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인기 만화가 허영만 화백의 ‘식객’은 전국에 있는 먹거리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재미를 풍성하게 담아 인기를 끌었다. 그 내용 중에는 청정 지역이자 소박한 맛이 일품인 강원도 음식에 대한 얘기가 많다. 식객의 서른다섯 번째 얘기인 ‘남새와 푸새’는 주인공 성찬이 강원도 지역의 산나물을 찾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렸다.


여기서 나오는 남새는 밭이나 들에 심어 가꾼 나물이고, 푸새는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자라는 나물이다. 곧 푸새는 자연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나물을 이른다. 이 푸새에 대한 얘기는 고전에서 종종 접할 수 있다. 사기(史記)의 백이전(伯夷傳)에 보면 중국 주(周)나라 무(武)왕이 은(殷)나라를 토벌하자 백이와 숙제는 신하가 천자의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신의를 저버린 짓이라며 평생 수양산에 들어가 나물만 캐어 먹다 죽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들이 굶주려 죽을 즈음에 노래를 지었는데, 고사리를 캐며 불렀다 하여 ‘채미가(采薇歌)’라 한다. “그가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도다. 모진 것으로 모진 것을 바꾸고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도다. 神農(신농)의 소박함과 禹夏(우하)의 사람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말았으니 나는 어디로 돌아갈거나. 아아 슬프다. 이젠 가리라 운명의 기박함이여”


훗날 채미가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시문에 다시 등장한다. 성삼문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주려 죽을진들 채미도 하난것가/비록애 푸세엣것인들 귀 뉘따헤 낫다니”하며 왕위를 찬탈한 세조와는 한 하늘아래 살 수 없다며 단종복위를 꾀하다 죽음을 맞게 된다. 충절과 지조의 상징으로 부활한 것이다.


요즘 이 ‘푸새’가 강원도 산에 지천이다. 이를 계기로 지난 주말부터는 도내 곳곳에서는 산나물 축제가 열리고 있다. 철원 산두릅 축제는 이미 시작됐고, 곧 삼척 하장 두타산 산나물 축제를 비롯 평창과 정선의 곤드레 축제, 청춘 양구 곰취축제, 인제 진동계곡 산나물축제, 홍천 백두대간 산나물 축제 등 ‘푸새의 축제’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충절과 지조를 상징하는 푸새가 청정 강원도의 가치를 높이고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에 한몫을 하고 있다.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위원 chonns@kado.net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채소에 대한 순우리말은 남새나 푸성귀이다. 그런데 김장철의 엄청난 무·배추 더미와 일년 내내 나오는 온갖 서양 채소들을 가리키는 데에는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북한에서는 남새를 문화어(표준말)로 쓰고 있다.

중국에서 줄곧 소채를 쓰므로 조선과 일본도 따라 썼으나 조선은 1766년 농서에 채소가 처음 쓰인 뒤로 계속 쓰고 있다. 일본은 1946년 이후 야채를 쓰고 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자 야채가 한국에 파고들어 고급채소 느낌으로 채소를 짓밟고 있다. 이 현상은 집집마다 온종일 여닫는 국산 냉장고 속의 ‘야채’ 표기가 더욱 부추기고 있다.

조선의 학자들은 중국말 ‘수차이’ 또는 일본말 ‘소사이’의 한자표기인 ‘소채’를 즐겨 썼는데 홍만선도 <산림경제>(1715년 추정)에 소채를 썼다. 50여년 뒤 1766년 유중림은 <증보산림경제>(산림경제의 증보본)에서 ‘채소’로 썼다. 최한기도 <농정회요>(1830년께 추정)에서 채소를 쓰고 있다. 유중림이 과감하게 소채를 뒤집어 채소로 쓴 까닭은 나물 ‘소’보다는 나물 ‘채’가 우리에게 보다 친숙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1962년에 농산종묘법으로 제정된 뒤 2008년 개정까지 이어지는 종자산업법에도 채소를 쓰고 있어 그 뿌리는 무려 244년에 이른다.

일본은 1946년 11월16일에 내각고시 32호로 상용한자 1850자를 제정했다. 이때 획수가 많은 ‘나물 소’자가 빠지게 되어 소채를 쓸 수 없게 되자 대신 ‘야사이’(야채로 표기)를 쓰기로 했다. 야채는 중국에서 식용 가능한 야생초본식물을 뜻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글자 그대로 들나물일 뿐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서울에 일본식 음식점이 늘어나고 드나드는 사람들은 일본식 한자말인 야채를 즐겨 쓰기 시작했다. 때마침 귀에 설익은 ‘야채요리’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여성잡지, 요리 강습회, 신문의 가정란, 방송 등에 야채라는 말이 넘쳐났다. 채소라는 말은 촌스러운 느낌을 주었고 젊은이들이나 배웠다는 사람이 쓸 말이 아니었다. 김치 재료인 무·배추만 채소이고 색깔이나 향기가 있는 잎채소, 열매채소, 뿌리채소는 모두 야채라고 여기는 이들도 생겼다.

1990년 가을 한국원예학회에서는 추계 총회에 앞서 야채 오용사례가 많아지는 점에 대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듬해 가을 총회 때 건의문까지 작성했다는데 현실을 생각하면 그 효과는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언제부터인지 국산 냉장고 안에 야채실이라 씌어 있고 김치냉장고 겉에도 야채·과일이 적혀 있다. 일본 수출용이 아니라면 채소실과 채소·과일로 바뀌어야 한다. 채소의 뿌리가 깊고 정통이기 때문이다.
김병연 퇴직교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