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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마음자세로 극복을 해야 할까요? 윤홍식 대표의 힘이 되는 말씀 들어 보십시오. 시련은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 질문자 : 요즘 회사나 집안일로 동시에 곤란한 일들이 몰려 오고 있습니다. 내 잘못인 것 같기도 하고 남 탓도 많이 합니다. 답답하고 너무 힘이 든데요.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자세는 무엇일까요?

  

- 윤홍식 대표 답변 : 우리의 소아적인 마음인 '욕심(에고, 인심人心)'이 원하는 것은, 생각과 감정 오감이 원하는 바를 늘 충족시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맹자]에서 “우환 속에 살고 안락 속에 죽는다”(生於憂患 而死於安樂也)라고 하였듯이, 욕심(인심)이 늘 충족되는 삶은 참으로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그것은 ‘참된 인간’으로 사는 길은, ‘욕망’이 늘 충족되는 삶이 아니라 ‘양심’이 늘 충족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고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 많은 것은, 욕심(인심)에게는 욕구불만을 가져올 것이나 양심에게는 욕구충족의 계기가 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사람은 욕심(인심)이 늘 충족되는 상태에서는, 자신의 행실을 반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욕심(인심)’의 욕구대로만 사는데도 전혀 방해받지 않는다면, 자신이 깨어있는 마음인 ‘양심’을 따르며 살고 있는지 절대로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양심을 따르는 행동인 ‘덕’은, 우리가 난관과 곤경을 만나 자신의 심사와 언행을 반성하는 중에 배양됩니다.

 

[맹자]에서 이르길

 

“백성을 사랑하는 데도 그들이 나를 친밀히 여기지 않을 때는, 내 ‘사랑’(仁)이 부족하지 않은지 반성하라.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는, 나의 ‘지혜’(智)가 부족하지 않은지 반성하라!”(愛人不親 反其仁 治人不治 反其智)

 

라고 하였듯이,

 

우리는 역경에 처할 때마다, 우리의 부족한 점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덕’에 나아갈 수 있고 ‘행실’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매사가 내 뜻대로 진행되고 순조로울 때는 교만해지고 자만에 빠지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양심’이 어두워지더라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참으로 온몸이 독기가 꽉 찬 짐새의 ‘독’에 흠뻑 빠져 죽어가는 격이 됩니다.

 

사람은 일이 어그러지고 곤경에 빠져야만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이 비양심적으로 굴지는 않았는지,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 그제야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반성’이야말로, 욕심(인심)의 과오를 직시하고 양심을 회복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그러니 ‘양심’에게는 역경이 사는 길이며, 순경이 죽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큰 인재를 낼 때도 먼저 곤경과 시련으로 ‘큰 덕’과 ‘큰 재주’를 배양할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맹자]의 다음 구절은 참으로 이러한 사정을 여실히 말해주는 구절입니다.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며 그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고, 그 몸뚱이와 피부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하고, 행동을 함에 그 하는 바를 어그러지고 어지럽게 하니, ‘마음’을 요동하게 하고, ‘성질’을 참아내게 하여, 그 할 수 없는 바를 도와서 잘 할 수 있게 하고자 함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역경을 만나야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실덕을 반성하며, 단단한 각오로 역경을 이겨내고자 노력하는 중에, 나약한 성질을 극복하고 강인한 마음을 일으켜 양심을 배양하여 ‘덕’으로 나아가고 재주를 배양하여 잘하지 못하던 일을 잘 해낼 수 있게 됩니다.

 

‘역경’을 기뻐해야 하고, ‘순경’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나 우리가 ‘역경’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우리의 덕을 배양하는데 있어서 가장 절실한 부분들입니다.

 

‘이성’ 문제로 역경에 처한 것은 그 부분의 덕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며, ‘돈’ 문제로 역경에 처한 것은 그 부분의 덕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실 ‘역경’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우리가 현 시점에서 배양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가르쳐주는 최고의 스승인 것입니다.

 

그러니 ‘역경’을 두려워 말고 ‘덕’과 ‘재능’을 배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자세로 역경을 맞이할 때, 역경은 더 이상 좌절의 계기가 아닌 덕과 재능을 배양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출처: http://v.daum.net/link/52266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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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에 대해서

 

사람들은 항상 말하기를 "사람에게는 운명이란 것이 있어서 질병이 아무리 괴롭힌다 하더라도 명을 옮겨놓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어떤 사람은 고질을 앓으면서도 죽지 않고 오랜 세월을 연명하며, 어떤 사람은 아무 병이 없는데도 갑자기 죽는 것을 보고서, 정해진 명으로 아는 것이다.

 

옛말에 "약이 사람을 살릴 수 없고, 병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하였다. 약이 과연 도움이 있다면 왕이나 귀족들은 명의와 좋은 약이 옆에 있으며, 집사자가 서둘러 약을 갈고 달여 올리니 낫지 않을 병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먼 시골의 가난한 백성은 침질과 뜸질을 알지 못하고 음식도 제때에 먹지 못하며, 육진六陣(대황, 진피, 반하, 약애, 복령, 죽력)의 좋은 약이 밭에 있으나 초자炒煮(한약재를 굽거나 볶는것)하는 방법을 모르니, 마땅히 나을 병도 낫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여 왕이나 귀족들과 가난한 백성이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이 비슷하니, 이것이 허망한 술수의 설이 판을 치게 된 이유이다.

 

내가 일찍이 알고 있던 명의가 있었는데, 그는 말하기를, "좋은 약이 사람을 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쓰는 약도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용렬한 의원들이 보잘것없는 방법으로 허실을 잘못 진단하여 인삼, 부자로 열을 치료하고 망초, 대황으로 냉을 치료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나 반드시 다 죽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명에는 정해진 연한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자에 어떤 사람이 변방에서 돌아와 나에게 말하기를 "삼을 캐는 사람들이 삼을 캐면 반드시 먼저 삶아서 그 물을 먹은 다음 다시 말린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열이 나지 않는데, 서울의 사대부들은 매양'삼을 잘못 먹고서 죽었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곧 말하기를 "만약 사람의 운명이 정해진 것이라면 성인은 무엇 때문에 <역경>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화를 피하고 길한 데로 나아가도록 하였으며, 또 무엇 때문에 의약을 발명하여 병을 치료하고 목숨을 건지게 하였겠는가? 이치는 크고 작은 것이 없으니, 만약 병이 치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찌 생사에 대해서만 방법이 없겠는가? 질병에는 경중이 있고 기혈도 경중이 있으며, 약에도 경중이 있어서 각각 분수의 같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기혈이 10분 완전하다면 기후가 고르지 못하여 생기는 외감外感이 들어올 틈이 없거니와 혹 기혈이 10분 완전하지 못하고 다만 7,8분 정도인데 10분의 혹독한 병을 만난다면 문득 10분의 이기는 바가 될 것이며, 또 혹 7, 8분의 병에 화타, 편작이 10분의 치료를 한다면 기사회생할 것이며, 병세는 7, 8분인데 치료는 2, 3분에 불과할 뿐이라면 끝내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그 보잘것없는 방법으로 잘못 진단하여 병을 잘못 치료하는 경우에도 혹 명은 중한데 해침이 경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으니, 비상과 야갈을 먹고도 중독되거나 죽지 않는 데서 증험할 수 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에게는 소금맛으로 조처할 수 없고,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에게는 고깃조각으로 몸을 보할 수 없는데, 이는 소금과 고기가 저들에게 좋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평소에 항상 먹기 때문에 효험이 없는 것이다. 삼이 많은 고장에서는 삼 삶은 물 보기를 마치 나물국을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는 것처럼 여겨 차와 밥처럼 되었으므로, 삼을 먹어도 해를 입지 않는 것이다. 이로써 미루어본다면 병의 해침이 아무리 중하나 품명이 완전한 사람은 지탱해나갈 수 있지만, 속이 허하고 병이 심한 사람은 바로 죽는 것이 마치 칼로 찌르면 엎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다

 

혹자가 말하기를 "주색에 절제가 없으며 더위와 추위를 피하지 않되 오래 사는 자가 있으며, 음식 대하기를 적을 대하는 것처럼 조심하고 바람 두려워하기를 화살처럼 여기되 단명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한다. 이도 명분과 외양이 서로 경중이 되어서 그러한 것이다.

 

속에 10분의 명이 있으면 외상이 해칠 수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몸을 조심해 가지면 생명을 조금 연장시킬 수는 있으나 오래  살 수는 없다. 공자가 말하기를 "여자를 때 없이 가까이하고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며, 근로와 안일이 도에 지나치면 병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죽는다"고 하였다. 잠자리는 생명을 해치는 무기이니, 성인이 어찌 모르고서 그렇게 말씀하였겠는가? 이 세가지 중에 사람을 죽이는 거은 여색이 더욱 심하다. 홀아비로 늙은 사람 치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이로써 품명의 연한을 채우는 사람이 대개 드물다는 것을 알겠다. 


- <이익의 성호사설中>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실학을 창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일가에서 이가환, 이용휴, 이중환 등이 배출되었고, 문인으로 안정복, 권철신, 정약용 등이 있다. 특히, 정약용은 이익의 유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들은 주자학만으로는 이용후생을 실천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조선의 실학을 이끌게 된 것이다.


이황과 이이가 주리설이나 주기설을 사상적으로 체계화시켰다면, 이익은 실학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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