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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익학당입니다. 홍익학당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유투브에 370여개의 전세계의 철학고전들을 무료 강의로 제공을 해 왔습니다. 사서오경, 노자, 장자, 불경, 성경, 서양철학까지 유명한 철학고전 들의 상당수를 제공하였는데, 이러다 보니 먼저 공부할 내용을 추려 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홍익학당의 강의중에 각 분야의 뼈대가 되는 강의를 추려서 1주일 정도안에 학습하실 수 있게 제공해 드립니다. 이 강의를 들으시면 어떤 인문학/철학 고전을 읽는 것 보다 정확한 공부의 뼈대가 생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주일만 투자하시면 인문학과 고전의 전문가가 되실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이 강의만 들으셔도 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학당의 다른 강의를 더 들어 보시거나 관련된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고전/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직장인들께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우선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동양철학편]을 제공해 드립니다. 아래 제시된 순서로 강의를 들어 보시면 동양철학의 핵심적인 뼈대와 가장 중요한 골자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일차. 대학 

대학은 동양철학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이루는 고전입니다. 주자는 책꽂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책이 학문의 전반적인 얼개를 잘 나타내 주고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책을 공부한 후에 다른 책들을 공부하시면 전반적인 얼개가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학문의 진도가 더 빠르게 나아가실 수 있습니다.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7- 대학.pdf

 

 


2일차. 중용 

중용은 양심리더십의 정수가 잘 들어 있습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인의예지의 본성을 프로그래밍하셨고, 그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고, 그 인간을 길을 걸음으로서 많은 분들이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모델이 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순간 가장 최선의 선택인 '중용'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강의입니다. 많은 분들이 중용을 지키라고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 강의를 들어 보시면 '중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강의는 PPT로 설명하고 있어서 강의자료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3일차. 논어 

논어는 깨어있는 리더는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공자님을 모델로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고전입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깨어있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논어', 가장 많이 읽히는 동양 고전이라고 합니다만, 여기서는 그냥 고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성인에 이르는 길'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진정한 공부란 무었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 보실 수 있습니다. 성균관스캔들에 나왔던 '논어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인줄 몰랐어요.' 하는 대사가 생각납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3- 논어 성인에 이르는 길.pdf


 

 


4일차. 맹자 

예전부터 남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려면 맹자를 읽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양한 왕들을 깨우치는 맹자의 따끔하고 논리정연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 왠지 웅혼한 기상이 싹트게 됩니다.

 

왕도정치, 진정한 조직의 운영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는 필수적으로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진정한 정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싶은 분들께는 정치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강의입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4- 맹자, 리더의 길과 왕도정치.pdf


 

 


5일차. 노자 도덕경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노자의 도덕경은 많은 분들께서 사랑해 주는 고전입니다.

 

윤홍식 대표의 노자 도덕경은 체험에 기반하여 그동안 설명이 잘 되지 못하는 어려운 노자 도덕경을 아주 쉽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강의와 유학의 강의를 같이 들어 보시면 동양철학의 전모가 정확하게 들어 날 것 입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8- 노자 도덕경, 무위자연의 지혜.pdf

 

 

 

6일차. 주자의 공부법과 명상법 

주자라는 유명한 학자의 책을 통해서 학문을 하는 방법과 명상법을 아주 쉽게 설명합니다. 리(理) - 로고스에 대해서 이렇게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강의를 들으신 분들이 모두 너무 재미있게 들으셨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거경(居敬), 궁리(窮理), 역행(力行)과 기(氣)와 질(質)에 대한 설명과 함께 공부의 과정에 대해서 윤홍식 대표의 강의를 듣다보면, 성리학이 이런 것이구나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5- 주자의 명상법과 공부법-주자어류.pdf

 

 


7일차. 주자의 독서법

독서를 통해 현명해지는 비법이 제공된 강의입니다. 주자라는 유명한 학자의 책을 통해서 책을 어떻게 읽고, 몰입하며 그것으로 지혜를 얻는 방법이 잘 제공되고 있습니다.

 

독서를 할때, 특히 성현의 말씀을 적어 놓은 고전을 읽을때 어떠한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팁'들을 제공해 주는 강의입니다. 책으로 현명해지는 비법이 나온 강의이니 공부하는 학생들 또는 직장인들께 큰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6- 주자의 독서법.pdf


[출처: http://hongikhd.tistory.c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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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을 연구하는데 두가지 경향으로 나눠지는 것 같다. 講壇동양학과 江湖동양학이 그것이다. 


강단 동양학이란 학교에서 가르치는 동양사상 쉽게말해 논문쓰는데 초점을 맞춘것이다. 주로 理 氣와 같은 개념파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분석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고의 트레이닝에는 효과가 있지만 현실문제 해결에는 별로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호동양학은 강호에서 좌충우돌하는 실전에서 요구되는 동양학을 가리킨다. 해방이후 강호동양학은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철저히 배제 되었다. 그래서 제도권보다는 재야의 기인, 달사들 사이에서 그 맥을 이어왔다.   


강호동양학이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인 雜科이다. 천문은 때- 時 하늘의 시간표를 보고 인간의 시간표를 아는 것이 천문의 목표이다. 때를 안다는 것은 인생사의 중대과제를 해결할 수있는 방법이다. 자기 인생이 지금 몇시에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한자문화권의 역대 천재 들이 고안한 방법이 사주명리학이다. 사주명리학이란 천문을 인문으로 전환한 것이다.   


지리는 풍수이다. 천문이 시간이라면 지리는 공간의 문제를 다룬다. 시간의 짝은 공간이다.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령의 문제이다. 땅에는 신령스런 영이 어려있다고 믿는다. 지령을 체험한 사람은 풍수를 이해하지만 지령을 거부하면 풍수의 핵심에는 영영 접근하지 못한다. 지령이 있는 지점에서 사람이 살면 일단은 건강해지고 그다음에는 영성이 개발된다. 건강해지고 영성을 개발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명당이 아닌가. 명당에서 자면 특이한 꿈을 꾸기도 한다.   


천문,지리 다음에는 인사이다. 인사는 존재이다. 시간과 공간이 없어도 존재가 없으면 소용없다. 존재는 바로 인간이다. 인간을 구체적으로 한 연구가 한의학이다. 천문과 지리는 대학의 커리큘럼에 들어오지 못했지만 한의학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풍수는 최창조 교수가 등장해 약간의 시각교정이 되었다. 영주권을 딴샘이다. 그러나 사주명리학은 아직도 불법체류자 신세인 샘이다.   


이책을 내는 이유는 사주명리학의 함량미달, 싸구려를 개선하고자 하는데 있다. 현재의 사주명리학은 마치 다이아몬드에 누런 똥이 발라져서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상태와 같다. 이 다이아몬드는 잘닦고 빛을 내면 쓸곳이 많을 것이다. 왜냐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지구,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서 동아시아 문명의 5천년의 성찰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걸 잘 풀어내면 21세기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르네상스를 일으키는데 중요한 열쇠로 사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자문화권의 르네상스, 문화 콘덴츠를 염두에 두면서 이책을 썼다. 

조용헌

 


▲ 흔히들 사주팔자나 운세라고 하면 떠올리는 인물. 

토정 이지함의 동상. 


조선시대에 남자들이 모이는 사랑채에서는 『정감록』이 가장 인기 있는 책이었고, 여자들이 거처하는 안방에는 『토정비결』이 가장 인기였다는 것은 바로 풍수도참과 사주팔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사주팔자, 길흉화복 예측에서부터 체제 전복의 신념체계까지  


사주팔자란 무엇인가 - 年月日時 旣有定인데 浮生이 空自忙이라! 

사주팔자가 정해져 있는데 뜬구름 같은 삶을 사는 인생들이 그것을 모르고 공연히 스스로 바쁘기만 하다는 옛 선인들의 말이다. 

 

삶이란 예정조화 되어있는 것을 모르고 쓸데없이 이리 갔다 하면서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결국은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도망갈 수 없음을 설파한 잠언이기도 하다. 한국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드라마틱한 방향전환이나, 또는 대단한 성공과 실패를 경험 할때 이를 사주팔자 탓으로 돌리는 관습이 있다.  


그사람의 태어난 생년, 월, 일, 시를 干支로 환산해 운명을 예측하는 방법인 사주팔자. 한국에서는 운명의 이치를 따지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命理學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운명을 추리한다고 해서 推命學 중국에서는 운명을 계산해 본다는 의미의 算命學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한자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은 사주팔자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식자층은 아직도 서로 만나면 상대방의 사주팔자를 주고받는 풍습이 일부에는 남아있다.  


일본의 사주팔자 대가 아베 다이장 阿部泰山 이라는 인물이 추명학을 한단계 끌어 올렸다. 아베사후 그의 제자들이 간행한 아베다이징 전집 26권을 현재 일본 추명학의 수준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웨이쳰리 韋千里가 유명하다. 그는 마오쩌둥 정권후 홍콩으로 망명했고 대만에 자주 왕해했다. 장제스와 개인적으로 밀접해 대만정부의 중요한 정책결정에 관여하는 국사대접을 받았다. 또한 동양사상에 호기심많은 프랑스 신부에게 사주를 가르쳐서 그들이 서양 점술학의 개량작업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이석영,박재완,박제현같은 대가가 정계,재계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의 웨이쳰리나 일본의 아베다이징이 누렸던 지위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사회에는 미신,잡술로 평가되기에 공식적 담론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속신앙 연구는 활발해도 사주팔자는 시도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주팔자는 한국사회의 裏面문화 behind culture가 되었다. 무대 위에서는 논의되지도 주목받지도 못하지만 무대뒤에 배후에서 활발하게 유통되는 문화이다.  


학문적인 연구는 적지만 사주가 인터넷과 결합되는 속도는 중국, 일본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 한국인터넷 유료사이트중 가장 활발한 것이 포르노와 사주이다. 주 연령층이 10대후반에서 30대초반에 집중되어 있다. 

 


▲ 명리학에 조예가 깊은 성삼문의 외조부는 사주가 좋은 시간에 손자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다듬이 돌로 출산 시간을 늦춰보았지만, 참지 못한 산모가 아이를 낳았다. 낳아도 좋냐고 세 번을 물었다고 해서 '삼문'이라고 지어진 사육신 성삼문의 묘소, 만약 더 늦게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주팔자의 역사적 맥락? 


그 사람의 연월일시를 간지로 환산해 운명을 예측하는 명리학은 중국의 도교 수련가였던 서자평에 의해 이론체계가 정립되었다. 오늘날 명리학의 대표적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淵海子平 서자평의 저술이다. 10세기 후반 인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사주팔자에 대한 최초 공식기록은 조선왕조 법전 경국대전이다. 여기에 사주팔자를 보는사람을 국가에서 과거시험으로 선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인계급이 응시하는 잡과이다. 시험과목은 徐子平 袁天綱 範圍數 剋擇通書 등이다. 서자평은 사주팔자 원리이고 원천강은 택일 극택통서는 전해지고 있지 않다. 오늘날도 서자평은 필수교과서로 평가된다. 따라서 1400년 후반정도에 전래되었다고 추정한다.  



운명을 결정짓는 양대요소 - 입태일과 출태일  


사주팔자에서 그 사람의 운면을 결정짓는 양대 요소는 입태일과 출태일이다. 즉 입태일은 합궁일 출태일은 태어난날 정확히 탯줄을 자른 바로 그시간이다. 그시간에 천지의 음양오행기운이 아이에게 순간적으로 들어온다. 사주팔자는 바로 그탯줄자르는 시각에 들어온 음양오행 기운의 성분을 10간 12지로 인수분해한 것이다. 입태일은 IN PUT 출태일은 OUT PUT되는 시점이다.  


사주는 네기둥이란 뜻이고 팔자는 여덟글자라는 뚯이다. 년, 월, 일, 시를 네기둥으로 보고, 한 기둥에 두 글자씩으로 외어 있으므로 모두 여덟글자이다.  


조선시대 사주팔자가 반란사건과 관련해 등장하는 이유는 명리학 자체가 계급차별에 대항하는 대항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아니더라도 사주팔자만 잘타고 나면 누구나 왕이되고 장상이 될 수 있다는 기회균등 사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풍수사상도 마찬가지이다. 사주팔자는 정감록으로 대표되는 풍수도참설과 결합해 조선후기 민란의 중요한 대중동원 매카니즘으로 작용했다. 조선시대 사랑채에서는 정감록이 안방에서는 토정비결이 인기 였다. 이는 대중들의 관심을 설명해주는 사례이다. 



오행을 보고 이름을 짓는다  


사주팔자의 구성원리는 철저하게 음양오행의 우주관에 바탕이 있다. 만물은 음아니면 양으로 되어있고 그 음과양을 다시 수 화 목 금 토 오행으로 분화되고 오행이 다시 만물을 형성한다는 설명체계이다. 


사람의 사주도 크게 양사주냐 음사주냐로 분류된다. 양사주면 활발하고 음사주면 내성적이라고 본다. 


음양으로는 너무 간다하니까 세분해 오행으로 나누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출생 후에 이름을 지을 대에도 오행에 따라 지었다. 이름을 지을 대에는 그 사람이 출생한 년 월 일 시를 먼저 따진 다음, 만세력을 보고 네기둥을 뽑는다. 사주팔자를 뽑는 것이다. 이름지을때 오행의 과불급을 고려했다. 이는 오늘날도 이어진다, 

 


족보의 항렬, 장날을 정하는 원리  


족보의 항렬을 정할 때도 오행의 원리에 따랐다. 조선시대는 대가족 제도이고 대가족 제도에서 위아래를 구분하는 기준이 항렬을 정해놓고 이름을 짓는 방법이다. 예로 할아버지 항렬이 나무 木이 들어가는 植자라 하면 아버지 항렬은 불 火변이 들어가는 글자 중에서 정한다. 이런 돌림에는 오행의 상생순서법칙이 있다. 


오행의 상생순서는 수생목 목화생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에서 수는 목을 도와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수를 부모로 보고 목을 자식으로 보았다. 


산을 보는 풍수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시대 민사소송의 60퍼센트가 산송에 관계된 사건이라 한다. 산송은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소송이다. 풍수에서 산의 형태를 오행의 형태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수체의 산은 물이 흘러가는 모양이고, 화체의 산은 불꽃처럼 끝이 뽀쪽뾰쪽한 산, 예를 들면 영암의 월출산 같은 산이다. 


종교인들이 기도하면 기도발이 잘 받는 산이라 한다. 목체의 산은 끝이 삼각형처럼 되어 문필봉이라 불렀다. 필자가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4~5백년 된 명문가의 종가집이나 묏자리를 수십군데 답사하니 70퍼센트가 그 앞에 학자가 배출된다고 하는 문필봉이 포진하고 있었다. 금체의 산은 철모를 엎어 좋은 것처럼 생긴산이다. 이런 산세는 장군이 나온다고 한다. 토체의 산은 책상처럼 평평한 모양을 한 산이다. 제왕의 나온다는 산이다.  


한국의 장날을 정할 때도 이와 같은 5가지 형태의 산의 모습을 따라서 정하였다. 장은 경제행위와 정보교환의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그지역의 주산모양이 수체일 경우 1일과 6일이 장날이다. 숫자 중에서 1과 6은 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만약 주산이 火 일 경우 2일과 7일이 장날이다. 木체일 경우는 3과 8일 金체일 경우에는 4와 9이 土체일 경우에는 5와 10일이 장날이다. 

 



양지의 성리학과 음지의 명리학  


이와같은 음양오행사상으로 인간과 우주를 총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도표가 바로 태극도이다. 태극에서 음양이 음양에서 오행이 오행에서 만물이 성립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도표이다. 태극도는 성리학자들의 우주관을 압축시킨 그림으로 중요시 여겼다. 퇴계의 성학십도 남영의 태극도여통서표 송구봉의 태극문 우암의 태극문 한강의 태극문변 사미헌의 태극도설문답 화서의 태극서 노사의 문답류편 등이 그렇다. 


주자학에서 도를 통했다는 의미는 바로 태극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작업었다고 할 정도로 태극도는 조선시대 중요시 되었다. 명리학의 기본원리도 태극도이다.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성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완전히 똑같다. 조선시대는 태극도의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해 역사변천이나 왕조의 교체,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해석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태극도에서 파생한 성리학과 명리학 성리학은 인간성품의 이치를 다루고 명리학은 사람의 운명의 이치를 다룬다. 


그러나 같은 부모밑에 두아들은 다른 길을 걸었다. 성리학은 체제를 유지하는 학문으로 명리학은 체제 저항의 반체제의 술법이 되었다. 성리학은 양지의 역사로 명리학은 음지의 잡술로 되었다. 


임금주제 궁궐내 학술 세미나에서는 성리학이 토론의 주제이고 금강산 험난한 바위굴속에서는 당취들이 난산 토론에서 명리학이 단골메뉴였을 것이다. 


명리학과 성리학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면 진단과 서자평의 인간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陣단은 태극도를 중국화산의 석벽에 각인해 후세에 전한인물이다. 태극도가 성리학자들에게 전해진 계기는 진단의 덕택이다. 그는 북송초기의 저명한 도사이다. 후당때 무당산 구실암에 은거해 신선술을 연마했고 북송초기에 화산으로 옮겨살며 여러은사들과 교류했다. 이때 화산에서 같이 수도한 인물이 바로 명리학의 완성자인 서자평이다. 이때 화산에서 같이 수도한 이가 서자평이다. 


조선시대의 사주팔자, 이는 개인의 길흉화복을 예측한 점술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가들의 신념체계로 작동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신비적인 것이 곧 합리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는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신언서판이란 무엇인가 


身, 言, 書, 判 오랜 세월 동안 동양사회에서 인물을 평가할 때 적용하던 기준이다. 


신이란 그사람의 관사이다. 


남자관상의 포인트는 눈이다. 精氣는 눈에서 표출된다고 본다. 도교 내단학에서 인체의 세가지 보물 하단정의 精 중단전의 에너지 氣 상단전의 에너지 神이다. 눈빛에서 나오는 총기는 神 이다. 쉽게 말해 자연상태 원유가 精, 원유를 어느정도 가공해서 나온 석유가 氣이고 상당히 가공해서 나온 휘발유가 神이다. 


눈에 총기가 많으면 비싼 휘발유를 과소비하는 것이므로 빨리 고갈된다. 


따라서 回光返照 빛을 돌려 아랫배를 관조하라는 말은 눈의 총기를 밖으로 품어내지 말고 내면으로 감추하는 이야기이다. 가지몸을 감추는 둔갑술은 바로 눈빛을 감추는 일이다. 인도성자 마하리쉬의 눈빛을 보라. 


관상볼때 또하나의 포인트는 察色이다. 


필자는 관상은 돈오:한순간의 깨달은 사주는 점수:점진적으로 닦음에 비유한다. 


필자도 사주연구할때 그사람의 時가 불확실할때는 관상을 참고한다. 전성대 미대 이열모 교수가 재야에 알려진 관상의 고수이다. 이정호 전충남대 총장의 正易.  


언(言)이란 그 사람이 말을 얼마나 조리있게 하는 가를 보는 일이다. 


언을 조금 깊게 들어가면 목소리의 색깔을 분석해 보는 일이 중요하다. 목소리는 인체 내의 오장육부에서 기인한다. 사람마다 장기의 크기와 강약이 다르므로 목소리의 칼라도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오장가운데 상대적으로 비장이 강한 사람의 목소리톤은 음- 소리가 강하고 폐장이 강한 사람은 아- 간장이 강한 사람은 어- 심장이 강한 사람은 이- 신장이 강한 사람은 우- 소리가 강하게 나온다. 음 아 어 이 우의 음의 높이는 전통 음계인 궁 상 각 치 우와 배대된다. 


궁에 해당되는 음이 가장 낮은소리 우가 가장 높은소리이다. 그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보아 음 소리가 강하게 나오면 오장중 비장이 튼튼하고 그 성격은 군왕의 성품이 있다고 판단한다. 아 소리는 폐장에서 나오는 소리로 怒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어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이에는 슬픈마음이 우에는 음란한 마음이 들어있다. 


음상을 본다는 것은? 


음 아 어 이 우 와 같은 소리의 기준에 맞추어 그사람의 목소리를 분석해 보고, 그 분류 등급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양식을 미리 짐작해 보는 작업이다. 목소리는 인격의 표상인 것이다. 이는 또한 마음을 수양하는 수련방법에도 이용되었다. 신장이 약한 사람은 우 심장이 약한사람은 이 소리를 집중적으로 발성하면 효과가 있다. 이러한 음아어이우 발성수련법은 정역의 저자 김일부(1826~1898)선생이 체계있게 정리된 바있다. 


김일부는 조선초기 서경덕에 시작해 이지함 이서구 이운규로 내려오는 저선의 도맥을 이어받은 도학자이다. 그는 음아어이우를 길게 반복해 소리내면서 춤추고 노래부르는 영가무도 수련을 하였다. 이것은 정역파를 통해 전해진다. 이정호 권영원등에 의해 오늘날 전수되고 있다. 

 


사판을 거쳐 이판으로 가라 


서(書)는 글씨이다. 좁은의미로 글씨체 넓은의미로 문장력을 말한다. 


판( 判)이란 무엇인가? 판단력이다. 


신 언 서를 보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판단력을 보기 위해서다. 


결국 판단력에서 인간 능력은 결판이 난다. 인생사는 예스냐 노냐 판단의 연속이다. 결정적 순간 판단한번 잘못하면 만사가 끝장이다. 


판단에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理判 그리고 事判이다. 이둘을 합쳐 이판사판이라고 한다. 


이판사판의 어원은 불교의 화엄경에서 유래한다. 인간사의 범주를 이와 사로 파악한다. 이는 본체의 세계이고 사는 현상의 세계이다. 이는 눈에 안보이는 형이상의 세계이고 사는 눈에 조이는 형이하학의 세계이기도 하다. 화엄경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격은 이판고 사판에 모두 걸림이 없는 경지의 인격이다. 이판은 직관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내리는 판단이고 사판은 데이터를 분석 종합하여 내리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예를 들어 처녀총각 중매할때 신랑의 학벌, 직업, 외모, 집안을 따지는 것은 사판이고 사주와 궁합을 보는 것은 이판이다. 여기서 중요한점은 사주,궁합을 보기전 먼저 사판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그다음에 이판을 보는 것이 순서이다. 합리적인 것을 거쳐 신비의 영역오로 들어가는 수순이 지혜로운 자의 태도이다.  



한국의 명리학의 빅3 - 이석영,박재완, 박재현  


이석영 사주첩경 총6권 이 나오기전까지 한국에서 사주명리학 공부를 하려면 철저한 중국 원전에 의지했다. 연해자평, 명리정종, 적처수, 삼명통회, 궁통보감 등등 한문으로 된 고전들을 해독하느라 고생했다. 


박재완 명리요강 명리사전 그의 사후 제자들이 간행한 명리실관이 있다. 박재완의 제자 백영관의 사주정설 1982 검사이기에 실명을 안하고 가명을 썼다. 


명리실관의 한문이 유려하다. 변려문즉 한자4자 안에 내용을 함축한 것이다. 4자가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있어 리듬감을 느낀다.이는 사자소학이나 능엄경도 같은 변려문이다. 읽기 편하고 운율을 감상할 수 있다. 

 

박재현 維新 을 幽新  


명성이 알려진 도사는 익명의 다중을 상대해야한다.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은둔해야 한다. 


도사는 무대위에 서기전 삼십육계 놓을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도가에서 지향하는 인물은 세간에서 한몫챙겨 산으로 줄행항 놓는 것이 모범답안이다. 그래서 일급도사는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은둔을 고집한다. 성명규지 는 중국 명대의 내단서로 유 불 선 삼교합일의 입장에서 성명쌍수를 강조하는 일급비서이다. 


성명쌍수란 性 과 命 을 모두 닦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은 불교의 주특기로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는 방법이고 명은 도교의 주특기로 호흡법을 통해 몸을 강철같이 단련하는 방법이다. 선불가진수어록 개운조사 개운조사파에서 애호하는 수련서이다. 박재현이 발행인이다. 


수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의식의 집중이다. 문제는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이다. 화두에 집중할 것인가? 염불에 집중할 것인가? 능엄경에는 물소리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이는 쉽고 효과가 크다.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이 바로 이근원통이다. 주문수행은 기도나 참선보다 효과가 빠르지만 잘못하면 부작용이 크다. 마음이 강하지 못한이는 정신이 돈다 심하면 죽거나 병신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함부로 주문을 하지 못한다. 


사주는 이론만으로는 안된다 영발이 있어야 한다. 박재현은 구령삼정주는 어떤 주문인가? 조선후기 민간도교에서 유행했던 옥추경에 포함된 주문이다. 

 


역사의 최고의 점괘 , '너 자신을 알라! 


필자는 주문의 본질을 신들을 설득하는 소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소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신세계와 접속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소리였고, 그 소리는 주문이란 형태로 패턴화되었다. 따라서 주문은 가장 강력한 영적인 파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구령삼정주는 도교의 신들을 설득하는 주문이다. 불교의 준제주는 관음세보살에게 요청하는 구원이고 기독교의 주기도문 유고의 서경의 서문이 주문 대용품역할을 하며 옴 마 니 반 메 훔 6글자가 전부인 육자대명진언은 가장 유명한 주문으로 티베트에서 발효된 특유의 영성이 물씬풍겨나오는 주문이다. 비기자는 부전이라 감당할 그릇이 아니면 전하지 않는다.   


원광대 김낙필교수의 연구 조선후기 민간도교의 윤리사상 민심이 타락한 말세에 경을 입으로 외우면 구언받는다는 타력구원의 신앙이 내포되어있다.옥추경을 연구하며 추사 김정희도 옥추경을 좋아했음을 발견했다. 이는 운율이 좋았던 탓으로 사려된다. 


김일부의 정역의 핵심 메시지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주시계바늘이 정오를 지나 오후 3시쯤을 가리키고 있다는 주자이다. 낮12시가 지나 선천에서 후천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선후천 교체되는 변화를 금화송이라 노래로 표현했다. 


주문은 자기 마음대로 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구전심수의 세밀한 지도를 받아서 이뤄진다. 즉 스승으로부터 미묘한 부분에 은밀한 지도가 있어야 효과를 발생한다. 사주명리학에서 구령주를 주문해 효과를 보았다는 사실자체도 비밀이었다가 죽기전 제자에게 공개했다. 무노동이면 무임금이듯 무복채는 무적중이다. 



구령주의 뿌리는 계룡산과 청허선사  


박재현의 정신적 뿌리는 개운조사파 아라한과의 경지에 도달한 개운조사를 추종하는 개운조사파는 능엄경의 수행법인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노선을 가지고 있다. 계곡 물소리가 일품인 함양의 백운산 밑에 있는 백운암에서 수련을 했다. 윤청허선사는 함양읍 교산리 행교마을에서 한약방을 차려놓고 생계를 이어가다. 도교수행을 위해 산에 들어가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는 처음 10명의 제자를 받았는데 주문수행과정에서 3명은 죽고 4명은 정신이상 나머지 3명이 살아남았는데 그중 하나가 박재현이다. 나머지 두명은 정통 선도수련을 했고 박재현만 사주명리학으로 방향을 잡았다. 수행시절을 그리워하며 계룡산에 다시들어가 선불가진수어록을 발간했다. 


예언해도 누설을 말아야 하는데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앞에 곧잘 이에 허물어진다. 토정선생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조심하라 하기도 했다. 

 


발설과 은폐의 아슬아슬 줄타기  


발설하면 여러사람에게 시달리고 혹 틀리면 온갖 조롱을 듣는다 그러므로 숨는 지혜가 필요하다. 돈을 버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사실은 재물복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고향 서상면 옥산부락에 덕운정사를 지었다. 


박재현의 일생을 보면 너자신을 알라 희랍최고의 점괘이다 이는 헤로도토스의역사에서 나온다. 


자기자신을 객관으로 파악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통찰이다. 점의 궁극적 관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에 있다. 자기를 통찰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신탁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많은 술객 도사들이 빠지는 함정이 통찰력 부족이다. 다른사람 점은 잘봐주는데 자기자신은 보지 못한다. 말년의 박재현의 불행은 자기통찰에서 실패한 탓이다. 물론 자기를 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계율과 스승이 필요하다. 스스로 계율에 의지해서 자기자신을 체크해보고 스승으로부터 끊임없는 경책을 받아야만 스스로 반성할 수 있다. 


 

점이란 무엇인가  


기원전 3천년 전부터 존재한 직없이 점쟁이다. 내 미래에 대한 궁금중은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다. 

근래 직업가운데 점쟁이와 가장 비슷한 이가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이다. 

고스톱의 황금율도 운칠기삼이다 운이 70 기술이 30이란 말이다. 이 7할의 바탕에 깔려있는 원리는 무엇인가? 

 

첫째 相應 correspondence 상응의 원리 둘째 反復 의 원리 셋째는 鬼神 의 존재이다.  


상응의 원리란 시간,공간,존재 각기 다른 3차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리이다. 그 좋은 예가 카오스이론이다. 현대물리학에서 카오스이론은 북경상공의 나비 날개짓이 캘리포니아 상공에 가면 폭풍우로 변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언뜻 보며 혼돈같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상응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현대 물리학자들은 설파한다. 상응의 원리에 의하면 만물은 거미줄과 같은 미세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을 잡아 흔들면 다른 한쪽이 흔들린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풍수의 동기감응의 원리도 이와같다. 땅속에 묻혀 있는 조상의 뼈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 조상의 백과 후손의 백이 서로 감응한다고 본다. 그 감응현상은 꿈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나비의 날개짓은 점술가가 보면 하나의 징조이고 폭풍우를 예측한다. 점술가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지나치는 미세한 조짐을 주목하고 이를 잡아채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상응의 원리가 기초한 점서가 주역이다. 주역의 64괘는 뽑는 사람의 마음과 상응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해석해야 한다. 문제는 괘를 뽑는 사람의 상응능력에 달려있다. 즉 현실과 괘를 연결시키는 능력이다.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64가지 괘 중에서 과연 어느 괘에 배당할 것인가 그 사람의 주관적인 영역에 속한다. 


주역은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괘로 환원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경전으로 다가온다. 


환원시키기 위해서는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는 방법이다. 감각이 예민하게 다듬어지면 어떤 사물을 대하는 순간 즉시 괘로 환산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역은 책만 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예민한 감각의 확보가 관건이다.   


6시간은 부동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야 고요함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요할 줄 알아야 내면세계에 들어가고 내면세계에 침잠해 있을때 외부세계의 미세한 출렁거림도 그대로 포착된다. 부동자세의 시간과 내면세계의 깊이는 비례한다. 부동자세 훈련이 어느단계에 이르면 숲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어온다. 


이처럼 예민한 상태에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풍기는 냄새에서 부터 얼굴에서 풍기는 빛깔 목소리의 칼라 눈동자에서 나오는 빛의 강도와 크기등이 세밀하게 체크된다. 내면의 고요한 세계에 침잠하는 것을 가리켜 삼매라고 부른다. 

 


불교의 休休庵坐禪文 고승들은 삼매의 극치를 나가 대정에 들었다고 표현한다. 


나가는 큰 뱀을 지칭하는 단어로 큰 뱀은 똬리를 틀고 가만히 있으므로 깊은 고요함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고 그 고요함의 극치에서는 큰 지혜는 솟아난다. 비범한 지혜는 내부에서 솟아나지 밖에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그래서 고요함이 중요하다. 那伽大定 에 도달한 고승은 여서가지 신통력을 갖춘다 경전에 나와있다. 


누진통 정액이 나오지 않는 경지로 성욕에서 해방된 징표이다. 


신족통 하룻밤에 수천 리를 간다는 축지법. 


천이통은 하늘의 소리를 듣는 능력. 


타심통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 내는 능력. 


숙명통은 전생을 알 수 있는 능력. 


천안통은 천리박의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 


숙명통은 속세 중생들이 가지는 능력으로 숙명통에 도달하면 전생 현생 내생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천태종의 개창조인 상월조사는 숙명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 고승이었다 한다. 소백산 구인사는 그가 창간한 사찰이다. 

 


반복의 원리 - 규칙적인 반복은 예측을 가능케 한다.  


점이 70퍼센트 맞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반복의 원리이다. 밤낮을 보자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반복한다. 사계절도 계속 돌아간다. 음양오행이 여기에서 나왔다.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적의 순환이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그러니까 사계절의 가장 중간지점에 토를 배치했다. 봄은 목, 여름은 화, 가을은 금, 겨울은 수. 음양오행은 자연의 규칙적인 반복현상을 관찰한 결과이고 이를 이론화함으로써 다가올 일을 예측하는 쪽으로 이용되었다. 1년은12개월 12달이다. 12번 보름달을 본다. 보름달이 11번 이거나 13번 이었던 적은 없다. 12번 반복에서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라고 12지가 발생했다. 하루가운데도 12시간 이것이 12진법이다. 

  

12에다가 동물을 배당하였다. 서기2세기경 왕충의 논형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는 숫자에 인격성을 부여했음을 뜻한다. 이때부터 숫자는 인격을 가지고 의미를 지니고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2지와 운명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예가 당사주라고 불리는 운명감정법이다. 당나라때 사주라해서 당사주라 한다. 이는 완벽한 12진법을 사용한다. 子는 귀하다는 의미의 天貴에 해당, 丑은 고생한다는 의미의 天厄, 寅은 권력을 잡는 다는 天權 ,卯는 참을성이 부족한 天破 , 진은 꾀가 많은 天奸 , 巳는 글을 좋아한다는 天文 , 午는 복이 많다는 天福 , 未는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天驛, 申은 외롭다는 天孤 , 酉는 과격함을 상징하는 天刃 戌 은 사교성을 의미하는 天藝 , 亥는 건강함을 의미하는 天壽를 배대시켰다. 


오로지 12지만 가지고 생년 월 일 시를 판정하는 당사주시스템은 간단하다. 십이지에다 십간까지 모두 동원해 보는 육십갑자 시스템의 사주명리학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당사주가 구구단이라면 사주명리학은 인수분해에 비유할 수있다. 히사시 永田久의 '역과점의 과학' 동문선, 심우석譯 잘정리되어 있다. 정다운스님의 인생십이진법도 쉽게 잘설명되어 있다. 


사주명리학은 반복의 원리에 기초해 있음을 주목하자. 반복의 원리는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절, 그다음에 1년 12달의 주기에 유래한 12지 . 거기에다 한가지 덧붙이면 10 간이다.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를 십간이라 부른다. 태양의 행성 중에서 인간의육안으로 관찰되는 별은 5개 행성이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다. 육안으로 보인다는 것은 지구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서양의 고대 점성술에서도 가장 중시된 별은 해와 달 그리고 오행성이었다. 


음양오행설에서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천간의 10 이라는 숫자를 생각하면 2 음양*5 오행성에서 10 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매일 하늘에 떠오르는 달과 해가 절대적으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이고 오행성은 그 다음에 영향을 미치는 종속변수로 생각한다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결합은 2*5로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사주 명리학의 이론의 일차적 기반은 10간 12지에 있고 그다음에 10간 12지를 음양오행으로 인수 분해 한 것에서 모든 해석이 도출된다. 

 


풍수도참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오행, 십간십이지와 뗄 수 없는 관계가 풍수도참설이다. 도참이란 그림이나 글자를 사용한 예언을 말한다. 이것이 정권교체기마다 단골로 등장해 민심을 사로잡았다. 조선시대 정감록은 체제에 소외된 지식인에게 해방신학이자 구원의 복음서였다. 아직까지도 계룡파 태백산파 지리산파를 비롯 전국의 술사들에게 은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룡산파의 비결과 탄허스님 


우리에게 비결은 어떤 의미인가? 


비결이란 무엇인가? 과연 인생살이에서 비결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가르켜 비결파라 한다. 정감록 임오년에 문둥이 관상을 지닌 사람이 왕이 된다는 숙시비결 토덕의 균형감각을 갖춘 충청도가 대권을 잡는다는 오행상생론 등등. 이런 예측은 비결파들 특유의 세상 읽기 방법이다. 보통사람들은 사회과학적 조사방법에 의거한 여론조사에 의지하나 독특한 주관을 가진 비결파들은 하늘의 계시를 자신이 직접 중계방송함으로써 여론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일제때 조선총독부는 민간에 은밀히 떠도는 비결을 수집했다. 이는 민심의 향배에 영향을 미친다 진단했기 때문이다. 일제가 보기에 조선은 풍수도참을 원리로 하는 비결에 의해서 민심이 움직이는 특이한 사회였던 것이다. 비결을 신봉하는 사람치고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은 적었다. 조선시대 운동권의 교본이 정감록이다. 


정도령은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였고 메시아가 출현하면 민중은 부도덕한 체제의 탄압에서 해방된다고 믿었다. 총독부가 전국의 비결을 수집해 만든 소책자가 조선비결전집이다. 이 비결들이 전하는 메세지의 공통점은 언제쯤 좋은 세상이 온다. 좋은 세상을 몰고 오는 인물은 누구이다. 언제쯤 난리가 난다. 등등이다. 도탄에 빠진 민초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이다. 총독부는 한편으로 이런 비결의 유통을 저지하고 감시했지만 또한편으로는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용했다. 그중 하나가 무라야마가 저술한 조선의 점복과예언 무라야마는 조선의 풍수 저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비결을 이용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개인차원의 비결은 십승지이다. 풍기, 무주, 계룡산, 변산등등에 많이 이주했다. 

 


탄허스님과 숙신비결 


탄허스님은 불교고승이었지만 주역을 비롯한 역술과 풍수도참에도 깊은 식견을 가졌다. 선가적 입장에서 입장에서 주역을 해석한 주역선해 3권이 있다. 


탄허는 "삼라만상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와 "부분이 즉 전체요. 전체가 즉 부분이다"는 도리를 밝히는 화엄경을 體로 하고, 앞일을 예측하는 주역을 用으로 하여 나라의 앞일을 예견하며 1960~70년대 국사역할을 했다. 그는 주역의 육효를 사용해서 점을 치는 육효점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주역이 가지는 점서적인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 바로 육효점이다. 이는 역대 주역을 마스터 했던 공자, 주렴계, 주자, 소강절, 서경덕, 이지함과 같은 모든 학자들과 구루들의 실천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죽어라 배우기만 하면 무엇하는가 현실에 활용해야 할 것 아닌가.  


불가에서는 주역을 은근히 거부하는 분위기가 있기에 일체가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왜 괘를 뽑느냐는 것이다.  


탄허는 불교승려이면서도 유 불 선 삼교를 아울러 포용하는 포함삼교의 전통을 계승했다. 포함삼교는 최치원의 말이다. 유교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예를 배우고 불교로 마음의 구조를 밝히는 명심의 이치를 선교로 부터 몸을 다스리는 양생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탄허가 머무르던 오대산 월정사, 서울의 대원암, 계룡산 학하리의 자광사 

 


해운과 탄허의 운명적 만남 - 숙신비경의전수  


숙신비결은 탄허가 계룡산 학하리의 자광사에 머물던 시절에 입수한 것으로 추측된다. 학하리는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중국일대를 방랑하며 주역과 관상 그리고 수많은 비결을 입수한 해운은 그것을 탄허에게 주었다. 김일부의 정역은 매우 난해하다. 주역에다가 하도낙서, 음양오행, 십간십이지, 고천문학, 사서삼경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진 책이라 이를 알아야 이해가 가능하다. 


정역의 요점은 지축이 바뀐다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어마어마한 거대 담론이 후천개벽설이다. 365일이 360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구상의 총체적인 변화가 뒤따른다. 그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이 물속에 침몰한다는 것이다. 지축이 바뀌면 북극의 빙하가 녹아 일본과 동해안이 가라앉고 반대로 서해안은 올라와 육지로 변한다고 전망했다. 탄허스님이 밝혀놓은 그 예언이 주역선해 교림출판사 1982 3권 마지막 부분인 427쪽에 나온다. 김일부는 1880년 중반 정역을 완성하고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일본이 망한다는 예언을 한 것이다. 


탄허의 출가전 속명은 김탁성이다. 


김제 만경읍의 대동리 김씨 집안이다.아버지 김병일은 독립운동을 했고 민족종교에 가담했다. 당시 만주로 간사람이 총을 들고 싸웠다면 민족종교에 간사람은 주역에서 이야기하는 세상의 변화와 정역의 후천개벽에 인생을 걸었다. 해방이후 사회주의가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세대의 자손들이 좌익에 적극가담했다. 아버지 세대가 미신적인 후천개벽 운운하다 인생을 망쳤다 하면 우리대의 자손은 미신이 아니 과학적 사회주의를 가지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래서 왜정때 계룡산, 모악산 등지에서 민족종교 운동을 하던 세대 자손들이 대부분 좌익을 했다.


주역이나 마르크시즘이나 세상을 바꾸는 교과서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전자는 미신적 후자는 과학적방법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1980년 적극적으로 운동권에 가담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1990년대 입산수도로 돌린 사람들이 많다. 


秘訣 은 VISION을 내포한다. 비결은 결국 미래를 예언하는 작업이고 비전도 역시 미래를 이야기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국 산으로 가야 비전을 얻는다는 것이다. 산에 가면 비전 뿐아니라 마운틴오르가즘까지 부수적으로 얻는다. 산과 인간이 하나가 되었을때의 느낌을 말한다. 한국은 세계최고의 산국이다. 산국이란 의미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산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말이다. 


마운틴오르가증은 건강과 영성을 지향하는 목표이다. 

 

▲ 풍수에서는 산의 형태를 오행의 형태로 설명한다. 종교인들이 기도를 하면 기도발이 잘 받는 산이 화체(火體)의 산이다. 

불꽃처럼 끝이 뾰족뾰족한 산이 화체의 산으로, 영암 월출산(위 사진)이 대표적이다. 


 

음양오행으로 보는 산의 관상과 격국  


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산마다 관상이 다르고 격국이 다르다. 산의 관상과 격국을 인수분해하는 공식은 음양오행이라는 패러다임이다. 산은 음산과 양산으로 구분해 본다. 음산은 육산 대표적으로 지리산 오대산이고 양산은 골산으로 설악산, 가야산, 월출산등등 이다. 이런 바위산에는 불교의 사찰과 도교의 도관들이다. 바위로 이뤄진 산은 악산인데 지기가 강해 일반인이 살기 좋지않다. 그러나 정신수련자가 살기 좋다. 양산은 화강암이 주종을 이루고 바위중 강한바위가 화강암이다. 


화강암에서 나오는 지기는 사암이나 현무암보다 강하다. 비전을 얻으려면 화강암 산으로 가야 한다. 계룡산도 화강암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계룡산은 모두 통 바위로 되어있다. 통 바위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산 전체가 바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력한 지기를 발산한다. 

 


접신이란 무엇인가 


태극도설에 사시합기서 일월합기명 귀신합기길흉 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는 곧 길흉을 미리 알려면 귀신을 이용해야 한다. 


이성과 감성위에 영성이 있다. 앞으로 영성이 주목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한국사람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자본은 이 영성이다. 적어도 5천년 쌓아온 두터운 지층이 있다. 문제는 무성을 영성으로 승화시킬 자질이다. 자질의 핵심요건은 봉사정신이다. 


심령과학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에 빌면 이 고조부는 나의 보호령이다. 즉 수호천사이다.  


물은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매우 훌륭한 수단이다. 계곡의 물소리도 좋지만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해조음소리가 천하일품이다. 철썩 철썩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의식을 집중하면 삼매의 깊은 경지에 들어간다. 


관음의 숨은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음이란 소리를 관한다(집중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유명한 관음도량이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있는 것이 이때문이다. 동해안 낙산사의 홍련암, 서해안 석모도의 보문사, 남해안의 보리암이 모두 해조음을 잘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우리가 보통 역술이라 말할 때 그 범중는 주역과 사주명리학이 모두 포함된다. 역술의 대가는 양쪽모두 조에가 깊은 사람을 말한다. 주역은 8괘를 기본으로 64괘를 조합해 인간과 세계를 예측한다면 사주명리학은 십간십이지를 기본으로 한 육십갑자를 가지고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방법이다. 양자의 공통점은 예측을 위한 방법론이다, 차이점은?주역은 음양에서 출발해 사상 사상에서 팔괘 팔괘에서 육십사괘로 뻗어나가는 방식이다. 이를 수로 표시하면 그 뻗어나가는 방식이 명료히 드러난다. 


반면 사주명리는 숫자로 표현하기 어렵다. 육십갑자 모두를 음양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오행으로 곱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첨가되는 부분이 생년 월 일 시라는 네기둥이다.그래서 사주 보기가 훨씬 복잡하다. 주역은 어떤사람의 점을 칠때 지금 당장만 필요하지만 사주로 볼때는 년 월 일 시가 모두 필요하다. 주역이 압축적 결론을 내리는 장점이 있다면 사주는 서사적인 전망에 유리한 장점이 있다. 

 


주역을 대하는 세가지 입장 


주역은 기원전 5세기 이전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해 왔다. 주역에 대한 입장은 세가지 첫째 점서 상수학 송대 소강절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저서 황극경세서는 상수학적 입장에서 우주변화를 설명한 명저이다. 후천개벽이라는 한국의 민족종교자들에게 소강절의 상수학이 이어져 내려온다. 조선에서는 서경덕 이토정 이서구 김일부 김일부의 영향으로 후천개벽을 주장한 민족종교 지도자들은 동학의 최수운, 모악산의 강증산, 원불교의 박중빈을 예로 들 수 있다. 


두번째는 도덕적 입장. 점을 쳐서 미래의 길흉을 예측하는 것은 괴력난신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보고 여기서 벗어나려 했다. 괘를 보고 자기의 마음을 수양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자기수양의 차원에서 주역을 보고자했다. 송대의 정이천이 대표적이다. 조선중기 겸암 류운용이 있다. 


세번째는 도교의 내단적입장이다. 외단의 반대말이다. 외단은 유황등을 제련해 만든 불사약을 지칭하면 내단은 외부의 약물이 아닌 내에서 단을 찾았다. 인체 내의 하단정에 기를 모으는 방법이 진짜 신선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았다. 단전호흠을 중시하는 단학의 입장에서 주역을 본 것이다. 내면의 연금술을 설명한 책이 위백양의 주역참동계 오늘날도 단학의바이블로 존중받고 있다. 


조선은 주역의 나라였다. 식자층이라 하면 모두 주역에 골몰하였다. 주역은 이과에 관한 책이다. 사서는 암기하면 되지만 주역은 응용과 분석을 요한다. 더 들어가면 이과에서 다시 문과로 되돌아 온다. 


주역을 이해하려면 하도와 낙서 그리고 팔괘와 육십사괘의 수많은 조합을 파악하고 이를 실전에 적용하기까지는 대단히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야 한다. 주역을 했다는 이는 많아도 이를 실전에 응용하는 이가 매우 희소한 이유는 이처럼 공부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부패한 현실정치에 절망한 재야의 뜻있는 선비들은 주역을 가지고 시대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변화에 미리 대비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주역은 변혁을 꿈꾸는 이들의 성경이었다. 한자문화권 식자들은 주역 당시 사마천의 사기가 필수과목이었다. 주역은 철학 당시는 문학 사기는 역사이다. 


야산 이달1889~1958은 근세 한국주역사의 특출한 존재이다. 주역이란 무엇인가, 주역을 공부하면 어떤 능력을 갖게 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고 간 분이다. 아울러 주역이란 공부할만한 학문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간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근세 주역의 대가인 김일부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인물이 바로 이야산이다. 


김일부가 후천개벽에 초점을 둔 거시적 주역이라면 야산은 일상사에서 주역의 원리를 적용하는 미시적 주역에 능통했다. 김일부를 쳐다보면 우주사의 변천이 느껴지고 야산을 보면 시계바늘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은 정밀함이 감지된다. 


야산에게는 5남1녀가 있다. 사남 이이화는 토종 역사학자로 유명하다. 삼남 간화의 아들이 이응국, 이응문이다. 형인 이응국은 의리적해석이 밝다면 동생인 이응문은 상수적 해석에 능하다. 대둔산 석천암의 108제자 - 대둔산은 화강암이다. 야산이 자신의 학문의 포부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공개한 곳은 대둔산이다. 이후로 주역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야산의 생년월일은 1889 음력9월16일 진시 

 


관상의 세계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거사 출가하지 않고 재가에서 불교수행을 하는 남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거사가 주는 매력은 비승비속이다. 승도 아니고 속도 아니다. 뒤집어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까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다. 승의 세계가 지닌 신비도 탐구하고 세속의 저잣거리의 치열함도 아울러 맛볼 수 있다.  


유교에는 처사가 있다. 재야에서 학문과 도덕에 힘쓸뿐 벼슬에 나가지 않는 선비를 처사라 부른다. 남명 조식이 한국을 대표하는 처사이다.   


도교에서는 술사이다. 학이 이론이라면 술은 이론을 현실에 적응하는 방법이다. 한자문화권의 술사의 가장이상적 모델은 초한지에 나오는 장량이다. 술사는 광범위한 공부를 해야한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보고 그 사람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파아하는 힘이 바로 지인지감이다. 지인지감을 갖추기 위한 필수가 관상이다. 관상은 얼굴에 나타난 현상을 통해 그 사람의 심상을 읽자는데 목적이 있다.   


전주에 사는 황산 김동전 술사의 맥을 이어가는 이다. 


관상이란 좁은의미로는 그사람의 얼굴만 보는 것이고 넓은 의미로는 얼굴을 포함해 체격, 걸음걸이, 밥먹는 모습, 평소의 행동거지, 잠자는 모습, 목소리까지 포함한다. 정확히 보려면 어느정도 그사람과 생활해 보아야 한다. 관상은 중국의 의학서로 사용되던 영추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관상을 보려면 의학에 밝아야 한다. 


관상의 기본은 관형찰색이라고 한다. 관형이라는 것은 그사람의 이목구비이다. 이목구비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찰색은 얼굴의 빛깔을 보는 것인데 이는 수시로 변한다. 기찰은 얼굴에 표출되지 않은 기까지 볼 수있어야 한다. 이는 관상가의 정신수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신수련 없이는 기찰이 불가능하고 기찰이 불가능하면 관상의 핵심을 놓치는 수가 있다. 따라서 기찰이 가장 어려운 경지이다. 


기찰을 하려면 어느부위까지 보아야 하는가? 눈이다. 눈을 보면 그사람의 현재상태 그리고 잠재적인 가능성까지를 엿볼 수 있다. 



하늘의 이치는 곧 땅에 나타난다. 

두암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 


자기 인생이 지금 몇 시에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한자문화권 천재들이 고안한 것이 사주 명리학이다. 


사주명리학이란 천문을 인문으로 전환한 것이다. 하늘의 문학을 인간의 문학으로 하늘의 비밀을 인간의 길흉화복으로 해석한 것이 이분야이다. 


한의학과 사주명리학은 상호호환성을 지니고 있다. 대병은 팔자에 타고나고 소병은 관리소홀이다는 명제이다. 그 사람의 원초적인 성격이나 기질은 타고 난다. 편벽된성격이나 기질이 오랜 시간 쌓이면 대병이 된다. 


대병이란 고질병을 지칭한다. 이고질병은 성격과 기질에서 연유한 것이고 그래서 사주팔자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자잘한 병은 후천적인 건강 관리 소홀로 걸린다. 


사주를 보고 병을 미리 아는 원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우리 인체의 중요한 장기는 오장이다. 이는 오행과 연결되어 있어 어떤 오행이 그 사람의 사주팔자에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거기에 해당되는 장부에 이상이 생긴다고 본다. 


천지인 삼재에 모두 적용되는 공통분모를 좁혀가면 음양오행이라는 거대 담론체계가 나타난다. 명리학과 한의학도 마찬가지이다. 하늘에 해와 달 그리고 별이 있듯이 땅에도 역시 거기에 부합되는 형상이 있고 인체의 장부에도 음양오행이 적용된다. 음양오행이라고 하는 여의주를 하나 가지면 사주, 풍수, 한의학을 하나로 꿸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시스템적 사고이다. 이걸 건드리면 저것이 움직인다. 이것이 동양사상의 특징이다. 그래서 동양사상은 시간이 필요하고 연륜이 필요하다. 전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기본전제가 되는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오행은 그 이상의 포괄적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서 이해가 쉽지 않다. 영어는 상업적 언어라 간단 명료하나 한문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다의적이다.  


이런 오행에 대한 확실한 이해의 책이 두암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 가 있다. 1966년 초판되어 40년가까이 스테디 셀러이다. 그의 사주는 1966 음력6월8일 인시이다. 


대전대 한의학과 대학원 석사논문인 '한동석의 생애에 관한 연구' 권경인 논문이 눈에 띤다. 


한동석의 외할머니가 원씨였는데 그 외할머니의 오빠가 이제마 밑에서 공부를 했다한다. 그래서 한동석의 집안에서는 이제마의 일화가 전해져 왔다. 이제마와 한동석 모두 이북사람이다. 이북사람은 실용적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시대 이북사람은 관직에 오르기 어려웠고 정치적으로 차별당했다. 


한동석의 사상적 뿌리에는 계룡산이 있다. 그가 가장 영향 받은 장소는 계룡산 국사봉밑에 자리잡은 향적산방이었다. 우주변화의 원리의 중요 골간인 지구의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음에 주목하는 정역사상이고 정역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향적산방을 출입하며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의학과 주역을 연결해 주는 공통고리는 음양오행이나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근취저신 원취저물의 사상이다. 가깝게는 자신의 몸에서 진리를 구하고 멀게는 사물에서 진리를 구한다는 사상이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가 따로 노는게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주역이다. 

 


황제내경 일만 독의 집중력 


한동석의 수도방법은 독경이었다. 황제내경의 운기편을 일만독가까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라운 집중력이다. 무조건 외우는 법이 정공법이다. 사자사지 귀신통지라는 말이다. 밤낮으로 생각하여 게으리 하지 않으면 활연하게 깨닫는 바가 있다. 선가에서 말하는 몽중일여; 꿈에서도 낮에 생각한 마음과 같음의 경지이다. 


조선후기 유가의 도인이었던 이서구가 서경의서문을 9천번 읽어서 이름을 서구라고 지었다 전해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동석의 파워의 진원지는 황제내경 1만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느니 염불한다는 말이 그냥나온말이 아니다. 



인생 바꾸는 법 6가지 - 삼성 사장단에 천기누설? 


삼성 사장들이 모여 ‘팔자를 고치는 법’에 귀를 기울였다.  


삼성 사장단은 16일 수요사장단회의에 조용헌 원광대 교수(동양학연구소 소장)를 초청, ‘삶을 개척하는 6가지 방법’이란 강의를 들었다. 조 교수는 사주, 풍수, 한의학 등에 정통한 사주명리학의 대가다. 


조 교수가 꼽은 6가지 방법은 


△적선을 하라(선을 베풀어라) 

△좋은 스승을 만나라 

△하루 한 시간 정도는 명상이나 기도를 하라 

△독서를 많이 하라 

△편안한 집에서 휴식을 잘 취하라 

△자기 자신을 알아라 등이다.  


조 교수는 “한국에서 500년 역사를 지닌 명문가를 살펴보면 공통점은 적선”이라며 “선을 베풀어야 집안이 잘된다는 얘기는 500년에 걸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생의 고비엔 가르침이 필요하다며 스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루 1시간은 차분히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져야 하며, 숙면할 수 있는 좋은 집터를 골라야 운이 트인다고도 했다. “좋은 집이란 숙면을 할 수 있는 집”이란 설명이다.  


독서광이 되라고도 주문했다. 조 교수는 “책을 읽으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 생기고 나쁜 운을 집에서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명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을 알고 쓸데없는 과욕을 부리지 말란 얘기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도 “사장들이 특히 ‘적선을 하라’는 말에 많은 공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취미로 등산을 즐기다 스님들과 가까워져 한의학, 풍수, 사주 등을 연구하기 시작해 불교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 그는 사주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사주명리학을 정립했다.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조용헌의 백가기행’ 등 많은 저서가 있다. 

- 한경.2012.05.


자료참고 :

http://blog.daum.net/secom08/5782784 

http://dmoo.tistory.com/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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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柱八字는 길흉화복 점치는 占術인 동시에 세상을 뒤엎으려는 혁명가들의 신념체계였다.

 

조선왕조 때 일어난 대부분 반란사건의 반란 가담자 취조 과정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四柱八字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주팔자는 어떤 형식으로 반란사건과 연결되었던 것일까. 사주팔자가 개인의 吉凶禍福을 예측하는 점술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가들의 신념체계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역사의 정권교체 과정에 음지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미쳐온 담론체계인 사주팔자와 명리학의 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번성한 점집들. 특히 인터넷 점집의 성황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문화현상으로, 사주팔자 문화가 구세대에서 신세대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연월일시 기유정(年月日時 旣有定)인데 부생(浮生)이 공자망(空自忙)이라!’ ‘연월일시(年月日時,四柱八字를 의미)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부평초(浮萍草) 같은 삶을 사는 인생들이 그것을 모르고 공연히 스스로 바쁘기만 하다’는 옛 선인들의 말이다. 삶이라고 하는 것이 예정조화(豫定造化)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쓸 데 없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결국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도망갈 수 없음을 설파한 잠언이기도 하다. 


한국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드라마틱한 방향전환이나 대단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할 때 이를 사주팔자 탓으로 돌리는 관습이 있다.‘사주팔자가 그렇다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 여자 팔자가 세어서 그렇다’ 등의 말은 한국사람들의 인생관에 깊이 뿌리박힌 표현이기도 하다. 


매사에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듯 이를 부정적으로 보면 숙명론에 함몰된 의지가 박약한 인간들의 넋두리이고, 긍정적으로 보면 인생이라고 하는 납득하기 힘든 연속극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감상법의 요체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철학자 세네카가 그랬던가! 인생이란 순응하면 등에 업혀 가고 반항하면 질질 끌려간다고…. 


그 사람의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간지(干支)로 환산해 운명을 예측하는 방법인 사주팔자. 한국에서는 ‘운명의 이치를 따지는 학문’이라는 뜻에서 이를 통상 명리학(命理學)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운명을 추리한다’고 해서 추명학(推命學), 중국(대만)에서는 ‘운명을 계산해 본다’는 의미의 산명학(算命學)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뜻은 같다. 한자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한·중·일 3국은 사주팔자라고 하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진 나이 지긋한 식자층들끼리 서로 만나면 상대방의 사주팔자를 주고받는 풍습이 일부에서는 아직 남아 있다. 비록 말은 서로 통하지 않더라도 사주팔자를 보는 방법만큼은 동양 3국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3국의 대가들을 살펴보자. 


일본에서는 아베 다이장(阿部泰山)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추명학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 일본은 그동안 중국·한국의 명리학 수준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되어 왔으나, 아베가 기존의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이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하면서 중국·한국의 수준을 따라잡게 되었다. 


아베는 메이지(明治)대학 출신으로 중·일 전쟁때 종군기자로 베이징(北京)에 주재하면서 사주팔자에 관한 중국의 모든 문헌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였다고 하는데, 그가 일본으로 되돌아올 때 가지고 나온 문헌의 양은 자그마치 트럭 1대분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고 전해진다. 전후 그는 일본에서 이 문헌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해 종래의 학설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던 것이다. 추명학이라는 용어 자체도 아베가 창출해낸 말이다. 아베 사후에 그의 제자들이 간행한 ‘아베 다이장 전집’ 26권은 현재 일본 추명학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중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 작고한 웨이쳰리(韋千里)가 유명했다. 그는 마오쩌둥(毛澤東) 정권이 들어선 이후 홍콩으로 망명하였기 때문에, 주로 홍콩에서 활동했고 대만을 자주 왕래했다. 사주팔자를 신봉했던 장제스(蔣介石)와 개인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웨이쳰리는 대만정부의 중요한 정책결정에 관여하는 국사(國師) 대접을 받았다. 


그는 홍콩에서 활동하면서 벽안의 서양인들과도 많은 교류가 있었으며, 특히 동양사상에 호기심이 많은 불란서 신부들에게 사주를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웨이쳰리에게 사주를 배운 불란서 신부들 몇몇은 현대 서양 점성술의 개량화 작업에 일익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웨이쳰리의 명성은 1960~70년대 한국에까지 알려져 삼성의 고(故) 이병철 회장도 1년에 한번씩은 꼭 홍콩에 가서 웨이쳰리를 만났다고 전해진다. 이병철 회장은 합리적인 판단이라 할 수 있는 사판(事判)과, 신비적인 판단이라 할 수 있는 이판(理判)을 모두 종합하는 이사무애(理事無碍·理와 事에 걸림이 없음)의 경지를 추구하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첨단산업의 전문가는 물론이고 역술에 정통한 술객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계층을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취향이 있었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도 역시 1970년대 이후 이석영(李錫暎,1920~83)·박재완(朴在琓, 1903~92)·박제현(朴齋顯, 1935~2000)과 같은 대가들이 출현해 정·재계 인사들의 정책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별도의 장에서 이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다루겠지만, 이 세 사람이 한국의 정·재계 중요 인사들의 진로와 인사문제들을 상담해 주면서 발생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소설이 따로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이들은 음지에서의 영향력은 상당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양지에서는 별로 대접받지 못했다. 중국의 웨이쳰리나 일본의 아베가 누렸던 사회적 지위와는 거리가 먼 대접이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명리학이 동양사상에 바탕을 둔 전통적 세계관으로써 어느 정도 대접받았던 반면 한국사회에서는 ‘점쟁이’ 또는 ‘미신·잡술’로 평가절하되면서 공식적인 담론체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그 결과 학계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같은 ‘미신·잡술’이면서도 무속신앙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활발한 편인데, 사주팔자에 대한 연구는 이상하게도 별로 시도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다 보니 사주팔자는 한국사회의 이면문화(裏面文化, behind culture)가 되었다. 무대 위에서는 논의되지도 주목 받지도 못하지만, 무대 뒤로 한걸음 들어간 배후에서는 활발하게 유통되는 문화가 ‘비하인드 컬처’라고 할 수 있다. 사주는 그러한 비하인드 컬처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문화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신세대로 이식되고 있는 四柱八字 


학문적 연구는 적은 반면 사주가 인터넷과 결합되는 속도는 한국이 중국·일본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세계에서 인터넷 사용률이 아주 높은 국가에 해당한다. 인터넷 사용률의 증가와 함께 등장한 문화현상 중 하나가 ‘사주’(四柱) 사이트의 범람이다. 한국의 인터넷 유료 사이트 가운데 현재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사이트가 2개인데, 하나는 포르노 사이트이고, 다른 하나는 사주 사이트인 것이다. 


포르노 사이트가 유료로 운영되면서 호황을 누리는 것은 세계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사주팔자를 상담해 주는 사주 사이트가 유료로 활발하게 운영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필자가 2001년 12월2일 인터넷에서 ‘사주’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무려 240개의 사이트가 나왔으며, ‘팔자’라는 단어를 검색한 결과 48개의 사이트가 나왔다. 약 300여개에 가까운 사이트가 이용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운영하는 유료 사이트였던 것이다. 


사주 사이트의 지나친 범람은 꼭 바람직한 사회현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이와 같은 인터넷 사주 사이트의 성황(盛況)은 일본이나 중국의 인터넷 문화와는 구분되는 한국적인 문화현상임이 분명하다. 아울러 인터넷을 이용하는 주 연령층이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음을 감안하면 사주라고 하는 것이 구세대에서 신세대 젊은 계층으로 이식(移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저변에서 이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주팔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사주팔자의 역사적 맥락을 추적해 보자. 


그 사람의 생년, 월, 일, 시를 간지(干支)로 환산해 운명을 예측하는 명리학은 중국의 도교 수련가였던 서자평(徐子平)이라는 사람에 의해 그 이론체계가 정립되었다. 오늘날 명리학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연해자평’(淵海子平)이란 책은 서자평의 저술이고, 책 제목 자체도 그의 호를 딴 이름이다. 서자평에 대한 신상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그의 생몰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가 도사(道士)인 진단(陣 :871~989)과 함께 중국의 화산(華山)에서 수도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대략 900년대에 활동했던 인물인 것 같다. 


따라서 서자평의 명리학은 10세기 후반쯤 세상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것이 언제 한국에 유입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시 서자평의 명리학은 중국의 왕실과 소수의 상류 귀족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유통되고 있었을 뿐 일반 대중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던 고급스러운 지식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외국으로 쉽게 반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감안하면 빨라도 100~200년 후에나 우리나라에 명리학이 들어오지 않았나 싶다. 



정치가와 점술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우리나라에서 사주팔자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기록은 조선왕조의 법전이라 할 수 있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다. 

경국대전은 세조 6년인 1460년에 편찬을 시작해 성종 16년인 1485년에 최종 완성되었으므로 조선 초기에 성립된 법전인데, 여기에 보면 전문적으로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을 국가에서 과거시험으로 선발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경국대전에 나타나 있는 과거시험 분류를 보면 중인(中人) 계급들이 응시하는 잡과(雜科)가 있다. 잡과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전문 기술직이다. 


잡과 가운데 하나로 음양과(陰陽科)라는 것이 있었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전문가를 선발하는 과거가 바로 음양과다. 음양과를 다시 세분하면 천문학(天文學)·지리학(地理學)·명과학(命課學)으로 나뉘고 초시(初試)와 복시(復試) 2차에 걸쳐 시험을 보았다. 초시에서 천문학은 10명, 지리학과 명과학은 각각 4명씩 뽑았다. 복시에서는 천문학 5명, 지리학·명과학은 각각 2명씩 뽑았다고 나온다. 


지리학은 풍수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관료로 채용하는 과목이고, 명과학이란 사주팔자에 능통자 자를 관료로 채용하는 과목이다. 과거시험은 매년 있었던 것도 아니고 3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자·오·묘·유(子·午·卯·酉)년에 시행하는 식년시(式年試)에서 ‘명과학 교수’를 초시에서 4명, 복시에서 2명씩 채용하였다. 3년마다 시행되는 명과학 과거시험에서 최종적으로 2명만을 선발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적은 인원만을 선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명과학의 시험과목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을까. 그 시험과목을 보면 ‘서자평’(徐子平) ‘원천강’(袁天綱) ‘범위수’(範圍數) ‘극택통서’(剋擇通書) 등이다. 서자평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주팔자의 원리에 대한 내용이고, 원천강은 사람의 관상(觀相)을 보는 책이며, 범위수는 어느 날짜에 혼사를 하거나 건물을 짓는 공사를 시작할 것인가를 논하는 택일(擇日)에 관한 책이다. 


‘극택통서’는 현재 전하지 않고 있어 어떤 책인지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없고, 나머지 과목들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명과학의 시험과목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과목을 꼽는다면 서자평의 ‘연해자평’이다. 서자평은 오늘날에도 명리학을 처음 공부하려는 학인들이 필수적으로 섭렵해야 할 교과서로 평가되는 책이다. 사주팔자를 해석하는 모든 기본 원리는 서자평에 들어 있다. 아무튼 명과학의 시험과목에 서자평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주팔자의 원리는 경국대전이 성립되던 1400년대 후반까지는 조선사회에 전래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공식적인 확인이고 비공식적으로는 15세기 후반 이전에 서자평의 명리학이 이미 조선사회에 유입되어 있었다고 추측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팔자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CD롬에서 ‘팔자’라는 단어를 검색한 결과 태종 17년(1417)에도 공주의 배필을 구하기 위해 남자의 팔자를 보았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왕실에서 사주팔자를 보고 혼사를 정하는 풍습이 그때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로 미루어 기록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고려말 조선 초에 서자평의 명리학이 중국으로부터 이미 들어와 있었으며, 왕실을 비롯한 일부 계층에서는 사주팔자를 통해 그 사람의 운명을 예측하거나 혼사를 정할 때 궁합을 보는 풍습이 유행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때까지는 명리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따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이 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이 임의로 사주팔자를 보아 주었을 것이다. 


그러다 아예 이것을 공식화하자 특히 왕실에서 그 필요성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왕실에서는 많은 왕자와 공주들이 출생했다. 이들을 시집·장가보낼 때는 사전에 궁합을 보는 일이 필수적인 일이었고, 궁합을 보기 위해서는 생년월일시와 같은 인적사항이 노출되어야 하는데, 그 신상정보를 외부에 함부로 공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명리학 전문가를 왕실 전용 관료로 선발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던 것 같고, 결국 명과학 교수라는 직책이 과거 가운데 하나로 채택된 것 아닌가 싶다. 


명과학 교수의 인원은 2~4명이다. 3년마다 돌아오는 전국 규모의 과거시험에서 이 숫자만 뽑았으니 매우 적은 인원만 채용한 셈이다. 이들은 말하자면 왕실 전용 사주 상담사들이라서 근무처도 서울의 궁궐 내에서만 근무했다. 지방에 출장간다거나 일반인들의 사주팔자를 보아 주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다. 허가 없이는 궁궐밖 사람과의 접촉도 불가능했다고 한다. 


왕실의 비밀이 유출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명과학 교수라는 직급은 잡과에 소속돼 낮은 편이었지만, 그 업무적 성격상 왕실 내부의 은밀한 정보를 접촉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직급이 낮다고 해서 함부로 볼 자리가 아니었다. 이들의 임무는 여러 가지였다. 공주나 왕자의 궁합을 보는 일, 합궁(合宮)할 때 그 날짜를 택일하는 일, 궁궐 내에서 왕자나 공주가 출생할 때 산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 사주팔자를 기록하는 일. 건물 신축을 할 때 길일(吉日)을 잡는 일, 임금의 명에 따라 대신들 개개인의 사주팔자가 어떤지를 보는 일 등이었다. 


이 가운데 합궁일(合宮日)을 살펴보자. 사주팔자에서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양대 요소는 입태일(入胎日)과 출태일(出胎日)이다. 입태일(入胎日)은 정자와 난자, 그러니까 부정(父精)과 모혈(母血)이 결합되는 날짜로 합궁일이 된다. 출태일(出胎日)은 그 사람이 태어난 날, 정확하게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가위로 자른 시각을 말한다. 탯줄을 자르는 바로 그 시각에 천지의 음양오행 기운이 아이에게 순간적으로 들어온다. 


사주팔자는 바로 그 탯줄을 자르는 시각에 들어온 음양오행 기운의 성분을 10간 12지로 인수분해한 것이다. 입태일은 ‘IN PUT’되는 시점이고, 출태일은 ‘OUT PUT’되는 시점이다. 문제는 출태일 못지않게 입태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료(?)를 투입할 때 과연 어느 시점에 투입하느냐에 따라 제품의 질이 결정되게 마련이다. 그 투입 시점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방정식의 핵심은 아이의 부모가 될 사람 사주를 먼저 본 다음 그 부모 사주의 약점과 강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成三問이 成三問이 된 까닭 


예를 들어 아버지 될 사람의 사주가 불(火)이 지나치게 많은 사주라고 하자. 사주에 불이 많은 기질은 엔진은 좋은데 브레이크가 약해 오버하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브레이크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 그 브레이크는 물이 된다. 그러므로 화(火)가 많은 사주는 반드시 수(水)가 보강되어야 한다. ‘수’가 많은 달은 1년 중에서 음력으로 10월·11월·12월이다. 이 3달은 해·자·축(亥·子·丑)으로 상징되는데, 공통적으로 수(水)를 나타낸다. 


‘화’가 많은 사람이 합궁할 때는 기왕이면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날짜도 같은 원리다. 음력이 표시되어 있는 달력을 보면 날짜마다 10간 12지가 표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 뱀(巳)·말(午)·양(未)의 날 일(日)은 화에 해당한다. 화가 많은 사람이 합궁할 때 가능하면 날짜는 피한다. 대신 수가 많은 돼지(亥)·쥐(子)·소(丑)의 날(日)을 택한다. 음양오행의 패러다임에 의하면 지구의 자전과 공전주기에서 이 날짜가 수의 기운이 많다고 보는 것이다. 


날짜 다음에 시간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루 12시간(24시간) 중에서 해시(亥時)는 밤 9시에서 11시이고, 자시(子時)는 밤 11시에서 새벽 1시이고, 축시(丑時)는 새벽 1시에서 새벽 3시까지다. 화가 많은 사람의 합궁 타이밍을 잡을 때는 기왕이면 이 시간을 잡는 것이 좋다고 본다. 결혼한 공주나 왕자가 첫날밤을 치를 때는 명과학 교수가 잡아준 날짜와 그 시간에 맞추어 성교를 했다는 이야기이다. 요즘에도 결혼할 때 신랑의 사성(四星·사주팔자)을 한지에 적어 신부집에 미리 보내는 풍습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출산 타이밍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단종 때 사육신으로 유명한 성삼문(成三問,1418~1456)의 출산에 관해 구전으로 전해지는 비화다. 성삼문의 어머니가 성삼문을 임신하자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으로 갔다. 딸의 진통이 시작되자 이제 막 산실에 들어가려는 부인에게 친정아버지(성삼문의 외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였다. “자네 산실에 들어갈 때 다듬잇돌을 들고 가소. 아이가 나오려고 하거든 이 다듬잇돌로 산모의 자궁을 틀어 막아 아이가 나오지 못하게 막아야 하네. 다듬잇돌로 막고 있다 내가 ‘됐다’고 신호를 보낼 때 아이가 나오도록 해야 하네.” 


다듬잇돌이란 옛날에 빨래를 두드릴 때 사용하던 직사각형의 넙적한 돌을 말한다. 성삼문의 외할아버지는 명리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던 인물이었다. 외손자가 태어나려고 하는 사주팔자를 계산해 보니 예정보다 2시간 정도 늦게 태어나야만 외손자의 사주가 좋다는 것을 감지했던 것이다. 산모의 진통이 극심해지면서 아이의 머리가 조금씩 나오려고 하였다. 


그러자 친정어머니(성삼문의 외할머니)가 산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편에게 “지금이면 됐습니까?”하고 물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이었다. 얼마 있다가 다시 “지금이면 됐습니까?”하고 또 물었다. “조금만 더 참아라.” 다듬잇돌로 아이가 못나오게 막고 있던 성삼문의 외할머니가 세번째로 외할아버지에게 물었다. 밖에서 ‘더 참아라’했지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산모는 성삼문을 낳고야 말았다. 산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성삼문의 외할아버지에게 ‘3번 물었다’(三問)고 해서 이름을 성삼문(成三問)이라 지었다고 한다. 만약 산모가 더 참고 기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성삼문은 39세에 죽었는데 1시간만 늦게 태어났더라도 환갑까지는 살았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삼문의 외할아버지가 그나마 다듬잇돌로 막는 처방을 한 덕택에 39세까지 살았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10대에 요절하고 말 운명이었다고 역술가들은 말한다. 어느 시간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명리학에서 팔자(八字) 가운데 두자(二字)가 바뀐다. 특히 태어나는 시(時)의 간지(干支)는 그 사람의 말년 운세와 관련된다고 해석하므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한다. 인위적으로 출생시간을 조절하는 제왕절개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궁궐 안에서 근무하는 명과학 교수의 업무 가운데 중요한 일 하나가 왕자들의 사주팔자를 보는 일이었다. 조선시대의 임금은 많은 자식을 낳았다. 그러므로 많은 자식 중에서 과연 어느 왕자(大君)가 왕권을 이어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뭇사람들의 지극한 관심사였다. 물론 장남에게 우선순위가 있지만 조선왕조의 왕권 승계 과정을 보면 장남이 승계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명과학 교수는 임금의 핏줄들, 그러니까 대군들의 출생연월일을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대권의 향방에 관한 1급 정보를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갑이라는 왕자가 군왕이 될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소문나면 사람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명과학 교수의 의견이 여론의 향배에 중요한 비중으로 작용했다. 


다시 말해 왕자들의 운명을 알고 있다고 여겨진 명과학 교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권력투쟁에 말려들 소지가 많았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어떤 대군은 사람들의 인심을 자기에게 쏠리게 하기 위해 명과학 교수에게 압력을 넣어 가짜 사주팔자를 유포시켰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되면 반대파에서는 그 명과학 교수를 제거하기도 하였다. 


궁궐 내에서 근무하는 의원(醫員)과 함께 명과학 교수는 왕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작전에 개입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의문사한 경우가 11건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만큼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치열했다는 증거다. 이 권력투쟁의 와중에 궁궐의 의원은 반대파의 음식에 독약을 타고 명과학 교수는 자신이 지지하는 대군의 사주를 조작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은 워낙 은밀하게 진행되었으므로 그에 관한 기록들이 별로 남아 있을 리 없다. 역술계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궁궐 내에서 근무하던 어의(御醫)는 정년퇴직하고 밖에 나가 개업할 수 있었지만, 명과학 교수는 정년퇴직 하더라도 궁궐 밖에 나가 개업하거나 사람을 만나 사주 상담을 해주는 일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고 한다. 명과학 교수는 왕실의 대외비(對外秘)를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년퇴직하고 난 후에도 행동에 제한이 있었던 셈이다. 


때문에 아무나 만날 수 없었다. 만약 전·현직 대감들이 궁궐 밖에서 명과학 교수들과 허가 없이 어울리거나 접촉하다 그 소문이 임금에게 들어가면 역모(逆謀)를 꾸미는 것 아니냐는 혐의를 받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명과학 교수는 단순하게 사주팔자만 보아주는 직업이 아니라 때로는 대권(大權)의 향배에도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로부터 정치가와 점술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 있다는 잠언이 이런 대목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四柱八字와 조선시대 반란 사건 


조선왕조실록에서 ‘팔자’를 검색하면 많은 기사가 나오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기사들의 대부분이 반란사건과 관계 있다는 점이다. 각종 반란사건에 가담한 죄인들의 취조 과정에서 사주팔자 이야기가 많이 튀어나온다. 왜 다른 대목에서는 별로 나오지 않다 하필이면 반란사건과 관련된 대목에서 집중적으로 팔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사주팔자는 어떤 방식으로 반란사건과 연결될 수 있었을까? 조선 초기인 단종 1년(1452)에 발생한 이용(李瑢)이란 인물의 역모 사건을 보자. 이용은 왕실의 여러 대군(大君) 가운데 하나였다. 역모사건 취조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맹인인 지화가 이용(李瑢)의 운수를 보고 망령되게 군왕의 운수라 하였고, 이현로(사주 전문가:필자주)가 이용에 대해 말하기를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운명이며 임금의 팔자’라고 하였다. 또한 풍수도참서(風水圖讖書)에 의거하여 말하기를 하원갑자(下元甲子)에 ‘성인이 나와서 목멱정(木覓井)의 물을 마신다’ 운운 하였는데 서울의 백악(白岳) 북쪽이 바로 그곳이어서 참으로 왕업을 일으킬 땅이니 그곳에 살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용이 그것을 믿고 그곳에 집을 짓고 무계정사(武溪精舍)라 호칭하여 도참(圖讖)에 응하려고 하였으며, 또 여러번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대군만 되고 말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맹인 지화가 주상의 팔자와 의춘군의 팔자를 비교해 점을 쳤다.” 


당시 대군 가운데 한명이었던 이용이 역모를 시도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본인의 사주팔자에 대한 확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확고한 신념 없이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쿠데타를 어설프게 시도할 수는 없다. 이용의 경우에는 그 신념을 형성하는 기반이 바로 자신의 사주팔자가 왕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었다. 신념의 기반은 정의감도 해당될 수 있지만 때로는 운명론도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처럼 조선시대 반란사건의 구체적 실상을 추적하다 보면 직·간접으로 사주팔자를 믿고 가담한 사례가 수십 건이나 발견된다.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군왕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점지한 인물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른바 왕권천수설(王權天授說)이다. 하늘의 뜻이 과연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풍수도참과 사주팔자였다. 필자가 보기에 풍수도참과 함께 사주팔자라고 하는 담론체계는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역사의 정권교체 과정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쳐온 단골메뉴이자 스테디셀러였다. 


조선시대 반란사건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사건이 바로 숙종 23년 승려들이 이씨왕조 전복을 시도하려 했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주로 금강산에 거주하던 승려들이 주동이 되었는데, 그 배후에는 명나라가 망하자 조선으로 망명하여 금강산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중국인 출신 운부(雲浮)라는 인물이 있었다. 운부는 당시 나이가 70이었다. 천문·지리·인사에 통달하여 그 식견과 경륜이 제갈공명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금강산 일대의 승려들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운부는 금강산 일대의 승려들을 규합하고 황해도의 장길산 세력과 합류한 다음 정씨(鄭氏) 성을 가진 정도령을 내세워 역성혁명을 시도하였다. 운부와 장길산이 연결된 이 반란사건은 1970년대 반란사건 전공이던 영남대 정석종 교수에 의하여 연구 정리되어 그 자료가 소설가 황석영씨에게 제공되었다고 한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은 실제 있었던 이 자료를 기본 뼈대로 하여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인 것이다. 역사학자 이덕일씨가 쓴 소설 ‘운부’(雲浮) 역시 이 사건을 모델로 하였다.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건이었다. 


조선시대 금강산은 당취들의 본부였다. 조선시대 반체제 승려 세력들의 비밀결사를 ‘당취’(黨聚)라고 부르는데, 출가 승려들이 굳이 반체제라는 결사를 조직하게 된 배경에는 이씨왕조(李氏王朝)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작용하였다. 불교를 탄압하는 억불(抑佛)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취들은 제육(돼지고기)을 씹으면서 이씨 정권을 저주하였다. 돼지고기를 씹은 이유는 이씨왕조를 창업한 이성계의 생년이 을해생(乙亥生) 즉 돼지띠였다는 데 있다. 


고려 말에 ‘돼지가 나무 위로 오르는 사람이 신왕조를 세운다’는 도참이 유행하였고, 아닌 게 아니라 왕조를 세운 이성계의 생년이 을해생이었던 것이다. 을(乙)은 목(木)이고 해(亥)는 돼지를 가리키므로 을해(乙亥)는 돼지가 나무 위로 오르는 모습이기도 하다. 당취들이 돼지고기를 씹는다는 것은 돼지띠인 이성계를 저주한다는 의미다. 당취들은 또한 ‘미륵(彌勒)사상’을 신봉하였다. 미륵이라는 한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이(爾) 활(弓)로 힘(力)을 길러 바꾸자(革)’는 의미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10년전 당취 후예로부터 직접 들은 바 있다. 돼지고기를 질근질근 씹으면서 미륵을 신봉하던 당취들의 본부는 전국적으로 2군데 있었다. 


하나는 금강산이고 다른 하나는 지리산이다. 두 산 모두 여차하면 숨기에 좋은 깊은 산이다. 역대 조선의 도인들 가운데 가장 도력이 높았던 인물들을 출신지별로 정리해 보면 금강산파와 지리산파로 압축될 정도로 금강산과 지리산은 많은 비화를 간직한 산이기도 하다. 당취들이 토색질하던 악질 부자들을 잡아다 그 죄질에 따라 참회(懺悔)시킬 때도 ‘금상산 참회’와 ‘지리산 참회’가 있었다고 한다. 금강산 참회는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고, 지리산참회는 병신 만드는 참회였다. 숙종조에 활동한 운부는 그러한 전통을 가진 금강산 당취의 총사령관이었던 셈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이 사건의 공초 기록을 보면 운부의 생년과 운부가 새로운 왕으로 내세우려 했던 정도령의 사주팔자가 밝혀져 있다. “운부 및 이른바 정진인(鄭眞人)의 사주를 물으니, 이영창이 말하기를 ‘운부는 정묘생(丁卯生)이고, 진인(眞人)은 기사(己巳)년 무 

진(戊辰)월 기사(己巳)일 무진(戊辰)시에 태어났다’고 하니, 비기(秘記)에 이르기를 ‘중국 장수인 묘생(卯生)의 사람이 중국에서 와서 팔방(八方)을 밟고 일어난다’고 하였는데, 바로 운부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에 태어났다면 바로 뱀이 변하여 용이 되는 격이다. 숭정황제(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 편집자주)의 사주에는 뱀이 변하여 용이 되는 격이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자가 되었는데, 이 사람의 경우에는 그런 격이 둘이나 있으니 참으로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하였다.’(숙종 23년 1월10일 기록) 


사주팔자의 사주(四柱)는 네 기둥이란 뜻이고, 팔자(八字)는 여덟 글자라는 뜻이다. 연·월·일·시를 네 기둥으로 보고, 한 기둥에 두 글자씩으로 되어 있으므로 모두 여덟 글자이다. 운부를 중심으로 한 금강산의 승려세력이 이씨왕조를 대신하여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려 한 정도령은 틀림없이 보통사람이 아닌 하늘이 내린 인물이었을 것이고, 그 비범한 인물의 사주는 평범한 사람의 사주와는 다른 특별한 사주였을 것이다. 그 특별한 사주가 바로 기사·무진·기사·무진(己巳·戊辰·己巳·戊辰)이었다. 


명리학을 아는 사람이 이 사주를 보면 과연 비범하다. 첫째, 연·월·일·시의 지지(地支)가 사진·사진(巳辰 ·巳辰)으로 되어 있다. 사(巳)는 뱀이고 진(辰)은 용이다. 뱀에서 용으로 변하여 뜻을 이룬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중국 숭정황제의 사주가 이렇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조선에는 중국 황제들의 사주도 회자(膾炙)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천간(天干)을 보면 기무·기무(己戊·己戊)로 되어 있다. 기(己)와 무(戊)는 오행으로 볼 때 모두 토(土)에 속한다. 오행 가운데 토는 중앙을 상징하고, 중앙은 동서남북을 통어하는 제왕의 기능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주의 천간(天干)이 이처럼 모두 토로 이루어진 사주는 제왕의 덕을 갖추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음양오행 사상으로 인간과 우주를 총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도표인 태극도. 반체제적 이념·성격 가진 命理學 


셋째는 지지의 구성을 거꾸로 보면 진사·진사(辰巳·辰巳)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사년(辰巳年)은 조선의 술객들 사이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역성혁명가들의 이론서라 할 수 있는 ‘정감록’의 내용 가운데에는 ‘진사(辰巳)에 성인출(聖人出)’이라는 유명한 대목이 있다. 현재에도 주역이나 음양오행에 밝은 식자층들 사이에서는 자주 회자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는 ‘진사년(辰巳年)에 성인이 출현한다’는 예언이다. 즉 진년과 사년에 변란이 일어나 그때 새로운 지도자인 정도령이 출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감록의 틀에 맞추어 보면 2000년인 경진(庚辰)년과 2001년인 신사(辛巳)년도 예사로운 해가 아니었을 것이다. 넷째는 조선 후기 숙종조에 오면 명리학이 보통 식자층들에게도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서자평의 명리학은 그 책을 입수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여간한 학문을 가진 상류계층이 아니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분야였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이르면 일반인들이 반란 지도자의 사주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사주가 사회 저변에 유포되어 있었음이 드러난다. 정도령의 이 사주는 다분히 조작된 사주일 가능성이 높은데, 유의할 점은 사주 조작을 통해 대중을 동원하려고 시도하였다는 부분이다. 당취 지도부에서는 정도령의 사주팔자 자체가 엄청난 대중적 설득력을 지닌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주팔자가 반란사건과 관련해 등장하는 이유는 명리학 자체가 계급차별에 대항하는 대항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아니더라도 사주팔자만 잘 타고나면 누구나 왕이 되고 장상이 될 수 있다는 기회균등 사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풍수사상도 마찬가지다. 일반 서민도 군왕지지(君王之地)에 묘를 쓰면 군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풍수의 신념체계 아닌가. 


조선 후기 서북지역에서 발생한 홍경래난의 주모자들이나 동학혁명의 전봉준도 모두 사주와 풍수에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주팔자는 정감록으로 대표되는 풍수도참설과 결합되면서 조선 후기 민란의 주요한 대중동원 메커니즘으로 작용하였다. 조선시대에 남자들이 모이는 사랑채에서는 정감록이 가장 인기있는 책이었고, 여자들이 거처하는 안방에서는 ‘토정비결’이 가장 인기였다는 이야기는 바로 풍수도참과 사주팔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사례다. 


사주팔자의 구성 원리는 철저하게 음양오행의 우주관에 바탕 해있다. 만물은 음(陰) 아니면 양(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음과 양에서 다시 수·화·목·금·토의 오행(五行)으로 분화되고, 오행이 다시 만물을 형성한다는 설명체계다. 사람의 사주도 크게 보면 양사주(陽四柱)냐 음사주(陰四柱)냐로 분류된다. 양사주면 활발하고 음사주면 내성적이라고 본다. 


음양으로만 이야기하면 너무 간단하니까 좀더 세분해 이야기하면 오행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수가 많은 사주는 정력이 좋고 술을 좋아한다든지, 화가 많은 사주는 언변이 좋고 담백하다고 보고, 목이 많은 사주는 고집이 강하고, 금이 많은 사주는 결단력이 있고 냉혹한 면이 있고, 토가 많은 사주는 신중한 대신 금전적으로 인색하다고 보는 식이다. 


조선시대에는 출생 후 이름을 지을 때도 오행에 따라 지었다. 이름을 지을 때는 그 사람이 출생한 연 월 일 시를 먼저 따진 다음, 만세력(萬歲曆)을 보고 네 기둥을 뽑는다. 사주팔자를 뽑는 것이다. 그 사람의 사주팔자를 보고 불이 너무 많은 사주 같으면 뜨거움을 식히기 위해 이름을 지을 때 물 수(水)자를 집어넣는다. 사주가 너무 차갑다면, 차가움을 완화하기 위해 불 화(火)를 집어넣는다. 사주에 목이 너무 많으면 목을 쳐내야 하기 때문에 쇠금(金) 변이 들어간 글자를 이름에 집어넣는 식이다. 


반대로 사주팔자에서 목이 너무 약하면 목을 보강하기 위해 나무 목(木) 변이 들어간 글자를 사용하거나, 목을 생(生)하게 해주는 수자를 집어넣는 경우도 있다. 불이 많은 사주팔자에는 물이 들어간 이름자를 지어주면 불을 어느 정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사주팔자를 아는 사람은 상대방의 이름만 보고도 그 사람의 성격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이름을 지을 때 오행의 과불급(過不及)을 고려하는 이와 같은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에서 돈을 받고 활동하는 대부분의 작명가들이 이름을 지을 때 고려하는 제일차적인 요소는 그 사람의 사주팔자를 보고 오행의 과불급을 따지는 일이다. 


족보(族譜)의 항렬(行列)을 정할 때도 오행의 원리에 따랐다. 조선시대는 대가족제도이고 대가족제도에서 위아래를 구분하는 기준이 항렬을 정해 놓고 이름을 짓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의 항렬이 나무 목(木) 변이 들어가는 식(植)자라고 하자. 아버지 항렬은 불 화(火) 변이 들어가는 글자 중에서 정한다. 영(榮)이나 영(煐)자가 그 예다. 


나의 항렬은 흙 토(土) 변이 들어가는 글자 중에서 정한다. 예를 들면 규(圭)자다. 나의 다음 항렬은 쇠 금(金) 변이 들어가는 글자 중에서 정한다. 예를 들면 종(鍾)자다. 쇠 금(金) 변 다음 항렬은 물 수(水) 변이 들어가는 글자 중에서 정한다. 예를 들면 영(泳)자다. 이러한 로테이션에는 법칙이 있다. 오행의 상생 순서(相生順序)가 그것이다. 오행의 상생 순서는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이기 때문이다. 수생목에서 수는 목을 도와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수를 부모로 보고 목을 자식으로 보았다. 이하 마찬가지다. 


충남 예산에 있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 임금을 배출하는 최고의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민사소송 사건의 60%가 묘자리를 서로 차지하려는 다툼이었을 만큼 풍수는 우리 생활에 밀착된 사상체계였다. 산을 보는 풍수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민사소송 사건의 60%가 산송(山訟)에 관계된 사건이라고 한다. 산송(山訟)이라 함은 명당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소송사건을 일컫는다. 그만큼 풍수가 생활에 밀착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풍수에서는 산의 형태를 오행의 형태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수체(水體)의 산은 물이 흘러가는 모양이고, 화체(火體)의 산은 불꽃처럼 끝이 뾰족뾰족한 산. 예를 들면 영암의 월출산 같은 산이다. 종교인들이 기도를 하면 ‘기도발’이 받는 산이라고 한다. 목체의 산은 끝이 삼각형처럼 된 산으로 문필봉이라 불렸다. 필자가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400~500년 된 명문가의 종가집이나 묘자리를 수십 군데 답사해 보니 그 중 70%가 그 앞에 학자가 배출된다고 하는 문필봉이 포진하고 있었다. 70%는 우연이 아니고 풍수적 원리를 고려해 일부러 이런 곳을 잡은 결과다. 금체(金體)의 산은 철모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긴 산이다. 이런 산세에서는 장군이 나온다고 한다. 토체(土體)의 산은 책상처럼 평평한 모양을 한 산이다. 제왕이 나온다는 산이다. 박대통령 할머니 묘 앞에는 토체의 산이 안산(案山)으로 포진하고 있는데, 한국의 지관들은 대부분 박대통령이 토체의 산 정기를 받았으므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장날을 정할 때도 이와 같은 5가지 형태의 산의 모습을 따라 정하였다. 장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자, 조선시대 각 지역의 정보교환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예를 들어 그 지역의 주산(主山) 모양이 수(水)체일 경우에는 1일과 6일이 장날이다. 숫자 중에서 1과 6은 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만약 주산의 모양이 화체일 경우에는 2일과 7일이 장날이다. 목체일 경우에는 3일과 8일, 금체일 경우에는 4일과 9일, 토체일 경우에는 5일과 10일이 장날이다. 즉 장날을 정할 때도 원칙 없이 아무렇게나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행의 원리에 따라 질서정연 하게 배치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처음 방문하는 지역일지라도 그 부근의 주산이 금체라는 사실을 알면 장날이 4일과 9일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음양오행 사상으로 인간과 우주를 총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도표가 바로 ‘태극도’(太極圖)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음양에서 다시 오행이 나오고 오행에서 만물이 성립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도표가 태극도다. 태극도는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의 우주관을 압축시킨 그림으로써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성리학자들이 모두 태극도에 관심을 가지고 저술을 남긴 바 있다. 


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圖), 남영의 태극도여통서표(太極圖與通書表), 송구봉의 태극문(太極問), 우암의 태극문(太極問), 한강의 태극문변(太極問辯), 사미헌의 태극도열문답(太極圖說問答), 화서의 태극설(太極說), 노사의 답문유편(答問類編) 등이 모두 그것이다. 주자성리학에서 도를 통했다는 의미는 바로 태극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작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태극도는 조선시대에 중시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명리학의 기본원리가 바로 태극도라는 사실이다. 태극도는 명리학의 기본 골격을 완벽하게 요약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성리학자의 우주관이 완전히 똑같다는 말이다. 조선시대는 태극도의 음양오행 원리에 의해 역사의 변천이나 왕조의 교체,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해석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태극도에서 파생한 두 아들이 성리학(性理學)과 명리학(命理學)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성리학은 인간 성품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고 명리학은 사람 운명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나 같은 부모 밑의 두 아들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 성리학은 체제를 유지하는 학문이 되었고, 명리학은 체제에 저항하는 반(反)체제의 술법이 되었다. 성리학은 태양의 조명을 받아 양지(陽地)의 역사(歷史)가 되었고 명리학은 달빛의 조명을 받아 음지(陰地)의 잡술(雜術)이 되었다. 임금이 주재하는 궁궐 내의 학술세미나에서는 성리학이 토론의 주제가 되었고, 금강산의 험난한 바위굴 속에서 이루어졌던 당취들의 난상토론에서는 명리학이 단골 메뉴였을 것이다. 


명리학과 성리학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다 보니 진단과 서자평의 인간관계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진단은 태극도를 중국 화산(華山)의 석벽에 각인하여 후세에 전한 인물이다. 태극도가 성리학자들에게 전해진 계기는 진단의 덕택이다. 그는 북송(北宋) 초기의 저명한 도사(道士)다. 후당(後唐)때 무당산(武當山)의 구실암(九室巖)에 은거하며 신선술을 연마하였으며, 북송 초기에 화산으로 옮겨와 살면서 여러 은사들과 교류하였다. 


이때 화산에서 같이 수도한 인물이 바로 명리학의 완성자인 서자평이다. 태극도의 진단과 명리학의 서자평은 같은 화산에서 인간관계를 맺으며 수도한 사이였다. 사람의 인연이란 이처럼 멀고도 가깝다. 당연히 두 사람은 서로 사상적인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고, 그러한 맥락에서 서자평의 명리학이 탄생했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본다면 성리학과 명리학이 같은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상호 보완적 관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사주팔자. 이는 개인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하는 점술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가들의 신념체계로 작동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신비적인 것이 곧 합리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조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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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의학, 명리학

명리학과 대조되는 학문으로 성리학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명리학은 命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고 성리학은 性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성리학이 性이라고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의 구조와 기능에 관심이 있다면 명리학은 命,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구조와 기능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性에는 차이가 없지만 命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命이 다 다르다. 일단 이것을 전제하고 들어갑니다.

오행이라고 하는,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기본적인 작용력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인간의 마음에서 활동할 때는 다섯 가지 기본적인 욕망으로 나타납니다. 명리학에서는 그것을 공부, 자기애, 말, 돈, 명예라고 해석합니다. 이 다섯 가지 욕망은 서로 억제하거나 도와주면서 마음이 흘러가는 기본 동력을 제공합니다. 

음양오행


공부는 자기애를 生해줍니다. 자기애는 말을 낳습니다. 말은 돈을 낳고 돈은 명예를 낳습니다. 그리고 다시 명예는 공부를 낳습니다.

공부를 하면 자기를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말을 낳습니다. 말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일을 만듭니다. 그렇게 활동이 구성되면 돈이 흘러들어오고, 이것을 바탕으로 활동의 범위가 더욱 확장되면서 명예를 낳습니다. 그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는 또 공부를 하게 되나요? 뭐 그렇기도 하지만 일단 활동의 범위가 확장되면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열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겠죠.

공부는 말을 제어합니다. 말은 명예를 제어합니다. 명예는 자기애를 제어합니다. 자기애는 돈을 제어합니다. 돈은 공부를 제어합니다.

공부는 말을 제어합니다. 깊이 공부한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좋은 측면이고 나쁜 측면에서 해석하면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자기의 말을 뱉어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말은 명예를 제어합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명예를 실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자기의 말, 아이디어, 이론을 생산하는데 욕심이 있는 사람은 어떤 단체나 조직에 가담할 여가가 없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명예는 자기애를 제어합니다. 

명예는 기본적으로 사회 지향적입니다. 이름에 따라오는 사회적 책임감, 의무들은 자기중심성을 벗어나게 합니다. 권력욕이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기애는 돈을 제어합니다. 돈은 내 삶의 물적 토대입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것, 내가 일구어서 내게로 가지고 오는 것이 돈입니다. 그런데 재욕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돈에게 부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돈은 공부를 제어합니다. 돈을 벌려고 일하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은 없죠. 서로 시간을 두고 다투는 사이입니다.

몸에서도 특정 장부에 기운이 치우쳐 있어서 기운이 잘 돌지 않으면 고통과 질병을 유발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욕망들의 태과불급으로 인해서 마음이 잘 흐르지 못할 경우에도 고통이 따라옵니다. 명리학은 고착화되기 쉬운 그러한 인간의 욕망을 잘 다스려서 마음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앎의 체계, 마음의 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리학의 기본인 태극도

태극도가 음향오행설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도표


양지성리학과 음지명리학


음양오행 사상으로 인간과 우주를 총체덕으로 설명해 주는 도표가 태극도(太劇圖)이다.

즉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성리학자의 우주관이 똑같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오행에서 만물이 성립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도표가 태극도이다. 태극도는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의 우주관을 압축시킨 그림으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조선시대를 대표하는성리학자들이 노두 태극도에 관심을 두어 많은 저술을 남겼다.

퇴계의[성학십도(聖學十道)], 남영의[태극도여통서표(太極圖與通書表)], 송구봉의[태극문(太極問)], 우암의[태극문(太極問)],  한강의 [태극문변(太極問辨)],  사마헌의 [태극도설문답(太極圖說問答)], 화사의[태극설(太極說)],  노사의 [문답류편(問答類編)] 등이 모두 그것이다. 

주자성리학에서 도를 통했다는 의미는 바로 태극도를 완만하게 이해하는 작업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리학의 기본 원리인 태극도는 명리학의 기본 골격을 완벽하게 요약하는 이론으로서 바꾸어 말하면 사주 팔자를 보는 명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성리학자의 우주관이 완벽하게 똑같다.

조선시대에는 태극도의 음양오행원리에서 역사의 변천이나 왕조의 교체,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해석 했던 시대이다. 

성리학은 인간 성품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고, 명리학은 사람 운명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다.
또한 성리학은 체제를 유지하는 학문이고 명리학은 체제를 저항하는 반체제 술법이 되었으며, 성리학은 태양의 조명을 받아 양지(陽地)의 역사가 되었고, 명리학은 달빛의 조명을 받아 음지(陰地)의 잡술(雜術)이 되었다.  

명리학과 성리학의 상관 관계를 추적하면 진단(陳摶)과 서자평의 인간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진단은 태극도를 중국 화산(華山)의 석벽에 각인하여 후세에 전한 인물이다. 태극도가 성리학자에게 전해진 것은 진단의 덕택이다.

그는 북송(北宋) 초기의 저명한 도사(道士)이다. 
후당(後唐) 때 무당산(武當山)의 구실암(九室巖)에 은거하며 신선술을 연마 하였으며, 북송 초기에 화산으로 옮겨와 살면서 여러 은사들과 교류하였다.

이때 화산에서 같이 수도한 인물이 바로 명리학의 완성자 서자평이다.
그래서 서로가 영향을 주었고, 상호 보완 관계이고 같은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주팔자 - 이는 개인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저술 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가들의 신념 체계로 작동 하였다는 사실이다.

신비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것이 곧 정치적 이라는 명제를 확인한 셈이다.


명리학(命理學)이란 인간의 사주팔자인 생년월일시를 천간/지지로 조합하여 오행(五行)으로 변화시키고 다시 그 오행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및 용신(用神) 관계를 운로에 접목시켜 운명(運命)의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것이며 사주학(四柱學)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주역에 의한 음양(陰陽)의 학설이 먼저 존재했으며 춘추전국시대에 비로소 태양계의 오행성으로 운명(運命)을 판단하는 오행의 학설이 전해졌다. 특히 명리학(命理學) 이 태어난 년월일시의 간지를 가지고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26년 이후의 일이며 역학(易學)의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 시기는 중국의 당(唐)나라 이후로 보인다.


명리학(命理學)은 고대 천문 역법(曆法) 및 점성술의 발전과 기원을 같이하며 역사적 체계는 전설시대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와 하나라-은나라-주나라 시대를 시작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당나라-송나라에 이르러 빛을 발하게 된다.


이는 당시까지는 년주(年柱)를 위주로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였던 것을 당나라 말 송나라 초 이허중(李虛中)이 연월일시의 육십갑자로 사주기둥을 세우고 사람의 운명을 감정하였으며 그 후 송나라에 이르러 서자평(徐子平)이 년주 위주의 명리학을 일주를 위주로 하는 법을 만들어냄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전설시대,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를 말하며 오제(五帝)의 태호 복희씨(太昊伏羲氏)는 팔괘(八卦)를 만들고 수(數)를 가르쳤으며 새끼의 매듭을 사용하여 문자대신 사용하였다. 또한 혼인 제도를 정하고 사냥법과 가축 기르는 법을 가르쳐 백성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였다.


하(夏)나라, 요순시대 천자였던 순이 우(禹)에게 천하를 물려주었고 우에 의해 하(夏)왕조가 세워졌으며 17대 걸(桀)에 이르기까지 472년(BC 1600년 무렵까지)동안 존속되어온 중국 최초의 왕조이다. 하(夏)왕조의 시조인 우(禹)는 홍수를 다스리는 데 헌신적으로 노력하였으며 그 공으로 순이 죽은 뒤 제후로 추대 받아 천자가 되었다.


은(殷)나라, 은(殷)나라의 정확한 명칭은 상(商)이며 당시의 문화세계였던 화북(華北)에 군림하였던 실재의 왕조다. 따라서 상(商)은 고고학적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중국의 가장 오랜 국가이며 상나라 전기는 기원전 1600년부터 1300년까지이고 도읍을 은(殷)으로 바꾼 상나라 후기는 기원전 1300년부터 1046년까지이다.


주(周)나라, 주(周)는 기원전 1046년부터 기원전 256년에 이르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나라로 이 시기에 철기사용이 시작되었으며 왕실의 일족과 공신을 요지에 두어 다스리도록 하는 봉건제도로 유명하였는데 이는 나라의 기초를 굳히기 위하여 실시한 제도였다. 주(周)는 서주-동주-춘추시대-전국시대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춘추시대는 각지의 제후가 봉기하여 세력다툼을 하던 변혁의 시대로 왕실은 쇠퇴하고 오패(五覇)의 제후가 중심이 되었다. 


그중 제나라는 환공이며 진나라는 문공, 초나라는 장왕, 오나라는 합려, 월나라는 구천인데 우두머리는 제나라의 환궁이며 제나라의 시조는 강태공이다. 나아가 춘추시대는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는데 시경, 서경, 역경, 춘추, 논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저서와 제자를 두었던 공자를 빼놓을 수 없으며 그의 제자 맹자(孟子)가 남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으며 자녀교육의 표본이 되고 있다. 


이렇게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라 일컬을 만큼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꽃피우던 시기였으며 그 중심엔 공자의 유가사상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국시대의 학자로는 음양가(陰陽家)인 추연(鄒衍)과 귀곡자(鬼谷子)를 들 수 있는데 귀곡자는 천문과 역술의 달인이자 병법가로서 척전법(擲錢法)과 납음오행(納音五行)을 만들었다. 주역(周易)은 삼경의 하나인 역경(易經)을 말하며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을 뜻한다. 또한 역이란 변역(變易)인 즉 ‘바뀐다.’ ‘변한다.’의 뜻이며 이는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특히 주역은 8괘와 64괘 그리고 괘사(卦辭), 효사(爻辭), 십익(十翼)으로 되어있는 점서(占書)로 역학(易學)의 흐름을 형성해온 동양철학의 근원이라 할 것인데 작자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왕필(王弼)은 복희씨(伏羲氏)가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圖形)을 보고 계시를 얻어 처음 8괘를 만들고 이를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사마천(司馬遷)은 복희씨가 8괘를 창안하고 문왕(文王)이 64괘와 괘사, 효사를 만들었다 하였으며, 마융(馬融)은 괘사는 문왕(文王)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周公)이, 십익(十翼)은 공자가 만들었다고 하는 등 작자가 명확하지 않다.


진(秦)나라, 진은 중국 주나라 때 제후국의 하나였다가 중국 최초로 통일을 완성한 국가로 진나라는 자기의 덕이 삼황오제보다 높다고 여겨 처음으로 황제 칭호(진시황제)를 썼으며 국가를 비판하는 학자들을 잡아들여 죽이고 서적은 모두 불태워 버리는 만행을 단행했던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은 중국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한(漢)나라, 진(秦)나라에 이어지는 중국의 통일 왕조(BC202-AD220)로 유방이 세웠으며 그의 책사인 장량(張良)은 장자방이라 육임의 원리를 활용하였으며 또한 이시대의 역술인으로 동방삭(東方朔)이 있다. 또한 후한(後漢)시대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방술이 뛰어났으며 기문 둔갑, 육임의 원리를 전쟁에서 사용하였다.


수(隋)나라, 양견이 건국한 중국의 통일 왕조(581-618년)며 문제, 양제, 공제의 3대에 걸친 38년의 왕조였으나 남북으로 갈라져있던 중국을 하나의 판도에 넣어 진(秦).한(漢)의 고대 통일국가를 재현하였고 뒤를 이은 당의 통일을 이룩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수나라의 소길(簫吉)은 오행대의를 지었으며 이는 훗날 음양오행설의 근간이 되었다.


당(唐)나라, 618년 이연이 건국하여 907년 애제 때 후량 주전충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중국의 통일 제국으로서는 한나라에 이어 제2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당에서 발달한 문물과 정비된 제도는 한국이 정치 문화적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나라의 역술인으로는 이허중이 있으며 그는 최초로 연월일시와 육십갑자로 사주기둥을 세우고 년주 위주로 사람의 운명을 감정하였다.


송(宋)나라, 당나라에 이어지는 왕조(960-1279년)로 북송과 남송이 있다. 역술인으로는 서대승(徐大升), 서자평(徐子平)이 있으며 특히 서자평은 년주 위주의 명리학을 일간 위주로 감명하는 법을 만들어 냄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후대에 서자평의 학설을 종합하여 저술한 연해자평이 최초 고전이다.


명(明)나라,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의 지배를 회복한 통일 왕조(1368-1644년)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여 왕권이 강화되었으며 중국이 근대화하는 성장, 변혁기였다. 역술인으로는 적천수(適天髓)를 지은 유백온과 명리정종(明理正宗)을 지은 장남(張楠), 삼명통회(三命通會)를 지은 만육오(萬育吾)가 있다.


청(淸)나라, 명(明)나라 이후 만주족 누르하치가 세운 중국 최후의 통일 왕조다.(1636-1912년) 작자미상의 궁통보감(窮通寶鑑)이 저술되었으며 진소암의 명리약언(命理約言)과 적천수집요(適天髓集要), 심효첨의 자평진전(子平眞詮), 임철조의 적천수천미(適天髓闡微)가 있다.


중화민국(中華民國), 청(淸)나라 말기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중화민국(中華民國)이 탄생되었으며 중화민국 내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과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국공내전으로 인해 모택동의 공산당이 승리하여 1948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다. 명리학자로 원수산은 명리탐원(命理探原)과 명보(命寶)를 저술하였으며 위천리(韋千里)는 명학강의와 팔자제요를 저술하였다.


일본(日本) 아부태산의 사주추명학전집(四柱推命學全集)과 고목승의 사주추명학이 있다.


한국(韓國),한국에는 자강(自彊) 이석영(李錫暎)의 사주첩경(四柱捷徑)과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玩)의 명리요강(命理要綱), 명리사전(命理辭典)이 있는데 명리요강은 위천리의 명학강의를 번역한 책이며 명리사전은 위천리의 팔자제요를 번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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