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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전을 읽는가
이탈로 칼비노 (지은이), 이소연 (옮긴이) | 민음사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독서기. 호메로스, 오비디우스 등의 고대 작가에서부터 스탕달, 톨스토이, 플로베르, 발자크를 비롯해 마크 트웨인, 찰스 디킨스, 헨리 제임스, 보르헤스 등의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30여 명의 고전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글을 모았다.

1950년대부터 198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일간지 서평이나 책의 서문 혹은 연설문으로 발표했던 글들을 묶은 것으로, 총 서른여섯 편의 에세이들은 대부분 채 몇 페이지가 되지 않는 짤막한 글들이다. 칼비노는 책의 서두에서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열네 가지를 설명하고, 자신이 개인적으로 정전(正典)으로 삼았던 작품들을 안내한다.

칼비노라는 한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읽어 온 작가들에게 바치는 열렬한 찬가이자, 그들과 나눈 격의 없는 대화를 담은 이 책은 작가가 아닌 '독자로서의' 칼비노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독서 편력을 따라가 봄으로써 그의 문학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하 리뷰

왜 고전을 읽는가—이탈로 칼비노

독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더라도 그 동안 읽은 책들을 떠 올려 보면 기억의 창고에서 떠올릴 수 있는 책이 몇 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리라. 나 역시 잡다하게 책을 읽은 것 같지만 영혼을 뒤흔든 책이나 애정이 가는 책들이 많지 않다. 갈증을 해소해주는 이상을 나에게 남긴 책들이 빈약함을 탄하면서 왜 이런 식으로 밖에 책을 읽지 않았나 하고 후회도 든다.

누구나 그렇듯 유년시절의 독서 체험이 평생을 지배하는 것 같다. 만일 초중고 시절 책을 멀리했다면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할 때도 책을 읽지 않을 확률이 높다. 책읽기는 습관이 지배하는 부분이 크다. 뒤집어 이야기 하면 초중고 때 독서가 주는 환희를 장년이 된 후에는 맛보기 힘 들다는 것이 된다. 나 역시 독서를 통해 받았던 감동이 어린 시절을 뛰어 넘지 못함을 실감한다. 내가 다녔던 시골고등학교는 3층짜리 도서관이 있었다. 방과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게 일상이었다. 2층은 개가식 열람실이었는데 한쪽 벽만 제외하고 서가가 쭉 둘러져 있었다. 장서의 대부분은 하드커버였고 먼지가 책갈피를 풍화시켜 그윽한 서향이 났다. 아, 그 시절 서가에 꽂힌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은 얼마나 위로 받았었던가?  나 는 그 때 톨스토이와 스탕달과 세익스피어들을 읽었다. 읽지 않았지만 낭만적인 책 제목도 생각난다. 헤밍웨이의 <강 건너 숲속으로> 라는 책이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지금껏 읽지 못한 책이다. 내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갈 때 환하게 등불을 밝혀준 책들의 무덤인 도서관은 언제나 가지런히 책을 메워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로지 그 책들의 겉장만 흘끗거릴 뿐이었다.

스탕달의 <적과 흑>이나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 같은 책은 죽을 때까지 나를 놔두지 않을 것이다. 요즘 고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기억의 창고를 아무리 뒤져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나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벌> 처럼 나를 옴쭉달싹 못하게 만든 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비노의 이 책 <왜 고전을 읽는가>를 샀는지 모른다. 요즘 나는 세르반테스의 <돈 끼호테>에 푹 빠져 있다. 초등학생용 축약본이 아닌 완역본을 읽는다.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합하면 1400 쪽이 넘는 대작이다. 밀란 쿤데라가 일년에 한번씩 <돈 끼호테>를 완독한다며 인류 최고의 책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쿤데라의 페이소스와 풍자는 세르반테스에 탯줄을 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언컨대 근대소설의 첫 장을 열어제낀 <돈끼호테> 만한 소설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년 소녀들이여, <돈 끼호테>를 읽어라!  사랑과 우정, 모험과 고독, 행복과 불행이 모두 여기에 들어 있다. <돈 끼호테> 완역본을 읽지 않은 자는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다.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 는 그의 독서편력기 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아직 읽지는 않았다. 그가 애정을 갖고 평생을 읽었던 책들을 회상하면서 써 내려간 독후기들을 읽다보면 시샘이 난다. 작가의 모든 것을 알 정도로 깊이 있는 독서를 한 것이 눈에 보인다. 허나 이 책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정도가 되야 쉽게 이해할만큼 난해한 부분이 있다. 아직 국내 번역본을 얻지 못한 책도 많이 나온다. 나는 책의 들머리에 있는 표제작 <왜 고전을 읽는가> 부분만 서점에서 읽어도 좋다고 본다. 지금 눈을 감고 자신이 읽었던 책들을 떠올려 보라!  무슨 책이 스치고 지나가는가?  그 책이 바로 고전이다. 칼비노가 고전에 대한 정의를 14 가지로 요약했다. 다음과 같다.     


1.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2. 고전이란 그것을 읽고 좋아하게 된 독자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조건에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들만이 그런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3. 고전이란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 책들이다. 그러한 작품들은 우리의 상상력 속에 잊을 수 없는 것으로 각인될 때나, 개인의 무의식이나 집단의 무의식이라는 가면을 쓴 채 기억의 지층 안에 숨어 있을 때 그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4. 고전이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책이다.

5.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6. 고전이란 독자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책이다.

7. 고전이란 이전에 행해졌던 해석의 그림자와 함께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며, 그것이 한 문화 혹은 여러 다른 문화들에 남긴 과거의 흔적들을 우리의 눈앞으로 다시 끌어오는 책들이다.

8. 고전이란 그것을 둘러싼 비평 담론이라는 구름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평의 구름들은 언제나 스스로 소멸한다.

9. 고전이란,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더욱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 창의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해 주는 책이다.

10. 고전이란 고대사회의 부적처럼 우주 전체를 드러내는 모든 책에 붙이는 이름이다.

11. 고전이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작품과 맺는 관계 안에서, 마침내는 그 작품과 대결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12. 고전이란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련의 위계 속에 속하는 작품이다. 다른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은 고전의 계보에서 하나의 작품이 차지하는 지위를 쉽게 알아차린다.

13. 고전이라 현실을 다루는 모든 글을 배경 소음으로 물러나게 만드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이 이 소음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4. 고전이란 배경 소음처럼 존속해서 남는 작품이며, 이는 고전과 가장 거리가 먼 현재에 대한 글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포카라-


목차

서문 7

왜 고전을 읽는가 9
<오디세이아> 속의 여러 오디세이아 21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 34
오비디우스와 우주의 인접성 43
하늘, 인간, 그리고 코끼리 61
네자미의 일곱 공주 78
티랑 로 블랑 89
<광란의 오를란도>의 구조 98
아리오스토의 명시선 111
지롤라모 카르다노 121
갈릴레오와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 129
달나라의 시라노 140
로빈슨 크루소와 상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관한 일기 148
<캉디드>의 서술 속도에 관하여 155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 162
자마리아 오르테스 171
스탕달과 먼지구름으로서의 지식 180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의 새로운 독자들을 위하여 199
발자크와 소설로서의 도시 209
찰스 디킨스의 <우리 서로의 친구> 217
플로베르의 <세 편의 이야기> 226
톨스토이의 <두 경기병> 230 
마크 트웨인의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 236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 244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해변의 별장> 249
콘래드와 선장 256
파스테르나크와 혁명 263
카를로 에밀리오 가다의 아티초크와도 같은 세계 290
가다의 <메룰라나 가(街)의 무서운 혼란> 294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시 「어느 날 아침」 304
몬탈레의 절벽 317
헤밍웨이와 우리 세대 323
프랑시스 퐁주 33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344
레몽 크노의 철학 356
파베세와 인간 희생 제의 381

편집자 주 387
옮긴이의 말―칼비노의 문학 지도를 따라서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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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통해 타자(他者)를 받아들이고 인격의 변화 일으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ézio · 68)는 한국을 사랑하는 프랑스 소설가다. 이화여대 해외 학술원의 석좌교수로서 올 한 해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 그는 노벨상 발표 일주일 전까지 서울에 있었다. 오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상을 받기에 앞서 4일 파리의 자택에서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한 르 클레지오는 "내가 서울에 있을 때 1유로가 약 1200원이었는데, 전 세계적 경제 위기의 여파로 인해 1유로가 거의 2000원이 될 정도로 원화 가치가 폭락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위로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보람' '정(情)' '매미' '삼국유사' 등의 한국어를 정확히 발음했다.

―언제 한국에 돌아올 건가.

"아마 2월이나 3월에 갈 것 같다. 이화여대 학술원과 상의할 일이 남았다. 호텔 숙박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그동안 이화여대에서 기숙사의 작은 방을 제공했었다. 사방이 흰 벽인 그 방은 집필실로 쓰기에 딱 좋았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소설 《허기의 간주곡》(Ritournelle de la faim)을 거기서 썼다."

―다시 오면 최소한 6개월 정도는 머물 것인가.

"그렇다. 한국을 떠나 있으면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매번 새롭게 익혀야 한다. 영어, 프랑스어와는 달리 한국어는 쉽게 배울 수 있는 독특한 언어다. 한글 읽기를 깨치는 데 하루면 족하다.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고 의사소통에 편리한 문자다."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이제 한국어까지 할 줄 안다니 놀랍다.

"아니, 아니(손사래를 치면서) 그냥 한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이다. 한국어의 특징을 보여주는 단어들로 '보람'과 '정'을 꼽을 수 있다. '보람'은 용기를 북돋우면서 희생도 요구하는 독특한 말이다. 영어와 프랑스어에는 합당한 번역어가 없다. '정'도 그렇다.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인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내가 남에게 정을 준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남이 정을 달라고 하는 것은 내게 부정적이지 않은가(웃음)."

―서울이 그리운가.

"그럼, 그럼….(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서울은 역동적인 도시다. 파리는 몇 년을 떠났다가 돌아와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서울은 두 달만 비우면 새 건물이 들어선다. 물론 서울의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은 매우 크고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강이다. 서울에는 나무가 울창하고 새들이 지저귀기 때문에 산책하기 좋은 언덕이 약 50군데나 있다. 특히 여름철에 '매미'가 노래하는 소리를 이화여대에서 들으면서 나는 현대문명과 농경사회의 혼합을 느꼈다. 서울처럼 매미 울음 소리가 자동차 소음보다 더 큰 수도(首都)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당신은 《삼국유사》도 읽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다. 《삼국유사》를 현재 프랑스어로 번역 중인 원고를 읽었고 영어판도 읽어봤다. 프랑스인들은 한국이 프랑스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잘 모르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아주 다른 한국 문화의 원류를 담은 설화와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올 것이다."

―당신은 첫 소설《조서》에서 유년기는 자연과 소통하는 '유희적 우주'라고 강조했고, 다른 소설에서도 유년기의 의미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다.

"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의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공부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린 시절을 도둑맞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당신은 오늘날 문학의 위기를 의식한 듯 '소설을 계속 읽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던졌다.

"나는 '문학을 통한 세계 이해'를 사랑한다. 과학 서적을 통해 세계를 이해할 때와는 달리 우리는 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타자'(他者)를 받아들이게 되고,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인격'(personalit�)에 변화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당신이 황석영의 소설을 읽을 때 당신은 그가 말하는 것에 무관심할 수 없고, 황석영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황석영 소설을 읽으면서 한국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마찬가지로 나는 동시대 한국 작가들 중에서 여성 소설가 한강(韓江)의 작품을 주목한다. 그녀는 언론이나 사회학 서적에서 읽을 수 없는 한국적 삶의 신산(辛酸)을 아주 간결하면서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또한 이승우의 소설도 주의 깊게 읽었다."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릴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당신이 할 수상 연설의 주제는 무엇인가.

"문학에 관한 회의주의와 낙관주의를 함께 말할 것이다. 작가가 빈민들의 편에 서서 소설을 썼는데, 정작 그 빈민들은 소설책을 사 볼 여유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 문학의 모순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 아내가 문학의 낙관적 측면을 일깨워 줬다. 문학을 통해 사람들이 문자를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문학은 문맹 퇴치에 가장 좋은 수단이다. 모든 작가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오늘날 전 세계가 경제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문학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경제 전문가가 아닌 작가들이 문제 해결에 직접 기여할 일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작가들은 부유한 나라를 향해 가난한 나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고통을 분담하라고 촉구할 수 있다."


르 클레지오는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68)는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다. 아내 제미아는 모로코 출신이다. 르 클레지오의 조상들은 프랑스 부르타뉴 지방에 살다가 대혁명 기간 중 가난을 피해 인도양의 모리셔스섬에 정착했고 이 섬은 후에 영국 식민지가 됐다. 부친은 나이지리아 등에서 20여 년 동안 의사로 활동했다. 그의 소설 《아프리카인》은 부친의 일생을 회상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최신작 《허기의 간주곡》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에서 살았던 모친의 체험에 상상력과 허구를 곁들인 소설이다.

르 클레지오는 1963년 첫 소설 《조서》로 유럽의 현대 문명을 비판,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미국 등을 떠돌아 다니면서 '유목작가'로 변신해 제3세계의 다양한 신화와 역사 탐구를 바탕으로 선진국 주도의 획일적 세계화를 비판했다. 40권이 넘는 작품 중 《홍수》 등 10여 권이 1960년대 말부터 한국어로 꾸준히 번역돼왔다. 스웨덴 한림원은 '새로운 출발과 시적 모험, 감각적 황홀의 작가이자, 지배 문명 너머 혹은 그 저변에서 인류를 탐구하는 작가'라며 2008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다.
-조선일보파리,박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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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전야 - 한국경제의 파국을 대비하라
서지우 | 지안

아고라 경제논객 SDE, 한국경제에 경고장을 던지다

다음 아고라 등에 'SDE'라는 필명으로 한국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글들을 써 온 저자 서지우의 현실경제 해부와 전망을 담았다. 한국 경제의 위기의 원인과 과정, 미래를 이론과 실물, 국제경제와 한국경제, 주식-채권-외환 시장을 넘나들며 분석한다.

한국 경제는 어쩌다 위기를 맞았는가, 국제금융시장의 위기가 한국에서 어떻게 증폭되어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는가, 정부의 부양책이 왜 위기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가,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결국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우리 경제가 지난 10년간 무지와 탐욕에 빠져 있다가 이제는 금융공황, 심지어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위험에까지 빠지고 있음을 경고한다. 여기다 대증적이고 정치적인 정부 정책들이 어떻게 사태를 극단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는지 동서고금의 역사적 사례와 각종 데이터를 통해 보여준다.

단지 우려와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가 지금의 고통을 인내하고 미래를 선택한다면,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건설사 구조조정, 부실 은행권 정리, 단기간 고금리 처방, 급속한 소비 위축, 그 후의 과감한 체질 개선 등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알려준다.


-리뷰-
서지우의 <공황전야>는 김광수연구소의 <위기의 한국경제>와 함께 한국인이 쓴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 및 처방전을 제시해 놓은 귀한 책이다. 나는 <위기의 한국경제>도 읽었지만 <공황전야>가 훨씬 나를 계몽하는 효과가 컸다. 적절한 톤을 유지하면서 치밀하게 증거를 들이대고 논리를 제시한다. 어느 경제학자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 논객 같았다. 책은 IMF가 왜 왔는지부터 시작하며 다시 금융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장을 할애한다. 끝에는 우리 경제가 어떤 처방전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언급해 놓고 있다. 서지우씨는 고금리 처방전을 통해 위기를 탈출 하라고 조언한다. 이 부분은 이렇다. 고금리 처방을 은행 부분 정상화를 이루고 한계기업을 정리하며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한 예방주사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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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경제 관련 추천도서를 물어보시는 분이 계시는데, 제가 경제를 잘 알지 못하면서 추천하기가 뭐해서 좀 망설여지는군요. 그래도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제가 읽었거나 읽을 계획인 몇권을 소개합니다.

공황전야 (서지우) - 아고라에 꾸준히 글을 올리는 SDE님의 책입니다. 최근에 나왔고 이번 경제 위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외국에도 잘 없는 책입니다 (원래 출판이라는 것이 준비기간이 오래 걸려 지금 경제위기를 다룬 책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아고라에서 본 SDE님의 글은 늘 흥미롭기 때문에 책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단, 책 제목을 보니 공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내용 같은데, 공황이 다가왔는지의 여부는 여러분이 직접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가 미국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해 쓴 글입니다. 미국에 대한 내용이지만 잘 읽어보면 한국도 거의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왜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중산층이 가난해지는지 설명한 부분이 인상에 남네요. 원재는 The conscience of a liberal.

조지 소로스,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조지 소로스) - 퀀텀 펀드를 운영하는 금융계의 실력자 조지 소로스가 이번 경제위기를 어떻게 보는지 설명한 책. 소로스는 칼 포퍼 밑에서 철학을 배웠고, 지금도 철학자가 되기 원하이지만 철학자도 대중도 외면해 스스로를 "실패한 철학자"라고 부르더군요. 책이 재미있지는 않지만, 큰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번 경제위기를 설명하려는 노력은 분명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원재 The New Paradigm for Financial Markets

격동의 시대 (앨런 그린스펀) -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 제공자로 많은 비난을 받는 그린스펀의 회고록. FRB 의장으로 그가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단,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쓴 자서전은 늘 자신의 결정을 옹호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객관적인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원재 The Age of Turbulence

경제학 콘서트 (팀 하포드) -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상황을 경제학의 원리로 설명한 책입니다. 그냥 흥미롭게 읽기 좋은 책. 원저 Undercover Economist. 저자인 팀 하포드는 최근에 비슷한 형식으로 Logic of Life을 내놓았는데, 인간은 늘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내용입니다.

천재들의 실패 (로저 로웬스타인) - 롱텀캐피탈 매니지먼트의 몰락을 다룬 책. 파생상품이 생겨나던 초기 이야기라 요즘 사태를 바라보는데도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죠. 어쨌든 이야기 자체가 매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서 읽기에 좋더군요. 원제는 When Genius Failed.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 워낙 유명한 책인데, 저도 읽어보질 못했습니다. 다양한 경제학자의 이론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보이네요. 한국가면 사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원제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블랙 스완 (Nassim Nicholas Taleb) - 나심 탈렙이 쓴 이 두 책은 세상에는 우연히 큰 사건이 발생할 때가 많기에 너무 합리적인 예측을 의존하면 안된다는 경고를 담았습니다. 흥미롭게도 탈렙이 Fooled by Randomness를 출간한 직후에 9/11 사태가 터졌고, Black Swan을 출간한 직후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습니다. 이런 작가는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도록 컴퓨터를 압수해야 하는게 아닐찌. 원제 Fooled by Randomness, Black Swan

라이어스포커 (Michael Lewis) - 전에도 언급한 마이클 루이스의 월스트리트 경험기. 월스트리트에 대한 환상을 깨는 내부자의 고발이죠. 원제 Liar's Poker


이제 영어책 몇권 소개하죠.

Financial Reckoning Day - dailyreckoning을 운영하는 William Bonner와 Addison Wiggin이 쓴 경제 예측. 이들은 절약, 저축은 하지 않고 빚을 내서 경제를 운영하는 미국은 언젠가 파국을 맞으리라고 예측합니다. 이 책이 2004년에 나왔는데, 요즘 이 책의 예언이 현실화한 것이죠 (이들은 이미 몇년 전 부터 주식을 팔고 금을 사라고 충고했는데, 이들의 말을 들었으면 이번 경제 위기를 훨씬 잘 대비할 수 있었겠죠).
-cim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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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볼 수 없게 된 사람들

예전부터 읽어봐야지 싶은 책이었는데,

영화가 개봉한단 소식에 그렇다면 영화를 먼저 보고 읽어야겠다 - 책으로 읽은 거 영화로 봐서 만족스러운 경우는 드무니까-라고 미루어왔는데 어쩌다보니 개봉 직전 그냥 책을 읽게 되었다.

역시 영화는 못 보겠다, 이건... 책으로 읽었으니까라는 이유가 아니라 너무 우웩~스러울 것 같아서.  지저분한 오물 천지 묘사며, 시체가 썩어나는 거리며... 너무 상상하며 읽었나보다. 결말부분이 차이가 있는 모양이라 좀 궁금하긴 한데...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선 며칠동안 밥도 못 넘기는 건 아닐까.... 뭐,내 식탐이 그 정도에 굴할  없긴 하지만 말이다.

어느날 한 남자가 아무 이유없이 시력을 잃는다. 그 후 그 남자가 - 볼 수는 없지만 - 볼 수 있는 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실명이 전염되고, 전염된 자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전염된다.

정부는 실명한 그들을 철거예정이던 정신병원 건물에 모아놓고 관리한다.

"정부는 정부의 정당한 의무로 간주되는 행동을 긴급하게 이행할 수밖에 없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현재의 위기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주민을 보호가기 위한 조치였다."라고 거듭 방송하지만 사실 병의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고, 전염이 두려워 아무도 접근해서 연구할 수도 없으니, 실명바이러스(?) 보균자들의 사망과 함께 실명병도 사라지길 바랐던 것일게다.

그러니 그 건물 안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 모여서 지내게 되는 것인데...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 사람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주인공인, 의사의 아내- 그 안에서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그녀는 그 모습을 속속들이 관찰하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믿고 있고, 자신도 보이지 않으니 마음대로 행동하고 수치심을 잃어간다. 그런데 오히려 앞이 보이는 그녀는 그 모습을 보기가 민망하고 고통스럽고 처참한 기분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보이는 나를 봄으로써 인간은 인간답게 된다는 이야기인가.

여기에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이 나타나고, 인간답기 위해선 그에 저항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있는 병실인 우병동 1호실 사람들이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단순하게 그들이 소설의 준주인공이니까... 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의사 아내의 시선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시선이란 꼭 육체적인 시각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터.

우여곡절 끝에 정신병원에서 나온 이들은 첫번째 눈먼 사람의 집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 작가는 자신의 집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자 비어있던 그 집에서 현재에 대한 기록을 남기며 지내고 있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작가라며 자신조차 볼 수 없는 글을 남기는 무의미한 짓을 한다. 자신은 비록 시력과 함께 이성도 잃은 사람에게  자기 집을 빼앗겼지만 현재 사는 집의 주인이 나타나자 원주인과 타협하여 이성적으로 상황을 해결하고자하는 모습을 보인다. 왜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먹고 자고 싸고 섹스할 생각만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이성을 기대하고 눈먼 육체에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나오는 걸까. 그게 바로 자신을 보는 시선의 유무가 아닐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을 보는 눈. 그것은 아마 눈멀었어도 눈멀지 않을 수 있는 모양이다. 이 소설대로라면 극히 일부 사람의 경우에만.

그냥 한번 너희들을 시험해본 거야...라는 듯이 모두들 이번엔 아무 이유없이 눈 멀었던 순서대로 앞을 보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성인이 된 후 한 시기동안 이런 실명상태를 거치게 되고 그동안 남을 믿고 의지해야하고, 다른이들은 이런 시기를 거치는 사람을 도와야만 한다면 어떨까? 이타심과 배려심이 깊어지지 않을까?

'어둠 속의 대화'라는 체험전이라고해야하나... 그런 것이 있는데(우리나라에선 예술의 전당에서)  아주 캄캄하게 해놓고 시각장애인들의 상황을 겪어보도록 만든 전시이다. 경험해보면 꽤나 느끼는 것이 많다던데 그런 느낌을 위한 재앙이었던 걸까? 이 재앙 후 사람들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삶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그런데 꼭 실명이 아니더라도 '인생 끝'이라는 느낌의 고통스런 시기를 많은 사람들이 겪게 되지만 그 시기를 지난 후 성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망가져버리거나 악해져버리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쓸데없는 상상같기도 하다.

작가는 볼 수 없었다가 다시 보게 된 사람들이 어떠하리라 묘사해 줄 지 궁금해진다.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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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책은 항상 흥미롭습니다.
역사를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더더욱.

전쟁기획자들이라는 책을 오늘부터 읽고 있습니다.
시장과, 분쟁, 정치의 삼각관계를 이야기 합니다.
전쟁도 결국 권력문제고, 그 근원은 경제적 요인이 크다 라는 이야길 하고 있는데,
꽤나 괜찮아 보입니다.

음모론을 꺼내는건 뭐 문제가 있겠지만...
정치적인 권력 구도로 보는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빌더버그든, 삼각위원회든, 프리메이슨이든,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국가간의 권력 관계와, 그 아래 기저에 깔린 돈문제를 보자는거죠.

베이스로,
기본적인 역사 이해가 필요하고,
경제적 매커니즘을 어느정도 아는게 좋습니다.
이 책 생각보다 설명이 쉬워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른 번역서 보단 쉽게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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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 하이에크

 

요즘 케인즈가 무덤에서 불려 나와 제 2의 전성기를 맞는 모양이다. 반면 신자유주의의 대부격인 하이에크나 그의 사상적 제자 뻘인 밀턴 프리드먼은 부관참시도 모자랄만큼 비난을 받고 있다. 하이에크의 경제학에서 사상사적 족보를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가장 잘 보살필 것이라며 자유주의 입장을 내세웠던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를 스승으로 하며 시카고 학파의 산파인 밀턴 프리드먼에게 의발을 건네며 법맥을 전수한다. 하이에크의 경제사상을 받아들여 나라를 운영한 대표적인 이가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좌판을 깐 정치인들로 작금의 경제공황을 야기시킨 자로 지목된다. 노동 유연화만이 살길이라며 노조를 부정하고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았다.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작은 정부를 추구하며 부유한 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행위가 기업을 살리는 길이라며 옹호했던 자들이다. 레이건과 대처는 일시적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작금의 사태를 야기한 뿌리로 지목되면서 그들 역시 죽어서도 맘 편하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자유주의자를 자칭하는 보수 양아치 떨거지 새끼들 수효를 세자면 수십 트럭 분량은 나오겠지만 멘 앞에 복거일이라는 떠중이가 있음을 부기한다. 나는 존경하는 고종석이 도대체 복거일의 어떤 면이 존경스럽다고 그를 인정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는 부분일 것이다) 설사 그를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복거일의 사고 '틀' 자체가 틀려 처먹었는데 어느 빛나는 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고 의아심이 들곤 한다. 복거일의 쌍판만 봐도 구역질이 난다.

 

케인즈와 헤이에크 사상을 대비시키면서 시장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극명성을 좇아간 이 책은 출판사 ‘김영사’에서 기획한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는 상당히 참신한 기획물이라고 본다. 대학생이나 교양에 목 마른 일반인들, 고등학생 수능대비서로도 손색이 없다.

 

 

케인즈 -- 인간은 장기적으로 죽는다!

 

케인즈 사상은 말하는 것은 너무 진부할 만큼 알려져 있지만 핵심은 “ 정부 개입의 옹호” 이다. 세이라는 경제학자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했다. 물건을 만들어내면 누군가 사게 된다는 것. 고전학파 시각이다. 고전학파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수급의 균형을 자동으로 맞춘다고 주장한다. 케인즈는 이를 전면 부정한다. 공급 과잉으로 대공황이 온 부분을 고전학파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고전학파 자유주의자들은 공황이 오더라도 시장이 균형점을 찾아갈 때까지 그대로 놔두면 된다고 말하며, 심지어 어떤 덜떨어진 경제학자는 ‘공황은 좋은 것이여’ 하며 예찬론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때 케인즈가 그들에게 톡 쏘아 부친 말이 있다. “장기적으로 인간은 모두 뒈진다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시장이 균형을 찾아서 공황을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만큼 인간의 삶은 장기적이지 못하다는 것. 정부가 나서서 구제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이에크는 정부가 나서는 어떤 상황도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반대의견을 제출한다. 정부의 개입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노예의 길>로 들어선다며 극단적 자유주의론을 옹호했다. 밀턴 프리드먼 역시 하이에크 못지 않다. 프리드먼은 나쁜 약을 제조해서 팔아도 그걸 막으면 안된다는 극단적 비유를 통해서까지 자유시장을 옹호했다. 시장이 나쁜 약을 척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규제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내야할 인간의 자유가 과연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로널드 레이건이 멍석을 깔고 밀튼 프리드먼이 이론적 뒷받침을 했으며 전쟁광집단인 네오콘들이 정신적 자양분으로 받아들였던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파토 내버렸다. 그들은 금융산업간 규제를 풀고 헤지펀드들이 난장을 칠 수 있도록 모든 규제의 장벽을 제거했다. 이제 세상은 그들이 그렇게 옹호했던 '자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누구를 위한 자유였던가?)  시장 자유주의자들이 깨버린 판을 설거지하러 불려온 자가 다시 케인즈라는 것도 씁쓸하다. 과연 정부는 판쓰리 지경까지 와 버린 경제를 추스려서 똑바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가?  정부는 자본가들의 로비와 이익추구 앞에서 초연하고 공평무사하게 행정할 능력이 있는가?  대공황 탈출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시절의 케인즈주의와 지금의 케인즈주의는 너무도 다른 환경을 갖고 있지 않은가?  월가 자본가들의 헌금으로 대통령이 된 자가 월가의 이익을 배반하면서 서민들의 이익을 옹호해줄 수 있는가?  오늘 박노자 선생의 한겨레 칼럼 “오마바 당선을 별로 반기지 않는 이유” 에서 의문부호를 찍는 부분이다.

 

“ 과연 명문고교-컬럼비아대 학부-하버드대 대학원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별 어려움 없이 거친 중산계층의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백인(7%)보다 거의 세 배 가까운 빈곤율(20%)을 보이는 흑인사회 전체의 비참한 상황이 약간이라도 개선될 수 있겠는가? 미국도 우리처럼 빈곤이 대물림 되는 사회인데, 학력·경제력이 약한 부모를 둔 탓에 출발점부터 불리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출세할 수 없는 이들의 고충을 해결하자면 빈민가 공립학교의 수준 향상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는 등 복지주의 정책을 활발히 펴야 할 것이다. 오바마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제너럴 모터스(GM)나 포드 등 거대 재벌들이 공황의 파도에 떠밀려 정부 지원책이 있지 않고서는 파산으로 치달을 수 있는 오늘날과 같은 비상시에 말이다. 최고 통치자가 흑인이 돼도, 미국의 사회·정치 구조상으로 ‘기업 복지’와 ‘민중 복지’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할 때 늘 전자를 선택하게 돼 있다.”

 

 

자본주의 이후는 없는가?

 

현재 경제상황 타개는 케인지언의 손을 빌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규제와 정부개입이 당연시 되고 있다. 국민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데 정부라도 나서서 돈을 뿌려야 한다는 폴 크루그먼의 주장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정부의 취로사업만이 공황을 타개할 유일한 길인 셈이다. 이 책 <케인즈 & 하이에크>는 자본주의 체제를 위기에서 일으켜 세우려는 자(케인즈)와 전체주의와 맞서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려는 자 (하이에크) 간 논쟁이다.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책이다. 일독할만하다. 책을 읽고도 개운치 않는 이유는 자본주의는 과연 위기에서 구해낼만한, 옹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체제의 대안은 없는 것인가?  무덤에서 불려 나온 케인즈가 자본주의를 수술한다 한들 땜빵 밖에 더 되겠는가?  지금 상황에서는 땜빵이라도 빨리 이루어지기를 비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앞으로 다가올 한 겨울이 두려울 뿐이다.       

-포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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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와이즈먼

우주식민지를 개척해야 한다는 스티븐 호킹의 주장과 앨런 와이즈먼(Alan Weisman)의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이한중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은 극단을 달린다. 그래도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상상은 인간의 영역을 지구 대기권 바깥으로 확장하자는 제안보다 현실적이다.

우리 모두가 사라질, 그것도 당장 사라질 확률은 꽤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생물들은 다 남고 인간만 사라질 가능성은 더 희박하지만, 그래도 제로보다는 높다.

그렇다고 인간 없는 세상에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이 책의 몇 가지 점들이 유감스럽다. 우선, 약 4만 8,000년 전 호주 대륙을 시작으로 인류가 신대륙에 발을 디딜 때마다 마주친 동물들이 멸종했다는 이른바 ‘전격전 이론’은 근현대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물귀신 작전’이다.


비판적 책읽기와 독자의 눈 틔워주기

‘ 전격전 이론’은 동물 전멸의 책임을 옛날 옛적의 원주민에게 떠넘긴다. 불도저로 북미와 남미의 숲을 밀어버린 개발업자, 숲을 개간한 농장주, 숲을 불태운 목장주 들과 땔감용으로 베어낸 농민들에게 균등한 책임을 묻는다. 그러면서 미국의 백인들이 자행한 버팔로 대량학살은 은근슬쩍 넘어간다.
나중에 유럽인의 질병이 대륙 전역에 퍼지면서 인디언들이 거의 멸절되자 버팔로가 급격히 늘어났다. 버팔로는 멀리 플로리다까지 퍼졌고, 그곳에서 서쪽으로 이동 중이던 백인 정착자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남겨둔 극소수를 제외하고 버팔로가 거의 다 사라지자 백인 정착자들은 인디언의 조상들이 태워놓았던 대평원을 잘 이용했다.

‘아프리카의 역설’ 또한 ‘원주민 책임론’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아프리카의 대형 포유류는 왜 아직 멸종하지 않았을까? 그건 아프리카에선 “인간과 거대동물이 함께 진화했기 때문이”고, “다행히도 아프리카의 거대동물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남는 적응력을 갖춘 형태를 나름대로 발전시”킨 덕분이란다. 과연 그럴까?

앨런 와이즈먼은 외국의 여느 환경운동가나 생태계 보존과 생물다양성에 관심 있는 학자들처럼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른 비무장지대(DMZ)를 낭만적으로 본다. “한반도의 분단은 미국이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떨어뜨린 바로 그날인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남북 분단의 기원은 약간 허탈하다.

군사분계선의 정의는 잘못되었다. “군사분계선은 비무장지대에서 양측이 접근해서는 안 되는 한가운데 지점의 초소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선을 말한다.”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그러니까 군사분계선(휴전선)과 남방한계선 사이에 있는 GP들을 잇는 선을 가리키는 용어는 딱히 없다. OP들을 연결한 선은 남방한계선과 일치한다.

그래도 비무장지대의 앞날에 대한 앨런 와이즈먼의 예측은 정확하다. 전쟁터를 평화공원으로 바꾸자는 DMZ포럼의 제안은 “달콤한 전망이다. 하지만 이미 DMZ를 넘보는 개발 세력들에게 먹혀버리기 쉬운 전망이기도 하다.” 평야지대인 서부전선과 철원 인근의 민간인통제구역은 진즉에 부동산 바람이 불었다.
나중에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 토지의 원소유자 후손들이 땅을 되찾으려는 요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몹시 위험천만한 곳이 야생동물의 피난처가 되었다는 DMZ의 역설을 “특별한 행운”이라 하기에는 분단의 질곡과 그것이 남긴 상처가 너무 크고 깊다.


한편, 자발적인류멸종운동(VHEMT)에는 맬서스 인구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앨런 와이즈먼이 인용한 이 운동의 창립자가 한 말이다. “ 적극적으로 번식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중국의 경우 출산율이 1.3퍼센트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매년 1,000만 명이나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근, 질병, 전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성장률을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이렇듯 인간 없는 세상』은 비판적 책읽기의 대상으로 알맞을 뿐만 아니라 읽는 이의 눈을 틔워 주기도 한다. 흙과 모래와 석회 반죽을 섞어 만든 콘크리트는 로마인들의 발명품이다. 마사이족의 전통 의상 ‘슈카’의 유래는 이렇다. “전통 의상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19세기에 스코틀랜드 선교사들이 나눠준 특유의 격자무늬 담요가 시초였다.”

철 (Fe)은 금속이자 비금속(卑金屬)이다. 철은 쇠붙이다. 비금속(非金屬)은 아니다. 비금속(卑金屬)은 귀금속에 대비되는 공기 중에서 산화하기 쉬운 금속을 통칭한다. 본뜻은 이렇지만, 비금속(卑金屬)은 귀금속보다 값싼 천한 금속이다. 스테인리스스틸도 산소와 짠물에 노출되면 삭기 시작한다. 여기까진 사소한 상식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한 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두 섬 모두 찌그러진 플라스틱 병, 폴리스티렌 부표 조각, 나일론 뱃줄, 라이터, 자외선에 분해된 온갖 상태의 고무, 각양각색의 플라스틱 병마개, 일본제 로션 튜브,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흩어진 무수한 플라스틱 조각들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바다에 떠다니거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쓰레기의 양은 실로 엄청나다. 태평양에서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북태평양 환류의 면적은 거의 아프리카 대륙에 맞먹는다고 한다. “해안에 부딪히는 파도와 조수가 바위를 모래로 만드는 작용이 플라스틱에도 적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크고 작은 플라스틱 입자들이 생태계에 끼치는 악영향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바다에 버려지는 것은 각국 정부의 관리부실 때문일까? 그런 것 같진 않다. “관리라는 말은 결국 가만히 두면 언젠가는 쓰러져 숲의 거름이 되어줄 거목을 베어내기 위한, 그리고 팔기 위한 입발림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겹쳐 읽다

『인간 없는 세상』은 다른 책들과 겹쳐 읽을 수도 있다. 1978년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메리 리키 팀이 발견한 것은 젖은 재에 찍혀 있는 350만 년 전 직립원인의 발자국이다(69쪽).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부모와 아이 것으로 추정되는 두 발자국을 실제로 볼 수 있다(『코스모스』 특별판, 680쪽).

『인간 없는 세상』의 348쪽부터 356쪽까지의 내용은 윌리엄 파운드스톤의 『칼 세이건: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동녘사이언스)에도 나온다. 그런데 보이저 호에 탑재한 어딘가 있을 외계지적생명체에게 보내는 골든 레코드에 관한 두 권의 설명 가운데 서로 다른 내용이 있다. 『인간 없는 세상』에선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하드웨어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나온다.

드 레이크는 디지털미디어가 유행하기 이전 시대에 이미 금을 입힌 구리로 만든 30센티미터의 아날로그 디스크에다 소리와 이미지를 함께 기록하는 법을 고안해냈는데, 거기에다 축음기 바늘을 달고 가능하면 작동법을 알려주는 그림을 함께 넣어주기로 했다. (349-350쪽)

반면,『칼 세이건: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에선 “그림을 LP판에 집어넣는 장치”를 사용하여 앞의 작업을 실행한 기술자가 등장한다. 물론 이 책에서도 프랭크 드레이크가 그림들이 축음기 레코드 홈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고 쓰고 있다.

드 레이크는 고주파 텔레비전 신호를 저주파 오디오 신호로 바꿀 수 있는 기계를 찾고 있었다. 오디오 신호가 테이프에 한번 녹음되면 어떤 레코드 스튜디오에서도 그것으로 레코드를 만들 수 있었다. 드레이크는 발렌틴 보리아코프라는 이름의 일급 하드웨어 해커를 데려왔다. 보리아코프는 갓 창업한 회사인 콜로라도 비디오에 재직하고 있었다. 이 회사의 설립자들은 사람들이 앞으로 언젠가는 텔레비전 그림들을 전화선으로 보내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텔레비전 신호를 오디오 신호로 바꾼다는 뜻이다. 그들은 최근에 그것을 위한 장치를 설비하였고, 또한 레코드를 도울 마음도 있었다. (434-435쪽)

인간이 사라지면 지구는 지금보다는 한결 평온할 것이다. 가까운 사례를 든다면, 적어도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인하여 바다와 바닷가가 오염되고, 거기에 사는 생물들이 떼죽음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유조선 옆구리가 찢어져 유출된 엄청난 양의 원유를 덮어쓴 바닷가에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이 물결을 이뤘다.

그들의 봉사정신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나서서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래는 미국의 언론운동 활동가 셸던 램튼과 존 스토버가 공저한 『거짓 나침반』(정병선 옮김, 시울, 2006)에 인용된, 보수적인 어느 논평가의 논평을 확증하는 홍보업계 저술가의 발언이다.

기 름을 뒤집어 쓴 후에 ‘구조된’ 거의 모든 새가 결국은 죽는다. 정화 작업의 주요 목표는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이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활동은 대개 상징적인 조치일 뿐이지만 기업이 환경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작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 있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에서도 사고 당사자들이 이 원칙(=오염자부담원칙)을 회피하기 위해 분주하다고 한다.”(<한겨레> 2007년 12월 18일자 34면)
탐욕적 생활방식에 대한 경고

“1년에 상어가 사람을 15명 정도 공격한다면, 인간은 상어를 1억 마리씩 잡고 있습니다. 정정당당한 싸움은 아니지요.” (보존 해양생물학자 엔리크 살라)

“게놈 수준에서 볼 때 산호와 우리의 차이는 적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같은 곳에서 왔다는 분자 차원의 강력한 증거지요.” (미생물학자 포레스트 로워)『인간 없는 세상』은 “너무도 탐욕적인 우리의 생활방식”에 대한 경고다. 탐욕적이고 거만하며, 때로는 심한 엄살까지 부리는 우리가 과연 타성에 젖은 생활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대오 각성한다면 모를까, 나는 극히 회의적이다. 『인간 없는 세상』은 꽤 읽을 만한 책이다.

『가비오따스』(황 대권 옮김, 월간말, 2002)에 대해선 박병상 선생의 서평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박병상의 「남미 오지에 건설한 이상주의자들의 공동체」는 시민에게 권하는 100권의 환경책 서평 모음집 『환경책, 우리 시대의 구명보트』(환경과생명, 2005)에 실려 있다.

이 책은 자연의 원금을 축내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에 대한 취재 보고서나 무미건조한 기행문이 아니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안데스 산맥과 이어진 해발 3,000미터의 고원, 생활 기반은 물론 도로도 제대로 개설되지 않은 오지 중의 오지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고자 의기투합한 이상주의자들의 힘겹지만 아름다운 시행착오의 경험담이다. 환경 문제에 천착하는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이 발품을 팔아 썼고 농업 중심의 생태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황대권이 옮겨서 그런지, 전하는 메시지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해 함께 고민하고 안타까워하게 만든다.

 


앨런 와이즈먼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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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를 통해 Google book search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검색하고, 이 책의 일부분을 미리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해당하는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곳과 열람 할 수 있는 곳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를 위해서는 판권획득이 필요했습니다. The McGraw-Hill, Pearson Education, Penguin Group, John Wiley & Sons and Simon & Schuster 등은 2005년 말에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구글이 제공하려는 서비스를 위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무려 3년간 지속된 소송끝에 구글은 미국 출판사 협회(AAP) 와 합의를 이끌어 냈습니다. 이 합의를 통해 구글은 수많은 미국의 주요 도서관들의 컬렉션으로 부터 판권이 있는 수백만권의 책들과 그 밖의 자료등에 온라인으로 접속할 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합의를 위해 구글은 무려 1억 2500만달러 (1800억원) 를 지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합의와 관련된 정보는 구글의 도서검색 화해계약 페이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구글에서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 약 700만권 이상의 도서가 서비스 대상에 있고, 2만여명의 발행자와 저자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어, 이들의 저서를 구글에서 미리보거나 이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다양한 도서관들이 소유하고 있는 도서들에 대해 검색을 하고, 저작권 비보호 도서는 전문을 읽거나 다운로드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온라인 도서관을 꿈꾸는 구글의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성공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하나를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을 수 있다는 점은 한편으로 부럽기까지 합니다. 과연 다음번에는 어떤 재미난 서비스를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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