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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의 왜곡과 착각, '오리엔탈리즘'의 신화

'야만과 문명'이분화…'서구 문명의 연원은 동양' 외면


'서구문명의 운명, 너무나 짧은 인간의 운명이 현재 위협 받고 있다.(…) 오래 전부터 극동에서 온 여행자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 극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10세기 만에 이루어진 정신적인 변화보다 10년 만에 이루어진 정신적인 변화가 훨씬 강력하고 크다. 고분고분하다고만 알려진 아시아가 사실은 증오를 은근히 감추고 있었고, 그 증오를 행동으로 옮길 적절한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시아 전역은 해방되고 싶다는 마음을 은밀히 갈고 닦아 왔다.(…) 이제 아시아인들은 더 이상 서구가 우월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아시아인들은 다시 서로 손을 잡고 백인들과 대결하고 싶어 한다.'


다작을 통해 영향력을 확보한 작가 앙리 마시스가 1927년에 쓴 글이다. 앙리 마시스는 유럽의 가치와 정신이 점점 위협을 당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사실 앙리 마시스의 글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서구의 식민 지배에 놓였던 동방의 민족들이 여기저기서 일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와는 상황이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 9·11 테러,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세상을 뒤흔들만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중국과 인도 같은 새로운 강국이 부상하며 세계가 재편되면서 서구는 다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인 역사관에 영향을 받은 여러 작가들은 이 같은 '2천500년의 전쟁'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아보고자 과거를 돌아본다. '2천500년의 전쟁'은 안토니 파그덴의 저서 <전쟁 중인 세계>의 소제목이기도 하다.



서구 역사가들 '이분법적 사관'

안토니 파그덴은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저서를 통해 세계 역사를 전반적으로 묘사했다. '트로이에서 빛나던 불꽃은 몇 세기 동안 계속 탔지만 트로이인들, 페르시아인들, 페네키아인들, 파르티아인들, 사산조의 페르시아인들, 아랍인들, 터키인들이 차례로 세계의 주도권을 가졌다.(…) 이제 동양과 서양의 대결 라인은 변했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이라는 양대 축을 나누는 방식은 여전히 공고하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온 역사적인 기억이 기본을 이룬다. 정당한 역사적인 기억도 있고 왜곡된 역사적인 기억도 있다.'

저자 안토니 파그덴도 약간은 왜곡된 역사적 기억을 보이긴 한다. 기본적으로 그 역시 헤로도토스의 시각을 이어 받아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의 대결 구도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갖고 글을 풀어가기 때문이다. 

안토니 파그덴에 따르면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인과 그리스인 혹은 아시아인과 유럽인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소소한 정치적인 분쟁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란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도시, 나아가 유럽 도시들은 성격이나 사회 구조가 다르긴 했지만 개인주의적 관점으로 인간을 보는 등 공통점도 안고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그리스 역사를 강의하는 폴 카틀지 교수도 테르모필레 전투1)에 관한 자신의 저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세상을 바꿔 놓은 전투였다. 다음 글은 폴 카틀지 교수 저서의 소개글이다. '테르모필레 전투, 즉 스파르타인과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 간에 벌어진 전투는 자유와 노예제 사이의 충돌이었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한 마디로 고대 그리스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바꿔 놓은 전환점이었다.'

폴 카틀지 교수는 저서의 서문에서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와 7월 달 런던에서 일어난 테러를 통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테르모필레 전투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 대단히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만남'이란 전제군주제와 자유 사이의 충돌을 의미할 뿐이다.

이 같은 폴 카틀지 교수의 관점은 2007년에 개봉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300'을 통해 대중적이 되었다. 테르모필레 전투를 다룬 2시간짜리 이 영화는 미국에서 인기를 모았는데, 마치 근육질의 남자들이 흑인 혹은 중동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야만인들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비디오 게임 같다는 인상을 준다. 스파르타의 레오니우스 왕은 페르시아의 대사를 죽이기까지 한다. 마치 야만인들은 고귀한 인간의 법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듯한 논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야만'적 서구와 '문명'적 동양

그러니까 야만인들을 학살하는 게 서구가 말하는 문명인가! 이미 1898년에 독일의 정치학 전문가 하인리히 폰 트레이슈케는 다른 여러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논리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야만인들에게 국제법의 원칙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국제법은 한낱 미사여구로만 전락하게 된다. 검둥이 종족들을 처벌하려면 마을을 불태워야 한다. 그러한 혹독한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만일 독일 제국이 야만인들에게 국제법을 적용한다면 그건 독일 제국이 인간적이거나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약해 빠졌기 때문이다. 약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독일인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이미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는 나미비아에서 헤데로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20세기 최초의 인종 청소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고 그 후에는 나치즘을 내세워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하지 않았는가. 

영화 '300'을 보면 스파르타인들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기형아들을 죽이고 여성이 원로원에 진출하는 것을 금지시킨 무서운 스파르타인들이 아니던가! 영화에 등장하는 테르모필레 전투야말로 남성들의 정복 욕구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영화 '300'의 원작 만화를 지은 프랭크 밀러는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우리나라(미국을 지칭함)와 서구 세계는 현재 뭐든 할 수 있는 위험한 적과 마주하고 있다.'

폴 카틀지 교수는 페르시아 전쟁에 관한 페르시아의 자료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에 관한 정보는 쌓여가고 있으며, 이러한 정보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고전 역사를 가르치는 투라지 다리아애 교수는 페르시아 제국에는 노예 제도가 거의 실시되지 않았지만 그리스에서는 노예 제도가 대규모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또한 투라지 다리아애 교수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그리스에서의 여성의 지위보다 열악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페르시아의 시리우스 대왕이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는 최초의 헌장을 문서로 작성했다고 한다. 결국 유엔은 이 문서를 1971년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시리우스 대왕이 문서로 작성한 인간 권리 헌장에는 종교에 대한 관용, 노예제 폐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특별한 유럽'에 대한 신화

그렇다면 그리스의 승리가 야만인들에 대한 승리라는 관점은 문제가 없는가? 전쟁이 존재한 이래로 전쟁을 주도하는 인물들은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왔다. 미국이 수행한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에서도 지도자들은 '선과 악의 전쟁'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던가.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왜 4천50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서구인들은 여전히 그리스에 열광할까?

존스 홉킨스 대학의 마르셀 데티엔 교수가 냉소적으로 던진 대답을 들어보자. 

"어네스트 라비스의 글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 서구의 역사는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그 사실을 중등 교육 과정에서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 서구의 역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맨 먼저 만들어 낸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우리 서구에게 아름다움과 보편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만큼 우리 서구인들은 세상에 완벽하고 이상적인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문명을 이어 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 그래서 우리 서구의 역사는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믿음에 더욱 강력한 믿음이 따라 붙는다. '그리스인들은 다르다', '그리스인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 아닌가'와 같은 믿음이다. 이 같은 믿음은 전통 인문주의자들과 국가를 사랑하는 역사가를 배출하는 국가 신화에 꼭 필요하다."

결국 라비스의 결론은 이렇다. 어느 화창한 날 하늘에서 정치가 떨어져 고대 그리스에 자리 잡았다. 이 정치는 민주주의라는 기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이 내려 준 이 같은 역사는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에 이어 현재의 서구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었다. 서구 사회의 믿음은 확고하다. 서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모든 민족을 진정한 민주주의 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다. 

특히 19세기 역사가 쥘 미셸레는 고대 그리스 문명, 르네상스, 그리고 당시의 유럽을 하나로 연결하면서 유럽을 특별한 존재라고 했다.



서구 학자들, '선진 동양사' 몰이해

그런데 서구, 특히 유럽 중심주의에 새로운 반격이 일어났다. 존 M. 홉슨은 저서 <서구 문명에 존재하는 동양의 기원>에서 동양을 간과하고는 세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동양을 간과하게 되면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첫째, 동양은 500년 후에 자체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둘째, 동양은 세계 경제를 만들어 유지했다. 셋째, 동양은 유럽에 기술, 제도, 사상을 전파하며 서구의 태동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11세기 중국 송나라 시절에 최초의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송나라 왕조는 1078년에 철 12만 5천 톤을 생산했다. 영국이 철 7만 6천 톤을 생산하게 된 건 겨우 1788년이었다. 또한 중국인들이 주철 제조 같은 앞선 기술을 먼저 사용했으며, 이미 목탄 대신 코크스를 사용하여 산림 파괴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중국 송나라 왕조 때 운송, 에너지(물레방아 이용), 조세 및 무역, 대도시 개발, 농업 생산력과 녹색 혁명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먼저 이룩했다. 이 같은 변화를 서구가 따라잡은 건 20세기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 강대국들 가운데서도 중국은 1800년까지 최고의 위치였다. 그리하여 세계 경제는 중국 중심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한편 인도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인도의 많은 기술, 사상, 제도가 유럽으로 전파 되었으며, 근대 자본주의의 태동을 가능하게 했다. 중국의 기여가 없었다면 영국의 산업 혁명은 절대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강성한 무슬림 제국 역시 서구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많다. 

존 M. 홉슨은 유럽 중심 사고를 가진 연구가들은 두 가지 타입의 질문을 한다고 했다. "서구는 어떻게 해서 근대 자본주의라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는가?", "동양은 무엇 때문에 이 같은 쾌거를 이루지 못했는가?" 그러나 이 같은 질문 속에는 서구의 지배는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내포하고 있으며, 역사가도 이를 바탕으로 과거에 왜 서구가 지배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연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서구가 발전한 것은 유럽이 지닌 저력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오게 되며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축이 나뉘어진다. 그 가운데에 만리장성 같은 벽이 가로 막고 있으며 이 벽 덕분에 서구가 야만인들의 침략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야만'이 두려워 '야만적'이 되다

하지만 서구가 가리키는 '야만인들'이란 과연 누구일까?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야만인들이란 야만적인 것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츠베탕 토도로프가 반박하고 나섰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일부 민족이 온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새로운 저서 <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의 소개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우리가 야만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오히려 나중에는 우리가 더욱 야만스러운 짓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야만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오히려 야만적이 된다. 문명화된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나와 다른 타인도 인간으로 존중할 줄 안다.'

이처럼 문명화 되려면 두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다른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다른 곳의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도 아니며 상대주의에 끝없이 빠져들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는 일은 어려운 과정이다. 서구의 지식인들 가운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또 이런 글을 썼다. '오랫동안 계몽주의 사상은 개혁과 자유 사조에 영감을 주었다. 개혁과 자유 사조는 보편주의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원칙을 내세워 보수주의와 맞섰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오히려 서구 우월주의 사상에 빠진 보수주의자들이 상대주의와 싸우겠다며 계몽주의 사상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19세기 초에 나타난 낭만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무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제대로 된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를 모두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독선주의와, 모든 문화는 가치가 있다는 어설픈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복종시키거나 파괴하려는 건 오히려 계몽주의 사상의 실종이다.' 

그런데 정말로 계몽주의 사상의 실종이 맞는 걸까? 아니면 계몽주의 사상 자체가 잘못된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걸까? 

존 M. 홉슨에 따르면 18세기와 19세기에 형성된 유럽 정체성으로 인해 유럽 문명이 그 어느 문명보다 최고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고 한다. 홉슨은 "당시 유럽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했는데 이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유럽이 최고의 문명이라는 자신감으로 세계 정복에 나섰고, 제국주의는 그리 나쁜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유럽인들이나 제3세계에 연대 의식을 갖는 유럽인들은 이 같은 입장을 거부하고 있다. 끊임없는 토론과 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 주요 관련 서적

- 안토니 파그덴《전쟁 중인 세계 - 2천 500년에 걸친 동양과 서양의 싸움》

- 폴 카틀지《테르모필레 전투 : 세계를 뒤바꿔 놓은 전쟁》

- 잭 스나이더 감독 영화 <300>

- 존 M. 홉슨《서구문명에 존재하는 동양의 기원》

- 츠베탕 토도로프《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무슬림 윤리와 자본주의- 존 M. 홉슨

"우리가 현재 900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제2장에서 밝혔듯이 중동과 이슬람 북아프리카는 이 당시 문명의 요람이었다. 중동과 이슬람 북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지역이었으며 세계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또한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도 대단히 성장했다. 이 지역이 왜 이토록 경제적으로 발전했는지 알아보면 다음과 같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이 곳은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도시는 성장했으며 자본가들이 원거리 국제무역에 나섰다. 둘째, 무슬림 상인들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합리적인 자본가 투자가였다. 이들 무슬림 상인들은 세계 자본주의 활동에서 거래하고 투자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셋째, 클리어링 시스템, 화폐를 교환하고 예치하고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해주는 은행을 포함해 합리적인 제도가 탄생했다. 넷째, 800년부터 과학적인 사상이 빠르게 발전했다. 다섯째, 이슬람은 특별히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표현 대신 "무슬림 윤리와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 그래야 왜 오직 이슬람만이 중요한 경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고 왜 유럽은 전쟁에 몰입하며 정체를 겪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저서<서구문명에 존재하는 동양의 기원>중 297페이지


테러리즘을 이해한다?-츠베탕 토도로프

"유럽 대도시를 뒤흔든 테러범들에 대해 국제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자신의 문화와 종교적인 정체성과 집단주의에 미쳐 테러를 벌인다고 생각한다. 이는 서구가 하는 행동은 이성적인 것이고, 그들이 하는 행동은 그저 비합리적인 명분에 집착한다는 의미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그나마 이성적이려면(…) 우리가 살인자들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글의 속뜻은 테러범들에게는 원래 논리라고는 없고 살인 충동만이 몸속에 꿈틀거리고 있다는 의미다. 

엘리 바르나비는 "테러리즘을 우린 이해 못한다. 우리에게는 완전히 이질적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 표현은 우회적이다. 실제로 이 글의 속뜻은 이렇다. 우리 서구인들은 자유롭고 이성적이며 대단히 인간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테러리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혹은 이라크 사람들이 왜 자국 영토에 있는 외국 군대에 저항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이슬람이나 '문명의 충돌'이란 거창한 단어를 쓸 필요도 없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국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굳이 반유대주의란 말까지 쓰지 않아도 된다. 2006년에 자국의 인프라가 파괴된 것에 들고 일어났던 사건도 이해가 된다. 여기에 굳이 코란의 구절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중 146-147페이지


* <중동이해를 위한 100개의 열쇠>(2006)의 저자.

1)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지역에서 벌어졌던 페르시아군과 그리스 연합군 사이의 전쟁으로 레오니우스 왕을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 대부분이 크세르크세스왕이 이끈 페르시아군에게 전멸당하였다.

-르디 정기구독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해부학에 따르면, 사람 몸의 근육 구조는 두 종류가 있다. 근육의 가장 작은 부분에서 매끈매끈한 실들을 보여주는 민무늬근이 있고, 가장 작은 부분에서 규칙적인 가로무늬를 보여주는 가로무늬근이 있다. 그런데 민무늬근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근육이다. 예를 들어 매끄러운 내장의 근육은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으깨어진 음식물을 앞으로 밀어 보내는데, 인간의 의지는 이 운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밖에 눈의 홍채에 있는 근육도 매끄럽다. 눈은 이 홍채 근육에 의한 움직임을 통해서 적은 빛에 노출되면 동공이 확장되고 많은 빛이 흘러들면 동공이 수축된다. 이런 움직임 또한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다. 


반면에 인간의 의지에 따라 움직임을 조정하는 근육, 예컨대 팔다리를 움직이는 근육은 가로무늬근이다. 심장은 근육이면서도 이런 일반적인 특성에서 예외인 경우이다. 현재의 인간 발달기에는 심장이 의지의 지배를 받아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심장은 가로무늬근이다. 정신과학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제시한다. 심장이 늘 지금처럼 그렇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심장은 미래에 전혀 다른 형태와 변화된 기능을 갖게 될 것이다. 심장은 수의근이 되어가는 중이다. 미래에 심장은 인간 내면의 영혼적 충동의 결과가 될 그런 움직임을 실현할 것이다. 바로 지금 심장은, 심장의 움직임이 현재 팔을 들어 올리거나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의지의 표현이 될 미래에 얼마만한 중요성을 가질 것인지를 이미 그 구조를 통해 보여준다.


심장을 이와 같이 바라보는 것은, 이른바 혈액 순환과 심장의 관계에 대한 정신과학의 포괄적인 인식과 관련이 있다. 기계론적 · 물질주의적 생명론에서는 심장을 규칙적으로 혈액을 온몸에 보내는 일종의 펌프 장치로 본다. 여기서는 심장이 혈액 이동의 원인이다. 정신과학적인 인식은 매우 다른 것을 보여준다. 정신과학적 인식에서 혈액의 맥박과 전체적인 내적 가동성은 영혼적 과정의 표현이자 작용이다. 영혼적인 것은 혈액이 특정한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이다. 공포감으로 얼굴이 하얗게 되고 부끄러움을 타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핏속에서 영혼적 과정들이 거칠게 작용한 결과이다. 핏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혼 활동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표현일 뿐이다. 다만 혈액의 맥박과 영혼의 내적 자극들 사이의 관계가 신비스러울 만치 아주 깊을 뿐이다. 그리하여 심장의 움직임은 맥박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미래에는 심장이 인간의 영혼 속에 짜 넣어진 것의 효과를 자발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외부세계로 운반할 것이다.


·········· 발달의 오르막에 있는 또 다른 기관이 호흡기관, 그러니까 발화 도구인 호흡기관이다. 오늘날 인간은 이 호흡기관을 통해서 자신의 사고를 공기의 파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로써 인간은 내면에서 체험하는 것을 외부 세계에 새겨넣는다. 인간은 자신의 내적인 체험을 공기의 파동으로 변화시킨다. 이 공기의 파상운동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의 재현이다. 미래에 인간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내적인 본성을 점점 더 많이 바깥으로 형상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 방향의 발달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날 결과는 인간이 완벽의 경지에 도달한 자신의 발화기관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 - 자기 같은 사람 - 을 산출해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 발화기관들은 미래에 생식기관을 자기 안에 배아로 품고 있다. 그리고 남성 개체의 경우 사춘기에 변성(목소리의 변화)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발음 도구와 생식의 본질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관계의 결과이다.


·········· 내가 어떤 소식을 듣고 그에 관해 곧바로 어떤 판단을 내린다고 가정하자.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동일한 사태에 관해 첫 번째 소식과는 일치하지 않는 더 많은 소식을 듣게 된다. 이 때문에 나는 이미 내린 판단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 불리한 영향이 미친다. 맨 처음에 판단을 자제했더라면, 완전히 확실한 판단 근거를 가질 때까지 일 전체에 관해 내적으로 생각하는 데에서나 외적으로 말하는 데에서 ‘침묵’했었더라면, 사태는 전혀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판단하고 말할 때 신중을 다하는 것은 점차 ·········· 수행자의 특징이 된다. 


   ·········· 수행에서는 어느 한쪽의 감각만 육성되는 법이 결코 없다. ·········· 자연의 운행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도 나타난다. 성장과 발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은 모두 영혼의 온기를 발산한다. 쇠퇴와 파괴와 몰락 가운데 있는 것은 모두 영혼의 냉기라는 특성을 띠고 나타난다.


   이러한 감각의 육성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촉진된다. 이와 관련하여 ·········· 수행자가 준수하는 첫 번째 일은, 사고의 진행 과정을 통제하는 것이다(이른바 사고의 제어). ·········· 의미 있는 진실한 사고를 통해 개발되듯이, ·········· 사고의 진행을 내적으로 지배함으로써 개발된다. 의미 없고 논리적이지 못하고 순전히 우연적으로 어우러져 오락가락하는 사고가 ·········· 형태를 망쳐 놓는다.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에서 논리적으로 전개되면 될수록, 비논리적인 것이 배제되면 될수록, 이 감각 기관은 그만큼 더 그에 합당한 형태를 띠게 된다. 비논리적인 생각을 듣게 될 경우 ·········· 수행자는 곧바로 올바른 것을 차근히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발달을 촉진할 목적으로, 어쩌면 비논리적일 수 있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아무런 애정도 없이 벗어나서는 안 된다. 또 자기 주변에 있는 비논리적인 것을 즉각 교정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껴서도 안 된다. 그는 오히려 아주 조용하게 자신의 내면 속에서, 외부로부터 자기에게 밀려들어 오는 생각들에 대해 논리적이고 시종일관한 방향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의 생각 속에서 늘 이러한 방향을 엄수하려고 노력한다.


   두 번째 일은 자신의 행동에도 그와 똑같은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행동의 제어). 행동에서의 불안성과 부조화는 지금 말하고 있는 ·········· 망쳐 놓는다. ·········· 수행자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이어지는 행동이 앞선 행동에 대해 논리적인 일관성을 가지도록 한다. 어제와는 다른 의미에서 오늘 행동하는 사람은, 앞서 그 특징을 말한 감각을 결코 개발하지 못한다.


   세 번째 일은 지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이다. ·········· 수행자는 이런저런 영향 때문에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서 멀어질 수 없는 법이다. 그가 그 목표를 올바른 것으로 여기는 동안에는 말이다. 그에게 장애란 그것을 극복하려는 요구이지, 포기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네 번째 일은 인간들, 다른 존재와 사물들에 대한 관대함(관용)이다. ·········· 수행자는 불완전한 것, 악한 것과 나쁜 것에 대한 불필요한 비판을 일체 억제하며,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자 애쓴다. 태양이 나쁜 것과 악한 것 모두에 두루두루 그 빛을 던지듯이, 그는 모든 일에 대해 이해심에 찬 관심을 보인다. 어떤 불쾌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는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필연적인 것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그의 힘이 미치는 한 사태를 좋은 쪽으로 돌리고자 노력한다. 자신과는 다른 의견들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려고 한다.


   다섯 번째 일은 생활 현상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믿음’ 또는 ‘신뢰’ 라고들 말하기도 한다. ·········· 수행자는 어떤 인간,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이러한 신뢰로써 대한다. 행동할 때 그는 그러한 신뢰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일을 전해 듣게 될 경우, ·········· 수행자는 그것이 기존의 자기 견해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법이 결코 없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새로운 견해에 비추어 항상 시험하고 바로잡을 태세가 되어 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에 대해 늘 마음을 열어 두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의 유효성을 신뢰한다. 소심증과 의심벽을 자신의 존재에서 추방한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러한 의도의 힘에 대한 믿음 역시 가지고 있다. 수백 번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는 이러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산이라도 옮길 수 있는 믿음’이다.


   여섯 번째 일은 생활에서 확실한 균형(침착함)을 획득하는 것이다. ·········· 수행자는 고통이 닥치는 기쁜 일이 닥치든 한결같은 기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늘을 오를 듯이 기뻐함과 죽고 싶은 만큼 슬퍼함’ 사이를 오가는 버릇을 버린다. 그는 불행이나 위험에 처해도 행운이나 후원을 만난 것과 마찬가지의 마음가짐을 가진다.



   꽃잎들의 발달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때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영혼이 어떤 특정한 과정에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 과정은 여덟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과정은 관념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통 인간은 전적으로 우연에 자기를 내맡긴다. 그는 이러저러한 것을 듣고 보며, 그에 따라 자신의 개념을 만들어 낸다. 그가 그런 식으로 처신하는 한,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그의 연꽃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에 따라 자기 교육에 착수할 때 비로소 그의 연꽃은 활동적으로 되기 시작한다. 이를 목적으로 그는 자신의 관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각각의 관념이 그에게 의미를 갖게끔 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그는 외부 세계의 사물들에 관한 특정한 메시지나 정보를 보아야 한다. 그는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관념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개념 생활 전체를 조정해서, 그것이 외부 세계의 충실한 거울이 되게끔 해야 한다. 그는 잘못된 관념을 자신의 영혼에서 멀리 떼어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혼의 두 번째 과정은, 첫 번째 과정과 비슷한 방향에서, 인간의 결단과 관계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충분히 숙고하여 근거를 가지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모든 행동,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모든 행위를 자기 영혼에서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 모든 일에 대해 그는 충분히 숙고된 근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의미 있는 근거가 없는 일이라면 그만두어야 한다. 


   세 번째 과정은 말과 관계 있다. ·········· 수행자는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 말만을 해야 한다. 말을 위한 말은 그를 수행의 길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수행자는 무분별하고 잡다하게 모든 것이 뒤죽박죽 말해지는 통상적인 대화를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위 사람과 교류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바로 그 교류 속에서 그의 말이 의미 있게 전개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지만 생각을 충분히 하고 모든 방향에서 숙고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근거 없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너무 많이 하려하지 않으면서 너무 적게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영혼의 네 번째 과정은 외적 행동의 조절이다. ·········· 수행자는 주위 사람의 행동과 주변 상황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거나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과 모순되는 행동은 자제한다. 그는 자기 행동이 주변과 생활 상황 등등에 조화롭게 편입되도록 행동하려고 한다.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 무언가 다른 것에 의해 행동이 유발될 때, 그는 어떻게 하면 그 유발 동기에 가장 잘 부합할 수 있을지를 깊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관찰한다. 자발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자신의 행위 방식이 끼치는 효과를 아주 명학하게 고려한다.


   여기에서 고찰되는 다섯 번째 과정은 생활 전체의 수립과 관련된다. ·········· 수행자는 자연과 정신에 부합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는 너무 서두르지도 않고 너무 게으르지도 않다. 지나치게 많이 일하는 태도와 지나치게 게으른 태도 모두 다 그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생활을 수련의 수단으로 여기며, 이에 부합하도록 살아간다. 건강 관리, 습관 등등을 조정해서 조화로운 생활이 되도록 한다.


   여섯 번째 과정은 인간적인 노력과 관계 있다. ·········· 수행자는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시험하며, 그러한 자기 인식의 의미에서 행동을 취한다. 그는 자기 힘이 닿지 않는 일은 하려고도 하지 않지만, 자기 힘이 미치는 일을 그만두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그는 여러 가지 이상, 인간의 위대한 의무와 관련된 목표를 설정한다. 그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기를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인간 동력 장치 속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있는 자신의 과제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의무를 점점 더 훌륭하고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노력한다.


   영혼 생활에서의 일곱 번째 과정은, 인생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려는 노력과 관계 있다. ·········· 수행자에게는, 그의 삶에 유익한 경험을 모을 계기를 제공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그가 어떤 일을 부정확하고 불완전하게 행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중에 비슷한 일을 정확하게 또는 완벽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볼 때에도 그는 이와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그들을 관찰한다. 그는 경험이라는 풍성한 보물을 모으고, 그것을 끊임없이 신중하게 이용하고자 한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착수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체험들을 되돌아보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 수행자가 매순간 자기 내면을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여덟 번째 과정이다. 그는 자기 안에 깊이 들어가 신중하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생활 원칙을 세우고 시험하며, 경험적 지식을 철저히 사고하고 그의 의무를 숙고하며 인생의 내용과 목적에 관해서 깊게 사유하는 등등의 일을 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이미 앞에 있는 장에서 말했다. 여기에서는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의 발달과 관련해서 열거할 따름이다. 수행을 통해서 연꽃은 점점 더 완전하게 된다. ·········· 능력의 육성이 그러한 수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외부 세계에서의 발전 과정과 일치하면 할수록, ·········· 능력은 더 빨리 개발된다. 참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의 싹을 죽이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진실성, 올곧음, 정직성은 이러한 측면에서 건설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며, 허위, 기만, 불성실은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 수행자는 이때 ‘좋은 의도’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행동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내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을 사고하고 말하면, 비록 여전히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는 믿음이 있더라도, 정신적 감각 기관 속에 있는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비록 모르고 한 일이라도 불 속에 손을 집어 넣으면 화상을 입는 것과 같다. 


   앞서 말한 영혼의 과정이 그 특징이 묘사된 방향으로 실행된다면,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은 장려한 색채로 빛을 발하게 되고 합법칙적인 운동을 부여받게 된다. 그렇지만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영혼이 일정 정도 육성되기 전에는 ··········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활을 이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여전히 애쓰는 동안에는 이러한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앞서 서술된 과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한, 그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언급된 방식의 삶을, 마치 습관적으로 하듯이, 그렇게 살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 첫 흔적이 나타난다. 그러면 그런 일들은 더 이상 애쓸 필요가 없는 자명한 생활 방식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자기 자신을 계속 관찰하고 몰아쳐 가며 그런 식으로 살도록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모든 것은 습관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열여섯 장의 꽃잎을 지닌 연꽃을 다른 방식으로 발달시키는 모종의 지침들이 있다. 참된 신비학은 그러한 모든 지침들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몸의 건강을 파괴하고 도덕적 파탄을 낳기 때문이다. 그 지침들은 여기에서 서술되는 것보다 실행하기가 더 쉽다. 여기에서 서술되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목표로 인도해 주며 도덕적인 힘을 강화시킬 수 있다.


   연꽃의 왜곡된 육성은 모종의 ·········· 능력이 나타날 경우에 환상과 공상적 관념을 낳을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을 미망을 빠뜨리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런 식의 육성을 통해서 사람들은 겁이 많고 질투와 허영심이 강하며 거만하고 아집에 가득 찬 사람이 되는데, 이 모든 속성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열여섯 장의 연꽃잎 가운데 여덟 장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개발되었으며 이것들이 ·········· 수행 과정에서 다시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다. 이제 ·········· 수행자의 노력에서 모든 관심은 다른 여덟 장의 꽃잎에 쏟아져야 한다. 잘못된 수행에서는 이전에 개발된 꽃잎들만 쉽게 나타나며 새로이 형성되어야 하는 꽃잎들은 위축되어 있다. 이는 수행 과정에서 논리적, 이성적 사유에 너무 무관심할 때 특히 자주 생기는 일이다. ·········· 수행자가 명료한 사유를 중시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말을 할 때 최대한 분명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뭔가 초감각적인 것을 예감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게 된다. 그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올바른 발달을 가로막는다. 이 일에 관해 말을 적게 하면 적게 할수록 더 낫다. 어느 정도 분명한 인식을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말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회화>가 시대에 필수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 적어도 인간의 가슴에, 인간의 영혼에 사회적 유기체의 삼지성이 지니는 필수성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이 들어서지 않는다면, 필시 그런 사회화는 심지어 파괴 과정이 될 것이다. 사회적 유기체가 건강하게 작용해야 한다면, 그 세 가지 지체들이 법칙적으로 양성되어야 한다.

그 지체들 중에 하나가 경제 생활이다. 경제 생활이 아주 분명하게 모든 나머지 생활을 지배하면서 현대 기술과 현대 자본주의에 의해서 인간 사회 내부에 구축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경제 생활의 고찰로 시작하고자 한다. 경제 생활은 사회적 유기체 내에서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지체여야만 하며, 신경-감각 체계가 인간 유기체 내에서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듯이 그렇게 상대적으로 독립적이어야만 한다. 경제 생활은 상품 생산, 상품 유통, 상품 소비에 대한 모든 것과 관계한다.

사회적 유기체의 두 번째 지체로서 공공 권리 · 법률 생활, 사실상의 정치 생활이 고찰될 수 있다. 구시대적 법치국가의 의미에서 실제상의 국가 생활로서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이 정치 생활에 속한다. ·········· 사회적 유기체의 이 두 번째 지체는 순수하게 인간적인 저변에서 나오는, 인간과 인간이 지니는 관계에 대한 모든 것과 연관된다.

오로지 인간적 저변에서 나오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관계에만 연관되는 공공 권리 · 법률 체계와, 오로지 상품 생산, 상품 유통, 상품 소비에만 관계하는 경제 체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안다는 것은 사회적 유기체의 지체를 인식하기 위해서 본질적이다. 이 점을 생활에서 느끼면서 구분해야만 하며, 그 느낌의 결과로서, 인간의 자연적 유기체 내부에서 폐의 활동이 외부 공기를 처리하기 위해서 신경-감각 활동에서 일어나는 과정으로부터 구분되듯이, 경제 생활이 권리 · 법률 생활로부터 구분된다.

이 양 지체와 더불어 마찬가지로 독립적으로 자리 잡아야만 하는 세 번째 지체로서 정신 생활에 관한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아마도 사회적 유기체에서 <정신문화>라는 표현이나, 정신 생활에 관한 모든 것이 전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명확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각각의 인간 개인이 지니는 자연적 재능에 근거하는 모든 것, 각각의 인간 개인이 지니는 신체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자연적 재능의 근거에서 사회적 유기체 내부로 들어가야만 하는 모든 것이 정신 생활이다."

첫 번째 체계인 경제 체계는, 인간이 외부 세계에 대해서 지니는 물질적인 관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해야만 하는 모든 것과 관계한다. 두 번째 체계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관계를 위해서 사회적 유기체 내부에 존재해야 하는 것과 관계한다. 세 번째 체계는 각각의 인간 개인성으로부터 솟아나서 사회적 유기체 내부로 편입되어야 하는 모든 것과 관계한다.

현대 기술과 현대 자본주의가 실제로 현대에 들어서야 우리의 사회 생활을 각인했던 것이 진실이듯이, 그 측면에서 인간 사회에 불가피하게 가해졌던 그 상처를, 인간과 인간적 공동체 생활이 사회적 유기체의 삼지체에 대해 올바른 관계를 지니도록 함으로써 회복시키는 일 역시 필수적이다. 

현대 경제 생활은 근대 들어 단순히 그 자체를 통해서 아주 특정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아주 강력하게 인간 생활에 자리 잡았다. 

사회 생활의 두 가지 다른 지체들은 지금까지도 그렇게 자명하게 그 자체의 법칙성에 따라 올바른 방식으로 사회적 유기체로 편입될 수 있는 상태에 있지 않다. 그 양 지체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인간이 위에 암시된 느낌을 가지고 사회적 지체화를 시작해야만 한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위치한 바로 그 자리에서.

사회 문제에 대해 여기에 의도되는 해결 방안의 의미에서는 모든 개별적 인간이 오늘과 미래에 대한 자신의 사회적 과제를 지니기 때문이다.

가장 복잡하고 자연스러운 유기체를, 즉 인간 유기체를 여기서 언급되는 관점에서 고찰하는 사람은, 인간 유기체의 전반적인 존재가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체계로 드러나며, 그 체계들이 각기의 독립성을 지니고 작용한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상호 간에 작용하는 그 세 가지 체계들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성격화할 수 있다. 

인간의 자연적인 유기체 내에서 그 체계의 한 영역으로서 작용하는 것이 신경 생활감각 생활을 내포한다. 인간 유기체에서 가장 중요한 지체인 머리에 신경 생활과 감각 생활이 어느 정도까지는 집중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머리-유기체라 부를 수 있다. 

인간 조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고자 한다면, 리듬 체계라 명명할 수 있는 것을 인간 조직의 두 번째 지체로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호흡-혈액 순환이다. 즉 인간 유기체의 리듬 과정에서 표현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다. 

세 번째 체계로는 그 활동과 기관으로서 사실상의 신진대사에 연결된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세 체계가 상호 간에 조직되어 있다면, 인간 유기체의 전체 과정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 안에 존재한다.(여기에서 의미하는 지체는 공간적으로 경계지을 수 있는 그런 신체 지체가 아니라 유기체의 활동(기능)에 따른 것이다. 머리에 우선은 신경-감각 생활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머리 유기체>를 다룰 수 있다. 다른 신체 지체에도 신경-감각 활동이 존재하듯이, 머리에도 당연히 리듬 활동과 신진대사 활동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의 세 가지 양식이 그 본성에 따라 상호 간에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

인간 유기체에 하나의 절대적인 집중이 존재하지 않고, 세 가지 체계들이 제각기 하나의 고유한, 외부 세계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관계를 지님으로써, 세 가지 지체가 - 머리 체계, 순환 체계 혹은 가슴 체계, 신진대사 체계 - 일정한 독립성 속에 작용함으로써 어떻게 인간 유기체 내부의 전체 과정을 유지하는지 조망하였다. 머리 체계는 감각을 통해서, 순환 체계 혹은 리듬 체계는 호흡을 통해서, 그리고 신진대사 체계는 영양 섭취 기관과 운동 기관을 통해서.

··········

세계를 표상하는 전반적인 양식이, 즉 우리의 사고습관이 예를 들어서 인간 유기체 내에서 자연 작용의 내적인 본성으로 드러나는 것에 아직은 완전히 적합하지 않다. ·········· 각기의 인간 영혼 내부에 - 각기의 인간 영혼이 사회적 유기체를 위한 작용에 참여하기 때문에 - 사회적 유기체를 위한 불가피한 사항에 대해서 적어도 본능적인 인식이 존재해야만 한다. 사회적 유기체가 건강해야 한다면 자연적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그것도 삼지적이어야만 한다는 점을 비록 다소간에 단순히 본능적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만, 사회적 유기체의 형성과 관련해서 건강한 사고와 감각, 건강한 의지와 욕구가 발달될 수 있다.

··········

자연적인 유기체의 고찰에서 삶의 가능성을 인간의 사고가, 인간의 감각이 느낄 수 있도록 배우고, 그 다음에 그 느낌의 방식을 사회적 유기체에 적용하기를 추구한다. 자연적 유기체에서 배웠다고 믿는 것을 흔히 하듯이 단순하게 사회적 유기체에 적용한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적 유기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유기체 역시 그것 자체의 법칙에 따라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고찰하고 연구하려는 능력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보여 준다. 자연 과학자가 자연적 유기체를 마주 대하듯이, 사회적 유기체 자체의 법칙을 감지하기 위해서 사회적 유기체를 그 독립성에 따라 진정 객관적으로 대상화하는 순간에, 바로 그 순간에 고찰의 진지함을 대면해서 모두 유추 해석 놀이가 멈추게 된다.

··········

사회적 유기체의 힘들이 어떻게 작용해야 그 유기체가 생존 능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지를 건강하게 느끼도록 배우기, 바로 그것을 지금부터는 사람들이 요구할 것이다. 그런 느낌이 없이 사회적 유기체에 발을 디디려 한다면, 바로 그 자체가 반사회적이고 건강하지 않다는 느낌을 습득해야만 할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세네카(Seneca), 에픽테토스(Epictetus)와 같은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은 "악의 사전 계획 (premeditation of evils )"으로 해석되는 premeditatio malorum(최악 상황 예상)으로 알려진 운동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

이 운동의 목표는 인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스토아 학파들은 직장을 잃고 노숙자가 되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마비가 되거나 평판을 망치고 사회적 지위를 잃는 것이 어떨지 상상할 것이다.

스토아 학파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상상함으로써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를 방지 할 수있는 더 나은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을 달성하는 방법에 중점을 두었지만, 스토아 학파는 또한 그들이 실패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고려했다. 내일 모든 일이 잘못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당신이 원하는 것의 반대를 고려하는 이 ​​사고 방식은 반전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강력 할 수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내가 그것을 더 공부하면서, 내가 그것을 좀 더 연구하면서, 나는 반전이 거의 모든 훌륭한 사상가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희귀하고 결정적인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위대한 사상가가 얼마나 현재 상황을 변화시키는가

독일 수학자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Carl Jacobi)는 그의 커리어 동안 다양한 과학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그는 멍청한 남자의 전략에 따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능력으로 잘 알려져 있었으며, 느슨하게 번역하면,"반전, 항상 뒤집어 짐"으로 알려졌다.

야코비는 여러분의 생각을 명확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수학 문제를 반비례하는 형식으로 다시 설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그가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문제의 반대편을 적어 보곤 했고 해결책이 그에게 더 쉽게 다가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전은 강력한 사고 수단인데,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았던 오류와 장애물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만약 그 반대가 사실이라면? 내가 이 상황의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무엇을 하는 방법을 물어보는 대신에, 그것을 하지 않는 방법을 물어보라.

위대한 사상가, 아이콘, 그리고 혁신가들은 앞과 뒤로 생각을 한다. 때때로 그들은 그들의 뇌를 거꾸로 운전한다.

위대한 사상가, 아이콘, 그리고 혁신가들은 앞과 뒤로 생각을 한다. 그들은 사물의 반대쪽을 생각한다. 때때로 그들은 뇌를 거꾸로 움직인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혁신을 위한 매력적인 기회를 드러낼 수 있다.


예술은 좋은 본보기를 제공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장 큰 음악적 변화 중 하나는 Nirvana에서 왔는데, Nirvana는 완전히 새로운 음악 장르인 Alternative Rock을 만들었고, Nevermind 앨범은 의회 도서관에서 문화적, 역사적, 20 세기의 가장 "미적으로 중요한" 녹음물이다.

너바나는 주류 락과 팝 음악의 관습들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Poison과 Def Leppard와 같은 헤어 메탈 밴드들이 수백만 달러를 소비하여 각 레코드를 제작하고 홍보한 곳에서 Nirvana는 Nevermind 를 65,000 달러에 판매했다. 헤어 메탈이 화려해지면, 너바나는 벗겨지고 날것이 되었다. 

반전은 종종 위대한 예술의 핵심이다. 언제나 사회에서 현상이 존재하고, 두드러지는 예술가와 혁신가들이, 압도적인 방식으로 표준을 뒤집는 경우가 많다.

위대한 예술은 이전의 규칙을 어기는 법이다. 그것은 전에 온 것을 반전시킨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의 비밀은 현상을 뒤집는 것일 뿐이다.

이 전략은 글쓰기와 같은 다른 창의적인 일에도 똑같이 효과가 있습니다. 많은 멋진 헤드 라인과 제목들은 역으로 일반적인 가정을 뒤집어 놓는 힘을 사용합니다. 개인적인 예로, 더 인기 있는 두가지 기사,"목표 설정에 대한 잊기"와 "동기부여는 과대 평가 되어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머리 위에 돌려 보세요.


성공은 과대 평가되어 있다. 실패를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유형의 역 논리는 많은 삶의 영역으로 확장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야망 있는 젊은이들은 종종 성공을 성취하는 방법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억만 장자 투자자인 Charlie Munger는 성공의 반대를 대신 생각해 보라고 권장한다.

"무엇을 피하고 싶니?"라고 그가 물었다. "아주 쉬운 대답은 바로 게으름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즉시 폭로할 것이다. 충실히 행동하는 것은 나태함의 일부이다."

실수를 피하는 것은 개선하는 데 있어 충분히 인정되지 않은 방법이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주어진 영역에서 특별히 똑똑하거나 빠르거나 재능이 없어도 사전 예방적이고 안정적이기만 하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때때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보다 왜 실패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생각과 과거에 대한 생각의 이점

반전은 특히 직장에서 유용 할 수 있다.

지도자들은 스스로에게 "만약 그들이 형편없는 관리자라면 누군가 매일 무엇을 할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들은 이런 것들을 피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혁신이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요소라면 "어떻게하면 이 회사의 혁신성을 떨어 뜨릴 수 있을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이러한 장벽과 장애물을 제거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빨리 발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마케팅 부서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고자 하지만, "핵심 고객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는 것이 유용할 수도 있다. 다른 관점에서 놀라운 통찰력을 발견 할 수 있다.

여러분은 무엇이 효과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피하고 싶은 실수, 오류, 잡동사니는 무엇인가? 반전은 좋은 충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충고를 찾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다음은 일과 삶에서 반전을 활용하는 몇 가지 추가적인 방법이다.

프로젝트 관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전 응용 프로그램 중 하나가 실패 사전Failort Premortem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현대적인 회사를 위한 Evils의 전제 조건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목표 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상상해라. 이제는 6개월 앞당겨 프로젝트나 목표가 실패했다고 가정한다.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라. 무엇이 잘못 되었나? 어떤 실수를 했나? 어떻게 실패했나?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주된 목표를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무엇이 이것을 끔찍하게 잘못되게 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보라.

이 전략은 회사에서 실패 할 수있는 정확한 방법을 설명하기 때문에 조직에서 "회사를 죽이는" 운동이라고도 합니다. Evils의 Premeditation과 마찬가지로, 아이디어는 도전과 실패 지점을 식별하여 미리 예방할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생산력

대부분의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고싶어 한다. 생산성에 대한 반전을 적용하면 "내 집중력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하면 혼란스러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매일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제거할 수있는 것들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전략은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종종 성공을 추구하는 것보다 안전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약물이나 정신적 흥분제를 복용한다. 이러한 방법이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용자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다른 방에 휴대 전화를 두거나, 소셜 미디어나 웹 사이트를 차단하거나, TV를 뽑을 위험이 거의 없다. 두 가지 전략 모두 동일한 문제를 다루지만 반전을 사용하면 다른 각도에서 위험을 덜어 공격할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은 보다 일반적인 원칙을 드러냅니다. 맹목적으로 성공을 좇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실패를 막는 것은 보통 매우 적은 위험을 수반한다.


정리 Decluttering

블록 버스터 베스트 셀러 "인생을 바꿔 놓는 마술"의 저자인 마리 곤도Marie Kondo는 사람들이 집을 정리하는 것을 돕기 위해 반전을 사용한다. 그녀의 유명한 대사는 "우리는 우리가 없애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이다.

다른 말로하면, 당신의 삶에서 "기쁨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것을 멀리하는 것이 기본값입니다. 사고 방식의 이러한 변화는 폐기하려는 것보다는 유지하고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관계들

결혼 생활을 망치는 행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 신뢰 부족.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각자가 개인적인 사람이 될 시간을 주지 않는 것. 당신의 모든 시간을 당신의 아이들에게 쓰고, 당신의 관계에 함께 투자하지 않는 것. 돈과 소비 습관에 대해 열린 의사 소통을 하지 않는 것. 좋은 결혼 생활을 반전시키는 것은 나쁜 결혼 생활을 피하는 방법을 보여 줄 수 있다.


개인 금융

모든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문제를 뒤집어 보면 어떨까? 어떻게 하면 당신의 재정 상태를 해칠 수 있을까요?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는 것이 실패로 가는 입증된 길이다. 돈이 얼마나 있든지 상관 없어요, 계산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풀리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누적되는 부채는 가능한 빨리 해결해야 할 위기 상황이다. 그리고 점점 통제되지 않은 쇼핑과 소비 습관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은 스스로 자초하는 재정적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방법에 대해 너무 많이 걱정하기 전에 돈을 잃지 않는 방법을 찾았는지 확인하라.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문제들을 피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앞설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여러분 자신이 겪는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줄 것이다.


반대 방향을 고려하라

반전은 반직관적인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명백하지 않다.

하지만 반전은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중요한 도구입니다. 스토아 학파들은 부정적인 결과를 시각화한다. 획기적인 예술가는 현상 유지를 뒤집는다. 효과적인 지도자들은 성공을 가속화하는 기술을 추구하는 것만큼이나 성공을 가로막는 실수도 피한다.

반전은 특히 자신의 신념에 도전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결정을 법의 재판소처럼 다루도록 강요한다.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양측의 주장에 귀을 기울여야 한다. 반전은 이와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증거가 당신이 믿는 것을 왜곡했다면?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는 관점을 파괴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반전은 당신이 첫번째 결론을 내린 후에 마음을 결정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것은 확인 편견의 중력을 중화하는 방법이다.

반전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삶을 이끌어내는데 필수적인 기술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생각의 정상적인 패턴을 벗어나 다른 각도에서 상황을 볼 수있게 한다. 당신이 직면하고있는 문제가 무엇이든, 항상 사물의 반대편을 고려하라.

정신 생활이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 사회적 공생에는, 사회적 유기체의 생존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힘 중에 하나가 결여된다는 사실의 무게를 진정으로 느끼도록 배워야, 이 영역에서 오늘날 생각하는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적 유기체는 정신 생활의 무기력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 정신 생활의 무기력에 대한 인정을 혐오하기 때문에 그 병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사회 운동에 적합한 사고를 발달시킬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흡사 강렬한 계시라도 받은 듯 그의 시각은 오로지 경제 생활만 바라보도록 이끌어졌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곳에, 정신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에 사회 운동의 영역에서 필수적으로 들어서야 할 동인이 존재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비정신적이고, 비영적인 경제 생활의 발달을 통해서만 그가 인간 존엄적이라 느끼는 상태가 생겨날 수 있다고 유일하게 믿고 있다. ·········· 자신의 구원을 오로지 경제 생활의 개혁에서만 찾도록 몰아대어졌다. 사적 기업과 개별적 고용주의 이기주의, 그리고 피고용인 내에 존재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권리 요구를 정당화시키지 못하는 개별적 고용주의 무능에 기인하는 모든 손상이 오로지 경제 생활의 개혁을 통해서만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 몰아대어졌다. ·········· 모든 정신적, 영적인 것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순수하게 경제적인 과정으로만 시각을 향하도록 함으로써 그런 의견이 생겨났다. 


그로 인해서, ·········· 모순적인 모든 것이 들어서게 되었다. ·········· 최종적으로 완벽한 인간 권리를 그에게 줄 모든 것이 경제에서, 경제 생활 자체에서 발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바로 그 완벽한 인간 권리를 위해서 그는 투쟁한다. ·········· 사람들은 그 어떤 것이 경제 생활 자체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지만, 결코 유일하게 경제 생활로부터만 그것이 솟아날 수 없으며, 오히려 고대 노예 제도에서 봉건 시대의 농노 제도를 거쳐서 현대 ·········· 노동자에 이르는 직선적 발달선상에 존재한다. 현대 생활을 위해서 상품 순환, 통화 유통, 자본 조직, 소유, 토지와 부동산 제도 등등이 형성되었듯이, 그렇게 분명하게 말해지지 않는 어떤 것이, ·········· 역시 의식적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가 지니는 사회적 의지의 실제적인 근본 자극이 되는 어떤 것이 현대 생활 내부에 형성되었다. 


··········


전반적인 현대 ·········· 사회 운동의 근본 자극 중에 하나로서, 시장에서 상품을 팔듯이 자신의 노동력을 고용주에게 팔아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수요와 공급을 따르는 시장의 상품처럼 자신의 노동력이 노동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대한 혐오감이 그들의 본능 속에, 잠재 의식적인 느낌 속에 얼마나 강하게 살고 있는지를 한번만이라도 일별할 수 있다면,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대한 그 혐오감이 현대 사회 운동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만 있다면, ·········· 거기에 작용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자유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 그 ·········· 자극이 오늘날의 사회 문제를 압박하면서 몰아대고 격렬하게 타오르도록 만든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에는 노예가 있었다. 인간 자체가 상품처럼 팔렸다. 조금 적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이 농노제를 통해서 경제 과정으로 편입되었다. 자본주의는 인간 존재의 나머지에 상품적 성격을 들러 붙이는 권력이 되었다. 바로 노동력이다. ·········· 경제 생활에 편입되는 모든 것은 상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이 경제 생활 자체 내에 어떻게 놓여 있는지는 보지 않는다. 상품의 생산과 실용적인 소비에 경제 생활이 존재한다. 인간 노동력을 경제 과정에서 분리시킬 가능성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그것에서 상품의 성격을 벗겨낼 수가 없다. 경제 과정을 재형성해서 그 과정 내에서 인간 노동력이 그에 정당한 권리를 얻게끔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노동력을 경제 과정에서 분리해 내어서, 그것에서 상품적 성격을 덜어 내는 것을 사회적인 힘에 의해 규정되도록 하는가? 바로 이것이 추구되어야만 한다. ·········· 자신의 노동력이 적절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경제 생활 상태를 갈망한다. 그렇게 갈망하는 이유는, 자신의 노동력이 지니는 상품적 성격이 본질적으로 보아서 경제 과정에 완전히 얽매여 있는 자신의 상태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그 과정에 완전히 양도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 과정 안에서 자신의 전체 인간으로 몰두한다. 노동력의 조정을 그 내부에 둘 수 있는 한 경제 생활은 그 자체적인 성격으로 인해, 마치 상품이 소비되듯이 바로 그렇게 노동력을 적절한 방식으로 이용하기를 추구한다. 현대 경제 생활의 힘에 마취나 된 듯 사람들은 오로지 그 내부에서 작용할 수 있는 것만 주시한다. 


어떻게 노동력이 더 이상 상품이 될 필요가 없는지를 그 시각으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경제 형태는 단지 다른 방식으로 노동력을 다시금 상품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생활 내에서는 그 영향권이 인간 노동력으로까지 확장되지 않아야 할 이해관계를 통해서 규정되는 법칙에 따라 상품 생산, 상품 유통, 상품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 한, 노동 문제를 그 진정한 형상에서 사회 문제의 한 부분으로 만들 수 없다. 


한편으로는 노동력으로서 인간에 결부된 것이 경제 생활에 어떻게 편입되는지,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상품이 흘러가는 그 길에서 원천적으로 보아 인간과 무관한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완전히 상이한 이 두 양식을 구분할 수 있도록 근대의 사고가 배우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이 방향으로 가는 건강한 사고 양식을 통해서 노동 문제의 진정한 형상이 드러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고 양식을 통해서 건강한 사회적 유기체에서 경제 생활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지도 역시 분명해질 것이다.


몇 가지 그래프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떤 회사의 주가 그래프입니다. $7였던 주가가 1년만에 $105까지 1,500%나 수직상승합니다. 그런데 그 후 $15로 폭락하고 맙니다. 그 뒤로도 1년 넘게 주가는 $15에서 회복되지 않습니다. 잡주도 이런 개잡주가 없습니다.

 

 

다른 그래프입니다. $38였던 주가가 1년만에 $93로 폭등했지만, 두 달만에 다시 원래 가격이었던 $38로 떨어집니다. 또 다른 개잡주의 전형입니다.

 


역시 다른 그래프입니다. 폭등했던 주가가 제 자리로 돌아와 무려 1년 넘게 횡보하는 모습입니다. 재수가 없으려니 계속 개잡주만 걸립니다. 주가가 폭등하는 시기에 진입한 사람들은 폭락 후 무려 1년 넘게 횡보하는 이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멘탈 관리를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위에 보여드린 개잡주 3인방은 사실 같은 종목입니다. 좀 떨어져서 큰 그림을 볼까요?

 


바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마존의 지난 20년간의 주가 트렌드입니다. 37세에 은퇴 자금 1억원을 맡기고 까먹고 있었던 사람은 57세가 된 지금 1,500억원의 자산가가 되었습니다.

 

결국 돈을 잃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세 상승기에 몰빵한 후 하락 후 지루한 횡보장을 견디지 못하고 손절한 사람들입니다.

 

돈을 번 사람들은 채굴한 월급을 잘 저축해서 모아두었다가 시장의 대하락이 올 때마다 조금씩 주워가면서 먼훗날을 도모했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주식시장 투자에서도 유사한 접근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형주만 분산 투자하므로 한방에 일확천금 같은 것은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시장의 평균보다 높은 수익율을 가지고 우상향하였습니다.

 

작년 6월 비트코인에 처음 투자하면서도 2020년 청산이라는 3년 투자 목표를 가지고 접근했습니다.

 

작년 6월 말에는 $4,000를 향해가던 비트코인이 폭락하여 $2,000 밑으로 떨어지기에 열심히 주웠고, 이후 9월 즈음에는 $6,000을 넘보던 시세가 중국발 악재로 $3,000 밑으로 폭락하기에 열심히 주웠습니다. $20,000에 육박하던 비트코인이 $10,000 밑으로 떨어지던 올해 1월에도 열심히 주웠습니다.

 

향후에도 여러 다른 경로로 벌어들인 자금을 잘 충전하면서 원기옥을 모았다가 시장의 폭락이 올 때마다 주우면서 2020년의 그 날까지 우상향의 그래프를 따라 최대한 수익을 초과달성하며 따라갈 것입니다.

 

지금의 지루한 횡보장, 혹은 알트코인의 무덤장에서 존버해라 손절해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긴 인생을 통털어 적절한 자금 계획과 투자 전략을 세우고 현실 생활을 꾸준히 하다보면 누구나 손쉽게 자산가가 될 수 있다는 간단 명료한 역사적 사실을 말씀 드리는 것뿐입니다.

 

인생은 깁니다. 떼돈을 벌 기회는 영원히 계속 옵니다. 잠시의 손해는 지나고보면 아무것도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고 그 간의 투자전략을 잘 복기 하신 후 향후 투자 전략의 발판으로 삼으셨으면 합니다.

- 출처: 땡글


[독서] - [인터뷰] 워런 버핏 Warren Buffett: 주식은 적금처럼 투자하라.

- CNBC

버크셔해서웨이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 워렌 버핏을 모셨습니다. 오늘 아침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시장에 대해 간략하게만 말씀하셨죠. 그러나 지난번에 모셨을 때 이후로 시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장 변동성이 다시 커졌고 겁먹은 시장 참여자들이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냐고 질문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변동성과 그에 관한 상품에 관련해서 그게 걱정할 만한 것인지, 왜 그런거죠?


글쎄요, 만약 당신이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땅이나 집처럼 매일 매주 가격을 물어보면 안됩니다. 대신 비즈니스를 봐야 하죠. 미국 기업의 가치는 현재와 지구종말 사이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자에게 가져다 주냐 입니다. 비즈니스를 보고 투자한다면 나는 장래의 그 가치가 두달 안에 10%나 변할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시장에선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말그대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돈을 빌려서 투자해선 안됩니다. 시장이 내일부터 열리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어떤 이상한 일도 일어난다는 이야기죠.

제 생각에는 어떤, 예를 들면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상품을 통해 투자하고 엄청난 화력(레버리지)을 가진 그것이 방아쇠를 당겨서(변동성을 가지고 만든 파생상품을 말하는군요.) 그걸 가지고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을 하고 있는 겁니다. 변동성 지수를 사는건 투자라고 볼 수 없어요. 몇몇 supercharged 인덱스나 VIX 지수 같은, 그들에게 그런 지수가 필요하다고도 할 수 없죠. 알다시피 월스트리트는 그런 상품을 만들어왔고, 투자자들은 그들만 믿고 상품을 사겠죠. 1792년 버튼우드 나무 아래서 증권거래소를 설립했을 때부터 월스트리트는 그래왔어요.

그래서 '투자'를 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내가 맥도날드 지분의 절반을 인수하고 당신이 프랜차이즈를 경영하는 경영자라면 나는 비즈니스를 봅니다. 내가 올바른 투자결정을 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러면 나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는지 앞으로 경영은 어떻게 할 지 걱정이 될겁니다. 비즈니스를 보고 있으니까요. 만약 당신이 단지 가격만을 보고 투자한다면, 그건 투자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암호화폐)에 투자할 때도 그것이 무엇을 만들어내는 자산인지, 그 자산 자체를 잘 들여다보지 않죠. 아파트를 사면 아파트를 둘러보고 땅을 살 땐 땅을 둘러보고 회사를 통채로 살때는 그 회사에 대해 뭐하는 회사인지 보는 것 처럼요. 만약 비즈니스의 일부(주식)을 사더라도 그 회사가 어떻게 운영될지를 들여다보고 사야겠죠. 사람들이 그 기업에 얼마나 매력을 느끼는지, 혹은 여러가지를 유동적으로 고려 해야겠죠. 

시장에 파급효과를 주는 예를 들어, 변동성지수를 추종하는 AETN 협약을 맺건 어쩌건 90%의 돈을 하루 아침에 잃게 만들 수 있는 그런 파생상품은 '투자'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죠. 그것은 도박에 가까운 행위입니다.


전에 말씀하셨죠. 주말에 연례서한에서 말씀하셨고 이 쇼가 시작되기 전에도 말씀하셨듯이 살만한 비즈니스가 있는지 둘러보았을 때 매력적인 가격의 비즈니스가 없다고 하셨죠. 그런데 투자내역을 보면 벅셔해서웨이는 주식을 매수하기 좋은 상황인 듯한 순매수를 올해 즉, 2018년에 보여주고 있고 이건 현시점의 변동성 장에서 매수가 적절하다고 보시는 것처럼 해석됩니다.


아마도... 전체 비즈니스(지분 100%)를 사는 것 대신 비즈니스 일부(51%)를 살 수도 있고 (전체 비즈니스를 사려면 프리미엄을 내야 하니까요) 큰 이득이죠. 회사를 통째로 비싸게 사서 투자자가 얻는 효익에 비하면 말이죠.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주식에 접근할 때 움직이는 가격과 같은 작은 것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비즈니스의 일부를 산다고 여기면 마음이 훨 편할거에요.

버크셔해서웨이 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주주로 등재되어 있고 그들은 단지 버크셔를 하나의 비즈니스로, 마치 하나의 예금계좌로 봅니다. 20년, 30년, 40년 전에 돈을 넣고 우리가 그것을 보유하면서 재투자 해주는 형식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저축계좌 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찰리(벅셔해서웨이 부회장)가 주식투자를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수년 간 강세장을 유지할 거라고 말씀해오신 이유 중 하나로 물가상승기 속 이자율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자율이 주가에 중력처럼 작용해서 이자율이 낮으면 주가는 반드시 오른다고 하셨죠. 이상하게도 갑자기 시장에서 실업률에 관한 좋은 뉴스가 이자율을 끌어올릴 거라고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Fed가 기대보다 이자율을 더 올릴거라는군요. 또한 걱정하는 바는 우리가 매번 눈으로 확인하는 10년물 국채 금리가 다시 3%를 찍느냐가 투자자와 트레이더들을 염려시키기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채권을 생각하면, 만약 당신이 30년물 국채를 산다면 이자가 잔뜩 붙어있고, 옛날에는 진짜 종이였지만 지금은 전자식이죠. 어쨌든 이자가 잔뜩 붙어있고 이자가 3%건 얼마건 그 이자가 30년간 지급된 뒤에 원금을 돌려줄 겁니다. 주식은 뭔가요? 주식도 비슷한 겁니다. 이자(시세차익+배당)가 잔뜩 붙어있고 그게 얼마인지 아직 적혀있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그 주식의 투자자라면 그 숫자를 맞추는 것이 여러분의 일이 되겠죠.

만약 그 숫자가 10%라면?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그들의 유형자산을 이용해서 연 10% 이상을 벌긴 합니다. 만약 그게 10% 라면? 그것은 3% 짜리 채권 수익률보다 오지게 큰 수익률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국채 수익률이 10%로 오른다는 것은 지분 증권의 가치를 바꾸는 것입니다. 지분 증권을 사는 것은 주식을 사는 것이고 제너럴모터스 혹은 벅셔해서웨이 외에도 그 어떤 주식이 될 수 있는 것인데요. 그리고 그것은 긴 시간동안 돈이 되어 돌아오겠죠. 벅셔는 더 오래걸릴 수도 있지만 수익은 클겁니다.

그리고 그 이자(차익+배당)는 당신에게 달려있죠. 투자자로서 당신의 일은 그 이자가 얼마일지 결정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식'을 사는 것이고 당신은 미래의 모든 원금과 이자를 현재의 할인된 주가로 사는 것이죠. 그리고 (길이를 재는)야드 자가 오를 수록, 여기서 야드자는 국채를 말합니다. 야드자(국채금리)가 오를수록 주식은 덜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고 이것은 단지 기초적인 경제 원리인 것이죠.

1982~3년에 국채 보유가 연 15% 수익률 이었을 때, 연 15%를 가져다 주는 주식을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이만큼이 평타였지만 만약 연 15% 수익을 가져다 주는 30년 만기 채권을 살 수 있다면 연 12%짜리 수익률의 주식투자는 보통수준 이하의 투자였죠. 그 시절에는요. 그러나 비즈니스에 투자해서 12%를 벌 때 지금처럼 국채 수익률이 3%라면 그것은 멋진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고 그게 주가를 여태껏 밀어올린 이유이죠.


그러면 3%는 15%가 되기엔 멀었다는 말씀이군요.(물론이죠, 저는 3%에서 15%까지 오르는 걸 본적이 있기도 합니다) 연례보고서에서 말씀 하셨지만, 수많은 투자자들이 채권을 몇 퍼센트 정도 담아야 한다고 듣는다고 하네요. 아마 주식:채권 60:40이나 70:30 비중으로 말이죠. 그렇게 해야만 하고 그게 안전한 방법이라고요. 뭘 놓치고 있는거죠.


가격 변동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주식을 안하는게 낫습니다. 주가가 내려간다고 바보같은 짓을 할거라면 주식 접어야죠.(잠깐, 바보짓은 뭔가요? 주식이 내려간다고 파는거요?) 예. 단순히 내려가니까 파는거요. 내말은 만약 20,000달러를 주고 집을 샀는데 누군가가 다음날 와서 15,000불에 집을 팔라고 해도 당신은 안팔겠죠. 왜냐면 집을 아무리 둘러봐도 15,000불은 말이 안되거든요. 그러나 누군가는 감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주식판에서 이런 결정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교육을 받는다면 주식을 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사는건지 바로 비즈니스를 사는건데 그리고 오래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래 채권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것도 말이죠.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그 메세지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을까요. 제가 이번에 올림픽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선수들이 하는 것들이 너무 쉬워보이더군요. 공중 곡예를 하고 얼음 위에서 엄청난 회전을 하는데 그걸 보고나서 연례보고서를 읽었는데, 오, 그래 주식투자는 쉽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뒤돌아서니 다시 어렵던걸요.


심리적으로 장기보유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21살 때부터 투자를 가르쳐왔어요. 그리고 지난 주에 한 수업은 11개 학교의 220명 학생을 가르쳤는데 몇몇은 알아듣는듯 했고 몇몇은 아닌거 같더군요. 그렇더라도 도박을 하려고 합니다. 6개월 안에 자산을 두배 불리려는 생각이, 그런 생각이 그들을 경마장에 가게하고 라스베가스에 가게하는 겁니다.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도박을 하죠. 단시간 내에 부유해지고자 하는 것은 강한 본능입니다. 그런데 난 그런거 할 줄 몰라요.


- 호호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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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버핏 투자 원칙 9가지

1. 투자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선의로 투자에 임해라. 

- 기업과 친해지고 기업이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

2.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3. 단순한 투자스타일을 추구하라.

4. 성공한 사람과 한 배를 타라. 

- 독점적인 사업체인가(2.3.4등 합친 것보다 크게 1등인가)

- 높은 수익성과 증가세(돈은 해가 갈수록 잘 버는지)

- 보수적으로 자산을 운용(빌린 돈 자기 돈을 신중하게 투자하는지)

- ROE가 지속적으로 높은가(돈을 꾸준히 잘 버는지)

- 수익을 유보하는가(돈 아껴놔야할 때 아껴놓을 줄 아는지)

- 유보 수익의 재투자 여부(돈을 써야할 데에 쓸 줄 아는지)

- 유보 수익이 기업의 시장가치를 상승 시킬 수 있는지

- 영업활동 비용이 어느정도(꼭 필요한데만 돈을 쓰는지)

- 물가 상승시 제품 가격을 바로 올릴 수 있는지(고객에게 대체불가능하고 스페셜한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지)

- 경영진의 신뢰도

- 자신의 직감

5. 가치평가는 투자의 기본

- PBR, PER, 현금흐름 평가법 등

6. 시장에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

- 자제력=성공, 탐욕+두려움=실패, 다른이들이 욕심을 낼 때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때 욕심을 내라.

7. 우량주에 집중 투자

- 계란을 한바구니에 몰아 넣어라, 3~5개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투자해라.

8. 장기 보유 전략

- 결혼상대자를 고르듯 주식을 고르고, 일단 소유했다면 계속 보유하라.

9. 안정성이 첫째, 수익은 그 다음

- 안전마진 확보, 위험회피·원금보존 전략, 기업가치를 시장이 알아주지 않는 때가 바로 안전마진을 최대 확보할 수 있는 기회, 예를 들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가 (투자자에게) 최대의 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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