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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적지적 - 탄허>


김항배(동국대 교수) : 종교란 믿음이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왜 우리가 믿게 되며, 믿지 않을 수 없는가를 말씀해 주십시오. 

 

탄허스님 : 지금 각 종교에 있어서 믿음이 많지만, 불교사상에서 비춰볼 때 과연 정신(精神)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문이 갑니다. 그럼 어떤것이 바른 믿음인가? 주관 밖에 어떤 객관체로써 믿는 대상이 있으면 이것은 바른 믿음이 아니며, 또 그렇다 해서 객관체가 없는 주관만이 서 있다면 이것도 또한 바른 믿음이 못되지요. 주관과 객관이 완전히 없어진 믿음이라야 바른 믿음이 되는데, 흔히들 공부를 안했기 때문에 그걸 몰라요. 다시 말해서 불교의 참 믿음은 믿는다고 하는 것까지 끊어진 믿음이라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무소득(以無所得)이 반야사상의 골자지만 이 믿음도 무소득(無所得)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항배 : 스님 말씀대로 믿는다는 것이 사유(思惟)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구별하기 어려우리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 있고, 또 무소득한 가운데 불가사의한 묘용이 있다는 것이 더욱 독특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믿음을 가지고 그 생활 속에서 믿는 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인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탄허스님 : 조금 전에 말한 주객이 끊어진 믿음은 실견득(實見得)이 필요하지만 일반인으로는 어렵지요. 다만 그것을 목표로 설정해 두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회인으로서 그렇게까지는 못되더라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길인가? 옛날 어떤 학자가 사마온공에게 " 어떤 것이 평생 행할 도(道)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성(誠)"이라고 대답했지요. 다시 그 학자가 "그러면 먼저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라고 하니 "망령되이 보지말고 망령되이 말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보지 않을 것은 보지말고, 말하지 않을 것은 말하지 말고, 바로 보고 바로 말하는 것으로써 성을 행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또 세상에 처하는 데는 부드러운 것이 좋고, 강하고 굳센 것은 화(禍)의 근원이 된다고 했어요. 처세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아무인(無我無人), 즉 주객이 끊어진 행(行)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아까 말한 것처럼 망령되이 보지 않고 망령되이 말하지 않는 것이 차선(次善)이지요. 

 

김항배 : 헛되게 보지 말고 헛되게 말하지 말라는 좋은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면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 즉 생각이 삿됨이 없다는 말을 방금 말씀하신 진실무망(眞實無妄)과 관련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탄허스님 : 시전(詩傳) 3백 편을 한 말로 가리키면 생각이 삿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전 3백 편에는 온갖 소리들이 많지요. 그렇지만 이 시전을 '사무사'라 함은 중(中)의 자리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이 시전을 성인의 경으로 받드는 것도 바로 그 사무사 때문이지요. 희, 노, 애, 락, 애, 오, 욕, 즉 모든 생각이 일어나기 전을 중(中)이라 합니다. 이 중이라 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리를 말하지요. 그런데 희로애락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니까 일단 생겼다가 도로 절차에 합한다는 것이 중인데, 성인도 그것이 없을 수 없지만 났다가 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성(誠)이지요. 그러니까 본래 진실해서 망상이 없는 자리는 천도(天道)이며, 진실무망 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人道) 입니다. 그러니 본래 진실무망한 데서 밝아진 것을 성(誠)이라고 하고 밝은 자리로부터 밝아져서 진실무망인 것을 교(敎)라고 하는 것입니다. 

- 출처: 탄허대종사년보 (교림 출판사)

- 사진: http://guamcafe.tistory.com/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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