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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사토시(일본어: 今 敏(こん さとし), 1963년 10월 12일~2010년 8월 24일)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겸 만화가이다.

홋카이도 구시로 시 출신으로 무사시노 미술대학 조형학부 시각전달디자인과를 졸업했다.

감독한 작품  
퍼펙트 블루(PERFECT BLUE, 1997)
천년여우(千年女優, 2001)
도쿄 갓 파더(東京ゴッドファーザーズ, 2003)
망상대리인(妄想代理人, 2004)
파프리카(パプリカ, 2006)
오하요(オハヨウ, 2007)
꿈꾸는 기계(夢みる機械) (미개봉)


- 이하 곤 사토시 감독의 유언장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안녕


잊을 수 없는 올해 5월 18일.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 순환기과 의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선고를 받았다.

- 췌장암 말기. 뼈 여러부분에 전이. 여명 길어야 반년 -

아내와 둘이서 들었다.

둘만의 힘으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청천벽력에 억울한 운명이었다.

평소부터 생각하고는 있었다.

'언제 죽는대도 할 수 없지'

... 라고는 해도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분명 징후는 보였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2, 3개월 전부터 등 여기저기와 서혜부 등에 강한 통증을 느꼈고, 오른쪽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면서 걷기도 힘들게 되어 뜸을 뜨거나 카이로프랙틱 등을 다녀봤지만 차도가 없던 차, MRI나 PET-CT 등의 정밀기기로 진단한 결과 느닷없는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었다.

눈치챘을 땐 죽음이 바로 등 뒤에 서있던 것 같은 상황으로, 나로써는 도저히 어찌해 볼 길이 없었던 것이다.


선고 후,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아내와 함께 모색했다.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믿음직한 친구나 더할나위 없이 강력한 분의 지원도 얻어 왔다.

항암제는 거부하고, 일반적인 세상의 상식과는 다소 다른 세계관을 믿으며 살아보려 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부분이 나다워서 좋은 것 같았다.

어차피 언제나 다수파에는 몸둘 곳이 없었던 듯이 생각된다.

의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의료의 주류파 뒤에 어떤 시스템이 있는지도 이것저것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으로 살아남아 주겠어!'

그러나.

기력만으로는 맘먹은대로 안 되는 것은 작품 제작과 마찬가지.

증세는 하루하루 확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나 역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보편적인 세상 상식의 절반 정도는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꼬박꼬박 세금도 내고 있으니.

'훌륭'하곤 거리가 멀지만 나 역시 버젓한 일본사회의 멤버 중 하나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한 <사적 세계관>의 준비와는 별도로, <깔끔하게 죽을 채비>에도 손을 썼다고 생각한다.

전혀 깔끔하게 못했지만.

그중 하나가, 믿을 수 있는 친구 두 명의 협력을 얻어 덧없지만 곤 사토시가 가진 저작권 등의 관리를 맡길 회사를 만드는 것.

또 하나는 많지는 않지만 재산이 원활하게 처에게 양도되도록 유언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유산 다툼 같은 게 터질 리야 없지만, 이 세상에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불안요소는 하나라도 없애주고 싶었고, 그것이 쬐금 저편으로 여행을 떠날 나 자신을 안심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니.

절차에 따라붙는, 나나 아내가 익숙치 못한 사무처리나 예비 조사 등은 멋진 친구에 의해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후일, 폐렴으로 위독한 가운데서 비몽사몽 간에 유언장에 마지막 사인을 했을 때에는 일단 이걸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휴우... 겨우 죽을 수 있게 됐어...'

어찌됐든, 그 이틀 전에 구급차로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 걸러 또 구급차로 같은 병원에 실려 갔다.

과연 이쯤 되니 입원해서 상세 검사에 들어가게 됐다.

결과는 폐렴의 병발.

가슴에 물도 상당히 찼다.

의사에게 딱잘라 물었더니, 매우 사무적인 태도여서 어떤 의미로는 고마웠다.

"잘 버티면 하루 이틀...고비를 넘긴다 해도 이 달 안이겠지요."

그 말을 들으며, '일기예보 같구먼...'하고 생각했지만, 사태는 절박했다.

그게 7월 7일에 있었던 일.

꽤나 가혹한 칠석이었다.


...이상으로 마음은 굳었다.

나는 내 집에서 죽고 싶다.

주변 사람에게 있어 마지막 대형 민폐를 끼치게 될 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든 집으로 탈출할 방법을 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아내의 노력과 병원측의 '포기한 듯 하면서도 실은 매우 도움이 되었던' 협력, 외부 의원의 막대한 지원, 그리고 수많은, 하늘의 도움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우연들.

그렇게 우연과 필연이 빈틈없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토쿄 갓 파더>도 아니고 말이지.

아내가 탈출분비로 분주한 한편에서, 나는 의사에게, "한나절이라도, 하루라도 집에 있을 수 있다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라고 호소한 후, 어두침침한 병실에서 혼자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쓸쓸하진 않았지만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특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지도 모르지만, 기분은 자신도 놀랄 정도로 평온했다.

단지, 단 하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여기서 죽는 건 싫은데..."

하며 봤더니, 벽에 걸린 달력에서 뭔가가 움직여 실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이런... 달력에서 행렬이라니... 내 환각은 개성이 쥐뿔도 없구만..."

이런 때조차 직업의식이 발동하는 걸 흐뭇하게 느꼈지만, 사실은 이때가 가장 저승에 접근했었을 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죽음을 가까이에 느꼈다.

죽음의 세계와 시트에 둘둘말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을 탈출해 자택에 도착했다.

죽는 것도 괴롭구만.

혹시나 해서 말해 두지만, 특히 무사시노 적십자에 비판이나 혐오는 없으니 오해마시길.

단지, 나는 자신의 집에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으로.


조금 놀랐던 것은, 자택의 거실에 옮겨질 때 임사체험 등으로 잘 알려진, - 높은 곳에서 자신이 방 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본다 - 라는 덤이 붙은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풍경을, 지상 수 미터의 정도의 높이였을까, 와이드스러운 렌즈를 통해 진부감(眞俯瞰)으로 보고 있었다.

방 중앙에 있는 침대의 사각이 묘하게 크고 인상적이고, 시트에 감긴 자신이 그 사각 위에 내려졌다.

그리 정중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불평은 할 수 없지.


자, 남은 것은 자택에서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폐렴의 고비를 어렵지 않게 넘겨버린 듯 하다.

얼레?

어느 의미론 이렇게 생각했다.

'못 죽었네(...훗)'

그 후, 죽음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은 분명히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한다.

몽롱한 의식의 깊은 곳에서 [reborn]이라는 단어가 몇 번인가 흔들거렸다.

신기한 것이, 그 다음 날 기력이 다시 재기동했다.

아내를 비롯, 문병을 와서 기력을 나누어 주신 여러분, 응원해준 친구들, 의사나 간호사, 간병인 등 관계자 모두의 덕분이라 생각한다.

정말로, 솔직하게 마음으로부터.


살아갈 기력이 재기동했으니, 멍하게 있을 여유는 없다.

덤으로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명이라고 마음에 되새기며, 소중하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현세에 남긴,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나라도 줄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은 암에 관해 극히 가까이 있는 사람 외에는 알리지 않았었다.

부모님께조차 알리지 않았을 정도다.

특히 일과 관련해선 여러가지로 얽힌 것이 많아 말할래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인터넷 상에 암 선언을 하고, 남은 인생을 하루하루 보고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콘 사토시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작다고는 해도 여러가지 영향이 염려되기도 했고, 그때문에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

정말 면목없다.


죽기 전에 하다못해 한번이라도 만나, 한마디라도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잔뜩 있다.

가족이나 친척, 거슬러 올라가면 초, 중학교부터 고교 동창,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 만화의 세계에서 만나 수많은 자극을 서로 교환했던 사람들,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책상을 나란히 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같은 작품 안에서 실력을 서로 자극하며 고락을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동료들, 감독이라는 입장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각지에서 팬이라고 해주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웹을 통해 만난 친구도 있다.


할 수만 있다면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잔뜩 있었으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만나면 '이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는구나...'라는 마음만이 쌓일 듯 해 죽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게 돼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회복했다고는 해도 내게 남은 기력은 한 줌 뿐.

만나는 데는 크나큰 각오가 필요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일수록 만나는 것이 괴롭다.

아이러니컬한 얘기다.

게다가 뼈에 암이 전이된 영향으로 하반신 불수가 되어, 거의 누워 지내는 상태라서 비쩍 말라버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많은 지인들 속엔 건강했던 무렵의 콘 사토시로 남아 있고 싶었다.

병세를 알릴 수 없었던 친척들, 온갖 친구들, 모든 지인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도리를 다 못함을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콘 사토시의 방자함도 이해해 주시면 합니다.

뭐랄까, <그런 녀석>이었잖아요? 콘 사토시라는 사람은.

얼굴을 생각해 내면, 좋은 추억과 웃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모두들, 정말로 좋은 추억을 잔뜩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내 인생에서 만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긍정적, 부정적 어느 쪽이 됐든 역시 콘 사토시라는 인간의 형성에는 어딘가에서 필요했을 터이고, 모든 만남에 감사하고 있다.

그 결과가 사십 대 중반 도중하차라고 하더라도, 이건 이것대로 다름 아닌 내 운명이라 받아들인다.

짭짤한 맛도 제법 봤고 말이지.

지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

"유감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네."

정말로.


그러나, 수많은 결례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더라도, 내가 도저히 마음에 걸려 견딜 수 없는 일이 있다.

부모님과 매드하우스 마루야마씨다.

콘 사토시의 생부모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의 아버지.

늦었다고는 해도, 있는대로 몽땅 사실을 고할 수 밖에 없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문병을 와준 마루야마씨를 본 순간, 흘러 나오는 눈물과 비참한 기분이 멈추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이 돼버렸어요..."

마루야마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양손을 붙잡아 주었다.

감사의 기분으로 가슴이 벅찼다.

노도와 같이, 이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환희가 밀려 왔다.

호들갑스러운 표현으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내 맘대로일진 몰라도, 단번에 용서받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미련은 영화, [꿈꾸는 기계]이다.

영화 그 자체는 물론, 참가해 준 스탭에 대해서도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칫하면 지금까지 피땀을 흘려 그려온 컷들이 그 누구의 눈도 닿지 않고 묻힐 가능성이 넘치도록 있으니까.

어찌됐든 콘 사토시가 원작, 각본, 캐릭터와 세계관 설정, 콘티, 음악 이미지...온갖 이미지 소스를 끌어 안고 있는 것이다.

몰론 작화감독, 미술감독을 비롯해서 많은 스탭들과 공유하고 있는 부분도 잔뜩 있지만, 기본적으로 <콘 사토시>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만들 수 없는 것 투성이의 내용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네 책임이다, 라고 하신다면 그만이지만, 나 나름대로는 세계관을 공유하기 위해 적지않은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리고 나니 내가 덕이 부족했던 부분만이 뼈에 사무친다.

스탭 모두에게 참으로 죄송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은 이해도 해주길 바란다.

콘 사토시가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다소라도 다른 것과는 틀린, 묘한 것을 응축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으니.

상당히 오만한 말투로 들릴 지는 모르지만, 암이니까 좀 봐줘.


나도 어영부영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콘 사토시 사후에도 어떻게든 작품들이 존속할 수 있도록 모자란 머리를 쥐어 짜 왔다.

그렇나 그것도 잔꾀.

마루야마씨한테 꿈꾸는 기계에 대한 염려를 얘기했더니,

"괜찮아. 어떻게든 해볼테니 걱정 말게."

라고 하셨다.

울었다.

완전 오열.

지금까지 영화제작에 있어서도 예산에 있어서도 결례만을 쌓아왔지만, 결국 언제나 마루야마씨가 어떻게 해주셨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난 발전이 없어.

마루야마씨와는 충분히 이야기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콘 사토시의 재능이나 기술이 현재의 업계에 있어 상당히 귀중하다는 걸 약간 실감했다.

재능이 아깝다. 어떻게든 두고 갔으면 좋겠다.

뭐니뭐니 해도 더 매드하우스 마루야마씨가 말씀하시는 것이니 자신감을 다소 기념품으로 가지고 명부로 향할 수 있다는 거다.

분명,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이상한 발상이나 자잘한 묘사의 기술이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생각해도 아깝지만, 별 수 없지.

그것들을 세상에 낼 기회를 주신 마루야마씨에게는 마음으로부터 감사하고 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콘 사토시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도 행복했습니다.


부모님께 고하는 것은 진짜로 괴로웠다.

원래대로라면 아직 몸이 말을 들을 때 삿포로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 뵙고 암에 대해 고할 셈이었으나, 병의 진행이 원통할 정도로 빨라서 결국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병실에서 전화로 갑작스런 비보를 전하게 되었다.

"저, 췌장암 말기라서 곧 죽게 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정말 기뻤습니다. 고맙습니다."

느닷없는 소식을 듣는 쪽은 견딜 수 없었겠지만, 그때는 이미 죽음의 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집에 돌아가, 폐렴의 고비를 어찌저찌 넘겼던 무렵.

일대결심을하고 부모님을 만나기로 했다.

부모님 역시 만나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만나면 괴롭고, 만날 기력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한번 뵙고 싶었다.

이 세상에 낳아주신 은혜에 감사의 말을 직접 전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로 행복했다.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서둘러 가는 것은 처에게도 부모님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제멋대로인 나에게 부모님께서 곧 대응해 주셔서, 다음 날 바로 삿포로에서 집까지 오셨다.

병석에 누운 나를 보시자마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미안해! 튼튼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는 짧은 시간 밖에 함께할 수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얼굴을 보면 그걸로 모든 게 통할 듯이 생각했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고마워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자식으로 이 땅 위에 삶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추억과 감사로 가슴이 벅찹니다.

행복 그 자체도 소중하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신 것,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다 못 드립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가는 크나큰 불효자이지만, 이 십수 년 간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솜씨를 부리고, 목표를 달성하며, 평가도 나름대로 얻었다.

별로 안 팔렸던 것은 쬐금 유감이지만, 분수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십수 년, 다른 사람 몇 배의 밀도로
살았던 기분이고, 부모님도 내 마음 속을 알아 주셨겠지.


부모님, 마루야마씨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으로 한 짐 던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누구보다도 마음에 걸리고, 하지만 최후까지 의지가 되었던 아내에게.

그 사형선고 후 둘이서 몇 번이고 눈물에 젖었었다.

서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혹한 매일이었다.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그런 괴로우면서도 애달픈 나날을 끝까지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선고 후 바로 말해줬던 강인한 한마디 덕택이었다.

"나, 끝까지 함께 달릴테니까." 

그 말대로, 나의 걱정따위는 따돌리듯이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요구나 청구를 교통정리하고, 남편의 간병을 어깨너머로 바로 터득하여 척척 해나가는 모습에 나는 감동을 느꼈다.

"내 마누라는 대단하다구."

새삼스럽게 말하지 말라구?

아니아니, 지금까지 생각했던 이상이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요.

내가 죽은 후에도, 분명 능숙하게 콘 사토시를 배웅해 주겠지.

떠올리면, 결혼 이후 늘상 일, 일에 치여 사는 매일을 보내다, 집에서 느긋하게 지낼 시간이 생겼나 했더니 암, 이란 것은 너무한 얘기다.

하지만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것, 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바로 옆에서 잘 이해해 줬었지. 나는 행복했어, 진짜.

삶에 대해서도, 죽음을 맞이함에 있어서도, 아무리 감사를 해도 다할 수 없어.

고마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물론 아직 잔뜩 남았지만, 일일히 세다 보면 끝이 없다.

매사에는 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요즘은 그리 받아주는 곳이 없는 자택에서의 터미널 케어를 수락해 주신 주치의 H선생님, 그리고 그 부인이시며 간호사이신 K씨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자택이라는, 의료에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 속에서, 암으로 인한 진통을 갖은 방법으로 끈기있게 제거하여, 죽음이라는 골에 다다를 때까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주셔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냥도 귀찮게 덩치 크고 거만한 환자를 단순한 일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 무엇보다도 인간적으로 대하여 주셨던 것에 우리 부부가 얼마나 위안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 부처의 인품에 격려받은 일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이 됩니다만 5월 중순에 암 선고를 받은 직후부터 공사에 걸쳐 엄청난 협력과 노력,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두 명의 친구.

주식회사 KON STONE의 멤버이자 고교시절부터의 친구 T와 프로듀서 H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보냅니다.

정말 고마웠어.

내 빈약한 어휘로는 적절한 감사의 말을 찾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부부가 함께 신세를 졌네.

두 사람이 없었으면 죽음은 더욱 괴로운 형태로 나와 내 옆에서 간병하는 아내를 집어 삼켰겠지.

하나에서 열까지 정말로 신세가 많았네.

그래서 말인데, 신세만 져서 미안하네만, 나 죽고 나서 배웅하는 것까지 아내에게 협력해줄 수 없겠는가.

그래 준다면 나도 안심하고 여행길에 오를 수 있어.

마음으로부터 부탁하네. 


자... 여기까지 긴 문장을 함께하여 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펜을 놓겠습니다.

자, 그럼 먼저 갑니다.


- 곤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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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 - 한국 만화가들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
장상용 (지은이) | 크림슨




<18: 한국 대표 만화가 18명의 감동적인 이야기>의 개정판. 첫 출간 당시 사정상 포함되지 않았던 박인권, 김동화, 장애인 만화가 지현곤이 추가되었다. 이현세의 서문이 추가되었으며, 출간 이후 세상을 떠난 고우영, 박봉성에 관한 내용들이 수정 및 보완되었다.

김동화, 고우영, 이현세, 허영만, 김수정, 지현곤, 황미나, 신일숙 등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의 인생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 노력했던 시절의 에피소드, 만화가로 성장한 사연, 만화가 하찮은 취급을 받을 때 만화계에 몸을 던진 이들의 고난과 역경 등이 담겨 있다.


책속에서

고행을 시작한 박인권은 꼬이고 또 꼬이는 운명이었다. 한 번 추락한 이후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그는 1987년3명의 문하생을 데리고 춘천 소양강 파로호로 들어갔다. 밤섬이라는 무인도를 물색해 로빈슨 크루소 같은 생활에 돌입했다. 무인도에서 텐트를 치고 사는 생활은 5월부터 9월까지 장장 5개월 동안 계속됐다. 낮에는 자고 저녁 무렵이면 정적만 흐르는 가운데 작품을 만들며 지냈다. 이들은 배가 멀리 보이면 러닝을 매단 낚싯대를 산 봉우리에 박아놓았다.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배고 고프기도 해 뱃사람들에게 제발 들려 달라며 보낸 신호였는데,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배가 오지 않아 섬에 고립되기도 했다.
배가 고팠던 이들은 어느날 야산에서 흑염소를 발견했다. 무인도의 동물과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연명한 로빈슨 크루소처럼 나름대로 사냥을 해 흑염소를 잡았다. 배를 두드리며 오랜만에 포만감을 느끼던 이들에게 어느날 한 사람이 찾아왔다. 무인도에 흑염소를 방목해 키우는 업자였는데 한 마리가 없어진 걸 알고 탐문 수사를 한 것이었다. 2만원의 보상금을 내고 사건은 일단락 됐다. - 본문 136-137쪽, '박인권' 중에서

" 난 참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어. 난 굴비가 그렇게 비싼 생선인 지 몰랐어. 왜냐하면 어머니가 막 집어다 밥 위에 갖다 놓았으니. 신촌에 아주 큰 굴비 덕장이 있었어. 거기서 제일 좋은 굴비는 아이들에게 먹인 거야. 옷은 못 입혀도 서울서 제일 좋은 굴비를 먹였어. 그게 어머니의 자존심이었던 거야."
공갈빵의 추억이야 말로 잊을 수 없다. 어머니는 신촌 시장에서 야채를 팔기도 했는데 토마토 같은 걸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당시 중국집 창문에 쌓여있던 공갈빵이 무척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공갈빵은 어른 주먹보다 훨씬 커서 양이 많아 보였지만 실제론 속이 텅 비고 두께는 1mm에 불과해 먹을 게 없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크게 맘 먹고 공갈빵 하나를 샀는데 한 입 깨물자 마자 유리 깨지듯 와사삭 부서져 내렸다. 김동화 모자에겐 그 소리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그래서 김동화는 어른이 된 뒤로 공갈빵만 보면 꼭 사서 어머니와 함께 먹었다. - 본문 103-104쪽, '김동화' 중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도 허수아비는 특별히 또렷하다. 한 번은 경남대 부근의 동네 논밭을 따라 다니는데 거기 서 있는 허수아비가 너무 무서웠다. 눈을 질끈 감고 옆을 지나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은 어린 시절 그토록 무서웠던 허수아비가 그립기만 하다. 그 허수아비를 한 번만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는 아예 허수아비가 되어 버렸다. 그는 사인을 할 때 자신의 모습을 허수아비로 표현한다. 허수아비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틈틈이 그리는데 지현곤의 허수아비는 사랑이 충만한 시선으로 바람 술렁이는 황금 논밭을 바라보는 낭만 허수아비다. 키스 마크를 찍은 편지를 물고 가는 새가 허수아비의 주위를 맴돌고, 햇빛에 음영이 진 농부와 소는 멀리 물결치는 논밭의 풍경이 되어 안정감을 더한다. 지현곤이 바라보는, 꿈꾸는 세상은 바로 그런 세상이다. - 본문 297-298쪽, '지현곤' 중에서


누구보다도 힘든 인생을 경험한 강력한 내공의 소유자들

모두가 힘들다고 한다. 경제는 그 바닥을 모른 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바 있지만,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고 희망이라는 단어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지고 있는 요즘이다.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에 등장하는 만화가들은 모두가 ‘절망과 고통의 달인’들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처절한 인생을 경험하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자들이기 때문이다. 만화가라는 직업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시대에 펜과 종이만을 가지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한 만화가들... 어쩌면 현재의 위기는 그들이 이미 겪고 그려낸 종이 한 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만화에 대한 일념 하나로 버텨온 자들의 이야기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는 2004년 <18: 한국 대표 만화가 18명의 감동적인 이야기, 상, 하>를 새롭게 펴낸 개정판이다. 한국 만화계에서 빠져서는 안 될 인물들이지만, 첫 출간 당시 사정상 미처 포함되지 않았던 박인권, 김동화, 그리고 장애인 만화가 지현곤이 추가되었다. 그 외에도 이현세의 서문이 추가되었으며, 출간 이후 세상을 떠난 고우영, 박봉성에 관한 내용들이 수정 및 보완되었다.

시련을 거듭한 내공의 소유자들에게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일화들이 넘쳐난다. 무인도에서 문하생 세 명을 데리고 오개월간 로빈슨 크루소처럼 사냥을 해가며 고립된 생활을 한 만화가 박인권. 머리를 빡빡 깎고 이들은 무인도에서 흑염소를 잡아먹기도 하며, 간혹 그 곳을 찾는 낚시회 동호회원들을 통해 원고를 서울로 보내고 가끔씩 라면도 얻어먹었다고 한다. 철따라 품목을 바꿔가며 행상을 하면서 가정을 어렵게 꾸려나가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큰맘 먹고 공갈빵을 사드셨는데, 한입 깨물자마자 와사삭 부서져 땅에 떨어질 때 모자(母子)에게는 마치 그 소리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는 만화가 김동화의 이야기. 초등학교 1학년 때 찾아온 척추결핵으로 40여 년 동안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발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신체조건으로 만화가의 꿈을 키워온 장애인 만화가 지현곤. 이들의 이야기는 절망이라는 감옥에 갇힌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열쇠를 쥐어준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어봐야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만화는 더 이상 하찮은 장르가 아니다. 하지만 만화가 하찮은 취급을 받을 때 만화계에 몸을 던진 이들의 고난과 역경이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재미뿐만 아니라 감동을 주는 것은,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그들의 상황에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현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내의 미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자신의 자리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만화가들의 이야기는 절망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많은 사람들에게 등대 역할을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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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 Persepolis, 2007> 는 마르잔 사트라피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이란에서 태어나 혁명과 전쟁을 겪은 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로 건너가게 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 마르잔은 오랜 외국 생활을 경험하면서 이란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어 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런 만큼 <페르세폴리스> 는 또랑또랑한 눈을 번뜩이며 어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어린 마르잔의 시선을 통해 이란의 현대사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그 과정은 무겁고 생소해서 쉽게 몰입하기 어렵지만, 생각해보면 태고부터 인간이 반복해 온 역사와 다를 바가 없다. 카자르 왕족의 후손이면서 부르주아인 마르잔의 가족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거나 지지를 보낸다. 공산주의자였던 마르잔의 외할아버지와 혁명의 과도기에 희생당하는 삼촌은 카자르 왕조를 무너트린 팔레비 왕조와 다시 공화정으로 이어지는 이란의 복잡한 현대사를 상징하는 구체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독재와 자유, 악습과 변혁, 막대한 군사, 경제적 이익을 노린 서구의 침략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급속하게 확산된 근본주의가 어지럽게 뒤엉킨 피와 폭력의 시대다. 어떻게 보면 파란만장한 가족사는 마르잔에게 여느 이란 사람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페르세폴리스> 는 복잡한 정치적 배경을 깔면서 자신이 누군가에 관한 물음을 찾아간다. 인간답게 살기 힘든 이란의 현실이 변화하기를 누구보다 염원했던 마르잔의 부모는 더욱 딸을 안전하게 키울 수 없게 되자 어린 마르잔을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떠나보낸다. 전쟁과 억압을 피해 온 땅에서도 마르잔은 혼란스런 마음을 피하기 어렵다. 남겨진 가족들이 겪을 고난을 혼자 피해 왔다는 죄책감은 형벌마냥 가슴을 짓누른다.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문화적인 충격을 경험하면서 치기어린 반항도 해보고 운명이라 믿었던 사람과 사랑에 빠지다 지독한 실연을 당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란의 무거운 역사를 재현해놓고는 실연에 절망하고 거리를 떠돌다 도피하듯 이란으로 돌아오는 마르잔의 모습에서 부잣집 딸내미의 철딱서니 없는 유랑기라 의심해 볼 수도 있겠지만, 어딜 가나 따라붙게 마련인 이란인이라는 꼬리표처럼 갓 10대 후반의 마르잔이 감당하기에 녹록치 않은 현실인 것은 변함없다. 고단함과 패배감에 젖어 이란으로 돌아온 마르잔이 친척과 주변인들에게 둘러싸여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취급을 받거나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 장면에서 마르잔의 고민은 잘 드러나는데, '나는 밖에서도 이방인이고 안에서도 마찬가지' 라며 무력하게 내뱉는 자조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경험한 한 개인의 성장통이자 더 넓게는 전통과 현대 사이에 놓인 이슬람 여성들의 처지를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성장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인데, 다행스럽게도 마르잔의 곁엔 현명한 어른들이 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다. 마르잔의 꿈과 환상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신이 일종의 도피처라면 부모와 할머니는 마르잔을 주체적으로 살도록 추동하는 현실적인 조언자다. 특히 할머니는 '어떤 일이 있어도 네 존엄을 잃지 말라' 고 마르잔에게 얘기하곤 하는데, 할머니의 가슴에서 은은한 향취를 풍기며 떨어지는 자스민은 모진 풍파를 겪어온 노인의 지혜를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8년여에 걸친 이라크와의 전쟁이 끝나고 얼핏 세상은 평온해 보이지만, 마르잔을 둘러싼 환경은 나아진 게 없다.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비이성적인 체제와 여성을 향한 억압과 차별은 여전하다. 마르잔은 다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랑스로 떠나게 되고 쉽사리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는 공항에 머물며 향수를 달래는 듯한 현재와 맞물린다. <페르세폴리스> 는 특별한 결말도 없고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삶의 태도일지 모른다. 마르잔은 쓸쓸히 공항을 떠나는 택시 안에서 어디 출신인가요? 라는 물음에 프랑스에서 태어났어요 라고 거짓말을 하는 대신, 이란에서 왔어요 라고 대답한다. 평생 그윽한 자스만 향기를 내고자 노력했던 할머니 이상으로 마르잔에게도 세상은 잘 견뎌내야 할 곳일 테니 말이다.


여러 무거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페르세폴리스> 는 지나치게 심각하기만 해서 관객을 주눅들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선과 색채는 묘하게도 시선을 잡아끄는 데가 있다. 군데군데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과 유머로 무거움을 덜어내기도 한다. 이소룡의 브로마이드를 방안에 붙여놓고 암시장에서 '아이언 메이든 (겨우 10살이 넘은 꼬마가 아이언 메이든의 음악을 즐겨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외에도 마르잔은 마이클 잭슨과 아바를 좋아한다)' 의 테이프를 구해 들으며 차도르로 온 몸을 둘러야 하는 거리에서 '펑크는 살아 있다' 라는 옷을 만들어 입을 정도로 대중문화의 큰 영향을 받은 작가의 경험들이 경쾌한 터치의 삽화처럼 삽입되어 있다. 특히 실연의 상처로 상심하던 마르잔이 자기최면을 걸면서 남자친구를 세상 최고의 추접한 인간으로 묘사하거나, 그로 인해 심한 신경쇠약을 앓다가 <록키> 의 주제가 'Eye Of The Tiger' 를 따라 부르면서 기운을 차리는 장면은 박장대소할 만하다.

덧붙임
원작은 국내에 2권까지 출간됐다. 혹시 영화를 보실 생각이면 아래 동영상은 통과.


-이상한나라의도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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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일본 이어 美 미국ㆍ유럽서도 인기몰이…

프랑크푸르트도서전 65만弗 수출계약

한국 만화가가 일본은 물론 유럽ㆍ미국 등지에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팬층이 형성되는 등 한류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달 열린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작가 형민우의 ‘고스트페이스’는 독일 도쿄팝과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프랑스 굴지의 출판사인 카스테르만과 카미, 스페인 출판사 노르마 등에서 판권계약이 몰리는 등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 만화의 미개척 시장인 러시아ㆍ남미 등지에서도 출판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 형민우의 경우 전작 ‘프리스트’는 현재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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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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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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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민우 작가>



‘마제’로 유명한 작가 나인수의 신작 판타지물 ‘티르전기’도 이탈리아의 파니니 등 4, 5개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아 현재 출판사를 고르고 있는 상태. 조정만의 ‘위치 헌터’, 강형규의 ‘라모스카’등도 3, 4개 출판사가 붙어 경합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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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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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모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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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헌터>

‘위대한 캣츠비’의 강도하는 독일어권과 스페인 등지에, 최규석ㆍ석정현의 작품도 프랑스 카스테르만을 통해 불어권에서 인기다.

그런가 하면 국내 작가의 원화에 현지 작가가 스토리를 구성하는 프로젝트성 출판 및 기획도 늘고 있다. ‘내 파란 세이버’로 프랑스에 소개된 박흥용은 신작을 프랑스 델쿠르와 공동작업 중이며, 작가 박철호의 격투기 만화 ‘P.K’는 프랑스에서 게임으로 제작됐다. ‘천일야화’의 작가 한승희의 캐릭터는 독일에서 팬시용품으로 개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만화의 본고장 일본시장에서 한국 작가의 인기는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드라마로 인기를 모은 ‘궁’ 의 작가 박소희는 원작 만화가 권당 10만부 이상씩 팔리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에는 후쿠오카 등지에서 토크쇼와 팬미팅에 참가해 팬들의 사랑을 확인했다.

작가 박성우의 ‘흑신’은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내년 1월부터 TV에서 방송될 예정이다. 일본 격주간 만화잡지 ‘영강강’ 창간호부터 연재되며 인기를 끈 이 작품은 지난 5월 일본에서 1권이 발행되자마자 증쇄에 돌입할 정도로 폭발적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이혜은 과장은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유럽 및 미국 경기침체로 전반적으로 위축된 가운데서도 국내 만화의 경우 지난해보다도 수출계약 건수가 늘어 65만달러 상당의 계약이 이뤄졌다”면서 “팬 미팅을 보면 한국 작가의 인기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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