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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영상



1945년 ~ 1998년까지 핵실험 및 핵공격(2053회)

 
세계각국의 핵실험 현황

핵실험은 핵무기의 성능을 확인하고 성능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핵무기를 설계하기 위한 자료를 얻기 위하여 실시합니다.

최초의 핵실험은 1945년 7월 16일 미국의 뉴멕시코 사막에서 실시되었고 이후 2차대전이 끝난 후 러시아(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의 순서로 핵무기를 개발하여 핵실험을 실시하였습니다.
 
핵실험은 초기에는 대기권에서 실시되었으나, 방사성 낙진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로 핵실험에 대한 비난이 강해지자 1963년 발효된 미-소간의 부분핵실험 금지조약을 계기로 점차 지하핵실험만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프랑스는 1974년까지 중국은 1980년까지 대기권 핵실험을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핵실험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핵실험완전금지조약(CTBT : Comprehensive Test Ban Treaty)은 강대국의 비준 거부 등 조약이 발효되기 위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아직 발효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핵실험은 총 1,851회이며 각국별 핵실험 횟수는 표를 참조해 주십시요.

각국의 최초 핵실험 관련 사항

이미지: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각국의 알려진 핵실험 실시 횟수
(본 통계는 북한 핵실험 실시 이전까지의 수치를 근거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미지: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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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공포감 조성 극대화 프로젝트.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한방으로  세계 군사적 지위의 최강자로



과거에 있었던 여러가지 정부가 주도했던 대형 프로젝트의 이면을 살쳐보면,  미국놈들의 위기 상황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정확히 맞물려 들어가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에서처럼, 1차 프로젝트는 1942~46년에 210억$의 규모로 진행된 맨하탄 프로젝트(The Manhattan Project) 였다. 이름 정말 멋있지 않은가?

맨하탄 프로젝트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미국이 전세계를 운영하기 위한 하나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 의 일부를 발췌 해보면 상당히 충격적인 근거가 나온다.
[46~59p 중]

-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맨해튼 프로젝트가 파시즘에 대항하는 하나의 전쟁이며 강력한 도덕적 근거가 부여되어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이 가공할 무기의 제작은 곧 무시무시한 수단의 사용을 뜻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고귀한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행위는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도덕적인 어휘들로 정당화되었다. 원자폭탄의 사용 여부 결정을 맡았던 임시위원회의 책임자 헨리 스팀슨(Henry Stimson, 당시 전쟁부 장관)은 뒷날, 원폭 투하는 “장병들의 인명 손실을 가능한 한 최소화시키면서 전쟁을 승리로 끝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원자폭탄을 쓰지 않았을 경우 일본 본토를 공략해야 했을 것이며 그랬다면 많은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 ‘모든 사실에 대한 세부적인 조사와 관련된 일본인 생존 지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조사단이 내린 견해는 다음과 같다. 일본은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다 해도, 러시아가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해도 1945년 12월 31일 이전에 아마도 1945년 11월 1일 이전에 틀림없이 항복했을 것이다.’

- ‘리처드 로즈(Richard Rhodes)는 그의 글에서 원자폭탄 제작과정을 자세하고 실감나게 묘사한 뒤 이렇게 말했다. 원자폭탄의 투하는 일본이 항복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항복을 거부했기 때문에 허가되었다.’

 


- ‘즉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것은 전후(戰後) 세계에서 미국의 힘을 확립하기 위한 첫 번째 행동으로서, 소련에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는 소련이 8월 8일 대일전(對日戰)에 참가하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원자폭탄은 8월 6일에 투하되었다.’

- ‘1945년 5월 트루먼의 핵심 정책자문위원을 만났던 과학자 레오 질라드(Leo Szilard)는 뒷날 이렇게 보고했다. “번스는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일본 도시에 폭탄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 번스의 입장은 우리의 원자폭탄 보유와 실전에서의 사용이 소련을 더 다루기 쉽게 해주리라는 것이었다.”

- 갖가지 증거들로 미루어볼 때, 원자폭탄을 투하한 목적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보장되어 있었다. 또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미국이 일본 본토를 침공할 필요는 거의 없었으니까. 결국 그것은 그 당시에, 그리고 전후에 미국의 국가적 위신을 강화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이 같은 목적을 위해 동원된 수단은 인류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 사람들을 산 채로 불태우고 끔찍한 불구자로 만들었으며 엄청난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게 하는 방사능 후유증을 남겼다.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면 희생자들의 증언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세 명의 생존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증언 내용들을 몇만 번 곱해야만 전모가 파악될 성싶다.


- 35세 남자: “턱이 날아간 한 여자가 혀를 입 밖으로 늘어뜨린 채 거세게 쏟아지는 검은 비(원자탄이나 대규모 소이탄 공습으로 큰 호재가 발생한 경우 그 재가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갔다가 비에 섞여 내릴 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함)를 맞으며 신쇼마치 거리를 헤매고 있었어요. 그녀는 살려달라고 외치며 북쪽으로 가고 있었어요.”

- 17세 소녀: “저는 히로시마역 앞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 그때 창자와 뇌가 튀어나온 사람들을 보았어요. … 젖먹이를 껴안고 가는 늙은 여인 … 엄마 잃은 많은 아이들을 보았어요. … 제가 느낀 공포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 5학년 소녀: “대피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큰소리로 부르짖었어요. 그들의 목소리는 … 울음소리라기보다 뼛속까지 파고들어 머리칼을 곤두서게 만드는 신음소리였어요. … 나는 불타버린 내 팔과 다리를 잘라달라고 얼마나 애원했는지 몰라요.”


반미적인 감정은 뒤로 하고 역사라는 녀석은 항상 경제적 진실을 말해주는 중요한 척도 중에 하나다. 맨하탄 프로젝트(The Manhattan Project)라는 뉴욕의 월가를 떠오르게 하는 멋진 한 단어의 문장의 결말은 결국, 전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군사적 충격을 이용한 패권 장악과 동시에 이후의 국제 정세에서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한, 목숨을 담보로 한 쓰레기 프로젝트 였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필립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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