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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공초[ 全琫準供草 ]


설명 :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재판기록. 규장각도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재판기록. 전 1책. 8,000자 안팎의 간략한 책자이다. 내용은 심문 순서에 따라 초초문목(初招問目)·재초문목(再招問目)·3초문목·4초문목·5초문목에 걸치고 있다.


 초초문목은 1895년(고종 32) 2월 9일, 재초문목은 2월 11일, 3초문목은 2월 19일, 4초문목은 3월 7일, 5초 문목은 3월 10일에 있었던 심문 내용이다. 초초문목에서 재판관은 전봉준에 대한 심문에서 주로 1894년 정월의 고부민란과 3월의 동학농민 봉기와의 관계, 농민과 동학교문과의 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여기에서 전봉준은 처음 고부민란의 단계에서는 봉기한 농민 중 동학교도는 적었고 원민(寃民)이 더 많았고 지방관의 가렴주구에 대한 항거로 봉기가 불가피했다고 답변하였다.


 이 초초문목에서 전봉준은 동학교문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있지 않지만, 재초문목에서는 자신이 동학의 접주임을 분명히 밝히고 손화중(孫和中)·최경선(崔慶善) 등 다른 동학 접주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또한 동학의 교리적 성격, 교단의 직제까지 설명하고 그가 동학교문에 입도하게 된 까닭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3·4·5초문목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심문의 대부분이 그와 대원군과의 관계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봉준은 대원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밖에 동학농민혁명의 원인, 경과 등에 걸친 그의 진술이 잘 나타나 있다.


 전봉준 공초는 그에 대한 다른 기록인 재판 판결문 원본과 함께 그의 사상 및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봉준 공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1959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를 대본으로 하여 한국사료총서 10, ≪동학란기록≫ 상·하 2권 중 하권에 수록하였다.


≪참고문헌≫ 東學亂記錄 上下(國史編纂委員會, 韓國史料叢書 10, 1959)

≪참고문헌≫ 全琫準供草의 分析-東學亂硏究-(金容燮, 史學硏究 2, 1959)

≪참고문헌≫ 東學思想과 民衆蜂起(金昌洙, 崇山朴吉鎭博士古稀紀念, 韓國近代宗敎思想史, 1984)

≪참고문헌≫ 全琫準과 東學農民革命(金昌洙, 韓國近代의 民族意識運動, 同和出版公社, 1987)


 


전봉준 공초 심문내용 


전봉준 공초  

全捧準 初招問目(제1차 심문과 진술)

開國 五百四年 二月 初九日(서기 1895년 2월 9일(음))   

開國 五百四年 二月 初九日 

(서기 1895년 2월 9일(陰)) 


問 : 汝姓名爲誰 


너의 이름은 누구인가? 


供 : 全琫準 


전봉준이다.  


問 : 年幾何 


나이는 몇 살인가? 


供 : 四十一歲 


41세이다.  


問 : 居在何邑 


살고 있는 곳은 어느 고을인가? 


供 : 泰仁면山外面東谷 


태인 산외면 동곡리이다. 


問 : 所業何事 


하는 일은 무슨 일인가? 


供 : 以士爲業 


선비로서 일하고 있다. 


問 : 今日法官員 日本領事會同審判 公正決處矣一一直告 


오늘은 법무관원과 일본영사가 회동심판하여 공정히 처결할 터이니 일일이 바로 고하라. 


供 : 當一一直告 


일일이 바로 고하겠다. 


問 : 俄旣明諭 東學事 非徒一身相關 卽國家大關 雖有關係 於何等高官 勿隱諱直告 


아까 이미 명유하였거니와 동학사는 일신에만 상관할 일이 아니라 즉 국가에 크게 관계되는 것이니 비록 어떠한 높은 지위에 관계되는 것이 있어도 숨기지 말고 바로 고하라. 


供 : 當依所敎爲之 當初出於本心之事 與他人無關係 


마땅히 소교에 의하려니와 당초 본심에서 나온 일로 타인과 더불어 관계가 없다. 


問 : 汝是全羅道東學魁首云 果然耶 


너는 전라도 동학의 괴수라 하는데 과연 그런가? 


供 : 初以倡義起包 無東學魁首之稱 


처음은 창의로 기포하였고 동학괴수라 일컬은 것은 없었다. 


問 : 汝於何地 招集人衆乎 


너는 어디 곳에서 인중을 불러 모았느냐? 


供 : 於全州·論山地招集矣 


전주, 논산 땅에서 의병을 모았다. 


問 : 昨年三月間 於古阜等地 都聚民衆云 有何事緣而然乎 


작년 3개월간 고부 등지에서 민중을 도취하였다 하는데 어떤 사연이 있어 그렇게 하였는가? 


供 : 其時古阜 額外苛斂幾萬兩 故民心寃恨 而有此擧 


그 때 고부군수는 액외의 가렴이 기만량인 고로 민심의 원한으로 이 거사가 있었다. 


問 : 雖曰貪官汚吏 名色必有然後事 群言之 


비록 탐관오리라 하여도 반드시 명색이 있었을 것이나 상세하게 말하라. 


供 : 今不可盡言其細目 而略告其槪 一, 築洑民洑下 以勒政傳令民間 上畓則 一斗落收二斗稅 下畓則一斗落收一斗稅 都合租七百餘石 陳荒地許其百姓耕食 自官家給文券 不爲徵稅云及其秋收時 勒收事 一, 勒奪富民錢葉二萬餘兩 一, 其父曾經泰仁 故爲其父建造碑閣云 勒斂錢千餘兩 一, 大同米民間徵收以精白米十六斗式準價收斂 上納則貿 米 利條沒食事 此外許多條件 不能盡爲記得 


지금 그 세목을 다 말하지 못하겠으나 그 대개를 간단히 고하리라. 일(一)은 민보아래 축보하고 늑정으로 민간에 고시하여 상답인즉 일 두락에 이수세를 거두고 하답인즉 일두락에 일두세를 거두니 벼가 도합 700여 석이요 진황지를 백성들에게 그 경식을 허하고 거두니 관가로부터 문권을 주어 징세아니한다 하더니 그 추수시에는 늑징한 일이요 일(一)은 부민에게 돈을 2만냥을 늑탈한 일이요 일(一)은 그의 부가 일찍이 태인현감을 지낸고로 그 부의 비각을 건립한다고 돈을 늑렴한 것이 천여량이요. 일(一)은 대동미를 민간에서는 정백미로 16두씩을 준가로 수렴하고 상납시에는 추미로 바꾸어 이조를 몰식한 일이요. 이외 허다한 조건은 이루다 기득할 수가 없다. 


問 : 今所告中之二萬餘兩勒奪錢 行以何名目乎 


지금 고한 가운데 2만냥의 늑탈한 돈은 어떠한 명목으로 행하였는가? 


供 : 以不孝·不睦·淫行及雜技等事 構成罪目而行矣 


불효 불목 음행 및 잡기 등 명목으로 죄목을 구성하여 행하였다. 


問 : 此等事行於一處乎 且行於各處乎 


이 같은 일은 한곳에서만 행했나? 또는 각처에서 행하였나. 


供 : 此等事非止一處 爲數十處 


이 같은 일은 한곳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수 십처가 된다. 


問 : 至爲數十處 其中或有知名者耶 


수십 처에 이른다니 그 가운데 혹 이름을 아는 자가 있는가? 


供 : 今不可記得姓名 


지금은 이름을 기득할 수 없다. 


問 : 此外古阜 行何等事耶 


이 외에 고부군수가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가? 


供 : 今所陳事件 皆民間貪虐事 而築洑時勒斫他山數百年邱木 築洑役之民丁不給一錢勒役矣 


지금 진술한 바 사건이 모두 민간탐학의 일이나 축보 시에 타산(他山)에서 수 백년된 거목을 늑작(勒斫: 늑탈해 베는 것)하고 축보하는 역사(役事)에 민정을 일전도 주지 않고 늑역하였다. 


問 : 古阜 姓名誰 


고부군수 이름은 누구냐? 


供 : 趙秉甲 


조병갑이다.  


問 : 此等貪虐事 但止於古阜  耶 抑或無吏屬輩作奸耶 


이러한 탐학의 일은 다만 고부군수에게만 그쳤느냐 혹 이속배들의 작간은 없었는지? 


供 : 古阜 獨行矣 


고부군수 단독으로 행하였다. 


問 : 汝居生泰仁地 何故起?古阜乎 


너는 태인 땅에서 거생 했는데 어찌하여 고부에서 기요했느냐? 


供 : 居生泰仁 移寓古阜爲數年矣 


태인에서 살다가 고부로 이사한지 수년이 되었다. 


問 : 然則古阜有汝宇乎 


그런즉 고부에는 너의 집이 있느냐? 


供 : 入於燒灰中矣 


불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고부에 있는 집은 불타버리고 없다고 진술했다. 안핵사 이용태가 태웠다는 뜻) 


問 : 汝於其時 無勒徵被害耶 


그때 너는 늑징의 피해가 없었느냐? 


供 : 無有矣 


없었다.  


問 : 一境人民 皆被勒斂之害 汝獨無有者何故 


일경 인민이 다 늑렴의 피해를 입었는데 네 홀로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以學究爲業 所謂田畓 只不過三斗落之故 


학구로써 업을 하기 때문에 전답이라고는 삼두락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問 : 汝之家屬幾名 


너의 가족은 몇 명이나 되느냐? 


供 : 家屬分六名 


가족은 합해서 6명이다. 


問 : 一境人民皆被勒斂之害 汝獨無有者 誠甚訝惑 


일경 인민이 모두 늑렴의 해를 입었는데 너만 홀로 없다하니 참으로 심히 의혹이 간다. 


供 : 矣身朝飯夕粥而已 何有勒斂之物 


나는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을 먹을 정도이니 어찌 늑렴할 것이 있겠는가? 


問 : 古阜 到任 何年何月 


고부 군수가 도임한 것은 몇 년 몇 월인가? 


供 : 再昨年至·臘兩月間矣 


재작년 동지 섣달·양월간이다. 


問 : 到任的在何月 


도임이 꼭 어느 달인가? 


供 : 未詳 居年則爲一周年矣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거년이 일년이다. 


問 : 自到任之初 卽時行虐政乎 


도임하자마자 처음부터 곧 학정을 행하였는가? 


供 : 自初行之 


처음부터 행하였다. 


問 : 虐政自初行之 則何故不爲卽時起乎 


학정을 처음부터 행하였다면 무엇 때문에 즉시 기요하지 않았느냐? 


供 : 一境人民 忍之又忍 終末不得已而行之 


일경 모든 인민이 참고 또 참고 견디다가 종말에 부득히 행하였다. 


問 : 汝無被害 何故起 


너는 피해가 없었다 하는데 무엇 때문에 기요하였느냐? 


供 : 爲一身之害 而起包 豈可爲男子之事 民衆 歎 故欲爲民除害 


한 몸의 해를 위해 기포하는 것이 어찌 남자의 일이라 하겠는가? 중민이 원탄하는 고로 백성을 위해 재해코자 하였다. 


問 : 起包時 汝何以爲主謀乎 


기포 시에는 무엇 때문에 주모하였는가? 


供 : 衆民皆推矣身 使爲主謀 故依民言 


중민이 모두 나를 추대하여 주모로 삼은 고로 민언을 따랐다. 


問 : 衆民以汝爲主謀之時 至汝家乎 


중민이 너를 주모로 삼았을 때 너의 집에 왔었는가? 


供 : 衆民數千名 都聚矣家近處 故自然爲之 


중민 수 천 명이 나의 집 근처에 모인 고로 자연히 이를 하게 되었다. 


問 : 數千名衆民 何故推汝爲主謀乎 


수 천명 중민이 무엇 때문에 너를 추대하여 주모로 하였는가? 


供 : 衆民雖曰數千名 皆是愚農民 矣身則文字粗解之緣故 


중민은 비록 수 천명이나 모두가 어리석은 농민으로 나는 문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問 : 汝住接古阜時 不行敎東學乎 


네가 고부에 주접해 있을 때 동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았는가? 


供 : 矣身訓導如干童蒙 無東學行敎之事 


나는 훈도로서 어린 소년과는 관계하였으나 동학을 가르친 일은 없다. 


問 : 古阜地無東學乎 


고부 땅에는 동학이 없었는가? 


供 : 東學亦有 


동학이 역시 있었다. 


問 : 古阜起包時 東學多乎 民多乎 


고부 기포 시에는 동학이 많았는가? 원민이 많았는가? 


供 : 起包時 民·東學雖合 東學少 而 民多 


기포 시에는 원민 동학이 비록 합하였으나 동학은 적고 원민이 많았다. 


※ 봉기군중의 성분은 동학교인은 소수였고 대다수가 농민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주도세력은 동학의 지도인물들이다.(사발통문) 


問 : 起包後行何事乎 


기포 후에는 어떤 일을 하였는가? 


供 : 起包後陳荒勒徵稅還推 而官築洑毁破矣 


기포 후에는 진황늑징세를 민간에 돌려주고 관에서 축조한 보를 파괴하였다. 


問 : 其時何時 


그때는 어느 때인가? 


供 : 昨年三月初 


작년 3월초이다. 


問 : 其後行何事乎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散落 


그 후 흩어졌다. 


問 : 散落後 因何事更起包乎 


흩어진 후 무슨 일로 다시 기포하였는가? 


供 : 其後長興府使李容泰 以按  使來本邑 起包人民 通稱以東學列名捕捉燒灰其家舍 無當者 則捕其妻子 而行殺戮故更起包 


그 후 장흥부사 이용태가 안핵사로서 본 읍에 와 기포 인민을 동학으로 통칭해서 이름을 나열하여 체포하고 그 가옥을 불사르며 당사자가 없으면 그 처자를 붙잡아 살육을 자행하는고로 다시 기포하였다. 


問 : 然則汝自初一次呈狀于官庭乎 


그런즉 너는 처음 일차적으로 관정에 소장을 올린 일이 있었는가? 


供 : 初次四十餘名等訴 而被捉囚 六十餘名當驅逐矣 


처음에는 40여명이 소를 제기하였으나 붙잡혀 갇히고 재차 60여명이 호소를 하니 또 쫓겨났다. 


問 : 等訴何時 


등소한 것은 어느 때인가? 


供 : 初次再昨年十一月 再次同年十二月 


처음의 호소는 재작년 11월이었고 재차는 동년 2월이었다. 


(이상 2개항의 문답에 의하면 전봉준은 2차에 걸쳐 진정을 했다. 첫 번째는 1893년 11월 농민 40여명이 진정하였다가 구속되고 두 번째는 동년 12월 60여명이 진정했다가 또 쫓겨났다.) 


問 : 再次起包 由按 使 而汝爲主謨乎 


재차 기포는 안핵사 때문이었는데 그때도 네가 주모했느냐? 


供 : 然矣 


그렇다.  


問 : 再次起包後 行何等事乎 


재차 기포 후 어떤 일을 하였는가? 


供 : 營軍萬餘名 欲屠戮古阜人民 故不得已爲接戰矣 


영군 만 여명이 고부 인민을 도륙코자 하는 고로 부득이 접전하였다. 


問 : 何處接戰 


어디서 접전했나? 


供 : 於古阜地接戰矣 


고부땅에서 접전했다.(황토현 싸움을 말함) 


問 : 軍器·軍粮 自何處區劃乎 


군기·군량은 어느 곳에서 구획했는가? 


供 : 軍器·軍粮 皆民間措辦矣 


군기 군량은 모두 민간에서 마련했다. 


問 : 古阜軍器庫軍物 汝不爲奪取耶 


고부 군기고의 군물 역시 네가 탈취하지 않았느냐? 


供 : 其時則無奪取 


그 때는 탈취한 일이 없었다. 


問 : 其時亦汝爲主謀乎 


그 때도 역시 네가 주모하였느냐? 


供 : 然矣 


그렇다.  


問 : 其後則長在古阜耶 


그 후 오래도록 고부에 있었느냐? 


供 : 前往長成矣 


장성으로 갔었다. 


問 : 於長成爲接戰乎 


장성에서도 접전하였느냐? 


供 : 與京軍爲接戰矣 


경군(洪啓薰招討使)과 더불어 접전하였다.(黃龍 싸움) 


問 : 與京軍接戰 孰勝孰敗 


경군과 더불어 접전하여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패했나? 


供 : 我軍聚食時 京軍以大砲射擊 故我軍死者四五十名 我軍一追逐 京軍敗走 取來大砲二座 如干彈丸矣 


아군이 취식할 때 경군이 대포로 사격하여 아군의 4,50명이 죽자 아군은 일제히 추축하니 관군은 패주하여서 대포 이(二)좌와 탄환을 탈취하여 왔다. 


問 : 其時兩軍數各幾何 


그 때 양군의 수는 각각 얼마나 되었던가? 


供 : 京軍七百 我軍則四千餘名 


경군은 7백명이고 아군은 4천명이었다. 


問 : 其時長成所行事 一一直告 


그 때 장성에서 행한 일을 바른대로 일일이 고하라. 


供 : 京軍敗走後 我軍倍道 先京軍入全州守成矣 


경군이 패주한 후 아군은 배도(발걸음을 두 배로 빨리 하는 것)하여 경군보다 먼저 전주에 들어가 수성하였다. 


問 : 其時監司無矣 


그때 감사는 없었는가? 


供 : 監司見我軍來而逃走 


감사는 우리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도주했다. 


問 : 守成後行何事乎 


수성 후 무엇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京軍隨後至完山 留陳龍頭峴 向成中以大砲攻擊 毁傷慶基殿 故以此緣由詐及京軍矣 自京營中 作曉諭文 謂以從汝所願 故感激解散 


그 후 경군이 뒤따라 완산에 이르러 용두현에 유진하고 성중을 향하여 대포로 공격하므로써 경기전이 훼상되었다. 이 연유를 경군에게 허급하였더니 경중에서는 효유문을 만들어 [너희 소원대로 따르겠다]하므로 감격하여 해산하였다. 


問 : 其後行何事乎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행하였는가? 


供 : 其後則各歸其家力農 其餘不恒之徒 有剽掠民間 


그 후에는 각기 집으로 돌아가 농사에 힘쓰고 그 나머지는 불항의 무리가 되어 민간에 표략한 것도 있었다. 


問 : 不恒之徒剽掠軍 與汝無關係乎 


불항의 도 표략군은 너와는 관계가 없었느냐? 


供 : 無關係 


관계가 없다. 


問 : 其後更無所行事 


그 후 다시 행한 일은 없었느냐? 


供 : 昨年十月分 矣身則起包全州 孫化中則起包光州 


작년 10월 나는 전주에서 기포하고 손화중은 광주에서 기포하였다. 


問 : 更起包何故 


다시 기포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供 : 其後聞則貴國稱以開化 自初無一言半辭 傳布民間 且無檄書率兵入都城 夜半擊破王宮 驚動主上云 故草野士民等忠君愛國之心 不勝慷慨糾合義旅 與日人接戰 欲一次 請問此事實 


그 후 들은즉 귀국(일본)이 개화를 한답시고 처음엔 민간에게 일언반사의 알림도 없었고 또 격서도 없이 솔병하고 도성에 들어와 야반에 왕궁을 격파 주상(임금)을 경동케 하였다는 말이 들리는 고로 시골선비 등은 충군애국의 마음으로 분개를 이기지 못하여 의병을 규합 일본인과 더불어 접전하여 일차적으로 이 사실을 청문하고자 하였다. 


問 : 其後更行何事乎 


그 후 다시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고? 


供 : 其後思量 則公州監營阻山帶河 地理形勝 故雄據此地爲固守之謀 則日兵必不能容易擊拔 故入公州 傳檄日兵欲爲相持 日兵先己確據公州 事勢不可無接戰 故二次接戰 後 萬餘名軍兵点考 則所餘者不過三千餘名 故敗走至 


그 후 곰곰이 생각하니 공주 감영은 산이 막히고 강이 둘러 있어 지리가 형승하기 때문에 그 땅에 웅거하여 고수를 도모한다면 일병이 용이하게 처들어 오지 못할 것을 알고 공주로 들어가 일병과 상치코자하였는데 일병이 먼저 공주에 확거하였으므로 사세는 불가피 접전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런고로 2차 접전 후 1만여명의 군병을 점고한 즉 남은 자가 불과 3천명이요. 그 후 또다시 2차 접전 후 점고한즉 5백명에 불과하였다. 그런고로 패주하여 금구에 이르러 다시 초모한즉 수효는 좀 증가였으나 기율이 없어 다시 개전하기는 극히 곤란하였다. 그런데 일병이 뒤따라와서 2차 접전하여 패주하고 각기 해산하였다. 금구 해산 후 나는 경중(서울)의 이면을 상세히 알고 상경할려고 하다가 순창 땅에서 민병에 의하여 붙잡혔다. 


問 :入全州時 招募軍士 全羅一道人民都聚乎 


전주에 들어가 군사를 초모하였을 때 전라일도 인민이 도취하였는가? 


供 :各道人民梢多 


각도 인민이 조금 많았다. 


問 :向公州時 亦各道人民梢多乎 


공주로 향하였을 때 역시 각 도 인민이 좀 많았는가? 


供 :其時亦然 


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問 :再次招募時 以何方策糾合乎 


재차 초모할 때는 어떠한 방책으로 규합하였는가? 


供 :招募時 以忠義之士 同倡義之意渴榜矣 


초모할 때는 충의의 선비로서 같은 창의의 뜻을 방문으로 내어 걸었다. 


問 :招募時 但自願者糾集耶 或제驅耶 


초모할 때 다만 자원자만 규합하였나 혹은 강제로 몰아 모았나? 


供 :矣身本來所四千名 則自願者 而其外各處通文辭意則若不此擧者 不忠無道 


내가 거느린 4천명의 군졸은 자원자이니 그 외는 각처에 통문으로서 [만약 이 거의에 불응 하는 자는 불충무도]라 하였다. 


問 :昨年三月起包古阜 而向全州之間 經幾邑而接戰次乎 


작년 3월 고부에서 기포하여 전주로 향하는 동안 몇 읍을 경우하고 접전은 몇 차례 하였나? 


供 :所經邑則由茂長 古阜 經泰仁 金溝 而欲란全州 聞경 兵萬餘名下來之言 往扶安 還至古阜 與%軍接戰 


경유한 읍은 무장 고부와 태인 금구를 거쳐 전주에 달하려 하였는데 영병(營兵) 만여명이 내려온다기에 부안으로 갔다가 되 돌아와 고부에 이르러 영군과 더불어 접전하였다. 


問 :其候則向何處乎 


그 후에는 어느 곳으로 갔나? 


供 :自井邑經高敞 茂長 咸平 低長城 與京軍接戰 


정읍으로부터 고창 무장 함평을 거쳐 장성에 이르러 경군과 더불어 접전하였다. 


問 : 入全州何時 解散何時 


전주에 들어간 것은 언제며 해산한 때는 어느 때인가? 


供 :作年四月二十六 七日間入全州 五月%五 六日間解散 


작년 4월 26일부터 27일간에 전주에 들어왔으며 5월초 5일∼6일간에 해산하였다. 


問 :再次起包時 始於何處사 


재차 기포할 때는 어느 곳에서 시작했는가? 


供 :始於全州 


전주에서 시작했다. 


供 :再次起包時 招募則幾許名乎 


재차 기포할 때 초모한 사람은 전부 몇 명인가? 


問 :四千餘名 


4천여 명이다. 


供 :至公州時幾許名乎 


공주에 이르렀을 때에는 몇 명이나 되었는가? 


問 :萬餘名 


만여 명이었다. 


供 :公州接戰何時 


공주접전은 어느 때인가? 


問 :去年十月二十三 四日間 


거년 10월 23일∼24일이다. 


供 :當初古阜起包時 則同謀者皆雖也 


당초 고부 기포시의 동모자는 모두 누구 누구인가? 


供 :孫化中 崔慶善某某人 


손화중 최경선 모모인이다. 


問 :此外更無他人乎 


이외 또 다른 사람은 없는가? 


供 :此三人外許多人 不可勝% 


이 삼인 외 허다인으로 그 수는 헤아릴 수 없다. 


問 :四千名糾合時 不止此三人矣 詳言其人 


4천명이 규합했을 때는 이 세 사람에게만 그치지 않았을 것이니 그 외 사람을 상세히 말하라. 


供 :此外 屑之人 何足言乎 


이외 쇄설(전것)의 사람을 다 말할 수 있는가? 


問 :昨年十月起包之時 無同謀者乎 


작년 10월 기포했을 때 동모자는 없었느냐? 


供 :此外只孫如玉 趙駿九等而己 


이외 다만 손여옥 조준구 뿐이다. 


供 :孫化中 崔慶善 其時無相關乎 


손화중 최경선은 그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나? 


問 :此二人以光州事緊急 未及來也 


그 두사람은 광주일이 긴급하였으므로 오지 못했다. 


供 :孫 崔兩人 在光州行何事乎 


손, 최 양인은 광주에서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問 :此二人 卽時向公州 聞日兵來自海路 使之海防 故但固守光州 


이 두 사람은 즉시 공주로 행하였다가 일병이 바다로 온다는 말을 듣고 해안을 막아 광주를 지키도록 하였다. 


(일본군이 남도해안에 상륙한다는 오보가 있어 혁명군이 중구인물인 손화중과 최경선으로 하여금 광주지방을 고수토록했다 하였으니 혁명군의 작전 규모와 치밀의 도를 짐작케 한다.)

 


全捧準 再招問目(제2차 심문과 진술) 

乙未 二月 十一日(서기 1895년 2월 11일(음)) 

  

供 :汝昨年三月起包之意 以爲民除害爲意 果然사 


너의 작년 3월에 행한 기포의 뜻은 백성을 위해 재해할 뜻으로 하였다하는데 과연이냐? 


問 :果然矣 


그렇다.  


問 :然則居內職者輿幸外任之官員 皆貪虐사 


그런즉 내직에 있는 자들이나 제외임의 관원도 모두 더불어 탐학인가? 


供 :居內職者以賣官육爵爲事 勿論內外皆貪虐也 


내직에 있는 자들도 매관육작을 일삼으니 내외를 물론하고 다 탐학이다. 


問 :然則欲除全羅一道貪虐之官吏而起包사 欲八道一體爲之之意向사 


그런즉 전라일도 탐학의 관리를 제거코자 기포했느냐 그렇지 않으면 팔도를 한 가지로 이같이 할 의향이었느냐? 


供 :除全羅一道貪虐 屛遂內職之賣爵權臣 八道自然爲一體矣 


전라일도 탐학을 제거하고 또 내직의 매작권신을 쫓아내면 팔도가 자연히 한 몸이 될 것이다. 


問 :全羅道監事以下各邑守幸皆貪虐官사 


전라도 감사 이하 각 읍의 수재가 모두 탐학인가? 


供 :十居八九 


십 중 팔 구이다. 


問 :指自何事而謂貪虐사 


무슨 일을 가리켜 탐학이라 하는가? 


供 :各邑守幸%以上納 或加斂結卜 橫徵戶役 有稍%之民空然構罪 勒奪錢財 橫侵田좌非一非再 


각 읍 수재는 상납을 칭탁하여 혹 가렴 길복하여 횡징호역하며 좀 부요민이 있으면 공연히 죄를 만들어 전재를 늑탈하며 전장을 횡침하는 것이 비일비재이다. 


問 :內職賣官者誰 


내직 매관자는 누구인가? 


供 :惠堂閔泳駿 閔泳煥 高永根等是也 


해당 민영준, 민영환, 고영근 등이 이들이다. 


問 :止於此等人사 


이들 뿐인가? 


供 :此外亦許多 不可盡記得 


이외 역시 허다하나 다 기억할 수 없다. 


問 :此等人之爲賣官 何以分明知之사 


이들이 매관한 것을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는가? 


供 :一世喧藉 無人不知 


온 세상이 다 훤자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 


問 :汝以何計策 欲除貪官사 


너는 어떤 계책으로 탐관을 제거코자 하였느냐? 


供 :非有別計策 本心切於安民 見貪虐則不勝憤歎 而行此事 


별도로 계책이 있는 것은 아니라 본심의 간절한바가 안민이 있으므로 탐학을 본즉 분탄을 이기지 못해 이 일을 하였다. 


問 :然則不爲呈訴稱면사 


그런즉 소를 드려 청원하지 않았는가? 


供 :呈營邑不知幾次 


영읍에 진정한 것은 몇 차례인지 모른다. 


問 :呈營呈邑 汝親行之乎 


영읍에 진정할 때 네가 친히 이곳에 갔는가? 


(영은 전라감영. 읍은 고부군을 말함) 


供 :每次所志 則矣身製作 而呈則使  民爲之 


매차의 소장(진정서)은 내가 제작하고 드린 것은 원민으로 하여금 하게하였다. 


問 :然則於조정 亦爲訴면乎 


그런즉 조정에도 역시 소(진정서)를 제기하였는가? 


供 :呈訴無굴 洪啓勳(薰)大將全州留陳時 呈此緣由 


진정할 길이 없어 홍계훈 대장이 전주에 유진하고 있을 때 이 연유를 써서 드렸다. 


(홍계훈이 전라감사를 지냈음) 


問 :其時守幸皆是貪虐 雖爲呈訴 豈有聽시 


그때는 모든 수재가 탐학했는데 어찌 비록 정소해도 청시함이 있으리라 그러하였는가? 


供 :雖然 呼訴無處 不得已呈訴其處 


비록 그러하나 호소할 곳이 없어 부득이 그곳에 정소하였다. 


問 :呈營呈邑 何時乎 


영, 읍에 진정한 것은 어느 때인가? 


供 :昨年正 二 三月間 


작년 2,3월간이다. 


問 :正月以前則不爲呈訴사 


정월 이전에는 정소하지 않았느냐? 


供 :正月以前 古阜一邑民狀而已 不爲大端呈訴 


정월 이전의 고부에는 민장 뿐이었기 때문에 대단한 정소는 하지 않았었다. 


問 :屢次呈營呈邑 而終是不爲聽施之 故起包사 


누차 영에 드리고 읍에 드렸으나 끝내 청시하지 아니하는 고로 기포하였는가? 


供 :然矣 


그렇다.  


問 :汝於古阜 被害不多 緣何意見而行此擧사 


너는 고부군수에게서 피해가 많지 않았는데 어떠한 의견으로 연유하여 이 거사를 행했는가? 


供 :世事日非 故慨然欲一番濟世意見 


세상살이가 날로 그릇되어 가는 고로 개연히 한번 세상을 건져보고자 하는 의견이었다. 


問 :汝之同謀孫化中 崔慶善等 皆酷好東學者사 


너와 동모한 손화중, 최경선 등은 모두 동학을 대단히 좋아했는가? 


供 :然矣 


그렇다.  


問 :所謂東學 何主意 何道學乎 


소위 동학이라는 것은 어떤 주의이며 어떤 도학인가? 


供 :守心 以忠孝爲本 欲輔國安民也 


마음을 지켜 충효로 본을 삼고 보국안민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問 :如亦酷好東學者사 


너도 동학을 대단히 좋아하는 자인가? 


供 :東學是守心敬天之道 故酷好也 


동학은 이에 수심경천의 도이기 때문에 매우 좋아한다. 


問 :東學始自何時 


동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供 :東學之始 始於三十年前 


동학의 시초는 30년 전에 비롯되었다. 


問 :始於何人乎 


어떤 사람이 시작했는가? 


供 :始於慶州崔濟愚矣 


경주에 사는 최제우가 시작했다. 


問 :至今亦全羅道內 尊%東學者多乎 


지금 역시 전라도 내에 동학을 존중하는 자가 많은가? 


供 :經亂之後 死亡相幾 至今太減 


난을 겪은 후 죽는 자가 계속 있어 지금은 크게 감해졌다. 


問 :汝起包時所率 皆是東學사 


네가 기포할 때 거느린 바는 모두가 동학인가? 


供 :所謂接主 皆是東學 其餘率下 稱以忠義之士居多 


소위 접주는 다 동학이나 그 나머지 솔하는 충의의 사로써 일컬은 자가 많았다. 


問 :接主司何名色 


접주사란 어떤 명색인가? 


供 :領率之稱 


영솔의 호칭이다. 


問 :然則起包時 軍器 軍粮 措瓣者사 


그런즉 기포 시에는 군기 군량을 조관하는 자인가? 


供 :凡於事皆爲指揮者也 


무슨 일에 있어서나 다 지휘한다. 


問 :接主 接司 自本來有사 


접주와 접사는 본래부터 있었는가? 


供 :개往固有 而起包時或有創設 


이미 전부터 본래 있었으나 기포 시에는 혹 창설한 것도 있다. 


問 :東學中領率名色 接主 接司而己乎 


동학 중 영솔명색이 중 접주 접사뿐인가? 


供 :接主 接司之外 有敎長 敎授 執綱 都執 大正 中正等六種矣 


접주.접사 이외 교장 교수 집강.도집.대정.중정 등 6종이 있다. 


問 :所謂接主者 平居時行 何事乎 


소위 접주라 하는 사람은 평상시에는 어떤 일을 하는가? 


供 :別無以行之事 


별로 행하는 일이 없다 


.問 :所謂法軒何職責 


소위 법헌이란 어떤 직책인가? 


供 :非職責 而乃長老別號 


직책이 아니라 장로의 별호이다. 


問 :以上六種之稱 行何事乎 


이상의 여섯 직책은 각각 어떤 일을 하는가? 


供 :敎長 敎授則敎導愚民者 都執則有風力 明紀綱 知經界 執綱則明是非 執紀綱 大正則恃公平 %厚員中正能直言剛直云矣 


교장, 교수는 우민을 교도하는 자이고 도집은 풍력있고 기강에 밝아 경계를 알아야 하고 집강은 시비에 밝아 기강을 잡고, 대정은 공평을 갖고 삼가 후원하며 중정은 직언 강직을 말하는데 능해야 한다. 


問 :接主 接司則同職責乎 


접주와 접사는 같은 직책인가? 


供 :接司聽行接主指揮者也 


접사는 접주가 지휘하는 것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다. 


問 :以上許多名色 誰差出乎 


이상 많은 명색은 누가 차출을 하는 것이냐? 


供 :自法軒視敎徒多少 第次差出矣 


법헌으로부터 교도가 많고 적은 것을 보아 차례로 차출한다. 


問 :東學中有南接 北接云 依何而區別南北乎 


동학 가운데 남접. 북접이라고 말하는데 무엇으로 구별하여 남.북이라고 하느냐? 


供 :湖以南稱以南接 湖中稱以北接矣 


호(湖) 이남을 남접, 호중(湖中)을 북접이라고 한다. 


問 :昨年起包時 於以上各種名色等 指揮何事件乎 


작년 기포 시에는 이상 각종 명색 등에 있어서 어떠한 사건들을 지휘하였느냐? 


供 :行以各其職掌矣 


각기 직장으로써 행하였다. 


問 :各其職掌 皆聽行汝之指揮乎 


각기 직장이 모두 너의 지휘를 듣고 행하였는가? 


供 :矣身皆爲指揮矣 


내가 모두 지휘했다. 


問 :修心敬天之道 何以稱東學乎 


수심경천의 도를 일컬어 무엇 때문에 동학이라고 하는가? 


供 :五道出於東 故稱以東學 自初本意 則始作之人 分明知得 矣身則隨他人之稱而稱之耳 


우리 도는 동에서 나온 고로 동학이라 일컫는다. 자초 본의인즉 시작한 사람은 분명히 얻어서 아나, 나는 다른 사람의 일컬음을 따라 이를 일컬은 것이다. 


問 :投入東學 能%怪疾云 然乎 


동학에 들어가면 능히 괴질을 면한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供 :東學書云中 三年%疾在前 敬天守心 可%云矣 


동학서 가운데 말하기를 3년 괴질이 앞으로 있으니 경천수심하면 가히 면한다고 한다. 


問 :東學 八道皆傳布사 


동학은 팔도에 다 전포하였는가? 


供 :五道전진행교의 서북삼도즉부지의 


5도에는 모두 교가 행하여져 있으나 서북 3도는 모른다. 


問 : 동학을 배운즉 병을 면하는 외 다른 이익은 없는가? 


供 : 다른 이익은 없다. 


問 : 작년 3월 기포 시에는 탐관을 제거한 후 어떤 일을 하려고 하였는가? 


供 : 다른 뜻은 없었다. 


問 : 작년 절목을 홍대장(홍계훈)에게 드렸다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供 : 그렇다.(全州和約後의 弊政改革案) 


問 : 절목을 드린 후 탐관을 제거한 징험이 있었던가? 


供 : 별로 징험이 없었다. 


問 : 그런즉 홍대장이 백성을 속인 것이 아닌가? 


供 : 그렇다. 


問 : 그런즉 백성은 무엇 때문에 다시 칭원이 없었는가? 


供 : 그 후 홍대장은 서울에 있었으니 다시 무엇을 칭원하겠는가? 


問 : 재차 기포한 일병이 범궐(왕궁을 침범함)의 연고로 인하여 재기했다고 하였는데 제거 후 어떤 거조를 하고자 하였는가? 


供 : 범궐의 연유를 힐문하고자 하였다. 


問 : 그런즉 일병과 경성에 유주하고 있는 각국인을 더불어 모두 구축하려 하였는가? 


供 : 그렇지 않다. 각국인은 다만 통상만 할 뿐인데 일인은 솔병하여 경성에 유진하는 고로 우리나라 국토를 침략하는 것으로 의아하였다. 


問 : 이름은 이건영이라고 일컫는 사람을 아는가? 


供 : 잠시 만나기는 하였다. 


問 : 만났을 때 어떤 말을 하였는가? 


供 : 소모사라고 일컫는 고로 내가 말하기를 [소모사라면 마땅히 어느 곳에 있는 소모영을 설치하라]고 하였지만 나와는 더불어 상관이 없다하니 금산으로 갔었다. 


問 : 어느 곳에서 만났는가? 


供 : 삼례역에서 만났다. 


問 : 그때 만나서 이건영의 말이 어디서 왔다고 하던가? 


供 : 경성으로부터 왔다고 말했다. 


問 : 누가 보냈다고 하던가? 


供 : 정부로부터 보내더라고 하였는데 3∼4일 후 들으니 즉 가칭 소모사인 고로 잡으라는 명이 있었다고 하였다. 


問 : 소모사를 증거할 만한 문적이 있던가? 


供 : 증거할 만한 문적을 보지는 못했다. 


問 : 그때 너의 도당은 몇 명이었나? 


供 : 수 천여 명이었다. 


問 : 그 외 소모사라 일컫고 기포를 권한 사람은 없었는가? 


供 : 그런 사람은 없었다. 


問 : 송정섭을 아는가? 


供 : 다만 충청도 소모사라고만 소문으로 들었다. 


問 : 재차 기포할 때는 최법헌에게 의논하였던가? 


供 : 의논이 없었다. 


問 : 최법헌은 동학의 괴수인데도 동학당을 규합하는데 어찌 의급하지 않았는가? 


供 : 충의는 각기 본심인데 하필 법헌에게 의논한 후에 이 일을 해야 하는가? 


問 : 작년 8월에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 


供 : 태인 집에 있었다. 


(이평면에 있는 자기 집이 이미 소실되었기 때문에 태인면 산외면 동곡리에 우선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問 : 그 나머지 도당은 어느 곳에 있었던가? 


供 : 각각 본가에 있었다. 


問 : 충청도 천안 지방에는 너의 도당이 있었던가? 


供 : 그곳에는 도당이 없었다. 

 


全捧準 三招問目(제3차 심문과 진술) 

乙未 二月 十九日(서기 1895년 2월 19일(음))


問 : 네가 일전에 고한 바 송희옥을 모른다고 하였는데 희옥 두자는 이름인가? 호인가? 


供 : 희옥은 이름이고 칠서는 자이다. 


問 : 송희옥과 이미 삼례역에서 이와 더불어 동모했은즉 그 이름자를 어찌하여 상세히 모르는가? 


供 : 송희옥은 본시 허망한 사람으로 홀연히 가고 홀연히 오고 하여 실제의 거처가 확실하지 않다. 


問 : 송희옥은 이에 전라도 일도의 도집강이라 들었고 또 너와는 친척이 된다는데 지금 고하는 것은 오직 장찬(허물을 감추려고 숨기는 것)이니 바르게 실고하지 않는 것이 의심되며 항차 네 죄의 경중은 송희옥의 장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희옥의 죄안이 네가 숨겨 보호하는 것이 아니니 비록 오로지 믿어야 하는데 이는 진실로 어떤 마음에서냐? 


供 : 아까 고한 바와 같다. 송은 본시 부황의 유로 지난번 일본 영사관 물음에 답변할 때 영사가 한 글을 내어 보이는데 희옥의 필적이다. 그 글에 일컫기를 운현변(대원군 측을 말함)과 상통한 것으로 되어 스스로 생각해 보니 그가 이 말을 위조하여 시국의 힘을 빌리려 한 것으로 이 불근지설을 만드니 실로 남자의 일이 아니며 역시 존엄을 모독하고 공연히 때의 물의를 일으키게 되는 고로 잠깐 이를 꾸며서 말한 것이다. 


問 : 남자의 말은 비록 참말을 백번하였어도 만일 한 마디의 말에 속임이 있은 즉 백 마디 말을 다 속인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본즉, 어제는 모른다고 한 것이나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어찌 다 속인 것이 아니겠는가? 


供 : 마음과 정신이 혼미하여 과연 착오한 바가 있다. 


問 : 송희옥은 갑오 9월 서(書)에 말하기를 [어제 저녁 또 사람이 비밀리 하래했는데 전말을 상고한즉 과연 개화파에 눌려 먼저 효유로 보호하면 뒤에 비기가 있을 것이다.]했는데 이는 누가 보내온 글인지 역시 네가 모르는 것인가? 지난 너의 고한 바는 [작년 10월 재기한 것은 일인이 군대를 거느리고 입궐하여 이해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고로 우리가 신민이 되어 감히 한시도 안심할 수가 없어 이에 이 거의를 한 것이다.]고 말하였은즉 대원군의 뒷 비밀편지가 따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역시 너의 재기와 암합한 것이 아닌가? 


供 : 그간에는 비록 혹 이 같은 무리들의 내왕이 있었으나 본래 그 면을 알지 못한즉 중대 사건을 어찌 의급하겠는가? 그런고로 행적이 특별히 수상한 자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問 : 남원부사 이용헌 장흥부사 박헌양이 입은 피해는 모두 누구의 소행인가? 


供 : 이용헌은 김개남의 소위이고 박헌양은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는지 모른다. 


問 : 은진에 사는 김원석이 입은 피해는 누구의 짓인가? 


供 : 공주의 동학 괴수 이유상의 소위이며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問 : 작년 재 기포 시 조정으로부터 하송해온 그 효유문을 너는 보지 못했는가? 


供 : 대원군의 효유문은 보았으나 조정에서 내려온 효유문은 보지를 못했었다. 


問 : 비록 조정의 효유문은 보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대개 대원군의 효유문을 보았은즉 시사를 알 것인데 사기의 여하를 생각지도 않고 임의로 백성을 움직여 무단 야요하여 백성들을 물불에 빠뜨리고 이은 어찌 신민이 가히 할 일인가? 


供 : 상세한 내막을 몰라 임의로 백성을 움직였으니 과연 이는 주착이었다. 

 


全捧準 三招問目(제3차 심문과 진술)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二月 十九日(서기 1895년 2월 19일(음)) 

  

::: 三招의 繼續 ::: 


問 : 송희옥의 글 가운데 대원군의 비기의 허실을 어떻게 정확하게 아는가? 


供 : 송은 본래 부랑자인 고로 미루어 보아 말한 것이고 또 대원군 쪽에서 혹 이러한 일이 있다면은 마땅히 나에게 먼저 통지할 것이지 송에게 먼저 하지 않았을 것이다. 


問 : 송은 너의 수하이냐 수상이냐? 


供 : 별로 상하로 일컬을 만한 것이 없고 서로가 똑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다. 


問 : 송과는 재기 시에 같이 더불어 의논하지 않았는가? 


供 : 내가 기포할 때에 간혹 참석하였으나 처음 좌가 옳다, 우가 옳다 말을 하였다. 


問 : 송의 이 일이 만약 좌가 옳다 우가 옳다 한 말이 없은즉 대원군측 비기를 가칭 타인에게 기서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송의 기서는 혹인이 처음 일포로 시작되었고 비록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기는 어려우나 나의 일에 있어서는 방관하였다. 


問 : 송은 나와 더불어 이미 같은 포가 아닌즉 피차 행한 바 일에는 반드시 서로 알지 못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供 : 그렇다 


問 : 그런즉 송이 가칭한 비기를 너는 어찌 능히 밝게 아는가? 


供 : 송은 처음 서울에 머문 일이 없고 또 저명한 인사가 아닌고로 스스로 생각해서 말한 것이다. 


問 : 전후의 진술한 것을 합하여 본즉 송과 너와는 본래부터 서로 친한데 줄곧 모른다고 하니 역시 의심이 간다. 


供 : 지난번 귀관(일본영사)에게 답변할 때, 내어보인 글은 부랑에 관계되는 것 같아 역시 모르는 바이다. 그런고로 만약 친지자로서 대한다면 반드시 그 글의 내력을 물을 것이니 변혹하기 어려운 고로 잠시 여기에 만고(속여서 고함) 했다. 


問 : 그런즉 너에게 이로운 것을 물으면 대답하고 너에게 해로운 것을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니 되겠는가? 


供 : 이해로 마음 먹은 것은 아니나 특별한 사연으로 변혹하기 어려운 것은 그렇다. 


問 : 전라도내 사람이 반복무상하다고 일찍이 들은바나 지금 네가 고하는 것은 역시 그대로 상투적이다. 


그러나 질문이 오래되면 정상은 스스로 나타날 것이며 비록 일언반사라도 속여 고한 것은 반드시 얻지는 못할 것이다. 


供 : 송희옥의 건은 비록 속여서 고하였다고 하드라도 그 나머지는 처음부터 한마디 말도 꾸미고 속인 것이 없었다. 


問 : 지금의 이 재판은 양국에 관계되는 심판으로서 반드시 조금이라도 편벽된 청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구태여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속여 만들어 한때를 넘기고자 한즉 출간지설을 징탐하리니 모두가 믿을 것이 없다. 


供 : 사로 잡힌 것이 수삭, 또 병에 묶인 몸이라 한마디 말의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問 : 송과 너와는 척분이 안되는가? 


供 : 처족 7촌이다. 


問 : 기포 시 비로소 어디서 보았나? 


供 : 비록 삼례에서 보았으나 실지 같은 포의 일은 없었다. 


問 : 비로소 보았을 때 어떠한 의논을 한 일이 있는가? 


供 : 비로소 보았을 때 행해야 할 일을 말하고, 나도 역시 추후에 기포해 올라오겠다고 말하였다. 


問 : 그때는 어느 때인가? 


供 : 작년 10월 재기 때이나 일자는 자세히 모르겠다. 


問 : 너의 재기는 무슨 일을 할려고 하였느냐? 


供 : 앞서 고한대로 이미 다 이야기 하였다. 


問 : 네가 송과 더불어 삼례에서 상견했을 때 혹 대원군의 말을 칭탁한 것은 없느냐? 


供 : 송이 대원군으로부터 내려왔다고 일컬으면서 2월에 속히 올라오면 좋을 것 같다 한다고 말하기에 내가 묻기를 글이 있었느냐고 하였더니 대답이 없었다. 나에게 문자를 보이지 않으므로 책망했더니 힁설수설하여 실로 황당하는 눈치였다. 또 반드시 대원군이 가르쳤다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일을 마땅히 행할 것은 내가 스스로 여기에 당하겠다고 말하였다. 


問 : 삼례에서 기포할 때는 군중은 얼마나 되었는가? 


供 : 4천여 명이었다. 


問 : 그 후 접전은 어느 날에 있었는가? 


供 : 삼례에서 일어나 20여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서 접전하기 시작하였다. 


問 : 송이 말한 운현궁(대원군을 칭함)으로부터 내려온 두 사람의 이름은 누구인가? 


供 : 그때는 들어서 알았으나 지금은 기억하기 어렵다. 


問 : 두 사람의 이름은 모두 들을 수는 없으나 성과 이름은 끝끝내 기억할 수 없느냐? 


供 : 그 성은 박.정 같은데 상세하지 않다. 


問 : 박.정은 곧 이가 박동진 정인덕이 아닌가? 


供 : 박동진은 이가 분명하나 정은 상세하지 않다. 


問 : 박.정은 송을 보고 어떠한 말을 하였나? 


供 : 송이 일컬으기를 [운현궁(대원군)이 역시 네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問 : 송희옥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供 : 금번 올라올 때 듣기로는 고산 민병에게 죽었다고 하였는데 상세하지 않다. 


問 : 운현궁 효유문은 어떻게 얻어 보았나? 


供 : 9월 태인의 본집에 있을 때 접솔한 사람이 등초하여 와서 보았다. 


問 : 그 때는 바로 기포를 펼 때인가? 


供 : 그때는 집에서 병을 치료할 때로 기포의 생각은 없었다. 


問 : 그 도내 동학도의 자요가 없었느냐? 


供 : 그 때는 김개남 등이 열읍에서 작요하였다. 


問 : 열읍은 곧 어느 읍인가? 


供 : 순창.용담.금산.장수.남원 등이고 그 나머지는 상세하지 않다. 


問 : 대원군 효유문을 다만 한번만 보았었나? 


供 : 그렇다. 


問 : 효유문에는 어떤 말이 들어 있던가? 


供 : [너희들이 오늘날의 이 기요는 실로 수재의 탐학과 중민의 원굴로 말미암은 것이니 지금으로부터 이후 관의 탐학은 반드시 징치하고 백성의 원굴한 것은 반드시 펼 터이니 각기 돌아가 안업하면 가하나 만일 부준하면 곧 마땅히 왕정으로써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問 : 효유문에는 인적이 었던가? 


供 : 내가 본 것은 등초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없었으나 관에 도착한 원본에는 이것이 있다고 하는데 방곡에 게시하여 붙였다. 


問 : 방곡에 게시하여 붙인 것은 누가 하였는가? 


供 : 관에서 하였다고 한다. 


問 : 효유문은 누가 가지고 갔는가? 


供 : 주사의 직함을 띄고서 가지고 갔다고 하였다. 


問 : 그때 효유문을 네가 보니 진짜던가? 가짜던가? 


供 : 이것은 관에서 게시하여 붙였는데 어찌 가짜로 보겠는가? 


問 : 너는 이미 이를 진짜로 알았으면 어찌하여 재기하였는가? 


供 : 귀국(일본 영사관)의 속을 상세히 알고자 그렇게 하였다. 


問 : 가히 상세히 속을 안 다음 장차 어떤 일을 계획하려 했나? 


供 : 보국안민의 계책을 하고자 하였다. 


問 : 너의 재기에는 이미 대원군의 효유문을 불신하지 않았는가? 


供 : 이에 앞서 조정의 효유문은 1.2차에 그치지 않았으나 끝내 실시한 것이 없으니 하청을 상달하기가 어렵고 상택(임금의 은덕)은 하구하기가 어려운 고로 꼭 일차 서울에 이르러 민의를 상진하려 했다. 


問 : 이미 효유문을 보고도 구태여 일을 재기한 것은 이를 소실한 것이 아닌가? 


供 : 눈으로 친히 보고 귀로 친히 듣지 않고서는 깊이 믿기 어려운고로 이에 일을 재기하였는데 어찌 소실이 있겠는가? 


問 : 아까 고한 바 소실한 것이란 어떤 일인가? 


供 : 아까 소실이라 일컬은 것은 시사의 이면에 상세하지 못한 것을 가리킨 것이지 효유문의 보고 안 본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問 : 너의 재기에는 대원군 효유문으로써 개화파가 압박한 것으로 보고 겸하여 운현궁(대원군)으로부터 너희들이 상래를 기다린다고 하였으므로 이에 이를 행한 것인가? 


供 : 효유문의 개화파로부터 압박됐던 안됐던 관계가 없는 것이고 재기한 일에 이르러서는 본심에서 우러러 나왔고 또 비록 대원군의 효유문이 있어도 깊이 믿을 수가 없는 고로 재기를 힘써 도모하였다. 


問 : 일병의 범궐은 어느 때 들었는가? 


供 : 7-8월간에 들었다. 


問 : 어느 사람한테 들었는가? 


供 : 소문이 널리 퍼져 있으므로 자연히 이를 알 수가 있었다. 


問 : 이미 이르기는 창의라 하였은즉 듣고서도 즉시 행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10월까지 기다렸는가? 


供 : 때마침 몸이 아프고 또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겸하여 신곡이 나오지 않아 자연 10월에 이르렀다. 


問 : 대원군이 동학의 일과 관계가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며 또 대원군은 지금 권한이 없은 즉 네 죄의 경중은 오직 이 장소에 있고 대원군에 있는 것이 아닌데 너는 끝끝내 솔직히 말하지 않고 대원군의 암호를 깊이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과연 어떠한 뜻에서인가? 


供 : 대원군은 다른 동학 몇 백과 있을지언정 나에 관하여서는 처음부터 관계된바가 없다. 


問 : 대원군은 동학과 더불어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인데 네가 홀로 듣지 못하였던가.? 


供 : 실로 듣지 못한 바이다. 


問 : 대원군이 동학과 더불어 상관한 것을 처음부터 한 가지도 들은 바가 없었단 말인가? 


供 : 그렇다. 나의 것도 숨기지 않는데 항차 다른 사람의 것이랴? 


問 : 송희옥이 대원군과 더불어 서로 관계된 바가 있는 것을 너도 역시 알고 있었겠지? 


供 : 송희옥은 반드시 서로 관계된 것이 없을 것이다. 


問 : 네가 어찌해서 그 서로 관계된 것이 없는 것을 아는가? 


供 : 송희옥과 대원군과의 증표가 있다면은 모르겠으나 스스로 자세한 것인즉 반드시 서로 관계가 없다. 

 

  

全捧準 四招問目 日領事問(제4차 심문과 진술)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三月 初七日(서기 1895년 3월 7일(음))

 

問 : 너의 이름이나 호가 하나 둘이 아닐터인데 몇 개인가? 


供 : 전봉준 하나 뿐이다. 


問 : 전명숙은 누구의 이름인가? 


供 : 나의 자이다. 


問 : 전녹두는 누구인가? 


供 : 세상 사람들이 가리키는 이름이지 내가 지은 이름은 아니다. 


問 : 너는 별호가 있는가? 


供 : 없다. 


問 : 이외 별호 몇 소자의 칭호가 없는가? 


供 : 없다. 


問 : 네가 매양 사람에게 글을 써 붙일 때는 이름으로 쓰는가? 자로써 쓰는가? 


供 : 이름으로 쓴다. 


問 : 네가 작년 10월 재기의 일자는 어느 날인가? 


供 : 10월 12일간 같은데 잘 모르겠다. 


問 : 삼례재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供 : 내 집에 있었다. 


問 : 너는 전주에서 초토병과 접전하고 해산한 후 어디로 향하였는가? 


供 : 10여읍을 들러 귀화하라 권하고 곧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問 : 전주로부터 해산한 것은 어느 날인가? 


供 : 5월 초 7-8일이다. 


問 : 전주에서 해산한 후 처음 이른 읍은 곧 어느 읍인가? 


供 : 처음 금구로부터 김제. 태인 등지에 이르렀다. 


問 : 처음 금구로부터 이른 것은 어느 날인가? 


供 : 금구에는 곧 잠간 지나는 길에 거쳤고 5월 초 7.8일간 김제에 이르고 초 10일간에 태인에 이르렀다. 


問 : 태인에 이르른 후 거친 고을은 어느 고을인가? 


供 : 장성.담양.순창.옥과.남원.창평.순천.운봉을 거쳐 그 후 내 집으로 돌아왔다. 


問 : 집으로 돌아온 것은 몇월 몇일인가? 


供 : 7월 그믐, 8월 초간이다. 


問 : 열읍을 돌아다닐 때 네 혼자 이던가? 동행자가 있었던가? 


供 : 기솔 아울러 20여명이 있었다. 


問 : 그때 최경선도 동행하였나? 


供 : 그렇다. 


問 : 손화중도 역시 동행하였나? 


供 : 손은 동행하지 않았다. 


問 : 전주 해산 후 손화중은 어느 곳으로 향하였던가? 


供 : 그 때 손은 우도 열읍을 돌아다니면서 귀하를 권하였다. 


問 : 손이 전주에서 해산한 것은 너와 더불어 같은 날인가? 


供 : 그렇다. 


問 : 전주로부터 해산하고 너는 손을 보지 못하였는가? 


供 : 4-5개월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였다. 


問 : 4-5개월 후 어데서 만났는가? 


供 : 8월 그믐 경 순상의 명령을 띄고 먼저 나주로 가 민보의 해산을 권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성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만났다. 


問 : 손과는 만난 후에 의논한 적이 있는가? 


供 : 그때 나는 이르기를 [순상으로부터 별도로 부탁받은 바가 있으니 같이 영문에 갔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의논을 하였다. 


問 : 그런즉 손은 어떠한 말로 대답하던가? 


供 : 지금 병중에 있으므로 같이 갈 수가 없으니 병이 완쾌되는 것을 기다려 뒤따라 가겠다고 말했다. 


問 : 이외 다른 것을 의논한 바는 없었는가? 


供 : 그렇다. 


問 : 일병의 범궐은 언제 어느 곳에서 들었는가? 


供 : 7월경 남원땅에서 들었다. 


問 : 그런즉 열 읍을 돌아다니고 귀화할 때 이 소리를 들었는가? 


供 : 이는 도청도설에 의한 것이다. 


問 : 이 소리를 들은 후 군중을 일으켜 일본을 치는 일을 비로소 의논한 것이 어느 곳이던가? 


供 : 삼례역이다. 


問 : 특히 삼례역에서 이 일을 의논한 것은? 


供 : 전주부 외에 주막이 얼마간 많은 것이 삼례 같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問 : 삼례에 이르기 전에는 혹 도회지가 없는가? 


供 : 원평에 이르러 하루 밤 묶고 곧 삼례에 이르렀다. 


問 : 집으로부터 처음 출발한 날은 언제인가? 


供 : 10월 초순경이다. 


問 : 네가 삼례로 행할 때 동행자는 누가 있었던가? 


供 : 없었다. 


問 : 길을 가던 중 만난 사람도 없었는가? 


供 : 없었다. 


問 : 그때 최경선은 동행하지 않았던가? 


供 : 최는 추후에 왔었다. 


問 : 삼례에 이르러 누구 집에서 모였는가? 


供 : 주막에서 모였다. 


問 : 삼례 땅에는 본래 친구의 집이 있었는가? 


供 : 처음에는 친한 친구가 없었다. 


問 : 삼례의 호수(戶數)는 얼마나 되었던가? 


供 : 1백여 호이다. 


問 : 네가 사는 근처에도 반드시 1백여호의 촌장이 없지 않을 터인데 특히 이곳에 모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이 땅은 도로가 사방으로 통했고 겸하여 역촌이기 때문이다. 


問 : 최가 삼례에 이른 후 며칠이나 같이 유숙했는가? 


供 : 5-6일 머문 후 곧 광주 나주로 향했다. 


問 : 무엇 때문에 광주 나주로 향하였는가? 


供 : 기포의 일 때문이었다. 


問 : 최의 광주 나주에 간 것은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내가 시킨 것은 아니다. 그가 광주. 나주지방에는 많은 친지가 있어 기포하는데 용이했기 때문이다. 


問 : 삼례도회 때 동학도의 가장 저명한 자는 누구인가? 


供 : 금구의 조진구 전주의 송일두 최대봉 몇 사람이 가장 저명한 자였으나 그 나머지 허다한 사람은 지금 다 기억하기가 어렵다. 


問 : 그때 삼례에서 소위 의병으로 모인 자는 얼마나 되었던가? 


供 : 4천여 명이다. 


問 : 이들 군중을 거느리고 처음 어느 곳으로 향하였는가? 


供 : 처음 은진, 논산으로 향하였다. 


問 : 논산에 도착한 날은 언제인가? 


供 : 지금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10월 그믐쯤 될 것이다. 


問 : 논산에 이르러 어떠한 일을 했는가? 


供 : 논산에 이른 후 역시 널리 군을 모집하는 일을 했다. 


問 : 이곳으로부터 다시 어디로 향하였는가? 


供: 공주로 직행했었다. 


供 : 그 달 초 6∼7일쯤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問 : 공주에 이른 후에는 무슨 일을 하였는가? 


供 : 공주에 이르지 못하고 접전하여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問 : 네가 사람들에게 글을 부칠 때는 언제나 친서로서 하는가 아니면 대서인가? 


供 : 때로는 친서로 하고 때로는 대서로 한다. 


問 : 혹 대서 시에는 꼭 너의 도장을 찍었는가? 


供 : 피봉에는 도장을 찍을 때가 많으나 대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이 있다. 


問 : 네가 삼례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부친 글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친서인가? 대서인가? 


그리고 대서로 할 때는 너의 도장을 찍었는가? 


供 : 모두 통지문으로 부치고 사간은 하지 않았으나 오직 손화중한테 부친 글은 있다. 


問 : 처음 한자도 사간으로써 사람에게 부친 글이 없었는가? 


供 : 만약 그 서간을 보면 알 수가 있으나 지금은 자세히 모르겠다. 


問 : (영사가 서간을 내어 보이면서)이것은 네 친선인가 대서인가? 


供 : 대서이다 


問 : 누구를 시켜서 대서했는가? 


供 : 접주의 필적인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사람을 자세히 모르겠다. 


問 : 너는 일찍이 최경선으로 하여금 대서케 한 일이 있는가? 


供 : 최는 글에 능숙한 자가 아니다. 


問 : 이 편지는 삼례로부터 낸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이 편지의 년 월 일은 분명히 9월 18일인데 인데 어찌 10월 삼례로 나와서 모였다고 하는가? 


供 : 전에 10월이라고 말한 것은 9월인 것 같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내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네 친서인가 대서인가? 


供 : 이것도 역시 대서이다. 


問 : 그 편지는 누가 대리로 쓴 것인가? 


供 : 이것 역시 접주를 시켜 썼으나 지금은 그 사람을 기억하기 어렵다. 


問 : 오늘의 진술을 너는 솔직히 고하라 그런 연후에야 안이 속결될 것이다. 여러 가지로 속여 고하면 일이 괴롭고 싫증만 날 뿐 역시 너의 자신에게도 많은 해가 있을 것이다. 


供 : 월.일은 과연 자세히 기억하기 어려우나 그 나머지는 무릇 관계한 것을 어찌 조금이라도 속여 고했다 하겠는가? 


問 : 대서를 할 때에는 어찌 반드시 소정의 사람이 있을 터인데 어찌 몰라서 되겠는가? 


供 : 그 때 나는 졸필이라 매양 사람으로 하여금 대서케 했으나 본래 정해진 사람은 없다. 


問 : 이 두 편지는 모두 다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삼례의 규합은 모두 너로부터 나왔는가? 


供 : 그렇다. 


問 : 그러면 모든 기포에 관한 것은 모두 네가 주모했는가? 


供 : 그렇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것도 역시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것도 역시 네가 시킨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전날 진술한 바 너는 김개남과 상관없다 했는데 지금 이 편지를 본즉 두 사람 사이에 상관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떠한가? 


供 : 김은 내가 왕사에 합력하자고 권하였으나 끝끝내 들어주지 않는 고로 비로소 상의한 바 있으나 마침내는 끊고 상관하지 않았다. 


問 : (영사가 또 하나의 편지를 보이면서)이 두 종이의 필법은 한 사람의 붓인데 앞은 글은 네가 했다고 진술하고 지금의 것은 어떻게 하여 모른다고 하는가? 


供 : 지금 이 글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問 : 아까 말하기를 삼례의 일은 모두 너로부터 나왔다. 하였는데 지금 녹편을 보이자 그렇지 않다니 실로 모호하구나. 


供 : 녹편중 서학이라고 한 것은 서병학을 말하는 것인데 서병학은 이미 나와 더불어 끊어져 왕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가 시킨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問 : 동학도 가운데 접주를 차출하는 것은 누가 하는가? 


供 : 모두 최법헌이 한다. 


問 : 네가 접주가 된 것도 역시 최가 차출하였는가? 


供 : 그렇다. 


問 : 동학접주는 모두 최가 낸 것인가? 


供 : 그렇다. 


問 : 호남과 호서가 전부 같은가? 


供 : 그렇다. 


問 : 도집. 집강의 임명 같은 것도 전부 최가 차출하는가? 


供 : 비록 최로부터 많이 나오나 때로는 접주들이 차출하기도 한다.  

 


全捧準 五次問目 日領事問 

(제5차 심문과 진술·일본영사 심문) 

* 이하 심문은 일본 영사가 물은 것이다. 


乙未 三月 初十日(서기 1895년 3월 10일(음))

 

問 : 오늘도 전과 같이 사실을 조사할테니 숨기지 말고 바르게 들어라. 


供 : 잘 알았다. 


問 : 작년 9월 삼례에 있을 때 별도로 대서인이 없고 접주 중에서 바꾸어 가면서 썼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供 : 별도로 대서인은 없으나 접주에서 바꾸어 가면서 이를 썼다. 처음 임오남으로 하여금 이를 쓰게 하였으나 그가 무식하므로 이를 두고 또 김동섭으로 하여금 잠시 쓰게 하였다. 


問 : 대서인은 오직 김동섭, 임오남 두 사람뿐인가? 아닌가? 


供 : 접주 가운데 문계팔. 최대봉. 조진구가 혹 대서하였으나 몇 차례의 편지를 쓴데 불과하다. 


問 : 너는 최경선과 서로 친한 것이 몇 년이나 되는가? 


供 : 동향이므로 서로 친한 것이 5∼6년이 된다. 


問 : 일찍이 최가 너에게 상사의 분이 있는가? 없는가? 


供 : 다만 친구로서 상종할 뿐이지 가르침을 받는 일은 없었다. 


問 : 너의 진술이 부실한 곳이 있는 것 같은데 공연히 재판을 끌고 또 네게 해가 없을터인데 무엇 때문에 이같이 하는가? 


供 : 별로 정상을 속인 것은 없으나 일전 송희옥의 일로 잠시 숨겼으나 다시 명백히 말하였다. 


問 : (하나의 종이를 내어 보이면서)이는 너의 친필이 아닌가? 정상을 속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供 :이미 나의 것은 진술하였다. 글은 나의 글이나 필적으로 말하면 나의 필적이 아니다. 어찌 나에게 유익한 것이 있어서 속이겠는가? 과연 내가 쓴 것이 아니다. 


問 : 최경선의 진술로는 이것은 너의 필적이라고 하는데 너는 아니라고 말하니 어찌 정상을 속인 것이 아닌가? 


供 : 다시 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또 습자를 시켜보면 필체의 획은 가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問 : 일전 너를 심문할 때 너는 삼례에 있을 때 서기라는 명색이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서기라는 명백이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供 : 앞서는 대략 말하였던 것이고 지금은 상세히 이를 묻는 고로 그때 잠시 대서한 것을 서기라고 말하였다. 


이상이 법무아문 재판관(法務衙門 裁判官)과 일본영사(日本領事)가 심문(주로 日本領事)한 진술의 내용이다. 모두 275개 문항이다. 


제3차 심문부터는 어디까지나 전봉준(全琫準)과 대원군(大院君)과의 관계를 캐내려고 파고들었으며 또 전봉준의 가까운 심복을 알려고 애썼다. 


그러나 전봉준은 대원군과의 관계를 전적으로 부인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건들을 직면할 대마다 책임을 자기 동료들에게 돌리지 않고 전봉준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지려고 애쓴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상 5차 공초기록(供招記錄)에서 갑오동학혁명(甲午東學革命)의 성격을 비롯하여 동학교(東學敎)와의 관계도 짐작할 수 있다. 

  


판결문  

제삼십칠호(일팔구오년삼월십구일) 선고문 


::: 판결선언서 (원문) ::: 


전라도 태인 산외면 동곡 거 농업 평민 


피고 전봉준 년 사십일 


우기자는 전봉준을 대하여 형사피고사건을 심문(審問)하여 본 즉 피고난 동학당이라 칭하고 부도의 거두 접주라 부르고 개국 오백일년 정월에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이가 처음 도임하여 자못 학정을 행하매 해지방인등이 병고를 견디지 못하고 익년 십일, 이월분에 군수를 향하여 기구정을 고쳐달라하고 애간(哀懇)하였더니 비단 소원을 이루지 못할뿐더러 두루혀 다 잡히고 옥(獄)에 갓치고 그 후에도 수삼차 청원하였건마난 즉시 물리치고 호발(毫髮)도 효험이 없난 고로 인민 등은 매우 분하여 수 천명이 못되어 장차 거사(擧事)하여 할 때 피고도 맛참 그 무리에 드러 드듸여 중인이 밀려 접주(接主)로 삼아 작년(昨年) 삼월상순(三月上旬)에 영솔기도(領率基徒)하여 고부(古阜) 외촌(外村) 창고(倉庫)를 헐고 전곡(錢穀)을 빼셔 진수(盡數)히 인민을 배급(排給)하고 일, 이처에 작경(作梗)한 후 한 번 해산(解散)하였으나 기후 안핵사(按 使) 장흥부사(長興府使) 이용태가 고부로 드러와서 몬져 작경하거슨 다 동학당의 소위라 하고 동학수도하난 자를 잡아 살육(殺戮)을 과히 하므로 이에 피고난 다시 기도를 규합하여 모집(募集)하되 만일 불응자(不應者)난 불충불의(不忠不義)된 사람이니 반드시 벌을 주리라 하고 다른 사람을 협박(脅迫)하여 기도 사천여명(四千餘名)을 어더가지고 각기 소유한 흉기(凶器)를 가지고 양식(糧食)은 기지방 부민에게 징봉(徵捧)하여 시년 사월 상순분(上旬分)에 피고가 친히 기도를 영솔(領率)하여 전라도 무장(茂長)의셔 니러라 고부(古阜), 태인(泰仁), 원평(院坪), 금구(金溝), 등처(等處)를 갈새 전라감영 포군(砲軍) 일만여명(一萬餘名)이 동도(東徒)를 치러 온단 말을 듣고 한 번 고부(古阜)로 몰려 갔다가 하루 밤낮을 접전 후 영문포군(營問砲軍)을 파하고 전진하여 정읍(井邑), 흥덕(興德), 고창(高敞), 무장(茂長), 영광(靈光), 함평(咸平)을 지나 장성(長城)을 니르니 경군 칠백여명을 만나 또 격파(擊破)하고 화야겸행( 夜兼行)으로 행차하여 사월 이십육, 칠일게 관군보담 몬져 전주성을 드러가니 기시(其時) 전라감사는 임이 도망하여 간 곳슬 모르거날 기익일(其翌日)의 다더러 초토사(招討使) 홍재희가 군사를 다리고 성하의 박도(迫到)하여 성밧거셔 거포(巨砲)를 놋코, 공격(攻擊)하기로 피고가 기도(其徒) 더부러 응전(應戰)하여 쟈못 관군을 괴롭게 하니라. 


이에 초토사가 격문(檄文)을 지어 성중으로 던지고 피고 등의 소원을 드러줄터이니 속히 해산하라 효칙(曉飭)하엿난대 피고 등이 곳 전운소핵파사(戰運所革罷事), 국결부위가사(國結不爲加事), 금보부상인작폐사(禁褓負商人作弊事), 도내 환전구백위봉거(還錢舊伯爲捧去) 즉부득재징어민간사(則部得再徵於民間事), 대동상납전각포구잠상무미금단사(大同上納前各浦口潛商貿米禁斷事), 동포전매호춘이양식정전사(洞布錢每戶春秋二兩式定錢事), 탐관오리병파출사(貪官汚吏竝罷黜事), 옹폐상층매관매작조국권지인일병축출사(雍蔽上聰賣官賣爵操國權之人一竝逐出事), 위관장자부득입장어해경내차부위매답사(爲官長者不得入蔣於該境內且不爲買沓事), 전세의전사(田稅依前事), 연호잡역감성사(煙戶雜役減省事), 포구어람세혁파사(浦口魚籃稅革罷事), 보세급관답물시사(洑稅及官沓勿施事), 각읍졸하래민인산지륵표투장물시사(各邑 下來民人山地勒標偸葬勿施事). 이십칠수목(二十七脩目)을 내여 가지고 상주(上奏)하기로 청하였더니 초토사(招討使)가 즉시 承諾한 고로 동년(同年) 오월(五月) 초오(初五), 육일(六日)께 쾌히 그 무리를 해산(解散)하여, 삼례역(三禮驛)을 니르러 그곳으로 기병(起兵) 각기(各其) 취업(就業)하게 하고 또 기시에 피고난 최경선(崔景善) 이하(以下) 이십여명(二十餘名)을 다리고 전주로부터 금구(金溝), 금제(金堤), 태인(泰仁), 장성(長城), 순창(淳昌), 옥과(玉果), 창평(昌平), 순천(順川), 남원(南原), 운봉(雲峰) 등 각처를 열력(閱歷) 유설(遊說), 하여 칠월하순(七月下旬) 태인(泰仁) 제집으로 귀거(歸去)하니라. 기후(其後) 피고난 일본(日本) 군대(軍隊)가 대궐(大闕)로 드러갓단 말듯고 필시 일본인이 아국(我國)을 병합(倂合)코저 한난 뜻신 줄 알고 일본병(日本兵)을 쳐물리고 기거유민(其居留民)을 국외(國外)로 구축(驅逐)할 마음으로 다시 기병(起兵)을 도모(圖謀)하여 전주(全州) 근처(近處) 삼례역(三禮驛)이 토지(土地) 광활(廣闊)하고 전라도(全羅道) 요충지지(要衝地之地)기로 동년(同年) 구월분(九月分)에 태인(泰仁)을 발정(發程) 원평(院坪)을 지나 대도소(大都所)로 삼고 진안거(鎭安居) 동학접주(東學接主) 文季八(文季八), 김영동(金永東), 이종태(李宗泰), 금구거접주 조준구(金溝居接主 趙駿九), 전주거접주 최대봉(全州居接主 崔大奉), 송목두(宋目斗), 정읍거(井邑居), 손여옥(孫汝玉), 부안거(扶安居), 김석윤(金錫允), 김여중(金汝中), 최경선(崔慶善), 송희옥(宋喜玉), 등과 동모(同謀)하여 상년삼월이후(上年三月以後) 피고(被告)와 동사(同事)한 비도거괴(匪徒巨魁) 손화중(孫化仲) 이하(以下) 전주(全州), 진안(鎭安), 흥덕(興德), 무장(茂長), 고창(高敞) 등처(等處) 원근(遠近) 각지방(各地方) 인민(人民) 더러 혹(或) 격문(檄文)을 돌리며 혹(或) 전인(專人)하여 유설(遊說)하고 전라우도(全羅右道)의셔 군사(軍士)를 모흐기를 사천여명(四千餘名)이 되매 처처관아(處處官衙)의 드러가셔 군기(軍器)를 강탈(强奪)하고 또 각지방(各地方) 부민(富民) 한띄 전곡(錢 )을 징봉(徵捧)하여 삼례역(參禮驛)을 떠나가면서 도당(徒黨)을 모집(募集)하고 은진(恩津), 논산(論山)을 지나 당수만여명(黨數萬餘名)을 거느리고 동년(同年) 십월(十月) 이십육일(二十六日)쯤 충청도(忠淸道) 공주(公州)를 다다럿더니 일본병(日本兵)이 몬져 공주성(公州城)을 웅거(雄據)하여 잇기에 전후(前後) 이차접전(二次接戰)하여 보앗건마난 두 번 다 대패(大敗)하였는지라 그러나 피고(被告)난 더 일본병(日兵)을 치려 하였더니 일본병(日本兵)이 공주(公州)의 있셔 움직이지 안코 기간(其間)의 피고(被告) 포중(包中)이 점점(漸漸) 도산(逃散)하여 수습(收拾)치 못하게 되엿기로 부득이(不得已)하여 한번 고향(故鄕)으로 도라가 다시 모병(募兵)하여 전라도(全羅道)의셔 일병(日兵)을 막으려 하엿더니 응모자(應募者)가 없는 타스로 동모(同謀) 삼(三), 오인(五人)과 의논(議論)하고 각기(各其) 변복(變服)하여 가만이 경성(京城)으로 드러가 청탐(淸探)코져 하여 피고(被告)난 상인(商人)맨도를 하고 단신(單身)으로 상경차(上京次) 태인(泰仁)을 떠나 전라도(全羅道) 순창(淳昌)을 지날 새 민병(民兵)한대 잡힌 거시니라. 


우(右)에 기록(記錄)한 사실(事實)은 피고(被告)와 밋 기동모자(其同謀者) 손화중(孫化仲), 최경선(崔慶善) 등(等)이 자복(自服)한 공초(供招) 압수(押收)하나 증거문적(證據文籍)이 분명(分明)한지라. 


기소위(其所爲)는 대전회통형전중(大典會通刑中)의 군복기마작변관문자불대시참(軍服騎馬作變官門者不待時斬)이라 하난 율(律)을 조(照)하여 (處罪)할 거시니라 


우(右)에 이유(理由)로써 피고(被告) 전봉준(全琫準)을 사형(死刑)에 처(處)하노라. 



개국(開國) 오백사년(五百四年) 삼월(三月) 이십구일(二十九日) 


법무아문권설재판소선고(法務衙門說栽判所宣告) 


법무아문(法務衙門) 대신(大臣) 서 광 절(徐光節) 


협판(協辦) 이 재 정(李在正) 


참의(參議) 장 박(張 博) 


주사(主事) 김 기 조(金基肇) 


오 용 묵(吳容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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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풍류의 원형과 그 세계사적 의의  

서정록


1.

이땅의 조상들이 이루어냈던 아름다운 도, ‘풍류(風流)’는 지금도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 속에서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역사시대에 우리의 삶을 옭아맸던 국가와 계급과 물질의 길은 원래의 풍류의 모습을 왜곡시켰고, 오랫동안 우리문화에 덧씌워졌던 외래문화 또한 이땅의 풍류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종내는 이땅의 풍류의 원형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동안 풍류는 중국의 유불선(儒佛仙)의 영향 하에서 해석되어 왔다. 유불선이 들어온 후 이른바 그들의 장점을 취합해 ‘풍류’를 만들어 어리석은 민중을 교화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러한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중국으로부터 유불선이라는 학문다운 학문이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의 정신이 깨어났다는 말과 같다. 그동안 역사 교과서에서 이땅의 고대문화나 정신으로 유불선 이외의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으니 유불선이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문화다운 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이러한 해석은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중국에서 유불선이 전래되기 전에는 이땅에 문화랄 만한 것이 없었고, 유불선이 들어오면서 비로소 개화되었다는 시각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구려벽화를 보면 샤마니즘이 문화적으로 중심적 위치에 있었음이 드러난다. 즉 샤마니즘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무덤 내부의 공간이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의 공간에는 그에 상응하는 벽화들이 장식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견주어 유불선은 오히려 주변적이거나 부수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샤마니즘의 세계관이 뚜렷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백제, 신라, 그리고 고대 일본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유불선이 들어오기 전에는 이땅에 내놓을 만한 문화가 없었다는 식의 해석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치원 선생이 난랑비(鸞郞碑) 서문에서 ‘국유현묘지도, 왈풍류, 포함삼교 접화군생(國有玄妙之道, 曰風流, 包含三敎 接化羣生)’이라고 했을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유불선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이땅에는 현묘지도의 아름다운 풍류문화가 있었는데, 그것이 국가가 생기고 계급이 생기고 물질의 욕망이 생기면서, 그리고 중국의 유불선이 덧씌워지면서 그 아름다운 도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짧지만 함축이 많은 위의 문장을 대할 때면 왠지 그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그의 마음이 짙게 느껴지는 것이다. 



2.

우리민족은 그 어떤 민족보다도 영적인 민족이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의 유교정책 하에서 이땅의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받던 무당(샤만)들이 하루아침에 천한 하층민으로 전락한 상황에서도, 그리고 그때 이래로 그들의 사회적 활동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상황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나라보다도 샤만이 많다는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것은 이땅의 기층문화로서 샤마니즘이 갖는 뚜렷한 위치를 말해준다.이땅의 현재의 샤마니즘 현상이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의 샤마니즘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국가화, 계급화, 물질화의 길을 걸어온 우리역사와 함께 변화한데다, 기복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땅의 샤마니즘의 영적인 지혜가 모두 소진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이 시대의 과제는 이땅의 샤마니즘 현상을 비판하고 폄하하기보다는 그동안의 물질화하고 기복화의 길을 걸어온 샤마니즘 문화를 생명과 평화의 길로 거듭나도록, 그래서 이땅에 다시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인 지혜가 피어나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현실계와 영계가 시계의 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고 본다면, 영성에 대해서 말할 때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지적, 정신적, 문화적 현상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땅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삼국시대 이래 국가체계의 확대와 신분과 계급 제도, 그리고 물질적 욕망의 확대재생산의 구조를 발달시켜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현재 이땅의 샤마니즘 현상은 삼국시대는 물론이고, 국가와 계급과 물질의 욕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그 이전 시대의 샤마니즘 현상과는 많이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것이 현재의 샤마니즘 현상에서는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요소’를 전혀 볼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샤마니즘의 현상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변화해왔지만, 기본적으로 영혼을 중심으로 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가와 계급, 신분, 물질적 욕망 등과 같은 외부의 영향과 함께 샤마니즘 현상과 영성에 상당한 변이와 기복적 요소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 이런 이유로 이땅의 풍류의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데, 북미 인디언들과 시베리아의 일부 소수민족과 아프리카와 호주, 아메리카 등지의 제3세계의 원주민들의 영적인 삶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혀둔다.

  

따라서 이땅의 고대의 풍류문화를 이해하고자 할 때 부득이 국가와 계급과 물질의 욕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아무래도 이땅의 고대 풍류는 국가와 계급과 물질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기 전 이땅의 소박한 민중들이 지니고 있었던 순수한 영적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라 할 때는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의 샤마니즘 현상, 또는 가깝게는 전통시대의 북미 인디언들이나 일부 제3세계 민족들의 국가와 계급과 물질적 욕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적인 삶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3.

‘풍류’라는 용어는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 서문에 나타나기 전에 중국에서 먼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풍류’란 말의 의미를 둘러싸고 혼란이 있는데, 중국에서 풍류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 위진(魏晉)시대이다. 그때는 유교를 국교로 했던 한나라 이래로 중국에서 영적인 사고가 크게 위축된 시대였다. 유교와 노장에서는 영혼과 내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히 중국에서 샤만의 활동은 끊어지고, 그 빈틈을 방사(方士)들의 신선사상과 도교가 메우게 된다. 

이런 이유로 중국인들이 풍류라 할 때의 ‘풍(風)’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국풍(國風)’, ‘정풍(鄭風)’ 등의 예에서 보듯이, 노래와 가무, 시문을 뜻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풍류라 할 때 중국에서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시문(詩文)이나 주연, 가무를 즐기는 귀족적 향취 내지 북방민족들에게 쫓기는 신세를 한탄하고 은둔자적하며 음풍농월(吟風弄月)하던 청담(淸談), 현학(玄學)의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전자가 왕희지(王羲之)나 석숭(石崇) 등의 인물로 대표된다면, 후자는 완적(阮籍)이나 혜강(嵆康) 등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들 수 있다. 신은경, <풍류 - 동아시아 미학의 근원>, 보고사, 1999, 20쪽 이하; 孔繁, <魏晉玄談>, 遼寧敎育出版社, 1991.   


그에 반해 샤마니즘 문화를 토대로 하는 동북아의 풍류는 <바람 風, 흐를 流>, 즉 ‘바람과 물’의 영적인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이 한나라 이래로 영적인 사고를 부정하고, 인문주의적 경향을 발전시켜온 것과 달리 이땅의 문화는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성의 토대 위에서, 1)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살아있는 생명이며, 2)모든 존재는 영적으로 평등하고, 3)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4)서로 의존하며 살아가고, 5)각각의 존재는 모두 다 그 나름의 임무와 직분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사고는 북미 인디언과 제3세계 원주민들의 영성에 대한 이해에서 잘 드러난다.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말하는 풍류는 중국인들이 말하는 풍류와는 그 함의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무릇 중국의 풍류가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시문과 술과 가무로 그들의 답답한 심사를 푸는 문화라면, 이땅의 풍류는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를 토대로 몸과 마음과 영혼의 통합을 이루고, 일상의 삶에서 신성함을 찾으며, 주위의 다른 존재들과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근본적인 방식을 말하기 때문이다. 



4.

그렇다면 이땅의 풍류적 사고의 전제가 되는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사고란 무엇인가?

북유라시아와 북미 원주민들의 샤마니즘에서 샤만(또는 주술사)들은 영성에 대해서 대체로 다음과 같은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설명해왔다.북유라시아 원주민들의 영혼의 개념에 대해서는 Ivar Paulson, Die primitiven Seelenvorstellungen der nord-eurasischen Völker, Stockholm, 1958; Harva, Uno, The Mythology of All Races: Finno-Ugric, Siberian, 1964, pp.4-10 등에 정리되어 있으며,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영혼의 개념에 대해서는 Hultkrantz, Åke, Conceptions of the Soul Among North American Indians, Stockholm: Caslon Press, 1953에 정리되어 있다. 민족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영혼, 또는 생명을 대체로 숨결, 피, 불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ㄱ.숨결

ㄴ.피(또는 물)



먼저 숨결을 보자. 

많은 아시아와 아메리카, 호주, 아프리카 등지의 원주민들의 창조신화를 보면 창조주가 이 세상을 창조할 때 만물을 만든 뒤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자, 비로소 살아있는 생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기독교의 창세기에도 전해진다. 

여기서 생명의 숨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람이다. 그 바람이 우리의 몸에 들고 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이 된다. 우리가 숨을 쉰다는 것은 곧 바람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인데, 나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다 숨을 쉰다는 것이 샤마니즘의 생명관이다. 말하자면 동식물은 물론 해님도, 달님도, 산도 강도, 심지어 우리가 무생물이라 치부하는 돌멩이까지도 숨을 쉰다고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고구려벽화에는 천정의 해와 달이 숨쉬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으며, 산이 춤을 추는 것이 표현되어 있다. 춤을 춘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고구려벽화에는 이처럼 모든 존재가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샤마니즘의 생명관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그런데 숨을 쉬는 동안 우리의 숨결은 주위의 다른 존재들의 숨결과 섞이게 되어 있다. 우리가 들이쉬는 숨결에는 다른 존재들의 숨결이 들어와 있고, 나의 숨결은 다른 존재들의 숨결에 갈마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존재들과 서로의 숨결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자연과 우주의 차원으로 확장하면 우리는 숨을 쉬는 동안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만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숨을 쉬는 행위를 통해서 모든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숨을 쉬는 이 작은 행위만으로도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생명은 하나’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몸을 도는 피는 어떤가. 고대인들은 피가 곧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상처가 나 피를 많이 흘리게 되면 생명을 잃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피는 물이다. 우리 몸의 70%가 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음식이나 음료수의 형태로 물을 섭취한다. 그리고 그 물은 신진대사를 통해 몸밖으로 분비, 또는 배출되며, 그것은 하천을 통해 바다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수증기가 되어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 우리는 그 물을 받아 마신다. 이렇게 우리의 몸을 드나드는 물은 단순히 들고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차원의 순환을 통해서 우리의 몸을 드나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물은 또한 다른 존재들의 몸을 넘나들게 되고, 결국 이 물의 순환과정을 통해서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물에 이러한 태도는 특별히 하와이인들의 사고에서 잘 나타난다. Michael Kioni Dudley, Man, Gods, and Nature, Honolulu, 1991, p.vii.  


우리의 숨결과 마찬가지로 물, 또는 피의 순환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렇게 모든 생명은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람과 물은 우리의 몸을 넘나들며 다른 존재들과 우리를 관계시키고, 서로 이어주며, 서로 의존관계에 있음을 알게 해준다. 고대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관통하여 흐르면서, 생명세계가 지속되도록 해주는 근원적인 에너지, 또는 생명력이 바로 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성을 설명하고자 할 때 그들은 그러한 근원적인 생명력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바람과 물을 비유로 들었던 것이다. 



5.

시베리아의 샤마니즘의 연속선상에 있는 북미 원주민들 또한 이와 동일한 사고를 갖고 있는데, 그들 역시 바람, 물, 영성은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Gregory Cajete, Look to the Mountain, 1994, p.178. 북미 원주민 전통에서 ‘모든 존재를 하나가 되게 해주는 구성요소는 바람과 물, 그리고 영성’이라고 말한다.  

특히 전통시대 북미 원주민들의 경우 아시아와 동북아의 샤마니즘이 물질화, 계급화, 국가화, 기복화의 길을 걸어온 것과 달리 고대의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인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데, 그들의 순수한 영적인 삶은 오늘날 영성운동에 관심을 가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서남부 인디언들과 나바호족은 바람이 생명의 숨결이 되어 우리 몸을 드나드는 것이 얼마나 영적인 것인가를 자세히 논하고 있다.James Kale McNeley, Holy Wind in Navajo Philosophy, Univ. of Arizona Press, 1981. 


그들은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가 춤을 춘다고 말한다. 나뭇가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나뭇가지가 노래한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 산의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을 두고 산이 춤을 춘다고 말한다. 시냇물이 흐르는 것을 긴 사람이 노래하고 춤춘다고 말한다. 그리고 창조주가 우리의 몸에 불어넣어준 생명의 숨결은 우리 몸 안에서는 생각이 되고, 밖에 나가서는 말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 마음의 근원이 바로 숨결임을 그들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과 물의 이런 영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호주 원주민이나 아프리카의 원주민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도 이런 바람과 물의 순환에 기초한 영적 이해를 엿볼 수 있는데, 마태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가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리라고 예언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가 회개하도록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발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마태복음 3:11).


이 문장에 나오는 ‘성령holy spirit’이란 말은 '성스러운 숨결holy breath'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를 번역한 말이다.Timothy Freke & Peter Gandy, The Jesus Mysteries, 1999, p.37. 참고로 세례란 바람과 물의 영성에 몸과 마음을 씫김으로써 거듭나게 하는 것으로, 영지주의전통에서는 재생, 환생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니고데모가 예수에게 “사람이 늙은 나이에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가 있습니까?” 하고 묻는 대목이 있는데, 이에 대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한다고 하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바람은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으니라(요한복음 3:5-8).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의 말은 정확히 ‘물과 바람’이다. 이때의 성령 역시 위의 세례요한의 경우처럼 성스러운 숨결의 그리스어에서 온 말인 것이다.위의 책, 같은 곳. 

따라서 우리는 초기 기독교의 영적 이해가 고대 샤마니즘의 영적 이해와 동일선상에 서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바람과 물에 대한 영적 이해는 초기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끼친 로마시대의 이교도와 영지주의적 전통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6.

바람과 물의 이러한 영적 특징을 북미 원주민들은 나선형, 또는 원의 상징을 통해서 설명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신성한 원(Medicine Wheel)’, ‘생명의 원(Circle of Life)’, '원안의 원(Circle in Circle)'이 그것이다. 의상과 각종 생활도구에 장식된 나선형 무늬, 또는 원을 통해서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면서 변화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구려벽화에서는 바람과 물이 나선형과 원의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데, 류운문(流雲紋) 형태의 각종 바람이나 구름, 물결, 햇살, 넝쿨, 화염  문양이 그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본인의 <백제금동대향로>(2001, 학고재)의 266쪽 이하를 참고할 것.   

특히 덕흥리고분, 쌍영총, 수산리고분, 삼실총 등에는 지상계와 천상계를 구분짓는 도리에 이러한 류운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바람과 물의 나선형, 원의 형태가 현상계(지상계)와 영계(천상계)의 경계를 나타냄을 뜻한다. 아무르강의 소수민족들은 이러한 나선형, 원의 무늬를 건축물의 기둥과 도리, 각종 생활도구 등에 장식하는데, 이는 이러한 무늬가 일종의 기도, 또는 주술적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Lopatin, Ivan A., The Goldy of the Amur, the Ussuri, and the Sungari, Vladivostok, 1922, pp.331-347; 같은 이의 The Cult of the Dead Among the Natives of the Amur Basin, Mouton & Co., 1960, p.23. 


흥미롭게도 고구려벽화의 이러한 류운문은 당시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선비족의 경우 외에는 중국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한나라 이래 유교적 사고가 지배하면서 영적 사고가 결여된 중국문화의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참고로, 중국에서는 한나라 초기까지만 해도 고구려벽화와 유사한 승천신화를 갖고 있던 강남의 초나라 등지에서는 무덤의 관과 각종 장신구에 류운문을 장식했었다. 그러나 한나라 이후 이러한 류운문 장식은 급속히 소멸한다. 

그에 견주어 나선형 형태의 류운문은 삼국시대의 각종 금동관이나 금동신발 등의 유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에 바람과 물로 상징되는 풍류적 사고가 이땅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7.

바람과 물의 영적 의미를 상징화한 이러한 나선형, 원의 도상은 샤마니즘에 기초한 티벳 불교의 만달라에서도 확인된다. 티벳 불교의 만달라는 원과 사각형을 기조로 복잡하게 짜여져 있는데, 티벳의 만달라가 이처럼 복잡한 형태로 발전한 이유는 인도의 초기 만달라 위에 점차 형이상학화, 존재론화한 불교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Tucci, Giuseppe, The Theory and Practice of the Mandala, Dover, 1961. 

그런데 그들이 만달라 도상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가르침은 실제로는 나선형, 원으로 상징되는 바람과 물의 영적 이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원이라는 것은 그 위에 무수한 점이 있다고 하면, 그 각각의 점은 원에 의존하고, 원은 각각의 점에 의존한다. 이렇게 원 위의 점들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다른 점들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게 각각의 점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시작인 동시에 끝이 된다. 이렇게 원 위에서는 시작도 끝도 없이 돌아간다. 뿐만 아니라 원 위의 점들은 높낮이 없이 모두 평등하다. 그와 함께 각각의 점은 중심이 되며, 주인의 자리가 된다. 이것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중심이며 주인의 위치에 있는 것과 같다. 어디 그뿐인가. 원이 우주의 만물을 상징한다면 원의 모든 존재를 관통해서 흐르는 생명력은 신이 되고, 그 신은 다시 각각의 존재에 내재해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이 북미 원주민들의 원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히 티벳 불교의 만달라에 대한 핵심적 통찰에 해당한다. 


그런데 바람과 물의 영성을 상징하는 이러한 나선형과 원의 문양, 또는 도상들은 고대의 샤마니즘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유럽의 고대민족인 켈트족의 나선형 장식무늬가 그러하며,Nordenfalk, Carl, Celtic and Anglo-Sacon Painting, George Braziller, 1977 

아무르강 중하류 지역에 거주하는 고아시아족 - 나나이족, 니브흐족, 울치족, 우데헤족, 네기달족 등이 그러하며,Laufer, Berthold, The Decorative Art of the Amur Tribes, Memoirs of the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Volume VII, Part I., The Knickerbocker Press, 1902. 

또한 북유라시아를 휩쓸던 스키타이-흉노족Aruz, Joan, et la(eds.),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0; 國立中央博物館, 스키타이 황금, 조선일보사, 1991. 

과 그들의 후예인 게르만-바이킹족의 나선형, 원의 도상이 그렇다. 또 샤마니즘 문화를 갖고 있는 제3세계 원주민들의 각종 의상에 장식된 무늬와 생활도구에 장식된 나선형, 원의 무늬들이 그렇다. 



8.

최치원 선생이 일찍이 <이땅에 아름다운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고 했던 풍류는 이와 같은 바람과 물의 영적 이해를 토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풍류도가 퇴락해가던 신라 말기에 그가 이와 같은 풍류에 대한 영적인 이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성에 바탕한 영적 지혜가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풍류의 인식론을 이른바 ‘접화군생(接化羣生)’이라는 말로 압축하고 있는데, 이 접화군생에 대해서 그동안 학자들은 ‘민중을 교화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바람과 물에 대한 영적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이러한 해석은 전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모든 행위가 서로 관계지어져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접화군생은 일상의 신성한 행위 또는 삶 속에서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며 뭇 생명들이 살아간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신라인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접화군생이라고 하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아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학자들은 왜 이 접화군생은 그리도 다르게 해석하는가! 그것은 이 개념에 접근하는 많은 이들이 유불선이 전래되기 훨씬 전부터 이땅에 존재했던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샤마니즘은 영혼을 중심으로 이 세상의 현상과 변화를 바라본다. 그런데 영혼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 때문에 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영적 세계를 어떻게 가시적으로 표현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바람과 물에 의한 영적 비유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이 접화군생의 의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놀랍게도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선생이다. 그는 시천주(侍天主)에 대한 설명으로 ‘시(侍)’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모신다는 것은 안으로 신성한 영(혼)이 있고, 밖에는 천지만물의 기화가 있으며, 세상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생명임을 아는 것이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여기서 안으로 신성한 영(혼)이 있고, 밖에는 천지만물의 기화가 있다는 <내유신령, 외유기화>는 곧 안으로는 신령한 영의 작용이 있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천지만물의 기화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내유신령, 외유기화>란 말은 모순된 말이다. 왜냐하면 ‘신령’이란 영(spirit), 또는 영혼을 말하는데 반해, ‘기화(氣化)’란 주자학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주자학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영, 또는 영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현상계 너머의 그 모든 작용을 이화(理化)로서 설명한다. 그것은 원리, 법칙을 말할 뿐 영혼을 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신령과 기화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런데도 양자를 함께 쓰고 있는 것이다.  

수운 선생 역시 이러한 이질적인 개념의 조합으로부터 생기는 문제점을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사상을 표현하고자 하나 기존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던 언어적 한계 때문에 부득이 그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들이 동학을 어려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내유신령, 외유기화> 속에 담긴 함의를 보지 못하고 문자에 얽매여 이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나 수운 선생이 <내유신령, 외유기화>라고 말함으로써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마디로 모신다는 것은 안에 있는 신성한 영의 작용이 밖으로 드러난 일상의 행위(氣化) 속에서 세상사람들이 모두 다 귀중한 생명임을 아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수운 선생의 이러한 시(侍)에 대한 이해는 정확히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이해를 갖고 있던 민중들의 지혜에 바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내유신령, 외유기화>는 <내유신령, 외유접화(內有神靈, 外有接化)>으로 푸는 것이 나았다고 생각된다. 기화를 접화군생에 나오는 ‘접화(接化)’로 푸는 것이 옳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기화(氣化)’는 신령과 양립할 수 없는 주자학적 개념인데다 자칫 유물론적 해석을 범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20세기초 천도교에서는 위의 <내유신령, 외유기화>의 개념을 물질의 발전에 따른 의식의 진화로 해석해왔는데, 이는 ‘기화’를 유물론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동학의 토대인 조선 민중의 지혜에 담긴 샤마니즘의 영적 이해를 놓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랬더라면 안으로는 영의 작용이 있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일상의 삶이라는 민중적 지혜를 오롯이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수운 선생이 신내림을 통해 깨달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왜 주자학의 ‘기화’가 아니라 샤마니즘의 영적 지혜를 배경으로 하는 ‘접화’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접화군생의 의미를 좀더 살펴보자. 

이 접화군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접화’와 ‘군생’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군생’은 뭇 생명이 살아간다는 의미이니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그렇다면 접화는 어떤가. 

먼저 ‘접(接)’‘접(接)’의 문자그대로의 의미는 ‘만남’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접신(接神), 접견(接見), 접물(接物), 영접(迎接), 대접(待接, 接待), 접촉(接觸) 등의 말이 여기에 든다. ‘연결’, ‘이음’ 등과 같은 접의 다른 의미들은 이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接, 交也’로 되어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이 무당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영들을 만날 때 사용하던 말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실제로 ‘신접(神接)’, 또는 ‘접신(接神)’이라 하면, 현상계와 영계의 만남, 또는 그 경계를 뜻한다. 무당들이 영을 접하는 것을 그리 표현했던 것이다. 또 우리가 흥이 났을 때, ‘신난다’. ‘신명이 난다’, ‘신이 오른다’는 등의 표현을 쓰는데, 이 또한 접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접은 현상계 너머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만나거나 그와 관계된 영적인 만남에 사용하던 말인 것이다. 


샤마니즘 현상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접의 성격은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또는 신이 오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 또한 정신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정신과 달리 우리의 몸이 세속적인 것이고, 그래서 신성함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몸은 신성한 영 또는 정신과 소통할 수 없을 것이고,이와 관련해서 하와이 원주민들의 문화를 연구하는 Michael Kioni Dudle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구지성사에서 정신과 물질은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되어 왔다. 신, 천사, 그리고 인간의 영혼만이 spirit를 갖고 있는 것으로 말해져왔다. 사람의 경우 생각하고 의지하는 것은 오직 영(spirit)이나 영혼뿐이라는 것이다. 자연히 신, 천사, 그리고 인간의 영혼 이외의 모든 존재들은 물질의 영역으로 떨어지고 만다. 한마디로 물질은 생각하고, 의지하거나 다른 형태의 앎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서구 사상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러한 분리와 구분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 한 가지는 인간의 생각하는 영혼이 어떻게 물질로 이루어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몸에 말을 전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물이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만일 우리의 몸이 생각할 수 없다면, 당연히 몸은 생각하는 영혼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와이인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질 또한 생각하고 의지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물질로 된 인간의 몸 자체가 의식을 갖고 있다고 보며, 그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의지력을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물질로 된 몸이 의식하고 그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다는 생각은 하와이인들이 그들의 행위를 설명하는 방식 - ‘발이 걷는다’, ‘귀가 듣는다’, ‘손이 집는다’ - 에서도 설명된다.” Michael Kioni Dudley, 앞의 책, pp.36-37. 

샤마니즘에서는 대체로 영혼을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free-soul이고, 다른 하나는 body-soul이 그것이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자를 말하며, 후자는 몸에 해당한다. 이렇게 몸 또한 영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고 봄으로써, 비로소 일상의 행위가 기도도 되고 종교도 되는 일상과 종교의 일치가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접신이나 신명과 같은 영적인 만남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의 영혼의 작용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우리의 일상의 삶이요 행위라는 것을 상기하면 사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함께 작용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서구식 교육을 받아 몸과 물질은 세속적인 것이고, 정신과 영혼은 신적이고 고귀한 것이라는 이원론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몸의 움직임에 영혼이 함께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몸과 영혼, 물질과 정신은 물과 기름처럼 다르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 또한 영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전통적인 샤마니즘의 영혼관이다. 우리의 몸은 그냥 body가 아니라 spiritual body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몸과 영혼의 분리를 허용치 않는 것이다. 몸과 영혼의 분리는 그 자체가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몸에 영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의 일상의 행위에는 신성함이 깃들게 된다. 우리가 하는 그 모든 행위가 단순한 세속적인 행위를 넘어 거룩하고 신성해질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거룩하고 신성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접이 일상의 삶 속에서 신성함을 찾는 행위, 즉 일상과 종교의 일치와 분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데,현대 과학자들은 우리의 정신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보는 듣는 정보들은 모두 상징에 불과하다고.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우리가 보는 대로 현상에 존재하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상(像, image)은 우리의 머리에서 재구성한 것일 뿐 실제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눈의 시지각은 망막에 맺힌 상을 전기로 바꾸어 뉴론을 통해 뇌에 전달하고, 뇌에서는 그 전기 신호들을 재구성해서 다시 영상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의 영상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에서 전기적 신호를 재구성해서 만들어낸 영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재와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상징이요 관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귀로 듣는 소리의 정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귀에서 외부의 소리를 디지털정보로 바꿔서 뇌로 보내면 뇌에서 이를 다시 재구성해서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듣는 소리는 실재가 아니라 상징이요 관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점은 냄새를 맡는 후각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점은 사건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TV를 통해서 보는 것이라든지 가수의 노래를 라디오로 청취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듣지만 TV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영상을 통해 정보를 얻고 이해를 하지만 그것은 정보일 뿐 현장과 실재는 아닌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일찍부터 알고 있던 북미 원주민들은 일종의 기도의 의미를 다양한 도상(圖像)의 문화를 발달시켰고, 이를 각종 의상과 천막, 생활도구 등에 장식했다. 그들은 실재와 상징 또는 실재와 관념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것은 오직 몸과 마음과 영혼이 일치된 일상의 행위 속에서 신성함을 찾을 때만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일상과 종교를 분리할 수 없다고 보았던 근본 소이다. 일상과 종교가 분리되면, 즉 우리가 몸으로 하는 일상의 행위가 정신이나 영혼과 분리되면 우리는 실재가 아닌 주관적 관념 속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구나 아시아권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었고, 상징과 관념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으로 몸을 통한 수련이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인도의 요가나 중국의 기공, 우리 선가 쪽의 수련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정보들이 상징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데 반해서 몸은 에너지를 통해 직접 만나고 접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몸을 통한 만남, 교류, 수련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한계가 극복될 수는 있겠지만, 일상과 종교의 분리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북미 인디언들이 일상 속에서 신성함을 찾는 행위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흔히 우리의 몸에는 빛과 온기의 생명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몸을 가지고 다른 존재나 대상과 관계한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이 생명의 에너지를 통해서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생명에너지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로 통합된,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에 다름아니며, 일상의 행위 속에서 신성함을 찾는 행위는 바로 이때만 가능한 것이다. 최치원 선생이 풍류를 말하면서 <접화군생>이라고 했을 때 ‘접(接)’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접의 이러한 성격은 모든 존재를 ‘모시라(侍)’는 말로 압축하고 있는 동학의 가르침처럼 우리에게 일상의 모든 행위가 신성하고 거룩해지도록 주위의 모든 존재를 공경하고 돌볼 것을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접은 먹고, 입고, 쓰는 일상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도 늘 기도하고, 감사하고, 되먹이라고 가르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은 다른 존재들이 자신의 귀중한 목숨을 우리에게 내어준 것이고, 우리가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행위는 폭력과 저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을 불균형과 부조화로 이끌 것이다. 일상 속에서 감사와 되먹임을 통한 살림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접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지식을 가지고 상대방을 교화하고, 가르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도, 풍류가 바람과 물의 영적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영적으로 평등하며, 다 존재이유와 이 세상에 나서 할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남을 교화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조상들과 제3세계의 원주민들은 말한다. 만남은 언제나 평등해야 하며, 오직 그때에만 평화가 있다고.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것은 동학에서 그들의 최소조직의 명칭에 접이란 말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때의 접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를 영접(迎接)하고 대접(待接)하고 접촉(接觸)하는 모든 행위가 신성한 행위임을 가리키기 위해 선택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접은 단순한 물리적 만남, 또는 관념적 만남이 아니라 영적인 만남, 즉 영혼과 영혼의 만남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말로 ‘관계의 정화(精華)’, 또는 ‘관계의 성화(聖化)’라 할 수 있으니, 접은 일상적 삶 속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나선형 춤을 통해 모든 존재를 그 중심에 이르게 하고, 신을 만나게 하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생명세계의 모든 존재는 춤을 춘다고 말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춤이라는 것이다. 에너지의 파동과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접은 이러한 생명에너지가 나선형 또는 원의 춤을 통해 그 중심에 이르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무한히 반복되는 원의 춤을 통해서 근원적인 에너지에 이르는 이슬람 수피교의 사마춤(또는 whirling dervish)에 비유된다. 북미 원주민들은 이러한 나선형 춤을 ‘뇌조의 춤’이라 말한다. 


이런 이유로 샤마니즘에서 접은 언제나 지금, 여기의 ‘현재’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데, 오직 그때에만 일상의 행위들 속에서 신성함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접화의 또 한 부분인 ‘화(化)’는 교화(敎化), 감화(感化), 변화(變化), 그리고 화육(化育) 등의 예에서 보듯이 변화와 성장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영적인 만남을 뜻하는 ‘접’과 변화, 성장을 가리키는 ‘화’를 합친 접화는 일상의 삶 속에서 신성함을 찾는 동안 사람들이 영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접의 개념과 동학에 나타난 민중적 지혜를 바탕으로 접화군생의 생략된 부분을 보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안으로는 영의 작용이 있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일상의 삶 속에서 신성함을 찾는 동안 영적으로 변화하며, 뭇 생명들이 살아간다. 

內有神靈, 外有接化. 羣生. 


여기서 일상의 신성한 행위라는 것은 나의 행위가 악이 되지 않고 거룩하게 되는 행위로,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늘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의 신성한 행위는 주위의 모든 존재들과의 균형과 조화로운 관계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꽃 한송이가 피려면 해도 비춰야 하고, 비도 내려야 하고, 바람도 불어야 하고, 별들도 비춰야 하고, 땅 속의 미생물들이 도와주어야 하고, 하다못해 지나가는 동물들이 아는 척이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꽃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온갖 부대낌과 시련과 고통과 기다림 속에서 어느 날 기적처럼 피는 것이다. 

결코 자기 혼자서 꽃을 피워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자연의 형제, 친척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그들의 도움 속에서 핀다는 것이다. 접화군생은 바로 그러한 관계 속에서 사람은 물론 동식물과 해와 달, 별, 산과 강,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존재를 공경하고, 그들과 균형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하나되는 가운데 영적으로 성장하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땅의 아름다운 도, 풍류는 이와같이 우리의 일상의 모든 행위 - 움직이고, 행동하고, 만나고, 관계맺고, 노래하고, 그림그리고, 사냥하고, 일하는 모든 행위, 숨쉬고 밥먹고 배설하고, 자고 일어나는 모든 행위가 신성한 행위가 되도록,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주위의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하나되고,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삶의 원리를 가리킨다.  



9.

이러한 풍류적 세계관에서 나의 행위는 나 개인의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모든 행위 - 나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 - 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돌고 돌아 결국 내게 돌아온다. 때문에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는 사적이고 이기적인 행위보다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존재를 위한 봉사와 헌신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풍류적 세계관에서 볼 때 이 세상의 생명에너지는 그 자체로는 선(善)도 악(惡)도 아니다. 마치 태양이 대지 위의 모든 존재에게 고루 비치고, 비가 대지 위의 모든 존재를 고루 적시듯이 생명에너지 자체에는 호불호가 없는 것이다.  

나의 행위는 결국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되는 것이다. 내가 자연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모든 존재와 더불어 하나되고 행복해지는 삶을 살아가는가, 아니면 자연의 순리를 거부하고, 물질을 탐하고 이기심을 발동하여 나만의 쾌락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이 말하는 풍류는 생명의 에너지를 모든 존재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모두가 더불어 하나가 되고 행복해지도록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거스르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풍파(風波)에 시달린다’고 했으니, 이는 곧 풍류의 길에서 벗어나 자연과 불균형과 부조화에 이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또한 이 세상의 생명에너지는 잠시도 그 자리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 물이 흐르듯이 부단히 흐른다. 그래서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이, 생명에너지는 끊임없이 변한다. 이것은 주위의 존재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른 존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때문에 우리는 늘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변화 속에서, 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풍류의 세계관, 이러한 삶의 태도를 최치원 선생은 유불선 삼교(儒佛仙 三敎)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안에 들어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주지와 같고, 무위로서 일을 하고 침묵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행을 멀리하고 착한 일을 행함은 석가의 교화와 같다.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여기서 ‘국가에 충성한다(忠於國)’는 것은 국가체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진흥왕 때 설치된 화랑제도는 국가체계 하의 호국사상(護國思想)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김대문의 <화랑세기(花郞世紀)>에서 화랑이 제사(祭祀)를 받들던 이들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나, 이때의 제사 또한 국가의 신궁이 설치되고 체계화된 뒤의 각종 의례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체계가 개입하면 영적인 순수한 삶은 어렵다. 이러한 사실은 영적인 순수한 삶을 살고 있는 시베리아 소수민족이나 제3세계, 또는 북미 원주민들이 여전히 부족공동체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확인된다. 만일 그들 사회에 국가체계가 개입한다면 그들의 영적인 순수한 삶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국가가 개입하기 전의 모습인 <밖에 나가서는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위해 봉사한다>로 고치는 것이 옳다. 

위의 인용문을 통해서 우리는 이땅의 조상들의 풍류적 삶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안에 들어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위해 봉사하고, 자연의 법을 거스르지 않고 무위의 삶을 살고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침묵을 사랑하고, 악행을 멀리하고 늘 선함을 위해 힘쓴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조상들의 풍류적 삶의 태도는 놀랍게도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전통시대 북미 원주민과 일부 제3세계 원주민들의 생태적이고 영적인 삶의 태도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이땅의 풍류가 샤마니즘 문화와 그 영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은 본문에서 밝힌 대로다. 그러나 개별 샤만의 치병이나 영적 의례와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 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의례와 제도는 구별되어야 한다. 전자는 샤만이 치병과 영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차원에서 행위가 이루어지나, 후자는 부락 내지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다양한 관계와 의례, 문화, 축제 등을 조직화하는 방식으로 샤만과 추장, 부족의 어르신 등 영적 지도자들로 구성된 <어르신들의 모임(Gathering of the Elders)>이 그 중심적 위치를 갖는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영성과 문화로서의 풍류는 주로 이 후자의 차원과 연결된다. 현재 그러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북미 원주민들과 중미의 콰테말라의 추투질 마야 부족, 그리고 일부 제3세계 원주민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최치원 선생이 난랑비 서문을 쓸 당시, 비록 국가화, 계급화, 물질화의 영향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 조상들이 고대 동북아에 면면이 전승되어 내려오던 샤마니즘의 순수한 영적인 지혜를 상당부분 들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10. 

서구의 자연과학이 이 세상을 지배한 이래로 오늘날 전세계의 전통문화와 원주민문화는 물질화되고, 상품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 결과 조상들의 아름다운 공동체적 삶과 영적인 지혜는 망실되고, 자연은 우리의 삶의 주요한 부분이 아니라 경제적 성장을 위한 물적 기반(환경)으로 전락해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거미줄같은 관계망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던 이땅의 아름다운 도를 잃어버린 채 갈수록 개인주의와 자아의 섬에 갇혀 가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은 19세기 중엽 동학이 태동되던 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이 잃어버렸던 풍류적 세계관 - 이 생명의 세계관, 친자연적 세계관을 바로 알고, 그것을 다시 세워, 자연을 살리고 모든 존재가 더불어 하나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생명과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보다도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풍류적 세계관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새로운 영성과 평화 운동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진로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국내의 생명평화 운동에 새로운 풍류적 인식론과 미학을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길을 제시하고 있으니,북미 원주민인 나바호족은 이러한 풍류의 세계관을 일컬어 ‘축복의 길’, ‘아름다운 길’이라 부른다. 그러한 축복의 길, 아름다운 길이야말로 나의 삶의 터전인 자연(또는 어머니 대지)과,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모든 존재가 하나되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 속에서는 일상의 삶이 곧 기도가 되고, 종교가 되고, 예술이 되고, 미학이 된다. 

바로 여기에 이땅의 풍류가 갖는 보편적이고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11.

1990년대 이래 서구의 대체의학계에서는 기존의 인식체계, 또한 인간을 몸과 마음과 감정, 정신으로 나누어 분석해오던 인식체계로는 온전한 인간이해와 치료에 한계를 갖고 있음을 인식하고, 기존의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적 틀이 아닌, holistic view를 통해서 인간의 몸과 마음, 감정, 정신을 하나의 에너지 체계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즉 ‘몸과 마음과 영혼은 하나’이며, 몸과 마음과 영혼에 대한 개별적 접근은 각기 다른 측면에서의 부분적인 설명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인간은 몸과 마음과 영혼의 총체적인 이해를 통해서만 그 참된 인격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서구의학 이외의 전통의학과 제3세계의 대체의학을 모두 묶어 ‘vibrational medicine’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Richard Gerber, Vibrational Medicine, Bear & Compant, 2001.  

이것은 오늘날 인류가 새로이 바람, 흐름, 결, 떨림의 인식론, 곧 바람과 물의 풍류적 인식론을 요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사) 생명과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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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동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동학이란 단어를 익숙하게 들어왔고, 또한 우리의 근대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진정 동학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옛날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학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학자의 자리에서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고작 밖에서 바라본 이의 피상적 이해에서 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이것은 동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학문 대상이 어떤 것이든 모든 영역에 두루 해당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 대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 대상이 되어본 후에 다시 학자의 자리로 돌아와 학자의 말을 하는 것이 더 깊은 이해와 균형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고는 이런 뜻에서 학인의 자리를 떠나, 동학 속으로 들어가 동학의 뇌로 생각하고, 동학의 심장으로 느끼며, 동학의 입술로 말을 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이들이 <동학>과 <人乃天>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학에 대해 백치에 가까우며, 전문 학자들도 동학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에 있어 빗겨서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듯 동학 속으로 들어가 동학이 되어보지 못하고 밖에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며, 더 근원적으로는 '文字之學'이 아닌 것을 문자지학으로만 해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동학은 <깨달음의 배움>입니다. 깨달음은 문자지학으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人乃天"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데, 인내천을 제대로 이해했으면 동학을 다 알았다 할 것이요,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동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서는 최제우, 최시형이 어떤 인물이며 또한 동학이 무엇인지, 그 가치가 어떠한지 전혀 알 수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동학은 본질적으로 깨달음의 길을 밝힌 깨달음의 도법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큰 유리컵이 하나 있다고 할 때, 유리컵 속에 허공과 유리컵 밖에 허공이 둘로 나뉘어 있지만, 이 유리컵이 깨어지면 <안의 허공/밖의 허공>이 하나의 허공이 됩니다. 이처럼 에고라는 경계로 '내 안의 마음'과 '나 아닌 나 밖에 있는 物의 마음'이 나뉘어 있지만, 에고에 묶인 我相이 깨어지면 <내 마음/物(천지)의 마음>이 하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유리컵의 안과 밖의 허공이 하나의 허공이 되었듯, 내 마음과 物(천지)의 마음이 하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면 내 마음이 바로 천지의 마음이 되고, 천지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 된 마음'을 불교에서는 一心이라고 하는데, 천지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기에 一切唯心造라 이르는 것이요, 소강절이 "마음이 바로 태극(우주만상)이다"라고 한 것도 모두 똑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동학에서는 與天地合其德이라 하거니와 또한 도가에서 이르는 物我一體의 진의 또한 이것이니 내가 천지와 합일을 이루었으니 아와 물의 비분리의 합일 상태이기에 無爲自然(함이 없이 절로 그러함)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합일을 이룬 이는 자아의 我心를 초월하여 천지의 마음(우주심)으로 살아가기에 늘 천리에 합일하는 성인이 됩니다. 바로 이것, <우주 만물과 내가 완전한 하나라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깨달음의 골자요,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된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며 무한 자비심과 조화의 마음이며, 진정한 중용의 참뜻이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아래 모든 깨달은 이의 공통된 메시지이며, 모든 깨달음의 경전의 똑같은 목소리입니다.


人乃天이라는 말도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나온 말로, 동학에서 말하는 하늘이란 천지만물, 우주, 하느님의 제유로 쓰인 말로, 모든 것이 하늘이라는 뜻은 모든 것이 분리가 되지 않는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신>의 경계를 넘어서고 <物/神>의 경계를 넘어서면 모든 것이 하나이기에 나, 아님이 없고 하늘(님)이 아닌 것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최시형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을 일러 "하늘이 하늘을 지고서 하늘을 먹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무궁한 울 속에 무궁한 나>! 이것이 신인합일의 깨침이며 이를 깨달은 이를 불가에서는 부처라 했고, 한국의 선가에서는 신선이라 하였습니다.


이렇듯 동학은 최제우와 최시형의 대각을 통한 위대한 성과(열반) 위에 나온 깨달음의 聖火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석가와 같은 레벨의 대철인이 우리의 근대사에 나와서 깨달음의 찬란한 빛을 밝혔지만, 우리는 고작 이들을 구한말 민족종교를 창시한 시시한 종교지도자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동학은 불가나 도가, 예수, 흰두교 등 세계 그 어느 깨달음의 말보다도 더 뛰어난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깨달음은 오직 하나이지만, 이 깨달음을 말로 펴는 경우 더 쉽고 절실하고 명료하게 말하는데 있어서는 차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른바 道可道(말로 표현한 도)로써 도가나 불교는 형이상학전이 면에 많이 치우쳐서 많은 오해와 왜곡을 낳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최치원이 [낭랑비서]에서 말했듯 우리나라의 고유의 도 풍류는 깨달음의 형이상학적인 면과 그것이 실생활에 적용된 형이하학적인 면을 고루 갖추고 있는데 우리는 그 고유의 선도의 진정한 면모를 동학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학이 참으로 놀라운 것은 형이상학적인 깨달음의 이치를 너무나도 쉽고 단순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힘차게 삶의 일상 속으로 가져온 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람을 하늘처럼 공경하라." 전 세계 그 어느 경전에서도 이처럼 명료하고 단순하게 실천의 논리로 깨달음과 삶을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시킨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동학은 위(上) 없는 깨달음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도가도에 있어서 궁극을 꿰어 더 없이 독특하며 또한 깊고 다채로워 오히려 깨달음의 宣揚에 있어 절정을 달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聖學, 우리는 여기서 동학이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와 함께 우리는 역사의 저울에 동학과 최제우, 최시형의 무게를 다시 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2. 동학의 씨를 뿌린 최제우

崔濟愚는 (1824 순조 24∼1864 고종 1) 崔옥의 외동아들로 10세에 어머니를 여이고 16세에 아버지마저 잃었습니다. 아버지 최옥은 당시 경주에서 덕망 있는 선비였으나, 과거에 출사하지 못하고 불우하게 초야에서 묻혀 살았다고 합니다. 멀리는 최치원의 후속이고 가까이는 7대조 최진립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혁혁한 공을 세워 병조판서의 벼슬과 정무공의 시호가 내려졌으나 그 이후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몰락한 양반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출세하지는 못하였으나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이 있었고 또 제자들이 문집([近庵集])을 만들어 줄 정도였으므로, 최제우의 성장기의 학문적 소양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찍 양 부모를 여이고 화재까지 겹쳐 그의 살림은 더욱 궁핍했으며, 당시 부패한 정치 상황에 출사할 뜻을 품지 못하고 젊어서부터 시대와 자신의 신세에 대해 심한 갈등을 가진 듯합니다. 20대 초부터 전국을 유람하며 견문을 넓혔는데, 당시 서구와 일제의 침입 등 갖은 혼란상을 목격하고 최제우의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 졌으며, 1856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도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일화가 있지만, 정확히 그가 어떤 수도방법을 통해 수도를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영가무도교의 김일부와 동문수학하였다 하였으니, 그런 이 수도에도 다소 영향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결정적으로 1860년에 자신의 교향인 용담정에서 49일의 수도 끝(道氣長存邪不入 世間衆人不同歸)에 대각을 이루니 이것이 동학이 발생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를 펴는 1861년부터 순교까지 고작 3년에 지나지 않음으로 그의 저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게 되어, 더 많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대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세상에 대한 원대한 구원의 뜻을 품은 그는 체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3.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동경대전] 최시형이 최제우 사후에 그의 글을 수습하여 엮은 책입니다. 분량이 매우 적어서 그의 사상의 면모를 폭넓게 살펴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동학의 기본 씨앗의 단편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論學文]에는 득도를 통해 천주의 접화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이 동학의 첫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일일이 들어 말지 않으므로 내 또한 두렵게 여겨 다만 늦게 태어난 것을 한탄할 뿐이었다. 바로 그 무렵에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접령 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신기한 말씀에 의한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나 보려 해도 보이지 아니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아니하므로 마음은 더욱 이상스럽기만 하였다. 이윽고 마음을 가다듬고 기운을 바로잡은 뒤에 "어찌하여 이처럼 저에게 나타나십니까?"라고 물었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를 어찌 알리오. 천지는 안다 해도 귀신은 알지 못하였으니 귀신이라는 것도 나니라. 너에게 무궁 무궁한 도를 미치게 하노니, 이를 닦고 다듬어서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擧此一一不已故 吾亦悚然 只有恨生晩之際 身多戰寒 外有接靈之氣 內有講話之敎 視之不見 聽之不聞 心尙怪訝 修心正氣而問曰 何爲若然也 曰 吾心卽汝心也 人何知之 知天地而無知鬼神 鬼神者 吾也 及汝無窮無窮之道 修而煉之 制其文敎人 正其法布德則 令汝長生 昭然于天下矣


오랜 수도의 여정을 통해 깨달음을 득하는 순간 天語를 듣게 되고 자신의 천명을 자각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동에서 나서 동에서 도를 받았으니, 도는 비록 천도라고 하지만 학인즉 동학이라. 하물며 땅이 동서로 나뉘었는데 서가 어찌 동이 되며, 동을 어찌 서라고 말하겠는가. 공자는 노나라에서 나서 추나라에 교화를 이루었으므로 추로의 풍화가 이 세상에 전하여졌다. 우리 도는 이 땅에서 받아 이 땅에서 폈으니 어찌 서학이라고 이름 하겠는가.


吾亦生於東 受於東 道雖天道 學則東學 況地分東西 西何謂東 東何謂西 孔子生於魯 風於鄒 鄒魯之風 傳遺於斯世 吾道 受於斯 布於斯 豈可謂以西名之者乎


동학의 이름을 정한 연유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서학에 대해 상대적인 의미로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난 우리의 도라는 자부심과 자주적 의지의 표현으로써 정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묻기를 "주문의 뜻은 무엇입니까?" 대답하기를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므로 주문이라 이르는 것이니, 지금 글에도 있고 옛 글에도 있는 것이니라." 묻기를 "강령의 글 뜻은 어떤 것입니까?" 대답하기를 至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오, 氣라는 것은 허령이 창창하여 모든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모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混元)한 한기운(一氣)이니라. 今至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至氣에 접하게 됨을 안다는 것이요, 願爲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뜻이오, 大降이라는 것은 氣化를 원하는 것이다.


侍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옮기지 못할 것임을 아는 것이오, 主라는 것은 존칭해서 부모와 같이 섬긴다는 것이오, 造化라는 것은 무위이화요, 定이라는 것은 그 덕에 합하고 그 마음을 정한다는 것이오, 永世라는 것은 사람의 평생이오, 不忘이라는 것은 생각을 보존한다는 뜻이오, 萬事라는 것은 수가 많은 것이오, 知라는 것은 그 도를 알아서 그 지혜를 받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밝고 밝은 그 덕을 늘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면 지기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지극한 성인에 까지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曰呪文之意 何也 曰至爲天主之字 故以呪言之 今文有 古文有 曰降靈之文 何爲其然也 曰至者 極焉之爲至 氣者 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 今至者 於斯入道知其氣接者也 願爲者 請祝之意也 大降者 氣化之願也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和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主者 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也 造化者 無爲而化也 定者 合其德定其心也 永世者 人之平生也 不忘者 存想之意也 萬事者 數之多也 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 故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동학의 수법인 주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글입니다. [시천주] "하느님이 내 안에 있어 조화를 이루니 영원토록 잊지 않아 만사가 절로 깨달아지도다.(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의 상세한 주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도법의 전부이고 이것이 깨달음을 얻어 천지와 합일하는 유일한 길임을 여러 글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길이라는 것을 이 같은 맥락에서도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산하의 큰 운수가 다 이 도에 돌아오니, 그 근원이 매우 깊고 그 이치가 심히 깊은 뜻을 지녔노라. 내 마음 속에 바른 기운이 있고 줏대가 떳떳해야, 우리 도의 참 진미를 알고, 오로지 하느님을 위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어야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되느니라. 나쁘고 옳지 못한 기운을 모두 떨쳐버리고 맑고 바른 기운을 , 하느님의 마음을 받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어린아이의 깨끗한 마음처럼 닦도록 하라. 우리 도를 행함의 바른 방법은, 오직 하느님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되어야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있느니라.


풍부하고 지혜로운 총명은, 자연 속에서 사는 신선의 마음에서 나오고, 밝은 지혜로 크게 이루는 모든 일은 오직 하느님의 바른 이치로 돌아가느니라. 남의 조그만 허물을, 나의 바른 마음에 두지 말 것이며, 나의 바른 마음의 작은 지혜일지라도, 남이 본받도록 베풀어주어라.


이와 같은 큰 도를, 사사로운 자신의 욕심을 위하는 작은 일로는 정성을 삼지 말 것이니라. 하느님을 도와 하느님의 덕을 펴는 일에 자신의 정성을 다하면 자연히 하느님의 도움이 있느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창조의 힘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모두 다르니, 하느님과의 약속을 굳게 지키고, 마음을 조급히 하지 말 것이로다. 그러면 공을 이루는 다른 날에 하느님과의 연분을 짓게 되느니라. 하느님의 마음은 본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어서 물건과 응하여도 자취가 없는 것이니라.


하느님의 바른 마음을 받아서, 그 마음을 닦아야 하느님의 무한한 베푸심인 덕을 알고, 그 덕이 오직 밝아야 하느니라. 오직 이것이 하느님의 올바른 가르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도는, 한 결 같이 하느님의 무한한 베푸심에 있으며 사람에게 있지 아니 하느니라. 우리의 도는, 하느님을 지극히 위하는 믿음에 있으며, 사람이 갖고 있는 재주에 있지 아니 하느니라. 우리의 도는 가까운데 있으며, 먼데 있지 아니 하느니라. 우리의 도는, 하느님을 위하는 지극한 정성에 있으며, 사람이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구하는데 있지 아니 하느니라.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런 것이고, 먼데 있는 것처럼 느껴 질 수도 있으나 절대 멀리 있지 아니 하도다.


간신히 한 가닥 길을 얻어서, 걷고 또 걸어 험하고 어려운 난관을 극복했도다. 산 넘어 산이 다시 나타나고, 물 건너 또 물을 만났도다. 다행히 물을 건너고, 간신히 산 너머 산을 넘어 왔도다. 넓은 들판에 거의 이르러 비로소 큰 길 있음을 알았노라.


봄소식을 몹시 기다려도 봄빛은 끝내 오지 않도다. 봄빛을 좋아하지 않음은 결코 아니나, 오지 아니하면 때가 아니로다. 이르러 올 계절이 되면 기다리지 않아도 자연히 오리라. 봄바람이 간밤에 불어와, 모든 나무들이 봄소식을 모두 알도다. 하루에 한 송이 꽃이 피고 이틀에 두 송이 꽃이 피고 삼백예순 날에 꽃송이 만발하도다. 한 몸이 다 꽃이요 온 집 안이 다 봄이로다.


병속에 신선의 술이 있으니 백만 사람을 살릴만하도다. 빚어 넣기는 천년 전인데, 쓸 곳을 대비하여 이를 간직하도다. 부질없이 봉한 뚜껑을 열면 향기는 흩어지고, 맛도 또한 희박해 지리라. 지금 우리 도를 위하는 사람들은 말조심하기를 이 술병같이 지켜야하느니라


山河大運盡歸此道其源極深其理甚遠固我心柱乃知道味一念在玆萬事如意消除濁氣兒養淑氣非徒心至惟在正心隱隱聰明仙出自然來頭百事同歸一理他人細過勿論我心我心小慧以施於人如斯大道勿誠小事臨勳盡料自然有助風雲大手隨其器局玄機不露勿爲心急功成他日好作仙緣心兮本虛應物無迹心修來而知德德惟明而是道在德不在於人在信不在於工在近不在於遠在誠不在於求不然而其然似遠而非遠

裳得一條路步步涉險難山外更見山水外又峯水幸渡水外水僅越山外山且到野廣處始覺有大道苦待春消息春光終不來非無春光好不來卽非時玆到當來節不待自然來春風吹去夜萬木一時知一日一花開二日二花開三百六十日三百六十開一身皆是花一家都是春甁中有仙酒可活百萬人釀出千年前藏之備用處無然一開封臭散味亦薄今我爲道者守口如此甁


최제우는 한문보다도 오히려 한글 가사를 널리 도를 알리고자 했는데 이는 서민과 부녀자와 아이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노력을 경주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하울님만 믿어서라

네 몸에 모셨으니

捨近取遠한단말가

나 역시 바라기는

한울님만 전혀 믿고

해몽 못한 너희들은

서책은 아주 폐코

수도하기 힘쓰기는

그도 또한 도덕이라

문장이고 도덕이고

歸於虛事 될가보다

열석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心學이라 하였으니

不忘其意 하여서라

현군자 될 것이니

도성덕립 못 미치까

이같이 쉬운 도를

자포자기 한다말가(...)

이 글보고 개과하여

날 본 듯이 수도하라

부대부대 이 글보고

남과 같이 하여서라. -[敎訓歌] 4절 일부


사상적인 면에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분량 면에서 {용담유사}가 더 많은 양을 차지할 뿐 아니라 민중적이고 정서적인 생생한 목소리는 가사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4. 동학을 열매 맺게 한 최시형

동학의 씨를 최제우가 뿌렸다면, 崔時亨(1827 순조27∼1898)은 동학의 열매를 찬란하게 거둔 이라 할 것입니다. 그는 최제우보다도 더 몰락한 집안이었고, 5세 때 어머니를,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게 되어 매우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최제우가 동학을 편 1861년에 동학에 입교하였고, 수도정진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63년에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전수 받아 동학의 2대 교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98년 72세의 나이로 순교하기까지 평생을 혹독한 고난 속에도 교세의 확장과 구국안민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입니다. '최보따리'라 불리우리 만치 그는 일생을 쫓겨 다니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지만 진리 빛을 밝히기 위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찬란한 혼불을 밝힌 다시없는 성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5. 동학의 성전 {해월신사 법설}

동학의 사상은 실로 {해월신사법설}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만큼 {해월신사법설}(총38장)은 동학사상의 골자를 담고 있는 동학의 찬란한 꽃이요 열매라 할 수 있는 경전입니다. 그 내용 중 일부 내용을 통해 동학의 사상적 특질을 살펴볼까 합니다.


밝게 분별하여 말하면 처음에 기운을 편 것은 이치요, 형상을 이룬 뒤에 움직이는 것은 기운이니, 기운은 곧 이치라 어찌 반드시 나누어져 둘이라 하겠는가. 기란 것은 조화의 원체 근본이요, 이치란 것은 조화의 현묘이니, 기운이 이치를 낳고 이치가 기운을 낳아 천지의 수를 이루고 만물의 이치가 되어 천지 대정수를 세운 것이니라.


明辨初宣氣理也 成形後運動氣也 氣則理也何必分而二之 氣者造化之元體根本也 理者造化之玄妙也 氣生理 理生氣 成天地之數 化萬物之理以 立天地大定數也


이 글은 동학의 이기론이라 할 수 있는 글로 이와 기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천지는 곧 부모요 부모는 곧 천지니, 천지부모는 일체니라. 부모의 포태가 곧 천지의 포태니, 지금 사람들은 다만 부모 포태의 이치만 알고 천지포태의 이치와 기운을 알지 못하느니라.


한울과 땅이 덮고 실었으니 덕이 아니고 무엇이며, 해와 달이 비치었으니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며, 만물이 화해 낳으니 천지이기의 조화가 아니 무엇인가.


천지는 만물의 아버지요 어머니이니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主란 것은 존칭하여 부모와 더불어 같이 섬기는 것이라'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예와 이제를 살펴보면 인사의 할 바니라' 하셨으니, '존칭하여 부모와 더불어 같이 섬긴다' 는 것은 옛 성인이 밝히지 못한 일이요 수운대선생님께서 비로소 창명하신 큰 도이니라. 지극한 덕이 아니면 누가 능히 알겠는가. 천지가 그 부모인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 오만년이 지나도록 오래 되었으니, 다 천지가 부모임을 알지 못하면 억조창생이 누가 능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봉양하는 도로써 공경스럽게 천지를 받들 것인가.


천지부모를 길이 모셔 잊지 않는 것을 깊은 물가에 이르듯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여, 지성으로 효도를 다하고 극진히 공경을 다하는 것은 사람의 자식 된 도리이니라. 그 아들과 딸 된 자가 부모를 공경치 아니하면, 부모가 크게 노하여 가장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벌을 내리나니, 경계하고 삼가라.


내가 부모 섬기는 이치를 어찌 다른 사람의 말을 기다려 억지로 할 것인가. 도무지 이것은 큰 운이 밝아지지 못한 까닭이요 부지런히 힘써서 착한데 이르지 못한 탓이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로다.


사람은 오행의 빼어난 기운이요 곡식은 오행의 으뜸가는 기운이니, 젖이란 것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곡식이요, 곡식이란 것은 천지의 젖이니라.


부모의 포태가 곧 천지의 포태니, 사람이 어렸을 때에 그 어머니 젖을 빠는 것은 곧 천지의 젖이요, 자라서 오곡을 먹는 것은 또한 천지의 젖이니라. 어려서 먹는 것이 어머님의 젖이 아니고 무엇이며, 자라서 먹는 것이 천지의 곡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젓과 곡식은 다 이것이 천지의 녹이니라.


사람이 천지의 녹인 줄을 알면 반드시 食告하는 이치를 알 것이요, 어머님의 젖으로 자란 줄을 알면 반드시 효도로 보양할 마음이 생길 것이니라. 식고는 반포의 이치요 은덕을 갚는 도리이니, 음식을 대하면 반드시 천지에 고하여 그 은덕을 잊지 않는 것이 근본이 되느니라.


어찌 홀로 사람만이 입고 사람만이 먹겠는가. 해도 역시 입고, 입고 달도 역시 먹고 먹느니라.


사람은 한울을 떠날 수 없고 한울은 사람을 떠날 수 없나니, 그러므로 사람의 한 호흡, 한 동정, 한 의식도 이는 서로 화하는 기틀이니라.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데 의지하나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데 있느니라.


사람은 밥에 의지하여 그 생성을 돕고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여 그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니라. 사람의 호흡과 동정과 굴신과 의식은 다 한울님 조화의 힘이니, 한울님과 사람이 서로 더부는 기틀은 잠깐이라도 떨어지지 못할 것이니라.


1. 天地卽父母父母卽天地天地父母一體也父母之胞胎卽天地之胞胎今人但知父母胞胎之理不知天地之胞胎之理氣也

2. 天地盖載非德而何也日月照臨非恩而何也萬物化生非天地理氣造化而何也

3. 天地萬物之父母也故經曰主者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也又曰察其古今則人事之所爲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前聖未發之事水雲大先生主始創之大道也非至德孰能知之不知天地其父母之理者五萬年久矣皆不知天地之父母則億兆蒼生孰能以孝養父母之道敬奉天地乎

4. 天地父母永侍不忘如臨深淵如履薄氷然至誠至孝極盡極敬人子之道理也爲其子女者不敬父母則父母大怒降罰於其最愛之子女戒之愼之

5. 吾事父母之理何待人言而强爲哉都是大運未明之故也勤勉不善之致也實是慨嘆之處也

6. 人是五行之秀氣也穀是五行之元氣也乳也者人身之穀也穀也者天地之乳也

7. 父母之胞胎卽天地之胞胎人之幼孩時唆其母乳卽天地之乳也長而食五穀亦是天地之乳也幼而哺者非母之乳而何也長而食者非天地之穀而何也乳與穀者是天地之祿也

8. 人知天地之祿則必知食告之理也知母之乳而長之則必生孝養之心也食告反哺之理也報恩之道也對食必告于天地不忘其恩爲本也

9. 何獨人衣人食乎日亦衣衣月亦食食

10. 人不離天天不離人故人之一呼吸一動靜一衣食是相與之機也

11. 天依人人依食萬事知食一碗

12. 人依食而資其生成天依人而現其造化人之呼吸動靜屈伸衣食皆天主造化之力天人相與之機須臾不可離也


2장 천지부모의 전문으로 동학 특유의 범신론적인 만물일체 사상과 조화와 공경 정신을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사람의 일동일정이 어찌 한울님의 시키는 바가 아니겠는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여 힘써 행하면 한울임이 감동하고 땅이 응하여 감히 통하게 되는 것은 한울님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人之一動一靜 豈非天地之所使乎 孜孜力行則天感地應 敢以遂通者 非天而何(3장 도결-12)


천지인은 도시 한 이치기운뿐이니라. 사람은 바로 한울 덩어리요, 한울은 바로 만물의 정기이니라. 푸르고 푸르게 위에 있어 일월성신이 걸려 있는 곳을 사람이 다 한울이라 하지마는, 나는 홀로 한울이라 하지 않노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나의 이 말을 깨닫지 못할 것이니라.


天地人都是一理氣而已人是天塊天是萬物之精也蒼蒼在上日月星辰所係者人皆謂之天吾獨不謂天也不知者不能覺斯言矣(4장 천지인-2)


사람의 일거일동이 하늘이며 오직, 하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천인합일의 사상을 피력하고 있는데 이것이 동학의 메시지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바로 한울이요 한울이 바로 사람이니, 사람 밖에 한울이 없고 한울 밖에 사람이 없느니라.


人是天 天是人 人外無天 天外無人(4장 천지인-7)


마음은 어느 곳에 있는가 한울에 있고, 한울은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마음이 곧 한울이요 한울이 곧 마음이니, 마음 밖에 한울이 없고 한울 밖에 마음이 없느니라. 한울과 마음은 본래 둘이 아닌 것이니 마음과 한울이 서로 화합해야 바로 侍定知(하늘이 내 안에 있음을 앎)라 이를 수 있으니, 마음과 한울이 서로 어기면 사람이 다 侍天主라고 말할지라도 나는 시천주라고 이르지 않으리라.


心在何方 在於天 天在何方 在於心 故心卽天 天卽心 心外無天 天外無心 天與心本無二物 心天相合方可謂侍定知 心天相違則 人皆曰侍天主 吾不謂侍天主也(4장 천지인-8)


경에 이르기를 "마음은 본래 비어서 물건에 응하여도 자취가 없다"라 하였으니, 빈 가운데 靈이 있어 깨달음이 스스로 나는 것이니라. 그릇이 비었으므로 능히 만물을 받아들일 수 있고, 집이 비었으므로 사람이 능히 거처할 수 있으며, 천지가 비었으므로 능히 만물을 용납할 수 있고, 마음이 비었으므로 능히 모든 이치를 통할 수 있는 것이니라.


經曰心兮本虛 應物無跡 虛中有靈知覺自生 器虛故能受萬物 室虛故能居人活 天地虛故能容萬物 心虛故通萬理也(5장 虛實-1)


마음이라는 형이상학적인 그릇은 비움 있음을 통해 우주와 하느님까지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천지를 에워싸고 우주를 담을 때 진정한 시천주의 의미를 알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청주에 지나다가 서택순의 집에서 그 며느리의 베 짜는 소리를 듣고 서군에게 묻기를 "저 누가 베를 짜는 소리인가"하니, 서군이 대답하기를 "제 며느리가 베를 짭니다" 하는지라, 내가 또 묻기를 "그대의 며느리가 베 짜는 것이 참으로 그대의 며느리(하늘)가 베 짜는 것인가"하니, 서군이 나의 말을 분간치 못하더라. 어찌 서군뿐이랴. 도인의 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 이르지 말고 한울님 강림하셨다 말하라.


余過淸州 徐淳家聞其子婦織布之聲 問徐君曰 彼誰之織布之聲耶 徐君對曰 生之子婦織布也 又問曰君之子婦織布 眞是君之子婦織布耶 徐君不卞吾言矣 何獨徐君耶 道家人來勿人來言 天主降臨言

(7장 待人接物-4)


도가의 부인은 경솔히 아이를 때리지 말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 한울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하느니라. 도인집 부인이 '한울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함'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경솔히 아이를 때리면, 그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니 이제 아이를 때리지 말라.


道家婦人輕勿打兒 打兒卽打天矣 天厭氣傷 道家婦人不畏天厭氣傷而輕打幼兒則 其兒必死矣 切勿打兒(7장 待人接物-5)


사람을 대할 때에 언제나 어린아이 같이 하라. 항상 꽃이 피는 듯이 얼굴을 가지면 가히 사람을 융화하고 덕을 이루는데 들어가리라.


待人之時 如少兒樣 常如花開之形 可以入於人和成德也(7장-12부분)

누가 나에게 어른이 아니며 누가 나에게 스승이 아니리요, 나는 비록 부인과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배울만한 것은 배우고 스승으로 모실만한 것은 스승으로 모시노라.


孰非我長 孰非我師 吾雖婦人小兒之言 可學而可師也(7장-13)


동학의 행동지침을 읽을 수 있는 글로 모든 이에 대한 <하늘같은 공경>은 동학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태어난 것은 한울님의 영기를 모시고 태어난 것이요, 우리 사람이 사는 것도 또한 한울님의 영기를 모시고 사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사람만이 홀로 한울님을 모셨다 이르리오. 천지만물이 다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저 새소리도 또한 시천주의 소리니라.


吾人之化生 侍天靈氣而化生 吾人之生活 亦侍天靈氣而生活 何必斯人也 獨謂侍天主 天地萬物皆莫非侍天主也 彼鳥聲亦是侍天主之聲也

(8장 靈符呪文-11)


우리의 도의 뜻은 한울로써 한울을 먹고, 한울로써 한울을 화할 뿐이니라. 만물이 낳고 나는 것은 이 마음과 이 기운을 받은 뒤에라야 그 생성을 얻나니, 우주만물이 모두 한 기운과 한 마음으로 꿰뚫어졌느니라.


吾道義 以天食天 以天化天 萬物生生 稟此心此氣以後得其生成 宇宙萬物總貫一氣一心也(8장-12)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존중 사상을 독특하게 들어내 주고 있습니다. 흙 한줌도, 물 한 방울도 모두 우리의 형제이며, 나이며 하늘인 것입니다.


내 마음을 공경치 않는 것은 천지를 공경치 않는 것이요, 내 마음이 편안치 않는 것은 천지가 편안치 않은 것이니라. 내 마음을 공경치 아니하고 내 마음을 편안치 못하게 하는 것은 천지부모에게 오래도록 순종치 않는 것이니, 이는 불효한 일과 다름이 없느니라. 천지부모의 뜻을 거tm르는 것은 불효가 이에서 더 큰 것이 없으니 경계하고 삼가라.


我心不敬天地不敬 我心不安天地不安 我心不敬不安 天地父母長時不順也 此無異於不孝之事 逆其天地父母之志 不孝莫大於此 也戒之愼之

(9장 守心正氣-7)


모든 것과의 일체감을 느끼고 하늘같은 공경을 할 수 있으려면 우선 내 마음이 먼저 하늘로 깨어나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한 조각 한 조각도 모두 하느님이 마음이니 어찌 경솔히 그 마음을 대하겠습니까.


남편이 화애롭고 아내가 정순함은 우리 도의 제일 종지니라.


夫和婦順 吾道之第一宗旨也(17장 夫和婦順-1)


도를 통하고 통하지 못하는 것은 도무지 내외가 화순하고 화순치 못하는 데 있느니라. 내외가 화순하면 천지가 안락하고 부모도 기뻐하며, 내외가 불화하면 한울이 크게 싫어하고 부모가 노하나니, 부모의 진노는 곧 천지의 진노이니라.


道之通不通 都是在內外和不和 內外和順則天地安樂 父母喜悅 內外不和則天大惡之 父母震怒矣 父母震怒卽天地之震怒也(17장-2)


묻기를 "우리 도 안에서 부인 수도를 장려하는 것은 무슨 연고입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니라. 음식을 만들고, 의복을 짓고, 아이를 기르고, 손님을 대접하고, 제사를 받드는 일을 부인이 감당하니, 주부가 만일 정성 없이 음식을 갖추면 한울이 반드시 감응치 아니하는 것이요, 정성 없이 아이를 기르면 아이가 반드시 충실치 못하나니, 부인 수도는 우리 도의 큰 근본이니라. 이제로부터 부인 도통이 많이 나리라. 이것은 일남구녀를 비한 운이니, 지난 때에는 부인을 압박하였으나 지금 이 운을 당하여서는 부인 도통으로 사람 살리는 이가 많으리니, 이것은 사람이 다 어머니의 모태 속에서 나서 자라는 것과 같으니라.


問曰吾道之內婦人修道奬勵是何故也 神師曰婦人家之主也 爲飮食製衣服育孀兒待賓奉祀之役 婦人堪當矣 主婦若無誠而俱食 則天必不感應 無誠而育兒 則兒必不充 實婦人修道吾道之大本也 自此以後婦人道通者多出矣 此一男九女而比之運也 過去之時 婦人壓迫 當今此運婦人道通活人者亦多矣 此人皆是母之胞胎中生長者如也(18장 婦人修道)


동학은 증산도와 함께 지극한 여성 존중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이 제대도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그 사회는 미개의 사회입니다. 中正의 조화가 이미 깨어졌으니 결코 진실이 바르게 깨어나지 못할 것은 살펴볼 필요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산도 이롭지 않고 물도 이롭지 아니하리라. 이로운 것은 밤과 낮, 활을 당기는 사이에 있느리라. 山不利 水不利 利在晝夜 挽弓之間(36장 降詩-9)"이라 했으니 중정의 조화는 역의 진리이자 깨달음의 진리입니다.


 

1. 사람은 첫째로 敬天을 하지 아니치 못할지니, 이것이 先師의 創明하신 道法이라. 敬天의原理를 모르는 사람은 眞理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 왜 그러냐하면 한울은 眞理의 衷을 잡은 것이므로 써 이다. 그러나 敬天은 결단코 虛空을 向하여 上帝를 恭敬한다는 것이 아니요, 내 마음을 恭敬함이 곧 敬天의 道를 바르게 하는 길이니, 「吾心不敬이 卽 天地不敬이라」함은 이를 이름이었다. 사람은 敬天함으로써 自己의 永生을 알게 될 것이요, 敬天함으로써 人吾同胞 物吾同胞의 全的理諦를 깨달을 것이요, 敬天함으로써 남을 爲하여 犧牲하는 마음, 世上을 爲하여 義務를 다할 마음이 생길 수 있나니, 그러므로 敬天은 모든 眞理의 中樞를 把持함이니라.


2. 둘째는 敬人이니 敬天은 敬人의 行爲에 의지하여 事實로 그 效果가 나타나는 것 이다. 敬天만 있고 敬人이 없으면 이는 農事의 理致는 알되 實地로 種子를 땅에 뿌리 지 않는 行爲와 같으니, 道닦는 자 사람을 섬기되 한울과 같이 한 후에야 처음으로 바르게 道를 實行하는 者니라. 道家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 이르지 말고 한울님이 降臨하였다 이르라 하였으니, 사람을 恭敬치 아니하고 鬼神을 恭敬하여 무슨 實效가 있겠느냐. 愚俗에 鬼神을 恭敬할 줄은 알되 사람은 賤待하나니, 이것은 죽은 父母의 魂은 恭敬하되 산 父母는 賤待함과 같으니라. 한울이 사람을 떠나 別로 있지 않는지라, 사람을 버리고 한울을 恭敬한다는 것은 물을 버리고 解渴을 求하는 자와 같으니라.


3. 셋째는 敬物이니 사람은 사람을 恭敬함으로써 道德의 極致가 되지 못하고, 나아 가 物을 恭敬함에까지 이르러야 天地氣化의 德에 合一될 수 있느니라. (셋째는 물건을 공경함이니 사람은 사람을 공경함으로써 도덕의 최고경지가 되지 못 하고, 나아가 물건을 공경함에까지 이르러야 천지기화의 덕에 합일될 수 있느니라.)


天·人·物에 대한 동학의 삼경사상입니다. 결국 어느 글을 보아도 다 같은 맥락의 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나이므로 모든 것을 나처럼 사랑하라!


1. 내 恒常 말할 때에 天語를 이야기 하였으나 天語가 어찌 따로 있으리오. 人語가 곧 天語이며 鳥聲도 亦是 侍天主의 聲이니라. 그러면 天語와 人語의 區別은 어디서 分別되는 것이냐 하면, 天語는 大槪 降話로 나오는 말을 이름인데 降話는 사람의 私慾 과 感情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요, 公理와 天心에서 나오는 것을 가리킴이니, 말이 理에 合하고 道에 通한다 하면 어느 것이 天語 아님이 있겠느냐. (주: 내 항상 말할 때에 한얼말씀을 이야기 하였으나 한얼님말씀이 어찌 다로 있으리오. 사람의 말이 곧 한얼님 말씀이며 새소리도 역시 한얼님의 소리이니라. 그러면 한얼님 말씀과 사람의 말이 어디서 분별되느냐 하면 한얼님말씀은 대개 강화로 나오는 말씀을 이름인데 강화는 사람의 사욕과 감정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요 공리와 천심에서 나오는 것을  가리킴이니)


1. 내 恒常 말할 때에 物物天이요 事事天이라 하였나니, 萬若 이 理致를 是認한다면 物物이 다 以天食天아님이 없을지니, 以天食天은 어찌 생각하면 理에 相合치 않음 과 같으나, 그러나 이것은 人心의 偏見으로 보는 말이요, 萬一 한울 全體로 본다하면 한울이 한울 全體을 키우기 爲하여 同質이 된 자는 相互扶助로써 서로 氣化를 이루게 하고, 異質이 된 者는 以天食天으로써 서로 氣化를 通하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한울은 一面에서 同質的氣化로 種屬을 養케하고 一面에서 異質的氣化로써 種屬과 種屬의 連帶的 成長發展을 圖謀하는 것이니, 總히 말하면 以天食天은 곧 한울의 氣化作用 으로 볼 수 있는데, 大神師께서 侍字를 解義할 때에 內有神靈이라 함은 한울을 이름이요, 外有氣化라 함은 以天食天을 말한 것이니 至妙한 天地의 妙法이 도무지 氣化에 있느니라. ( 주: 내 항상 말할 때 사물과 사물이 한울이요, 일과 일이 한울이라 하였나니, 만약 이 이치를 시인한다면 사물이 다 한울이 한울을 먹는 것이 아님이 없을 지니, 한울이 한울을 먹음은 어찌 생각하면 이치에 상합치 않음과 같으나 이것은 사람 마음의 편견으로 보는 말이요, 만일 한울 전체로 본다면 한울이 한울 전체를 키우기 위하여 같은 성질이 된 자는 서로 도움으로써 서로 기운이 화합함을 이루게 하고, 성질이 다른 자는 한울이 한울을 먹음으로써 서로 기운이 상통하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한울은 일면에서 동질적기화로서 종속을 기르게 하고, 일면에서 이질적기화로서 종속과 종속의 연대적 성장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니,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한울이 한울을 먹는 것은 곧 한울의 기화작용으로 볼 수 있는데, 대신사께서 侍자를 해설하실 때 내유신령(안에 있는 신령)이라 함은 한울을 이름이요, 외유기화라 함은 한울이 한울을 먹는 것을 말한 것이니, 지극히 신묘한 천지의 묘법이 도무지 기화에 있는 것이다.) 

宇宙는 一氣의 所使며 一神의 所爲라, 眼前에 百千萬像이 비록 其形이 各殊하나 其理는 一이니라. 一은 卽 天이니 天이 物의 組織에 依하여 表顯이 各殊하도다. 同一의 雨露에 桃에는 桃實이 結하고 李에는 李實이 熟하나니 是 天이 異함이 아니요, 物의 種類 異함이로다. 人이 氣를 吸하고 物을 食함은 是天으로써 天을 養하는 所以니라. 무엇이든지 道아님이 없으며 天아님이 없는지라, 各各 順應이 有하고 調和가 有하여 宇宙의 理此에 順行하나니, 人이 此를 從하는 者는 是正이요 此를 逆하는 者 是惡이니라.(주: 우주는 한 기운의 쓰인바 이며, 일신이 계신바라, 눈앞에 삼라만상이 비록 그 모양이 각기 다르지만 그 본바탕은 하나이니라. 하나는 곧 한울이니 한울이 사물의 짜임에 의하여 표현됨이 각기 다르다.  같은 비와 서리에 복숭아에는 복숭아 열매가 열고, 오얏에는 오얏열매가 익어가나니, 이것은 한울이 달라서 그러함이 아니요, 사물의 종류가 달라서 그러함이다. 사람이 기를 마시고 사물을 먹음은 한울로서 한울을 길러내는 바이니라. 무엇이든지 도가 아님이 없으며 한울 아님이 없는지라, 각각 순응이 있고 조화가 있어 이에 우주의 이치에 순행하나니, 이에 사람이 이를 따르는 자는 올바른 자요. 이를 거역하는 자는 악한자니라.)


我의 一氣 天地宇宙의 元氣와 一脈相通이며, 我의 一心이 造化鬼神의 所使와 一家活用이니, 故로 天卽我이며 我卽天이라. 故로 氣를 暴함은 天을 暴함이요, 心을 亂함은 天을 亂케 함이니라. 吾師 天地宇宙의 絶對元氣와 絶對性靈을 體應하여 萬事萬理의 根本을 明하시니, 是乃天道며 天道는 儒佛仙의 本原이니라.(주: 나의 일氣는 천지우주의 원기와 일맥으로 상통하며, 나의 일심이 조화귀신의 쓰이는 바와 한가지로 활용되니, 그런고로 한울이 곧 나이며 내가 곧 한울이라, 그런고로 기운을 난폭하게 쓰면 한울에 난폭하게 함이요, 마음을 어지럽힘은 한울을 어지럽힘이니라. 스승께서 천지우주의 절대원기와 절대성령을 몸소 순응하여 만 가지 일과 만 가지 이치의 근본을 밝히시니, 이는 한울의 도이며 한울의 도는 유불선의 본원이니라.)


個人各個가 能히 神人合一이 自我됨을 覺하면 이는 곧 侍字의 本이며, 侍의 根本을 知하면 能히 定의 根本을 知할 것이요, 終에 知의 根本을 知할 것이니, 知는 卽通이므로 萬事無爲의 中에서 化하나니, 無爲는 卽 順理順道를 이름이니라.(주:  개인 각개가 능히 신과 사람이 합하여 하나 됨이, 자기 스스로 됨을 깨달으면, 이는 곧 侍(모실시)자의 근본이며, 시의 근본을 알면 능히 마음 정함의 근본을 알 것이니, 아는 것은 곧 통함이므로, 만사를 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그렇게 되나니, 무위는 즉 순리순도를 이름이니라.)


이 글들은 최시형의 구술을 담은 내용인데, 동학의 실천 강령은 결국 '모든 것이 하나의 하느님임을 알아서 하느님으로 살아라.'는 것을 여러 가지 측면으로 달리해서 각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 생명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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