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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인내력을 갖춘 온화함과 과묵함을 통해 영혼은 영혼 세계에 대해, 정신은 정신 세계에 대해 열린다. 

   “평정과 고독 속에 머물러라. 수행 이전에 그대에게 전해졌던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을 닫아라. 이전의 습관에 따라 떠올랐다 사라지는 모든 상념을 정지시켜라. 내적으로 완전히 정숙하고 과묵한 채 참을성 있게 기다려라. ·········· 곧바로 보고 듣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대가 행하는 것만이 ·········· 기여하기 때문이다. ·········· 한동안 평정과 고독 속에 머물렀다면, 이제 그대의 일상적 업무에 착수하라. ‘나에게 이루어져야 할 일은, 내가 그러기에 적합하게 성숙해 있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게 된다’는 생각을 그대 마음 속 깊이 새기면서, 그대의 자의에 의해 무언가 ·········· 힘을 끌어 오려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마라.”

이것은 모든 수행자가 길을 시작할 때 스승으로부터 받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에 따르노라면 그는 자신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은 허사다. 참을성과 지구력이 없는 사람은 이 가르침을 따르기 힘들다. 각자가 스스로 길 속에 갖고 들어오며 또 정말로 피하려고 한다면 누구든 피할 수 있는 것들 이외의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은 거듭 강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비의 오솔길에 있는 난관들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전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행 없이 가장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보다 이 오솔길의 첫 단계를 넘어서기가 어떤 의미에서는 더 쉽다. 

·········· 물론 목표에 더 빨리 다다르는 다른 길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그러한 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왜냐하면 그 길은 수행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추구하지 않는 그런 영향을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길 가운데 몇몇은 계속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탓에,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확실히 경고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러한 길의 진정한 모습은 절대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단편들은 유익함을 낳을 수 없으며, 건강, 행복, 영혼의 평화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 그 진정한 본질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완전히 어두운 힘들에 자신을 내맡길 생각이 없는 사람은, 그러한 것들과 관계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루돌프 슈타이너. 번역:최혜경

종속 개념을 판단의 근거로 삼게 되면, 한 인간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속에 대한 가장 집요한 편견은 인간의 성에 관한 문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성은 여성에서, 여성은 남성에서 이성의 일반적인 성격을 항상 강조해서 더 많이 보게 되고, 개인적인 것은 거의 무시한다. 그것은 실생활에서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손해를 입힌다.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대부분 비인도적인데, 그 이유는 많은 면에서 개별적인 여성의 개인적 고유성으로부터가 아니라, 여성의 자연적 과제와 욕망에 대해서 우리가 취하는 일반적인 표상을 통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 남성의 행위는 그의 개인적인 역량과 소질에 따라 판가름되는 반면, 여성의 행위는 바로 여성이기 때문에 한결같이 주변의 상황에 따라 규정된다. 여성은 종속적인 것의 노예, 일반적으로 여성적인 것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여성이 그 자질에 따라 이러저러한 직업에 적합한지에 대해서 남성들에 의해 논의되는 한, 소위 말하는 여성 문제가 그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성이 그 천성에 따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여성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여성들이 현재 그들에게 걸맞다고 여겨지는 직업에만 적합하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들은 자신에서 벗어나서 다른 것에는 거의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여성은 무엇이 그들의 천성에 걸맞는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여성이 종속적 인간이 아니라 개인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면 사회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의 절반이 비인간적인 현존을 누리고 있는 사회적 상황은 그야말로 절박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이 그런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북돋우도록 유의하라는 것이다. 한 인간이 얼마나 건강한가 하는 것은 물론 처음에는 자기 자신에게 달린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그 방향으로 자신을 북돋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건강한 인식은 건강한 인간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수행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수행자가 건강하게 살려는 의지를 갖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 속에서 사람은 가능한 한 최대한의 자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 대게는 묻지도 않았는데 -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는 좋은 충고를 하더라도 듣지 말라. 그런 충고는 대체로 아무 쓸모가 없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 수행자에게 향락이 의무와 같은 자리를 차지해서는 결코 안 된다. 수행자에게 향락은 건강과 생활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자기 자신을 아주 성실하고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금욕적 생활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향략과 비슷한 이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 많은 사람들은, 고차적 인식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방해하는 듯이 보이는 모든 것을 자신들의 생활 환경 탓으로 돌린다. 그들은 “이런 처지에서 나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어.”라고 말한다.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사람의 경우 생활 환경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비 수행을 목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바로 현재 있는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몸과 영혼의 건강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하면 된다. 모든 일은 인류 전체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일은 나에게 너무 맞지 않아, 나는 다른 일이 맞아.”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영혼보다, 보잘것없고 누추할 수도 있는 어떤 일이 인류 전체를 위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분명히 아는 인간의 영혼이 훨씬 더 위대하다.


  수행자에게는 완전한 정신적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불건전한 정서 생활과 사고 생활은 항상 고차적 인식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명료하고도 평정(平靜)한 사고, 확실한 지각과 감정이 수행에서 토대가 된다. 공상벽이나 격양된 존재, 신경질, 흥분, 광신 등에 치우치는 성향만큼 수행자가 멀리해야 할 것은 없다. 그는 모든 생활상에 대한 건전한 시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는 생활 속에서 올바른 길을 확실하게 찾아야 한다. 그는 사물들이 조용히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영향을 끼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는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생활의 요구에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판단과 지각에서 과장된 것, 단면적인 것은 일체 피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수행자는 고차 세계 대신 자기 자신의 상상력의 세계 속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진리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생각이 유효하게 될 것이다. 흥분을 잘하거나 공상적이기보다는 ‘냉정한’ 편이 신비 수행자에게는 더 좋다.


··········


  두 번째 조건은, 자기 자신을 전체 생명의 한 부분으로 느끼는 것이다. ·········· 내가 교사인데 학생이 내가 바라는 바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내 감정을 먼저 학생에게 퍼부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나는 학생과 내가 하나임을 느끼면서, “학생에게 나타나는 불만스러운 점이 내 자신이 행한 행동의 결과는 아닌가?”라고 자문해야 한다. 나는 내 감정을 학생에게 돌리는 대신, 장차 그 학생이 내 요구에 더 잘 부응할 수 있도록 하려면 나 자신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숙고할 것이다. 그와 같은 의향에서부터 인간의 사고 방식 전체가 점차적으로 변해 나간다. 이는 극히 사소한 일과 큰일에 다 적용된다.


  예를 들어, 범죄자를 보더라도 나는 그러한 의향이 없을 경우와는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나는 판단을 삼가면서 다음과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 “나 또한 이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다. 환경을 통해 나에게 이루어진 교육이 아마도 그의 운명을 걷지 않게 나를 지켜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나에게 노력을 기울였던 스승들이 그에게도 똑같은 노력을 베풀었다면 이 인간 형제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모자란 것이 나에게 제공되었다는 것, 나의 좋은 점은 그에게는 모자란 바로 그 상황 덕택이라는 것을 고려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전체 인류의 한 구성원일 따름이며 만사에 다 책임이 있다는 관념 또한 더 이상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게 된다. ·········· 그런 사고는 조용히 영혼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것은 아주 점차적으로 한 인간의 외적 태도에 아로새겨진다. 그런 가운데 각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 속에서 개혁을 시작할 수 있다. ·········· 수행자가 하는 일은 표면에서가 아니라 심층에서 이루어진다.


··········


세 번째 조건은, ·········· 수행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그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대해 의미를 지닌다는 관점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웃 사람을 증오하면 그를 때리는 것과 같은 정도로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면, 나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도 뭔가를 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세계는 나의 선행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과 똑같이 나의 순수한 감정과 생각으로써 이롭게 된다. 세계에 대해 나의 내면이 지니는 의미를 믿을 수 없는 한, 수행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그 영혼적인 것을 외적인 것과 적어도 동일한 정도로 현실적인 양 다룰 때, 비로소 나는 나의 내면, 나의 영혼의 의미에 대한 올바른 믿음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나의 감정이 나의 손이 하는 일과 똑같은 영향력을 지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네 번째 조건은, 인간의 본래적인 본질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스스로를 외적 세계의 산물로서만, 물리적 세계의 결과로서만 여기는 사람은, 수행에서 어떠한 성취도 거둘 수 없다. 스스로를 영혼적 · 정신적 존재로 느끼는 것은 그러한 수행의 기초이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내적 의무와 외적 성공을 구분할 수 있다. 그는 전자가 후자에 의해 바로 측정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수행자는, 외적 조건이 규정하는 것과 그가 자신의 태도와 관련하여 적합하다고 인식하는 것 사이에서 올바른 중용을 찾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환경에 대해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해서도 안 되지만, 이 환경에 의해 인정될 수 있는 것만 행하려는 욕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는 오로지 인식을 추구하는 성실한 영혼의 목소리 속에서만 자신의 진리에 대한 인정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는 환경에 무엇이 도움이 되고 이로운지를 찾아내기 위해 가능한 한 환경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 ‘정신의 저울’이라 부르는 것을 자기 자신 속에서 발달시킨다. 그 저울의 접시 한쪽에는 외부 세계의 필요에 대해 ‘열린 가슴’이, 다른 한쪽에는 ‘내적인 확고함과 불굴의 지속력’이 놓여 있다.


··········


다섯 번째 조건은, 한번 결심한 것을 꿋꿋하게 따르는 것이다. 결심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신비 수행자로 하여금 결심한 것을 어기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결심은 다 하나의 힘이다. 이 힘은 바라는 직접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작용한다.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을 할 때에만 성공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고차 세계에서는 오로지 행동에 대한 사랑만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수행자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는 모든 것은 이 사랑 속에서 펼쳐져야 한다. 그러면 그는 아무리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결심을 거듭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시들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기 행동의 외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자체에서 만족을 누리게 된다. 그는 그의 행동, 아니 그의 존재 전체를 세계에 바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세계가 그의 희생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말이다. 수행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와 같은 희생적 헌신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여섯 번째 조건은, 자신에게 생기는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현존재가 우주 전체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 각자가 생명을 받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가! 우리는 자연과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고 있는가!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고차적 인식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무한한 사랑을 자기 속에서 기를 수 없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나는 내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감사에 가득 찬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들로써 내가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


일곱 번째 조건은, 이상의 조건이 요구하는 대로 삶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다듬어 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행자는 자신의 삶에 통일적인 특징을 부여할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그의 개별적인 생활 표현들은 모순됨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는 수행의 첫 단계에서 도달해야 할 평정함을 위한 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들을 충족시키려는 진지하고도 성실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수행을 결심할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내적인 것은 외적인 것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떤 그림이 화가의 머릿속에만 있을 때에는 아직 존재한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표현 없는 수행은 있을 수 없다. 외적인 것 속에서 내적인 것이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엄격한 형식을 경시한다. 어떤 사상(事象)의 정신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은 진실이다. 그러나 정신이 빠진 형식이 가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형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정신 또한 아무 쓸모도 없는 것으로 존재할 것이다.


  여기에 제시된 조건들은 수행자를 강하게 만들기에 적합하다. 이를 통해 그는 정신 수행이 그에게 가하지 않을 수 없는 더 많은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기를 수 있다. 그에게 이러한 조건들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는 새로운 요구가 주어질 때마다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필요한 인간에 대한 신뢰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신뢰와 진정한 인간애 위에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신뢰와 진정한 인간애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의 영혼의 힘에서 솟아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구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애는 모든 존재, 아니 모든 현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점차 확장되어야 한다. 앞에서 거론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건설과 창조에 대한 완전한 사랑도, 모든 파괴와 부정 그 자체를 그만두려는 경향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슈퍼스타 과학책의 귀환"

이 책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28년간 전 세계가 열광한 과학 교양서의 최강자, 지난 5년간 절판되어 품귀 현상을 빚었던 <도구와 기계의 원리>가 최신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보스턴 글로브-혼 북 논픽션 분야 최우수 도서상, 영국 더 타임즈 교육 분야 최우수 도서상, COPUS 과학 도서상 수상. 아마존이 뽑은 '평생 동안 읽는 어린이 책 100'. 최신 개정판에는 드론, 스마트폰 등 최신기계에 관한 여러 지면이 추가되었다. 

운동의 역학부터 기계의 발명사까지, 인간이 증명해낸 과학의 원리를 정교한 글과 탁월한 그림으로 설명한다. 그간 이 책이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독차지 한 이유 중 하나로, 여느 과학책답지 않은 부드러운 유머 감각도 빼놓을 수 없다. 순서와 상관 없이 관심 있는 기계를 찾아 그림만 들여다봐도 재미있다.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지적 유희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각자 다른 매력으로 다가간다. 과학의 경이로움에 눈뜨게 하고, 문명을 발달시켜온 인류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보스턴 글로브-혼 북 논픽션 분야 최우수 도서상, 영국 더 타임즈 교육 분야 최우수 도서상, COPUS 과학 도서상, 각종 과학 도서상 수상, 전 세계에서 28년간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 국내에도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던 <도구와 기계의 원리>가 최첨단 기술과 기계들을 업데이트하여 개정판 <도구와 기계의 원리 NOW>로 돌아왔다. 개정판에는 스마트폰, LCD 스크린, 전자 종이, 3D 프린터, 쿼드콥터(드론) 등 최신 기계들이 새롭게 소개된다.

이 책은 기계가 움직이는 근본 원리를 설명하고 원리가 적용된 다양한 도구와 기계들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더욱 발전된 삶의 모습을 추구했던 인간의 열망과 그 결과물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운동의 법칙을 증명해 내고, 공기와 물과 같은 자연력을 이용하여 기계를 개발하고, 바야흐로 디지털 세상을 연 시대의 산물이 펼쳐진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등장했던 다양한 도구와 기계들을 보며 우리 생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책이다.


목차

제1장

운동의 역학 

들어가는 글 8

빗면 10

지레 18

축바퀴 30

기어와 벨트 36

캠과 크랭크 48

도르래 54

나사 62

회전하는 바퀴 70

스프링 78

마찰 82

제2장

자연력의 이용 

들어가는 글 92

부력 94

비행 106

압력 120

열의 이용 142

원자력 166

제3장

파동의 역학 

들어가는 글 178

빛과 상 180

사진 202

인쇄 210

소리와 음악 222

전기 통신 236

제4장

전기와 자동 제어 

들어가는 글 256

전기 258

자기 274

센서와 탐지기 290

제5장

디지털 세계 

첫째 장

비트 만들기 310

둘째 장

비트 저장하기 329

셋째 장

비트 처리하기 338

넷째 장

비트 전송하기 346

다섯째 장

비트 사용하기 356

에필로그 372

유레카!

기계의 발명사 374

용어 해설 390

찾아보기 396


출간 28년, 과학 분야 전 세계 스테디셀러

국내 5년 만에 드디어 재출간!

보스턴 글로브-혼 북 논픽션 분야 최우수 도서상, 영국 더 타임즈 교육 분야 최우수 도서상, COPUS 과학 도서상, 각종 과학 도서상 수상, 전 세계에서 28년간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 국내에도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던 <도구와 기계의 원리>가 최첨단 기술과 기계들을 업데이트하여 개정판 <도구와 기계의 원리 NOW>로 돌아왔다. 개정판에는 스마트폰, LCD 스크린, 전자 종이, 3D 프린터, 쿼드콥터(드론) 등 최신 기계들이 새롭게 소개된다.

모든 도구와 기계들이 그림으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부터 과학도를 꿈꾸는 청소년과 전공자, 기계를 좋아하는 어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이 함께 보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역사와 함께 등장한 수백 가지 도구와 기계를 총망라한 백과사전

고대부터 사용하던 지레, 쟁기를 시작으로, 풍차, 자동차, 컴퓨터, WI-FI, 전기 기타, 로봇, 우주 탐사선, 가상 현실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을 변화시킨 수백 가지의 도구와 기계를 총망라한 한 권의 백과사전이다. 지레와 유압 사다리 그리고 치과용 드릴과 풍차, 이들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책은 기계가 움직이는 근본 원리를 설명하고 원리가 적용된 다양한 도구와 기계들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이 책엔 더욱 발전된 삶의 모습을 추구했던 인간의 열망과 그 결과물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운동의 법칙을 증명해 내고, 공기와 물과 같은 자연력을 이용하여 기계를 개발하고, 바야흐로 디지털 세상을 연 시대의 산물이 펼쳐진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등장했던 다양한 도구와 기계들을 보며 우리 생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책이다.

세밀한 묘사에 탁월한 세계적인 작가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작품

데이비드 맥컬레이는 칼데콧상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뛰어난 책에 수여하는 상을 다수 받았다. 이 책에서 기계의 내부 구조를 세밀하게 표현하여 작동 원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였으며, 이를 통해 복잡한 과학적 원리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이 책에는 맥컬레이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살아있다. 각 장마다 귀여운 매머드가 등장하여 기계의 작동 원리를 보여주는데, 때로는 다소 엉뚱한 모습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 사랑스러운 매머드에게 점점 빠져들게 된다. 다소 어렵게 생각될 수 있는 과학 원리에 대해 기분 좋게 상상할 시간을 갖게 한다. 딱딱할 수 있는 과학 원리책에 재미와 생기를 불어 넣기 충분하다.


후기

교보문고-과학에 대한 이해 ok**vvvv 

알쓸신잡의 정재승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구매하게 된 도구와 기계의 원리 

처음부터 굉장히 비씬가격에 컬러라서 비싼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직접 받아보니 어마어마한 분량과 함께 굉장히 큰 판형으로 기계와 도구들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상세히 다뤄지고 있었다. 과학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는 나이지만 이 책은 과학 초보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그 부분에 대한 용어를 명시하기 때문에 다른 과학서보다는 어렵지 않고 그리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는것이 큰 장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과학은 흥미롭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을 구매한것 같아 기뻤다. 그리고 지금도 여러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기술자분들이 정말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계를 만들어 내는 사실을 안것 같아 존경심이 들었다.


교보문고-아버지와 아들이 함께보면 좋은 책 si**v1213

1991년 즈음 초판이 나온 도구와 기계의 원리 책이 2016년에 다시 나왔다. 그 동안 새롭게 발명되고 우리 삶에 가까이 온 도구와 기계들의 원리를 대거 포함하였다. 고대부터 사용하던 지레, 쟁기를 시작으로, 풍차, 자동차, 컴퓨터, WI-FI, 전기 기타, 로봇, 우주 탐사선, 가상 현실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을 변화시킨 수백 가지의 도구와 기계를 총망라했음은 물론 스마트폰, LCD 스크린, 전자 종이, 3D 프린터, 쿼드콥터(드론) 등 최신 기계들이 새롭게 소개되었다. 작가는 건축학을 전공하고, 디자이너, 고교교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그림책을 출시하였다. 특히, 기계와 도구의 원리를 시각적으로 보이도록 풀어낸 이 책은 요즘 교육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 '비주얼 씽킹'을 실현시킬 소중한 교보재로써의 가치가 있다. 어린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많은 것들을 답하기에는 내 지식이 부족하기도 하고 또한 말로 이해시키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이 책은 이를 시각적으로 풀어냄으로써 종합적 사고와 상상력을 기르게 해준다. 다양한 도구와 기계의 원리를 시각적으로 이해한 아이들은 추후 새로운 발명을 할 때에도 남들보다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할 것이다. 책의 카테고리는 운동역학, 자연력의 이용, 파동, 전기와 자동제어, 디지털 세계로 분류되어 있고 마지막 기계의 발명사를 통해 현대 문물의 기원을 훑고 있다. 


알라딘-카이지

<도구와 기계의 원리>는 인류가 만들어온 모든 물건의 작동원리를 그림과 더불어 명쾌하게 설명한다. 동시에 기원을 알려줌으로써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를 테면 지레의 경우 가위뿐만 아니라 병따게, 낚시대, 굴착기에 적용되는 점을 알려주어 보다 더 다양한 적용가능성을 알려준다. 실제로 정재승의 말마따나 무인도에 갇히게 되더라도 이 책만 있다면 생존에는 걱정이 없을 정도로 상세하다. 그러나 더욱 큰 덕목은 혼자여서 외롭다는 감정을 떨치고 두뇌를 쓸 수 있게 만드는게 아닐까? 곧 드론은 만들지 못하도라도 머리속으로 공상의 나레를 펼치며 현재의 슬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희망을 갖게 될테니까. 새로운 도구와 기계가 늘 사랑받은 것은 아니다.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때려부수는 운동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보다 중요한 건 어쩌면 호기심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효용은 그 다음의 문제다.


은행가, 아나키스트, 그리고 비트코인

비트코인(1)을 비롯한 온라인 화폐가 떠오르면서, 월스트리트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금융업계의 공룡들은 이 화폐 분야의 신기술이 새로운 수익의 지평을 열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자화폐들이 고안된 원래의 목적은, 기존의 은행을 배제하려는 것이었다. 금융 권력에 반발하는 시위대의 바람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들 전자화폐가 19세기 꿈꿨던 ‘이상적인 화폐’에 다시 숨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으로 서점업계를, 숙박사이트 <에어비앤비>로 숙박업계를, 그리고 <우버>앱으로 택시업계를 뒤흔든 디지털 광풍의 다음 정류장은 다름 아닌 월스트리트다. 서점이 출판사와 독자를 연결하듯, 금융가의 기본 기능도 돈을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과 기술을 조합하려는 젊은 기업들에게, 이는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으로 비칠 수 있다. 

금융과 기술의 합성어인 ‘핀테크(Fintech)’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용가능한 온라인 시장 플랫폼으로, 기존의 은행을 대체할 수 있어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기대와 걱정은 언제나 함께 오게 마련이다. 컨설턴트들은 기존의 금융권 주체에게 기존체제의 붕괴를 예고한다. 특히 디지털 방식의 확산은 규제회피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만큼, 이전 시대는 빠르게 무너질 것으로 전망한다. 

비트코인을 만들어낸 금융 신기술이 금융거래에 어떤 혁명을 몰고올 것인지 세세히 설명해주는 기사들도 넘쳐난다. 이 분야와 관련해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미국인 기업가 브렛 킹이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브레이킹 뱅크’의 오프닝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금융 신기술은 “오늘날 은행권에서 업무가 이뤄지는 방식에서부터 화폐의 개념 그 자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뒤바꿔 놓는다.” 영국에서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핀테크 분야의 매출액이 연간 평균 74% 성장했다. 금융 시스템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 덕분에 파이가 커진 것이다.

처음에는 신기술 분야에서 이뤄진 작은 쾌거들이 금융 분야로 몰려드는 양상을 보였다. 즉각적인 수익을 보장받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일어났던 대형 은행들의 도산에 따른 반발 때문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개인 이용자 사이에서 이 분야의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증대한 것은, 수천 명의 미국인들을 뉴욕 주코티 공원으로 불러들여 탐욕스런 금융 자본주의를 비난하게 만든, 바로 그 분노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신기술을 주무르는 실리콘 밸리의 엘리트와 주코티 공원의 시위대 사이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듯하다. 실리콘 밸리의 엘리트들은 그저 은행에 대한 반감으로 수익성 좋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발명한 것에 흡족해하는 이들이며, 시위대는 대형 금융기관의 몰락을 요구하고 사회정의를 말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 아니 공공의 적이 존재한다. 바로 월스트리트다. 이 기생충 같은 중개업자는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엇갈린 두 비판세력 사이에 끼어 있었다.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기업들의 목적은 일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골드만삭스의 수익을 빨아들이는 것이었다(그러나, 이 앱은 결국 골드만삭스에 인수되고 만다). 그리고 시위대는 돈 장사로 몸집을 키우는 금융산업 분야에 반발하고 있었다. 

물론 금융 분야에 대한 이러한 반감은 낯설지 않다. 과거에도 통화 분야의 수많은 ‘급진파’들은 오늘날 핀테크를 주창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금융 중개업자들을 제거하려 애썼다. 마르크스주의를 따르지 않는 사회주의자 대다수는 재화의 (생산이 아닌) 분배와 순환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와 경쟁논리를 비판했다. 

19세기 초에 등장한 사회주의는, 금융권에 대해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생시몽(1760~1825)의 경우, 물려받은 유산으로 호위호식하며 ‘빈둥거리는’ 부자들로부터 권력을 탈취할 실력 중심의 기업가들 중, 은행가를 우선으로 꼽았다. 생시몽은 “정치 단체에 있어 돈은 우리 몸의 핏줄과도 같다”고 보았다.(2) 그의 뛰어난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이 명언을 따르면서 ‘노동자로부터’ 생산 수단을 몰수한 대지주와 금리 수익자를 집중 공격한다(이들에게 있어 노동자 계층은 ‘현역 자본가’로 분류됐다). 

상속세 부과와 철도 개발, 생산 수단의 사회화 등 이들의 구상안에 있어 기본 전제는, 국가가 독점하는 단일은행의 신설이었다. 기업의 필요에 따른 채권 발행 또한 이 은행에서 이뤄진다. 유산상속자들이 은행에 재산을 예치하도록 강제하고, 이 재산을 산업생산 용도로 활용하면 저들의 무위도식하는 생활을 근절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바람이 실현되려면, 단순한 계산 단위를 뛰어넘는 화폐의 개념이 전제돼야 한다.(3) 신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운용되는 이 화폐는 노동자 부대를 위해 활용될 것으로, 은행이 그 중심에 있었다.

물론 이러한 단일 은행의 수립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생시몽과 뜻을 같이 하던 은행가 이멜 페레르 및 이작 페레르 형제는 제2제정이 이뤄지던 1852년, 크레디 모빌리에를 설립해 성공을 거둔다. 이는 사회개혁 세력이 기업활동을 위한 자금운용과 사회적 근대화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회주의 사상이 프랑스 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돼 감에 따라 ‘빈둥거리는 자본주의자들’과의 싸움은 모든 자본주의자들과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이 돈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프루동에서 온라인 금융에 이르기까지

상품화폐(금과 같이 실물가치를 지닌 화폐로서, 상품처럼 교환되는 화폐) 대신 기호화폐(은행권처럼 실물가치가 없는 명목화폐)를 사용하려는 욕구는 19세기 내내 꾸준히 커져갔다. 1848년 자본유출에 따른 금융위기가 불거지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1809~1865)은 노동의 생산물을 통화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찾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그는 환어음의 유통을 주창한다. 이는 제3자인 은행이 정당한 가격을 매긴 물품으로 어음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나아가 소작료와 집세 등 모든 형태의 이자 수입을 포함해, 전반적인 금리 인하와 금과 은의 유통 중지를 주장한다. 그러려면 프랑스 은행을 ‘인민은행’으로 바꾸어 국유화해야 했다.(4) 정부에 대해 독립적인 은행 이사회는 모든 생산 분야 및 공공 서비스 분야의 대표로 구성된 총회에서 임명하며, 은행의 운영 또한 시의회 및 상공회의소의 감시를 받게 된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난 급진적 화폐 이론은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도 대두됐는데, 협동조합 운동의 창시자인 이상주의 기업가 로버트 오언(1771~1858)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이 됐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금본위제의 복원에 반대하고, “오직 노동만이 부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 영국 사회주의자들은, 생산에 투입된 노동의 양으로 한 재화의 가치가 표현될 수 있는 교환체계를 수립하고자 노력한다. 

이들은 이와 같은 화폐의 새로운 정의를 통해, 부를 자본주의자들의 손에서 노동자 계층의 손으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언의 생각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판단한 미국의 무정부주의자 조시아 워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신시내티에 직접 자신의 (노동 가치) 교환은행을 설립한다. 이 은행의 노동 바우처 상에는 시간단위로 측정한 근무 확인내역이 서면으로 기록돼 있었다. 

19세기 말, 소다제조법에 관한 특허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벨기에 사업가 에르네스트 솔베이(1838~1922)는 화폐가 없는 또 하나의 이상적인 교환거래를 구상한다. “불완전한 도구인 화폐제도를 폐지하고 간단한, 그러나 법적효력을 지닌 기입방식으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사회적 기장주의’(5)라 명명한다.” 

벨기에 의회에서 소개한 그의 계획안은 은행 부문의 공유화를 요구하고 정부에 중점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었다. 또한 정부는 개인별로 계좌를 하나씩 개설해주어, 자산총액을 기입하도록 했다. 동시에 모든 지출내역을 찍을 수 있는 신용통장을 제공한다. 재산에 비례하는 세금의 신설로 제도를 보완하고 부의 재분배에 따른 폐단을 최소화한다. 이렇게 하면, “각자가 사회적 생산성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던 솔베이의 말이 실현될 수 있었다.

20세기 초, 사회주의로 전향한 독일의 상공업자 실비오 게젤(1862~1930)은 화폐가 부의 과도한 축적도구가 될 수 없도록 하는, 오랜 역사적 투쟁을 위해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다. 그는 ‘프라이겔트(Freigeld, 독일어로 자유화폐-역주)’라는 신개념 통화를 발전시킨다. 

이 화폐의 특징은 시간이 지날수록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인데, 고정하락률에 따라 주당 0.1%, 연간 5.2%씩 가치가 하락한다. (6) 즉 손해를 보고 싶지 않으면, 서둘러 소비해야 한다. 중앙은행을 대체하는 통화조정위원회의 개입으로, 지폐 재고를 주기적으로 갱신하는 이 제도 하에서는 금리를 낮출 수 있고, 그에 따라 자본 보유자의 수입을 줄일 수 있다.

게젤은 이어 천연자원 및 민간 토지소유권의 국유화까지 예상해, 부동산 소득 및 이자 소득을 통제할 방안을 마련한다. ‘프라이겔트’를 사용하는 기업들은 이러한 압박을 받지 않으려면, 유통되는 화폐의 수량과 유동성을 조절해 자본축적에 따른 문제를 예방해야 한다. 이러한 게젤의 통화론은 국경을 넘어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눈으로 볼 때, 경제학사에 길이 남아야할 이름은 칼 마르크스가 아니라 바로 실비오 게젤이었다. 그의 새로운 발상은 대공황 기간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 수많은 실험적 시도에 영향을 미쳤지만, 이후 정부와 중앙은행이 본격적으로 금융 무대에 등장하면서 신속히 자취를 감췄다.

현재 상황에서는 대기업 총수가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화폐개혁의 방식을 고민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과거의 엘리트와 지금의 엘리트는 분명 다르다. 과거의 기술과 지금의 기술도 다르다. 근대의 금융 시스템 상에서 은행이 그 권력을 잃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게젤이 꿈꾸던 ‘프라이겔트’의 이상향은 기술적으로도 실현 불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자화폐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전자화폐는 얼마든지 그 특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 소비되지 않을 경우 매월 1%씩 가치가 떨어지는 비트코인 형태의 대안 화폐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 화폐의 코드에 그런 특징을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은 일개 중앙서버가 아닌, 네트워크에 접속된 모든 컴퓨터의 협력으로부터 화폐의 신용도를 끌어내는 기술을 활용한다. 오늘날의 게젤이나 프루동은 거래의 중간 매개자를 없애는 이 분권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화폐 유토피아의 실현을 구상해볼 수 있다.

소규모의 역내 단위로 유통되는 대안 화폐로서 비트코인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 비주류의 공상 정도로 그치고 있다. 전자화폐의 의미와 자본과의 상관관계는 아직 현대 좌파들의 관심 밖에 있다. 이런 것은 프루동이나 솔베이, 게젤에게 있어서도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이 화폐계의 이단아들은 가치를 교환하고 보존·변형시키는 화폐제도를 차근차근 구상해 나갔으며, 이들이 구상한 화폐제도는 개개인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가능하고, 동시에 유의미한 평등 수준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였다. 화폐의 신용도를 구축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수단에 불과했다. 이들은 은행을 통제해 새로운 가치의 교환규약을 부과하기 전에, 그러한 개혁을 통해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에 대해 뚜렷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008년, 사람들의 신뢰가 바닥을 친 금융산업은 서둘러 ‘실리콘 밸리’라는 열차에 편승한다. 금융계가 기존의 아날로그 시대를 ‘붕괴’하는 파격적인 신기술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출판업계나 숙박업계, 택시업계가 겪었던 쇠락의 길을 피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자체적인 거래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려는 목적도 있다. 월가에서 ‘핀테크’ 분야에 특화된 실리콘 밸리의 신생기업을 사들일 가능성은 적지 않다. 

그러나 골드만삭스가 ‘인민은행’이나 ‘프라이겔트’ 같은 구상을 사들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는 관심과 취향의 문제라기보다, 게젤과 프루동이 그들의 이상향을 이런 기업에게 팔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월가 시위대가 금융권과 정치권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각각 경제적·기술적 대체재를 구상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그 이전에, 부의 재분배에 따른 폐단이 부의 생산방식과 유통방식에 기인한다는 점을 알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글·에드워드 캐슬턴 Edward Castleton: 경제사학자로 근현대 화폐금융에 관해 글을 주로 쓰고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22세기 세계: 내일을 위한 유토피아> 등의 역서가 있다. 


(1) Bitcoin, ‘블럭체인’이란 기술을 이용하는 전자화폐. 블록체인은 일종의 공공 거래 장부(데이터베이스)로, 거래내역은 안전하게 승인·저장된다. 승인과 유지 작업은 중앙의 한 관할 기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스템 이용자 각각의 컴퓨터를 통해 이뤄진다. 

(2) Saint-Simon, <생시몽 전집OEvres complètes> 제2권, PUF, Paris, 2012. 

(3) 공동단위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이 바로 화폐의 기능 중 하나다.  

(4) 은행과 관련한 프루동의 구상안은 2016년 출간될 그의 저서 <공화국 논집Mélanges républicains>(Presses du Réel)을 참고.

(5) Ernest Solvay, <생산주의와 기장주의에 대한 소견: 사회적 연구를 기반으로Notes sur le productivisme et le comptabilisme : études sociales>, Henri Lamertin, Bruxelles, 1900.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경제] - 돈이 늙어가는 사회를 꿈꾼 슈타이너와 게젤

[독서] - 돈을 근원적으로 묻는다 - 미하엘 엔데

wikipedia

L. 프랭크 바움은 원래 포퓰리즘에 빠진 대중주의자였다. 처음 출판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에 고등학교 선생 헨리 리틀필드에 의해 포퓰리즘 메세지가 담겨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작가가 직접 인정한 게 아니라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너무 딱 들어 맞아서 의도하지 않았다고는 하기 힘들다. 해석한 바에 따르면 심볼리즘은 아래와 같다:

- 허수아비는 당시 인플레이션과 금본위제도에 의해 파산난 농부

- 양철인간은 안전규정 없이 낮은 임금으로 일하던 노동자

- 겁쟁이 사자는 1896년 대선 후보였던 윌리엄 J. 브라이언

- 동쪽의 마녀는 거대 트러스트 기업들(록팰러, 카네기, JP모건 등등)과 은행

- 도로시는 일반 미국(중산층) 시민들

- 에메랄드 도시는 워싱턴 D.C

- 날아다니는 원숭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을 상징

외에도 노란 벽돌 길은 금본위제도를 상징하며, 도로시가 원래 신고 있던 은신발은 은본위제도를 상징한다. 1883에 목화의 값이 급감하면서 타격받은 농민들은 쌓인 빛 때문에 고생하였는데, 금본위제도에서 은본위제도로 넘어가게 되면 통화의 가치가 내려가면서 지고있던 빚도 내려가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걸 이용해 농민들에게 어필한게 브라이언의 "그렌지" 당이었다. 톰 왓슨, 벤저민 틸먼, 레오니다스 폴크 등의 정치인들을 정계로 넣는데에는 성공하나 결국 공화당에게 패배하고 대중주의가 식어버려 분열하여 사라진다.

또한 은 신발(은본주의)을 신고 노란 벽돌 길(금본주의)을 걸으며 양철인간(노동자), 허수아비(농부)와 같이 에메랄드 도시(수도)로 향한다는것은 당시 정치상황에 대한 적합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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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위제란 금에 비례해 화폐를 찍어내는 제도고, 은본위제는 은을 기준으로 화폐를 찍어내는 제도다. 미국은 1873년 화폐주조법을 통해 금본위제를 확정했다. 하지만 금본위제 채택 이후 심각한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겪었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가는 이를 지지했다. 물가가 하락하면 빌려준 돈의 가치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사과 1개에 100원이다. 그런데 물가가 떨어져 50원이 됐다고 치자. 이제 100원으로 사과 2개를 살 수 있다. 돈을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는 돈의 가치가 높아지는 게 좋다. 반면 돈을 빌린 농민, 노동자는 인플레이션이 필요했다. 그게 은본위제였다.

1990년 경제학자인 휴 로코는 ‘통화 우화로서의 오즈의 마법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을 보면 도로시는 미국의 전형적인 서민을 의미한다. 오즈(Oz)는 금의 단위인 온스(Ounce)의 약자로 금본위제를 뜻한다. 도로시가 걷는 노란 벽돌길도 금본위제를 의미한다. 도로시는 험난한 여정을 거치는데, 금본위제로 인해 혼란을 겪은 미국 사회라고 한다.

에메랄드성은 수도 워싱턴 DC다. 에메랄드빛은 화폐를 상징한다. 에메랄드성에 사는 마법사는 당시 무능한 존재로 평가된 클리블랜드 대통령이다. 허수아비는 순진한 농민을, 양철 나무꾼은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산업노동자다. 사자는 용기 없던 대선후보인 윌리엄 브라이언 제닝스다. 남쪽과 북쪽의 착한 마녀는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지역이다. 동쪽과 서쪽의 나쁜 마녀는 금본위제만을 지지했던 지역이다. 

그렇다면 도로시가 신고 있던 은구두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은본위제다. 마법사(대통령)도 해결해주지 못했던 문제를 풀어주는 열쇠가 구두(은본위제)에 있었다는 것이다. 재밌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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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즈의 마법사」는 어떤 책일까?

「오즈의 마법사」는 1900년 미국 중서부 지역의 신문편집자인 프랭크 바움(Lyman Frank Baum, 1856~1919)이 발표한 책이다. 이 책은 평범한 시골 소녀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그리고 있으나 본래 저자의 의도는 19세기 말 미국의 화폐제도에 관련한 정치 현실을 풍자하기 위함이었으며 등장인물들은 당시 정치 논쟁에 참여하고 있던 인물들이었다. 「오즈의 마법사」는 비평가들과 독자들에게 모두 고른 사랑을 받았으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에 저자는 모두 14권에 이르는 ‘오즈’시리즈를 출간했다.

2. ‘오즈의 마법사’의 줄거리는?

캔자스 들판에서 집과 함께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하늘로 올라간 도로시는 멀고 낯선 오즈의 나라에 도착한다. 착한 마녀로부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 부탁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안 도로시는 오즈가 살고 있는 에메랄드 시로 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길에서 생각할 수 있는 뇌를 갖고 싶어 하는 허수아비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어 하는 양철 나무꾼, 그리고 용기를 얻고 싶어 하는 겁쟁이 사자를 만나게 되는데 각자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도로시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러 가지 사건과 위험을 겪으면서 에메랄드 시에 도착했지만 오즈 마법사는 소원을 들어주기는커녕 악한 마녀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도로시는 결국 악한 마녀를 처치했지만 위대한 마법사 오즈는 도로시와 친구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착한 마법사로부터 도로시가 신고 있는 은구두를 툭툭 치면서 소원을 빌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3. 「오즈의 마법사」에 나타난 금본위제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의미하는 것은?허수아비가 말했다.

“몰라. 사실 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다시피 나는 밀짚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머릿속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거든.”

(중략)

도로시는 양철 나무꾼의 목에다 기름을 쳤다. 목은 너무 심하게 녹이 슬어서, 허수아비가 양철머리를 잡고 이리저리 돌리고 비틀어 준 뒤에야 겨우 나무꾼 스스로 목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중략)

“숲 속에 사는 짐승들은 모두 내가 용감할 거라고 생각하지. 사자라면 누구나 동물의 왕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내가 으르렁거리는 건 다 까닭이 있어서 그래. 내가 어흥 하고 울면 모두 깜짝 놀라서 달아나 버린다는 걸 알았거든. 나는 그런 겁쟁이야.”

(중략)

도로시가 물었다.

“그럼 이곳에 있는 게 모두 초록색이 아닌가요?”

“이 도시도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야. 초록색 안경을 쓰고 있으니 당연히 모든 게 초록색으로 보일 수밖에. 하지만 이 나라 백성들은 오랫동안 초록색 안경을 쓰고 살았기 때문에 여기가 정말로 에메랄드로 만들어진 도시라고 믿어.”

(중략)

그러자 착한 마녀가 말했다. “그 은구두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단다. 은구두의 가장 신비로운 힘은 단 세 걸음 만에 이 세상의 어느 곳이든 너를 데려다 줄 수 있다는 것이란다. 한 걸음을 내딛는 데에는 눈 깜짝할 시간밖에 안걸려. 너는 그저 은구두의 뒤꿈치를 세 번  맞부딪치면서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명령하기만 하면 돼.”

– 출처 : 「오즈의 마법사」, 시공사

경제학자인 휴 록오프(Hugh Rockoff)는 1990년 발표한 논문 「The Wizard of Oz as a Monetary Allegory」에서 「오즈의 마법사」의 등장인물과 소재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마법사의 이름인 오즈(Oz)는 금 등의 무게를 재는 단위인 온스(ounce)의 약자이다. 주인공 도로시는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나타내고 있으며, 허수아비는 가난한 농민, 양철 나무꾼은 산업 노동자, 그리고 소리만 크고 겁 많은 사자는 힘없는 정치가를 의미한다. 서쪽에서 불어 닥친 회오리바람은 금본위제와 금ㆍ은본위제에 대한 정치적인 대립을 의미한다. 도로시가 은구두를 신고 노란 벽돌길을 걷는데, 여기서 은구두는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은본위제, 노란 벽돌길은 금본위제를 뜻한다. 도로시와 친구들은 화폐를 의미하는 초록색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에메랄드 시(워싱턴 시)에 도착하는데, 마법사 오즈를 만나기 위한 험난한 여행길은 금본위제 하에서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고난을 의미한다. 금이 귀해 디플레이션이 유발되었기 때문에 당시 보유량이 풍부했던 은을 화폐의 기준으로 삼으면 인플레이션이 촉진되면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주장을 담은 것이다.

4.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이 된 시대는?

미국은 금과 함께 은도 화폐의 기준이 되는 금ㆍ은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으나 1873년 화폐주조법으로 인해 은이 더 이상 화폐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자 금만을 화폐의 기준으로 하는 금본위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미국의 통화당국이 보유한 금의 양이 부족해 화폐를 원하는 만큼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경기가 후퇴하는 현상인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는데, 1880년부터 1896년 사이에 미국의 물가 수준은 23%나 하락했다. 이러한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가치가 급등하면서 돈을 빌려준 사람은 이득을 보게 되었지만, 반면 농민이나 근로자의 경우 부채의 실질 부담이 크게 증가하여 큰 고통을 겪었다. 이에 따라 저자인 프랭크 바움도 금ㆍ은본위제를 주장하는 「오즈의 마법사」를 저술하였다.한편, 이러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함에 따라 금과 함께 은도 유통시키는 금ㆍ은본위제로 환원하여 통화 공급을 늘리고 물가하락을 방지하자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금본위제와 금ㆍ은본위제를 각각 주장하는 민주당과 공화당은 치열한 정치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미국 북동부의 자본가 계층은 금본위제를, 남서부의 농민ㆍ노동자 계층은 금ㆍ은본위제를 지지했지만,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공화당이 이겨 금ㆍ은본위제는 실시되지 않았다.

이후 미국은 계속 금본위제를 유지하였으나 은화 자유주조운동 주창자들이 주장하였던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된다. 즉 알래스카ㆍ호주ㆍ남아프리카 등지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고, 원석에서 금을 보다 쉽게 추출할 수 있는 청화법이 발명됨으로써 미국으로 들어오는 금의 양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통화 공급이 증가하고 물가가 상승하였다. 그 결과 1896년부터 1910년까지 물가는 35% 상승하였다.

5. 통화제도의 변천

통화제도는 일반적으로 은본위제, 금ㆍ은본위제, 금본위제, 관리통화제도의 순서로 변천되었다.

– 은본위제

은본위제(silver standard)란 일정량의 은에 화폐단위를 정하고 은화의 자유주조를 허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근대적인 본위제도에 있어서 가장 초기의 제도이며, 금본위제도가 확립되기 전에 널리 채택되었다. 그러나 신대륙 발견과 수요 감소로 의해 은의 가치가 폭락하게 된다. 프랑스는 1790년부터 1803년까지 은본위제를 채택했으며 영국도 1774년까지는 사실상 은본위제였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는 1873년 금본위제로 이행할 때까지 은본위제를 채택하였다. 중국도 근대에 이르기까지 은본위국이었으나 1935년 영국에 의해 은본위제에서 이탈하였다.

– 금ㆍ은본위제

금과 은을 모두 화폐의 본위로 하는 제도로 영국과 미국은 각각 1816년, 1873년 금본위제를 채택할 때까지 금ㆍ은본위제를 채택하였으며 프랑스도 1870년대 중반까지 금ㆍ은본위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금ㆍ은본위제에서는 시장에서 금은의 수급에 따라 가치가 수시로 변하고 또한 유통과정 중 가치가 떨어지는 악화(惡貨)만 남게 되는 그레샴의 법칙으로 인해 통화의 안정적 운용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후 세계적인 은의 산출량 증가로 은의 가치를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어 세계 주요국들은 점차 금본위제도로 이행하게 된다.

– 금본위제

금본위제(gold standard)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양만큼 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화폐의 공급이 금의 보유량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경제여건의 변화에 따라 화폐 공급량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어렵다. 19세기 말 금본위제도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금으로 만든 주화가 유통 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화당국이 발행한 지폐가 사용되었는데, 이 지폐를 통화당국에 가지고 가면 언제라도 법으로 정한 무게의 순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렇게 금으로 교환 가능한 지폐를 태환 지폐라고 한다.

– 관리통화제도

금본위제도의 문제점 등으로 인해 1931년 영국의 금본위제 붕괴 이후 많은 나라들이 관리통화제도로 이행하게 된다. 관리통화제도(managed currency system)란 통화의 공급량을 금본위제도에서와 같이 기계적으로 자동조정하지 않고 통화당국이 합리적인 통화공급목표를 설정하여 금과 교환되지 않는 불태환 지폐를 발행ㆍ유통시킴으로써 인위적으로 통화 공급을 통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통화관리의 목표인 물가 안정, 고용 증대, 외환시세 안정 등을 고려하여 통화 공급을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세계 각국이 대부분 채택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준비한 금의 양에 따라 화폐를 발행하던 과거의 금본위제도와는 달리 별도의 금의 보유 없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관리통화제도 하에서의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출처: 나무위키, 주간경향yesdontworrybehappy

넬로는 왜 은화 한 닢이 필요했을까? 마르코네 엄마는 왜 외국으로 떠났을까? 왕자는 왜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했을까? 앤 셜리는 자전거를 마음껏 탈 수 있었을까? 15편의 동화를 통해 당대 사회현실을 들여다보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경제의 흐름을 좇는 책이다. 특히 돈과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모습을 동화에서 어떻게 풍자했는지 보여주며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다. 

어린 시절 동화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저자는 오히려 어른이 된 이후 동화의 오묘한 세계에 새롭게 눈떴다고 말한다. 근대 이후 세계 경제와 사회경제사에 관심을 두면서, 동화 형식을 빌려 당대 논쟁의 최전선에 뛰어든 사례가 적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거대 월스트리트 패권과의 대결에 대한 은유이자 화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정치적 우화이고, <행복한 왕자>는 가난과 질병, 빈부 격차 등의 사회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상기시켰다. 저자는 동화가 탄생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살펴보고 당대의 주요 사건을 곁들여 동화를 새롭게 읽어보려 했다. 그 결과, 예쁘고 아름다울 것만 같은 동화의 이면에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룬 15편의 동화 중 8편은 산업혁명의 확산, 자본주의 시스템의 확립과 함께 생산·무역·금융망이 조밀해지고 계급별·국가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1800년대 후반부에 출간됐다. 가난한 성냥팔이 소녀가 거리에서 죽은 때는 감자마름병의 재앙이 유럽을 휩쓴 대기근(1845~47년)의 시대였다. 성냥은 당시 ‘핫 아이템’이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출간되기 한 해 전인 1844년, 안정적인 마찰·발화 방식으로 사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인 ‘안전성냥’이 발명됐다. 그러나 성냥에 들어가는 백린은 인체에 매우 해로웠다. 성냥팔이 소녀는 동사했지만 성냥공장에 취직한 소녀들은 산업재해로 죽어갔다. 성냥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도 있었는데, 세계성냥 생산의 75%를 차지했던 스웨덴의 ‘성냥왕’ 이바르 크뤼게르는 공격적 투자를 일삼다 피라미드 사기극이 탄로나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윌리엄 포그가 세계여행을 떠난 때는 프랑스에서 ‘애국투자’ 열풍을 일으키며 수에즈운하(1869년 완공), 6093㎞의 미 대륙횡단철도(1869년 완공), 봄베이-캘커타 간 2127㎞에 이르는 인도반도철도가 놓인(1870년) 직후였다. 포그는 이런 인프라를 이용해 정확히 79일5분 만에 지구를 횡단한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토목건설은 과잉투자를 불러일으켰고 역사상 최초의 글로벌 불황(1873년)이 발생한다. “세상은 더 가까워졌지만 위기는 더 빨리 퍼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1900년)를 ‘화폐투쟁’으로 읽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이 나오기 4년 전인 1896년 미국 대선은 금만 화폐로 인정할 것이냐, 은도 함께 인정할 것이냐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 ‘화폐선거’였다. 1873년 실시된 금본위제의 여파는 서부 농민들에게 심각한 불황의 타격을 입혔고, 이들을 기반으로 ‘인민당’이 생겨난다(1892년). 1896년 선거에선 금본위제의 공화당이 이겼지만, 동화에선 도로시의 ‘인민주의’가 승리한다.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묻기 위해 도로시는 ‘노란 벽돌길’(금본위제)을 따라 ‘에메랄드시티’(금권정치가 횡행하는 수도 워싱턴)를 찾아갔으나 믿었던 마법사는 가짜로 밝혀지고(공화당의 클리블랜드 대통령), 결국 자기가 신고 있던 은구두(은본위제)야말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마법의 신발임을 깨닫는다.

캐나다 페미니스트 1세대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빨간머리 앤의 입을 통해 “레이철 아주머니는 여성들도 투표할 수 있게 된다면 곧 좋은 변화가 생길 거래요”라며 여성참정권을 옹호한다든지, 로빈슨 크루소를 자본주의 기율을 준수하고 투자에 능한 자수성가형으로 묘사한 작가 대니얼 디포가 악명 높은 투기광풍으로 기록된 ‘남해주식회사’에 투자했다가 돈을 몽땅 날린 일화들이 깨알재미를 선사한다.


목차

여는 말

제1장 세상은 더 가까워지고, 위기는 더 빨리 퍼진다

리폼 클럽에서의 2만 파운드 내기

공상과학소설의 선구자, 쥘 베른 

시계는 저녁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자존심 경쟁 

프리먼토리서밋에 박힌 순금 대못 

과잉 투자가 부른 최초의 글로벌 불황 

제2장 성냥을 팔던 고사리손, 성냥으로 떼돈 번 큰손

산업혁명기의 동화작가, 안데르센 

감자마름병, 유럽 중북부를 집어삼키다 

질병을 앓던 성냥공장 여공들 

‘성냥왕’ 크뤼게르 

‘천재’와 ‘사기꾼’의 묘한 조합 

‘소녀’의 유일한 무기 

제3장 넬로와 파트라슈가 걸었던 길, 돈과 욕망이 넘쳤던 길

넬로와 파트라슈, 그리고 플랜더스 농부들 

‘루벤스의 도시’ 안트베르펜 

14~16세기 유럽 대륙의 기간망 

크게 낮춘 넬로와 알루아즈의 나이 

제4장 파시즘은 피노키오를 어떻게 이용했는가?

독자들의 항의로 시작된 속편 연재 

자유분방함과 사회비판의 코드 

무솔리니 정권에서 출간된 4편의 아류작 

‘착한 노동자’ 담론 

중산층 신화로 확대 포장된 디즈니판 〈피노키오〉 

제5장 억눌린 자들의 연대가 만들어낸 유토피아

독일 문화의 원형을 탐구하다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과 독일농민전쟁 

‘목소리’, 브레멘 음악대의 상징적 열쇠 

패배의 상흔을 달래려는 진혼곡 

제6장 월스트리트를 놀라게 한 도로시의 은구두

브라이언의 ‘황금십자가 연설’ 

노란 벽돌길을 따라 에메랄드시티로 

“화폐 발행과 유통에 관한 우화” 

‘은화가 정답이다!’ 

도로시 일행과 닮은 ‘콕시의 군대’ 

〈오버 더 레인보우〉 

제7장 아기 노루 밤비는 정말 유대인이었을까?

생명에 대한 찬가, 폭력에 대한 고발 

『밤비』를 금서로 지정하고 불태운 나치 정권 

반유대인적?반자본주의적 화폐관 

밝고 평화로운 디즈니판 〈밤비〉 

제8장 삼만리 뱃길에 흐르는 이주노동자의 꿈과 눈물

닮은 듯 다른 얼굴,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이탈리아 디아스포라’ 

탱고, 이주민의 음악 

제9장 영국을 조롱한 아일랜드 소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16년 7개월에 걸친 항해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와 조롱 

출세 야심이 영국에 대한 적대감으로 

금융혁명과 ‘아일랜드 정체성’ 

제10장 나치의 전사로 다시 태어난 꿀벌 마야

마야, 꿀벌 왕국을 도망치다 

전쟁터의 베스트셀러 

꿀벌 왕국 vs. 독일 제국 

낭만주의와 전체주의의 잘못된 만남 

『꿀벌의 우화』가 그리는 사회 

제11장 앤 셜리가 두 바퀴로 굴러가는 세상을 만들기까지

에이번리 마을에 도착한 열한 살 소녀 

『빨간 머리 앤』의 고향, 프린스에드워드섬 

‘상상’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 

숨지기 전날 출판사에 보낸 최종 원고 

자전거가 페미니즘을 만났을 때 

제12장 달콤한 초콜릿에 숨은 불편한 진실

전투기 조종사에서 동화작가로 변신하다 

‘움파룸파’는 어떻게 탄생했나? 

퀘이커교 기업들이 주도한 영국 초콜릿산업 

캐드베리월드가 보여주지 않는 것 

제13장 왕자는 왜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했을까?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후기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끔찍한 현실 

나눔과 베풂의 고귀한 가치 설파? 

‘동화 속 동화’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색채 

평탄하지 않은 삶 

제14장 무인도에 열광한 사람들은 왜 증권거래소로 몰려갔을까?

노예무역을 위해 기니로 떠나다 

대니얼 디포와 로빈슨 크루소의 닮은 꼴 인생 

“내가 이 땅의 주인이자 왕이다” 

디포의 ‘주가 띄우기’ 프로젝트 

아이작 뉴턴을 울린 ‘남해버블’ 

제15장 자본주의는 자유와 낭만을 먹고 자란다 

“미국 현대문학은 이 소설에서 비롯했다” 

노예해방운동과 자유토지론 

흑인 노예, 북부 금융자본의 대출 담보물 

도금시대의 쓴맛 

참고문헌


인상깊은 구절

P.41~42 : 백린 성냥에는 단점이 있었다. 제조 과정에서 독가스를 내뿜는데다 피부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등 인체에 치명적 위험을 지닌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10대 여성이었던 성냥공장 노동자들이 건강을 해치는 산업재해가 비일비재했다. 1840~1850년대 영국 내 성냥공장의 안전 실태를 다룬 근로감독 보고서가 잇달아 나온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19세기 후반까지 백린 성냥이 유럽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 때문이리라.

P.81~82 : 층계 아래로 빛이 들어오는 작은 지하방, 낡은 의자 하나, 허름한 침대, 거의 부서진 탁자……. 작품의 들머리에서 제페토를 묘사하는 대목이다. 가진 것 없이 가난에 찌들었을 뿐더러 동네 아이들한테 놀림을 당하는 불쌍한 제페토의 존재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질서 앞에 무릎을 꿇은 수공업과 장인적 생산방식에 대한 조롱으로 읽힐 만하다.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의 작동원리가 강조된 건 물론이다. 막 뿌리내리기 시작한 산업사회의 노동규율은 자연(전통사회)의 생활리듬을 기계의 생활리듬에 맞추도록 강제했다. 『피노키오의 모험』의 주된 구성 요소인 ‘학교’와 ‘시간’은 그 핵심이다. 빈둥대는 어린이가 교육을 통해 소년이 되는 과정은 이리저리 떠도는 부랑아가 노동훈련소를 거쳐 노동자로 재탄생하는 전형적인 산업화시대의 비유로 읽히기도 했다.

P.113~114 : 미국 땅 한복판에 자리 잡은 캔자스주를 덮친 회오리바람은 경제위기로 커다란 혼란에 빠진 미국 사회를 연상시킨다. 온통 잿빛인 도로시네 마을 풍경은 불황에 허덕이는 미국 경제의 현주소다. 노란 벽돌길(금본위제)을 따라 동쪽 끝 에메랄드시티(금권정치에 놀아나는 워싱턴 D.C)를 찾아간 도로시 일행에게 가짜 마법사로 밝혀진 오즈(무능한 클리블랜드 대통령)는 먼저 서쪽의 못된 마녀를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은구두를 빼앗으려는 서쪽의 못된 마녀를 도로시가 무찌르는 장면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로시가 옆에 있던 물통을 들어 마녀에게 쏟아붓자 마녀는 점점 오그라들었다. 완전히 녹아서 형체가 사라지기 직전 마녀가 내뱉은 말. “내 몸에 물이 닿으면 끝장이란 걸 몰랐니?” 돈 가뭄을 해소하는 화폐공급의 지혜를 은유적으로 일깨우는 대목이다.

0-3세 아이들 그림

생후 7년까지 첫 주기의 발달 특성에 대해 이해한다면 학교에서 교사는 아이들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과 연결하여 수업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그림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가져온 그림들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 속에는 대부분 비슷한 모티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의 그림들을 보며 “와! 참 잘 그렸구나.” 하고 생각할 뿐, 더 이상 그 그림을 가지고 뭔가를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다면 금세 “아! 이 그림은 이런 의미였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그림의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을 만큼 자랐는가?’를 그림을 보면서 여러분과 엄격하게 짚어 보겠습니다.

아이들이 걷기 시작하는 때는 언제인가요? 빠른 아이인 경우 8-9개월에 걷기도 하고, 늦되는 아이는 1년이 한참 지나서야 걷기도 합니다. 그렇게 걷는 시기가 아이들마다 다른 것처럼 지금 보는 그림들은 꼭 특정한 나이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평균적인 시간 속에서 나타나는 그림들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 아이들이 발달해 나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따라가고자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 그림의 발달 순서가 바뀌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플 경우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가지고 아이들 그림들을 바라 봐야 합니다.

아이가 처음에 연필 같은 것을 쥐고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언젠가 누군가가 하는 행위를 봤기 때문입니다. 늘 모방을 하는 어린아이들은 행위와 움직임을 통해서 따라하고 배웁니다. 아이가 연필을 잡고 그리려고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하는 것을 봤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시장 가기 전에 뭘 살까 메모하는 것을 아이가 봤다면 아이는 엄마가 했던 행위를 따라하려고 합니다. 이때 아이가 따라하는 것은 '오이, 당근, …' 등의 글자를 따라 쓰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행위, 동작 같은 움직임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뭔가를 쥐고 그리려고 하는 행위를 본 적이 있나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이가 한 행위는 무엇입니까? 아이는 제일 처음 연필을 쥐고 (뭔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서 휘두르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처럼 종이에 흔적을 남깁니다. 물론 아이들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처음에 나타난 형태는 점 형태가 아니라 마치 점에 꼬리가 뻗은 것 같은 형태가 나타납니다. 아이는 허공에 모방적 행위를 하다가 우연히 종이와 만나는 것입니다.(그림1)

(그림1)

이 시기는 빠르면 8-9개월, 늦으면 1년이 지난 다음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시기가 지난 다음에는 의도적으로 뭔가를 표현합니다. 아이가 직접 종이에 그리려고 표현할 때 나타나는 것을 보면 두 가지 형태가 동시에 나옵니다. 이때 나타나는 것의 대부분은 왼쪽으로 그리는 형태로 나옵니다. (그림2)

(그림2)

다만 오늘날에 와서는 가끔 오른쪽으로 하는 아이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물질주의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기에는 아이들이 어떤 색깔을 가지고 그리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뾰족한 물건을 찾습니다. 그것으로 그려낸 그림을 보면, 같은 것을 반복하지만 똑같이 만나지도 않으며 힘이 균등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때는 진하게 또 연하게도 나타나는데, 바로 여기에서 아이들의 역동성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색깔 크레파스를 주면 대부분 밝은 색부터 먼저 집고 그립니다. 그리고 그림은 점점 더 안으로 밀집해 들어갑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검은색이 되어 갑니다. 원들이 점점 밀집되어 작아져 가다가 언젠가는 점으로 찍기 시작합니다. (그림3)

(그림3)

점을 찍으면서 어떤 아이들은 “이건 나야, 이건 나야” 하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나이가 3세 때쯤입니다. “이건 나야” 하고 말하는 것은 ‘자아의식’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바로 이때부터 기억하기 시작합니다. 점의 시기가 나오기 전까지에 대해 우리는 기억을 잘 못합니다. 점이 나타난다는 것은 '첫 번째 자아가 태어났다', '이제 나는 지상에 도착해서 두 발로 섰어'라는 의미입니다. 만일 이것을 거꾸로 본다면 점 이전의 그림들에서 하는 행위는 '출생 이전의 것'을 행위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일러두기 : 본래 강연에서는 0세에서 7세까지를 (1) 0-2⅓세, (2) 2⅓-4⅔세, (3) 4⅔-7세로 세 주기로 나누었지만, 여기에서는 (1) 0-3세, (2) 3-5세, (3) 5-7로 바꾸었습니다. 통상적으로 쓰이는 시기에 따랐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것은 엄마와 아빠가 만나서 엄마의 몸속에서 커 가는 것입니다. 그 전의 인간 존재는 아주 넓고 굉장히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커다란 작용에 의해 크게 원을 그리다가 이것이 점점 밀집해서 하나의 점으로 되는 것입니다. 저 먼 우주에서 이 지상으로, 인간이 육화되는 과정입니다. 우주적 존재였던 인간이 완전히 지상적 존재가 되는 것은 만 21세 정도가 되어서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주로부터 배꼽을 뗀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과정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우주의 법칙성에 의해서 지상으로 오다가, 이제 처음으로 ‘나는 지구에 도착했다’라는 의식과 함께 태어나는 그 순간, 바로 점의 순간입니다. 즉, 점으로 이루어지는 그림은 이런 면에서 '나는 우주적 존재였다가 이제는 지상적 존재가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밀집된 그림은 밀집과 동시에 퍼져나가는 요소도 보입니다. 퍼져나가는 형태는 여러 모양이지만 대부분 나선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리스 문화 유적 가운데에서 신전의 문양을 보면 나선형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풀어져 나가는 그림이 많습니다.

나선형이 안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되어 가는 인간, 즉 육화과정'을 의미하며, 풀어져 나가는 것은 '탈육화되어 가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이런 면에서 아이는 항상 되어 가는 육화의 형태, 다시 말해 안으로 들어가는 나선 형태를 그리지, 풀어져 나가는 형태는 절대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림4)

(그림4)

나선 형태로 계속 들어오다가 끝을 선 같은 것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나는 지상인 이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표현입니다. 아이들은 나선 형태를 계속 그리지는 않고 점차 원의 형태를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즉, 나선 형태로 가다가 끝 부분에서 나선 형태가 풀어지는데 그것이 점점 작아지다가 원 형태로 갑니다. (그림5)

(그림5)

어떤 그림에서는 원을 그리면서 원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한 것이 역력히 보입니다. 원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처음 시작한 데에서 만나려고 합니다. (그림6,7)

(그림6)

(그림7)

이렇게 원을 만드는 시기는 점을 찍는 시기와 똑같습니다. 원도 만나려 하고 동시에 점도 찍습니다. 점이라는 것은 '나'라는 의미이고, 원은 '내 주변, 집안에 내가 있다'라는 표현입니다. 색깔이 나오는 나선 형태를 그린 아이는 좀 더 자란 아이입니다. 그 전까지는 색깔의 차이를 모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어두움입니다.

저 밝은 빛이 있는 곳에서 이 어두운 지구에 왔다는 의미인데, 내가 지구에 도착함으로써 나와 내 주변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점 더 어두워졌다는 것은 내가 빛이 있는 곳에서 어두운 곳을 지나 지구에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밝은 색에서 시작해 점점 그림을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아이가 점을 찍을 수 있고 원을 잘 그릴 수 있습니다. 이때 배운 이것이 후에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점과 원을 잘 그릴 수가 있는 이유입니다.

색이 있는 나선 형태를 그린 그림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는데, 나선형을 파란색으로 색칠한 가운데에 ‘자기’를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림5 참조) 이때가 바로 머리 인간(머리만 있고 그것에서 손과 발이 나오는 그림)의 시기로, 나선 형태로 육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지상에 왔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색깔을 쓰는 아이는 동그라미와 점을 온전하게 그릴 수 있는 아이입니다. 아이가 원과 점을 그릴 수 있다면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것을 그려 나갑니다. 3.7세가 되면 원 안에 작은 원이나 점들을 그리기도 하고 좀 더 나이가 든 아이(만 4세)는 원에다가 점들을 찍어 그리기도 합니다. (그림8,9)

(그림8)

(그림9)

4세 아이의 그림은 ‘자아의식’에서 조금 벗어난 시기입니다. 출생부터 3-4세 시기까지 발달 과정의 특성을 그림에서 볼 수 있습니다. 3세 이하의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혼자 놀거나 개별적인 단어들을 열거하는 자기중심적인 때입니다. 그래서 0세에서 3세 사이를 ‘자기 발견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원 형태로 겹치는 그림뿐만 아니라 원이 아닌 다른 형태의 그림들도 나타납니다. (그림10)

(그림10)

이런  그림들 역시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해서 그림을 어둡게 만들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일정한 방향 없이 그리다가 점차 일정한 방향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방향을 만들다가 두 방향으로 교차되는, 마치 십자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그림11,12,13,14,15)

(그림11)

(그림12)

(그림13)

(그림14)

(그림15)

이렇게 그림이 겹쳐질 때는 ‘나’라는 초기적인 자아의식이 생길 때입니다. 이러한 그림들은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도록 완전히 자유롭게 놔 둘 때 나오지, 인위적인 조작으로 “이거 그려라, 저거 그려라” 하면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 아이는 그림을 ‘면’으로 그리지 않고 선으로만 그립니다. 아이가 십자가 모양을 그릴 때에는 ‘내가 저 높은 곳에서 와서 지상에 섰다’는 수직관계뿐만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는 궤도의 방향처럼 수평의 관계도 성립해서 ‘이제 나는 세상에 와서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림16)

(그림16)

수직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부분에서 이제 내가 생겨났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 모양의 몸짓은 ‘나는 이제 이 세상을 나의 삶으로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은 마구잡이로 그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가장 원형적인(원초적인) 상징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발견할 때 굉장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이들이 존경스럽고 경외스럽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이렇게 원형적인 것을 그리는 것은, 천상의(점과 원, 십자가 같이 지혜가 가득 담긴 상징들은 천상에 있는 것들입니다) 세계에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천상에 있는 것들을 아이들이 그림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원과 십자가들을 많이 그리고, 또 굉장히 연습을 많이 해서 언젠가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원 밑이나 원 안에 선들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또 원 안에 점들을 찍는 그림도 있고, 십자가에서 발전한 형태의 선으로 인간을 표현합니다. (그림17,18,19,20)

(그림17)

(그림18)

(그림19)

(그림20)

그러한 그림들은 아이들이 의도적으로 보고 그린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자기가 그린 것을 보고 “아! 이건 마리고, 저건 페터야”라고 말하며 그 그림에 대해 말합니다. 또 이 시기에 머리 인간의 형태를 한 그림이 나타납니다. 인간을 직선과 곡선을 가지고 그립니다. (그림21)

(그림21)

그러면 이것 말고 더 나올 것이 없을까요? 점, 선, 곡선, 이것들을 가지고 아이들은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무엇인가를 굉장히 빨리 그려 놓고 보니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는 “아! 이건 자전거잖아” 하고 말합니다. (그림22)

(그림22)

아이들은 어른들이 그리는 자전거처럼 그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움직임으로 그립니다. 아이가 자전거라고 인식했을 때에는 이미 전에 자전거를 봤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전거라고 인식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아이가 그린 그림에서 아이는 “이건 오토바이야” 하고 말합니다. 그림에 “부릉, 부릉” 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다 들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아이는 오토바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림23)

(그림23)

이러한 주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흥미롭고 또 잘 알아야 될 부분인지를 감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될 때, 이러한 그림의 과정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판단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3-5세 아이들 그림

어제는 9개월에서 3세 사이의 아이들 그림을 보았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원, 점, 십자를 그리는 시기로 초기적인 자아가 생길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출생 전에 경험했던 것들이 그림으로 나타나고, 우주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지상세계에 도착해서 ‘이제 내가 이 지상에 서 있다’는 것을 최초로 인식하는 과정임을 여러분께 보여 드렸습니다. 아이들은 뾰족한 크레파스 같은 것을 잡고 선을 그리는데, 이때는 색깔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종이에다 밝은 색에서 점점 어두운 색으로 밀집을 하며 그려 나갑니다.

초기에 아이들은 엄마가 사용했던 것들을 따라서 잡고, 그 후에 여러 가지 도구들을 잡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학교에 갈 때까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타나는 그림들이 원을 그림과 동시에 방향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 십자 형태가 나타날 때까지 아이들은 반복해서 연습을 합니다. 지혜로운 것은 아이들이 그림을 원형(原形)적인 선(원), 점, 십자 같은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것으로 출생 전에 경험했던 것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원, 점, 십자를 그리면 첫 7년 주기의 첫 번째 시기(0-3세) 끝에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인간은 첫 번째 시기 이전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고 그 이후부터 기억합니다. 3세 즈음에 자아의식이 처음으로 생기면서 비로소 사고하기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이들은 자기를 가리켜 “나”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원, 점, 십자 형태를 반복해서 연습합니다. 이 세 가지를 이용하여 그리는 것을 습득하고 나면 평생 동안 이 기술을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림을 보면 점, 선, 원은 기본적인 요소들입니다. 그 후 머리 인간이 나올 때까지 기본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려 나갑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아! 이건 엄마, 아빠야” 하며 알게 됩니다. 3.5세 정도 된 아이들 그림을 보면 머리 인간에서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몸통 같은 것을 그립니다. (그림24)

(그림24)

3세 이후 아이는 다음 발달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 시기에 아이는 자기 혼자 놀며 양극성 있는 놀이를 합니다. 문을 닫았다 열었다, 앉았다 일어섰다, 앞으로 섰다 뒤로 섰다 등 자기 중심적인 놀이를 합니다. 그 이후 아이는 다른 아이와 놀고 싶어 하는 발달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때부터는 언어에서도 사회성이 나타나 다른 사람과 대화적인 언어를 합니다. 이제 아이는 감각기관을 펼쳐 들리는 곳으로, 소리 나는 곳으로, 보이는 곳으로 모든 방향으로 의식을 집중해 알고 싶어 합니다.

이 시기의 그림을 보게 되면 대개 사람들은 ‘해님을 그렸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발달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림25)

(그림25)

아이가 머리 인간을 그려 놓고 또 옆에는 해 같은 것을 그려 놓은 그림을 보면, 이제는 바깥세상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아이의 상태가 표현된 것입니다.(그림26)

(그림26)

아래의 그림을 그린 아이는 사방에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며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림27)

(그림27)

아이들 그림 중에 배경 같은 것을 그린 경우가 있는데, 주의할 점은 아이들은 스스로 배경 같은 것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부모나 교사가 그려 주었거나 그리라고 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부모나 교사는 절대로 말을 시키거나 지시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림28)

(그림28)

기본적인 그림들은 이 시기에도 나타나지만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이들마다 다 다릅니다. 밖에서 가져오고 싶은 행위는 비슷하지만 이러한 잠재적 경향은 아이마다 다릅니다. 이 시기에 발달이 빠른 아이들 가운데에는 색깔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림29, 30, 31, 32, 33, 34)

(그림29)

(그림30)

(그림31)

(그림32)

(그림33)

(그림34)

이 시기의 모티브는 바깥 세계와 나의 만남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가령, 아이들 그림 중에는 나선형에서 시작해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그림 35)

(그림35)

색이 있으면서 원으로 이루어진 그림에서도 바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림36)

(그림36)

또 점으로 시작해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림37)

(그림37)

아이들은 다양한 개인성이 있기 때문에 같은 모티브에서 출발하더라도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이가 조금 든 아이들은 그림에 몸통이 생기고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 십자 형태도 그리며, 손이 움직이는 모습도 표현하고자 합니다. (그림38,39,40)

(그림38)

(그림39)

(그림40)

이 시기의 아이들은 처음에는 머리를 중요시 여기며 바깥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마치 머리에서 안테나와 같이 뻗쳐 나가는 그림들이 나타납니다. (그림41)

(그림41)

저는 이런 그림들을 볼 때 아이들이 아직도 하늘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이 시기에 더 나이든 아이들 그림을 보면 머리 위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두드러지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림42)

(그림42)

또 어떤 아이의 그림을 보면 귀에서 뭔가 나가는 그림도 있습니다. 그 아이는 이 그림을 그리고 난 후 이틀 후에 귀에 염증이 났습니다. 이미 아이가 그 전에 느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림43)

(그림43)

3-5세 사이의 그림들을 보면 아주 특별한 태아기에 대한 그림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프랑스 한 의사 부부는 아이들의 그림을 수집하여 태아기의 기억(회상)에 대한 그림들을 설명하여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잘 알려고 하지도 않고, 또 이러한 특별한 그림들은 아이들한테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나선 형태를 안쪽으로 그릴 때 그것은 육화하는 것의 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그림 중에 나선형을 그리고 난 다음 그 가운데에 또 하나의 원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마치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안에 있는 부분인 것처럼 작은 원을 표현했고 그 위에 사람 얼굴 같은, 즉 엄마와 같은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엄마의 몸 전체와 엄마의 내부까지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림44)

(그림44)

어떤 아이는 나선형이 안쪽으로 들어오고 별들이 함께 나선형 안으로 들어오는 그림도 그립니다. 육화하는 과정을 엄마의 몸에 표현한 것인데, 더 흥미로운 일은 밖에 있는 별들이 엄마를 쳐다본다는 것입니다. (그림45)

(그림45)

또 다른 아이들 그림을 봐도 정말 흥미롭습니다. (그림46,47)

(그림46)

(그림47)

이것은 러시아 인형처럼 생겼는데, 이젠 아이가 바깥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 그림입니다. (그림 48)

(그림48)

다음 그림을 보면 점점 '내(자아)가 천상에서부터 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표현했습니다. 성인의 경우는 밑에서부터 그려 올라가겠지만, 아이들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림을 그립니다. 이는 저 세상인 천상에서부터 이 세상으로 왔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림 49)

(그림49)

또 다른 아이의 그림을 보면 ‘내가 온다. 아, 내가 와야만 하지!’라며 위에서 아래로 표현하고, 지상에 와서는 척추 같은 형태의 그림들을 통해 강하게 표현을 합니다. (그림 50)

(그림50)

두 그림의 경우(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그림) 다른 조건들이 있는데 한 그림은 오고 싶어서 좋아하는 그림이고, 또 한 그림은 오고 싶지 않은 듯한 조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3세 아이가 그렸는데, 태아기에서 세쌍둥이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2.9세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쌍둥이처럼 그렸는데 그린 아이는 정말 쌍둥이입니다. 이는 자기가 기억하고 있던 것을 바깥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림51)

(그림51)

아이가 중심으로부터 12개의 선이 바깥으로 뻗어 나와 12개 선마다 원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12개의 선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마치 황도 십이궁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양탄자 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위에 아이가 뉘어져 있고 식구들이 아기를 받는 듯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그림52)

(그림52)

아이들 그림을 많이 연구한 덴마크 의학자가 저에게 “당신은 당신의 일생을 선 하나로 끊이지 않고 그릴 수 있느냐?”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아이가 그린 어떤 그림을 보여 주면서 아이가 자기 일생을 선 하나로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그림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머리가 밑을 향하고 있는 태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선은 다시 태아 같은 것을 돌아 나와서 세상을 계속 살다가 다시 왔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듯한 그림을 선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림53)

(그림53)

어느 시기에 다다른 아이의 그림을 보면, 엄마의 머리와 몸을 그리고 엄마 몸에 있는 아기 머리가 밑으로 내려가서 태어나려고 하는 그림도 있습니다. (그림 54)

(그림54)

이제까지 아이는 이러한 것들을 연습하고 표현한 다음 더 발전하여 마치 계단이나 사다리처럼 선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지학에 따른 인간의 발달론에 대해 소개한 다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인지학에서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7년 동안 형성력(에테르체)이 작용해 신체를 형성한다고 봅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시기인 0-3세 시기에는 숫구멍이 닫힐 때까지 형성하는 힘이 머리 부분에서 제일 많이 작용합니다. 3세 즈음의 그림들을 보면 원을 완전하게 그리는데, 머리 부분이 동그랗게 될 때까지 계속 힘을 쏟고 숫구멍이 닫힐 때까지 그 힘이 계속 작용합니다. 0-3세 시기에는 두뇌가 거의 70-80% 정도 형성되며, 두 번째 시기(3-5세)에는 몸통 속에 있는 기본적인 장기들이 대부분 형성됩니다. 또 이때에 신경계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인간을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다음에 있는 인간학적인 그림들을 보겠습니다. 3-5세부터는 지금까지 나온 그림들을 조합하여 그리는 형태가 나옵니다. 이 시기에는 항상 공간을 만들어 놓고 채워 놓는 듯한 사다리 그림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림55)

(그림55)

이제 선이 왼쪽 오른쪽으로, 가슴-몸통에서 하는 일들인 규칙적이고 리듬적인 그림들이 나타납니다. (그림56)

(그림56)

이젠 머리가 작아지고 중간 부분인 몸통을 두드러지게 그립니다. 즉, 사다리에 머리가 있는 형태의 그림입니다. 머리가 작아지고 몸통이 크게 그려지며 몸통에 사다리처럼 내부를 표현합니다. (그림57)

(그림57)

어떤 아이는 이 부분을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가 새로 나올 시기가 되면 아이 스스로 그러한 그림들을 그리고, 입을 사다리 모양 안에 많은 선을 그려 표현합니다. (그림58)

(그림58)

이 시기의 아이는 눈도 사각형으로 그리곤 합니다. (그림59)

(그림59)

성인의 신경계를 보면 가슴 부분에 사다리 형태가 나타납니다. 아이들은 이 시기에 신경계가 완성되는데, 이때 아이들 그림에서도 사다리 모양의 그림이 나옵니다. (그림60, 61)

(그림60)

(그림61)

아이들은 자기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을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그전 발달 단계에서 십자를 그린 형태에서 발전하여 사각형으로 만들어 냅니다. 이 시기에는 그전 발달단계에서 보인 점, 선, 원이 빠지는데, 이 부분을 관찰해 보겠습니다.

선이 발달하여 막힌 사각형으로 발전했고, 원이나 곡선은 사람의 장기 형태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이 완전하게 그림에서 이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건 흥미로운 부분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일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 중에서 장기 부분은 어디에 나타났는지 한 번 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


5-7세 아이들 그림

어제는 태아기 때를 그린 그림을 살펴보았습니다. 태아기 때의 그림 중에 사다리꼴 모양에서 막힌 사각형이 나오는 그림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후 형성하는 힘에 의해 몸통 부분이 생겨 나는 것을 그림에 보았습니다. 사다리꼴 모양이 수평적인 선과 수직선인 십자 모양에서 발전된 것도 보았습니다. 사다리꼴 모양의 형태는 일반 인간학의 관점에서 보면 신경계 형태의 그림인데, 그러한 모티브들이 우리 몸에 들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점, 선은 나왔는데 원에 대한 것은 어떻게 발전했을까요? 아마도 원에 나타난 형태는 몸속에서 장기 형태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한 장기 형태는 아이들 그림 속에서 둥그런 원형들이 장기 형태로 보이는데 아직 그림에서는 확연히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

잉에 브로흐만(『아이들 그림의 비밀』의 저자)은 저와 함께 연구를 했던 분으로 아이들 그림을 통해 발달과정을 연구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아이의 두 번째 발달 단계에서 원형은 장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언급은 되어 있지만 자세히 나와 있지 않고 내용에도 약간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제 과제로 내준 ‘장기 같은 형태’가 그림의 어느 부분에 나타나는지 혹시 발견 사람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형태로 변형이 되어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힌트를 드린다면, 그것이 몸통에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곳은 나중에 우리의 감정(느낌)이 사는 곳입니다. 아이들 그림 중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나타납니다. (그림62, 63, 63-1)

(그림62)

(그림63)

(그림63-1)

색깔은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많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7-14세 시기에 발달합니다. 손을 다쳐 울고 있는 아기에게 왜 우느냐고 물으면 “책상이 나한테 그랬어”하고 말합니다. 감정이 내부에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기가 아프거나 울 때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보면 아기는 스스로 어디가 아픈지 찾아내지 못합니다.

초기적인 감정에 대한 인식은 우리 신체 안에 3-5세 사이에 생겨납니다. 나중에 감정이 발달하기 위한 기초적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이때에 처음으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주기(0-3세)에서 나온 그림 중에 색깔들이 나온 그림들이 있는데 그것은 색깔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둡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까지는 색깔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다리꼴에 대한 모티브가 나타난 그림들에서도 색깔이 들어 있는데, 그 색깔은 마치 강조가 된 듯했습니다. 아이가 한 색깔을 그리면서 ‘아! 이것이 빨강이구나’ 하고 된 것처럼 말입니다. 사다리에 대한 모티브를 그리면서 색깔을 연습해 가는 과정들이 이 시기에 확연히 나타납니다.

바로 두 번째 단계(3-5세)에 아이들은 색깔도 인식하는 단계에 접어듭니다. 하지만 색을 한꺼번에 다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천천히 발견해 냅니다. 아이 스스로가 내면에서 색깔을 발견해 나갈 때 누군가가 ‘이건 빨간색이야’ 하고 미리 색을 말해 준다면 색을 발견해 나가는 성취감을 잃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5-7세)가 되면 색깔을 발견하는 정점에 이르는 시기입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시기의 초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때에는 아이들이 색깔들을 굉장히 많이 발견해 내고, 아직도 사다리 모티브 형태 안에서 색깔들을 더 많이 칠함과 동시에 덧칠하며 색을 정복해 나갑니다. 이러한 모습은 모든 아이들이 이 나이 때에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터득한 사각형 모양을 만들어 내고, 그 속에 색깔을 채워 나가면서 색에 대해 알아갑니다. (그림64)

(그림64)

이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종이 네 귀퉁이에서 시작해 색을 채워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림65)

(그림65)

이렇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5세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색을 칠해 나가다가 사각형이 나옵니다. 이제까지의 사다리에서 나오는 사각형과는 다른, 뾰족한 부분이 서 있는 마치 마름모와 같은 그림들이 나옵니다. (그림66)

(그림66)

사실 잘 보면 마름모를 그린 것 같지만 본래는 삼각형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학교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행위를 하기 위한 신체에 기본적인 것’이 생깁니다. 이때는 손재주가 굉장히 늘어나고 발도 빨라집니다. 이것은 사지를 가지고하는 것으로, 사지에서 발견한 삼각형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그림66)과 같은 그림들(양탄자 모양)을 몇 주 동안 계속 그리게 되는데, 그것을 그리는 사이에 삼각형을 그리는 것입니다.

점, 선, 원, 사각형, 삼각형 이러한 것들은 기하학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아이들은 색깔을 가지고 연습하기도 하지만 ‘대칭연습’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대칭연습을 한 후 이제는 어떤 것을 봤을 때 표상하는 힘이 생겨서, 자기가 본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힘을 얻게 됩니다. 완전히 똑같은 대칭은 아니지만 약간 다를 경우 ‘살아 있는 대칭’의 그림들이 나옵니다. (그림67)

(그림67)

그리고 나서 아직도 모서리 부분을 그리고, 그러다가 하늘을 발견하여 대칭축 부근에 해를 그립니다. (그림68)

(그림68)

살아 있는 대칭은 항상 똑바른 대칭이 아닙니다. 이런 대칭에 대한 그림은 학교에 갈 때까지 확연하게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그림이 있는데 대칭이 나타나고 양쪽에 삼각형이 나오고 별 모양, 반달모양, 또 별 두 개가 양쪽으로 똑같이 대칭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69)

(그림69)

이렇게 아이들이 색깔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자기가 봤던 것을 표상하여(Vorstellung, 아이가 유치원에 오면서 봤던 나무를 그리려고 할 때, 표상은 자기가 본 것을 자기 앞으로 가져온다는 뜻) 그리는 힘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그림을 보면 꽃이 대칭의 중심선에 있고 위에는 하늘, 아래에는 땅의 대칭이 있습니다. 양쪽에 나무가 있는데 한 나무는 연두색, 다른 나무는 초록색의 살아 있는 대칭을 보여줍니다. (그림70)

(그림70)

또 아이가 습득해낸 것들(점, 선, 십자, 원, 삼각형, 사각형, 색깔들)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아이는 땅에 대해 완전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것을 집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집은 우리 영혼이 사는 몸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림71)

(그림71)

위의 모든 과정을 거쳐야 아이들에게서 살아 있는 그림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집을 그리라고 어른들이 지시했을 때는 살아 있는 그림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5.3세에서 5.5세 사이의 아이들 그림을 보면 중심축이 있고, 양쪽, 위, 아래에 삼각형이 나옵니다. (그림72)

(그림72)

삼각형은 아이들이 학교에 갈 준비가 되어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학교에 가기 전 시기에는 아직 동물 그림이 잘 나오지 않는데, 간혹 집에 동물을 길렀을 때 나오기도 합니다.

6.9세에는 대칭의 중심에 집이 서 있고, 꽃, 나무, 태양 등이 대칭으로 그림에 나타납니다. 이때가 되면 표상(Vorstellung)이 어느 정도 되는데 아이들은 ‘저 위에 있는 저것만이 하늘이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림에서처럼 하늘과 땅을 잡아 당겨 표현합니다. (그림73, 74)

(그림73)

(그림74)

아이들은 바깥에서 인식했던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시도합니다. 부모가 음악가인, 그림을 잘 그리는 6.6세 된 아이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75)

(그림75)

이 그림에서는 대칭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섬세하거나 자세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 아이의 그림이 나중에 어떻게 나오는지 뒤에 말하겠습니다. 한국의 아이들 그림에도 위와 같은 대칭적인 그림들이 나올 것입니다. 이러한 그림들은 세계 어느 나라 아이든지 일반적인 발달과정을 겪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상에서 대칭으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한테는 아직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것을 완벽하게 갖추지는 않았지만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려고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때에 아이들은 특히 집과 나무를 많이 그립니다. 전세계에서 수집한 집과 나무들 그림을 보면 자기들이 습득한 색깔과 선들을 가지고 연습해서 그린 것들이 나타납니다.

저는 이집트에 가서 이집트 최초의 발도르프 유치원을 설립했습니다, 그때 있던 아이들도 바로 위와 같은 발달단계를 거쳤습니다. 흥미로운 일은 이집트에 가면 삼각형 모양의 집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때 그곳 유치원에 다닌 아이들의 초기 그림에도 삼각형이 달린 집들을 그렸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집은 인간의 몸과 관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각형 형태의 집에는 머리, 눈, 코, 입의 형태가 나오는데 이런 의미에서 집은 몸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칭 연습을 많이 하다가 표상을 통해서 몸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작은 창문을 통해 큰 나무가 다 보이고, 열쇠 구멍을 통해 큰 산이 다 보이는 것에 대해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아이는 교사에게 “선생님, 어떻게 저 큰 탑이 눈에 다 들어오나요?”라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통해 아이들은 원근에 대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을 가지고 연습하고 실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이 있으면 산 뒤에 있는 꽃을 그림에 그립니다. (그림76, 77)

(그림76)

(그림77)

그 사이에 흥미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새 머리를 파란색으로, 주둥이를 주황색으로, 몸통은 노란색, 한쪽 날개를 빨간색, 다른 날개를 노란색, 꽁지를 노란색으로 표현한 그림이 있는데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그림을 그릴 때 정말 멋있는 새를 그립니다. (그림78)

(그림78)

그런데 아래의 그림은 인위적으로 조작된 새들의 형태입니다. 그러한 그림을 그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림79)

(그림79)

다음 그림을 보면 원근감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농부를 크게 그리고 그 뒤에 왕관을 쓴 왕과 나무들은 점점 작게 표현했습니다. (그림80)

(그림80)

또 도끼를 크게 그리고 집이나 길 들을 작게 표현하기도 하고, 앞에 있는 사람을 크게, 먼 쪽에 있는 집들은 작게 표현합니다. 이렇게 원근감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학교에 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학교에 들어갈 만큼 성숙되었다고 보이는 그림에는 삼각형이 나오거나, 머리에 항상 무엇인가 얹혀 있는 것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지상의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신발이 나오는 것도 하나의 표식입니다. 그리고 모자를 쓰거나 머리 부분을 매우 강조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림81)

(그림81)

아이들이 그린 것을 보고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게 “너 무엇을 그렸니?”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를 그리기도 합니다. 가령 나무를 들고 간다거나 망치로 못을 때리는 등의 행위를 하는 그림들을 그립니다. (그림82)

(그림82)

이 시기 아이들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사람의 옆모습을 그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왕이 왕비에게 등잔불을 주는 내용의 그림을 보면 그 전까지는 사람의 앞모습을 그렸는데 이제는 왕의 옆얼굴을 그리는데, 아직 그것이 너무 힘들어서 눈 색깔을 다르게 표현합니다. 눈의 모습을 보면 이상한 형태로 보입니다. (그림83)

(그림83)

또 이 시기에는 자세하게, 예를 들어 당근의 잎까지 표현하려고 하는 것도 나타납니다. 이 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또 하나는 줄거리, 이야기가 있는 그림들을 그린다는 것입니다. 가령 다리 밑으로 배가 지나가는데 비가 오다가 다시 비가 그치고 해가 나와서 무지개가 뜹니다. 이때에 아이들은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림84)

(그림84)

아이가 누구의 도움 없이, 외부의 조작 없이 지금까지 계속 그림을 그려 왔다면 놀라운 일이 나옵니다. 0-7세 동안 아이들이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학교 담임교사의 과제는 이것을 앞으로 어떻게 바꿔야 할지입니다. 이에 대한 것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아까 말했던 음악가 부모님의 아이, 그림을 잘 그렸던 그 아이가(그림75) 6.6세에서 6.9세가 되어서 그린 그림을 보고 부모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엄마는 저에게 “아니 선생님,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렸던 아이가 지금 이 그림이 뭡니까?” 하며 놀라서 왔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옆에 있다가 저에게 와서 “선생님, 제가 그림을 이야기해 줄게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식사를 위한 시’를 표현한 것입니다.


빛은 하느님의 얼굴로부터 나옵니다.

빛은 곡식이 되고, 곡식은 양식이 됩니다.

땅의 열매도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빛은 내 가슴속에도 들어옵니다. (그림85)

(그림85)

이것을 보게 되면 고대 이집트의 그림 문자와 비슷합니다. 이 아이는 바로 알고 있는 내용을 글로 쓰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그린 그림들 중에는 교사가 보여준 손유희에 있는 내용을 표현한 그림도 있습니다. 손유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콩콩이라는 친구가 산보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어깨 위를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떨어져 시궁창에 빠졌네’라는 내용입니다. 유치원에서 행하는 손유희의 줄거리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글씨를 쓰고 싶은데 글씨를 몰라서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손을 잡고 둥지에 앉았습니다. 한 참새가 깨어나서 밖에 나갔다가 다시 둥지로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참새가 깨어나서 밖에 나갔다가 다시 둥지로 돌아옵니다. 그러다가 둘 다 함께 날아다닙니다. 그리고 함께 다시 둥지로 날아옵니다.’

어느 유치원 선생님이 이 내용을 가지고 아이에게 손유희를 하면서 들려주었습니다. 그 내용을 그린 그림을 가지고 저에게 왔습니다. 그 그림은 ‘두 새가 한 둥지에 있고 한 새가 둥지에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또 다른 새가 다시 날아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 두 새는 함께 날아가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림86, 87)

(그림86)

(그림87)

이런 것을 보게 되면 알 수 있는 것이, 아이가 이제까지 알았던 것을 가지고 정말로 학교에 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교사는 이러한 것을 받아서 이제까지 알았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변환시켜, 어떻게 아이들에게 셈하고 쓰기를 가르칠지를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아름답게 배워 왔습니다.

아이들이 동물을 그리는 것은 학교 가기 직전쯤에 나타납니다. 또 이 시기에는 남자아이들은 배를 많이 그리고, 대부분 여자아이들은 집을 많이 그립니다. 아마도 집이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고, 배도 집은 집인데 물 위에 떠서 움직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관계가 있는지는 제가 아직 파악하지 못했는데, 확실한 것은 남자아이는 배를, 여자아이는 집을 그린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생긴 크레파스를 주는가 하는 질문에 본인은 넓적하게 생긴 크레파스를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뾰족한 것을 골라 그리기 때문입니다. 또 유치원에서 수채화를 해야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건 학교에 들어가서 해야 될 문제이지 유치원에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움직임,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아래 그림은 터키 아이가 그렸습니다. 이 아이 그림 속에는 나무, 집, 이빨, 뿌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사람의 눈, 입도 들어 있습니다. (그림88)

(그림88)

* 이 글은 2002년 Margret Costantini 여사의 사)한국발도르프교육협회(www.waldorf.or.kr) 교사교육 저녁특강을 재수정하여 올리는 것입니다. 여사님의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www.margretcostantini.de

출처: 슈타이너사상 연구소

깨어있는 인간이 되도록 습관 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몇 가지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곧바로 한 가지만 유의해 봅시다. ·········· 근본적으로 보아 단 하루도 우리 삶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채 지나가는 적이 없다는 점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문장을 뒤집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느 날 기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저녁에 여러분의 하루를 되돌아 보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돌아 보면 여러분 스스로 크고 작은 사건들, 보통 정도의 사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내 삶에 정말로 기이한 것이 등장했다. 정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여러분이 그저 충분히 포괄적으로만 생각하신다면, ·········· 삶의 연관성을 충분히 포괄적으로 고찰하신다면 그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의 삶에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무엇이 어떤 계기로 인해 저지되었는가?”라고는 물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지된 일이, 발생했더라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보통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에서 제거되는 것들의 배면에 우리를 깨어있는 인간으로 교육하는 요소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내게 과연 무슨 일들이 모두 일어날 수도 있었을까? 매일 저녁 이렇게 질문하면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일어나게 할 수도 있었을 개별적 사건들을 고찰해보면, 자기 수련에 주의력을 더해주는 생활 고찰이 그 질문에 연결됩니다. 이런 연습은 시작에 해당될 수 있는 어떤 것입니다. 

그런데 저절로 점점 더 멀리 이끌어가서 마침내 우리 삶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탐색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오전 열한 시 반에 외출을 하려고 하는데 마침 그 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외출을 할 수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생각했던 대로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어서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내가 생각했던 그 시간에 외출을 했더라면, 집을 나섰더라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은 보통 하지 않습니다. 그랬더라면 과연 내 삶에서 무엇이 변했을런지는 물어보지 않습니다.

··········

언젠가 이 자리에서 그런 것들에 관해 제가 상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부정적인 것, 발생하지 않은 것, 하지만 우리 삶의 지혜에 찬 지도에 대한 증거를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관찰하기, ·········· 그 양자 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길, 직통으로 연결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우리가 선택해서 갈 수 있는 확실한 길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드레 후에 지부의 두 번째 강연에서 제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


·········· 바로 그것이 의식 영혼 시대의 커다란 위험입니다. 사람들이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으려고 하면 세 번째 천 년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입니다. 그 세 번째 천 년대의 시작은 우리의 현시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 번째 천 년대는 서기 2000년부터 시작됩니다. ·········· 인간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그 일에 동참한다면, 일이 그런 식으로는 되지 않도록 할 터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인간이 동참하지 않아서 ·········· 그 일을 처리해야만 하는 경우에 과연 무엇이 등장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삼중적인 상황이 인류 발달에 들어섭니다. 그 첫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간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앞에 주어진 것으로서 항상 어떤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자유-의식이 아니라 본능이 됩니다. 바로 그래서 위험합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본성으로 들어서야 할 특정하게 본능적인 인식이, 수태와 임신, 출생의 신비, 전반적인 성생활과 관계하는 특정하게 본능적인 인식이 파괴적으로 될 위험이 있습니다. ·········· 그런데 다음과 같은 사실은 밝혀도 됩니다. “인류 발달 내에서 일어나는 것이 맑게 깨어있는 의식 내에서 유용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성생활과 성 문제에서 나오는 특정 본능들이 해롭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 본능이 단순한 미혹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사회 생활로까지 전이되어서 형상화 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성생활의 결과로서 인간의 혈액 내로 들어오는 것,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지구 상에서 어떻든 간에 아무 형제애도 발달시키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형제애를 점점 더 거역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성향이 본능이 될 것이다.”


··········


이제 특정한 의미에서 결정적인 지점에 이릅니다. 오른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깨어나야만 합니다. 아니면 왼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본능이 등장합니다.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본능이, 그런 본능이 등장하면, 그러면 자연 과학자들은 과연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자연적 불가피성이다. 그런 것이 인간 발달에 속하기 때문에 생겨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자연 과학을 통해서는 그런 문제를 주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천사가 된다면 그 역시 자연 과학을 통해 해명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마귀가 된다 하더라도 역시 해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양자 모두에 대해 자연 과학은 똑같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것에서 나온 결과다.” 인과적 자연 해명이라는 위대한 지혜! 자연 과학은,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린 사건을 눈꼽만큼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본능으로 인해 거의 성적인 악귀가 된다 하더라도 자연 과학은 그런 것을 당연히 자연적인 불가피성으로 여길 터라서 입니다. 사정이 어떻게 되든 자연 과학적으로는 문제를 전혀 해명할 수 없습니다.


·········· 이제 두 번째가 있습니다. ·········· 그것은 바로 특정 의약품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입니다. 그런데 파괴적으로 유해한 인식입니다. 의학과 연결된 모든 것이 엄청난, 물질주의적인 의미에서 엄청난 장려를 받게 됩니다. 특정 질료의 치료 효과와 특정한 처리 과정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이 생겨나서 엄청난 손상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손상을 유용하다고 여깁니다. 병을 건강이라 부를 것입니다. 특정한 처리 과정에 이를 것이고, 또한 그것을 마음에 들어합니다. 특정 경향에 따라 인간을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이끌어가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게 됩니다. 특정한 처리 과정의 치료 효과에 대한 인식, 바로 그 인식이 고도의 수준에 이릅니다. 그런데 아주 위험한 항로로 들어섭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특정 질료와 특정 처리 과정이 질병을 위해 야기하는 것을 특정한 본능을 통해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질병을 유발시킬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완전히 이기주의적인 의도에 따라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


세 번째 결과가 있습니다. ·········· 아주 특정한 힘들을 알게 되어서 그 힘을 통해, 저는 아주 작은 촉발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특정 진동들을 조화시킴으로써 세상에 엄청난 기계력을 방출시킬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런 방식을 통해 기계적 · 역학적 존재의 특정한 정신적 조종을 본능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전반적인 그런 기술이 황폐하기 짝이 없는 항로로 들어설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황폐한 항로가 인간의 마음에 들고, 인간의 이기주의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이용될 것입니다.


··········


이것은 현존의 발달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한 부분입니다. ·········· 그 비정신적인 인생관은 그런 것을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인류를 손상시키는 의학, 성적 본능으로 인한 끔찍한 미혹, 정신력을 통한 자연력의 이용에 있어서 순수한 세계 기계주의 내에서의 소름끼치는 장치, 그 모든 것들이 일단 도래한다 해도 비정신적인 인생관은 전혀 투시하지 못합니다. ·········· 어떤 사람이 잠든 동안 도둑이 들어와서 도둑질을 합니다. 그런데 잠을 자기 때문에 도둑이 옆에서 도둑질을 해도 모릅니다. 비정신적 세계관 역시 그와 꼭 마찬가지로 어떻게 진실한 길을 벗어나는지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나중에 깨어난 후에야 잠든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깨어난다는 것은 인간에게 상당히 괴로운 일입니다. 특정 과정과 질료의 치료력에 대한 지식을 본능적으로 확장시키면서 기뻐 날 뛸 것입니다. 성적 본능에 있어서의 특정한 미혹 속에서 더할나위 없는 쾌감을 맛볼 것입니다. 모든 인간을 초월한, 편견없이 공평한 태도를 특별히 고도로 형태화하는 것이라고 그 성적인 미혹을 미화하고 칭송할 것입니다. 특정 관계에서 보아 추함이 아름다움이 되고 아름다움이 추함이 됩니다. 그 모든 것을 자연적인 불가피성이라 간주하기 때문에 미와 추의 전도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류 자체 내에서 인간의 고유 본성을 위해 규정된 길을 벗어난 미혹일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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