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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령 이야기

 

<가문의 영광> <뮬란>

  

잘났던 조상 외에 자랑할 것이 없는 인간은 감자와 같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단 한 가지 좋은 부분이 땅 속에 있기 때문에요. 우리는 흔히 어디로 가고 있는가보다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영광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꼭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원류에 대한 자긍심이 현실을 개척하고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종종 지나치다 싶을 만큼 조상과 가문에 집착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을지는 적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네요.

 

영화 <가문의 영광>과 <뮬란>은 우리로 하여금 조상과 가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호남 주먹 세계의 살아 있는 신화 쓰리제이(3J) 가문의 형제들이 공갈협박 브라더스가 되어 머리 좋고 잘 난 엘리트 사윗감을 집안에 들이려고 사생결단으로 달려드는 이야기를 다룬 <가문의 영광>은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시간을 ‘죽이기’에 좋은 흔한 조폭 코미디의 하나죠. 하지만 실컷 배꼽 잡고 웃음 터뜨리고 난 뒤에 왠지 마음 한 켠에 이런 생각이 맴돌더군요. ‘도대체 가문이 뭐 길래….’

 

비슷한 여운을 남기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뮬란>이 바로 그것이죠. 파 가문의 영광을 위한 뮬란의 고군분투기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가문’이나 ‘조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기로는 <가문의 영광> 뺨치죠.

  


우리 인간들은 모두 특정한 가문, 민족, 종족에 속합니다. 에소레릭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 개인에게 특정 기질과 운명이 있듯이 가문이나 민족 등에도 특정한 기질과 운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구체적인 현실성을 띠고 존재한다고 하지요. 거기에는 특정 가문과 종족을 수호하는 영, 즉 조상령과 종족령 등의 힘이 작용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의미에서 각각의 개인들은 그러한 조상령이나 종족령의 단순한 집행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달리 말해 어떤 조상령이나 종족령이 자신의 계획을 물질계에 실현시키기 위해 그 구성원 개개인들을 하나의 도구로서 사용한다는 것이죠.

 

이때 우리 인간들은 자기가 지금 행하는 일의 고차원적 의미나 성격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조상령이나 종족령의 의도에 따라 일을 하게 됩니다.   

 

영화 <뮬란>에서 뮬란이 여자의 몸으로 아버지 대신 전쟁에 나갔을 때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조상령들의 회의가 열리고 그녀를 보호해 주기 위한 특별 조치로 수호신을 보내주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뮬란은 멸망의 위험에 처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게 되지요. 영화는 뮬란의 공훈 이면에 조상령의 인도가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지요.

 

<가문의 영광> 또한 동일한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쓰리제이 가문의 형제들이 여동생을 엘리트에게 시집보내려고 기를 쓴 데는 우수한 피를 수혈 받아 가문의 질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지요. 그들의 그런 무의식적인 충동의 이면에도 필시 조상령의 힘이 은밀히 작용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지요.

  

 

슈타이너(인지학회의 창설자)는 우리를 인도하고 수호해 준다는 측면에서 조상령, 종족령에게 감사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우리는 지상의 특정 국가 또는 민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나 그 보호 아래서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죠. 그런 처지에 있는 인간이 자기 나라와 민족을 비하하고 우습게 여긴다면 그것은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행위가 됩니다.  

 

몸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있으면서 툭하면, 난 한국이 싫어, 난 OO 나라가 좋아, 난 떠날 거야,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지극히 안 좋은 태도입니다. 일단 우리가 세상의 하고 많은 나라들 중에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것은 섭리가 우리에게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도록 기회를 준 것이라 볼 수 있죠. 한국의 보호 아래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 보답으로 한국의 발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발전 과정 중 어느 시점에선가는 조상령이나 종족령의 지배권으로부터 반드시 벗어나야만 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조상령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슈타이너조차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다시 말해 자기가 속한 특정 공동체의 온상에서 벗어나 세계를 하나의 가족으로 여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된다는 것이죠.

 

막스 하인델(장미십자펠로십의창설자)은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인간들을 종족령과 조상령으로부터 해방시켜 모든 인류를 보편적인 형제애 속에서 하나로 묶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 왔다.”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가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죠.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느니라.” 하인델은, 여기서의 ‘나’는 바로 우리들 모두 안에 있는 개체적인 진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리들 내면에 있는 개체 영은 신성의 불꽃으로서 모든 종족과 인종들 이전에 존재해 온 것이다. 따라서 지상의 모든 종족과 인종이 다 사라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영은 남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볼 때 우리가 따라야 할 진정한 존재는 다름 아닌 내면의 신(진아)이다.’

 

그는 또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은 내면에 있는 신의 해방이고, 마땅히 우리는 개체로서 각자의 특권을 행사하여 혈족, 종족, 국가를 넘어서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가족과 나라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에 대한 모든 의무를 이행해 나가되, 다만 우리 자신을 그 부분들과 동일시해서는 안 되고 대신 전 세계에 대한 형제애를 인식해야만 한다.“

  

종족령의 지배 하에서는 종족, 혈족, 국가 등이 최우선시 되고 개인은 맨 나중이 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그 결과 혈통의 순수성, 우수성 유지가 의무처럼 여겨지게 될 거구요.

 

에소테릭 가르침에서는 이런 본능과 그에 수반해 발생된 모든 관습들은 우리들의 피 속에 존재하는 종족령 또는 조상령의 활동의 결과라고 합니다. 결국 혈통의 순수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조상령의 힘은 그만큼 강해지고 개인을 그 종족이나 부족 또는 가문에 구속시키는 연결고리도 강해지는 것이지요.

 

에소테릭 과학에 의하면 피는 영이 활동하기 위한 매개가 되는데, 종족령이나 조상령은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를 통하여 이 피 속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또 후손들은 피를 통하여 그 혈족의 집단 기억에 다가가게 되구요.

 

피는 생명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에테르체와 관련되고 에테르체는 다시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조상의 삶에 접한 후손들은 그것을 마치 자기 자신이 산 것처럼 여기게 되죠. 그렇게 되면 자손은 자신을 조상들의 긴 흐름의 연속으로 여기게 되고, 그는 자신을 하나의 독자적인 자아로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뮬란은 뮬란이 아니라 ‘파 가문의 딸’이 되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종족령이나 조상령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일반인들이 그 단어와 접할 때 어렴풋이 떠올리는 개념들과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에소테릭적인 관점에서 조상령이라고 할 때, 그것은 죽은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의 개개의 영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진정한 자아는 죽은 뒤 윤회를 거쳐 지상의 어디선가 다른 몸을 입고 살아가고 있겠지요. 에소테릭 과학에서 말하는 조상령은 한 가문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천사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살아생전 지었던 모든 행동과 상념의 에센스는 가문의 천사(즉 조상령) 속에 고스란히 각인 돼 있게 되지요. 그리고 그 조상령은 우리의 에테르체 안에서 활동합니다.

  

조상령이 천사라면 종족령은 대천사들입니다. 그들은 인간과 동물의 진화를 돌봅니다. 대천사들은, 이를테면 아스트랄 질료를 다루는 숙련된 건축가들이라 할 수 있지요. 그들은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과 동물들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합니다. 요컨대 조상령이 에테르적 존재라면 종족령은 아스트랄적 존재이죠. 

 

투시가들이 볼 때 종족령은 그들(종족령)의 지배 하에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 전체의 대기를 감싸듯 스며들어 있는 구름처럼 보인다고 하지요.

 

애국심은 종족령에 의해 나오고 길러지는 감정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사해동포주의를 가진 사람들은 그만큼 종족령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이라 할 수 있죠. 반대로 종족령이나 조상령의 지배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고향이나 고국을 떠나 다른 종족령이나 다른 조상령의 대기를 흡입하면 몹시 괴로워하고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고 하지요. 이른바 향수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죠.

 

 

세계를 살펴보면 미개한 나라일수록 조상령이나 종족령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된 국가일수록 개체성을 존중하고 개인에 대한 자유가 더 많이 보장되지요. 국가와 민족의 틀을 벗어나 전 세계를 하나의 형제로 생각하고 서로 나누고 돕는 사해동포주의의 이상은 우리를 영적인 해방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들 개체 자아의 의지는 사랑의 법칙을 따라 그 어떤 존재(조상령이든 종족령이든)의 지배도 받지 않고 의식적으로 흐르게 되니까요. 

[출처: http://blog.naver.com/eyeinhand/10182152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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