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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으로 본 세계사


세계사 ― 인간정신을 인식하기 위한 기초

도르나흐, 1923년 12월 24일 - 1924년 1월 1일

루돌프 슈타이너

타카하시 이와오 / 유창완



제 1 강 기억의 삼단계

1923년 12월 24일

 


◎ 내면생활의 진화

 

금번 크리스마스회의 기간 중 밤에는 여러분에게 인류사의 발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기회에 지상의 인류 진화를 다시 한 번 개관함으로써 현재의 인간 본질을 지금보다 깊게 집중해서 의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회의는 모든 인류문화의 미래에 대단히 중요한 준비를 하려고 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바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현대인의 혼의 모습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현재 우리 혼의 모습은 과거와의 관련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진화에 관해서든 인류전제의 진화에 관해서든 현대인은 대단히 한쪽으로 편중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인간의 혼적 영적인 생활은 과거도 현재도 역사전체를 통틀어서 본질적으로 달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과학적인 문제에 관해서 고대인은 본질적으로 어린아이 같고, 각양각색의 미신을 믿으며, 인류는 극히 최근이 돼서야 겨우 과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연구를 별게로 하면 일반적으로 현대인의 혼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인이나 고대 동양인과 같은 혼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도, 인류전체도 역사상 어떠한 시대에도 기본적으로 같은 마음과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사시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시대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아직 동물의 모습을 한 인간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사 이래 인간의 마음과 몸의 활동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며, 그 이전의 모습은 안개에 둘러싸여있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은 아직 불완전한 고등영장류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이 거의 일반적인 현재의 사고방식인데, 그 사고방식은 대단히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한, 현대인과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11세기, 10세기, 9세기의 인간 사이의 혼의 모습에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를 전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인과 골고다의 성사(聖事) 시대의 인간, 현대인과 고대 그리스인 사이의 혼의 모습을 말하려 한다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집니다.


 

◎ 고대 동양인의 혼

 

그리고 고대 동양 세계에 이르게 되면,―그리스문화는 이 세계의 일종의 식민지, 마지막 식민지였는데―이 세계의 사람들의 혼생활은 현대인의 혼생활과 전혀 달랐습니다. 1만 년 전, 또는 1만5천 년 전의 동양인이 고대 그리스인 혹은 현대인과 얼마나 다른 존재였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뒤 곧 설명할 예정입니다.


우선 우리 자신의 혼에 시선을 향해봅시다. 무엇인가를 체험한다고 합시다. 보거나 듣거나 하는 체험을, 당사자로서 그와 같은 어떤 체험을 했다고 하면, 그 체험은 기억이 돼서 다시 의식 속에 되살아납니다. 예를 들면 10년 전의 체험을 오늘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10년 전 어떤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그 당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한 것, 모두 함께 무엇인가 한 일, 그러한 일들이 오늘 이미지가 되어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이 내적인 혼의 이미지는 10년 전의 사건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학문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 떠오릅니다. ―물론 현대인은 그러한 감정을 매우 적은 부분밖에 체험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감정에 의해서 떠오르는 기억이 발생하는 장소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머릿속에 그 위치를 정해놓고 있습니다. 머릿속에는 옛날 체험을 기억해내는 작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금 아득히 먼 과거로 건너뛰어서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가 동양의 거주민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현재의 중국인, 인도인 그 밖의 사람들은 이 거주민들의 자손입니다. 그러므로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인간을 보면 그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머릿속에는 외적인 생활 가운데서 체험한 것을 기억하는 기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법한 생활방식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내적인 체험은 그 사람들과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머를 그러한 생각(사고)이나 마음(감정)으로 채우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대의 피상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보면 ‘지금 우리와 같은 생각이나 마음을 옛날 사람도 품고 있었다.’고 해야 하지만 그러한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먼 과거를 영시하면 머릿속에 그러한 생각이나 마음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의 머리는 추상적인 내용을 체험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로테스하게 생각하겠지만―사람들은 머리 그 자체를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머리 그 자체를 느끼고 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의미의 추상작용과는 관계가 없는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던 것입니다. 머릿속의 생각을 체험하는 법을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를 체험하는 방법을 알고 있던 것입니다.


 

◎ 머리와 지구, 가슴과 대기권, 심장과 태양

 

우리의 경우 과거 체험을 떠올릴 때 이 기억상을 과거의 체험과 연결 짓습니다. 태곳적 사람들은 자기 머리의 체험을 대지와, 지구전체와 연결 지었습니다. ‘우주에는 지구가 있고, 지구에는 내가 있고, 나에게는 머리가 있다.’ 이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깨위에 얹혀있는 내 머리 그 자체가 지구에 대한 우주적인 기억이었습니다. 지구는 먼 과거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머리는 훨씬 뒤에 가서야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기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지구 존재를 향한 우주적인 기억이었습니다.


인간 머리의 형태, 모습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지구의 모상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태고의 동양인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구혹성의 본질을 느끼고 있던 것입니다. ― “신들은 지구와 자연의 모든 영역을, 산과 강을 우주 그 자체로부터 창조해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어깨 위에 이고 있는 이 머리는 지구 그 자체의 충실한 모상이다. 이 머리도 그 안에 흐르는 피도 지상을  흐르는 하천과 해류의 충실한 모상이다. 지상의 산계(山系)는 내 머릿속의 뇌의 모습이 되어 반복되고 있다. 내 어깨위에 나 나름의 지구혹성의 모상을 짊어지고 있다.” 그와 같이 태고의 동양인은 말했습니다.


현대인이 자신의 기억상을 과거 자신의 체험과 연결 짓듯이 태고의 동양인은 자신의 머리 전체를 지구혹성과 결합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내면생활의 본질적인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에는 태양으로부터 발산하는 열과 빛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자신의 힘들을 이 대기권에 방출하고 스스로를 태양의 작용에 맡깁니다. 그와 같이 해서 우주로부터 오는 작용을 받아들입니다. 그 경우 고대 동양인은 누구라도 지상에 있는 자신의 거주지를 이 대기권과 관련해서 특별히 중요한, 특별히 본질적인 장소이며,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대지도, 태양과 접하고 있는 위쪽 대기권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상의 다른 지역은 오른쪽, 왼쪽, 앞, 뒤로 저 멀리 멀어져감에 따라서 흐리멍덩하게 사라져갔습니다. (그림1 참조)


<그림1>


예를 들어 인도에서 생활하고 있던 고대 동양인이 그 인도의 땅을 성스러운 곳으로 느꼈을 경우 인도 이외의 동쪽, 서쪽, 남쪽, 북쪽 지역은 일반적인 토지로서 희미한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구와 지구이외의 우주공간의 경계에 대해서도 별다르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자신의 거주지는 특별히 소중한 땅이었습니다.(그림1의 붉은 색 부분) 그 사람에게 그 지역의 생활을 통해서 우주공간을 향해 영향을 주는 일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땅에서 어떻게 호흡했는지는 그 사람에게 특별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었다면 어떤 땅에서 어떤 호흡을 하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 날 사람들에게도 숨쉬기 좋은 환경 나쁜 환경이 있지만 그것을 각별한 마음으로 생각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고대 동양인은 특정한 땅에서의 호흡방식을 특별히 깊게 체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땅의 하늘이 어떤 식으로 우주공간과 연결되어있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고대 동양인은 머릿속에서 지구전체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단단한 뼈에 의해서 윗부분이나 옆, 뒷면이 닫혀져 있지만 아랫부분에는 통로가 있고 가슴을 향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그림1 좌측) 머리가 비교적 자유롭게 가슴 쪽으로 열려있음을 느끼는 일은 고대인에게 특별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고대인은 머리 내부의 형상을 지상의 모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구를 자신의 머리와 연결 짓고,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을 머리 이외의 신체와 연결 지은 것입니다. 머리가 아래를 향해서 열려있는 것, 심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지구가 대기권을 향해서 열려있는 것과 대응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지구는 대기권을 통해서 우주를 향해서 앞으로 열려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커다란 감동과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지구전체를 머릿속에서 느낀다. 이 머리는 작은 지구이다. 하지만 이 지구전체는 나의 심장을 짊어지고 있는 가슴을 향해서 열려있다. 그리고 나의 머리와 가슴, 심장 사이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은 지구와 우주, 대기권과 태양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들의 모상이다.”


거듭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의 머리 안에는 지구가 살고 있다. 더욱 깊이 들어가면 그 지구가 태양을 향한다.(그림1 화살) 그 태양이 안의 심장이다.”


이렇게 말하는 고대인은 우리의 감정생활에 대응하고 있는 혼의 생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의 생활을 감정으로 체험하고 있지만 자신의 심장을 직접 느끼지는 못합니다. 해부를 통해, 생리학을 통해서 심장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하지만 학문에 의해서 얻은 지식은 종이점토로 흉내 낸 심장에 대한 지식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정에 의한 심오한 세계체험은 고대인에게 없었지만, 그 대신에 고대인은 심장을 이와 같이 체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위 세계와 감정으로 결합되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좋아하고, 무엇인가를 싫어하고, 또한 나아가서는 확고한 이 세상의 현실로부터 공기처럼 추상화되고, 떨어져나간 세계과도 감정으로 결합하듯이 고대 동양인은 자신의 심장을 우주와 결부 지었습니다. 즉 자신의 몸으로 지구에서 대기권으로 나아가서 태양을 향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외출한다고 합시다. 그때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우리의 의지는 지체(肢體) 안에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동양인은 본질적으로 다른 체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의지’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사고, 감정, 의지가 고대 동양인 안에도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구인 머리의 체험과 태양에 이르는 대기권인 가슴과 심장의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지체와 행성

 

고대 동양인은 손발의 움직임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지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성을 지체 안에 보냄으로써 지구의 대기권뿐만 아니라 인간과 별 세계와의 관련도 감지했습니다. (그림1 참조) 자신의 머리 안에서 지구를 이미지화 하고, 머리에서 아래 방향의 가슴과 심장 쪽으로 자유롭게 퍼져나가는 것 안에서 대기권을 이미지화하고, 손과 발의 움직임 속에서 먼 우주공간 안에 살고 있는 별들과 지구의 관련을 이미지화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 동양인은 현대인과 같은 ‘의지’의 힘으로 ‘나는 나간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어상으로도 그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앉는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고대어가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살펴본다면 어떠한 고대어라도 ‘나는 나간다.’라고 말하는 대신 ‘화성이 나를 재촉한다. 화성이 내 안에 작용하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전진할 때 양 다리에서 화성충동을 실감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잡고, 무엇인가를 손으로 느낄 때의 감정은 ‘금성이 내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것, 누군가에게 충동을 부여하고 무엇인가 하도록 재촉할 때에는 ‘수성이 사람 안에서 작용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앉는 것은 인간 안의 목성의 작용이었습니다. 또한 휴식을 취하든 게으름을 피우든 눕는 것은 토성의 충동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손과 발의 움직임 안에서 외적인 우주의 펼쳐짐을 느낀 것입니다. 자신의 본성 안에서는 지구에서 우주로, 별의 세계로 가는 것과 머리에서지체로 내려가는 것은 같은 것이었습니다. 머리 안에 지구가 있고, 가슴과 심장에 대기권이 있고, 지체 안에 외적인 우주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완전히 가능합니다. ― “가련한 현대인인 우리는 추상적인 사색에 빠져있다. 그러한 것을 해서 무엇이 되겠는가? 우리는 자신들의 추상적인 사고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추상적인 사색에 몰두할 뿐 자신의 머리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머리는 우리의 어떠한 날카로운 사고보다도 훨씬 내용이 풍부한 존재이다. 대뇌피질의 어떠한 주름 하나를 떼어내더라도,―해부학이나 생리학에서는 대뇌피질의 주름이 가진 훌륭한 기능에 대해서 알지 못하지만― 어떠한 천재적인 과학자의 발상도 미치지 못할 위대한 작용을 하고 있다.”


예전의 지구상에는 인간이 자신의 빈약한 사고내용뿐만 아니라 자신의 머리도 의식하고 있던 시대가 존재했습니다. 그 시대의 인간은 머리를 감지하고, 시상(視床)과 네 개의 뇌실(腦室)을 감지하고, 그것을 대지에 놓인 산계(山系)의 모습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들은 추상적인 학문이론을 통해서 심장을 태양과 관련지은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리와 나의 가슴과 심장 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지구는 태양과 관계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인간은 일생을 우주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평생에 걸쳐서 이 공생을 소중히 생각했습니다. 머리 대신에 빈약한 사고력을 행사하게 된 뒤부터 인간은 사고와 결합한 기억을 갖고, 체험한 내용의 사고상을 기억내용으로서 머릿속에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사고내용이 아니라 머리를 감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와 같은 기억내용을 갖지 않았고,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자신의 머리를 감지하는, 사고와 기억을 가지지 못한 태고의 동양인이 살던 지역으로 간다면, 우리가 지금 다시 필요로 하게 될 능력이 발휘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오랜 기간 그와 같은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우리는 지금 다시 그것을 필요로 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의 혼작용이 가진 작은 태만 탓이기도 합니다.



◎ 땅과 결부된 기억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시대에 자신의 머리, 가슴, 심장, 지체를 감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간다면 작은 말뚝이 땅에 세워져있고 거기에 어떤 표시가 붙어있는 것을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는 어느 벽이라도 어떤 표시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모든 거주지, 모든 생활공간이 다양한 표식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직 기억을 사고내용으로서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일어났을 때 작은 기념물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 갔을 때 자신이 세운 그 기념물로 그때의 사건을 다시 체험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식으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구와 공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단지 머릿속에 메모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메모를 머릿속뿐만 아니라 수첩이나 그 외의 것들에 적어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태만 탓이지만, 점점 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태고 시대에는 그러한 것들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고내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표식으로 덮여있었습니다. 이 인간 본연의 소질로부터 ‘기념비’와 같은 것이 생겨난 것입니다.


인류역사상의 모든 것은 인간 본성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게 이렇게 자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현대의 우리에게는 기념비를 만든 근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우리는 특별히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기념비를 만들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기념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직 현재와 같은 기억력을 갖지 못한 상태로, 체험한 장소에 표시를 남겨두고 다시 그곳으로 향했을 때 그 땅과 결부된 모든 체험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한 태고시대의 흔적입니다. 머리로 체험한 것을 대지에 의탁하는―이것이 태고 시대의 원칙이었습니다.


태고의 오리엔트에는 기념비화된 기억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땅에 표시를  만들었습니다. 기억을 내부에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 여기저기에 만들어진 기념비에 의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지와 결부된 기억입니다.


현재 우리의 영성을 진화시키는 데에 매우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지 않은 이 토지와 결부된 기억능력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대지와 인간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기억능력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해내려고 하지 말고, 이런저런 장소에 표식을 만들자.”,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 바깥의 표시를 기준으로 해서 내적인 혼의 감성을 키우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 방 한 구석에 성모상을 놓고 그 성모상 앞에 서는 것에서 성모를 향한 나의 마음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모상과 같은 기념물과의 섬세한 연결은 지금이라도 우리가 동방을 향해 얼마간 들어가면 어느 가정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동유럽 중부에서도 보편적으로 발견됩니다. 이러한 습관은 모두 땅과 결부된 기억 시대, 기억이 특정 장소와 결합되어있던 시대의 흔적입니다.



◎ 리듬화된 기억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는 땅과 결합된 기억이 리듬화된 기억으로 이행합니다. 처음에는 땅과 결합된 기억, 다음은 리듬화된 기억입니다. 제2단계에서 인간은 기억술이 아닌 내적인 본성으로부터 리듬 안에 살고 싶다는 요구를 갖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들었을 때 리듬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요구를 발달시킨 것입니다. 소가 모우(서양의 경우)하고 울 때 모우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모우모우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더욱 오랜 시대에는 모우모우모우라고 외웠습니다. 즉 지각한 것을 중첩시켜 리듬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현재도 몇 가지 말에는, 예를 들면 가오가오, 쿡쿡쿠(모두 뻐꾸기라는 뜻)와 같이 이러한 표현법 행해지고 있습니다. 또는 아이들 말에는 반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도 리듬화된 기억 시대의 유산입니다. 체험하는 것만으로 기억을 떠올리기 어려울 때 리듬화하여 반복해서 체험하려는 것입니다. 그 경우 이어지는 앞뒤 말 사이에 유사성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만(남자)과 마우스(쥐)라든가, 슈토크(계단)와 슈타인(돌)과 같이 말입니다. 이 체험한 것의 리듬화는 모든 것을 리듬화하려는 강한 동경의 마지막 흔적입니다. 왜냐하면 이 제2기의 인간은 리듬화되지 않은 것을 기억으로 붙들어 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시문(詩文)은 모두 이 리듬화된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기억력은 제3단계가 돼서야 비로소 생겨났습니다. 즉 바깥의 공간 안에서 기억의 근거를 발견하는 것도, 리듬에 의존하는 것도 아닌 시간 속에서 경과한 사건을 나중에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시간적인 기억력’입니다. 참으로 추상적인 우리의 이 기억은 기억의 진화에서 제3단계에 해당합니다.


그럼 인류사에서 리듬화된 기억이 시간적인 기억으로 이행한 것은 언제일까요? 슬퍼해야할 현대인의 추상성을 완전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시간기억’, 기억해야할 것을 이미지로서 떠올리는 기억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언제일까요? 무의식 또는 반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기억해야할 때 리드미컬한 반복을 통해서 불러일으켜야만 했던 리듬화된 기억으로부터 이와 같은 시간적인 기억으로 이행한 시점은 고대 오리엔트인이 그리스에 식민지를 만들었던 시대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해서 식민지를 건설했던 시대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아시아와 이집트로부터 와서 정주한 영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본래 위대한 영웅들이 과거 리듬화된 기억의 땅을 떠나서 그 기억을 시간적인 기억, 시간적인 회상으로 바꾸기 위한 풍토를 찾아 나선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문화가 시작하는 시점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리엔트에 존재하고 있던 그리스문화의 어머니 나라, 본국은 기본적으로 발달한 리듬화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던 거주지였습니다. 그곳에는 리듬이 살아있었습니다. 본래 고대 오리엔트를 리듬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서에서 말하는 낙원은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리듬이 우주를 관통하여 울려 퍼지고, 그것이 인간 안에서 리듬화된 기억을 탄생시키고 있던 아시아라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리듬체험자로서 리듬 생산자인 우주(코스모스)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바가바드기타를 읽으면 그 안에서 과거의 그 장대한 체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다와 서아시아의 많은 시문에서도 이 과거의 체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근대적인 표현을 사용한다면 과거 아시아 전역을 장대한 내용으로 둘러싸고 있던 그 리듬의 여운이 그러한 문헌 안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슴 안에, 인간의 심장 안에 지구 대기권의 비밀을 반영하고 있던 리듬입니다.


그리고 시대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리듬화된 기억이 땅과 결합된 기억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시대의 인간은 아직 리듬화된 기억을 갖지 못했으며, 무엇인가를 체험했을 때 그 장소에 표식을 세우는 일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장소에 없을 때는 기억을 하지 못했지만, 그 장소에 오면 이전의 체험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체험을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표식이, 대지가 체험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지구는 인간의 머리를 자신의 모상으로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대지에 놓인 표식은, ‘땅과 결합된 기억’을 위한 표식은 인간의 머릿속에 이전의 체험을 모상으로서 다시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인간은 땅과 함께 살았고, 기억을 땅과 결합시켰습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가 땅에 무엇인가 기록하고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이 사실을 독자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과 결부된 기억이 리드미컬한 기억으로 이행한 시점은 옛 아틀란티스 몰락 이후 후 아틀란티스 초기 여러 민족이 동방 아시아로 이동했던 시점입니다. 먼저 사람들은 현재 대서양의 해저가 된 옛 아틀란티스대륙에서 아시아로 이동했습니다. 다음에 그 문화가 다시 유럽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림2 참조)


<그림2>


아틀란티스 민족들이 아시아로 이동했을 때 땅과 결부된 기억이 리듬화된 기억으로 이행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리듬화된 기억이 아시아의 정신생활을 완성시켰습니다. 이어서 그리스의 식화를 즈음하여 리듬화된 기억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기억으로 이행이 발생했습니다.


아틀란티스대륙의 파국에서 그리스문명에 이르는 모든 문명은 리듬화된 기억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역사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전승, 신화로서 고대 아시아에서 전해져온 모든 것들은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인류사의 발전은 역사의 바깥측면에 눈을 향하여 현존하는 사료를 조사하는 것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살고 있는 것의 발전을 봄으로써, 그리고 또한 기억력과 같은 능력이 바깥에서 안으로 진화해온 모습을 봄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이 기억능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우리들 누구라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병에 걸려 기억해야할 인생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나의 친구 중 한명은 죽음직전에 무서운 운명이 그를 덮쳤습니다. 그는 어느 날 집을 나와 역에서 표를 사고 어느 지역까지 간 다음, 그리고 열차에서 내려 다시 표를 샀습니다. 그의 기억은 이 표를 산 시점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는 모든 행동을 정확하게 했습니다. 지성은 완전히 건재했습니다. 기억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에게 기억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베를린의 노숙자수용소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때까지 그는 전 유럽의 거의 절반의 지역을 여행하며 돌아다닌 것입니다. 하지만 그 체험은 그때까지의 인생체험과 연결되지 못한 채 지나가버렸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베를린의 그 노숙자 수용소에 수용된 후 겨우 기억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조우하는 수많은 예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근대인의 내면생활은 만약 기억의 끈이 탄생 후 어느 시점부터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지 않으면 건재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토지와 결부된 기억의 소유자에게 이와 같은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기억의 끈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주위 대지에 자신이 체험한 사건을 상기시켜줄 각양각색의 기념물에 둘러싸여 있지 않았다면 우리의 경우 내적인 기억내용이 사라져버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은 불행에 빠졌을 것입니다.


자신이 세운 기념물, 선조, 부모, 형제들이 세운 기념물, 그러한 것들은 서로 유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념비는 친족과 친족을 서로 결합시켰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내적으로 필요한 자아의 조건으로 느끼고 있는 시간화된 기억은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외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인류의 혼의 변천에 눈을 돌릴 때에만 인류사의 진화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찰을 행할 때에만 역사는 올바른 조명을 받게 됩니다. 이번 기회에 나는 우선 특별한 예로서 인류 혼의 역사를 기억능력과 연관 지어 언급했습니다. 인간 혼에 대한 고찰로부터 얻은 빛으로 조명을 비출 때에만 역사상의 여러 사건이 그 진정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을 앞으로 수회에 걸쳐서 고찰할 예정입니다.




제 2 강

 


인류 진화의 역사적 경과과정을 보려면 각각의 시대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혼 상태에 시선을 향해야합니다. 어제 이야기에서도 이것을 이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아시아 ― 영계의 밑바닥

 

어제는 본래의 옛 오리엔트인 아시아계 여러 민족의 진화를 살펴보았습니다. 아틀란티스대륙 몰락 후 이 진화기에 아틀란티스 주민들의 자손이 서에서 동으로 향하는 여정을 거쳐, 서서히 유럽과 아시아에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래 이 민족 집단은 아시아에서 리듬을 기본으로 한 생활태도를 지속했습니다. 처음에는 ‘땅과 연결된 기억’이라는 아틀란티스 시대 기억형태의 분명한 여운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어서 그 여운은 오리엔트 진화 과정에서 ‘리듬화된 기억’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시대가 되자 시간화된 기억으로 옮아갔습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본래의 아시아적인 진화를 짊어지고 있던 것은 후세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체험한 외적인 사건은 후세의 체험보다도 훨씬 인간 심정의 작용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 심정의 작용은 인간존재 전체의 작용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몸으로부터 분리된 혼의 작용, 사고의 작용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머리의 내적인 경과와 관련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혈액순환과 관련성을 갖지 못한 추상적인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고는 내적으로 머리의 경과과정으로서 체험되는 사고였으며, 모든 감정은 호흡리듬 등으로서 체험되는 감정이었습니다. 인간 전체를 나눌 수 없는 통일체로서 체험하고 느끼고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닙니다. 세계와의 관계, 우주와의 관계, 우주의 영적 물질적인 것과의 관계, 그러한 관계도 후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체험했습니다. 현대인은 농촌이나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고, 많든 적든 숲이나 강,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또는 돌로 쌓은 벽으로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대인에게 우주적=초감각적인 것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현대인은 우주적=초감각적인 존재를 어디에서 구하면 좋을까요? 어디에서도 그럴만한 영역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디에도 실마리가 될 만한, 응답받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혼적=영적으로 말입니다.


태고의 동양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서 오늘날 우리가 환경이라고 말하는 것이 통합적으로 파악된 우주환경의 밑바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주위에는 광물계, 식물계, 동물계가, 산과 강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러한 존재에는 영이 침투하고 있고, 말하자면 영의 흐름에 노출되어있어 영에 의해서 짜여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산과 함께 살아있다. 강과 함께 살아있다. 그뿐만 아니라 산과 강의 사대령(四大靈)들과도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광계 안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광물계는 영계의 몸이다. 동시에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영계이다. 말하자면 가장 낮은 차원의 영계이다.” ―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로지 ‘지상계’로만 알고 있는 이 영역은 ‘밑바닥’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 이 그림의 이 부분(hell흰색)이 위쪽으로 사라지면 그곳에 다른 영역(gellrot노랑)이 나타나고 양자는 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위쪽에는 다른 영역(blau파랑)이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역(orange오렌지)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영역을 인지학용어로 말한다면, 최고 영역은 제1하이어라키의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의 영역입니다. 다음은 제2하이어라키의 예지령, 운동령, 형태령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다은은 제3하이어라키의 인격령, 대천사, 천사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제4의 밑바닥 영역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영역입니다. 현재 우리의 과학적 상식에 의하면 자연의 대상과 자연의 경과(經過)만이 존재하는 영역이지만, 과거 사람들에게는 자연의 경과와 자연물과 함께 물과 땅의 사대령들이 활동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영역이 ‘아시아’인 것입니다.


아시아란 인간이 존재하는 영계(靈界), 가장 저차의 영계를 말합니다. 물론 당시 동양에서는 현대인의 의식에 알맞은 사고방식, 느끼는 방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누군가가 영적이지 않은 물질이 존재한다고 말했다면 참으로 난센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산소와 질소 등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사고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산소는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것에 더욱 활력을 부여하고, 생명을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산소와 혼합된 상태로 공기 중에 존재하는 질소도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도처에서 살아있는 유기물에 작용하여, 그 유기물이 혼적인 것을 수용할 수 있도록 작용하는 힘입니다. 당시 사람은 예를 들면 산소와 질소를 그와 같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자연의 과정을 그와 같이 영적인 것과 관련짓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생활방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은 오늘날의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주위의 외적인 대상을 본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러한 시선도 가능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비의입문자들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백주몽(白晝夢)과 아주 비슷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비정상적인 상태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꿈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은 이 꿈에서 주위와 관계하고, 꿈에서 목초지나 나무들, 강, 구름과 관계했습니다. 꿈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현대인은 꿈에서 무엇을 할까요? 어떤 사람이 잠이 들자 갑자기 눈앞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부뚜막이 나타납니다. “불이야!”라고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밖에서는 어딘가로 불을 끄러 소방차가 달려갑니다.


냉랭한 인간 이성의 경험과 화재를 둘러싼 일상의 경험은 이 꿈의 정경과 정말로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고 동양인의 경우 모든 경험이 꿈속으로 흘러들었지만, 바깥의 모든 자연계는 꿈속에서 비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속에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령들을 체험했습니다. 당시 사람에게는 현대인인 우리가 알고 있는 둔감한 잠, 즉 정신도 모르고 잠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잠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누구나가 그러한 잠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수면 중에도 어슴푸레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 수면 중 하이어라키 체험

 

당시 사람은 잠드는 것으로 몸을 쉬는 한편, 마음은 밖으로 나가 활동하면서 제3하이어라키 존재를 지각했습니다. 사람은 통상적인 각성=꿈의식 속에서, 즉 당시의 일상의식 속에서 ‘아시아’를 체험하고 수면 중에는 제3하이어라키를 경험한 것입니다. 때로는 수면 중 더욱 어두운 의식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체험한 것을 자신의 심정에 깊이 각인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동양의 주민들은 모든 것을 비전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일상의식이 존재했습니다. 비전은 더욱 오래된, 예를 들면 아틀란티스기나 레무리아기 또는 월기와 같은 생생함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이 동양 진화 과정에서도 아직 이러한 비전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은 일상에서 비전을 체험했고, 수면 중에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 ‘통상적인 지상생활에서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천사, 대천사, 인격령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들 아래에서 지낸다.’ 당시 사람의 혼은 수면 중 몸에서 자유롭게 해방되어 고차의 하이어라키 존재들 아래에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아’에서는 그놈, 운디네, 지르페, 자라만타라고 하는 지수화풍의 사대령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을 쉬고 있던 수면상태에는 제3하이어라키의 본성들을 체험하고, 동시에 지구기에 속하는 혹성계 안에 살고 있는 존재들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수면상태가 더욱 심화되어 완전히 특별한 상가 발생했습니다. 그 때 사람은 다음과 같이 느꼈습니다. ― ‘전혀 알지 못하는 영역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무엇인가가 나를 붙잡아서 지상 생활로부터 나를 데리고 사라진다.’


제3하이어라키 안에 있을 때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그 이상의 깊은 잠에 빠지면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제3의 수면상태에 대해서는 도저히 분명한 의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2하이어라키의 체험은 인간존재 전체를 깊이 꿰뚫어, 사람들이 그곳에서 깨어났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 ‘혹성존재를 뛰어넘은 고차 존재들의 은총을 받았다. 그것은 지혜령, 운동령, 형태령이라고 하는 제2하이어라키의 영들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태고의 아시아에서는 잠을 자면서 깨어있고, 깨어있으면서 잠을 자는 상태와 제3하이어라키를 만나는 잠, 이 두 가지 의식 상태를 본래부터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보다 깊은 잠을 통해서 제2하이어라키가 인간의식 속에 끼치는 작용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 비의입문자의 각성의식

 

그렇지만 소수의 비의입문자들은 새로운 의식 상태를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놀랄만한 의식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낮 동안 지니고 있는 의식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2, 3세 때 자연스럽게 그러한 의식 상태를 발달시킵니다. 그러나 태고의 동양인은 결코 자연스럽게 그러한 상태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인위적으로 그러한 상태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깨어있는 꿈, 꿈꾸는 깨어남 속에서 그러한 의식 상태를 획득해야만 했습니다. 태고의 동양인은 깨어있는 꿈, 꿈꾸는 깨어남의 상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현재  뚜렷한 윤곽을 갖고 있는 것을 많든 적든 추상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비의입문자들은 사물을 현재 인간이 낮 동안 통상적인 의식으로 보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라면 어느 초등학생이라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같은 내용을 그 의식으로 배웠습니다. 물론 현재 아이들이 학습하는 추상적인 문자는 당시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문자는 세상의 삼라만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 태고시대에 읽고 쓰기가 가능했던 사람은 비의입문자뿐이었습니다. 읽고 쓰기는 현재 인간에게는 당연한 지적인 의식 상태에 들어가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평상시의 의식 상태로 태고의 동양에 가서 그 동양인 앞에 선다면, 여러분을 모두 비의입문자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차이점은 내용상의 차이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비의입문자라고 여기겠지만,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온갖 수단을 이용해서 여러분을 그 지역에서 추방했을 것입니다. 현재는 그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이지만 당시는 비의입문자라고해도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현재 인간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읽고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내면에 들어가서 생각해봅시다. 아주 보편적인 현재의 인간과 같은 유물론적인 비의입문자가 당시의 누군가 앞에 서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 ‘이 인물은 쓸 수가 있다. 어떤 의미를 가진 기호를 종이에 기록한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는 일이 얼마나 악마적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은 우주의 신들의 위탁을 받아서 행해야만 한다. 신이 손과 손가락에 작용하고 혼에 작용하기 때문에 혼이 문자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있을 때에만 어떤 의미 있는 기호를 종이에 쓰는 일이 허용된다. 이것을 모른 채 무엇인가를 쓰다니 대단히 악마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인 것입니다. 태고의 비의입문자는 이점에서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현대의 인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최근에 재판이 나온 《신비적 사실인 그리스도교》의 서두에는 태곳적 비의입문자의 본질이 바로 이점에 있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주 진화에 있어서 나중 시대가 되어 자연스럽게 인간 안에 나타나는 것은 항상 앞선 시대에 비의입문자를 통해서 획득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부터 선사시대 동양 민족의 마음 상태와 이후 문명사회의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아래에 위치한 하늘을 아시아라고 부르고, 그곳에 자신의 나라를 보고, 주위의 자연을 보았던 사람들은 우리들과는 다른 인류였던 것입니다. 하늘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비교해 보십시오. 현대인은 주위의 사물을 하늘의 끝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끝을 하늘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사고방식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 고대 전쟁의 의미

 

그런데 태고에는 영적인 것이 모든 자연에 깊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우리들이, 적어도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이 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현대인이 무엇인가를 쓰는 태도가 대단히 야만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분명 악마가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재 사람들에게는 태고의 아시아에서 아주 당연한 일이 분명히 야만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 민족 집단이 이미 정착하고 있던 다른 민족 집단을 굉장히 잔혹한 방법으로 제압하고, 그 토지를 빼앗고, 노예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시아 전체에서 일어난 동양 역사의 내용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영적은 높은 관점을 갖고 있었지만, 그 한편으로 외적인 역사 과정을 살피면 계속해서 타국을 정복하고, 그 나라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이와 같은 일은 많은 현대인에게 있어서 지극히 야만적인 행위입니다. 지금이라도 어딘가에서 침략행위가 일어났다고 하면 그것을 변호하는 사람들조차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이 침략전쟁에 종사하고 있을 때에는 최고로 양심적이었습니다. 침략을 신의 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대부분의 아시아 땅에서 평화를 향한 갈망이 퍼졌는데 그것은 문명 후기의 산물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문명 초기의 산물은 타국을 향한 끊임없는 침략과 타민족의 노예화였습니다. 선사시대를 아득히 멀리 회고하면 할수록 더욱더 이러한 경향이 뚜렷해집니다. 크세르크세스와 같은 사람들이 행한 것은 그 중의 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정복 원칙의 근저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사람은 앞서 말한 의식 상태로 인해 다른 인간과 세계에 관해서도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지구의 거주지 차이가 원칙적인 의미를 잃어버렸지만,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종종 현실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입각해서 그 차이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그림을 봐주십시오. 이 좌측에 유럽이 있고, 이 우측이 아시아입니다.


정복 민족(적색rot)은 아시아 북쪽에서도 와서 아시아의 특정지역에 정착하여 선주민(gelb노랑)을 노예로 삼습니다.

어째서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정복자로서 나타나는 민족 집단은 항상 젊은 민족, 청춘의 힘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 민족의 늙음과 젊음

 

현 지구진화기의 인간에게 ‘젊음’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현재의 ‘젊음’이란 인생의 어느 순간이라도 혼 안에 죽음의 힘을 짊어지고 있어서 죽음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혼의 힘을 언제라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 안에 싹트고, 꽃피우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력은 우리를 의식적으로 만들지 않고 의식을 무력하게, 무의식적으로 만들고 잇습니다. 우리 내부에서는 죽음의 파괴적인 힘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매일 밤 수면 중에 생명력에 의해서 이 힘을 극복하고 있지만, 이 죽음의 힘은 인생의 끝에 가서 처음으로 단 한 번에 한해서 죽음 속에서 다 타오릅니다. 그러나 (역주-죽음의 힘은)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우리 안에 존재하면서 의식을 고양시키고, 우리를 사려 깊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상은 바로 현재 인간성의 특질입니다.


태고의 젊은 인종, 젊은 민족은 자신의 넘치는 생명력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인간은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 ‘나는 끊임없이 자신의 피를 몸으로 부딪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의 의식은 사려 깊은 상태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젊음으로 인해 자신의 인간성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은 일반적인 인간이 아닌 비의에 입문한 입문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을 한 사람들이 당시 역사의 흐름 전체를 지도했습니다. 그 민족의 구성원은 과도한 젊음과 생명력을 갖고 있었지만 사려는 아주 적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민족은 이동하여, 오래된 민족의 거주지를 정복한 것입니다. 오래된 민족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죽음의 힘을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민족은 늙은 민족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정복자와 노예가 된 사람 사이에 혈연관계가 생겨날 필요는 없었으며, 정복자와 노예가 된 자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펼쳐지는 드라마가 한편에서는 다시 젊어지도록 작용하고, 다른 편에서는 사려 깊게 만들도록 작용했습니다. 궁정을 만들고 노예를 거느린 정복자 필요로 했던 것은 자신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이 노예들에게 주의를 기울인 젊은 혼은 이른바 무기력을 향한 동경 속에서 지나친 생명력을 누그러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인 태도, 사려 깊은 태도가 생겨났습니다.


현재 우리와 같은 개별화된 인간이 달성해야할 내용을 당시는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생활 속에서 달성한 것입니다. 지배민족이 된, 아직 젊고 충분히 사려 깊지 못한 주민들은 자신들보다 죽음의 힘을 더 많이 짊어진 다른 주민들을 가까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배하는 주민들은 다른 주민들을 정복함으로써 인류에게 필요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끔찍할 정도로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태고 동양인들의 전쟁은 단지 인류를 진화시키는 충동을 따른 것뿐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싸움이 없었다면 인류는 진화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끔찍하게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당시의 전쟁이 만약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상에서 진화를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 번개

 

비의입문자는 현재 인간이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단지 그 시각은 현대인에게는 없는 혼의 모습, 느끼는 방식과 연결되어있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뚜렷한 윤곽을 가진 외적인 사물을 감각을 통해서 체험하듯이 그들도 뚜렷한 윤곽을 가진 사물을 체험했지만, 신들에게서 유래하는 사물로서 그러한 것들을 체험했습니다. 당시 비의입문자에게 사물은 대체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그림(그림5)을 봐주십시오. 이것은 번개입니다. 현재 우리는 이런 번개를 볼 수 있습니다.(그림위쪽) 그러나 태고의 사람들은 이것을 우리처럼 보지 않고 그곳에 살고 있던 영적 본성의 작용을 보고 있었습니다. 번개의 뚜렷한 윤곽은 완전히 사라지고 우주공간을 나아가는 신적 존재들의 진군이 보인 것입니다. 번개 그 자체를 본것이 아니라 우주공간을 부유하는 영들의 행진을 본 것입니다.


비의입문자도 당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행진을 보았지만, 시력의 진화와 더불어 행진하는 모습이 점차 옅어지고 사라지면서 현재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번개가 보이게 된 것입니다.


현재 누구라도 보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태고 시대에는 비의에 입문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자연으로부터 무엇을 느꼈을까요? 현재 사람처럼 인식내용, 진리내용을 느낄 때의 무관심함으로 느낀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도덕적인 작용을 느꼈습니다. 비의의 학도들은 후세의 모든 사람들에게ㄴ 아주 당연한 자연관을 엄격한 내적 시련을 거쳐서 익혔습니다. 그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 ‘통상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사대존재들이 공기 중을 진행하는 것을 본다. 이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갖지 않고 신령의 세계에 완전히 귀의하여 그것을 보고 있다.’


실재로 깨어 있는 꿈, 꿈꾸는 깨어남이라는 상태에 있는 사람의 의지는 자유로운 의지가 아닌 사람들 안으로 흘러드는 신의 의지였습니다. 깨어 있는 꿈속의 형상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번개를 본 비의입문자는 ‘신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원했습니다. 신들은 이와 같은 비의입문자를 위해서 우주내용을 바깥 세상에 드러냅니다.


비의입문자는 신들에 의해서 드러난 우주내용을 신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뚜렷한 윤곽을 가진 사물로서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결과 비의입문자는 신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비의입문자가 아무런 보증 없이 신들로부터 독립해버렸다면 견딜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보증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비의입문자는 한편으로는 신령(神靈)에 등을 돌린 채 아시아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편으로는 제2하이어라키에 도달했을 때보다 더욱 깊은 의식 상태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을 잃어버린 세계와 더불어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의 세계를 알게 된 것입니다.


아시아 진화의 거의 중기에 ― 시대구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 비의입문자들은 그 의식 상태에서 지구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 근대인이 획득한 것과 같은 광물, 식물, 동물의 영역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통해서 그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신의 몸속에서 신이 없는 지상의 물질 속에서 신들로부터 해방되어있다고 비의입문자들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들은 이 신이 없는 땅에서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라고 하는 고차의 신들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숲의 모습, 나무들의 모습 그 자체는 녹회색의 영적존재를 나타내고 있지 않았고, 숲은 영적존재가 사라진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에 그 숲에서 제1하이어라키에 속하는 신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 영역의 존재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사회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태고 동양의 역사적인 생성에서 본질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젊은 인류와 늙은 인류 사이를 조정하는 일이 그 후 역사적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 진화 과정에서 젊은 사람들은 오래된 사람들과 접함으로써 성숙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지배적인 사람들의 혼과 만나서 성숙을 이루어나간 것입니다.


우리는 아시아 저편을 향해 멀리 시선을 향하면 향할수록 도처에서 이 진화과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스로 사려 깊게 될 수 없는 젊은 사람들은 정복 과정에서 사려 깊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 고대의 생사관

 

그러나 눈을 아시아에서 그리스로 돌리면 어떤 다른 양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스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대에서도 그리스에는 물론 늙음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늙음이라는 것에 영성을 침투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종종 언급하고 있지만 ‘어둠의 나라에서 왕이 되기보다 현세에서 거지가 되는 편이 낫다.’라고 현명한 그리스인이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인은 외적인 죽음과도, 내적인 죽음과도 마주할 수 없었으며, 죽음을 자신 안에서 찾아냈을 때는 죽음을 자신 안의 사려 깊음을 향한 동경과 연결 짓지 못한 채 오로지 죽음에 대한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젊은 동양의 여러 민족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방법으로 죽음을 체험할 수 없었을 때에는 전쟁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인이 체험한 죽음에 대한 내적갈등은 트로이전쟁으로 그들을 내몰았습니다. 그리스인은 사려(思慮)를 획득하기 위해 타민족 아래에서 죽음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이 내면에서 생명의 왕성함을 느끼게 해준다.’라고 하는 ‘죽음의 비밀’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인과 아시아의 그리스인 선조들 사이의 갈등을 일으킨 것입니다.


트로이전쟁은 불안과 근심의 전쟁이었습니다. 트로이전쟁에서 소아시아 사제문화의 대표와 죽음을 자신 안에서 느끼고 있어도 그것과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의 그리스인이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복에 전념하고 있던 다른 동양 민족들은 죽음을 바래도 죽음이 가깝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인에게 죽음은 가까웠지만 그 죽음과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관계할 수 있도록 동양의 삶의 방식을 필요로 했습니다. 아킬레우스나 아가멤논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 안에 죽음을 품고 있었지만 그 죽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시아로 눈을 돌려 저편 아시아에 반대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장반대의 혼의 모습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리스인은 죽음을 가깝게 느끼고 있었지만 저편 아시아인은 죽음을 생명에 거스르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호메로스는 이것을 훌륭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라는 인물표현을 봐주십시오. 토로이인과 그리스인이 대비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항상 이 대립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립 가운데서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태고시대, 아시아에서는 이른바 죽음에 대한 넘치는 생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향한 동경이 존재했습니다. 그리스 땅 유럽에는 인간 안에 넘치는 죽음이 존재했지만 그 죽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유럽과 아시아는 제2의 관점에서도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즉 한편으로는 리듬에 의한 기억과 시간에 의한 기억의 대립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체의 죽음에 대한 전혀 다른 두 가지 대립하는 체험이 존재했습니다.


내일은 지금 암시한 이 대립을 더욱 자세히 고찰하고 인류 진화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한 이행과정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현재 인류의 진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 제3 후 아틀란티스기의 영과 혼

 

나는 지금으로부터 딱 13년 전 크리스마스와 신년 사이에도 슈투트가르트에서 이번 연속강의와 같은 테마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때와 같은 테마를 다루겠지만 관점을 조금 바꾸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지금까지 2회에 걸친 도입강의에서는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특히 선사시대 이래 인류의 심정, 혹은 혼이 얼마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졌는지 명확히 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명확히 하기 밝히기 위해서 적어도 처음은 역사를 수천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고 있는 대로 영학적으로 고찰할 때 이른바 아틀란티스대륙의 파국 이후 선사시대, 역사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 통상적으로 ‘빙하시대’의 ‘신빙기’라고 부르고 있는데 ― 아틀란티스대륙 몰락의 마지막 장이 내려지고, 이 대륙이 지금의 대서양 해저를 형성하기에 이르게 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아틀란티스 파국의 결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다섯 개의 대문화기가 지나갔습니다.


이들 문화기 중 처음 두 개의 대문화기에 대해서는 역사의 전승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저편 오리엔트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자료는, 훌륭한 베다도, 베단타철학도 나의 《신비학개론》에서도 언급한 본래의 인도기, 본래의 페르시아기의 단순한 잔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 고대 인도기, 고대 페르시아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후 아틀란티스 제3기에 해당하는 칼데아=이집트문화기 시대를 다루어보겠습니다. 그리스=로마기가 그 문화기의 뒤를 잇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대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틀란티스대륙의 붕괴에서 그리스문화기에 이르기는 시대까지 인류의 기억력, 회상능력의 변화를 고찰하고, 그 위에 인간 공동생활의 변화에도 눈을 돌렸습니다. 현재 우리의 기억,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경험을 찾아나서는 기억은 제3 후 아틀란티스기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말한 것과 같이 리듬체험과 결합된 기억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리듬에 의한 기억에 앞서 존재했던 것은 아틀란티스시대에 특히 분명히 나타나는 땅과 결부된 기억이었습니다. 당시 인간은 본래부터 그때그때의 현재의식밖에 갖지 못했으며, 바깥세계에 존재하는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자신의 개인적인 과거뿐만 아니라 인류의 과거와도 관계가 있는 표식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상의 표식만이 표시였던 것은 아니었으며, 천체, 특히 혹성의 상호위치관계도 기억을 위한 표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별의 위치가 이동하는 것이나 되풀이되는 것으로부터 과거의 사건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바깥 땅과 결합된 태고 인류의 기억을 육성하기 위해 하늘과 땅도 서로 함께 일한 것입니다.


아틀란티스기의 인류는 후세, 또는 현재 인류와 신체적으로도 달랐습니다. 현재 인류는 각성시에 자아와 아스트랄체를 당연한 듯이 몸 안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육체와 에테르체가 자신보다 훨씬 중요한 조직인 아스트랄체와 자아를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대개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관계를 알고 있지만, 태고의 인류는 자기 존재의 모습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와 똑같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3 후 아틀란티스기인 이집트=칼데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인간은 각성시에 육체와 에테르체 이외에 자신의 혼과 영을 분명하게 체험했습니다. ― ‘그것은 나의 영이고 혼이다. ― 이 영과 혼을 영학은 자아와 아스트랄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그것은 나의 육체와 에테르체에 결합되어있는 존재이다.’ 당시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은 이중존재로서 이 세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육체와 에테르체를 자아라고 부르지 않고 자신의 영과 혼만을 자아라고 불렀습니다. 영적이면서 아래로 육체, 에테르체와 두드러진 관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자아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은 이 영과 혼, 이 자아와 아스트랄체 안에서 하이어라키의 활동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현재 인간이 자신의 육체 안에서 자연성분의 작용을 느끼고 있듯이 말입니다.


실제로 인간의 육체는 양분과 호흡을 통해서 외적인 자연계의 성분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 성분은 그때까지는 바깥에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 안에 있습니다. 자연계의 성분은 육체 안을 통과하면서 육체의 성분이 됩니다.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육체=에테르체를 나누어서 느끼고 있던 당시 사람은 천사, 대천사로부터 지고한 하이어라키 존재에 이르기까지 영적=본질적인 것이 자신의 영혼을 통해서 자신의 자아와 아스트랄체의 성분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은 인생의 어느 순간이라도 ‘자신 안에는 신들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자아는 육체, 에테르체의 성분에 의해서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은총에 의해서 위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하이어라키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육체, 에테르체를 물질계에서 앞으로 나아기 위한 짐차처럼, 인생을 위한 탈것처럼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알맞은 방법으로 우리의 혼의 눈에 비치지 않는다면 인류사의 경과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길가메시와 엔키두

 

이 인류사의 경과를 다양한 예를 통해서 더듬어나갈 수 있겠지만 오늘은 바로 13년 전에도 언급했던 끈을 다시 다루어보겠습니다. 그 끈이란 길가메시서사시라고 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적이고 전설적인 자료를 말합니다. 길가메시서사시의 일부 전설적인 이야기를 오늘은 영시를 통해서 직접 더듬어나가려고 합니다.


소아시아의 도시 우루크 ― 길가메시서사시는 그렇게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 에 어제 말했던 정복자들 중 한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제 말한 바와 같은 바로 그 혼, 그 사회성으로부터 성장한 인물로, 서사시는 이 인물을 길가메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지금 다루고 있는 제3후 아틀란티스 시대에 살았으며, 또한 그 이전 인간성의 특징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인물 안에서는 신들이 영향을 끼치는 영혼과 지구=우주의 물질적, 에테르적인 성분을 짊어진 육체=에테르체 사이의 이중성이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길가메시서사시의 주인공이 활동하고 있던 시대의, 특히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음 진화기를 향한 이행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행이란 바로 그 전 시대까지는 높은 영계에 존재하고 있던 자아의식이 이른바 육체적=에테르적인 곳까지 가라앉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길가메시는 자신 안에서 신들의 작용을 느낀 영혼에 대해서가 아닌 자신의 지상적=에테르적인 부분에 대해서 ‘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사람들 중 한명이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혼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아는 자기의식적인 자아로서 영적=혼적인 곳에서 육체적=에테르적인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혼의 모습 안에는 옛 습관도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즉, 리듬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만을 기억하는 옛 습관입니다. 그리고 제2강에서 말한 죽음의 힘을 알려고 하는 , 바로 그 내적인 감정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깊이 생각하는 인물이 되려면 죽음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길가메시라고 하는 인물의 혼은 당시 이미 수많은 윤회전생을 거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혼은 지금 제가 말한 새로운 혼의 모습을 갖게 됨으로써 지상에서 어떤 종류의 불확실함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정복자로서의 기억과 리듬화된 기억, 이 두 가지가 지상에서 더 이상 정당하게 통용되지 않게 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길가메시의 체험은 이행기의 혼 체험이었습니다.


이 인물이 예 습관으로부터 도시 우루크를 정복했을 때 이 도시에서 여러 알력이 생겼습니다. 우선 그는 이 도시에서 반기는 인물로 평가받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혼자만으로는 이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났습니다. 이 서사시에서 에아바니(엔키두)라고 부르는 인물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제가 《신비학개론》에서 말한 의미에서 지상의 인류를 일정기간 이끈 혹성으로부터 비교적 늦게 지상에 내려왔습니다. 잘 알고 있듯이 아틀란티스기에 혼들이 점차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떤 혼은 더 빠르게, 어떤 혼은 더 늦게. 이러한 혼들은 지구기의 매우 이른 시기에 지구에서 우주의 여러 혹성으로 떠나가 있던 혼들이었습니다.


길가메시는 비교적 빨리 지구에 돌아온 혼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이미 지상에서 많은 전생을 체험했습니다. 우루크로 옮겨온 다른 한 명의 인물은 비교적 오랜 동안 혹성에 머물다 나중이 돼서 다시 지구로 향한 것입니다. 이것은 13년 전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연속강연에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늙은 혼과 젊은 혼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강한 우정으로 묶여 서로 도와가며 소아시아 우루크라는 도시에 견고한 사회제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제2의 인물 에아바니가 지구바깥 우주에 머무르고 있을 때부터 몸에 지니고 있던 지식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슈투트가르트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인물은 일종의 영시, 영청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 인물의 오랜 정복자의 습관과 리듬화된 기억에 이 인물의 우주지혜가 융합함으로써 이 소아시아의 도시에 훌륭한 사회질서가 세워진 것입니다. 도시에는 평화가 주민들에게는 행복이 지속되었습니다. 만약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아무 일 없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도시의 생활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일종의 비의가, 여신 이슈타르의 비의가 존재했고 대단히 많은 우주의의 비밀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의미로 일종의 종합적인 비의였습니다. 즉 아시아의 다양한 비의가 이 이슈타르 비의 안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시대의 비밀내용을 변화하고 변용된 형태로 이 장소에서 육성하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길가메시는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비의 장소에서 모순된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 도시의 지배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매우 중요한 인물이 비의를 비난함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결국에는 비의의 사제가 이 일로 비의의 신에게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제 고대에서 아시아는 하이어라키의 밑바닥이며, 이 밑바닥에서 사람들은 신령들과 교류하고 있었다고 말했으므로 비의의 사제가 진지하게 고차의 하이어라키 존재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들과의 교류는 특별히 비의의 강소에서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슈타르비의의 사제들은 계시를 얻기 위해 항상 기도를 올리고 있던 영적인 존재들에게 호소했습니다. 그 결과 신들로부터 이 도시에 벌이 내려졌습니다.


고차의 영적인 힘이 우루크에서 동물적인, 요상한 괴물 같은 모습을 띄고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의 몸을 병들게 하고 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길가메시의 한쪽이 되어 활동하고 있던 에아바니는 이 재난 아래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지상에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사후에도 길가메시에게 협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후 길가메시의 인생에서도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이 이어졌고 에아바니는 길가메시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길가메시는 혼자가 되었지만 자기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의지의 결합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의 일은 고대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고대인의 심정은 현대인의 심정과 같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인처럼 자유를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지상에 육화하지 않은 신령존재가 인간의 의지에 영향을 주는 일이 있었고, 길가메시의 경우와 같이 죽은 자가 지상의 인간의 의지를 통해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두 의지의 결합으로부터 길가메시는 자신이 지금 어떤 역사적인 상황과 마주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자아’가 죽을 수밖에 없는 몸(육체와 에테르체) 안까지 내려온 사실을 길가메시는 영감을 부여하는 영적존재의 작용에 의해서 알게 되었고, ‘불사’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사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지상에서 불사의 문제에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비의의 장소였지만, 길가메시는 아직 비의에 입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비의의 전통은 태고 아틀란티스 시대라고 하는 ‘근원의 지혜’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의 ‘살아있는 인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원의 지혜의 전수자는 과거에는 영적본성인 채로 지상을 편력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본성은 아주 오래전에 지구를 떠나 달에 ‘우주거주지’를 세워놓았습니다.


오늘날의 천문학은 ‘달은 응축되고, 차가워진 물체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이해방식만을 고수하는 것은 대단히 유치한 사고방식입니다. 달은 지구 인류의 첫 번째 교사로서 지구의 인류에게 근원적인 지혜를 전해준 영적본성들의 거주인 것입니다. 이 본성들은 물질적인 우주체인 달이 지구로부터 분리되어 태양계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게 되었을 때 곧 이 달에 머물렀습니다. 실제로 달을 영시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도 과거 인류에게 근원의 지혜를 가져다 준 교사들이 이 우주거주지 안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의는 이 가르침의 내용이나, 인류 스스로 이 근원의 지혜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근동(터키에서 이란까지)의 비의와 길가메시는 아직 연결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된 길가메시의 친구로부터 초감각적인 영향을 통해서 혼의 불사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내적인 충동이 길가메시 안에 강하게 생겨났습니다.


중세에는 영계를 알려고 할 때 자신의 내부 깊숙한 곳으로 침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근세에는 그 내적인 과정이 더욱 철저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 있는 시대에서는 지구가 오늘날의 지질학자가 말하는 암석덩어리가 아닌 살아있는 것이며 혼적이고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작은 벌래가 인간에 대해 알려고 피부 위를 기어 돌아다니고, 코와 이마를 통해서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당시 인간은 지상을 편력하고, 여러 토지의 여러 지형을 알고, 그것을 통해서 지구를 영계로서 직관한 것입니다. 피타고라스와 같은 사람들이 영적인 인식을 획득하기 위해 이곳저곳 여행을 계속한 것은 결코 표면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상을 편력하는 것은 각양각색의 지형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영적, 혼적, 몸적인 형상을 통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현대에도 사람들은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지만 인심, 풍속을 접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의 집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지역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본질적인 차이를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은 감수성이 마비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을 편력하는 것으로 불사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충동은 길가메시에게 대단히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 길가메시와 에아바니의 비의입문

 

이렇게 해서 길가메시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여행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성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느 땅에서 오랜 비의와 만난 것입니다. 그 땅은 근대에 들어 많은 화제를 제공해준 지역인데 물론 이 지역의 상회상태는 시대와 함께 본질적으로 변화해나갔습니다. 그곳은 ‘부르겐란트(역주-오스트리아 동쪽 끝, 슬로바키아·헝가리·슬로베니아와 접해 있는 주)’로 알려진 땅입니다. 현재 이 지역은 치스라이타니아(역주-오스트리아·헝가리의 헝가리령이 아닌 부분[오스트리아령 부분]을 흔히 ‘치스레이타니아[라틴어: Cisleithania, 독일어: Cisleithanien 치스라이타니엔<라이타 강 이편’이란 뜻>’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 영토 대부분이 라이타 강[독일어: Leitha, 헝가리어: Lajta 러이터 강]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에 속하는지 헝가리에 속하는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비의의 대사제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시스트로스(우트나피시팀)로 불리고 있습니다. 길가메시는 아틀란티스비의를 올바로 이어받은 비의와 만난 것입니다. 물론 나중 시대의 이미 다른 형식의 비의였습니다.


길가메시의 인식능력은 이 비의의 장소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비의에 입문하는 많은 제자들과 같은 시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일곱 날 일곱 밤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시련이었지만 그는 이 시련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대신 다른 시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를 위해서 조제된 어떤 약을 복용하고 그것을 통해서 특정한 영적 체험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 언제나 그렇듯이 정해진 특정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진정한 체험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길가메시는 이 시련에 합격하여 특정한 영적체험을 갖고 우주의 영적인 구조를 통찰할 수 있게 됩니다. 이 편력을 완수하여 다시 귀국했을 때 길가메시는 실제로 고차의 영적인 통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나우강 남쪽기슭을 거쳐 다시 고향, 제2의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고향땅에 도착하기 전에 첫 번째 유혹에 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방금 말한 것처럼 말하자면 정통하지 않은 방법으로 후 아틀란티스기의 비의에 입문했기 때문에 고향 도시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전해 듣고 격심한 분노의 발작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일어난 거센 분노의 발작은 그가 얻은 깨달음을 완전히 어둡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길가메시의 특징인데 죽은 친구와 함께 영계를 영시하는 능력은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영계에서 보내오는 소식을 받을 수는 있었습니다. 비의에 입문하여 직접 영계를 통찰하는 것과 죽은 자로부터 계시를 받는 것은 다르지만 어쨌든 불사의 본질을 향한 통찰은 완전히 살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사후의 생이 어떻게 경과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사후의 모든 현상은 오늘날도 당시도 다음 지상의 각성의식 가운데서 충분히 강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길가메시와 그의 친구 에아바니, 두 사람은 서로 거의 제3 후 아틀란티스 문화기 중기 인간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의 방식에서 인간이 이중의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길가메시는 자아의식이 육체=에테르체 안에 육화했다는 것을 안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다른 인물은 지상의 인생을 불과 조금밖에 되풀이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적인 인식을 소유한 인물로 물질, 소재는 본래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영적이고 소위 소재는 영적 존재의 다른 존재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인간은 현대인이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생각할 수도,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인간의 사고와 감정은 오늘날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당시 인간이 알 수 있었던 내용은 우리가 초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정신적, 문화적, 문명적인 모든 사항은 비의에서 유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비의의 장소에서 온갖 경로를 통해서 일반대중에게 전해졌습니다. 본래의 지도자는 비의의 사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은 방금 전 말한 혼의 모습으로 인해 그 지역의 비의에는 관여하지 않은 채로 있었습니다. 에아바니는 비의에 사후 세계에 머무름으로써 비의와 관계했습니다. 길가메시는 후 아틀란티스의 비의에 입문했지만 그 결과는 어중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의 작용에 의해서 이 두 인물은 태고 지구기의 모든 사정을 느끼고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존재가 되었는가? 우리가 지구 진화를 어떻게 경험해나갔는가? 지구 진화를 통해서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된 우리가 그 진화 과정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가?’ 이 두 사람은 그와 같이 물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의 혼에게 길가메시가 알려고 했던 불사의 문제는 태고의 지구기 진화에 개한 통찰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당시 ‘혼의 불사’ 그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지구기의 태고 진화단계에서도, 월기, 태양기에도 이미 인간 혼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혼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상의 환경과 자신과의 연관성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지구에 속해있다고 느낀 것입니다.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지구와의 관련을 통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아시아의 비의의 장소에서 지켜지고 육성되고 있던 비밀은 우주적인 비밀이었습니다. 우주와의 관련 아래 지구 진화를 아는 일이 비의의 교의이며 지혜였던 것입니다. 이 비의의 입문자는 대단히 생생하고 이념화된 방식으로 태양기, 월기, 지구기 진화를 통찰하고, 인간이 모든 우주사상과 함께 진화해온 과정을 분명히 바라보았습니다. 



◎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비의

 

이 과정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는 비의 중 하나는 훨씬 나중 시대까지 전해진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비의입니다. 에페소스의 비의의 장소 중심에는 여신 아르테미스 신상이 안치되어있었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상 모작 중 하나를 보면 매우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받습니다. 그것은 여성상(像)으로 수많은 유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상을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대 사람들이 이러한 상을 어떻게 체험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대에는 신상을 어떻게 체험하는지가 문제였습니다. 비의의 제자들은 충분한 준비기간을 보낸 뒤 비의 본래의 중심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 중심은 아르테미스상을 말합니다. 이 중심으로 인도된 제자들은 이 신상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상 앞에 선 사람은 피부에 둘러싸여 존재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이 상이라고 의식하게 됩니다. 자신과 에페소스 여신상과의 일체화 결과 ─더 이상 주위의 돌이나 나무, 강의 흐름이나 구름에 시선을 향하지 않고 오로지 아르테미스상에 심안을 집중한 결과, 에테르계와 자신과의 관련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별들의 세계와 자신이 하나임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피부 안에서 지상의 물질성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주적인 본모습을 느꼈습니다. 즉 자신을 에테르적으로 느낀 것입니다.


자신이 에테르계에 존재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됨으로써 지구기와 지구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과거 상태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지구는 앞서 말했듯이 일종의 암석 덩어리이며, 그 표면의 대부분은 물러 덮여있고, 주위는 산소, 질소 그 밖의 것들을 포함한 대기로 둘러싸여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통상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고찰하고 관찰할 때 그러한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의 지구 상태에 이르기 이전의 태고의 지구 상태는 영시하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에페소스의 제자들은 자신과 신상을 일체화시켰을 때 지구와 인류의 태곳적 상태를 영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지구의 대기가 태고 시대에는 지금과 같지 않고 극도로 정묘한 유동하는 단백질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재 지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성립했을 때에 지구를 둘러싼 끊임없이 유동하는 단백질 성분의 작용을 필요로 했으며, 이 성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백질 성분 안에는 미묘하게 구별되고, 금방이라도 결정화하려는 ‘규산’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그림 가운데 붉은 부분) 그리고 그것이 일종의 지구의 감각기관으로 기능하며 우주로부터 영시내용을 여기저기서 지각하고 있었습니다. 단백질 성분으로 된 지상의 대기에 포함된 규산 속에 현실의 영시내용이 외적으로 바뀌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 영시내용은 거대한 식물상의 유기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나중에 대기성분을 받아들여 식물존재가 처음에는 지구의 주변을 유동하며 나타났습니다. 훨씬 뒤에 그 식물존재는 대지에 가라앉고 현재의 식물이 되었습니다.


이 알부민(수용성단백질) 대기 안에는 규산질 성분 외에 석회질 성분도 미세한 형상으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단백질의 응고작용의 영향 아래 동물이 그 석회질로부터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모든 것들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태고의 인간은 지구전체와 하나였습니다. 당시의 인간은 영시내용을 통해서 식물존재 안에서 살고 있었으며, 지금 말한 지상에 생겨난 동물 안에도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인간이라도 지구 전체로 퍼져 지구와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비적 사실인 그리스도교⟫에서 플라톤의 학설에 대해 인간의 이념능력과 관련해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서로 뒤섞여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슈투트가르트의 연속강연에서도 말씀드린 길가메시와 에아바니, 두 사람은 다시 태어나서 에페소스의 비의입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말한 것을 혼에 깊숙이 새겨 넣었으며, 이를 통해서 두 사람은 내적으로 강해졌습니다. 이전에는 체험으로서, 그것도 무의식적인 체험으로서 가지고 있던 것을 지금은 비의를 통해서 ‘지상의 지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두 번의 환생을 통해서 이 두 사람은 인간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과 영계의 깊은 연관성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두 개의 것이 있을 때 그 두 개가 분명히 분리되지 않고 뒤섞여있으면 양쪽 모두 모호해집니다. 분명히 구별되어있으면 양쪽을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길가메시와 에아바니는 이전의 되풀이해온 지상생활의 여운으로 가지고 있던 영계의 영적내용을 평가할 수 있었던 한편, 여신 아르테미스의 영향아래에 있는 에페소스 비의에 입문한 지금 사물이 지상에서, 인간의 외부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인간 이외의 것이 인체를 포함하고 있는 근원의 성분으로부터 어떻게 서서히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두 사람은 만년의 헤라클레이토스가 살아있던 시대에 에페소스에서 풍성한 내면생활을, 우주의 비밀에 정통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인간 혼의 활동이 수면위로, 지면위로 넓어져 갈 뿐만 아니라 위로도 펴져나가는 것을 분명히 의식했습니다. 이집트=칼데아기에 강력한 우정으로 결합된 이 두 사람의 인격이 이어지는 헤라클레이토스 시대에 만나 함께 지내면서, 함께 에페소스 비의에 입문한 결과 그 다음 인생에서도 두 사람의 혼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두 사람이 죽음의 문을 통과하여 영계로 옮겼다가 다시 지상에서 생을 받았을 때 물론 다른 방식이었지만 전생으로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인류사에 관여해온 방식이 카르마적으로 다음 인생에 영향을 끼쳐 이 두 사람은 인류의 진화를 위해 전혀 다른 인체형식을 두르고 나타났습니다.


내가 이 예를 언급하는 것은 이 두 사람이 인류사의 지극히 중요한 시점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점도 13년 전 슈투트가르트의 연속강의에서 언급했습니다. 그 때 말씀드린 것처럼 이 두 사람은 이집트=칼데아기에 위대한 인생을 거쳐 그 다음 인생에서 그것을 내적으로 심화시키고 혼을 강화시켰으며, 나아가 그 다음 인생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대왕이 되어 지상을 살아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대왕의 이 혼의 심층에 시선을 향할 때 그리스문화 쇠퇴기에, 그리고 로마지배의 시작 시점에서 무엇이 이 두 사람의 혼을 충동하여 움직이게 했는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무엇이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내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휴베르니아 비의

 

어제는 각각의 인물을 예로 들어 세계사가 진화 발전하는 양상을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영학을 심화시켜나가려고 한다면 인간 안에 반영된 역사상의 사건을 보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주위의 세계로부터 분리된 개별적인 존재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우주전체의 한 가지로 느끼고 있었으며, 앞으로 모든 시대의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것입니다. 몇 번씩 말한바와 같이 손가락은 몸으로부터 따로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몸에서 떨어져나가면 더 이상 손가락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패되어 다른 것이 되어버립니다. 손가락은 몸에 붙어있을 때 바로 손가락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지상의 인생에서도, 사후 인생에서도 전우주와 결합되어있을 때 비로소 인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인식은 옛날에도 존재했었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입니다. 단지 현재만이 구름에 가려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를 완전히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투명한 우주의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먼 과거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우주에 함께 속해 있다는 의식을 더욱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길가메시와 에아바니라는 두 사람을 들어, 동일한 두 인물이 칼데아=이집트기에 당시에 알맞은 방식으로 지상에서 생활하였고, 다음에 에페소스 비의에 의해서 삶의 방식을 심화시켰다고 말했습니다. 어제는 나아가서 이 두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으로 환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다시 태어난 시대의 지구는 어떠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을까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이 두 사람의 혼이 세 번에 걸친 지상 생활을 통해서 지구환경으로부터 무엇을 수용했는지 더욱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과 같이 길가메시는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 서쪽의 후 아틀란티스 비의에 입문했습니다. ‘후대의 비의의 형태’를 이해하기 위해 이 시대의 비의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대 아틀란티스 비의의 여운을 오랫동안 이어온 비의를 찾아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비의로서 우선 최근 여기서(도르나흐)말씀드린 휴베르니아 비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앞서 말씀드린 것 중 몇 가지를 여기서 다시 한 번 되풀이하겠습니다.


아일랜드 비의인 휴베르니아 비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존재했으며, 그리스도교 성립 당시에도 아직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아틀란티스 주민의 오랜 지혜의 가르침이 가장 충실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후 아틀란티스기에 아일랜드의 비의에 입문한 사람은 대체 어떤 체험을 가졌을까요? 이 비의를 전수받아야할 사람에게는 엄격한 준비를 요구했습니다. 본래 고대에서 비의에 대한 준비는 대단히 엄격했습니다. 그 기간에 혼의 모습을, 인간으로서의 태도를 내적으로 개조해야만 했습니다. 휴베르니아 비의의 경우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물, 감각세계의 모든 대상이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내적으로 강하게 의식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진리를 탐구할 때의 모든 방해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기본적으로 감각세계의 환경은 모두가 환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각은 환각을 발생시키고 진리는 이 환각의 배후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진실한 존재는 감각적인 지각에 의해서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분명히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의 인지학 연구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그러한 것이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이 이해하고 있는 감각세계의 환각적인 성격은 결코 현대인의 마음을 진동시키기 못합니다. 당시 휴베르니아 비의입문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은 진정으로 마음을 진동시키는 내적인 비극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환영이며, 마야이다 라고 이론화시켜 말할 경우 우리는 매우 안이한 태도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휴베르니아 제자의 준비는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까지 나아갑니다. ─‘환영을 꿰뚫고 진정한 현실존재에 이를 가능성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제자들의 준비는 우선 절망에 빠지고, 혼은 내적으로 환영 속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단계까지 진행합니다. 제자들은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 세상의 환영적인 성격이 대단히 강력하고 압도적이기 때문에 완영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통감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준비기간 동안의 생활 중에서 ‘그러므로 이 환영 속에서 계속 머물러야한다.’라고 하는 마음을 되풀이해서 체험하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확고하게 설 수 있는 지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영위에 굳건히 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고대 비의에서 이루어지는 준비의 엄격함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현대인은 내적인 발전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 앞에서면(내적인 발전을 촉진하는 것 앞에 서면) 그곳에서 뒷걸음질 칩니다.


존재와 그 환영성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진리탐구에 대해서도 사정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어둡고 압도적인 감정이 진리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고 인식의 빛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오류와 허위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때가 옵니다. 그 때 자신의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존재와 진리에 절망하지 않으면 비의입문의 때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궁극의 목표와 정반대를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이 목표를 향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실제로 오류와 환영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면 존재와 진리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모를 것입니다. 휴베르니아의 제자들은 진리와 존재를 정말로 깊이 평가할 수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도달해야할 단계의 정반대를 졸업한 제자는 다음에 성역으로 인도되고 매우 암시적인 인상을 부여하는 두 개의 상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휴베르니아 비의에서 그 때 실제로 일루어진 일을 이미지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 중 하나는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안쪽은 공동(空洞)이었습니다. 이 상은 바깥쪽만 만들어져있었으며 겉면은 탄력이 있어서 어디를 눌러도 움푹 들어가는데 손을 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상 전체는 주로 머리부분이 잘 만들어져 있고 그 앞에 서면 머리에서 작용하는 힘이 다른 거대한 몸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물론 내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눌러봄으로써 내부를 눈치 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눌러 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머리 이외의 부분은 머리의 힘이 미치고 있으며 이 상은 머리가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는 인상이 남습니다.


물론 현대인 중 누군가가 현대의 산문적인 마음으로 이 상 앞에 선다면 단지 그것을 추상적으로만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은 온몸과 마음으로 환영의 힘, 오류의 무서움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이 거대한 상의 암시적인 힘을 체험했기 때문에 전혀 다른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상은 남성상이었습니다. 이것과 나란히 서있는 다른 상은 여성상이었습니다. 이 상의 내부는 공동이 아니었습니다. 소재에 탄력성은 없었지만 가소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 상의 표면을 누르면─또다시 누르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모양이 허물어지고 거기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제자는 한쪽 상은 탄력성으로 인해 모양이 곧 원래대로 돌아오고 다른 한쪽 상은 압력을 가하면 금방 모양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제가 곧 말할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이 방을 떠납니다. 그리고 탄력이 없는 여성상에 가해진 손상을 모두 복구한 다음 다시 이 방으로 인도됩니다. 상에 아무런 상처가 없는 상태가 된 다음 다시 그곳으로 인도된 것입니다. 이 과정을 극히 대략적으로 말씀드리고 있는데 이러한 모든 준비를 통해서 제자는 여성상 앞에서 자신의 모든 영, 혼, 몸으로 혹독한 추위의 땅에 서있는 것 같은, 하나의 내적인 체험을 가졌습니다. 이 내적 체험은 이미 그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바로 지금 상 그 자체의 암시적인 힘에 의해서 완벽하게 체험된 것입니다. 제자는 자신이 내적으로 경직화되고 얼음과 같이 얼어버렸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 결과 혼이 겨울 대지의 이미지로 채워지고 겨울의 본질을 영시하게 됩니다.


남성상 앞에 섰을 때는 이와 같았습니다. 제자는 마치 일생 동안 생명력이 자신의 피 안으로 흘러들어와 그 피가 모든 작용력을 발휘해서 피부를 압박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습니다. 한쪽 상 앞에서는 얼어붙은 해골이 된듯했지만 다른 한쪽 상 앞에서는 자신의 내적인 모든 생명이 뜨거움에 녹아 자신이 팽팽하게 긴장된 피부 안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피부의 표면을 눌렀을 때의 체험은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통찰을 갖게 했습니다. ─‘만약 우주에서 특히 태양만이 너에게 영작용을 끼쳤다면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을 너는 지금 느끼고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주적인 태양의 작용을, 그 각각의 경우를, 그리고 인간과 태양과의 관계를 알게 됩니다. 그 때 태양의 상의 암시적인 작용 아래에만 서있다고 생각했다하더라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다른 방향으로부터 다른 여러 작용이 이 태양의 작용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그와 같이 해서 우주와의 관계를 심화시켜나갑니다. 달의 상의 암시적인 작용을 느꼈을 때에는 내적으로 겨울 풍경 속에서 얼어붙는 듯한 추위를 체험했지만 태양의 상 앞에서는 자연스레 여름 풍경을 체험했습니다. 그 때 사람은 다음과 같은 작용밖에 존재하지 않는 듯이 느꼈습니다.


여러분 현재 우리들은 우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쑥갓 꽃은 노랗고 장미는 빨갛고 하늘은 파랗다고 말하듯이 우주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상은 거의 마음을 흔들지 못합니다. 가장 가까운 생활환경에 대해서만 확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주의 비밀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더욱 집중하는 태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감각기관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태양 상의 암시적인 힘을 통해서 혈액순환 전체에 집중시킵니다. 자신 안의 이 암시적인 작용을 체험함으로써 스스로를 태양존재로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상의 암시적인 힘을 체험함으로써 자신을 달 존재로 이해합니다.


이렇게 해서 태양과 달이 어떻게 인간에게 작용하는가를 자신의 내적체험으로부터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인간이 자신의 눈의 체험에 따라서 붉은 장미가 어떤 작용을 미치는지를 말할 수 있고, 자신의 귀의 체험에 따라서 cis라는 소리가 어떻게 울리는지를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비의의 제자들은 후 아틀란티스 시대에서도 인간이 우주 안에 엮어져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직접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드린 것은 하나의 소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상은 실로 장대한 방식으로 서기 초 수세기까지 휴베르니아 비의의 장소에서 제자들이 경험한 우주체험의 스케치였습니다. 이 우주체험은 사람들을 태양체험, 달체험으로 인도함으로써 가능했습니다.



◎ 에페소스 비의

 

에페소스 비의의 경우 ⟪요한복음서⟫ 서두에서 언급하고 있는 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리고 말씀은 신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말씀은 신이었다.’를 매우 집중적인 방식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체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수행자는 유명한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여신상’ 앞에 서서, 생명으로 가득 넘쳐흐르는 이 조상과 자신을 일체화시킴으로써 우주에테르 안에서 살게 됩니다. 이 내적인 체험과 함께 지상생활을 초월하여 우주에테르에 입문하는 것입니다. 그때 수행자 먼저 배우는 것은 인간의 말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인간의 로고스, 즉 인간의 모상을 앎으로써 우주로고스가 전우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때 수행자는 특히 인간이 말함으로써 날숨에 말을 각인할 때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체험하도록 요구를 받습니다. 말한다고 하는 내적인 행위를 통해서 ‘바람’ 안에서 생명이 활동하는 것을 체험하는데 ‘바람’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은 두 가지 다른 경험을 발생시킵니다.



말을 함으로써 말의 형태가 날숨에 각인됩니다. 날숨이 말의 형태를 띠면서 흉부로부터 밖으로 흘러나갈 때 아래쪽 전신에 흐르는 ‘물’ 원소 안에 율동적인 파도가 밀려옵니다. 사람이 말할 때 후두부의 발성기관 부근에서 바람의 리듬이 생성되는데, 그것과 나란히 말하면서 신체내부에서 체액이 파도를 치며 흐릅니다. 언어기관의 아래쪽에 있는 체액이 발성하는 말과 조응하여 진동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말하는 행위가 항상 감정을 동반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신체의 액체부분이 함께 진동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말이 중립적인 상태에서 밖으로 나온 것뿐이라면 우리는 소리를 낸 말에서 공감, 반감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할 때에는 열 또는 ‘불’(빨강=rot)이 위쪽 머리 부분으로 향합니다. 날숨에 각인된 말이 열의 파도를 동반하여 위쪽으로 흘러 사고내용과 결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말을 내뱉으면 바람이 불, 물(또는 체액)과 결합합니다.


인간의 언어활동에 대한 모든 체험을 나타내고 있는 이 경험이 에페소스 비의입문체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다음 수행자는 인간의 이 언어활동이 다름 아닌 의인화된 우주체험이라는 것을, 과거에는 지구 그 자체가 ‘바람’뿐만 아니라 유동하는 단백질 상태의 ‘물’(파랑=blau) 안에서 언어활동과 같은 파상(波狀)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작은 규모로 인간이 말할 때 ‘바람’이 날숨이 되어 생겨나는 것처럼 과거에는 유동상의 단백질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우 위쪽에서 ‘바람’이 ‘불’로 변하듯이 지구에서는 주위가 일종의 ‘바람이 되고 아래쪽에서 일종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우 인체 안의 ‘물’에 의해서 감정이 생기고 지구에서는 대지의 형성. 대지의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위쪽에서는 ‘바람’ 안에 우주사고의 활동이 일어나 대지에 영향을 끼치고 대지를 형성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언어는 대우주적인 형성력의 소우주적인 여운입니다. 에페소스 비의는 압도적인 방식으로 이것을 수행자에게 체험시켰습니다. 수행자는 음성을 낼 때 우주로고스의 활동을 언어의 체험으로 느꼈습니다. 과거 우주로고스는 유동상의 ‘원소’(물)를 움직여서 위쪽으로는 창조하는 우주 사고에 영향을 끼치고, 아래쪽으로는 생성되고 있는 대지의 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네 안에 인간 로고스가 있다. 그리고 인간 로고스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구기를 살아가는) 네 안으로부터 작용하여 나간다. 그리고 인간인 너는 바로 인간 로고스다.’ ─ 이렇게 말하는 수행자는 우주로고스 안에  살려고 했습니다. 우리 지상의 인간은 로고스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아래로 흐르는 ‘물’에 의해서 인체를 갖고 위쪽으로 흐르는 ‘불’에 의해서 사고내용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네 안의 가장 인간적인 것이 소우주의 로고스이듯이 과거 처음에 로고스가 있었다. 그리고 로고스는 신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로고스는 신이었다.’ ─ 에페소스에서 이러한 사실을 처음으로 근본적으로 받아들였고 이해했습니다.


길가메시라고 하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인물은 비의의 영향권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고대의 모든 문명, 문화는 본래 비의의 현시였습니다. 길가메시는 고향 우루크에 있었을 때 우루크의 비의에 입문하지 않았지만 본질적으로 우주와 연결된 문명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쪽 여행에서는 휴베르니아 비의와 직접 만나지 못하고 직접적인 비의를 체험하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휴베르니아 비의의 땅에서 육성된 문화를 알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현재의 브르겐란트 지방에 이 비의의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 문화가 길가메시의 혼 안에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의 충동이 그의 사후 영계에서 더욱 육성되어 다음 지상생활에 즈음하여 에페소스 비의 안에서 혼을 심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두 인물이 이렇게 해서 혼을 진화시켰을 때 일반적인 문명으로부터 이 두 인물의 혼에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 이래 우주의 미적 표현이 현실의 힘이 되어 밀려왔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도 살아있던 에페소스에서는 과거 인류가 신령과 직접 만났을 때의 현실을 기원전 6세기, 5세기까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시아 또는 천계의 최하층이었던 시대에는 신령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아시아에서는 자연령이나 그 위의 천사, 대천사, 나아가서는 그 위의 형태령과 그 밖의 다른 존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본토에서는 과거 현실이었던 것이 영웅전설이 되어 체험되고 있었고, 또한 근원적인 현실이 아이스큐로스의 비극 중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있었으며, 에페소스에서는 여전히 비의의 심연에 침잠하고 있어서 인간과 신령계의 직접적인 연결에 대한 체험을 아직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문화의 본질은 그리스인이 과거 우주와의 직접적인 연결을 인간에게 친근한 신화 안에, 그리고 미와 예술 안에 침잠시켜 가상으로, 미적인 가상으로 표현한 것에 있습니다.

 

 

◎ 알렉산드로스의 노래

 

여기서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그리스문명이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페르시아전쟁에서 보는 것처럼 옛 아시아로부터 오는 영향을 보기 좋게 물리쳤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그 즈음부터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과거 신령이 지상에 존재했고 인간의 영과 혼과 몸 안에서 활동하고 있던 것을 여운으로 느끼고 있던 사람들은 이 몰락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대왕과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불편한 세계에 살고 있었고 그 세계를 비관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위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계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사모트라케(역주-에게해 북동부에 있는 그리스령 섬) 비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의 혼은 사모트라케 비의의 카베이로스신들(역주-헤파이스토스와 프로테우스의 딸 카비로(카베이로)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제우스와 칼리오페의 자식들이라고도 한다.)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기에 걸쳐 이 두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13, 14세기에 이를 때까지 적어도 아시아지역에서는 온갖 신분의 사람들에게서 명확한 영적인 직관이 아직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중세 그리스도교 사제가 지은 ⟪알렉산드로스의 노래⟫라고 하는 시문은 매우 중요한 중세후기의 문헌입니다. 오늘날 역사서에서는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왜곡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그에 비하면 사제 란플레히트 12세기경에 쓴 ⟪알렉산드로스의 노래⟫는 알렌사드로스대왕에 의해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고대인에 정통한 위대한 견해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음 표현내용을 마음속에 느껴보도록 노력해보십시오. 성직자 란플레히트의 ⟪알렉산드로스의 노래⟫ 안에는 훌륭한 표현이 들어있습니다. ─ 매년 봄이 오면 사람들은 꽃이 핀 숲 근처로 갑니다. 그곳에는 햇빛이 숲의 나무 그늘을 숲 가장자리에 피어있는 풀꽃에 드리워져있습니다. 그러면 숲속의 나무 그림자 가운데 봄의 풀꽃으로부터 꽃의 정령들이 아이들 모습으로 나타나 왈츠를 추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성직자 란플레히트의 이 기술 가운데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아직 가능했던 고대인의 경험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거기에 풀꽃이 있고 그곳에서부터 숲이 되는 등 산문적으로 대화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숲 가까이 다가가면 햇빛이 숲 저편에서 그림자를 던지고, 그 숲의 나무그림자 사이에서 꽃의 정령들의 세계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정령들은 사람들이 숲 속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숲속에서는 다른 사대령들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성직자 란플레히트가 특히 정성들여 그리고자 했던 것은 들꽃의 정령들이 추는 원무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을 쓰려고 했을 때 사대령이 활동하는 원소계와 결합한 대자연에 대한 묘사를 거기에 덧붙였습니다. 왜냐하면 란플레히트의 생각으로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원정이나 대왕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말하려면 지상세계를 산문적으로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사대령의 영역도 언급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역사서는─물론 이것은 당연한 것이지만─다음과 같은 기술밖에 하지 못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야만인을 문명인과 하나로 결합하여, 문명화된 그리스인인 헬라스인, 마케도인아니과 야만인으로 구성된 하나의 평균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와 같은 관점은 현대인에게는 올바르지만 진정한 현실에게 있어서는 어린애 속임수입니다. 중세의 성직자 란플레히트는 이 아시아 원정에서 전혀 다른 목적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압도적인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자연의 물질영역 안에서 자연의 영적인 작용이 나타나 있다는 것, 란플레히트는 이점을 역사기술의 도입부처럼 그리고 잇습니다. 그러면 성직자 란플레히트의 ⟪알렉산드로스의 노래⟫가 말하는 아시아원정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알렉산드로스는 낙원의 문 앞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 그리스도교적인 표현으로 치환되어있지만 지금부터 말씀드릴 것과 같이 그것은 진실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사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은 정복만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충고를 무시하고 야만인과 그리스인의 혼합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진실로 고차적인 목표를 향하고 있으며 영적인 사명을 따른 행위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시대로부터 15세기가 경과한 시대에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을 심오한 귀의의 마음으로 그린 성직자 란플레히트에 의하면 알렉산드로스는 낙원의 문 앞까지 왔지만 낙원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직자 란플레히트가 말하기를 정말로 겸허한 자만이 낙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아직 진정한 겸허함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겸허함은 그리스도교에 의해 처음으로 인류에게 전해졌습니다. 어찌됐든 좁은 마음이 아닌 넓은 마음으로 이러한 기술을 읽으면 그리스도교의 성직자인 란플레히트가 알렉산드로스 원정의 비극적인 측면을 어떻게 느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노래⟫의 이 기술을 소개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싶었던 것은 인류역사상 서양이 동양과 결합했던 때의 전후관계를 말하기 위해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을 이 전원시풍의 시문으로 시작하더라도 그것이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문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감정은 중세의 비교적 후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감정으로 존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알렉산드로스의 노래⟫가 써질 정도로 구체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정말로 위대하고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저 두 혼의 활동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 세계사적인 비극

 

마케도니아 역사에서 이 시점은 한편으로는 아득히 먼 과거로 통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로 통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우리가 의식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에게서 일어난 모든 일 위에 세계사적인 비극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사적인 비극은 외적인 측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은 특별한 세계사의 운명에 의해 극히 적은 부분만 유럽으로 전해졌고, 극히 적은 부분만 교회에 의해서 육성되어 왔습니다. 본질적으로 단지 논리학적인 저술이나 논리학의 옷을 걸친 저술만 전해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논문으로서 남겨진 일부 저술에 침잠하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우주와 인간의 관련성을 향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이 얼마나 압도적인 것을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예 하나만을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우리는 땅, 물, 불, 바람의 원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한 에테르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땠을까요? 그는 지구에 대해서 말할 때 땅과 물, 바람을 포함한 전체에 불이 관통하고, 불로 덮여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와 같은 지구가 달까지 이르고 있으며, 한편으로 우주로부터는 별에서 달에 이르기까지, 즉 더 이상 지구의 영역이 아닌 아득한 우주저편에서 달에 이르기까지, 황도12궁으로부터, 별들로부터 공간적=우주적으로 제5원소인 에테르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에테르는 아득한 저편에서 달까지 이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번역]

우리는 오늘날 흙상태의 엘리멘트(원소), 물상태의 엘리멘트, 공기상의 엘리멘트, 불상태, 혹은 열엘리멘트에 대해,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것, 에테르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아리스토테레스는 어떻게 기술했을까요? 그는 지구를 기술합니다. “고체상 지구(그림참조, 밝은 색의 핵), 액체상 지구, 물(밝은 빨강), 공기(파랑), 전체는 불이 관통하고 불이 둘러싸고 있다.(짙은 빨강)”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지구는 달까지 닿아있습니다. 그리고 우주로부터, 별에서부터 달까지 ─ 즉 더 이상 지상영역 안이 아닌 달까지, 여기까지인데 ─ 황도대에서, 별들에서 공간적=시간적 에테르(바깥쪽 밝은색)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에테르는 달까지 하강합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논한 학자들이 쓴 문헌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제자인 알렉산드로스에게 뒤풀이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의 열 작용권에서 작용하는 에테르, 즉 빛에테르, 화학에테르, 생명에테르는 과거 지구와 결합되어있었다. 모든 에테르가 지구까지 닿아있었다. 하지만 태고시대에 달이 뒤로 물러섰을 때 에테르가 지구로부터 떠났다. 그리고 외적인 공간이라고 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속하는 지상은 에테르가 관통하고 있지 않다. 단지 봄이 되면 달의 사대령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식물, 동물, 인간들을 위해서 에테르를 달의 영역에서 이 존재들 속으로 가져다 넣는다. 그때의 달은 형성자로서 작용하고 있다.”


지난번 말한 것과 같이 휴베르니아 성역에서 여성상과 대면한 사람은 에테르가 본래 지구에 속해있지 않고 매년 사대령들이 생명활동에 필요한 만큼의 에테르를 지상에 보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인간과 우주 사이의 깊은 관련성을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 테오프라스토스(역주-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배웠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설한 리케이온학원의 후계자가 되었다. 식물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는 이것을 논한 그의 저작들을 서방으로 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저작들 중 몇 개는 동방으로만 전해졌고 동방의 우주관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이 저작들은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의 유대인, 아랍인의 손으로 서유럽으로 전해졌고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휴베르니아 비의에서 출발하는 사상들과 만나게 됩니다.



◎ 방위와 에테르의 작용

 

하지만 지금 말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준 가르침의 출발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은 전적으로 내적인 체험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여기에 기록한 것처럼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외적인 세계에는 땅과 물과 바람(공기)과 불의 원소가 살아 활동하고 있고 인간 안에도 그것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점에서 하나의 진정한 소우주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우고 내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인간의 뼈에는 땅의 요소가 살아있었고, 피와 그 밖의 체액에는 생명의 물이 있었으며, 호흡과 말 안에 바람의 원소가 활동하고 있었고, 사고 속에 불의 원소가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대원소를 자신 안에서 생생하게 느꼈을 때─알렉산드로스도 그것을 깊이 체득했는데─ 사람은 자신과 지구 사이의 깊은 친화성을 느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여행을 떠나도 자신을 향해 영향을 끼치는 에테르의 힘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적인 감각이 지각하는 것만을 주위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대원소가 자신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지 않고 자기 안에서 작용하는 지상의 성분만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 동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너는 더욱더 건조하게 만드는 원소 속으로, 건조한 토지를 향해 들어갈 것이라고.

아시아를 향해 가면 정말로 말라버린다고 말이 아닙니다. 당연히 더욱 섬세한 작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와 같은 섬세한 작용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따라서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에 있었을 때 그는 자신 안에 어느 정도의 습기가 살아 있지만 동방을 향해 가면 이 습기가 감소할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정 도중에 이와 같은 식으로 지상의 에테르적인 상황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몸을 손으로 어루만져보면 코와 눈과 입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로 건조한 지방으로 갈 때의 체험과 반대로 서쪽의 습한 지방으로 갈 때의 체험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우리는 둔감해져버렸지만 그럼에도 지금도 북으로 향하면 냉기을 남으로 향하면 온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서로 향할 때 냉기와 습기의 결합을 느끼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길가메시가 서쪽을 여행했을 때 무엇을 체험했는지 알렉산드로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제자는 북서의 습기와 냉기의 중간지대에서 물을 체험한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인물이 북서를 향해서 진군한다고 말하지 않고 물의 원소가 지배하는 곳으로 향해 진군한다고 말한 것은 착상이 아니라 진실한 체험에 뿌리를 둔 말입니다.



습기와 온기의 중간지대에는 바람의 원소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대지의 비의’에서는 그와 같이 가르쳤습니다.  고대 사모트라케 비의에서도 똑같이 가르치고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도 직접 제자에게 그와 같이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냉기와 건조한 기운의 중간지대에는, 즉 마케도니아에서 볼 때 시베리아 방향에서는 땅 그 자체, 지상적인 것, 고체요소가 지배하는 영역을 체험했습니다. 온기와 건조한 기운의 중간지대, 즉 인도 방향에서는 불의 원소가 지배하는 영역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는 북서를 가리키고 이 방향에는 물의 영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고, 남서를 가리키고 여기서부터 바람의 영들을 느낀다고 말하고, 또한 북동을 가리키고 땅의 영들이 떠다니는 것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냉기와 습기의 원소에서 불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한다, 인도로 진군해야만 한다.”라고 말렉산드로스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분명 이 말투 속에서 자연과 도덕의 깊은 연관성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과도, 도덕과도 연결된 이 말투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세계사 진화에 있어서 일대 전환점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 사이에서 함께 이야기된 내용 중에 투영되고 있습니다. 당시는 아직 내밀한 (수업)시간에 과거 시대의 위대한 비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인류는 논리적, 추상적인 내용, 범주론 등을 배우려고 다른 것들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로인해 여기서 인류의 세계사적인 진화에서 거대한 전환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리엔트와의 관련에 있어서 유럽문명의 행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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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윌버 Ken Wilber의 이 책은 암투병의 아내와 함께 했던 헌신적인 노력의 과정과 감동적인 사랑에 대한 글이자 심리치료 및 영성치유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Grace and Grit                    

발표자: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조옥경 교수

 

• 켄윌버에 대한 간단한 소개

자연과학을 전공하던 윌버는 어느 날 우연히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큰 충격을 받으면서 동양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동서양의 정신문화에 대한 수많은 서적을 섭렵하면서 이들을 통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운데 개인적인 수행을 꾸준히 지어나갔다. 그는 동서양의 심리학을 통합한 사람으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으며, 현재 가장 널리 읽히고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또 그는 진정한 세계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윌버는 자신은 판디트(학자)이지 구루(깨달은 영적인 스승)는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구루로 오인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으며 은둔지에서 명상과 독서, 저술에 집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 독일의 한 편집자가 왜 인터뷰에 응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인터뷰를 하면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집필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있다. 


이 책은 윌버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트레야와 보낸 암과의 눈물겨운 투병과정을 그리고 있다. 윌버는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5년 동안 극진히 보살폈는데 그 과정에서 윌버가 보인 환자를 돌보는 성실한 노력, 아내를 향한 식지 않는 사랑, 인간적인 따뜻함과 섬세함이 이 책에 감동적이고도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또 트레야의 죽음을 통해 우아함과 용기, 존재와 행동, 열정과 평정심이라는 존재의 양극성이 어떻게 두 부부의 삶 속에서 조화롭게 통합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트레야는 윌버의 영적 성장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식의 발달과정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는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트레야와의 만남,  트레야의 투병과정, 트레야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시련은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기회를 마련하였고 이를 통해 윌버의 경험과 사고의 지평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암을 치료하려고 두 부부가 성실하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과정은 어떻게 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병을 다루는지, 어떻게 우아함을 유지한 채 용기를 잃지 않고 병마와 싸우는지, 어떻게 병을 미워하지 않고 삶의 한 모습으로 감싸 안는지, 어떻게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으로 인도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윌버는 아내의 죽음을 통해 육체적 죽음은 에고의 마지막 소멸이며 영혼을 영원히 해방시키는 관문임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 또 아내를 전심으로 간호하면서 진정한 수행은 자신을 없애고 타인에게 오롯이 헌신하는 가운데 완성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다.



1. 잠시의 포옹, 잠시의 꿈  

윌버와 트레야는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로저 월쉬와 프란시스 본의 집에서 1983년 여름에 만났다. 트레야가 윌버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살아있는 윌버의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1m 93cm의 키에 머나 먼 혹성에서 온 것 같은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초월론자와 결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는 아주 특이한 겉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매우 남다른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마음은 또 어찌나 따사로운지! 게다가 빛나는 재능도 갖추고 있었다. 과거에 내가 사귀었던 다른 남자들의 경우,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는 재능이 없었고 재능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남자를 찾았다. (pp. 23) 


첫 만남에서 서로가 가볍게 포옹을 했을 때 두 사람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녀를 감싸 안았을 때, 나는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분리감이나 거리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우유와 물이 섞여 혼연일체가 되는 듯 말이다. 과거 여러 생 동안 테리와 함께 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pp. 29) 


그 날 밤 두 사람은 거의 똑같은 시간에 쿤달리니 Kundalini라고 불리는 영적인 에너지가 깨어나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런 경험은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나 만남이 있을 때 흔히 일어난다. 보통 사람은 잘 경험하지 못하지만 영혼이 순수하거나 이미 오랫동안 영적인 수행을 해 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현상이다. 그 때 트레야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수행을 하고 있었고 윌버는 15년 동안 명상을 해오고 있었다. 그 날 이후 그들은 거의 서로 떨어지지 않고 같이 지내게 된다. 


“그 날 후로 우리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거의 함께 있었다. 잠시라도 헤어져 있는 것을 못 견뎌했다.”(pp. 33) 

처음 만난 지 열흘이 지난 후에 윌버는 테리에게 청혼을 했고 테리는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테리는 “만약 당신이 청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에게 했을 거예요.”(pp. 40)라고 윌버에게 말한다 

     


2. 고통을 안고 찾아든 행복

그 후 넉 달이 지나 그들은 결혼식을 올린다. 이 때 윌버는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현대물리학의 위대한 선구자들에 관한 책 “양자적 물음 Quantum Question"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는 현대물리학의 성과와 신비주의를 비교하면서 왜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신비주의자인지를 탐구하면서 그들은 물리학을 넘어선 메타물리학으로서의 신비주의를 원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를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이 둘은 존재의 다른 수준을 다루고 있을 뿐 신비주의를 물리학으로 환원시켜도 안 되며, 물리학을 신비주의로 격상시켜서도 안 된다는 점을 경고하였다. 윌버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리학으로 신비주의를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개의 꼬리로 개를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pp. 49) 


결혼식전 건강진단을 받기위해 병원에 간 트레야는 가슴에 응어리를 발견하였고, 안심시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10일 후에 그 응어리가 암으로 판명되어 두 사람은 행복의 절정에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암 진단을 받은 날 트레야는 다음과 같이 일기에 쓰고 있다. 

“밤이 깊었다. 켄이 차를 만들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세상은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었다. 이것은 현실이고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켄이 부엌에서 돌아와 나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옆에 앉더니 두 팔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둠을 응시했다.” (pp. 71) 

 


3장. 의미에 속박되어 

아내의 암에 직면한 윌버는 병의 의미에 대해 사색한다. 그는 질환(illness)과 병(sickness)를 구분하여 질환은 가치중립적인 것으로써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질환이 병으로 되면 사회적인 가치가 부과되어 두려움, 희망, 신화, 이야기, 가치, 그리고 특정 사회가 질환에 부여하는 의미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 환자는 의학적 질환 뿐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의미가 부여된 병을 다루어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왜 질병에 걸렸는가, 하필 왜 나인가? 이 일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어떻게 이것이 생겼는가? 등등 자신의 질환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 환자는 사회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질병에 걸릴 때 마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의미와 판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병을 이해하게 되는데 사회적 의미를 지닌 병은 지나치게 자기 완성적이며 독선적인 모습을 띤다. “왜 하필 나인가? 왜 나는 병에 걸렸나?” “당신이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야.” “당신은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지?” “당신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지.”라는 식이다. 


이렇게 질환과 병으로 구분한 윌버는 다문화적 시각을 갖고 각종 문화나 사회가 질병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탐색하였다. 

1) 기독교 원리주의자, 2) 뉴에이지 3) 서양의학 4) 업(까르마) 5) 심리학 6) 그노시스파 7) 실존주의 8) 전체론적 의학 9) 마술 10) 불교 11) 과학 (p 83-85) 


윌버는 인간에게는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실존적, 영적 차원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할 때 이들 각 차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암을 예로 들면 

1) 육체적 차원 : 식사, 환경유해물질, 방사능, 흡연, 유전적 요인 

2) 감정적 용인 : 우울증, 엄격한 자기억제, 극도의 독립심 

3) 정신적 원인 : 자기비판, 비관적 세계관, 우울증 

4) 실존적 원인 : 죽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5) 영적인 원인 :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윌버부부는 암의 의미를 다루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느끼면서 “암과 즐겁게 지내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4장. 균형의 문제 

윌버와 트레야는 정통의학과 대체의학(p82)에 관한 정보와 서적들을 모두 섭렵해서 의지할 수 있는 유용한 사실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대체의학과 전체론적 의학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두 사람은 먼저 정통적인 서양의학을 치료를 받은 후에 전체론적 치료를 보조방법으로 이용하면서 두 치료법을 적절하게 조화시켜나갈 결심을 한다. 


질병의 심리적 요인을 다루어 가던 두 사람은 ‘존재(Being)'와 ’행동(Doing)"의 대립이라는 고전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 존재(여성성) : 현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람을 능력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기, 관계성, 포괄성, 포용성, 공감, 배려의 가치 

• 행동(남성성) : 생산하고, 만들고, 성취하는 것, 공격적, 경쟁적, 계층적. 미래지향적, 규칙과 판단에 의존. 현 상태에 변화를 주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이라는 이슈에 직면한 트레야는 자신이 행동/남성성을 과대평가해온 나머지 자신의 여성적인 존재의 부분을 소홀히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원래 이름인 테리가 남성적인 인상을 주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 자신의 여성성을 오롯이 수용하면서 트레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


 • 디먼(daemon)과 데몬(demon)의 문제 

1) 디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내적인 신을 말하며 한 개인이 그를 잘 따라서 행동하면 그 사람의 수호령이 되어, 그가 하고 있는 일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지만,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데몬이 되어버려, 성스러운 에너지와 재능이 자기 파괴적인 모습으로 변화한다. 지옥의 불꽃은 거부된 신의 사랑이며, 악마는 천사가 타락한 모습이다. 윌버는 자신의 디먼을 이미 찾았음을 트레야에게 고백한다. 

“내 나이 23살, 내 집을 찾아와 나 자신을 발견했고, 내 목적을 찾았으며, 나의 신을 찾았다. 그 후 나는 이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pp. 100) 


트레야는 자신의 디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고통을 받았으며 암 선고를 받은 후 줄곧 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간다. 그녀는 “기적수업”에서 강조하는 ‘신이란 내 용서 안에 있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용서와 사랑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기른다. 이런 트레야의 태도를 윌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행동과 존재, 저항하는 것과 열어놓은 것, 싸우는 것과 항복하는 것, 원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그들 간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은 암에 직면한 테리의 중심과제가 되었다.”(pp. 105) 


이런 문제는 다음의 기도문(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의 기도문?)에서 잘 드러나 있다 

신이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온과 바꿔야 할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 당시 윌버는 “의식의 변용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를 집필했고 뉴욕타임즈는 ‘마침내 가장 중요하고 학술적인 동서양 심리학의 통합적 결정판이 나왔다”며 호평을 하였다.    

 


5. 내적인 우주 

•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은 긴장을 풀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또 깨어있음(awareness)을 훈련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방법, 자신에게 의식을 집중해 초점을 맞추는 방법, 언어적 사유를 멈추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 중추신경을 가라앉히는 방법, 스트레스를 없애고 자부심을 기르며 불안감을 줄이고 우울함을 완화하는 방법이라도 한다. 

이 모든 말이 사실이다. ...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명상자체는 영적인 훈련이라는 점이다....  영혼의 내면을 향해,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신성과 합일되는 길을 찾는 방법이다... 명상은 영적인 것이지 종교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 명상은 영적이고, 기도는 종교적이다.” (pp. 122-123)


• 영원의 철학에 대한 트레야와 윌버의 대화 

영원의 철학 : 세계의 위대한 영적 스승, 철학자, 사색가, 과학자들이 채택한 세계관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문화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1) 영적인 것은 존재한다 (2) 영적인 존재는 내면에서 발견된다 (3)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내면에 있는 영적인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와 분리와 이원론의 세계, 즉 타락과 무지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4) 죄와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 해탈의 길이 존재한다. (5) 그 길을 끝까지 간다면 윤회, 혹은 깨달음, 내면의 영적 존재를 체험할 수 있고 종국엔 최상의 자유를 성취하게 된다. (6) 그것은 괴로움과 죄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7) 따라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자비심을 가지고 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pp. 127) 


윌버는 영원의 철학의 핵심은 “작은 자아”를 넘어서 “큰 자아”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나아가는 방법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1. 자아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방법 --. 지식(지혜)의 길, 자력의 길 

오로지 자신의 알아차림이나 집중력에 의지해서 자아를 투과한 보다 광대한 본성에 이르는 길 : 방법 - 위빠사나, 즈나나 요가 

‘나는 신이고, 보편적인 진리다’ 

2. 자아를 무로 축소해나가는 방법 -- 헌신(신앙)의 길, 타력의 길 

스승의 힘이나 신을 의지해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길 : 예 :기독교, 박티요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이여, 당신이 전부입니다’ 

(참고 : 트레야의 어린 시절의 경험. 이것은 트레야의 영적인 수준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pp. 141-142) 

 


6장. 심신탈락 

트레야는 10일 동안의 고엔카 위빠사나 수련을 다녀와서 알아차림의 의미를 깊이 체험한다. 

“고엔카는 말한다. 당신은 감각을 발명할 수 없다. 감각을 선택할 수 없다. 감각을 창조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지켜본다. 무상의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붙들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pp. 150) 


이 수련을 하면서 트레야는 생각이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마음과 몸이 사라지는 체험을 한다. 윌버도 유사한 체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도겐선사는 스승이 귓전에 ”심신탈락!“이라고 속삭였을 때 깨달았지. 당신이 말한 것처럼 분리된 심신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생각이 떨어져나간 거요. 그것과 아주 비슷해요. 나도 그런 체험을 몇 번 했었고, 그 체험들은 아주 현실적이었소. 거기에 비하면 자아는 정말 실제적이지 않지.” (pp. 151쪽) 


심신탈락의 경험을 통해 진아 혹은 지켜보는 자를 일별할 수 있는데, 생각이나 이미지는 볼 수 있어도 이것들이 궁극적인 지켜보는 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과 경험을 통해 자아는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이로써 개인적 자아에서 진정한 주체로, 진정한 자아, 진아인 비개인적인 지켜보는 자로 바뀌기 시작한다. 

“육체는 물질을 알아차리고, 마음은 육체를 알아차리지요. 영혼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영성은 영혼을 알아차린다오. 보다 높은 단계에 오를수록 알아차림은 더 많아질 수 밖에. 즉 보다 크고 넓은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가장 높은 정체성과 보편적 알아차림, 이른바 ‘우주의식’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오.”(pp. 158) 

 


7장. 갑자기 뒤틀린 내 인생 

트레야와 윌버의 성실하고 다방면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이 재발되고 4기의 악성 암세포임이 밝혀진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암환자였던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암이 재발한 사람이 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켄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집단, 다른 동료, 다른 통계, 다른 미래에 놓이게 되었다. 내 인생은 갑자기 뒤틀려버렸다.” (pp. 162) 


재발로 인한 유방절제 수술 후에 윌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왠지 모르지만, 테리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는 것이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만은 그 누구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 어느 때 보다 힘이 필요한 이 때,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빈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울었다... 테리가 불쌍하기 때문에, 안됐다는 생각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용기가 그만큼 자랑스럽기 때문에 나오는 눈물이었다. 그녀는 낙담하지 않고, 다만 당당하게 전진해 나갈 뿐이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냉혹한 상황을 이겨내려는 그녀의 용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pp. 170) 


• 윌버와 트레야가 실행에 옮긴 대체의학과 전체론적 요법 : 175쪽 

유방을 절제한 후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은 가장 질나쁜 전이성 암으로 악화되었으며 그 치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8장. 나는 누구인가? 

항암치료제인 레글란을 투여 받은 후의 강력한 히스타민 반응으로 트레야는 공황상태와 자살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이 때 두 부부는 “무경계 No Boundary"의 “보는 자”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참고 pp. 189-190) 


“당신 안의 자신이라는 깊은 내적 감각은 당신의 기억도 생각도 아니고, 당신의 마음도 몸도 아니며, 당신의 환경이나 감정, 갈들이나 감각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적 자신에게 본질적인 영향을 주는 일 없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내적인 자신은 시간이 흘러도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있는 것으로 자아초월적인 <보는 자>이자 “진아”다.” (pp. 195) 

 


9장. 나르시스, 혹은 자기 수축 

윌버 부부는 타호 호수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살면서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는 데 이 때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이 시기는 암과 싸우는 두 부부 뿐 아니라 윌버 개인에게도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을 맞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윌버는 몇 개월 동안 끊임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나는 타호 호수 남쪽의 파크가에 있는 앤디의 스포츠 용품점에 가서 총을 살 것이다. 이런 상태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정말이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pp. 210) 


윌버는 명상도 하지 못하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면서 심한 우울상태에 빠져드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마을에 창궐했던 이름모를 전염병 때문이었다. 윌버는 근육경련, 발작에 가까운 몸부림, 만성발열, 임파선 장애, 식은땀과 탈진증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1년 6개월 동안 전혀 집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으며 명상을 통해 열려있는 순수의식과의 연결을 유지할 수도 없는 절망적이 상태였다. 윌버는 이것을 자기수축, 즉 자기모습에 절망적으로 빠져든 나르시스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단순하고 파괴적인 잘못은 내 고통을 테리 탓으로 돌리며 그녀를 비난한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의 흥미를 구석에 박아둔 채 그녀를 돕는 길을 선택했으면서도, 저술이나 편집활동, 명상 시간을 잃는 것에 대해 테리를 비난했던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실존주의자가 말하는 ‘나쁜 신념’이다. 이것의 나쁜 점은 자신의 선택으로 생긴 책임을 회피한다는 데 있다” (pp. 213) 


이 때 트레야도 화학요법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화학요법의 가장 나쁜 면은 그것이 내 영혼에 독을 쏟아 붓는다는 점이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그리고 영적으로 나를 해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너무도 지쳐서 전혀 자신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pp. 221) 


서로 심신이 탈진될 때로 탈진된 두 부부는 결국 위기의 정점을 맞게 되고 급기야 윌버는 난생 처음으로 여성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손찌검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때리고 만 것이다. (pp. 229-230) 

 


10장. 치유할 시간 

위기의 정점이 지나자 윌버부부는 자신들 만으로는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로저 월쉬, 프란시스 본, 특히 세이무어 부어스틴의 도움을 받아 서로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은 “기적수업”을 중심으로 ‘수용과 용서’라는 덕목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참고 pp. 235-236) 


“신은 내가 용서하는 사랑 속에 있다.” (기적수업의 문구) 

트레야는 자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 자신에게 치료할 시간을 주는 것. 개방적이고 조용한 공간이 지나가도록 그냥 내버려둔 채, 그곳에서 무엇이 나올까 그저 지켜보고 있다.” (pp. 239) 


• 두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수행을 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 : (pp. 249) 

두 사람이 함께 모실 수 있는 스승을 찾던 중에 칼루 린포체를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즉시 그 분이 자신들의 스승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pp.250) 


• 윌버가 가타기리 선사 밑에서 견성을 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 : 

“아주 작은 경험이었소. ” 켄은 설명했다. 그 깨달음은 선사가 이런 말을 했을 때에 일어났다고 한다. “보는 자는 자아의 마지막 저항이다.” (pp. 252) 

 


11장. 심리치료와 영성 

서독에서 에디스 준젤이라고 하는 편집자가 윌버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망설이던 끝에 인터뷰에 응하게 된다. 

“모두가 저를 스승이나 구루 또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판디트는 될지언정 구루는 아닙니다. 실천에 관한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초보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5년간 고작 4번밖에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어요.” (pp. 234) 


에디스 준델과의 인터뷰를 통해 윌버는 심리치료와 영성의 관계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융과 조셉 켐벨의 문제점을 지적(pp. 226, 269, 270) 

• 윌버의 의식의 9단계를 간단하게 설명 (pp. 272-276) 

• 전초오류에 대한 설명 (pp. 279-) 

• 각 단계 마다 일어날 수 있는 심리적 장애에 대한 치료법 설명(pp. 280-291) 

• 의식의 스펙트럼 각 단계에 고유한 세계관에 대한 설명(pp. 294-296) 


• 명상과 심리치료의 관계 

심리치료는 1-6단계까지의 발달장애로 인해 생긴 심리적 장애를 치료할 수는 있지만 7-9단계까지의 발달을 도와주거나,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장애를 적절하게 다룰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총체적인 발달을 위해서는 심리치료와 명상이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 


“대체로 명상과 심리치료는 영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아도, 목적으로 삼는 단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선이 반드시 노이로제를 제거한다고 할 수 없고, 또 그런 목적을 위해서 고안된 기법도 아닙니다. 더욱이 아무리 보는 자의 감각을 발달시켜도 여전히 노이로제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삶의 감정적인 명이 망가지고 있다 해도, 선은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주지 못합니다. 선은 그런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 선은 노이로제와 잘 지내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pp. 291-292) 

“프로이드는 붓다가 아니고, 붓다 또한 프로이드가 아닙니다.” (pp. 293) 

 


12장. 다른 목소리로 

마침내 트레야는 화학요법의 스트레스로 인해 당뇨병에 걸리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덮친 당뇨병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자신의 영적 진화를 위한 여정을 계속한다. 이 때 트레야는 남성의 영성에 대응하는 여성만의 영성 계발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자신과 뜻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작은 모임을 시작한다. 


• 여성의 영성에 관한 주제 : (pp. 309-312) 

그 모임에서 트레야는 자신들이 원하는 암환자 지원센터(CSC; Cancer Support Community)를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우리는 여성적인 접근을 통해, 암과 싸우거나 암에서 회복하는 것을 강조하기보다 전반적인 삶의 질을 강조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암을 치료하지 못한 것이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pp. 318) 

이 때 트레야는 꿈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 자신의 디먼을 찾는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여자, 예술가, 장인, 행위자가 아니라 제조자,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 작품의 결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커다란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 (pp. 320) 

“나의 것은 조용하고, 형태가 없으며, 부드럽다. 배경적이고, 여성적이며, 보이지 않는다. 몸과 관련된, 대지와 관련된 그것. 그러나 내게는 더욱 실제적인!” (pp. 323) 

 


13장. 에스트레야 

암이 다시 재발되어 뻐, 뇌, 폐로의 전이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 트레야는 자신의 낡은 남성적 자아인 테리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자아인 트레야가 태어났음을 느꼈다. 이 때부터 테리는 자신을 트레야로 불러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를 새로운 부활로 여기게 되었다. 

“남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자. 나 자신을 테리라고 부르지 말자. 트레야가 되기. 장남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기. 그날 밤 나는 경이로움과 흥분에 가득 찬 꿈을 꾸었다. 기억에 남는 유일한 말은 “안녕, 내 이름은 트레야야.”였다.” (pp. 333) 


윌버부부는 델마에서 심령치유사 크리스를 만났고 이 경험을 통해 테리에서 트레야로의 전환이 완성되었다. 크리스가 실시한 심령치유(기 치료)에서 윌버의 기 상태를 읽을 수 있다. 

“한동안 켄의 머리를 진찰하던 그녀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뇌의 양측에 각각 10개의 통로가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에겐 통로가 2-3개 정도이며 아무리 많아야 4개란다. ... 인간 뇌의 양측이 10개까지 열리는 것은 2000년에 한 번 뿐인 일이며, 그녀 이전의 마지막 인간이 바로 붓다라고 했다. 그런데 켄의 뇌에는 한쪽에 10개 다른 쪽엔 7개의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pp. 343-344) 


• 심령치유에 대한 윌버의 태도를 볼 수 있는 부분. 

“나는 그런 종류의 에너지가 있고 때로는 그 에너지의 효과가 꽤 크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소. 단지 나는 그들의 이야기나 이론에 의문을 가질 뿐이오. 그들이 하는 일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의문이 생긴다고.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이론들은 보통 물리학에서 따온 어설픈 이론들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오. 나는 그런 일에 반발할 뿐이오.” (pp. 341) 


심령치유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던 윌버는 크리스에게는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된다. 

“그녀의 끊임없는 황당한 이야기는 트레야와 내가 모든 걸 더 가볍게 보게 만들었다. 크리스의 주변에서는 진실이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모든 것은 하나같이 사실이거나 거짓이며, 똑같이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음에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모든 게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트레야는 병들고 나는 붓다가 되었다!” (pp. 345) 


• 발달의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병리와 높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병리와의 차이점(예: 제 3지렛목 병리 vs. 제 8지렛목 병리) (pp. 348-349) 

  


14장. 어떤 것이 실제로 도움을 주나?

트랜스퍼스널 심리학회지와 뉴에이지에 실린 트레야의 글은 잡지사상 최고의 반응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트레야는 오프라윈프리 쇼의 주목을 받았다. 


• 질병을 바라보는 자비로운 관점 

암에 걸린 어머니에게 트레야는 아내로만 지나치게 충실했던 반면, 자기 자신으로서는 살지 못했다는 이론을 늘어놓았던 트레야에게 암에 걸린 또 다른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너는 어머니에게 이론을 적용하면서, 어머니를 물건처럼 다뤘던 거야.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 자신을 침해한다고 느꼈을 수 있어. 나는 알아. 왜냐하면 나도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친구들이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야.... 그 이론들은 결국 나를 돕는 게 아니라 자기들을 돕는 거야. 난 그 이론들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워.”(pp. 363) 

“때때로 치료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원한다. 내가 자신에게 대안을 제시하거나 관습적인 치료들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 그러나 일단 일정한 치료방법을 선택하면, 그것이 가장 쉽고 매우 안전한 정보일지라도 그들은 나의 정보를 원치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이다.” (pp. 364) 


“당신 자신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단순한 선언이 사실이기에는 삶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그것은 나와 우리를 길러주는 관계의 망을 통제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는 것이다....우기의 현실에 우리 자신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야 옳다. 이것이 진리에 더 가깝다.” (pp. 365-366) 

“죄와 죄책감을 강조하는 유대 기독교에서는 질병을 잘못에 대한 징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현상을 자비심을 키우고 타인에게 봉사할 기회로 삼는 불교적 입장을 선호한다... 진실로 두려워 할 수 있게 스스로 허용한다면 아무리 끔찍한 일이 닥쳐도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질병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질병과 친숙해지는 방법을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이다” (pp. 366-367) 


• 불교에 대한 윌버의 입장 

“나는 딱히 불교도가 아니다. 오히려 베단타 힌두교나 기독교 신비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내가 수행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불교다.” (pp. 356) 

• 불교를 소승, 대승, 금강승으로 나누어 각각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단점과 수행법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pp. 356-362) 

• 자비심을 기르는 통렌 tonglen 수행(암이 악화되자 트레야는 이 수행을 적극적으로 실천에 옯겼다.) (pp. 358) 

 


15장. 뉴에이지 

이 장에는 뉴에이지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다. 이 글은 “우리가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뉴에이지에 실렸다.(pp. 375-385) 


“그들이(뉴에이지) 말하는 원리에 따르면 현재의 삶은 이전 생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다. 하지만 힌두교와 불교에 따르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특정한 업의 관점을 믿지 않는다. ... 남카이 노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업 때문에, 혹은 개인의 이전 조건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서, 외부에서 온 에너지로 인해 생기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과 같이 환경의 일시적인 원인들로 야기되는 질병도 있고 사고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환경과 연관된 온갖 종류의 질병이 있는 셈입니다.“... 당신 스스로 자신의 실재를 창조한다는 신념은... 모두 과대망상, 전능을 포함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유아적이고 마술적인 세계관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고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한다는 주장은 (발달의) 2 단계를 정의하는 자아경계의 불완전한 분화의 직접적 결과라고 본다.” (pp. 380-381) 


“뉴에이지 운동은 마치 얼룩덜룩한 큰 짐승 같다. 거기에는 진정한 신비주의, 트랜스퍼스널 원리에 바탕을 두는 측면도 있다. 진정한 트랜스퍼스널 운동은 항상 전개인적인 요소를 상당 부분 끌어들인다. 왜냐하면 둘 다 비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과 ‘초’ 간의 혼동은 뉴에이지 운동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인  것 같다.” (pp. 382) 


“우리는 전개인적 신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신념들을 초개인적인 것인 양 포용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 곤란할 뿐이다... 실제로는 전이성, 치성, 초이성이라는 3개의 진영이 있다. 사실 우리는 전이성주의자보다는 이성주의자에 가깝다. 상위수준은 하위수준을 초월하면서 포함한다.... 모든 초개인적인 신조들은 논리의 검증을 견뎌내야 한다. 그 때, 오로지 그때서야 논리를 넘어선 통찰이 가능하다. ”(pp. 384-385) 

그러는 사이 트레야는 암이 뇌로 전이되어 더욱 공격적인 화학요법을 받게 되고 이를 위해 두 부부는 고용량 단기 화학요법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얀커병원으로 치료를 위해 떠나게 된다. 

 


16장. 저 새들이 노래하는 걸 들어봐! 

“트레야와 나는 본에서 마지막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나는 이 어려운 시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세이무어에서 통렌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노력했다... 나의 가슴은 트레야를 위해, 나를 위해 산산이 부서졌다” (pp. 395)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본에 도착한 후 일주일 동안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것은 지속적인 것이었고 심지어 그녀는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방문객들이 자주 그 사실을 언급할 정도였다. 그녀는 환희를 내뿜고 있었다.” (pp. 4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영혼은 행복하고 삶을 즐기고 있다. 창밖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고,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끝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올 한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저 새들의 노래를 들어보라!” (pp. 401) 

 


17장.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윌버 부부는 트레야 부모님과 함께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파리로 여행을 간다. 

“독일을 지나 파리에 가까워지자, 내 눈은 봄날의 전경을 탐욕스럽게 담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라임 빛깔의 초원, 시내를 따라 늘어선 새잎이 돋은 나무들과 띠를 두른 들판, 느낌표 모양으로 흩어진 노란 개나리, 꽃을 피우는 벚나무, 가파른 언덕과 강둑을 따라 꽃으로 장식된 포도원, 계곡들을 따라 물결치며 변신하는 대지. 오랫동안 굶주린 내 눈과 영혼은 모든 것을 들이마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었는데, 이제는 봄이, 부드럽고 밝은 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인가?” (pp. 418) 


“이제 나는 봄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가을의 금빛 불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봄은 내 가슴 깊숙이 와 닿는다. 내가 새로운 기회를, 내 삶의 새봄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pp. 442) 


본으로 돌아온 윌버 부부에게 암을 치료하는 긴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 사이 윌버는 트레야를 간호하는데 지쳐 쾨니히스빈터의 드라헨펠스라는 고대의 장엄한 요새로 관광을 간다. 요새의 탑에 올라간 윌버는 다음과 같이 사색에 빠진다. 


“올려다보면 하늘이, 내려다보면 땅이 있었다. 하늘과 땅, 하늘과 땅. 트레야가 떠올랐다. 지난 몇 년에 걸쳐 그녀는 땅에 있는 자신의 뿌리, 자연에 대한 사랑, 몸, 만들기, 자신의 여성성, 기초가 단단한 개방성, 신뢰, 돌봄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있고 싶어 하는 곳, 내 스스로 편안하게 느끼는 곳에 머물렀다. 신화로 치자면 영의 세계가 아니라 관념, 논리, 개념, 상징이라는 아폴로적 세계를 의미하는 하늘에. 하늘은 마음과, 땅은 신체와 관련된다. 내가 느낌을 포착해서 개념으로 연결했다면, 트레야는 개념들을 포착해서 느낌으로 연결했다. 내가 끊임없이 특정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움직였다면, 트레야는 항상 보편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움직였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트레야는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문화를, 그녀는 자연을 사랑했다. 나는 바하를 들으려고 창문을 닫았다면, 그녀는 새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바하를 껐다.” (pp. 434) 

 


18장. 죽은 스승은 아니다! 

다시 볼더로 돌아온 윌버부부는 트레야의 삶이 일년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수용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미래에 살기를 거부하면서 의식적으로 죽음과 함께 현재를 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라. 죽음은 무엇보다도 미래가 없는 조건이다. 마치 미래가 없는 듯이 현재를 살아감으로써, 그녀는 죽음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pp. 444) 


트레야의 이런 삶에 대한 태도는 선사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윌버에게 상기시킨다. 

“유명한 선의 화두가 있다. 한 제자가 선사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죽은 후에는 무슨 일이 생기나요?” 그러자 선사는 “모른다”고 말했다. 놀란 제자가 다시 “모른다고요. 당신은 선의 스승이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 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지만 죽은 스승은 아니다.”  (pp. 445)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가면서 윌버의 수행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트레야와 나는 명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라도 비통함이나 적의감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다. 그렇게 2,3시간이 지나면 돌보는 이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것 같다.... 좋든 싫든, 삶이든 죽음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간에 모든 드러남은 똑같이 ‘일미(一味)’다.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 (pp. 447) 

유방절제 수술을 받은 아내와 함께 살면서 성과 관련해 윌버가 겪었던 심적 갈등과 방황이 독일 나이트클럽에서의 경험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pp. 453-461) 


“여인의 온전한 가슴을 본 건 거의 3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아래를 보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봇물이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내 마음은 육체와 살의 세계, 그것이 의미할 수 있는 것, 암이 육체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 정신을 잃었다.” (pp. 458) 

 


19장. 열정적 평정심 

독일에서 받았던 매우 공격적인 화학요법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이 치료되지 않자 그들은 대체요법의 하나인 켈리-곤잘레스 프로그램을 시도할 결심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췌장효소를 100만 단위로 다량 섭취할 경우, 종양을 해체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주 혹독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트레야는 평정심을 가지고 이를 성실히 수행해간다. 


“나는 카르멜파가 열정을 강조하고 불교도들이 평정심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불현듯 ‘열정’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이해가 매달림,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걸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소유라는 생각에 물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없는 열정, 애착이 없는 열정, 깨끗하고 순수한 열정을 갖는다면 어떨까?... 그때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두개의 단어가 짝을 이루었다. 열정적 평정심. 삶의 모든 측면, 영과의 관계에 충분히 열정적이고, 존재의 심연을 돌보면서도 매달리거나 붙잡지 않는 것. 내게 그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pp. 474) 

“토마스 키팅 신부가 한 말도 생각합니다... “애쓴다는 것은 기도자의 성장에 필요한 수용성이라는 기본성향을 희석시킨다. 수용성을 비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활동으로서 일상적 의미에서의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신지를 기다리는 태도다...” 이런 ‘적극적 비활동’이 내가 ‘열정적 평정심’이라고 생각하는 한 예입니다. 켄은 도교도들이 이것을 ‘위무위(爲無爲)라 표현한다고 말해주었지요.” (pp. 477) 

 


20장. 간호하는 사람 

효소 프로그램이 지속적인 효과를 내고 있었지만 그 해석에 대한 공방이 극에 달해 윌버도 무엇을 믿어야할지 혼란에 빠져버린다. 

“시간이 갈수록 검사결과는 점점 더 극적으로 변했으며 두 진영(정통의학과 대체의학)의 해석은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에 따라 내 마음도 둘로 분열되었다. 하나는 곤잘레스를 믿었고, 다른 하나는 종양전문의들을 믿었다. 어떤 쪽도 확실히 옳거나 그르다는 증거는 없었다.” (pp. 495-496) 


윌버는 트레야가 설립한 CSC 친구들에게 간호하는 사람으로서의 고충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면서도 이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글은 트랜스퍼스널 심리학 잡지에 실려 독자들의 상당한 반응을 얻게 된다. (pp. 499-509) 


“나는 지금부터 환자를 간호하는 일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특히 위험한 문제는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지 약 2,3달이 지나서 찾아듭니다....간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 다루기 어려운 일은 정서적, 심리적 수준에서 쌓이기 시작하는 내적 혼란입니다.... (병간호하는 고된 일이라는) 원래 문제와 더불어 그 문제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가장 좋은 상대는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간호하는 사람들 집단, 즉 간호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지집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어두운 감정, 분노, 적개심 아래에는 대부분 상대를 향한 커다란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간호하는 사람은 오래전에 뛰쳐나가 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노, 적개심, 쓰라림이 출구를 막고 있는 한 그 커다란 사랑이 표면으로 자유롭게 떠오를 수 없다는 겁니다.” (pp. 502) 


“사랑은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므로 간호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존재를 막는 분노, 적개심, 미움, 쓰라림, 부러움과 질투까지도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지집단은 무척 소중한 존재입니다. 지지집단이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간호하는 사람인 당신을 위해서도 개인 심리치료를 받으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의논해서는 안 될 일들이 생길 테니까요.” (pp. 503) 


“훌륭한 간호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 하나는 간호하는 사람은 정서적인 스폰지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언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도와주고, 저녁식사를 만들고, 차를 몰아주는 것 등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모두 정서적인 스폰지의 뒷전에 있습니다. 치명적인 질병과 직면한 사람은 매우 강력한 정서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때로 근 이런 감정들, 즉 공포, 분노, 히스테리, 고통들로 압도되어버리곤 합니다. 이때 당신이 할 일은 사랑하는 이를 붙잡아 주고, 그 사람과 함께하며, 그런 정서들을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는 겁니다. 말해서는 안 되고,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도움이 될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충고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슨 일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거기에 있으면서 그들의 고통이나 공포, 상처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스폰지처럼 말입니다.(pp. 504) 


“나는 언제라도 어려운 상황에서 뛰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병동에 묶어두지 않았으며, 내가 떠난대도 나를 협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트레야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선택을 나 스스로 한 겁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녀가 이 과정을 겪어내는 걸 지켜볼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선택을 잊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나는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나쁜 신념(bad faith)을 보이고 말았으며 진짜가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는 실재가 아니었습니다. 나쁜 신념으로 인해 나는 내 자신의 선택을 망각했고, 거의 즉각적닌 비난의 태도를 보였으며, 또 그 결과로 생기는 자기연민에 빠졌습니다.” (pp. 506-507) 


“공(空)이라는 불교적 개념 또한 내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습니다. 공은 공백이나 허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장애가 없고 자발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비영원성 혹은 무상(anicca)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불교인들은 실재가 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안전이나 지지를 위해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금강경은 '삶은 물방울, 꿈, 영상, 신기루 같다‘고 말합니다. 요점은 신기루를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놓아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매달릴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트레야의 암은 나에게 ’죽음은 위대하게 놓아버리기‘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pp. 507-508) 


이 시기에 윌버는 족첸수행에 깊이 빠지게 된다. 

• 족첸수행에 대한 설명 (511-515) 

“족첸에서의 주된 가르침은 명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상은 상태의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깨달음은 상태의 변화가 아닌 현상태의 성질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족젠 가르침의 대부분은 ‘왜 명상이 효과가 없는가’, ‘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가’, ‘그것은 이미, 그리고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노력은 당신의 발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pp. 512) 

“족첸은 명상을 특별히 추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족첸 가르침에 입문할 때쯤이면 수행의 8단계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 8단계가 명상의 모든 단계임을 지적해야겠다. 그들은 마음의 덕성, 집중력, 알아차림, 통찰력을 기르는데 명상이 매우 중요하고 이로우며, 따라서 명상을 하나의 훈련과정으로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명상은 깨달음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pp. 514) 

“일단 제자에게 그런 자각이 일어나면, 스승은 그 자각을 삶의 모든 측면에 적용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명상을 사용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족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당신의 진정한 얼굴을 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사는 것은 어렵다.’ 내가 수행을 시작한 것은 정확히 ‘그것을 사는 것’이었다.” (pp. 515) 

 


21장. 우아하게 그리고 용기있게

켈리-곤잘레스 효소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뇌 조직이 한없이 팽창하면서 트레야는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트레야는 한두 달 동안 뇌의 팽창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스테로이드 데카드론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효과가 없어질 것이다. 그 마지막 기기에 트레야의 뇌 조직은 박살날 것이다. 날이 갈수록 뇌 기능은 상실되고 고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져 불가피하게 모르핀을 계속 투여해야 할 것이다.” (pp. 533) 


극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자신의 열정과 평정심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녀는 조금도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포기하거나 조금도 물러서려는 의도가 없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제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그녀는 몸을 뒤집어 죽은 척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태도를 통해 내가 깨닫게 된 가장 유명한 공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 제자가 선승에게 물었다. “무엇이 절대적인 진실입니까?” 그러자 선승은 “계속 걸어라!”라고만 했다.” (pp. 534) 


서로에게 깊이 몰입하는 가운데 윌버와 트레야 사이에는 깊은 심령적 유대가 생긴다. 윌버는 트레야가 원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미리 알고 처리를 하면서 트레야를 극진히 보살핀다. 

“아마도 경험에만 의존하는 보통 의사들은 그것이 번개처럼 빠른, 잠재의식적인 논리적 추론일 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례들이 비논리적이고 신기했다. 아니다.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여기 이 집에 오직 하나의 마음, 하나의 가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 내가 그 사실에 놀라야 하는가?” (pp. 534) 


끔찍한 두통을 호소하고 몸 전체를 떨면서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힌 트레야는 마침내 뇌에 있는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받는다. 

“수술로 인해 트레야는 더 이상 예전처럼 볼 수가 없었다. 오른쪽 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전체적 시야가 매우 협소해진 것이다. 그녀는 예술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선 하나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때때로 나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별로예요, 그렇죠?“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pp. 536) 


•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설명(536-537) 

“당신의 어떤 부분이 신성에 참여한다고 믿는다면, 어떤 의미에서든 죽을 수밖에 없는 신체를 초월하는 일종의 영에 접근한다고 믿는다면, 죽음의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신체가 사라진 후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발견할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다. 안 그런가?” (pp. 537) 

뇌와 간에 종양이 퍼져가면서 트레야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일과를 빠짐없이 성실하게 실천해간다. 

“날이 갈수록 폐와 뇌, 간에서 종양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뇌수술의 여파는 트레야의 몸에 끔찍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속했으며 걷는 기구를 이용해 하루에 수 km를 걸었다.” (pp. 538)


• 트레야가 죽어가는 부분(540-542)

“새해 첫날 트레야와 나는 카우치에 앉아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트레야가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여보, 이제 멈춰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더 이상은 가고 싶지 않아요. 효소가 별 효과를 못 내는 것 같아요.“...... “트레야. 하지만 일주일만 더 기회를 가져보자고 말하고 싶어. 만일을 위해서...”......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좋아요. 일주일만 더 해봐요. 할 수 있어요. 일주일만 더.”, 트레야는 맑고 투명하게 빛났다.” (pp. 540)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트레야는 계단조차 오를 힘이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계단 하나도 오르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산소 줄을 떨어뜨리고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안아 올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 여보... 이 정도까진 오지 않길 바랐어요. 여기까지 오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혼자 걷고 싶었어요.“ 트레야는 내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일인 걸, 트레야.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요. 그러니 자, 내 아가씨를 안고 계단을 오르게 해줘요.” (pp. 541) 


“트레야는 약속을 지켰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 모르핀을 거절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각하며 존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종종 머리를 높이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계속 걸어라!”였다. 그녀는 용기와 각성된 평정심을 보여주었으며, 조금도 보태지 않고 말하건대 나는 그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 

“주말 저녁,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갈래요, 여보.” 

그 순간 내가 한 말은 그저 ‘좋아’ 한 마디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2층으로 데려가려고 안아 올렸다. 

“잠깐만요, 여보. 일기를 쓰고 싶어요.” 

나는 그녀에게 일기장과 펜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매우 진하고도 분명한 글씨체로 이렇게 썼다. 

“‘우아함, 그리고... 그렇지, 용기가 필요해!” (pp. 541-542) 


“숭고한 괴테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글귀를 남겼다. ‘잘 익은 것들은 모두 죽고 싶어 한다.” 트레야는 잘 익었으며 죽고 싶어 했다.... 우아함과 용기. 존재하기와 행동하기, 평정심과 열정, 포기와 의지. 완전한 수용과 사나운 결심... 그녀 영혼의 양면성. 일생 동안 그녀가 씨름해온 양면성, 그녀가 마침내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통합한 양면성, 그것이 그녀가 남기고 싶어 했던 마지막 메시지였다. 나는 그녀가 그 양면을 결합하는 것을 보았고, 균형 잡힌 조화로움이 그녀 삶의 모든 면에 스며있음을 보았고, 열정적인 평정심이 그녀의 영혼을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하고 중요한, 지배적인 삶의 목표를 성취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수준 낮은 깨달음이었다면 산산조각 났을 상황에서, 그녀의 성취는 잔인하게 검증되었다. 그녀는 그걸 해낸 것이다. 그녀는 지혜로 무르익은 것이다. 그래서 죽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트레야를 2층으로 데려갔다.” (pp. 542) 

 


22장. 빛나는 별을 위하여

트레야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과 친지들은 그녀의 우아하고 용기 있는 모습을 하나같이 칭송한다. 윌버는 트레야의 영혼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 날 저녁 나는 트레야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 옆에 앉았다. 그녀는 거의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이제 나는 가요.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갑니다.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마지막 해방의 만트라처럼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나는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그녀의 얼굴 전체가 밝아졌다. 그녀는 빛났다. 그리고 바로 내 눈 앞에서 그녀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1시간에 5kg 정도가 줄어든 것 같았다. 마치 몸이 그녀의 의지에 순종하여 스스로 오그라드는 것처럼... 그녀는 서서히 자신의 생명체계를 닫으며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꺼이 떠날 준비를 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그녀는 결심이 확고했으며 매우 행복해했다. 그녀의 마음에 전염된 것일까? 그녀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돌연히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켄. 당신을 떠날 수 없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 역시 흐느꼈다. 지난 5년 동안의 모든 눈물이, 트레야를 위해 강해지려고 참았던 눈물이 모두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 우리 둘을 만들어준 사랑, 우리 둘을 더 강하고 좋고 현명하게 만들어준 사랑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아주 메마르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와 그토록 다정한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여보, 갈 시간이면 갈 시간인 거야.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을 찾아낼 거요. 이전에도 찾아냈잖소. 약속하오, 또 다시 당신을 찾아낼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고 가고 싶으면 가요.” 

“약속하죠?” 

“약속하오.” 

5년 전 결혼식장으로 가는 중에 그녀에게 말했던 것. 나는 지난 2중 동안 그 이야기를 거의 강박적으로 되풀이했다. 나는 다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동안 어디 있었소? 몇 생에 걸쳐 당신을 찾아 헤맸는데. 당신도 알잖아. 당신을 찾아내기 위해 난 용들을 죽여야만 했단 말이오. 그러니 걱정 말아요. 반드시 당신을 찾아낼 거요.” 

그녀는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약속하죠?” 

“약속할게.” 

나는 왜 그런 말이 필요한지 알지도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지난 몇 주 동안 트레야는 계속해서 내게 약속을 끌어냈다. 그것이 그녀에게 깊은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내가 약속만 지킨다면 그녀에겐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이다. 

“나를 찾겠다고 약속했죠?” 

“그래, 약속해.” 

“영원히?” 

“영원히.” 

“그렇다면 갈 수 있어요. 아, 나는 아주 행복해요... 여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아주 어려웠어요. 여보, 너무 힘들었어요.” 

“알아, 트레야. 나도 알아.” 

“이제는 떠날 수 있어요. 정말 행복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행복해요. 켄.” 

그날 밤 나는 그녀의 방에 있는 탁자에서 잠을 잤다. 꿈을 꾼 것 같다. 눈 덮인 산에 천 개의 태양이 빛날 때처럼, 빛나는 흰빛의 거대한 구름이 집 위에서 맴도는 꿈을. (pp. 545-547)  

“트레야가 눈을 감았다. 모든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가슴이 무너졌다. 다 프리 존의 구절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진정한 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완전히 취약하게 열어놓는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훨씬 넘어선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사랑이 당신을 산산조각 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사랑을 모르는 거다. 우리는 둘 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했고 나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되돌아보면 그 단순하고 직접적인 순간에 우리는 둘 다 죽어버린 것 같다.” (pp.  549) 


“나는 그날 밤 트레야의 방에 있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빗방울 하나가 바다로 떨어져 바다와 하나가 되는 꿈을. 어찌보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단순한 영상 같기도 했다. 나는 이 꿈이 트레야가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의미라고, 트레야가 깨달음의 바다와 하나가 된 빗방울이라고 생각했다. 의미가 통했다. 

하지만 나는 곧 이 꿈에 더욱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빗방울은 나였으며 트레야는 바다였다. 그녀가 해방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작 해방되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봉사했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해방된 것이다. 

그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트레야가 자신을 찾아내라는 약속을 내게 끈질기게 요구한 이유였다. 그녀는 단지 내가 자신을 찾길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약속을 통해 그녀가 나를 찾겠다는, 계속 반복해서 나를 돕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일을 회상해보았다. 나는 내가 약속을 함으로써 그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녀가 분명하게 말한 영을 내가 인정하고 깨달을 때까지 트레야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뜻이었다.“ (pp.  557) 

“그 삶에서, 그 몸에서 나는 위대한 다섯 꼭지점의 우주별을, 마지막 해방의 빛나는 별을 보았다. 내게는 항상 그 이름으로 남을 별... 

‘트레야’ 

알로하, 나의 행운, 내 사랑하는 트레야. 나는 언제나 당신을 찾아낼 거야. 

“약속하죠?”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속삭였다. 

“약속하지. 나의 사랑, 트레야.” 

“약속하오.” (pp.  563)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항상 고요하게 깨어있기를!

역자가 두 손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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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생명나무 - 문성호

 


몇 년 전 카발라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세피로트의 생명나무를 알게 되었다.

나는 카발라의 신지학 회원이 아니고 오컬트 화학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열 개의 세피로트와 서로의 배열을 보자, 동양의 태극(太極), 삼태극, 사상(四象), 역의 팔괘(八卦) 등이 바로 연상 되어서 이것을 나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이때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문성호님의 ‘우주와 세피로트’라는 책이 발간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구입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우연히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몇 자 리뷰를 적어본다.

 


예전부터 열 개의 세피로트는 우주목(宇宙木) 사상에 바탕을 둔 생명나무에 비견하여 우주의 본질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러나 세피로트 나무는 10개의 세피로트와 세피로트를 연결하는 22개의 길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복잡한 상징체계를 갖고 있다.


카발라는 구전으로 전해오는 세피로트 나무에 신성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히브리 알파벳 22개가 생명나무의 22개의 길에 해당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생명나무는 모든 우주법칙의 총합이며, 우주창조 과정을 설명해주는 정형화된 이론적 도구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세피로트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간단히 살펴본다.

 


* 생명나무는 고도의 수비학(數秘學)이며, 문자를 수로 치환하는 ‘게마트리아’이다.


수와 수학적 질서로 파악되지 않은 자연현상은 없고 주변의 일상 사물들도 수의 원리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수가 만물의 기초라는 것은 피타고라스가 아니더라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수를 양적 관점에서만 바라 볼 뿐 고대인들처럼 질적 측면까지 바라보는 시각을 상실하였다.

수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초적인 요소이며, 우주의 신비는 수를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생명나무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10개의 세피로트 이다.

10은 완전함을 나타내는 신성한 숫자로 ‘테트락티스’라는 상징으로 표상된다.

생명나무(세피로트)의 10은 초끈이론과 테트락티스를 밝혀준다.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별 무리 없이 통합시키는 오늘날의 초끈이론은 10차원이나 26차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시간을 포함하여 4차원에 살지만 보이지 않는 6차원이 응축된 10차원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명나무의 10이 초끈이론의 10 차원을 밝혀준다.



테트락스의 모든 점을 연결하면 9개의 작은 삼각형이 형성된다.

내부의 삼각형 6개와 외부의 삼각형 3개가 초끈의 내부 6차원과 외부 3차원 공간 등 모두 9개 공간차원을 상징한다.

또 내부의 여섯 점들과 중앙의 한 점을 연결하면 정육면체 형상이 도출되며, 여섯 개의 점들을 엇갈리게 연결하면 육각형의 별이 만들어 진다. 


정육면체와 육각별을 만드는데 쓰인 7개의 점들을 창조의 일곱 날에 나오는 엘로힘으로 보았으며, 중앙의 점을 창조의 제7일, 안식일로 여겼다.

 


10차원은 세피로트가 10개로 되어있으며, 삼각수 10을 ‘테트락티스’ 라한다.

테트락티스 10은 모든 물질적인 형태의 기본이 되는 점, 선, 면, 입체를 포함하고 있는 가장 작은 수이다.

1+2+3+4=10 

10은 최초의 네 정수의 합으로 0차원, 1차원, 2차원, 3차원의 합이기도 하다.

테트락티스는 네 개의 정수가 네 개의 층으로 된 정삼각형 피라미드 구조로, 최초의 입체 이다. 

 


초끈 이론에는 10이라는 숫자와 함께 26이라는 숫자가 필연적으로 등장하는데 수 26도 테트락티스에 포함되어 있다.

테트락티스의 네 개의 층에 있는 1, 2, 3, 4는 각각 0차원 , 1차원, 2차원, 3차원 도형을 만들어 가면서 가장 기본적인 입체형상인 정사면체에 도달했는데, 이 도형들을 구성하는 모든 기하학적 요소들을 더하면 26이라는 수가 도출된다.



* 생명나무는 우주를 지배하는 4의 원리가 들어있다.


세피로트는 테트락스의 점들이 점(1), 선(2), 삼각형(3), 사각형(4)의 형태로 차례대로 상징된다.

따라서 생명나무는 4개의 계(界)로 구분된다.


       거시적인 시공간 차원 =4 4번째 정수

      초끈이론의 시공간 차원 =10 4번째 삼각수

      (초끈을 형성하는) 보존끈이론의 여분의 차원 =16 4번째 사각수

      보존끈 이론의 응축된 시공간 차원 =22 4번째 오각수


보존끈 이론의 응축된 시공간의 차원 수는 생명나무의 세피로트를 연결하는 22개의 길이나 히브리 알파벳의 수 22와 같다.

 


또 4는 물질적 기초의 확립과 시공간의 운행 질서와 관련이 있지만 유대의 신 여호와(IHVH)도 4개의 문자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생명나무의 우주는 4개의 영역으로 원형의 세계(아칠루트), 창조의 세계(브리아), 형성의 세계(예치라), 물질계(아시야)로 구분된다.

 


* 생명나무는 만물의 설계도이다.

 

생명나무는 대우주와 소우주의 동시적인 원형이다.

이것은 상응의 법칙으로 상위차원의 원리가 아래 차원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카발라의 만물이론은 원형의 이미지를 우주의 삼라만상 전체가 직접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피라미드                                                 


다윗의 별(히란야)

 

아담 카드몬


생명나무의 설계도는 우주의 초끈이론 이외에도 피라미드, 메노라, 솔로몬 문장, 아담 카드몬, 의식의 지도 등에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카발라의 격언처럼 우주는 생명나무의 영원한 반영인 셈이다.

 


* 생명나무는 보이지 않은 뿌리가 있다. 


카발라의 우주론은 아인 소프와 세피로트로 설명이 되며, 세피로트의 체계는 생명나무로 상징된다.

아인 소프는 창조이전의 우주의 본체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서, 세피로트는 우주의 본체인 아인 소프와 창조의 결과 생겨난 물질 우주를 이어준다.

 


즉 우주의 본체인 아인 소프는 ‘한계가 없음’ ‘무한’의 뜻을 담고 있다.

아인 소프는 아인, 아인 소프, 아인 소프 아우르의 세 단계로 구분한다.

아인 소프는 우리나라 천부경의 천부(天符), 동양철학의 무극(無極), 불교의 공(空)과 같은 개념이다.


공(空)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일체개공(一切皆空)으로 우주의 바탕을 일컬으며, 공은 진공묘유(眞空妙有)로 텅 빈 진공이 아닌 꽉 차 있는 그 무엇을 말한다.


생명나무는 이와 같이 카오스의 신, 만물의 근원인 아인 소프에 뿌리를 두고 우주의 꽃을 피운다.

 


* 생명나무는 신성한 기하이다.


우주는 신의 기하학적 작품이고, 기하학은 수학과 더불어 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특히 상대성 이론과 초끈이론은 이를 더욱 확고히 해준다.

 


두 원이 중첩된 부분에 생기는 물고기 문양을 ‘베시카 피시스’라 한다.

그런데 생명나무의 모든 길들과 길이는 베시카 피시스 도형에 근거한다.

세피로트의 호크마와 비나, 헤세드와 게브라, 네차흐와 호드를 잇는 길들은 이웃한 두 원의 교차점 사이의 거리와 그 길이가 같다.


베시카 피시스는 분열보다는 통일성을 상징하고, 일원성의 초월계와 이원성의 현실세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됨으로서 그리스도의 원리를 나타내는 물고기를 상징으로 사용한다.



베시카 피시스를 반복해서 확대하면 ‘생명의 꽃’이 피어난다.

베시카 피시스에 세 개의 원을 그리고 다시 되풀이하면 7개의 원과 12개의 베시카 피시스가 형성되는데 이 도형을 ‘생명의 씨앗’이라 한다.


이 속에는 다 자란 생명나무가 숨어있다.

 


위 생명의 씨앗을 원형계, 창조계, 형성계, 물질계로 이어지는 존재의 4계에 맞도록 한 번 더 확장하면 ‘생명의 꽃’이라 알려진 완전한 형태의 기하학적 구조가 되고, 생명나무도 좀 더 아름답고 안정된 기하학적 그물구조의 바탕 위에 자리 잡는다.

 


생명나무나 생명의 꽃은 모두 프랙탈 특성을 갖는다.


 


* 생명나무는 미래의 만물이론이다.


만물의 통일이론으로 초끈이론이 크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런데 초끈이론은 배경으로서의 시공간을 전제하지만 고리양자중력이론은 시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은 우주를 이루는 근본적인 물리량이 아니라 원초적인 우주의 상태를 편리하게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시공간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며, 어떤 알지 못할 기하학적 효과에 의해 나타나는 환상의 개념일 뿐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시공간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사건(정보)의 관계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초끈이론과 고리양자중력이론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궁극적인 진리의 한 단면일 뿐, 장차 보다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이론에 의해 서로 통합 될 것이라 한다.


좀 더 완벽한 이론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고리양자중력이론과 초끈이론에 트위스터이론, 비가환기하학 등의 이론이 결합해야 할 것이며, 초끈이론 만으로는 완전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만물의 통합이론으로 궁극의 원자 ‘아누’를 거론한다.

저자의 책, ‘우주와 생명나무’에는 ‘궁극입자를 찾아서’라는 단원이 크게 들어있다.

1900년 초기에 신지학의 애니 우드 배산트와 찰스 리드비터가 초능력으로 물질계의 상위 차원을 투시하여 물질은 ‘아누’라는 초미립자로 구성되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아누에 여러 이론을 제시하여 아누가 초끈 이자, 동시에 블랙홀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태껏 완벽하게 정의내리지 못한 만물이론에 아누가 우주 근원의 궁극 입자로서 미래의 만물이론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 앞서 ‘물질의 궁극원자 아누’라는 책을 집필하였다.

 


나는 신지학 회원이 아니고, 수학, 물리, 천문 등의 지식이 없기 때문에 ‘아누’가 물질의 궁극원자 인지 아닌지 정의 할 수 없다.

그리고 배산트와 리드비터가 초능력으로 미시세계의 아누를 투시했다는 것에 선뜻 발걸음이 다가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간의 초능력 자체를 전면 부정한 것이 아니다.


나는 저자의 ‘물질의 궁극원자 아누’나 ‘우주와 생명나무’를 겸허히 읽고 많은 영감과 지혜와 지식을 얻어 깊이 감사드리지만 ‘아누‘가 궁극의 입자라고 단언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세피로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세피로트가 부호(기하?)이기 때문이다.

세피로트는 처음에 열 개의 동그라미만 그려졌을 것이다.


여기에 세월이 흐르면서 문자와 해석이 더해져서 생명나무가 되었고 특정 종교나 인물에 치우치고 드디어 만물 원리의 보고에 이르렀을 것이다.


언어나 숫자나 해석이 가미되지 않은 원래의 부호는 나라와 문화와 지구별 그리고 시간마저 초월하여, 누구나 직관으로 또는 의식의 질과 양에 따라 자유롭고 무한하게 꿰뚫을 수 있다.


동양의 하도(河圖), 낙서(洛書)와 같은 이치이다. 

즉 세피로트와 동양의 우주론은 서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키르허의 생명나무’보다는 ‘그라의 세피로트’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주와 생명나무’를 읽고 몇 자 적었는데, 지식이 부족한 할머니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염려스럽다.


지식이 과학이, 우주 만물의 원리를 완전하고 정확하게 증명하고 밝힐 수 있을까?

이 질문을 곱씹는 것도 세피로트와 무관하지는 않으니라 ......

- 마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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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을 연구하는데 두가지 경향으로 나눠지는 것 같다. 講壇동양학과 江湖동양학이 그것이다. 


강단 동양학이란 학교에서 가르치는 동양사상 쉽게말해 논문쓰는데 초점을 맞춘것이다. 주로 理 氣와 같은 개념파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분석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고의 트레이닝에는 효과가 있지만 현실문제 해결에는 별로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호동양학은 강호에서 좌충우돌하는 실전에서 요구되는 동양학을 가리킨다. 해방이후 강호동양학은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철저히 배제 되었다. 그래서 제도권보다는 재야의 기인, 달사들 사이에서 그 맥을 이어왔다.   


강호동양학이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인 雜科이다. 천문은 때- 時 하늘의 시간표를 보고 인간의 시간표를 아는 것이 천문의 목표이다. 때를 안다는 것은 인생사의 중대과제를 해결할 수있는 방법이다. 자기 인생이 지금 몇시에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한자문화권의 역대 천재 들이 고안한 방법이 사주명리학이다. 사주명리학이란 천문을 인문으로 전환한 것이다.   


지리는 풍수이다. 천문이 시간이라면 지리는 공간의 문제를 다룬다. 시간의 짝은 공간이다.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령의 문제이다. 땅에는 신령스런 영이 어려있다고 믿는다. 지령을 체험한 사람은 풍수를 이해하지만 지령을 거부하면 풍수의 핵심에는 영영 접근하지 못한다. 지령이 있는 지점에서 사람이 살면 일단은 건강해지고 그다음에는 영성이 개발된다. 건강해지고 영성을 개발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명당이 아닌가. 명당에서 자면 특이한 꿈을 꾸기도 한다.   


천문,지리 다음에는 인사이다. 인사는 존재이다. 시간과 공간이 없어도 존재가 없으면 소용없다. 존재는 바로 인간이다. 인간을 구체적으로 한 연구가 한의학이다. 천문과 지리는 대학의 커리큘럼에 들어오지 못했지만 한의학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풍수는 최창조 교수가 등장해 약간의 시각교정이 되었다. 영주권을 딴샘이다. 그러나 사주명리학은 아직도 불법체류자 신세인 샘이다.   


이책을 내는 이유는 사주명리학의 함량미달, 싸구려를 개선하고자 하는데 있다. 현재의 사주명리학은 마치 다이아몬드에 누런 똥이 발라져서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상태와 같다. 이 다이아몬드는 잘닦고 빛을 내면 쓸곳이 많을 것이다. 왜냐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지구,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서 동아시아 문명의 5천년의 성찰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걸 잘 풀어내면 21세기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르네상스를 일으키는데 중요한 열쇠로 사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자문화권의 르네상스, 문화 콘덴츠를 염두에 두면서 이책을 썼다. 

조용헌

 


▲ 흔히들 사주팔자나 운세라고 하면 떠올리는 인물. 

토정 이지함의 동상. 


조선시대에 남자들이 모이는 사랑채에서는 『정감록』이 가장 인기 있는 책이었고, 여자들이 거처하는 안방에는 『토정비결』이 가장 인기였다는 것은 바로 풍수도참과 사주팔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사주팔자, 길흉화복 예측에서부터 체제 전복의 신념체계까지  


사주팔자란 무엇인가 - 年月日時 旣有定인데 浮生이 空自忙이라! 

사주팔자가 정해져 있는데 뜬구름 같은 삶을 사는 인생들이 그것을 모르고 공연히 스스로 바쁘기만 하다는 옛 선인들의 말이다. 

 

삶이란 예정조화 되어있는 것을 모르고 쓸데없이 이리 갔다 하면서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결국은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도망갈 수 없음을 설파한 잠언이기도 하다. 한국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드라마틱한 방향전환이나, 또는 대단한 성공과 실패를 경험 할때 이를 사주팔자 탓으로 돌리는 관습이 있다.  


그사람의 태어난 생년, 월, 일, 시를 干支로 환산해 운명을 예측하는 방법인 사주팔자. 한국에서는 운명의 이치를 따지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命理學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운명을 추리한다고 해서 推命學 중국에서는 운명을 계산해 본다는 의미의 算命學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한자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은 사주팔자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식자층은 아직도 서로 만나면 상대방의 사주팔자를 주고받는 풍습이 일부에는 남아있다.  


일본의 사주팔자 대가 아베 다이장 阿部泰山 이라는 인물이 추명학을 한단계 끌어 올렸다. 아베사후 그의 제자들이 간행한 아베다이징 전집 26권을 현재 일본 추명학의 수준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웨이쳰리 韋千里가 유명하다. 그는 마오쩌둥 정권후 홍콩으로 망명했고 대만에 자주 왕해했다. 장제스와 개인적으로 밀접해 대만정부의 중요한 정책결정에 관여하는 국사대접을 받았다. 또한 동양사상에 호기심많은 프랑스 신부에게 사주를 가르쳐서 그들이 서양 점술학의 개량작업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이석영,박재완,박제현같은 대가가 정계,재계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의 웨이쳰리나 일본의 아베다이징이 누렸던 지위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사회에는 미신,잡술로 평가되기에 공식적 담론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속신앙 연구는 활발해도 사주팔자는 시도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주팔자는 한국사회의 裏面문화 behind culture가 되었다. 무대 위에서는 논의되지도 주목받지도 못하지만 무대뒤에 배후에서 활발하게 유통되는 문화이다.  


학문적인 연구는 적지만 사주가 인터넷과 결합되는 속도는 중국, 일본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 한국인터넷 유료사이트중 가장 활발한 것이 포르노와 사주이다. 주 연령층이 10대후반에서 30대초반에 집중되어 있다. 

 


▲ 명리학에 조예가 깊은 성삼문의 외조부는 사주가 좋은 시간에 손자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다듬이 돌로 출산 시간을 늦춰보았지만, 참지 못한 산모가 아이를 낳았다. 낳아도 좋냐고 세 번을 물었다고 해서 '삼문'이라고 지어진 사육신 성삼문의 묘소, 만약 더 늦게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주팔자의 역사적 맥락? 


그 사람의 연월일시를 간지로 환산해 운명을 예측하는 명리학은 중국의 도교 수련가였던 서자평에 의해 이론체계가 정립되었다. 오늘날 명리학의 대표적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淵海子平 서자평의 저술이다. 10세기 후반 인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사주팔자에 대한 최초 공식기록은 조선왕조 법전 경국대전이다. 여기에 사주팔자를 보는사람을 국가에서 과거시험으로 선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인계급이 응시하는 잡과이다. 시험과목은 徐子平 袁天綱 範圍數 剋擇通書 등이다. 서자평은 사주팔자 원리이고 원천강은 택일 극택통서는 전해지고 있지 않다. 오늘날도 서자평은 필수교과서로 평가된다. 따라서 1400년 후반정도에 전래되었다고 추정한다.  



운명을 결정짓는 양대요소 - 입태일과 출태일  


사주팔자에서 그 사람의 운면을 결정짓는 양대 요소는 입태일과 출태일이다. 즉 입태일은 합궁일 출태일은 태어난날 정확히 탯줄을 자른 바로 그시간이다. 그시간에 천지의 음양오행기운이 아이에게 순간적으로 들어온다. 사주팔자는 바로 그탯줄자르는 시각에 들어온 음양오행 기운의 성분을 10간 12지로 인수분해한 것이다. 입태일은 IN PUT 출태일은 OUT PUT되는 시점이다.  


사주는 네기둥이란 뜻이고 팔자는 여덟글자라는 뚯이다. 년, 월, 일, 시를 네기둥으로 보고, 한 기둥에 두 글자씩으로 외어 있으므로 모두 여덟글자이다.  


조선시대 사주팔자가 반란사건과 관련해 등장하는 이유는 명리학 자체가 계급차별에 대항하는 대항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아니더라도 사주팔자만 잘타고 나면 누구나 왕이되고 장상이 될 수 있다는 기회균등 사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풍수사상도 마찬가지이다. 사주팔자는 정감록으로 대표되는 풍수도참설과 결합해 조선후기 민란의 중요한 대중동원 매카니즘으로 작용했다. 조선시대 사랑채에서는 정감록이 안방에서는 토정비결이 인기 였다. 이는 대중들의 관심을 설명해주는 사례이다. 



오행을 보고 이름을 짓는다  


사주팔자의 구성원리는 철저하게 음양오행의 우주관에 바탕이 있다. 만물은 음아니면 양으로 되어있고 그 음과양을 다시 수 화 목 금 토 오행으로 분화되고 오행이 다시 만물을 형성한다는 설명체계이다. 


사람의 사주도 크게 양사주냐 음사주냐로 분류된다. 양사주면 활발하고 음사주면 내성적이라고 본다. 


음양으로는 너무 간다하니까 세분해 오행으로 나누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출생 후에 이름을 지을 대에도 오행에 따라 지었다. 이름을 지을 대에는 그 사람이 출생한 년 월 일 시를 먼저 따진 다음, 만세력을 보고 네기둥을 뽑는다. 사주팔자를 뽑는 것이다. 이름지을때 오행의 과불급을 고려했다. 이는 오늘날도 이어진다, 

 


족보의 항렬, 장날을 정하는 원리  


족보의 항렬을 정할 때도 오행의 원리에 따랐다. 조선시대는 대가족 제도이고 대가족 제도에서 위아래를 구분하는 기준이 항렬을 정해놓고 이름을 짓는 방법이다. 예로 할아버지 항렬이 나무 木이 들어가는 植자라 하면 아버지 항렬은 불 火변이 들어가는 글자 중에서 정한다. 이런 돌림에는 오행의 상생순서법칙이 있다. 


오행의 상생순서는 수생목 목화생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에서 수는 목을 도와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수를 부모로 보고 목을 자식으로 보았다. 


산을 보는 풍수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시대 민사소송의 60퍼센트가 산송에 관계된 사건이라 한다. 산송은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소송이다. 풍수에서 산의 형태를 오행의 형태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수체의 산은 물이 흘러가는 모양이고, 화체의 산은 불꽃처럼 끝이 뽀쪽뾰쪽한 산, 예를 들면 영암의 월출산 같은 산이다. 


종교인들이 기도하면 기도발이 잘 받는 산이라 한다. 목체의 산은 끝이 삼각형처럼 되어 문필봉이라 불렀다. 필자가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4~5백년 된 명문가의 종가집이나 묏자리를 수십군데 답사하니 70퍼센트가 그 앞에 학자가 배출된다고 하는 문필봉이 포진하고 있었다. 금체의 산은 철모를 엎어 좋은 것처럼 생긴산이다. 이런 산세는 장군이 나온다고 한다. 토체의 산은 책상처럼 평평한 모양을 한 산이다. 제왕의 나온다는 산이다.  


한국의 장날을 정할 때도 이와 같은 5가지 형태의 산의 모습을 따라서 정하였다. 장은 경제행위와 정보교환의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그지역의 주산모양이 수체일 경우 1일과 6일이 장날이다. 숫자 중에서 1과 6은 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만약 주산이 火 일 경우 2일과 7일이 장날이다. 木체일 경우는 3과 8일 金체일 경우에는 4와 9이 土체일 경우에는 5와 10일이 장날이다. 

 



양지의 성리학과 음지의 명리학  


이와같은 음양오행사상으로 인간과 우주를 총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도표가 바로 태극도이다. 태극에서 음양이 음양에서 오행이 오행에서 만물이 성립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도표이다. 태극도는 성리학자들의 우주관을 압축시킨 그림으로 중요시 여겼다. 퇴계의 성학십도 남영의 태극도여통서표 송구봉의 태극문 우암의 태극문 한강의 태극문변 사미헌의 태극도설문답 화서의 태극서 노사의 문답류편 등이 그렇다. 


주자학에서 도를 통했다는 의미는 바로 태극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작업었다고 할 정도로 태극도는 조선시대 중요시 되었다. 명리학의 기본원리도 태극도이다.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성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완전히 똑같다. 조선시대는 태극도의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해 역사변천이나 왕조의 교체,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해석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태극도에서 파생한 성리학과 명리학 성리학은 인간성품의 이치를 다루고 명리학은 사람의 운명의 이치를 다룬다. 


그러나 같은 부모밑에 두아들은 다른 길을 걸었다. 성리학은 체제를 유지하는 학문으로 명리학은 체제 저항의 반체제의 술법이 되었다. 성리학은 양지의 역사로 명리학은 음지의 잡술로 되었다. 


임금주제 궁궐내 학술 세미나에서는 성리학이 토론의 주제이고 금강산 험난한 바위굴속에서는 당취들이 난산 토론에서 명리학이 단골메뉴였을 것이다. 


명리학과 성리학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면 진단과 서자평의 인간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陣단은 태극도를 중국화산의 석벽에 각인해 후세에 전한인물이다. 태극도가 성리학자들에게 전해진 계기는 진단의 덕택이다. 그는 북송초기의 저명한 도사이다. 후당때 무당산 구실암에 은거해 신선술을 연마했고 북송초기에 화산으로 옮겨살며 여러은사들과 교류했다. 이때 화산에서 같이 수도한 인물이 바로 명리학의 완성자인 서자평이다. 이때 화산에서 같이 수도한 이가 서자평이다. 


조선시대의 사주팔자, 이는 개인의 길흉화복을 예측한 점술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가들의 신념체계로 작동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신비적인 것이 곧 합리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는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신언서판이란 무엇인가 


身, 言, 書, 判 오랜 세월 동안 동양사회에서 인물을 평가할 때 적용하던 기준이다. 


신이란 그사람의 관사이다. 


남자관상의 포인트는 눈이다. 精氣는 눈에서 표출된다고 본다. 도교 내단학에서 인체의 세가지 보물 하단정의 精 중단전의 에너지 氣 상단전의 에너지 神이다. 눈빛에서 나오는 총기는 神 이다. 쉽게 말해 자연상태 원유가 精, 원유를 어느정도 가공해서 나온 석유가 氣이고 상당히 가공해서 나온 휘발유가 神이다. 


눈에 총기가 많으면 비싼 휘발유를 과소비하는 것이므로 빨리 고갈된다. 


따라서 回光返照 빛을 돌려 아랫배를 관조하라는 말은 눈의 총기를 밖으로 품어내지 말고 내면으로 감추하는 이야기이다. 가지몸을 감추는 둔갑술은 바로 눈빛을 감추는 일이다. 인도성자 마하리쉬의 눈빛을 보라. 


관상볼때 또하나의 포인트는 察色이다. 


필자는 관상은 돈오:한순간의 깨달은 사주는 점수:점진적으로 닦음에 비유한다. 


필자도 사주연구할때 그사람의 時가 불확실할때는 관상을 참고한다. 전성대 미대 이열모 교수가 재야에 알려진 관상의 고수이다. 이정호 전충남대 총장의 正易.  


언(言)이란 그 사람이 말을 얼마나 조리있게 하는 가를 보는 일이다. 


언을 조금 깊게 들어가면 목소리의 색깔을 분석해 보는 일이 중요하다. 목소리는 인체 내의 오장육부에서 기인한다. 사람마다 장기의 크기와 강약이 다르므로 목소리의 칼라도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오장가운데 상대적으로 비장이 강한 사람의 목소리톤은 음- 소리가 강하고 폐장이 강한 사람은 아- 간장이 강한 사람은 어- 심장이 강한 사람은 이- 신장이 강한 사람은 우- 소리가 강하게 나온다. 음 아 어 이 우의 음의 높이는 전통 음계인 궁 상 각 치 우와 배대된다. 


궁에 해당되는 음이 가장 낮은소리 우가 가장 높은소리이다. 그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보아 음 소리가 강하게 나오면 오장중 비장이 튼튼하고 그 성격은 군왕의 성품이 있다고 판단한다. 아 소리는 폐장에서 나오는 소리로 怒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어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이에는 슬픈마음이 우에는 음란한 마음이 들어있다. 


음상을 본다는 것은? 


음 아 어 이 우 와 같은 소리의 기준에 맞추어 그사람의 목소리를 분석해 보고, 그 분류 등급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양식을 미리 짐작해 보는 작업이다. 목소리는 인격의 표상인 것이다. 이는 또한 마음을 수양하는 수련방법에도 이용되었다. 신장이 약한 사람은 우 심장이 약한사람은 이 소리를 집중적으로 발성하면 효과가 있다. 이러한 음아어이우 발성수련법은 정역의 저자 김일부(1826~1898)선생이 체계있게 정리된 바있다. 


김일부는 조선초기 서경덕에 시작해 이지함 이서구 이운규로 내려오는 저선의 도맥을 이어받은 도학자이다. 그는 음아어이우를 길게 반복해 소리내면서 춤추고 노래부르는 영가무도 수련을 하였다. 이것은 정역파를 통해 전해진다. 이정호 권영원등에 의해 오늘날 전수되고 있다. 

 


사판을 거쳐 이판으로 가라 


서(書)는 글씨이다. 좁은의미로 글씨체 넓은의미로 문장력을 말한다. 


판( 判)이란 무엇인가? 판단력이다. 


신 언 서를 보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판단력을 보기 위해서다. 


결국 판단력에서 인간 능력은 결판이 난다. 인생사는 예스냐 노냐 판단의 연속이다. 결정적 순간 판단한번 잘못하면 만사가 끝장이다. 


판단에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理判 그리고 事判이다. 이둘을 합쳐 이판사판이라고 한다. 


이판사판의 어원은 불교의 화엄경에서 유래한다. 인간사의 범주를 이와 사로 파악한다. 이는 본체의 세계이고 사는 현상의 세계이다. 이는 눈에 안보이는 형이상의 세계이고 사는 눈에 조이는 형이하학의 세계이기도 하다. 화엄경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격은 이판고 사판에 모두 걸림이 없는 경지의 인격이다. 이판은 직관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내리는 판단이고 사판은 데이터를 분석 종합하여 내리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예를 들어 처녀총각 중매할때 신랑의 학벌, 직업, 외모, 집안을 따지는 것은 사판이고 사주와 궁합을 보는 것은 이판이다. 여기서 중요한점은 사주,궁합을 보기전 먼저 사판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그다음에 이판을 보는 것이 순서이다. 합리적인 것을 거쳐 신비의 영역오로 들어가는 수순이 지혜로운 자의 태도이다.  



한국의 명리학의 빅3 - 이석영,박재완, 박재현  


이석영 사주첩경 총6권 이 나오기전까지 한국에서 사주명리학 공부를 하려면 철저한 중국 원전에 의지했다. 연해자평, 명리정종, 적처수, 삼명통회, 궁통보감 등등 한문으로 된 고전들을 해독하느라 고생했다. 


박재완 명리요강 명리사전 그의 사후 제자들이 간행한 명리실관이 있다. 박재완의 제자 백영관의 사주정설 1982 검사이기에 실명을 안하고 가명을 썼다. 


명리실관의 한문이 유려하다. 변려문즉 한자4자 안에 내용을 함축한 것이다. 4자가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있어 리듬감을 느낀다.이는 사자소학이나 능엄경도 같은 변려문이다. 읽기 편하고 운율을 감상할 수 있다. 

 

박재현 維新 을 幽新  


명성이 알려진 도사는 익명의 다중을 상대해야한다.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은둔해야 한다. 


도사는 무대위에 서기전 삼십육계 놓을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도가에서 지향하는 인물은 세간에서 한몫챙겨 산으로 줄행항 놓는 것이 모범답안이다. 그래서 일급도사는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은둔을 고집한다. 성명규지 는 중국 명대의 내단서로 유 불 선 삼교합일의 입장에서 성명쌍수를 강조하는 일급비서이다. 


성명쌍수란 性 과 命 을 모두 닦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은 불교의 주특기로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는 방법이고 명은 도교의 주특기로 호흡법을 통해 몸을 강철같이 단련하는 방법이다. 선불가진수어록 개운조사 개운조사파에서 애호하는 수련서이다. 박재현이 발행인이다. 


수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의식의 집중이다. 문제는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이다. 화두에 집중할 것인가? 염불에 집중할 것인가? 능엄경에는 물소리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이는 쉽고 효과가 크다.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이 바로 이근원통이다. 주문수행은 기도나 참선보다 효과가 빠르지만 잘못하면 부작용이 크다. 마음이 강하지 못한이는 정신이 돈다 심하면 죽거나 병신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함부로 주문을 하지 못한다. 


사주는 이론만으로는 안된다 영발이 있어야 한다. 박재현은 구령삼정주는 어떤 주문인가? 조선후기 민간도교에서 유행했던 옥추경에 포함된 주문이다. 

 


역사의 최고의 점괘 , '너 자신을 알라! 


필자는 주문의 본질을 신들을 설득하는 소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소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신세계와 접속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소리였고, 그 소리는 주문이란 형태로 패턴화되었다. 따라서 주문은 가장 강력한 영적인 파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구령삼정주는 도교의 신들을 설득하는 주문이다. 불교의 준제주는 관음세보살에게 요청하는 구원이고 기독교의 주기도문 유고의 서경의 서문이 주문 대용품역할을 하며 옴 마 니 반 메 훔 6글자가 전부인 육자대명진언은 가장 유명한 주문으로 티베트에서 발효된 특유의 영성이 물씬풍겨나오는 주문이다. 비기자는 부전이라 감당할 그릇이 아니면 전하지 않는다.   


원광대 김낙필교수의 연구 조선후기 민간도교의 윤리사상 민심이 타락한 말세에 경을 입으로 외우면 구언받는다는 타력구원의 신앙이 내포되어있다.옥추경을 연구하며 추사 김정희도 옥추경을 좋아했음을 발견했다. 이는 운율이 좋았던 탓으로 사려된다. 


김일부의 정역의 핵심 메시지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주시계바늘이 정오를 지나 오후 3시쯤을 가리키고 있다는 주자이다. 낮12시가 지나 선천에서 후천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선후천 교체되는 변화를 금화송이라 노래로 표현했다. 


주문은 자기 마음대로 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구전심수의 세밀한 지도를 받아서 이뤄진다. 즉 스승으로부터 미묘한 부분에 은밀한 지도가 있어야 효과를 발생한다. 사주명리학에서 구령주를 주문해 효과를 보았다는 사실자체도 비밀이었다가 죽기전 제자에게 공개했다. 무노동이면 무임금이듯 무복채는 무적중이다. 



구령주의 뿌리는 계룡산과 청허선사  


박재현의 정신적 뿌리는 개운조사파 아라한과의 경지에 도달한 개운조사를 추종하는 개운조사파는 능엄경의 수행법인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노선을 가지고 있다. 계곡 물소리가 일품인 함양의 백운산 밑에 있는 백운암에서 수련을 했다. 윤청허선사는 함양읍 교산리 행교마을에서 한약방을 차려놓고 생계를 이어가다. 도교수행을 위해 산에 들어가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는 처음 10명의 제자를 받았는데 주문수행과정에서 3명은 죽고 4명은 정신이상 나머지 3명이 살아남았는데 그중 하나가 박재현이다. 나머지 두명은 정통 선도수련을 했고 박재현만 사주명리학으로 방향을 잡았다. 수행시절을 그리워하며 계룡산에 다시들어가 선불가진수어록을 발간했다. 


예언해도 누설을 말아야 하는데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앞에 곧잘 이에 허물어진다. 토정선생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조심하라 하기도 했다. 

 


발설과 은폐의 아슬아슬 줄타기  


발설하면 여러사람에게 시달리고 혹 틀리면 온갖 조롱을 듣는다 그러므로 숨는 지혜가 필요하다. 돈을 버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사실은 재물복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고향 서상면 옥산부락에 덕운정사를 지었다. 


박재현의 일생을 보면 너자신을 알라 희랍최고의 점괘이다 이는 헤로도토스의역사에서 나온다. 


자기자신을 객관으로 파악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통찰이다. 점의 궁극적 관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에 있다. 자기를 통찰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신탁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많은 술객 도사들이 빠지는 함정이 통찰력 부족이다. 다른사람 점은 잘봐주는데 자기자신은 보지 못한다. 말년의 박재현의 불행은 자기통찰에서 실패한 탓이다. 물론 자기를 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계율과 스승이 필요하다. 스스로 계율에 의지해서 자기자신을 체크해보고 스승으로부터 끊임없는 경책을 받아야만 스스로 반성할 수 있다. 


 

점이란 무엇인가  


기원전 3천년 전부터 존재한 직없이 점쟁이다. 내 미래에 대한 궁금중은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다. 

근래 직업가운데 점쟁이와 가장 비슷한 이가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이다. 

고스톱의 황금율도 운칠기삼이다 운이 70 기술이 30이란 말이다. 이 7할의 바탕에 깔려있는 원리는 무엇인가? 

 

첫째 相應 correspondence 상응의 원리 둘째 反復 의 원리 셋째는 鬼神 의 존재이다.  


상응의 원리란 시간,공간,존재 각기 다른 3차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리이다. 그 좋은 예가 카오스이론이다. 현대물리학에서 카오스이론은 북경상공의 나비 날개짓이 캘리포니아 상공에 가면 폭풍우로 변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언뜻 보며 혼돈같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상응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현대 물리학자들은 설파한다. 상응의 원리에 의하면 만물은 거미줄과 같은 미세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을 잡아 흔들면 다른 한쪽이 흔들린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풍수의 동기감응의 원리도 이와같다. 땅속에 묻혀 있는 조상의 뼈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 조상의 백과 후손의 백이 서로 감응한다고 본다. 그 감응현상은 꿈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나비의 날개짓은 점술가가 보면 하나의 징조이고 폭풍우를 예측한다. 점술가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지나치는 미세한 조짐을 주목하고 이를 잡아채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상응의 원리가 기초한 점서가 주역이다. 주역의 64괘는 뽑는 사람의 마음과 상응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해석해야 한다. 문제는 괘를 뽑는 사람의 상응능력에 달려있다. 즉 현실과 괘를 연결시키는 능력이다.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64가지 괘 중에서 과연 어느 괘에 배당할 것인가 그 사람의 주관적인 영역에 속한다. 


주역은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괘로 환원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경전으로 다가온다. 


환원시키기 위해서는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는 방법이다. 감각이 예민하게 다듬어지면 어떤 사물을 대하는 순간 즉시 괘로 환산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역은 책만 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예민한 감각의 확보가 관건이다.   


6시간은 부동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야 고요함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요할 줄 알아야 내면세계에 들어가고 내면세계에 침잠해 있을때 외부세계의 미세한 출렁거림도 그대로 포착된다. 부동자세의 시간과 내면세계의 깊이는 비례한다. 부동자세 훈련이 어느단계에 이르면 숲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어온다. 


이처럼 예민한 상태에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풍기는 냄새에서 부터 얼굴에서 풍기는 빛깔 목소리의 칼라 눈동자에서 나오는 빛의 강도와 크기등이 세밀하게 체크된다. 내면의 고요한 세계에 침잠하는 것을 가리켜 삼매라고 부른다. 

 


불교의 休休庵坐禪文 고승들은 삼매의 극치를 나가 대정에 들었다고 표현한다. 


나가는 큰 뱀을 지칭하는 단어로 큰 뱀은 똬리를 틀고 가만히 있으므로 깊은 고요함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고 그 고요함의 극치에서는 큰 지혜는 솟아난다. 비범한 지혜는 내부에서 솟아나지 밖에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그래서 고요함이 중요하다. 那伽大定 에 도달한 고승은 여서가지 신통력을 갖춘다 경전에 나와있다. 


누진통 정액이 나오지 않는 경지로 성욕에서 해방된 징표이다. 


신족통 하룻밤에 수천 리를 간다는 축지법. 


천이통은 하늘의 소리를 듣는 능력. 


타심통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 내는 능력. 


숙명통은 전생을 알 수 있는 능력. 


천안통은 천리박의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 


숙명통은 속세 중생들이 가지는 능력으로 숙명통에 도달하면 전생 현생 내생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천태종의 개창조인 상월조사는 숙명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 고승이었다 한다. 소백산 구인사는 그가 창간한 사찰이다. 

 


반복의 원리 - 규칙적인 반복은 예측을 가능케 한다.  


점이 70퍼센트 맞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반복의 원리이다. 밤낮을 보자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반복한다. 사계절도 계속 돌아간다. 음양오행이 여기에서 나왔다.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적의 순환이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그러니까 사계절의 가장 중간지점에 토를 배치했다. 봄은 목, 여름은 화, 가을은 금, 겨울은 수. 음양오행은 자연의 규칙적인 반복현상을 관찰한 결과이고 이를 이론화함으로써 다가올 일을 예측하는 쪽으로 이용되었다. 1년은12개월 12달이다. 12번 보름달을 본다. 보름달이 11번 이거나 13번 이었던 적은 없다. 12번 반복에서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라고 12지가 발생했다. 하루가운데도 12시간 이것이 12진법이다. 

  

12에다가 동물을 배당하였다. 서기2세기경 왕충의 논형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는 숫자에 인격성을 부여했음을 뜻한다. 이때부터 숫자는 인격을 가지고 의미를 지니고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2지와 운명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예가 당사주라고 불리는 운명감정법이다. 당나라때 사주라해서 당사주라 한다. 이는 완벽한 12진법을 사용한다. 子는 귀하다는 의미의 天貴에 해당, 丑은 고생한다는 의미의 天厄, 寅은 권력을 잡는 다는 天權 ,卯는 참을성이 부족한 天破 , 진은 꾀가 많은 天奸 , 巳는 글을 좋아한다는 天文 , 午는 복이 많다는 天福 , 未는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天驛, 申은 외롭다는 天孤 , 酉는 과격함을 상징하는 天刃 戌 은 사교성을 의미하는 天藝 , 亥는 건강함을 의미하는 天壽를 배대시켰다. 


오로지 12지만 가지고 생년 월 일 시를 판정하는 당사주시스템은 간단하다. 십이지에다 십간까지 모두 동원해 보는 육십갑자 시스템의 사주명리학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당사주가 구구단이라면 사주명리학은 인수분해에 비유할 수있다. 히사시 永田久의 '역과점의 과학' 동문선, 심우석譯 잘정리되어 있다. 정다운스님의 인생십이진법도 쉽게 잘설명되어 있다. 


사주명리학은 반복의 원리에 기초해 있음을 주목하자. 반복의 원리는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절, 그다음에 1년 12달의 주기에 유래한 12지 . 거기에다 한가지 덧붙이면 10 간이다.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를 십간이라 부른다. 태양의 행성 중에서 인간의육안으로 관찰되는 별은 5개 행성이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다. 육안으로 보인다는 것은 지구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서양의 고대 점성술에서도 가장 중시된 별은 해와 달 그리고 오행성이었다. 


음양오행설에서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천간의 10 이라는 숫자를 생각하면 2 음양*5 오행성에서 10 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매일 하늘에 떠오르는 달과 해가 절대적으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이고 오행성은 그 다음에 영향을 미치는 종속변수로 생각한다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결합은 2*5로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사주 명리학의 이론의 일차적 기반은 10간 12지에 있고 그다음에 10간 12지를 음양오행으로 인수 분해 한 것에서 모든 해석이 도출된다. 

 


풍수도참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오행, 십간십이지와 뗄 수 없는 관계가 풍수도참설이다. 도참이란 그림이나 글자를 사용한 예언을 말한다. 이것이 정권교체기마다 단골로 등장해 민심을 사로잡았다. 조선시대 정감록은 체제에 소외된 지식인에게 해방신학이자 구원의 복음서였다. 아직까지도 계룡파 태백산파 지리산파를 비롯 전국의 술사들에게 은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룡산파의 비결과 탄허스님 


우리에게 비결은 어떤 의미인가? 


비결이란 무엇인가? 과연 인생살이에서 비결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가르켜 비결파라 한다. 정감록 임오년에 문둥이 관상을 지닌 사람이 왕이 된다는 숙시비결 토덕의 균형감각을 갖춘 충청도가 대권을 잡는다는 오행상생론 등등. 이런 예측은 비결파들 특유의 세상 읽기 방법이다. 보통사람들은 사회과학적 조사방법에 의거한 여론조사에 의지하나 독특한 주관을 가진 비결파들은 하늘의 계시를 자신이 직접 중계방송함으로써 여론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일제때 조선총독부는 민간에 은밀히 떠도는 비결을 수집했다. 이는 민심의 향배에 영향을 미친다 진단했기 때문이다. 일제가 보기에 조선은 풍수도참을 원리로 하는 비결에 의해서 민심이 움직이는 특이한 사회였던 것이다. 비결을 신봉하는 사람치고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은 적었다. 조선시대 운동권의 교본이 정감록이다. 


정도령은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였고 메시아가 출현하면 민중은 부도덕한 체제의 탄압에서 해방된다고 믿었다. 총독부가 전국의 비결을 수집해 만든 소책자가 조선비결전집이다. 이 비결들이 전하는 메세지의 공통점은 언제쯤 좋은 세상이 온다. 좋은 세상을 몰고 오는 인물은 누구이다. 언제쯤 난리가 난다. 등등이다. 도탄에 빠진 민초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이다. 총독부는 한편으로 이런 비결의 유통을 저지하고 감시했지만 또한편으로는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용했다. 그중 하나가 무라야마가 저술한 조선의 점복과예언 무라야마는 조선의 풍수 저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비결을 이용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개인차원의 비결은 십승지이다. 풍기, 무주, 계룡산, 변산등등에 많이 이주했다. 

 


탄허스님과 숙신비결 


탄허스님은 불교고승이었지만 주역을 비롯한 역술과 풍수도참에도 깊은 식견을 가졌다. 선가적 입장에서 입장에서 주역을 해석한 주역선해 3권이 있다. 


탄허는 "삼라만상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와 "부분이 즉 전체요. 전체가 즉 부분이다"는 도리를 밝히는 화엄경을 體로 하고, 앞일을 예측하는 주역을 用으로 하여 나라의 앞일을 예견하며 1960~70년대 국사역할을 했다. 그는 주역의 육효를 사용해서 점을 치는 육효점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주역이 가지는 점서적인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 바로 육효점이다. 이는 역대 주역을 마스터 했던 공자, 주렴계, 주자, 소강절, 서경덕, 이지함과 같은 모든 학자들과 구루들의 실천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죽어라 배우기만 하면 무엇하는가 현실에 활용해야 할 것 아닌가.  


불가에서는 주역을 은근히 거부하는 분위기가 있기에 일체가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왜 괘를 뽑느냐는 것이다.  


탄허는 불교승려이면서도 유 불 선 삼교를 아울러 포용하는 포함삼교의 전통을 계승했다. 포함삼교는 최치원의 말이다. 유교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예를 배우고 불교로 마음의 구조를 밝히는 명심의 이치를 선교로 부터 몸을 다스리는 양생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탄허가 머무르던 오대산 월정사, 서울의 대원암, 계룡산 학하리의 자광사 

 


해운과 탄허의 운명적 만남 - 숙신비경의전수  


숙신비결은 탄허가 계룡산 학하리의 자광사에 머물던 시절에 입수한 것으로 추측된다. 학하리는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중국일대를 방랑하며 주역과 관상 그리고 수많은 비결을 입수한 해운은 그것을 탄허에게 주었다. 김일부의 정역은 매우 난해하다. 주역에다가 하도낙서, 음양오행, 십간십이지, 고천문학, 사서삼경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진 책이라 이를 알아야 이해가 가능하다. 


정역의 요점은 지축이 바뀐다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어마어마한 거대 담론이 후천개벽설이다. 365일이 360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구상의 총체적인 변화가 뒤따른다. 그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이 물속에 침몰한다는 것이다. 지축이 바뀌면 북극의 빙하가 녹아 일본과 동해안이 가라앉고 반대로 서해안은 올라와 육지로 변한다고 전망했다. 탄허스님이 밝혀놓은 그 예언이 주역선해 교림출판사 1982 3권 마지막 부분인 427쪽에 나온다. 김일부는 1880년 중반 정역을 완성하고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일본이 망한다는 예언을 한 것이다. 


탄허의 출가전 속명은 김탁성이다. 


김제 만경읍의 대동리 김씨 집안이다.아버지 김병일은 독립운동을 했고 민족종교에 가담했다. 당시 만주로 간사람이 총을 들고 싸웠다면 민족종교에 간사람은 주역에서 이야기하는 세상의 변화와 정역의 후천개벽에 인생을 걸었다. 해방이후 사회주의가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세대의 자손들이 좌익에 적극가담했다. 아버지 세대가 미신적인 후천개벽 운운하다 인생을 망쳤다 하면 우리대의 자손은 미신이 아니 과학적 사회주의를 가지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래서 왜정때 계룡산, 모악산 등지에서 민족종교 운동을 하던 세대 자손들이 대부분 좌익을 했다.


주역이나 마르크시즘이나 세상을 바꾸는 교과서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전자는 미신적 후자는 과학적방법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1980년 적극적으로 운동권에 가담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1990년대 입산수도로 돌린 사람들이 많다. 


秘訣 은 VISION을 내포한다. 비결은 결국 미래를 예언하는 작업이고 비전도 역시 미래를 이야기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국 산으로 가야 비전을 얻는다는 것이다. 산에 가면 비전 뿐아니라 마운틴오르가즘까지 부수적으로 얻는다. 산과 인간이 하나가 되었을때의 느낌을 말한다. 한국은 세계최고의 산국이다. 산국이란 의미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산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말이다. 


마운틴오르가증은 건강과 영성을 지향하는 목표이다. 

 

▲ 풍수에서는 산의 형태를 오행의 형태로 설명한다. 종교인들이 기도를 하면 기도발이 잘 받는 산이 화체(火體)의 산이다. 

불꽃처럼 끝이 뾰족뾰족한 산이 화체의 산으로, 영암 월출산(위 사진)이 대표적이다. 


 

음양오행으로 보는 산의 관상과 격국  


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산마다 관상이 다르고 격국이 다르다. 산의 관상과 격국을 인수분해하는 공식은 음양오행이라는 패러다임이다. 산은 음산과 양산으로 구분해 본다. 음산은 육산 대표적으로 지리산 오대산이고 양산은 골산으로 설악산, 가야산, 월출산등등 이다. 이런 바위산에는 불교의 사찰과 도교의 도관들이다. 바위로 이뤄진 산은 악산인데 지기가 강해 일반인이 살기 좋지않다. 그러나 정신수련자가 살기 좋다. 양산은 화강암이 주종을 이루고 바위중 강한바위가 화강암이다. 


화강암에서 나오는 지기는 사암이나 현무암보다 강하다. 비전을 얻으려면 화강암 산으로 가야 한다. 계룡산도 화강암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계룡산은 모두 통 바위로 되어있다. 통 바위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산 전체가 바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력한 지기를 발산한다. 

 


접신이란 무엇인가 


태극도설에 사시합기서 일월합기명 귀신합기길흉 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는 곧 길흉을 미리 알려면 귀신을 이용해야 한다. 


이성과 감성위에 영성이 있다. 앞으로 영성이 주목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한국사람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자본은 이 영성이다. 적어도 5천년 쌓아온 두터운 지층이 있다. 문제는 무성을 영성으로 승화시킬 자질이다. 자질의 핵심요건은 봉사정신이다. 


심령과학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에 빌면 이 고조부는 나의 보호령이다. 즉 수호천사이다.  


물은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매우 훌륭한 수단이다. 계곡의 물소리도 좋지만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해조음소리가 천하일품이다. 철썩 철썩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의식을 집중하면 삼매의 깊은 경지에 들어간다. 


관음의 숨은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음이란 소리를 관한다(집중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유명한 관음도량이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있는 것이 이때문이다. 동해안 낙산사의 홍련암, 서해안 석모도의 보문사, 남해안의 보리암이 모두 해조음을 잘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우리가 보통 역술이라 말할 때 그 범중는 주역과 사주명리학이 모두 포함된다. 역술의 대가는 양쪽모두 조에가 깊은 사람을 말한다. 주역은 8괘를 기본으로 64괘를 조합해 인간과 세계를 예측한다면 사주명리학은 십간십이지를 기본으로 한 육십갑자를 가지고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방법이다. 양자의 공통점은 예측을 위한 방법론이다, 차이점은?주역은 음양에서 출발해 사상 사상에서 팔괘 팔괘에서 육십사괘로 뻗어나가는 방식이다. 이를 수로 표시하면 그 뻗어나가는 방식이 명료히 드러난다. 


반면 사주명리는 숫자로 표현하기 어렵다. 육십갑자 모두를 음양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오행으로 곱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첨가되는 부분이 생년 월 일 시라는 네기둥이다.그래서 사주 보기가 훨씬 복잡하다. 주역은 어떤사람의 점을 칠때 지금 당장만 필요하지만 사주로 볼때는 년 월 일 시가 모두 필요하다. 주역이 압축적 결론을 내리는 장점이 있다면 사주는 서사적인 전망에 유리한 장점이 있다. 

 


주역을 대하는 세가지 입장 


주역은 기원전 5세기 이전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해 왔다. 주역에 대한 입장은 세가지 첫째 점서 상수학 송대 소강절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저서 황극경세서는 상수학적 입장에서 우주변화를 설명한 명저이다. 후천개벽이라는 한국의 민족종교자들에게 소강절의 상수학이 이어져 내려온다. 조선에서는 서경덕 이토정 이서구 김일부 김일부의 영향으로 후천개벽을 주장한 민족종교 지도자들은 동학의 최수운, 모악산의 강증산, 원불교의 박중빈을 예로 들 수 있다. 


두번째는 도덕적 입장. 점을 쳐서 미래의 길흉을 예측하는 것은 괴력난신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보고 여기서 벗어나려 했다. 괘를 보고 자기의 마음을 수양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자기수양의 차원에서 주역을 보고자했다. 송대의 정이천이 대표적이다. 조선중기 겸암 류운용이 있다. 


세번째는 도교의 내단적입장이다. 외단의 반대말이다. 외단은 유황등을 제련해 만든 불사약을 지칭하면 내단은 외부의 약물이 아닌 내에서 단을 찾았다. 인체 내의 하단정에 기를 모으는 방법이 진짜 신선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았다. 단전호흠을 중시하는 단학의 입장에서 주역을 본 것이다. 내면의 연금술을 설명한 책이 위백양의 주역참동계 오늘날도 단학의바이블로 존중받고 있다. 


조선은 주역의 나라였다. 식자층이라 하면 모두 주역에 골몰하였다. 주역은 이과에 관한 책이다. 사서는 암기하면 되지만 주역은 응용과 분석을 요한다. 더 들어가면 이과에서 다시 문과로 되돌아 온다. 


주역을 이해하려면 하도와 낙서 그리고 팔괘와 육십사괘의 수많은 조합을 파악하고 이를 실전에 적용하기까지는 대단히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야 한다. 주역을 했다는 이는 많아도 이를 실전에 응용하는 이가 매우 희소한 이유는 이처럼 공부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부패한 현실정치에 절망한 재야의 뜻있는 선비들은 주역을 가지고 시대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변화에 미리 대비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주역은 변혁을 꿈꾸는 이들의 성경이었다. 한자문화권 식자들은 주역 당시 사마천의 사기가 필수과목이었다. 주역은 철학 당시는 문학 사기는 역사이다. 


야산 이달1889~1958은 근세 한국주역사의 특출한 존재이다. 주역이란 무엇인가, 주역을 공부하면 어떤 능력을 갖게 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고 간 분이다. 아울러 주역이란 공부할만한 학문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간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근세 주역의 대가인 김일부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인물이 바로 이야산이다. 


김일부가 후천개벽에 초점을 둔 거시적 주역이라면 야산은 일상사에서 주역의 원리를 적용하는 미시적 주역에 능통했다. 김일부를 쳐다보면 우주사의 변천이 느껴지고 야산을 보면 시계바늘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은 정밀함이 감지된다. 


야산에게는 5남1녀가 있다. 사남 이이화는 토종 역사학자로 유명하다. 삼남 간화의 아들이 이응국, 이응문이다. 형인 이응국은 의리적해석이 밝다면 동생인 이응문은 상수적 해석에 능하다. 대둔산 석천암의 108제자 - 대둔산은 화강암이다. 야산이 자신의 학문의 포부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공개한 곳은 대둔산이다. 이후로 주역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야산의 생년월일은 1889 음력9월16일 진시 

 


관상의 세계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거사 출가하지 않고 재가에서 불교수행을 하는 남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거사가 주는 매력은 비승비속이다. 승도 아니고 속도 아니다. 뒤집어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까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다. 승의 세계가 지닌 신비도 탐구하고 세속의 저잣거리의 치열함도 아울러 맛볼 수 있다.  


유교에는 처사가 있다. 재야에서 학문과 도덕에 힘쓸뿐 벼슬에 나가지 않는 선비를 처사라 부른다. 남명 조식이 한국을 대표하는 처사이다.   


도교에서는 술사이다. 학이 이론이라면 술은 이론을 현실에 적응하는 방법이다. 한자문화권의 술사의 가장이상적 모델은 초한지에 나오는 장량이다. 술사는 광범위한 공부를 해야한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보고 그 사람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파아하는 힘이 바로 지인지감이다. 지인지감을 갖추기 위한 필수가 관상이다. 관상은 얼굴에 나타난 현상을 통해 그 사람의 심상을 읽자는데 목적이 있다.   


전주에 사는 황산 김동전 술사의 맥을 이어가는 이다. 


관상이란 좁은의미로는 그사람의 얼굴만 보는 것이고 넓은 의미로는 얼굴을 포함해 체격, 걸음걸이, 밥먹는 모습, 평소의 행동거지, 잠자는 모습, 목소리까지 포함한다. 정확히 보려면 어느정도 그사람과 생활해 보아야 한다. 관상은 중국의 의학서로 사용되던 영추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관상을 보려면 의학에 밝아야 한다. 


관상의 기본은 관형찰색이라고 한다. 관형이라는 것은 그사람의 이목구비이다. 이목구비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찰색은 얼굴의 빛깔을 보는 것인데 이는 수시로 변한다. 기찰은 얼굴에 표출되지 않은 기까지 볼 수있어야 한다. 이는 관상가의 정신수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신수련 없이는 기찰이 불가능하고 기찰이 불가능하면 관상의 핵심을 놓치는 수가 있다. 따라서 기찰이 가장 어려운 경지이다. 


기찰을 하려면 어느부위까지 보아야 하는가? 눈이다. 눈을 보면 그사람의 현재상태 그리고 잠재적인 가능성까지를 엿볼 수 있다. 



하늘의 이치는 곧 땅에 나타난다. 

두암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 


자기 인생이 지금 몇 시에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한자문화권 천재들이 고안한 것이 사주 명리학이다. 


사주명리학이란 천문을 인문으로 전환한 것이다. 하늘의 문학을 인간의 문학으로 하늘의 비밀을 인간의 길흉화복으로 해석한 것이 이분야이다. 


한의학과 사주명리학은 상호호환성을 지니고 있다. 대병은 팔자에 타고나고 소병은 관리소홀이다는 명제이다. 그 사람의 원초적인 성격이나 기질은 타고 난다. 편벽된성격이나 기질이 오랜 시간 쌓이면 대병이 된다. 


대병이란 고질병을 지칭한다. 이고질병은 성격과 기질에서 연유한 것이고 그래서 사주팔자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자잘한 병은 후천적인 건강 관리 소홀로 걸린다. 


사주를 보고 병을 미리 아는 원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우리 인체의 중요한 장기는 오장이다. 이는 오행과 연결되어 있어 어떤 오행이 그 사람의 사주팔자에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거기에 해당되는 장부에 이상이 생긴다고 본다. 


천지인 삼재에 모두 적용되는 공통분모를 좁혀가면 음양오행이라는 거대 담론체계가 나타난다. 명리학과 한의학도 마찬가지이다. 하늘에 해와 달 그리고 별이 있듯이 땅에도 역시 거기에 부합되는 형상이 있고 인체의 장부에도 음양오행이 적용된다. 음양오행이라고 하는 여의주를 하나 가지면 사주, 풍수, 한의학을 하나로 꿸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시스템적 사고이다. 이걸 건드리면 저것이 움직인다. 이것이 동양사상의 특징이다. 그래서 동양사상은 시간이 필요하고 연륜이 필요하다. 전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기본전제가 되는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오행은 그 이상의 포괄적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서 이해가 쉽지 않다. 영어는 상업적 언어라 간단 명료하나 한문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다의적이다.  


이런 오행에 대한 확실한 이해의 책이 두암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 가 있다. 1966년 초판되어 40년가까이 스테디 셀러이다. 그의 사주는 1966 음력6월8일 인시이다. 


대전대 한의학과 대학원 석사논문인 '한동석의 생애에 관한 연구' 권경인 논문이 눈에 띤다. 


한동석의 외할머니가 원씨였는데 그 외할머니의 오빠가 이제마 밑에서 공부를 했다한다. 그래서 한동석의 집안에서는 이제마의 일화가 전해져 왔다. 이제마와 한동석 모두 이북사람이다. 이북사람은 실용적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시대 이북사람은 관직에 오르기 어려웠고 정치적으로 차별당했다. 


한동석의 사상적 뿌리에는 계룡산이 있다. 그가 가장 영향 받은 장소는 계룡산 국사봉밑에 자리잡은 향적산방이었다. 우주변화의 원리의 중요 골간인 지구의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음에 주목하는 정역사상이고 정역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향적산방을 출입하며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의학과 주역을 연결해 주는 공통고리는 음양오행이나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근취저신 원취저물의 사상이다. 가깝게는 자신의 몸에서 진리를 구하고 멀게는 사물에서 진리를 구한다는 사상이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가 따로 노는게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주역이다. 

 


황제내경 일만 독의 집중력 


한동석의 수도방법은 독경이었다. 황제내경의 운기편을 일만독가까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라운 집중력이다. 무조건 외우는 법이 정공법이다. 사자사지 귀신통지라는 말이다. 밤낮으로 생각하여 게으리 하지 않으면 활연하게 깨닫는 바가 있다. 선가에서 말하는 몽중일여; 꿈에서도 낮에 생각한 마음과 같음의 경지이다. 


조선후기 유가의 도인이었던 이서구가 서경의서문을 9천번 읽어서 이름을 서구라고 지었다 전해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동석의 파워의 진원지는 황제내경 1만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느니 염불한다는 말이 그냥나온말이 아니다. 



인생 바꾸는 법 6가지 - 삼성 사장단에 천기누설? 


삼성 사장들이 모여 ‘팔자를 고치는 법’에 귀를 기울였다.  


삼성 사장단은 16일 수요사장단회의에 조용헌 원광대 교수(동양학연구소 소장)를 초청, ‘삶을 개척하는 6가지 방법’이란 강의를 들었다. 조 교수는 사주, 풍수, 한의학 등에 정통한 사주명리학의 대가다. 


조 교수가 꼽은 6가지 방법은 


△적선을 하라(선을 베풀어라) 

△좋은 스승을 만나라 

△하루 한 시간 정도는 명상이나 기도를 하라 

△독서를 많이 하라 

△편안한 집에서 휴식을 잘 취하라 

△자기 자신을 알아라 등이다.  


조 교수는 “한국에서 500년 역사를 지닌 명문가를 살펴보면 공통점은 적선”이라며 “선을 베풀어야 집안이 잘된다는 얘기는 500년에 걸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생의 고비엔 가르침이 필요하다며 스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루 1시간은 차분히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져야 하며, 숙면할 수 있는 좋은 집터를 골라야 운이 트인다고도 했다. “좋은 집이란 숙면을 할 수 있는 집”이란 설명이다.  


독서광이 되라고도 주문했다. 조 교수는 “책을 읽으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 생기고 나쁜 운을 집에서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명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을 알고 쓸데없는 과욕을 부리지 말란 얘기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도 “사장들이 특히 ‘적선을 하라’는 말에 많은 공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취미로 등산을 즐기다 스님들과 가까워져 한의학, 풍수, 사주 등을 연구하기 시작해 불교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 그는 사주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사주명리학을 정립했다.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조용헌의 백가기행’ 등 많은 저서가 있다. 

- 한경.2012.05.


자료참고 :

http://blog.daum.net/secom08/5782784 

http://dmoo.tistory.com/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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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를 처음 발견하였을 때,

과학자들은 그것이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는 원자핵 둘레를 돌아다니는 미립자라고 여겼다.

이것은 드포리스트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전선(음극)을 가열해 전자 구름을 만들어 내고, 양전하로 이것들을 광선형태로 바꾼 다음, 다른 물체로 향하게 하는 방법을 알아냄으로서 증명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과학자들은 형광물질로 코팅한 유리 앞에 가늘고 긴 구멍을 두 개 뚫은 금속판을 놓고 전자입자의 흐름을 발사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는 과학자들을 충격에 빠뜨렸으며, 물리학계 전체를 뒤집어 놓았다.

만일 전자가 입자라면, 광선을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모래알처럼 두 개의 구멍을 통과해 형광판에 가늘고 긴 두 개의 선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대신 전자는 입자에서 파장으로 바뀌어, 빛이나 음파처럼 구멍을 통과해 서로 겹치며 잔물결을 일으키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 마치 웅덩이에 돌맹이 두 개를 던진 듯이....


이보다 더 놀라운 건,

전자가 파장이나 입자의 성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때, 누군가가 보고 있으면, 입자를 선택하고, 보지 않으면 언제나 파장을 선택한다는 것이 연구결과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관찰자가 없으면 전자는, 동네 극장에 있는 영화필름이 '잠재적 실제인 영화'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다른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수학적 가능성, 즉 잠재성으로만 존재한다.

누군가 살아 있는 생명체가 바라볼 때만 전자는 필름통 밖으로 기어나와 실재하는 영화 스크린 위에 입자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많은 물리학자들은 모든 사물이 우리가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로 변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다시 가능성의 형태로 와해된다. 


물리학자 닉 허버트는

자기 뒤의 사물을 "형체없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양자 스프"로 존재하다가 재빨리 고개 돌려 쳐다보면 순식간에 아무 이상 없는 물리 실체로 돌아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 닉 허버트의 "스프"는 어디에서 오며,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물리학자들은 다른 실험을 하다가 아(亞) 원자 미립자 하나를 둘로 쪼개면 절반짜리 미립자 두개가 서로 반대쪽으로 야구공처럼 돌면서 달아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절반짜리 미립자 중 하나를 가늘고 긴 구멍에 집어넣어 회전방향을 바꾸자, 몇킬로 미터 떨어져 있던 절반짜리 쌍둥이 미립자가 바뀐 회전방향에 "즉시 조응"하여 자신의 회전방향을 바꾸는것을 발견하였다.


이 실험은 절반짜리 미립자 두 개가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철저히 차단한 환경에서 주의 깊고, 조심스럽게 진행된 것이다. 이번에도 과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두 번째 절반짜리 미립자가 자신의 회전방향을 바꾼 것은 첫 번째 것의 방향에 대한 정보가 빛의 속도로 전달되고 나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그야 말로 즉각적으로 자신의 회전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광활한 우주 저편에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입자가 변하는 것을 그자리에서 당장 볼 수도 있고, 그기에 따라 작용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몇백만 광년이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즉시..이것은 이루어 진다는 뜻인 듯...)

 

참고로 1935년 아인슈타인은 동료 두사람과 함께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어떤 물질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인다는 증거는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수학상으로는 불가능 하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은 역설이었다.

그래서 이 이론은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역설(페러독스)"이라고 불린다. 


그 후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이 연구대상 입자에 대한 가정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입자가 물체이며, 따라서 서로 떨어져 있고, 각자 독립해서 존재한다고 가정했다는 것이다.


닐스 보어는,

만일 두 입자가 서로 몇백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같은 물체의 부분들이 아니라 애초에 쪼개졌던 입자의 두 요소 그대로여서 이 둘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전혀 분리된 게 아니라면? 따라서 둘 다가 한 전체의 부분들이어서 하나가 어떤 영향을 받으면, 다른 하나도 동시에 같이 영향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질문한다.


그 후 실험이 거듭되면서 보어의 가설이 거의 옳음이 증명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수학과 논평에 대한 보어의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 보어가 설명한 현상은 '거리초월 현상' 혹은 '거리초월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이론에서 제시된 시간과 공간이 우리의 기존 사고방식과 전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것을 양자 물리학의 기본원리로 간주한다. 

이 새로운 물리학은 우주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의식이고, 이 의식은 거리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멀리 떨어진 지식을 즉시 공유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을 쉘드레이크는 "형태공명(Morphic Resonance)"이라 불리는데, 이것은 인간도 아인슈타인 및 보어의 입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 중에서-  




데이비드 조지프 봄(David Joseph Bohm)의 양자이론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주의 허공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초양자장(superquantum field)으로 충만 되어 있다고 하였다. 


둘째, 초양자장으로 충만 된 우주는 하나(oneness)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을 비국소성 원리(non-locality principle)라고 불렀다(그림 참조). 



그림 2.1: 3차원에서 보면 두 개의 원은 따로 따로 떨어져 있다. 그러나 3차원에다 시간 차원을 보탠 4차원에서 보면 두 개의 원은 서로 연결 되어 있다. 따라서 3차원에서 보면 각각이던 것이 4차원에서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 하는 논리가 비국소성 원리이다.


셋째,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초양자장으로부터 분화되며, 이렇게 하여 생긴 존재는 크게 3 가지 부류, 즉 정신계, 에너지계, 물질계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이때 에너지가 분화하는 과정을 보면 초양자장이 중첩되어 파동이 되고, 파동이 중첩되어 에너지가 된다고 하였고, 의식의 분화는 초양자장이 중첩되어 파동이 되고, 파동이 중첩되어 에너지가 되며, 에너지가 중첩되어 소립자가 되며 이 소립자가 의식이 된다고 하였으며, 물질의 분화는 초양자장이 중첩되어 파동이 되며, 파동이 중첩되어 에너지가 되며, 에너지가 중첩되어, 소립자가 되며, 소립자가 중첩되어 원자가 되고, 원자가 중첩되어 분자라는 물질이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에너지, 마음, 물질 등은 동일한 질료로부터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초양자장으로부터 분화하기 때문에 마치 러시아 인형처럼 부분 속에 전체의 정보가 들어 있다고 하였으며 이것을 홀로그램(hologram) 모델이라고 불렀다. 


또한 봄(Bohm)은 우주를 홀로그램이라고 말함으로써 수학적 언어로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따라서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 에너지 그리고 마음 같은 것도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봄(Bohm)은 현재의 과학 수준 때문에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수학적 이해로 설명하고자 하였는데 이것을 봄(Bohm)의 양자 형이상학(quantum metaphysics)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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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간에너지(Vacuum Energy)

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퀀텀물리학에서는 텅빈 우주 공간에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작은 원자 입자들이 존재한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이 입자들은 공간이 서로 떨어지게 하는 반 중력의 에너지를 우주 공간에 부여한다. 이 힘이 바로 우주가 계속 팽창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이야기 인데, 사실 팽창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2. 퀘이사(Quasar)

이사는 매우 밝게 빛나는 물질로 '준성(準星)'이라고도 한다. 밝게 빛나는 것은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집어 삼키면서 나오는 에너지 때문이며,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의 천체이다. 퀘이사는 초기 우주가 매우 혼돈스러웠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수백 개 은하들이 모인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한다. 중심에는 엄청난 규모의 블랙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3. 중성미자

중성미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사실상 질량이 없는 기본 입자이다. 이 입자는 수 마일에 이르는 납덩어리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통과할 수 있으며,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을 통과하고 있다. 이 유령같은 입자는 별의 생명이 끝나는 초신성이 폭발이나 건강한 별의 내부 연소 때 생겨난다. 중성미자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땅속이나 바다 밑 또는 빙하 속에 검출기를 삼입해야 한다.

4. 은하의 동종포식(Galactic Cannibalism)

마치 지구의 생명체처럼 우주의 은하는 서로 먹고 먹히면서 끊임없이 진화한다. 우리 은하에 이웃한 안드로메다 성운은 지금더 위성 가운데 하나를 삼키고 있는 중이다. 안드로메다 주변에는 10개 이상의 성운이 흩어져 있고 차례로 안드로메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사진은 은하의 충돌을 시뮬레이션한 것.

5. 중력파

중력파는 우주시간의 왜곡을 가져오는 것으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예언됐다. 중력파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지만 매우 미세해서 과학자들은 거대한 우주의 사건들을 통해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뿐이다. 

예를들면 쌍성펄서의 공전주기는 매년 100만 분의 75초 정도 짧아지고 있는데 상대성이론은 이를 중력파에 의해 에너지가 방출되기 때문으로 간주한다. 아래 사진은 궤도를 도는 두개의 불랙홀에서 나오는 중력파를 3D로 형상화한 것이다.

6. 태양계 밖의 혹성(Exoplanets)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주에서 발견된 행성은 태양계 행성 뿐이었지만 천문과학자들의 노력으로 2010년까지 500여개의 태양 밖 행성들을 발견했다. 부족한 질량으로 별이되지 못한 거대한 가스에서부터 적색왜성의 주변을 도는, 작은 돌로된 행성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천문학자들은 과학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언젠가 지구와 비슷한 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7. 암흑물질 (Dark Matter)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이 우주 질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그 존재를 볼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다. 중성미자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블랙홀로 존재할 가능성 있다. 암흑물질의 존재 가능성 자체를 아예 부인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중력의 특징을 아직 모두 밝혀내지 못해 암흑물질이란 개념을 도입했을 뿐이며, 따라서 중력의 특징을 모두 밝혀내게 되면 암흑물질 없이도 우주를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8.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줄여서 CMB라고도 하며 빅뱅 초기의 흔적으로, 우주가 빅뱅으로 부터 시작되었음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가 되고 있다. 1960년대에 처음 관측됐으며 우주의 모든 곳에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정교한 측정 장치들에 의해 CMB의 온도가 절대 온도 -273.15도에 가까운 -270도인 사실이 밝혀졌다. 

9. 미니 블랙홀(Mini-Black HolesI)

'브레인 세계(braneworld)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성 이론은 우주가 3차원 공간과 시간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브레인 이론은 여기서 더 나아가 막(brane)이라는 제4의 공간을 전제로한 5차원적 이론이다. 만약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태양계에는 미니블랙홀이 수천개 이상 존재하게 된다. 크기는 원자를 구성하는 핵 정도로 매우 미세하다. 빅뱅 초기에 생성된 미니블핵홀은 오차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시공간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 일반 블랙홀과는 차이가 있다.

10. 반물질(Antimatter)

수퍼맨의 분신인 비자로처럼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은 반대의 물질이 있다. 원자의 핵을 도는 전자는 음전기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전자의 반물질인 양전자는 양전기의 성격을 갖는다. 물질과 반물질이 서로 만나면 상호작용에 의하여 순식간에 감마선이나 중성미자로 변해버리고, 그들의 질량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2에 의해 에너지로 전환된다. 이론적으로는 이 반입자를 미래 우주선의 연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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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액체 추진제를 사용하는 소형 달 착륙선이 국내 처음으로 개발됐다.

KAIST(총장 서남표) 항공우주공학과 로켓연구실의 권세진 교수 연구팀은 스페이스솔루션(대표 이재헌)과 공동으로 소형 달 착륙선을 개발, 내부 시험에 성공했다고 27일 밝혔다. 공개 착륙 시연은 28일 오전 10시 30분 KAIST 교내 풍동 실험동(W10)에서 실시할 예정이다.

이번에 개발한 달 착륙선은 무게 25㎏에, 엔진은 최대 350뉴튼(N·힘의 단위)까지 출력을 제어할 수 있어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한 달 표면에 20kg 이상의 무게를 착륙시킬 수 있다.

연구진은 이 달 착륙선 엔진에 친환경적인 단일 액체 추진제를 사용하고, 스페이스솔루션이 개발한 고성능 추진제 밸브를 장착했다. 특히 연구진은 추진제 사용 때 나타나는 독성이 없어 재처리 과정이 필요 없는 등 기존 선진국형 달 착륙선에 비해 개발 비용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엔진 내부에 탑재되는 촉매반응기를 포함한 모든 부품은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했다. 추진제 탱크와 가압용기는 착륙선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복합 재료와 벌집 구조의 허니컴 샌드위치 패널을 이용했다.

권 교수는 “나사가 국제 달 탐사 네트워크(ILN)용으로 개발 중인 달 착륙선 1기의 개발 비용이 1억달러(1500억원) 수준이지만, 우리 엔진을 쓰면 5000만달러(750억원)면 개발이 가능하다”며 “이 달 착륙선에 일부 장치만 추가하면 당장 달 착륙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연구진은 지난 3월 미 항공우주국(NASA)에 이 모델에 기반을 둔 달 착륙선을 공동 제작하자는 제안을 해놓은 상태다.

한편, 권 교수의 로켓 연구실에서는 현재보다 효율이 두 배 이상 좋은 저장성 이원추진제 로켓엔진을 개발 중이다. 이 엔진은 1000N까지 추력을 제어할 수 있어 달 탐사를 위한 우주선 엔진으로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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