록 처음부터 규정되어 있다. 어떤 동물은 기어오르도록 규정되어 있고, 또 어떤 동물은 헤엄치도록 규정되어 있는 등등. 동물은 애초에 조직되어 있기를 자신에 알맞은 방식으로 공간에 들어선다. 유인원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되어 있다. 동물학자가 이 사실을 숙고한다면, 예를 들어서 인간과 동물을 비교하며 얼마나 많은 수의 유사한 뼈와 근육이 있는지 별로 강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인간이 자신의 균형 관계를 위한 완벽한 소질을 처음부터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비해 주목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전체 존재로부터 균형 관계를 일단은 형성해 내어야만 한다. 걷지 못하는 존재에서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인간이 자신에게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에게 수직적 자세, 공간 내의 균형 상태를 주는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중력에 대한 관계에 대치시킨다. 사실을 깊이 있게 파고들려 하지 않는 고찰에 있어서는 외관상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서 이 점을 아주 쉽게 부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기어오르는 동물이 기어오르도록 조직되어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인간도 똑바로 서서 걷도록 조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주시해 보면 동물의 경우에는 조직의 특성이 공간 내로 들어서도록 만드는 요소임에 비해 인간의 경우에는 그것이 영혼임을 알 수 있다. 영혼이 공간에 대한 관계 내로 들어서서 조직을 극복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배우는 것,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일한 것으로서 현신에서 현신으로 전진하는 존재로부터 스스로 배우는 두 번째, 그것은 언어다. 언어를 통해서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인간을, 일단은 인간을 통해서 물체적 세계를 관통하는 정신 생활의 주체로 만든다. 말을 할 수 있기도 전 어린 나이에 외딴 섬에 방치된 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지 않은 사람은 언어를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이 자주 강조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유전으로 물려받은 것, 후일의 삶을 위해 고정된 상태로 유전의 법칙을 따르는 것, 그것은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와 상관이 없다. 예를 들어서 일곱 살이 되면 이갈이를 하도록 유전 관계를 통해서 이미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다. 외딴 섬에 있다 하더라도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만 있다면 이갈이를 할 것이다. 하지만 말하기는,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서의 영혼 존재가 고무되어야만 배울 수 있다. 인간은 자아의식을 아직 지니지 않은 바로 그 시기에 후두 발달을 위한 기초를 형성해야만 한다. 거슬러 올라가 기억해 낼 수 있는 그 시기 이전에 후두 발달의 형성을 위한 기초를 놓아야만 후두가 언어 기관이 될 수 있다. 

그 다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세 번째가 있다. 사람이 스스로를 통해서, 달리 말하자면 한 현신에서 다음의 현신으로 건너가면서 자신의 내면에 지니는 것을 통해서 배우는 그것은 사고 세계 자체 내에서의 삶이다. 두뇌에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고의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삶의 초기에는 아직 그 기관의 조형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지니고 다니는 그 존재의 의미에 따라 두뇌를 사고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일단은 형성해 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출생 직후의 두뇌 상태는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힘들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전생에 따라 고유한 존재로서 자신이 과연 무엇인지를 사고 내에 표현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 출생 후에 - 부모나 조상에게서 물체적으로 독립적이 되면 물려받은 두뇌의 특질을 스스로 변형시켜야만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서술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의 사상(事象)을 파악할 때, 그 사상 자체에 관해 말해진 것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것과 관련해 알려진 수많은 사실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본질적인 것은 하나의 진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화음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행을 하고자 하는 이는 이 점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 가지 수행이 제대로 이해되고 또 제대로 행해졌을 수 있다. 그렇지만 수행자가 영혼의 조화를 위해 그 첫 번째 수행의 일면성을 걷어 내는 또 다른 수행을 더하지 않는다면, 그 수행은 그릇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독서가 내적인 체험이 될 정도로 이 글을 내밀하게 읽는 이는, 내용을 잘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이 대목에서는 이런 감정을, 저 대목에서는 저런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는 영혼의 발달과 관련하여 각각의 감정에 어떤 비중이 할당되는지를 인식하게 된다. 

또한 그는 이런저런 수행을 자신의 특수한 개성에 따라 몸소 어떤 행태로 시도해야 할지도 알아낸다. 이 글처럼 체험되어야 하는 과정들에 관한 묘사가 다루어질 경우, 내용을 거듭해서 읽는 것이 필수적임이 밝혀질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시도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많은 것이 충분하게 이해되며, 이전에는 놓칠 수밖에 없었던 사상(事象)의 어떤 미묘한 면들을 이런 시도가 있고 난 연후에 알아차리게 된다는 것을 확신할 테니까 말이다. 

앞에서 밝힌 길을 갈 의도가 없는 독자라 하더라도 이 글에서 내면 생활에 유익한 것들을 많이 찾게 된다. 이를테면 생활의 규칙들이나, 수수께끼 같은 현상과 마주쳤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지에 대한 시사 등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인생 경험이 풍부하며 다양한 측면에서 삶의 가르침을 깨친 많은 이들은 여태까지 자기 머리에 따로따로 떠올랐던 것, 다시 말해서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자기 자신에게 충분할 정도로까지 생각지는 못했던 것이 연관 관계 속에서 해명되는 것을 느낄 때, 어떤 만족감을 찾을 수 있다. 

1909년 10월 12일, 베를린. 루돌프 슈타이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뉴스타파 - 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뉴스타파 - 목격자들 26회 "추석특집 1부, 채현국을 만나다"(2015.9.25)

뉴스타파 - 목격자들 27회 "추석특집 2부, 채현국을 만나다"(2015.10.2)

채현국 선생에 대한 기록은 변변한 게 없다. 출생연도 미상. 대구 사람. 서울대 철학과 졸. 부친인 채기엽과 함께 강원도 삼척시 도계에서 흥국탄광을 운영하며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거부였던 그는 유신 시절 쫓기고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언론인 임재경의 회고에 따르면 채현국은 <창작과 비평>의 운영비가 바닥날 때마다 뒤를 봐준 후원자였으며 셋방살이하는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사준 "파격의 인간"이다. 김지하, 황석영, 고은 등 유신 시절 수배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여러 민주화운동 단체에 자금을 댄 익명의 운동가, 지금은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 효암고를 운영하는 학원 이사장이지만 대개는 작업복 차림으로 학교 정원일이나 하고 있어 학생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던 채현국 선생을 지난 12월23일 조계사 찻집에서 어렵사리 대면했다. 검은 베레모에 수수한 옷차림, 등에 멘 배낭은 책이 가득 들어 묵직했다. 노구의 채현국은 우리 일행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깍듯이 존대를 했다.


기자-왜 그렇게 인터뷰를 마다하시나?

채현국 - "내가 탄광을 한 사람인데….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었다. 난 칭찬받는 일이나 이름나는 일에 끼면 안 된다."

기자-탄광사고는 다른 탄광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채현국 - "그게 결국은 내 책임이지. 자연재해도 아니고…."


흥국탄광이 설립된 것이 1953년. 열일곱 살 때부터 채현국은 서울에서 연탄공장을 하며 부친의 일을 돕기 시작했고 10여 년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도계에 내려가 73년까지 회사를 운영했다.

기자-젊어서는 큰 기업가였고 현재 학원 이사장인데, 어르신 70 평생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평전이나 자전에세이 같은 것도 없고.

채현국 - "절대 쓰지 않을 거다. 주변 사람들한테도 부탁했다. 쓰다 보면 좋게 쓸 거 아닌가. 그거 뻔뻔한 일이다. 난 칭찬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기자-죄송하지만 연세도 잘 모르겠다. 몇 년도 생이신가?

채현국 - "호적에는 1937년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35년생이다. 올해 일흔아홉."

기자-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쓴 글에 보면 "채현국은 거리의 철학자, 당대의 기인, 살아있는 천상병"이라는 대목이 있다.

채현국 - "하하하… 거지란 소리지."

기자-어쨌든 주류 모범생은 아니신 듯하다.(웃음)

채현국 - "근데 시험을 잘 치니까 내가 모범생으로 취급되고. '저러다 언젠간 출세할 거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10여 년 전부터 내게 성을 내는 친구들이 있다. '이 새끼, 출세하고 권력 가질 줄 알았는데 속았다'고….(웃음)"

기자-출세는 안 하신 건가, 못 하신 건가?

채현국 - "권력하고 돈이란 게 다 마약이라…. 지식도 마찬가지고. 지식이 많으면 돈하고 권력을 만들어 내니까…."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채현국 선생과의 인터뷰는 긴 실랑이 끝에 몇 가지 약속을 전제로 성사되었다. "절대로 자선사업가, 독지가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것" "미화하지 말 것" "누구를 도왔다는 얘기는 하지 말 것."

기자-도움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도운 사실을 숨기나?

채현국 - "난 도운 적 없다. 도움이란, 남의 일을 할 때 쓰는 말이지. 난 내 몫의, 내 일을 한 거다. 누가 내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지는 몰라도 나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다."

기자-왜 안 되나?

채현국 - "그게 내가 썩는 길이다. 내 일인데 자기 일 아닌 걸 남 위해 했다고 하면, 위선이 된다."

기자-한때 소득세 10위 안에 드는 거부였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떠신가?

채현국 - "난 여섯번 부자 되고 일곱번 거지 된 사람이다. 지금은 일곱번짼데 돈 없는 부자다.(웃음) 돈은 없지만 학교 이사장이니까. 개인적으론 가진 거 없다. 보증 불이행으로 지금도 신용불량자다."

기자-탄광업에선 완전히 손 떼셨나?

채현국 - "73년도에 탄광 정리해서 종업원들한테 다 분배하고 내가 가진 건 없다."

기자-어떻게 분배를 했나?

채현국 - "광부들한테 장학금 주기 시작해서 그 자식들 장학금 주다가 병원 차려서 무료 진료하다가… 마지막에 손 털 때는 광부들이 이후 10년씩 더 일한다 치고 미리 퇴직금을 앞당겨 계산해서 나눠줬다."

기자-73년이면 오일쇼크로 탄광업이 황금알 낳는 거위였을 텐데 왜 기업을 정리했나?

채현국 - "경기 좋을 때였다. 근데 72년도에 국회 해산되고 유신 선포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곤 '이제 더 이상 탄광 할 이유가 없겠다'고 결론 내렸다. 내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군사독재 무너뜨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왔는데…."

기자-그럴수록 돈을 벌어서 민주화운동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채현국 - "사업을 해보니까… 돈 버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더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돈 쓰는 재미'보다 몇천배 강한 게 '돈 버는 재미'다. 돈 버는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돈이 더 벌릴지 자꾸 보인다. 그 매력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떤 이유로든 사업을 하게 되면 자꾸 끌려드는 거지. 정의고 나발이고, 삶의 목적도 다 부수적이 된다."

기자-중독이 되는 건가?

채현국 - "중독이라고 하면, 나쁜 거라는 의식이라도 있지. 이건 중독도 아니고 그냥 '신앙'이 된다. 돈 버는 게 신앙이 되고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된다. 그래서 '아, 나로서는 더 이상 깜냥이 안 되니, 더 휘말리기 전에 그만둬야지' 생각했다."

기자-부친이신 채기엽 선생도 중국에서 크게 사업을 일으켜 독립운동가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신 걸로 알고 있다. 큰돈을 만지면서 돈에 초연하기는 부친한테서 배우신 건가?

채현국 - "우리 아버님도 일제 치하 왜곡된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성공 자체를 그리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부끄러운 시절에 잘산 것이 자랑일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과거 얘기를 나한테 하신 적이 없어서, 내가 아는 것도 다 남한테 드문드문 들은 거다."


대구 부농의 독자였던 부친 채기엽은 교남학원 1기 졸업생으로 시인 이상화 집안과 교분이 깊었다. 이상화의 백형인 이상정 장군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걸 알고 상하이(상해)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중국에 잔류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트럭운송업, 제사공장, 위스키공장을 하며 손대는 일마다 크게 성공했다. 독립운동가들을 먹이고 재우고 돈 대준 대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도 46년 귀국할 때는 빈손이었다.

기자-일제하 지식인 중에 사회주의에 경도된 사람이 많았는데 아버님은 어떠셨나?

채현국 - "아주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사상이나 이념 그런 거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셨다. 아버님도 나도, 지식이나 사상은 믿지 않는다."

기자-서울대 철학과까지 나오신 분이 지식을 안 믿는다니?

채현국 -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다.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기자-반드시?

채현국 - "반드시!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이, 옳은 소리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는 법이다."


부친이 큰 사업가였지만 채현국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지 못했다. 사업은 부침이 심했고, 부친의 종적이 묘연할 때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가계를 꾸린 적도 적지 않았다. 위로 형이 한 분 계셨는데 휴전되던 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대 상대 4학년이던 형은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이제 우린 영구분단이다. 잘 살아라…" 한마디뿐이었다. 형의 죽음으로 채현국은 열일곱 살에 집안의 11대 독자가 되었다.

기자-서울대에 입학해서 연극반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다.

채현국 - "한 게 아니라 만든 거다. 그때 이순재가 철학과 3학년이고 내가 1학년이었는데 순재더러 '우리 연극반 하나 만들래?' 해서…."

기자-이순재씨가 선배라면서 왜 반말을 쓰시나?

채현국 - "나이로는 순재가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내가 중학 때부터 후배한테는 예대(禮待)하고 선배한테는 반말했다. 나랑 친구 할래, 선배 할래? 물어보고 친구 한다고 하면 반말로…. 후배한테 반말하는 건 왜놈 습관이라, 그게 싫어서 난 후배한테 반말하지 않는다."

기자-원래 조선 풍습은 후배한테 반말 안 쓰는 건가?

채현국 - "퇴계는 26살 어린 기대승이랑 논쟁 벌이면서도 반말 안 했다. 형제끼리도 아우한테 '~허게'를 쓰지, '얘, 쟤…' 하면서 반말은 쓰지 않았다. 하대(下待)는 일본 사람 습관이다."

기자-어쨌든 사업하는 집안 자제로 일류대까지 갔는데 왜 연극을 할 생각을 했나?

채현국 - "교육의 가장 대중적인 형태가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글자를 몰라도 지식이 없어도, 감정적인 형태로 전달이 되고. 지금도 난, 요즘 청년들이 한류, 케이팝 하는 거 엄청난 '대중혁명'이라고 본다. 시시한 일상, 찰나찰나가 예술로 승화되고… 멋진 일이다."


대학 졸업 후 채현국이 선택한 직업은 중앙방송(KBS의 전신) 공채 1기 연출직이었다. 그러나 입사 석달 만에,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드라마를 만들라는 지시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마침 흥국탄광도 부도 위기였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연 360%의 사채를 쓰며 겨우 위기를 막고, 이후 10여 년간 사업에만 전념했다.

기자-그렇게 고생해서 일군 사업인데, 아깝지 않나?

채현국 - "아깝지 않다."

기자-기업을 제대로 키워서 돈을 벌어 좋은 일에 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채현국 - "그거 전부 거짓말이다. 꼭 돈을 벌어야 좋은 일 하나? 그건 핑계지. 돈을 가지려면 그걸 가지기 위해 그만큼 한 짓이 있다. 남 줄 거 덜 주고 돈 모으는 것 아닌가."

기자-기업가가 자기 개인재산을 출연해서 공익재단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채현국 - "(흥분한 어조로) 자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다 이 세상 거지.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데, 재단은 무슨…. 더 잘 쓰는 사람한테 그냥 주면 된다."

기자-그렇게 두루 사회운동가들에게 나눠주셨지만 개중에는 과거 경력을 입신과 출세의 발판으로 삼거나 아예 돌아서서 배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채현국 - "돈이란 게 마술이니까… 이게 사람에게 힘이 될지 해코지가 될지, 사람을 회전시키고 굴복시키고 게으르게 하는 건 아닐지 늘 두려웠다. 그러나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다. 비겁한 게 '예사'다. 흔히 있는, 보통의 일이다. 감옥을 가는 것도 예사롭게, 사람이 비겁해지는 것도 예사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자-서운하거나 원망스러운 적 없으신가?

채현국 -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

기자- 보통 선생 연배에 이른 분들을 뵈면, 4·19에 열렬히 참여하고 독재에 반대했던 분들이 나이 들며 급격히 보수화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의제든 종북이냐 아니냐로 색칠을 해서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시하는데, 이런 세대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채현국 - "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다.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살고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 아닌가. 그중에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 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이다. 이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남의 사이가 나빠져야만 말발 서고 화목하면 못 견디는…. 난 그걸 장의사적인 직업이라고 한다."

기자-그럼 산파적인 직업은 뭔가?

채현국 - "시시하게 사는 사람들, 월급 적게 받고 이웃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들…. 장의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실제 장의사는 산파적인 사람들인데. 여하튼 갈등을 먹고 사는 장의사적인 사람들이 이런 노인네들을 갈등 속에 불러들여서 이용하는 거다. 아무리 젊어서 날렸어도 늙고 정신력 약해지면 심심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심심한 노인네들을 뭐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꾸며 가지고 이용하는 거다. 우리가 원래 좀 부실했는데다가… 부실할 수밖에 없지, 교육받거나 살아온 꼬라지가…. 비겁해야만 목숨을 지킬 수 있었고 야비하게 남의 사정 안 돌봐야만 편하게 살았는데. 이 부실한 사람들, 늙어서 정신력도 시원찮은 이들을 갈등 속에 집어넣으니 저 꼴이 나는 거다."

기자-젊은 친구들한테 한 말씀 해 달라. 노인세대를 어떻게 봐달라고….

채현국 -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기자-요즘 청년들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보시나?

채현국 - "아주 고마워! 젊은 사람들 그렇게 하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살아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날조 조작하는 이 언론판에 조종당하지 않고 그렇게 터져 나오니 참 고마워. 역시 젊은 놈들이 믿을 만하구나. 암만 늙은이들이 잘못해도 그 덕에 사는구나 하고…."

기자-정약용 같은 사람은 죽기 훨씬 전에 자기 비문을 썼다는데, 만일 그런 식으로 선생의 비문을 스스로 쓴다면 뭐라고 하고 싶으신가?

채현국 - "우리 학교에 가면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돌멩이에 쓰여 있다. 원래 교명을 쓰려고 가져왔는데 한 귀퉁이가 깨져 있었다. 깨진 돌에 교명 쓰는 게 안 좋아서 무슨 다른 말 한마디를 새겨볼까 하다가 그 말이 생각났다. 학생들한테 '이거 어떠냐?' 물었더니 반응이 괜찮더라. 비관론으로 오해하는 놈도 없고."

기자-그 말이 비관론이 아닌가?

채현국 - "아니지. 적극적인 긍정론이지. 쓴맛조차도 사는 맛인데…. 오히려 인생이 쓸 때 거기서 삶이 깊어지니까. 그게 다 사람 사는 맛 아닌가."

기자-그럼 비문에 "쓴맛이 사는 맛이다" 이렇게?

채현국 - "그렇게만 하면 나더러 위선자라고 할 테니 뒤에 덧붙여야지.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하고.(웃음)"

기자-"쓴맛이 사는 맛이다…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뭐가 인생의 단맛이던가?

채현국 - "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고 그런 마음이 서로 통할 때…. 그땐 참 달다.(웃음)"

당분간은 쓴맛도 견딜 만할 것 같다. 선생과 함께한 시간이 내겐 "꿀맛"이었다.

출처:한겨레_녹취 김혜영(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


채현국(79) 양산 효암학원(효암고·개운중) 이사장. 기자가 그를 처음 만난 건 80년대 후반이었다. 대학 다닐 때 진주에서 박노정 시인의 소개로 채 이사장께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양산에 학교가 있었지만 진주에 자주 오셨다. 부인(윤병희 경상대 명예교수)이 진주에 직장을 두고 있기도 했지만, 진주사람들도 그를 좋아했다.

그때 채 이사장을 만나면 사실 겁부터 났다. 늘 만나면 책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 특히 서점에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책을 자주 거론하셨다. 대학생이니까 분명히 읽었을 것으로 알고 말씀하셨다. 채 이사장의 말씀을 듣기만 했고 대답은 늘 '예'만 했던 것 같다. 그런 다음 채 이사장이 언급했던 책을 사서 읽어본 기억이 난다.

효암고에 몇 번 놀러간 기억이 난다. 대학 선후배들이 그 학교에 교사로 있었다. 그때 채 이사장에 대해 들은 말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대부분 사학재단은 전교조를 꺼리는데 채 이사장은 전교조 출신을 교장과 교감으로 채용하고, 교사를 채용하는데 돈 한 푼 안 받는다는 것. 대학 선후배들이 그 학교에 교사로 채용되었는데, 실제로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노정 시인은 "교사를 소개해 주었더니 돈을 요구하기는커녕 좋은 사람 소개해 주어 고맙다며 밥을 사주시더라"고 할 정도였다.

한동안 채 이사장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1년 전 <한겨레> 인터뷰(2014년 1월 4일) 때 했던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노인 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라는 '채현국 어록'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년 만에 채 이사장은 또 울림을 주었다. 김주완 기자(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가 그를 인터뷰 해 <풍운아 채현국>(도서출판 피플파워)을 펴낸 것이다. 이 책에는 '거부(巨富)에서 신용불량자까지 거침없는 인생'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김주완 기자는 네 차례 채현국 이사장을 인터뷰 해 그 내용을 풀어놓았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절대 훌륭한 어른이나 근사한 사람으로 그리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채현국 이사장답다. 사람들은 그를 '가두의 철학자' '맨발의 철학도'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후원자' '이 시대의 어른' 등이라 표현한다. 김주완 기자는 "그의 삶은 바람과 구름을 몰고 다녔고 지금도 그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울림은 계속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채기엽·채현국 부자는 1960년대 우리나라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거부였다. 아버지 채기엽(1907~1988)은 1952년 서울에서 연탄공장을 차렸고 1956년 흥국탄광회사를 설립했다. 채기엽은 강원도 사북탄광을 개발할 때 큰 일을 했다. 사북역 광장에 있는 '채기엽 선생 공덕비'가 이를 증명한다.

채기엽은 이후 무역·목축·임산·조선·해운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늘렸고, 경남대학교의 전신인 옛 해인대학이 기틀을 마련하도록 지원했다. 그후 양산시 웅상에 현재의 효암학원을 설립했다. '효암'은 채기엽의 호다.

채현국 이사장은 서울대 다닐 때 탤런트 이순재(2년 선배)와 함께 연극반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연락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 번 전화를 해서 '이 자식, 알면서 전화도 한번 안 했냐'고 하니 '지금도 욕하는데, 뭐 욕 먹으려고 전화하냐' 하더군"이라며 웃었다. 채현국 이사장과 인연이 깊은 문인, 정치인, 언론인이 많다. 채 이사장이 해직기자들과 계간 <창작과 비평>을 도운 사실은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언론계 인사나 문인이면 안다. 

임재경(언론인)은 2008년 한 글에서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헤어질 때 차비를 쥐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셋방살이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한 채씩 사주는 파격의 인간"이라며 "흥국탄광에서 일했던 친구들 중에 집 장만하는데 채현국의 신세를 진 사람은 숫자가 훨씬 여럿"이라고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는 채 이사장은 정치인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난 그런 데(정치판) 안 간다니까. 나는 친구가 해도 안 가요. 고형곤 선생 아들이 고건이라고 총리했습니다. 또 대학 동기생으로 곧잘 친한 서울대 총장 했던 이수성도 총리했는데 근처에도 안 가요. 그 자리에 있을 땐 전화 한 통화도 안 했어요. … 정말 권력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책에서는 울림을 던지는 말이 많다. 남은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채 이사장은 "좀 덜 치사하고, 덜 비겁하고, 정말 남 기죽이거나 남 깔아뭉개는 짓 안 하고, 남 해코지 안 하고 …. 그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살 만하지"라고 대답했다. 채 이사장은 "다양한 가치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계산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정치하는 사람, 권력 가진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그는 "그 사람들도 남의 말 전혀 안 듣는 사람들이죠. 이용하는 것 외에는 남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죠. 이용감이 아닌 남은 전부 귀찮은 존재들이야. 그런 놈을 내가 뭐하러 좋아해요"라며 "권력자나 정치가뿐 아니라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성 있는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내 명성을 내주고 나에게 쩔쩔 매주는 사람 이외에는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채현국 이사장이 "나이 먹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농경사회에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는 겁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욕망이 커봤자 뻔한 욕망밖에 안 되거든. 지가 날 수도 없고 기차 탈 수도 없고 자동차도 못 타니까 그랬는지 확실히 농경사회의 노인네는 경험이 중요했지.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입니다. 먼저 안 건 전부 오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되죠. 이게 작동을 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하고 점점 더 욕구만 남는 노욕 덩어리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어버이연합 같은 완고한 노인들도 많지 않느냐"고 했더니, 채 이사장은 "그 사람들이야말로 제일 겁많은 비겁한 사람들로 보이거든요. 그 완고를 드러내는 게 이미 비겁하고 겁이 나서 그런 완고를 가장해서 꾸미는 거죠. 버러지 정도의 의지도 없기에 저렇게 추악한 걸 인정 못하죠. 용기가 있으면 자기가 그렇게 하면 추악해진다는 걸 인정할 줄은 알아야죠. 그 인정도 못하는 것 보십시오. 얼마나 용기가 없고 비겁한 사람들입니까"라고 말했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고 한 것에 대해, 그는 "생각해야 할 걸 생각 안 했고, 배워야 할 걸 안 배웠고, 습득해야 할 걸 습득 안 했고, 남한테 해줘야 할 일 안 했어. 저 사람들은. 내 순간 매 순간 안 했어. 젊은 날에, 열 살 때, 스무살 때, 서른 살 때 늘 해야 할 걸 안 했어. 남 배려해야 할 능력이 생겼을 때 남 배려 안 했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 이사장은 "불쌍한 사람들이야. 자기 할 일을 안 하기도 했지만 잘못된 시절에 순전히 잘못된 통치자들에 의해서 잘못된 것만 하나 가득 배워가지고 저렇게 된 건데…"라며 "그 사람들 6․25 때 살인이 정의라고 해서 열심히 살인한 사람들이야. 그걸 생각해야지. 살인을 정의로 알고 살인한 사람들을"이라고 강조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웃대가리만이 아니라 그 웃대가리를 이용해 처먹는 집단. 조선조에 양반이라 하고 선비라는 그 집단. 성실하고 마음씨 좋은 놈들은 탈락했지만 나머지는 그 집단이 남아서 일제 때 재미를 봤거든요. 이 집단이 해방이 되고 나서 지리산 속에서 빨치산으로, 보도연맹으로 죽기도 하지만, 큰 덩어리는 또 이승만이 밑에서 그대로 해먹고, 북쪽은 북쪽대로 김일성이한테 붙어서 그래도 해먹고, 이승만이가 쫓겨서 축출 당하고 나니까 또 박정희한테 붙어서 그대로 해먹습니다.

이 집단, 자기네 대표는 언제 죽더라도 우리는 살 수 있다는 이 집단. 불특정인인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이것들은 지역과 학연과 혈연, 혼인까지 맺은 집단입니다. 약간의 변동이 있을 뿐이지 그 덩어리 전체는 동일한 것들로, 앞잡이 해먹고 이용해먹는 이 집단은 언론이 다루지 않는 한 위에 보이는 그것들에게 또 협조합니다. 위에 보이는 이명박이나 바라고 박근혜나 바라면 이 놈들을 또 살려주는 결과가 됩니다. 문제는 이 놈들입니다. 요놈에는 나도 끼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여기 끼니까 지금 이사장이라도 해먹잖아요."

채현국 이사장은 책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에 정답은 없다. 틀리다는 말도 없다. 다른 게 있을 뿐이다. 정답은 없다. 해답이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죽음이 불안과 공포라는데, 사는 것 자체가 불안과 공포 아닌가? 죽음이란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쉰다는 것이다."

출처:오마이뉴스


··········


사회자(이하 사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배가 침몰하는데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본 온 국민은 엄청난 충격과 비탄에 빠져 지내야 했습니다. 꽃피지도 못한 어린 생명이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무능한 정부를 욕하기도 했고, 구조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와 해경, 승객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잇속만 채운 해운회사와 그들을 제대로 감시 못한 감독기관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사고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채현국(이하 채)- 침몰하는 배에 갇혀 느껴야 했던 아이들의 불안과 공포가 내 일처럼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현재 양산에서 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어서 항상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세월호 사고가 나기 직전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갔다 왔어요. 어린 목숨이 무더기로 희생됐고, 어른들의 무책임과 정부의 무능 때문에 그들을 차디찬 바다에서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가슴이 아파요. 대통령과 청와대, 관련 공무원들이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하고,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성유보(이하 성)- 한반도의 4월과 5월, 하늘이 저리도 푸른데 온 국민은 한 달째 상주가 되어 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0일 안산의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는데 유가족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세 가지 문구,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를 보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가족들의 슬픔과 눈물, 그분들의 무력감과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참 막막하더군요. 그날 저녁 문화광장에서 열린 2천여 고교생들의 촛불문화제를 맨 뒷자리에 앉아 함께했는데, 미풍에 일렁이는 촛불들이 마치 300여 세월호의 혼령들이 자신들을 잊지 않기 위해 모인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한 환상에 잠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슬픔만이라도 함께 나누는 일에 더 많이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이런 참사가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채- 난 1960년대 후반 한때 장항에서 1천톤짜리 배를 만든 선박회사의 책임자였습니다. 그래서 선박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다르게 느낍니다. 20년이 지난 노후 선박을 5년, 10년 이상을 연장해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해 준 관료와 정치인들의 책임이 큽니다. 해운회사의 로비를 받아 관련 법규를 만든 이들이 누구입니까? 개인과 집단의 끝없는 탐욕과 심각한 부패가 이번 참사의 배경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왜곡된 가치관이 곪아 터진 것입니다. 비단 해운 분야뿐 아닙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봅시다. 이미 노후된 고리 원전은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릅니다. 한반도 전체를 재앙 덩어리로 만들 수 있는 원전의 위험에 대해서도 이참에 다시 조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 이미 침몰이 예고된 ‘사고뭉치’ 배의 운항을 허용한 해운당국의 무모함, 무지함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입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탈출하라”는 한마디 없이 먼저 도망쳐 나온 선장과 선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데 공감합니다. 다만, 정권·관료·언론이 끝내는 이들에게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경계합니다. 이들보다 훨씬 더 큰 원인 제공자들인 ‘해운 마피아’를 비롯해 관료사회에 대한 개혁이 또다시 유야무야로 끝나지 않을까 두려움을 줄곧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 어쩌다 이렇게 국민의 안전에 대해 극단적으로 무능하고 윤리적 판단이 마비된 국가, 반지성적인 한국 사회가 됐을까요?

성- 저는 ‘어른’이라고 불리는 우리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아주 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순하고 착하기만 한 국민들만으로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를,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사실 일제 식민지배와 오랜 독재정권에 길들여진 우리 어른 세대는 “기다리라”는 명령어에 너무나 익숙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채- 물론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 해운회사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관리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지만, 이들을 보이지 않게 조종해 잇속을 챙기는 세력에 대해 민초들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불사합니다. 민초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그들을 경계하면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눈앞의 작은 적들에게 화풀이하지 말고 뒤에 숨은 세력에 대해 분노해야 합니다.

사회-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해법을 내놓고 있는데요.

채- 박 대통령은 타인의 불행이나 슬픔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진심은 감정입니다. 살이 부르르 떨리고 가슴이 찢어지는 유족의 아픔과 속수무책 바라만 봐야 했던 국민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느끼는 게 먼저입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 다시는 국민들에게 표를 애걸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돌아서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어 간선으로 장기 집권을 도모했습니다. 그는 국민들의 믿음을 배신하고, ‘국가 개조를 하겠다’면서 유신독재체제를 구축해 모든 비판의 목소리를 철저히 막았습니다. 국가의 실체는 국민입니다. ‘국가 개조’라는 발상은 아버지처럼 독재권력을 휘두르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국민들 위에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면서 훈계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성-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재난 구조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발표를 보면서 또 한번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격적인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청와대가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대한 책임을 면탈하고자 하는 것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청와대가 지키고자 하는 국가의 실체가 국민이 아니라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 걸까요? 그동안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빠져나가는 박 대통령의 정서적 도피의 절정을 보았습니다. 경주 리조트 참사나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들이 설사 과거로부터 쌓여온 ‘관행’ 탓이라 해도, 현직 대통령은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런 관행들을 청산하고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믿고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의 반이 박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습니까?

사회- 사고 대책으로 정부가 맨 먼저 한 일은 ‘수학여행 전면 금지’였는데요.

채- 그건 잘못된 일입니다. 6·25 전쟁통에도 피난지에서 천막 학교를 열었고 학생들은 소풍을 다니고 학예회를 즐겼습니다. 어른들이 너무 방정을 떨고 있어요. 수학여행을 무조건 중단시킬 게 아니라 ‘체험교육의 현장’으로, ‘안전교육의 실습 현장’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대규모 단체여행에 따른 위험을 염려한다면 반별로 1년 내내 따로따로 소규모로 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봅니다.

성- 교육 당국에서 수학여행을 체험교육 과정이 아니라 ‘일탈된 방종’으로 보는 잠재의식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세대 때도 수학여행은 ‘공부지옥, 입시지옥에서 며칠이나마 벗어나 일탈적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레크리에이션 행사’였습니다. 그렇다고 몇 달쯤 중단한 뒤에는 안전해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당장 전국의 관광버스업계, 숙박업계, 음식점, 기념품점 등 수학여행 관련 영세업자들이 개점휴업으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면, 학생들 안전에 지금보다도 더 소홀해질 수도 있습니다. 혹여라도 손해를 만해하고자 수익에 연연하다 더 많은 교통사고, 식중독사고라도 일어난다면 교육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덩달아 문화체육관광부도 전국의 문화예술계에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해서 ‘올스톱’ 상태입니다. 공영방송사의 한 간부는 기자들에게 검은 옷, 노란 리본 같은 추모 분위기 동참도 금지시켰다지요? ‘힐링음악’ 같은 ‘치유예술’을 통해 유족들은 물론 국민들의 정신적·정서적 트라우마를 위로하고 풀어줄 생각은 왜 못하는지…. 우리 국민들을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냉혈한으로 만들 작정인가요?

사회- 이번 참사를 통해 어떤 교육적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요?

채- 돈벌이만이 최고 가치인 천민자본주의에 오염되고, 관료사회의 명령어를 금과옥조처럼 받들어 모시면서, 부정과 부패를 목격하고도 ‘내 일이 아니니까’라고 눈감아 버리는 ‘착한 백성’들은 결코 국가적 재난에서 안전할 수 없습니다. 정권, 정치권, 관료사회, 관제언론들이 아무리 “가만히 있으라” 다그쳐도,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명령해도, 옳지 않으면 거부하고 저항할 줄 아는 국민이어야만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부당한 권력, 부당한 명령어에 불복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우리 한민족은 지난 역사 속에서 너무나 양순했습니다. 왕조시대에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만 되풀이했습니다. 일제 식민시대에는 총칼에 굴복했고, 해방 뒤에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아래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명령에 따랐습니다. 사회적 안전, 민주주의 그리고 더불어 모두 잘 사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지키려면, 우리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합니다. 생각하고 배우고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성- 세월호 사건을 교육혁명의 일대 전기로 삼아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자기결정권과 판단력을 길러주는 교육으로 바꿔야 합니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당장 학생들에게 물과 바다에 대해서 어떤 교육을 해왔나요? 몇 년 전 읽고 웃어넘긴 적이 있는 얘기인데, 한 선비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뱃사공, 자네는 논어를 읽은 적이 있는가” 하고 물었답니다. 뱃사공이 “못 읽었는데요”라고 답했더니 선비는 “자네는 인생의 반을 헛살았군” 하더랍니다. 조금 있다가 배에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사공이 물었습니다. “선비님은 수영을 배우신 적이 있나요?” 대답은 “배운 적 없네”였죠. 사공은 “선비님은 이제 인생 다 살았군요”라고 말했답니다. 그 우스갯소리가 쓰라린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사회- 지금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 또다시 재난이 터질지 모른다는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 재난, 인재의 위험을 예방하는 대책은 없을까요?

채- 사회 구석구석 안전망에 대한 총체적 재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 점검과 안전망 재구축에는 반드시 시민사회가 같이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고서 같은 서류에만 적힌 안전 매뉴얼이 아니라 일상적인 실천이 가능합니다.

사회- 이제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채- 불의에 대해 입을 다물면 공범이 됩니다.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일이고 내 책임이라는 자세로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가만히 있다가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은 앗긴 사건이 이번만은 아닙니다. 자신은 이미 대전으로 도피해 한강대교까지 폭파시켜 놓고는 “국군이 인민군을 38선 이북으로 몰아내고 있으니 서울 시민들은 안심하고 서울에 가만히 있으라”는 거짓 방송을 한 이승만 대통령이 그 원조입니다. 이승만은 나중에 자신의 말만 믿고 서울에 남았던 많은 시민들을 부역 혐의자로 몰아 죽였습니다. 명령대로 다리를 폭파했던 ‘충직한 부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습니다. 그런 지도자가 심판받기는커녕 “반공세력의 국부”로 군림한 ‘배반의 역사’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어를 권력자의 유산으로 남겨 놓은 겁니다.

성- 맞습니다. 이번 참사의 모든 책임자들에 대해, 불의에 대해, 터무니없는 부조리들에 대해 분노해야 합니다. 분노하지 않는 국민들로는 정의로운 사회, 인간 존중 사회, 안전한 사회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단순한 보복이나 보상심리는 희생양만 낳을 뿐, 제2·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함께 분노합시다.

출처:huffingtonpost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교육과 학교에 대한 정신 생활의 공적 관리가 현대에 들어 점점 더 국가 소관이 되어 버렸다. 교육 제도는 국가가 떠맡아야 할 안건이라는 생각이 현재 너무나 깊이 인간 의식 속에 뿌리박고 있다. 그런 의견을 뒤흔들어야 한다는 상상이라도 하는 사람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론가>로 치부된다. 하필이면 삶의 바로 그 영역에 가장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놓여 있다. 이미 암시된 방식으로 <세상 물정에 어두움>에 대해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들 스스로 얼마나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을 방어하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육 제도는 오늘날 인류의 문화 생활에서 쇠퇴하는 흐름의 모사에 불과한 특징을 유별나게 띠고 있다. 새로운 국가 형성은 그 사회적 구조에 있어서 삶의 요구 사항을 따르지 않았다. 그것은 예를 들어서 현대 인류의 경제적 요구 사항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를 보인다. 교육 제도를 종교 공동체에서 분리해 내어 완전히 국가에 종속시킨 이래로 교육 제도에 낙후성이라는 딱지를 눌러 붙였다. 

모든 단계에서의 학교가 인간을 양성하는 데에 있어서, 국가가 필수적이라 여기는 일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쓸모 있을지를 고려한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학교 제도에 반영한다. 보편적인 인성 교육이나 그와 유사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현대의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너무나 강하게 자신을 국가질서의 한 지체로 느끼기 때문에, 보편적인 인성 교육에 대해 말을 하면서도 실은 국가에 쓸모 있는 하인을 만드는 교육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이 관계에서 오늘날 사회주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유익한 것을 전혀 약속하지 않는다. 낡은 국가를 거대한 경제 조직으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국가의 학교가 그 경제 조직에서 연속되어야 한다. 그 연속이 현재의 학교가 지니는 모든 오류를 가장 심각한 방식으로 확대시킬 것이다. 국가가 아직은 교육 제도의 지배자가 아니었던 시대에서 유래한 것들이 지금까지 어느 정도는 학교에 남아 있었다. 물론 구시대에서 유래하는 정신이 다시 지배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발달된 인류의 새로운 정신을 학교로 들여가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국가를 경제 조직으로 전환시키고, 그 경제 조직 내에서 쓸모 있는 노동 기계나 될 사람들을 양성하도록 학교를 변형시킨다면, 거기에는 새로운 정신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단일학교>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 단일학교에 대해 이론적으로 아주 아름답게 상상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교를 경제 조직의 유기적 지체로 형성하면 결코 아름다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시해야 할 것은 학교가 완전히 자유로운 정신 생활 내에 자리 잡도록 하는 일이다. 무엇을 가르치고 교육해야 할지는 오로지 성장하는 인간과 개인의 소질에 대한 인식에서만 나와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인류학이 교육과 수업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기존의 사회 질서를 위해 인간이 무엇을 알아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하는가?"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 "어떤 소질이 인간 내부에 담겨 있는가? 그 인간 내부로부터 무엇을 계발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그러면 자라나는 세대로부터 항상 새로운 힘을 사회 질서로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면 사회로 들어서는 성인들이 그 사회와 할 수 있는 것이 사회 질서 내에 항상 살게 된다. 반면에 기존의 사회 질서가 성장하는 세대로부터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거침없이 발달하도록 양성된 개인적 재능들이 항상 새로이 사회 조직으로 공급될 때에만 학교와 사회 조직 간의 건강한 관계가 유지된다. 사회적 유기체 내에서 학교와 교육 제도가 자치적 근거에 세워질 때에만 그 상태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 생활과 경제 생활은 독립적인 정신 생활에 의해 양성된 사람들을 맞아들여야 한다. 국가 생활과 경제 생활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교육 과정을 지시해서는 안 된다. 한 인간이 특정한 연령에 무엇을 알아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하는지는 인간 천성에서 나와야만 한다. 국가와 경제는 인간 천성의 요구에 상응하도록 형성되어야 한다. "특정한 직무를 위해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필요한 사람인지 검증하라.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필요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고 할 수 있도록 교육하라."고 국가와 경제가 말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유기체의 정신적 지체가 독립된 행정으로부터 적합한 소질을 지닌 사람들을 일정 정도까지 교육시켜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경제는 정신적 지체에서 이룬 일의 결과에 맞추어서 조직해야 한다.

국가 생활과 경제 생활은 인간 천성에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 천성의 결과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유롭고 스스로에 근거하는 정신 생활이 인간을 세상 물정에 어둡게 양성하리라는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와는 반대로, 기존의 국가 조직과 경제 조직이 교육 제도와 학교 제도를 스스로 규제하는 경우에 그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이 생겨난다. 국가와 경제 내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이미 되어 버린 것에서 관점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되어 가는 인간의 계발을 위해서는 사고와 감성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원칙이 필요하다. 교육되어야 할, 수업을 받아야 할 사람을 자유롭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마주 대하는 경우에만 교육자로서, 교사로서 제대로 일할 수 있다. 작용 원칙을 위해서는 오로지 사회 질서의 본성이나 그와 유사한 것에 대한, 인간 천성에 대한 인식에만 의존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외부에서 주어진 지시나 법률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사회 질서를 공동체적인 관점을 따르는 사회 질서로 전환시키기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교육 제도와 학교 제도를 포함한 정신 생활이 독자적인 행정을 따른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그 사회적 유기체 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유기체의 그런 독립적인 지체로부터 양성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국가와 경제 생활에 의해 규제되는 학교에서는 그런 열정과 관심이 없는 사람들만 배출될 수 있을 뿐이다.

국가와 경제를 위해 완전히 의식적인 시민과 일꾼이 되기 전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지배권의 영향력을 마치 파괴하는 요소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국가와 경제로부터 독립적인 교사와 교육자의 힘을 통해서 되어 가는 인간이 성장해야 한다. 그런 교사와 교육자는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능력 역시 자유롭게 발달시킬 수 있다.

··········

지난 수백년간 시민 계급적 사회 조직 내에서 경제 생활의 의미가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정신 생활이 경제 생활에 강한 종속성을 띠게 되었다. 인간 영혼이 관여하는 자체적인 근거를 지니는 정신 생활에 대한 의식이 소실되고 말았다. 자연 과학과 산업주의가 그 소실에 협력했다. 현대에 들어 학교를 사회적 유기체 내로 편입한 방식 역시 그것과 관계가 있다. 국가와 경제 내의 외적인 생활을 위해 인간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이 학교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최우선적으로 영적인 존재인 인간이 사물의 정신 질서와의 연관성에 대한 의식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그 의식을 통해서 그가 살고 있는 국가와 경제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은 점점 덜 고려되었다.

두뇌들이 점점 더 정신적 세계 질서를 외면했고, 점점 더 경제적인 생산 관계만 주시했다. 시민 계급의 경우에는 그것이 영혼 생활의 느낌에 상응하는 방향이 되었다. 프롤레타리아적 지도자들은 그것에서 이론적인 인생관, 삶의 도그마를 만들어 내었다. 그 삶의 도그마가 미래에 학교 제도의 구축을 위한 근거가 되어야 한다면 파괴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회적 유기체에서 아무리 뛰어난 경제 형태라 하더라도, 그것에서는 정신 생활의 관리, 특히나 학교 제도를 위한 생산적인 제도는 절대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일단은 낡은 사고 세계의 전승을 통해서 학교 제도를 만들어 내야만 할 것이다. 새로운 삶의 형상화를 위한 주체가 되고자 하는 당들은 계속해서 낡은 세계관의 소유자들에게 학교 내의 정신적인 것을 관리하도록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는 지속되는 낡은 것에 대한 내적인 관계가 성장하는 세대들에게서 생겨날 수 없기 때문에, 정신 생활이 점점 더 피폐해지고 만다. 내적인 힘의 원천이 될 수 없는 인생관과 함께 자기기만적으로 존재함으로써 그 세대의 영혼이 황폐해질 것이다. 산업주의에서 생겨난 공동체 질서 내에서 사람들은 영혼이 비어 버린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들어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삼지적인 사회적 유기체를 향한 운동은 수업 제도를 국가 생활과 경제 생활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고자 한다. 교육계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사회적 지체는 그 분야에서 직접 활동하는 사람들 외에 다른 어떤 권력에도 의존해서는 안 된다. 수업 제도의 행정, 교육 과정과 교육 목표의 설정은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거나, 혹은 정신 생활에서 생산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만 관여해야 한다. 그런 인물들 각자가 수업이나 여타의 정신적 활동과 학제를 위한 행정 간에 그들의 시간을 분배해야 한다. 정신 생활의 판단을 아무 편견 없이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수업 활동을 하거나 다른 정신적 창조 활등을 하는 사람의 영혼 안에서만 교육 제도와 수업 제도의 조직과 행정에 필요한 활력이 자라날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무너진 공동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정신 생활의 새로운 원천이 어떻게 열려야 할지를 공평무사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 필시 그 사람만 우리 시대를 위한 이 사실을 완전히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마르크시즘과 삼지성"이라는 논설에서, 올바르기는 하지만 역시 일방적인 엥겔스의 다음과 같은 생각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인간을 지배하던 정부의 자리에 물건의 행정과 생산 과정의 관리가 들어선다." 엥겔스의 생각이 옳은 만큼, 경제적 생산 과정의 관리와 동시에 인간을 함께 지배했기 때문에 과거의 공동체 질서 내에서 인간 생활이 가능했던 것도 역시 진실이다. 그 지배가 멈춘다면, 지금까지의 지배 자극을 통해 인간 내에 작용했던 삶의 동력을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정신 생활에서 얻어야만 한다.

그 모든 것에 또 다른 점이 더해진다. 정신 생활은 스스로 단일성으로서 발달할 수 있을 때에만 풍부하게 성장한다는 점이다. 충족시키는 세계관, 인간을 떠받치는 세계관이 나오는 영혼력의 동일한 발달에서, 인간을 경제 생활을 위해 유능한 일꾼으로 만드는 생산적인 힘이 생겨난다. 건강한 방식으로 고차적인 세계관을 위한 동력도 역시 발달시킬 줄 아는 수업 제도에서만 외적인 생활을 위해 실용적인 인간이 양성되어 나온다. 건강하게 발달된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 유입되지 않는다면, 단지 물건만 취급하고 생산 과정만 관리하는 사회 질서는 점차적으로 아주 잘못된 길을 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 공동체 생활의 새로운 구축은 독립적인 수업 제도를 설치할 수 있는 힘을 반드시 얻어야만 한다. 인간이 인간을 낡은 방식으로 더 이상 <지배> 해서는 안 된다면, 모든 인간 영혼 내의 자유로운 정신이 완전히 강건해져서, 그것이 각 인간의 개인성 내에서 삶의 주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정신은 결코 억압되지 않는다. 경제 질서의 관점에서만 학교 제도를 조정하려는 체제는 그런 억압을 위한 시도가 된다. 그런 체제는, 자유로운 정신이 그 천성적 근거로 인해 끊임 없이 반항하도록 만들 것이다. 생산 과정의 관리와 동시에 학교 제도를 조직하려는 질서의 불가피한 결과로 사회구조에 지속적인 동요가 일어날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통찰하는 사람에게는, 교육 제도와 학교 제도의 자유와 자치를 강력하게 추구하는 인간 공동체의 구축이 가장 중요한 시대적 요구가 된다. 이 영역에서 올바른 것이 인식되지 않는다면, 이 시대의 다른 모든 필수적인 요구가 절대로 충족될 수 없다. 오늘날 정신 생활의 형상을 솔직한 시각으로 일별해 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의 분열성을, 그리고 올바른 것을 인식하기에는 인간 영혼을 위해 너무나 부족한 그것의 적재력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사고의 진정한 실천은 사고에 대한 올바른 의향과 올바른 느낌을 전제로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고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고가 인간의 내부, 즉 자신의 머릿속이나 영혼 속에서 진행된다고 믿는 사람은 사고에 대한 올바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고에 필요한 요구조건을 세우면서, 올바른 사고실천을 찾으면서, 항상 잘못 된 느낌으로 인해 오도되기 마련입니다. 사고에 대한 올바른 느낌을 획득하려는 사람은 이렇게 단언해야 합니다. '사물에 대하여 사고하려면, 사고를 통하여 사물을 탐구하려면, 일단 사고가 사물에 내재하여야만 한다. 사물들은 사고를 통해 구축되었어야만 하며, 오로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물들로부터 사고를 도출해 낼 수 있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은 사고에 대한 올바른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문장에 과연 현대인은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외부의 사물이 내게 감각작용을 일으키고, 뇌의 신경작용에 의해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고 여기는 현대인에게 이 문장은 그야말로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가 아닌가? 인지학적 내용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저마다 각양각색이기는 하지만, 그 반응의 양상이 어떻든 간에 그 저변에는 '깊은 두려움' 이 깔려 있다. 살아오는 동안 철저히 진실이라 믿고 있었던 삶의 내용이 정면으로 부정될 때의 그 깊은 두려움, 그런대로 잘 짜인 듯이 보이는 자신의 현존재가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것 같은 근원적인 두려움이 인지학을 처음 대하는 사람의 영혼 속에 항상 존재한다. 수많은 경로를 통해 받아들인 지식으로 구축된 자신의 삶을 진실이라 믿고, 그 견고함을 결코 무너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이 인지학에 입문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신지학]이나 [자유의 철학] 등 그의 주요 저서들과 강연들에서 슈타이너는 세계인식을 향한 출발점이 인간의 '사고'라 역설하였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말하는 '사고'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으며, 오히려 "이미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게 존재하는 사고의 은혜로 인해 개인이 자신을 주체로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존재하는 사고의 힘이 물체적 세계의 사물로 응축되어 드러나며, 바로 그래서 사물 '에서' 그것을 구축하는 사고를 그대로 알아볼 때에 인간이 '실용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다. 

세 강연 모두에서 괴테의 '대상물적인 사고' 를 그런 실용적인 사고를 위한 구체적인 예로 들었다. 인용된 문단의 마지막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에 근거하였음을 세 번째 강연에서 읽을 수 있다. 철학사적으로 보면 12, 13세기의 '보편성 논쟁' 에서 '유명론' 에 그 실세를 내준 스콜라학파의 존재론이 괴테의 자연과학적 방식을 통해 오늘날 다시금 인간 영혼생활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슈타이너의 생각이 이 문단에 함축되어있다.

그 자체로는 전혀 어렵게 들리지 않는 이 문단이 실은 크게 보아 유명론의 결과물인 현대 자연과학적 감각론, 더 나아가서 인간의 인식 과정에 대한 통설을 뒤집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자연과학적 학설들을 진실이라 믿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이 문장이 자신의 영혼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외부의 사물이 내게 감각작용을 일으키고 내가 그것에 대해 두뇌로 생각한다는 그 이론이 겉보기에는 인간을 아주 주체적인 존재로 만드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을 외부 세계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기계 구조로 전락시키고, 인간의 현존을 물질적인 차원에만 고착시킨다. 

인간을 수동적인 반응 구조로 여기는 생각은 산업혁명과 함께 인간의 영혼생활 역시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는 단계로 진전하였다.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발달사를 추적해 보면 어떻게 인간의 영혼생활인 의지, 감성, 사고가 단계적으로 기계화되어 왔는지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다. 17세기 말 증기기관의 발명을 계기로 인간의 의지를 기계화하기 시작했으며, 18세기 말에 활동사진과 녹음기술의 발달을 통해 인간의 감성을, 20세기 들어 발명된 컴퓨터를 통해 마침내 인간의 사고 역시 기계화하기 시작했다. 그 기술들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달해 왔으며, 오늘날에는 인간의 영혼활동을 대체하는 그런 기술의 발달만 유일하게 '진보' 라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슈타이너에 의하면 오로지 인간의 의식으로만 정신적인 사고존재가 순수하게 들어설 수 있기 때문에, 세계와 관념이 연결되는 '공연무대' 로서의 개인적 의식을 진정한 의미의 도덕이 창조되는 산실이라 하였다. 바로 그 '순수한 사고' , '물체적 감각세계로부터 자유로운 사고' , '신체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 가 인간 내부에 들어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신경 체계를 통해 드러나는 피상적 사고를 '절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잡생각' 이 많으면 창조적인 생각이 들어서지 않는다고. 

현대인의 일상생활이 그렇지 않은가? 의식이 들어서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일상에 대한 온갖 생각들이 자신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도록 버려둔다. 말하자면 일상생활로 인해 '정신없이' 바쁘다. 잡생각으로 정신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쁠 수밖에 없고, 정신이 없으니 몸이 더욱더 바쁠 수밖에 없다. 차 안에서 차를 미는 격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인공지능과 로봇, 3D 프린팅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킬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수년 전부터 꾸준히 나온다. 인간은 물론 사물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된다지만 정작 일자리에서는 ‘로그 아웃’되는 사람들이 많아질지 모른다. 일자리를 잃지 않게 하거나 잃더라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누고, 그럼에도 일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기본소득을 주면 어떨까.


스위스는 지난해 헌법에 기본소득 조항을 넣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비록 부결되기는 했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핀란드는 올해 1월1일부터 유럽 최초로 전국 단위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하기로 했다. 캐나다와 네덜란드도 기본소득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지구촌의 주요 관심사가 된 기본소득과 달리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34년 파이프 담배를 손에 들고 의자에 앉아 있다. 

Photo by Lucien Aigner/Three Lions/Hulton Archive/Getty Images


주당 35시간을 규정한 노동법을 개정해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프랑스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시민사회가 격하게 충돌했던 프랑스에서 이와 관련해 주목할만한 책이 나왔다. 지난해 중순 출간된 <아인슈타인이 옳았다>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왜 실업과 저성장의 해법인지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사회당에서 탈당해 새로운 진보 운동을 시작한 경제학자 피에르 라루튀루와 파리 도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도미니크 메다 교수이다. 두 사람은 이 책에서 “노동의 양은 그것이 증가 추세를 보이든 감소세를 보이든 세련된 배분의 대상이 되어야지 현재처럼 야만적이어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서로가 서로를 희생양 삼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민자에 대한 차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런 희생양 찾기의 결과이다. 저자들은 경제 성장은 물론 사회 통합과 안정을 위해서도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토론을 시급히 재개해야 한다고 봤다.


이 책의 목적은 단순하다. 실업과 고용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다. 노동 조건 악화를 체념하며 받아들이거나 노동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는 모든 담화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에게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표지 사진(왼쪽)과 공저자인 피에르 라루튀루(오른쪽 위)와 도미니크 메다. 출처:nouvelle donne


책은 아인슈타인이 세계 대공황의 해법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했던 점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아인슈타인은 대공황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번 위기는 이전 위기들과는 매우 다르다. 생산방식의 급격한 발전에 따른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서 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1933년 발표한 이 글에서 대량생산에 따른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적절한 부의 분배가 없을 경우 과잉생산과 실업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4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첫째, 실업을 줄이기 위해 법정 노동 시간을 줄이자. 

둘째, 상품 생산에 비례하는 구매력을 보장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설정해야 한다. 

셋째, 화폐 유통량과 신용화폐의 양을 제한해야 한다. 

넷째, 독점과 카르텔로 자유경쟁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상품 가격을 제한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아인슈타인 이전 산업혁명 초기부터 거론되던 문제이다. (1841년 프랑스 정부는 8~12세 아동의 하루 노동시간이 8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노동시간 단축 주장이 실현된 초기 사례이다.) 다만 20세기 들어 좀 더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논의됐을 뿐이다.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시기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한 주요 인물로 포드 자동차를 설립한 미국의 기업가 헨리 포드를 들 수 있다. 포드는 1926년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이익을 더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포드는 ‘하루 5달러’라는 구호 아래 직원들의 임금을 두 배로 올린 지 2년 만에 노동시간 단축도 도입했다. 

포드는 “인도적인 측면에서만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머물러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본주의는 생산을 하는 기업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소비가 가능할 정도의 시간과 소득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 5일 노동에 6일 치 임금’이라는 제목이 붙은 인터뷰에서 포드는 “대다수 기업들이 하루 10시간 노동으로 돌아가는 한 미국의 산업은 오래 지속할 수 없다”며 “사람들이 생산품을 소비할 시간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헨리 포드 : 나는 왜 주 5일 근무를 도입했나(Why I Favor Five Days’ Work With Six Days’ Pay)

그는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변화를 이렇게 예상했다. “노동자들은 자동차를 가져야만 새벽부터 황혼까지 쇼핑을 갈 수 있다. 이는 무수히 많은 결과로 이어진다. 자동차는 사람들이 빠르고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발견할 기회를 준다. 이는 더 풍족한 식생활, 더 많고 더 좋은 생산품, 더 많은 책과 더 많은 음악, 즉 모든 것이 더 풍족해지고 더 부유해진 세상으로 이끌어준다.” 소비할수록 더 풍요로워진다는 박제가의 ‘우물론’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포드는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 발전의 족쇄가 아니며 오히려 이 같은 사회 혁신 없이는 경제 발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루 8시간 노동이 번영으로 가는 길을 열었듯이, 주 5일 노동은 더 큰 번영으로 가는 길을 열게 될 것이다. 여가는 노동자들에게 낭비되는 시간이라거나 일종의 계급적 특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의 이득을 더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포드의 제안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생각을 실천에 옮긴 기업가들은 소수에 그쳤다.


유토피아 같은 발상이라던 포드의 생각은 20여 년이 더 지나 실현됐다. 대공황이 수천만명의 실업자를 낳고 2차 세계대전이 수백만명을 희생시킨 뒤이다. 저자들은 “1926년에 주 5일 노동을 일반화시켰다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발생했더라도 이로 인한 피해는 훨씬 더 적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1830년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연간 노동시간은 3000시간이었다. 1996년에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1600시간이다. 노동 시간이 이렇게 줄어드는 동안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를 게으르게 만들고, 경쟁력을 해칠 것이라는 불만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저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요구한 것은 ‘주 4일 32시간 노동’이다. 중요한 것은 주간 노동시간을 몇 시간 줄이는 것보다는 출근일을 주 4일로 줄이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근일을 그대로 유지하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하루를 줄이는 방식이 고용증대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과정에서 임금을 삭감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내총생산에서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몫은 과거보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임금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몫은 1982년 67%에서 2008년 57%로 줄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003년 연례 보고서에서 소비자 부족 시대를 경고했다. 구매력의 하락으로 세계적인 경기 후퇴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비정규직 확대는 노동자들의 몫이 줄어드는 주요 원인이다. 일본 노동자의 32%가 고용 불안정 상태에 있고, 독일의 경우 400만명이 실업 상태에 있고 600만명이 시간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노동자들은 회사와의 임금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게다가 한 나라의 고용 불안정은 수출을 매개로 다른 나라로 확산될 수 있다. 저자들은 독일을 그 예로 들었다. 독일은 하르츠 법으로 노동유연화를 확대했고 이로 인한 비정규직 확대는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독일 수출품은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독일이 수출 증가로 이득을 본 반면 프랑스 등 독일 주변국들은 수출 감소와 성장률 둔화, 실업 증가를 겪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국들이 독일과 같은 전략을 따르게 될 경우 문제는 더욱 심화될 뿐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실업의 가장 주된 원인은 역시 생산성 증가이다. 2011년 경제학자 다니엘 코헨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양의 산업 생산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은 매년 4%씩 줄어든다. 코헨에 따르면 일자리 감소의 10~15% 정도만이 세계 무역과 연관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생산성 향상에 따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나 마린 르펜 등 각국의 극우파들이 말하듯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일자리를 뺏어가는 주요 원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생산성 향상은 결국 전보다 덜 일해도 된다는 뜻이기에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줄어드는 일자리를 적절히 나눠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이득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일은 사회 정의의 일부이다. 

저자들은 “일부 사람들은 우리들이 사회 정의를 국가가 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경우 포기해야 하는 사치품의 하나라고 믿길 원한다”며 “그러나 사회 정의는 더 나은 때를 기다리면서 포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확고한 의무이자 절대적인 긴급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정의를 재건하는 일은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라고 말했다.


저자들은 지금의 저성장, 실업난이 일시적이며 저금리 정책 등으로 성장세를 회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들은 “노동시간을 대폭적으로 단축할 경우 몇 년 안으로 대량실업에서 벗어나는 것은 진실로 가능하다”면서 “성장의 기적적인 회복에 기대거나 노동시간의 대폭적 감축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없다면 어떤 위기 탈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49시간을 일하는 노동자의 비율. 한국은 주요 선진국 중 초과근무자의 비율이 가장 높다. 출처:블룸버그


노동시간 단축은 생활 전반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과도한 노동과 고용 불안정으로 ‘자기 착취’를 강요받는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소비자로서는 물론 부모로서, 아내나 남편으로서, 공동체의 삶을 고민하는 시민으로서의 삶에 더 충실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도 더 좋아지고 의료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여가 활동이 늘면서 오히려 관련 일자리가 늘어날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이민자를 공격하거나 이민자를 공격하는 정치 지도자를 뽑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 발표한 에세이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2030년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고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술 발전으로 시간당 생산량이 증가할 것이므로 조금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래도 아직 2030년은 멀었다. 아인슈타인과 포드, 케인스의 주장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지난달 30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오는 2월24일부터 매달 마지막 금요일 오후 3시에 조기 퇴근하는 ‘프리미엄 금요일’을 실시하기로 했다. ‘과로사’의 원조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이다.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참여할 지는 모르지만 일본의 경제인 단체인 ‘경단련’은 1300개 이상의 회원사들에게 참가를 독려하는 서한을 보냈다. 일본 다이이치생명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다수 노동자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경우 민간 소비가 16억달러정도(약 2조원)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블룸버그]Japan Wants Its Overworked Citizens to Start Weekends Early

블룸버그가 이 기사에서 인용한 일본의 한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보다 주당 49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일본보다 더 시급하게 노동시간 단축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도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봤다. 물가상승에 맞춰 최저임금을 조정하듯이 생산성이 증가할 경우 그에 비례해 의무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사회적 대타협의 하나로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

출처: 경향 향이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살아가면서 체험했던 것이나 행했던 것에 대한 일종의 회상을 자주 해 보면 아주 기이한 발견을 하게 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경험을 더욱더 의미심장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네 삶의 이 시기나 저 시기에 너는 무엇을 했었고 무엇을 말했었던가?"라고 자문해 보면, 실은 나이를 먹은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상당히 많이 했었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


이 관찰을 자주 하면, 이론적으로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완전한 생활 실천으로 고양시킬 수 있다. 인간이 실행해야 할 모든 것을 완전히 의식적인 이해력으로 실행해야 한다면, 모든 관계를 조망하는 지능으로 실행해야 한다면, 삶에서 그리 멀리 나아갈 수 없으리라는 점은 이론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단지 다음의 사실을 숙고해 보기만 하면 된다.


인간이 어느 연령기에 자신의 현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을 자신에게 행하는가? 인간이 언제 자신에게 가장 지혜로운 행위를 하는가? 

태어나서 부터, 지상의 현존에서 흘러 보낸 세월을 후일의 삶에서 되돌아보면 아직 기억해 낼 수 있는 바로 그 시기까지 그렇게 일한다. 사오 년 전에, 그리고 훨씬 더 이전에 했던 것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어린 시절의 특정한 시점에 이른다. 그 시점 이전으로는 더 이상 기억을 더듬어 올라갈 수가 없다. 부모나 다른 사람들이 그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말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은 그 특정 시점에까지만 이를 뿐이다. 사람이 자신을 나로 느끼기를 배우는 바로 그 시점이기도 하다. 


기억이 정상적인 삶의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는 그런 시점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 이전에 인간 영혼이 자신에게 가장 지혜로운 일을 행한다. 나중에 자신의 의식에 도달한 상태에서는 어린 시절의 첫 해들 동안에 잠재의식적인 영혼 근거로부터 실행하는 것처럼 그렇게 숭고하고 비범한 것을 인간이 스스로에게 행할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이 전생의 열매로 얻은 것을 출생을 통해 물체적인 세계로 들여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이 갓 태어나서는 예를 들어서 신체적 두뇌가 아직은 상당히 불완전한 도구다. 이제 인간의 영혼이 그 도구에 일단은 섬세한 구조를 만들어 내어서 영혼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의 매개가 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인간 영혼은 완전히 의식적으로 되기 이전에 이미 실제로 두뇌에 일을 한다. 그래서 두뇌가 전생의 결과로서 영혼의 소유가 되는 모든 능력, 소질, 성향 등을 실현하는 데 쓰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신체에 하는 그 일은, 인간이 나중에 완전한 의식을 가지고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 보다 훨씬 더 지혜로운 관점에 의해 이끌어진다. 그런데 이 시기에 인간이 자신의 두뇌를 조형적으로 완성시키는 일, 그 일만 하지는 않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