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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자 : 사람들이 보통 남자답고, 사나이 다우면 대장부라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는 좀 생각이 많고 분석적인 성향이 있어서 어찌 보면 내성적일 수 있는데요. 꼭 영화속 장군같이 해야 대장부가 될 수 있는 것인지요. 대장부는 정확하게 어떤 사람을 말하나요?

  

- 윤홍식 대표 답변 : 맹자의 대장부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세요.

 

천하의 넓은 곳에 거처하며(인仁),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예禮), 천하의 큰 길을 걷는다(의義).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그 길을 걸으며,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길을 걷는다. 부하고 귀함(富貴)으로도 그를 타락시킬 수 없고, 가난하고 천함(貧賤)으로도 그를 움직일 수 없으며, 권위와 무력(威武)으로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다. 이러한 자를 이른바 ‘대장부’라고 한다.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맹자 등문공滕文公 」하)


천하의 넓은 곳에 거처하며, 이것은 사랑을 말해요. 사랑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죠. 사람의 집이라고도 맹자가 표현합니다. 우리가 늘 살아야 될 집은 사랑이에요. 인(仁, 사랑). 그래서 천하의 넓은 곳에 나는 살며, 늘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요. 그리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예절(禮)을 늘 지키고요. 천하의 큰 길만을 걷는다. 맹자는 정의(義)를 길이라고 표현합니다. 다닐때는 꼭 정의로 다니라는 거에요.

 

사랑의 마음을 품고, 다닐 때는 정의로 다녀라. 보통 인(仁)은 집에 비유되고, 의(義)는 길에 비유되요. 늘 사랑에 살면서 늘 정의로운 길을 걸어라. 이런 얘깁니다.

 

집에 있다가 길에 나올 때는 사랑을 버리고 정의만 해야지 라는 것이 아니고요. 사랑은 우리의 집같은 거라는 겁니다. 우리가 늘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이어야 되구요. 정의는 우리가 항상 걷는 길처럼 늘 정의를 생각해야 된다는 겁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갈 때요. 양심(4단, 인의예지)이 뻗치는 사람이 대장부입니다. 그러면 이 분은 뜻을 얻어 임금이 되건, 재상이 되건, 등용이 되면 백성과 함께 그 길을 걸어요. 보살입니다. 그래서 유교는 대승불교와 잘 맞아요. 대승적이에요. 그리고 만약에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길을 걸어요. 홀로 그 길을 걷는 분 보고 소승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소승과 대승의 차이는 이겁니다. 예를 들어 토굴 속에서 둘이 앉아서 같이 수련하고 있다고 치죠. 토굴 수행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한 분은 중생구제를 해야 되는데 내가 여건이 안 돼서 이러고 있다 하면 대승이에요. 나는 애초에 그런 생각이 없다 하면 소승이에요. 모습 보고는 모릅니다. 무슨 동기에 하고 있는지 알아야 되요.정말 중생을 구제하고 싶은데 뜻을 못 얻어서 나라도, 내 몸에서라도 도를 구현하자하고 하고 있는 분은 소승이 아니겠죠. 이거 구분 하셔야 합니다.

 

맹자의 대장부는 대승이에요. 그래서 그 분은 부귀도 타락시킬 수가 없어요. 돈을 줘도 이 분은 뭘 보냐 하면 상대방이 돈을 내 놓으면 저게 양심(4단)에 맞나 이거만 봐요. 그러니까 타락을 못 시켜요.

 

누군가 겁을 줘요. 가난과 천함. 너 이렇게 있다가는 너 굶어 죽어 라고 해도 사단에 맞으면 괜찮다라고 생각해요. 권력과 무력으로 그 사람을 협박해도 양심(4단)에 맞으면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해요. 내가 당당히 맞서겠다라고 생각해요. 이러니까 이런 사람을 대장부라고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4단(인의예지)이라는건 우주의 법입니다. 제가 이런 표현을 많이 써요. 지구에 사는데 전 우주의 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을, 누가 지구에서 그 사람을 협박하겠습니까?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공자님, 다 우주의 법을 따르신 분들이에요. 그래서 지구에서 그 분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이런 비유를 들잖아요. 개미들이 우루루 가는데 개미 하나가 다리꼬고 앉아서 있다가 인간하고 눈이 딱 마주쳤는데 니 뜻, 니 마음 내가 안다하고 개미 하나가 보고 있으면 하느님이 볼 때도 인간 중에 그 개미같은 존재가 있어요. 인간이 얼마나 우주에서 먼지같은 존재입니까? 그런데 마인드가 우주와 통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성인(聖人)이라고 하는 거에요.

 

양심(4단)은 우주적인 법입니다. 내가 그 사람 배려하는데 누가 싫어해요. 내가 그 사람한테 피해 안 줬는데 누가 싫어해요. 내가 그 사람한테 겸손하게 구는데 누가 싫어하며 그 사람한테 내가 틀린 말 안 하는데 누가 싫어할 수가 있어요? 지구에 이렇게 꼬물거리는 벌레같은 인간중에 우주적인 걸 이해하는 사람들이 성인(聖人)입니다. 우주의 법을 내가 다는 못해도 따라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보살들이에요. 군자들이구요. 그런 분들을 대장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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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원문]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nicht protestiert;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Als sie die Jud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Jude.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마틴 니묄러(1892년-1984년) 목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다. 나치가 특정 집단을 하나씩 차례로 지목해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차지할 때, 저항하지 않고 침묵한 독일 지식인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마틴 니묄러는 1892년에 독일 리프슈타트에서 태어난 독일의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였다. 니묄러는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히틀러의 등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국가의 우월성을 종교처럼 주장하자, 니묄러는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히틀러를 반대하는 독일 성직자그룹의 리더가 되었다. 하지만 니묄러와는 달리 독일의 성직자들은 나치의 위협에 굴복했다.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니묄러를 매우 싫어하여 그를 체포했으며, 결국에는 작센하우젠과 다하우 강제 수용소 등에 감금했다. 니묄러는 연합군에 의해 1945년에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났다. 그는 독일에서 성직자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국민들을 참회와 화해를 이끄는 대변자로서 활동했다. 그의 시는 잘 알려져 있고 자주 인용되며, 흔히 특정의 조장된 두려움과 함께 시작되어, 이윽고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집단적인 적의를 띰으로써 나타나는 정치적 무관심의 위험성을 묘사하는 데 인기가 있는 본보기이다.



이 시는 독일에서 몇 년동안 수행했던 인터뷰를 기초로 하여, 밀턴 마이어에 의해 1955년에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They Thought They Were Free)》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인용은 1960년대말 미국의 사회운동가들에게 널리 퍼졌다. 이 시의 정확한 원본은 불명확하며, 적어도 한 명의 역사가는 이 시가 니묄러 사후에 생겼다고 잘못 암시했다.[1] 최근에 조사된 연구에 의하면, 이 시에서 표현된 취지를 담은 연설이 니묄러에 의해 1946년에 행해졌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기원, 그리고 이 시의 여러 버전에서 언급되는 집단들의 이름과 순서에서, 이 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1946년 연설에서, 니묄러는 공산주의자, 불치병에 걸린 자, 유대인 혹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연설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점령당한 국가의 국민을 언급한다; 인터뷰를 통해 한 독일인 교수가 기록한 1955년 문서에서, 그 목록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또는 학교, 언론, 유대인 등등' 이며, 마지막엔 '교회'로 끝난다. 그러나 리처드 존 뉴하우스가 2001년 11월에 인용하면서, 인용구의 정확한 버전에 대해 1971년에 니묄러에게 물었을 때, 그는 그렇게 멋진 말을 했던 때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만일 사람들이 그것을 인용하고자 한다면, 그는 다음과 같은 버전을 선호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독일에서)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 . 그들이 내게 왔을 때 . . .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1965년, 재즈 뮤지션 찰스 밍거스는 그가 작곡한 "Don't Let it Happen Here"에서 이 시를 차용했다.

2006년, 미국의 펑크록 밴드 Anti-Flag는 그들의 앨범 For Blood And Empire의 노래 "Émigré"에서 이 시를 언급했다.

2003년, 미국의 펑크록 밴드 NOFX는 앨범 War on Errorism의 노래 "Re-gaining Unconsciousness"에서 이 시를 차용했다.

2007년, 영국의 작사가 빌 프린스는 그의 앨범 "Peace And Freedom"에서 이 시에 기초를 둔 "None Of My Business"를 녹음했다.

2007년, ABC 방송의 위기의 주부들 에피소드 "이웃의 한계"(Art Isn't Easy)에서 이 시를 언급했다. 극중에서 리 맥더못(케빈 람이 연기)은 리네트 스카보(펠리시티 허프먼이 연기)에게 변형된 버전의 이 시를 암송한다.

2006년 아일랜드 포크록 가수 크리스티 무어는 이 시를 기초로 한 Yellow Triangle를 녹음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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