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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히 말해 진리가 언제나 박해를 이기고 최후의 승리를 거둔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하나의 상식이 되다시피 했지만, 역사적인 모든 경험이 입증하듯이 사실은 유쾌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진리가 박해 앞에 무릎을 꿇고 만 숱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영원히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몇백 년 정도는 어둠에 묻혀 있어야 할 것이다. 


종교 문제를 예로 들어보겠다. 종교개혁은 이미 루터 이전에 적어도 스무 번은 일어났지만 모두 진압 당하고 말았다. 이를테면 브레시아의 아르날도, 프라 돌치노, 사보나롤라, 알비 파, 발도 파, 롤라드 파, 후스 파 등이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심지어 루터의 혁명이 성공한 뒤에도 박해를 가한 자들은 모두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서 스페인, 이탈리아, 플랑드로,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개신교는 뿌리 뽑히고 말았다. 만일 메리 여왕이 살았거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었더라면 영국에서도 분명히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단자들이 너무 강력해서 효과적으로 척결하기 어려운 경우 말고는, 박해를 가하는 자들은 언제나 성공을 거두었다.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 시절에 최후를 맞고 말았으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널리 전파되면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와 박해 사이의 긴 기간 동안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거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선교 활동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과는 달리 진리는, 오직 진리만이 지하 감옥과 화형의 박해를 이겨낼 수 있는 어떤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은 순진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거짓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진리를 향한 인간의 열정이 뜨거운 것은 아니다. 법적제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사회적 제재라도 충분히 가해지기만 하면 진리나 거짓을 향한 열정은 중단되고 만다. 


진리가 가진 진정한 이점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어떤 생각이 옳다고 치자. 이 진리는 한 번, 두 번 또는 아주 여러 번 어둠에 묻혀버릴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때로는 좋은 환경을 만나 박해를 피하고, 그러다가 마침내 모든 박해에 맞서 싸워 이길 만한 힘을 가지게 될 때까지, 그것을 거듭 어둠 속에서 태양 아래로 끄집어내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이것이 진리가 가진 힘이라면 힘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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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婆羅蜜) 또는 바라밀다(波羅蜜多)는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पारमिता pāramitā)를 음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완전한 상태 · 구극(究極)의 상태 · 최고의 상태를 뜻한다.


불교의 교리상으로는, 바라밀은 미망과 생사의 차안(此岸: 이 언덕)에서 해탈과 열반의 피안(波岸: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며, 또한 이를 위해 보살이 닦는 덕목 · 수행 · 실천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바라밀은 뜻에 따라 번역하여 도피안(到波岸) 또는 도(度)라고도 한다. 도피안(到彼岸: 피안에 이르다)은 열반이라는 이상적인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도(度)는 현실의 차안(此岸)에서 이상적인 상태인 피안(彼岸)으로 사람들을 넘기기 위한 덕목 · 수행 또는 실천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대승불교의 주요 논서 중 하나인 《대지도론(大智度論)》의 도(度)는 파라미타(Paramita)의 번역어이다.


대표적인 바라밀들로는 《반야경》에서 설법하는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지혜(智慧)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이 있다. 이 중에서 마지막의 지혜 바라밀은 반야 바라밀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다섯 바라밀을 성립시키는 근거인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또한, 육바라밀에 방편(方便) · 원(願) · 역(力) · 지(智)의 네 가지 바라밀을 더한 십바라밀(十波羅密)이 있으며, 육바라밀 · 십바라밀과는 별도의 사바라밀(四波羅蜜) 등도 설법되고 있다.


육바라밀 등은 대승불교의 보살의 실천 덕목으로 되어 있다.



육바라밀

육바라밀(六波羅蜜)은 여섯 가지 덕목 · 수행 · 실천을 통칭하는데, 구체적으로 다음을 뜻한다.


보시 바라밀(布施波羅蜜): 재시(財施) · 법시(法施: 진리를 가르침) · 무외시(無畏施: 공포를 제거하고 마음을 안정시킴)의 실천

지계 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지키고 항상 자기반성을 하여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는 것

인욕 바라밀(忍辱波羅蜜): 고난을 이겨 나가는 것 (원래 인욕(忍辱)은 법을 진실로 인정하고 이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정진 바라밀(精進波羅蜜): 보살로서의 수행을 힘써 닦으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

선정 바라밀(禪定波羅蜜): 마음을 안정시켜 올바른 지혜(무분별지)가 나타나게 하는 수단인 선정(禪定)을 닦는 것

반야 바라밀(般若波羅蜜): 진실하고 올바른 지혜, 즉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작용시키는것


육바라밀의 여섯 가지 덕목들에서는, 우선 보시, 즉 "주는 것"을 강조하고 마지막 덕목으로 지혜(무분별지)의 완성을 말하고 있다.

이들 여섯 가지 바라밀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마지막 여섯 번째인 반야, 즉 지혜(무분별지)이다. 다른 다섯 가지 덕목 또는 수행("오행 · 五行"")은 반야 바라밀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에 따르면 보살행, 즉 보살의 행이란 지혜(무분별지)에 의거한 자비행(慈悲行)이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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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파솔라시도를 말로 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것들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기는 어렵다. 


진리를 이야기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을 체험하고 실천하기는 어렵다.



빈 그릇에 물을 부으면 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릇이 차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신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신의 존재와 그 본질에 대한 무익한 논쟁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일단 신을 체험하게 되면 

말없이 신의 은총에 젖어 있다.



잔치에 초대되었을 때 처음에는 왁자지껄하다.

그러나 그 왁자지껄한 소리는 음식이 들어오기 전까지이다. 

음식이 들어오게 되면 조용해 진다. 

식사가 다 끝나고 다과가 들어오게 되면 더욱 조용해 진다.

마지막으로 후식이 나오게 되면 이제 오직 먹는 소리밖에 들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잔치가 다 끝나고 손님들이 할 일은 잠자러 가는 일 뿐이다.


신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질문과 이유가 적어진다. 

신을 체험하게 되면, 

그때는 이 모든 논쟁이며 이유들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그 다음은 잠자러 갈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신과의 靈的 교섭에 젖을 시간이다.



오직 다음의 두 종류의 사람들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첫째, 자기가 배운 모든 지식에 방해받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빌려온 생각들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지 않는 사람. 


두 번째, 이 모든 경전과 과학을 공부한 후에

자기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



신의 사랑 속으로 깊이 침잠하고자 열망하는 사람, 

그것을 위해서 인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속적인 일들과 신을 체험하기 위한 그 명상과 기도를 

구별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우 몇 권의 책을

읽고는 남을 가르친답시고 동으로 서로 뛰곤 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인데... 


진정으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신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은 사람, 

신을 깨달은 사람, 오직 그만이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우선 첫째로 그대 가슴의 사원에 신을 모셔라.

첫째, 신을 깨달아야 한다. 

강연, 강론 등은 신을 깨달은 후에 하라. 

사람들은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으면서도 

브라흐만(신)에 대해서 아주 유창하게 지껄인다.


결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사원 안에는 신의 이미지도 없으면서 

신을 찬양하는 빈 소리만 드높은 것과 같다.



꽃의 향기가 미풍에 실려 사방으로 퍼지면 

그 향기에 따라 벌들이 온다.

단 것이 떨어져 있으면 

그 단 냄새를 맡고 개미들이 온다. 

일부러 벌이나 개미를 초대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순수하고 완전하게 되면, 

그의 따뜻함이 사방에 퍼지게 되며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히 그에게 모여 든다. 

그러므로 굳이 청중들을 붙잡고 외쳐댈 필요는 없다.



불을 켜면 어디선지 나방이들이 날아온다. 

그 불꽃 속으로 들어가려다 타 죽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른다. 

불은 나방이들을 부른 일이 없다. 


완전한 가르침의 경우가 바로 이렇다. 

그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에 무리지어 모여든다. 

그러나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처마의 물은 양철로 만든 

새의 주둥이를 통해서 땅으로 떨어진다. 

양철새의 입에서 쏟아지는 물은 

그러나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이다. 


저 성인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가르침은 

실은 신이라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다.



스프링 의자를 보라. 사람이 앉게 되면 푸욱 들어가지만, 

그러나 사람이 일어서게 되면 다시 부풀어 원 상태로 된다. 

세속적인 사람도 이와 같다. 

그들은 진리의 말을 듣는 동안만은 신앙심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다시 일상생활로 들어가게 되면 고귀하고

간절한 그 생각들을 모두 잊어 버리고 

전과 마찬가지로 먼지낀 상태에 있다.



어떤 농부가 온종일 사탕수수밭에 물을 주었다.

일을 다 끝내고서야 

그 물들이 모두 쥐구멍들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을 알았다. 

그는 온종일 헛탕만 친 것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세속적인 야망을 품고 있으면서

신을 찾는 사람의 경우가 이와 같다. 


매일같이 기도를 할지 모르지만 그의 영적 세계는 전혀 진전이 없다.

신을 향한 그의 열정이 이 세속적인 야망의 쥐구멍 속으로 

모두 빨려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써봐도 그는 이전과 같은 차원에 머물 따름이다.



때묻은 거울은 햇빛을 반사시킬 수 없다. 

그 영혼이 순수하지 못하고 불결한 사람과 

마야에 현혹되어 있는 사람은 

결코 신의 영광을 지각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영혼이 순수한 사람은 

맑은 거울에 햇빛이 반사되듯 신을 지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이 순수해야 한다.



겨울 하늘을 보라. 

수많은 연들이 날고 있다. 

그 수많은 연 중에서 몇 개의 연만이 

연줄에서 끊어져 자유롭게 날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명상수련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세속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정한 구도자는 혼자 있을 때조차 

어떤 죄악도 짓지 않는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신은 그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외딴 곳에서 돈 뭉치를 발견했을 때 

갖고 싶은 그 유혹을 뿌리치는 사람,

그는 진정한 구도자다. 

그러나 일반의 눈이 무서워, 

일종의 전시효과를 위하여 

종교인이 되는 사람은 진정한 구도자라 할 수 없다. 



이 세상과 신,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가. 

저 목공의 아내를 보라.

그녀는 잡다한 일로 얼마나 바쁜가. 

한 손으로는 절구통 속의 다 찧은 쌀을 꺼내는가 하면 

또 한 손으로는 아기를 본다. 

동시에 그녀는 찧은 쌀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이처럼 그녀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은 오직 한가지에만 집중되어 있다. 

절구공이가 그녀의 손에 떨어져서 손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아라. 그러나 언제나 신을 기억하라. 

결코 신의 길을 등지지 말라



이 세상에 살면서 구제받으려 하는 사람은 

성 안에서 싸우는 군대와 같다.

신을 깨닫기 위해서 이 세상을 포기한 고행자는 

들판에서 싸우는 군대와 같다.


들판에서 적과 싸우는 것 보다 

성안에서 적과 싸우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용서, 

이것이야말로 수행자의 진정한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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