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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

NOVEMBER 29, 2012 BY VERITAHOLIC LEAVE A COMMENT


세상을 자신의 아이디어로 변화시키는것은 모든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꿈입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2012년 세상을 바꾼 10개의 혁신을 선정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미 실험을 통해 성능을 증명한 것들이며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들입니다.


DNA가 필요하지 않은 생명체: 영국 캠브리지의 합성생물학자들은 DNA와 RNA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XNA(xeno nucleic acid)에 기반한 생명체를 창조했습니다. XNA에 기반한 박테리아는 기존의 생물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없애거나 폐수로부터 전기를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혈관에 직접 주입하는 산소방울: 단 몇분간의 호흡곤란은 두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매우 작은 산소거품을 직접 혈관에 주입하는 이 기술은 환자에게 15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습니다.


알츠하이머의 조기치료: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를 치료하기 위해 100개 이상의 약들이 시도되었지만 모두 임상을 통과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방향을 바꾸어, 혈관질환에 걸리지 않기 위해 미리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것처럼 알츠하이머가 걸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미리 복용할 수 있는 약을 만들었습니다.


기름으로 만든 정수기: MIT의 아누락 바즈페이는 세포의 냉동보관을 연구하던 중 기름으로 물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방향성 용매(directional solvent)는 적당한 온도로 가열되었을 때 순수한 물 만을 흡수하기 때문에 이 때 불순물을 제거한 후 온도를 낮추게 되면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 지속가능성 지수(Ultimate Sustainability Index): 음료수 캔과 샴푸 용기와 같이 서로 다른 제품들이 어느정도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10개의 대학과 80개의 회사들이 연합한 지속가능성을 위한 모임(Sustainability Consortium)은 대부분의 제품군에 적용가능한 척도를 만들기로 합의했습니다.


태아 유전자 분석: 최근 과학자들은 모체의 혈액샘플만으로 태아의 유전자 전체를 만들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이는 태아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고 지금까지 진단이 쉽지 않았던 장애에 대해 대처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모바일과 빅데이터: 갑자기 다가온 스마트폰 기술은 우리의 위치, 취향, 사회적 관계 등 수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된 이 기술들의 활용은 우리 삶의 모든 분야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포도당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심박조절장치: 앞으로 체내에 이식되는 기기들이 배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전망입니다. 혈관을 흐르는 포도당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이 기술은 1960년대에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70년대에 등장한 리튬 이온 배터리의 획기적 성능이 연구의 필요성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약 10년 마다 심박조절기를 교체해야 한다는 점은 계속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MIT가 개발한 이 기술은 상용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무인 소형 비행체: 공중에서 지상을 관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삶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저가의 무인소형비행체는 그동안 불가능했던 오랑우탄의 생활, 빙하가 대륙에서 어떻게 떨어져 나오는지 등을 관찰할 수 있게 했고 인명 피해가 없는 국경 정찰도 가능해졌습니다.


전자 문신: 매우 얇고 휘어지는 회로의 응용가능성은 무궁무진 합니다. 문신과 같이 피부에 부착가능하며 동시에 신체의 기능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보스턴에 위치한 MC10은 10 마이크로미터 두께의 회로를 만들었습니다.

-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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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에는 침묵해야 하나

[강석기의 과학카페 101]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발간 50주년


“아침이면 울새와 개똥지빠귀, 비둘기, 어치, 굴뚝새를 비롯해 수많은 새들의 합창 소리로 요란했지만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들과 숲, 습지에는 침묵만이 드리워져 있다.”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1962년 9월 27일은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레이첼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출간된 날이다. 20세기 후반 나온 과학교양서 가운데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책을 꼽으라면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인 유전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함께 카슨의 ‘침묵의 봄’이 들어가지 않을까.


살충제 DDT로 상징되는 인류의 과도한 화학물질 남용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을 마치 소설처럼 써 경각심을 일깨운 ‘침묵의 봄’은 오늘날 환경운동의 모태가 됐을 뿐 아니라 각국의 산업정책에 전환점을 가져온 계기가 됐다. 실제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과학책일 것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 여전


“침묵의 봄은 무슨…. 새소리만 요란하구만.”


전공자도 아니면서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과대포장해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한 센세이셔널리즘의 대표적인 예라고 카슨과 ‘침묵의 봄’을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카슨의 책 덕분에 브레이크없이 질주하던 화학산업이 주춤하면서 그나마 지구가 오늘날 이 정도 상태라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침묵의 봄’이 출간되기 전 상황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1958년 미 농무부가 불개미를 없애겠다고 수십만 헥타르의 면적에 DDT를 공중살포할 정도였다. 만약 지금 어떤 정부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상황이 나아졌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공교롭게도 ‘침묵의 봄’이 출간된 바로 그날 우리나라에서는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듯(?) 불산가스누출사고가 일어났고 이에 대한 해당 기업과 정부의 대응은 ‘침묵의 가을’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최근 한 식품회사의 라면스프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당 업체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대응에 사람들은 고개를 저어야 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화학물질 관련 사건에 (특히 식품과 관련돼 있을 경우) 사람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런데 설사 이런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고 해서 사람들이 맘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실린 글들을 보면 50년 전 살충제 대량 살포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침묵의 봄’이 여전히 진행 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존재 자체가 문제되는 화학물질


‘오염된 세계에서의 삶(Life in a contaminated world)’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사이언스’ 9월 28일자에 기고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대 루이스 귈레트 교수와 일본 국립기초생물학연구소 이구치 타이젠 박사의 글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기 이전부터 시작되는 주변 화학물질의 영향을 걱정스런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살충제 스프레이 같은 별 것 아닌 것들에 내맡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필자들은 ‘침묵의 봄’에 나오는 위 구절이 선견지명이 있다며 “레이첼 카슨은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알지 못했지만, 태아 발생 초기 일상적으로 쓰는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것이 유전자 발현 패턴을 바꿔 훗날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지금은 잘 알려져 있다”고 쓰고 있다.



수많은 화학물질을 비롯한 환경요인은 한 개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음식과 스트레스, 오염물질 같은 환경요인이 부모의 게놈과 개인의 게놈(체세포와 생식세포)에 작용해 개인과 그 자손의 건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제공


즉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화학자들이 합성한 수많은 화학물질 가운데는 호르몬 시스템 같은 인체의 신호전달체계를 교란하는 물질이 꽤 있고 이 작용은 농도가 매우 낮은 경우에도 여전히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의 독성학 패러다임, 즉 ‘독성은 농도에 비례한다’는 상식과는 배치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후성유전학(epigenetics)처럼 생명체의 발달과 조절을 이해하는 시각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분야들이 나타나면서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현상들이 실마리를 찾은 조각퍼즐처럼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즉 돌연변이처럼 DNA 구조 자체를 바꾸는 큰 변화뿐 아니라 유전자 작동 스위치를 바꾸는 미묘한 작용으로도 생명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 작용이 평생 그리고 그 자손에게까지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활습관의 병, 즉 개인에게 책임을 넘기고 있는 비만, 당뇨병, 암, 불임 등 현대인들의 질환이 급증하는 배후에는 어쩌면 일상생활에 노출돼 있는 미량의 화학물질들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220억 원 규모 안전성 재검토 프로젝트


미국 뉴욕대 과학저널리즘 교수인 댄 파긴은 ‘네이처’ 10월 25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내분비교란물질에 관한 최근 연구결과들과 이에 대한 과학자들 사이의 이견과 갈등을 소개하고 있다. 파긴 교수는 “기존 독성학의 입장에서는 내분비교란물질이 보여주는 이상한 세계가 마치 고전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며 “비스페놀A 같이 호르몬 수용체에 작용하는 교란물질은 개체의 발달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미량 노출돼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분비교란물질로 분류되는 화학물질 가운데는 그 작용이 농도에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농도가 낮아지면 오히려 작용이 커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기존 독성검사 패러다임으로는 안전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위 그래프는 농도에 따른 작용을 보여주는데 왼쪽부터 플라스틱 원료인 비스페놀A, 계면활성제 원료인 노닐페놀, 제조체인 아트라진에 대한 데이터다. 제공 네이처 제공


지금도 여전히 기존 독성학의 패러다임, 즉 ‘작용은 농도에 비례한다’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연구결과들에 반발하지만 그러나 너무나 많은 데이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3월 학술지 ‘내분비학 리뷰’에 발표된 무려 68쪽 분량의 리뷰논문은 600건이 넘는 기존 연구결과들(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지난 5년 이내에 발표됐다!) 분석해 18가지 내분비교란물질의 작용이 농도에 비례하지 않는다(non-monotonic)는 결론을 제시해 충격을 줬다.


이에 대해 미국국립환경보건원(NIEHS) 린다 번바움 원장은 “이들의 리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근거가 있다”며 “이제 화학물질의 저농도 규제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NIEHS는 미국식약청(NIH) 산하 국립독성학연구센터와 함께 2000만 달러(약 220억 원) 규모의 비스페놀A 재조사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즉 체중 1킬로그램당 하루 50밀리그램 이하를 섭취하는 건 문제가 없다는 기존 입장(FDA)과 저농도도 위험하므로 그 200만분의 1인 25나노그램으로 기준치를 낮춰야 한다는 연구자(미국 미주리대 프레데릭 봄 잘 교수)의 주장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체계적인 실험을 통해 규명해보겠다는 것이다.


지난주 일산킨텍스에서는 비스페놀A와 관련해 국제 세미나가 열렸는데 초청연사로 나온 미국화학협회의 스티븐 헨지 박사는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비스페놀A는 내분비장애물질이 아니다”고 결론내리고 있는데 그 근거 가운네 하나가 FDA의 기준이다. 지난 9월 21일 식약청은 Q&A 형식으로 ‘비스페놀A에 대해 알아봅시다’라는 코너를 홈페이지에 싣는다고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현 미국식약청의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안전하니 걱정말라”는 것.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FDA가 NIEHS와 수백억 원이 드는 재검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건 단지 성가신 연구자들을 무마시키기 위함일까. 아무튼 분명한 건 이런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방법론이 개발됐을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개념과 사실들이 최근 10~20년 사이 생명과학 분야에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가이드라인은 제한된 지식을 토대로 만든 기준일 뿐이다. 


미국 FDA나 유럽 관련 기구의 가이드라인이 업데이트될 때에야 따라 가는 게 우리나라 처지이지만 최소한 이들 나라에서 현재 화학물질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기준 이내이지 걱정말라”는 말을 들어도 그 ‘기준’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해 안심하지 않고 각자 살길을 모색할 테니까.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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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후성유전적 유전자 발현의 기제


위키백과
 
: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 epigenetics) 또는 후생유전학(後生遺傳學)은 DNA의 염기서열이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유전자 발현의 조절인 후생유전적 유전자 발현 조절을 연구하는 유전학의 하위 학문이다. 이를 매개하는 분자적 수준의 이해는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CpG 염기서열 가운데 시토신 염기에 특이적으로 일어나는 DNA 메틸화와 히스톤의 변형에 의해 조절되는 크로마틴 구조의 변화에 두 가지의 기전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성유전학
DNA정보의 ‘조립설명서’, 유전자결정론 의심서 출발
메틸기 등 음식속 대사물이 유전자 작동 방식에 영향
고등생물 진화의 부산물·환경적응 단기전략으로 해석
 
김영준 교수에게 듣는 후성유전학
최신의 첨단 과학은 각종 매체에 중요한 열쇳말로 자주 오르내리지만 정작 그 과학 지식의 알맹이는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과학의 ‘결과’는 사회와 더 가까워지지만 과학의 ‘내용’은 더 난해해져 멀어지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에서 두드러진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자들을 직접 찾아가 몇차례의 집중 인터뷰와 함께 실험실 현장 체험도 곁들이면서 그런 난해함의 의미를 풀어본다. 후성유전학, 대사공학, 현대기하학, 기후역학, 나노 반도체 등 8개 분야를 선정해 차례로 살펴본다.

우리는 생명현상을 보여주는 간결한 한 장의 그림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의 중심엔 늘 유전자가 있다. 또 유전자 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만드는 아르엔에이(RNA)가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이 무궁무진한 생명 현상을 일으키고….

그런데 이런 선명한 그림을 조금 흐릿하게, 더 복잡하게 만드는 여러 연구성과가 최근 과학계에 나오고 있다. 유전체(게놈), 유전자, 디엔에이(DNA)와 상호작용하며 생명의 발현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로 후성유전물질(에피게놈), 마이크로아르엔에이, 장내 미생물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 가운데 후성유전학은 기존의 유전학이 다 설명하지 못하는 유전자의 생명현상을 설명하려는 연구 분야로서 빠르게 성장해왔다. 먹을거리나 생활환경이 몸 안에다 후성유전물질의 패턴을 만들고 그것이 유전자의 작동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제시해온 후성유전학은 특히 “무엇을 먹느냐가 당신과 후손의 유전형질에 영향을 끼친다” “유전자 정보는 정상이어도 암에 걸릴 수 있으며 암도 치유될 수 있다” 등의 학설을 제기해 과학계 바깥에서도 눈길을 끌고 있다. 후성유전학자인 김영준 연세대 교수를 만나 이 분야의 연구 동향과 쟁점에 관해 물었다.


유전자결정론엔 없는 물음들
후성유전학은 디엔에이 정보만으로 생명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몸을 이루는 10조개의 세포들에는 모두 같은 디엔에이 정보가 담겼는데도 어떤 세포는 피부세포로 살고, 어떤 세포는 신경세포로 산다. 또 일란성 쌍둥이도 다른 생활환경에서 산다면 디엔에이 정보가 같더라도 다른 질병에 걸릴 수 있다.

디엔에이 정보 자체가 생명현상에 직접 닿아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보’가 ’생명현상’이 되는 과정에는 여러 개입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건데, 후성유전물질은 그런 주요한 요소들 중 하나다.

-후성유전학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갑자기 떠오르고 최근엔 국제 공동연구 컨소시엄(에피게놈 프로젝트)까지 조직되고 있다던데요, 몇 년 새 부각되는 이유는 뭔가요?

“갑작스런 건 아니에요. 초기 관심은 50년, 100년 전부터 있었어요. 세포발생학을 하는 분들이 세포가 분열하며 어떤 세포는 머리가 되고 어떤 세포는 다리가 되고 하는 분화과정을 관찰하면서 ‘어떤 물질’이 분화에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지요. 1940년대 워딩톤이라는 미국 과학자는 세포분화를 관찰하면서 ‘세포의 운명’은 산 위에서 계곡 쪽으로 바위를 굴리는 것과 같다는 비유의 학설을 제시했어요. 이쪽 계곡으로 한번 구르기 시작한 바위는 다른 계곡으로 가기 힘들겠지요. 누군가 끌어올려 다시 굴리기 전에는 말이죠. 워딩턴은 유전학적 요인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봤어요. 그걸 후성유전이라고 했지요.”

-최근에야 그 ‘어떤 물질’이 확인되면서 부각되고 있는 거군요.

“네. 지금까지 후성유전물질로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 그리고 메틸기, 아세틸기라는 화학물질이 꼽히고 있어요. 그것들이 디엔에이 정보를 세포들이 쓸 수 있게 조직화하는 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지요.”

-생명현상을 큰 틀에서 설명하는 기존 유전학이 세밀한 부분에선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후성유전학이 주목받는 걸 텐데요, 그게 어떤 건가요?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보면 디엔에이 정보는 레고블록과 같아요. 이런 저런 모양의 디엔에이 정보들이 있지만 그 정보가 곧바로 어떤 의미를 나타내진 않아요. 설명서를 보고서 배를 만들고 로봇을 만들고 하듯이, 후성유전물질이 그런 설명서 구실을 한다고 봅니다. 사람 세포들은 모두 같은 디엔에이 정보를 지니지만 2만 수천 가지 유전자 가운데 필요한 정보와 필요치 않은 정보를 가려 써야 하는데 그렇게 정보를 조직화하는 구실을 하는 게 후성유전물질이지요.”

유전물질이 사는 방식
세포핵 안의 후성유전물질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이중나선의 디엔에이 그림이야 익숙하지만, 후성유전물질은 너무 생소하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디엔에이의 모습은 다르게 그려져야 한다. ‘실패와 실’이 추가된 그림은 좀 더 복잡해진다.

-후성유전물질은 어떻게 존재합니까?

“음…, 디엔에이를 길게 펴면 2m가량 되지요. 이런 유전 정보를 어떻게 세포핵의 염색체 안에다 집어넣어야 가장 효율적일까요? 생명체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요. 이 단백질을 실패로 생각해보죠. 디엔에이는 히스톤에 팽팽히 또는 느슨하게 감기고, 그런 히스톤 실패는 무수히 많아요. 그것들이 다시 이렇게 집합을 이루고 저렇게 집합을 이뤄 아주 조밀하게 뭉친 꾸러미가 되지요. 또 메틸기라는 화학물질이 디엔에이에 달라붙는데, 그 달라붙는 패턴에 따라 감기고 뭉치는 꾸러미의 모양이 달라지지요.”

-이런 모양이 유전자 발현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거죠?

“유전자 기능이 발현하려면 유전자 기능을 하는 디엔에이 부위에 유전자 발현을 일으키는 효소가 달라붙어 반응을 해야겠지요. 하지만 꾸러미의 깊숙한 곳에 팽팽히 감긴 유전자엔 효소가 접근할 수 없겠지요. 그러니 세포가 자주 쓰는 유전자 부위는 효소가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에다 감아두겠지요. 겉에 더 드러나게 말이죠. 그런 차이들이 유전자 발현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같은 디엔에이 정보라 해도 어떻게 꾸려졌느냐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달라진다는 거군요.

“디엔에이 정보가 바뀌거나 다르지 않아도, 히스톤이나 메틸기에 의해 꾸려지는 방식이 달라지면 발현에도 차이가 생기는 거죠.”




먹는 것이 당신이다.
김 교수는 “유전자가 생명현상을 바로 결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먹을거리나 생활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고 강조한다. 후성유전학이 과학계 밖에서도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이 대목에 있다. 무엇보다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준다는 메틸기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서 생겨나는 대사산물이다.

그래서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속담 같은 말도 후성유전학에선 과학 원리로 받아들여진다.

-유럽의 후성유전학 사이트에 보니, “당신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후손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더군요. 먹을거리가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 또 그런 영향이 후세대에 유전될 수 있다는 점이 후성유전학의 핵심적 메시지 가운데 하나인데…, 어떤 연구결과들이 있나요?

“자주 인용되는 사례로 이런 게 있어요. 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 사람들은 ‘봉쇄정책’ 탓에 잘 먹지 못했어요. 그때 태아였던 사람들과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을 비교했더니 당시 태아였던 사람들이 뚜렷이 키가 작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자녀도 키가 작았다고 하지요. 그건 후성유전물질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태아 시기에 제대로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역학조사일 뿐 아닌가요?

“쥐 실험에서도 입증됐어요. 똑같은 유전자 정보를 지닌, 새끼를 밴 실험쥐들한테 다른 음식을 주었어요. 그랬더니 태어난 새끼들의 건강상태가 달랐지요. 이젠 아기들한테 똑같은 음식을 주었는데 그 영향은 그 다음 세대까지 나타났어요. 또 디엔에이에 달라붙은 메틸기의 패턴을 비교하니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는 거예요. 이런 실험적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음식이 어떻게 관련이 있나요?

“메틸기의 예를 들어보죠. 우리 몸에는 메틸기를 디엔에이에 갖다 붙이는 효소도 있고 그걸 떼내는 효소도 있어요. 물론 어떤 때에 어떻게 그것이 작동하는지 메커니즘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연구를 종합해보면 우리 몸이 음식을 섭취해 대사산물로 메틸기를 만들고 그걸 효소들이 디엔에이에다 갖다 붙이기도 하고 떼기도 하니까 음식은 매우 중요한 연관 관계를 지닌다는 건 확실하죠. 아직 어떤 음식이 좋다, 나쁘다 이런 연구는 없지만요.”


진화의 길, 그리고 한 장의 그림?
당연히 생명체가 왜 이런 후성유전물질을 활용하는 쪽으로 진화했을까 궁금해졌다. 진화에 관해 디엔에이는 간결한 답을 주는데, 후성유전물질은 너무 복잡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후성유전물질은 한 사람의 생애에서 수시로 바뀔 수 있고, 또 세포마다 다른 후성유전물질의 패턴을 지니고 있으니까. 왜 생명체는 유기물을 최적으로 조직화하는 진화 과정에서 후성유전물질을 택했을까?

-후성유전학은 진화를 어떻게 설명되나요? 진화는 우연히 일어나는 유전자 돌연변이 중에서 자연의 환경 변화에 최적으로 적응하는 것들이 살아남으면서, 즉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 이뤄진다고 설명되는데, 그 중심엔 유전자가 있지요. 후성유전물질은 유전된다 해도 몇 세대 정도에서 그치니까…, 긴 시간 척도에 어울리는 진화와는 무관한 건가요?

“후성유전물질은 환경에 의해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반면에 유전자 정보가 바뀌고 자연에서 선택되는 데엔 수만년, 수백만년 걸립니다. 매우 느린 과정이지요. 그러니까 후성유전물질은 이렇게 유전자 정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몸이 변화된 환경에 재빨리 적응할 때 나타나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변화된 환경이 오래 지속되면 유전자 돌연변이가 선택돼 후성유전물질이 임시로 했던 구실을 대신하게 되겠지요.”

-환경에 적응하는 장기전략, 단기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네. 후성유전물질은 다세포 동물이 출현하고 고등생물로 진화하며 디엔에이 염기서열의 길이도 엄청나게 커지면서, 그 정보를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후성유전학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유전자 정보 자체가 덜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이렇게 생각해보죠. 모차르트의 ‘작은 별’은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나 피아노 거장까지 다 연주하는 곡이지요.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이 없다면 연주는 애초부터 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아이가 연주하느냐 거장이 연주하느냐에 따라 감흥은 크게 달라지겠지요. 그러면 그 곡이 뛰어난 것은 모차르트 덕분입니까, 아니면 거장 덕분입니까? 작곡에 관해 말하자면 모차르트라고 답할 테고, 연주에 관해 말하자면 거장이라고 답하겠지요. 그런 차이와 비슷해요. 무엇을 얘기하느냐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생명현상을 유전자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한 장의 간결한 그림은 이제 밑그림이 되어, 그 위에 세밀한 덧칠들이 더해지고 있다. 유전자 정보가 단백질로 발현해 어떤 생명현상을 일으키기까지는 후성유전물질은 물론이고 다른 연구 대상인 마이크로 아르엔에이, 또 기생·공생하는 미생물들이 상호작용을 이루며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현상을 빚어낸다. 그러니 한 장의 간결한 그림으로 그것을 다 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김영준 교수는
: 국내에선 아직 활발하지 않은 후성유전학 연구 분야를 이끄는 주요 연구자다. 특히 어느 유전자가 후성유전물질에 의해 조절될 것인지는 이미 유전자에 표지돼 있는 방식으로 유전자가 내재적으로 다양성을 유도할 수 있게 설계됐음을 규명해 주목받았다.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교수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국제 에피게놈 컨소시엄 국내준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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