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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관점에 대하여, 기본 법칙, 근원 법칙이 우선 우리 자신의 의식 속에 대응하여 나타난다는 점이 정당화되어야만 한다. 우리를 자연이라는 모체(母體)로부터 떼어 내어 '자아'와 '세계'로 대립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괴테는 그의 논설 <자연>에서, 그 방식이 얼핏 보기에는 상당히 비학문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이 점을 고전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녀(자연)의 품속에 우리는 살고 있어도, 그녀가 낯설기만 하다. 그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는데, 비밀은 탄로하지 않는다." 괴테는 그러나 그 이면도 알고 있다. "인간 모두 그녀 안에 존재하고, 그녀는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한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킨 것이 진실인 것처럼, 우리가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자연에 속한다고 느끼는 것도 진실이다. 이것은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자연 그 자체의 효과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연을 향한 길을 다시 찾아야만 한다. ·········· 우리가 스스로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존재 안에 어떤 것을 함께 가지고 왔음에 틀림없다.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이 자연 존재를 다시 찾아내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다시금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먼저 우리 내부의 자연을 알아야만, 우리의 외부에서 자연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자연의 동일형이 우리의 인도자가 될 것이다. 이로써 우리의 진로가 보인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 깊숙이 하강하여서,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도피하면서 구해 내어 온 바로 그 요소를 찾으려고 한다. 


우리의 존재에 대한 연구가 그 수수께끼의 해답을 가져와야만 한다. 우리가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만 한다. 우리는 그저 막연한 '자아'가 아니라, 여기에는 '자아' 이상의 것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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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본래 옛적부터 소규모 단위의 자족적인 생활을 영위해왔다. 그런 삶에 자연은 부족함이 없었지만,
산업혁명과 대규모 생산.소비 즉 자본주의가 발생하며 새로운 불행이 커지게 됐다. 대다수가 아닌 소수만이 독점적 부와 쾌락을 누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결코 대다수 모두가 독점적 부와 쾌락을 누릴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세뇌되거나 믿고 있으며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그 모든 걸 감내할 수도 없고 감내하지도 않을 것인데,
지속적이지 않은 삶은 그 나락의 끝에 다다를 것이고 모두가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를 받을 것이고 살아남은 인류는 예전의 방식을 찾아 자족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자연의 모든 생물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시대의 사람이라는 존재만이 자연 속에 살면서 스스로를 분리시켜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문명이라는 것을 누린다고 생각하며 마음 속 공허함을 쾌락으로 채우며 하루 하루를 버텨간다.

조금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문명이라는 틀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삶인지를 자각하게 된다. 대규모의 집단적 시스템은 그만큼의 리스크를 안고가야 한다.

절대적 안정을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를 안다면 나는 결코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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