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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잭 웨더포드 지음·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 432쪽 | 1만8000원




한때 몽골은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 전역과 유럽까지 호령한 제국이었지만,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칭기스 칸’을 칭송하는 흘러간 팝음악, 몽골에 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승마 이야기, 한국에 온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정도다. 800년 전 대제국의 문화가 이토록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정주보다 이주를 선택한 유목민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머무는가 싶으면 떠나길 반복하는 노마드인 몽골인들은 최대한 짐을 줄였고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물론 정주의 유혹이 없지 않았다. 한족을 몰아내고 중국에 세운 원나라가 바로 그 유혹을 받아들인 사례다. 그러나 길들여진 늑대는 늑대가 아니라 개다. 원나라는 100년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다. 


미국 매칼레스터대의 인류학 교수인 잭 웨더포드는 부족민 연구 전문가다. 칭기스 칸과 몽골제국이 동서 문명 교류에 미친 영향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1998년 서구 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칭기스 칸의 고향인 부르칸 칼둔 산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2005년 출간된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원제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 Queens)는 몽골 역사의 흥미로운, 그러나 베일 뒤에 있던 사실들을 알려준다. 바로 몽골 여성 왕족의 활약상이다. 칭기스 칸은 제국을 세웠지만, 그의 아들들은 술 마시는 재능만 있을 뿐 군사·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칭기스 칸의 뒤를 이어 제국을 움직인 이들은 그의 딸과 며느리들이었다. 


책은 역사서이지만 마치 소설같이 흥미로운 장면으로 시작한다. 13세기 후반, 미지의 검열자가 <몽골비사>의 한 부분을 삭제했다. 칭기스 칸의 발언을 기록한 이 책은 훗날 제국의 기본 법률 역할을 했고, 더 먼 훗날에는 사료가 됐다. 잘려나간 부분은 1206년의 발언이었다. 검열자는 실수인지 악의인지 삭제분에 들어있던 한 문장만을 남겨두었다. “우리의 여자 후손들을 칭송하기로 하자.” 삭제분의 바로 앞에는 칭기스 칸의 아들, 형제 등의 능력, 공적에 따라 관직·작위·영지를 수여하는 대목이 있으니, 삭제된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칭기스 칸의 네 아들은 아버지가 세운 제국을 사실상 ‘말아먹었다’. 그럼에도 역사에 분명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딸들은 수, 이름, 생몰연도조차 정확하지 않다. 몽골의 작가와 학자들이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삭제했기 때문이다. 


칭기스 칸의 딸들은 진취적이고 현명했다. 직접 말을 타고 전장에 나서 병사들을 지휘했고, 재판관이 돼 형사사건 판결을 내렸으며, 넓은 영토를 다스렸다. 같은 시기 인근 문화권의 여인들이 전족으로 발을 학대하거나 베일로 얼굴을 가린 것과는 크게 비교된다.


저급한 증오, 끝없는 다툼으로 분열돼 있던 몽골을 통합한 칭기스 칸은 곧 제국 경영이라는 과제에 부딪힌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건 역사의 상식이다. 계속된 정복 사업에 매진해야 했던 칭기스 칸은 딸들에게 제국의 경영을 맡겼다. 네 명의 딸들은 몽골의 동서남북에 위치한 이웃 국가로 시집을 갔다. 이것은 일종의 ‘결혼 동맹’이었지만, 칭기스 칸의 딸들이 왕실 사이 우호의 증표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딸들은 내실의 안락함을 즐기는 대신 직접 국가를 통치했다. 경제를 활성화시켰고, 법을 정비했으며, 관료 조직을 챙겼다. 칭기스 칸은 딸들을 시집보내면서 딸들의 통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나라를 경영하는 데는 남성의 힘보다는 여성의 지혜가 중요함을 칭기스 칸은 일찌감치 깨달았다. 


칭기스 칸의 딸들이 다스린 왕국들은 영토 확장에 목매지 않았다. 대신 중요 접촉 지점과 이동 방향을 예측해 그곳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실크로드 상권을 장악한 이들은 제국이라기보다는 현대의 다국적기업에 가까웠다. 그들은 다른 자매들의 나라에서 나오는 물품에 일정 지분을 갖고 있었다. 


제국의 창업자는 태생에 의한 귀족제를 믿지 않았다. 칭기스 칸 자신이 납치해온 여자의 아들이었다. 

몽골에서는 적통이니 서얼이니 하는 구분도 없었다. 부인이 납치된 사이에 낳은 아이라 하더라도 “내가 내 아이라고 하는데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했다. 누가 아이를 낳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아이를 잘 키웠는지만을 따졌다. 


칭기스 칸은 딸의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의 평등을 이야기했다. “만약 수레에서 어느 한쪽의 채가 부러진다면, 황소는 수레를 끌 수 없다.” 힘과 힘, 칼과 칼로 부딪치는 백병전이 아니라 말을 타고 가다가 먼 곳에서 활을 쏘는 몽골 전사들의 전투방식도 여성의 참여에 유리했다. 


칭기스 칸의 뒤를 이은 우구데이 칸 시절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칭기스 칸은 어린 나이에 결혼한 소녀라 하더라도 16세 이전까지는 성관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우구데이는 누이의 나라에서 소녀 4000명을 소집해온 뒤 자신의 병사들에게 집단 강간을 시켰다. 이는 누이의 땅을 빼앗기 위한 선전포고와 같았다. 이후 몽골 전역에서 집단 학살과 고문이 이어졌다. 위대한 아버지가 죽자 못난 아들들은 서로를 물어뜯었다. “칭기스 칸이 한평생에 걸쳐 창조한 것이 또 다른 한평생 사이에 파괴되었다.” 모두들 입으로는 칭기스 칸을 숭배했지만, 그의 정신은 받들지 않았다. 


칭기스 칸의 정신은 그가 죽은 지 200여년 뒤 부활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여성의 몸에 깃들어 있었다. 웨더포드는 1998년 몽골 현지 조사 과정에서 어느 노파의 말을 들었다. “당신은 칭기스 칸이 여자로 환생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그렇게 환생한 분이 우리의 왕비 만두하이랍니다.”


만두하이는 16세의 나이에 25세 연상의 만둘 칸과 결혼했다. 그러나 당시 제국은 이미 전성기를 지난 상태였다. 남쪽으로는 한족의 명나라가 세워졌고 서쪽으로는 이슬람 군벌 세력이 발흥했다. 만둘 칸은 바깥의 적은커녕 가족조차 온전히 다스릴 수 없었다. 늙은 칸은 곧 죽었고, 23세의 만두하이는 과부가 됐다. 주변에는 다음 칸의 후보가 보이지 않았다. 


여러 곳에서 유혹의 입질이 왔다. 만두하이와 재혼하는 자가 제국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의 2인자로 군림한 귀족 장군이 있었고, 강한 무슬림 군벌이 있었다. 명나라에서는 투항하면 문명국에서의 호화로운 여생을 보장하겠다고 제안했다. 만두하이는 재혼을 권하는 측근의 머리 위로 뜨거운 찻잔을 내던졌다. 그리고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제국을 이끌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홀로 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만두하이는 칸의 핏줄을 이은 다섯살 아이 바투 뭉케를 찾아냈다. 외진 곳에서 방치된 채로 자라난 아이는 허약했다. 바투 뭉케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만두하이는 아이의 대칸 즉위식을 올렸다. 그리고 새로 옹립된 다얀 칸을 통해 섭정했다. 


만두하이와 다얀 칸은 세상에 단 둘만 있었다. 적들은 칸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고, 백성들은 지도자의 능력을 못미더워했다. 만두하이는 군사와 정치 양 분야에서 능력을 입증해야 했다. 젊은 왕비는 첫 원정을 나서기 위해 머리 장식을 벗고 말 위에 올랐다. 어린 다얀 칸은 작은 상자에 담겨 말에 올랐다. 몽골의 아이들은 서너 살이면 말을 타기 시작한다지만, 병약한 다얀 칸은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만두하이는 칸을 전장에 동행시켰다. 누가 전투를 이끄는지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만두하이와 다얀 칸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이후 둘은 승승장구했다. 만두하이는 성인이 된 다얀 칸과 결혼했다. 그들은 적들을 차례로 제압했으나 불필요한 복수는 하지 않았다. 많은 아들들을 낳아 동맹 세력인 다른 부족 사이에서 자라게 했다. 아들들은 그곳의 소식을 전해왔고, 자연스럽게 그곳 지도자 역할도 맡았다. 


만두하이와 다얀 칸은 서로를 제거하고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둘은 자발적으로 해로했다. 칭기스 칸은 몽골의 스텝 지역을 넘어서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나 만두하이와 다얀 칸은 지배할 수 있는 지역만 장악하기로 했다. 다얀 칸 치하의 몽골은 불교, 이슬람교, 초기 그리스도교 중 어느 것을 믿어도 되는 나라였다. “하늘은 그녀(만두하이)에게 위대한 운명을 부여하지 않았다. 몽골 연대기의 표현에 의하면, 그 대신 하늘은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운명’을 만들어나가도록 허용했다.” 


만두하이와 다얀 칸의 후예들은 17세기에 만주족에 정벌당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했다. 왕실 사람들은 청나라 통치 아래서도 권력을 누리다가, 20세기 몽골과 중국의 혁명기에 그 핏줄을 이유로 시련을 겪었다. 


몽골의 유산은 남아있다. 레슬링에서 자기를 이기는 남자하고만 결혼하겠다고 한 여전사 쿠툴룬 공주의 이야기는 투란도트(투르크의 딸)로 서유럽에 소개됐다. 이 호랑이 같은 여인에 대해 실러, 괴테, 푸치니가 관심을 갖고 작품을 남겼다. 지금도 몽골 남자들은 전통 레슬링을 하기 전에 특별한 조끼를 입는다고 한다. 앞면이 완전히 노출된 이 조끼는 가슴을 통해 상대방이 남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방대한 문헌 조사와 성실한 현지 리서치에 기반하되, ‘공식 기록’에서 빠진 부분은 민간 전승 이야기와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복원했다. 말 위에서 창업한 제국의 흥망성쇠가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세계 그 어느 문명권의 여성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몽골 여성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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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축사업계획조사

 

몽골은 고대부터 목축국가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 자유시장경제 전환 이후 급 속한 변화로 이미 시골의 많은 사람들이 대거 울란바토르市로 몰려들어 현재 몽 골인들의 주식인 羊고기도 국내소비량을 간신히 생산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에 우리 한성그룹은 1차 계획(5년)으로 東몽골 도르놋드아이막 지역에 羊 200만 마리, 소 50만두, 말 10만두 등을 생산하여 몽골 국내육류소비시장의 안정을 도모 하고, 또한 최첨단 위생시설의 도축장을 건립하여 러시아, 중동아랍국가, 기타 국 가에 양질의 육류를 수출하는 사업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 몽골 가축 수 (단위 : 백만 마리)



  

1. 일반현황

 

1) 개황

사업대상 지역은 몽골의 동부지역으로 헨티아이막, 도르노드아이막, 수흐바타르아 이막 으로 선정하였음.                                      

 

자연형성된 초원지역이 넓고 기존에 대부분의 농민이 목축업을 주업으로 해왔 기 때문에 사업진행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 이용되지 않는 목초지가 충분하므로 향후 목초지 개발 소요 비용과 개발기간이 단축될 것으로 보임.

 

2) 위치

도로망 : 초원 비포장도로 임.

철 도 : 동몽골 최대 수도인 초이발산시에서 러시아, 중국과 연결되는 철도망 있음.                         

  

3) 토양

토양은 짙은 율색 사양토로 600여종의 초종(草種)이 자라나 가축들에게 다양 한 영양분을 공급하여 주고 있다. 비옥한 토양으로서 목초의 생육이 왕성하 여 ha당 270~290kg 정도 자라난다.

 

4) 지형

축산발달에 유리한 반사막형 초원지대로 표고차가 많은 않은 평원지형이다.

 

5) 수자원

대규모 호수와 강이 풍부하여 목축용 식수의 공급이 원활하다.

- 저수지 : 동몽골 최대 호수 “보이른호수(도르놋드아이막)” 서울시크기의 호 수

- 강 : 대흥한산맥에서 동몽골로 흐르는 “할힌골 강”이 흐르고, 보이른 호수로 집결 함. 


동몽골은 목축용 수자원이 풍부하다.

  

6) 토지이용현황


몽골의 농업용지는 아래 표와 같이 약 130백만 ha이다. 이중에 1999년도의 경 작 면적은 약 119만 ha로 전체 농업용지의 약 1%미만이다. 나머지는 목초지 면적이다.

 

※ 몽골의 경지이용 (단위 : 천 ha)



Source : 몽골 국립농과대학교 자료; National Statistical Office of Mongolia;

Mongolian Statistical Yearbook

 

7) 목축 연구 현황


국립 농과대학교 부설로 운영되는 목축관련 연구소는 3개 지역에 배치되어 있 다. 서부 지역은 Uvs 도의 Ulaangom 연구소가 Uvs, Bayan-Olgiy, Hovd, Zavhan, Govi-Altay 도를 관할하며, 동부지역은 Dornod 도의 Choybalsan 연 구소가 Dornod, Hentii, Suhbaatar 3개 도를 관할하고, 중부는 Selenege 도 중앙에 위치한 Darkhan 연구소가 나머지 모든 도를 관할한다.


출처: http://blog.daum.net/hsm3008/49


목축지가 국토 80% 차지하는 그림 같은 풍경 몽골 현장.



  

같은 아시아계이면서 우리나라와 시간차이도 1시간 밖에 차이가 안 나는 몽골.

 

해외 봉사활동으로 몽골을 다녀오게 되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말, 양, 낙타 등 가축을 보며 몽골의 축산농업의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선, 축산을 알기 전에 몽골이란 나라를 자세히 알아보자면 몽골은 목축지가 국토의 80%를 차지하는 고원국가로서 사막이 전국토의 40%를 차지한다. 북서부의 알타이 산맥으로부터 동남부의 평원지대로 이뤄져 있으며 서쪽 끝에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지대로 시베리아 열차가 지나가기도 한다.  


몽골은 사막화가 본격화되면서 평균 고도가 우리나라의 오대산에 해당하는 1500m을 웃돈다. 이러한 기후적 특성 때문에 축산업이 제일 활기를 띄고 있다. 몽골가족의 한 가구당 평균 가축을 20마리를 키우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축을 사육한다면 몽골은 가축들을 풀어놓고 방목을 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자신의 가축은 다 알아본다는 것이며 가축들도 해가 질 때가 되면 정해진 주인의 집으로 알아서 들어온다는 것이다. 방목으로 키우는 가축 덕분에 초원 사방에는 가축들의 배설로 이루어져 있다. 정말 온통이 지뢰밭이라 땅만 보고 다닐 정도이다.

 

연료가 귀한 몽골에서는 배설을 햇빛에 말려 연료로 사용된다. 불에 잘 타는 습성 때문에 배설은 또 하나의 자원으로 재탄생 된다. 몽골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상품은 캐시미어로 꼽힌다. 수공예 작업으로 이뤄진 캐시미어는 프랑스, 미국, 한국 등으로 수출될 만큼 그 품질이 뛰어나다.

 

양이 많은 몽골에서는 양털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말은 관광객이 올 때 큰 수익을 노리며 말 젖을 이용해 각종 유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다소 강한 음식. 설혹 몽골의 식문화에 대해서.


몽골은 산업이 발전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무역 및 여러 환경적 측면에서 조건이 열악하다. 그래서 식문화가 우리나라만큼 많이 발전 전통음식인 허르헉(양고기를 불에 구운돌과 감자 등을 넣고 양철통에 찌는 음식)이나 여름에 야외에서 많이 파는 양꼬치 구이나 호쇼르(구운 만두 비슷함) 등이 유명하다. 물이 귀한 몽골의 나라 특성 덕분인지 다채로운 음식의 맛을 내기 보다는 본 재료의 향과 맛을 살리는 삶기, 기름에 볶기 등 느끼한 음식들이 많았다.  

  

몽골을 다녀오며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연친화라고 말 할 수 있다. 거리를 다니며 자유롭게 뛰노는 가축들과 아이들의 미소를 보면 그 말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축 사육은 집에서 기르는 한정된 장소에 속한다면 몽골은 나라의 기후와 산업에 맞게 동물의 습성 그대로 놓아 방목으로 기른다. 그 특성 때문에 아직까지 자신들의 색깔을 나타내며 분위기 있는 나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싶다.


출처:http://blog.daum.net/rda2448/6973698



몽골 최대 수출산업 축산물 가공, 한국 기술로 혁신

몽골이 행정·교통·재난·특허분야에 이어 축산 가공분야도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로 혁신에 나선다. 축산물 가공은 몽골 농업분야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차지하는 수출 주력 산업이다. 


농어촌공사는 연말부터 2015년까지 몽골 축산물 가공과 위생관리시스템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단순히 축산물 가공을 위한 정보시스템 구축뿐 아니라 유·육가공 공장 신축, 유가공 설비, 품질검사분석 설비, 실험실 및 교육시설 리모델링, 전문가 파견 등 축산 가공산업 전반에 대한 혁신을 지원한다. 


몽골은 축산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축산물 가공과 위생관리로 국민 보건 위생에 문제가 있었다. 수출경쟁력 저하로 국가경제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몽골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축산물 가공과 위생관리 개선을 국가 중요 정책과제로 선정했다. 이어 2010년 6월 제4차 한·몽골 농업협력위원회에서 우리나라 정부에 가공기술 및 위생관리 전반에 대한 기술지원을 요청했다. 


사업총괄기관으로 선정된 농어촌공사는 지난 6월 사업 타당성 조사를 실시, 지원 사업을 확정했다. 가장 큰 규모의 지원은 시설 구축이다. 유·육가공 공장 신축과 유·육가공 및 위생시스템을 구축한다. 품질검사 설비도 함께 구축한다. 초청연수 및 현지교육도 실시하고 축산물 가공 및 위생관리 전문가도 파견한다. 


몽골 산업농업부는 효과적인 사업추진을 위해 사업조정위원회와 사업소를 설립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사업시행 총괄은 식량농업경공부가 맡는다. 이번 사업으로 몽골 정부는 축산 가공물 품질을 높이고 해외수출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우리 정부는 몽골을 기반으로 주변국가 대상 축산물 가공 및 위생관리 기술, 기자재 등 수출을 확대할 방침이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우리의 축산물 가공 기술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면서 “몽골 지원 사업을 통해 우리 기술의 우수성을 해외에 적극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몽골은 주민등록전산화, 지능형교통체계, 지진재난경보시스템, 전자조달시스템, 특허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화를 한국 ICT기술로 구축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 


몽골 축산물 가공 및 위생관리시스템 지원 사업 개요 



자료 : 농어촌공사



몽골 농업 투자 정리


1. 서론 


‘솔롱고스’ –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는 몽골어로 ‘무지개의 나라’라는 뜻이다. ‘솔롱고스’를 몽골에서는 한국을 부르는 단어로 사용된다. 이는 몽골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단어이다. 


실제로 몽골 국민들은 한국을 ‘자신과 역사적 연관이 있는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외세의 침략이나 전쟁 등 아픔의 역사를 극복하고 놀라운 성장을 이룩한 것에 대해 칭송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몽골’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은 바로 칭기즈칸인데, 그의 왕비 중 고려 출신의 여인이 있었으며, 그 후손들도 고려로 시집와 서로 문화와 역사를 교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러한 교류를 타고 당시 몽골(원나라)에서 유행한 고려의 풍속은 ‘고려양’으로, 고려에서 유행하던 몽골의 풍속은 ‘몽고풍’으로 불리며 대단한 인기몰이를 이뤘다는 역사가 있다. 


이처럼 몽골은 사람의 생김새와 문화, 언어까지도 비슷한 점을 많이 지니고 있는 나라이다. 



한국 - 몽골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몽골인이 사는 국가 


2010년은 ‘역사의 형제’라고도 할 수 있는 한국과 몽골이 수교를 맺은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20년 전 수교 당시 271만 달러에 불과했던 양국의 교역량이 2009년 2억 달러 규모로 늘었을 만큼 그 관계가 더욱 가까워졌다. 매년 4만여 명의 몽골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3만여 명이 국내 체류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몽골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몽골인이 사는 국가가 되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몽골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어,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이 좋아져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는 학생들도 많이 늘어났다. 몽골내 23개 대학ㆍ어학당ㆍ고등학교 등에 한국어 교육과정이 개설되어 3,000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다. 


한국은 몽골이 대외무역 4위, 몽골내 외국투자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주요 투자국이다. 한국기업의 몽골진출은 1,500여개의 한국기업이 몽골투자청에 등록되어 1억5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몽골 공적개발원조가 1992년부터 이루어졌는데, 2007년까지 2,900만 달러의 무상원조와 5,470만 달러의 EDCF 차관이 제공되었다. 



한국의 식량기지 후보로서의 몽골 


몽골은 한반도 7배의 면적에서 260만명의 인구가 있는데, 인구의 70%가 35세 이하의 젊은 국가이며, 노동인구의 25%가 농ㆍ축산업에 종사한다. 

이제 몽골은 풍부한 매장량을 가진 지하자원과 더불어 축산과 농업의 무한 가능성을 보유한 국가로 꼽히고 있다. 


드넓은 평원과 풍부한 수자원, 저렴한 인건비를 이용한 시설하우스 운영으로 인접 국가(러시아, 중국 등)에 원예작물을 수출할 수도 있고, 드넓은 평원을 이용한 축산조사료를 생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몽골 북부 세렝게 지역은 밀을 생산하여 러시아로 수출하던 곳이다. 


몽골은 (1) 수입곡물을 대체할 수 있는 해외식량기지로 해외에서 생산하여 국내 반입이 가능하고, (2)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한 식량지원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3) 해외기지내에 농식품의 가공산업과 해외수출이 가능하다. 


최근에 몽골이 한국의 유력한 식량기지 후보로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몽골의 일반현황과 농업현황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2. 몽골 일반현황 


가. 행정구역 


몽골의 행정구역은 18개의 도(Aimag)와 3개의 특별 행정구역 1개 특별시가 가장 큰 행정 단위이다. 도 아래에 343개의 군(Soum)이 있고 군 아래는 1,681개의 면(Bag)이 있다. 전체 면적은 1,564.2천㎢이며 인구밀도는 울란바타르의 127.98명/㎢를 제외하면 전국 평균이 1.57명/㎢에 불과 하다. 


나. 자연현황 


(1) 위치 

몽골은 바다와 멀리 떨어져 아시아 내륙국가로서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중국과 접하고 있다. 국토의 남북간의 길이는 1,259km 동서간의 길이는 8,158km 이다. 몽골의 영토는 북위 42°에서 52°에 걸쳐 있다. 수도는 울란바타르로 해발고도는 1,351m의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2) 지형 

몽골은 해발고도가 높은 국가로 고산지대, 산악형 고지대, 평원과 계곡 등 다양한 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80%이상의 국토가 해발 1,000m이상의 고지대다. 


(3) 기후 

몽골의 기후는 반건조 한대지역에 속하고 전체적으로 대륙성 기후를 보이면서 지역마다 차이가 상당히 심하다. 일반적인 몽골의 기후 특징은 

① 겨울이 6개월로 아주 길며, 겨울철의 날씨 중 반 이상이 맑은 날이다. 

② 대기가 아주 건조하고 강수량이 적다. 

③ 기온의 일교차와 연교차가 아주 크다. 

④ 계절의 변화가 아주 급격히 진행된다. 


(가) 온도 

연평균기온은 북부와 중부지방은 -2~8℃, 동부지방은 -2~0℃, 남부지방은 +2~6℃에 이른다. 가장 추운 달인 1월의 평균기온은 북부지방의 경우 -35℃, 고비지대는 -15℃ 기타지역은 -20~25℃에 이른다. 측정된 기온중 가장 낮게 내려간 1월 기온은 -48~51℃이다. 


(나) 연평균 강수량 

바다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대서양 및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습한 기류는 몽골에 도달하기 전에 대부분 습기를 상실한다. 연평균 강수량은 200~250mm정도다. 몽골 동부평원의 연평균 강수량은 250~300mm이다. 몽골 강수량의 85~95%는 따뜻한 계절(5~9월)에 강우로 내리고 10~15%는 추운 겨울철에 강설로 내린다. 강수량이 가장 많은 달은 7월이고 가장 적은 달은 겨울철이다. 


(다) 강설량 

몽골은 10월말부터 이듬해 4월까지 평균 20~100mm의 눈이 내린다. 


(라) 바람 

몽골 바람의 전형적인 특징은 북풍과 서풍이다. 특히 4~5월에 부는 봄바람의 위력은 대단한데 평균풍속은 2~5m/sec정도이다. 바람이 가장 심한 시간은 오후 1시 전후이다. 


(마) 습도 

몽골의 날씨는 매우 건조하다. 겨울은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며 여름은 혹서가 지속된다. 일반적으로 상대습도가 30~70%일 때 사람살기에 가장 적당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몽골이 바로 그 조건에 들어맞는다. 몽골의 일조량은 매년 3,000시간(125일)이다. 


(4) 토지이용 


국토의 총면적은 156,412천ha로 남한 면적의 16배에 달한다. 이중 123,591천ha는 농업 용지로 남한 농경지 면적의 약60배에 이른다. 가축을 방목하는 초지가 국가 전체 면적의 76.9%에 달하고 삼림의 면적은 전국토 면적의 약 9.2%에 지나지 않는 등 초원으로 이루어진 국가임을 알 수 있다. 


(5) 토양조건 


몽골의 토양은 비옥한 토양으로 대부분 율토색이다. 습윤지대는 동결 침엽수림과 초원 침엽수림의 존재가 특징이고 최상부에는 동토대인 툰드라가 넓게 발달 되어있다. 동몽골 지역인 Dornod와 Hathgol지역은 혼합토양 지대에 속한다. 

몽골경작지 토양의 주요 성분은 유기물 함량이 2.5∼4%로 한국 토양의 유기물 함량에 비해 현저히 높은 중성에 가깝다. 유기물함량이 이 정도 높으면 토양의 완충능력과 양분보존 능력이 상당히 높고 pH가 7에 가깝다는 것은 양분의 용해도가 적절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하여 몽골에서 토양의 화학적 성질에 관한 한 큰 제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몽골에서 토양의 질이 나빠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것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6) 수자원 


몽골의 수자원은 지표수 327억 톤과 지하수 부존량 61억 톤을 합하여 총388억 톤에 달하며 지하수의 40억 톤은 다시 강으로 유출된다. 강우는 대부분 6∼8월 사이에 발생하여 연간 총강우량의 80~90%에 달하며 강유출량의 주요한 원천인데 강설로 인한 유출량도 연간 15~20%까지 이른다. 

몽골의 수자원공급의 약 82%가 지하수를 개발하여 공급하며 가정, 가축, 산업용수 등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용수 공급원이다. 

대략 몽골에서 발원한 수자원의 2/3가 몽골을 떠나고 있다. 



다. 사회ㆍ경제 현황 


(1) 정치 


몽골은 1921년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하였고 1924년에는 몽골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인민민주주의 형태를 취하는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하였다.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도입은 1986년 제19차 공산당 대회 이후 사회주의 민주화의 추진, 공개성의 강화, 기업 자주권의 확립, 독립채산제의 도입 등 몽골쇄신책 추진이 시작되어, 1989년 몽골민주연합(MDU)이 결성되었다. 

1990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여 민주화 개혁이 추진되기 시작하였고, 1990년 10월에 신정부가 탄생하여 민주화 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다. 


(2) 경제 


몽골은 1989년에 정치는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경제 제도는 시장경제를 도입하였다. 몽골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기에 극심한 혼란에 빠졌으며 인플레이션율이 150% 정도에 달하였으며 국내 총생산량의 감소 등 많은 혼란을 겪으면서 1996년에서야 안정기에 접어들어 GDP의 회복세를 보였다. 


(3) 사회 


민주화가 되면서 사회주의 체제에서 존재 하지 않았던 빈곤과 실업문제가 만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몽골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은 교육을 잘 받고 직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교육과 고용기회에 있어서 남성들과 같거나 더 나은 혜택을 받고 있다. 


(4) 사회기반시설 


철도는 몽골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몽골과 러시아 및 중국과 연결하는 Sukhbaatar-Ulaanbatar-Zamin Und를 잇는 1,100km의 중앙선이 수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도로체계는 매우 낙후되어 있으며 포장도로는 아주 미미한 실정이다. 

도시인구의 약 41%와 농촌인구의 약 12%만이 중앙공급체계와 연결되어 물을 공급받고 있다. 

통신시설로는 자동전화, 팩스, 이동전화, 인터넷 등이 보급되어 있으며 열악한 시설로 인하여 서비스 품질은 상당히 낮은 상태다. 


(5) 인구 


현재 몽골 민족 구성의 발달은 몇 단계 역사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다. 고대 유목민의 수많은 군사적 종족간 연합의 생성과 해체 및 유로 아시아 초원 지대의 확장에 따른 대량의 인구 이동은 할흐-몽골(Khalkh-Mongol) 족이 몽골 국적의 86%를 구성하고 있다. 

몽골 인구는 20개의 민족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언어상에서는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카자흐(Kazakhs) 민족만이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어 이를 사용할 뿐이다. 카자흐(Kazakhs), 데르베트(Derbets), 부리야트(Buryats) 및 다른 소수 민족들은 예로부터 살고 있던 지역에 모여 살고 있다. 2010년 현재 몽골 인구는 약 26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심지어 현재에도 몽골 내보다는 외몽골에 거주하는 인구가 더 많다. 전체 인구의 49.7%는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인구밀도는 1㎢당 1.5명이며 인구의 72%가 노동인구에 해당한다. 520,000가구 중 170,000가구가 목축업에 종사하며 나머지는 도시 중심에 거주하는 도시인구이다. 인구의 51%가 도시인구로 27%는 울란바트르에 거주한다. 

연령층 비율은 15세에서 65세 사이가 60.5%, 15세 이하가 35.6%, 65세 이상이 3.9%를 차지하고 있다. 




3. 몽골 농업현황 


가. 일반현황 


몽골농업을 기후조건으로 보면 저온, 적은 강수량, 예측 불가능한 서리, 강한 바람 등 때문에 작물의 생육기간이 짧은 것이 농업생산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사회주의 형태에서 몽골은 협동농장에서 농업체계는 성공을 거두어 밀, 밀가루, 감자, 채소 등은 자급하게 되었고 육류, 양털, 가죽, 의류 등을 수출하였다.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사회를 전환 하면서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지원이 중단되면서 농업기반도 같이 붕괴 되고 말았다. 

위와 같은 사유로 몽골은 지난 10년간 투자가 전혀 이루어 지지 않았다. 

현재의 몽골 농업은 다음의 4개 분야로 구분된다. 

① 조방적 축산: 전통적인 유목 형태로 낙타, 말, 소, 양, 염소를 함께 방목하며 전국토의 거의 80%를 사용한다. 

② 대규모 기계화 작물생산 : 곡류와 사료작물을 생산한다. 

③ 감자와 채소를 생산하는 집약적 농업 : 기계화가 되었거나 간단한 생산 방법을 사용한다 

④ 집약적 축산 : 젖소, 돼지, 가금류를 축사에서 사육한다. 


(1) 곡물재배 


몽골의 대규모 기계화 작물 생산은 사회주의 방식에 따른 중앙계획경제의 산물 이었다. 식량의 자급과 구소련과 중국이라는 대국으로부터 식량 독립이 이러한 발전의 동기였다. 곡물생산량은 1986년에 최고에 달하였는데 전체경작 면적 1.3백만 ha중 50만 ha는 휴경하였고 나머지 80만 ha에서 80만톤의 곡물과 사료를 생산 하였다. 1997년에는 30만 ha에서 22.7만 톤의 밀을 생산하였으며, 1993년 이후로는 사료의 생산이 중단되었다. 


(2) 집약적 곡물재배 


국영농장 체계에서의 감자와 채소생산은 거의 모두 기계화 생산 체계였다. 

1991년에는 13.1만 톤의 감자와 4.2만 톤의 채소를 생산하여 최고를 기록 하였다. 1996년에는 거의 절반으로 감소하여 감자 4.6만 톤과 채소 2.4만 톤을 생산하였다. 농업의 사유화가 진행되어 도시근교의 소규모 생산그룹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다시 증가 추세로 전환되고 있다. 


나. 농업정책 


아시아개발은행의 지원으로 1995년 농공업부로 재조직되었던 몽골 농업부는 2000년 9월 식량농업부로 개편되면서 분리 되었다. 농업정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구조적ㆍ사회적 정책의 목표> 

① 국내생산을 늘려 주요식량을 자급 

② 지역수요에 부응하는 생산과 가공분야의 경제활동과 기반시설을 군(soum)단위 에 확립한다. 

③ 농업인과 목축인들이 당면한 사업적 법적인 문제점들을 해결 

④ 곡물농장, 제분소, 관개농지, 등 국가 재산의 사유화를 완수 

⑤ 불공정한 수입경쟁으로부터 국내 생산자를 보호하는 무역정책의 개발 


<경제 및 유통 분야의 주요정책> 

① 우대가격과 정보제공으로 농업유통개선 

② 생산자, 가공자, 기타 요소의 구조적 연계 개발로 생산자의 경제적 지위 향상 

③ 군 단위의 축산물 수집과정을 개선하여 목축업자 진흥 

④ 수입대체 생산물에 대하여 품종개량과 영농자재 및 농기계사용을 위한 신규 투자에 경제 지원 


<농업 기술 분야> 

① 가축과 작물품종의 유전적 개량 

② 국제적 기준의 고성능 농기계를 시험하고 선정하여 기계농업을 개선 

③ 국립가축위생사업소의 도움으로 민간수의 체계 확립하고 예방백신 국내증산 

④ 환경적 피해가 없는 비료와 제초제의 경쟁적 공급 

⑤ 종자와 비료의 품질 인증 제도를 확립하고 인증종자와 비료사용자에게 농업 금융을 제공 하는 것 


농업분야의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다. 

축산분야의 질 개선을 위하여 장래의 정책을 준비, 외국인의 생산, 가공, 수출분야 투자방안 개선, 축산행정 개선, 축산물 소비증진, 도살자의 현대화, 가축위생 관리체계개선으로 가축질병을 예방한다.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겨울철 사료자원의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 지하수 개발로 방목지 관개를 확대하고 생산성을 향상한다. 밀, 감자, 채소의 자급을 위하여 경종농업을 확대한다. 밀의 생산량은 2~2.5배 증가시키고 감자와 채소는 15~20% 증가시킨다. 기존의 관개면적을 30%증가 관개면적을 확대한다. 태양광 또는 풍력을 이용한 이동식 농촌 전기를 유목민들에게 공급하여 농촌생활을 개선한다. 

연간 총수요량은 밀가루 32만 톤, 종자용 6만 톤, 주정용 2만 톤으로 총 40만 톤이 필요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 농업지대 구분 


몽골의 농업지대는 ① Mongolian Altay ② Khangai Khovsgul ③ Selenge Onon ④ Central and Eastern Steppe ⑤ Gobi Desert 


< Mongolian Altay > 

서부 산악지대로 전국토의 11%를 차지하며 고도분포는 해발1,750~4,250m 이며 년평균기온은 -1.25℃, 평균강수량은 450mm 무상기간은 70~130일 토양의 유기물함량은 0.8~3.0% 이다. 수박, 토마토, 오이, 메론 등이 재배되며 남부 알타이지방에서는 관개에 의한 과수를 재배한다. 


< Khangai Khovsgul > 

북서부 지방으로 해발고도는 2,000~3,000m이며 연평균기온은 -6~1℃ 연평균 강수량은 200mm로 건조하다. 무상기간은 70~100일이며 토양의 유기물함유량은 0.8~3.0%이다. 조생종 곡류와 사료작물의 재배에 적당하다. 


< Selenge Onon > 

북부 중앙지방으로 Tov, Selenge, Bulgan Aimag을 포함한다. 

전체국토의 17%에 해당하며 평탄하고 경사진 계곡으로 주요곡물 생산지 이다. 

해발고도는 1,800m이며 연평균 기온은 -3.75℃ 연평균 강수량은 300mm정도 무상기간은 90~100일 토양의 유기물 함량은 1.8~2.5%이다. 몽골의 가장큰 곡창지대이며 밀 등의 곡물을 생산한다. 감자 등의 채소를 강우에 의존하여 재배하기도 한다 


< Central and Eastern Steppe > 

중부지방에서 동부지방으로 뻗은 광활한 고원지대이다. 전체국토의 18% 를 차지한다. 평균 해발고도는 800~1,450m이며, 연평균 온도는 1.25℃이며 평균 강수량은 200mm이며 무상기간은 130~225일로 몽골에서 가장 길다. 토양의 유기물 함량은 4~5%로 가장 높다. 동부지방에서는 강우를 이용 곡물과 사료작물을 재배한다. 


< Gobi Desert > 

남부지방에서 서부지방으로 뻗은 건조초원지대로 전체 국토의 38%를 차지한다. 

평균 해발고도는 850~1,150m이고 연평균 기온은 1.25℃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00m미만이나 무상기일은 130일이다. 토양의 유기물 함량은 0.5~0.8%로 척박하다 관개하여 셀러리, 메론 등의 채소를 재배한다. 


라. 경지이용 


몽골의 농업용지는 약 130백만 ha이다. 이중에 경작 면적은 약 119만 ha로 전체 농업 용지의 약 1%미만 이다. 나머지는 모두 목초지 이다. 

현재 1980년대에 경작되던 농경지의 약 75%가 현재는 버려진 상태이다. 전체 파종면적의 44.8%는 Selenge도에 분포하고 있으며 그 다음이 TOV 도의 21.5%, Bulgan도의 10.0%이다. 이들 3개 도의 파종면적은 국가전체 면적의 76.3%에 해당된다. 

밀의 경우 Selenge가 47%, Tov가 20.1%, Bulgan이 10.4%이다. 감자는 Tov 23.0% 울란바타르 14.8%, Selenge 12.0%이고 채소는 Tov 25.6%, 울란바타르 14.7%, Selenge 13.3%이었으며, 사료작물의 파종면적은 가축의 분포에 따라 달라서 Hovd 32.3%, Tov 21.1%, Govi-Altai 19.6%를 차지하였다. 


마. 주요작물 및 작부체계 


작물재배 면적은 전체국토의 약 1%이며 주요작물은 

① 밀과 밀 후작 ② 귀리, 보리 등의 곡류 ③ 사료작물 ④ 감자 ⑤ 토마토, 양파, 양배추, 당근 등의 채소이다. 

대규모 농업회사들은 밀-휴경, 밀-밀-휴경 등의 윤환재배를 실시한다. 

윤환재배의 목적은 토양수분과 토양 비옥도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밀은 5월 초순에 파종하고 9월 중순에 수확한다. 감자는 중간규모 농장에서 감자-밀-휴경의 작부체계로 재배한다. 감자는 5월 초순부터 중순사이에 파종하고 조생종은 8월말부터 9월초, 만생종은 9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수확한다. 

소규모의 채소농장에서는 양배추-무우-당근-양파-부추의 순서로 윤환 재배한다. 

온실은 오이-토마토를 윤환 재배한다. 노지재배는 늦서리의 피해가 없어지는 5월 초순부터 6월 초순까지 파종하고 시설재배는 3월말부터 파종과 육묘를 시작 한다. 


바. 주요 작물 개요 


< 밀농사 > 

밀은 일반적으로 관개하지 않고 재배하며, 밀은 윤환 재배한다. 1년 재배 후 1년을 휴경하거나 2년 재배 후 1년을 휴경한다. 

평균종자 사용량은 170~220kg/ha이며 파종 깊이는 6~8cm이다. 비료 사용량의 분포는 질소 30~60, 인산 15~40, 칼리 0~40kg/ha이나 대부분은 극히 소량이다. 

관리기술의 미숙으로 수확과 저장 중 손실이 매우 크며, 농기계와 농기계부품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혹독한 기후재배에는 대책이 없는 상태이다. 


< 감자농사 > 

감자는 밀 다음으로 중요한 작물이고 저장성이 좋고 가공성이 좋아서 몽골에서는 중요한 작물이다. 감자는 5월 초순부터 중순사이에 파종한다. 평균 종자량은 2~3ton/ha이고 파종심도는 10cm이다. 비료사용량은 질소 20~80, 인산 40~80, 칼리 60~120kg/ha 이다. 감자는 농장에서 밀과 함께 윤환 재배된다. 


< 채소농사 > 

채소재배는 온실재배와 노지재배 두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노지재배의 주요작물은 양배추, 당근, 양파, 부추, 마늘이다. 과채류인 오이, 토마토, 수박, 메론은 온실에서 가온 또는 무가온으로 재배한다. 노지재배는 늦서리의 피해가 없어지는 5월 초순부터 6월 초순 사이에 파종한다. 시설재배는 3월말부터 파종과 육묘를 시작한다. 


아. 영농자재투입 

1980년대에는 연간 질소비료 10,000톤, 인산비료 25,000톤, 칼리비료 5,000톤을 수입하여 Erdenet, Darkhan, Choybalsan의 3개 지점을 통하여 전국에 배분함. 

현재 대부분의 농장이 종자보급소에서 종자를 구입하기 보다는 자가채종 종자를 사용하고 있다. 


자. 관개농업 

농작물의 수확량을 결정하는 5대 요소는 일사, 온도, 대기, 영양물질, 수분으로 이 가운데 몽골에서는 수분의 절대 부족이 수확량 증가를 제한하고 있다. 

1991~1999년 사이 관개농업으로 전국곡물의 1.4~2.2%, 감자의 16.8~21.7%, 채소의 29.6~100%, 사료작물의 6.0~18.6%를 생산 하였다. 


자. 생산량과 수량 

1999년도의 작물 총생산량은 약 170만 톤으로 국영농장이 운영되면 1989년의 20.2%에 지나지 않았다. 이중 98.3%인 16.7만 톤은 밀이고 나머지는 감자, 채소, 사료작물이다. 


차. 수량증가 저해요인 

몽골농업의 수량증가 저해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적으로 종자개량이나 우량종자 보급이 안되고 있으며 생산기술면에서 작물생산에 대한 경험과 기술이 부족하여 선진기술을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재배환경 

- 연간강우량이 200~400mm로 작물재배에 부족 

- 년간 작물 재배 기간이 90~120일로 짧음 

▷ 농업기술 

- 작물재배경험과 기술부족 

- 신품종 다수확 종자의 공급체계가 없음 

- 비료, 농약 사용량이 거의 없음 

▷ 영농자재 및 농기계 

- 영농자재(비료, 농약 등)와 농기계가 모두 수입품으로 영농자금 압박 

- 1980년대 후반에 도입된 러시아산 농기계의 노후화와 부품공급 중단 

- 대규모 기계화 영농이 기반인데 수입하는 유류의 가격이 높음 

▷ 경영여건 

- 농지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고 경작권만 농업인에 임대 

- 영농자금 공급을 위한 농업 금융제도가 없음 

- 다년간의 사회주의 경제운영으로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경영의식 부족 

- 사회기반시설의 미비로 경영여건 부실 

- 시장경제 도입 초기로 유통, 판매체계 없음 

- 숙련된 농업 노동력 부족 

- 관습적인 육식으로 채소류 수요가 제한적 

▷ 농업생산지원 

- 정부 내 농업생산지원 조직 취약 

- 농촌지도 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이 없음 

- 농업연구가 국립농과대학 부설로 운영되고 있음 

- 영농자재 및 농기계시장이 형성되지 않음 

- 도, 군의 농업 담당 공무원 수가 절대 부족 



4. 한국기업 진출 권장지역 


가. 몽골 식량기지 구축을 위한 사전 검토사항 


(1) 영구 및 유한임대(35년이상) 토지(농지, 대지, 목축지 등) 가격이 매년 한국 국책은행의 기준 금리 이상으로 오르는 곳을 선택. 

(2) 국책은행에서 담보로 받아주는 지역 선택. 

(3) 해당지역 주민의 협조를 얻기 위해 학교, 병원, 시장 등 인프라 구축으로 국익과 국위선양의 효과가 큰 곳 선택. 

(4) 한국 학생과 정부공기업 근로자들의 하계연수(정부지원)가 가능한 곳 선택. 

(5) 가능하면 북한과 자매결연을 맺은 지역을 선택. 


나. 몽골 농업진출 추천지역 


(1) 울반바타르 근교와 다르한 및 보르강의 에르데네트 지역 

(가) 상기 3개 도시 근교지역은 수자원이 풍부하고 러시아 이르츠크行 철도 주ㆍ정차 지역이라서 국경무역이 성행하고 있으며, 향후 물류거점지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농후하여 유통시설 확보하면 가장 투자효과가 높을 것으로 판단. 

(나) 연경채소류의 여름재배로 건조가공, 냉동저장 등으로 단경기 및 혹한기 출하로 높은 소득 가능.(지역주민 위탁재배) 

(다) 농과대학과 연계한 산학협동 사업 최적지임. 

(라) 북한의 평양시, 황해북도 등 3곳 모두 북한당국과 자매결연 지역임. 이로 인한 제3국인 몽골지역에서 남ㆍ북한 경제교류 및 협력 사업가능. 

(마) 몽골에서 소비가 늘어나는 돼지 방목과 토종닭 방목 적합지역. 

(바) 현재 가동중단된 사료공장을 인수하여 러시아 및 중국 시장 침투 가능.(밀과 건초 및 단미사료) 

(사) 위락시설(모래골프장, 신혼부부 몽골 체험장 등)과 하계절 농업계 학생 현장실습 교육장 운영가능. 

(아) 극조생종 춘파 밀과 메밀, 감자 재배가능지역임. 


(2) 한ㆍ몽 농업경제특구 건설예정지인 도로놋트州(행정도시 : 초이발산) 지역 

(가) 이 지역은 과거 소련군 1개 군단(약1만7천명)이 주둔했던 곳으로 대형 비행장이 있고, 간이비행장 2곳이 있음. 

(나) 소련군들의 식량공급지로 구획화된 농지들이 약7만ha 있음. 

(다) 벼농사 한계지역으로 몽골 전체지역중 가장 따뜻한 지역임. 

(라)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초이발산市와 연결(237km)되어 있으며, 중국 내몽고자치주 만주리 철도와도 연결되어 있는 철도 인프라가 양호함. 그러나 몽골 수도와는 약780km이나 떨어져 있고, 비포장국도로 연결되어 있음. 

(마) 농업전문대학교와 가축연구소 및 종자연구소 등 농업관련 지원시설은 양호함. 

(바) 농업용수 이용가능하고, 과거 북한 노동자들이 영농을 한 적이 있음. 

(사) 초이발산 비행장 인근에는 미군이 상주함. 평소에는 1개 중대(178명)이나 비상시에는 1개 대대(1,500명)가 주둔함. 

(아) 기타 농업사항은 (1)항 지역과 유사함. 

(자) 한ㆍ몽 농업경제특구가 건설될 경우 파격적인 정부지원이 예상됨. 


출처: http://www.iadi.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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