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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八正道 명상법

루돌프 슈타이너 

 


루돌프 슈타이너는 ‘누가복음서 강의 - 부처와 그리스도교’라는 강연집에서 부처의 팔정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사물에 대한 올바른 견해 ― 공감이나 반감에 좌우되지 않고, 단순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견해가 아닌, 순수하게 바깥세계가 나타내는 것에 따라서 각각의 사물에 대해 갖는 바른 견해 ― 를 획득함으로써 세상에 관한 지혜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첫 번째 길, 즉 사물에 대한 ‘올바른 견해’(正見)입니다.


두 번째로 전생에서 남겨진 것으로부터 독립하여, 다른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일 없이 오로지 우리의 올바른 의견에 따라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올바른 판단’(正命)이 그것입니다.


세 번째는 세상에 자신을 전할 때 우리가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올바르게 판단하고, 전하려고 하는 것을 올바르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며, 말 속에 우리의 견해 이외의 것을 뒤섞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표명할 때, 그 모든 것에 우리의 견해 이외의 것을 안에 넣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가 말하는 ‘올바른 말’(正語)입니다.


네 번째로 공감과 반감, 우리 안에서 행行으로서 검게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에 의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닌 올바른 견해, 올바른 판단, 올바른 말로서 파악한 것을 행위로 옮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행위’(正業)입니다.


자기 안에 살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다섯 번째 것은 세상 속에서 올바른 위치, ‘올바른 입장’(正定)을 얻는 것입니다. 부처가 의도한 것은 ‘세상에서 자신의 과제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장소에 서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 혹은 운명에 의해 초래된 위치에서 가장 좋은 것을 끄집어내 가장 좋은 입장을 얻을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장소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올바르게 일할 수 있는 힘을 그 장소에서 이끌어낼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올바른 견해, 올바른 판단 등을 통해서 자신의 것이 된 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 무엇인가 습관을 갖게 됩니다. 아이는 어떤 경향, 습관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인간은 행行으로부터 유래하는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견해, 올바른 판단, 올바른 말 등으로 조금씩 몸에 익힌 습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기 것으로 해야 할 ‘올바른 습관’(正精進)입니다.


일곱 번째로 오늘 행동할 때 어제의 일을 잊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상황에 질서를 부여합니다. 날마다 온갖 것들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성취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온갖 사물에 대해서 사고, 기억을 발전시키려고 시도해야 합니다. 이미 배운 것을 끊임없이 유용하게 만들려 하고 현재를 과거와 연결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올바른 기억’(正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는 이런저런 의견에 대해 편애 없이 전생에서 남겨진 것을 침묵시키고 순수하게 사물에 침잠하여 사물 자신이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관찰’(正思惟)입니다.


이 팔정도를 깊이 헤아림으로써 서서히 존재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고, 지나간 인생으로부터 찾아와 혼을 노예로 만드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부처는 말하였습니다.”

 

아래의 글은 슈타이너가 제안한 명상법이다. 날마다 같은 시간에 팔정도에 관한 글귀를 읽고 명상에 잠길 수 있다면 우리의 영혼은 탐진치의 삼독으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질 것이다.

 

   

일요일 - 정명正命 

다만 이유가 있고, 완전히 심사숙고하여 의미 없는 것조차도 스스로 결심하십시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 의미 없이 행위하는 모든 것은 마음에서 멀리 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 늘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우리는 타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무엇에 대하여 의미 있는 타당성이 없다면 무조건 그만두어야 합니다. 결심을 내린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확신이 서면, 내적으로 의연하게 흔들림 없이 그것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올바른 판단”으로서 공감과 반감에 매이지 않고 내려진 판단입니다.

  

SUNDAY

To resolve out of absolutely full consideration, even in regard to that which is insignificant, to keep every thoughtless action, every insignificant action (deed) away from the soul. One should have well-formed reasons for every deed and one should, by all means leave alone that which has no significant motive. The so-called ‘real Judgment’ which does not depend on sympathy or antipathy: If one is convinced of the rightness of the resolution one has formed, one should hold fast to it. This is ‘Real Judgment’.

 


월요일 - 정어正語 

말하기. 좀더 높은 진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내용과 의미를 담고 있는 것만을 입에 올립니다. 말하기 위해 말하는 모든 것은, 시간낭비를 위해 행할 때, 그런 의미로는 해로운 것입니다. 이것저것 뒤섞어 말하는 일반 성질의 담화는 피하십시오. 그렇다고 자기 주변 사람과의 교류까지 제외해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교류 속에서의 말하기는 차츰 차츰 중요한 것으로 발전해 나가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대답해야 하지만, 사려 깊게 각 방향으로 생각해 봅니다. 근거 없는 말은 절대 하지 말고, 기꺼이 침묵합니다. 너무 많이도 말고 너무 적지도 않게 말하도록 시도해 봅니다. 우선 바르게 귀기울여 듣기에 몰두해 봅니다. 이것이 “올바른 말”입니다.

 

MONDAY

In speaking, only what has sense or significance should come from the lips of those striving for higher development. Speaking for the sake of speaking is bad in the sense that general kinds of conversations where all subjects are jumbled together should be avoided. One shall, by no means, cut oneself off from one’s fellow companions, one should develop one’s conversation, step by step into something of significance. One speaks and gives one’s answers thoughtfully. Thinking about the thing in all directions, never speaking without reason, rather loving to remain silent. One must try to utter neither too many words nor too few. This is the ‘Right Word’.

 


화요일 - 정업正業 

외적 행위. 이것이 주변 사람을 방해하면서 일어나면 안 됩니다. 자신의 내적 확신을 바탕으로 행해질 때, 즉 어떻게 그 이유에 가장 잘 맞게 행할 수 있는지를 곰곰이 숙고해 봅니다. 전체의 평안을 위하여, 사람들의 지속적인 행복을 위하여, 영원한 것을 위하여. 스스로가 자신의 결단력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행할 때, 자기 행위의 작용을 미리 아주 철저하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올바른 행위”라고 말합니다.

  

TUESDAY

The outward deeds; they should not be disturbing for other human beings; where one is caused to act out of one’s own inner conscience, to consider carefully, how one can meet the demands in the right way for the sake of the entire and continual development of one’s fellow human beings, the eternal. If one acts out of oneself, out of One’s own inner initiative, thoroughly to anticipate the effects of one’s own actions; This is the ‘Right Deed’.

 

 

수요일 - 정정正定 

삶의 계획. 자연에 맞게, 그리고 정신을 따르며 산다는 것은 삶에서 외적으로 보잘 것 없는 것에 전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함과 서두름을 가져오는 모든 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너무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태만해서도 안 됩니다. 삶은 높은 진화를 향한 활동의 수단으로 여기고 그에 맞게 설계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우리는 “올바른 관점”을 말합니다.

 

WEDNESDAY

The meaning of one’s life, to live in accordance with nature and spirit, not to lose oneself in the external hurry of life, to avoid everything that brings restlessness and haste into one’s life. To do nothing rash, yet not to be inwardly Idle. To see in life the means for working for higher development and to act accordingly. One speaks in this connection of right life, ‘Right Standpoint’.

 

 

목요일 - 정정진正精進 

인간의 노력. 무엇이고 자신의 힘 밖에 있는 것을 행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힘 안에 있는 것을 태만히 하는 것도 안 됩니다. 일상적인 것, 순간적인 것을 넘어서 바라보며, 자신의 목적과 이상을 세우는 것은 한 사람의 지고한 의무와도 연결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앞에 주어진 수련을 통한 진화는 나중에 자신의 주변 사람을 좀더 많이 돕고 또 조언해 줄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아주 가까운 미래는 아닐지라도. 이것을 요약하면, 앞서 주어진 모든 수련이 습관화되게 하는 것, 즉 “올바른 습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THURSDAY

One should do nothing which lies outside one’s capacities, but one should do everything which is within one’s powers. One should place above everyday life, and that which happens at the moment, goals and ideals, which are in connection with the greatest duties a human being can have. For instance, to develop oneself, by making a habit of these exercises, in order to help one’s fellow human being all the more, to advise them, although perhaps not in the immediate future. What has been said can be summed up in : ‘Make a habit of these exercises.’



금요일 - 정념正念 

노력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능한 많이 배우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스쳐지나가 버리는 것은 없으며, 경험을 쌓는 기회가 아닌 것이 없으며, 그 경험들은 삶을 위해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올바르지 않게 혹은 불완전하게 행하면, 그것은 훗날 올바르게 또는 완전하게 행하는 기회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행하는 것을 보면, 비슷한 목적을 위해 그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그러나 냉혹한 시선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일어난 사건들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일들이 자신의 결정과 일의 수행에서 어떤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서, 어린이들에게도 무엇인가 배울 수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면 말입니다. 올바른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을 “올바른 기억”이라고 부릅니다.

 

FRIDAY

Strive to learn as much as possible. Nothing passes us without giving us occasion to accumulate the experience which is of value for our lives. If one has performed anything wrongly or imperfectly, this can be an incentive for repeating the performance later on rightly and perfectly. One will not do anything without looking back on experience from which one can derive help in one’s decisions and affairs. One can learn a great deal from everybody, also from children. Remember in the right way, experiences one has had. This is called the ‘Right Memory’.

 


토요일 - 정견正見 

자신의 생각과 사고에 유의하기. 즉, 다만 의미 있는 사고들만 생각하기. 자신의 사고에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하여 영원한 것과 무상한 것을 구분하는 것을 점차 배워가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때는 내면으로 아주 차분히 하고 어떤 동의나, 특히 부정적인 모든 판단(비판하는 자세, 거부하는 자세)을 생각과 감정 속에서 멀리 하십시오. 이것이 “올바른 견해”입니다.

  

SATURDAY

To pay attention to one’s ideas and thoughts. To think only significant thoughts. To learn little by little to discriminate between the essential and the non-essential, truth from mere opinion, the eternal from the transitory. To train to become inwardly absolutely silent in listening to the words of our fellowmen and to renounce expectations that the opinion of another will agree with one’s own, especially to renounce every criticism in thought and feeling. This is the ‘Right Opinion’.

 

 

종합(일주일) - 정사유正思惟 

날마다 같은 시간을 정하여 다만 5분간이라도 때때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이때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하여, 꼼꼼히 스스로 신중을 기울여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숙고해 보며, 혹은 정반대의 것을 머릿속에서 생각해 봅니다. 자기 자신의 의무들을 새겨보며 그 내용에 관하여, 참된 것에 관하여, 인생의 목적에 관하여 심사숙고해 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본질적인 것,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을 꺼내서 찾아내며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그에 맞는 목적들, 예컨대 얻게 될 미덕의 가치들을 진지하게 처리합니다.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되며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여, 계속 매진하며 최고의 모범을 떠올려 생각해 봅니다.) 이와 같은 수련을 “올바른 관찰”이라고 칭합니다.

 

SUMMARY

To turn one’s gaze inwards from time to time, even if only for five minutes daily, at the same time. In so doing one should sink down into oneself, carefully take counsel with oneself, test and picture one’s principles of life, run through in thought one’s duties, think over the contents and true purpose of life. In a word: Strive to discover the essential, the enduring, and earnestly work with the end in view, for instance, virtues to be acquired. (Not to fall into the mistake of thinking that one has done something well, but to strive ever further towards the highest prototypes.) One also calls this exercise: ‘Right Exa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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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네가지 희생

루돌프 슈타이너 (Rudolf Steiner)

바젤, 1914년 7월 1일

GA 152



현대문명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그리스도 인식)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정신과학(the science of the spirit)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새로운 그리스도 인식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에 대한 공식적인 봉인을 책임지고 있는 많은 곳에서 이 새로운 인식을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헌신(unselfishness)의 학파가 현재 우리문명에 필요한 것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책임감 쇄신(갱생, 부활)과 도덕적 생활의 심화는 헌신의 수련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찾아오며, 현시대 상황 하에서는 모든 것에 충만한 진실 된 헌신에 대한 이해를 얻는데 승리한 자들만이 이 학파를 통해서 전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진화 전체를 통틀어서 그리스도가 지상에 출현하여 드러낸 헌신의 이해보다 더 깊은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헌신의 학파를 경험하는 것이며, 우리 내면의 모든 이타적 성향에 온기와 활력을 부여하고, 활기 없는 혼적 삶(soul life)을 능동적으로 각성시키는, 조용히 우리의 혼에 들어와 인간을 발달시키는 그런 모든 동기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물론의 영향 하에서 먼 미래에만 완전히 깨달을 정도로 인류의 본성적인 헌신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하지만 골고타의 신비를 명상함으로써, 그 지식을 우리의 모든 감정(感情)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우리의 혼(soul-being) 전체에 헌신의 소양(덕성, education)을 다시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지구적인 진화를 위해 행한 일들이 헌신의 근본적 충동에 포함된 것이며, 그가 인간 혼의 의식적인 발달을 위해 되려고 한 것(존재)은 헌신의 학파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골고타의 신비와 그것을 포함한 모든 관계를 고찰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기적은 잘 알고 있듯이 지구의 물리적 진화과정에서 단 한번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존재는 단 한번 인간의 몸을, 나사렛 예수의 몸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 행위는 3번의 준비단계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보다 앞서 3번의 유사한 성질의 무엇인가가 지상이 아닌 영계(the spiritual world)에서 일어났으며 우리는 어떤 의미로 아직 물리적인 면으로 성숙되지 못한( 충족되지 못한) 3번의 골고타의 신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서와 바오로 서간에 언급되어 있듯이 오직 4번째만이 물리영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지구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이 사건은 3번의 초지구적(영계) 행위에 의해 준비 되었는데 한번은 고대 레무리아 시대에, 두 번은 아틀란티스 시대에 일어났습니다. 비록 이 3번의 준비단계가 지구를 초월한 영계의 영역에서 일어났지만 그 힘들은 지구로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이 힘들이 인간진화에 끼친 영향을 이해하는데 힘을 쓸 것입니다.


우리의 도덕적 생활, 세계에 대한 이해에 관해, 또 의식혼의 모든 활동에 관하여 우리는 우선 헌신(獻身, selfless)적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우리 문화가 가지는 의무입니다. 인류는 점점 더 많이 헌신적이 되어야합니다. 지구적인 인간성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랑과 올바른 삶의 미래는 거기에 놓여있습니다. 우리의 의식적 삶은 헌신으로 가는 길 위에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어떤 것에 관련해서 본질적 헌신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으며. 도덕적, 지적, 정서적 삶에서 인간 존재의 어떤 부분이 여전히 이기적이라면 그것은 지구적인 인간에 있어서 가장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만약 비슷한 정도의 이기심이 우리의 감각을 붙잡을 수 있다면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감각들은 지금 성실히 이타적 방법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몸에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눈을 통해서 봅니다만 그것은 오로지 우리가 눈의 존재를 느낄 수 없고 눈이 헌신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 사물을 보게 됩니다만 눈 그 자체는 우리의 지각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감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우리의 눈이 이기적이라고 해봅시다.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예를 들어 우리가 파란색에 접근한다면 눈은 파란색을 통과시키는 대신 눈 내부에서 즉시 색을 소진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눈에서 일종의 흡인력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눈이 도덕적, 지적, 정서적 삶에 대해 현재 우리가 가진 만큼 이기적이어서 스스로의 내부에서 빨강의 영향을 경험하고 싶다고 바란다면 우리는 날카롭게 찌르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눈이 이기적이었다면 우리가 느끼는 모든 인상은 우리에게 흡인되거나 찌르는 고통을 줄 것입니다.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고통스럽게 의식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성은 보는 과정 없이도 색과 빛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눈은 인식과정에서 이타적으로(헌신적으로) 침묵하며 다른 감각 또한 같습니다.


우리의 감각들에 헌신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만 만약 고대 레무리아시대에 루시퍼가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면 감각들은 이 헌신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너의 눈을 떠라」라고 말한 정신(spirit) 은 인간이 지구적 삶의 영역으로 변화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루시퍼의 영향 하에서 발달되었다면 거기서 인간의 눈은 이기적인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든 인상마다-다른 감각에 대해서도 같았겠지만-인간은 「오- 그것이 나를 찌른다.」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는 주위 환경에서 빨강을 지각하지 못했습니다. 또는 「오 무엇인가가 내 눈으로 흡수된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파랑을 의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그러한 흡수되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레무리아 시대 이 인간성에 대한 위험은 나중에 골고타의 신비를 통해서, 나사렛 예수의 몸으로 육화(incarnate)했던 존재에 의해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초기시대의 경우 그는 스스로를 대천사(archangel)중 하나에 혼을 불어 넣은 것으로, 저는 육화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구가 레무리아시대를 통해서 활동하고 있는 동안 고차의 영계에서 살고 있던 존재가 - 일종의 세례 요한의 예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자신의 혼의 힘들을 바칠 대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에 의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서 지상의 인간진화 내부에서 작용하는 힘들이 해방되었습니다. 이 영향의 결과물이 우리 감각의 안정화와 조화로움이며 이로 인해 우리들은 자신의 감각에서 헌신을 발견하고 그 감각을 이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이해하고 세계질서에 감사하게 된다면 우리들은 이러한 고대를 되돌아 볼 때 인간이 감각적 존재로써 고통 없이 주위 자연의 모든 장엄함을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희생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대천사로 자신의 혼을 불어넣음으로써 그는 인간에게 이기적 감감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이것이 골고다 신비로 이끄는(이르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인류가 자연의 아름다움과 마주대할 때,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볼 때, 동물, 광물, 식물계에서 태양이 비추는 모든 것들을 바라볼 때 인류는 이 깊고 중요하고 종교적인 느낌들을 점차 발달시키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내가 나를 둘러싼 주위를 볼 수 있도록 그 세계에 존재하고, 나의 감각이 고통의 원천이 아니라 장엄한 세상을 지각하게 하는 도구라는 것은 골고다의 신비를 준비하는 그리스도의 첫 번째 희생에 힘입은 것이다.”라는 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견지로 자연에 대한 모든 관찰과 향유에 그리스도가 충만해질 시대를 앞서 살펴본다면, 사람들은 상쾌한 봄과 여름의 따뜻함, 또는 자연에 대한 그 외의 모든 기쁨 안에서 자신이 새로워질 때 스스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모든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감각 내부의 그리스도가 그것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었음을 깨달아야한다.”


아틀란티스진화 제1기에 이기심이 -이번에는 루시퍼와 아리만을 통해서- 인간 유기체의 다른 부분, 즉 생명기관을 소유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생명기관에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인지 고찰해봅시다. 그 본질적 성질은 무엇일까요. 기질성 질환(organic disease)에 의해 해를 입었을 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심장, 폐, 위 등 생명기관의 이기심 때문에 괴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사람은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자신에게 심장이나 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병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기관이 이기적이 되어서 우리 내부에서 자신의 독립된 삶을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통상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이렇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 각각의 기관들은 우리 내부에서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생명기관이 육체의 헌신적인 종으로 남을 때만이, 위장이나 폐 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할 때만이 우리의 평범한 조직(구성)은 물리적 세계에서 안정적으로 우리를 유지시킵니다.


왜 기관의 이기심으로부터 병이 생기는지는 다른 기회를 통해 고찰하기로 합시다. 오늘 토론은 정상적인 상태에 한정할 것입니다. 루시퍼와 아리만에 의존했다면 이미 아틀란티스 시대에 전혀 다른 상태가 존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각 기관은 이기적으로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지극히 이상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외부세계에서 먹을 수 있는 과일 같은 무엇인가를 보았고, 그것이 그의 생명기관과 어떤 종류의 관계에 있다고 가정합시다. 언젠가 우리의 기관과 외부 세계의 이러한 관계는 순수한 과학적 연구 주제가 될 것입니다. 만약 다른 과학이 정신과학과 제휴하게 된다면, 인간이 나무에서 버찌를 따서 먹을 때 특정한 기관과 관계하는 무엇인가가 그 버찌와 함께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과일들은 다른 기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유기체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그 유기체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루시퍼와 아리만이 아틀란티스 시대에 그들의 의도를 성취시킬 수 있었다면, 예를 들어 우리가 버찌를 딸 때 버찌와 관계가 있는 기관이 도가 넘치는 탐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기적인 기관뿐만 아니라 인간은 다른 모든 기관들 또한 똑같은 이기심으로 그것에 저항하려고 싸우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유해한 것이 있다고 합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인간성에 유익한 것이 있으면 인간성에 해로운 영향을 주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독이 있는 식물에 접근하거나, 또는 어느 기관에 유해한 것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한 기관에 화상을 입는 듯한 느낌을 주는 무엇인가와 마주대하고 있음을 의식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먹을 것이 아닌 우리를 둘러싼 공기를 고찰해봅시다. 대기의 각 원소들이 우리의 여러 기관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루시퍼와 아리만의 의도대로 되고 그 상태가 그대로 방치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기관을 만족시키는 것에 대한 동물적 욕구, 또는 모든 유해한 것들에 대한 극심한 혐오감에 의해 세상을 이리저리 쫓겨 다녔을 것입니다. 만약 기분 좋은 냄새를 향하거나 메스꺼운 것을 피해서 강제로 우리를 고무공이나 장난감처럼 여기저기 끌고 다니는 그런 육체기관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서 어떻게 자신을 발달시켜야할지 상상해보십시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우리의 생명기관을 복종시키고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은 제1아틀란티스 시대에 영계에서 일어난 위대한 사건의 결과이며 이것이 골고다의 신비를 향해 취해진 두 번째 단계입니다. 그리스도적 존재는 다시 대천사로 자신의 혼을 불어넣었고, 지구의 대기 속으로 빛이 비춰진 이 행위에 의해서 생명기관을 조화와 균형이 있게 하고 그것들을 헌신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 사건이 없었다면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심한 병에 노출되었을 것이며, 온전히 건강한 상태로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전망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영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 충만해질(채워질) 수 있을 때 인간성이 의지하고 있는 영적존재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진정한 경건함으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물리적 인간으로서 헌식적인 기관들을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나 혼자 이 세계에서 스스로를 발달시킨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내가 인간으로 있을 수 있도록 나의 기관들을 변화시켜(conditioned)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이렇게) 본질적이고 가장 포괄적 의미에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모든 것을 존중하는(주시하는, regard) 법을 배우게 되고, 우리는 「내가 아닌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실제적인 골고다 신비 이전 세 번의 예비단계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성의 완전한 진화를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아틀란티스시기에 인간성은 세 번째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사고, 감정, 의지가 이기심의 침투에 의한 무질서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인간은 이것저것을 하려고 생각하고 의지의 이런 저런 충동에 따랐을 것이고 그러는 동안 그의 사고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감정은 또 다른 방향으로 그를 몰아댔을 것입니다. 인간진화에 있어서 사고, 감정, 의지는 결합된 혼의 헌신적인 구성원이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루시퍼와 아리만의 영향 하에서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독립적으로 이기적이 된 사고, 감정, 의지는 그리스도의 조화로운 작용을 산산이 찢어놓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틀란티스진화 종말 무렵에 3번째 그리스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한번 그리스도적 존재가 스스로 대천사에 혼을 불어넣었고 그로 인해 영계에서 발생한 힘은 사고, 감정, 의지의 조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실제로 물리적 태양광선이 식물의 생명이 쇠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상에 작용해야하는 것처럼 태양령(Sun Spirit)은 지금 설명했듯이 지구를 초월한 영역으로부터 지상으로 반영되어져야하는 것입니다.


이 세 번째 그리스도 사건이 없었다면 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치 분노에 내몰린 것처럼 그는 감당할 수없는 욕망과 의지의 활동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비록 그의 이기적 이성(지성, reason)이 분노에 미친 의지에 의해 초래된 모든 것에 대해 냉소적(조소의 대상)으로 생각했을 지라도 그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가 3번째 대천사의 혼을 외적모체로 취한 제3그리스도 사건에 의해서 이런 일을 피 할 수 있었습니다.


인류는 인간의 정열과 인간의 사고가 영계로부터 하강한 힘들에 의해 이 시대에 어떻게 해서 조화롭게 되었는가에 대한 얼마간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만, 이 기억의 흔적(기호, 표시)은 바르게 이해되고 있지 않습니다. ‘드래곤을 정복한 성 죠지’나 ‘드래곤을 전복한 성 미카엘’은 그리스도가 대천사로 자신의 혼을 불어넣었던 3번째 그리스도 사건의 상징입니다. 발아래 짓밟힌 드래곤은 사고, 감정, 의지에 혼란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드래곤을 정복한 성 죠지나 성 미카엘 또는 그와 비슷한 종류의 삽화들에 시선을 향하는 모든 사람들은 제3의 그리스도 사건을 지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틀란티스 시대의 말기 영계에서 일어난 사건을 훌륭한 신화로 재창조해낸 그리스인은 태양령을 인간의 사고, 감정, 의지를 조화롭게 만든 존재로서 숭배했습니다.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당신 태양령이여!」 「당신은 당신 자신을 에테르적 영의 형태로 혼을 불어 넣었습니다.」에서 그 형태는 오늘날 우리가 대천사라고 부르는 형태입니다. 「당신은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미쳐 날뛰게 했을지도 모르는 사고, 감정, 의지에 인간 혼의 음들(tones)이 조화롭게 울리게 하는 당신의 수금(竪琴)으로 질서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렇게 태양령은 미쳐 날뛰는 열정들(passions), 즉 때때로 지구 내부로부터 올라와 표면을 깨고 증기(노여움, fumes)로 분출했던 그 열정들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인간이 그러한 정열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오직 이들 증기(망상, vapor)만이 인간에게 작용했다면. 사고, 감정, 의지는 인간의 내부에서 미친 듯이 사납게 날뛰었을 것입니다. 그리스인은 퓨티아를 그러한 증기(vapor) 위에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증기는 지구 내부에서 솟아오를 때 루시퍼와 아리만을 통해 정열을 혼란으로 빠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퓨티아의 위에 아폴로가 빛을 비추고 미쳐 날뛰는 정열을 정복하여 그녀는 무녀(여사제, sibyl)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인에게 있어서 아폴로, 태양령은 3번째 희생단계의 그리스도를 묘사한 것이었고, 아폴로 신에 의해 주어진 퓨티아의 힘 아래 인간들의 정열의 조율(조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행위의 결과를 인식했습니다. 이 점에서 그리스인에게 아폴로는 드래곤에 대항해 승리를 거둔 미카엘이나 성 죠지로 표출된 존재였습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 Martyr)의 비상한 발언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비록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교의 대표자들이 이 발언을 이단이라고 단정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존중해야합니다. 유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헤라클리테스(heraclites), 소크라테스, 플라톤도 기독교도였다. 골고다 신비가 실제로 성취되기 이전에 가능한 유일한 종류의 기독교교도였다」오늘날 신학자들은 더 이상 그것을 깨닫지 못하지만 그리스도교 초기 수세기동안 그리스도교의 순교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현자들이 비록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아폴로에 대한 물음에 신비적인 영지로부터 「 미래에 지상의 인간으로써 살게 될 위대한 태양령은 마치 대천사의 형태로 혼을 불어넣었던 것처럼 우리들에게 아폴로로 나타난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4의 신비, 지구적인 신비, 골고다의 신비입니다. 3번 대천사형태로 혼을 불어넣었던 그리스도적 존재가 이른바 요르단 강에서 요한의 세례를 통해서 나사렛 예수의 몸으로 육화했습니다.


나는 이 위대한 존재가 3번 대천사의 형태로 그리고 인간으로 육화(incarnation)했다는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대천사로의 입혼(ensoulment)과 인간으로의 육화 사이에 그가 천사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좀 더 정연한 진행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록 정신과학의 진술을 허구라고 주장할지라도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뒷받침하는 증거로부터 이것을 모을지도 모릅니다.(여러분이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나에게 그리스도가 하이어라키(hierarchy : 대천사)에서 하이어라키로 하강하지 않고 나중에 인간으로 하강한 것은 대체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 만약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결코 이론적인 조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연구에 의해서 이끌어낸 사실은 그리스도가 3번 대천사의 형태를 선택하고 네 번째는 천사형태를 생략하고 인간의 몸을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미래의 연구에 남겨두겠습니다. 나는 아직 그 이유를 모릅니다만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다음은 4번째 단계의 골고다의 신비로 루시퍼와 아리만이 인간의 자아(ego) 또는 ‘나‘에게 영향을 미치려던 또 다른 위험을 이 신비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레무리아시대에는 루시퍼를 통해서 감각기관이 무질서로, 제1아틀란티스시대에는 생명기관이 혼란과 부조화로, 그리고 후기 아틀란티스시대에는 혼의 기관, 사고 ? 감정 ? 의지의 근간이 되는 기관이 위협받았습니다. 후 아틀란티스기에는 인간의 자아 그 자체가 위험에 빠졌습니다.


이 때에 자아 또는 ‘나’는 인간진화에 있어서 살아있는 인자로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 자아가 우주의 힘들의 장남감이 되지 않도록 둘 사이의 조화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러한 자아가 우주적 힘들의 노리개가 되는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자아는 스스로를 단단히 붙잡고 있을 수 없도록 발달되어, 혼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바람, 공기, 물로부터 발생한 온갖 종류의 엘리멘탈(elemental) 힘으로 인도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인간을 폭력적으로 여기저기로 내몰았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시빌(Sybils)」에서 그는 인류를 위협한 존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솜씨로 다가올 에고의 혼란, 그로인해 비록 모든 가능한 영지(wisdom)가 나타날지라도 그것을 제어하는 일도 방향을 잡는 일도 불가능한 혼란을 느낀 인간형태를 표현했습니다. *엘리멘탈적 존재들에게 맡겨진 자아를 표현한 그림에서 여러 혼란의 정도를 미켈란젤로가 어떻게 그렸는지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또 다른 것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그는 예언을 묵상하는 인물을 그렸으며 그 표정은 우주를 향해 자아의 완전무결함을 보호하는 것들의 빛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에게서 자아를 향한 압박과 긴박함을, 다른 한편으로 인간에게서 자아 그 자체를 통한 혼란의 괴로움을 볼 때 우리는 깊이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또한 이 공간에 서있는 존재는 그리스도, 인간의 몸으로 육화한 그리스도이며. 그는 세상에 태어날 자아에게 조화와 질서를 가져와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신과학은 이 인간 자아가 4번째 그리스도 사건, 골고다의 신비를 통해서 진실한 헌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점점 더 깊이 우리에게 각인시킬 것입니다. 이미 감각은 말했습니다. 「내가 아닌 내안의 그리스도다.」이미 생명기관은 말했습니다. 「내가 아닌 내안의 그리스도다.」 인간은 그의 도덕적 지적 삶에서「내가 아닌 내안의 그리스도다.」라는 말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우리에게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기회를 통해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오컬트적 증거들을 제공하기 위해, 정신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지적 삶 안에 쏟아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러한 방법으로 인간이 헌신(selflessness)의 학도가 되기 위해, 정신과학에 대한 토론을 통해 발설되는 말 하나하나에서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살아있게 하기위해 나는 오늘 이것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하나 더 말해둘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1909년부터 우리가 뮌헨에서 신비극을 상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무대에 올린 극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좋은지 나쁜지 고찰해 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주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서 일어난 일들은 어떤 영적인 힘, 인간이 단지 지상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접근하지 않는 힘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도나흐에서 일하며 다양한 종류의 단단한 목재를 조각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근육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힘을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부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몸, 우리의 혼적인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똑같이 우리가 영적인 힘을 필요로 하는 모든 영적인 일은 우리의 제어 하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본성적인 능력에 의존하고 있지 않으며. 그것은 바로 우리가 물리적으로 행하는 것이 우리의 재능이 아닌 몸의 근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근육의 힘이 혼의 외부에 있는 것과 같이 우리는 우리 외부에 있는 많은 영적인 힘들이 필요합니다. 나는 피상적인 비판자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바보다. 당신은 영적세력이 외부로부터 당신에게 온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 자신의 내적 존재로부터 상승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게 놔둡시다. 나는 이러한 사람을 굶주림과 한 조각의 빵을 구별하지 못하는 교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영적 힘들이 어떻게 외부로부터 인간 내부로 흘러들어오는지 알고 있습니다. 굶주림이 굶주림을 만족시키는 빵을 창조한다고 하는 이념은 -미친 사람밖에 믿지 않겠지만- 우리가 가진 혼의 힘들이 영적활동을 위해 필요한 힘들을 창조할 수 있다고 하는 것만큼 허황된 것입니다. 이러한 힘들은 반듯이 우리 내부로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굶주림이 우리의 내부에 있고 빵은 외부로부터 온다는 것을 우리가 명확히 알고 있듯이 영계에서 살고 있는 존재는 자신의 내부에 무엇이 있고 외부로부터 무엇이 오는지 알고 있습니다. 1909년 이후부터 신비극을 위해 필요한 것을 조용히 발전시킬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개인적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영적 힘을 점점 더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성취되어진 것에 영적인 눈(a spiritual eye)이 머무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며 이것은 내가 직접적인 경험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정신과학을 연구하고 있던 초기에 한 지인이 우리를 찾아왔으며, 그녀는 당시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을 정열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그녀는 인간의 진화, 우주의 신비, 재육화(reincarnation), 카르마에 관한 것들을 헌신과 정열을 가지고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 훌륭한 미의식을 보탰습니다. 가르치는 장소이든 대화의 장소이든 이 사람과의 경험 하나하나에는 아름다움이 배어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당시 소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방에 서로 아우성칠 필요가 없었고 우리가 지금 많은 청중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당시에는 나와 다른 두 명 이렇게 3명이서 의논한 것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지금 말한 멤버는 1904년에 물질계를 떠나서 영계에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후에도 발달을 지속합니다. 1907년 회의에서 우리가 『에레우시스의 신비(Mystery of Eleusis)』의 슈어(Schure)의 재건을 상연했을 때, 영적 영향은 조금도 지각 할 수 없었습니다. 1909년에 영적인 영향이 시작되어 그 이후부터 점점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나는 객관적으로 또한 그녀의 독창성으로 미루어 그것이 사랑하는 친구의 개성(개체성, individuality)이라는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계로 옮겨간 그녀는 신비의식(Mysteries) 속에서 심미적이고 비교적(esoteric)인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우리가 성취하는 모든 것에 수호천사로써 활동했습니다. 우리들은 보호받는다고 느꼈으며, 우리에게 침투하여 우리의 지상적 활동으로 흘러드는 것이 영적 인격의 경계(watchfulness)의 표출이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의 마음으로 위를 향해 눈길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인격과 대화하게 되었을 때 -어떤 상호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대화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그녀는 우리가 지구의 진화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사고에 충만해질수록 우리를 향한 길을 더 쉽게 찾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반복한 것을 지상의 말로 옮겨 놓는다면, 물론 영계에서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그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면 「당신들이 정신과학을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말의 표현으로 만드는 방법을 항상 추구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에게 가는 길을 쉽게 찾아낸다.」


그리스도 충동( The Christ impulse)은 우리를 위해 초물질적인 세계에서의 삶과 지상적인 삶 사이의 살아있는 다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영계로부터 인간을 위해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영적 조성을 3번 정돈했습니다. 그리스도는 3번 개입하여 인간의 감각 기관, 생명 기관, 혼의 기관을 헌신적(unselfish)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인간의 과제는 「내가 아니고, 내 안의 그리스도다」라고 하는 말의 이해를 통해 도덕적, 지적 삶에서 헌신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정신과학의 메시지가 그리스도의 말이라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하리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 정신과학의 사명은 살아있는 그리스도로 향하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지상의 활동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아낸 것을 알고 있는 죽은 자들은 살아있는 자의 이해와 일치하게 됩니다. 만약 죽은 자들이 가장 가까운 보호자로써 지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힘을 쏟는다면 그들은 그리스도 충동이 침투하여 영화된 가장 강렬한 저들의 혼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태양정신으로써 골고다의 희생을 통해 초물리세계로부터 사람들의 혼에서 거주지(dwelling)를 찾아내기 위해 하강했습니다. 정신과학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혼에서 어떻게 거주지를 찾아내는가를 전하는 메시지여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지상적 혼에서 그의 주거지(adobe)를 찾아낸다면 그 때 그리스도의 힘은 지구의 오라로부터 그가 인류의 구제를 위해 버린 세상 속으로 역류하여 전 우주가 그에 의해 구석구석까지 침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과학에 우리자신을 완전히 몸담음으로써 골고다의 신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이것을 고찰하고, 더욱 그것을 미래의 인간성의 지식적 도덕적 삶을 위한 헌신의 학파(a school of unselfishness)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골고다의 신비에 대한 정신과학적 선언의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삶에 들어오려고 애쓰는 정신과학적 충동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충동은 모든 사람이 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성에 침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한 국가만을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고, 위대한 태양정신으로 그는 전 지구에 속해 있고, 국가와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충동과 골고다의 신비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찾아내기를...! 그 때에는 어쩌면 오늘날 반기독교적 그리고 이단으로 각인되어진 것이 가장 기독교적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들이 골고다의 신비에 대한 단순한 지식적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의 혼 전체로 파악하려는 능력을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는 정신과학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며, 영적 흐름의 일원으로써 우리들은 지금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인류의 필수불가결한 것들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허락된 저들의 혼에 귀속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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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메이지 시대는 학습열의 시대였다.

국가가 융성하려면 모든 국민들이 공부에 푹 빠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 속도에 발 맞추어 정치인들도 학습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어려운 상황을 뚫고 일정 수준 이상 올라선 것도 교육열 덕분이라 하겠다.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시대가 바로 그러했다.


“이름이 판명된 것만 해도 2,000여 개가 넘는 1880년대의 민중결사에서는 연설회나 토론회가 개최되어, 국회 개설을 위한 정치활동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독서회도 개최되어 정치, 법률, 경제 등과 관련된 서구 근대 사상 번역서들을 읽고 격론을 벌였다. 그 시대 민중결사의 대부분은 ‘학습결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를 자른 지 얼마 안 된 무사(부시)나 정인(조닌), 농민들은, 연설회나 독서회 등을 통하여 서구 근대의 자유나 평등사상을 배워 자신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국가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며, 그 틀이 될 헌법의 초안도 작성하고 있었다.” (책 ‘에도의 독서회’, 마에다 쓰토무 저)



2. 독서회는 세 가지 원리가 있었다.

독서회는 여러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책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다. 독서 토론의 경험이 있다면 누구든 그 책을 제대로 읽고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 대화를 주도해 나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독서회의 어떠한 특징 덕분에 일본의 성장에 도움을 준 것일까?


“회독(독서회)의 제1원리는 …. 참가자 간의 ‘토론’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성이다. 이 원리가 특필되어야 하는 이유는 근세 일본 국가가 상의하달(상명하복의 군대식 체계)의 일방향적이고 종적인 인간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회독의 두 번째 원리는 ‘토론’을 할 때 참가자의 귀천이나 존비의 구별 없이 평등한 관계에서 진행한다는 대등성이다. ….회독의 장은 이처럼 대등하게 실력만이 시험 받는 곳이었다. …. 세 번째 원리는 독서를 목적으로 하여 기일을 정하고 일정 장소에서 행한다는 것을 규칙으로 정하고, 복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집합한다는 결사성이다.” (책 ‘에도의 독서회’, 마에다 쓰토무 저)



3. 독서회는 왜 힘이 빠지게 되었을까?

근대 일본에서 독서회가 활짝 꽃피우다가 결국 오래 가지 못했다. 통상 책이 읽히는 분위기와 그렇지 않은 분위기를 떠올리면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지금도 먹고 살기 바쁘면 책을 읽지 않는다. 수험생이 책을 붙들고 있으면 혼나기 일쑤다. 경쟁이 코 앞일 때 책을 손에 잡기 어렵다. 경쟁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고, 그로 인해 독서회의 힘은 어떤 식으로 빠졌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학문이 입신출세와 직결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에도 시대의 학문이 지니고 있었던 유희성, 즉 ‘해체신서’ 번역에 도전하는 것 같은 학문연구 그 자체를 즐기는 ‘놀이’가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 서로의 이익과 상관없는 놀이가 아니게 되었을 때, 경쟁을 격렬해 진다. 이 때문에 서로 ‘도리’를 탐구하여 대등하게 토론하는 것도, 서로를 동지라 의식하는 일도 사라지며,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 경쟁 상대를 앞서 가기 위해 비밀리에 독서에 힘쓰게 된다. 이른바 과거에 합격하기 위한 수험 공부처럼 되었던 것이다.” (책 ‘에도의 독서회’, 마에다 쓰토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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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국 과학자들은 

인간이 왜 남이 도와주는지를 쉽게 설명을 못 해요.

별일이 아니고, 아주 쉬운 일인데 그래요. 


모든 철학자들이 주장할 때, 인간 영혼이 

그렇게 프로그램이 되어 있어요. 남을 도와줘야 기쁘게.

이것을 자본주의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을 쓸 때,

"인간은 남을 도우면 희열을 느끼게 프로그램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남을 해칠 때는 뇌에서 스트레스받게 프로그램이 된 것 같다." 

이렇게 주장했거든요.


그것이 저는 '영적 유전자'라고 주장합니다.

몸에 있는 유전자만 자꾸 연구하시면, 

그것은 내 한 몸만 경영하는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인류 사회 전반을 살아가라고 

우리 마음에서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설명하려고 하니까 잘 안 되죠.


사람들이 인간이 왜 서로 돕는지를 연구하다 보니까,

"무언가 이득이 되니까, 유전자가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지금 왜 인간들이 서로 이타적인 행위를 하느냐?" 

"뭔가 이득이 되니까."

"왜 남의 집 애를 키워 주느냐?"

그렇게 했을 때 뭔가 이득이 있을 것이다. 

이 유전자에게도 이득이 있을 거라는 것을 증명해야 돼요.

그래서 돌아돌아 만약에 그렇게라도 해야 나중에 내 유전자를 퍼뜨릴 때 

남이 또 도와줄 것이고, 이런 논리로 밖에 구차하게 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면 우리 마음에는 그런 양심적인 

측은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사양지심이 프로그래밍 되어있다 바로 터져 나오는데, 

이 영적인 얘기를 유전자로 풀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이기적 유전자라고 꼭 이기적인 게 아니고, 물질계에 통할 수 있는 작동 원리고, 

생명의 원리가 물질을 통해서 발현되는 모습이고, 이런 정신을 통해서는, 

정신도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욕심도 발현됩니다만, 

그건 진짜 이기적이지만, 양심적인 그런 프로그램도 있다.

이런 차원까지 우리가 열어놓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데 저는 그분들이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은 반대하지 않아요.

거기서 발견한 결은 그 결대로 자명한 결이니까요. 

지식의 발견이고, 자명함의 확장이니까 그것은 존중합니다만 

인간의 문제를 물질적 유전자의 프로그램 가지고 풀려고 하면, 

벌써 우리가 시야가 좁아지죠.

- 홍익학당 윤홍식 2016.06.05 일요 수련모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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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사회를 진단해보실 때, 

강자한테 당하고 약자한테 화풀이하는,자기보다.

약자라는 게, 별 게 아니라 나보다 뭔가 어떤 부분에서 약자인 거죠.

힘이 나보다 약하면 약자인 거고,

뭔가 나보다 계급이 약하다 그걸로 밀어붙이면 그게 약자인 거고.

아무튼, 강자한테 당하고 약자를 짓밟음으로써 

화풀이하는 쪽으로 사회가 지금 달려가고 있는 게 현실이죠, 우리나라.

되게 심해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사회가 엄청나게 건강하지 못한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병이 깊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시니까 저런 질문을 저한테 하셨겠죠?

그거 느끼시는 거 맞고, 그거 지금 어떤 증상이냐?

병증이 깊어지고 있는 거고,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약자를 배려할 때 그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그러면 누가 저한테,

“넌 자꾸 사회구조는 안 바꾸고 정신만 

자꾸 붙잡자는 거냐? 그래서 난 힐링이 싫더라.” 

이런 분도 계실 수 있지만, 그 얘기가 아녜요.

정신을 먼저 챙기시라는 겁니다.

나라도 양심 지키자 하는 양심지킴이로서 각오를 세우시고,


양심지킴이란 뭡니까?

내가 강자가 되더라도 약자 배려하겠다. 그걸 선언하신 거거든요.

그거 꼭 지켜주시기를, 그래야 자명하잖아요.

예, 그러니까 한 분이라도 그런 분들이 각성해야 되고,

그런 분들이 사회 전체 구조를 뜯어고쳐야 됩니다.

먼저 각성하신 분들이 자기 자리에서 양심을 구현해 주시길.

그게 최선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회문화가 전반적 문화가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로 간다면, 지금 이 병증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중요한 순간에 자명, 찜찜을 

조금이라도 들어본 분이라면 감히 약자한테 함부로 그렇게 할까요?

자기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계급이 약하다는 이유로, 

자기가 뭔가 상대방보다 우위를 점한 것이 있다는 

그거 하나 가지고 그렇게 상대방을 못살게 굴고, 짓밟고, 죽이고...

그런 일 차마 못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요,

사회가 건강해질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희망을 버리시진 마시고요.

다만 병이 깊어져간다는 거는 인정하죠, 서로.

인정해야 답이 나오니까요.

- 홍익학당 윤홍식 2016.06.18 양심캠프 대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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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기를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마라.

너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어떻게 세상을

안다는 거냐 이거죠.

지금 이 우주가 어떻게 펼쳐졌는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보다 내가 조금 더 많이 안다는 거 가지고

내가 지혜롭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되겠는가.


그러니까 그가 정말로 지혜로워지기 위해서는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가 되십시오. 

모른다 하시라는 거예요. 모른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되라.

지금 이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왜, 어디서 이런 법칙들이 왔는지.

법칙을 읽어낸다고 하더라도

법칙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어리석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하나님이 그런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잡느냐.

자기 꼼수를 부리다가 스스로 잡힌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잔꾀,

이게요. 노자 이번에 제가 냈는데 노자에도 나와요. 

잔꾀를 부리는 자들에게 대해서 깊이 공분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다 망쳐놨다는 거예요.


뭔가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

즉 도를 모르면서 남들보다 더 머리가 좋다보니까

세속에 대해서 더 인과를 잘 읽어내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멋대로 인과를 설정해서

이게 진리다라고 하는 바람에

인간들이 지금 편견에 빠지고 욕심에 빠져서 

진리를 모르게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노자에 그런 것이 나오잖아요.

지혜를 끊어버려라.

거기서 지혜라는게 잔꾀에요.

도랑 상관이 없이 인간이 이게 옳다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 문제가 있죠.


하나님이나 도를 빼고 

인간이 스스로 이게 진리다라고 주장할 때는 좀 

뭐가 왜곡되어있는 거잖아요.

그게 다 잔꾀이고 꼼수입니다.꼼수나 잔꾀.

이 도에 어긋나는 것들은 다 막아야 한다.

- 홍익학당 윤홍식 2016.05.04 수련모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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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지기는 무엇보다 ‘도덕적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는 우주의 진리와 정의에 부합하기에

지극히 크고 강하며, 


우주가 인간에 부여한 ‘양심’을 실천할 때 나오는 

에너지이므로 우주적인 에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仁)∙정의(義)∙예절(禮)∙지혜(智)’의 ‘양심’을 

실천할 때, 우리는 형용할 수 없는 양심의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이 뿌듯한 희열 속에서 느껴지는 탁 트이고 

막힘없는 에너지가 바로 ‘호연지기’인 것입니다.


호연지기는 단순히 마음이 탁 트일 때 느껴지는 

에너지가 아니라, 양심까지 당당하여 조금도 걸림이 

없을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에너지입니다. 


그러니 ‘양심의 지속적인 실천’이 없이는 

호연지기를 느낄 수 없고, 기를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단박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루하루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의’를 

실천하여, 마음에 죄의식과 같은 걸림이 없을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 윤홍식, 『인성교육, 인문학에서 답을 얻다』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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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 간단한 퀴즈를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어느날, 제게 작은 선물박스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그 박스 안에는 아주 작은 크기의 선물이 하나 들어있었죠.


여러분께 내드릴 퀴즈는 그 선물이 무엇일지 맞추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두 가지의 힌트를 드릴 테니, 한 번 맞춰보세요.


첫째, 이것은 온 가족과 친구들이 매일같이 저를 찾아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쁜 삶을 제쳐놓고 제게 달려와 그 어느 때보다 저를 즐겁게 해주었죠.


두 번째, 이것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없애주었습니다.


이것을 갖게 된 이후로, 저는 이전과 달리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혹시 힌트가 너무 어렵나요?


그럼 이쯤에서 정답을 확인해봐야겠군요.


공개하겠습니다.


이것이 5개월 전, 제게 찾아온 선물의 모습입니다.



'뇌종양'


저를 완전히 바꿔놓은 그 선물의 정체입니다.


처음 이 선물을 받게 된 순간,


저는 제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살아갈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 저를 제 가족과 친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아껴주고 사랑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매 시간 저를 격려했고, 옛 추억을 얘기하며 즐겁게 해주었죠.


신기하게도 그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한 만큼, 암울한 미래가 조금씩 잊혀져 갔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죠.


비록 내일이 암울해도,


오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미래를 잃어버린 대신


오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뜻밖에 미래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뇌종양은 완치되었고,

(* 실제로 밝지 않은 미래 속에서 오늘을 즐기며 살아간 그녀는, 2010년 완치될 수 있었다.)



생각지 못한 TED 강연도 하게 되었죠.


앞으로 여러분에게도 꿈꾸던 미래가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때가 올지 모릅니다.


그 순간 눈 앞은 컴컴해지고 삶은 좌절의 연속이 되겠죠.


그 때, 이것 하나만 기억하세요.


암울한 미래가


오늘을 앗아가선 안 된다.


밝은 미래를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오늘이다.


여러분, 오늘은 즐기세요.


암울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오늘을 즐기는 삶'입니다.


- Stacey Kramer. TED 강연 중 -

출처: 열정에 기름붓기


스태이시 크래머: 내가 견뎌 냈던 가장 좋은 선물 - TED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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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슈티르너의 '유일한 자와 그의 자산' 중에서


"...... 너희들이 보장하듯이 신도 인류도 모든 것 속에서 모든 것이기 위해 그 내면에 충분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

나도 역시 그에 비해 별로 모자란 바가 없다고 느끼고, 내 '공空'에 대해 불평할 것이 없다고 느낀다.

나는 공의 의미에서 무無가 아니라, 창조적인 무無다.

그 무無로부터 나 스스로 창조자로서 모든 것을 창조해 낸다는 의미에서의 무無.


절대적으로 완전히 내 문제가 아닌 것, 그런 모든 것은 쓸어내버려!

너희들은 내 문제가 적어도 '선한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이냐!


내 스스로가 내 문제인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 양자 모두 내겐 아무 의미도 없다.


신적인 것은 신의 문제다, 인류적인 것은 인류의 문제다.

내 문제는 신적인 것도 인류적인 것도 아니다.

내 문제는 진실의 문제도, 선의 문제도, 정의의 문제도, 자유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내 문제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적인 문제도 아니다.

내가 유일하듯이 내 문제도 유일하다.

아무 것도 나를 넘어서지 않는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자유의 철학' 중에서


"...... 나는 누구에게도 어떤 법칙에도 '이 행위를 실행해야 할까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이상을 파악하는 즉시 실행한다. 오로지 그렇게 함으로써만 그것이 나의 행위가 된다. 특정한 윤리적 규범을 인정하기 때문에 실행하는 사람의 행위는 그의 도덕 법적 속에 존재하는 원칙의 결과일 뿐이다. 그는 단지 집행자에 불과하다. 그는 고차적 자동 기계다. 행위를 위한 이유를 그의 의식에 던져 넣으면, 즉시 그의 도덕 원리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법칙적인 방식으로, 기독교적인 것, 인도적인 것, 그에게 사리사욕이 없어 보이는 것, 혹은 문화 역사적 진보를 위한 행위를 실행한다. 오로지 객체에 대한 사랑을 따를 때에만, 나는 행위하는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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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평범한 미국인들도 미국 경제의 앞날이 밝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미국 의회는 국채 발행 한도를 8조 1,8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사건을 2004년 11월 19일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국채 발행 한도를 더 늘리는 내용의 법안이 지난 밤 의회에서 처리됐다. 이로써 부시 행정부 들어 국채 발행 한도는 총 2조 2,340억 달러 증가했다. 2002년에 4,500억 달러에 이어 2003년에 기록적으로 많은 9,840억 달러가 늘었고 올해 다시 8,000억 달러가 늘었다. 지난 3년간 늘어난 국채 발행 한도는 연방정부가 1776년부터 1980년까지 발행한 총 국채 규모의 거의 두 배 반에 달한다.

<워싱턴 포스트>에 국채 발행 한도가 늘어났다는 기사가 실린 날 금값은 온스당 442달러였다. 2006년 3월 15일에 미국 상원은 국채 발행 한도를 9조 달러로 또 늘렸다. 금값은 554달러로 상승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미국국가 부채가 2009년 말 현재 12조 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하는 데 공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수년간 수조 달러의 재정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인정했다.

금값은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알려주는 지표다. 금값은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의 질과 양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금값은 달러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도 일반적인 투자 대상이 각광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 1부에서는 오늘날 미국이 처해 있는 현실과 원인을 살펴본다. 달러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얼마나 허약한지, 미국의 통화시스템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도 함께 알아본다.

2부에서는 달러 붕괴가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전망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가장 큰 채권국인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하고 미국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해 본다.

3부와 4부에서는 달러 가치가 폭락할 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더 나아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맞춰 투자할 만한 상품을 추천한다.

미래가 언제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경제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젠가 미국이 막대한 부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미국 경제에 일어난 변화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이유

주택담보대출 붕괴로 야기된 2007~2008년의 금융위기도 주요 책임은 FRB에 있다. FRB는 2001년 1월부터 2003년 5월까지 연방기금 금리를 13차례에 걸쳐 인하해 6.5퍼센트에서 1퍼센트로 낮췄다. 이후 1년간이나 1퍼센트대의 저금리를 유지하며 유동성을 쏟아 부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저금리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자 금융회사들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주택시장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은행에 돈을 맡겨봤자 얻을 수 있는 이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돈의 가치가 떨어져 저축할 의욕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돈을 모두 써버리거나 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

실질금리가 0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FRB가 사실상 무료로 사람들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뜻이다. 이는 대출업자를 양성하는 환상 같은 경제 상황이다.


갚을 수 없는 부채

부채 문제를 과소평가하는데 동원되는 새로운 논리는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 국가 부채 비율은 오히려 과거보다 낮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부채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게다가 국가 부채를 통해 경제를 더욱 성장시킬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는 변동금리 대출을 권할 때 금리가 오르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들은 금리가 올라도 집값이 더 많이 오를 것이기 때문에 집을 팔아 빚을 갚거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더 받으면 된다며 돈을 빌리라고 권한다.

노후를 위해 사회보장기금을 적립하고 개인이 향후 받기로 약정한 연금이 정부의 부채라고 생각한다면, 정부가 퇴역 군인에게 약속한 건강보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은행이 연방예금보험공사에 보험료를 지급했고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질 경우 정부가 은행에 예금 부족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정부에 건강보험료를 지불해왔고 의료비가 필요할 때 보장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정부의 부채가 회계장부에 기록된 14조 달러를 훨씬 웃돌 것이란 점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주요한 금융회사들이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었던 신용 파생상품에 부딪혀 침몰 위기를 맞았던 것처럼 미국의 숨겨진 빚, 다시 말해 미국 정부가 이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따로 적립해야 하는 돈은 59조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이대로 가다간 미국 정부는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다.


달라스 연방준비은행의 피셔 총재가 사용한 ‘무한 시계’ 모델에 따르면 사회보장제도와 노년층을 위한 건강보험제도의 기금 부족분을 메우는 데만 지금 당장 99조 2,000억 달러의 돈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현재 원천 징수되고 있는 각종 세금과 수수료, 공제 비용에 더해 이 기금 부족분도 감안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시의 처방 의약품 지원 법안은 규모가 막대하고 미국의 숨겨진 빚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회보장제도보다 크다는 점에서만 중요할 뿐이다. 감사원장을 지냈던 워커는 처방 의약품 지원 법안을 ‘아마도 1960년대 이후 재정적으로 가장 무책임한 법안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지출이 수입보다 더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은 지적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정부의 부채가 국내총생산보다 더 빠르게 늘고 있다. 2008년 회계연도에 국가 부채로 인한 이자비용은 4,510억 달러로 그래 정부의 재정적자 4,550억 달러보다 불과 몇 십억 달러 적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 안고 있는 전체 부채 문제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정부는 돈을 계속 빌려 쓰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금리 수준이 어떻든 간에, 돈을 계속 빌려 쓰는 데 들어가는 운영비가 얼마든 간에 계속 돈을 쓸 것이다. 국가 신용등급이 낮아진다 해도 정부가 돈을 빌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국채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낮은 등급으로 리스트가 높아진 대신 수익률을 높여 투자자들이 국채를 매입하도록 유인할 것이다. 국채 수익률을 높이면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 그렇지 않아도 지속되기 어려운 엄청난 국가 부채가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곧 빚과 소비의 광란은 경제적 몰락이라는 블랙홀을 만들어 낼 것이 뻔하다.


금을 버린 대가

금을 돈으로 사용하는 경제체제에서는 언제나 건강한 문명이 꽃피었다. 고대 아테네는 정직한 귀금속, 즉 금을 가장 먼저 화폐로 채택한 문명 가운데 하나였다. 그 결과 고대 아테네는 역사상 가장 먼저 강력한 무역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는 원자재 수입과 완제품 수출을 주도했다. 활발한 무역 활동으로 그리스는 번영이라는 물질적 축복과 함께 또 다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미술과 문학, 철학 등에서 일궈낸 눈부신 문명이었다.


고대 아테네 이후 믿을 수 있는 금으로 화폐를 만들어 800년간이나 번성한 문명도 있다. 비잔틴제국을 건설한 콘스탄티누스 1세는 로마제국의 첫 번째 기독교 황제로 금 6분의 1온스로 주화를 만들어 사용하게 했다. 금으로 만든 이 주화는 ‘베잔트 금화’라고 불렀는데 금의 순도와 균일성을 개선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대체 통화 없이 800년간 만들어져 사용됐다.

비잔틴제국의 통치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베잔트를 주조할 때 몰래 구리와 쇠 같은 비금속을 더 많이 넣어 금의 함량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베잔트 금화의 순도가 떨어지면서 비잔틴제국의 운명도 기울어갔다.

1252년에 이탈리아의 도시 피렌체에서 금으로 만든 주화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금 주화는 표준화된 금 함유량에 따라 거의 300년 동안이나 만들어졌다. 이 기간 동안 피렌체는 무역의 핵심 거점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같은 위대한 예술가를 후원하는 예술 본거지로 유럽의 활동 중심지였다.


영국은 1717년부터 1914년까지 거의 200년 가까이 금본위제를 지켜왔다. 금본위제가 유지되는 동안 영국은 번성했다. 이 기간 동안 작은 섬나라 영국은 산업혁명을 이뤄냈으며 아프리카와 인도, 동아시아, 호주, 남태평양, 북미와 남미 등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대영제국으로 우뚝 섰다. 지구의 4분의 1과 전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영국도 결국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느라 금본위제를 벗어던졌다.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제1차 걸프전쟁과 마찬가지로 쉽게 종결되지 않았고 예견됐던 대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재점화됐다. 영국은 이 두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대영제국은 파산으로 얼룩진 폐허 속에서 몰락해 버렸다.

런던의 금 공동기금은 1968년 3월 14일에 운영을 중단했고 그날부터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달러를 갖고 있던 외국인들은 미국 재무부에서 금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결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조치는 금처럼 믿을 수 있는 달러의 시대가 끝나버렸다는 고백과 같은 것이었다.


인플레이션의 주범

버냉키 의장은 2008년 6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국제금융회의에서 당시의 금융시장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전세계적으로 거래되는 상품 가격의 지속적인 급등세가 반영되어 인플레이션은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말장난은 동의어를 반복 사용해 사람들을 웃기는 개그맨들이 즐겨 하는 일이다. 버냉키 의장이 이 같은 동어반복적 표현을 다시 한 번 사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그 쇼는 순조롭게 진행됐을 것이다.

“상품 가격이 높은 수준에서 대략적이나마 안정된다면 인플레이션은 상대적으로 빨리 완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가격이 상승세를 멈추면 인플레이션, 즉 물가상승도 상승세를 멈춘다는 말이다. 지배계층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이 같은 말장난으로 버텨왔다.


인플레이션은 거의 전적으로 단순히 통화공급의 증가 또는 통화와 신용공급의 증가 때문에 발생한다.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통화와 관련된 현상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인플레이션(통화와 신용공급의 증가)은 물가를 끌어올린다. 물가상승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의 결과다. 경제 전반의 물가상승은 통화공급의 결과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을 물가상승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의 경제적 건전성을 훼손하는 공공정책의 혼란과 기만을 보여주는 징후다.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결탁해 내부 정보를 바탕으로 통화정책의 변화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 발행된 지폐가 경제 전체에 골고루 유통돼 가격이 오르기 전에, 다시 말해 새 지폐의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접근하여 더 낮은 가격으로 그 돈을 쓰고 투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새 돈을 가장 나중에 접하게 되는 사람들은 뒤늦게 급여가 오르거나 지수로 표현되는 소비자물가 상승의 이득을 누군가가 이미 취한 뒤라는 점에서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다.



달러의 미래


빚을 안고 질주하는 미국

미국의 제조업은 이미 주도권을 상실했다. 제조 공정은 해외에 위탁되고 있다. 반면 부채 상환을 영원히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미국에는 집을 차압당하거나 대출금보다 싼 가격에 서둘러 집을 처분하거나 빚 때문에 파산하는 집주인들이 속출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미국의 외국은행 채권자들은 혹시 자신들도 자격 없는 대상에게 대출 심사도 없이 무서류로 돈을 빌려준 것은 아닌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써 빈털터리가 될 사람은 누구일까?

정부의 약속을 의지하는 사람들, 노후에 건강과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평생 꼬박꼬박 정부에 세금을 납부한 사람들, 국채를 사서 정부에 돈을 빌려 준 사람들, 각 개인들과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장단기 국채를 매입한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 그리고 미국 달러화를 보유한 모든 사람들이다.

신용카드 부채와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부채, 은행 융자, 주정부를 포함한 지방정부가 가진 부채, 기업어음 등 미국 신용시장의 총 부채는 51조 달러에 달한다. 미국 GDP의 350퍼센트가 넘는 규모다. 미국의 부채비율은 지난 100년 이상 GDP의 평균 155퍼센트 수준이었다.


부채비율은 짧은 기간 동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가파르게 올라갔다. 빚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관들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면 도저히 빚을 갚을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사업환경과 사회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한데도 돈의 가치를 폭락시킬 수 있는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을 조용히 지지하는 것이다.

본원통화량은 2008년 9월부터 폭증하기 시작했다. 2009년 3월까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증가율이 연간 복리로 199퍼센트에 달했다. 이 같은 급격한 통화 증가율은 통화정책이 공격적으로 시행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풀린 돈은 경기가 회복되어 대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순간 통화팽창과 달러몰락을 가속화할 것이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왜 정부는 돈을 살포하면서까지 디플레이션에서 빨리 벗어나려 하는 것일까?

첫째는 디플레이션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미국은 디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되는 동안에도 견고한 경제 성장세를 이어갔다.

둘째 이유는 정부가 디플레이션을 경제 지배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인플레이션은 관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인플레이션은 정부 판단에 따라 조금씩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이 같은 정부의 미세조정에 반응하지 않는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러한 무기력함이 두려워 디플레이션과 ‘싸우려’ 국가의 재정건정성을 위험에 빠뜨린다.


사실 디플레이션은 정부가 신용 여건과 통화환경을 조정하다 발생한 현상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경제 여건에 대한 신호가 엇갈려 나타나기 때문에 특히 혼란스럽다. 1970년대에 10년간 이어진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연방기금 금리는 널뛰기하듯 아래위로 변동이 심했다.

1970년대 10년간 금리는 쉴 새 없이 변했다. 1973년에만 22번이 바뀌었고 1978년에도 1년간 23번 변했다. 금리가 너무 자주, 급격하게 바뀌니 중소기업이나 신생기업들의 상당수가 살아남기 어려웠다. 이처럼 금리가 급변했던 이유는 정책 당국이 경제 여건을 미세 조정하고 법정화폐의 환율을 관리하려 했기 때문이다.

당시와 비교하면 2007년 이후 FRB의 통화정책은 오히려 안정적으로 보일 정도다. 2007년 이후 1년간 금리가 6퍼센트 포인트 정도도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언제 인플레이션이 폭등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

통화팽창이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로 쓰일 때는 편리한 도구 또는 통화관리 수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통화팽창 외에 재정지출을 메울 다른 자금 조달 수단이 없어지면 통화팽창이 실질적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 정도 수준이 되면 인플레이션은 강제적이 된다. 정부는 '통화를 팽창시키거나 죽거나' 줄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때가 되면 인플레이션이 조절 범위를 벗어나 점점 더 높이 치솟는다.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통화당국이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것을 지켜볼 뿐 폭등하는 물가를 억제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 '파멸적인 폭등'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가파를 때에는 통화공급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화폐가치가 더 빠르게 떨어진다.


새로운 세계 질서의 등장

중국은 2009년 3월 현재 7,670억 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다. 중국은 미국 국채와 미국 공공기관 및 공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모두 합해 1조 달러어치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이는 중국 외환보유액의 60퍼센트에 달하는 규모로 추정된다.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이 파산 위기에 빠져 정부에 인수됐을 때 중국이 이 두 기관의 채권을 4,000억 달러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보도가 중국에서 나왔다.

중국이 미국의 부채인 채권을 기꺼이 매입하고 미국의 재정적자를 메워주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부채와 소비에 일종의 보조금을 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미국 국민 한 사람당 중국에 3,300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위안과 비교한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려 하는 이유는 미국의 철강과 중장비, 농산물, 각종 소비제품 등이 중국에서 더 싼 가격에 팔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1달러가 8위안이 아니라 5.5위안으로 교환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달러와 위안의 환율이 조정되면 이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위안과 달러의 환율이 미국 정부의 뜻대로 조정되면 미국 소비자들이 월마트 같은 할인점에서 구매하던 상품은 하룻밤 사이에 가격이 거의 30퍼센트나 오르게 된다. 물론 중국 제품의 가격이 오르면 베트남 같은 다른 아시아 경쟁국들의 저렴한 제품이 중국산이 차지했던 자리를 메우긴 할 것이다.

달러를 지지해주는 주요한 힘은 중국이 달러를 대량으로 매입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미국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 달러를 팔아 치우기 시작하면 다른 국가도 덩달아 달러를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달러의 가치와 구매력은 추락한다.

베트남전을 치르는 데 들어간 비용은 브레턴우즈의 금본위제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시 대통령이 시작한 이라크전은 달러와 금의 교환이 폐기된 1971년 이후에도 유지돼왔던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뒤흔드는 결정타로 기억될 것이다. '단극체제'가 가능하다고 믿는 신보수주의적 환상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제국은 영향력을 확장해가다 결국엔 몰락한다. 전쟁을 치르고 제국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달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계산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치러야 하는 다른 대가들이 있다.


미국 달러가 해외에 어느 정도나 보유되어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외에서 유통되는 미국 지폐는 약 9,000억 달러에 달한다. FRB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위회에서 미국 지폐의 절반 이상이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증언했다.

실제 지폐 형태로 해외에 존재하는 달러도 문제지만 해외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으로 갖고 있는 달러도 문제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3분의 2 이상을 포괄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의 2008년 중반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외환보유액을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7조 달러가 넘는다.


이 가운데 특정 통화 자산에 배분된 외환보유액의 62퍼센트, 총 2조 7,300억 달러가 미국 달러, 다시 말해 미국 국채였다. 중앙은행들이 이 달러 자산을 영원히 보유하고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정부의 개입

닉슨은 첫 대통령 임기 말에 소비자물가가 5퍼센트 가량 오르자 레닌주의자나 할 법한 '신경제정책'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닉슨은 미국 내 모든 임금과 물가 동결을 명령했다. 닉슨이 어떤 방식으로 임금과 물가를 동결하도록 유도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기업 경영자들과 일반 대중들은 이 정책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대신 대체로 동조했다. 주식시장은 정책이 발표된 다음날 기록적인 상승세로 호응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닉슨의 임금과 물가 관리 항목에는 임금과 물가, 임대료 동결이 포함됐으며 기업의 배당금 동결까지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닉슨의 처방이 유발한 가장 치명적인 증상은 물자 부족이었다. 면과 같은 일부 원자재 가격은 인상이 허용됐다. 하지만 가격 인상이 허용된 원자재로 만들어진 완성품의 가격은 인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 완성품이 생산되지 않았다.

가게 선반은 비어갔다. 농부들은 닭이나 오리를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이 닭이나 오리를 정부가 관리하는 가격에 팔아 벌 수 있는 수입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닭들은 자기 몸값보다 더 비싼 사료를 더 많이 소비하기 전에 대량으로 폐기 처분됐다. 슈퍼마켓에 표기된 쇠고기 가격은 저렴했다. 하지만 육류 코너는 텅 비어 있었다.


임금과 물가를 통제하면 가격 수준을 인위적으로 맞추기 위해 제조업체는 품질을 낮추고 소매업체는 서비스를 줄인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무료로 새 타이어의 균형을 잡아줬다면 지금은 돈을 받고, 이전에는 슈퍼마켓이 무료로 물건을 배달해줬다면 이제는 배달료를 받는 식이다. 물가 통제를 피하기 위해 중간상이 크게 늘어나 일부 물가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오르기도 한다.

어떤 상품은 캐나다 유령업체에 팔렸다가 미국에 다시 수입되는 방식으로 팔리기도 했다. 수입품은 물가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목재는 제조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구멍을 뚫어 그곳을 덧댔다. 결국 닉슨의 우스꽝스러운 가격 정책은 왜곡과 불편, 물자 부족만 초래했을 뿐 물가는 계속 올라갔다.

1974년 말 물가 통제가 대부분 풀린 뒤에는 그간 억눌렸던 가격 인상 요인이 한꺼번에 반영되어 소비자 물가가 연율로 12퍼센트 이상 뛰어올랐다.


장제스는 왜 마오쩌둥에게 중국 본토를 빼앗겼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한 번도 제대로 언급된 적이 없다. 그는 물가 폭등에 직면했고 결과로서 나타난 인플레이션을 가격 통제를 통해 억제하려 했다. 그는 가격 통제를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준다는 명분으로 상하이 광장에서 상인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마지막 남은 실낱같은 지지 세력을 공산주의 반란 세력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남베트남도 물가 칙령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상인들을 사이공 광장에서 공개 처형하기 시작하면서 장제스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과 물가 통제는 수세기에 걸쳐 위험하면서 효과는 전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지만 여전히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선택이다. 앞으로 언제든 인플레이션이 무서운 기세로 몰아치면 물가 통제는 또다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임금과 물가 통제는 도입 초기에 종종 자발적인 것처럼 오인된다. 물가 통제는 공격적으로 시행될수록 더욱 확실하게 경제 활력을 빼앗아간다. 상업적 거래가 붕괴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사회 질서도 덩달아 무너진다.

공급이 부족할 때 물자는 가격이나 배급에 의해 배분된다. 각각의 배분 방식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다.

가격에 의한 배분 방식이 가진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이끌리는 정치인들의 속성을 초월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 권력이야말로 그들이 생각하는 계획경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배급을 실시하면 지배계층의 권력이 막강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금과 가격 통제에 따른 물자 부족은 곧이어 배급제로 이어질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미국에서조차 이 공식은 예외가 아니다.

통화위기가 닥치면 가격통제와 배급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통화통제가 확산된다. 주거 침입에 의한 도난뿐만 아니라 신분도용과 컴퓨터 해킹, 기업의 고객 정보 유출, 신용카드와 심지어 의료 정보 유출까지 빈번하게 일어나는 시대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합법적인 이유로 금융거래를 익명으로 은밀하게 처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정부는 사적인 금융거래를 비밀스럽게 처리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장 완고한 적이다.


현금거래를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사적인 금융거래를 범죄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통화위기를 틈타 이러한 관행 위에 계획경제의 새로운 규제와 범법 규정, 감시 조항들이 도입될 것이다.

전례를 봤을 때 이러한 관행은 미국 정부가 잘못된 통화운용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거듭 꺼내들 각종 조치의 근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근본 원인들은 저절로 치유된다.

보통 통화 통제는 자국 국민들이 자산을 안전한 해외로 도피시키려 할 때 이를 막기 위해 수단으로 사용된다. 때로는 환율을 인위적으로 일정 수준에 맞추거나 대체 통화의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동원되기도 한다. 아무도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정화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만들 수는 없지만 통화 통제는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데 필요한 돈의 흐름과 건전한 거래를 방해한다.



위기 속의 기회, 금과 은


달러가 몰락한 이후의 투자

모든 위기에는 기회가 있다. 위기가 어떻게 찾아오는지 이해하는 것은 위기와 함께 찾아오는 기회를 잡는 데 매우 중요하다. 위기 시의 경제 상황은 달러의 국제적 지위에 의해 크게 악화될 수 있다. 달러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세계 각국이 달러를 더 많이 혹은 더 이상 갖고 있지 않기로 결정하면 하룻밤 사이에 미국의 물가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통화가 위기에 처할 때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규제들이 거의 예외 없이 도입되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임금과 물가 통제, 배급제, 통화 제한 조치 등이 정부가 동원하는 규제들이다.


내가 추천하는 투자의 기회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들이다.

① 진짜 돈(금과 은)

② 진짜 에너지(원유)

③ 진짜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짜 상품(농산물과 원자재)

④ 경제 여건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달러화의 가치 하락과 금리 상승).


따라서 네 가지 투자 범주 각각에서 핵심 추천 대상을 골라 투자하면 된다.


눈부신 황금 기회

지금형 금화는 화폐 수집가들이 중시하는 희귀성이나 제조연도, 금화의 상태 등이 아니라 금 함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

가장 널리 거래되는 1온스짜리 지금형 금화로는 미국의 골드 이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크루거란드, 캐나다의 메이플 리프 등이 있다. 이외에 오스트리아의 필하모닉, 호주의 캥거루, 중국의 팬더, 미국의 아메리칸 버팔로 등이 있다. 이 금화들은 진짜 금 1트라이온스로 만들어졌다.

전체 자산의 25퍼센트를 진짜 금과 은에 투자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당신의 돈이 가치가 지속되는 유형의 돈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골드바는 같은 무게일 때 1온스짜리 지금형 금화보다 싸게 살 수 있다. 또 인증 마크와 함께 크레디스위스와 존슨 매티에서 부여한 일련번호가 있으면 국제적으로 거래가 가능하다.

골드바가 금화보다 프리미엄이 더 낮아 살 때 유리하게 보일지 몰라도 팔 때를 생각하면 골드바는 가격상의 이점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중개인들은 희귀 금화에 투자하라고 강력하게 권유했는데 이러한 희귀 금화가 빛을 볼 날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를 목적으로 이러한 희귀 금화를 샀던 사람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실망만 맛봤다.

진짜 금을 매매하는 중개인들은 금에 투자하는 ETF에 대해 대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한 가지는 금 투자를 두고 경쟁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 중개인들은 또 개인 지분을 분리할 수 없는 투자신탁의 형태로 금을 보유하는 것이 앞서 추천했던 금을 실질적으로 매입해 소유권을 갖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금에 투자하는 ETF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금 강세장을 이끄는 요인이었다. 통화 붕괴가 임박하면 금 ETF는 금과 은 가격의 추진로켓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금으로 직접 보유할 수 없는 투자상품에 대해서는 금융회사와 연관을 맺게 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투자 비중을 줄이는 편이 낫다. 금과 은에 투자하기 위해 금과 은 관련 주식, 광업 관련 주식에 투자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주식은 핵심 추천 대상이 아니다.


통화적 가치를 지닌 은

은이 산업에 점점 더 많이 사용되면서 통화적인 가치는 오히려 오랫동안 간과돼왔다. 은은 어떤 금속보다 전기가 잘 통하고 열 전도력도 뛰어나다. 빛 반사력과 민감도도 매우 높으며 화학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연성이 탁월해 얇게 펴서 늘리기 쉬운 금속 중 하나다. 잘 부식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지금은 은에 대한 수요 절반 이상이 산업적인 용도다.

최근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은은 대부분 전자제품에 사용된다. 은은 컴퓨터의 인쇄회로 기판, 전자 접촉, 건전지, 항공우주산업과 첨단 무기에 필요한 중요한 전기회로망 등에서 수요가 많다. 가전제품 중에서는 평판 화면, 휴대폰, 아이팟, CD, DVD 등에 많이 사용된다.

은이 사용되는 곳에서는 대개 은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 은은 또 전체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따라서 제조업체들은 은 가격이 올라간다 해도 계속 은을 부품으로 사용할 것이다.


은의 공급량은 대부분 다른 금속의 채굴량에 달려 있다. 전세계에서 채굴되는 은의 3분의 2 가량이 구리와 납, 아연 등과 같은 비금속을 생산할 때 함께 나오는 부산물이다. 결과적으로 광산업자들의 전체 매출에서 은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은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광산업자들이 은 생산을 늘려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크지 않다.

2006년과 2007년에 전세계 은 수요량은 약 9억 온스였다. 새로 채굴된 은이 전체 수요의 70~75퍼센트를 충당했고 20퍼센트 가량은 기존 은 제품이 재활용됐다. 수요의 나머지 5~10퍼센트는 정부가 매각하는 은이 채우고 있다.

은 협회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몇 년간을 은을 대대적으로 매각한 결과 은 재고량이 급감해 앞으로는 과거처럼 은을 대량으로 방출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의 은 재고량도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수십억 온스에 달했으나 최근에는 크게 줄었다. 다른 정부의 은 재고량 역시 고갈돼왔다.

산업적 수요가 줄어드는 경기침체나 불황기 때는 은 수요 역시 둔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은의 기본적인 수급구조는 매우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금/은 비율을 보고 앞으로 금이나 은 가격이 오를지 떨어질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떤 한 금속이 다른 금속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는지, 고평가됐는지는 가늠할 수 있다.


은 가격이 최고치를 쳤을 때 금/은 비율은 17대 1이었다. 이 정도 비율이면 은이 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고평가됐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최근 은 가격은 주로 산업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경기침체와 신용위기가 닥쳤던 2008년에는 은 가격이 급락했다. 당시 금/은 비율은 85대 1로 벌어졌다. 이 정도면 은이 금에 비해 너무 싸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금보다 은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침체장 때는 은 가격이 금보다 더 많이 떨어지지만 강세장 때는 반대로 금보다 더 많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위기 때 금 가격이 오르면 은 가격도 덩달아 오르며 우선 금 시장의 상승세를 따라잡을 것이다. 규모가 작은 은 시장의 특성상 은 가격이 급격한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높다.

골드바와 마찬가지로 은괴도 시장에 널리 알려진 인증이 찍힌 것을 사야 한다. 100온스짜리 은괴의 경우 엥겔하트와 존슨 매티가 시장에서 가장 거래가 활발한 인증이다. 은의 순도나 정제 상태가 믿을 만하다고 해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나 업체가 정제한 은괴는 사지 않는 것이 좋다.


1온스와 10온스짜리 은괴 역시 통용되는 인증을 받은 것만 사야 한다. 1온스와 10온스짜리 은괴와 미국 실버 이글이나 캐나다 실버 메이플 리프 같은 1온스짜리 은화는 거래비용이 많이 들지만 소액 투자에 적합하다.

금에 투자하는 GLD와 IAU 같은 ETF와 마찬가지로 은에 투자하는 ETF도 있다.



에너지 자원과 역방향 투자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힘

에너지 독립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경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 논리에 가깝다. 현대의 복잡한 에너지시장 구조에서 지구상 어느 곳에서 석유를 끌어올렸느냐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석유는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갈 뿐이다.


영국은 북해에서 원유를 생산하기 때문에 사실상 에너지 독립국이지만 제2차 석유파동 때 원유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만큼이나 석유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타격을 입었다.

중국은 산유국에 군대를 파견해 전쟁을 치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중국은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석유를 사오는 것이 전쟁을 통해 석유를 훔쳐오는 것보다 훨씬 더 비용이 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2000년에 매일 150만 배럴 정도의 석유를 수입했다. 2030년이 되면 중국의 석유 수입량은 하루 1,090만 배럴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 물량의 절반을 중동에서 들여올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와 그들의 원유를 중국에서 정제 및 판매하는 내용의 제휴를 맺었다. 중국은 또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뒤 가장 먼저 이라크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석유 개발권을 따냈다. 중국은 전체 석유 수입량의 5퍼센트를 이란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란의 유전 개발 사업에 대한 투자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원유는 일단 공개된 시장에 나오면 어느 곳에 팔려 소비되든 산유국으로선 제어할 방법이 없다. 결국 1973~1974년 제1차 석유파동 때 유가가 급등했던 것은 달러를 금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보장해줬던 브레턴우즈체제의 붕괴가 원인이었다.

물론 당시 미국에서는 휘발유 공급이 부족해 자동차들이 주유소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휘발유 공급이 부족했던 것은 중동의 금수 조치 탓이 아니었다. 원인은 정부의 고정가격제에 있었다. 휘발유 공급업체는 휘발유를 팔아봤자 손해를 보게 됐고 결국 공급을 줄이게 됐다.

에탄올이 채산성이 있다면 상원은 2012년까지 매년 최소 360억 갤런의 에탄올을 이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경제성만 있으면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에탄올 수요가 생길 것이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돈을 벌려는 에탄올 생산업자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는 자국 통화 가치를 지지하기 위해 원유 매장량을 크게 부풀려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또 다른 국가들은 OPEC가 원유 매장량에 따라 생산량을 할당하고 있기 때문에 매장량을 과장되게 발표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실제로 역사상 처음으로 전세계 800개 유전의 산유량 추이를 조사한 결과는 걱정스럽다. 원유 생산 능력이 정점을 치고 꺾인 유전의 산유량 감소율이 2007년 6.7퍼센트에서 2030년에는 8.6퍼센트로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석유 수요가 늘지 않고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 해도 기존 유전에서 산유량 감소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하루에 4,500만 배럴의 석유를 더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야 한다. 이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가 갖고 있는 하루 석유 생산능력의 대략 4배에 달하는 규모다.


IEA의 <2008년 세계 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석유 수요의 대부분은 중국과 인도에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총 증가분의 43퍼센트, 인도가 20퍼센트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IEA의 보고서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중동이 새로이 주요한 에너지 소비 지역으로 떠오르면서 2030년까지 늘어나는 석유 수요의 20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OPEC은 1970년대에 달러 가치의 변화는 유가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수차례 지적했다. 실제로 닉슨 대통령이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줄 수 없다고 선언한 뒤 불과 몇 년 만에 달러로 표시되는 원유 가격은 4배나 폭등했다.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중지 조치를 취한 이후 10년간 유가는 1,000퍼센트나 뛰어 올랐다.

원유는 달러 가치가 붕괴할 때 가장 먼저 수혜를 입는 투자 대상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반드시 자산 가운데 원유를 큰 비중으로 보유할 것을 추천하는 바다. 실제 가치보다 너무 높게 평가되고 있는 달러에서 거품이 빠져나가면 유가는 폭발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검은 금’이라 불리는 원유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강세장 첫 단계에서 달러 가치가 최저치를 경신하고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금보다 더 큰 폭으로 가격이 뛰어 올랐다.


정부는 경제위기가 닥치면 여기에서 저기로 해법을 찾아 왔다갔다하며 석유회사와 같은 기업의 운명은 정부의 이런 변덕에 좌우된다. 따라서 위기 때 재산권의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으므로 석유회사의 주식에 대해서는 투자를 권하고 싶지 않다. 석유기업의 주식보다는 가능한 한 원유 자체에 가깝게 투자하는 것이 변덕스러운 정부정책의 영향을 가장 적제 받는 방법이다.

산유국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정치적 위험을 감안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멕시코나 러시아처럼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고 민주화되지 못한 국가는 자산이 잘 분산 투자된 상황에서 극히 일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캐나다는 다르다.


생활에 꼭 필요한 실물자산

농산물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 식품 생산과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새로 등장한 개발도상국의 수십억 인구는 전세계 농산물 경매에서 점점 더 강력한 입찰자로 부각될 것이다. 농산물 생산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생산량이 늘든 줄든 혹은 변함이 없든 간에 경매에는 소득이 늘어난 입찰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미국 달러 기준으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할 것이다.

FRB는 물가 동향을 나타내는 기준으로 소비자물가지수보다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를 중시한다.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을 제외하고 계산한 물가의 수준을 말한다.

미국 정부가 근원 소비자물가 지수를 사용하는 것은 급격한 물가상승의 심각성을 숨기기 위함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리고 실제 물가상승을 부각시키지 않기 위함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먹을 것과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밴 엑에 따르면 2008년 7월 31일까지 5년간 계속된 상품 강세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주가는 상품 자체의 가격보다 73퍼센트에서 많게는 262퍼센트까지 더 높은 수익률을 냈다. 이유는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이익은 상품가격이 오른 것보다 더 많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리 값이 10퍼센트 올랐을 때 구리 생산업체의 수익은 이보다 많은 25퍼센트가 늘어날 수 있다.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은 구리 값이 오른 것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상장지수채권(ETN)은 만기 때 추종하는 기준 지수와 똑같은 성과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고 은행이 발행하는 무담보 선순위 채권으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ETN을 발행한 은행의 신용과 대금 상환 능력이다. 발행한 금융회사의 신용등급은 ETN이 주식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ETN에는 ETF에 없는 다른 위험이 있다.

ETN을 발행하는 금융회사는 보통 규모가 크고 신용등급도 높지만 위기 상황이 닥치면 ETN에 대한 대금 상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파산 직전에 몰려 매각된 베어스턴스나 미국 정부의 공적 자금을 받아야 했던 AIG도 크고 믿을 만한 금융회사였다.

ETN의 장점은 ETF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주식사장의 주요 지수들이 거둔 성과를 나눌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ETN 자체가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어 거래하기 쉽고 현금화가 용이하다.


국채와 반대 방향으로 투자하기

물가상승에 따라 금리가 올라가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이 돈을 빌려 쓰기 위해 발행한 국채는 갈 곳이 없어진다. 따라서 국채와 반대방향으로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

60년 전에는 국채가 지급하는 이자율, 즉 국채 금리가 연간 2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초까지 30여 년에 걸쳐 국채금리는 서서히 올라가고 국채 가격은 떨어졌다. 1981년에는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15퍼센트에 달했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15~16퍼센트 사이였다. 국채 금리는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국채 가격은 올라갔다. 이러한 국채 금리의 하락세는 또 한 번의 한 세대, 30여 년에 걸쳐 진행돼왔다. 지금 투자자들은 최근 30년간의 추세만 보고 있을 뿐이다.

30년 전에 오늘 만기가 돌아오는 30년짜리 국채에 투자했다면 오늘 돌려받는 달러의 실질 구매력은 어느 정도일까?

30년 전과 비교해 30퍼센트에 불과하다. 달러 가치의 70퍼센트는 30년간의 세월 속에 증발돼 사라져버렸다. 오늘 만기가 돌아오는 10년짜리 국채에 투자했다면 오늘 받는 달러는 10년 전과 비교해 구매력의 25퍼센트가 상실된 돈이다.

채권 강세장은 1981년에 시작됐다. 이후 꼬박 30년간 채권 금리가 추세적으로 내려오면서 채권 가격은 올라갔다. 2009년에 10년 만기 국채 금리, 즉 수익률은 2.5퍼센트에 불과했다.


금리가 이 수준에서 더 내려가기보다는 올라갈 여지가 훨씬 많아 보인다.

부족한 재정을 돈을 찍어 메우려 하면 물가상승으로 통화 가치가 하락해 투자 수익 손실분을 만회하려는 인플레이션 보상률이 높아지고 금리가 올라가게 된다. 정부 부채가 국가의 생산성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면 위험 보상률도 함께 올라간다.

금리가 오르면 부채 부담이 늘어나 기업 활동은 둔화된다. 그 결과 법인세수가 줄면 다시 재정적자가 확대된다. 이러한 금리의 악순환이 심화되면 채권시장은 붕괴 상황에 몰리게 된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가치를 조정해주는 물가연동국채, 즉 TIPS다.

TIPS는 매 6개월마다 소비자물가지수의 상승폭만큼 국채의 액면가를 조정해 인플레이션에 따른 통화 가치 하락을 보전해준다. TIPS가 지급하는 이자율은 만기 때까지 변함이 없지만 국채의 원금 가치는 소비자물가지수의 상승에 따라 상향 조정된다. 이자율은 변함없지만 지급되는 이자도 원금 조정에 따라 함께 늘어난다. 물론 만기 때 돌려받는 원금도 인플레이션에 따라 조정된 늘어난 금액이다.

월리엄스는 정부가 발표하는 모든 숫자들이 정치적 압력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GDP, 실업률, 통화공급, 재정적자 등의 경제지표를 상세히 분석한 결과 통계 산출 방법이 바뀌면서 지표들이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특히 사회보장보험을 지급하거나 TIPS의 액면가를 조정할 때 기준이 되는 소비자물가지수가 통계 산출 방법의 변화로 크게 낮아져왔다고 주장한다.

월리엄스는 '매년 대략 7퍼센트 가량'이 축소돼 소비자물가지수가 산출되고 있다고 추정한다. TIPS는 지금까지 5,000억 달러어치 가량이 발행됐다.


대안 통화

외환 ETF는 금과 은에 대한 투자가 제한되거나 금지되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달러에 대한 대안으로만 추천한다. 외환 ETF는 투자하는 대상이나 수익률이 해당 국가의 머니마켓펀드에 투자하거나 예금에 가입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실제로 일부 미국 투자자들은 외환 ETF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외환 ETF에는 투기적 성격이 내재돼 있으며 환율 변동의 위험이 존재한다. 달러에 대한 대안으로 외환 ETF에 투자할 때는 항상 해당 국가의 정치 상황을 포함해 각종 위험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달러의 급격한 가치 절하를 피하려 다른 통화에 투자했는데 그 통화의 가치가 달러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진다면 실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경화로 간주되는 선진국 통화는 모두 불안 요인을 안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유럽에서 더 심각하게 진행됐다.


디지털 금 거래시스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2001년에 출범한 골드머니다. 골드머니는 보유하고 있는 금이 40만 온스, 은이 1,500만 온스 가량으로 디지털 금 거래시스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골드머니에서는 금을 계산하는 기본적인 단위로 금 1그램을 뜻하는 '골드그램'을 사용한다. 골드머니가 금이나 은을 매입해주고 보관하는 데 대한 대가로 받는 수수료도 그램 단위의 금으로 부과된다.

골드머니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원하는 방식으로 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출처: http://blog.yes24.com/choiyoonki/5675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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