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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모델의 선구자들


바로 지금 새로운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모델들은 제2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나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머리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가슴속 소망, 수많은 사람의 머릿속 기지, 수많은 사람의 수고에서 나온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직관적으로 알고, 그것을 일구려는 사람들이다.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s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비즈니스로서 기능하면서 사회적 사명을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이다. 800만 달러의 이익을 올리는 뉴욕 주 용커스Yonkers의 그레이스톤베이커리Greyston Bakery가 그 예다. 그레이스톤베이커리는 홈리스를 위한 일자리를 만든다는 목표로 선불교 수도자들이 세운 회사다. 미국에서는 금융 서비스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저소득 공동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 기관인 지역공동체개발금융기관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s, CDFIs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10년이 조금 넘는 동안, CDFI 자산은 50억 달러에서 420억 달러로 늘었다. 신규 자금은 예금자 및 투자자, 정부 기금에서 온다.


해양어업에 대한 소유권인 조업권catch shares에 대한 새로운 실험은 어류 자원의 파국적 감소를 멈추거나 증가세로 되돌려 놓았다. 현재 수천만 에이커를 아우르는 보존지역권conservation easements은 토지를 개발로부터 보호하여 농경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미래의 후손뿐 아니라 미래의 야생동물을 위해 토지를 보전하려는 것이다. 시장의 힘이 침입하지 못하게 막을 필요가 있는 보편적 삶의 영역을 존중하고자, 공유 자산을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누구 하나가 소유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운영되는 위키피디아 같은 기관들로 이뤄진, 바이러스처럼 스스로 전파되는 세계도 있다.


혁신적 변호사들은 법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느라 바쁘다. 영국 법에 규정된 공동체이익기업community interest corporation이 그 예다. 미국의 저이익유한책임회사low-profit, limited liability company, L3C는 재단의 사회적 투자를 촉진하고자 법제화되었다. 이 모델은 겨우 2~3년 만에 20개 가까이 되는 주에서 이미 법제화되었거나 고려 중에 있다. 미국의 유일한 주립州立 은행state-owned bank인 노스다코타 은행Bank of North Dakota은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노스다코타 은행은 금융 위기가 닥쳐 민간 은행이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을 때조차 흑자를 기록했다. 노스다코타 은행이 예상치 못했던 회복력을 보이자, 14개 주가 주립 은행 설립을 위한 법제화를 고려하기 시작했다.(주립 은행은 민간이 소유하지 않는 은행으로, 이익 최대화가 아니라 공익에 초점을 둔 대안적 소유 구조라 할 수 있다.)


연대적 경제를 향한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는 지역으로 퀘벡과 라틴아메리카를 꼽을 수 있다. 연대적 경제는 협동조합과 비영리기구들로 구성된다. 퀘벡에서 연대적 경제는 공식적인 인정을 받아, 독립적인 경제 부문으로서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나아가 놀랄 정도로 많은 수의 대기업이 이익 최대화 대신 고유한 사명을 중심 목적에 두고 경영하는 사명 경영 구조mission-controlled design를 채택했다. 사명 경영 구조로는 북유럽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재단 소유 기업이 있다. 110억 달러 매출을 올리는 덴마크의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뿐 아니라, 이케아Ikea, 베텔스만Bertelsmann 및 여러 대기업이 재단 소유 기업이다. S. C. 존슨S. C. Johnson과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처럼 강력한 사회적 사명 아래 가족이 경영하는 기업도 사명 경영 구조에 포함된다.


사회적 기업인 그라민다농Grameen Danone처럼 더욱 색다른 구조도 등장하고 있다. 그라민다농은 다국적 요거트 제조업체인 다농 그룹과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 기관인 그라민 은행이 만든 합자회사로, 방글라데시의 마을 여성들은 이 회사를 통해 요거트를 판매한다. 그라민다농은 빈곤층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고자 설계되었다. 그라민다농의 배당금 지급 목표는 1%로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경제 구조 분야의 선구자 두 명, 바로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와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노벨상을 수상했다.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로 그라민다농의 창설을 도왔으며, 오스트롬은 인디애나 대학교 교수로 공유지의 경제적 관리 체제를 연구했다. 오스트롬은 동료들과 함께 어류 자원, 목초지, 삼림, 호수 및 지하수원 등의 효과적 관리법을 자생적으로 고안해낸 지역 공동체들을 세계 곳곳에서 찾아냈다. 이들 공동체는 생태계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보전하는 방식으로 공유 자원을 관리했다.


협동조합, 종업원 소유 기업, 정부 지원 기업 등, 여러 대안적 소유 모델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새로 부상 중인 소유 모델들은 새로운 식구인 셈이다. 영국의 최대 백화점 체인인 존루이스 파트너십John Lewis Partnership, JLP도 그중 하나다. JLP는 종업원이 100% 지분을 보유하며, 전통적인 이사회와 더불어 종업원들로 이뤄진 평의회를 운영한다.


이러한 대안적 모델들은 소유 구조의 새로운 일가一家를 이룬다. 산업화 시대의 소유 구조를 단일 작물 모델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구조들은 열대 우림의 생물종만큼이나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구조를 연구하고, 그 구조들의 여러 부분을 접합해봄으로써, 구조 실험의 온실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그 온실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가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대안적 모델들은 깊숙이까지 새로운 선구자다. 아직 완전히 모습을 갖추지 않았고, 새로운 사회 질서의 틀로서 기능할 준비가 끝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신호다. 이는 산업혁명 이래 가장 창조적인 경제 혁신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가리킨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통상적인 의미의 경제 혁신이 아니다. 다시 말해 돈을 더 많이 버는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 혁신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심오한 것이다. 조직화의 목적과 구조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발명, 삶의 필요를 충족하고자 스스로 조직화하는 경제 체계를 창출하는 것이다.



생성적 vs 추출적 소유


이 소유 모델들은 하나의 일관된 철학을 구현한다. 조직의 공통된 형태를 통해 인류 및 생태 공동체의 생생한 고려 사항들을 재산권과 경제 권력의 세계에 반영하려는 것이다. 이 사상은 새롭게 등장하는 하나의 원형原型이지만, 현재까지는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아직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길 잃은 개에게 이름을 붙여주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데 주목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새로운 소유 모델들에도 이름을 붙여, 생성적 소유 구조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이런 모델들이 생성적 경제의 기초를 이룬다.


이런 소유 구조들의 활기찬 목표와 생생한 영향력에는 모든 생명이 번영할 수 있는 조건을 생성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generative’라는 말은 그리스어 ge에서 파생된 것으로 ‘대지’라는 의미의 Gaia(가이아), 그리고 genesis(기원, 발생), genetics(유전학)와 같은 어근을 사용한다. 생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셈이다. ‘생성적generative’은 생명의 영위를 의미하고, 생성적 구조란 그를 위한 제도적 틀을 가리킨다. 생성적 경제는 근본 구조가 해로운 결과물보다는 유익한 결과물을 내놓는 경향을 띤 경제다. 내재된 경향 자체가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살아 있는 경제다.


생성적 소유 구조는 다음 사분기에는 증발해버릴 수 있는 허구의 부phantom wealth가 아니라 진정한 부, 살아 있는 부living wealth를 생성하고 보전하고자 한다. 가족들이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누리도록 돕고자, 삼림을 보존하고자, 쓰레기에서 자양분을 생성하고자, 폭넓은 복지를 창출하고자 한다.


이런 소유 구조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소유 구조와 대조를 이룬다. 그 차이를 명확히 드러내려면 지배적 소유 구조에도 이름을 붙여야 한다. 이 소유 구조는 물리적, 금전적 추출물을 최대화하려는 것에 초점을 맞추니, 추출적extractive 소유 구조라는 이름이 어떨까? 산업화 시대의 문명은 쌍둥이 같은 두 가지의 추출 과정에 힘입어 발전했다. 하나는 지구로부터 화석 연료를 추출하는 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제로부터 금전적 부를 추출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 두 과정은 동등하지 않다. 금전적 추출 과정이 주된 힘이었다. 생물물리학적 폐해는 시스템이 벌인 행동의 결과인 경우가 많았을 수 있다. 반면 금전적 부의 추출은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경제학자 E. F. 슈마허E. F. Schumacher가 ‘영속성의 경제’라 부른 것을 이 허약한 지구 위에 세우는 첫발을 내딛는 때, 금전적 성장의 최대화는 길을 이끄는 목적으로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생성적 소유 구조를 통해 다른 목표가 어떻게 경제 활동의 중심이 될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자세히 확인하게 된다. 생성적 구조는 전환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전환이 어떻게 하면 널리 퍼질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혁명적 동력으로서의 소유


“운동인 줄도 모르고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호사 토드 존슨Todd Johnson이 내게 한 말이다.(그는 새로운 소유 구조를 고안해내는 혁신적인 변호사 중 하나다.) 소유 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소유 혁명은 경제 권력을 소수의 손에서 다수의 손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무관심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사회적 유익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전환을 두려워하도록 교육받는다. 동시에 경제 구조는 둘 중 하나, 즉 자본주의 아니면 공산주의, 사적 소유 아니면 국가 소유밖에 없다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오늘날 자라나고 있는 대안들은 이런 먼지 쌓인 19세기식 분류를 거부한다. 이 대안들은 공익을 위한 사적 소유라는 새로운 선택지다. 이 같은 경제 혁명은 정치 혁명과 다르다.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이며, 경제의 바탕이 되는 소유의 기초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위기가 닥칠 때면 사람들은 보호막을 구하고자 대안적 소유 구조로 눈을 돌렸다. 최초의 근대적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조합Rochdale Society은 1840년대 잉글랜드에서 생겨났다. 산업혁명이 수많은 숙련 노동자들을 빈곤으로 몰아가던 시기였다. 직공과 장인 들은 힘을 합해 최초의 소비자협동조합인 로치데일을 세웠다. 로치데일 조합은 다른 곳에서라면 식료품을 살 수 없을 노동자들에게 식료품을 팔았다. 그들이 만든 협동조합 모델은 90개가 넘는 나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전 세계의 협동조합 조합원은 10억 명에 이른다.


대공황 기간 미국에서는 연방신용협동조합법Federal Credit Union Act이 불균형적 금융 시스템의 안정화를 도왔다. 법 제정 시 의도했던 바였다. 연방신용협동조합법은 저소득 계층에게 대출이 돌아가도록 하려는 법률이었다. 오늘날 신용협동조합의 자산은 총 7,000억 달러를 넘어선다. 2008년 금융 위기 이래 신용협동조합처럼 소비자가 소유한 은행들의 조합원 수는 150만 명 이상 늘어났다. 처음 위기가 닥쳤을 때 신용협동조합의 대출 연체율이 일반 은행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 금융 붕괴로 수천 곳이 도산하고 수많은 사업주가 도망쳤을 때,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일터를 지켰다. 노동자들은 정부 지원 아래 200개 넘는 기업을 인수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노동자 회생 기업empresas recuperadas을 스스로 꾸려나갔다.


우리 시대, 대안적 소유 구조에 대한 필요는 어느 때보다 크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두 갈래다. 한쪽은 요새 같은 세상을 향해 뻗은 길로서 이제까지의 비즈니스가 걸어온 것이다. 그 세상에서 부유한 소수는 호화롭고 안전한 요새에 몸을 숨기고 살아가고, 대부분은 곤궁에 시달리며 두려움과 싸운다. 다른 한쪽은 새로운 경제를 향해 뻗은 변혁의 길이다. 새로운 경제란 지속 가능하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번영을 가져올 생성적 경제다. 어떤 세상을 선택하든, 소유와 재무 구조가 그 세상에 본질적 형태를 부여할 것이다.


생성적 소유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근사한 일이군요.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죠?”라고 묻곤 한다. 아마 대답은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할 것이다. 우리는 이중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쪽 팔로는 기업의 남용에 고삐를 죄면서 기존 기업의 통치 체제를 개혁하고, 나머지 팔로는 생성적 대안을 개발해나가야 한다. 두 가지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응집력과 동력이 부족한 쪽은 두 번째 전략, 바로 대안을 추구하는 일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경제에 대한 명료한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고, 그 경제가 돌아가도록 하는 구조에 대한 간결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깊숙한 변화를 향해 힘을 합해 일하기란 쉽지 않다.


맨 처음 대안의 개발은 발생emergence에 의존한다. 조직 변화 이론가 마거릿 휘틀리Margaret Wheatley가 말했듯이, 발생이란 공동의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바로 국지적인 행동이 일어나,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고, 행동하는 공동체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발생적 현상은 별 예고 없이 나타날 수 있다. 유기농 식품, 로컬 식품 운동의 등장이 그런 예다.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시스템이 더 큰 규모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마법이 일어나서가 아니다. 미리 계획되지 않은 자발적 활동이 일어나고, 이후 좀 더 집중적인 노력이 더해지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8장에서 발생에 대해 다룰 것이다. 나아가 책 전체, 특히 에필로그에서 변화의 전략에 대한 좀 더 많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하지만 여기서 거기까지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로드맵을 그리려는 게 내 목표는 아니다. 나는 목적지에 초점을 맞춘다. 닥쳐올 혼란스러운 시기에 길잡이가 되어줄, 현실적이면서도 심오한 비전과 언어를 탐색하고자 한다.



생명 패턴


대부분이 민주적 권력의 구조는 이해하지만, 경제적 권력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소유의 구조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문제다. 우리에게 아직 없는 것은 단순한 패턴 언어pattern language다. 그 언어로 보기엔 동떨어진 듯한 모델들을 통합하고 그 근저를 이루는 소유 구조를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패턴 언어다.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가 말했듯이, 우리는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패턴을 이야기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의미다. 알렉산더는 『시간을 초월한 건축의 방법 The Timeless Way of Building』에서 “각각의 패턴을 하나의 대상으로 만들어 인간 지성이 그것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썼다.(알렉산더의 작업에 대해 3부에서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다른 종류의 소유를 창출하는 데 함께 작용하는 다섯 가지의 본질적 패턴을 발견했다. 목적, 구성원, 통치 방식, 자본, 그리고 네트워크가 그 다섯 가지다. 이들은 단기간에 금전적 부의 추출을 최대화하려는 목적 아래 추출적 방식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혹은 미래의 세대를 위해 모든 생명체가 번성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적 아래 생성적 방식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새로운 모델이 앞으로 창조되어야 할 테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기초 구조 패턴은 이미 여럿 존재하며, 이 패턴들을 창조적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다.


추출적 소유는 금전적 목적을 갖는다. 이익을 최대화하는 게 목표다. 생성적 소유는 삶을 위한 목적을 갖는다. 삶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게 목표다. 오늘날의 주식회사는 실제로는 회사에 속하지 않는 부재자 구성원Absentee Membership으로 이루어진다. 소유주가 기업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방식이다. 반면 생성적 소유 구조는 공동체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뿌리내린 구성원Rooted Membership으로 이루어진다. 소유권이 살아 있는 손에 들린 방식이다. 추출적 소유는 시장에 의한 통치제로 운영된다. 자본 시장이 자동항법장치로 기업을 통제한다. 반면 생성적 소유는 사명 경영 통치제로 운영된다. 사회적 사명을 중심 목적으로 삼아 기업을 경영한다. 추출적 구조의 투자는 카지노 금융을 수반하는 반면 생성적 방식의 대안은 이해당사자 금융을 활용한다. 이해당사자 금융에서 자본은 주인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 재화가 가격을 바탕으로만 거래되는 상품 네트워크 대신, 생성적 경제 관계는 윤리적 네트워크의 지원을 받는다. 윤리적 네트워크는 여럿의 힘을 모아 사회적 · 생태적 규범을 지탱한다. 모든 소유 모델에 이런 구조 패턴이 전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성적 패턴이 더 많이 포함될수록 그 구조는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중요한 측면에서 이 책은 나의 전작 『주식회사 이데올로기The Divine Right of Capital』의 연결선 상에 있다.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는 자본의 권리를 지탱하는 신화들, 그중에서도 특히 부자들의 필요가 다른 모든 사람의 필요보다 앞선다는 신화를 파헤쳤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살펴보았다. 그 책이 출판된 후 10년 동안 우리 경제의 소유 체계는 기후 변화와 같은, 전례 없이 새로운 위기를 불러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식회사와 자본 시장이 서로 얽힌 제도들, 거기서 요구하는 영속적 성장과 이익의 증가도 큰 몫을 했다. 경제 민주주의가 해결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지구의 생명 시스템living system을 준거의 틀로 삼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모든 시스템에 적용되어야 할 궁극적인 패턴은 생명 패턴living patterns이다. 즉 자연이 생명을 지탱하고자 진화시켜온 조직화 패턴이다. 물리학에서 시작되어 다른 영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는 생명 패턴과 프로세스를 논하는 데 쓸 수 있는 견고한 언어를 제공한다. 이 언어는 생물학적 시스템과 사회적 시스템에 똑같이 적용된다. 시스템 사고를 통해, 소유 구조의 재설계라는 과제가 인간 문명이 지구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더 큰 과제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미래의 경제에는 풍력발전소, 탄소 배출 제한, 지속 가능하도록 관리되는 삼림 등이 필요할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직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문제들은 이런 것들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누가 유익을 누릴 것인가다. 우리는 물리적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에서의 혁신이 필요하다. 물리적 기술이 경제의 무엇에 해당한다면, 사회적 구조란 누구에 대한 문제다. “누가 어떻게 경제적 결정을 내릴 것인가? 어떤 조직화 체계를 사용하여?”를 묻는다. 사회적 구조는 인간관계들의 청사진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조직화해서 일이 이루어지도록 할지를 고민한다. 소수를 위한 성장과 최대 이익을 중심에 놓고 조직화된 경제적 구조에 앞으로도 계속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지구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번성하는 것을 중심에 놓고 조직화된 새로운 구조로 전환할 것인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여정이다.


(본문 중 일부)


출처:http://nabeeya.net/nabee/view.html?type=review&cat1=52&cat2=67&cidx=4677&set_field=title&search=&pag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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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미국 유기 농업의 선구자인 J. I. Rodale이 설립한 로데일 출판사에서 출판된 「No-work Garden Book」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얼마 전 누군가가 우리 집 밭을 처음 구경하고 나의 농사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야-, 당신은 백살이 넘더라도 휠체어에 앉아서 채소를 가꿀 수가 있겠군요." 나는 특별히 원기가 왕성한 여자도 아니지만 67평 정도 되는 밭에서 남편과 동생과 나와 많은 손님들이 충분히 먹을 만큼의 채소를 가꾸는 일을 혼자서 다하고 있다.

우리는 일찍 수확하는 아스파라거스로부터 늦게 나는 운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채소를 냉장해 놓는다. 우리는 채소를 사 먹는 일이 없다. ... 줄임 ... 
 
여러 해 전에 우리는 뉴욕으로부터 코넥티컷에 있는 한 농촌으로 이사해 왔다. 나는 지체없이 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우리는 너무나 넓은 땅을 갈아 놓았다. 그해 여름을 나는 온통 널려 있는 돌멩이와 뗏장과 씨름하며 보내야 했다. 그리고 물론 괭이질도 하고 풀도 뽑고 땅을 갈아엎기도 했다.

나는 그 밭을 만드는 데에 든 노력이 아까워서 어리석게도 그 이후 몇 해 동안 계속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채소를 길렀다. 하지만 나는 결국 밭의 크기를 조금씩 줄여 얼마 전에 원래의 3분의 1크기까지 줄였다. 그래도 너무 일이 많았다.. 물론 나는 전보다 기력이 더 좋아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남은 것을 모두 통조림 시켜 볼 작정을 하고 있었다. 밭일 중에서 내가 직접 하지 않았던 일은 쟁기질과 로터리 질이었다.(쟁기질은 흙을 갈아엎어 퇴비와 잡초 씨앗이 깔린 표토가 땅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고 로터리 질은 갈아엎어 놓은 흙덩어리를 잘게 부숴서 땅을 푹신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모두 가축이나 기계의 힘을 필요로 한다. 역주) 그 외의 모든 일을 손수 했다.
 
나는 해마다 봄만 되면 안달이 나서 파종을 일찌감치 서둘렀는데 내가 완두 씨앗을 파종하려고 할 때마다 집집마다 쟁기가 탈이 나거나 혹은 다른 집에 빌려줬거나 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나는 어느 날 나의 머리를 사용했다. 아니, 머리통으로 쟁기질을 했다는 말이 아니라 꾀를 짜냈다는 말이다.

우리 밭 중에 아스파라거스를 기르는 밭은 그 때까지 십년이 넘도록 갈지를 않았는데 그렇다면 아스파라거스는 콩보다 어디가 잘났다는 말이지? 빌어먹을 놈의 쟁기! 그냥 심고 말아야지. 그래서 나는 약간 겁은 나면서도 땅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약간씩 골을 파면서 콩과 시금치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가을에 밭에다 부어 놓은 유기피복물(낙엽과 건초로서, 봄에 갈아엎어서 땅속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 흙을 부드럽고 촉촉하게 해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다만 심을 지점을 걷어 내고 씨앗을 떨어뜨리기만 하면 되었다. 일단 혼자서 일을 시작하게 되나 나는 계속 이렇게 해 나갔다. 나는 주위에서 피복감을 많이 끌어 모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밭을 완전히(15-20센티 정도) 덮어 주면 잡초가 뚫고 나오지 못할 것이고 땅이 햇볕에 건조해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옥수수를 심고 2차로 비이트와 당근 등을 심는 6월 하순경에도 땅은 틀림없이 부드러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우리 집에 우유를 배달해 주는 한 농부가 '못쓰는'건초 - 나에게는 훌륭한 유기피복감이었지만 - 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온 밭에다가 두둑이 깔아 주었다. 나는 아스파라거스가 피복물을 뚫고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는 퇴비를 하나도 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건초를 다 깔아 주고 나자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심는 일과 솎아 주기, 그리고 수확하는 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씨를 심으려면 언제든지 피복물을 걷은 다음 씨앗을 넣고 나중에 싹이 돋으면 다시 피복물을 어린 싹 주위로 바싹 덮어 주어 습기가 보존되고 풀이 나지 못하도록 해주면 되었다.

이웃의 농부들이 처음에는 나를 비웃었다. 몇 해 동안 그들은 봄이면 우리 집에 들러서 땅을 갈지 않겠느냐고 묻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씩 내 방법의 성과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썩고 있는 낙엽과 건초의 피복이 땅을 놀라울 정도로 비옥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마침내 받아들이고는 그들은 더 이상 나를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도 마침내 자신의 밭에도 쟁기질하기를 그만두고 피복을 해주기 위해서 나의 밭을 '한번 더 봐 두려고' 발을 멈추곤 했다. 나의 밭은 매우 비옥해져서 작물을 더 배게 심어도 되고 지금은 퇴비도 쓰지 않는다. 밭은 원래의 넓이의 8분의 1로 줄어들었고 너무나 우거져서 가을에는 정글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 가 되어 버린다.

달고 부드러운 당근은 어떤 것은 다섯 사람이 먹을 정도로 컸다. 스페인 품종의 단양파는 하나가 평균 1파운드(450그램)씩 나가며 큰 것은 125파운드나 된다. 나는 이식법(인공적으로 관리되는 육묘상에서 키운 어린 모를 밭에 옮겨 심는 농사법으로, 작물의 수확기간을 연장하거나 수확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 - 역주)을 좋아하지 않는다.(아무튼 그것은 나중에 휠체어에 앉아서 하기에는 곤란한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양배추, 꽃양배추 등은 3∼40센티쯤씩 간격을 띄워서 직파한 다음 나중에 하나만 남기고 솎아 주었다. ... 줄임 ...
  
요즈음 들어 퇴비 만들기에 대해서 말들이 많고 그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힘들고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병충해 때문에 어떤 종류의 농약도 쓴 일이 없고 딱정벌레나 조명충 나방(옥수수의 해충), 진디, 뿌리를 잘라먹는 벌레 등과 마주친 일도 없다. 나는 다만 농약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어졌기 때문에 사용을 중단했던 것이지만 처음에는 왜 벌레들이 더 이상 극성을 부리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신의 섭리가 나에게 상을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 내린 것인지, 혹은 유기농법에 대해서 최근에 들은 이야기가 정말 맞는 것인지?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어떤 작은 요정이 , 혹은 어떤 생물이 나의 밭을 벌레들에게서 지켜 준 것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 사람들이 흔히 물어 보는 것
 
당신이 그토록 강조하는 20센티 두께의 피복을 하려면 처음에 얼마나 많은 피복감을 준비해야 합니까? 나는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기 오래 전부터 이 방법으로 농사를 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기록해 두지 않아 대답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클레망스씨의 말로는 70평의 땅에 약 500kg의 건초가 필요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피복을 한 밭에서도 씨앗을 보통 방식으로 심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즉, 피복물을 걷어 내고 씨앗을 땅속에 집어넣고 싹이 트면 작은 싹 주위로 피복물을 바싹 당겨서 덮어 주는 것이다. 작은 씨앗은 심은 다음에 그 위를 덮지 말아야 하지만 원한다면 톱밥을 조금 흩뿌려 주거나, 아니면 건초를 느슨하게 조금만 덮어 준다.

싹은 이것을 뚫고 올라오는데 나 자신도 처음에 말로 들었을 때는 믿기지가 않았지만 해 보고는 그것이 정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옥수수, 콩, 완두, 호박 등과 같이 큰 씨앗은 심은 즉시 수 인치 두께로 건초를 느슨하게 덮어 주어도 된다. 그러면 풀도 막아 줄뿐더러 옥수수나 콩 같은 경우에는 새를 피할 수 있다.
 
20센티나 되는 피복물 틈으로 어떻게 작은 씨앗을 안전하게 심을 수가 있습니까? 피복물을 다 깔기도 전에 그것은 가라앉기 시작하여 20센티 두께의 느슨한 상태가 아니라 5∼8센티의 단단한 덩어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밟히고 비 맞고 해서 어떻게든 가라앉을 것이고 단단히 눌린 건초를 깔 경우에는 반드시 20센티 두께로 깔지 않아도 된다.

톱밥이나 참나무잎 같은 것은 토양을 산성화시키기 때문에 피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이에 대해서는 많은 경험이 없다. 그러나 많은 농민들로부터 톱밥과 참나무 잎을 쓰고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사람들은 피복감으로 무엇을 써야 할 지를 물어 온다. 건초, 볏짚, 낙엽, 솔잎, 톱밥, 풀, 쓰레기 - 썩는 식물성 재료라면 무엇이나 좋지만. 건초와 낙엽을 섞어 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피복물을 얼마나 자주 깔아 주나? 필요로 하는 곳이 보일 때면 언제든지 풀이 어디서고 올라오면 그 위에 그저 건초를 한아름 던져주라.
 
거름을 뿌려서 갈아엎고 그 위에다 피복을 해야 할까요? 당신의 밭이 척박하다면 그렇게 하라. 그렇지 않다면 피복만으로도 목적한 만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석회는 언제 주어야 하고 얼마나 주어야 하며 피복물 위에다 뿌리는가, 아니면 그 밑에다 뿌리는가? 세 가지 중에서 처음 두 가지 질문은 피복과는 상관이 없다.

나의 농법을 알기 이전에 했던 것과 똑같이 석회를 뿌려라, 땅의 산성도 시험을 의뢰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방식이 토양 산성화 문제를 자동적으로 해결해 준다는 말을 들었다.(광신자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다.)그것은, 피복된 밭에는 곧 많은 지렁이가 생기고 이 작은 친구들이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세번째의 의문에 대해서는 씨를 뿌릴 때 땅에 바로 뿌리던가 아니면 피복물 위에 뿌리되 비나 눈이 올 만한 때에 뿌려서 원하는 때에 피복물 틈으로 씻겨 내려가도록 하면 된다. 나는 5년 동안 석회를 써 본 일이 없고 또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피복을 하면 땅이 습해져서 괄태충이 생기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우리 밭에는 괄태충이 없다) 나는 「유기농의 생태학」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여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피복이 잘 되어서 부식토가 많아지면 지렁이가 많이 생기고 이들이 땅을 알킬리화 시키기 때문에 괄태충이 꼬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괄태충이 정말 문제가 된다면 다음 장의 마지막 절에 있는 맥주 요법을 시도해 보시기 바란다. ... 줄임...
 

- 나의 농삿일
 
... 줄임... 양파 모종은 작년의 피복 위에 그냥 흩어 던지면 된다. 그리고 그 위에 몇 인치의 건초를 깔아 주면 한 파운드를 '심는'데 몇 분이면 족하다. 그리고 원한다면 언 땅이 풀리기 전에 할 수도 있다. 상추 씨도 언 땅에 -피복 위가 아니라 - 던져 놓기만 해도 싹이 튼다. 물론 이것은 갈아 놓은 땅에서는 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씨감자를 작년의 피복 위에, 혹은 땅위에, 심지어는 잔디 위에 놓고 건초를 30센티쯤 덮어놓으면 나중에 그저 피복물을 걷고 달린 감자를 캐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 줄임...
  
잡초가 여기저기서 조금씩 올라올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피복을 충분히 두껍게 하지 않은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 위에다가 건초를 좀 더 던져 주는 것이다. 순무나 당근 같은 것을 솎아 줄 필요가 생기면 제거하고 싶은 것 위에다 피복물을 조금 덮어 주면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해결된다.

가을에도 나의 밭일이란 여름이나 거의 같다. 거두어서 냉장하는 일이다. 11월 중순쯤 나는 건초를 펴 주고 낙엽을 끌어 모은다. 이때가 옥수수 밭에 건초를 이랑 따라 한 더미씩 놓아두기에 좋을 때다. 이듬해 봄에 이것으로 옥수수 사이로 심는 완두의 지주를 삼는다. ... 줄임 ...
  
나는 종자를 싸서 알파벳순으로 정리하고 내년의 농사 계획을 위해 도표를 만들고 일주일에 한번씩 원고를 쓴다. - 이 모든 것이 '일'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일'이란 아마도 초지일관 결심을 지키는 것일 것이다. 당신이 근방에서 땅을 갈지 않는 이 방법을 쓰는 유일한 사람이라면 친구와 이웃들이 당신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냥 무시해 버려라. 그들의 목소리가 바뀔 것이다.
 


- 밭에다 좀더 많은 피복물을!
 
얼마 전 누군가가 나에게 연중 피복 농법에 반대하는 의견에 맞서서 책을 쓸 것을 제안했을 때 나는 내가 왜 결과를 모르는 사람들과 논쟁을 해야 할지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이 방법으로 최소한 3년 이상을 시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에 대해서 반론을 펼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오랫동안 해 보았다면 감복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왜 나는 3년이라고 했는가? 작물이 매년 똑같은 양상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농민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피복법을 시도하다가 뭔가 잘못되면 당신은 그 탓을 엉뚱한 데로 돌리기가 쉬운 것이다. 예를 들어서 피복이 충분치 못해서 풀이 올라오면 당신은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괄태충이 나타나면 이것은 틀림없이 밭에 건초와 낙엽을 깔아 놓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을 것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피복을 해 왔고 나의 밭에는 괄태충이 한 마리도 없다. 만일 나타난다면 얕은 그릇에 맥주를 담아 밭에다 놓아두라, 그러면 그들은 행복하게 죽을 것이다.(괄태충은 맥주를 한잔하려고 모여들지만 맥주는 그들을 해치운다) 당신의 밭이 점토질이라면 안심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려면 몇 년 동안 피복을 계속한 후라야 할 것이다.

나의 밭은 사질이라서 흙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는 건초, 옥수숫대, 낙엽, 풀 따위의 좋은 거름을 많이 땅속에 넣어 줘야 한다고 들은 대로하고 있다. 2, 3년만 이렇게 해 주면 그 다음에는 피복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다. 고집센 사람들은 건초로 덮어놓은 땅은 노지 보다 빨리 지온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일찍이 파종해야 하는 작물에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쯤이야 열살박이도 풀 수 있는 문제다. 즉, 가을에 이듬해 일찍 파종할 곳을 정하고 그곳은 일찍 건초를 걷어 놓는다. 그리고는 봄에 다시 덮어놓으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나의 경험에 의하면 먼저 땅을 갈아야만 하는 다른 밭보다 더 일찍 파종할 수 있다.
 
또 다른 주장은 피복한 식물은 하지 않은 것보다 더 잘 언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을 수 없다. 처음에 이 호소를 듣고서 나는 몇 해 동안 일부는 피복물을 걷어 두어 실험을 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것이 다른 것보다 더 안전하지도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연관해서 피복 반대론자들은 또 아스파라거스는 매우 이르게 수확하는 것인데 피복을 하면 늦어진다고 한다. 좋다.
 
하지만 첫째, 아스파라거스가 너무 일찍 나오면 수확하기도 전에 얼 염려가 있다. 둘째, 피복물을 걷어서 땅이 녹도록 해주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 채소는 6주간 수확을 하는데 오랫동안 수확하려면 반은 그대로 놔두고 반은 피복물을 걷어 놓는 방법이 아닐까? 그러면 8주 동안 수확할 수가 있을 것이다.... 줄임...
 



- 40년간의 유기농이 깨우쳐 준 것
 
내가 처음으로 밭을 가졌을 때 12년 동안은 그저 순진하게 경험 많은 사람들이 일러주는 대로 따랐다. 예를 들어 해마다 땅을 갈아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의문 사항이 되지 않았다. 물론 냄새는 싫지만 화학비료도 뿌려야만 했다. 게다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어린 싹에다 독약을 뿌려야 했다.

나는 농사에 관한 잡지와 책을 보면서 필자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리는 것을 외면하려고 애썼다. 토마토와 완두는 시간과 노력이 아무리 들더라도 지주를 세워 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아스파라거스를 심기 위해서 깊은 골을 길다랗게 파야만 했다.(내가 당한 불행은 얼마든지 길게 늘어놓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덧붙여서 나 스스로도 당연히 많은 실수를 했다.

한가지는 해마다 갈아엎어야 하는 우리 밭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여섯 배 이상이나 컸다는 사실인데 몇 해가 지나서야 나는 이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형편없었던 땅에 많은 거름과 낙엽을 부어 놓은 후였고 그 땅을 포기한다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그처럼 안목이 짧은 생각을 무시했다.

즉, 열댓 포기의 토마토를 심는 대신(그때는 통조림이나 냉장을 하지 않았으므로 제대로 된다면 충분한 양이었다) 잘 안되더라도 그 중 잘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도록 백포기 쯤 심었던 것이다. 달리 말해서 열댓 포기를 잘 가꾸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는 않고 백포기나 심느라고 안달복달하면서 시간과 노력을 낭비했던 것이다.
 
나의 멍청한 생각의 결과 그 넓은 밭이 정말 제대로 온갖 열매를 맺기 시작했을 때 나는 옥수수, 딸기, 토마토, 오이 등등의 엄청난 홍수에 밀려 그것들을 처치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상당 부분의 밭을 포기할 용기와 이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나의 채소밭은 60평 정도이다. 여기에는 두 이랑의 아스파라거스와 장군풀 약간, 그리고 10미터 정도의 옥수수 이랑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것은 두 사람이 여섯달 먹기에 충분하고 냉장해 놓은 채소는 겨울을 지낼 동안 먹을 수 있다. ... 줄임 ...


- 질소 시비에 대해서

 
몇 해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래되고 평판 있는 한 농사 잡지에서 썩지 않은 유기물을 피복물로 사용할 때는 반드시 질소분을 땅에 보충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의 내용은 이보다 훨씬 강경했다. 그 기사는 이 같은 불길한 짓은 하지 말도록 겁을 주려는 듯했다. 나는 겁은 먹지 않았지만 흥미가 동했다.
 
나는 그 기사를 유기농의 전문가인 한 친구에게 보내어 내가 그것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나에게 면실이나 콩으로 만든 인스턴트식을 한 봉지 사서 뿌려 주라고 했다. 특히 상추와 시금치에, 그리고 내 생각에는 파슬리와 비이트와 옥수수에도. 나는 이대로 했고 우리 밭은 항상 무성했다. 나는 열명 쯤이 먹어야 알맞을 크기의 상추를 수확했다. 그것은 너댓명이 먹으려면 한 포기 중에 조금만 뜯어 오면 되었다. ... 줄임 ...
  
그러나 내가 모르고 있는 기술적인 질문을 해 올 때 그것이 나의 피복법과 연관이 있는 질문이라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올바른 답을 찾아보아야겠다는 의무를 느낀다. 또한 나 자신의 경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과연 어느 쪽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아내려고 애쓴다. 그 한가지 예가 1955년판의 "유기 농업"에서 읽은 한 기사이다.

그것은 아처 마틴이 쓴 '공짜로 유기피복물을 구하는 방법'이었는데 그것은 아주 흥미 있고 볼만한 기사였다. 그런데 그 중에서 나의 마음에 걸린 것은, '작물의 성장기에는 생유기물을 깔아 주면 그것이 썩으면서 작물로부터 질소성분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나는 마틴씨에게 편지를 띄워, 나는 13년 동안이나 모든 작물에 생유기물을 주었지만 내가 질소분을 보충해 주기 위해서 면실을 사용하기 이전에도 그것이 해롭다고 생각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이렇게 답장했다. '성장을 위해서 질소가 필요하듯이 부식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도 질소가 필요합니다. 부식 과정은 성장 과정보다 힘이 센 것 같습니다. 나는 부식에 사용되는 질소는 성장하려는 식물로부터 빼앗아 온 것이라는 말을 일평생 들어왔거든요.' 마틴씨는 농학자가 아니므로 좀더 과학적인 견해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미처 그럴 생각도 하기 전에 유기 농업의 1956년 2월 판의 문답란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 ..
 
우분을 쓰는 것은 좋다. 하지만 충분히 썩은 것이라야만 한다. 생똥은 썩으려면 질소가 필요하고 그러면 땅은 우분이 다 썩을 때까지는 질소 성분을 빼앗기게 된다. 그 이후라야 식물은 질소 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나는 10년 동안 가축의 똥을 써 본 일이 없다. 나의 농법으로 땅이 워낙 비옥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에 그것을 썼을 때는 나는 언제나 생똥을 더 좋아했고 아무런 말썽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 말도 역시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모순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의 학자에게 편지를 띄웠다. 한 사람은 큰 종묘 상사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또한 사람은 코넬 대학의 채소원예학과 교수인 아더 프랫씨였다.

프렛 박사는 코넬 대학에서 발행된 학술지를 보내 주었다. 종묘 상사에서 온 답과 프랫박사의 답이 똑같았으므로 프랫박사의 편지 내용만을 인용하겠다. '그렇습니다. 낙엽이나 건초, 짚 등등의 유기물이 썩지 않았거나 일부만 썩었을 경우에 그것이 땅 속에 들어가면 땅에서 질소 성분을 빼앗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처럼 그것을 땅 위에다 피복할 경우에는 질소 결핍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물론 처음에 땅 속에 충분한 질소분이 없다면 상당한 기간 동안은 피복물이 땅에 질소분을 공급해 줄 것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질소를 결핍되게 하지도 않으며 공급해 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
 
나는 썩지 않은 분뇨를 땅 속에 넣었을 때에도 질소 결핍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만일 결핍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짚을 많이 섞었기 때문일 것이지만 그래도 결핍 현상은 극히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면실을 뿌려 주었을 때에도 땅이 냉습한 기후에는 일시적인 질소 결핍 현상이 생깁니다.

그 이유는 물론 박테리아가 우선 이 복잡한 유기물을 분해하여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질산염의 형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박테리아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이미 사용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는 질소 성분을 이용합니다. 며칠, 혹은 몇 주일 후면 박테리아는 죽으면서 작물에게 질소를 내어놓게 됩니다' 학자들의 대답이 나의 경험과 일치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믿는다. 내가 농사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그들이 어떤 사실을 언급함에 있어서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를 자신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 줄임 ...
 


- 쟁기질과 서리 피해, 그리고 다른 멍청한 생각들
 
... 줄임 ... 어떤 분야에 있어서나 권위자가 '나는 모르겠다'고 말하기란 확실히 어려운 모양이다. 농민 단체에서 강연을 하게 되면 나는 가끔 청중들에게 말해 준다. 꼭 읽어야겠다면 농사 관계책은 한 권만 읽어라, 두 권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 책들은 거의 틀림없이 서로 다른 말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항간에 떠도는 모든 믿을 수 없는 충고와 '정보'들에 너무나 질려 있기 때문에 글을 쓰거나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때면 절대로 충고를 하려고 하지 않고 다만 나는 이렇게 저렇게 했고 그 결과는 어떻더라고 만 말해 준다. ... 줄임 ... 피복한 밭에 벌레는 어떤가?
 
나는 호박 심는 곳에는 몇 해 동안 담뱃재를 뿌려 주었는데 한 마리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배추과의 작물에는 어릴 때 소금을 뿌려 주고 있는데 역시 벌레가 없다 그 외에는 다른 벌레들 때문에 신경을 쓴 일이 전혀 없었고 몇 해 전 봄까지 피해를 본 일이 없었다. 그 일은 슬픈 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짧게 줄여야겠다.

그때까지 나는 뿌리를 잘라먹는 벌레를 단지 피복을 바싹 당겨서 덮어 주는 것만으로서 막아 왔는데 그 해 봄, 상추싹이 새포기가 올라오지 않고 파슬리와 비이트, 당근, 시금치 등이 3센티쯤 자라다가 사라져 버려서 나는 종묘상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를 물어 보았다. 그가 이곳에 와서 조사를 해보고는 우리 밭에 벌레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종묘상은 벌레들이 새로운 수법을 터득해서 작물이 땅위로 올라오기도 전에 해치워 버리고 있다고 하면서 해결책은 농약을 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유기농의 생태학"에서 다른 해결책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식물에서 추출한 농약인 로테논을 치던가 아니면 작물을 모두 잃고 농약을 친 채소를 사 먹던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쪽을 택하기로 했다. 그 후 얼마 동안 나는 뿌리 먹는 벌레가 다른 집의 밭에서도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여기에 다 쓸 수가 없었던 그 오랜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깨우쳤다. 그것은 내가 어떤 문제를 틀림없이 해결했다고 믿고 있을 지라도 그것이 어처구니없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 줄임 ..
- 귀농통문 4호 (1997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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