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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리아 공습]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군은 4월초 시리아 내 반군 장악 지역에서 발생한 화학무기 의심공격의 배후로 시리아 정부를 지목한 가운데 4/13일 밤 시리아에 대한 군사공격을 단행


 미국 등 서방, 시리아 군사공격 : 미국 등 서방 동맹군은 4/13일 밤 시리아 3개 지역(다마스커스 인근 및 Homs 서부지역 2개)에 대한 군사공격을 단행. 공격 직후 미국은 시리아 공습이 종료되었으며 현재로서는 추가공격 계획이 없다고 발표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조금 전 미군에 시리아 독재자 아사드의 화학무기 시설과 관련된 타겟에 정밀타격을 시작하라고 명령했다”고 발표. 또한 러시아를 겨냥해 시리아를 지지할지, 서방과 함께할지 결정을 촉구

– 매티스 국방장관, “미국과 동맹국은 작년보다 고강도의 공격을 단행했으며, 이번 공격은 일회성 공격(one-time shot)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주었을 것으로 생각”


 프랑스와 영국, 공습 합류 : 프랑스는 수 대의 라파엘 전투기, 영국은 토네이도 전투기 4대가 미국이 주도하는 시리아 공습에 참여

–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은 프랑스가 작년 5월 설정한 한계선을 넘어서 프랑스군에 미국·영국이 함께하는 군사개입을 명령했다”고 발표

– 메이 영국 총리는 “시리아 화학무기 보유 능력을 낮추기 위한 공격을 수행하도록 군사개입을 승인했으며 이는 내전이나 정권교체 목적은 아니다”고 발표


 시리아, 러시아는 강력 반발 : 시리아 대통령실은 트위터를 통해 “우리의 선한 정신이 굴욕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발표. 국영방송은 미국이 주도한 공습이 국제법의 위반이며 공습 자체도 실패라고 비난 보도

–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대사는 “미국의 시리아 공습에는 그 대가가 따를 것이며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비방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발표


[미국 시리아 공습에 대한 해외시각] 

공습 효과에 대해서는 제한적이라는 시각 우세. 미국의 개입 장기화 및 러시아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으나 관련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고 평가


 공습 효과 및 추가공습 가능성 : 지난 `17.4월 미국 공습과 같이 이번 공습으로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 사용을 중단하거나 아사드 정권이 약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제한적. 이에 따라 미국의 추가 공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

– 이번 공습이 아사드 정권의 교체를 도모하는 것은 아니라 수도인 다마스커스 인근을 공격했다는 것은 아사드 정권이 어느 때라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측면에서 의의(Middle East Institute)

– 아사드 정부의 악행을 막고 아사드 정권 비호국에 대해 강경함을 보여주려는 목적이나 이 모두를 얻지 못할 것(Huffington Post). 공습만으로는 시리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시리아 내전 및 아사드 정권의 불법행위 근절을 이루지 못할 전망(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

– 피해를 입은 시리아 내 군사시설은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는 러시아, 이란에 의해 신속히 복구될 가능성(The Atlantic).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강경하지만 시리아 공습 효과는 제한적 예상(NY Times)

–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 사용 중단까지 군사작전을 유지할 것을 시사. 미국 군부도 이번 공습이 ‘현재로서는’ 일회성이라고 강조. `17년 공습 이후에도 시리아 군부는 피해시설을 신속히 복구했으며 화학무기를 사용(WSJ)


 미국의 시리아 개입 장기화 여부 :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표방한 對시리아 전략을 감안할 때 주요 분석기관들은 미국의 장기적 군사개입 가능성을 낮게 평가. 다만, 시리아 사태에 대한 개입 리스크는 종전보다 커진 것으로 평가

–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와의 장기적 싸움에는 흥미가 없다”고 강조했으며 이번 공습 이전에도 시리아 내 2천명이 미군에 대한 철수를 시사

–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공습은 정권 교체 등의 실질적 효익은 상대적으로 작은 반면 미국의 지속적인 개입 필요, 관련 비용 증가, 러시아와의 대립 가능성 등 더 많은 리스크를 낳을 소지(Cato Institute)

– 이번 공습이 미국의 시리아 개입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이끌 것으로 보이지는 않음(Politico). 미국 등 서방국이 일차적인 공습 이후 추가적인 군사작전을 지속할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AP). 이번 공습은 미국을 보다 복잡한 시리아 내전에 휩쓸리게 할 위험 잠재(NY Times)


 러시아와의 충돌 가능성 : 현재로서는 미국의 제한적 공습 양상에 따라 러시아 및 이란이 군사적으로 보복에 나서는 등 대치국면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 다만 미국의 개입이 장기화될 경우 충돌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을 제기

– 이번 공습이 제한적임에 따라 러시아나 이란이 심각한 양상의 대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NY Times). 러시아와 이란은 강경한 톤으로 반박하겠지만 직접적인 대응은 자제할 가능성(Washington Institute for Near East Policy)

– 향후 24시간 내에 러시아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관건(CNN). 향후 러시아가 시리아 사태에 어떻게 군사적으로 개입할지 불확실성 상당(The Atlantic)

– 미국의 장기적인 시리아 개입시 시리아 정부를 지지하는 러시아의 보복공격 가능성(AP). 미국 등 서방군이 러시아 군에 타격을 입혔을 경우 분쟁이 확대될 위험 잠재(Business Insider)

– 미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시리아 내 군 병력을 상주시키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과의 충돌 가능성을 제고(NY Times)


 북한의 대응 관련 불확실성 증가 : 최근 북미 정상회의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이번 시리아 공습이 북한의 유화책을 더 끌어낼 수 있다는 시각과 경계감을 더욱 강화시켜 비핵화 협상에 소극적인 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시각이 병존

– 트럼프의 시리아 폭격으로 김정은이 시리아 사태를 거울삼아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CNN). 북한은 시리아처럼 당하지 않으려고 핵무기를 반드시 보유해야겠다는 의지를 굳힐 것(Strafor)

– 시리아 사태를 가장 눈여겨 지켜보고 있는 국가 중 하나가 북한일 것. 트럼프가 시리아를 공습하는 모습을 김정은에게 보여줘야 북한이 미국 군사력 동원을 두려워하고, 진지하게 비핵화 협상에 임할 수 있다(Washington Post)


[평가]

 주요 분석기관들은 대체로 금번 미국 등 서방의 시리아 공습이 작년 4월과 같은 ‘일회성 공격’으로 종결되면서 더 큰 사태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 이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가능성

– `17년 4/7일 미국 다우지수는 당일 미국 시리아 공습도 일부 영향을 미쳤지만 이보다는 3월 고용지표 악화(98천명, 10개월래 최저)로 0.2% 하락

 다만,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시리아 개입 확대 가능성 △시리아 정부 및 이를 지원하는 러시아, 이란의 대응 가능성 등 리스크가 커진 만큼 7년간 진행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 및 이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동향을 지속 점검할 필요

-출처: 국제금융센터

2018년 4월 7일 시리아의 반대편 벨트인 두마Douma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학 무기 공격으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백명 이상이 병들었다. 두마Douma 공격에서 나온 끔찍한 사진들이 세계의 관심을 사로잡았지만, 화학 무기는 작년의 미사일 공격 이후로 20번 이상 그리고 2018년 초 이후로 적어도 8번 이상 사용되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사용에 따른 이득이 비용을 초과하기 때문에 화학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 화학무기(CW) 사용을 정지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 계산을 변경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대응이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9일 긴급 회의를 열어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 소재 파악을 위한 수사 방식에 대한 3가지 결의를 채택하지 못했다. 비록 군사 행동이 범죄에 대한 국제적 대응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이 문제를 경제적, 외교적 그리고 법적으로도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지속적인 노력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거의 소용이 없을 것이다.


Q1 : 지난해 시리아 공군 기지에 대한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 공격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에서 화학 무기 사용이 계속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가?

A1 : 이 최근 공격은 반복되는 패턴에 들어맞는다. 국제 사회, 특히 미국이, 철수할 의사를 보이지 않거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는 것처럼 보일 때, 시리아 정권은 화학무기 공격을 통해 전쟁에서 이익을 얻고자 대담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사드 정권은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야당 주도 지역을 압박하고 주민을 강제 퇴거시키려는 의도적인 움직임이다. 시리아 민간인에 대한 산업 규모의 재래식 병력과 함께 다마스쿠스 외곽의 두마 교외를 겨냥하여 아사드는, 수도에 대한 위협을 없애고 있으며, 다음에 올 다른 대안으로 남아 있는 쪽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

단지 화학 물질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관점에서만 이러한 공격의 사상자들을 가두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첫째, 이러한 화학 물질 공격의 심리적 영향과 그로 인해 어린이와 노인들에게 가해지는 위험이 매우 심각하다. 둘째로, 이전의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에도 보호 구역 밖으로 민간인들을 쫓아내 재래식 폭탄에 취약하게 만드는 화학 공격의 전후를 겨냥한 재래식 공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두 갈래의 전략은 포위된 시민들이 숨을 곳도 없고 그들의 아이들을 보호할 곳도 없다고 느끼도록 한다.


Q2 : 4월 7일에 보고 된 두마Douma에서의 공격에 미국은 어떤 대응책을 취해야 하는가?

A2 : 칸 샤이쿤Khan Shaykhun의 공격 이후, 이런 범죄들을 다루는 옵션들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러시아는 2017년 11월 시리아에서 CW 사건을 맡은 수사 기관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유엔공동조사기구의 조사를 계속 거부했다. 더욱이 러시아는 화학 무기 협약에 따른 의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UN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유엔과 기타 메커니즘을 통해 아사드 정권을 책임지게하는 모든 움직임을 방해했다. 러시아가 이들 공격에 공모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아사드가 지난 한해 동안 자신의 통제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이루어 낸 영토적 이득에 의해 더욱 뒷받침되고 있다. 앞으로, 시리아 정권뿐만 아니라 그들의 세력도 화학 무기의 지속적인 사용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이러한 사용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다자 기구를 활용하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과 협력해야 할 것이다. 1월 23일, 25개국의 외무장관들이 화학 무기 사용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새로운 다자 간 노력을 시작하기 위해 파리에서 만났다. 이 새로운 국제적인 계획이 그 당시에는 거의 주목받지 않았다. 그것은 강화되어야 한다. P3(프랑스, 영국 및 영국)에 근접하지 않은 추가 국가는 국제 법 위반을 강조하고 이 문제를 P3와 러시아 사이의 분쟁 중 하나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북유럽과 남 아시아, 남미 국가들이 지지자가 될 것 같다. 그것의 구조는 구성원들의 행동을 소집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약간 사무국을 보강해야 한다. 비확산 체제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포럼과 기관들과도 연계되어 시리아 내전을 해결하기 위한 다른 정치적 노력에 동참하고 CW의 사용을 포함하여 전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기소하기 위한 다른 정치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파트너는 향후 공격이 발생할 경우 시리아 및 그 이상의 지역에서 국제적 대응의 속도와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 및 메커니즘을 강구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미국과 다른 안전 보장 이사회 의원들은 안보리 내에서 계속해서 행동을 촉구해야 하며, 러시아가 아사드의 잔혹 행위를 막는데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법무 장관, 또는 OPCW의 권한을 통해 수사관을 즉각 투입해 결정적인 물적 증거와 증인, 피해자를 수집하도록 하고 이와 같은 범죄 기록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것은 안전 보장 이사회 자체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필요할 수 있다.


Q3 : 미국의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A3 : 미국과 동맹국들과 협력자들은 시리아의 위기에 대해 포괄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CW사용은 인도 주의적 의미와 널리 인정되는 법규에 따라 눈에 띄지만, CW에 대한 민간 범죄 사건과 제네바 협정에 따른 재래식 무기 사용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이 있다. 그들은 동등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추가로, 미국이 그들의 억지력과 책임 옵션을 고려할 때, 너무 자주 심각성이 확실성과 결과의 일관성에 비해 잘못 평가된다. 이러한 경향은 작은 규모의 범죄에 대한 자기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고 가해자에 의한 한계 시험을 조장할 수 있다. 미국과 국제 파트너들은 모든 CW 공격이 전체적인 전략 목표와 여전히 비례하고 일관된 비용 부담 반응을 충족 시키도록 보장하기 위해 군사, 외교, 경제 및 사법 대응 옵션 메뉴를 확대해야한다.

책임성을 개선하고 조사 메커니즘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는 대량 살상 무기 확산에 대응하고, 테러에 대응하고, 이란의 불안정한 행동을 막고, 러시아와 경쟁하는 등 시리아의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포괄적 전략에 중첩되어야 한다. 최종 목표는 아사드(및 그의 지지자들)에게, 민간인들에 대한 고의적인 목표를 끝내고, 내전에 대한 협상된 정치적 해결에 동의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전략의 특정 요소는 다음을 포함해야 한다.

*두마 공격에 사용된 시리아 항공기에 대한 징벌적인 공격과 미래의 잔혹 행위를 막기 위한 유사 항공기 공격, 이상적으로 유럽 및 중동 동맹들과 협력

*시리아 CW 연구, 개발 및 생산 능력의 나머지 요소를 목표로 한다.

*필요한 경우 시리아 헬리콥터의 완전한 이륙금지조치

*아사드의 CW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이란, 러시아, 북한에 대한 제재

*시리아의 장래에 관한 정치적, 기술적 협상을 위해 외교 채널을 통해 압박, 향후 제재와 군사 공격의 위협으로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타깃으로하는 CW 및 재래식 무기의 미래 사용에 대해 아사드가 책임을 지는 정치적 해결책 포함.

*화학 무기 사용에 대한 조치를 위해 국제 파트너쉽을 사용하여 OPCW 집행 이사회의 모든 회원들을 총괄하여 비준수 절차를 시작하고 시리아를 안전 보장 이사회에 회부하기 위해 필요한 득표에 도달한다.

*시리아 북부 및 동부 지역 파트너들을 통한 대테러 및 안정화 임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이슬람 국가(ISIS)를 격퇴하는 동시에 지렛대와 억지력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약속은 임의의 일정이 아닌 현지 조건에 기초해야 하며 걸프 협력자 및 유럽 동맹국들과 짐을 분담해야 한다.

시리아 내전은 그 지역을 불안정하게 하고 무력 사용에 대한 규범적인 틀을 깨뜨리는 데 있어 계속해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것은 미국의 적들이 억지력, 경쟁, 그리고 미국과 국제 안보를 뒷받침하는 기본 원칙을 시험하는 분야이다. 만일 미국이 이러한 환경에서 주도하고 경쟁하기를 원한다면, 시리아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하며 무력 사용에 대한 책임성과 규범을 강화해야 한다. 7년 만에 50만명의 사망자와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분명히, 시리아 민간인들은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레베카 허스맨(Rebecca Hersman)은 워싱턴 DC전략 및 국제 문제 연구 센터의 핵 문제 프로젝트에 대한 선임 고문이자 책임자이다. 멜리사 달튼(Melissa Dalton)은 CSIS국제 안보 프로그램의 선임 연구원이자 부 책임자이다.

-영어원문:CSIS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제국 주의 시대 이후로 중국 국가와 불화를 빚어 왔고, 중국의 종교를 둘러싼 정치적 역학의 광범위한 양상을 반영해 왔다.

중국의 종교 운동은 불교와 같이 중앙 집권화된 통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을 때 가장 잘 성공한다.

하지만 바티칸과 베이징이 타협 가능성에 가까워지면서 그들의 운명이 변할지도 모른다. 이는 중국 기독교 뿐만 아니라 대만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친다.


1594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는 "가라앉지 않는 이슬람 장벽에 의해 수천년 동안 높은 산들과 높은 언덕에 막힌" 후에 가톨릭의 중국 유입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는 중국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오랜 전통의 분명한 양립 가능성과 "기독교 교리와 고대 중국 현자의 합리성과 가르침 사이의 두드러진 통일성"을 축하했다. 리치는 중국에서 살아 있는 동안 환상적인 성공을 거두며 강희제의 고문이 되어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개종시켰다. 하지만 가톨릭을 주류 중국 종교로 만들기 위해 문제를 일으킨 분쟁들이 진행 중이었다. 1700년에는 약 20만명으로 추정되는 중국 가톨릭 신자들이 있었다. 30년이 지난 후, 중국인들이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하늘의 종교"의 신자들은, 그들이 유럽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가 완전히 금지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가톨릭의 도전은 종교에 있어 독특하지 않다. 사실, 그것들은 중앙 집권적인 중국 당국이 현재 자신들을 국가라고 부르는 뻗어 나가는 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기 위한 단기적인 투쟁과 더 큰 관련이 있다. 지난 몇세기 동안, 기독교는 다른 많은 신앙 전통과 함께 중국의 세속적인 권위와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어 왔다. 오늘날 가톨릭이 전 세계의 신자들을 위한 경쟁에 직면함에 따라, 바티칸은 중국에 공식적인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국의 복잡한 정치적 풍경을 항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빅 픽처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권력을 통합하고 그의 정부가 중앙 집권화를 추진함에 따라, 중국의 그늘 속에서 운영되는 종교 운동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 바티칸은 신앙의 전통과 종종 갈등을 빚어 온 중국과 타협하는데 좀 더 유연해 질 것이다. 사실, 가톨릭 교회는 외교 관계를 대만에서 중국으로 바꾸는 것을 제안할지도 모른다.



제국 신앙의 혜택과 함정

신앙 전통은 어떤 제국에서든 도전과 기회를 모두 제공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총체적인 진실(진리)에 대한 주장을 하는데 이것은 신도들로 하여금 제국의 명령에 반대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반면에, 그들은 국가가 휘두를 수 있는 합법성이라는 가치 있는 도구를 제공할 수 있다. 16세기 후반의 중국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계속해서 표류하고 있는 영국의 기술과 유럽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국가의 힘을 해치지 않는 한 가치가 있었다. 중국의 3000년 역사를 통틀어 정치는 항상 종교를 초월해 왔습니다.


중국의 가톨릭은 1692년에 전성기를 맞았는데, 강희제는 기독교를 오랫동안 확립된 다른 신앙 전통들과 동등하게 두는 관용의 칙령을 내렸다. 그러나 칙령에는 유럽인들은 매우 조용하고 거짓된 종파와 달리 내란 선동의 경향이 전혀 없다는 은밀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기독교는 '침묵'을 지키고 중국 정치 질서의 기초를 침식하지 않는 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다. 사실, 중국에서 처음 가톨릭의 성공은 중국의 철학과 문화를 배우고 중국의 엘리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성직자들의 엄청난 노력에 달려 있었다. 1615년에 바티칸은 심지어 중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라틴어가 아닌 중국어로 전례를 행하도록 허락하는 독특한 특권도 부여했다.


1667년에 그린 이 삽화는 중국에 온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중국 사본과 그의 첫번째 개종자를 묘사한다.

(HULTON ARCHIVE/Getty Images)


하지만 18세기 초에 바티칸과 중국 당국 사이의 분쟁은 이 역학 관계가 얼마나 빨리 풀릴 수 있는지를 밝혀냈다. 소위 중국 의례라고 하는 기간 동안, 가톨릭 성직자들은 중국 가톨릭 신자들이 조상들의 모습을 담은 위폐에 절 하고 다른 유교 의식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의 예수회는 이러한 의식들이 세속적이며 가톨릭 의식과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반면에 교회의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이교도 숭배로 보았다. 그리고 이 논쟁은 단지 기독교적 하찮은 것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영역에까지 이르는 거대한 계급을 통해 중국 정치 질서의 근간인 유교 사상에 도전했다. 유교의 계절적 의식은 전국의 관료들의 주요한 책임이었고, 조상들에 대한 숭배를 금지하는 것은 중국 사회의 전체 구조에 대한 도전이다. 나라를 하나로 만든 황제와 관료 주의에 대한 모욕은 반역에 대한 것이었다.


기독교는 고대부터 AD 388년까지 로마 제국의 정치에 비판적이었던 황제 숭배에 맞서 저항하며 이전에 중국 폭동과 유사한 관습에 맞섰었다. 18세기 중국은, 오래 전 로마 제국에서처럼, 바티칸이 신자들에게 독립을 명령했다. 교황 클레멘스(Clement) 11세는 1704년에 중국의 종교 의식(Rites)을 금지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선교사들이 수십개의 비 기독교 지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그 권위를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2016년 5월 11일자로 촬영된 이 사진은 중국 남부 광시 지역의 디낭(Dingan)에 있는 전 가톨릭 교회에서 프랑스 선교사이자 가톨릭 성인 오귀스트 샤플레인(왼쪽)을 전시한 것이다.

(GREG BAKER/AFP/Getty Images)


이에 대해 중국 황제는 교황 특사를 추방하고 바티칸의 명령에 따르는 모든 선교사를 추방했다. 박해는 특히, 용정Yongzheng 황제가 가톨릭을 공식적으로 금지한 1724년 이후 몇년 동안 증가했습니다. 1814년에, 지우킹 황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라의 근본적인 법에 모든 기독교를 금지하는 것을 포함해, 그는 유럽인들에게 전도 죄로 사형을 선고했고, 제국의 먼 지역으로 대화를 하지 않을 기독교도들을 보냈고, 같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제국의 군사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추방시켰다. 1858년 천진 조약이 끝난 후에야 병든 청나라는 다시 한번 기독교가 지상에서 한층 큰 명성을 얻도록 선교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한 잠정적인 진보는 1951년 공산주의 인민 공화국이 서방 제국 주의의 안정적 위협으로 간주되는 것에 맞서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종교를 표적으로 삼은 때까지 지속되었다.



불교:규칙을 입증하는 예외

중국의 전례를 좇아 중국이 바티칸을 철저히 해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는 결국 확고한 발판을 마련할 만큼 충분히 개종자들을 얻었다. 하지만 중국은 달랐다. 그 나라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신앙 전통에 접근하여 그것들을 억제하고 정치적 질서에 맞게 다듬었다. 만일 필요하다면 중국은 망설임 없이 그것들을 즉각 금지할 것이다.


중국의 가장 큰 종교적 성공 이야기인 불교도, 투쟁의 시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불교는 1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한나라에 진출해, 점차 제국의 구석 구석으로 퍼져 나갔고, 충실한 신자로서 몇명의 황제를 얻었다. 581-618년의 수나라 왕조와 618-907년의 당나라는 중앙 정부의 귀중한 수단이 되었다. 제국들은 제국 전역의 관료들의 권한을 보완하는 일과 가족의 충성심을 초월한 군인들 사이에 보편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윤리를 심어 주는 일을 위해 불교 성직자들을 포옹했다.


하지만 중국의 세속적인 당국은 불교 성직자들이 세속적인 감시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 항상 의심을 품고 있다. 정부 기관들은 불교 승려들을 감독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고 더 직접적으로 종교적인 일들을 감독했다. 그리고 84년대 당나라가 중국의 지방을 지배하는 힘을 잃게 되자, 제국은 불교를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수도원 부지를 빼앗아가고, 전국의 승려들을 죽인다. (거의 동시에, 중국은 고대 실크 로드를 통해 들어온 기독교의 첫번째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음 세기에 불교는 서서히 힘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그것은 더 많은 중국 문화 요소들을 통합하고 유교의 르네상스를 보완하는 형태였다.


중국 베이징의 시청 구에 있는 가톨릭 교회.

(FOTOKON / Shutterstock)


기독교와는 달리 불교는 중국의 권력 정치에 독특하게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종교는 인도에서는 거의 사라져 버렸고 따라서 외부의 권위가 거의 없다. 불교 바티칸은 존재하지 않으며, 더구나 제국 안에서 불교가 제국이 될 위험도 없다. 사실, 중국에서의 불교의 오랜 뿌리는 그것에 거의 토착 신앙의 상태를 부여해 왔다. 반면에 기독교는 항상 서양 외부인들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특히 가톨릭은 중국의 수도로부터 수천마일 떨어진 유럽의 권위에 대한 그것의 충성심 때문에 중국 통치자들에게 의심의 여지가 있었다.


현대 시대에 불교는, 중국 밖에 자신의 정신적 지도자를 두고 있는 티베트 불교의 경우와 같이, 종종 중앙 집권화된 중국의 권위를 위협해 왔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불교의 권위를 지탱하고 중국 영토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으며, 달라이 라마에게 엄격하게 도전하고 신앙에 대한 자신들의 권위를 임명하려고 했다. 티베트 당국과 심지어는 달라이 라마 자신까지도 중국 정부의 뜻에 따라 굴복하기 시작했다는 초기 징후들이 현재 보이고 있다. 그리고 바티칸도 크게 뒤쳐지지 않을 것이다.



신과 정부를 둘러싼 현대의 전투

1939년에, 교황 피우스Pius 12세는 수세기에 걸친 분쟁 지역을 제거하고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재정립하며 가톨릭 교회의 중국 폭동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10년 후에 이어진 공산당 통치 하에서도 기독교는 오랜 지하 교회 관습으로 인해 중국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정부 관련 교회들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독교인들이 강하게 남아 있다. 베이징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기독교 인구는 2천 5백만으로 추산되며, 개신교 신자는 1천 8백만명, 로마 가톨릭 신자는 6백만명이다. 퓨 리서치 센터의 추정에 따르면, 이 수치는 더욱 높은 편이며 5,800 만명의 개신교 신자와 9백만명의 가톨릭 교도를 포함한다. 비록 기독교인들이 중국 인구의 5퍼센트만을 차지하지만, 순수한 숫자로 볼 때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소수 민족이다.


2016년 중국 상하이 덜룬 거리의 한 기독교 교회 앞에서 배달부가 자전거를 타고 있다.

(FRED DUFOUR/AFP/Getty Images)


하지만 역사에 비추어 볼 때, 현대 중국에서 기독교의 위상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복잡하다. 이 종교는, 공식적으로 인가 받은 교회와, 소위 지하 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로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절반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베이징이 승인한 교회에 대해서도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는 더욱 동떨어져 있다. 개신교를 위한 3대 애국 운동은 1951년에 설립되었으며, 중국 가톨릭 애국 협회는 1957년에 설립되었다. 베이징에 의해 선정되었지만 바티칸에 의해 인정 받지 못한 신부와 주교들에 의해 감독되었다.


20세기 후반 내내, 중국 국가는 1963-66사회주의 교육 운동의 가혹한 탄압과 뒤이은 1966-76년 문화 혁명과 1980년대의 급증하는 관용 사이에서 흔들리며 그들의 이해 관계와 기독교 신자들의 이해 관계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바티칸이 승인(수용)과 비난 사이에서 영원한 균형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징후가 증가하고 있다. 중국에서 공식적인 바티칸의 존재를 재정립하는 데 있어 두가지 주요 장애 요인은 대만 정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의 종교적 문제에 대해 냉담한 정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들 중 첫번째가 더 쉽다. 다른 많은 외교 공관과는 달리, 바티칸은 공산주의의 승리로 민족주의자들이 대만에 진출하게 된 이후에도 중국 본토에 대한 지지를 유지했다. (결국 바티칸을 축출한 것은 베이징이었다.) 가톨릭 교회에게 불간섭의 요구는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톨릭 지도자를 중국 당국에 임명하는데 있어 약간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바티칸은 타협하려는 의지를 보여 왔다. 가톨릭 애국 협회와 바티칸 간의 공식적인 거래는 없지만, 가톨릭 애국 협회의 회원들은 교황의 정신적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허용되며, 대부분의 주교들은 이제 로마 자체에 의해 암묵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그리고 적어도 2007년 이후로, 바티칸은 중국 정부와 공식적인 합의를 원한다는 안정적인 신호를 만들어 왔다. 

2017년 말 바티칸 관계자들은 중국 내 두명의 지하 주교에게 베이징의 지원을 받는 주교를 대신 물러나게 하여 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2018년 4월에 대규모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낙관적이다. 그리고 일단 도달한다 하더라도, 이 마지막 협상은 주교들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을 뿐이며, 외교 관계에 대한 논의는 차후로 미루게 될 것이다.


중국 가톨릭 여성이 부활절 주간 동안, 허베이 성 스지아장 근처의 "지하"교회에서 영성체를 하고 있다.

(KEVIN FRAYER/Getty Images)


바티칸에 있어 중국과 타협하는 논리는 자명하다. 가톨릭은 전 세계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으며, 기독교의 다른 형태들이 기독교에 맞서 한때 그것이 지배했던 장소,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것에 맞서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입지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추정치가 믿어 진다면, 중국의 개신교 신자 수는 6대 1로 가톨릭 신자 수보다 많다. 하지만 개신교 교회는 독립적이고 깊이 분열되어 있는 반면, 바티칸은 하나의 연합국으로서 중국과 협상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만일 그것이 중국의 공식 가톨릭 교회와 지하 교회를 통합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번에 모든 침수된 기구들을 육지로 끌어낼 수 있고 희망적으로 더 많은 지지자들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개신교 측에서는 교회의 공식적인 절차가 지하 교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 기독교인들이 이사회 전체에 걸쳐 변화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기도 중요하다: 2월에 제정된 새로운 종교 법은 지하의 회색 지대에서 활동하는 것을 상당히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권력의 통합은 불법적인 종교 활동에 대한 나쁜 징조를 보이는 중앙 집권의 새로운 시대를 알린다. 바티칸은 아마 지금이 정부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보고 있을 것이다.


베이징에서 가톨릭 교회를 중국 본토로 다시 들여오는 것은 근본적으로 대만에 대한 외교적 쿠데타이다. 바티칸은 대만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하는 마지막 유럽 강국이다. 만일 그것이 이러한 유대 관계를 단절한다면, 몇몇 라틴 아메리카의 수도들이 선례를 따를 수 있다. 이것은 대만과의 외교 및 군사 관계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최근 노력을 고려할 때 특히 중요하다. 중국이 개발을 광대한 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에 새롭게 중점을 두는 것은 가난을 줄이는 것에 중점을 둔 가톨릭 교회의 업적으로 보충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노령화 인구는, 특히 시골 지역에서, 정부의 사회 복지 서비스에 있어, 위협적인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불교에서 가톨릭에 이르는 종교 기관들의 증가로 채워질 수 있다.


하지만 바티칸과 중국이 화해의 기미를 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딜레마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이 어느 정도 외부의 종교 지도력을 중국 땅에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할 지는 분명치 않으며, 바티칸은 중국 정부의 뜻에 얼마나 기꺼이 따를 것인지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중국 정부에 대한 통제는 교황의 권위를 손상시킬 위험이 있지만, 이러한 종류의 합의에 대한 선례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및 아르헨티나와의 교회 관계에서 발견될 수 있다. 물론, 가톨릭 교회, 특히 지하 주교들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영역들의 노력에 반대하여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이 전 세계의 도전에 직면하면서, 바티칸은 중국의 14억명의 영혼이 거래를 하는데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편집자:우리는 그림에 표시된 교회의 교파를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작품의 네번째 사진에 대한 캡션을 조정했다.

-영어원문:Stratfor

미국이 설계하고 건설을 도운 후 70년 이상 보존한 세계 시스템을 포기하겠다는 결정은 전환점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국가는 이해 관계가 없거나 유지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결과는 미국인과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덜 자유롭고 덜 번영하며 덜 평온한 세상이 될 것이다.


거의 1천년이 흐른 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볼테르(Voltaire)가 누명을 씌운 신성 로마 제국은 신성 로마도 제국도 아니었다. 몇세기가 지난 오늘날, 볼테르의 말을 바꾸어 말하면, 문제는 점차 사라지는 자유 세계 질서가 자유주의적이거나 전 세계적이 아니며 질서도 없다는 것이다.


영국과 다른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를 확립했다. 목표는 30년 동안 두번의 세계 대전을 일으킨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민주주의 국가들은 법치주의와 주권 및 영토 보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적 국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출발했다. 인권은 보호되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행성 전체에 적용되기 위한 것이었고, 동시에, 참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으며, 자발적으로 행해졌다. 평화(국제 연합), 경제 개발(세계 은행), 그리고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기관들이 지어졌고 몇년 후에 세계 무역 기구가 되었다.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이 공격을 저지하는 데 기여한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동맹국과 미국의 경제와 군사력, 그리고 핵무기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그러므로 자유 세계 질서는 민주주의에 의해 채택된 이상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강한 힘에 기초한 것이다. 이것은 유럽과 전 세계에서 무엇이 질서를 이루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을 갖고 있는, 단연코 확실히 자유를 제한하는 소비에트 연방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았다.


냉전 종식과 구소련의 붕괴로 인해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해 보이지만, 25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그 앞날이 불확실하다.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주의, 보편성, 질서 유지라는 세가지 요소에 도전장을 내밀어졌다.


자유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점점 커지는 포퓰리즘의 영향을 느끼고 있다. 극단적인 정치 세력의 정당들이 유럽에서 세력을 얻었다. 유럽 연합을 탈퇴하는 것에 찬성하는 영국의 투표는 엘리트 세력의 상실을 입증했다. 미국 조차도 자국의 언론, 법원, 법 집행 기관들에 대해 자국 대통령으로부터 전례 없는 공격을 받고 있다. 중국, 러시아, 터키를 포함한 권위주의 체제는 훨씬 더 무거워졌다. 헝가리와 폴란드 같은 나라들은 그들의 젊은 민주주의의 운명에 무관심한 것 같다.


세상이 마치 온전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는 지역 질서의 도래를 목격하고 있다. 또는 중동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각각 고유한 특징을 지닌 무질서를 보고 있다. 글로벌 프레임 워크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실패하고 있다. 보호 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최근의 세계 무역 회담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이버 공간의 사용을 관리하는 규칙은 거의 없다.


동시에, 거대한 권력 경쟁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에서 무력을 사용해 국경을 변경했을 때 국제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을 위반했고, 2016년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미국의 주권을 침해했다. 북한은 핵무기 확산에 반대하는 강력한 국제적 합의를 무시해왔다. 세계는 시리아와 예멘에서 인도 주의적 악몽을 꾸고 있으며, 시리아 정부의 화학 무기 사용에 대한 대응으로 유엔이나 다른 곳에서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베네수엘라는 실패한 국가이다.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의 100명당 한명 꼴로 난민이거나 아니면 내부 난민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고, 지금도 그렇다. 포퓰리즘의 대두는 부분적으로 소득과 고용이 침체된 것에 대한 대응책이다. 대부분 신기술 때문이지만 수입과 이민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민족주의는 특히 어려운 경제적, 정치적 상황 속에서 지도자들의 권위를 뒷받침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이 사용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세계기구들은 새로운 힘의 균형과 기술에 적응하지 못 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약화는 무엇보다 미국의 태도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환 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에 불참하고 파리 기후 협약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북미 자유 무역 협정과 이란 핵 협정을 폐기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하며, 세계를 무역 전쟁의 위험에 놓이게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정당화(국가 안보)에 의존한다. NATO와 다른 동맹 관계에 대한 헌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있다.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아메리카 퍼스트"와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양립할 수 없는 것 같다.


내 요점은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 연합,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을 포함한 오늘날의 다른 주요 강대국들은 그들이 하는 일과, 하지 않는 일에 대해 비난을 받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그것은 자유 세계 질서와 그 배후의 주요한 설계자이자 후원자이며, 주요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난 70여년간 해온 역할을 포기하기로 한 결정이 전환점이 된 셈이다. 자유 주의적 세계 질서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자유 주의를 유지할 관심이나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미국인들과 다른 이들 모두에게 덜 자유롭고, 덜 번영하며, 덜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 영어원문: PS

 미국

- 국무부 애덤스 동아시아태평양 대변인,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 비핵화에 집중

- 헤일리 UN 대사, 북미회담에서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 요구할 계획

- 국무부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 북미 정상회담 의제에 북한 인권 포함 필요


 북한

- 리용호 외무상,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비동맹회의 참석하여 우군 확보에 주력

- 노동신문,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속에서 남한은 외세와 공조해 대결과 제재 공세 지속

- 영변 실험용 원자로 부근 새로운 굴착 작업이 진행 중(38노스)


 중국, 러시아 : 외교장관회의,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지지


 중국

-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 이후 북한 노동자 유입 재개

- 왕이 외교부장,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전쟁 도화선 제거 기회


 러시아

- 이고르 코스티유코브 해군 중장,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핵 전쟁 촉발


 EU

- 유럽의회 맥아릴스터 외교위원장,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 필요한 단계


 일본

- 외무성, 북한 전담할 북동아시아 2과 신설


 WP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외교적 노력과 함께 중국이 동참하는 대북제재를 시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 접근법

 미국 

 트럼프 대통령, 한미 FTA 개정안 합의가 북한과의 협상 타결 이후로 연기될 수도 있다고 발언하며 한미 FTA를 “강력한 카드(strong card)”라고 언급

– NYT,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리비아식 선폐기 모델을 선호하며, 금번 발언은 북핵 대화 시 한국이 미국과 함께 북한을 상대로 확고한 입장을 유지하길 원한다는 메시지로 해석


 중국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위원장의 시진핑 주석 평양 초청이 수락되었다고 보도. 일부 언론은 평양 답방 시기가 정전 65주년 기간인 7월말이 될 것으로 예상

– 한편 중국 통관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대북제재로 `17.10월~`18.2월 간 대북 정제유 수출 규모가 작년 전체 수출량의 3.7% 수준으로 급감.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기 위해 유엔 요구 수준보다 강한 압력을 가한 것으로 평가(Telegraph)

– 왕이 외교부장, 4.4~5일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 방문. 북중 정상회담 결과 설명 등 예상


 일본 

 북한 문제 소외에 대한 우려로 최근 북일 정상회담을 모색 중인 것으로 평가(CNN) 

–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29일 아사히 신문의 6월 북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 제기에 대해 베이징 대사관 루트 등으로 대북 대화 중이라고 언급하며 자세한 답변 회피


 EU 

– 대북 무역 압박 강화를 배경으로 `17년 EU의 대북 무역규모는 전년대비 26.7% 감소


 UN 

–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결의 위반 혐의 선박 및 선박회사 등을 블랙리스트에 추가


 38노스 

– 위성사진에 기반한 북한의 실험용 경수로 시험가동 보도(NYT)에 대해 실제 원자로 가동으로 볼 수 없으며, 오판독 가능성도 제기


 CNN 

– 강경 성향으로 평가되는 존 볼턴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내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 도출에 대한 의욕을 고려하면 북미 정상회담의 큰 변수는 아닐 수도 있다고 평가

-image: VOX

모두가 좋아하는 역사적 유사점이 오늘날 재앙적인 외교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많은 똑똑한 사람들은 미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냉전"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이 주제에 대한 기사를 Politico, the New Yorker, 그리고 the Nation 등의 다양한 관점을 찾을 수 있다. 양국의 정치인들은 서로를 묘사하기 위해 점점 더 가혹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양측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그들에 대해 여러가지 어두운 음모에 휘말려 있다고 확신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련된 신형 핵무기에 대해 자랑하고 미국은 비싼 핵 현대화 프로그램을 개시할 준비를 하고 있어 새로운 군비 경쟁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시국이 나쁘다 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냉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깨달음을 주는 것 이상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두 상황을 좀 더 주의 깊게 비교해 보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이전의 경쟁 관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오늘날 문제를 새로운 냉전의 산물로 보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를 현 교착 상태에 이르게 하고, 우리를 좀 더 중요한 도전에 빠지게 하고,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생각을 버리는지를 보여 주는, 인간 기관과 나쁜 정책 결정의 역할을 경시하는 행위이다.

이것이 왜 그런지를 알기 위해서, 원래의 냉전이 어땠는지 기억해두자.

우선, 냉전은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나라 사이의 양극성 대결이었다. 다른 요인들이 그들의 경쟁에 기여했지만(아래 참조), 각각은 서로에게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이었고 필연적으로 서로를 경계하는 눈을 떼지 않았다. 냉전은 구조적으로 국가들 사이의 힘의 전 세계 분배에 의해 결정되었고, 어느 정도의 경쟁은 아마도 불가피했다.

게다가, 두 초강대국은 서로 심하게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 미국이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의 경제 규모는 소비에트 연방의 두배 정도이며 동맹국들은 그들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믿을 만한 세력이었다. 미국은 서독, 영국, 일본, 프랑스, 이스라엘과 같은 많은 강력한 국가들을 가지고 있었다. 소련은 남예멘, 쿠바, 앙골라 그리고 수많은 방해 받는 위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처음에는 모스크바의 하급 파트너였으나, 두 공산주의 거인이 곧 심하게 사이가 틀어졌고, 중국은 1970년대에 미국과 암묵적으로 다시 맞붙었다. 미국은 훨씬 더 큰 전력-프로젝트 능력, 우수한 해군 및 공군, 더 복잡한 기술, 더 나은 훈련을 보유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공격 전쟁을 위해 설계된 많은 장비가 잘 갖춰져 있는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의 군대는 페르시아 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유럽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대량의 핵무기를 획득했다. 균형을 잡아 보면, 미국이 앞서 있었지만, 결코 여유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그래서, 두 초강대국은 계속해서 추가적인 영향력을 위해 경쟁했고, 제3차 세계 대전을 자극하지 않고도 서로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했다.

동시에, 냉전은 또한 경쟁적인 정치적 이념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강한 경쟁을 특징으로 했다. 그들의 지지자들이 각각의 사회를 조직하기 위한 모델을 제공한다고 믿는 한에서, 이 두가지는 본질적으로 보편적인 관념론이었다. 자유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이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기본권에 대한 주장을 기반으로 했고,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마르크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발견한 "사회 및 경제 발전"의 과학적 법칙에 기반을 두었다. 각각의 이념이 보편적으로 유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지자들은 그것들을 멀리까지 퍼트리는 것이 의무적이라고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양측의 보편 주의적인 주장에 따르면, 한쪽의 존재는 다른 한쪽의 합법성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했다. 따라서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두 "살고 또 살자"는 결코 심각한 선택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제 동료 Arne Westad가 분명히 보여 주었듯이, 냉전은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벌어진 국제적인 경쟁이었다. 모스크바와 워싱턴 간의 경쟁은 1940년대부터 세계 정치의 많은 의제를 형성했고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및 라틴 아메리카에서 광범위한(그리고 종종 부정적)영향을 미쳤다.

그것이 진정한 냉전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리고 그것이 몇번의 격렬한 핵 위기에 의해 간헐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양측이 각각 수만개의 강력한 수소 폭탄을 축적한 군비 경쟁, 그리고 수백만개의 대리전. 유감스럽고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은 매우 다른 동물이다.

첫째로, 그리고 가장 명백하게는, 오늘날의 세계는 양극성이 없다. 그것은 아직 단 하나의 세력이거나, 미국이 여전히 1위이고, 다른 주요 강대국들이 뒤를 쫓고 있는 일종의 심하게 편향된 다세포 시스템이다. 만일 결국 생물 다양성이 돌아온다면, 많은 사람들이 믿듯이,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 또 다른 기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냉전 초기의 현저한 반전으로, 러시아는 이제 중국의 하급 파트너가 되었으며 앞으로 수십년 동안 아시아 이웃 국가들에 비해 훨씬 약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도 인도보다 한참 뒤쳐져 있겠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둘째, 냉전 기간 동안 어떤 대략적인 유사점이 있었지만, 오늘날 미국은 중요한 거의 모든 측면에서 훨씬 더 강하다. 미국 경제는 약 20조 달러인 반면 러시아 경제는 2조 달러에 못 미친다. 미국은 기술적으로 정교하고 매우 혁신적인 반면, 러시아의 부는, 예를 들어, 인류가 화석 연료를 점차 고갈시켜 감에 따라 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 에너지 수출에 주로 의존한다. 한편, 러시아의 최신 스마트 폰을 사기 위해 동전을 모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 인구는 비교적 어리고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의 인구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다가올 수십년 동안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냉전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의 미국과 러시아의 매치 업은 고질라와 밤비이다.

셋째, 오늘날 놀이에 있어서 심각한 이념 경쟁은 없다. 미국의 자유주의적 브랜드가 최근에 퇴색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러시아의 국경 밖에서의 이념적 매력은 아주 적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전 세계 수백만명의 신자들의 상상력과 충성심을 사로잡았지만, 푸티니즘은 소수의 올리가르히 혹은 독재자 지망자에게만 매력을 느끼게 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민주주의보다 독재자 통치가 더 낫다고 진정으로 믿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평생을 책임 질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넷째, 진정한 냉전은 국제적인 경쟁이었고,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를 나누는 지정학적인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같은 러시아의 국경 혹은 중동의 작은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 그리고 푸틴의 "반동"에 대해 떠들어 대는 모든 뜨거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쟁에서 러시아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부정적이고 방어적이며, 스포일러와 같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서쪽으로 이동하거나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시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바샤르 알 아사드를 계속 지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조지 W. 부시와 같이, 푸틴 대통령은, 의뢰인들이 통제하고 참여하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을 발견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무대에서 긍정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능력이나, 상호 개선이라는 목표를 향해 일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을 거의 보여 주지 못했다. 세계 혁명에 대한 소련 지도자들의 고귀한 꿈과 비교해 볼 때, 푸틴의 "세계적 어젠다"는 물에 잠긴 보드카 같다.

하지만 기다려보라: 2016년 미국 선거를 조작하고, 봇, 인터넷 트롤, 허위 페이 스북 계정, 해킹 된 이메일 및 기타 범죄를 통해 불화와 불화의 씨를 뿌리려는 비열한 러시아의 시도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아직 러시아가 우리 민주주의에 얼마나 간섭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화를 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도 이런 행동을 제한하거나 저지하는 적극적 조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러시아의 개입으로 죽은 미국인은 없지만 우리의 선의의 "해방" 노력 덕분에 수만명의 이라크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이 러시아가 개입하기 훨씬 전에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가 이미 심각하게 부패하도록 허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나는 푸틴, Fancy Bear, 그리고 다른 러시아 요원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Newt Gingrich, Fox News, Breitbart, 그리고 the Drudge Report는 모스크바의 부하들이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미국인들의 머릿 속을 쓸데 없는 말로 채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게다가, 우리는 푸틴 대통령과 같은 사람이 러시아의 중요한 이해 관계에 대한 반복되는 미국의 개입에 매우 분개하여 이 기회를 포착했다는 사실에 전혀 놀라지 말아야 한다. 맥카시즘, 파머 레이더스, 또는 "1퍼센트 교리"를 기억하는가? 푸틴이 우리를 뚱뚱한 목표로 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제 요점은 우리는 대부분 우리 자신에게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현재의 갈등을 새로운 냉전으로 생각하면, 그것의 중요성이 과장되고, 우리는 떠오르는 중국으로부터 직면하는 훨씬 더 심각한 도전에 정신을 빼앗긴다. 더 나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이익에 적극적으로 해로운 조치를 취하도록 우리를 격려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대신에, "새로운 냉전" 사고 방식은 우리가 미국과 러시아의 경쟁 관계를 지나치게 과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상가상으로, 그것은 우리가 실제 냉전 기간 동안에 사용했던 대립적인 접근 방식에 의지하도록 고무시킬 것이며, 이것은 단지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더 가깝게 만들 것이다.

이것 중 어느 것도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나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냉전 시대의 언어와 이미지를 포용하는 대신 우리는 러시아가 불행과 실패를 극복하도록 돕는 새로운 방법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낫다. 그리고 첫번째 단계는 오직 방해만 될 수 있는 게으른 라벨을 버리는 것이다.

-STEPHEN M. WALT 

-출처: FP

-image: thenationnow

세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의 위험성을 우려하고있다. 시장이 회복되고 있다. 국가들과 산업체들이 면제를 받기 위해 앞다투어 나서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올해 미국 경제의 성장 전망에 대해 하향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위험은 모두가 인정하고 생각하는 이상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보호 무역 주의 정서가 높아짐에 따라 전쟁의 위험도 증가한다.

국제 무역과 평화의 연관성이 너무 오래 동안 명백해서 그것은 때때로 당연시되어 왔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1795년 저서 영구 평화에서 "무역의 정신은 전쟁과 공존할 수 없으며, 머지않아 이 정신이 모든 국민을 지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넓은 눈을 가진 낙관주의처럼 들리지만, 근본적인 논리는 좁은 이기심이다. 국가들은 국제 무역의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꺼려 하는데, 특히 지도자들이 미래의 이익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고 있을 때 더욱 그러하다. 더 큰 무역과 투자는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지만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을 증가시킨다.

제 1 차 세계 대전은 그 생각을 포기하고 역사의 쓰레기통을 태워 버릴 듯했다. 전쟁 전에 세계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1870년과 1914년 사이에, 무역은 세계 국내 총생산(GDP)의 8.2퍼센트로 증가했다. "현대 금융의 복잡성은 뉴욕을 역사상 유래 없는 정도로 런던, 파리, 베를린에 의존하게 만든다."고 노만 앙헬(Norman Angell)은 전쟁이 무의미하다고 선언한 그의 1910년 작품 "The Great Illusion"에 썼다.

하지만 독일의 침략이 그 점을 증명하고있다. 독일 지도자들은 정치 학자 데일 코플랜드(Dale Copeland)가 보여 준 것처럼 경제 환경이 그들에게 불리해지고 있다고 믿었다. 보호 무역 주의 정책이 영국과 그 식민지들 그리고 미국, 프랑스, 러시아에 집중되면서 독일은 세계 시장에서 밀려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러한 무역에 대한 기대감의 하락은 전쟁을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더 매력적인 수단으로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적인 보호 무역 주의에 무게를 두면서 세계화에 대한 가정과 무역에 대한 기대 사이에 비슷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노먼 엔젤은 오늘날 실리콘 밸리와 월가에서 집에있는 것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세계가 더 연결이 강해지는 일반적인 전제가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세계화는 순조로운 항해라기 보다는 롤러코스터였다. 1차 세계 대전 후, 세계 무역과 투자 흐름이 회복되는 데는 60년 이상이 걸렸다. 글로벌 연결성에 대한 지지자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더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역과 투자의 기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펀드 매니저의 30퍼센트는 무역 전쟁이 시장에 가장 큰 위험을 준다고 말한다. 대다수의 미국 유권자들은 무역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소버린 투자가들은 그들의 미국 자산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있다. 경쟁자와 협력자는 한결같이 트럼프의 관세에 대해 경고한다. 대통령이 보호 무역 주의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은 사라졌다.

이것들은 길고 훨씬 더 극적인 일이 될 수있는 것으로, 초기의 것이다. 보복 무역 조치는 경제 영역을 벗어나 군사적 대치 상태로 돌입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위험은 덜 직접적이고 더 교활해 질 수 있다. 주요 강대국들 사이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의 일반적인 약화이다. 이로 인해 남중국해, 한반도, 또는 기타 지역에서 잘못된 계산 결과가 추정될 위험이 높아진다.

갈등이 언제 어떻게 촉발될지는 말할 것도 없고 말하기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실제적이고 예상되는 보호 무역 주의의 증가가 어떻게 국제 관계에 해를 끼칠 수 있는지를 알기는 쉽다. 트럼프의 무역 정책에 대한 모든 정직한 판단은 이러한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이 현 과정을 완전히 포기할 것 같지는 않지만, 부수적인 피해를 제한할 수는 있다. 범위, 기간, 면제 절차 및 제거 조건을 포함하여 그의 정책에 더 명확한 의미를 단순히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의 공포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더 좁고 더 세밀한 접근은 특히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 사이에서 반발을 제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경계 이상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세계에 긍정적인 경제 비전을 제공하는 것이 시급하다.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에서 탈퇴하고 기존 무역 협정에 대한 재협상을 열어, 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현상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미국의 긍정적인 경제 비전은 하락하는 기대에 맞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미국의 지도력이 없는 상황에서 중국이 스스로 세계적인 개방의 챔피언으로 성장하려는 시도를 밀어낼 것이다. 그 지도력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필요하다. 세계적인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하기 전에 미국은 마지막에 불을 밝힐 필요가 있다. 

-Jonathan E. Hillman

-출처: CSIS

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에 북한 선제공격 찬성했던 강경파 존 볼튼 유엔주재 미국 대사 내정

– 볼튼 내정자, 개인적으로 언급했던 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며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발언

– 펜스 부통령, 북한 핵 폐기 전까지 대북 압박 늦추지 않을 방침

– 주한 미군, 한국 내 가족 및 민간인의 본토 대피 훈련을 4월에 시행할 계획

– 국무부, 북한의 공식 확인 없어도 한국 신뢰하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 준비

– 국방부, 북한과 이란 등 불량 정권의 위협을 막기 위한 미사일 방어 예산 증액 요구


 북한: 노동신문, 미국의 제재 중단 및 대북정책의 전환을 요구

– 해커 그룹은 작년 5월부터 6개월간 남한의 142개 기업을 공격


 한미일: 3국 국방당국, 북한 미사일 경보훈련 지속을 약속하고 북한에 핵무기 포기 촉구


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 인권 문제 규탄 및 책임자 처벌 결의안 채택


 EU: 데바 유럽의회 한반도 관계대표단장, 북한이 원하는 것은 평화협정


 일본: 아베 정부, 북한에 정상회담을 추진하자는 뜻을 전달(교도통신)


 NYT: 트럼프 정부의 핵심 안보진용이 강경파 인물들로 채워지고 있으며, 그 여파로 대북 압박이 더 강화되고 세계의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될 우려

심지어 중국 현대사의 태피스트리(tapestry)가 개혁주의적인 씨날로 특징지어졌을 때도, 그것은 항상 권위주의적인 왜곡으로 짜졌다. 같은 이유로, 겉보기에 권위주의적인 시진핑 시대의 개혁이 열성적인 특성일 수도 있지만, 그것의 표현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베이징–중국 전국 인민 대표 대회가 대통령 임기 제한을 폐지하기 위해 2,958 표를 던졌으므로, 시진핑은 2023년에 5년 임기를 두번 마치는 대신 중국을 무기한 통치할 수 있다. 시 전 총리가 어느 정도까지 강력한 통치자가 될 것으로 많은 관측통들은 전망하고 있을까?

중국 관측통은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CPC)이후 시 주석의 권력 특성과 범위에 대해 논의해왔다. 

한가지 지표는 중국 헌법에 사회주의에 대한 시진핑의 생각과 중국인의 특징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마오쩌둥이 그의 이름을 따서 '사상' 개념을 구체화한 유일한 이전 중국 지도자이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이제 시 주석이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라고 주장한다.

물론 중국의 개혁 개방 시대를 20년간 주도했던 덩샤오핑도 1978년 덩샤오핑 노선을 채택한 바 있다. 중국식 사회주의가 덩샤오핑의 대표적 정책이다. 그러나 시 주석이 '새 시대' 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언급한 것은 덩샤오핑으로부터 결별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화 혁명으로 인해 탄생한 시골 농경 국가인 40년 전 인민 공화국과는 달리, 오늘날의 중국은 빠르게 도시화되고 기술적으로 진보된 사회를 가진 경제 및 정치적 초 강대국이다. 따라서 시 주석의 새 시대는 중국이 '부와 권력'을 오랫동안 찾아 온 역사적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주석의 중국은 개방 대신에, 세상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시대는 중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어떻게 보아야 하고, 그것이 시 주석의 권력의 본질에 대해 무엇을 드러낼 수 있을까?

20세기에 중국은 세가지 정권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그것은 청나라 다음에 1912년에 중화 민국의 설립이 이어졌고, 1949년부터 중국 인민 공화국이 그 뒤를 이었다. 중화 인민 공화국의 역사는 두개의 시기로 더 나뉘어 진다:마오쩌둥 시대와 개혁 시대.

이 역사가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었다. 마오쩌둥 시대의 공화당은 통일 전선과 시민 사회 발전으로 무장한 듯 독재기 사이의 잠깐 동안의 막간을 보낸 듯했다. 그러나 중국 인민 위원회의 개혁 기간 동안, 좌익의 실수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던 CPC에 조차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마오 시대의 소동이었다. 덩샤오핑의 중국적 특징을 지닌 사회주의가 성공함에 따라 중국의 경제적 기적은 중국이 발전과 현대화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듯 보였다.

중국의 궤도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반영되어 왔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실제로 1943년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장개석)의 부인은 의회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4대 자유가 어떻게 일본과의 전쟁 중에 중국에 적용되었는지에 대해 증언했다.

하지만 미-중 관계가 공유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믿음은 1949년 CPC의 승리에 의해 무산되어, 미국이 어떻게든 "중국을 잃었다"는 암시로 이어졌다. 그러한 희망은 어느 정도 외교 관계의 재건과 후에 개혁 시대로 되살아났다. 미국은, 경제 발전과 성장하는 중산층이 정치적 자유화를 이끌것이라고 믿으면서, 다시 중국과 손을 잡았다.

이러한 희망은 관료들이 마을 차원의 선거를 실험하기 시작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더욱 강화되었고, CPC지도부는 두번의 임기 후에 정기적으로 바뀌었다. 중국은 세계 무역 기구에 가입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했다. 언론인 짐 만 씨가 한때 주장한 대로, 1989년 천안문 광장 사태 이후에도 미국과 중국의 상호 작용은 정치적 개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러한 기대는 논란이 되어왔다. 중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 증가하고 있고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는 동안, 민주주의는 도래하지 않았다. 정치 학자들은 CPC의 붕괴를 예측하는 것을 멈추고, 대신에 왜 1당 권위주의 국가가 그렇게 회복력이 있는지, 그리고 개혁과 개방의 기간이 끝났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시 주석의 "새 시대"가 보여 주듯이, 대답은 예스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고려해 보자. 인터넷이 더 큰 자유를 가져다 주도록 하는 대신에, 중국 정부는 거대한 방화벽을 만들었다. 동시에, 그것은 최신 기술로 전례 없는 수준의 국가 감시를 가능하게 하는, 소위 "디지털 레닌주의"를 발전시켰다.

이와 비슷하게, 중국의 시장 경제도 점점 더 민영화되고 있지 않다. 대신에, 정부는 가장 중요한 공기업에 대한 통제를 유지해 왔고, 시행되는 사기업들은 정부의 우선 순위에 따라 운영된다. 정치 분야에서는 민주적 실험이 지역 수준에 국한되어 있으며, 이는 CPC규칙을 강화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그렇다면 공화당 시절과 달리 개혁 시대는 중국 역사상 또 하나의 일탈이었나? 이 질문에 접근하는 한가지 방법은 현대 중국 역사를 개방성과 권위주의의 한 가닥으로 이루어진 이중 나선형 DNA구조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개혁 시대를, 특히 1980년대를 다원적 정치 담론의 시대로 그리고 점점 더 활기 찬 시민 사회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덩샤오핑의 '네가지 주요 원칙' 즉, 사회주의 노선, 민중의 민주 독재, CPC지도부,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을 고집한 것에서도 비롯되었다.

덩샤오핑이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주도했던 것처럼 그는 천안문 광장(Tiananmen Square)의 학살을 주도했다. 마찬가지로 공화당 시대에는 새로운 대학과 전문직(변호사 포함)이 있었지만 장개석(Chiang Kai-shek)의 '화이트 테러(White Terror)'와 보수적인 '새로운 삶' 운동도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중국 태피스트리(tapestry)가 개혁적인 씨날로 제작되었을 때 조차도, 그것은 항상 권위주의적인 날실에다 짜 맞추어져 있었다. 시진핑 주석의 새 시대는 권위주의적 끈이 지배하는 시기다. 역사는 개방의 열성 가닥이 지속될지 여부를 알려 줄 것이다.

-영문출처: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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