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벨 평화상 선정위원회는 마르티 아티사리(Martti Ahtisaari) 前 핀란드 대통령을 2008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10월 10일 발표했다.

선정위원회는 "세계 주요 분쟁 지역에서 그가 보인 탁월한 노력과 지난 30년간 국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 공로를 평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올해 71세의 그는 1965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으며, 1994년부터 2000년까지 핀란드 대통령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1977년부터 1990년까지 나미비아 독립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크게 공헌했고, 2000년 북 아일랜드의 아일랜드공화군(IRA)의 무장 해제와 2007년 이라크의 시아파와 수니파간의 협상 등을 중재해왔다.

또한 2005년에는 1만5천 명의 희생자를 낸 인도네시아 정부와 분리주의 세력 아체 반군과의 분쟁을 종식시킨 평화 협상을 주도했다.

반면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세르비아 공습 당시 휴전 협상을 중재했고, 2005년 11월부터 2007년 3월까지 UN의 코소보 문제 특사를 역임한 그는 코소보 분쟁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알바니아계가 주민의 다수를 이루는 코소보 지역은 지난 2월 17일 일방적인 독립 선언을 했으며, 미국과 22개 유럽연합(EU)국가를 비롯해 50여개국이 독립을 승인했으나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가이르 룬데스타트(Geir Lundestad) 노벨평화상 선정위원회 사무총장은 AFP와의인터뷰에서 “코소보의 독립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언급하면서 “아티사리의 모든 노력이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분쟁 종식과 평화 정착에 크게 공헌했다”고 덧붙였다.

아티사리 前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그의 용기 있고 단호한 행동에 찬사를 보냈고 옌스 스톨텐베르크(Jens Stoltenberg) 노르웨이 총리는 “아티사리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12월 10일 오슬로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메달 및 상장과 함께 1,000만크로네(103만 유로)의 상금을 받게 된다.
-afp-

신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프린스턴 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무역 유형과 경제활동의 위치 분석에 대한 크루그먼의 공로를 인정했다고 발표하며, “세계화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산업, 인구, 지역, 무역 구조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해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크루그먼 교수는 자유무역과 국제화의 효과 및 전 세계적인 도시화의 추동력을 밝히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전제로 한 새로운 무역이론을 만들었다.

올해 55세의 크루그먼 교수는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1977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에 미국 경제학회가 40세 미만의 학자에게 수여하는 ‘예비 노벨상’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하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美 일간지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의 컬럼니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미국 대통령의 감세 정책과 이라크 침공 등을 비판해온 학자다.

크루그먼은 부시 행정부에 매우 비판적일 뿐만 아니라 존 매케인(John McCain) 공화당 대선후보에게는 더욱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최근 컬럼에서 그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민주당 후보가 매케인-페일린(McCain-Palin) 행정부를 부시-체니(Bush-Cheney) 행정부의 연속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매케인과 페일린 정부가 출범할 경우 이보다 더욱 끔찍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금메달과 상장 및 1,000만 크로네(102만 유로)의 상금을 받게 된다.

신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상 받는 거 인터넷 보고 알았다!"

올해의 노벨 화학상을 수여받은 미국 과학자 마틴 챌피(Martin Chalfie) 美 콜롬비아大 생물학 교수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수상소감을 밝히며 노벨상 수상 소식을 인터넷으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발표 당일 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챌피 교수는 "사실 며칠 전에 전화기 벨소리를 바꿔서 적응이 안됐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니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리는 거 같았는데 옆집 전화 소리인줄 알았다"며 "한참이 지나도 전화를 안받길래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벨소리에 잠이 깨고 나서 오늘 노벨 화학상 발표가 있다는 게 생각나 올해는 어떤 얼간이(schmuck)가 상을 탔나 궁금해서 인터넷 창을 열었더니... 그 '얼간이'가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웃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의 영예는 챌피 교수를 포함해 미국 과학자 로저 첸(Roger Tsien), 일본 과학자 시모무라 오사무(Osamu Shimomura)가 공동 수상했다. 이들은 해파리에서 발견한 '녹색형광단백질(GEP, Green Fluorescent Protein)'을 생물학 분야에 도입해 유전자 연구에 큰 공헌을 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GEP의 발견은 의학 및 생물학계에 있어 '혁명적'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신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웨덴 한림원은 프랑스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ézio)를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10월 9일 발표했다.

한림원은 르 클레지오를 ‘단절과 소외, 시적인 모험과 관능적 황홀을 다룬 작가이자 지배적인 문명 너머에 또는 아래에 있는 인류에 대한 탐사자’로 평가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르클레지오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그의 이상주의와 물질 문명에 대한 비판에 감명을 받은 한림원 회원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68세의 르클레지오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으며 최근 수년간 계속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르클레지오는 수상 소식이 알려진 후 스웨덴 공영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상을 받게되어 매우 기쁘며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1940년 4월13일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태어난 르클레지오는 23세인 1963년 데뷔작인 ‘조서(Le procès-verbal)'로 르노도상을 받으면서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초기에는 누보 로망의 영향을 받았던 르클레지오는 ‘잃어버린 낙원’이라는 주제에 대한 집착을 통해 더욱 영적인 문학 세계로 발전해갔다.

그의 문체는 고전적이고 간결하지만 섬세하고 생기가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르 클레지오의 대표작으로는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사막(Désert)’을 비롯해 ‘전쟁(La guerre)’,’물질적 황홀(L'extase matérielle), ‘황금 탐사자(Le chercheur d'or)’, ‘황금 물고기(Le poisson d'or)’, ‘혁명(Révolutions)’. ‘아프리카인(l'Africain)’ 등이 있다.

가장 최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로는 지난 2000년 수상자인 중국 출신의 프랑스 국적 소지자 가오싱젠(Gao Xinggian)과 1985년 수상자인 누보 로망 작가 클로드 시몽(Claude Simon)이 있다.
신고

뉴딜 경제학.

Everybody’s talking new New Deal these days — and, predictably, the FDR-haters are out in force, with all the usual claims about FDR having actually made the Great Depression worse. (To the right, way back when, FDR was “That Man.” Now Obama is “that one.” Interesting.)
요즘 모든 사람들이 뉴딜이란 이야기를 한다-그리고, 예상대로,프랭클린 댈라노 루즈벨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루즈벨트가 실제로는 대공황을 더 심하게 만들었다는 통상적인 주장에 총력을 기울인다.
(우파들에게는, 역사를 되돌아가 보면,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그 남자"였고, 지금 오바마도 "그 남자" 라고 불린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Eric Rauchway is all over this. Basically, the anti-FDR argument on the data is based on (a) considering people employed by the WPA “unemployed” (even though they were getting paid, and building public works that are in use to this day) plus (b) always focusing on 1938 — the year in which the economy suffered a serious setback from the progress of the previous four years.
에릭 라우치웨이는 이 모든 것을 끝장냈다.
기본적으로, 자료에 의한 안티루즈벨트 투쟁은 1935년에 만들어진 사업진흥청에 고용된 사람들이 "비고용상태"(이 시대에 하던대로 공공사업을 일으켜서,그들이 급료를 받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였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

Let me offer two pictures, beyond what Eric provides, to clarify things.
두개의 그림을 제시하겠다, 에릭이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문제를 명확히 하기위해.

First, here’s real GDP (in logs) from 1929 to 1941, plus the trend. (That’s to bypass the employment nonsense). You can see that the economy made up a lot of the output gap before the 1938 setback, but by no means all.
첫째로, 여기 1929년부터 1941년까지의 진짜 국민총생산(기록들에 나온대로),거기에 추세선을
추가한다.(그것은 고용 넌센스를 우회하기 위해서다.)
당신은 경제가 무슨일이 있어도,1938년의 후퇴 이전까지 아주 많은 산출량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Incomplete recovery
불완전한 회복
Now, you might say that the incomplete recovery shows that “pump-priming”, Keynesian fiscal policy doesn’t work. Except that the New Deal didn’t pursue Keynesian policies. Properly measured, that is, by using the cyclically adjusted deficit, fiscal policy was only modestly expansionary, at least compared with the depth of the slump. Here’s the Cary Brown estimates, from Brad DeLong:
이제, 당신은 케인즈의 재정정책은 효과가 없는,마중물을 붓는 식의 불완전한 회복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것이다.
뉴딜은 결국, 부채슬럼프와 비교되는, 조심스러운 확장성의 순환적인 적자 조절을 이용한 것이며,케인즈 정책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맞는 말이다.
여기 캐리 브라운의 판단이 있다.그의 자료로 부터.


Limited fiscal force
한정된 재정압박

Net stimulus of around 3 percent of GDP — not much, when you’ve got a 42 percent output gap. FDR might have been more of a Keynesian if Keynesian economics had existed — The General Theory wasn’t published until 1936.
국민총생산의 3%정도를 가지고, 경제망을 자극해서42%의 산출량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그리 많은 투자량이 아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만약 케인즈 경제학이 존재하긴 했는지 몰라도, 케인즈보다 훨씬더 능력있었다.-케인즈의 '일반이론'은 1936년에는 출판 되지도 않았었다.

Note in particular that in 1937-38 FDR was persuaded to do the “responsible” thing and cut back — and that’s what led to the bad year in 1938, which to the WSJ crowd defines the New Deal.
책임있는 예산삭감을 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1937년에서 38년의 기간에 설득했던 것을 자세히 주목하라-그리고 그것은 월스트리트 저널 무리들이 규정한 뉴딜인- 38년의 경기 후퇴를 초래한다.

Implications for Obama: be inspired by FDR, but don’t imitate him slavishly. In particular, your economic policy should be bolder, not more cautious.
오바마를 위한 함축: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영감을 받아라,
그러나 그를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이미테이션은 되지 말아라.
자세히 말하면,
당신의 경제정책은 더욱 대담해야한다,더 조심성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역자 요약:
폴 크루그먼은 뉴딜정책이 실패라는 사실이 거짓이라는 것을
자료를 통해 반박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오바마가 프랭클린 루즈벨트 보다 더 무거운 짐을 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지금의 이 위기가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겪었던 '대공황' 보다
더 심한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