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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腸은 최대의 면역기관 

모든 장기는 장으로부터 분화해서 생겨났다고 하는 것은 이전에 말씀 드린 바와 같습니다. 사람은 입으로부터 항문까지를 연결하는 한 개의 대나무 통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기에, 소화관은 입으로부터 침입한 외기外氣나 음식물을 통해서 직접 외적과 만나고 있기 때문에, 면역방어기구의 최전선. 특히 장은 면역세포가 가장 많이 모여있는 면역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장관내에서 발동하는 면역의 구조를,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우선 구강내나 비강내에는 점액이 분비되고 있습니다. 점액 속에는 적을 공격하는 표창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항체 's-IgA(분비형 면역글로불린A)가 함유되어 있어, 외적을 무독화하여 콧물이나 가래로 만들어 체외로 배출합니다. 이 s-IgA를 만드는 지령을 내리는 것이, 장관에 존재하는 면역세포입니다.

소장에 존재하는 '파이엘판'이라고 불리우는 돔형태의 기관에는, 거의 전 종류의 면역세포가 집결되어 있습니다. 외적이 침입하면 한시라도 빨리 파이엘판 내에 집어넣고, 자연면역인 마크로퍼지 등의 식세포나, 획득면역인 '킬러T(KT)세포'등. 각 종의 면역세포가 총동원되어, 연계플레이에 의한 면역시스템이 발동됩니다.

제거되어야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침입한 것만이 아닙니다. 자기 세포가 '암세포'가 된 경우도, 면역계의 감시자가 그것을 적으로 인식하여, 자연면역, 획득면역을 구사하여 공격을 개시하는 것입니다. 


활성화됨과 동시에 과잉면역을 억제 

유산균생산물질은, 이 파이엘판에 작용한다는 것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유산균생산물질이, 감기나 바이러스 등의 감염증 예방 뿐만 아니라, 암세포 등에 대한 공격력을 백업하는 작용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활성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면역이 지나치게 활발해짐으로써 발생하는 것이, 꽃가루 알레르기 등의 '알레르기'나 교원병 등의 '자가면역질환'입니다. 이들 면역질환은, 무해한 것(꽃가루나 자기자신)을 유해한 것으로 잘 못 인식하여 발생하는 '과잉 면역반응'이기 때문에, '무조건 면역이 활성화되면, 이러한 면역질환이 중증화 되는 거 아니야?'라고 걱정이 되실텐데요. 안심해도 좋습니다. 유산균생산물질은 면역밸런스를 조정하여, 과잉반응을 완화하는 작용도 있다는 것이 실험에 의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면역계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과잉반응을 완화하는 유산균생산물질을 평소 식생활과 함게 함으로써, 병에 지지않는 몸만들기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산균제품에 대해 일반적으로 '유산균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몇 마리가 있느냐'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유산균이라도 내 장속에서 살고 있는 나만의 고유의 유산균이 될 수 없으며, 일시적으로 머물다가 떠나버리는 파병균밖에 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장腸을 지켜주는 국군인 상재균. 이 나만의 고유의 유산균이 얼마나 잘 증식하고 잘 자리를 잡았느냐가 사실은 장 건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산균생산물질은 과연 내 장腸속 나만의 고유의 유산균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요?

성인 지원자들이 유산균생산물질을 먹기 전과 먹은 후의 장내 환경 변화와 육류등을 섭취하였을 때 발생하는 유해효소 농도에 대한 유산균생산물질의 영향을 알아보았습니다.

 

유익균을 증가시켜 유해균을 억제하다 

성인 지원자에게 유산균생산물질을 2주간 먹인 후, 먹기 전과 먹은 후에 장내 플로라의 구성을 비교하였습니다. 그러자 유익균인 유산구균이 4배, 비피더스균이 6배, 유산간균은 12배로 증가하였고, 게다가 유해균인 웰치균이 1/100로 감소하였습니다. [그림1].

이것은 유산균생산물질을 섭취함에 따라, 장내환경이 '유익균이 우세'하게 된 것으로, 배변의 개선, 병원균 감염예방, 면역력강화 등, 다양한 건강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림1] 유산균생산물질 섭취에 의한 장내 플로라의 변화 


유해효소가 감소하다 

장腸안에서 유해균이 증가하면 부패가 발생하고, 암모니아나 인돌, 발암물질인 페놀, 유화수소, 아민 등의 유해물질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유해물질은 간에서 '글루크론산'으로 포집되어 해독되고, 변이나 소변으로 배설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해균이 만들어내는 유해효소 'β글루크로니다아제'는, 글루크론산을 파괴해서 해독작용을 파괴해버리기 때문에 유해물질이 배설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과 간 사이에서 유해물질의 악순환이 반복되어(이것을 '장간순환이라고도 합니다), 대장암이나 간 · 신장 기능장해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대장암 환자는 분변중에 β글루크로니다아제 활성이 건강한 사람보다 높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임상에 있어서 β글루크로니다아제의 활성은 대장암의 발병위험을 판단하는 마커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식생활과 유해균의 관계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지원자에게 육식 중심의 고지방 · 고단백질을 3일간 지속해서 먹게 한 후 분변을 채취하여 β글루크로니다아제 활성을 측정하였습니다. 

그러자 β글루크로니다아제가 5배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로부터 '지방이나 단백질을 과잉섭취함으로써, 유해효소가 증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2] 유해효소 농도에 대한 유산균생산물질의 영향

이에, 이번에는 육식중심의 식사와 병행하여, 유산균생산물질을 매 식후 먹게 하였스빈다. 그러자, 육식만 먹고 있었을 때와 비교하여, 유해균도 β글루크로니다아제 활성도 억제되어, 일반적인 한식(저지방 · 저단백)을 먹고 있는 사람과 거의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들로 부터 '식생활이 건강하지 못하면 장내 환경의 악화를 초래하는 데 비해, 유산균생산물질로 어느 정도 막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균형을 갖춘 식생활에 힘을 쏟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유산균생산물질을 평소에 섭취하는 것은 장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장腸의 작용을 도와주는 유산균생산물질

지금까지 소개해드렸던 장의 주요 작용은 ① 영양소의 소화 · 흡수 및 배설 ② 장내세균이 사는 곳 ③ 면역기관으로서의 작용입니다. 그리고 이들 전체 작용을 유산균생산물질이 도와준다는 것을 실제 데이터와 함께 설명드렸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① 영양소의 소화 · 흡수

사람의 생명 유지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동시에 중요한 작용입니다만, 이 작용의 최전선을 담당하고 잇는 소장의 '미세융모'는, 상처가 나기 쉬운 섬세한 조직입니다. 유산균생산물질은, 이렇게 중요한 미세융모를 보호하고 또는 노화를 억제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② 장내세균이 사는 곳

전신의 건강상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장내세균은, 사람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면서 동시에 한 번 밸런스가 무너지면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유산균생산물질은 장내의 유익균을 증가시키고 유해균을 억제시켜 그 밸런스를 양호하게 유지합니다. 

③ 면역기관으로서의 작용

장은 전신의 약 70%나 되는 면역세포가 집중되어 있는, 인체 최대의 면역기관입니다. 장의 ①이나 ②의 작용이 쇄약해지면 면역기관으로서의 작용도 약화되고,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감염 위험이 높아짐과 동시에, 알레르기 등의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산균생산물질은 장관면역을 단련하여 면역을 활성화시키는 것 뿐만아니라, 과잉된 면역을 억제하여 알레르기의 개선에도 도움이 됩니다. 

최근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제 2의 뇌'로서의 장 그리고 '장과 뇌의 관계'

기생생물이 숙주의 정신을 지배한다.

이들 3가지의 작용에 더해, 장은 뇌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뇌장상관'이라는 개념입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장이야말로 모든 장기의 기원이라는 것을, 첫 연재때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뇌의 지령이 없어도,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소화 흡수 작용을 하는 것으로 부터 '제2의 뇌'라고도 불리우는 장.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파오는 것도, 장의 신경세포가 발달한 것이 뇌라는 것을 생가가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뿐만아니라, 최근에는 장에 살고 있는 세균이나 기생충이, 숙주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까지 이야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체내에 침입한 기생충에게 행동을 컨트롤당한다는 SF호러 영화와 마찬가지의 예가 자연계에는 많습니다. 예를들면, 고양이가 최종적인 숙주인 '톡소플라즈마 곤디'라고 하는 기생충이 있습니다. 이 기생충에 감염된 숫쥐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급격히 증가하여 성행동이 왕성해집니다. 그러면 고양이에게 습격을 당하는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암컷에게 가까이 가려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양이의 먹이가 되고 말아, 톡소플라즈마 곤디는 감사히 숙주를 얻고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한방 생약으로 알려져 있는 '동충하초'도 곤충의 체내에서 성장하는 기생균류. 동충하초가 기생하고 있는 개미는, 잠시 동안은 자신의 집에서 동료들과 함께 평소와 마찬가지로 생활하지만, 어느 날 취한 것처럼 돌아다니면서 나무 높으 곳으로 올라가, 그대로 죽음에 이릅니다. 이것은 죽은 개미의 머리로부터 발아하는 동충하초가, 높은 위치에서 포자를 퍼뜨리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즉, 기생균이 숙주의 정신을 점령하여,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장소로 이동시키는 데다가, 죽는 시기까지도 조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와 장내세균

물론, 사람은 쥐나 곤충보다 복잡하게 진화해 온 생물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 극단적인 예는 현재까지는 없습니다만, 사람의 장내 플로라와 뇌의 관련성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산통(격한 발작성 복통)으로 괴로워하는 유아는, 같은 연령의 보통의 유아에 비해 장내플로라의 다양성이 낮으며, 커서 스트레스에 약해지기 쉽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를, 큐슈대학의 연구팀이 발표하였습니다. 장내세균을 전혀 갖고 있지 않는 '무균마우스'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보통의 마우스에 비해서 스트레스 호르몬의 혈중농도가 높아지는 외에, 기억과 학습에 관한 뇌의 '해마'영역에서, 신경회로의 발달에 관련한 유전자의 작용이 저하된다는 것입니다. 즉, 장내세균이 기억과 학습능력의 성장에 영향을 주고, 스트레스 대처능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프랑스 연구팀이 행한, 사람에게 있어서의 임상실험에서는, 유익균으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장내세균(유산균과 비피더스균)을  한달 간 섭취한 경우, 항불안과 우울증의 억제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발표도 있습니다.

유산균생산물질의 스트레스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연구과제 입니다만, 뇌와 밀접하게 관계된 장의 작용을 도와주는 것으로 부터도 적지 않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장은, 나무로 비유하자면 '뿌리'입니다. 토양과 뿌리의 상태가 좋으면, 나무에는 맛있는 과실이 열리게 되듯, 사람의 경우에도 장과 장내세균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면, 전신의 건강과 미용으로 이어집니다. 장이야말로 건강의 핵심. 유산균생산물질로 장이 건강해지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 참고문헌 일경 사이언스 2012 10월호 외  


유산균생산물질이 면역에 대해서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실험 데이터와 함게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면역활성화의 지표가 되는​ NK세포와 점막면역의 지표가 되는 분비형 면역글로불린인 s-IgA의 활성변화를 통해 유산균생산물질이 면역에 있어서 어떻게 작용하여 우리 몸에 도움이 되는 지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NK세포가 활성화

우선은 면역세포 중 'NK(내추럴 킬러)세포'의 작용에 ​대해서 유산균생산물질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조사해보았습니다. 그 전에 NK세포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NK세포란, 외적의 침입에 대해서 보다 빠르게 동원되는 제 1공격부대 '자연면역세포'의 하나로서, 이름처럼 목표로 한 외적을 놓치지 않는 '저격수'입니다. 병원체나 세균은 물론, 암세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기세포도 공격하는 림파구의 일종으로, 매우 높은 살상능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체내의 청소부 '마크로퍼지'가 보내는 SOS에도 반응하여 출동합니다.

실험에서는 우선, 종양(암)을 이식시킨 쥐를 준비합니다. 여기에, 유산균생산물질을 먹인 그룹과 먹이지 않은 그룹으로 나누어서, NK세포의 활성을 비교하였습니다. 그러자, 유산균생산물질을 먹인 그룹은 NK활성이 2배가 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그림1]. 이로부터, 유산균생산물질을 섭취함으로써, 암에 대해서 공격력이 증가하고 생체방어 활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s-IgA항체 증가

다음으로, 제2공격부대에서 만들어지는 표창 's-IgA(면역글로불린)항체'에대해서 조사해보았습니다. ​우리들의 구강내나 비강내에 분비되고 있는 점액에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s-IgA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IgA의 작용에 의해 외적이 무독화되고, 콧물이나 담이되어 체외로 배출됩니다만, 이전 포스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항체를 만들도록 지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 바로 장관면역입니다.

이에, 이 실험에서는 건강한 성인 지원자에게 2주간 '유산균생산물질'을 먹도록 하고 음용전과 음용후에 타액에 함유된 s-IgA의 농도를 비교하였습니다. 그러자, 음용 1주일 후의 s-IgA 농도는 약 1.7배, 2주일 후의 s-IgA의 농도는 2.6배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섭취를 중지하자 점차 낮아지나, 섭취2주후에도 섭취전에 비해서는  30%이상 높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림2].

이 실험으로, 유산균생산물질을 섭취함으로써 장의 면역세포가 자극을 받아, s-IgA가 증가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산균생산물질의 섭취에 의해 타액뿐만 아니라 눈물이나 콧물, 모유 등 전신의 면역부활을 활성화시킨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

이 두가지의 실험으로부터, 유산균생산물질이 '면역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면역 과잉반응에 의해 발생되는 '알레르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까요? 면역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유산균생산물질. 면역 과잉상태에서도 더욱 높이고 마는 결과를 초래할까요? 다음회에서는 알레르기에 대한 실험결과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면역과잉상태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과잉상태도 더욱 높여 더 과잉상태를 초래할까요? 장관 면역과 알레르기에 대한 관계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장관 면역과 알레르기

병원균이나 바이러스 등 외부의 적만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무해한 음식물이나 꽃가루 등에 대해서도 면역이 과잉 반응하여,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것이 알레르기가 발생하는매커니즘 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장은 전신의 약 70%의 면역세포가 집중해 있는 '면역기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알레르기도 장과 깊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음식 알레르기를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미발달된 장에서 다 소화할 수 없었던 단백질 등에 대해서 면역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일컬어지고 잇습니다.

1965년 통계에서, 알레르기를 가진 아동은 약 1%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만, 그 후 증가추세에 있으며, 최근 조사로는 특히 도시에서는 약 50%의 아동이 알레르기를 갖고 잇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생활환경이나 식생활의 변화가 원인이라고 여겨지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계란이나 우유, 새우, 게 등의 알레르기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미국에서는 땅콩, 스웨덴에서는 헤이즐넛이나 대구 등의 알레르기가 매우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각각의 나라의식생활을 반영하고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유산균생산물질이 알레르기를 억제

이전 포스트에서 유산균생산물질이 면역을 활성화시켜 공격력이 높아지는 것을 나타나내는 실험결과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러면, 면역 과잉반응인 알레르기에 대해서는 역효과가 나버리지는 않을까요?

이에 알레르기 특유의 항체IgE(면역글로불린E)에 대해서 실험을 하였습니다.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 '히스타민'은 , 면역세포가 만들어내는 IgE항체가 '비만세포'의 열쇠구멍에 딱 맞는 것을 방출합니다. 비염에 관한 시판약 등으로 알려져 있는 '항히스타민제'는 이 열쇠구멍을 막음으로써 IgE의 작용을 저해하여, 히스타민의 방출을 막는 것입니다.

​실험에서는, 인위적으로 계란 알레르기에 걸리게 한 마우스를 이용하였습니다. 이것을, 유산균생산물질을 2주간 먹이로 준 그룹A와 주지 않은 그룹 B로 나누어 혈중 IgE농도를 비교하였습니다. 그러자, A군 쪽이 확실히 IgE농도가 낮게 억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1]

이 실험으로부터, 유산균생산물질이 면역을 단지 무턱대고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 과잉 반응은 억제하면서, 면역의 밸런스를 현명하게 조절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유산균생산물질을 섭취함으로써 질병에 지지않는 몸 만들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알레르기 체질의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신의 면역력의 70~80%를 담당하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③ 장의 면역력을 활성화시키는 작용에 대해서 면역시스템의 진화의 역사와 함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자가면역질은 아메바의 자취 

사람은 '자연면역'과 '획득면역'을 구사하면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연면역이 곧바로 적과 대치하는 '제1차공격부대'라면, 획득면역은 적의 모습을 구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여 물리치는 '제2차 공격부대' (이전 포스트 장腸이 다른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와 장腸에 직접 작용하는 세이겐 이야기 참조). 우선은 이 2가지 면역 시스템의 진화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우리들 사람에게 갖춰져 있는 가장 원시적인 면역시스템인 '자연면역'의 구조는, 단세포의 원생동물 '아메바'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실은 이 아메바야말로, 면역세포의 하나인 '식세포食細胞(마크로퍼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메바는 개체자신이 1개의 식세포로, 이물질을 포식해서 그것을 소화시키거나, 토해내거나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단세포가 다수 모여서 생긴 것이 다세포 동물입니다.  

다양한 역할분담하에 세포분화가 되어, 복잡하게 진화해가면서 포유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만, 기원인 아메바상 세포는 이 기능과 형태를 전승하여, 마크로퍼지로서 지금 더 나아가 모든 동물의 체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시의 생명이 몇 억년이나 되는 시간을 거쳐, 우리들의 몸에서도 숨 쉬게 된 것입니다. 

 

 

획득면역은 보다 발달된 고도의 면역시스템 

한편, 아메바로부터 포유류까지의 진화의 과정에서 서서히 획득해 간 면역계를 '획득면역'이라고 부릅니다. 림프구를 갖는 가장 하등한 생명체는, 상어나 가오리 등의 연골 어류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연골어류는, 획득면역을 담당하는 면역세포 'T세포'와   'B세포'를 만드는 '흉선'이나 '비장'을 갖고 있으며, 포유류와 거의 동등한 획득면역시스템이 거의 완성되어 있습니다. 연골 어류보다 진화의 면에서 뒤쳐진 무척추동물 등은, 이러한 획득면역 시스템에 관한 조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부터도, 획득면역은 보다 복잡하고 정밀한 구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발암 위험 인자

사람은 왜 '암'에 걸리는 걸까요? 잘 알려져 있는 요인중 하나는 '금연'의 위험성. 담배 연기속에 있는 화학물질은, 폐의 세포 유전자에 상처를 내고, 폐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흡연은 폐암만이 아닌, 그 외의 발암 위험도 30%나 높인다고 일컬어집니다. [그림1]

다음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것이 '성인기의 식생활과 비만'으로, 발암 위험은 금연과 마찬가지로 30%. 예를들어, 미국인과 일본인과는 걸리기 쉬운 암의 종류가 다르지만, 일본인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서구식에 익숙해지는 경우, 미국인과 같은 종류의 암에 걸리기 쉬워지는 것으로부터도, 발암과 식생활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LA중앙연구소에서는, 현재 '암'을 타겟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제약회사에 준하는 레벨의 동물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일부 소개하고자 합니다.

 

발암물질의 '무독화 결박을 끊어버리는' 유해균 효소

대장암은, 육식이 많은 서구인에게 많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육식중심의 서구식은 '클로스트리디움' 등의 장내 '유해균'을 증식시킵니다. 이 유해균이, 사람의 간에 갖춰져 있는 '해독작용'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입니다. 간이 갖고 있는 해독 작용이란, 발암유기물질 등을 '글루크론산'으로 감싸서 변과 함께 체외로 배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해균이 갖고 있는 'β글루크로나아제'라는 효소는, 글루크론산으로 무독화된 발암유기물질의 '무독화 결박'을 끊어버려서 다시 유해한 물질로 만들어 버린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황당한 역할을 하는 유해효소 'β글루크로니다아제'의 힘은, 유해균의 증감과 비례한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β글루크로니다아제에 의해 자유를 얻은 발암유기물질은 문맥을 통해 다시 간으로 돌아와서, 재차 장으로 되돌아 갑니다. '장간순환'이라고 불리우는 이 악순환에 의해 간은 한번 해독했던 발암유기물질을 또다시 해독하고 또다시 해독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대장 또한 반복적으로 발암 유기물질에 노출되어 대장암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에 지원자들의 협력을 얻어 ⓐ 일반적인 전통식을 먹는 경우, ⓑ 육식을 중심으로 한 서구식을 먹는 경우 ⓒ 서구식과 '유산균생산물질'을 함께 먹는 경우로 장내환경을 비교했습니다. 그러자, ⓑ 서구식의 경우는 ⓐ의 전통식에 비해 유해균이 증식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유익균인 '비피더스균'의 비율은 ⓐ 전통식과 ⓑ 서구식은 차이가 없었습니다만, ⓒ 서구식 + '유산균생산물질'의 경우는 비피더스균이 증가하였고, ⓐ 전통식만 먹는 경우 보다도 장내환경이 좋아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2]

이들 실험을 통해, '유산균생산물질'을 지속해서 먹이다 → 장내환경이 개선된다 → 발암유기물질을 재차 유독화시키는 유해효소(β글루크로니다아제)의 힘을 약화시키다 → 장간순환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다 → 장이 갖고 있는 면역능력을 높이다 → 장이 건강해지므로 암이 생기기 어려워진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장이 건강하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화장실을 잘가고 변을 잘본다는 것의 의미만이 아닌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시키고, 독소를 원활히 배출하며 면역능력이 활성화 되고 이는 곧 전신의 건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번 실험을 통해서도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파병군의 역할에 그치는 일반적인 제품들과는 달리 유산균생산물질은 장속 나만의 유산균들 및 비피더스균을 증식시키고 유해균을 억제시킴으로써 장 건강을 더욱 빠르고 근본적인 방법으로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healthmakery/130178548541


나쁜 곳을 제거하는 것만이 의학이 아니다  

- 선생님은 1963년에 미국에 가서,  뉴욕에서 연수의로서 활동하시면서, 이제 막 개발된 내시경을 마주하셨었죠. 그래서, 스스로 삽입법을 고안하여, 1년후에는 대장역역의 관찰을 가능하게 만드셨었죠.

신야-   맞습니다. 그리고 1969년에는 개복하지 않고 대장폴립을 제거하는 '폴리페크토미'라는 수술법도, 세계 최초로 고안했었습니다.

- 그렇게 내시경 의학의 기초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저서에서도 상세히 적고 있습니다만, 선생님은 장 내부를 관찰하던 어느 단계에서 '장과 음식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되신건가요?

신야-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직관입니다(웃음). 제 '장상이론'은 초기부터 이미 나와있었습니다.

 - 선생님은 1980년대 이후, 일본에도 가끔 돌아오셔서, 의사를 대상으로 내시경 세미나도 열게 되었었습니다. 일본의 내시경 기술을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했었습니다만, 이러한 장상이론은 강의하지 않으셨었나요?

신야-  그들은 저로부터 기술은 배웁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병변을 발견하고, 그것을 떼는 것을 배웠을 뿐인 것입니다.

- 그렇군요. 암에 대한 이야기와마찬가지로군요.

신야-   장의 내부를 관찰한 순간, 좀 더 전체적으로, 직관적으로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

- 그렇게 함으로써, 장과 음식과의 관계가 보이는 거로군요. 병을 고치려는 개념도 꽤 달라지겠네요.

신야-  장상을 관찰하고 있으면, 병을 고치는 것보다도, 걸리지 않게 하는 게 좋다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됩니다. 따라서, 예방이 중요한 것입니다. 

- 예방의학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신야-   제 입장에서 말하자면, 표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여성을 본 경우 그냥 야한 감정으로 밖에 보지 않는 경우와, 여성을 여성으로서 바라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는 전혀 다르죠?

- 이상한 예입니다만, 말씀하시는 의미는 알 수있습니다(웃음). 둘다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깊이가 다르네요.

신야-  하나의 사물로부터 10개를 배운 사람과 30개를 배운 사람과는, 인식력, 이해력이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내시경이라는 기술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사람의 이해력이 반영되는 것입니다.

- 현대의학에서는, 일단 나쁜것을 제거하면 치료는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신야-   잘 못된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은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서만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성을 신과 같은 눈으로 보고 있는 저와는 근본이 다르죠? (웃음)

- 또 그 이상한 예를 드시네요(웃음). 요약하자면, 어느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 아닌, 전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죠.

신야- 얼 만큼 좋아하는지 얼만큼 사랑하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  자신의 사고방식을 되돌아보는 것

- 방사능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힌트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물론 이런저런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취재를 했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 보다는 꽤 상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실에 사로잡히면 전체가 보이지 않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신야-  예를들면,  싫은 것이 지속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뇌 속에 싫은 사고방식이 조금씩 쌓여가는 것입니다. 이것도 독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독소도 몸에 준비된 치유력으로 어느 정도는 제거해갑니다만, 한계는 있습니다.

- 단,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이 좋은가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이상, 문제는 많이있습니다. 음식이나 환경에 대해서는, 저도 꽤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 방사능 문제도 그 중 하나이죠

신야-   맞습니다. 이제와서 말하기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 살아가는 이상, 스트레스는 무수히 많다. 그것을 긍정하라던가, 어쩔 수 없다는 등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바라보는 방법 자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거죠.

신야-  네거티브한 사고방식이 마음을 어둡게하여,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 사람의 사는 기쁨이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 그렇게 해서 생기는 독소에 대해서도, 자연계의 유해물질과 마찬가지로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시죠.

신야-  그렇기 때문에, 전전긍긍해서는 안됩니다.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것에 마음을 지배당하는 것은 더 좋지 않습니다. 

- 현실에 대해서, 괴롭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신야-   저는 암에 걸린 사람, 그 외의 다양한 난치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많이 진찰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인생이니까, 우선 자기자신을 바꾸자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그렇군요. 의식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으니까요. 예를들면, 선생님에게 의지하는 환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의지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신야   의지하는 것은 좋습니다. 단, 자신을 바꾸자, 스스로 고치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겠지요.

- 선생님이 어떻게 해주겠지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일반 병원에서도 말할 수 있겠네요. 환자중에 스스로 이기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는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의사가 어느 정도 있는지가.

신야-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좀 더 솔직히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라든가, 이것을 하면 어떤 반발을 당할까라든가 생각하지 말고, 좀더 솔직하게 살아갑시다.

- 바로 저에게 말씀하시고 계신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웃음)

신야-  진정으로 자신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진심으로 승부를 합시다.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 점점 더 그런 기분이 듭니다(웃음).

신야-  당신에게는 지금까지도 꽤 이야기를 해왔지만, 나는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고, 전부 오픈하죠? 그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 너무 오픈하세요. 그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야-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도, 이런저런 어려운 것을 생각하기 전에, 솔직하게 살아갈 것, 마음을 열 것,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에 중독되지 않을 것…. 우선 그러한 것을 실천하도록 해주세요.

- 일본인 전체의 테마네요. 확실히, 방사능 문제, 지진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뭐랄까 사회 전체가 흠칫흠칫 거리면서,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게 훨씬 유해한 것 같습니다. 

신야-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바로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 것! 오픈 하는 것!

- 이번엔 그러한 책을 쓰지 않으면 안되겠네요(웃음). 다음에 더 좋은 말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시경 의학의 세계적인 1일자이자, 지금도 일본과 뉴욕을 오가며 현역 의사로서 활약하고 계신 신야히로미선생님. 저서 "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이래, 지명도가 한꺼번에 업되어, 선생님이 제창하는 식사건강법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꽤 많아졌습니다. '해독력을 높이는 식사법"(매거진하우스)의 간행에 맞춰 인터뷰를 합니다.


'먹는 것보다 마음이나 의식이 더  중요합니다'

- 선생님, '해독력을 높여주는 식사법'이 드디어 간행되었는데요, 지금 문제시되고 있는 방사선 내부피폭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 지를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만.

신야-   네, 그다지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음, 책에 이런 저런 이야기가 쓰여져 있는데요?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라든가, 어떻게 디톡스하면 좋을지 라든가.

신야-   물론, 그것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책을 읽고 공부해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조금 오버해서 생각하고 계십니다. 피폭의 피해는 그 정도까지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피해가 없다구요? 근거가 있는건가요?

신야-   물론, 사고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진의 피해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활이 엉망으로 되어 버렸고, 그 책임이 국가나 도쿄전력에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 조금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야-  그렇네요, 우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너무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확실히 저는, 먹거리에 대해 책에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그것은 내시경 의사로서 40년 이상에 걸쳐 임상을 진행해온 경험으로부터, 확신을 갖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마음이나 의식의  영역인 것입니다.  

- 무엇을 먹을것인가 보다도, 그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로군요.

신야-   그렇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식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이번 책을 읽어보시고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방사성 물질의 디톡스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계신 정보도 많이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식사를 하기만 하면 건강해진다, 피폭의 데미지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 선생님은, 무엇을 먹어야 할 것인가라는 것을 '장과의 궁합'으로 판단해야한다고 말씀해오셨죠. 내시경에 의해 관찰 할 수 있는 장의 건강 상태를, 손끔이나 관상에 빗대어서 '장상'이라고 부르셨죠.

신야-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충분히 이야기를 드려왔습니다만, 제가 추천하는 식사건강법은, 매우 심플합니다. 일본의 영양학 책에 있는 것처럼 귀찮은 칼로리 계산을 강요하거나, 영양 밸런스가 어떻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선생님의 식사법은 까다롭다거나,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신야-   그것은 머리로 생각해서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하는 것은 몸이기 때문입니다. 좀더 말씀 드리자면, 소화관, 장이 먹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에게 물어보면 모든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뱃속에 귀를 귀울이면 됩니다.

- 감각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리고, 그 감각의 기준이 되는 것이 장의 반응이라는 거죠.

신야-   머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식사가 귀찮고, 괴로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제 책에 써 있는 것을 공부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을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입니다.

- 포인트가 거기에 있네요. 생각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

신야-  그렇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됩니다.

 

식사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으면 암에 걸린다?

-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나 사람의 이야기에 답을 구한다고 할까요, 쓰여진 것을 열심히 지키려고 하는 것이 건강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신야-   그러한 사람은, 아무리 식사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해도, 안타깝지만 결국 암에 걸리게 되 버릴 지도 모릅니다.

- 신야식 식사선강법을 실천하고 있어도 암에 걸린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쇼킹한 발언이신데요(웃음)

신야-   암은 사는 방식 때문에 걸리는 병이기 때문에, 발암물질 등 보다도, 마지막은 그 사람의 사는 방식이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었죠. '암은 불행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다' 라고. 꽤 어폐가 있는 말씀입니다만(웃음).

신야-  그것은 진실입니다. 보세요. 벙글벙글 즐겁게 살아가면서 암에 걸렸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적이 없잖아요. 너무 어려운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 단, 불행한지 아닌지는,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잖아요? 예를들면 건강진단의 수가처럼 알수가 없잖아요.

신야-  그렇기 때문에 암의 본질을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의사로서도, 숫자만 보고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렸는지, 어떻게 하면 암에 걸리지 않고 끝날 수 있는지, 감각적으로 알수가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그렇군요. 방사능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도.

신야-  맞습니다. 방사능을 두려워하면 두려워 할 수록 암에 걸리겠죠. 끙끙거리면서 계속 걱정을 해도 암에 걸립니다. 다들 이 점을 이해하지 않은채, 암에 걸린다, 암에 걸린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매우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 

- 피폭의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암이 되었는가? 피폭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암에 걸렸는가? 어느쪽이 원인인지 알 수가 없네요.

신야-  살아가는 것의 기쁨, 즐거움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아무리 치료를 해도 낫는것은 어렵겠지요.

- 음, 매우 중요한 말씀인것 같습니다. 

신야-  제가 말하는 건 항상 그렇습니다(웃음)

- 아니요,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시니, 대충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구요(웃음). 하지만, 식사보다도 정신이 상위에 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아보 도오루 선생님을 취재했을 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야-  그렇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같은 것을 말할 것입니다. 의사는 환자를 안심시켜서, 희망을 갖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가능한가가 문제입니다. 

- 일반 의사도 환자를 격려하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무래도 그런 의미와는 다른 것같네요.

신야-  전혀 다르죠. 원래, 그러한 의사는 암을 치료하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테니까요. 병변만 보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치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테니, 솔직히, 사고방식 그 자체가 너무 다릅니다.      

신야히로미 박사님 (여든에 가까운 연세에 아직도 젊은이 못지 않은 정열과 건강의 소유자)


장이 건강하면 암이 생기기 어려워지는 이유 - 장간 순환의 비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천수를 누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병과 맞서 이겨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시다시피, 현대인의 사인 중 '암'이 단연 톱으로, 매년 증가추세에 있습니다. '세이겐'을 연구 · 개발하는 ALA중앙연구소에서는 현재 '암'을 타겟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는 그 일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발암 위험 인자

사람은 왜 '암'에 걸리는 걸까요? 잘 알려져 있는 요인중 하나는 '금연'의 위험성. 담배 연기속에 있는 화학물질은, 폐의 세포 유전자에 상처를 내고, 폐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흡연은 폐암만이 아닌, 그 외의 발암 위험도 30%나 높인다고 일컬어집니다. [그림1]

다음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것이 '성인기의 식생활과 비만'으로, 발암 위험은 금연과 마찬가지로 30%. 예를들어, 미국인과 일본인과는 걸리기 쉬운 암의 종류가 다르지만, 일본인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서구식에 익숙해지는 경우, 미국인과 같은 종류의 암에 걸리기 쉬워지는 것으로부터도, 발암과 식생활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LA중앙연구소에서는, 현재 '암'을 타겟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제약회사에 준하는 레벨의 동물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일부 소개하고자 합니다.

 

발암물질의 '무독화 결박을 끊어버리는' 유해균 효소 

대장암은, 육식이 많은 서구인에게 많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육식중심의 서구식은 '클로스트리디움' 등의 장내 '유해균'을 증식시킵니다. 이 유해균이, 사람의 간에 갖춰져 있는 '해독작용'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입니다. 간이 갖고 있는 해독 작용이란, 발암유기물질 등을 '글루크론산'으로 감싸서 변과 함께 체외로 배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해균이 갖고 있는 'β글루크로나아제'라는 효소는, 글루크론산으로 무독화된 발암유기물질의 '무독화 결박'을 끊어버려서 다시 유해한 물질로 만들어 버린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황당한 역할을 하는 유해효소 'β글루크로니다아제'의 힘은, 유해균의 증감과 비례한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β글루크로니다아제에 의해 자유를 얻은 발암유기물질은 문맥을 통해 다시 간으로 돌아와서, 재차 장으로 되돌아 갑니다. '장간순환'이라고 불리우는 이 악순환에 의해 간은 한번 해독했던 발암유기물질을 또다시 해독하고 또다시 해독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대장 또한 반복적으로 발암 유기물질에 노출되어 대장암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에 지원자들의 협력을 얻어 ⓐ 일반적인 전통식을 먹는 경우, ⓑ 육식을 중심으로 한 서구식을 먹는 경우 ⓒ 서구식과 '유산균생산물질'을 함께 먹는 경우로 장내환경을 비교했습니다. 그러자, ⓑ 서구식의 경우는 ⓐ의 전통식에 비해 유해균이 증식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유익균인 '비피더스균'의 비율은 ⓐ 전통식과 ⓑ 서구식은 차이가 없었습니다만, ⓒ 서구식 + '유산균생산물질'의 경우는 비피더스균이 증가하였고, ⓐ 전통식만 먹는 경우 보다도 장내환경이 좋아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2]

 

이들 실험을 통해, '유산균생산물질'을 지속해서 먹이다 → 장내환경이 개선된다 → 발암유기물질을 재차 유독화시키는 유해효소(β글루크로니다아제)의 힘을 약화시키다 → 장간순환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다 → 장이 갖고 있는 면역능력을 높이다 → 장이 건강해지므로 암이 생기기 어려워진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장이 건강하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화장실을 잘가고 변을 잘본다는 것의 의미만이 아닌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시키고, 독소를 원활히 배출하며 면역능력이 활성화 되고 이는 곧 전신의 건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번 실험을 통해서도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파병군의 역할에 그치는 일반적인 제품들과는 달리 유산균생산물질은 장속 나만의 유산균들 및 비피더스균을 증식시키고 유해균을 억제시킴으로써 장 건강을 더욱 빠르고 근본적인 방법으로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healthmakery/130180503982





곡성에 탕수육 맛있는 집이 두 곳 있는데(세 곳이었는데 아쉽게도 줄었다 ㅡㅡ;;) 그 중 한 곳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고기 질이 아주 좋고 소스도 맛나다. 특히 탕수육피(튀김옷)에서 치킨후라이드 맛이 난다~ ㅋㅋㅋ 

같이 먹던 아내는 맛있다고만 하고 후라이드가 느껴진다는데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


전남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846 부근
다음지도로 -> http://dmaps.kr/27uv8



목: 홍채 / 간•담 - 녹내장

화: 혈관 / 심•소장 - 충혈

토: 눈밑살 / 비장•위장

금: 흰자 / 폐•대장 - 백내장

수: 동공 / 신장•방광 - 근시•원시

상화: 시력 - 시력저하•난시


비싼 민어 착하게 드시는 방법



최근에 국내여행에서 숙박이나 음식으로 눈탱이 맞은 썰.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 바꿔치기 당한 그런썰들 봐서요! 소개 해드리고 싶어요~ 

 

저는 전라남도 목포 사는 유부녀징어이구요 ~ 수산물 중매업을 하는 남편과 결혼을 하여 주말에는 바쁜시기에 종종 남편을 도와주곤 해요~

 

저희 남편 일하는 곳은 "신안 지도 송도 수협 어판장" 입니다. 

이곳에서는 주로 꽃게, 병어, 민어, 새우젓 등등이 많이 나와요.

 

요즘은 주로 민어철 입니다. 그 전에 여기 수산시간이 굉장히 환경이 열악했어요. 몽골 텐트 같은 곳에서 어머님들이 장사하셔가지고 비바람 햇빛에 진짜 고생들 많이 하시고 손님들도 불편하셨었는데 이번에 새로 회센터를 지어서 정말 깔끔해지고! 저희들도 장사하기 좋고!

한번씩 오셔서 저렴하게 민어 맛있게 드시고 가셔도 불편함 없으실꺼에요~!



뜨든 ~ 새건물이라 짱 좋아요. 그 전에 텐트에서 장사도와드릴땐 정말 너무 힘들었는데 여기선 시원하고 그래서 힘든줄도 모르겠네용...ㅎ 손님들도 굉장히 좋다고 하시고요!

 

여기 신안 지도는 지금 민어가 제철이지용! 한식대첩을 보시면 전남팀에서 매 시즌마다 거의 민어는 끝판왕보스 식재료로 항상 등장을 하는데 원산지는 "신안 임자도" 거든요. 신안 민어가 그만큼 굉장히 유명합니다. 

민어는 전남 대부분 지역에서 잡히는 생선이긴해요. 하지만 지도 어판장은 배들이 매일매일 들어와요. 

그래서 한마디로 선도가 굉장히 좋다는거죠. 큰배들이 바다 멀리 나가서 3~4일 정도 조업하다가 들어오는 거랑 비교했을때 그 차이는 커요. 그래서 가격도 비싸고 품질도 짱 좋습니다. (백화점 횟집도 납품 많이해요. 큰거 잡히면 거의 백화점으로 ㄱㄱ) 

 

저도 다른 해안지역 놀러가면 수산시장 많이 놀러가는데 ~ 제가 생선파는 입장이라 보면.. 착한가격도 있지만 관광지 가격인곳이 굉장히 많긴해요..ㅎ 쓰린맘을 부여잡고 그냥 먹긴하는데 좀 아쉽죠..ㅋ

 

저희 송도 어판장은 일단~ 무조건 자연산이에요. 이 근방 배들에서 잡힌 고기들만 판매하니까요. 그래서 물때에 따라서 고기가 어판장을 가득채울때도 있고 없을땐 완전 없어서 남편 일 빨리 끝나요. 외부고기들이 유입되는것두 없구 양식이나 냉동.일체 없습니당~ 

무조건 생물만 판매해요. 그래서 20군데 정도의 가게에서 다 똑같은 고기들만 판매하죠. 여기서 잡히는 고기들만 판매하니깐요~ 


모든집이 다 같은 종류의 고기들을 판매하니까 어느한집에서 무턱대고 높은 가격으로 팔수가 없어요. 여기는 도매가에 수수료에 일정 마진을 붙여서 판매하기 때문에 어디서 민어를 사시든 진짜 이곳에서 제값주고 사실 수 있다고 장담합니당! ㅋㅋ



몇주전 그나마 병어가 조금 나올때~ 판매한 병어입니당..ㅋㅋ




요거는 지난주에 도와드리러 갔을 때 찍은사진~ 민어랑 딱돔,서대,덕자가 보이네용..ㅋㅋ

맨 오른쪽에 회 썰어져있는거는 ~ 주말에 손님들이 굉장히 많이 오세요. 그럴때 민어 한마리 사서 2층 회뜨는집에서 썰으셔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2~3시간 기다리시는 경우도 있어요;;; 바쁘신 분들은 기다리시기 힘들고 민어가 큰 생선이라 한마리 사기가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서 아침에 엄청 큰 민어를 저렇게 미리 썰어서 판매해용.

이번주 물때가 좋아서 민어가격이 한접시에 2만원 굉장히 저렴하죠? ^^ 저렇게 저렴하면 팔때도 기분이 좋아용..^^



제 짱친 커플 징어들이 여기 놀러와서 찍은 사진..ㅋ 2층에 식당이 3군데 있는데 세팅비 내면 저렇게 직접 산 민어를 드실 수 있어용..ㅎ

회 한접시 매운탕거리 1접시 사서 매운탕이랑 회 클리어 한날..ㅎ 부족했다는건 함정..



요거는 팔던 회가 남아서 그날 저녁 집에 가져와서 남편과 함께 한잔...ㅎㅎ

민어는 1키로에 1접시 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접시마다 부레와 뱃살을 골고루 나눠서 담아주니 싸움날일이 없답니당..ㅎㅎ

 

생물 해산물은 물때에 따라 가격대가 천차만별이에용..

민어가 1키로에 7만원일때도 있었구 요즘은 3~4만원 대인데요~ 미리 전화해서 저렴한 물때에 사서 드시면 정말 온가족이 보양식 민어 저렴하게 푸짐하게 즐기실수 있죵..ㅎ

 

여기는 아직 막 ~ 아줌마들이 와서 사라 먹고가라 이런 호객행위가 없어요.

관광지라기 보단 그냥 도매시장이여서 그냥 오면 팔고 이런 분위기..ㅋ

 

한분이라도 좋은 코스 알게 되심 좋겠네용...ㅋ

봄철엔 자연산 광어 이런것두 많이 나오는데 쌀땐 키로에 1만원이니까 진짜 저렴해용~

ㅋㅋㅋ 착한민어 가족들과 즐기시고 싶은 분들께 강추해용..^^

 

오시기 힘든분들은 손질해서 택배도 가능해용~

택배로 가는 고기들은 안보시고 사는거라 특별이 더 선도 좋은 놈으로 엄선합니당..ㅎㅎ

출처: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17692



50년 전만 하더라도 불임 의학(Fertility medicine)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던 분야였습니다. 그러나 결혼 시기가 늦춰지면서 아이를 갖고자 하는 부부들의 연령대가 올라갔고 오늘날 불임 의학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임신에 도움이 되는 어떤 특별한 요소라는 게 있을까요? 또는 현대식 식단이나 부족한 영양소가 불임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은 있을까요?


2007년 출간된 “임신을 위한 식이요법(Fertility Diet)”은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조지 차바로 교수가 쓴 책으로 출간 뒤 곧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그의 주장은 여성 1만 8천 명의 식단과 건강을 수년 간 추적한 간호사 건강연구(Nurse’s Health study)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일부 여성들은 이 기간에 아이를 낳은 반면, 어떤 여성들은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실험이 실제 불임 여성에게 어떤 식단을 권하거나 차바로가 불임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을 진료한 결과에 바탕을 둔 자료가 아니며, 즉 통제군을 둔 실험이 아니라, 그저 임신한 여성들이 먹은 음식과 그러지 못한 이들이 먹은 음식을 비교해서 나온 결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주장들은 과학적 검증을 거친 주장은 아닙니다. 물론, 그럼에도, 그의 주장이 맞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일단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의 주장을 들어봅시다.


차바로는 포화지방산, 정제된 탄수화물, 그리고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는 이들이 불임으로 고통받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반면 채소과 콩류, 통밀, 견과류, 올리브유, 생선 등을 주식으로 하는 지중해식 식단을 먹는 이들이 불임 확률이 가장 낮았습니다.


이는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패스트푸드를 피하고 지중해식 식단을 많이 먹게 되면 신체는 건강해집니다. 따라서 건강한 이들의 신체가 더 잘 작동할 것이라는 예측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한 가지 요소가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지방을 많이 먹는 여성들이 더 임신에 유리했다는 것입니다. 차바로 교수는 두 가지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저지방 유제품에 존재하는 유당(lactose)이 난소의 기능을 방해할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설은 지방에는 호르몬이 녹아 있으며, 따라서 전지방(full-fat) 유제품에 포함된 젖소의 호르몬이 어쩌면 임신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차바로는 위 결과에 따라 전지방 유제품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비만은 건강한 임신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또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해서는 안 됩니다. 한 연구는 체중이 줄어드는 동안에는 임신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즉, 신체에 에너지가 부족할 때 신체는 일시적으로 자신에게만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이 효과는 저체중의 여성과 다이어트 중인 여성에게 모두 나타났습니다. 즉 과체중인 여성은 체중을 줄인 후에 임신에 도전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들이 임신에 도움이 될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위의 제안들이 곧 당신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제안들이며, 따라서 이를 따르는 것이 임신에 있어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한편, 어떤 연구들은 임신에 대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임신을 막을 가능성도 제시합니다. 즉 임신에 좋은 식단을 먹음으로써 스트레스는 낮아지고, 당신은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 또한 누리게 될지 모릅니다.

-Quick and Dirty Tips

출처:http://newspeppermint.com/2014/08/13/mdiet/



폴 레이번은 병원에서 TV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막 그의 첫 아들을 낳은 직후였습니다. 뉴스에서는 아빠의 나이가 많을 때, 아이가 자폐증일 확률일 올라간다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고, 그때 폴 레이번은 55세였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더 파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나이가 아이에게 주는 다양한 연구결과를 모아 “아빠가 중요할까? (Do Fathers Matter?)”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물론, 그의 답은 “매우 중요하다”입니다.


레이번은 아빠의 나이가 올라갈수록 “조울증, 출산 이상, 구순열, 뇌수종, 소인증, 유산, 조산, 지적장애”의 확률이 증가하며 “특히 자폐증과 정신분열증 등의 정신질환의 위험이 두드러지게 증가한다”고 말합니다.



몇십 년 전 의사들은 정신분열증의 원인으로 어머니의 잘못된 육아 방법을 지목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개념은 “정신분열증을 만든 엄마(schizophrenogenic mother)”라는 단어로까지 만들어져 많은 어머니들을 고통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정신분열증의 주요 원인이 유전자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실 역시, 아이에게 좋지 않은 유전자를 물려주었다는 이유로 부모의 죄책감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정신분열증은 유전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유전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레이번은 정신분열증에 걸린 5명 중 4명은 그들의 가족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즉, 정신분열증은 어떤 집안의 내력과 무관하게 발병하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아빠의 정자에 돌연변이 유전자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성은 태어나기 전에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난자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정자는 일생동안 세포 분열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이는 분열과정에서 유전자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실제로 문제는 발생합니다. 정자세포는 1년에 20~30번 분열합니다.


“매 번의 분열마다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한 연구는 1년에 약 두 번의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도노프리오와 리히텐스타인은 1973년부터 2001년까지 스웨덴에서 태어난 모든 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를 보였습니다.


물론 나이 든 아빠에게도 장점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아기는 우발적인 실수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바램에 의한 보상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안정된 직장과 수입을 가지고 있으며, 나이 든 아버지를 가진 아이들은 자신이 더 사랑받으며 자랐다고 느낍니다. 또, 나이 든 아빠에 의해 정신질환의 확률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는 여전히 매우 낮습니다. 도노프리오의 대규모 연구에서 정신장애를 가진 아이의 비율은 3%를 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나이 든 아빠를 가진 아이들은 더 키가 컸고, 더 날씬했습니다. 이들이 더 오래 살지 모른다는 간접적 증거도 있습니다.


레이번의 이 책은 남자의 나이가 아기에게 주는 잠재적인 위험을 알리기 위해 쓰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사들은 이를 알리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것은 나이 든 남자가 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현재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 수정된 태아의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것입니다.


레이번의 아이들은 아직까지 건강합니다. 그들은 출산 직후 파악되는 장애는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열증은 대체로 성인이 된 이후 나타나며, 아직 그들에게는 걱정거리가 남아 있습니다.

- Genetic Literacy Project

출처:http://newspeppermint.com/2014/08/18/mfather/

사료로 찾은 고조선의 강역 - 고대사학자 심백강


<심백강 원장은 사료를 통해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후학(後學)들이 우리 고대사를 바르게 연구할 수 있도록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연대가 앞선 1차 사료를 수집ㆍ정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있다. 그와의 인터뷰를 2회에 걸쳐 나누어 싣는다.>



고조선은 중국 북경을 지배했다


아직도 우리 역사 학계에서 풀지 못하고 있는 수수께끼 중 하나가 바로 고조선(古朝鮮)의 강역(疆域) 문제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위치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으면서 우리 고대사는 그 뿌리인 출발부터 뒤엉켜 있는 형국이다. 우리 상고사(上古史)가 이처럼 부실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사료(史料) 부족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3세기 후반 일연(一然) 스님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이며, 그나마 책 한 장 분량에 그친다. 이처럼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료는 우리 고대사를 잡힐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그림자처럼, 보일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미로처럼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 사학계(史學界)는 일제가 연구해 놓은(혹은 의도적으로 왜곡해 놓은) 고대사(고조선사)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 원장. 

그는 "고대사는 사료가 생명"이라며 <사고전서> 등 1차 사료 발굴을 통해 

우리 고대사를 밝히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있다.


이런 우리 사학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학자가 있다. 바로 심백강(沈伯綱) 민족문화연구원 원장이다. 그는 “상고사(上古史)는 사료가 생명”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20여 년간 우리 고대사에 대한 연구와 사료(1차 사료)의 수집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심 원장이 눈을 돌린 사료는 바로 중국의 <사고전서>(四庫全書)다. <사고전서>는 청나라 건륭(乾隆: 1736~1795) 연간에 학자 1000여 명을 동원해 10년에 걸쳐 청나라 이전 중국의 사료를 집대성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료의 보고(寶庫)이다. 심 원장은 8만 권에 달하는 방대한 사료를 포함하고 있는 <사고전서>를 이 잡듯이 뒤져 우리 고대사와 관계된 모든 기록을 추려내 책으로 엮어냈다.

 

그는 또한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단군(檀君)과 고조선 관련 자료도 모두 발췌해서 후학(後學)들이 우리 상고사 관련 1차 사료를 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문제는 이렇게 심열을 기울여 만든 책이지만, 모두 한문으로 된 책이라 후학(後學)들이나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어렵다는 것. 심 박사는 요즘 국사학계에서 한문 원전을 해독할 수 있는 교수나 학자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사고전서>의 우리 역사 관련 기록을 번역하고 해설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지난 6월과 8월 <사고전서> 자료 중에 일차적으로 고조선과 한사군(漢四郡)의 낙랑(樂浪)관련 자료를 모아 펴냈다.  《사고전서 사료로 보는 한사군의 낙랑》(바른 역사)과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이라는 두 책에서 심 원장은 고조선과 낙랑관련 사료의 원문과 번역문, 해설문, 주석을 실어 누구라도 읽을 수 있게 편집했다.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사료는 국내학계는 물론이고, 중국이나 일본에도 인용이나 번역이 된 적이 없는 초역(初譯) 자료들이다.



낙랑의 위치가 곧 고조선의 강역 


고전의 정확한 번역과 상세한 주석, 그리고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을 붙이는 것은 단순한 한문 독해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국책연구기관에서도 하기 어려운 일을 심 원장 개인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국내에서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높은 한문 해독 실력을 갖춘 한학자이자 역사가, 문학가이기 때문이다. 한중(韓中) 고대사 전공으로 중국에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은 심 원장은 퇴계전서, 율곡전서, 조선왕조실록 등 국내 주요 고전과 역사 기록물을 번역했다. 또한 월간 현대문학 출신의 문학평론가로서 문사철(文史哲)에 두루 조예가 깊은 학자다.

 

지난 10월초 서울 광화문 부근에 있는 민족문화연구원 사무실에서 심백강 원장을 만났다. 심 원장은 “이번에 펴낸 두 책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보다 연대가 앞선 중국의 새로운 사료(사고전서)를 통해 고조선의 발상지와 강역을 고증한 것으로, 오랜 고대사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한국사의 척추를 바로 세운 작업”이라고 자평했다.

 

-원장님께서는 그동안 <조선왕조실록>이나 <사고전서>에서 우리 민족과 고대사 관련 자료를 많이 발췌하여 책으로 엮으셨는데, 이번에 특별히 <사고전서>에 있는 ‘고조선’과 ‘낙랑’에 대한 자료를 따로 묶어낸 이유가 있는지요.

 

“그동안 펴낸 책은 원전(原典)을 그대로 발췌해서 엮은 1차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작업은 이런 사료를 해석하고 주석을 달고, 해설을 하는 2차 작업에 해당합니다. 국내에 사료의 원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제한적이고, 특히 요즘에는 역사학과 교수 중에도 사료의 원전을 제대로 해독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질 일이 만무합니다. 따라서 제가 후학들을 위해 단순히 1차 자료를 모아서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 자료들을 직접 해석하고, 주석과 해설을 붙여 엮어 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고조선과 낙랑 부분에 관한 작업을 했으니 이어서 삼국시대에 관한 사료 정리 작업을 할 것입니다.”

 

-‘낙랑’은 한나라 사군(四郡)의 하나인데 어째서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지요.

 

“고조선이나 낙랑은 다 우리 상고사에 속합니다. 고조선은 우리나라 사료에 등장이라도 하지만, 중국 사료에는 거의 취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낙랑은 한무제(漢武帝: BC 156 ~ BC 87)가 고조선(위만 조선)을 침략해서 설치한 한사군(낙랑, 임둔, 진번, 현도) 중의 하나기 때문에 중국 문헌에 많이 등장을 합니다.

 

바로 이 낙랑과 현도(玄菟)가 고구려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낙랑의 위치가 중요한 것입니다. 기존 강단 사학(이병도 학설을 계승한 현재의 통설)의 주장처럼 낙랑군이 대동강 유역에 설치되었더라면, 고구려의 발상지도 이 부근이 되는 것이고, 낙랑이 대동강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었다면 고구려의 발상지도 다른 곳이 되기 때문에 무척 중요한 문제입니다.“

 


"더 이상 '사료의 빈곤' 주장은 통하지 않아"

 

-<사고전서>에 낙랑이 평양 대동강 유역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는 자료가 있는지요.

 

“매우 풍부하게 남아 있는 편입니다. 20여 종의 각기 다른 자료가 한사군의 낙랑군이 대동강 유역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 동쪽, 내몽고 남쪽, 요녕성 서쪽, 즉 ‘요서지역’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낙랑이 요서에 있었다면 고조선도 당연히 요서에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동안 강단 사학이 상고사 연구에서 그토록 강조해 온 ‘사료의 빈곤’ 주장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그저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들 낙랑 관련 사료가 여실히 입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국사 책에 실린 한사군의 위치.  

한사군이 압록강과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이병도 학설을 따르고 있다. 

심백강 원장은 "낙랑의 영토가 곧 고구려의 영토이기 때문에 낙랑의 정확한 위치 고증은 

우리 고대사의 척추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이미지 출처: 영토한국사(소나무)


-현재 학계의 통설은 고구려의 발상지이자 첫 수도를 중국 요녕성(遼寧省) 오녀산성(홀본 혹은 졸본) 부근으로 보고 있는데요.

 

“그 문제는 낙랑의 위치가 어디인가만 밝혀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출발지가 바로 낙랑군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통설은 고구려의 발상지를 압록강이나 대동강 유역으로 해놓았는데 이는 한사군인 낙랑, 임둔, 진번, 현도가 압록강을 중심으로 그 부근에 있었다는 가정하에 고정된 학설입니다.

 

이병도씨는 그 가운데 낙랑군이 특히 현재 북한의 평양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학설에 반발한 사람들이 소위 민족사학자들인 신채호, 정인보, 윤내현 같은 분들로 이들은 낙랑을 요동(신채호)이나 요서(정인보 등) 지역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신채호ㆍ정인보 같은 민족사학자들도 당시 <사고전서> 같은 방대한 중국 측 1차 사료를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역사의 강역을 요동이나 요서지역 이상 확대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분들이 <사고전서>를 보았다면 우리 고대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었을 겁니다.”

 

-현재의 심양(瀋陽) 부근을 흐르는 요하(遼河)를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것이죠?

 

“맞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요하의 동쪽인 요동 지방인 현재의 개주(盖州) 부근을, 정인보 선생은 요하의 서쪽 지방인 조양(朝陽)을 낙랑군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고전서>의 기록을 고증해 보니, 낙랑군은 하북성의 발해만을 끼고 현재의 북경(北京)과 천진(天津)의 남쪽 일대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동으로 당산(唐山) 천진을 포함하여 서쪽으로는 보정시(保定市) 수성진(遂城鎭)과 백석산(옛 갈석산)까지 이르는 지역입니다. 즉 이곳이 고조선의 강역입니다.”

 

-그 근거를 설명해 주시죠.

 

“당시 한나라 수도는 섬서성(陝西省)의 서안(西安)이었습니다. 한무제가 동쪽에 있던 고조선을 침략해서 낙랑군으로 삼은 겁니다. <전한서>(前漢書)에 ‘한무제가 동쪽으로는 갈석(碣石)을 지나 현도ㆍ낙랑으로써 군(郡)을 삼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갈석을 지나서 낙랑군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진태강지리지>(晉太康地理志)에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고 했습니다. 수성현은 현재의 보정시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낙랑군의 서쪽이 바로 갈석산과 수성현이라는 의미이고, 이곳이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고조선의 서쪽 변경이 어디까지인지 국내 학계에서 정확히 연구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고전서>의 기록을 통해 서쪽 변경의 국경을 찾아낸 것입니다.”

 


심백강 원장은 <사고전서>등 중국에서 펴낸 1차 사료를 토대로 고조선과 낙랑의 위치를 고증했다. 이에 따르면 고조선의 주 활동무대(중심지)는 오늘날 노룡현 일대(하북성 동쪽 일대)로, 그 세력 범위가 동쪽 발해만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수성현, 동북으로는 압록강까지 이른다. 심 원장은 "이 하북성 동쪽 일대가 바로 우리 배달민족(동이족)이 수천년간 한족(漢族)과 흥망을 다투던 지역"이라고 말했다. 심 원장은 최근 펴낸《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에서 북경 부근에 있는 '조하'가 예전에는 '조선하'였다는 것을 고증했다. 그는 "진시황과 한나라 시절에는 이 조하를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를 나누었기 때문에 오늘날 요녕성의 요하를 기준으로 나눈 요동ㆍ요서와는 다른 지역"이라고 밝혔다. /구글맵



-그러면 <전한서>에 등장하는 ‘갈석산’이나 ‘수성현’이 현재 북경과 천진 남쪽에 있는 보정시(수성진) 부근인지 어떻게 고증을 할 수 있는지요.

 

“일부 민족 사학자들이 이병도의 낙랑군 대동강 유역설을 비판하면서 낙랑군의 위치를 고증하려고, 나름 애를 썼습니다. 그중에 한 이론이 현재 ‘갈석산’이라는 산이 있는 하북성 동쪽 진황도시(秦皇島市)와 이웃한 창려현(昌黎縣) 동쪽 즉, 산해관(山海關) 부근을 낙랑군의 서쪽 변방으로 보는 이론입니다.

 

일부 민족 사학자들이 이곳을 고조선과 한(漢)나라와의 국경이 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이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그 부근에 ‘갈석산’이라는 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고전서>를 보기 전까지는 이 이론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후 중국 <사고전서> 기록을 차례로 고증하니 진황도시 부근의 갈석산은 <전한서>에 등장하는 그 갈석산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낙랑 위치 고증의 핵심인 '갈석산'과 '수성' 


-<전한서>에서 이야기하는 원래의 갈석산은 어디입니까.

 

“중국 역사상에 갈석산이 두 개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앞서 말한 하북성 동쪽 진황도시 창려현에 있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북성 남쪽 호타하 부근에 있던 갈석산입니다. 진태강지리지(晉太康地理志)에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서진(西晉: 265∼316) 시기에는 낙랑군에 수성현이 있고,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수당(隋唐) 시대 이후 갈석산이 지금의 하북성 북평군 노룡현(盧龍縣)에 있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수서 <지리지>, 당 두보의 <통전>, 송의 <태평환우기> 등). 문제는 갈석산이 있다고 언급된 북평군에는 ‘수성현’이 설치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서진 시대에 말한 수성현(遂城縣)에 있다는 갈석산과는 분명 다른 산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가 바로 <전한서>에 기록된 갈석산인데, 현재의 보정시 서수현 수성진 부근에 있습니다.”

 

-그곳에도 갈석산이 있다면 왜 많은 학자가 찾아내지 못했습니까.

 

“현재 보정시의 수성은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내려온 지명입니다. 낙랑군의 25개 현 중에 수성현만 빼고 현재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에 있던 갈석산은 도중에 이름이 바뀌면서 후대에 혼란을 준 것입니다.

 

<사기>에 보면 전국시대 종횡가의 대표적인 인물인 소진(蘇秦)은 연(燕)나라 문후(文候)를 만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연나라 동쪽에는 조선(朝鮮)과 요동(遼東)이 있고, 북쪽에는 임호(林胡)와 누번(樓煩)이 있으며, 서쪽에는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이 있고, 남쪽에는 호타(滹沱)와 역수(易水)가 있는데 지방이 2000리쯤 된다’(사기 열전). 이어서 그는 ‘연 나라가 남쪽에는 갈석(碣石)ㆍ안문(雁門)의 풍요로움이 있고, 북쪽으로는 대추와 밤의 수익이 있으므로 백성들이 비록 경작을 하지 않더라도 대추와 밤의 수익만 가지고도 충분할 것이니 이곳이야말로 소위 말하는 천혜의 땅이다’라고 했습니다.

 

소진은 바로 연나라 남쪽 변경에 호타하와 역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남쪽에는 갈석(碣石)ㆍ안문(雁門)의 풍요로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호타하와 역수는 지금도 하북성 보정시 남쪽에 있습니다. 역수는 역현(易縣) 부근에 있습니다. 소진은 이어서 ‘호타하를 건너고 역수를 건너서 4ㆍ5일을 넘기지 않아 국도(國都)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연나라의 수도에서 남쪽으로 4~5일 거리에 호타하와 역수가 있었던 것을 말합니다.

 

종합하면 갈석과 안문은 호타하와 역수 유역 부근에 위치한 연나라 남쪽 강토라는 말입니다. 안문은 현재 산서성 북쪽에 있는 안문산입니다. 만리장성의 9대 관문 중의 하나인 안문관도 있습니다. 즉, 연나라 남쪽의 안문산과 함께 거론된 갈석산은 현재 하북성 노룡현에 있는 갈석산과 동일한 산이 될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것입니다.”

 

-현장을 가보셨습니까.

 

“제가 현장을 답사했습니다. 가서 보니까 현장에 갈석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없습니다. 갈석산은 ‘백석산’이라고 글자 한 자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갈석산의 갈(碣)은 비석 중에 짤막한 돌로 비를 세우는 것을 특별히 ‘갈’이라고 합니다. 광개토대왕비처럼 큰 것은 비(碑)라고 하고요. 그래서 합쳐서 비갈(碑碣)이라고 하는데 백석산에 가니까 산의 돌이 전부 비석 같은 모양의 갈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지맥으로 연결된 낭아산(狼牙山)이 있는데, 이 역시 산 위에 돌들이 삐죽삐죽 한 것이 이리의 이빨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 ‘백석산’과 ‘낭아산’이 예전에 바로 갈석산으로 부르던 산입니다.”

 


“낙랑의 평양 대동강 유역설은 어불성설”

 

-그러니까 진황도시 창려현 부근의 갈석산은 한무제 당시의 갈석산이 아니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 갈석산은 서한 말엽 신왕조의 왕망시대에 ‘게석산’으로 출발했다가, 수당(隋唐) 시대에 이르러 갈석산으로 개명된 것입니다. 따라서 한무제가 설치한 현도ㆍ낙랑군은 바로 하북성 남쪽 호타하 부근에 위치한 갈석산을 중심으로 그 동쪽에 설치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한사군이 압록강과 대동강 유역에 설치되었다면, 하북성 남쪽 호타하 부근의 원래 갈석산은 물론 하북성 동쪽 창려현에 있는 갈석산과도 수천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갈석산과 한반도 사이에는 의무려산(醫巫閭山), 백두산 등 큰 산이 있고, 조하(潮河), 난하(灤河), 대릉하(大凌河), 압록강 등 여러 큰 강이 있습니다. 한무제가 대동강 유역에 낙랑군을 설치했다면, 수천리 밖에 있는 갈석산을 특징적인 산으로 들어 설명하지 않고, 백두산이나 압록강을 지나 현도ㆍ낙랑을 설치했다고 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만약 요녕성에 낙랑군을 설치했다면 가장 특징적인 산인 의무려산을 지나서 설치했다고 했을 겁니다.”

 

-혹시 전한시대 기록이 오기(誤記)일 수는 없는지요.

 

“한무제가 압록강을 건너 고조선을 평정해 놓고 잘못 기록해 놓았다는 주장인데, 논거가 너무 빈약합니다. 예를 들어 <전한서>에서 이 말을 한 당사자인 가연지(賈捐之)가 낙랑군이 설치된 지 500년이나 1000년 뒤쯤 사람이라면 그동안의 역사를 고증하는데 착오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불과 50년 뒤의 기록입니다. 50년 전에 일을 말하면서 공간적으로 수천리가 떨어진 지리를 혼동할 정도로 큰 착오를 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가연지는 한무제가 설치한 주애군(珠厓郡)의 폐기를 건의했고, 한원제가 이를 받아들였을 정도로 비중 있는 인물입니다. 이런 그가 사적인 저술이 아니라 황제에게 정중히 올리는 글에서 이런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이 기록이 잘못되었다면 후대에서 주석을 통해 바로잡았을 텐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동강 유역에 한사군의 낙랑군을 설치했다는 주장은 사대 식민사관적 논리를 따르는 근거 없는 역사 왜곡입니다.”

 

-그 밖에 낙랑군이 오늘날 보정시 부근이라는 근거가 더 있는지요.

 

“수성현에서 장성(長城)이 시작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이곳이 만리장성의 기점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옛 기록에 모두 맞으려면 현재의 보정시 수성진이 예전의 낙랑군 수성현이라는 지명이어야 하고, 여기에 갈석산이 있어야 하고, 또한 만리장성의 기점이 있어야 합니다. 단, 여기서 말하는 장성은 오늘날 북경 위에 있는 장성이 아니라, 진시황이 쌓은 ‘만리장성’입니다.

 

참고로 오늘날 북경 부근에 쌓은 장성은 명나라 때 쌓은 성이기 때문에 ‘명장성’(明長城)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것을 진시황의 장성과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역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진시황이 천하통일 후 천리장성을 쭉 연결해서 쌓은 것만이 ‘만리장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중에 연나라 장성이 가장 동쪽에 있었는데 그 기점이 바로 수성입니다. 거기가 예전 고조선과 접경지역이었으니까 당연히 장성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참고로, 현재 갈석산이 있는 산해관 부근의 창려현 쪽에는 연나라 장성이 없습니다.”

 


연나라가 점령한 고조선의 요서ㆍ요동은 북경 부근

 

-그나마 기존의 민족 사학자들이 고조선이나 낙랑의 서쪽 변경을 산해관까지 확장해서 보기는 했지만, 전혀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그 부근에는 수당시대에 와서 명칭이 ‘갈석산’이라고 바뀐 산이 하나 있다는 것 외에는 고대의 기록과 맞는 부분이 없습니다. 따라서 <진태강지리지>에 말한 지역이 아닙니다. 하북성 동쪽 진황도시 창려현에 있는 갈석산은 언제 이름이 바뀌었는가? <한서> 무제기에 갈석산에 대한 주석을 내면서 ‘게석산’을 ‘갈석산’으로 해석했는데, 그것이 시발이 되어 많은 사가(史家)들이 이를 근거로 게석산을 갈석산으로 간주함으로써 게석산이 갈석으로 둔갑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당 이후에 갈석산이 창려현쪽으로 옮겨오면서 전국시대의 연나라의 갈석산이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것이죠.” 

 


심백강 원장은 <조선왕조실록>과  중국측 기록인 <사고전서>에 있는 단군(檀君)과 고조선 관련 자료를 모두 발췌해서 후학(後學)들이 1차 사료를 통해 상고사를 연구할 수 있도록 길을 터 놓았다.

 

 

-소진이 연나라 동쪽에 ‘조선ㆍ요동이 있다’고 했는데 이 기록을 근거해도 오늘날 요동에 낙랑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요동ㆍ요서의 구분은 심양 앞에 남북으로 흐르는 요하(遼河)를 기준으로 나뉩니다. 하지만 진시황 시절이나 전국시대에는 요동 ㆍ요서를 오늘날의 요하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요동을 예전의 요동으로 해석하니까 연나라의 영토가 요동까지 차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전국시대에 연나라는 하북성 남쪽에 있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전국 7국 중 가장 약소국이 었습다. 춘추시대의 패권 국가였던 제(齊)나라도 산동성의 절반밖에 못 차지했던 상황인데 한 번도 패주(覇主)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연나라가 오늘날 요녕성 요동지역까지 진출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소진이 연나라 문후를 만나서 ‘연나라 영토가 2000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연나라가 강성할 때인데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입니다. 소진의 설명에 의하면 연나라는 동서로 좁고 길게 늘어져 있던 나라입니다. 중국은 이런 연나라의 영토를 요동까지 확장해서 요동은 물론 어떤 때는 압록강까지 확장해 놓은 것입니다.”

 

-연나라 강역에 대한 고증이 왜 중요한지요.

 

“연나라가 고조선을 쳐서 요서ㆍ요동 등 5군을 설치했는데 바로 그 요서ㆍ요동이 고조선이 통치한 지역이기 때문에 연나라 영토가 곧 고조선의 영토와 중첩이 되고, 후에 다시 낙랑이 됩니다. 문제는 방금 말씀드렸듯이 당시 요서ㆍ요동이 지금 심양 부근의 그 요서ㆍ요동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연나라 당시의 요서ㆍ요동 지역은 현재 북경 부근의 상수원이 있는 곳인데, 여기가 바로 연나라가 고조선을 쳐서 빼앗은 지역입니다.

 

중국 사학계나 일제의 반도사관을 따르는 우리 강단 사학의 논리라면 하북성 남쪽에 있던 작은 연 나라가 현재의 요동까지 차지한 초강대국이 됩니다. 이런 논리로 중국이 지금 동북공정을 한 것입니다.”

 


1500년 전 선비족의 금석문에 기록된 고조선의 위치 


-그러니까 고조선의 강역 고증은 유물조사까지 갈 것 없이 1차 사료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씀이시네요.

 

“더 결정적인 것은 고조선 영토에 대한 금석문(金石文)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무려 1500년 전의 선비족이 남긴 ‘두로공신도비’(豆盧公神道碑)가 그것인데 정말 귀중한 사료입니다. 사료는 오래될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문헌사료는 필사(筆寫) 과정에서 글자를 고칠 수가 있지만, 금석문은 그것이 거의 어렵기 때문에 더욱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이 기록에 요서에 건국한 전연(前燕)에 대해 설명하면서 ‘조선건국(朝鮮建國)’ 즉 ‘조선이 그 지역에서 건국했었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금석문은 고조선이 바로 요서에 있었다는 것을 확증해준 겁니다. 물론 이때의 요서는 오늘날의 요녕성의 요서 지역이 아니고, 고조선과 한사군, 연나라가 있던 하북성의 북경 부근 지역을 말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1차 사료가 왜 <삼국유사>에 기록되지 않았을까요.

 

“그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일연 같은 분이 이 비문을 봤다면 그리고, 이에 대해 단 한 줄만 인용을 했었더라도 우리 고대사가 이렇게 참담한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겁니다. <삼국유사>에 기록이 되었으면 일본이 아무리 우리 고대사를 위조한들 위조가 되겠습니까. 일본은 고조선의 역사 중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2000년의 역사를 ‘신화’ 혹은 ‘말이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잘라내버렸습니다. 그리고, 위만조선부터 역사로 인정해서 일본의 역사보다 우리나라 역사의 길이를 줄여놨습니다. 이런 일제의 반도사관을 강단 사학이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의 역사를 왜곡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조선의 역사만 비틀어 놓으면 뿌리를 비틀어 놓은 게 되고, 자연스럽게 우리 역사의 모든 부분이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고조선의 역사를 절반으로 줄이고, 그 강역도 압록강 이남으로 축소해놓은 것입니다.”



은(殷)은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 기자 조선으로 이어져


-이제부터는 고조선에 대해 본격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원장님의 설명을 요약하면 고조선의 영토는 한반도 혹은 압록강 부근이 아니라, 발해만 부근을 중심으로 노룡과 북경-천진을 아우르는 지역, 그리고 서남쪽으로는 오늘날의 보정시까지 이어진 하북성 일대라는 말씀이신데요.

 

“그 일대가 우리 민족, 즉 동이족(조선족)의 활동무대였습니다. 물론 동북쪽으로는 오늘날의 조양시를 포함하는 요서 지역과 압록강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은(殷)나라가 망하면서 기자가 유민을 이끌고 조선으로 건너와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기자는 자기 선대(先代)가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하는 중국 학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은나라는 우리 민족이 세웠다는 말이 되지 않는지요.

 

“일본 사람들은 기자가 하남성(河南省: 은허)에서 한반도의 대동강까지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리상으로 너무 멀고, 망명객 신분에 이(異)민족이 있는 지역을 지나서 한반도로 오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우리 사학계도 기자조선을 거의 취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한반도로 건너온 것이 아니라, 자기 종족들이 터를 잡고 살던 요서조선(진한 시대의 요서군) 지역으로 가서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심백강 원장의 인터뷰에 등장하는 주요 지명을 표시한 하북성 동부 일대 지도.

 


원나라 말기까지 존속한 '조선하' 명칭 


-고조선의 중심 도시나 무대를 확정할 수 있습니까.

 

“발해만에서 동북쪽 일대가 활동 영역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하북성 노룡현(盧龍縣) 부근이 고조선의 중심지입니다. 송나라 때 <태평환우기>의 기록에 여기에 ‘조선성(城)’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로는 증거가 부족한데, <사고전서>에서 노룡의 서쪽 북경 부근에 조선하(朝鮮河)가 있었다는 것을 찾았습니다.

 

송나라 때 나라에서 펴낸 병서(兵書)인 <무경총요>(武經總要)인데, 여기에 바로 ‘조선하’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조선하는 북경시 북쪽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듭니다. <무경총요>에 등장하는 ‘조선’은 어떤 조선을 말하는 것이며, 왜 북경 북쪽 지역에 이 강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경총요>가 편찬된 것은 이성계(李成桂)의 이씨(李氏) 조선 건국보다 348년이 앞섭니다. 따라서 압록강 이남에 건국되었던 ‘이성계의 조선’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조선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고대 조선의 주무대가 대륙 깊숙이 중원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기록입니다.”

 

-‘조선하’가 북경 부근에 있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요.

 

“잠시 정리를 해보면, 중국 한족(漢族)의 전통적인 활동지는 주로 섬서성(陝西省)입니다. 조선하는 고대 요서조선 수도의 서쪽에 있던 강입니다. 이렇게 보면 고대의 모든 기록이 다 맞아떨어집니다.

 

<사기> 열전에 섭하(涉河)가 건너서 왔다는 강도 조선하일 것이고, 위만이 건너서 왔다는 강도 조선하일 겁니다. 당연히 수(隋)나라가 조선을 치기 위해 건너왔다는 패수(浿水)도 이병도의 주장처럼 청천강이 아니고 조선하일 가능성이 큰 것이죠. ‘청천강 패수설’과 ‘대동강 낙랑설’은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과 반도사관의 핵심 요소입니다.”

 

-<무경총요>는 어떤 책입니까.

 

“이 책의 저자 증공량(曾公亮)은 북송(北宋) 왕조의 중신(重臣)입니다. 그는 이 책 외에도 <신당서>와 <영종실록> 편찬에 참여한 당시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군사가입니다. <무경총요>는 북송 왕조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군사가가 황제의 명을 받아 4년 동안 정력을 기울여 펴낸 역작으로 정사(正史)에 뒤지지 않는 권위 있는 사료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조선하가 허위일 수 없고, 저들이 허위로 조작하여 조선하를 기재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 조선하라는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까.

 

“제가 고증을 해보니 오늘날 북경 부근의 ‘조하’(潮河)가 바로 조선하입니다. 저의 이번 책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에서 <사고전서>의 자료를 바탕으로 조하가 왜 조선하인지 자세하게 고증했습니다. 최소한 원(元)나라 말년까지는 조선하라는 명칭이 존속했습니다. 명청(明淸) 시대에 이르러 조선하가 조하로 변경된 것 같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조선은 약화될 대로 약화된 압록강 이남의 손바닥만한 땅을 소유한 나라에 불과했고, 중원의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는 속국 신세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중원 수도 근처에 조선하가 있다는 것은 중국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고, 역사적 분쟁을 야기시킬 수도 있는 불편한 명칭이었을 겁니다.”

 


청나라 오임신이 저술한 <회도산해경광주>. <산해경>은  한나라 이전인 선진(先秦) 시대의 사료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다. 이 책 '해내경' 편에 고조선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심 원장은 "중국의 여러 학자들이 '해내경'은 조선기’(朝鮮記)라고 했는데, 고조선사와 관련된 직접사료를 확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최고 지리서 <산해경>, '동해 안쪽에 나라가 있으니…' 

 

-혹시 노룡현 쪽이 고조선의 주 활동 무대였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다른 기록도 있는지요.

 

“<산해경>(山海經)의 ‘해내경’(海內經)편을 보면 ‘동해의 안쪽, 북해(北海)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산해경광주>는 산해경에 나오는 ‘해내경’과 ‘대황경(大荒經)’을 ‘조선기’(朝鮮記)라고 했습니다. 즉 ‘(고)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인데, 고조선사와 관련된 중요한 직접 사료를 확보한 셈이 됩니다.

 

<산해경광주>는 청(淸)나라 때 오임신(吳任臣)이란 학자가 쓴 <산해경> 주석서입니다. <산해경>은 선진(先秦) 시대의 사료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입니다. 서한(西漢) 시대의 유명한 학자인 유흠(劉歆)은 <산해경>이 하(夏)나라의 우(禹)왕과 백익(伯益)의 저작이라고 했습니다. 이분이 근거 없는 말을 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사기>에도 <산해경>이 인용된 것을 보면 선진시대의 사료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동안 우리 고대사에서 사료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한대(漢代) 이전 고조선의 직접 사료인 <산해경> 중 ‘해내경’과 ‘대황경’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해경>에 말한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가 노룡현 부근입니까.

 

“풀이할 것도 없이 글자 그대로입니다. 지금의 황해를 예전에는 ‘동해’라고 했습니다. 한족의 근거지인 섬서성을 기준으로 보면 북해(北海)는 현재의 ‘발해만’밖에 없습니다. 발해의 다른 이름이 ‘북해’입니다.

 

<해내경>은 첫줄에서 조선의 위치를 언급하면서 ‘북해의 모퉁이’라고 했습니다. 삐죽 튀어나온 곳을 모퉁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북성 발해만 지역에 있는 진황도시 노룡현 부근이 바로 <산해경>이 말한 지역이 됩니다.

 

<태평환우기>에 ‘노룡현에 조선성이 있다’고 하고 ‘바로 기자가 봉함을 받은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진나라나 한나라 때는 이 지역을 ‘요서’라고 했습니다. 즉 조하의 동쪽이 요동, 조하의 서쪽이 요서로, 지금의 요동ㆍ요서하고 다른 기준입니다.

 

이처럼 옛날의 모든 기록이 고조선과 낙랑의 중심적 위치를 일괄적으로 진황도시 노룡현 일대로 맞아떨어지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이 현재의 요동이나 반도에 위치할 수가 없는 이유입니다.”

 

-예전에 조하(조선하)를 기준으로 요동ㆍ요서를 나눈 근거는 무엇인가요.

 

“〈산해경〉에 요수(遼水)는 동남쪽으로 흘러서 발해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요동ㆍ요서를 나누는 오늘날의 요수(요하)를 보세요. 서남쪽으로 흐르지 않습니까? 요녕성에서 지리 구조상 강이 동남쪽으로 흐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요녕성의 요하는 옛날 <산해경>에서 말해온 그 요수가 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요하로 바꾼 거죠.

 

거기에 반해 조하는 정확하게 동남쪽으로 흘러서 발해로 들어갑니다. 기록이 정확하잖아요. 이병도 같은 분들은 요동ㆍ요서에 대한 개념도 없었을 겁니다. 그냥 낙랑군이 요동군 동쪽이라고 하니까 대동강 유역이라고 본 것인데, 이는 <삼국사기>의 고구려가 요서군에 10성을 쌓았다는 기록과도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요동군에 한나라의 군이 설치되어 있는데 어떻게 압록강에 있다는 고구려가 요동군을 넘어서 성을 쌓을 수 있습니까. 강단 사학은 앞뒤가 안 맞으면 무조건 오류나 오기(誤記)라고 주장하고, 그것도 안되니까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부정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냥 옛 기록에 있는 그대로만 따르면 다 맞는다는 말씀이시네요.

 

“<사고전서>에 기록된 대로 요하를 조하로 보고, 노룡현 지역을 ‘요서고조선’의 평양으로 보면 고대사 전체가 다 맞아 들어갑니다. 그동안 사료가 없다 보니까 우리가 소모적인 논쟁으로, 더듬이 길 찾듯이 고대사를 다루었는데 이제 사료를 통해 다 밝혀졌으니까 더는 논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강단 사학은 새로운 사료가 나와도 자기들 통설하고 안 맞으면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배척을 합니다. 왜냐하면, <사고전서>에서 밝혀진 사료는 강단 사학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든탑을 허무는 것이 너무 아까우니까 아예 거들떠보려 하지 않고, 또 보려고 해도 원전을 읽을 만한 능력이 안되다 보니까 그동안 이런 내용이 보이지가 않았던 겁니다.”

 


심백강 원장이 최근 펴낸 《사고전서 사료로 보는 한사군의 낙랑》과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 심 원장은 계속해서 <사고전서>의 삼국시대 관련 사료를 펴낼 계획이다.



"북한이 만든 시조 단군릉은 가짜" 


-바로 그 강단 사학의 뿌리가 일제가 만든 반도사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 우려된다는 말씀이시죠.

 

“일본 사람들이 단군조선은 ‘신화(神話)’라고 해서 부정하고,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은 ‘거리가 멀어 말도 안 된다’며 부정했습니다.

 

이런 논리로 단군조선 1000년, 기자조선 1000년을 잘라내고, 위만(衛滿)조선부터 우리의 실제 역사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역사를 2300년으로 만들었는데, 일본의 2500년보다 역사가 짧아지게 됩니다. 이처럼 일본은 식민사관을 통해 우리 역사의 길이를 단절시켰고, 역사의 무대를 축소해 놓았습니다.”

 

-재야사학에서 <환단고기>(桓檀古記) 등의 사료를 가지고 우리 역사를 설명하기도 하는데요.

 

“먼저 알아야할 것은 <환단고기> 등을 가지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주로 ‘재야사학자’라하고, 신채호, 정인보 선생처럼 정사(正史) 사료를 가지고 연구를 한 사람들은 ‘민족사학자’로 구분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환단고기>는 우리나라 밖에 없는 사료이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면 <사고전서>는 한중일(韓中日) 삼국이 인정하는 정사 사료입니다. 사료는 연대가 오래될수록 가치가 있는데, 이런 원자료를 부정한다면 역사학자라고 할 수가 없죠.”

 

-말씀대로 중국 중원(中原)에서 활동하던 우리 민족은 어떤 계기로 한반도 쪽으로 영역을 계속해서 축소해 왔는지요.

 

“동북아시아에는 수많은 민족이 흥망(興亡) 했습니다. 돌궐, 흉노, 말갈, 여진…. 그 모든 민족이 중국에 동화되어 버렸지만, 오직 우리만이 아직도 남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영토, 언어, 전통, 민족, 역사를 모두 유지하면서 남아 있습니다. 바로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로마가 아무리 강성한들 지금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단군이 세운 그 조선이라는 이름에, 그 민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세계사에서 이처럼 생명력이 긴 민족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수천년의 역사적 뿌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순환 반복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니까 언젠가는 다시 옛날의 찬란했던 영광을 회복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고구려의 처음 주 무대가 노룡현 일대라면, 지금의 북한 평양(平壤)은 어떻게 된 것인지요.

 

“제가 다음번에 <사고전서>의 자료를 모아서 책으로 펴낼 부분이 바로 삼국의 역사입니다. 우리 역사는 고려 때까지만 해도 주 무대가 동북을 포함하는 역사였습니다. 반도(半島) 쪽으로 완전히 축소된 것은 고려 이후 조선조에 넘어오면서입니다.

 

고구려의 발상지가 바로 중국 노룡현 지방이고, 현재의 평양 천도는 그 한참 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칠 때 고구려의 수도가 바로 노룡 지방입니다. 이때 당(唐)나라에 요서평양(노룡 지역)을 내주고, 현재의 평양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번 책에서 자세하게 다룹니다.”

 

-북한은 “평양에서 단군의 시신이 발겼되었다”며 단군릉을 조성했습니다.

 

“고조선이 워낙 오래 존속되었기에 훗날 단군의 후손이나 왕족의 일부가 평양에 건너와 거주했을 개연성은 있지만, 그 무덤이 시조(始祖) 단군일 수는 없습니다. 단군에게 제사를 철저하게 지냈던 조선 시대에도 평양 일대 민간에서 단군 무덤이라고 전해오는 묘를 시조 단군의 무덤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요녕성 우하량 홍산문화 유적에서 발굴된 삼원 구조의 원형제단(좌)과

 내몽고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대규모 적석총 유적. 

/ 이미지 출처: 우실하 저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소나무)



동아시아 최초의 국가 고조선… 쏟아지는 유물ㆍ유적 증거 


-기록과 함께 유물ㆍ유적 같은 고고학적 증거가 받쳐 주어야 더욱 힘을 얻는 것 아닙니까.

 

“우리 민족이 원래 중원의 주인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나라를 세운 것이 바로 우리 동이족이 세운 ‘고조선’입니다. 이는 홍산문화(紅山文化)가 발굴되면서 입증되었습니다. 기록뿐 아니라 유물과 유적까지 뒷받침하는 것이죠. 홍산문화가 꽃핀 곳이 바로 우리 민족의 주 무대였던 요서군 지역입니다.

 

홍산문화의 3대 특징은 여신을 모신 사당과 원형제단, 적석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문화의 ‘특징’이라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그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섬서성처럼 중국 한족 문화가 융성한 지역(황화문명권)에서는 이런 특징을 가진 유적이 발굴되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 적석총은 우리 동이족 매장 문화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중국 황제는 무덤 조성 시 평지에 흙을 끌어모아 토갱(土坑)을 만들었습니다. 능(陵)과 태묘(太廟), 제단(祭壇) 등은 부락단계에서는 볼 수 없는 국가의 상징인데, 대규모 제단이 황화문명에 앞선 홍산문화에서 발견이 되었습니다.

 

홍산문화는 국가의 전야(前夜) 단계라고 합니다. 황화문명이 아직 국가 단계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때 벌써 국가의 전단계에 진입했다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 동이족(東夷族)이 거주하는 곳에서 먼저 문명이 시작되어 황화문명권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홍산문화 여신묘 유적지에서 발굴된 여신상. 

오른쪽은 두상이고, 왼쪽은 복원한 반가부좌상이다.



-홍산문화가 우리 민족이 창조한 문화라는 것이죠. 


“그것은 중국 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하루아침에 땅에서 솟아나올 수는 없잖아요. 이러한 문화의 전야(前夜) 위에서 고조선이 건국된 것입니다. 한반도 내에서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면 무슨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고인돌을 가지고 고대국가의 건국을 증명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바로 중원 대륙의 우리 민족이 살던 곳 요서지역에서 국가의 건국을 상징하는 유물이 최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저명한 고고학자들이 ‘중국 문명의 서광(曙光)이 홍산문화에서 열렸다’고 했습니다. 문명의 시작이 황화문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족의 무대는 섬서성이고, 동쪽은 동이족, 그 가운데 우리 ‘박달민족(배달민족)’의 주무대였습니다. 박달민족 국가를 한자로 쓰면 <관자>에 나오는 ‘발조선(發朝鮮)’이 되는 데, 현재 이 지역에 ‘아사달’이나 ‘박달’과 연관된 무수한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은 홍산문화도 중화문명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동북공정을 하고 있지 않나요.

 

“홍산문화를 발굴해놓고 보니까 기존 중화문명보다 앞서는 문명의 출발점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건국도 홍산문화에서 먼저 이루어졌고요.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용(龍)이 황화문명에서 발굴된 용보다 연대가 앞섭니다. 봉황(鳳凰)도 최초로 이쪽에서 나왔고요.

 

그러다 보니 ‘황화문명에서 문명이 시작되어 오랑캐에 문명을 전파했다’는 기존의 이론이 뒤집어 지게 된 것입니다. 중국문명의 출발점이 달라지다 보니까 아예 중국의 시조인 황제(黃帝)를 이쪽 지방으로 갖다놓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뒷받침하는 우리 강단 사학 이론"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한족 입장에서 동북지방은 동쪽과 북쪽 사이의 하북성, 요녕성, 길림성입니다. 즉 동쪽과 북쪽 사이를 일컫는 말인데 그동안 이 지역의 역사는 공백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연나라가 이 지역을 차지했다고 주장은 해왔지만, 명백한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래서 이 지역의 역사를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입니다. 동북공정은 중국 사람뿐 아니라 우리 강단 사학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강단 사학이 이룬 많은 연구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뒷받침하는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학회도 만들고, 정부의 움직임도 있지 않습니까.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겠다고 출범한 연구재단도 그간의 연구결과를 보면 기존의 일제나 이병도의 반도사관 학설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렇다 보니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미국 상원외교위원회에 보낸 자료가 결국 중국의 동북공정을 뒷받침하는 자료에 불과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일일이 비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고전서>에 기록된 ‘요서고조선’ ‘요서낙랑’ ‘요서고구려’(여기서 말하는 요서는 오늘날의 요서 지역이 아니라 진한시대의 요서군 지역임)만 바로 세우면 동북공정은 저절로 해결됩니다. <사고전서>에 기록된 모든 사료는 중국의 조상이 만든 중국 측 자료이고, 그 내용도 역사적 사실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중국 섬서성 함양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두로 영은비' 중의 조선국 기록 부분.


-우리가 합리적이고 치열하게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반박하면 중국도 인정할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군요.

 

“당연합니다. 사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부정하겠습니까. 예컨대 선비족(鮮卑族)은 고조선의 후예들입니다. 그런데 1500년 전에 세워진 선비족의 ‘두로공신도비문’이 지금 전해집니다. 어떤 이의 비문을 쓸 때는 당연히 그 사람의 조상(뿌리)부터 이야기하는데, 그 첫마디가 바로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이라고 했습니다.

 

즉 ‘조선을 건국하고 고죽이 임금이 되었다’고 한 겁니다. 선비 모용부(慕容部)가 나라를 세우고 활동한 지역이 요서와 요동 지구, 그리고 하북성 서북과 남부 지역을 포괄하는데, 이곳은 기자조선이 건국하고, 고죽국이 통치하고, 이후 한나라가 위만조선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사군을 설치한 곳입니다.

 

<삼국사기>에 ‘고구려가 본래 고죽국’이었다고 했는데, 제가 사료분석을 하니 고죽국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우리 동이족이 세운 나라가 분명합니다. 고죽국은 백이ㆍ숙제의 고사로 유명합니다. 이 고죽국이 바로 요서에 있었던 겁니다.”

 

-갑자기 ‘고죽국’까지 나오니까 좀 어렵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를 해주시죠.

 

“그러니까 발해만에서 가까운 노룡 지역에 조선성이 있었는데 시대에 따라 ‘고죽성’, ‘요서성’으로 불렸습니다. 요서성은 진시황이 이쪽 지역을 요서군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춘추시대에는 고죽국이 있었으니 ‘고죽성’이 있었던 것이고, 고조선 때는 조선이 있어서 ‘조선성’이란 이름이 있었던 겁니다. 시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하면 중국 동북지방 전체가 우리 역사이고, 우리 조상의 무대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교과서 개정으로 왜곡된 역사 바로 잡아야" 


갑골문자(좌)와 이보다 앞서는 골각문자(우).


-동북아에서 우리 민족이 최초로 국가를 세웠고, 은나라도 우리 민족의 한 갈래가 세웠다면 은나라의 갑골문자(甲骨文字)는 우리 민족이 만든 글자로 봐도 됩니까.

 

“갑골문자는 한자(漢字)가 아니라 ‘은나라의 문자’ 즉 은문자(殷文字)입니다. 갑골문자에서 4000천자(字)가량이 해독되었는데, 미해독 문자도 상당합니다. 이 정도의 문자가 통용될 정도라면 이미 이에 앞서 갑골문을 탄생시킨 문자 체계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 문자는 당연히 우리 민족이 만들었습니다(수년 전 산동성 창려현 지방에서 갑골문자보다 1000여년 앞선 골각문자가 발견됨=편집자주). 

 

한자(漢字)는 갑골문자를 한족이 더욱 발전시킨 문자입니다. 정리하면 한자는 당연히 갑골문을 토대로 한족이 발전시킨 글자이지만, 이 문자를 발생시키고 문명 자체를 연 서광은 우리 민족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 문명의 뿌리이자, 시초를 열어준 것이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혼자서 중국의 1차 사료를 수집ㆍ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현재 우리 역사는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반도사관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군은 신화이고, 기자는 허구이며, 위만은 연나라 사람이니까 우리 민족은 타율적이며, 지배를 받아야 하는 열등한 민족’이라는 것이 식민사관의 핵심입니다.

 

문제는 이런 식민사관을 아직도 학교에서 그대로 배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왜곡된 역사를 바꾸려면 교과서를 개정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자료를 정리해 놓아야 교과서를 개정할 수 있기 때문에 생명을 바쳐서 작업합니다.

 

중국과 일본은 자기 민족에 대한 긍지를 살리는 역사를 가르치지만, 우리는 대륙으로 한 번도 진출해보지 못하고 한반도 안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는 민족으로, 도저히 민족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역사를 가르칩니다. 로마나 한(漢) 왕조보다도 훨씬 위대했던 고조선만 바로 서면 동서화합, 남북통일도 문제가 없습니다.”

 

-동북공정에 맞서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사업은 범국가적으로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사학계의 주류가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데 아무리 학회나 재단이 만들어진들 연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일연 스님이 고조선에 대해 단 몇줄의 기사를 남김으로써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을 살려내는 공헌을 했습니다. 만약 일연 스님이 그 기록조차 안 남겼다면 후대에 누가 고조선에 관심을 가졌겠습니까.

 

제가 하는 이 일도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고조선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사료가 있어야 하는데, 제가 바로 그 사료를 찾아내서 세상에 내놓고 있는 겁니다.”

 


심백강 원장이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에 있는 '백이 숙제가 독서하던 곳'이라는 표지석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심 원장은 "고죽국은 우리 민족의 한 갈래가 세운 나라"라고 말했다.



"<사고전서> 학파의 탄생을 기대한다" 


-우리 사학계에 하실 말씀은.

 

“국사 학자라면 원전(原典)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영어 능력보다 한문 원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을 교수로 임명해야 합니다. 사료를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고대사학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내놓은 ‘요서낙랑’ ‘요서고조선’ 자료를 가지고도 박사학위 논문이 수십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북경 북쪽의 ‘조하’가 ‘조선하’라는 것을 밝히는데 3개의 자료를 인용했지만, 후학들이 더 연구하면 더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사고전서>는 동양 삼국이 공히 인정하는 정사 사료입니다. <사고전서>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사를 바로 세우면 미해결의 장으로 남아 있던 여러 난제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고전서>를 통해 한국사의 근간을 바로잡고, 동북공정에 대응하며, 한중(韓中) 양국이 대립각을 세우는 여러 문제에 대해 상호 우의(友誼)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고전서> 학파의 탄생을 기대합니다.”

 

심백강 박사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광복 이후 모든 분야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정권도 여(與)에서 야(野)로, 야에서 여로 여러 차례 교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70년 가까운 세월을 조금도 변화없이 식민사학을 계승한 이병도 학파가 줄기차게 주도하고 있는 것이 역사학계입니다.

 

이제 늦었지만, 역사학계도 하루빨리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야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그러한 흐름을 주도하기 어렵다면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요사이 한국 사회에 인문학 바람이 부는데 인문학의 핵심은 역사입니다. ‘역사광복’을 위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지혜와 힘을 모을 때입니다.”


출처: 

고조선은 중국 북경을 지배했다

은(殷)은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 기자 조선으로 이어져



고대 도교의 공과격(功過格) 입니다.

일종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임의로 功은 (+)로 過는 (-)로 표현했습니다.


지금 현실과 다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점수표를 한번 보세요. 


주로 여자 문제가 (-)가 크군요. 

 

 

功 , (+) 포인트


* 일생동안 두 여인과 접하지 않음 / 1000(+)

* 형제에게 좋은 일을 권함 / 100(+)

* 벗을 어려움에서 구함 / 100(+)

* 경전을 출판하여 세상에 폄 / 100(+)

* 한사람의 하녀에게 정조를 지키게 함 / 100(+)

* 부모의 이름을 드러냄 / 50(+)

* 타인의 가정불화를 그치게 함 / 50(+)

* 타인의 실패를 성공케 함 / 50(+)

* 낙태를 만류함 / 20(+)

* 1년간 동물을 죽이지 않음 / 20(+)

* 한권의 삿된 책을 불태움 / 10(+)

* 되질이나 저울질을 공평하게 함 / 10(+)

* 미인을 보고서도 유혹하지 않음 / 5(+)

* 1년간 소나 개고기를 먹지 않음 / 5(+)

* 1일간 음란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 / 1(+)

*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일을 금하게 함 / 1(+)

* 글씨 쓴 종이가 버려져 있을 때 주워서 태워버림 / 1(+)

*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나쁜 짓을 하지 않음 / 1일 1(+)

* 말을 삼가함 / 1일 1(+)

* 선배를 받들고 벗과 우호함 / 1일 1(+)



過, (-) 포인트

 

* 처녀나 비구니를 범함 / 300(-)

* 미망인, 여도사를 범함 / 300(-)

* 타인의 처를 범함 / 100(-)

* 부귀한 후에 처를 버림 / 100(-)

* 첩을 귀여워하여 처를 울림 / 100(-)

* 부모에게 불효 / 100(-)

* 사람을 살인 / 100(-)

* 타인의 결혼을 훼방 / 100(-)

* 의사가 이익을 위해 인명을 손상 / 100(-)

* 독약을 만듬 / 100(-)

* 타인을 꼬여 道樂(? 술, 도박)을 하게함 / 100(-)

* 道樂( ? 술, 도박)으로 몸이 병듬 / 100(-)

* 최음제를 제조함 / 50 (-)

* 이혼장을 대필함 / 50(-)

* 한권의 삿된 책을 출판 / 50(-)

* 하녀나 처를 학대함 / 30(-)

* 한 입으로 두말을 하여 남을 이간질함 / 30(-)

* 천신이나 조상을 모독함 / 20(-)

* 처자를 중시하여 부모를 박대함 / 10(-)

* 스승이나 선배를 비방 / 10(-)

* 공과 사를 혼동함 / 10(-)

* 나쁜 일인줄 알면서 행함 / 10(-)

* 술주정 / 5(-)

* 공갈협박 / 3(-)

* 장난으로 놀려 남을 상처줌 / 3(-)

* 북쪽을 향해 나쁜 말을 함 / 3(-)

* 북쪽을 향해 소변을 보거나 침 뱉음 / 3(-)

* 사람에게 도박을 권함 / 1회 3(-)

* 주변사람에게 형제의 일을 험담함 / 1(-)

* 부부가 불화함 / 1(-)

* 경이나 책을 읽으면서 잡념을 일으킴 / 1시간에 1(-)

* 밤에 벌거벗고 일어나 있음 / 1(-) 


- 비슷한 책으로 원요범의 인과실화라는 책도 있다는 군요. 





모스크바를 따라 고리끼 공원으로 내려갔지요. 

변화의 바람에 귀를 기울이면서. 


팔월의 한 여름밤 행진해 가는 군인들. 

변화의 바람을 들으면서. 


세계는 가까이 모여서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우리가 이렇게 형제처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내일은 불확실하지만

나는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어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순간의 마법으로 나를 데려가세요. 

영광스러운 밤에 미래의 어린이들이 

변화의 바람속에서 꿈결같은 시절을 보낼 수 있는 곳. 


길을 따라 걸으면서 

아득한 추억들을 영원한 과거 속에 묻고 


모스크바를 따라 고리끼 공원으로 내려갔죠. 

변화의 바람을 들으면서 


순간의 마음 속으로 나를 데려 가세요. 

영광스러운 밤에 그 꿈을 당신과 내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변화의 바람은 시대에 직면하여 강하게 불고 있어요. 

마음의 평화를 위해 자유의 종소리를 울릴 폭풍처럼. 

당신의 발라라이카가 노래하게 하세요. 

내 기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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