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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철학의 왕국이었다.



인문학으로 살아가기 - 전 세계인이 조선선비들에게 배워야 하는 이유


조선시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영적이고 진보적인 사회였다. 이 글에서는 조선의 알려지지 않는 좋은 면들을 재조명함으로써 한민족의 전통문화를 복구해보고자 한다.


1.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영적인 민족이 사는 국가였다

옛날 조선에서는 ​아이가 새벽에 오줌을 싸면 다음 날 동네에서 소금을 받아오게 시켰다. 얼핏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미신적인 풍습 같지만 여기에는 조선인들의 심오한 사상이 반영되어 있었다. 음양오행상 새벽은 수기(水氣)가 지배하는 시간대이므로, 수기운이 약하면 신방광 계통에 이상이 온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이 때 오줌을 지리기가 쉬운 것이다. 반면, 염기의 양이온인 Na+와 산의 음이온인 Cl-가 만나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소금은 활동전위를 발생시켜 신경물질을 전달하고, 삼투압을 조절하고, 신체 내 노폐물을 해소시키는 기능을 하는 원소인데 오행상 생명력을 주관하는 수기로 본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아이의 부족한 수기를 채우라는 의미에서 아침에 이웃집을 돌며 소금을 받아오게 한 것이다. 순수한 연역적 추론(음양오행)에 의거한 조선인들의 과학성이 놀랍지 않은가?


조선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영적인 민족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사람들만큼  이음양오행 이론을 철저하게 지킨 민족이 없었다.

먼저 음양이 합하여 이루어진 태극은 한민족이 예로부터 건물, 가구, 일상용품에 애용하는 문양이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국기로 이어지고 있다. 

 

오행은 목(木, 봄;동쪽), 화(火, 여름;남쪽), 토(土, 중앙), 금(金, 가을;서쪽), 수(水, 겨울;북쪽)의 다섯 기운이 서로 상생하고 상극하며 우주의 조화를 이룬다는 사상으로, 오행설에 따라 유난히 5를 좋아했던 민족이 한민족이다.

​부여와 고구려의 5부족, 고구려의 중앙의 5부와 지방의 5부, 백제의 5부 5방제의 행정구역, 통일전 신라의 지방 5주제, 발해의 5경 제도, 조선의 한양을 5방으로 나눈 것과 장시가 5일장으로 열린 것 등이 오행설과 관련이 있다. 오행설은 상생과 상극의 원리 속에서 우주만물이 생성, 변화, 발전한다는 이론이지만, 한국인은 토(황제)-목(하)-금(은)-화(주)-수(진)-토(한)로 상극적이고 투쟁적인 중국보다 평화적인 상생의 측면을 선호한다. 그래서 사람도 상생의 순서에 따라 태어난다고 보아 목→화→토→금→수의 원리로 이름을 짓는다. 이것이 항렬인데 예를 들어 조부대에 흠(欽)과 같이 쇠금(金)변으로 이름을 지었으면 아들대의 항렬은 연(淵)과 같이 물 수변이 들어가게 짓고, 손자대는 동(東)·상(相)·식(植)자와 같이 나무목(木)변이 들어가게 작명을 한다.

한편 왕조의 교체도 상극의 논리인 중국과 달리 상생논리로 이해하여 신라는 금, 후고구려와 고려는 수, 조선은 목의 왕조로 인식해 각 왕조는 이를 상징하는 9, 6, 8의 숫자를 애용하였다. 예를 들어 박-석-김으로 왕위가 교체되다가 김(金)으로 왕위가 세습된 신라는 금(4, 9)을 선호하였는데, 지방의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고, 중앙의 군사도 9서당으로 편재하여 금의 왕조임을 나타내었다. 수는 후고구려와 고려가 사용하여 후고구려의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로 사용했고, 고려는 전국을 6도(5도 양계)로 나누었다. 또한 숙종때 수도를 개경에서 지금의 서울인 남경으로 천도하고자 하였으나 남경의 주인은 목성을 가진 자가 주인이 된다는 설 때문에 수도를 옮기지 못하였다. 인종때 일어난 이자겸의 난(1126년)도 목성인 이씨로 정권을 잡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목성을 가진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하게 된다. 

목(木, 3·8)을 표방한 조선은 유난히 3자를 선호했는데. 3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 삼사(홍문관·사헌부·사간원), 삼법사(형조·사헌부·한성부), 3년마다 자(쥐띠해), 오(말띠해), 묘(토끼해), 유(닭띠해)년에 과거를 보는 식년시를 시행하고, 전국을 8도로 나눈 것과 장시가 5일장으로 열린 것은 모두 음양오행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오행을 오상(인·의·예·지·신), 방위(동·서·남·북·중), 빛깔(청·백·적·흑·황), 짐승(청룡·백호·주작·현무·황룡), 오장(간장·폐·심장·신장·비장)과 관련시켜 받아들이는 자세도 매우 진지했다. 

사실상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서울)은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세워진 계획도시였다. 북쪽에 백악산(북현무)을 주산으로, 왼쪽에 낙산(좌청룡),  오른쪽에 인왕산(우백호), 남쪽에 남산 목멱산(남주작)이 서 있었다. 


가장 중요한 궁전인 경복궁의 3개 문을 차례로 지나면 왕의 정사를 돌보던 근정전이 나온다. 근정전 중앙은 토(土), 황제의 자리다. 그 뒤쪽 깊숙한 곳에 왕비의 침실인 교태전이 있다. 교태전의 모습은 태극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천지의 음양의 기운이 한데 어울려 만물의 근원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동쪽에는 세자의 거처인 동궁이 있다.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곳으로 오행의 목(木)을 뜻하며, 세자는 자라서 왕이 된다는 뜻이다. 서궁(경운궁)은 경복궁 서쪽에 위치하는데 대비의 거처로, 대비는 지는 해라는 의미로 오행의 가을(金)을 나타내고 있다. 

궁실의 ​대문은 우주의 기운이 흐르는 입구로 건춘문, 오행에서 목(木)으로 봄을 마주하는 문이다. 서쪽에는 영추문, 오행의 금(金)으로 가을을 보낸다는 뜻이다. 


광화문을 지키고 있는 한쌍의 해태의 눈은 관악산을 응시하고 있는데, 왜 광화문 앞에 세워진 것일까? 해태는 물을 관장하는 신으로써 물은 오행상 수(水)에 해당되면서 한강 너머의 관악산은 화(火)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수(水)와 화(火)가 있어서 물로써 불을 제압하기 때문에 해태상을 양쪽으로 세워 관악산의 화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남대문의 옛 이름은 숭례문(崇禮門)으로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이다. 예(禮)는 오행중 불인 화(火)로써 방향으로는 남쪽을 나타내는데, 숭(崇)은 글자의 모습 자체가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현판이 세로로 걸려 있는 이유는, 세로 현판으로서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한 이열치열의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임진왜란과 6·25전쟁도 무사히 넘겼지만 2008년 2월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북쪽의 동대문의 현판 역시 특이하다. 다른 곳의 현판이 세 글자인 데 비해 흥인지문(興仁之門)은 네 글자다. 한양의 가장 큰 약점은 동쪽 약산의 기세가 약하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동대문을 통해 들어오는 왜구들을 통해 서울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1869년 고종 때 '흥인문'을 다시 지으면서 이름에 산맥을 뜻하는 '갈 지(之)' 자를 넣어 좌청룡의 약한 기운을 보강했다고 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음양오행에 따라 설계된 것이 왕궁이 터를 잡고 있던 강북이었기 때문에 강남보다 지진 빈도가 현저히 낮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한국의​ 산천 곳곳에서도 음양오행 사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산은 그 기세에 따라 양산과 음산으로 나뉘어 진다. 탑의 둥근 모양은 음탑, 각진 모양 양탑이라 불린다. 남근석은 대표적인 양의 기운이다. 양기를 누르기 위해 물을 갔다 붓는다. 좋은 기운은 더욱 북돋아 주고, 약한 기억은 보충하는 것이 풍수지리의 원리이다. 

​마이산은 80여개의 다양한 돌탑이 쌓여있는데, 특이하게도 양산과 음산이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축조된 탑들은 우주순행의 이치를 담고 있다. 천지탑(음양탑)은 마이산에서 규모가 가장 큰탑으로 음양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행탑은 동서남북으로 한쌍으로 음돌과 양돌을 싸놓고 있다. 마이산의 탑들이 200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태극 모양으로 안고 도는 형세로 마을 입지 조건으로 최고로 꼽힌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장승을 만나게 된다. 장승은 남녀를 상징하는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 마주 보거나 나란히 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양인 천하대장군은 양각으로 깎고, 음인 지하여장군은 음각으로 깎는다. 이 역시 음양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다. 정승과 함께 마을을 수호하는 솟대는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서도 음양론에 따라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했다. 대문을 중심으로 동쪽에 사랑채가 있고 서쪽에 안채가 있다. 안채로 들어가면 남성의 출입이 제한되는 여성만의 공간이다. 안채는 여자들의 주 생활 공간이다. 가사 공간이기도 하다. 마루를 따라가면 사랑채가 나온다. 사랑채는 남자들의 주 생활 공간이다. 그래서 사랑채는 건축에서 하늘에 해당된다. 사당은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죽음은 탄생을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오행론적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아이들의 거처인 동채는 탄생에 해당하는 동쪽에 해당한다. 곳간은 모으는 힘이 강한 금(金)의 방향인 서쪽에 위치한다. 

북쪽에는 부엌이 있다. 아궁이는 생산을 의미하는 자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엌은 집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으로, 신앙의 대상이었다. 불을 다루는 부엌에는 화재 예방을 위해 숫자나 한자를 써붙었다. 장독대는 북쪽 제일 끝에 위치해 있다.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는 오행의 수(水)를 뜻한다. 고추의 붉은색은 양색으로 음인 악귀를 쫓는 힘이 있고, 숱의 검은 빛은 음색으로 귀신들을 흡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장독대는 성역처럼 여겨졌기에 금줄로 잡귀의 침입을 금하고 있다.


 

​한국의 집은 천지인 세계관을 반영한 소우주다. 하늘에 닿기 위한 계단은 신성한 장소이며, 기둥은 권위를 상징하고, 지붕은 하늘의 상징이다. 네개의 기둥이 둘러싸여진 단은 신성한 영역을 상징한다. 

 

공동우물은 마을의 생명줄로 마을의 정기가 모인 곳이다. 예로부터 우물을 잘못파면 마을에 병고가 생긴다고 믿었다.그래서 재앙을 막고 1년내내 물이 잘 솟으라는 샘굿은 동신제(洞神祭)에서도 가장 좋은 볼거리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에서 농기의 삼색은 각기 천지인을 상징하는 삼태극이다. 농악은 음양오행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우리의 민속음악이다. 

​혼례(婚禮)는 저물 때 행하는 예식이라는 뜻이다. 결혼이 남자와 여자, 즉 양과 음의 결합이기 때문에, 시간도 양인 낮인 양과 밤인 음이 만나는 저녁 때 하는 것이다. 신랑이 입는 청색은 태양을 상징하는 동방이기 때문에 양기가 왕성한 것을 상징한다. 신부의 다홍색은 기쁨을 표현하고 액혼을 막고, 흙을 상징하는 노란 저고리는 탄생과 새출발을 의미한다. 전통 혼례복은 부부금실과 자손들의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음과 양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결합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 

​음양이 끝없이 돌며 태극을 만드는 강강술래는 이러한 생명의 과정을 재현하는 민속놀이이다.

​한복에도 음양오행의 이치가 숨어있다. 윗옷과 아래옷으로 나뉘어 만든 것은 양인 상채와 음인 하채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녹색 저고리(활옷), 홍색치마는 목생화(木生火)의 상생의 원리를 담고 있다. 고구려 벽화를 보면 3세기 초에 이미 오색을 갖춘 색동옷이 출연하고 있다. 아이들이 주로 입는 색동옷은 오행을 두루 갖춤으로써 나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오방색이 잘 들어간 것이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로 궁중 무용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을 상징하는 오방처용무는 음양오행의 방향을 나타내고 있다. 목(木)을 상징하는 동반신장은 청색 의복을 입고, 화(火)를 상징하는 남방신장은 적색 의복을 입으며, 금(金)을 상징하는 서방신장은 백색 의복을 입으며, 수(水)를 상징하는 북방신장은 흑색 의복을 착용한다. 중심에 위치한 중앙신장은 토의 색깔인 황색 의복을 입고 있다. 다섯 신장은 원을 돌면서 오행의 상생 상극을 그려낸다.

우리의 주식인 밥 속에도 오행의 기운이 다 들어있다. 적당한 양을 맞추어 붓는 물은 수기(水氣), 나무의 불을 피는 밥음으로 화기(火氣)와 목기(木氣)를 고루 갖추게 된다. 또 밥을 짓는 가마솥은 쇠로 만든 금기(金氣)다. 음식이 놓이는 단상은 주로 둥근 상태로 하늘을 나타낸다. 다리가 네 개인 것은 땅을 상징하고 음을 상징한다. 둥근 숫가락은 양, 긴 젓가락은 음으로, 수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나타낸다. 어륙은 불에 구은 것으로 화기(火氣)가 포함되어 있고, 국과 찌개 간장 동치미 등은 수기(水氣)가 포함되어 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은 쇠(金氣)나 흙(土氣)으로 만든 도자기다. 이렇듯 음식과 식재료로 이루어진 상차림에는 음양오행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쌀, 보리, 수수, 콩, 조 오곡밥은 오행의 원리를 두루 갖는다. 김치는 오색은 물론이고 오미를 두루 갖추고 있다. 대추의 쓴맛과 단맛, 고춧가루의 매운맛, 젓갈과 소금의 짠맛 익었을 때의 신맛 등 김치는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완벽한 식품이다. 


음양오행 말고 조선의 무속신앙은 어떤가? 무신도 속의 붓다와 보살 등 무속신앙은 중국의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 가장 오래된 한국적인 신앙이다. '신난다'는 말과 그 어원인 '신명(神明)난다'도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다. 한국의 멋의 원류인 풍류나 요즘 유행하는 한류나 월드컵 때 붉은 악마도 결국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신바람(神氣)은 샤머니즘(巫氣)과 통한다. 



2. 조선은 세계에서 손꼽을 만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조선 중기 선조 이후 사림의 정권 독점이 이어지면서 조선은 예송논쟁 등 하찮은 이념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국가로 전락하였지만, 조선초 훈구파, 관학파에 의해 구축된 조선의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놀랍고 역동적인 것이었다.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조선시대를 이해하면,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윤리관, 생활방식 등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조선은 개천에서 용 나는 기회평등지향 사회였다​.

500년간 유지된 조선의 과거제도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정승과 판서에 오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조선사 연구의 권위자인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겸 서울대 명예교수는 양반뿐 아니라 평민과 서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도 대거 과거에 합격했음을 증명하는 연구서 <과거, 출세의 사다리>를 출간했다. 이 책을 보면 조선 전기 태조∼선조 대에 선발된 문과 급제자는 모두 4527명이며, 이 가운데 신분이 낮은 급제자는 1100명으로 전체 급제자의 24.3%를 차지한다. 신분이 낮은 1100명 중 3품 이상 고관에 오른 급제자는 306명에 이른다.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은 태조∼정종 대에 40.4%, 태종 대에 50%였다가 광해군 대에 이르면 14.6%로 낮아지고 다시 점차 증가해 고종 대에 이르면 58%대에 이르는 U자형 추이를 보인다. 조선 중기인 17세기를 전후로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문벌가문이 득세하면서 신분이 낮은 급제자들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시험을 통한 신분 이동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역동적이었다.

애초에 조선시대는 천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등한 양천제를 지향했다(이후 변질된 것이 문제였다). 양반가에서 태어났더라도 오랫동안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집안에 벼슬한 사람이 없거나 집안에 돈이 없으면 평민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양반은 농사 짓고, 남의 집 허드렛일도 해주며 살았다.

 

또 조선시대는 노비고 여인이고 할 것 없이 왕에게 글로 상소를 할 수 있었다. 글을 못 쓰는 서민들은 왕궁 옆에 매달아 둔 신문고를 울려 형조의 당직관리에게 민원을 제기할 수 있었고, 보고 내용은 왕의 귀에 들어갔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이러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 '격쟁'이라는 제도가 생겼는데,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제도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인데 그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이다.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 시대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었으며, 최소한도의 합리성도 갖고 있었다. 세종대왕 때도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는 등 법의 공포와 시행에 수 년이 걸렸다.​

조선 시대의 법제도도 상당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이었다. 조선 왕조는 사형수에 한해 3복제를 실시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간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는데,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 왕들은 사형수가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 무수히 노력을 했고,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법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3. 조선은 세계적인 복지 국가, 공동체주의 사회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애아를 양육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라"는 말을 했고, 플라톤은 "장애아는 사회에서 격리시켜라"는 말했다. 중세 유럽에서 장애인은 신에게 벌을 받은 사람으로 장애인에게 고문과 사형 집행이 가해졌다.

 

서양에서 자행되었던 장애인의 잔혹한 역사에 비해 조선은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국가의 기본 정책 기조로 삼았다.

 

독질인(篤疾人) - 매우 위독한 병에 걸린 사람

잔질인(殘疾人) - 몸에 질병이 남아있는 사람

폐질인(廢疾人) -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

 

이처럼 장애를 질병 중의 하나로 여겼던 조선시대 왕들은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했는데 세종 14년(1432년 8월 29일)에는 이런 법령이 반포되었다.


'부모가 나이 70세 이상이 된 사람과 독질이 있는 사람은

나이가 70세가 차지 않았더라도 시정(侍丁)한 사람을 주고...'

(시정 - 조선시대에 나이가 많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군역에서 면제된 사람)

 

장애인과 그 부양자에게는 각종 부역과 잡역을 면제 (오늘날의 병역면제), 장애인을 정선껏 보살핀 가족에게는 표창제도 실시되었다.

 

반면 장애인을 학대하는 자에게는 가중 처벌을 내리는 엄벌제도를 시행해서 장애인이 무고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고을의 읍호(邑號)를 한 단게 강등시켰다. 장애인을 천시했던 서양과 달리 선진적인 복지 정책을 펼쳤던 것이 우리 선조들의 나라 조선이었다.

 

특히, 장애인의 자립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점복사, 독경사, 악공 등 장애인을 위한 전문직 일자리 창출이 그 예다.

 

세종 16년(1434년 11월 24일)에는 '관현(관악기와 현악기)을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에 천인인 자는 재주를 시험하여잡직에 서용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장애인은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 위주의 채용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명통시(明通寺)가 설립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단체가 만들어졌다. 명통시에 소속된 장애인들은 기우제 등 국가의 공식 행사를 담당 그 대가로 노비와 쌀을 받았다. 장애인에 대해 편견과 차별없는 사회였던 조선시대의 국가관 때문에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척추장애인 허조 - 조선 초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허조

간질장애인 권균 -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권균

지체장애인 심희수 -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심희수

청각장애인 이덕수 - 영조 때 대제학, 형조판서에 오른 이덕수

 

조선시대,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종 13년 (1431년), 박연이 아뢰기를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에게 현송(거문고를 타며 시를 읆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밖에도 조선이 이상적인 공동체사회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다.


조선 후기에 정착된 '두레'는 농촌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마을·부락 단위로 둔 조직이다. 두레는 어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이겨내는 공동체 생활의 본보기였다. 절기마다 빚어먹는 과자와 떡, 술과 명절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벌이는 각종 놀이와 굿판도 이웃끼리 나눔을 위한 것들이었다. 떡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고 소외된 이웃을 감싸주었다. 노동요와 타령, 육자배기, 판소리, 농악, 살풀이 등의 춤사위도 심신의 조화를 이루게 하며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공동체의 건강법이었다. 박정희 정부가 실시한 '새마을 운동'이 농촌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4. 조선은 세계적인 인문 국가였다


조선시대 왕은 바로 곁에 사관을 두고 있었다.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정리한 문서를 목판활자로 찍고,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정본을 남겨주려고 하였다. 이렇게 조선시대 500년 역사가 실록으로 남았다. 

왕에게 올릴 보고서를 정리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도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다.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2억 5,000만)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난다고 한다. 

왕들이 쓰는 일기였던 일성록(日省錄)도 정조 때부터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150여년간 계속 쓰여졌다. 선대왕들이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고민해서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다. 

이렇게 각종 문서에 적힌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이다.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약진)에서부터,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다양한 표현법이 있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다. 

조선의 세계적인 인문학적인 수준보다는 다소 떨어지는 감은 있지만, 조선의 과학기술 역시 서양을 제외한 세계 어떤 국가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이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물리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한 일이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 갈릴레오의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다. 결국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이 그로부터 100년 뒤인 1767년이다. 

 

한국에서는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가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고 말해 지동설을 선언했다. 이것이 1400년대이다. 서양의 1632년, 또는 1767년보다 한참 앞서 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을 다룬 책으로,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이순지가 1,444년에 만든 달력은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낸 뒤 만든 것인데,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이순지의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다. 1,400년대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이다. 

 

조선에서는 국학의 명산과(수학과)를 졸업하면 공무원이 될 수 있었는데, 이것을 산관(算官)이라고 했다. 산관들은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정밀한 수학적 지식을 이용했다. 이런 제도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시대 때 수학교재로 썼던 책 중 하나인 <구장산술(九章算術)>을 보면, 2차 방정식과 미지수 다섯개(5원 바정식), 피타고라스의 정리(구고의 정리), 원주율(밀률), 삼각함수 문제 등 다양한 수학 문제들이 나온다. 우리는 벌써 삼국 시대 때부터 이 정도 수준의 수학 교육을 실시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수학자 홍대용이 쓴 <담헌서(湛軒書)>에도 cos, sin, tan 등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다.  



5. 조선의 조공 시스템은 만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이 청나라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을 이야기하면서 조선의 사대주의를 문제삼는다. 또 조선의 조공도 문제삼는다. 조공을 사대주의의 징표라 하며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괜한 역사적 열등감에 빠져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나 이는 일제 식민사관에 기반한 왜곡된 역사교육이 남겨준 인식상의 오류이다. 조공은 일방적인 상납이 아니라 물물교환 형식의 정부주도형 무역이다. 

무역형태의 주류는 조공무역이었다. 조공국에서 조공을 바치면 사대국에서는 사여(賜與)를 내린다. 사여품이 조공품보다 몇 배 많은 것이 원칙이었다. 조선은 조공을 1년에 3번 바치던 것을 1년에 4번 바칠 것을 요청했으나 명은 월남처럼 3년에 1번만 바치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명나라 멸망의 주요원인의 하나는 과도한 사여품의 방출로 인한 국고의 탕진이었다. 중국은 책봉 관계(상명하복관계가 아닌, 의례적인 외교형태)에 있는 나라에 대해서만 조공무역을 허용하였다. 이와 반면에 일본은 극히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싶어도 바칠 수가 없었다. 조선은 사대주의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명나라와 청나라에게 조공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건축 양식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초라하고 보잘 것 없기가 그지없다. 당장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이 빈약하다. 그러나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만들었던 시황제의 만리장성이나,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 비하면, 조선의 볼품없는 건축은 역설적으로 조선에서 백성들을 억압하는 정치인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끝으로, 조선의 조경 양식은 화려한 중국, 섬세한 일본에 비해 시각적인 임팩트는 떨어지지만,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동화되도록 만들어졌다. 정원을 조성할 때는 지형을 함부로 변형시키지 않았으며, 물의 이용에 있어서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법칙을 이용했고 인공적인 힘을 가하여 하늘에 쏘는 분수를 만들지 않았다. 꽃이나 나무는 생성하는 생물이므로 관상수 따위를 심어 인공의 수형을 만드는 가지치기 작업을 피하였다. 정자나 누각을 배치 할 때도 자연의 조화를 먼저 생각하여 연못이나 강가, 산자락에 세워 원을 감상하는 장소로 삼았다. 무심한듯 자연스러운 조선의 조경양식은 한민족의 솔직하고 순수한 본래의 성격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stratic007/220426988803



철학왕국과 조선선비 이야기



인문학 고전콘서트 -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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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으로 본 세계사


세계사 ― 인간정신을 인식하기 위한 기초

도르나흐, 1923년 12월 24일 - 1924년 1월 1일

루돌프 슈타이너

타카하시 이와오 / 유창완



제 1 강 기억의 삼단계

1923년 12월 24일

 


◎ 내면생활의 진화

 

금번 크리스마스회의 기간 중 밤에는 여러분에게 인류사의 발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기회에 지상의 인류 진화를 다시 한 번 개관함으로써 현재의 인간 본질을 지금보다 깊게 집중해서 의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회의는 모든 인류문화의 미래에 대단히 중요한 준비를 하려고 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바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현대인의 혼의 모습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현재 우리 혼의 모습은 과거와의 관련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진화에 관해서든 인류전제의 진화에 관해서든 현대인은 대단히 한쪽으로 편중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인간의 혼적 영적인 생활은 과거도 현재도 역사전체를 통틀어서 본질적으로 달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과학적인 문제에 관해서 고대인은 본질적으로 어린아이 같고, 각양각색의 미신을 믿으며, 인류는 극히 최근이 돼서야 겨우 과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연구를 별게로 하면 일반적으로 현대인의 혼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인이나 고대 동양인과 같은 혼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도, 인류전체도 역사상 어떠한 시대에도 기본적으로 같은 마음과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사시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시대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아직 동물의 모습을 한 인간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사 이래 인간의 마음과 몸의 활동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며, 그 이전의 모습은 안개에 둘러싸여있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은 아직 불완전한 고등영장류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이 거의 일반적인 현재의 사고방식인데, 그 사고방식은 대단히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한, 현대인과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11세기, 10세기, 9세기의 인간 사이의 혼의 모습에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를 전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인과 골고다의 성사(聖事) 시대의 인간, 현대인과 고대 그리스인 사이의 혼의 모습을 말하려 한다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집니다.


 

◎ 고대 동양인의 혼

 

그리고 고대 동양 세계에 이르게 되면,―그리스문화는 이 세계의 일종의 식민지, 마지막 식민지였는데―이 세계의 사람들의 혼생활은 현대인의 혼생활과 전혀 달랐습니다. 1만 년 전, 또는 1만5천 년 전의 동양인이 고대 그리스인 혹은 현대인과 얼마나 다른 존재였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뒤 곧 설명할 예정입니다.


우선 우리 자신의 혼에 시선을 향해봅시다. 무엇인가를 체험한다고 합시다. 보거나 듣거나 하는 체험을, 당사자로서 그와 같은 어떤 체험을 했다고 하면, 그 체험은 기억이 돼서 다시 의식 속에 되살아납니다. 예를 들면 10년 전의 체험을 오늘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10년 전 어떤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그 당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한 것, 모두 함께 무엇인가 한 일, 그러한 일들이 오늘 이미지가 되어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이 내적인 혼의 이미지는 10년 전의 사건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학문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 떠오릅니다. ―물론 현대인은 그러한 감정을 매우 적은 부분밖에 체험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감정에 의해서 떠오르는 기억이 발생하는 장소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머릿속에 그 위치를 정해놓고 있습니다. 머릿속에는 옛날 체험을 기억해내는 작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금 아득히 먼 과거로 건너뛰어서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가 동양의 거주민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현재의 중국인, 인도인 그 밖의 사람들은 이 거주민들의 자손입니다. 그러므로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인간을 보면 그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머릿속에는 외적인 생활 가운데서 체험한 것을 기억하는 기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법한 생활방식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내적인 체험은 그 사람들과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머를 그러한 생각(사고)이나 마음(감정)으로 채우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대의 피상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보면 ‘지금 우리와 같은 생각이나 마음을 옛날 사람도 품고 있었다.’고 해야 하지만 그러한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먼 과거를 영시하면 머릿속에 그러한 생각이나 마음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의 머리는 추상적인 내용을 체험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로테스하게 생각하겠지만―사람들은 머리 그 자체를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머리 그 자체를 느끼고 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의미의 추상작용과는 관계가 없는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던 것입니다. 머릿속의 생각을 체험하는 법을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를 체험하는 방법을 알고 있던 것입니다.


 

◎ 머리와 지구, 가슴과 대기권, 심장과 태양

 

우리의 경우 과거 체험을 떠올릴 때 이 기억상을 과거의 체험과 연결 짓습니다. 태곳적 사람들은 자기 머리의 체험을 대지와, 지구전체와 연결 지었습니다. ‘우주에는 지구가 있고, 지구에는 내가 있고, 나에게는 머리가 있다.’ 이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깨위에 얹혀있는 내 머리 그 자체가 지구에 대한 우주적인 기억이었습니다. 지구는 먼 과거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머리는 훨씬 뒤에 가서야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기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지구 존재를 향한 우주적인 기억이었습니다.


인간 머리의 형태, 모습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지구의 모상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태고의 동양인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구혹성의 본질을 느끼고 있던 것입니다. ― “신들은 지구와 자연의 모든 영역을, 산과 강을 우주 그 자체로부터 창조해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어깨 위에 이고 있는 이 머리는 지구 그 자체의 충실한 모상이다. 이 머리도 그 안에 흐르는 피도 지상을  흐르는 하천과 해류의 충실한 모상이다. 지상의 산계(山系)는 내 머릿속의 뇌의 모습이 되어 반복되고 있다. 내 어깨위에 나 나름의 지구혹성의 모상을 짊어지고 있다.” 그와 같이 태고의 동양인은 말했습니다.


현대인이 자신의 기억상을 과거 자신의 체험과 연결 짓듯이 태고의 동양인은 자신의 머리 전체를 지구혹성과 결합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내면생활의 본질적인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에는 태양으로부터 발산하는 열과 빛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자신의 힘들을 이 대기권에 방출하고 스스로를 태양의 작용에 맡깁니다. 그와 같이 해서 우주로부터 오는 작용을 받아들입니다. 그 경우 고대 동양인은 누구라도 지상에 있는 자신의 거주지를 이 대기권과 관련해서 특별히 중요한, 특별히 본질적인 장소이며,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대지도, 태양과 접하고 있는 위쪽 대기권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상의 다른 지역은 오른쪽, 왼쪽, 앞, 뒤로 저 멀리 멀어져감에 따라서 흐리멍덩하게 사라져갔습니다. (그림1 참조)


<그림1>


예를 들어 인도에서 생활하고 있던 고대 동양인이 그 인도의 땅을 성스러운 곳으로 느꼈을 경우 인도 이외의 동쪽, 서쪽, 남쪽, 북쪽 지역은 일반적인 토지로서 희미한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구와 지구이외의 우주공간의 경계에 대해서도 별다르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자신의 거주지는 특별히 소중한 땅이었습니다.(그림1의 붉은 색 부분) 그 사람에게 그 지역의 생활을 통해서 우주공간을 향해 영향을 주는 일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땅에서 어떻게 호흡했는지는 그 사람에게 특별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었다면 어떤 땅에서 어떤 호흡을 하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 날 사람들에게도 숨쉬기 좋은 환경 나쁜 환경이 있지만 그것을 각별한 마음으로 생각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고대 동양인은 특정한 땅에서의 호흡방식을 특별히 깊게 체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땅의 하늘이 어떤 식으로 우주공간과 연결되어있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고대 동양인은 머릿속에서 지구전체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단단한 뼈에 의해서 윗부분이나 옆, 뒷면이 닫혀져 있지만 아랫부분에는 통로가 있고 가슴을 향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그림1 좌측) 머리가 비교적 자유롭게 가슴 쪽으로 열려있음을 느끼는 일은 고대인에게 특별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고대인은 머리 내부의 형상을 지상의 모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구를 자신의 머리와 연결 짓고,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을 머리 이외의 신체와 연결 지은 것입니다. 머리가 아래를 향해서 열려있는 것, 심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지구가 대기권을 향해서 열려있는 것과 대응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지구는 대기권을 통해서 우주를 향해서 앞으로 열려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커다란 감동과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지구전체를 머릿속에서 느낀다. 이 머리는 작은 지구이다. 하지만 이 지구전체는 나의 심장을 짊어지고 있는 가슴을 향해서 열려있다. 그리고 나의 머리와 가슴, 심장 사이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은 지구와 우주, 대기권과 태양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들의 모상이다.”


거듭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의 머리 안에는 지구가 살고 있다. 더욱 깊이 들어가면 그 지구가 태양을 향한다.(그림1 화살) 그 태양이 안의 심장이다.”


이렇게 말하는 고대인은 우리의 감정생활에 대응하고 있는 혼의 생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의 생활을 감정으로 체험하고 있지만 자신의 심장을 직접 느끼지는 못합니다. 해부를 통해, 생리학을 통해서 심장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하지만 학문에 의해서 얻은 지식은 종이점토로 흉내 낸 심장에 대한 지식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정에 의한 심오한 세계체험은 고대인에게 없었지만, 그 대신에 고대인은 심장을 이와 같이 체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위 세계와 감정으로 결합되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좋아하고, 무엇인가를 싫어하고, 또한 나아가서는 확고한 이 세상의 현실로부터 공기처럼 추상화되고, 떨어져나간 세계과도 감정으로 결합하듯이 고대 동양인은 자신의 심장을 우주와 결부 지었습니다. 즉 자신의 몸으로 지구에서 대기권으로 나아가서 태양을 향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외출한다고 합시다. 그때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우리의 의지는 지체(肢體) 안에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동양인은 본질적으로 다른 체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의지’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사고, 감정, 의지가 고대 동양인 안에도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구인 머리의 체험과 태양에 이르는 대기권인 가슴과 심장의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지체와 행성

 

고대 동양인은 손발의 움직임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지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성을 지체 안에 보냄으로써 지구의 대기권뿐만 아니라 인간과 별 세계와의 관련도 감지했습니다. (그림1 참조) 자신의 머리 안에서 지구를 이미지화 하고, 머리에서 아래 방향의 가슴과 심장 쪽으로 자유롭게 퍼져나가는 것 안에서 대기권을 이미지화하고, 손과 발의 움직임 속에서 먼 우주공간 안에 살고 있는 별들과 지구의 관련을 이미지화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 동양인은 현대인과 같은 ‘의지’의 힘으로 ‘나는 나간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어상으로도 그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앉는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고대어가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살펴본다면 어떠한 고대어라도 ‘나는 나간다.’라고 말하는 대신 ‘화성이 나를 재촉한다. 화성이 내 안에 작용하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전진할 때 양 다리에서 화성충동을 실감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잡고, 무엇인가를 손으로 느낄 때의 감정은 ‘금성이 내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것, 누군가에게 충동을 부여하고 무엇인가 하도록 재촉할 때에는 ‘수성이 사람 안에서 작용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앉는 것은 인간 안의 목성의 작용이었습니다. 또한 휴식을 취하든 게으름을 피우든 눕는 것은 토성의 충동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손과 발의 움직임 안에서 외적인 우주의 펼쳐짐을 느낀 것입니다. 자신의 본성 안에서는 지구에서 우주로, 별의 세계로 가는 것과 머리에서지체로 내려가는 것은 같은 것이었습니다. 머리 안에 지구가 있고, 가슴과 심장에 대기권이 있고, 지체 안에 외적인 우주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완전히 가능합니다. ― “가련한 현대인인 우리는 추상적인 사색에 빠져있다. 그러한 것을 해서 무엇이 되겠는가? 우리는 자신들의 추상적인 사고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추상적인 사색에 몰두할 뿐 자신의 머리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머리는 우리의 어떠한 날카로운 사고보다도 훨씬 내용이 풍부한 존재이다. 대뇌피질의 어떠한 주름 하나를 떼어내더라도,―해부학이나 생리학에서는 대뇌피질의 주름이 가진 훌륭한 기능에 대해서 알지 못하지만― 어떠한 천재적인 과학자의 발상도 미치지 못할 위대한 작용을 하고 있다.”


예전의 지구상에는 인간이 자신의 빈약한 사고내용뿐만 아니라 자신의 머리도 의식하고 있던 시대가 존재했습니다. 그 시대의 인간은 머리를 감지하고, 시상(視床)과 네 개의 뇌실(腦室)을 감지하고, 그것을 대지에 놓인 산계(山系)의 모습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들은 추상적인 학문이론을 통해서 심장을 태양과 관련지은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리와 나의 가슴과 심장 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지구는 태양과 관계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인간은 일생을 우주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평생에 걸쳐서 이 공생을 소중히 생각했습니다. 머리 대신에 빈약한 사고력을 행사하게 된 뒤부터 인간은 사고와 결합한 기억을 갖고, 체험한 내용의 사고상을 기억내용으로서 머릿속에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사고내용이 아니라 머리를 감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와 같은 기억내용을 갖지 않았고,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자신의 머리를 감지하는, 사고와 기억을 가지지 못한 태고의 동양인이 살던 지역으로 간다면, 우리가 지금 다시 필요로 하게 될 능력이 발휘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오랜 기간 그와 같은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우리는 지금 다시 그것을 필요로 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의 혼작용이 가진 작은 태만 탓이기도 합니다.



◎ 땅과 결부된 기억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시대에 자신의 머리, 가슴, 심장, 지체를 감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간다면 작은 말뚝이 땅에 세워져있고 거기에 어떤 표시가 붙어있는 것을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는 어느 벽이라도 어떤 표시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모든 거주지, 모든 생활공간이 다양한 표식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직 기억을 사고내용으로서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일어났을 때 작은 기념물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 갔을 때 자신이 세운 그 기념물로 그때의 사건을 다시 체험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식으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구와 공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단지 머릿속에 메모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메모를 머릿속뿐만 아니라 수첩이나 그 외의 것들에 적어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태만 탓이지만, 점점 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태고 시대에는 그러한 것들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고내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표식으로 덮여있었습니다. 이 인간 본연의 소질로부터 ‘기념비’와 같은 것이 생겨난 것입니다.


인류역사상의 모든 것은 인간 본성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게 이렇게 자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현대의 우리에게는 기념비를 만든 근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우리는 특별히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기념비를 만들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기념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직 현재와 같은 기억력을 갖지 못한 상태로, 체험한 장소에 표시를 남겨두고 다시 그곳으로 향했을 때 그 땅과 결부된 모든 체험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한 태고시대의 흔적입니다. 머리로 체험한 것을 대지에 의탁하는―이것이 태고 시대의 원칙이었습니다.


태고의 오리엔트에는 기념비화된 기억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땅에 표시를  만들었습니다. 기억을 내부에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 여기저기에 만들어진 기념비에 의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지와 결부된 기억입니다.


현재 우리의 영성을 진화시키는 데에 매우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지 않은 이 토지와 결부된 기억능력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대지와 인간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기억능력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해내려고 하지 말고, 이런저런 장소에 표식을 만들자.”,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 바깥의 표시를 기준으로 해서 내적인 혼의 감성을 키우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 방 한 구석에 성모상을 놓고 그 성모상 앞에 서는 것에서 성모를 향한 나의 마음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모상과 같은 기념물과의 섬세한 연결은 지금이라도 우리가 동방을 향해 얼마간 들어가면 어느 가정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동유럽 중부에서도 보편적으로 발견됩니다. 이러한 습관은 모두 땅과 결부된 기억 시대, 기억이 특정 장소와 결합되어있던 시대의 흔적입니다.



◎ 리듬화된 기억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는 땅과 결합된 기억이 리듬화된 기억으로 이행합니다. 처음에는 땅과 결합된 기억, 다음은 리듬화된 기억입니다. 제2단계에서 인간은 기억술이 아닌 내적인 본성으로부터 리듬 안에 살고 싶다는 요구를 갖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들었을 때 리듬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요구를 발달시킨 것입니다. 소가 모우(서양의 경우)하고 울 때 모우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모우모우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더욱 오랜 시대에는 모우모우모우라고 외웠습니다. 즉 지각한 것을 중첩시켜 리듬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현재도 몇 가지 말에는, 예를 들면 가오가오, 쿡쿡쿠(모두 뻐꾸기라는 뜻)와 같이 이러한 표현법 행해지고 있습니다. 또는 아이들 말에는 반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도 리듬화된 기억 시대의 유산입니다. 체험하는 것만으로 기억을 떠올리기 어려울 때 리듬화하여 반복해서 체험하려는 것입니다. 그 경우 이어지는 앞뒤 말 사이에 유사성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만(남자)과 마우스(쥐)라든가, 슈토크(계단)와 슈타인(돌)과 같이 말입니다. 이 체험한 것의 리듬화는 모든 것을 리듬화하려는 강한 동경의 마지막 흔적입니다. 왜냐하면 이 제2기의 인간은 리듬화되지 않은 것을 기억으로 붙들어 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시문(詩文)은 모두 이 리듬화된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기억력은 제3단계가 돼서야 비로소 생겨났습니다. 즉 바깥의 공간 안에서 기억의 근거를 발견하는 것도, 리듬에 의존하는 것도 아닌 시간 속에서 경과한 사건을 나중에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시간적인 기억력’입니다. 참으로 추상적인 우리의 이 기억은 기억의 진화에서 제3단계에 해당합니다.


그럼 인류사에서 리듬화된 기억이 시간적인 기억으로 이행한 것은 언제일까요? 슬퍼해야할 현대인의 추상성을 완전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시간기억’, 기억해야할 것을 이미지로서 떠올리는 기억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언제일까요? 무의식 또는 반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기억해야할 때 리드미컬한 반복을 통해서 불러일으켜야만 했던 리듬화된 기억으로부터 이와 같은 시간적인 기억으로 이행한 시점은 고대 오리엔트인이 그리스에 식민지를 만들었던 시대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해서 식민지를 건설했던 시대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아시아와 이집트로부터 와서 정주한 영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본래 위대한 영웅들이 과거 리듬화된 기억의 땅을 떠나서 그 기억을 시간적인 기억, 시간적인 회상으로 바꾸기 위한 풍토를 찾아 나선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문화가 시작하는 시점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리엔트에 존재하고 있던 그리스문화의 어머니 나라, 본국은 기본적으로 발달한 리듬화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던 거주지였습니다. 그곳에는 리듬이 살아있었습니다. 본래 고대 오리엔트를 리듬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서에서 말하는 낙원은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리듬이 우주를 관통하여 울려 퍼지고, 그것이 인간 안에서 리듬화된 기억을 탄생시키고 있던 아시아라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리듬체험자로서 리듬 생산자인 우주(코스모스)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바가바드기타를 읽으면 그 안에서 과거의 그 장대한 체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다와 서아시아의 많은 시문에서도 이 과거의 체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근대적인 표현을 사용한다면 과거 아시아 전역을 장대한 내용으로 둘러싸고 있던 그 리듬의 여운이 그러한 문헌 안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슴 안에, 인간의 심장 안에 지구 대기권의 비밀을 반영하고 있던 리듬입니다.


그리고 시대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리듬화된 기억이 땅과 결합된 기억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시대의 인간은 아직 리듬화된 기억을 갖지 못했으며, 무엇인가를 체험했을 때 그 장소에 표식을 세우는 일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장소에 없을 때는 기억을 하지 못했지만, 그 장소에 오면 이전의 체험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체험을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표식이, 대지가 체험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지구는 인간의 머리를 자신의 모상으로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대지에 놓인 표식은, ‘땅과 결합된 기억’을 위한 표식은 인간의 머릿속에 이전의 체험을 모상으로서 다시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인간은 땅과 함께 살았고, 기억을 땅과 결합시켰습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가 땅에 무엇인가 기록하고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이 사실을 독자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과 결부된 기억이 리드미컬한 기억으로 이행한 시점은 옛 아틀란티스 몰락 이후 후 아틀란티스 초기 여러 민족이 동방 아시아로 이동했던 시점입니다. 먼저 사람들은 현재 대서양의 해저가 된 옛 아틀란티스대륙에서 아시아로 이동했습니다. 다음에 그 문화가 다시 유럽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림2 참조)


<그림2>


아틀란티스 민족들이 아시아로 이동했을 때 땅과 결부된 기억이 리듬화된 기억으로 이행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리듬화된 기억이 아시아의 정신생활을 완성시켰습니다. 이어서 그리스의 식화를 즈음하여 리듬화된 기억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기억으로 이행이 발생했습니다.


아틀란티스대륙의 파국에서 그리스문명에 이르는 모든 문명은 리듬화된 기억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역사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전승, 신화로서 고대 아시아에서 전해져온 모든 것들은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인류사의 발전은 역사의 바깥측면에 눈을 향하여 현존하는 사료를 조사하는 것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살고 있는 것의 발전을 봄으로써, 그리고 또한 기억력과 같은 능력이 바깥에서 안으로 진화해온 모습을 봄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이 기억능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우리들 누구라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병에 걸려 기억해야할 인생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나의 친구 중 한명은 죽음직전에 무서운 운명이 그를 덮쳤습니다. 그는 어느 날 집을 나와 역에서 표를 사고 어느 지역까지 간 다음, 그리고 열차에서 내려 다시 표를 샀습니다. 그의 기억은 이 표를 산 시점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는 모든 행동을 정확하게 했습니다. 지성은 완전히 건재했습니다. 기억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에게 기억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베를린의 노숙자수용소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때까지 그는 전 유럽의 거의 절반의 지역을 여행하며 돌아다닌 것입니다. 하지만 그 체험은 그때까지의 인생체험과 연결되지 못한 채 지나가버렸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베를린의 그 노숙자 수용소에 수용된 후 겨우 기억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조우하는 수많은 예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근대인의 내면생활은 만약 기억의 끈이 탄생 후 어느 시점부터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지 않으면 건재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토지와 결부된 기억의 소유자에게 이와 같은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기억의 끈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주위 대지에 자신이 체험한 사건을 상기시켜줄 각양각색의 기념물에 둘러싸여 있지 않았다면 우리의 경우 내적인 기억내용이 사라져버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은 불행에 빠졌을 것입니다.


자신이 세운 기념물, 선조, 부모, 형제들이 세운 기념물, 그러한 것들은 서로 유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념비는 친족과 친족을 서로 결합시켰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내적으로 필요한 자아의 조건으로 느끼고 있는 시간화된 기억은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외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인류의 혼의 변천에 눈을 돌릴 때에만 인류사의 진화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찰을 행할 때에만 역사는 올바른 조명을 받게 됩니다. 이번 기회에 나는 우선 특별한 예로서 인류 혼의 역사를 기억능력과 연관 지어 언급했습니다. 인간 혼에 대한 고찰로부터 얻은 빛으로 조명을 비출 때에만 역사상의 여러 사건이 그 진정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을 앞으로 수회에 걸쳐서 고찰할 예정입니다.




제 2 강

 


인류 진화의 역사적 경과과정을 보려면 각각의 시대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혼 상태에 시선을 향해야합니다. 어제 이야기에서도 이것을 이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아시아 ― 영계의 밑바닥

 

어제는 본래의 옛 오리엔트인 아시아계 여러 민족의 진화를 살펴보았습니다. 아틀란티스대륙 몰락 후 이 진화기에 아틀란티스 주민들의 자손이 서에서 동으로 향하는 여정을 거쳐, 서서히 유럽과 아시아에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래 이 민족 집단은 아시아에서 리듬을 기본으로 한 생활태도를 지속했습니다. 처음에는 ‘땅과 연결된 기억’이라는 아틀란티스 시대 기억형태의 분명한 여운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어서 그 여운은 오리엔트 진화 과정에서 ‘리듬화된 기억’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시대가 되자 시간화된 기억으로 옮아갔습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본래의 아시아적인 진화를 짊어지고 있던 것은 후세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체험한 외적인 사건은 후세의 체험보다도 훨씬 인간 심정의 작용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 심정의 작용은 인간존재 전체의 작용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몸으로부터 분리된 혼의 작용, 사고의 작용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머리의 내적인 경과와 관련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혈액순환과 관련성을 갖지 못한 추상적인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고는 내적으로 머리의 경과과정으로서 체험되는 사고였으며, 모든 감정은 호흡리듬 등으로서 체험되는 감정이었습니다. 인간 전체를 나눌 수 없는 통일체로서 체험하고 느끼고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닙니다. 세계와의 관계, 우주와의 관계, 우주의 영적 물질적인 것과의 관계, 그러한 관계도 후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체험했습니다. 현대인은 농촌이나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고, 많든 적든 숲이나 강,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또는 돌로 쌓은 벽으로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대인에게 우주적=초감각적인 것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현대인은 우주적=초감각적인 존재를 어디에서 구하면 좋을까요? 어디에서도 그럴만한 영역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디에도 실마리가 될 만한, 응답받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혼적=영적으로 말입니다.


태고의 동양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서 오늘날 우리가 환경이라고 말하는 것이 통합적으로 파악된 우주환경의 밑바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주위에는 광물계, 식물계, 동물계가, 산과 강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러한 존재에는 영이 침투하고 있고, 말하자면 영의 흐름에 노출되어있어 영에 의해서 짜여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산과 함께 살아있다. 강과 함께 살아있다. 그뿐만 아니라 산과 강의 사대령(四大靈)들과도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광계 안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광물계는 영계의 몸이다. 동시에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영계이다. 말하자면 가장 낮은 차원의 영계이다.” ―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로지 ‘지상계’로만 알고 있는 이 영역은 ‘밑바닥’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 이 그림의 이 부분(hell흰색)이 위쪽으로 사라지면 그곳에 다른 영역(gellrot노랑)이 나타나고 양자는 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위쪽에는 다른 영역(blau파랑)이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역(orange오렌지)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영역을 인지학용어로 말한다면, 최고 영역은 제1하이어라키의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의 영역입니다. 다음은 제2하이어라키의 예지령, 운동령, 형태령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다은은 제3하이어라키의 인격령, 대천사, 천사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제4의 밑바닥 영역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영역입니다. 현재 우리의 과학적 상식에 의하면 자연의 대상과 자연의 경과(經過)만이 존재하는 영역이지만, 과거 사람들에게는 자연의 경과와 자연물과 함께 물과 땅의 사대령들이 활동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영역이 ‘아시아’인 것입니다.


아시아란 인간이 존재하는 영계(靈界), 가장 저차의 영계를 말합니다. 물론 당시 동양에서는 현대인의 의식에 알맞은 사고방식, 느끼는 방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누군가가 영적이지 않은 물질이 존재한다고 말했다면 참으로 난센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산소와 질소 등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사고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산소는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것에 더욱 활력을 부여하고, 생명을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산소와 혼합된 상태로 공기 중에 존재하는 질소도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도처에서 살아있는 유기물에 작용하여, 그 유기물이 혼적인 것을 수용할 수 있도록 작용하는 힘입니다. 당시 사람은 예를 들면 산소와 질소를 그와 같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자연의 과정을 그와 같이 영적인 것과 관련짓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생활방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은 오늘날의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주위의 외적인 대상을 본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러한 시선도 가능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비의입문자들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백주몽(白晝夢)과 아주 비슷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비정상적인 상태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꿈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은 이 꿈에서 주위와 관계하고, 꿈에서 목초지나 나무들, 강, 구름과 관계했습니다. 꿈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현대인은 꿈에서 무엇을 할까요? 어떤 사람이 잠이 들자 갑자기 눈앞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부뚜막이 나타납니다. “불이야!”라고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밖에서는 어딘가로 불을 끄러 소방차가 달려갑니다.


냉랭한 인간 이성의 경험과 화재를 둘러싼 일상의 경험은 이 꿈의 정경과 정말로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고 동양인의 경우 모든 경험이 꿈속으로 흘러들었지만, 바깥의 모든 자연계는 꿈속에서 비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속에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령들을 체험했습니다. 당시 사람에게는 현대인인 우리가 알고 있는 둔감한 잠, 즉 정신도 모르고 잠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잠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누구나가 그러한 잠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수면 중에도 어슴푸레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 수면 중 하이어라키 체험

 

당시 사람은 잠드는 것으로 몸을 쉬는 한편, 마음은 밖으로 나가 활동하면서 제3하이어라키 존재를 지각했습니다. 사람은 통상적인 각성=꿈의식 속에서, 즉 당시의 일상의식 속에서 ‘아시아’를 체험하고 수면 중에는 제3하이어라키를 경험한 것입니다. 때로는 수면 중 더욱 어두운 의식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체험한 것을 자신의 심정에 깊이 각인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동양의 주민들은 모든 것을 비전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일상의식이 존재했습니다. 비전은 더욱 오래된, 예를 들면 아틀란티스기나 레무리아기 또는 월기와 같은 생생함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이 동양 진화 과정에서도 아직 이러한 비전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은 일상에서 비전을 체험했고, 수면 중에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 ‘통상적인 지상생활에서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천사, 대천사, 인격령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들 아래에서 지낸다.’ 당시 사람의 혼은 수면 중 몸에서 자유롭게 해방되어 고차의 하이어라키 존재들 아래에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아’에서는 그놈, 운디네, 지르페, 자라만타라고 하는 지수화풍의 사대령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을 쉬고 있던 수면상태에는 제3하이어라키의 본성들을 체험하고, 동시에 지구기에 속하는 혹성계 안에 살고 있는 존재들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수면상태가 더욱 심화되어 완전히 특별한 상가 발생했습니다. 그 때 사람은 다음과 같이 느꼈습니다. ― ‘전혀 알지 못하는 영역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무엇인가가 나를 붙잡아서 지상 생활로부터 나를 데리고 사라진다.’


제3하이어라키 안에 있을 때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그 이상의 깊은 잠에 빠지면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제3의 수면상태에 대해서는 도저히 분명한 의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2하이어라키의 체험은 인간존재 전체를 깊이 꿰뚫어, 사람들이 그곳에서 깨어났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 ‘혹성존재를 뛰어넘은 고차 존재들의 은총을 받았다. 그것은 지혜령, 운동령, 형태령이라고 하는 제2하이어라키의 영들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태고의 아시아에서는 잠을 자면서 깨어있고, 깨어있으면서 잠을 자는 상태와 제3하이어라키를 만나는 잠, 이 두 가지 의식 상태를 본래부터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보다 깊은 잠을 통해서 제2하이어라키가 인간의식 속에 끼치는 작용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 비의입문자의 각성의식

 

그렇지만 소수의 비의입문자들은 새로운 의식 상태를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놀랄만한 의식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낮 동안 지니고 있는 의식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2, 3세 때 자연스럽게 그러한 의식 상태를 발달시킵니다. 그러나 태고의 동양인은 결코 자연스럽게 그러한 상태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인위적으로 그러한 상태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깨어있는 꿈, 꿈꾸는 깨어남 속에서 그러한 의식 상태를 획득해야만 했습니다. 태고의 동양인은 깨어있는 꿈, 꿈꾸는 깨어남의 상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현재  뚜렷한 윤곽을 갖고 있는 것을 많든 적든 추상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비의입문자들은 사물을 현재 인간이 낮 동안 통상적인 의식으로 보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라면 어느 초등학생이라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같은 내용을 그 의식으로 배웠습니다. 물론 현재 아이들이 학습하는 추상적인 문자는 당시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문자는 세상의 삼라만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 태고시대에 읽고 쓰기가 가능했던 사람은 비의입문자뿐이었습니다. 읽고 쓰기는 현재 인간에게는 당연한 지적인 의식 상태에 들어가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평상시의 의식 상태로 태고의 동양에 가서 그 동양인 앞에 선다면, 여러분을 모두 비의입문자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차이점은 내용상의 차이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비의입문자라고 여기겠지만,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온갖 수단을 이용해서 여러분을 그 지역에서 추방했을 것입니다. 현재는 그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이지만 당시는 비의입문자라고해도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현재 인간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읽고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내면에 들어가서 생각해봅시다. 아주 보편적인 현재의 인간과 같은 유물론적인 비의입문자가 당시의 누군가 앞에 서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 ‘이 인물은 쓸 수가 있다. 어떤 의미를 가진 기호를 종이에 기록한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는 일이 얼마나 악마적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은 우주의 신들의 위탁을 받아서 행해야만 한다. 신이 손과 손가락에 작용하고 혼에 작용하기 때문에 혼이 문자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있을 때에만 어떤 의미 있는 기호를 종이에 쓰는 일이 허용된다. 이것을 모른 채 무엇인가를 쓰다니 대단히 악마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인 것입니다. 태고의 비의입문자는 이점에서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현대의 인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최근에 재판이 나온 《신비적 사실인 그리스도교》의 서두에는 태곳적 비의입문자의 본질이 바로 이점에 있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주 진화에 있어서 나중 시대가 되어 자연스럽게 인간 안에 나타나는 것은 항상 앞선 시대에 비의입문자를 통해서 획득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부터 선사시대 동양 민족의 마음 상태와 이후 문명사회의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아래에 위치한 하늘을 아시아라고 부르고, 그곳에 자신의 나라를 보고, 주위의 자연을 보았던 사람들은 우리들과는 다른 인류였던 것입니다. 하늘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비교해 보십시오. 현대인은 주위의 사물을 하늘의 끝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끝을 하늘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사고방식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 고대 전쟁의 의미

 

그런데 태고에는 영적인 것이 모든 자연에 깊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우리들이, 적어도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이 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현대인이 무엇인가를 쓰는 태도가 대단히 야만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분명 악마가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재 사람들에게는 태고의 아시아에서 아주 당연한 일이 분명히 야만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 민족 집단이 이미 정착하고 있던 다른 민족 집단을 굉장히 잔혹한 방법으로 제압하고, 그 토지를 빼앗고, 노예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시아 전체에서 일어난 동양 역사의 내용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영적은 높은 관점을 갖고 있었지만, 그 한편으로 외적인 역사 과정을 살피면 계속해서 타국을 정복하고, 그 나라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이와 같은 일은 많은 현대인에게 있어서 지극히 야만적인 행위입니다. 지금이라도 어딘가에서 침략행위가 일어났다고 하면 그것을 변호하는 사람들조차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이 침략전쟁에 종사하고 있을 때에는 최고로 양심적이었습니다. 침략을 신의 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대부분의 아시아 땅에서 평화를 향한 갈망이 퍼졌는데 그것은 문명 후기의 산물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문명 초기의 산물은 타국을 향한 끊임없는 침략과 타민족의 노예화였습니다. 선사시대를 아득히 멀리 회고하면 할수록 더욱더 이러한 경향이 뚜렷해집니다. 크세르크세스와 같은 사람들이 행한 것은 그 중의 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정복 원칙의 근저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사람은 앞서 말한 의식 상태로 인해 다른 인간과 세계에 관해서도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지구의 거주지 차이가 원칙적인 의미를 잃어버렸지만,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종종 현실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입각해서 그 차이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그림을 봐주십시오. 이 좌측에 유럽이 있고, 이 우측이 아시아입니다.


정복 민족(적색rot)은 아시아 북쪽에서도 와서 아시아의 특정지역에 정착하여 선주민(gelb노랑)을 노예로 삼습니다.

어째서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정복자로서 나타나는 민족 집단은 항상 젊은 민족, 청춘의 힘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 민족의 늙음과 젊음

 

현 지구진화기의 인간에게 ‘젊음’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현재의 ‘젊음’이란 인생의 어느 순간이라도 혼 안에 죽음의 힘을 짊어지고 있어서 죽음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혼의 힘을 언제라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 안에 싹트고, 꽃피우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력은 우리를 의식적으로 만들지 않고 의식을 무력하게, 무의식적으로 만들고 잇습니다. 우리 내부에서는 죽음의 파괴적인 힘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매일 밤 수면 중에 생명력에 의해서 이 힘을 극복하고 있지만, 이 죽음의 힘은 인생의 끝에 가서 처음으로 단 한 번에 한해서 죽음 속에서 다 타오릅니다. 그러나 (역주-죽음의 힘은)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우리 안에 존재하면서 의식을 고양시키고, 우리를 사려 깊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상은 바로 현재 인간성의 특질입니다.


태고의 젊은 인종, 젊은 민족은 자신의 넘치는 생명력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인간은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 ‘나는 끊임없이 자신의 피를 몸으로 부딪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의 의식은 사려 깊은 상태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젊음으로 인해 자신의 인간성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은 일반적인 인간이 아닌 비의에 입문한 입문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을 한 사람들이 당시 역사의 흐름 전체를 지도했습니다. 그 민족의 구성원은 과도한 젊음과 생명력을 갖고 있었지만 사려는 아주 적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민족은 이동하여, 오래된 민족의 거주지를 정복한 것입니다. 오래된 민족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죽음의 힘을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민족은 늙은 민족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정복자와 노예가 된 사람 사이에 혈연관계가 생겨날 필요는 없었으며, 정복자와 노예가 된 자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펼쳐지는 드라마가 한편에서는 다시 젊어지도록 작용하고, 다른 편에서는 사려 깊게 만들도록 작용했습니다. 궁정을 만들고 노예를 거느린 정복자 필요로 했던 것은 자신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이 노예들에게 주의를 기울인 젊은 혼은 이른바 무기력을 향한 동경 속에서 지나친 생명력을 누그러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인 태도, 사려 깊은 태도가 생겨났습니다.


현재 우리와 같은 개별화된 인간이 달성해야할 내용을 당시는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생활 속에서 달성한 것입니다. 지배민족이 된, 아직 젊고 충분히 사려 깊지 못한 주민들은 자신들보다 죽음의 힘을 더 많이 짊어진 다른 주민들을 가까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배하는 주민들은 다른 주민들을 정복함으로써 인류에게 필요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끔찍할 정도로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태고 동양인들의 전쟁은 단지 인류를 진화시키는 충동을 따른 것뿐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싸움이 없었다면 인류는 진화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끔찍하게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당시의 전쟁이 만약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상에서 진화를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 번개

 

비의입문자는 현재 인간이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단지 그 시각은 현대인에게는 없는 혼의 모습, 느끼는 방식과 연결되어있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뚜렷한 윤곽을 가진 외적인 사물을 감각을 통해서 체험하듯이 그들도 뚜렷한 윤곽을 가진 사물을 체험했지만, 신들에게서 유래하는 사물로서 그러한 것들을 체험했습니다. 당시 비의입문자에게 사물은 대체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그림(그림5)을 봐주십시오. 이것은 번개입니다. 현재 우리는 이런 번개를 볼 수 있습니다.(그림위쪽) 그러나 태고의 사람들은 이것을 우리처럼 보지 않고 그곳에 살고 있던 영적 본성의 작용을 보고 있었습니다. 번개의 뚜렷한 윤곽은 완전히 사라지고 우주공간을 나아가는 신적 존재들의 진군이 보인 것입니다. 번개 그 자체를 본것이 아니라 우주공간을 부유하는 영들의 행진을 본 것입니다.


비의입문자도 당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행진을 보았지만, 시력의 진화와 더불어 행진하는 모습이 점차 옅어지고 사라지면서 현재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번개가 보이게 된 것입니다.


현재 누구라도 보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태고 시대에는 비의에 입문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자연으로부터 무엇을 느꼈을까요? 현재 사람처럼 인식내용, 진리내용을 느낄 때의 무관심함으로 느낀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도덕적인 작용을 느꼈습니다. 비의의 학도들은 후세의 모든 사람들에게ㄴ 아주 당연한 자연관을 엄격한 내적 시련을 거쳐서 익혔습니다. 그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 ‘통상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사대존재들이 공기 중을 진행하는 것을 본다. 이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갖지 않고 신령의 세계에 완전히 귀의하여 그것을 보고 있다.’


실재로 깨어 있는 꿈, 꿈꾸는 깨어남이라는 상태에 있는 사람의 의지는 자유로운 의지가 아닌 사람들 안으로 흘러드는 신의 의지였습니다. 깨어 있는 꿈속의 형상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번개를 본 비의입문자는 ‘신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원했습니다. 신들은 이와 같은 비의입문자를 위해서 우주내용을 바깥 세상에 드러냅니다.


비의입문자는 신들에 의해서 드러난 우주내용을 신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뚜렷한 윤곽을 가진 사물로서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결과 비의입문자는 신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비의입문자가 아무런 보증 없이 신들로부터 독립해버렸다면 견딜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보증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비의입문자는 한편으로는 신령(神靈)에 등을 돌린 채 아시아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편으로는 제2하이어라키에 도달했을 때보다 더욱 깊은 의식 상태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을 잃어버린 세계와 더불어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의 세계를 알게 된 것입니다.


아시아 진화의 거의 중기에 ― 시대구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 비의입문자들은 그 의식 상태에서 지구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 근대인이 획득한 것과 같은 광물, 식물, 동물의 영역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통해서 그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신의 몸속에서 신이 없는 지상의 물질 속에서 신들로부터 해방되어있다고 비의입문자들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들은 이 신이 없는 땅에서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라고 하는 고차의 신들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숲의 모습, 나무들의 모습 그 자체는 녹회색의 영적존재를 나타내고 있지 않았고, 숲은 영적존재가 사라진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에 그 숲에서 제1하이어라키에 속하는 신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 영역의 존재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사회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태고 동양의 역사적인 생성에서 본질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젊은 인류와 늙은 인류 사이를 조정하는 일이 그 후 역사적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 진화 과정에서 젊은 사람들은 오래된 사람들과 접함으로써 성숙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지배적인 사람들의 혼과 만나서 성숙을 이루어나간 것입니다.


우리는 아시아 저편을 향해 멀리 시선을 향하면 향할수록 도처에서 이 진화과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스로 사려 깊게 될 수 없는 젊은 사람들은 정복 과정에서 사려 깊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 고대의 생사관

 

그러나 눈을 아시아에서 그리스로 돌리면 어떤 다른 양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스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대에서도 그리스에는 물론 늙음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늙음이라는 것에 영성을 침투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종종 언급하고 있지만 ‘어둠의 나라에서 왕이 되기보다 현세에서 거지가 되는 편이 낫다.’라고 현명한 그리스인이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인은 외적인 죽음과도, 내적인 죽음과도 마주할 수 없었으며, 죽음을 자신 안에서 찾아냈을 때는 죽음을 자신 안의 사려 깊음을 향한 동경과 연결 짓지 못한 채 오로지 죽음에 대한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젊은 동양의 여러 민족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방법으로 죽음을 체험할 수 없었을 때에는 전쟁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인이 체험한 죽음에 대한 내적갈등은 트로이전쟁으로 그들을 내몰았습니다. 그리스인은 사려(思慮)를 획득하기 위해 타민족 아래에서 죽음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이 내면에서 생명의 왕성함을 느끼게 해준다.’라고 하는 ‘죽음의 비밀’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인과 아시아의 그리스인 선조들 사이의 갈등을 일으킨 것입니다.


트로이전쟁은 불안과 근심의 전쟁이었습니다. 트로이전쟁에서 소아시아 사제문화의 대표와 죽음을 자신 안에서 느끼고 있어도 그것과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의 그리스인이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복에 전념하고 있던 다른 동양 민족들은 죽음을 바래도 죽음이 가깝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인에게 죽음은 가까웠지만 그 죽음과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관계할 수 있도록 동양의 삶의 방식을 필요로 했습니다. 아킬레우스나 아가멤논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 안에 죽음을 품고 있었지만 그 죽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시아로 눈을 돌려 저편 아시아에 반대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장반대의 혼의 모습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리스인은 죽음을 가깝게 느끼고 있었지만 저편 아시아인은 죽음을 생명에 거스르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호메로스는 이것을 훌륭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라는 인물표현을 봐주십시오. 토로이인과 그리스인이 대비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항상 이 대립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립 가운데서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태고시대, 아시아에서는 이른바 죽음에 대한 넘치는 생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향한 동경이 존재했습니다. 그리스 땅 유럽에는 인간 안에 넘치는 죽음이 존재했지만 그 죽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유럽과 아시아는 제2의 관점에서도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즉 한편으로는 리듬에 의한 기억과 시간에 의한 기억의 대립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체의 죽음에 대한 전혀 다른 두 가지 대립하는 체험이 존재했습니다.


내일은 지금 암시한 이 대립을 더욱 자세히 고찰하고 인류 진화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한 이행과정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현재 인류의 진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 제3 후 아틀란티스기의 영과 혼

 

나는 지금으로부터 딱 13년 전 크리스마스와 신년 사이에도 슈투트가르트에서 이번 연속강의와 같은 테마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때와 같은 테마를 다루겠지만 관점을 조금 바꾸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지금까지 2회에 걸친 도입강의에서는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특히 선사시대 이래 인류의 심정, 혹은 혼이 얼마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졌는지 명확히 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명확히 하기 밝히기 위해서 적어도 처음은 역사를 수천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고 있는 대로 영학적으로 고찰할 때 이른바 아틀란티스대륙의 파국 이후 선사시대, 역사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 통상적으로 ‘빙하시대’의 ‘신빙기’라고 부르고 있는데 ― 아틀란티스대륙 몰락의 마지막 장이 내려지고, 이 대륙이 지금의 대서양 해저를 형성하기에 이르게 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아틀란티스 파국의 결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다섯 개의 대문화기가 지나갔습니다.


이들 문화기 중 처음 두 개의 대문화기에 대해서는 역사의 전승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저편 오리엔트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자료는, 훌륭한 베다도, 베단타철학도 나의 《신비학개론》에서도 언급한 본래의 인도기, 본래의 페르시아기의 단순한 잔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 고대 인도기, 고대 페르시아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후 아틀란티스 제3기에 해당하는 칼데아=이집트문화기 시대를 다루어보겠습니다. 그리스=로마기가 그 문화기의 뒤를 잇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대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틀란티스대륙의 붕괴에서 그리스문화기에 이르기는 시대까지 인류의 기억력, 회상능력의 변화를 고찰하고, 그 위에 인간 공동생활의 변화에도 눈을 돌렸습니다. 현재 우리의 기억,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경험을 찾아나서는 기억은 제3 후 아틀란티스기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말한 것과 같이 리듬체험과 결합된 기억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리듬에 의한 기억에 앞서 존재했던 것은 아틀란티스시대에 특히 분명히 나타나는 땅과 결부된 기억이었습니다. 당시 인간은 본래부터 그때그때의 현재의식밖에 갖지 못했으며, 바깥세계에 존재하는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자신의 개인적인 과거뿐만 아니라 인류의 과거와도 관계가 있는 표식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상의 표식만이 표시였던 것은 아니었으며, 천체, 특히 혹성의 상호위치관계도 기억을 위한 표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별의 위치가 이동하는 것이나 되풀이되는 것으로부터 과거의 사건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바깥 땅과 결합된 태고 인류의 기억을 육성하기 위해 하늘과 땅도 서로 함께 일한 것입니다.


아틀란티스기의 인류는 후세, 또는 현재 인류와 신체적으로도 달랐습니다. 현재 인류는 각성시에 자아와 아스트랄체를 당연한 듯이 몸 안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육체와 에테르체가 자신보다 훨씬 중요한 조직인 아스트랄체와 자아를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대개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관계를 알고 있지만, 태고의 인류는 자기 존재의 모습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와 똑같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3 후 아틀란티스기인 이집트=칼데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인간은 각성시에 육체와 에테르체 이외에 자신의 혼과 영을 분명하게 체험했습니다. ― ‘그것은 나의 영이고 혼이다. ― 이 영과 혼을 영학은 자아와 아스트랄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그것은 나의 육체와 에테르체에 결합되어있는 존재이다.’ 당시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은 이중존재로서 이 세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육체와 에테르체를 자아라고 부르지 않고 자신의 영과 혼만을 자아라고 불렀습니다. 영적이면서 아래로 육체, 에테르체와 두드러진 관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자아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은 이 영과 혼, 이 자아와 아스트랄체 안에서 하이어라키의 활동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현재 인간이 자신의 육체 안에서 자연성분의 작용을 느끼고 있듯이 말입니다.


실제로 인간의 육체는 양분과 호흡을 통해서 외적인 자연계의 성분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 성분은 그때까지는 바깥에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 안에 있습니다. 자연계의 성분은 육체 안을 통과하면서 육체의 성분이 됩니다.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육체=에테르체를 나누어서 느끼고 있던 당시 사람은 천사, 대천사로부터 지고한 하이어라키 존재에 이르기까지 영적=본질적인 것이 자신의 영혼을 통해서 자신의 자아와 아스트랄체의 성분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은 인생의 어느 순간이라도 ‘자신 안에는 신들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자아는 육체, 에테르체의 성분에 의해서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은총에 의해서 위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하이어라키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육체, 에테르체를 물질계에서 앞으로 나아기 위한 짐차처럼, 인생을 위한 탈것처럼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알맞은 방법으로 우리의 혼의 눈에 비치지 않는다면 인류사의 경과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길가메시와 엔키두

 

이 인류사의 경과를 다양한 예를 통해서 더듬어나갈 수 있겠지만 오늘은 바로 13년 전에도 언급했던 끈을 다시 다루어보겠습니다. 그 끈이란 길가메시서사시라고 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적이고 전설적인 자료를 말합니다. 길가메시서사시의 일부 전설적인 이야기를 오늘은 영시를 통해서 직접 더듬어나가려고 합니다.


소아시아의 도시 우루크 ― 길가메시서사시는 그렇게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 에 어제 말했던 정복자들 중 한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제 말한 바와 같은 바로 그 혼, 그 사회성으로부터 성장한 인물로, 서사시는 이 인물을 길가메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지금 다루고 있는 제3후 아틀란티스 시대에 살았으며, 또한 그 이전 인간성의 특징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인물 안에서는 신들이 영향을 끼치는 영혼과 지구=우주의 물질적, 에테르적인 성분을 짊어진 육체=에테르체 사이의 이중성이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길가메시서사시의 주인공이 활동하고 있던 시대의, 특히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음 진화기를 향한 이행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행이란 바로 그 전 시대까지는 높은 영계에 존재하고 있던 자아의식이 이른바 육체적=에테르적인 곳까지 가라앉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길가메시는 자신 안에서 신들의 작용을 느낀 영혼에 대해서가 아닌 자신의 지상적=에테르적인 부분에 대해서 ‘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사람들 중 한명이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혼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아는 자기의식적인 자아로서 영적=혼적인 곳에서 육체적=에테르적인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혼의 모습 안에는 옛 습관도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즉, 리듬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만을 기억하는 옛 습관입니다. 그리고 제2강에서 말한 죽음의 힘을 알려고 하는 , 바로 그 내적인 감정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깊이 생각하는 인물이 되려면 죽음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길가메시라고 하는 인물의 혼은 당시 이미 수많은 윤회전생을 거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혼은 지금 제가 말한 새로운 혼의 모습을 갖게 됨으로써 지상에서 어떤 종류의 불확실함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정복자로서의 기억과 리듬화된 기억, 이 두 가지가 지상에서 더 이상 정당하게 통용되지 않게 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길가메시의 체험은 이행기의 혼 체험이었습니다.


이 인물이 예 습관으로부터 도시 우루크를 정복했을 때 이 도시에서 여러 알력이 생겼습니다. 우선 그는 이 도시에서 반기는 인물로 평가받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혼자만으로는 이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났습니다. 이 서사시에서 에아바니(엔키두)라고 부르는 인물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제가 《신비학개론》에서 말한 의미에서 지상의 인류를 일정기간 이끈 혹성으로부터 비교적 늦게 지상에 내려왔습니다. 잘 알고 있듯이 아틀란티스기에 혼들이 점차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떤 혼은 더 빠르게, 어떤 혼은 더 늦게. 이러한 혼들은 지구기의 매우 이른 시기에 지구에서 우주의 여러 혹성으로 떠나가 있던 혼들이었습니다.


길가메시는 비교적 빨리 지구에 돌아온 혼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이미 지상에서 많은 전생을 체험했습니다. 우루크로 옮겨온 다른 한 명의 인물은 비교적 오랜 동안 혹성에 머물다 나중이 돼서 다시 지구로 향한 것입니다. 이것은 13년 전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연속강연에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늙은 혼과 젊은 혼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강한 우정으로 묶여 서로 도와가며 소아시아 우루크라는 도시에 견고한 사회제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제2의 인물 에아바니가 지구바깥 우주에 머무르고 있을 때부터 몸에 지니고 있던 지식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슈투트가르트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인물은 일종의 영시, 영청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 인물의 오랜 정복자의 습관과 리듬화된 기억에 이 인물의 우주지혜가 융합함으로써 이 소아시아의 도시에 훌륭한 사회질서가 세워진 것입니다. 도시에는 평화가 주민들에게는 행복이 지속되었습니다. 만약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아무 일 없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도시의 생활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일종의 비의가, 여신 이슈타르의 비의가 존재했고 대단히 많은 우주의의 비밀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의미로 일종의 종합적인 비의였습니다. 즉 아시아의 다양한 비의가 이 이슈타르 비의 안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시대의 비밀내용을 변화하고 변용된 형태로 이 장소에서 육성하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길가메시는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비의 장소에서 모순된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 도시의 지배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매우 중요한 인물이 비의를 비난함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결국에는 비의의 사제가 이 일로 비의의 신에게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제 고대에서 아시아는 하이어라키의 밑바닥이며, 이 밑바닥에서 사람들은 신령들과 교류하고 있었다고 말했으므로 비의의 사제가 진지하게 고차의 하이어라키 존재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들과의 교류는 특별히 비의의 강소에서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슈타르비의의 사제들은 계시를 얻기 위해 항상 기도를 올리고 있던 영적인 존재들에게 호소했습니다. 그 결과 신들로부터 이 도시에 벌이 내려졌습니다.


고차의 영적인 힘이 우루크에서 동물적인, 요상한 괴물 같은 모습을 띄고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의 몸을 병들게 하고 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길가메시의 한쪽이 되어 활동하고 있던 에아바니는 이 재난 아래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지상에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사후에도 길가메시에게 협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후 길가메시의 인생에서도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이 이어졌고 에아바니는 길가메시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길가메시는 혼자가 되었지만 자기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의지의 결합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의 일은 고대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고대인의 심정은 현대인의 심정과 같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인처럼 자유를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지상에 육화하지 않은 신령존재가 인간의 의지에 영향을 주는 일이 있었고, 길가메시의 경우와 같이 죽은 자가 지상의 인간의 의지를 통해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두 의지의 결합으로부터 길가메시는 자신이 지금 어떤 역사적인 상황과 마주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자아’가 죽을 수밖에 없는 몸(육체와 에테르체) 안까지 내려온 사실을 길가메시는 영감을 부여하는 영적존재의 작용에 의해서 알게 되었고, ‘불사’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사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지상에서 불사의 문제에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비의의 장소였지만, 길가메시는 아직 비의에 입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비의의 전통은 태고 아틀란티스 시대라고 하는 ‘근원의 지혜’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의 ‘살아있는 인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원의 지혜의 전수자는 과거에는 영적본성인 채로 지상을 편력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본성은 아주 오래전에 지구를 떠나 달에 ‘우주거주지’를 세워놓았습니다.


오늘날의 천문학은 ‘달은 응축되고, 차가워진 물체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이해방식만을 고수하는 것은 대단히 유치한 사고방식입니다. 달은 지구 인류의 첫 번째 교사로서 지구의 인류에게 근원적인 지혜를 전해준 영적본성들의 거주인 것입니다. 이 본성들은 물질적인 우주체인 달이 지구로부터 분리되어 태양계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게 되었을 때 곧 이 달에 머물렀습니다. 실제로 달을 영시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도 과거 인류에게 근원의 지혜를 가져다 준 교사들이 이 우주거주지 안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의는 이 가르침의 내용이나, 인류 스스로 이 근원의 지혜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근동(터키에서 이란까지)의 비의와 길가메시는 아직 연결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된 길가메시의 친구로부터 초감각적인 영향을 통해서 혼의 불사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내적인 충동이 길가메시 안에 강하게 생겨났습니다.


중세에는 영계를 알려고 할 때 자신의 내부 깊숙한 곳으로 침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근세에는 그 내적인 과정이 더욱 철저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 있는 시대에서는 지구가 오늘날의 지질학자가 말하는 암석덩어리가 아닌 살아있는 것이며 혼적이고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작은 벌래가 인간에 대해 알려고 피부 위를 기어 돌아다니고, 코와 이마를 통해서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당시 인간은 지상을 편력하고, 여러 토지의 여러 지형을 알고, 그것을 통해서 지구를 영계로서 직관한 것입니다. 피타고라스와 같은 사람들이 영적인 인식을 획득하기 위해 이곳저곳 여행을 계속한 것은 결코 표면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상을 편력하는 것은 각양각색의 지형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영적, 혼적, 몸적인 형상을 통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현대에도 사람들은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지만 인심, 풍속을 접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의 집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지역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본질적인 차이를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은 감수성이 마비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을 편력하는 것으로 불사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충동은 길가메시에게 대단히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 길가메시와 에아바니의 비의입문

 

이렇게 해서 길가메시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여행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성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느 땅에서 오랜 비의와 만난 것입니다. 그 땅은 근대에 들어 많은 화제를 제공해준 지역인데 물론 이 지역의 상회상태는 시대와 함께 본질적으로 변화해나갔습니다. 그곳은 ‘부르겐란트(역주-오스트리아 동쪽 끝, 슬로바키아·헝가리·슬로베니아와 접해 있는 주)’로 알려진 땅입니다. 현재 이 지역은 치스라이타니아(역주-오스트리아·헝가리의 헝가리령이 아닌 부분[오스트리아령 부분]을 흔히 ‘치스레이타니아[라틴어: Cisleithania, 독일어: Cisleithanien 치스라이타니엔<라이타 강 이편’이란 뜻>’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 영토 대부분이 라이타 강[독일어: Leitha, 헝가리어: Lajta 러이터 강]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에 속하는지 헝가리에 속하는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비의의 대사제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시스트로스(우트나피시팀)로 불리고 있습니다. 길가메시는 아틀란티스비의를 올바로 이어받은 비의와 만난 것입니다. 물론 나중 시대의 이미 다른 형식의 비의였습니다.


길가메시의 인식능력은 이 비의의 장소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비의에 입문하는 많은 제자들과 같은 시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일곱 날 일곱 밤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시련이었지만 그는 이 시련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대신 다른 시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를 위해서 조제된 어떤 약을 복용하고 그것을 통해서 특정한 영적 체험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 언제나 그렇듯이 정해진 특정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진정한 체험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길가메시는 이 시련에 합격하여 특정한 영적체험을 갖고 우주의 영적인 구조를 통찰할 수 있게 됩니다. 이 편력을 완수하여 다시 귀국했을 때 길가메시는 실제로 고차의 영적인 통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나우강 남쪽기슭을 거쳐 다시 고향, 제2의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고향땅에 도착하기 전에 첫 번째 유혹에 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방금 말한 것처럼 말하자면 정통하지 않은 방법으로 후 아틀란티스기의 비의에 입문했기 때문에 고향 도시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전해 듣고 격심한 분노의 발작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일어난 거센 분노의 발작은 그가 얻은 깨달음을 완전히 어둡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길가메시의 특징인데 죽은 친구와 함께 영계를 영시하는 능력은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영계에서 보내오는 소식을 받을 수는 있었습니다. 비의에 입문하여 직접 영계를 통찰하는 것과 죽은 자로부터 계시를 받는 것은 다르지만 어쨌든 불사의 본질을 향한 통찰은 완전히 살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사후의 생이 어떻게 경과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사후의 모든 현상은 오늘날도 당시도 다음 지상의 각성의식 가운데서 충분히 강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길가메시와 그의 친구 에아바니, 두 사람은 서로 거의 제3 후 아틀란티스 문화기 중기 인간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의 방식에서 인간이 이중의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길가메시는 자아의식이 육체=에테르체 안에 육화했다는 것을 안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다른 인물은 지상의 인생을 불과 조금밖에 되풀이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적인 인식을 소유한 인물로 물질, 소재는 본래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영적이고 소위 소재는 영적 존재의 다른 존재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인간은 현대인이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생각할 수도,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인간의 사고와 감정은 오늘날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당시 인간이 알 수 있었던 내용은 우리가 초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정신적, 문화적, 문명적인 모든 사항은 비의에서 유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비의의 장소에서 온갖 경로를 통해서 일반대중에게 전해졌습니다. 본래의 지도자는 비의의 사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은 방금 전 말한 혼의 모습으로 인해 그 지역의 비의에는 관여하지 않은 채로 있었습니다. 에아바니는 비의에 사후 세계에 머무름으로써 비의와 관계했습니다. 길가메시는 후 아틀란티스의 비의에 입문했지만 그 결과는 어중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의 작용에 의해서 이 두 인물은 태고 지구기의 모든 사정을 느끼고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존재가 되었는가? 우리가 지구 진화를 어떻게 경험해나갔는가? 지구 진화를 통해서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된 우리가 그 진화 과정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가?’ 이 두 사람은 그와 같이 물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의 혼에게 길가메시가 알려고 했던 불사의 문제는 태고의 지구기 진화에 개한 통찰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당시 ‘혼의 불사’ 그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지구기의 태고 진화단계에서도, 월기, 태양기에도 이미 인간 혼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혼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상의 환경과 자신과의 연관성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지구에 속해있다고 느낀 것입니다.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지구와의 관련을 통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아시아의 비의의 장소에서 지켜지고 육성되고 있던 비밀은 우주적인 비밀이었습니다. 우주와의 관련 아래 지구 진화를 아는 일이 비의의 교의이며 지혜였던 것입니다. 이 비의의 입문자는 대단히 생생하고 이념화된 방식으로 태양기, 월기, 지구기 진화를 통찰하고, 인간이 모든 우주사상과 함께 진화해온 과정을 분명히 바라보았습니다. 



◎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비의

 

이 과정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는 비의 중 하나는 훨씬 나중 시대까지 전해진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비의입니다. 에페소스의 비의의 장소 중심에는 여신 아르테미스 신상이 안치되어있었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상 모작 중 하나를 보면 매우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받습니다. 그것은 여성상(像)으로 수많은 유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상을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대 사람들이 이러한 상을 어떻게 체험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대에는 신상을 어떻게 체험하는지가 문제였습니다. 비의의 제자들은 충분한 준비기간을 보낸 뒤 비의 본래의 중심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 중심은 아르테미스상을 말합니다. 이 중심으로 인도된 제자들은 이 신상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상 앞에 선 사람은 피부에 둘러싸여 존재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이 상이라고 의식하게 됩니다. 자신과 에페소스 여신상과의 일체화 결과 ─더 이상 주위의 돌이나 나무, 강의 흐름이나 구름에 시선을 향하지 않고 오로지 아르테미스상에 심안을 집중한 결과, 에테르계와 자신과의 관련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별들의 세계와 자신이 하나임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피부 안에서 지상의 물질성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주적인 본모습을 느꼈습니다. 즉 자신을 에테르적으로 느낀 것입니다.


자신이 에테르계에 존재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됨으로써 지구기와 지구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과거 상태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지구는 앞서 말했듯이 일종의 암석 덩어리이며, 그 표면의 대부분은 물러 덮여있고, 주위는 산소, 질소 그 밖의 것들을 포함한 대기로 둘러싸여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통상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고찰하고 관찰할 때 그러한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의 지구 상태에 이르기 이전의 태고의 지구 상태는 영시하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에페소스의 제자들은 자신과 신상을 일체화시켰을 때 지구와 인류의 태곳적 상태를 영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지구의 대기가 태고 시대에는 지금과 같지 않고 극도로 정묘한 유동하는 단백질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재 지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성립했을 때에 지구를 둘러싼 끊임없이 유동하는 단백질 성분의 작용을 필요로 했으며, 이 성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백질 성분 안에는 미묘하게 구별되고, 금방이라도 결정화하려는 ‘규산’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그림 가운데 붉은 부분) 그리고 그것이 일종의 지구의 감각기관으로 기능하며 우주로부터 영시내용을 여기저기서 지각하고 있었습니다. 단백질 성분으로 된 지상의 대기에 포함된 규산 속에 현실의 영시내용이 외적으로 바뀌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 영시내용은 거대한 식물상의 유기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나중에 대기성분을 받아들여 식물존재가 처음에는 지구의 주변을 유동하며 나타났습니다. 훨씬 뒤에 그 식물존재는 대지에 가라앉고 현재의 식물이 되었습니다.


이 알부민(수용성단백질) 대기 안에는 규산질 성분 외에 석회질 성분도 미세한 형상으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단백질의 응고작용의 영향 아래 동물이 그 석회질로부터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모든 것들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태고의 인간은 지구전체와 하나였습니다. 당시의 인간은 영시내용을 통해서 식물존재 안에서 살고 있었으며, 지금 말한 지상에 생겨난 동물 안에도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인간이라도 지구 전체로 퍼져 지구와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비적 사실인 그리스도교⟫에서 플라톤의 학설에 대해 인간의 이념능력과 관련해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서로 뒤섞여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슈투트가르트의 연속강연에서도 말씀드린 길가메시와 에아바니, 두 사람은 다시 태어나서 에페소스의 비의입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말한 것을 혼에 깊숙이 새겨 넣었으며, 이를 통해서 두 사람은 내적으로 강해졌습니다. 이전에는 체험으로서, 그것도 무의식적인 체험으로서 가지고 있던 것을 지금은 비의를 통해서 ‘지상의 지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두 번의 환생을 통해서 이 두 사람은 인간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과 영계의 깊은 연관성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두 개의 것이 있을 때 그 두 개가 분명히 분리되지 않고 뒤섞여있으면 양쪽 모두 모호해집니다. 분명히 구별되어있으면 양쪽을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길가메시와 에아바니는 이전의 되풀이해온 지상생활의 여운으로 가지고 있던 영계의 영적내용을 평가할 수 있었던 한편, 여신 아르테미스의 영향아래에 있는 에페소스 비의에 입문한 지금 사물이 지상에서, 인간의 외부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인간 이외의 것이 인체를 포함하고 있는 근원의 성분으로부터 어떻게 서서히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두 사람은 만년의 헤라클레이토스가 살아있던 시대에 에페소스에서 풍성한 내면생활을, 우주의 비밀에 정통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인간 혼의 활동이 수면위로, 지면위로 넓어져 갈 뿐만 아니라 위로도 펴져나가는 것을 분명히 의식했습니다. 이집트=칼데아기에 강력한 우정으로 결합된 이 두 사람의 인격이 이어지는 헤라클레이토스 시대에 만나 함께 지내면서, 함께 에페소스 비의에 입문한 결과 그 다음 인생에서도 두 사람의 혼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두 사람이 죽음의 문을 통과하여 영계로 옮겼다가 다시 지상에서 생을 받았을 때 물론 다른 방식이었지만 전생으로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인류사에 관여해온 방식이 카르마적으로 다음 인생에 영향을 끼쳐 이 두 사람은 인류의 진화를 위해 전혀 다른 인체형식을 두르고 나타났습니다.


내가 이 예를 언급하는 것은 이 두 사람이 인류사의 지극히 중요한 시점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점도 13년 전 슈투트가르트의 연속강의에서 언급했습니다. 그 때 말씀드린 것처럼 이 두 사람은 이집트=칼데아기에 위대한 인생을 거쳐 그 다음 인생에서 그것을 내적으로 심화시키고 혼을 강화시켰으며, 나아가 그 다음 인생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대왕이 되어 지상을 살아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대왕의 이 혼의 심층에 시선을 향할 때 그리스문화 쇠퇴기에, 그리고 로마지배의 시작 시점에서 무엇이 이 두 사람의 혼을 충동하여 움직이게 했는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무엇이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내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휴베르니아 비의

 

어제는 각각의 인물을 예로 들어 세계사가 진화 발전하는 양상을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영학을 심화시켜나가려고 한다면 인간 안에 반영된 역사상의 사건을 보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주위의 세계로부터 분리된 개별적인 존재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우주전체의 한 가지로 느끼고 있었으며, 앞으로 모든 시대의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것입니다. 몇 번씩 말한바와 같이 손가락은 몸으로부터 따로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몸에서 떨어져나가면 더 이상 손가락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패되어 다른 것이 되어버립니다. 손가락은 몸에 붙어있을 때 바로 손가락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지상의 인생에서도, 사후 인생에서도 전우주와 결합되어있을 때 비로소 인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인식은 옛날에도 존재했었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입니다. 단지 현재만이 구름에 가려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를 완전히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투명한 우주의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먼 과거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우주에 함께 속해 있다는 의식을 더욱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길가메시와 에아바니라는 두 사람을 들어, 동일한 두 인물이 칼데아=이집트기에 당시에 알맞은 방식으로 지상에서 생활하였고, 다음에 에페소스 비의에 의해서 삶의 방식을 심화시켰다고 말했습니다. 어제는 나아가서 이 두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으로 환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다시 태어난 시대의 지구는 어떠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을까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이 두 사람의 혼이 세 번에 걸친 지상 생활을 통해서 지구환경으로부터 무엇을 수용했는지 더욱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과 같이 길가메시는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 서쪽의 후 아틀란티스 비의에 입문했습니다. ‘후대의 비의의 형태’를 이해하기 위해 이 시대의 비의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대 아틀란티스 비의의 여운을 오랫동안 이어온 비의를 찾아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비의로서 우선 최근 여기서(도르나흐)말씀드린 휴베르니아 비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앞서 말씀드린 것 중 몇 가지를 여기서 다시 한 번 되풀이하겠습니다.


아일랜드 비의인 휴베르니아 비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존재했으며, 그리스도교 성립 당시에도 아직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아틀란티스 주민의 오랜 지혜의 가르침이 가장 충실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후 아틀란티스기에 아일랜드의 비의에 입문한 사람은 대체 어떤 체험을 가졌을까요? 이 비의를 전수받아야할 사람에게는 엄격한 준비를 요구했습니다. 본래 고대에서 비의에 대한 준비는 대단히 엄격했습니다. 그 기간에 혼의 모습을, 인간으로서의 태도를 내적으로 개조해야만 했습니다. 휴베르니아 비의의 경우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물, 감각세계의 모든 대상이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내적으로 강하게 의식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진리를 탐구할 때의 모든 방해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기본적으로 감각세계의 환경은 모두가 환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각은 환각을 발생시키고 진리는 이 환각의 배후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진실한 존재는 감각적인 지각에 의해서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분명히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의 인지학 연구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그러한 것이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이 이해하고 있는 감각세계의 환각적인 성격은 결코 현대인의 마음을 진동시키기 못합니다. 당시 휴베르니아 비의입문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은 진정으로 마음을 진동시키는 내적인 비극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환영이며, 마야이다 라고 이론화시켜 말할 경우 우리는 매우 안이한 태도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휴베르니아 제자의 준비는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까지 나아갑니다. ─‘환영을 꿰뚫고 진정한 현실존재에 이를 가능성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제자들의 준비는 우선 절망에 빠지고, 혼은 내적으로 환영 속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단계까지 진행합니다. 제자들은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 세상의 환영적인 성격이 대단히 강력하고 압도적이기 때문에 완영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통감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준비기간 동안의 생활 중에서 ‘그러므로 이 환영 속에서 계속 머물러야한다.’라고 하는 마음을 되풀이해서 체험하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확고하게 설 수 있는 지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영위에 굳건히 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고대 비의에서 이루어지는 준비의 엄격함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현대인은 내적인 발전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 앞에서면(내적인 발전을 촉진하는 것 앞에 서면) 그곳에서 뒷걸음질 칩니다.


존재와 그 환영성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진리탐구에 대해서도 사정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어둡고 압도적인 감정이 진리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고 인식의 빛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오류와 허위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때가 옵니다. 그 때 자신의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존재와 진리에 절망하지 않으면 비의입문의 때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궁극의 목표와 정반대를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이 목표를 향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실제로 오류와 환영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면 존재와 진리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모를 것입니다. 휴베르니아의 제자들은 진리와 존재를 정말로 깊이 평가할 수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도달해야할 단계의 정반대를 졸업한 제자는 다음에 성역으로 인도되고 매우 암시적인 인상을 부여하는 두 개의 상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휴베르니아 비의에서 그 때 실제로 일루어진 일을 이미지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 중 하나는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안쪽은 공동(空洞)이었습니다. 이 상은 바깥쪽만 만들어져있었으며 겉면은 탄력이 있어서 어디를 눌러도 움푹 들어가는데 손을 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상 전체는 주로 머리부분이 잘 만들어져 있고 그 앞에 서면 머리에서 작용하는 힘이 다른 거대한 몸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물론 내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눌러봄으로써 내부를 눈치 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눌러 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머리 이외의 부분은 머리의 힘이 미치고 있으며 이 상은 머리가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는 인상이 남습니다.


물론 현대인 중 누군가가 현대의 산문적인 마음으로 이 상 앞에 선다면 단지 그것을 추상적으로만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은 온몸과 마음으로 환영의 힘, 오류의 무서움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이 거대한 상의 암시적인 힘을 체험했기 때문에 전혀 다른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상은 남성상이었습니다. 이것과 나란히 서있는 다른 상은 여성상이었습니다. 이 상의 내부는 공동이 아니었습니다. 소재에 탄력성은 없었지만 가소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 상의 표면을 누르면─또다시 누르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모양이 허물어지고 거기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제자는 한쪽 상은 탄력성으로 인해 모양이 곧 원래대로 돌아오고 다른 한쪽 상은 압력을 가하면 금방 모양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제가 곧 말할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이 방을 떠납니다. 그리고 탄력이 없는 여성상에 가해진 손상을 모두 복구한 다음 다시 이 방으로 인도됩니다. 상에 아무런 상처가 없는 상태가 된 다음 다시 그곳으로 인도된 것입니다. 이 과정을 극히 대략적으로 말씀드리고 있는데 이러한 모든 준비를 통해서 제자는 여성상 앞에서 자신의 모든 영, 혼, 몸으로 혹독한 추위의 땅에 서있는 것 같은, 하나의 내적인 체험을 가졌습니다. 이 내적 체험은 이미 그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바로 지금 상 그 자체의 암시적인 힘에 의해서 완벽하게 체험된 것입니다. 제자는 자신이 내적으로 경직화되고 얼음과 같이 얼어버렸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 결과 혼이 겨울 대지의 이미지로 채워지고 겨울의 본질을 영시하게 됩니다.


남성상 앞에 섰을 때는 이와 같았습니다. 제자는 마치 일생 동안 생명력이 자신의 피 안으로 흘러들어와 그 피가 모든 작용력을 발휘해서 피부를 압박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습니다. 한쪽 상 앞에서는 얼어붙은 해골이 된듯했지만 다른 한쪽 상 앞에서는 자신의 내적인 모든 생명이 뜨거움에 녹아 자신이 팽팽하게 긴장된 피부 안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피부의 표면을 눌렀을 때의 체험은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통찰을 갖게 했습니다. ─‘만약 우주에서 특히 태양만이 너에게 영작용을 끼쳤다면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을 너는 지금 느끼고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주적인 태양의 작용을, 그 각각의 경우를, 그리고 인간과 태양과의 관계를 알게 됩니다. 그 때 태양의 상의 암시적인 작용 아래에만 서있다고 생각했다하더라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다른 방향으로부터 다른 여러 작용이 이 태양의 작용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그와 같이 해서 우주와의 관계를 심화시켜나갑니다. 달의 상의 암시적인 작용을 느꼈을 때에는 내적으로 겨울 풍경 속에서 얼어붙는 듯한 추위를 체험했지만 태양의 상 앞에서는 자연스레 여름 풍경을 체험했습니다. 그 때 사람은 다음과 같은 작용밖에 존재하지 않는 듯이 느꼈습니다.


여러분 현재 우리들은 우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쑥갓 꽃은 노랗고 장미는 빨갛고 하늘은 파랗다고 말하듯이 우주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상은 거의 마음을 흔들지 못합니다. 가장 가까운 생활환경에 대해서만 확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주의 비밀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더욱 집중하는 태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감각기관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태양 상의 암시적인 힘을 통해서 혈액순환 전체에 집중시킵니다. 자신 안의 이 암시적인 작용을 체험함으로써 스스로를 태양존재로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상의 암시적인 힘을 체험함으로써 자신을 달 존재로 이해합니다.


이렇게 해서 태양과 달이 어떻게 인간에게 작용하는가를 자신의 내적체험으로부터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인간이 자신의 눈의 체험에 따라서 붉은 장미가 어떤 작용을 미치는지를 말할 수 있고, 자신의 귀의 체험에 따라서 cis라는 소리가 어떻게 울리는지를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비의의 제자들은 후 아틀란티스 시대에서도 인간이 우주 안에 엮어져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직접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드린 것은 하나의 소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상은 실로 장대한 방식으로 서기 초 수세기까지 휴베르니아 비의의 장소에서 제자들이 경험한 우주체험의 스케치였습니다. 이 우주체험은 사람들을 태양체험, 달체험으로 인도함으로써 가능했습니다.



◎ 에페소스 비의

 

에페소스 비의의 경우 ⟪요한복음서⟫ 서두에서 언급하고 있는 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리고 말씀은 신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말씀은 신이었다.’를 매우 집중적인 방식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체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수행자는 유명한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여신상’ 앞에 서서, 생명으로 가득 넘쳐흐르는 이 조상과 자신을 일체화시킴으로써 우주에테르 안에서 살게 됩니다. 이 내적인 체험과 함께 지상생활을 초월하여 우주에테르에 입문하는 것입니다. 그때 수행자 먼저 배우는 것은 인간의 말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인간의 로고스, 즉 인간의 모상을 앎으로써 우주로고스가 전우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때 수행자는 특히 인간이 말함으로써 날숨에 말을 각인할 때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체험하도록 요구를 받습니다. 말한다고 하는 내적인 행위를 통해서 ‘바람’ 안에서 생명이 활동하는 것을 체험하는데 ‘바람’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은 두 가지 다른 경험을 발생시킵니다.



말을 함으로써 말의 형태가 날숨에 각인됩니다. 날숨이 말의 형태를 띠면서 흉부로부터 밖으로 흘러나갈 때 아래쪽 전신에 흐르는 ‘물’ 원소 안에 율동적인 파도가 밀려옵니다. 사람이 말할 때 후두부의 발성기관 부근에서 바람의 리듬이 생성되는데, 그것과 나란히 말하면서 신체내부에서 체액이 파도를 치며 흐릅니다. 언어기관의 아래쪽에 있는 체액이 발성하는 말과 조응하여 진동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말하는 행위가 항상 감정을 동반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신체의 액체부분이 함께 진동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말이 중립적인 상태에서 밖으로 나온 것뿐이라면 우리는 소리를 낸 말에서 공감, 반감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할 때에는 열 또는 ‘불’(빨강=rot)이 위쪽 머리 부분으로 향합니다. 날숨에 각인된 말이 열의 파도를 동반하여 위쪽으로 흘러 사고내용과 결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말을 내뱉으면 바람이 불, 물(또는 체액)과 결합합니다.


인간의 언어활동에 대한 모든 체험을 나타내고 있는 이 경험이 에페소스 비의입문체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다음 수행자는 인간의 이 언어활동이 다름 아닌 의인화된 우주체험이라는 것을, 과거에는 지구 그 자체가 ‘바람’뿐만 아니라 유동하는 단백질 상태의 ‘물’(파랑=blau) 안에서 언어활동과 같은 파상(波狀)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작은 규모로 인간이 말할 때 ‘바람’이 날숨이 되어 생겨나는 것처럼 과거에는 유동상의 단백질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우 위쪽에서 ‘바람’이 ‘불’로 변하듯이 지구에서는 주위가 일종의 ‘바람이 되고 아래쪽에서 일종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우 인체 안의 ‘물’에 의해서 감정이 생기고 지구에서는 대지의 형성. 대지의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위쪽에서는 ‘바람’ 안에 우주사고의 활동이 일어나 대지에 영향을 끼치고 대지를 형성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언어는 대우주적인 형성력의 소우주적인 여운입니다. 에페소스 비의는 압도적인 방식으로 이것을 수행자에게 체험시켰습니다. 수행자는 음성을 낼 때 우주로고스의 활동을 언어의 체험으로 느꼈습니다. 과거 우주로고스는 유동상의 ‘원소’(물)를 움직여서 위쪽으로는 창조하는 우주 사고에 영향을 끼치고, 아래쪽으로는 생성되고 있는 대지의 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네 안에 인간 로고스가 있다. 그리고 인간 로고스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구기를 살아가는) 네 안으로부터 작용하여 나간다. 그리고 인간인 너는 바로 인간 로고스다.’ ─ 이렇게 말하는 수행자는 우주로고스 안에  살려고 했습니다. 우리 지상의 인간은 로고스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아래로 흐르는 ‘물’에 의해서 인체를 갖고 위쪽으로 흐르는 ‘불’에 의해서 사고내용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네 안의 가장 인간적인 것이 소우주의 로고스이듯이 과거 처음에 로고스가 있었다. 그리고 로고스는 신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로고스는 신이었다.’ ─ 에페소스에서 이러한 사실을 처음으로 근본적으로 받아들였고 이해했습니다.


길가메시라고 하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인물은 비의의 영향권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고대의 모든 문명, 문화는 본래 비의의 현시였습니다. 길가메시는 고향 우루크에 있었을 때 우루크의 비의에 입문하지 않았지만 본질적으로 우주와 연결된 문명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쪽 여행에서는 휴베르니아 비의와 직접 만나지 못하고 직접적인 비의를 체험하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휴베르니아 비의의 땅에서 육성된 문화를 알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현재의 브르겐란트 지방에 이 비의의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 문화가 길가메시의 혼 안에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의 충동이 그의 사후 영계에서 더욱 육성되어 다음 지상생활에 즈음하여 에페소스 비의 안에서 혼을 심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두 인물이 이렇게 해서 혼을 진화시켰을 때 일반적인 문명으로부터 이 두 인물의 혼에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 이래 우주의 미적 표현이 현실의 힘이 되어 밀려왔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도 살아있던 에페소스에서는 과거 인류가 신령과 직접 만났을 때의 현실을 기원전 6세기, 5세기까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시아 또는 천계의 최하층이었던 시대에는 신령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아시아에서는 자연령이나 그 위의 천사, 대천사, 나아가서는 그 위의 형태령과 그 밖의 다른 존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본토에서는 과거 현실이었던 것이 영웅전설이 되어 체험되고 있었고, 또한 근원적인 현실이 아이스큐로스의 비극 중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있었으며, 에페소스에서는 여전히 비의의 심연에 침잠하고 있어서 인간과 신령계의 직접적인 연결에 대한 체험을 아직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문화의 본질은 그리스인이 과거 우주와의 직접적인 연결을 인간에게 친근한 신화 안에, 그리고 미와 예술 안에 침잠시켜 가상으로, 미적인 가상으로 표현한 것에 있습니다.

 

 

◎ 알렉산드로스의 노래

 

여기서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그리스문명이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페르시아전쟁에서 보는 것처럼 옛 아시아로부터 오는 영향을 보기 좋게 물리쳤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그 즈음부터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과거 신령이 지상에 존재했고 인간의 영과 혼과 몸 안에서 활동하고 있던 것을 여운으로 느끼고 있던 사람들은 이 몰락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대왕과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불편한 세계에 살고 있었고 그 세계를 비관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위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계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사모트라케(역주-에게해 북동부에 있는 그리스령 섬) 비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의 혼은 사모트라케 비의의 카베이로스신들(역주-헤파이스토스와 프로테우스의 딸 카비로(카베이로)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제우스와 칼리오페의 자식들이라고도 한다.)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기에 걸쳐 이 두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13, 14세기에 이를 때까지 적어도 아시아지역에서는 온갖 신분의 사람들에게서 명확한 영적인 직관이 아직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중세 그리스도교 사제가 지은 ⟪알렉산드로스의 노래⟫라고 하는 시문은 매우 중요한 중세후기의 문헌입니다. 오늘날 역사서에서는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왜곡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그에 비하면 사제 란플레히트 12세기경에 쓴 ⟪알렉산드로스의 노래⟫는 알렌사드로스대왕에 의해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고대인에 정통한 위대한 견해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음 표현내용을 마음속에 느껴보도록 노력해보십시오. 성직자 란플레히트의 ⟪알렉산드로스의 노래⟫ 안에는 훌륭한 표현이 들어있습니다. ─ 매년 봄이 오면 사람들은 꽃이 핀 숲 근처로 갑니다. 그곳에는 햇빛이 숲의 나무 그늘을 숲 가장자리에 피어있는 풀꽃에 드리워져있습니다. 그러면 숲속의 나무 그림자 가운데 봄의 풀꽃으로부터 꽃의 정령들이 아이들 모습으로 나타나 왈츠를 추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성직자 란플레히트의 이 기술 가운데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아직 가능했던 고대인의 경험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거기에 풀꽃이 있고 그곳에서부터 숲이 되는 등 산문적으로 대화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숲 가까이 다가가면 햇빛이 숲 저편에서 그림자를 던지고, 그 숲의 나무그림자 사이에서 꽃의 정령들의 세계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정령들은 사람들이 숲 속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숲속에서는 다른 사대령들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성직자 란플레히트가 특히 정성들여 그리고자 했던 것은 들꽃의 정령들이 추는 원무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을 쓰려고 했을 때 사대령이 활동하는 원소계와 결합한 대자연에 대한 묘사를 거기에 덧붙였습니다. 왜냐하면 란플레히트의 생각으로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원정이나 대왕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말하려면 지상세계를 산문적으로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사대령의 영역도 언급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역사서는─물론 이것은 당연한 것이지만─다음과 같은 기술밖에 하지 못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야만인을 문명인과 하나로 결합하여, 문명화된 그리스인인 헬라스인, 마케도인아니과 야만인으로 구성된 하나의 평균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와 같은 관점은 현대인에게는 올바르지만 진정한 현실에게 있어서는 어린애 속임수입니다. 중세의 성직자 란플레히트는 이 아시아 원정에서 전혀 다른 목적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압도적인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자연의 물질영역 안에서 자연의 영적인 작용이 나타나 있다는 것, 란플레히트는 이점을 역사기술의 도입부처럼 그리고 잇습니다. 그러면 성직자 란플레히트의 ⟪알렉산드로스의 노래⟫가 말하는 아시아원정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알렉산드로스는 낙원의 문 앞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 그리스도교적인 표현으로 치환되어있지만 지금부터 말씀드릴 것과 같이 그것은 진실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사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은 정복만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충고를 무시하고 야만인과 그리스인의 혼합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진실로 고차적인 목표를 향하고 있으며 영적인 사명을 따른 행위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시대로부터 15세기가 경과한 시대에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을 심오한 귀의의 마음으로 그린 성직자 란플레히트에 의하면 알렉산드로스는 낙원의 문 앞까지 왔지만 낙원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직자 란플레히트가 말하기를 정말로 겸허한 자만이 낙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아직 진정한 겸허함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겸허함은 그리스도교에 의해 처음으로 인류에게 전해졌습니다. 어찌됐든 좁은 마음이 아닌 넓은 마음으로 이러한 기술을 읽으면 그리스도교의 성직자인 란플레히트가 알렉산드로스 원정의 비극적인 측면을 어떻게 느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노래⟫의 이 기술을 소개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싶었던 것은 인류역사상 서양이 동양과 결합했던 때의 전후관계를 말하기 위해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을 이 전원시풍의 시문으로 시작하더라도 그것이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문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감정은 중세의 비교적 후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감정으로 존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알렉산드로스의 노래⟫가 써질 정도로 구체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정말로 위대하고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저 두 혼의 활동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 세계사적인 비극

 

마케도니아 역사에서 이 시점은 한편으로는 아득히 먼 과거로 통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로 통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우리가 의식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에게서 일어난 모든 일 위에 세계사적인 비극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사적인 비극은 외적인 측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은 특별한 세계사의 운명에 의해 극히 적은 부분만 유럽으로 전해졌고, 극히 적은 부분만 교회에 의해서 육성되어 왔습니다. 본질적으로 단지 논리학적인 저술이나 논리학의 옷을 걸친 저술만 전해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논문으로서 남겨진 일부 저술에 침잠하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우주와 인간의 관련성을 향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이 얼마나 압도적인 것을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예 하나만을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우리는 땅, 물, 불, 바람의 원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한 에테르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땠을까요? 그는 지구에 대해서 말할 때 땅과 물, 바람을 포함한 전체에 불이 관통하고, 불로 덮여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와 같은 지구가 달까지 이르고 있으며, 한편으로 우주로부터는 별에서 달에 이르기까지, 즉 더 이상 지구의 영역이 아닌 아득한 우주저편에서 달에 이르기까지, 황도12궁으로부터, 별들로부터 공간적=우주적으로 제5원소인 에테르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에테르는 아득한 저편에서 달까지 이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번역]

우리는 오늘날 흙상태의 엘리멘트(원소), 물상태의 엘리멘트, 공기상의 엘리멘트, 불상태, 혹은 열엘리멘트에 대해,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것, 에테르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아리스토테레스는 어떻게 기술했을까요? 그는 지구를 기술합니다. “고체상 지구(그림참조, 밝은 색의 핵), 액체상 지구, 물(밝은 빨강), 공기(파랑), 전체는 불이 관통하고 불이 둘러싸고 있다.(짙은 빨강)”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지구는 달까지 닿아있습니다. 그리고 우주로부터, 별에서부터 달까지 ─ 즉 더 이상 지상영역 안이 아닌 달까지, 여기까지인데 ─ 황도대에서, 별들에서 공간적=시간적 에테르(바깥쪽 밝은색)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에테르는 달까지 하강합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논한 학자들이 쓴 문헌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제자인 알렉산드로스에게 뒤풀이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의 열 작용권에서 작용하는 에테르, 즉 빛에테르, 화학에테르, 생명에테르는 과거 지구와 결합되어있었다. 모든 에테르가 지구까지 닿아있었다. 하지만 태고시대에 달이 뒤로 물러섰을 때 에테르가 지구로부터 떠났다. 그리고 외적인 공간이라고 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속하는 지상은 에테르가 관통하고 있지 않다. 단지 봄이 되면 달의 사대령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식물, 동물, 인간들을 위해서 에테르를 달의 영역에서 이 존재들 속으로 가져다 넣는다. 그때의 달은 형성자로서 작용하고 있다.”


지난번 말한 것과 같이 휴베르니아 성역에서 여성상과 대면한 사람은 에테르가 본래 지구에 속해있지 않고 매년 사대령들이 생명활동에 필요한 만큼의 에테르를 지상에 보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인간과 우주 사이의 깊은 관련성을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 테오프라스토스(역주-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배웠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설한 리케이온학원의 후계자가 되었다. 식물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는 이것을 논한 그의 저작들을 서방으로 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저작들 중 몇 개는 동방으로만 전해졌고 동방의 우주관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이 저작들은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의 유대인, 아랍인의 손으로 서유럽으로 전해졌고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휴베르니아 비의에서 출발하는 사상들과 만나게 됩니다.



◎ 방위와 에테르의 작용

 

하지만 지금 말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준 가르침의 출발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은 전적으로 내적인 체험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여기에 기록한 것처럼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외적인 세계에는 땅과 물과 바람(공기)과 불의 원소가 살아 활동하고 있고 인간 안에도 그것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점에서 하나의 진정한 소우주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우고 내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인간의 뼈에는 땅의 요소가 살아있었고, 피와 그 밖의 체액에는 생명의 물이 있었으며, 호흡과 말 안에 바람의 원소가 활동하고 있었고, 사고 속에 불의 원소가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대원소를 자신 안에서 생생하게 느꼈을 때─알렉산드로스도 그것을 깊이 체득했는데─ 사람은 자신과 지구 사이의 깊은 친화성을 느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여행을 떠나도 자신을 향해 영향을 끼치는 에테르의 힘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적인 감각이 지각하는 것만을 주위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대원소가 자신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지 않고 자기 안에서 작용하는 지상의 성분만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 동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너는 더욱더 건조하게 만드는 원소 속으로, 건조한 토지를 향해 들어갈 것이라고.

아시아를 향해 가면 정말로 말라버린다고 말이 아닙니다. 당연히 더욱 섬세한 작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와 같은 섬세한 작용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따라서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에 있었을 때 그는 자신 안에 어느 정도의 습기가 살아 있지만 동방을 향해 가면 이 습기가 감소할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정 도중에 이와 같은 식으로 지상의 에테르적인 상황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몸을 손으로 어루만져보면 코와 눈과 입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로 건조한 지방으로 갈 때의 체험과 반대로 서쪽의 습한 지방으로 갈 때의 체험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우리는 둔감해져버렸지만 그럼에도 지금도 북으로 향하면 냉기을 남으로 향하면 온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서로 향할 때 냉기와 습기의 결합을 느끼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길가메시가 서쪽을 여행했을 때 무엇을 체험했는지 알렉산드로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제자는 북서의 습기와 냉기의 중간지대에서 물을 체험한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인물이 북서를 향해서 진군한다고 말하지 않고 물의 원소가 지배하는 곳으로 향해 진군한다고 말한 것은 착상이 아니라 진실한 체험에 뿌리를 둔 말입니다.



습기와 온기의 중간지대에는 바람의 원소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대지의 비의’에서는 그와 같이 가르쳤습니다.  고대 사모트라케 비의에서도 똑같이 가르치고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도 직접 제자에게 그와 같이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냉기와 건조한 기운의 중간지대에는, 즉 마케도니아에서 볼 때 시베리아 방향에서는 땅 그 자체, 지상적인 것, 고체요소가 지배하는 영역을 체험했습니다. 온기와 건조한 기운의 중간지대, 즉 인도 방향에서는 불의 원소가 지배하는 영역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는 북서를 가리키고 이 방향에는 물의 영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고, 남서를 가리키고 여기서부터 바람의 영들을 느낀다고 말하고, 또한 북동을 가리키고 땅의 영들이 떠다니는 것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냉기와 습기의 원소에서 불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한다, 인도로 진군해야만 한다.”라고 말렉산드로스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분명 이 말투 속에서 자연과 도덕의 깊은 연관성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과도, 도덕과도 연결된 이 말투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세계사 진화에 있어서 일대 전환점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 사이에서 함께 이야기된 내용 중에 투영되고 있습니다. 당시는 아직 내밀한 (수업)시간에 과거 시대의 위대한 비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인류는 논리적, 추상적인 내용, 범주론 등을 배우려고 다른 것들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로인해 여기서 인류의 세계사적인 진화에서 거대한 전환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리엔트와의 관련에 있어서 유럽문명의 행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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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들어서서 IQ, EQ(감성지능) 이후에 영성지능(SQ)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영성이라는 말이 잘 안 와 닿는데요. 이 부분에 대하여 윤홍식 대표가 쉽게 설명해 줍니다. 양심의 계발 정도를 영성지능이라고 하는군요.

 

 

- 질문자 : 요즘 신문기사 들을 보면 자주 영성지능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IQ, EQ(감성지능)은 대략 알고 있는데, 영성지능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성지능이 뭔가요? 그리고 그 영성지능이 왜 중요한가요?

 

- 윤홍식 대표 답변 : 양심의 계발 정도를 헤아리는 지수를 ‘영성지능’(spiritual intelligence)이라고 합니다. 영성지능이란 한 마디로 ‘인간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능’입니다.

 

우리의 순수한 마음인 양심에는 ‘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이기적 에고의 작용이 없기에,

 

1.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으며 (인仁)

2. 정의롭지 못한 어떠한 난동도 없고 (의義)

3. 어떠한 부조화나 무질서도 없으며 (예禮)

4. 어떠한 의심이나 자명하지 않음도 없고 (지智)

5. 어떠한 불성실이나 나태함도 없습니다. (신信)

 


이러한 ‘인류의 본질’을 얼마나 실감 나게 꿰뚫어 보고 이해하느냐를 재는 지수가 바로 ‘영성지능’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인간의 자격’을 갖추는 데 있어서 이 ‘영성지능의 계발’보다 먼저 할 것은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에 결여된 바도 여기에 있고, 지향해야 할 바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성현’도 별다른 존재가 아니라, ‘양심’이 탁월하게 계발되어 ‘영성지능’이 높은 존재일 뿐입니다.

 

영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양심’을 그대로 구현하고 실현하기에,

 

1. 남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잘 헤아리며(사랑, 인仁)

2. 양심상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을 꺼려하고(정의, 의義)

3. 언행에서 겸손하여 남과 조화를 이루며(예절, 예禮)

4. 앎에 있어서 언제나 자명하고 명확한 진실만을 추구하고(지혜, 지智)

5. 이러한 4가지 모습을 성실하게 실천합니다.(성실, 신信)

 


이러한 영성지능이 높은 사람을 우리 사회는 시급히 길러 내야 합니다. 영성지능이 높은 이야 말로 진정한 ‘영재’이고 ‘천재’이며, 이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진정한 ‘리더’입니다. 모든 성현과 군자와 부처와 보살도 모두 ‘영성지능’이 높은 분들일 뿐입니다. 영성지능이 높지 않고서는 재주가 좋을수록 더욱 큰 악당이나 사기꾼이 되고 마는 법입니다. 


그러니 마음자리를 청정하게 한 뒤에 책을 보고 학문을 익히라는 것은, 먼저 ‘영성지능’을 높인 뒤에 다른 학문도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제시한 ‘다중지능 이론’에서 제시한 8가지 다양한 지능들도 모두 이 ‘영성지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인간이 지닌 어떠한 재능도 ‘인간의 길’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때만 즉 널리 인간에게 도움이 될 때만 의미가 있게 되니까요.

 

『채근담』에서 “덕은 재주의 주인이고. 재주는 덕의 종이다!“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성지능’이 계발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남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언제나 자명한 진실만을 주장하기 때문에, 나와 남에게 두루 도움이 되는 ‘선행’만을 추구하고 실천합니다. 세종대왕께서는 이 영성지능으로 백성을 사랑하여 ‘한글’을 만드셨으며, 이순신 장군은 이 영성지능으로 거북선을 개발하여 나라를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영성지능’을 계발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에고의 욕망’을 바탕으로 지식과 재주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의 선한 행실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남기려 합니다. 남의 선한 말을 활용하여 자신의 추악함을 감춥니다. 군자의 양심적 말과 행사를 보고 들으면 본능적으로 이기적 에고의 마음을 일으켜, 그것을 활용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남길 것만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양심적인 ‘영성지능’을 계발하지 않고, ‘에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소인배(소시오패스)’들에게 ‘선한 행실’을 보여주고, ‘선한 말’을 들려주는 것은,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식량을 꾸어주는 격이 되고 맙니다.

 

선한 행실도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아니라, 영성지능에 바탕을 두고, 선한 양심에서 나오는 행실일 때만 ‘진정한 선’이 됩니다.  

선한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소인배가 속마음을 감추고 활용하는 선한 행실과 말은 타인에게 고통을 줄 뿐입니다. 그러니 지식과 재주의 계발에 앞서 반드시 이 ‘영성지능’을 계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류에 도움이 되는 학문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 출처: http://v.daum.net/link/5228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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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윌버 Ken Wilber의 이 책은 암투병의 아내와 함께 했던 헌신적인 노력의 과정과 감동적인 사랑에 대한 글이자 심리치료 및 영성치유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Grace and Grit                    

발표자: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조옥경 교수

 

• 켄윌버에 대한 간단한 소개

자연과학을 전공하던 윌버는 어느 날 우연히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큰 충격을 받으면서 동양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동서양의 정신문화에 대한 수많은 서적을 섭렵하면서 이들을 통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운데 개인적인 수행을 꾸준히 지어나갔다. 그는 동서양의 심리학을 통합한 사람으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으며, 현재 가장 널리 읽히고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또 그는 진정한 세계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윌버는 자신은 판디트(학자)이지 구루(깨달은 영적인 스승)는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구루로 오인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으며 은둔지에서 명상과 독서, 저술에 집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 독일의 한 편집자가 왜 인터뷰에 응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인터뷰를 하면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집필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있다. 


이 책은 윌버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트레야와 보낸 암과의 눈물겨운 투병과정을 그리고 있다. 윌버는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5년 동안 극진히 보살폈는데 그 과정에서 윌버가 보인 환자를 돌보는 성실한 노력, 아내를 향한 식지 않는 사랑, 인간적인 따뜻함과 섬세함이 이 책에 감동적이고도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또 트레야의 죽음을 통해 우아함과 용기, 존재와 행동, 열정과 평정심이라는 존재의 양극성이 어떻게 두 부부의 삶 속에서 조화롭게 통합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트레야는 윌버의 영적 성장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식의 발달과정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는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트레야와의 만남,  트레야의 투병과정, 트레야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시련은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기회를 마련하였고 이를 통해 윌버의 경험과 사고의 지평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암을 치료하려고 두 부부가 성실하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과정은 어떻게 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병을 다루는지, 어떻게 우아함을 유지한 채 용기를 잃지 않고 병마와 싸우는지, 어떻게 병을 미워하지 않고 삶의 한 모습으로 감싸 안는지, 어떻게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으로 인도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윌버는 아내의 죽음을 통해 육체적 죽음은 에고의 마지막 소멸이며 영혼을 영원히 해방시키는 관문임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 또 아내를 전심으로 간호하면서 진정한 수행은 자신을 없애고 타인에게 오롯이 헌신하는 가운데 완성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다.



1. 잠시의 포옹, 잠시의 꿈  

윌버와 트레야는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로저 월쉬와 프란시스 본의 집에서 1983년 여름에 만났다. 트레야가 윌버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살아있는 윌버의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1m 93cm의 키에 머나 먼 혹성에서 온 것 같은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초월론자와 결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는 아주 특이한 겉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매우 남다른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마음은 또 어찌나 따사로운지! 게다가 빛나는 재능도 갖추고 있었다. 과거에 내가 사귀었던 다른 남자들의 경우,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는 재능이 없었고 재능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남자를 찾았다. (pp. 23) 


첫 만남에서 서로가 가볍게 포옹을 했을 때 두 사람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녀를 감싸 안았을 때, 나는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분리감이나 거리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우유와 물이 섞여 혼연일체가 되는 듯 말이다. 과거 여러 생 동안 테리와 함께 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pp. 29) 


그 날 밤 두 사람은 거의 똑같은 시간에 쿤달리니 Kundalini라고 불리는 영적인 에너지가 깨어나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런 경험은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나 만남이 있을 때 흔히 일어난다. 보통 사람은 잘 경험하지 못하지만 영혼이 순수하거나 이미 오랫동안 영적인 수행을 해 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현상이다. 그 때 트레야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수행을 하고 있었고 윌버는 15년 동안 명상을 해오고 있었다. 그 날 이후 그들은 거의 서로 떨어지지 않고 같이 지내게 된다. 


“그 날 후로 우리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거의 함께 있었다. 잠시라도 헤어져 있는 것을 못 견뎌했다.”(pp. 33) 

처음 만난 지 열흘이 지난 후에 윌버는 테리에게 청혼을 했고 테리는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테리는 “만약 당신이 청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에게 했을 거예요.”(pp. 40)라고 윌버에게 말한다 

     


2. 고통을 안고 찾아든 행복

그 후 넉 달이 지나 그들은 결혼식을 올린다. 이 때 윌버는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현대물리학의 위대한 선구자들에 관한 책 “양자적 물음 Quantum Question"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는 현대물리학의 성과와 신비주의를 비교하면서 왜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신비주의자인지를 탐구하면서 그들은 물리학을 넘어선 메타물리학으로서의 신비주의를 원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를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이 둘은 존재의 다른 수준을 다루고 있을 뿐 신비주의를 물리학으로 환원시켜도 안 되며, 물리학을 신비주의로 격상시켜서도 안 된다는 점을 경고하였다. 윌버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리학으로 신비주의를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개의 꼬리로 개를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pp. 49) 


결혼식전 건강진단을 받기위해 병원에 간 트레야는 가슴에 응어리를 발견하였고, 안심시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10일 후에 그 응어리가 암으로 판명되어 두 사람은 행복의 절정에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암 진단을 받은 날 트레야는 다음과 같이 일기에 쓰고 있다. 

“밤이 깊었다. 켄이 차를 만들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세상은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었다. 이것은 현실이고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켄이 부엌에서 돌아와 나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옆에 앉더니 두 팔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둠을 응시했다.” (pp. 71) 

 


3장. 의미에 속박되어 

아내의 암에 직면한 윌버는 병의 의미에 대해 사색한다. 그는 질환(illness)과 병(sickness)를 구분하여 질환은 가치중립적인 것으로써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질환이 병으로 되면 사회적인 가치가 부과되어 두려움, 희망, 신화, 이야기, 가치, 그리고 특정 사회가 질환에 부여하는 의미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 환자는 의학적 질환 뿐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의미가 부여된 병을 다루어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왜 질병에 걸렸는가, 하필 왜 나인가? 이 일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어떻게 이것이 생겼는가? 등등 자신의 질환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 환자는 사회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질병에 걸릴 때 마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의미와 판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병을 이해하게 되는데 사회적 의미를 지닌 병은 지나치게 자기 완성적이며 독선적인 모습을 띤다. “왜 하필 나인가? 왜 나는 병에 걸렸나?” “당신이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야.” “당신은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지?” “당신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지.”라는 식이다. 


이렇게 질환과 병으로 구분한 윌버는 다문화적 시각을 갖고 각종 문화나 사회가 질병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탐색하였다. 

1) 기독교 원리주의자, 2) 뉴에이지 3) 서양의학 4) 업(까르마) 5) 심리학 6) 그노시스파 7) 실존주의 8) 전체론적 의학 9) 마술 10) 불교 11) 과학 (p 83-85) 


윌버는 인간에게는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실존적, 영적 차원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할 때 이들 각 차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암을 예로 들면 

1) 육체적 차원 : 식사, 환경유해물질, 방사능, 흡연, 유전적 요인 

2) 감정적 용인 : 우울증, 엄격한 자기억제, 극도의 독립심 

3) 정신적 원인 : 자기비판, 비관적 세계관, 우울증 

4) 실존적 원인 : 죽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5) 영적인 원인 :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윌버부부는 암의 의미를 다루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느끼면서 “암과 즐겁게 지내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4장. 균형의 문제 

윌버와 트레야는 정통의학과 대체의학(p82)에 관한 정보와 서적들을 모두 섭렵해서 의지할 수 있는 유용한 사실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대체의학과 전체론적 의학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두 사람은 먼저 정통적인 서양의학을 치료를 받은 후에 전체론적 치료를 보조방법으로 이용하면서 두 치료법을 적절하게 조화시켜나갈 결심을 한다. 


질병의 심리적 요인을 다루어 가던 두 사람은 ‘존재(Being)'와 ’행동(Doing)"의 대립이라는 고전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 존재(여성성) : 현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람을 능력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기, 관계성, 포괄성, 포용성, 공감, 배려의 가치 

• 행동(남성성) : 생산하고, 만들고, 성취하는 것, 공격적, 경쟁적, 계층적. 미래지향적, 규칙과 판단에 의존. 현 상태에 변화를 주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이라는 이슈에 직면한 트레야는 자신이 행동/남성성을 과대평가해온 나머지 자신의 여성적인 존재의 부분을 소홀히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원래 이름인 테리가 남성적인 인상을 주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 자신의 여성성을 오롯이 수용하면서 트레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


 • 디먼(daemon)과 데몬(demon)의 문제 

1) 디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내적인 신을 말하며 한 개인이 그를 잘 따라서 행동하면 그 사람의 수호령이 되어, 그가 하고 있는 일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지만,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데몬이 되어버려, 성스러운 에너지와 재능이 자기 파괴적인 모습으로 변화한다. 지옥의 불꽃은 거부된 신의 사랑이며, 악마는 천사가 타락한 모습이다. 윌버는 자신의 디먼을 이미 찾았음을 트레야에게 고백한다. 

“내 나이 23살, 내 집을 찾아와 나 자신을 발견했고, 내 목적을 찾았으며, 나의 신을 찾았다. 그 후 나는 이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pp. 100) 


트레야는 자신의 디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고통을 받았으며 암 선고를 받은 후 줄곧 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간다. 그녀는 “기적수업”에서 강조하는 ‘신이란 내 용서 안에 있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용서와 사랑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기른다. 이런 트레야의 태도를 윌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행동과 존재, 저항하는 것과 열어놓은 것, 싸우는 것과 항복하는 것, 원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그들 간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은 암에 직면한 테리의 중심과제가 되었다.”(pp. 105) 


이런 문제는 다음의 기도문(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의 기도문?)에서 잘 드러나 있다 

신이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온과 바꿔야 할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 당시 윌버는 “의식의 변용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를 집필했고 뉴욕타임즈는 ‘마침내 가장 중요하고 학술적인 동서양 심리학의 통합적 결정판이 나왔다”며 호평을 하였다.    

 


5. 내적인 우주 

•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은 긴장을 풀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또 깨어있음(awareness)을 훈련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방법, 자신에게 의식을 집중해 초점을 맞추는 방법, 언어적 사유를 멈추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 중추신경을 가라앉히는 방법, 스트레스를 없애고 자부심을 기르며 불안감을 줄이고 우울함을 완화하는 방법이라도 한다. 

이 모든 말이 사실이다. ...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명상자체는 영적인 훈련이라는 점이다....  영혼의 내면을 향해,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신성과 합일되는 길을 찾는 방법이다... 명상은 영적인 것이지 종교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 명상은 영적이고, 기도는 종교적이다.” (pp. 122-123)


• 영원의 철학에 대한 트레야와 윌버의 대화 

영원의 철학 : 세계의 위대한 영적 스승, 철학자, 사색가, 과학자들이 채택한 세계관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문화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1) 영적인 것은 존재한다 (2) 영적인 존재는 내면에서 발견된다 (3)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내면에 있는 영적인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와 분리와 이원론의 세계, 즉 타락과 무지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4) 죄와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 해탈의 길이 존재한다. (5) 그 길을 끝까지 간다면 윤회, 혹은 깨달음, 내면의 영적 존재를 체험할 수 있고 종국엔 최상의 자유를 성취하게 된다. (6) 그것은 괴로움과 죄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7) 따라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자비심을 가지고 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pp. 127) 


윌버는 영원의 철학의 핵심은 “작은 자아”를 넘어서 “큰 자아”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나아가는 방법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1. 자아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방법 --. 지식(지혜)의 길, 자력의 길 

오로지 자신의 알아차림이나 집중력에 의지해서 자아를 투과한 보다 광대한 본성에 이르는 길 : 방법 - 위빠사나, 즈나나 요가 

‘나는 신이고, 보편적인 진리다’ 

2. 자아를 무로 축소해나가는 방법 -- 헌신(신앙)의 길, 타력의 길 

스승의 힘이나 신을 의지해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길 : 예 :기독교, 박티요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이여, 당신이 전부입니다’ 

(참고 : 트레야의 어린 시절의 경험. 이것은 트레야의 영적인 수준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pp. 141-142) 

 


6장. 심신탈락 

트레야는 10일 동안의 고엔카 위빠사나 수련을 다녀와서 알아차림의 의미를 깊이 체험한다. 

“고엔카는 말한다. 당신은 감각을 발명할 수 없다. 감각을 선택할 수 없다. 감각을 창조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지켜본다. 무상의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붙들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pp. 150) 


이 수련을 하면서 트레야는 생각이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마음과 몸이 사라지는 체험을 한다. 윌버도 유사한 체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도겐선사는 스승이 귓전에 ”심신탈락!“이라고 속삭였을 때 깨달았지. 당신이 말한 것처럼 분리된 심신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생각이 떨어져나간 거요. 그것과 아주 비슷해요. 나도 그런 체험을 몇 번 했었고, 그 체험들은 아주 현실적이었소. 거기에 비하면 자아는 정말 실제적이지 않지.” (pp. 151쪽) 


심신탈락의 경험을 통해 진아 혹은 지켜보는 자를 일별할 수 있는데, 생각이나 이미지는 볼 수 있어도 이것들이 궁극적인 지켜보는 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과 경험을 통해 자아는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이로써 개인적 자아에서 진정한 주체로, 진정한 자아, 진아인 비개인적인 지켜보는 자로 바뀌기 시작한다. 

“육체는 물질을 알아차리고, 마음은 육체를 알아차리지요. 영혼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영성은 영혼을 알아차린다오. 보다 높은 단계에 오를수록 알아차림은 더 많아질 수 밖에. 즉 보다 크고 넓은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가장 높은 정체성과 보편적 알아차림, 이른바 ‘우주의식’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오.”(pp. 158) 

 


7장. 갑자기 뒤틀린 내 인생 

트레야와 윌버의 성실하고 다방면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이 재발되고 4기의 악성 암세포임이 밝혀진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암환자였던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암이 재발한 사람이 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켄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집단, 다른 동료, 다른 통계, 다른 미래에 놓이게 되었다. 내 인생은 갑자기 뒤틀려버렸다.” (pp. 162) 


재발로 인한 유방절제 수술 후에 윌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왠지 모르지만, 테리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는 것이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만은 그 누구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 어느 때 보다 힘이 필요한 이 때,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빈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울었다... 테리가 불쌍하기 때문에, 안됐다는 생각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용기가 그만큼 자랑스럽기 때문에 나오는 눈물이었다. 그녀는 낙담하지 않고, 다만 당당하게 전진해 나갈 뿐이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냉혹한 상황을 이겨내려는 그녀의 용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pp. 170) 


• 윌버와 트레야가 실행에 옮긴 대체의학과 전체론적 요법 : 175쪽 

유방을 절제한 후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은 가장 질나쁜 전이성 암으로 악화되었으며 그 치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8장. 나는 누구인가? 

항암치료제인 레글란을 투여 받은 후의 강력한 히스타민 반응으로 트레야는 공황상태와 자살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이 때 두 부부는 “무경계 No Boundary"의 “보는 자”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참고 pp. 189-190) 


“당신 안의 자신이라는 깊은 내적 감각은 당신의 기억도 생각도 아니고, 당신의 마음도 몸도 아니며, 당신의 환경이나 감정, 갈들이나 감각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적 자신에게 본질적인 영향을 주는 일 없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내적인 자신은 시간이 흘러도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있는 것으로 자아초월적인 <보는 자>이자 “진아”다.” (pp. 195) 

 


9장. 나르시스, 혹은 자기 수축 

윌버 부부는 타호 호수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살면서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는 데 이 때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이 시기는 암과 싸우는 두 부부 뿐 아니라 윌버 개인에게도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을 맞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윌버는 몇 개월 동안 끊임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나는 타호 호수 남쪽의 파크가에 있는 앤디의 스포츠 용품점에 가서 총을 살 것이다. 이런 상태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정말이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pp. 210) 


윌버는 명상도 하지 못하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면서 심한 우울상태에 빠져드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마을에 창궐했던 이름모를 전염병 때문이었다. 윌버는 근육경련, 발작에 가까운 몸부림, 만성발열, 임파선 장애, 식은땀과 탈진증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1년 6개월 동안 전혀 집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으며 명상을 통해 열려있는 순수의식과의 연결을 유지할 수도 없는 절망적이 상태였다. 윌버는 이것을 자기수축, 즉 자기모습에 절망적으로 빠져든 나르시스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단순하고 파괴적인 잘못은 내 고통을 테리 탓으로 돌리며 그녀를 비난한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의 흥미를 구석에 박아둔 채 그녀를 돕는 길을 선택했으면서도, 저술이나 편집활동, 명상 시간을 잃는 것에 대해 테리를 비난했던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실존주의자가 말하는 ‘나쁜 신념’이다. 이것의 나쁜 점은 자신의 선택으로 생긴 책임을 회피한다는 데 있다” (pp. 213) 


이 때 트레야도 화학요법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화학요법의 가장 나쁜 면은 그것이 내 영혼에 독을 쏟아 붓는다는 점이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그리고 영적으로 나를 해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너무도 지쳐서 전혀 자신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pp. 221) 


서로 심신이 탈진될 때로 탈진된 두 부부는 결국 위기의 정점을 맞게 되고 급기야 윌버는 난생 처음으로 여성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손찌검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때리고 만 것이다. (pp. 229-230) 

 


10장. 치유할 시간 

위기의 정점이 지나자 윌버부부는 자신들 만으로는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로저 월쉬, 프란시스 본, 특히 세이무어 부어스틴의 도움을 받아 서로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은 “기적수업”을 중심으로 ‘수용과 용서’라는 덕목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참고 pp. 235-236) 


“신은 내가 용서하는 사랑 속에 있다.” (기적수업의 문구) 

트레야는 자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 자신에게 치료할 시간을 주는 것. 개방적이고 조용한 공간이 지나가도록 그냥 내버려둔 채, 그곳에서 무엇이 나올까 그저 지켜보고 있다.” (pp. 239) 


• 두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수행을 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 : (pp. 249) 

두 사람이 함께 모실 수 있는 스승을 찾던 중에 칼루 린포체를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즉시 그 분이 자신들의 스승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pp.250) 


• 윌버가 가타기리 선사 밑에서 견성을 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 : 

“아주 작은 경험이었소. ” 켄은 설명했다. 그 깨달음은 선사가 이런 말을 했을 때에 일어났다고 한다. “보는 자는 자아의 마지막 저항이다.” (pp. 252) 

 


11장. 심리치료와 영성 

서독에서 에디스 준젤이라고 하는 편집자가 윌버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망설이던 끝에 인터뷰에 응하게 된다. 

“모두가 저를 스승이나 구루 또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판디트는 될지언정 구루는 아닙니다. 실천에 관한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초보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5년간 고작 4번밖에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어요.” (pp. 234) 


에디스 준델과의 인터뷰를 통해 윌버는 심리치료와 영성의 관계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융과 조셉 켐벨의 문제점을 지적(pp. 226, 269, 270) 

• 윌버의 의식의 9단계를 간단하게 설명 (pp. 272-276) 

• 전초오류에 대한 설명 (pp. 279-) 

• 각 단계 마다 일어날 수 있는 심리적 장애에 대한 치료법 설명(pp. 280-291) 

• 의식의 스펙트럼 각 단계에 고유한 세계관에 대한 설명(pp. 294-296) 


• 명상과 심리치료의 관계 

심리치료는 1-6단계까지의 발달장애로 인해 생긴 심리적 장애를 치료할 수는 있지만 7-9단계까지의 발달을 도와주거나,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장애를 적절하게 다룰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총체적인 발달을 위해서는 심리치료와 명상이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 


“대체로 명상과 심리치료는 영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아도, 목적으로 삼는 단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선이 반드시 노이로제를 제거한다고 할 수 없고, 또 그런 목적을 위해서 고안된 기법도 아닙니다. 더욱이 아무리 보는 자의 감각을 발달시켜도 여전히 노이로제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삶의 감정적인 명이 망가지고 있다 해도, 선은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주지 못합니다. 선은 그런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 선은 노이로제와 잘 지내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pp. 291-292) 

“프로이드는 붓다가 아니고, 붓다 또한 프로이드가 아닙니다.” (pp. 293) 

 


12장. 다른 목소리로 

마침내 트레야는 화학요법의 스트레스로 인해 당뇨병에 걸리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덮친 당뇨병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자신의 영적 진화를 위한 여정을 계속한다. 이 때 트레야는 남성의 영성에 대응하는 여성만의 영성 계발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자신과 뜻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작은 모임을 시작한다. 


• 여성의 영성에 관한 주제 : (pp. 309-312) 

그 모임에서 트레야는 자신들이 원하는 암환자 지원센터(CSC; Cancer Support Community)를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우리는 여성적인 접근을 통해, 암과 싸우거나 암에서 회복하는 것을 강조하기보다 전반적인 삶의 질을 강조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암을 치료하지 못한 것이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pp. 318) 

이 때 트레야는 꿈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 자신의 디먼을 찾는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여자, 예술가, 장인, 행위자가 아니라 제조자,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 작품의 결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커다란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 (pp. 320) 

“나의 것은 조용하고, 형태가 없으며, 부드럽다. 배경적이고, 여성적이며, 보이지 않는다. 몸과 관련된, 대지와 관련된 그것. 그러나 내게는 더욱 실제적인!” (pp. 323) 

 


13장. 에스트레야 

암이 다시 재발되어 뻐, 뇌, 폐로의 전이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 트레야는 자신의 낡은 남성적 자아인 테리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자아인 트레야가 태어났음을 느꼈다. 이 때부터 테리는 자신을 트레야로 불러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를 새로운 부활로 여기게 되었다. 

“남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자. 나 자신을 테리라고 부르지 말자. 트레야가 되기. 장남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기. 그날 밤 나는 경이로움과 흥분에 가득 찬 꿈을 꾸었다. 기억에 남는 유일한 말은 “안녕, 내 이름은 트레야야.”였다.” (pp. 333) 


윌버부부는 델마에서 심령치유사 크리스를 만났고 이 경험을 통해 테리에서 트레야로의 전환이 완성되었다. 크리스가 실시한 심령치유(기 치료)에서 윌버의 기 상태를 읽을 수 있다. 

“한동안 켄의 머리를 진찰하던 그녀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뇌의 양측에 각각 10개의 통로가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에겐 통로가 2-3개 정도이며 아무리 많아야 4개란다. ... 인간 뇌의 양측이 10개까지 열리는 것은 2000년에 한 번 뿐인 일이며, 그녀 이전의 마지막 인간이 바로 붓다라고 했다. 그런데 켄의 뇌에는 한쪽에 10개 다른 쪽엔 7개의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pp. 343-344) 


• 심령치유에 대한 윌버의 태도를 볼 수 있는 부분. 

“나는 그런 종류의 에너지가 있고 때로는 그 에너지의 효과가 꽤 크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소. 단지 나는 그들의 이야기나 이론에 의문을 가질 뿐이오. 그들이 하는 일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의문이 생긴다고.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이론들은 보통 물리학에서 따온 어설픈 이론들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오. 나는 그런 일에 반발할 뿐이오.” (pp. 341) 


심령치유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던 윌버는 크리스에게는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된다. 

“그녀의 끊임없는 황당한 이야기는 트레야와 내가 모든 걸 더 가볍게 보게 만들었다. 크리스의 주변에서는 진실이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모든 것은 하나같이 사실이거나 거짓이며, 똑같이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음에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모든 게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트레야는 병들고 나는 붓다가 되었다!” (pp. 345) 


• 발달의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병리와 높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병리와의 차이점(예: 제 3지렛목 병리 vs. 제 8지렛목 병리) (pp. 348-349) 

  


14장. 어떤 것이 실제로 도움을 주나?

트랜스퍼스널 심리학회지와 뉴에이지에 실린 트레야의 글은 잡지사상 최고의 반응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트레야는 오프라윈프리 쇼의 주목을 받았다. 


• 질병을 바라보는 자비로운 관점 

암에 걸린 어머니에게 트레야는 아내로만 지나치게 충실했던 반면, 자기 자신으로서는 살지 못했다는 이론을 늘어놓았던 트레야에게 암에 걸린 또 다른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너는 어머니에게 이론을 적용하면서, 어머니를 물건처럼 다뤘던 거야.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 자신을 침해한다고 느꼈을 수 있어. 나는 알아. 왜냐하면 나도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친구들이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야.... 그 이론들은 결국 나를 돕는 게 아니라 자기들을 돕는 거야. 난 그 이론들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워.”(pp. 363) 

“때때로 치료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원한다. 내가 자신에게 대안을 제시하거나 관습적인 치료들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 그러나 일단 일정한 치료방법을 선택하면, 그것이 가장 쉽고 매우 안전한 정보일지라도 그들은 나의 정보를 원치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이다.” (pp. 364) 


“당신 자신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단순한 선언이 사실이기에는 삶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그것은 나와 우리를 길러주는 관계의 망을 통제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는 것이다....우기의 현실에 우리 자신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야 옳다. 이것이 진리에 더 가깝다.” (pp. 365-366) 

“죄와 죄책감을 강조하는 유대 기독교에서는 질병을 잘못에 대한 징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현상을 자비심을 키우고 타인에게 봉사할 기회로 삼는 불교적 입장을 선호한다... 진실로 두려워 할 수 있게 스스로 허용한다면 아무리 끔찍한 일이 닥쳐도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질병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질병과 친숙해지는 방법을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이다” (pp. 366-367) 


• 불교에 대한 윌버의 입장 

“나는 딱히 불교도가 아니다. 오히려 베단타 힌두교나 기독교 신비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내가 수행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불교다.” (pp. 356) 

• 불교를 소승, 대승, 금강승으로 나누어 각각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단점과 수행법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pp. 356-362) 

• 자비심을 기르는 통렌 tonglen 수행(암이 악화되자 트레야는 이 수행을 적극적으로 실천에 옯겼다.) (pp. 358) 

 


15장. 뉴에이지 

이 장에는 뉴에이지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다. 이 글은 “우리가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뉴에이지에 실렸다.(pp. 375-385) 


“그들이(뉴에이지) 말하는 원리에 따르면 현재의 삶은 이전 생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다. 하지만 힌두교와 불교에 따르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특정한 업의 관점을 믿지 않는다. ... 남카이 노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업 때문에, 혹은 개인의 이전 조건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서, 외부에서 온 에너지로 인해 생기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과 같이 환경의 일시적인 원인들로 야기되는 질병도 있고 사고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환경과 연관된 온갖 종류의 질병이 있는 셈입니다.“... 당신 스스로 자신의 실재를 창조한다는 신념은... 모두 과대망상, 전능을 포함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유아적이고 마술적인 세계관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고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한다는 주장은 (발달의) 2 단계를 정의하는 자아경계의 불완전한 분화의 직접적 결과라고 본다.” (pp. 380-381) 


“뉴에이지 운동은 마치 얼룩덜룩한 큰 짐승 같다. 거기에는 진정한 신비주의, 트랜스퍼스널 원리에 바탕을 두는 측면도 있다. 진정한 트랜스퍼스널 운동은 항상 전개인적인 요소를 상당 부분 끌어들인다. 왜냐하면 둘 다 비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과 ‘초’ 간의 혼동은 뉴에이지 운동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인  것 같다.” (pp. 382) 


“우리는 전개인적 신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신념들을 초개인적인 것인 양 포용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 곤란할 뿐이다... 실제로는 전이성, 치성, 초이성이라는 3개의 진영이 있다. 사실 우리는 전이성주의자보다는 이성주의자에 가깝다. 상위수준은 하위수준을 초월하면서 포함한다.... 모든 초개인적인 신조들은 논리의 검증을 견뎌내야 한다. 그 때, 오로지 그때서야 논리를 넘어선 통찰이 가능하다. ”(pp. 384-385) 

그러는 사이 트레야는 암이 뇌로 전이되어 더욱 공격적인 화학요법을 받게 되고 이를 위해 두 부부는 고용량 단기 화학요법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얀커병원으로 치료를 위해 떠나게 된다. 

 


16장. 저 새들이 노래하는 걸 들어봐! 

“트레야와 나는 본에서 마지막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나는 이 어려운 시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세이무어에서 통렌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노력했다... 나의 가슴은 트레야를 위해, 나를 위해 산산이 부서졌다” (pp. 395)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본에 도착한 후 일주일 동안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것은 지속적인 것이었고 심지어 그녀는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방문객들이 자주 그 사실을 언급할 정도였다. 그녀는 환희를 내뿜고 있었다.” (pp. 4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영혼은 행복하고 삶을 즐기고 있다. 창밖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고,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끝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올 한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저 새들의 노래를 들어보라!” (pp. 401) 

 


17장.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윌버 부부는 트레야 부모님과 함께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파리로 여행을 간다. 

“독일을 지나 파리에 가까워지자, 내 눈은 봄날의 전경을 탐욕스럽게 담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라임 빛깔의 초원, 시내를 따라 늘어선 새잎이 돋은 나무들과 띠를 두른 들판, 느낌표 모양으로 흩어진 노란 개나리, 꽃을 피우는 벚나무, 가파른 언덕과 강둑을 따라 꽃으로 장식된 포도원, 계곡들을 따라 물결치며 변신하는 대지. 오랫동안 굶주린 내 눈과 영혼은 모든 것을 들이마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었는데, 이제는 봄이, 부드럽고 밝은 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인가?” (pp. 418) 


“이제 나는 봄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가을의 금빛 불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봄은 내 가슴 깊숙이 와 닿는다. 내가 새로운 기회를, 내 삶의 새봄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pp. 442) 


본으로 돌아온 윌버 부부에게 암을 치료하는 긴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 사이 윌버는 트레야를 간호하는데 지쳐 쾨니히스빈터의 드라헨펠스라는 고대의 장엄한 요새로 관광을 간다. 요새의 탑에 올라간 윌버는 다음과 같이 사색에 빠진다. 


“올려다보면 하늘이, 내려다보면 땅이 있었다. 하늘과 땅, 하늘과 땅. 트레야가 떠올랐다. 지난 몇 년에 걸쳐 그녀는 땅에 있는 자신의 뿌리, 자연에 대한 사랑, 몸, 만들기, 자신의 여성성, 기초가 단단한 개방성, 신뢰, 돌봄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있고 싶어 하는 곳, 내 스스로 편안하게 느끼는 곳에 머물렀다. 신화로 치자면 영의 세계가 아니라 관념, 논리, 개념, 상징이라는 아폴로적 세계를 의미하는 하늘에. 하늘은 마음과, 땅은 신체와 관련된다. 내가 느낌을 포착해서 개념으로 연결했다면, 트레야는 개념들을 포착해서 느낌으로 연결했다. 내가 끊임없이 특정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움직였다면, 트레야는 항상 보편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움직였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트레야는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문화를, 그녀는 자연을 사랑했다. 나는 바하를 들으려고 창문을 닫았다면, 그녀는 새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바하를 껐다.” (pp. 434) 

 


18장. 죽은 스승은 아니다! 

다시 볼더로 돌아온 윌버부부는 트레야의 삶이 일년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수용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미래에 살기를 거부하면서 의식적으로 죽음과 함께 현재를 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라. 죽음은 무엇보다도 미래가 없는 조건이다. 마치 미래가 없는 듯이 현재를 살아감으로써, 그녀는 죽음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pp. 444) 


트레야의 이런 삶에 대한 태도는 선사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윌버에게 상기시킨다. 

“유명한 선의 화두가 있다. 한 제자가 선사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죽은 후에는 무슨 일이 생기나요?” 그러자 선사는 “모른다”고 말했다. 놀란 제자가 다시 “모른다고요. 당신은 선의 스승이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 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지만 죽은 스승은 아니다.”  (pp. 445)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가면서 윌버의 수행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트레야와 나는 명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라도 비통함이나 적의감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다. 그렇게 2,3시간이 지나면 돌보는 이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것 같다.... 좋든 싫든, 삶이든 죽음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간에 모든 드러남은 똑같이 ‘일미(一味)’다.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 (pp. 447) 

유방절제 수술을 받은 아내와 함께 살면서 성과 관련해 윌버가 겪었던 심적 갈등과 방황이 독일 나이트클럽에서의 경험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pp. 453-461) 


“여인의 온전한 가슴을 본 건 거의 3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아래를 보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봇물이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내 마음은 육체와 살의 세계, 그것이 의미할 수 있는 것, 암이 육체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 정신을 잃었다.” (pp. 458) 

 


19장. 열정적 평정심 

독일에서 받았던 매우 공격적인 화학요법에도 불구하고 트레야의 암이 치료되지 않자 그들은 대체요법의 하나인 켈리-곤잘레스 프로그램을 시도할 결심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췌장효소를 100만 단위로 다량 섭취할 경우, 종양을 해체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주 혹독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트레야는 평정심을 가지고 이를 성실히 수행해간다. 


“나는 카르멜파가 열정을 강조하고 불교도들이 평정심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불현듯 ‘열정’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이해가 매달림,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걸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소유라는 생각에 물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없는 열정, 애착이 없는 열정, 깨끗하고 순수한 열정을 갖는다면 어떨까?... 그때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두개의 단어가 짝을 이루었다. 열정적 평정심. 삶의 모든 측면, 영과의 관계에 충분히 열정적이고, 존재의 심연을 돌보면서도 매달리거나 붙잡지 않는 것. 내게 그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pp. 474) 

“토마스 키팅 신부가 한 말도 생각합니다... “애쓴다는 것은 기도자의 성장에 필요한 수용성이라는 기본성향을 희석시킨다. 수용성을 비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활동으로서 일상적 의미에서의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신지를 기다리는 태도다...” 이런 ‘적극적 비활동’이 내가 ‘열정적 평정심’이라고 생각하는 한 예입니다. 켄은 도교도들이 이것을 ‘위무위(爲無爲)라 표현한다고 말해주었지요.” (pp. 477) 

 


20장. 간호하는 사람 

효소 프로그램이 지속적인 효과를 내고 있었지만 그 해석에 대한 공방이 극에 달해 윌버도 무엇을 믿어야할지 혼란에 빠져버린다. 

“시간이 갈수록 검사결과는 점점 더 극적으로 변했으며 두 진영(정통의학과 대체의학)의 해석은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에 따라 내 마음도 둘로 분열되었다. 하나는 곤잘레스를 믿었고, 다른 하나는 종양전문의들을 믿었다. 어떤 쪽도 확실히 옳거나 그르다는 증거는 없었다.” (pp. 495-496) 


윌버는 트레야가 설립한 CSC 친구들에게 간호하는 사람으로서의 고충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면서도 이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글은 트랜스퍼스널 심리학 잡지에 실려 독자들의 상당한 반응을 얻게 된다. (pp. 499-509) 


“나는 지금부터 환자를 간호하는 일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특히 위험한 문제는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지 약 2,3달이 지나서 찾아듭니다....간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 다루기 어려운 일은 정서적, 심리적 수준에서 쌓이기 시작하는 내적 혼란입니다.... (병간호하는 고된 일이라는) 원래 문제와 더불어 그 문제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가장 좋은 상대는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간호하는 사람들 집단, 즉 간호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지집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어두운 감정, 분노, 적개심 아래에는 대부분 상대를 향한 커다란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간호하는 사람은 오래전에 뛰쳐나가 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노, 적개심, 쓰라림이 출구를 막고 있는 한 그 커다란 사랑이 표면으로 자유롭게 떠오를 수 없다는 겁니다.” (pp. 502) 


“사랑은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므로 간호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존재를 막는 분노, 적개심, 미움, 쓰라림, 부러움과 질투까지도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지집단은 무척 소중한 존재입니다. 지지집단이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간호하는 사람인 당신을 위해서도 개인 심리치료를 받으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의논해서는 안 될 일들이 생길 테니까요.” (pp. 503) 


“훌륭한 간호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 하나는 간호하는 사람은 정서적인 스폰지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언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도와주고, 저녁식사를 만들고, 차를 몰아주는 것 등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모두 정서적인 스폰지의 뒷전에 있습니다. 치명적인 질병과 직면한 사람은 매우 강력한 정서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때로 근 이런 감정들, 즉 공포, 분노, 히스테리, 고통들로 압도되어버리곤 합니다. 이때 당신이 할 일은 사랑하는 이를 붙잡아 주고, 그 사람과 함께하며, 그런 정서들을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는 겁니다. 말해서는 안 되고,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도움이 될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충고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슨 일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거기에 있으면서 그들의 고통이나 공포, 상처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스폰지처럼 말입니다.(pp. 504) 


“나는 언제라도 어려운 상황에서 뛰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병동에 묶어두지 않았으며, 내가 떠난대도 나를 협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트레야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선택을 나 스스로 한 겁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녀가 이 과정을 겪어내는 걸 지켜볼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선택을 잊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나는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나쁜 신념(bad faith)을 보이고 말았으며 진짜가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는 실재가 아니었습니다. 나쁜 신념으로 인해 나는 내 자신의 선택을 망각했고, 거의 즉각적닌 비난의 태도를 보였으며, 또 그 결과로 생기는 자기연민에 빠졌습니다.” (pp. 506-507) 


“공(空)이라는 불교적 개념 또한 내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습니다. 공은 공백이나 허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장애가 없고 자발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비영원성 혹은 무상(anicca)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불교인들은 실재가 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안전이나 지지를 위해 당신이 붙잡을 수 있는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금강경은 '삶은 물방울, 꿈, 영상, 신기루 같다‘고 말합니다. 요점은 신기루를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놓아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매달릴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트레야의 암은 나에게 ’죽음은 위대하게 놓아버리기‘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pp. 507-508) 


이 시기에 윌버는 족첸수행에 깊이 빠지게 된다. 

• 족첸수행에 대한 설명 (511-515) 

“족첸에서의 주된 가르침은 명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상은 상태의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깨달음은 상태의 변화가 아닌 현상태의 성질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족젠 가르침의 대부분은 ‘왜 명상이 효과가 없는가’, ‘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가’, ‘그것은 이미, 그리고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노력은 당신의 발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pp. 512) 

“족첸은 명상을 특별히 추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족첸 가르침에 입문할 때쯤이면 수행의 8단계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 8단계가 명상의 모든 단계임을 지적해야겠다. 그들은 마음의 덕성, 집중력, 알아차림, 통찰력을 기르는데 명상이 매우 중요하고 이로우며, 따라서 명상을 하나의 훈련과정으로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명상은 깨달음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pp. 514) 

“일단 제자에게 그런 자각이 일어나면, 스승은 그 자각을 삶의 모든 측면에 적용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명상을 사용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족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당신의 진정한 얼굴을 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사는 것은 어렵다.’ 내가 수행을 시작한 것은 정확히 ‘그것을 사는 것’이었다.” (pp. 515) 

 


21장. 우아하게 그리고 용기있게

켈리-곤잘레스 효소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뇌 조직이 한없이 팽창하면서 트레야는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트레야는 한두 달 동안 뇌의 팽창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스테로이드 데카드론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효과가 없어질 것이다. 그 마지막 기기에 트레야의 뇌 조직은 박살날 것이다. 날이 갈수록 뇌 기능은 상실되고 고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져 불가피하게 모르핀을 계속 투여해야 할 것이다.” (pp. 533) 


극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트레야는 자신의 열정과 평정심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녀는 조금도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포기하거나 조금도 물러서려는 의도가 없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제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그녀는 몸을 뒤집어 죽은 척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태도를 통해 내가 깨닫게 된 가장 유명한 공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 제자가 선승에게 물었다. “무엇이 절대적인 진실입니까?” 그러자 선승은 “계속 걸어라!”라고만 했다.” (pp. 534) 


서로에게 깊이 몰입하는 가운데 윌버와 트레야 사이에는 깊은 심령적 유대가 생긴다. 윌버는 트레야가 원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미리 알고 처리를 하면서 트레야를 극진히 보살핀다. 

“아마도 경험에만 의존하는 보통 의사들은 그것이 번개처럼 빠른, 잠재의식적인 논리적 추론일 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례들이 비논리적이고 신기했다. 아니다.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여기 이 집에 오직 하나의 마음, 하나의 가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 내가 그 사실에 놀라야 하는가?” (pp. 534) 


끔찍한 두통을 호소하고 몸 전체를 떨면서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힌 트레야는 마침내 뇌에 있는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받는다. 

“수술로 인해 트레야는 더 이상 예전처럼 볼 수가 없었다. 오른쪽 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전체적 시야가 매우 협소해진 것이다. 그녀는 예술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선 하나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때때로 나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별로예요, 그렇죠?“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pp. 536) 


•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설명(536-537) 

“당신의 어떤 부분이 신성에 참여한다고 믿는다면, 어떤 의미에서든 죽을 수밖에 없는 신체를 초월하는 일종의 영에 접근한다고 믿는다면, 죽음의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신체가 사라진 후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발견할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다. 안 그런가?” (pp. 537) 

뇌와 간에 종양이 퍼져가면서 트레야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일과를 빠짐없이 성실하게 실천해간다. 

“날이 갈수록 폐와 뇌, 간에서 종양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뇌수술의 여파는 트레야의 몸에 끔찍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속했으며 걷는 기구를 이용해 하루에 수 km를 걸었다.” (pp. 538)


• 트레야가 죽어가는 부분(540-542)

“새해 첫날 트레야와 나는 카우치에 앉아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트레야가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여보, 이제 멈춰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더 이상은 가고 싶지 않아요. 효소가 별 효과를 못 내는 것 같아요.“...... “트레야. 하지만 일주일만 더 기회를 가져보자고 말하고 싶어. 만일을 위해서...”......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좋아요. 일주일만 더 해봐요. 할 수 있어요. 일주일만 더.”, 트레야는 맑고 투명하게 빛났다.” (pp. 540)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트레야는 계단조차 오를 힘이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계단 하나도 오르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산소 줄을 떨어뜨리고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안아 올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 여보... 이 정도까진 오지 않길 바랐어요. 여기까지 오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혼자 걷고 싶었어요.“ 트레야는 내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일인 걸, 트레야.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요. 그러니 자, 내 아가씨를 안고 계단을 오르게 해줘요.” (pp. 541) 


“트레야는 약속을 지켰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 모르핀을 거절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각하며 존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종종 머리를 높이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계속 걸어라!”였다. 그녀는 용기와 각성된 평정심을 보여주었으며, 조금도 보태지 않고 말하건대 나는 그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 

“주말 저녁,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갈래요, 여보.” 

그 순간 내가 한 말은 그저 ‘좋아’ 한 마디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2층으로 데려가려고 안아 올렸다. 

“잠깐만요, 여보. 일기를 쓰고 싶어요.” 

나는 그녀에게 일기장과 펜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매우 진하고도 분명한 글씨체로 이렇게 썼다. 

“‘우아함, 그리고... 그렇지, 용기가 필요해!” (pp. 541-542) 


“숭고한 괴테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글귀를 남겼다. ‘잘 익은 것들은 모두 죽고 싶어 한다.” 트레야는 잘 익었으며 죽고 싶어 했다.... 우아함과 용기. 존재하기와 행동하기, 평정심과 열정, 포기와 의지. 완전한 수용과 사나운 결심... 그녀 영혼의 양면성. 일생 동안 그녀가 씨름해온 양면성, 그녀가 마침내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통합한 양면성, 그것이 그녀가 남기고 싶어 했던 마지막 메시지였다. 나는 그녀가 그 양면을 결합하는 것을 보았고, 균형 잡힌 조화로움이 그녀 삶의 모든 면에 스며있음을 보았고, 열정적인 평정심이 그녀의 영혼을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하고 중요한, 지배적인 삶의 목표를 성취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수준 낮은 깨달음이었다면 산산조각 났을 상황에서, 그녀의 성취는 잔인하게 검증되었다. 그녀는 그걸 해낸 것이다. 그녀는 지혜로 무르익은 것이다. 그래서 죽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트레야를 2층으로 데려갔다.” (pp. 542) 

 


22장. 빛나는 별을 위하여

트레야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과 친지들은 그녀의 우아하고 용기 있는 모습을 하나같이 칭송한다. 윌버는 트레야의 영혼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 날 저녁 나는 트레야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 옆에 앉았다. 그녀는 거의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이제 나는 가요.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갑니다.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마지막 해방의 만트라처럼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나는 아주 행복해요, 아주 행복해요...” 

그녀의 얼굴 전체가 밝아졌다. 그녀는 빛났다. 그리고 바로 내 눈 앞에서 그녀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1시간에 5kg 정도가 줄어든 것 같았다. 마치 몸이 그녀의 의지에 순종하여 스스로 오그라드는 것처럼... 그녀는 서서히 자신의 생명체계를 닫으며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꺼이 떠날 준비를 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그녀는 결심이 확고했으며 매우 행복해했다. 그녀의 마음에 전염된 것일까? 그녀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돌연히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켄. 당신을 떠날 수 없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 역시 흐느꼈다. 지난 5년 동안의 모든 눈물이, 트레야를 위해 강해지려고 참았던 눈물이 모두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 우리 둘을 만들어준 사랑, 우리 둘을 더 강하고 좋고 현명하게 만들어준 사랑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아주 메마르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와 그토록 다정한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여보, 갈 시간이면 갈 시간인 거야.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을 찾아낼 거요. 이전에도 찾아냈잖소. 약속하오, 또 다시 당신을 찾아낼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고 가고 싶으면 가요.” 

“약속하죠?” 

“약속하오.” 

5년 전 결혼식장으로 가는 중에 그녀에게 말했던 것. 나는 지난 2중 동안 그 이야기를 거의 강박적으로 되풀이했다. 나는 다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동안 어디 있었소? 몇 생에 걸쳐 당신을 찾아 헤맸는데. 당신도 알잖아. 당신을 찾아내기 위해 난 용들을 죽여야만 했단 말이오. 그러니 걱정 말아요. 반드시 당신을 찾아낼 거요.” 

그녀는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약속하죠?” 

“약속할게.” 

나는 왜 그런 말이 필요한지 알지도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지난 몇 주 동안 트레야는 계속해서 내게 약속을 끌어냈다. 그것이 그녀에게 깊은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내가 약속만 지킨다면 그녀에겐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이다. 

“나를 찾겠다고 약속했죠?” 

“그래, 약속해.” 

“영원히?” 

“영원히.” 

“그렇다면 갈 수 있어요. 아, 나는 아주 행복해요... 여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아주 어려웠어요. 여보, 너무 힘들었어요.” 

“알아, 트레야. 나도 알아.” 

“이제는 떠날 수 있어요. 정말 행복해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행복해요. 켄.” 

그날 밤 나는 그녀의 방에 있는 탁자에서 잠을 잤다. 꿈을 꾼 것 같다. 눈 덮인 산에 천 개의 태양이 빛날 때처럼, 빛나는 흰빛의 거대한 구름이 집 위에서 맴도는 꿈을. (pp. 545-547)  

“트레야가 눈을 감았다. 모든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가슴이 무너졌다. 다 프리 존의 구절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사랑의 상처를 연습하라.” 진정한 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완전히 취약하게 열어놓는다.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훨씬 넘어선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당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사랑이 당신을 산산조각 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사랑을 모르는 거다. 우리는 둘 다 사랑의 상처를 연습했고 나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되돌아보면 그 단순하고 직접적인 순간에 우리는 둘 다 죽어버린 것 같다.” (pp.  549) 


“나는 그날 밤 트레야의 방에 있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빗방울 하나가 바다로 떨어져 바다와 하나가 되는 꿈을. 어찌보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단순한 영상 같기도 했다. 나는 이 꿈이 트레야가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의미라고, 트레야가 깨달음의 바다와 하나가 된 빗방울이라고 생각했다. 의미가 통했다. 

하지만 나는 곧 이 꿈에 더욱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빗방울은 나였으며 트레야는 바다였다. 그녀가 해방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작 해방되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봉사했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해방된 것이다. 

그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트레야가 자신을 찾아내라는 약속을 내게 끈질기게 요구한 이유였다. 그녀는 단지 내가 자신을 찾길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약속을 통해 그녀가 나를 찾겠다는, 계속 반복해서 나를 돕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일을 회상해보았다. 나는 내가 약속을 함으로써 그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녀가 분명하게 말한 영을 내가 인정하고 깨달을 때까지 트레야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뜻이었다.“ (pp.  557) 

“그 삶에서, 그 몸에서 나는 위대한 다섯 꼭지점의 우주별을, 마지막 해방의 빛나는 별을 보았다. 내게는 항상 그 이름으로 남을 별... 

‘트레야’ 

알로하, 나의 행운, 내 사랑하는 트레야. 나는 언제나 당신을 찾아낼 거야. 

“약속하죠?”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속삭였다. 

“약속하지. 나의 사랑, 트레야.” 

“약속하오.” (pp.  563)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항상 고요하게 깨어있기를!

역자가 두 손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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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풍류의 원형과 그 세계사적 의의  

서정록


1.

이땅의 조상들이 이루어냈던 아름다운 도, ‘풍류(風流)’는 지금도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 속에서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역사시대에 우리의 삶을 옭아맸던 국가와 계급과 물질의 길은 원래의 풍류의 모습을 왜곡시켰고, 오랫동안 우리문화에 덧씌워졌던 외래문화 또한 이땅의 풍류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종내는 이땅의 풍류의 원형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동안 풍류는 중국의 유불선(儒佛仙)의 영향 하에서 해석되어 왔다. 유불선이 들어온 후 이른바 그들의 장점을 취합해 ‘풍류’를 만들어 어리석은 민중을 교화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러한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중국으로부터 유불선이라는 학문다운 학문이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의 정신이 깨어났다는 말과 같다. 그동안 역사 교과서에서 이땅의 고대문화나 정신으로 유불선 이외의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으니 유불선이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문화다운 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이러한 해석은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중국에서 유불선이 전래되기 전에는 이땅에 문화랄 만한 것이 없었고, 유불선이 들어오면서 비로소 개화되었다는 시각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구려벽화를 보면 샤마니즘이 문화적으로 중심적 위치에 있었음이 드러난다. 즉 샤마니즘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무덤 내부의 공간이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의 공간에는 그에 상응하는 벽화들이 장식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견주어 유불선은 오히려 주변적이거나 부수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샤마니즘의 세계관이 뚜렷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백제, 신라, 그리고 고대 일본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유불선이 들어오기 전에는 이땅에 내놓을 만한 문화가 없었다는 식의 해석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치원 선생이 난랑비(鸞郞碑) 서문에서 ‘국유현묘지도, 왈풍류, 포함삼교 접화군생(國有玄妙之道, 曰風流, 包含三敎 接化羣生)’이라고 했을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유불선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이땅에는 현묘지도의 아름다운 풍류문화가 있었는데, 그것이 국가가 생기고 계급이 생기고 물질의 욕망이 생기면서, 그리고 중국의 유불선이 덧씌워지면서 그 아름다운 도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짧지만 함축이 많은 위의 문장을 대할 때면 왠지 그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그의 마음이 짙게 느껴지는 것이다. 



2.

우리민족은 그 어떤 민족보다도 영적인 민족이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의 유교정책 하에서 이땅의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받던 무당(샤만)들이 하루아침에 천한 하층민으로 전락한 상황에서도, 그리고 그때 이래로 그들의 사회적 활동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상황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나라보다도 샤만이 많다는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것은 이땅의 기층문화로서 샤마니즘이 갖는 뚜렷한 위치를 말해준다.이땅의 현재의 샤마니즘 현상이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의 샤마니즘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국가화, 계급화, 물질화의 길을 걸어온 우리역사와 함께 변화한데다, 기복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땅의 샤마니즘의 영적인 지혜가 모두 소진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이 시대의 과제는 이땅의 샤마니즘 현상을 비판하고 폄하하기보다는 그동안의 물질화하고 기복화의 길을 걸어온 샤마니즘 문화를 생명과 평화의 길로 거듭나도록, 그래서 이땅에 다시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인 지혜가 피어나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현실계와 영계가 시계의 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고 본다면, 영성에 대해서 말할 때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지적, 정신적, 문화적 현상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땅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삼국시대 이래 국가체계의 확대와 신분과 계급 제도, 그리고 물질적 욕망의 확대재생산의 구조를 발달시켜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현재 이땅의 샤마니즘 현상은 삼국시대는 물론이고, 국가와 계급과 물질의 욕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그 이전 시대의 샤마니즘 현상과는 많이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것이 현재의 샤마니즘 현상에서는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요소’를 전혀 볼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샤마니즘의 현상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변화해왔지만, 기본적으로 영혼을 중심으로 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가와 계급, 신분, 물질적 욕망 등과 같은 외부의 영향과 함께 샤마니즘 현상과 영성에 상당한 변이와 기복적 요소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 이런 이유로 이땅의 풍류의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데, 북미 인디언들과 시베리아의 일부 소수민족과 아프리카와 호주, 아메리카 등지의 제3세계의 원주민들의 영적인 삶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혀둔다.

  

따라서 이땅의 고대의 풍류문화를 이해하고자 할 때 부득이 국가와 계급과 물질의 욕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아무래도 이땅의 고대 풍류는 국가와 계급과 물질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기 전 이땅의 소박한 민중들이 지니고 있었던 순수한 영적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라 할 때는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의 샤마니즘 현상, 또는 가깝게는 전통시대의 북미 인디언들이나 일부 제3세계 민족들의 국가와 계급과 물질적 욕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적인 삶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3.

‘풍류’라는 용어는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 서문에 나타나기 전에 중국에서 먼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풍류’란 말의 의미를 둘러싸고 혼란이 있는데, 중국에서 풍류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 위진(魏晉)시대이다. 그때는 유교를 국교로 했던 한나라 이래로 중국에서 영적인 사고가 크게 위축된 시대였다. 유교와 노장에서는 영혼과 내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히 중국에서 샤만의 활동은 끊어지고, 그 빈틈을 방사(方士)들의 신선사상과 도교가 메우게 된다. 

이런 이유로 중국인들이 풍류라 할 때의 ‘풍(風)’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국풍(國風)’, ‘정풍(鄭風)’ 등의 예에서 보듯이, 노래와 가무, 시문을 뜻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풍류라 할 때 중국에서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시문(詩文)이나 주연, 가무를 즐기는 귀족적 향취 내지 북방민족들에게 쫓기는 신세를 한탄하고 은둔자적하며 음풍농월(吟風弄月)하던 청담(淸談), 현학(玄學)의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전자가 왕희지(王羲之)나 석숭(石崇) 등의 인물로 대표된다면, 후자는 완적(阮籍)이나 혜강(嵆康) 등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들 수 있다. 신은경, <풍류 - 동아시아 미학의 근원>, 보고사, 1999, 20쪽 이하; 孔繁, <魏晉玄談>, 遼寧敎育出版社, 1991.   


그에 반해 샤마니즘 문화를 토대로 하는 동북아의 풍류는 <바람 風, 흐를 流>, 즉 ‘바람과 물’의 영적인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이 한나라 이래로 영적인 사고를 부정하고, 인문주의적 경향을 발전시켜온 것과 달리 이땅의 문화는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성의 토대 위에서, 1)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살아있는 생명이며, 2)모든 존재는 영적으로 평등하고, 3)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4)서로 의존하며 살아가고, 5)각각의 존재는 모두 다 그 나름의 임무와 직분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사고는 북미 인디언과 제3세계 원주민들의 영성에 대한 이해에서 잘 드러난다.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말하는 풍류는 중국인들이 말하는 풍류와는 그 함의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무릇 중국의 풍류가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시문과 술과 가무로 그들의 답답한 심사를 푸는 문화라면, 이땅의 풍류는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를 토대로 몸과 마음과 영혼의 통합을 이루고, 일상의 삶에서 신성함을 찾으며, 주위의 다른 존재들과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근본적인 방식을 말하기 때문이다. 



4.

그렇다면 이땅의 풍류적 사고의 전제가 되는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사고란 무엇인가?

북유라시아와 북미 원주민들의 샤마니즘에서 샤만(또는 주술사)들은 영성에 대해서 대체로 다음과 같은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설명해왔다.북유라시아 원주민들의 영혼의 개념에 대해서는 Ivar Paulson, Die primitiven Seelenvorstellungen der nord-eurasischen Völker, Stockholm, 1958; Harva, Uno, The Mythology of All Races: Finno-Ugric, Siberian, 1964, pp.4-10 등에 정리되어 있으며,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영혼의 개념에 대해서는 Hultkrantz, Åke, Conceptions of the Soul Among North American Indians, Stockholm: Caslon Press, 1953에 정리되어 있다. 민족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영혼, 또는 생명을 대체로 숨결, 피, 불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ㄱ.숨결

ㄴ.피(또는 물)



먼저 숨결을 보자. 

많은 아시아와 아메리카, 호주, 아프리카 등지의 원주민들의 창조신화를 보면 창조주가 이 세상을 창조할 때 만물을 만든 뒤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자, 비로소 살아있는 생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기독교의 창세기에도 전해진다. 

여기서 생명의 숨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람이다. 그 바람이 우리의 몸에 들고 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이 된다. 우리가 숨을 쉰다는 것은 곧 바람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인데, 나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다 숨을 쉰다는 것이 샤마니즘의 생명관이다. 말하자면 동식물은 물론 해님도, 달님도, 산도 강도, 심지어 우리가 무생물이라 치부하는 돌멩이까지도 숨을 쉰다고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고구려벽화에는 천정의 해와 달이 숨쉬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으며, 산이 춤을 추는 것이 표현되어 있다. 춤을 춘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고구려벽화에는 이처럼 모든 존재가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샤마니즘의 생명관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그런데 숨을 쉬는 동안 우리의 숨결은 주위의 다른 존재들의 숨결과 섞이게 되어 있다. 우리가 들이쉬는 숨결에는 다른 존재들의 숨결이 들어와 있고, 나의 숨결은 다른 존재들의 숨결에 갈마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존재들과 서로의 숨결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자연과 우주의 차원으로 확장하면 우리는 숨을 쉬는 동안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만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숨을 쉬는 행위를 통해서 모든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숨을 쉬는 이 작은 행위만으로도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생명은 하나’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몸을 도는 피는 어떤가. 고대인들은 피가 곧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상처가 나 피를 많이 흘리게 되면 생명을 잃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피는 물이다. 우리 몸의 70%가 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음식이나 음료수의 형태로 물을 섭취한다. 그리고 그 물은 신진대사를 통해 몸밖으로 분비, 또는 배출되며, 그것은 하천을 통해 바다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수증기가 되어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 우리는 그 물을 받아 마신다. 이렇게 우리의 몸을 드나드는 물은 단순히 들고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차원의 순환을 통해서 우리의 몸을 드나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물은 또한 다른 존재들의 몸을 넘나들게 되고, 결국 이 물의 순환과정을 통해서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물에 이러한 태도는 특별히 하와이인들의 사고에서 잘 나타난다. Michael Kioni Dudley, Man, Gods, and Nature, Honolulu, 1991, p.vii.  


우리의 숨결과 마찬가지로 물, 또는 피의 순환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렇게 모든 생명은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람과 물은 우리의 몸을 넘나들며 다른 존재들과 우리를 관계시키고, 서로 이어주며, 서로 의존관계에 있음을 알게 해준다. 고대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관통하여 흐르면서, 생명세계가 지속되도록 해주는 근원적인 에너지, 또는 생명력이 바로 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성을 설명하고자 할 때 그들은 그러한 근원적인 생명력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바람과 물을 비유로 들었던 것이다. 



5.

시베리아의 샤마니즘의 연속선상에 있는 북미 원주민들 또한 이와 동일한 사고를 갖고 있는데, 그들 역시 바람, 물, 영성은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Gregory Cajete, Look to the Mountain, 1994, p.178. 북미 원주민 전통에서 ‘모든 존재를 하나가 되게 해주는 구성요소는 바람과 물, 그리고 영성’이라고 말한다.  

특히 전통시대 북미 원주민들의 경우 아시아와 동북아의 샤마니즘이 물질화, 계급화, 국가화, 기복화의 길을 걸어온 것과 달리 고대의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인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데, 그들의 순수한 영적인 삶은 오늘날 영성운동에 관심을 가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서남부 인디언들과 나바호족은 바람이 생명의 숨결이 되어 우리 몸을 드나드는 것이 얼마나 영적인 것인가를 자세히 논하고 있다.James Kale McNeley, Holy Wind in Navajo Philosophy, Univ. of Arizona Press, 1981. 


그들은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가 춤을 춘다고 말한다. 나뭇가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나뭇가지가 노래한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 산의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을 두고 산이 춤을 춘다고 말한다. 시냇물이 흐르는 것을 긴 사람이 노래하고 춤춘다고 말한다. 그리고 창조주가 우리의 몸에 불어넣어준 생명의 숨결은 우리 몸 안에서는 생각이 되고, 밖에 나가서는 말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 마음의 근원이 바로 숨결임을 그들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과 물의 이런 영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호주 원주민이나 아프리카의 원주민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도 이런 바람과 물의 순환에 기초한 영적 이해를 엿볼 수 있는데, 마태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가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리라고 예언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가 회개하도록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발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마태복음 3:11).


이 문장에 나오는 ‘성령holy spirit’이란 말은 '성스러운 숨결holy breath'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를 번역한 말이다.Timothy Freke & Peter Gandy, The Jesus Mysteries, 1999, p.37. 참고로 세례란 바람과 물의 영성에 몸과 마음을 씫김으로써 거듭나게 하는 것으로, 영지주의전통에서는 재생, 환생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니고데모가 예수에게 “사람이 늙은 나이에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가 있습니까?” 하고 묻는 대목이 있는데, 이에 대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한다고 하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바람은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으니라(요한복음 3:5-8).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의 말은 정확히 ‘물과 바람’이다. 이때의 성령 역시 위의 세례요한의 경우처럼 성스러운 숨결의 그리스어에서 온 말인 것이다.위의 책, 같은 곳. 

따라서 우리는 초기 기독교의 영적 이해가 고대 샤마니즘의 영적 이해와 동일선상에 서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바람과 물에 대한 영적 이해는 초기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끼친 로마시대의 이교도와 영지주의적 전통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6.

바람과 물의 이러한 영적 특징을 북미 원주민들은 나선형, 또는 원의 상징을 통해서 설명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신성한 원(Medicine Wheel)’, ‘생명의 원(Circle of Life)’, '원안의 원(Circle in Circle)'이 그것이다. 의상과 각종 생활도구에 장식된 나선형 무늬, 또는 원을 통해서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면서 변화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구려벽화에서는 바람과 물이 나선형과 원의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데, 류운문(流雲紋) 형태의 각종 바람이나 구름, 물결, 햇살, 넝쿨, 화염  문양이 그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본인의 <백제금동대향로>(2001, 학고재)의 266쪽 이하를 참고할 것.   

특히 덕흥리고분, 쌍영총, 수산리고분, 삼실총 등에는 지상계와 천상계를 구분짓는 도리에 이러한 류운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바람과 물의 나선형, 원의 형태가 현상계(지상계)와 영계(천상계)의 경계를 나타냄을 뜻한다. 아무르강의 소수민족들은 이러한 나선형, 원의 무늬를 건축물의 기둥과 도리, 각종 생활도구 등에 장식하는데, 이는 이러한 무늬가 일종의 기도, 또는 주술적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Lopatin, Ivan A., The Goldy of the Amur, the Ussuri, and the Sungari, Vladivostok, 1922, pp.331-347; 같은 이의 The Cult of the Dead Among the Natives of the Amur Basin, Mouton & Co., 1960, p.23. 


흥미롭게도 고구려벽화의 이러한 류운문은 당시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선비족의 경우 외에는 중국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한나라 이래 유교적 사고가 지배하면서 영적 사고가 결여된 중국문화의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참고로, 중국에서는 한나라 초기까지만 해도 고구려벽화와 유사한 승천신화를 갖고 있던 강남의 초나라 등지에서는 무덤의 관과 각종 장신구에 류운문을 장식했었다. 그러나 한나라 이후 이러한 류운문 장식은 급속히 소멸한다. 

그에 견주어 나선형 형태의 류운문은 삼국시대의 각종 금동관이나 금동신발 등의 유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에 바람과 물로 상징되는 풍류적 사고가 이땅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7.

바람과 물의 영적 의미를 상징화한 이러한 나선형, 원의 도상은 샤마니즘에 기초한 티벳 불교의 만달라에서도 확인된다. 티벳 불교의 만달라는 원과 사각형을 기조로 복잡하게 짜여져 있는데, 티벳의 만달라가 이처럼 복잡한 형태로 발전한 이유는 인도의 초기 만달라 위에 점차 형이상학화, 존재론화한 불교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Tucci, Giuseppe, The Theory and Practice of the Mandala, Dover, 1961. 

그런데 그들이 만달라 도상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가르침은 실제로는 나선형, 원으로 상징되는 바람과 물의 영적 이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원이라는 것은 그 위에 무수한 점이 있다고 하면, 그 각각의 점은 원에 의존하고, 원은 각각의 점에 의존한다. 이렇게 원 위의 점들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다른 점들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게 각각의 점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시작인 동시에 끝이 된다. 이렇게 원 위에서는 시작도 끝도 없이 돌아간다. 뿐만 아니라 원 위의 점들은 높낮이 없이 모두 평등하다. 그와 함께 각각의 점은 중심이 되며, 주인의 자리가 된다. 이것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중심이며 주인의 위치에 있는 것과 같다. 어디 그뿐인가. 원이 우주의 만물을 상징한다면 원의 모든 존재를 관통해서 흐르는 생명력은 신이 되고, 그 신은 다시 각각의 존재에 내재해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이 북미 원주민들의 원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히 티벳 불교의 만달라에 대한 핵심적 통찰에 해당한다. 


그런데 바람과 물의 영성을 상징하는 이러한 나선형과 원의 문양, 또는 도상들은 고대의 샤마니즘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유럽의 고대민족인 켈트족의 나선형 장식무늬가 그러하며,Nordenfalk, Carl, Celtic and Anglo-Sacon Painting, George Braziller, 1977 

아무르강 중하류 지역에 거주하는 고아시아족 - 나나이족, 니브흐족, 울치족, 우데헤족, 네기달족 등이 그러하며,Laufer, Berthold, The Decorative Art of the Amur Tribes, Memoirs of the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Volume VII, Part I., The Knickerbocker Press, 1902. 

또한 북유라시아를 휩쓸던 스키타이-흉노족Aruz, Joan, et la(eds.),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0; 國立中央博物館, 스키타이 황금, 조선일보사, 1991. 

과 그들의 후예인 게르만-바이킹족의 나선형, 원의 도상이 그렇다. 또 샤마니즘 문화를 갖고 있는 제3세계 원주민들의 각종 의상에 장식된 무늬와 생활도구에 장식된 나선형, 원의 무늬들이 그렇다. 



8.

최치원 선생이 일찍이 <이땅에 아름다운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고 했던 풍류는 이와 같은 바람과 물의 영적 이해를 토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풍류도가 퇴락해가던 신라 말기에 그가 이와 같은 풍류에 대한 영적인 이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성에 바탕한 영적 지혜가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풍류의 인식론을 이른바 ‘접화군생(接化羣生)’이라는 말로 압축하고 있는데, 이 접화군생에 대해서 그동안 학자들은 ‘민중을 교화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바람과 물에 대한 영적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이러한 해석은 전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모든 행위가 서로 관계지어져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접화군생은 일상의 신성한 행위 또는 삶 속에서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며 뭇 생명들이 살아간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신라인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접화군생이라고 하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아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학자들은 왜 이 접화군생은 그리도 다르게 해석하는가! 그것은 이 개념에 접근하는 많은 이들이 유불선이 전래되기 훨씬 전부터 이땅에 존재했던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샤마니즘은 영혼을 중심으로 이 세상의 현상과 변화를 바라본다. 그런데 영혼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 때문에 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영적 세계를 어떻게 가시적으로 표현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바람과 물에 의한 영적 비유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이 접화군생의 의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놀랍게도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선생이다. 그는 시천주(侍天主)에 대한 설명으로 ‘시(侍)’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모신다는 것은 안으로 신성한 영(혼)이 있고, 밖에는 천지만물의 기화가 있으며, 세상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생명임을 아는 것이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여기서 안으로 신성한 영(혼)이 있고, 밖에는 천지만물의 기화가 있다는 <내유신령, 외유기화>는 곧 안으로는 신령한 영의 작용이 있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천지만물의 기화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내유신령, 외유기화>란 말은 모순된 말이다. 왜냐하면 ‘신령’이란 영(spirit), 또는 영혼을 말하는데 반해, ‘기화(氣化)’란 주자학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주자학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영, 또는 영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현상계 너머의 그 모든 작용을 이화(理化)로서 설명한다. 그것은 원리, 법칙을 말할 뿐 영혼을 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신령과 기화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런데도 양자를 함께 쓰고 있는 것이다.  

수운 선생 역시 이러한 이질적인 개념의 조합으로부터 생기는 문제점을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사상을 표현하고자 하나 기존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던 언어적 한계 때문에 부득이 그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들이 동학을 어려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내유신령, 외유기화> 속에 담긴 함의를 보지 못하고 문자에 얽매여 이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나 수운 선생이 <내유신령, 외유기화>라고 말함으로써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마디로 모신다는 것은 안에 있는 신성한 영의 작용이 밖으로 드러난 일상의 행위(氣化) 속에서 세상사람들이 모두 다 귀중한 생명임을 아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수운 선생의 이러한 시(侍)에 대한 이해는 정확히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이해를 갖고 있던 민중들의 지혜에 바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내유신령, 외유기화>는 <내유신령, 외유접화(內有神靈, 外有接化)>으로 푸는 것이 나았다고 생각된다. 기화를 접화군생에 나오는 ‘접화(接化)’로 푸는 것이 옳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기화(氣化)’는 신령과 양립할 수 없는 주자학적 개념인데다 자칫 유물론적 해석을 범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20세기초 천도교에서는 위의 <내유신령, 외유기화>의 개념을 물질의 발전에 따른 의식의 진화로 해석해왔는데, 이는 ‘기화’를 유물론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동학의 토대인 조선 민중의 지혜에 담긴 샤마니즘의 영적 이해를 놓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랬더라면 안으로는 영의 작용이 있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일상의 삶이라는 민중적 지혜를 오롯이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수운 선생이 신내림을 통해 깨달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왜 주자학의 ‘기화’가 아니라 샤마니즘의 영적 지혜를 배경으로 하는 ‘접화’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접화군생의 의미를 좀더 살펴보자. 

이 접화군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접화’와 ‘군생’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군생’은 뭇 생명이 살아간다는 의미이니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그렇다면 접화는 어떤가. 

먼저 ‘접(接)’‘접(接)’의 문자그대로의 의미는 ‘만남’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접신(接神), 접견(接見), 접물(接物), 영접(迎接), 대접(待接, 接待), 접촉(接觸) 등의 말이 여기에 든다. ‘연결’, ‘이음’ 등과 같은 접의 다른 의미들은 이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接, 交也’로 되어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이 무당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영들을 만날 때 사용하던 말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실제로 ‘신접(神接)’, 또는 ‘접신(接神)’이라 하면, 현상계와 영계의 만남, 또는 그 경계를 뜻한다. 무당들이 영을 접하는 것을 그리 표현했던 것이다. 또 우리가 흥이 났을 때, ‘신난다’. ‘신명이 난다’, ‘신이 오른다’는 등의 표현을 쓰는데, 이 또한 접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접은 현상계 너머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만나거나 그와 관계된 영적인 만남에 사용하던 말인 것이다. 


샤마니즘 현상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접의 성격은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또는 신이 오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 또한 정신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정신과 달리 우리의 몸이 세속적인 것이고, 그래서 신성함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몸은 신성한 영 또는 정신과 소통할 수 없을 것이고,이와 관련해서 하와이 원주민들의 문화를 연구하는 Michael Kioni Dudle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구지성사에서 정신과 물질은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되어 왔다. 신, 천사, 그리고 인간의 영혼만이 spirit를 갖고 있는 것으로 말해져왔다. 사람의 경우 생각하고 의지하는 것은 오직 영(spirit)이나 영혼뿐이라는 것이다. 자연히 신, 천사, 그리고 인간의 영혼 이외의 모든 존재들은 물질의 영역으로 떨어지고 만다. 한마디로 물질은 생각하고, 의지하거나 다른 형태의 앎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서구 사상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러한 분리와 구분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 한 가지는 인간의 생각하는 영혼이 어떻게 물질로 이루어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몸에 말을 전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물이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만일 우리의 몸이 생각할 수 없다면, 당연히 몸은 생각하는 영혼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와이인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질 또한 생각하고 의지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물질로 된 인간의 몸 자체가 의식을 갖고 있다고 보며, 그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의지력을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물질로 된 몸이 의식하고 그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다는 생각은 하와이인들이 그들의 행위를 설명하는 방식 - ‘발이 걷는다’, ‘귀가 듣는다’, ‘손이 집는다’ - 에서도 설명된다.” Michael Kioni Dudley, 앞의 책, pp.36-37. 

샤마니즘에서는 대체로 영혼을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free-soul이고, 다른 하나는 body-soul이 그것이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자를 말하며, 후자는 몸에 해당한다. 이렇게 몸 또한 영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고 봄으로써, 비로소 일상의 행위가 기도도 되고 종교도 되는 일상과 종교의 일치가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접신이나 신명과 같은 영적인 만남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의 영혼의 작용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우리의 일상의 삶이요 행위라는 것을 상기하면 사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함께 작용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서구식 교육을 받아 몸과 물질은 세속적인 것이고, 정신과 영혼은 신적이고 고귀한 것이라는 이원론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몸의 움직임에 영혼이 함께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몸과 영혼, 물질과 정신은 물과 기름처럼 다르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 또한 영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전통적인 샤마니즘의 영혼관이다. 우리의 몸은 그냥 body가 아니라 spiritual body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몸과 영혼의 분리를 허용치 않는 것이다. 몸과 영혼의 분리는 그 자체가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몸에 영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의 일상의 행위에는 신성함이 깃들게 된다. 우리가 하는 그 모든 행위가 단순한 세속적인 행위를 넘어 거룩하고 신성해질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거룩하고 신성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접이 일상의 삶 속에서 신성함을 찾는 행위, 즉 일상과 종교의 일치와 분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데,현대 과학자들은 우리의 정신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보는 듣는 정보들은 모두 상징에 불과하다고.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우리가 보는 대로 현상에 존재하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상(像, image)은 우리의 머리에서 재구성한 것일 뿐 실제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눈의 시지각은 망막에 맺힌 상을 전기로 바꾸어 뉴론을 통해 뇌에 전달하고, 뇌에서는 그 전기 신호들을 재구성해서 다시 영상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의 영상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에서 전기적 신호를 재구성해서 만들어낸 영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재와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상징이요 관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귀로 듣는 소리의 정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귀에서 외부의 소리를 디지털정보로 바꿔서 뇌로 보내면 뇌에서 이를 다시 재구성해서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듣는 소리는 실재가 아니라 상징이요 관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점은 냄새를 맡는 후각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점은 사건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TV를 통해서 보는 것이라든지 가수의 노래를 라디오로 청취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듣지만 TV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영상을 통해 정보를 얻고 이해를 하지만 그것은 정보일 뿐 현장과 실재는 아닌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일찍부터 알고 있던 북미 원주민들은 일종의 기도의 의미를 다양한 도상(圖像)의 문화를 발달시켰고, 이를 각종 의상과 천막, 생활도구 등에 장식했다. 그들은 실재와 상징 또는 실재와 관념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것은 오직 몸과 마음과 영혼이 일치된 일상의 행위 속에서 신성함을 찾을 때만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일상과 종교를 분리할 수 없다고 보았던 근본 소이다. 일상과 종교가 분리되면, 즉 우리가 몸으로 하는 일상의 행위가 정신이나 영혼과 분리되면 우리는 실재가 아닌 주관적 관념 속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구나 아시아권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었고, 상징과 관념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으로 몸을 통한 수련이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인도의 요가나 중국의 기공, 우리 선가 쪽의 수련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정보들이 상징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데 반해서 몸은 에너지를 통해 직접 만나고 접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몸을 통한 만남, 교류, 수련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한계가 극복될 수는 있겠지만, 일상과 종교의 분리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북미 인디언들이 일상 속에서 신성함을 찾는 행위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흔히 우리의 몸에는 빛과 온기의 생명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몸을 가지고 다른 존재나 대상과 관계한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이 생명의 에너지를 통해서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생명에너지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로 통합된,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에 다름아니며, 일상의 행위 속에서 신성함을 찾는 행위는 바로 이때만 가능한 것이다. 최치원 선생이 풍류를 말하면서 <접화군생>이라고 했을 때 ‘접(接)’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접의 이러한 성격은 모든 존재를 ‘모시라(侍)’는 말로 압축하고 있는 동학의 가르침처럼 우리에게 일상의 모든 행위가 신성하고 거룩해지도록 주위의 모든 존재를 공경하고 돌볼 것을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접은 먹고, 입고, 쓰는 일상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도 늘 기도하고, 감사하고, 되먹이라고 가르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은 다른 존재들이 자신의 귀중한 목숨을 우리에게 내어준 것이고, 우리가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행위는 폭력과 저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을 불균형과 부조화로 이끌 것이다. 일상 속에서 감사와 되먹임을 통한 살림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접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지식을 가지고 상대방을 교화하고, 가르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도, 풍류가 바람과 물의 영적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영적으로 평등하며, 다 존재이유와 이 세상에 나서 할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남을 교화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조상들과 제3세계의 원주민들은 말한다. 만남은 언제나 평등해야 하며, 오직 그때에만 평화가 있다고.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것은 동학에서 그들의 최소조직의 명칭에 접이란 말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때의 접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를 영접(迎接)하고 대접(待接)하고 접촉(接觸)하는 모든 행위가 신성한 행위임을 가리키기 위해 선택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접은 단순한 물리적 만남, 또는 관념적 만남이 아니라 영적인 만남, 즉 영혼과 영혼의 만남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말로 ‘관계의 정화(精華)’, 또는 ‘관계의 성화(聖化)’라 할 수 있으니, 접은 일상적 삶 속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나선형 춤을 통해 모든 존재를 그 중심에 이르게 하고, 신을 만나게 하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생명세계의 모든 존재는 춤을 춘다고 말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춤이라는 것이다. 에너지의 파동과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접은 이러한 생명에너지가 나선형 또는 원의 춤을 통해 그 중심에 이르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무한히 반복되는 원의 춤을 통해서 근원적인 에너지에 이르는 이슬람 수피교의 사마춤(또는 whirling dervish)에 비유된다. 북미 원주민들은 이러한 나선형 춤을 ‘뇌조의 춤’이라 말한다. 


이런 이유로 샤마니즘에서 접은 언제나 지금, 여기의 ‘현재’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데, 오직 그때에만 일상의 행위들 속에서 신성함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접화의 또 한 부분인 ‘화(化)’는 교화(敎化), 감화(感化), 변화(變化), 그리고 화육(化育) 등의 예에서 보듯이 변화와 성장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영적인 만남을 뜻하는 ‘접’과 변화, 성장을 가리키는 ‘화’를 합친 접화는 일상의 삶 속에서 신성함을 찾는 동안 사람들이 영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접의 개념과 동학에 나타난 민중적 지혜를 바탕으로 접화군생의 생략된 부분을 보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안으로는 영의 작용이 있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일상의 삶 속에서 신성함을 찾는 동안 영적으로 변화하며, 뭇 생명들이 살아간다. 

內有神靈, 外有接化. 羣生. 


여기서 일상의 신성한 행위라는 것은 나의 행위가 악이 되지 않고 거룩하게 되는 행위로,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늘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의 신성한 행위는 주위의 모든 존재들과의 균형과 조화로운 관계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꽃 한송이가 피려면 해도 비춰야 하고, 비도 내려야 하고, 바람도 불어야 하고, 별들도 비춰야 하고, 땅 속의 미생물들이 도와주어야 하고, 하다못해 지나가는 동물들이 아는 척이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꽃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온갖 부대낌과 시련과 고통과 기다림 속에서 어느 날 기적처럼 피는 것이다. 

결코 자기 혼자서 꽃을 피워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자연의 형제, 친척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그들의 도움 속에서 핀다는 것이다. 접화군생은 바로 그러한 관계 속에서 사람은 물론 동식물과 해와 달, 별, 산과 강,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존재를 공경하고, 그들과 균형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하나되는 가운데 영적으로 성장하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땅의 아름다운 도, 풍류는 이와같이 우리의 일상의 모든 행위 - 움직이고, 행동하고, 만나고, 관계맺고, 노래하고, 그림그리고, 사냥하고, 일하는 모든 행위, 숨쉬고 밥먹고 배설하고, 자고 일어나는 모든 행위가 신성한 행위가 되도록,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주위의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하나되고,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삶의 원리를 가리킨다.  



9.

이러한 풍류적 세계관에서 나의 행위는 나 개인의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모든 행위 - 나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 - 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돌고 돌아 결국 내게 돌아온다. 때문에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는 사적이고 이기적인 행위보다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존재를 위한 봉사와 헌신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풍류적 세계관에서 볼 때 이 세상의 생명에너지는 그 자체로는 선(善)도 악(惡)도 아니다. 마치 태양이 대지 위의 모든 존재에게 고루 비치고, 비가 대지 위의 모든 존재를 고루 적시듯이 생명에너지 자체에는 호불호가 없는 것이다.  

나의 행위는 결국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되는 것이다. 내가 자연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모든 존재와 더불어 하나되고 행복해지는 삶을 살아가는가, 아니면 자연의 순리를 거부하고, 물질을 탐하고 이기심을 발동하여 나만의 쾌락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이 말하는 풍류는 생명의 에너지를 모든 존재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모두가 더불어 하나가 되고 행복해지도록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거스르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풍파(風波)에 시달린다’고 했으니, 이는 곧 풍류의 길에서 벗어나 자연과 불균형과 부조화에 이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또한 이 세상의 생명에너지는 잠시도 그 자리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 물이 흐르듯이 부단히 흐른다. 그래서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이, 생명에너지는 끊임없이 변한다. 이것은 주위의 존재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른 존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때문에 우리는 늘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변화 속에서, 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풍류의 세계관, 이러한 삶의 태도를 최치원 선생은 유불선 삼교(儒佛仙 三敎)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안에 들어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주지와 같고, 무위로서 일을 하고 침묵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행을 멀리하고 착한 일을 행함은 석가의 교화와 같다.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여기서 ‘국가에 충성한다(忠於國)’는 것은 국가체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진흥왕 때 설치된 화랑제도는 국가체계 하의 호국사상(護國思想)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김대문의 <화랑세기(花郞世紀)>에서 화랑이 제사(祭祀)를 받들던 이들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나, 이때의 제사 또한 국가의 신궁이 설치되고 체계화된 뒤의 각종 의례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체계가 개입하면 영적인 순수한 삶은 어렵다. 이러한 사실은 영적인 순수한 삶을 살고 있는 시베리아 소수민족이나 제3세계, 또는 북미 원주민들이 여전히 부족공동체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확인된다. 만일 그들 사회에 국가체계가 개입한다면 그들의 영적인 순수한 삶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국가가 개입하기 전의 모습인 <밖에 나가서는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위해 봉사한다>로 고치는 것이 옳다. 

위의 인용문을 통해서 우리는 이땅의 조상들의 풍류적 삶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안에 들어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위해 봉사하고, 자연의 법을 거스르지 않고 무위의 삶을 살고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침묵을 사랑하고, 악행을 멀리하고 늘 선함을 위해 힘쓴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조상들의 풍류적 삶의 태도는 놀랍게도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전통시대 북미 원주민과 일부 제3세계 원주민들의 생태적이고 영적인 삶의 태도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이땅의 풍류가 샤마니즘 문화와 그 영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은 본문에서 밝힌 대로다. 그러나 개별 샤만의 치병이나 영적 의례와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의례와 제도는 구별되어야 한다. 전자는 샤만이 치병과 영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차원에서 행위가 이루어지나, 후자는 부락 내지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다양한 관계와 의례, 문화, 축제 등을 조직화하는 방식으로 샤만과 추장, 부족의 어르신 등 영적 지도자들로 구성된 <어르신들의 모임(Gathering of the Elders)>이 그 중심적 위치를 갖는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영성과 문화로서의 풍류는 주로 이 후자의 차원과 연결된다. 현재 그러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북미 원주민들과 중미의 콰테말라의 추투질 마야 부족, 그리고 일부 제3세계 원주민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최치원 선생이 난랑비 서문을 쓸 당시, 비록 국가화, 계급화, 물질화의 영향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 조상들이 고대 동북아에 면면이 전승되어 내려오던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인 지혜를 상당부분 들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10. 

서구의 자연과학이 이 세상을 지배한 이래로 오늘날 전세계의 전통문화와 원주민문화는 물질화되고, 상품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 결과 조상들의 아름다운 공동체적 삶과 영적인 지혜는 망실되고, 자연은 우리의 삶의 주요한 부분이 아니라 경제적 성장을 위한 물적 기반(환경)으로 전락해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거미줄같은 관계망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던 이땅의 아름다운 도를 잃어버린 채 갈수록 개인주의와 자아의 섬에 갇혀 가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은 19세기 중엽 동학이 태동되던 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이 잃어버렸던 풍류적 세계관 - 이 생명의 세계관, 친자연적 세계관을 바로 알고, 그것을 다시 세워, 자연을 살리고 모든 존재가 더불어 하나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생명과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보다도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풍류적 세계관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새로운 영성과 평화 운동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진로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국내의 생명평화 운동에 새로운 풍류적 인식론과 미학을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길을 제시하고 있으니,북미 원주민인 나바호족은 이러한 풍류의 세계관을 일컬어 ‘축복의 길’, ‘아름다운 길’이라 부른다. 그러한 축복의 길, 아름다운 길이야말로 나의 삶의 터전인 자연(또는 어머니 대지)과,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모든 존재가 하나되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 속에서는 일상의 삶이 곧 기도가 되고, 종교가 되고, 예술이 되고, 미학이 된다. 

바로 여기에 이땅의 풍류가 갖는 보편적이고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11.

1990년대 이래 서구의 대체의학계에서는 기존의 인식체계, 또한 인간을 몸과 마음과 감정, 정신으로 나누어 분석해오던 인식체계로는 온전한 인간이해와 치료에 한계를 갖고 있음을 인식하고, 기존의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적 틀이 아닌, holistic view를 통해서 인간의 몸과 마음, 감정, 정신을 하나의 에너지 체계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즉 ‘몸과 마음과 영혼은 하나’이며, 몸과 마음과 영혼에 대한 개별적 접근은 각기 다른 측면에서의 부분적인 설명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인간은 몸과 마음과 영혼의 총체적인 이해를 통해서만 그 참된 인격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서구의학 이외의 전통의학과 제3세계의 대체의학을 모두 묶어 ‘vibrational medicine’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Richard Gerber, Vibrational Medicine, Bear & Compant, 2001.  

이것은 오늘날 인류가 새로이 바람, 흐름, 결, 떨림의 인식론, 곧 바람과 물의 풍류적 인식론을 요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사) 생명과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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