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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4대 문명발상지 왜 사막화되고 있을까  

[논농사의 4가지 비밀] 논과 콩으로 홍수와 사막화를 막다   


<레디앙>은 앞으로 경기도 안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안철환씨의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안씨는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 도시농업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레디앙의 글을 정리한 것 입니다] 


올 봄엔 매일 잠자기 전 지리부도를 보는 게 취미였다. 세계 사람들은 농사를 어떻게 짓고 있는가도 궁금했고, 경작지와 자연녹지, 도시의 문명지역이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다 몇 가지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질문① 인류의 4대 문명지는 왜 사막화되고 있을까?



하나는 이른바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들은 한결같이 사막지역이거나 현재도 사막화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집트 문명 발상지인 나일강 주변이 그렇고,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인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 주변도 그렇고, 인도의 인더스 강과 중국의 황허 중상류 지역이 그렇다. 


참으로 이상하고 궁금한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곰곰이 살펴보니 이 지역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바로 밀 농사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밀 농사라.... 그런데 밀과 사막이 무슨 상관이 있지?”


그러다 바로 육식이 떠올랐다. 서양 사람들은 빵과 고기가 주식이지 않은가. 답은 거기에 있었다. 빵을 주식으로 하지만 모자라는 단백질을 육식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지리부도를 꼼꼼이 뒤져보니 사막화의 주원인이 방목과 목축이라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밀농사 지역의 기후는 겨울이 습하고 비교적 따뜻하다. 그래서 겨울 작물인 밀이 잘 자란다. 우리는 여름이 다습하여 벼가 잘 자라는 것과 반대다. 


밀농사 지역은 반면 여름이 건조하면서 시원한 편이다. 더운 지역이라도 건조하기 때문에 밀농사 지역의 여름엔 목초지가 발달한다. 목축이 잘 되는 것은 이 때문이며 밀과 육식, 빵과 고기가 서양 사람들의 주식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질문② 왜 논 농사지역은 사막화가 되지 않을까?


필리핀 다락논


두 번째로 궁금한 점은 논 농사 지역인 동아시아는 밀 농사 지역과 달리 열대우림 다음으로 녹화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처음 농사를 지으면서 기뻤던 것은 자연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이었는데, 반면 반자연적인 도시문명도 따지고 보면 농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농사에 대한 태생적 회의감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회의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동아시아의 논 농사 지역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논의 저수 능력과 지표 보호 능력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논 전체 담수량이 소양강 호의 7∼8배가 된다 하지 않는가. 논이 있음으로써 홍수를 막아주고 홍수로 인한 지표의 유실도 막아준다. 말하자면 논이 사막화를 막는 파수꾼이라는 점이다. 


또한 논은 지하수를 지켜주어 산 계곡물이 마르는 것을 밑에서부터 막아주니 산의 숲까지 지켜준다. 예컨대 내가 농사짓고 있는 우리 농장 입구에 KTX 지하 구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터널로 일대 지하수 맥이 끊기자 그 많던 물이 계곡에서 말랐다는 사실이다. 


논은 사막화를 막는 파수꾼 


논이 대부분이었던 우리 마을에서도 논은 다 없어지고 밭으로 바꾸거나 공장 부지로 바뀌어버렸다. 이처럼 서울이나 도시 주변엔 이미 많은 논들이 사라진지 오래다. 게다가 이상 기후로 집중 호우도 잦으니 더 홍수 피해가 커진다. 


이번 강원도 피해 지역을 보면 대부분 관광지역으로 개발된 곳이거나 논농사가 발달하지 않은 지역이다. 필리핀이나 남중국 산골짝에 발달한 산 다락논 지역처럼 산꼭대기까지 논이 만들어져 있었다면 그렇게 홍수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논 농사지역인 동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지역보다 남다른 농경문화를 발달시켜왔는데, 그 핵심엔 콩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양 사람들은 밀을 먹으며 모자라는 단백질을 고기로 보충했다면 우리는 쌀을 먹으며 모자라는 단백질을 콩으로 보충했다. 밥에 콩 넣어 먹는 민족은 우리 밖에 없단다. 또 콩은 만주와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서양은 고기로 우리는 콩으로 단백질 보충


중요한 것은 목축은 흙을 황폐화시키지만 콩은 흙을 비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농사의 으뜸은 쌀과 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반대는 당연히 밀과 목축이다. 콩을 남은 자투리 땅인 논 둑에다 심었던 것은 우리 조상들의 훌륭한 농경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풍경이었다.


게다가 우리 조상들은 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더 위로 올린 장본인들이다. 조선말 일제 식민 초기에 만주로 이주한 조선 사람들이 논농사가 되지 않는 만주에서 논을 만든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만주는 가문 지역이라 한전(旱田) 작물인 옥수수 감자 수수 정도나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날씨도 춥고 비도 적게 오는 지역이니 고온다습한 기후에서나 가능한 벼를 어떻게 재배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조선민족 특유의 부지런함과 근성으로 가능했다. 


조선에서 거의 피난오다시피 도망 나온 만주의 조선족들에겐 농사지을 땅 한 평 얻기 힘들었다. 이런 이들에게 눈에 띈 곳이 바로 늪지대였다. 옥수수 감자 같은 작물이나 재배하는 만주 사람들에겐 쓸모 없는 버려진 땅이지만 조선 사람들에게는 논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땅이었다. 게다가 늪이란 일종의 수렁논이라 가뭄도 덜 타니 더없이 훌륭한 논으로 만들 수 있었다. 


원래 우리민족은 쌀을 제일 중요시했기 때문에 밭보다 논을 더 귀하게 여겼다. 땅이 생기면 밭보다는 논을 만들려 했고 밭에서 키우는 채소작물은 집 앞 텃밭이나 채마밭 정도면 충분했다. 지금처럼 밭 위주로 농사짓는 것과는 현격히 달랐다. 현미잡곡밥 큰그릇에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된장찌개 정도였던 옛날 밥상 문화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원래는 다양한 곡식을 넣은 현미잡곡밥으로 기본 영양을 섭취하고 반찬은 말 그대로 밥이라는 주인공에 보조적인 역할이나 하는 의미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밥상에는 육식의 비중이 커지면서 육식을 보조하는 반찬이 중요해져 종류도 다양해진 반면 밥은 백미공기밥으로 작아지면서 그저 탄수화물 채워주는 보조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쨌든 그런 우리 조선민족이 만주에서 버려진 늪지대 땅을 논으로 개간하여 쌀이라는 맛있는 곡식을 만주에 퍼뜨리자 만주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을 아주 고마워했다고 한다. 춥고 가문 지역이지만 한여름에는 한반도만큼 더워 짧은 순간 벼가 자랄 수 있었고 긴 추위에 견딜 수 있는 종자를 육종하여 만주에 맞는 벼종자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그런 우리 민족의 근면과 근성은 연해주까지 퍼져서 더 북쪽으로 벼농사를 퍼뜨렸으니 가히 우리 민족이 동아시아에서도 으뜸가는 농부라고 나는 자부하곤 한다.



질문③ 왜 백인들은 동아시아에 정착하지 못했을까?


북미초원


세 번째로 의문을 가진 것은, 유럽의 백인들이 식민개척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 독립 이후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정착하였지만 유독 동아시아 지역에서만큼은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너무나 나에게 궁금증을 자극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백인들은 신대륙 발견 이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식민지를 개척하고 그곳의 토착민을 수탈할 뿐만 아니라 멸종까지 시켜가며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렇게 해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까지 명성을 날렸으며 그 외 다양한 곳에서 백인들은 뿌리를 내렸다. 


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북미, 중미, 남미, 등 안 뻗친 데가 없으며 게다가 북중남미에서는 기존의 인디언을 멸종시키면서 새로운 인종을 탄생시키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독 식민지 해방 시대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선 백인들이 뿌리를 내린 곳이 하나도 없다. 필리핀, 인도, 인도차이나반도, 인도네시아 등 백인들이 한때 식민지를 개척했던 지역에서 모두 백인들은 떠나갔다. 왜 그랬을까?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동아시아지역의 뿌리깊은 역사와 독자적 문명의 존재 때문일 것 같지만 나는 뭔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특별한 연관을 찾지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것은 아마도 논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컬럼버스가 인도로 착각하고 북미 대륙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그곳에서 광활하게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에 황홀해했다. 그들은 원래 향료를 구할 목적으로 인도를 찾아 떠난 것이지만 향료보다 더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구와 수요가 늘어 자신들의 목초를 황폐화시키는 유럽의 소들을 신대륙으로 옮기는 소 식민프로젝트를 감행했다.


인디언들의 식량이자 북미의 초원을 지키는 버펄로라는 야생종들은 대대적으로 멸종되었고, 북미의 목초를 지켰던 인디언들도 그와 함께 학살되거나 백인들이 옮겨온 병에 걸려 죽거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쫓겨나거나 잘해야 백인들의 소들을 지키는 카우보이로 전락했다.


목초를 찾아 식민지를 개척했던 백인들은 북미만이 아니라 중남미, 호주, 캐나다, 아프리카 등 어디든지 전 세계를 휩쓸고 다녔다. 그리고 좁은 유럽의 땅에서 벗어나 소와 함께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으며 그렇게 해서 늘어난 10억 이상의 백인들은 아마 중국 다음가는 인구수를 갖게 되었다.


바로 해답은 목초에 있었다. 논 지대는 소를 목축해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하등 쓸데없는 땅인 것이다. 이른바 고온다습이라는 몬순기후에서는 목초지가 형성될 수 없다. 여름이 건조하고 적당히 따뜻해야 목초가 잘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④ 동아시아 논농사지역에 행복지수가 높을까?


네 번째로는 가난할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이 대부분 동아시아의 논 농사지역에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가난한데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처음엔 어렵지만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막연하게 끄덕거렸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단지 가난한 게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논농사 지역일수록 공동체 문화가 발달한다는 사실이다. 농사 중에 가장 협동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논이기 때문이다. 모내기에서부터 김매기를 거쳐 수확기까지 중요한 철마다 집중적으로 노동이 투여되어야 가능한 게 논농사다. 두레라는 우리의 고유 공동체 문화도 바로 논농사에서 나왔다. 


두레로 노동을 함께 할 때는 내논, 네논 따로 구별이 없었다. 누구의 논이든 상관없이 열심히 일을 했다. 더구나 몸이 불편하여 노동이 힘든 집의 논은 우선 순위로 먼저 일을 해 주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품앗이가 조금은 계산적인 원리라면 두레만큼은 철저히 이타적인 원리로 이뤄지는 공동체였던 것이다.


가난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들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지역에는 근대화, 세계화가 덜 되어 아직도 공동체 문화가 상당히 남아있기 때문인 것이다. 


태국으로 이민 간 선배 한 분이 그 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매점매석이 뭔질 몰라 물건 가격이 올라도 전에 사놓은 물건이라면 오르기 전 가격으로 판다는 얘길 해 준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매점매석을 말하면 참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식으로 쳐다보는 그들의 순박한 표정에서 그 선배는 왜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얘기해주었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철저히 서양화, 개방화,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면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공동체적인 요소가 사라졌다. 신뢰와 양보, 희생의 정신 대신에 경쟁과 돈의 원리가 주도하면서 우리에게 어느덧 행복이라는 삶의 질은 멀어져 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논들이 없어져 가듯이 말이다.


출처 : 병지방 자연학교  |  글쓴이 : 딸깍발이 원글보기


[ UNEP의 사막 방지 회의에서 세계 45개 지역의 사막화 현상을 조사한 결과, 이상 기후나 기상 조건의 변화로 인한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사막화가 된 경우는 13% 정도이고, 나머지 87%는 인류의 인위적인 영향에 의한 사막화가 이루어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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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 역사를 바꾼 고대 농법의 수수께끼

요시다 타로 (지은이) | 김석기 (옮긴이) | 들녘




한국에서는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안철환 선생님에게서 "위험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전통농업의 본래 목적이다."라는 견해를 들었는데, 이 책을 쓰면서 세계 각지의 전통농업도 '생산성'과 '안정성'을 저울질했을 때 안정성과 지속성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효율이냐 위험이냐'라는 본원적인 질문은 농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칼럼에서 잠시 소개한 '회복력'이란 개념을 이 자리를 빌려 약간 보충하여 설명하고 싶습니다. 원자력발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의 선진적인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회복력이 화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력이란 자연재해와 재해 등의 충격을 받았을 때 공황을 일으키지 않고 유연히 대응하는 힘 또는 타격을 모두 흡수할 수 없어도 즉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 '극복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염된 하천과 호수도 오염 유입을 중지시키면 다시 정화되고 다친 사람도 세월이 충격을 완화시키듯이, 자연에도 사회에도 개인에게도 회복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복력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어느 한계를 넘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그림을 봅시다. 2009년 회복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지구 체계의 경계, 인류가 안전히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탐구하다'에서 발표한 그림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환경에는 아홉 가지 넘을 수 없는 한계(그림 안쪽의 선)가 있는데, 그 가운데 기후변화, 생물다양성의 감소, 질소순환의 변화는 인류의 부하로 인하여 이미 지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외의 두 가지는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기에 그 경고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의 생명은 38억년 전 탄생한 이후 전례 없는 대멸종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공룡의 멸종으로 유명한 2억 5000만년 전의 폐름기 말에도 모든 생물종의 90~95%가 멸종하는 등 지구의 역사에서는 과거 5번 정도 대량 멸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멸종 속도는 과거보다 100~1000배나 빠르고, 더욱이 이번 세기의 멸종 비율은 10배 이상으로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질소의 혼란도 심각합니다. 인간은 대기의 질소를 공업적으로 암모니아로 전환시켜 화학비료(8000만 톤/년)를 생산하고, 콩과작물을 재배하여 고정(4000만 톤/년)시키고, 화석연료를 연소(2000만 톤/년)시켜서 질소의 자연적인 순환을 교란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현재의 25%인 1년에 약 3500만톤이 한계라고 합니다.


인도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미네랄인데 인 오염으로 인한 부영양화로 작은 호수의 바닥이 산소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듯이, 풍화로 자연적으로 유입되는 양을 넘어서 바다로 인이 흘러 들어가면 '해양 무산소 사태'를 일으킵니다.


폐름기의 대량 멸종은 이것이 요인의 하나였다고 생각되는데, 겨우 20% 늘어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화학비료로 쓰려고 인을 1년에 2000만 톤이나 땅속에서 캐어 900만 톤이나 바다로 유입시키고 있습니다. 무산소 사태를 일으키는 22만 톤의 40배나 되어, 지금 유입되는 양의 1/10 이하로 억제하지 않으면 앞으로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농지 개발도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지구에서는 얼어붙은 땅을 제외하고 약 12%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그 이상 개발할 수 있는 곳은 앞으로 3%(약 4000억 평)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이상 개발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면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무리하게 개발하면 지구 표면의 에너지 균형이 변하고 제트기류에도 변화를 일으켜, 티베트의 기온과 강수량이 변화하며 중국과 인도의 수자원에도 영향을 준다는 모의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구는 안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위약한 체계입니다.


이 책의 칼럼에서도 소개한 캐나다의 생태학자 버즈 홀링 박사는 "지금과 같은 초밀도 정보사회는 사고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상태이다."라고 훨씬 이전부터 경고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홀링 박사의 경고 내용을 읽을 때마다 이번 일본의 원자력발전 사고도 미리 예언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건너뛰어 처음 방문한 한국에 대한 저의 첫 번째 인상은 옛날 일본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30년 전의 일본처러럼 전통적인 공동체의 장점도 남아 있고, 또 경제적인 경쟁력도 있으며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는 등 사회에 성장에 대한 꿈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편 지금의 일본은 세계화 속에서 공동체의 기반은 끊어지고, 경제적인 활력도 잃고 젊이이들도 경쟁에 대한 의욕을 잃었으며, 사회 격차는 벌어지고, 이번 원자력발전 사고로 더욱 몰락해 나아가지 않을까 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앞에 이야기했듯이 지구 환경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이 더 이상 경제성장을 하더라도 좋을 것이 없고, 한국도 실패한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그 뒤를 따를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살아가려면 에너지도 식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회복되지 않는 지구의 경계를 넘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계속 늘어나는 에너지와 물과 식량 수요를 충당하여 인류가 살아남을 것인가? 


회복력 연구의 대가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라이언 워커 박사는 그 해결책은 '효율화'에 있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효율화와 합리성으로만 돌진하면 위험이 높아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경고합니다.


이 책의 칼럼에서도 이야기하는 '영고성쇠' 곧 자연 생태계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을 무리하게 경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합니다. 홍수를 댐으로 무리하게 막더라도 언젠가 그것을 뛰어넘는 큰 홍수가 일어납니다. 산불을 계속 억제하면 타기 쉬운 낙엽이 쌓여서 오히려 큰불이 일어납니다. 해충의 발생을 농약으로 방제한다면 더욱 피해를 높입니다. 


세계 각지의 생태계를 연구한 회복력 연구자들이 제창하는 철학은, 기존의 서양적인 자원 경영의 발상과는 매우 다른 언뜻 보면 쓸모없어 보이는 '중복성(필요 최저한도가 아니라 중복되고 여분이 있는)'을 소중히 하라고 합니다.


이 '회복력'을 주제로 2005년 가을에는 영국 남부 데번주의 작은 마을 토트네스에서 기후변화와 석유 생산정점이란 '두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 사회의 회복력을 높이는 '소도시 전환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영국 각지는 물론 유럽 각국 및 오세아니아와 세계 각지에서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 생태학을 검토한 회복력 연구자들이 도출한 최첨단 공동체 만들기와 사회 관리의 결론이 우리 동아시아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은 김석기 씨의 전문이기도 한 '동양철학', 특히 노장사상과 묘하게도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이 책은 농법이 중심 주제인데, 만약 전통농법과 생태농업의 추진만이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버리고 에너지 절약에 노력하며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고, 금전적인 경제 성장이 아니라 문화적인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서울대나 연세대에 진학하기 위한 시험공부를 위한 학력이 아니라 예술과 음악을 누리기 위한 교양 육성을 목표로 하고, 또한 재해 등의 위험에 강한 사회 만들기를 국가의 목표로 삼으면 어떻까?


이야말로 회복력을 갖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모델의 하나가 오랫동안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쿠바입니다.


카트리나보다 강한 허리케인이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만전의 준비와 공동체의 상부상조에 의하여 쿠바에서는 거의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자 요시다 타로.




'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 귀농총서' 30번째 신작. 


고대 농업 기술과 선주민들의 지혜를 돌아보고, 장단점을 찾아 비판하고 또 수용하면서 그것들이 지금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살핀다. 또 지속가능한 인류사회를 위한 지속가능한 농경법을 다룬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국내에 이미 소개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의 저자이다. 그는 2010년 9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농수산대학과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쿠바의 전통농법,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을 소개했다. 그때 들녘출판사와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는 “전통농업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며 집필을 의뢰했다. 한·일 양국의 전통농업에 대한 관심이 빚어낸 역작이라 하겠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_변경 농업의 탐색을 권유

현대농업은 석유로 움직이는 공업이다 | 2012년을 경계로 문명은 전환한다 | 문명 전환의 열쇠는 변경과 고대에 잠들어 있다


Ⅰ. Back to the Future

1. 왜 생태농업과 전통농업인가

유기농업이 번성하기에 생태농업으로 전환 | 농업생태계의 구조를 활용한 생태농업

라틴아메리카에는 500가지 농법이 있다

2. 세계 농업유산

위기에 처한 전통 유산 | 인류에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은

3. 생태농업과 전통농업을 평가하는 국제평가

녹색혁명에도 유전자조작에도 미래는 없다 | 생태농업을 평가하는 유엔 식량 고문 | 구미의 농업사관을 넘어서

전통농법 칼럼1 왜 가을이 되면 산이 물들까 ―질소와 에너지


Ⅱ. 미래의 유산 ―마야, 아즈텍, 아마존, 잉카

1. 고대 농법의 부활로 마을을 되살림

농업의 근대화로 마을을 버리고 떠난 농민들 | 세계에서 가장 앞선 농법 밀파·솔라

2만 종의 옥수수를 보전 | 풀투성이 옥수수밭 |고대 수로의 부활로 토양침식을 막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사람들을 설득하다

2. 거대 도시를 부양한 물위의 채소밭



책소개


전통농업은 아직까지도 변경농업, 혹은 문명의 한계지에서나 가능한 농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탈석유화를 달성함으로써 생태농업을 정착시킨 쿠바, 재래품종을 적절히 섞어지음으로써 식량과 환경은 물론 홍수문제까지 극복한 아즈텍의 전통농업, 토종종자의 부활로 마을을 되살린 인도의 전통농업 등은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농법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이고, 토양침식을 막으며, 병해충을 방제하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서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릴 수많은 슬기가 깃들어 있다. 


이 책은 ‘고대 농업 기술’과 선주민들의 ‘지혜’를 돌아보고, 장단점을 찾아 비판하고 또 수용하면서 그것들이 지금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살핀다. 또 지속가능한 인류사회를 위한 지속가능한 농경법을 다룬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국내에 이미 소개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의 저자이다. 그는 2010년 9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농수산대학과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쿠바의 전통농법,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을 소개했다. 그때 들녘출판사와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는 “전통농업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며 집필을 의뢰했다. 한·일 양국의 전통농업에 대한 관심이 빚어낸 역작이라 하겠다.


전통 농업이 희망이다 

석탄도 원자력도 석유를 대신해서 공업사회와 현대농업을 유지할 만한 힘이 없다. 안타깝게도 석유 생산은 2012년을 기점으로 생산량이 정점에 달했다가 급하락할 전망이다. 따라서 종자 생산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농사의 전 과정을 석유에 의존하는 현재의 농경법으로는 인류의 식량을 담보할 수 없다. 하지만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미래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옛날로 돌아가면 좋은 것이 있을까, 전통 농업으로 모든 세상사가 쉽게 해결될까?”라고 물음을 던지면서 쿠바, 마야, 인도, 스리랑카, 뉴기니, 발리 등 각 나라의 전통 농업을 소개한다. 


전통농업이란 몇 천 년에 걸쳐 시행착오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복잡한 농업생태계 안에서 축적하여 온,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기술이다. 불행히도 과거의 이러한 뛰어난 지혜의 대부분이 선진국에서는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는 아직 수많은 노하우가 남아 있다. 그는 또 전통 농업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사례들을 충분히 소개하면서 현대 사회는 이제 ‘전체론’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즉 농업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삶 자체가 ‘전통으로 회귀하든지 근대 과학을 추진하든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벗어나 과학이든 사회든 경제든 ‘통합’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위험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전통농법의 본래 목적인 바 세계 각지의 전통농법도 ‘생산성’보다는 안정성과 지속성을 중시했음을 밝히고 있다. 


회복력을 갖춘 전통사회 

자연재해나 재해의 충격이 있을 때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고 유연히 대응하거나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을 회복력이라 한다. 자연과 사회, 개인에게도 회복력이 있지만 어느 한계를 넘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특히 기후변화·생물다양성의 감소·질소순환의 변화는 이미 한계를 뛰어넘었고,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농지개발도 한계에 이르렀다. 질소순환 및 농지개발의 한계는 인간의 에너지원인 식량생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세계 각국의 전통농업은 우리 인류가 오래 전에 잊어버린 공동체와 전통사회의 미덕을 일깨우면서 동시에 가장 생태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농경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 토종종자 부활로 마을을 살린 인도농업, 생산성과 생물다양성 보존에 성공을 거둔 스리랑카, 두둑을 이용한 이어짓기로 수확량을 보장한 뉴기니의 흙무더기 농법 등 고대 전통사회에서는 자연의 특성, 지역과 기후의 특수성을 십분 수용한 전통농업을 발전시켰다. 또한 이들 공동체의 일원은 자연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고, 다 같이 사는 사회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생산성에 목을 매지 않아도 공동체가 충분히 먹고 살만큼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명실공히 자연과 조화한 농경에 기초한 평등사회를 구현했다. 그야말로 자생력과 회복력을 갖춘 사회체계였고, 진정한 의미의 문명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변경 농업의 탐색을 권유하다

저자는"문명의 기초는 사람을 부양하는 먹을거리이다. 먹을거리를 낳는 것은 농법이다. 따라서 농법이야말로 문명의 요람이라 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메소포타미아가 염해鹽害로, 고대 그리스가 토양침식으로 멸망했듯이 문명의 중심지는 농법에 따라 변동한다. 20세기의 개막과 함께 시작되어, 평원을 지배한 석유농법도 석유생산정점(peak oil)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질 운명이다."고 주장한다. 또 유전자조작과 녹색혁명에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이제 전통농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 영화의 땅에 매장된 전통농업에서 미래 문명을 뒷받침할 농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통에 묻힌 슬기를 되찾아오는 것, 고대인의 지혜를 재발견하는 것은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시대착오적인 노스탤지어도 아니다. 환경 파괴, 인구 증가, 빈부 격차, 빈곤의 증대 등 목전에 다가온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 석유생산정점과 함께 도래할 총체적인 전 지구적인 위기를 탈석유 시대 농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보면 어떨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문명의 돌파구는 정녕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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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한글 역주 1·2·3〉
김용옥 지음/통나무·각 권 2만6000원


도올이 안내하는 논어 읽기의 오르가슴

공자의 생애 세밀하게 추적 동서고금 주석문 두루 참조
“신 배제한 인간중심 사유로 가장 현대적 고대문명 열어”

도올 김용옥 (61)
 
도올 김용옥(61) 전 세명대 석좌교수가 한자문명권의 최고 고전인 <논어>를 번역하고 주석한 <논어 한글 역주>(전 3권)를 펴냈다. 권당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완역판이다. 1982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래 줄곧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스스로 번역의 범례를 세우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야 그 약속의 일단을 실천한 셈이 됐다.

“한 갑자를 돌고 난 내 인생을 회고해 보면서, 나는 갑자기 나의 학문세계의 초라한 모습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서삼경을 포함한 중국 고경 13경 전체를 번역하고 주석하는 작업이었다고 그는 이 책 서문에 밝히고 있다. 그 첫 작업이 <논어> 역주인 셈이다.

 
지은이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논어>의 세계사적·문명사적 위치와 의미를 찾는 긴 서문을 통해 ‘인류문명’을 ‘전관’하고 있다. 이 문명사적 조망은 그리스·로마 문명을 뿌리로 삼는 서구 문명을 상대화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이라는 세계 4대 문명이 범아시아 대륙에서 태어났음을 고려하면, 그리스·로마 문명은 그 문명권 바깥에서 일어난 역외의 문명이다. 고대문명 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원류 속의 말류’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 문명이 오늘날 지배문명이 된 것은 ‘연역적 사유’의 발견에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근대 서구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으며, 과학기술을 흥성시킨 것은 이 그리스 문명의 사유 방식에 기댄 성과였다. 지은이는 서구의 지배를 가능케 한 이 세 위업 가운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아시아가 어느 정도 따라잡았으며,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이 자연과학 분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것이 보편타당한 최종적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진리’ 이상의 어떤 새로운 진리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서 <논어>라는 서구 문명 바깥의 사유를 새로이 탐구할 필요성이 나타난다.


종교문명사적 차원에서도 <논어>의 자리는 의미심장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대 문명 초기에 등장한 다신교적 신앙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하여 일신교 신앙으로 나아갔고, 이어 인더스·갠지스 문명을 통해 일신교 자체의 극복인 불교를 낳았다. 불교가 보여준 신 없는 종교 체계는 중국 문명에서 그대로 재현됐는데, 그것이 유교 문명이다.

공자는 신을 배제한 인간 중심의 사유, “인문학적 윤리학”의 건설자였다. 그런 점에서 “고대 문명 세계에서 가장 콘템포러리한(현대적인) 문명”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논어>를 탐구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 사유의 새 지평을 탐색하는 일이 된다.


지은이는 공자의 생애에 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공자의 삶 자체를 추적하는 것은 공자가 살았던 구체적 삶을 알지 못하고 <논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공자의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책이 바로 <논어>라는 사실이다. “공자는 오직 <논어> 속에만 살아 있다.

나는 <논어> 이상 진실한 공자에 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공자의 숨결이 생동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55살 때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주유’를 한 뒤 고국에 돌아왔다. <논어>는 그가 귀환한 68살 때부터 73살 때까지 말년의 생각을 뼈대로 삼고 있다. 원숙기의 사상이 담겨 있는 셈인데, 그 사상이 수미일관한 체계 속에 추상적으로 기술돼 있지 않고 상황적 텍스트들의 콜라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이 경전의 특징이다.

“‘논어’의 ‘어’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이나 당시의 사람들과 대화한 말, 그리고 제자들끼리 토론한 말, 그리고 공자에게 접문한(가까이 가 들은) 말이다. ‘논’은 ‘집이논찬’이란 뜻으로, 그 말들을 편찬했다는 뜻이다.”


이어 <논어> 해석의 역사를 살핀 ‘논어해석사강’과 신주의 틀을 세운 주자의 ‘논어집주서설’ 번역문, 그리고 지은이 자신의 번역론을 본문 앞에 배치했다. 본문에서 지은이는 ‘학이 편’에서 마지막 ‘요왈 편’까지 20편을 차례로 번역하고 고주와 신주 등 동서고금의 주석문들을 가능한 한 폭넓게 참조한 뒤 지은이 자신의 시각으로 새 주석을 단다.

가령,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정명’(正名)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자로 편’의 해당 구절을 지은이는 이렇게 번역한다. “자로가 말하였다. ‘위나라의 군주가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하려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을 먼저 할 것이다.’ 자로가 말하였다. ‘역시나 했더니만, 선생님도 참 아둔하기 그지없으시구려. 왜 하필 이름을 바로잡는다고 하십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말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생한 현대 구어체로 이루어진 번역이다.


<논어>를 읽고 깨닫는 즐거움에 대해 정자가 이런 말을 했음을 지은이는 상기시킨다. “논어를 읽으매, (…) 어떤 자는 읽고 나서 그중의 한두 구절을 깨닫고 기뻐한다. 또 어떤 자는 읽고 나서 참으로 배움을 즐기는 경지에 오르는 자도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읽고 나서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기뻐 발을 구르는 자도 있다.” 이 책은 이 희열로 가는 긴 여행이다.
-한겨레신문-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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