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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익학당입니다. 홍익학당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유투브에 370여개의 전세계의 철학고전들을 무료 강의로 제공을 해 왔습니다. 사서오경, 노자, 장자, 불경, 성경, 서양철학까지 유명한 철학고전 들의 상당수를 제공하였는데, 이러다 보니 먼저 공부할 내용을 추려 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홍익학당의 강의중에 각 분야의 뼈대가 되는 강의를 추려서 1주일 정도안에 학습하실 수 있게 제공해 드립니다. 이 강의를 들으시면 어떤 인문학/철학 고전을 읽는 것 보다 정확한 공부의 뼈대가 생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주일만 투자하시면 인문학과 고전의 전문가가 되실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이 강의만 들으셔도 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학당의 다른 강의를 더 들어 보시거나 관련된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고전/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직장인들께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출퇴근 하면서 공부해 보십시오.

 

동양철학편, 불교철학편, 기독교철학편에 이어 4번째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한국철학편]을 제공해 드립니다. 아래 제시된 순서로 강의를 들어 보시면 한국철학의 핵심적인 뼈대와 가장 중요한 골자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일차. 천부경 

천부경은 한국철학의 핵심사상을 81자의 한자에 담은 경전입니다. 수리로 우주의 진리와 인간의 길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주역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 이 경전에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 철학의 핵심인 홍익인간 사상의 근원이 되는 경전으로 윤홍식 대표가 어디에서도 없는 강의로 쉽게 풀어 줍니다.

 

강의자료

한글천부경.pdf


 

 

 


2일차. 삼일신고 

삼일신고는 천부경의 핵심사상을 좀 더 쉽게 글로 풀어준 경전입니다. 두 경전은 상호보완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데 A4지 한장 분량의 경전에 전세계 철학/종교의 핵심을 모두 담고 있는 자랑스러운 경전입니다.

 

이 경전 하나로 철학의 핵심과 수행법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강의자료

한글삼일신고.pdf


 

 


 

3일차.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 

우리가 매일 쓰는 한글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져 있을까요? 세종대왕께서는 동양철학의 핵심인 음양오행을 글자에 적용하여 세계 어디에도 없는 철학적인 글자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윤홍식 대표의 쉽게 재미있는 강의로 어떤 원리로 한글이 만들어졌는지 알아 보십시오. 이런 문화민족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강의자료

훈민정음의 창제원리.pdf


 

 

 


4일차.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정도전이 밑그림을 설계한 조선은 어떤 철학으로 건국이 된 나라일까요?

 

4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에 인의예지를 반영할 정도로 조선은 철학왕국을 지향 했었습니다. 

전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자랑스러운 건국철학을 이 강의로 알아 보십시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9- 정도전의 '조선경국전'.pdf


 

 

 


5일차. 이율곡의 『성학집요』 

장원급제를 9번이나 했다는 조선의 천재인 이율곡 선생님이 선조를 국가경영의 핵심적인 요체를 설명해 주기 위해 리더십 교과서를 저술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성학집요聖學輯要』입니다.

 

국가경영, 양심경영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잘 담고 있는 책으로 리더들은 한번쯤 필독을 해 보아야 할 책입니다. 윤홍식 대표의 쉽고 재미있는 강의로 공부해 보십시오.

 

강의자료

이율곡의 성학집요.pdf


 

 


 

6일차. 정약용의 『탕론』 

조선말 실학자로 유명하신 정약용 선생님 500여편의 저술을 남기셨는데 그중에『탕론湯論』은 짧지만 정치의 핵심을 잘 설명한 명문입니다.

 

정치란 서비스라는 철학자 윤홍식 대표의 강의가 참 와 닿습니다. 서비스 업체를 잘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번 알아 보십시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10- 정약용의 탕론.pdf

 

 

 

 


7일차. 동학 - 시천주(侍天呪) 

한국철학편 마지막으로 동학을 창시한 조선말 철학자 수운 최제우 선생님의 시천주를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글에 동학사상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운동으로서의 동학이 아닌 철학으로서의 동학도 이해해 본다면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서있는 이유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의자료

동학의 시천주侍天呪 해설과 풀이.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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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익학당입니다. 홍익학당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유투브에 370여개의 전세계의 철학고전들을 무료 강의로 제공을 해 왔습니다. 사서오경, 노자, 장자, 불경, 성경, 서양철학까지 유명한 철학고전 들의 상당수를 제공하였는데, 이러다 보니 먼저 공부할 내용을 추려 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홍익학당의 강의중에 각 분야의 뼈대가 되는 강의를 추려서 1주일 정도안에 학습하실 수 있게 제공해 드립니다. 이 강의를 들으시면 어떤 인문학/철학 고전을 읽는 것 보다 정확한 공부의 뼈대가 생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주일만 투자하시면 인문학과 고전의 전문가가 되실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이 강의만 들으셔도 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학당의 다른 강의를 더 들어 보시거나 관련된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고전/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직장인들께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우선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동양철학편]을 제공해 드립니다. 아래 제시된 순서로 강의를 들어 보시면 동양철학의 핵심적인 뼈대와 가장 중요한 골자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일차. 대학 

대학은 동양철학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이루는 고전입니다. 주자는 책꽂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책이 학문의 전반적인 얼개를 잘 나타내 주고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책을 공부한 후에 다른 책들을 공부하시면 전반적인 얼개가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학문의 진도가 더 빠르게 나아가실 수 있습니다.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7- 대학.pdf

 

 


2일차. 중용 

중용은 양심리더십의 정수가 잘 들어 있습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인의예지의 본성을 프로그래밍하셨고, 그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고, 그 인간을 길을 걸음으로서 많은 분들이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모델이 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순간 가장 최선의 선택인 '중용'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강의입니다. 많은 분들이 중용을 지키라고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 강의를 들어 보시면 '중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강의는 PPT로 설명하고 있어서 강의자료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3일차. 논어 

논어는 깨어있는 리더는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공자님을 모델로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고전입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깨어있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논어', 가장 많이 읽히는 동양 고전이라고 합니다만, 여기서는 그냥 고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성인에 이르는 길'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진정한 공부란 무었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 보실 수 있습니다. 성균관스캔들에 나왔던 '논어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인줄 몰랐어요.' 하는 대사가 생각납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3- 논어 성인에 이르는 길.pdf


 

 


4일차. 맹자 

예전부터 남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려면 맹자를 읽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양한 왕들을 깨우치는 맹자의 따끔하고 논리정연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 왠지 웅혼한 기상이 싹트게 됩니다.

 

왕도정치, 진정한 조직의 운영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는 필수적으로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진정한 정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싶은 분들께는 정치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강의입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4- 맹자, 리더의 길과 왕도정치.pdf


 

 


5일차. 노자 도덕경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노자의 도덕경은 많은 분들께서 사랑해 주는 고전입니다.

 

윤홍식 대표의 노자 도덕경은 체험에 기반하여 그동안 설명이 잘 되지 못하는 어려운 노자 도덕경을 아주 쉽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강의와 유학의 강의를 같이 들어 보시면 동양철학의 전모가 정확하게 들어 날 것 입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8- 노자 도덕경, 무위자연의 지혜.pdf

 

 

 

6일차. 주자의 공부법과 명상법 

주자라는 유명한 학자의 책을 통해서 학문을 하는 방법과 명상법을 아주 쉽게 설명합니다. 리(理) - 로고스에 대해서 이렇게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강의를 들으신 분들이 모두 너무 재미있게 들으셨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거경(居敬), 궁리(窮理), 역행(力行)과 기(氣)와 질(質)에 대한 설명과 함께 공부의 과정에 대해서 윤홍식 대표의 강의를 듣다보면, 성리학이 이런 것이구나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5- 주자의 명상법과 공부법-주자어류.pdf

 

 


7일차. 주자의 독서법

독서를 통해 현명해지는 비법이 제공된 강의입니다. 주자라는 유명한 학자의 책을 통해서 책을 어떻게 읽고, 몰입하며 그것으로 지혜를 얻는 방법이 잘 제공되고 있습니다.

 

독서를 할때, 특히 성현의 말씀을 적어 놓은 고전을 읽을때 어떠한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팁'들을 제공해 주는 강의입니다. 책으로 현명해지는 비법이 나온 강의이니 공부하는 학생들 또는 직장인들께 큰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6- 주자의 독서법.pdf


[출처: http://hongikhd.tistory.c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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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익학당입니다. 홍익학당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유투브에 370여개의 전세계의 철학고전들을 무료 강의로 제공을 해 왔습니다. 사서오경, 노자, 장자, 불경, 성경, 서양철학까지 유명한 철학고전 들의 상당수를 제공하였는데, 이러다 보니 먼저 공부할 내용을 추려 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홍익학당의 강의중에 각 분야의 뼈대가 되는 강의를 추려서 1주일 정도안에 학습하실 수 있게 제공해 드립니다. 이 강의를 들으시면 어떤 인문학/철학 고전을 읽는 것 보다 정확한 공부의 뼈대가 생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주일만 투자하시면 인문학과 고전의 전문가가 되실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이 강의만 들으셔도 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학당의 다른 강의를 더 들어 보시거나 관련된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고전/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직장인들께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1차 동양철학편에 이어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불교철학편]을 제공해 드립니다. 아래 제시된 순서로 강의를 들어 보시면 불교철학의 핵심적인 뼈대와 가장 중요한 골자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일차. 신심명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로 시작하는 3조 승찬이 저술한 신심명은 선종에서 추구하는 견성의 핵심 요결이 가장 잘 기술된 고전입니다.

 

이 강의를 들으면 여러분은 누구나 쉽게 견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게 됩니다.


강의자료

신심명.hwp

 

 


2일차. 반야심경/금강경 

반야심경과 금강경은 불교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보시는 경전이 아닐까 합니다. 그 동안 읽으시면서도 뜻이 잘 안 와 닿았다면 이 강의를 통해서 대승불교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강의자료

견성콘서트#5-반야심경_금강경.pdf

 

 


3일차. 선어록으로 배우는 선의 지혜(벽암록,종용록,무문관) 

벽암록, 종용록, 무문관 등의 선어록은 선사들의 즉각 깨어나게 하는 공부 방법이 잘 설명된 대표적인 고전입니다.

 

윤홍식 대표는 이 강의를 통해서 견성의 10가지 인가기준, 벽암록 / 종용록 / 무문관에서 뽑은 11개의 선문답 풀이, 전심법요를 설명해 줍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선사들은 무엇을 알았는지, 견성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자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강의자료 

선어록 풀이 -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pdf

 

 


4일차. 선가귀감 

한국에는 원효대사, 보조국사, 진묵대사, 서산대사, 경허대사 등 뛰어난 스님들이 많이 배출 되었습니다.

 

서산대사는 유불선 삼교를 모두 아울러 선가귀감, 유가귀감, 도가귀감을 저술할 정도로 사상의 폭이 넓고, 국난에 직접 뛰어들어 나라를 구하는 실천적인 철학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선가귀감은 그 내용이 선종(禪), 교종(敎)을 모두 포괄하여 나아갈 길을 밝히고 있고, 소승과 대승의 길까지 정확히 설명을 주고 있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전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자부심심이 생기는 한국 큰스님들의 철학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게 됩니다.

 

강의자료

견성콘서트#12- 서산대사의 선가귀감.pdf


 

 

 

5일차. 육조단경 

육조 혜능은 선종을 널리 알린 뛰어난 선사로 그가 지은 『육조단경』선종의 핵심 바이블로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윤홍식 대표는 이 강의를 통해서 돈오돈수, 돈오점수 사상이 나눠지게 된 근원적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육조 혜능이 주장한 참 뜻을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선종과 대승불교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강의자료

견성콘서트#10-육조단경.pdf


 

 


6일차. 대승기신론 

마명의 대승기신론은 간결하지만 불교철학의 핵심이 잘 설명된 경전입니다. 견성과 그 이후의 길에 대하여 윤홍식 대표가 쉽게 설명을 해 줍니다.

 

이 강의를 공부한 후에 다른 강의들을 공부하시면 전반적인 얼개가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학문의 진도가 더 빠르게 나아가실 수 있습니다.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강의자료

견성콘서트#3 대승기신론.pdf

 

 


7일차. 출입식념경 

출입식념경은 초기불교의 핵심적인 사상인 열반에 이르는 방법이 가장 잘 설명된 경전입니다.

 

윤홍식 대표는 이 강의를 통해서 초기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까지 전체를 깊이있게 설명을 합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여러분은 초기불교의 핵심인 열반에 이르는 길과 왜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불교학 개론 같은 강의입니다. 


강의자료

출입식념경.pdf


[출처: http://hongikhd.tistory.com/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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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을 연구하는데 두가지 경향으로 나눠지는 것 같다. 講壇동양학과 江湖동양학이 그것이다. 


강단 동양학이란 학교에서 가르치는 동양사상 쉽게말해 논문쓰는데 초점을 맞춘것이다. 주로 理 氣와 같은 개념파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분석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고의 트레이닝에는 효과가 있지만 현실문제 해결에는 별로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호동양학은 강호에서 좌충우돌하는 실전에서 요구되는 동양학을 가리킨다. 해방이후 강호동양학은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철저히 배제 되었다. 그래서 제도권보다는 재야의 기인, 달사들 사이에서 그 맥을 이어왔다.   


강호동양학이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인 雜科이다. 천문은 때- 時 하늘의 시간표를 보고 인간의 시간표를 아는 것이 천문의 목표이다. 때를 안다는 것은 인생사의 중대과제를 해결할 수있는 방법이다. 자기 인생이 지금 몇시에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한자문화권의 역대 천재 들이 고안한 방법이 사주명리학이다. 사주명리학이란 천문을 인문으로 전환한 것이다.   


지리는 풍수이다. 천문이 시간이라면 지리는 공간의 문제를 다룬다. 시간의 짝은 공간이다.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령의 문제이다. 땅에는 신령스런 영이 어려있다고 믿는다. 지령을 체험한 사람은 풍수를 이해하지만 지령을 거부하면 풍수의 핵심에는 영영 접근하지 못한다. 지령이 있는 지점에서 사람이 살면 일단은 건강해지고 그다음에는 영성이 개발된다. 건강해지고 영성을 개발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명당이 아닌가. 명당에서 자면 특이한 꿈을 꾸기도 한다.   


천문,지리 다음에는 인사이다. 인사는 존재이다. 시간과 공간이 없어도 존재가 없으면 소용없다. 존재는 바로 인간이다. 인간을 구체적으로 한 연구가 한의학이다. 천문과 지리는 대학의 커리큘럼에 들어오지 못했지만 한의학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풍수는 최창조 교수가 등장해 약간의 시각교정이 되었다. 영주권을 딴샘이다. 그러나 사주명리학은 아직도 불법체류자 신세인 샘이다.   


이책을 내는 이유는 사주명리학의 함량미달, 싸구려를 개선하고자 하는데 있다. 현재의 사주명리학은 마치 다이아몬드에 누런 똥이 발라져서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상태와 같다. 이 다이아몬드는 잘닦고 빛을 내면 쓸곳이 많을 것이다. 왜냐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지구,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서 동아시아 문명의 5천년의 성찰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걸 잘 풀어내면 21세기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르네상스를 일으키는데 중요한 열쇠로 사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자문화권의 르네상스, 문화 콘덴츠를 염두에 두면서 이책을 썼다. 

조용헌

 


▲ 흔히들 사주팔자나 운세라고 하면 떠올리는 인물. 

토정 이지함의 동상. 


조선시대에 남자들이 모이는 사랑채에서는 『정감록』이 가장 인기 있는 책이었고, 여자들이 거처하는 안방에는 『토정비결』이 가장 인기였다는 것은 바로 풍수도참과 사주팔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사주팔자, 길흉화복 예측에서부터 체제 전복의 신념체계까지  


사주팔자란 무엇인가 - 年月日時 旣有定인데 浮生이 空自忙이라! 

사주팔자가 정해져 있는데 뜬구름 같은 삶을 사는 인생들이 그것을 모르고 공연히 스스로 바쁘기만 하다는 옛 선인들의 말이다. 

 

삶이란 예정조화 되어있는 것을 모르고 쓸데없이 이리 갔다 하면서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결국은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도망갈 수 없음을 설파한 잠언이기도 하다. 한국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드라마틱한 방향전환이나, 또는 대단한 성공과 실패를 경험 할때 이를 사주팔자 탓으로 돌리는 관습이 있다.  


그사람의 태어난 생년, 월, 일, 시를 干支로 환산해 운명을 예측하는 방법인 사주팔자. 한국에서는 운명의 이치를 따지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命理學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운명을 추리한다고 해서 推命學 중국에서는 운명을 계산해 본다는 의미의 算命學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한자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은 사주팔자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식자층은 아직도 서로 만나면 상대방의 사주팔자를 주고받는 풍습이 일부에는 남아있다.  


일본의 사주팔자 대가 아베 다이장 阿部泰山 이라는 인물이 추명학을 한단계 끌어 올렸다. 아베사후 그의 제자들이 간행한 아베다이징 전집 26권을 현재 일본 추명학의 수준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웨이쳰리 韋千里가 유명하다. 그는 마오쩌둥 정권후 홍콩으로 망명했고 대만에 자주 왕해했다. 장제스와 개인적으로 밀접해 대만정부의 중요한 정책결정에 관여하는 국사대접을 받았다. 또한 동양사상에 호기심많은 프랑스 신부에게 사주를 가르쳐서 그들이 서양 점술학의 개량작업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이석영,박재완,박제현같은 대가가 정계,재계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의 웨이쳰리나 일본의 아베다이징이 누렸던 지위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사회에는 미신,잡술로 평가되기에 공식적 담론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속신앙 연구는 활발해도 사주팔자는 시도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주팔자는 한국사회의 裏面문화 behind culture가 되었다. 무대 위에서는 논의되지도 주목받지도 못하지만 무대뒤에 배후에서 활발하게 유통되는 문화이다.  


학문적인 연구는 적지만 사주가 인터넷과 결합되는 속도는 중국, 일본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 한국인터넷 유료사이트중 가장 활발한 것이 포르노와 사주이다. 주 연령층이 10대후반에서 30대초반에 집중되어 있다. 

 


▲ 명리학에 조예가 깊은 성삼문의 외조부는 사주가 좋은 시간에 손자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다듬이 돌로 출산 시간을 늦춰보았지만, 참지 못한 산모가 아이를 낳았다. 낳아도 좋냐고 세 번을 물었다고 해서 '삼문'이라고 지어진 사육신 성삼문의 묘소, 만약 더 늦게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주팔자의 역사적 맥락? 


그 사람의 연월일시를 간지로 환산해 운명을 예측하는 명리학은 중국의 도교 수련가였던 서자평에 의해 이론체계가 정립되었다. 오늘날 명리학의 대표적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淵海子平 서자평의 저술이다. 10세기 후반 인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사주팔자에 대한 최초 공식기록은 조선왕조 법전 경국대전이다. 여기에 사주팔자를 보는사람을 국가에서 과거시험으로 선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인계급이 응시하는 잡과이다. 시험과목은 徐子平 袁天綱 範圍數 剋擇通書 등이다. 서자평은 사주팔자 원리이고 원천강은 택일 극택통서는 전해지고 있지 않다. 오늘날도 서자평은 필수교과서로 평가된다. 따라서 1400년 후반정도에 전래되었다고 추정한다.  



운명을 결정짓는 양대요소 - 입태일과 출태일  


사주팔자에서 그 사람의 운면을 결정짓는 양대 요소는 입태일과 출태일이다. 즉 입태일은 합궁일 출태일은 태어난날 정확히 탯줄을 자른 바로 그시간이다. 그시간에 천지의 음양오행기운이 아이에게 순간적으로 들어온다. 사주팔자는 바로 그탯줄자르는 시각에 들어온 음양오행 기운의 성분을 10간 12지로 인수분해한 것이다. 입태일은 IN PUT 출태일은 OUT PUT되는 시점이다.  


사주는 네기둥이란 뜻이고 팔자는 여덟글자라는 뚯이다. 년, 월, 일, 시를 네기둥으로 보고, 한 기둥에 두 글자씩으로 외어 있으므로 모두 여덟글자이다.  


조선시대 사주팔자가 반란사건과 관련해 등장하는 이유는 명리학 자체가 계급차별에 대항하는 대항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아니더라도 사주팔자만 잘타고 나면 누구나 왕이되고 장상이 될 수 있다는 기회균등 사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풍수사상도 마찬가지이다. 사주팔자는 정감록으로 대표되는 풍수도참설과 결합해 조선후기 민란의 중요한 대중동원 매카니즘으로 작용했다. 조선시대 사랑채에서는 정감록이 안방에서는 토정비결이 인기 였다. 이는 대중들의 관심을 설명해주는 사례이다. 



오행을 보고 이름을 짓는다  


사주팔자의 구성원리는 철저하게 음양오행의 우주관에 바탕이 있다. 만물은 음아니면 양으로 되어있고 그 음과양을 다시 수 화 목 금 토 오행으로 분화되고 오행이 다시 만물을 형성한다는 설명체계이다. 


사람의 사주도 크게 양사주냐 음사주냐로 분류된다. 양사주면 활발하고 음사주면 내성적이라고 본다. 


음양으로는 너무 간다하니까 세분해 오행으로 나누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출생 후에 이름을 지을 대에도 오행에 따라 지었다. 이름을 지을 대에는 그 사람이 출생한 년 월 일 시를 먼저 따진 다음, 만세력을 보고 네기둥을 뽑는다. 사주팔자를 뽑는 것이다. 이름지을때 오행의 과불급을 고려했다. 이는 오늘날도 이어진다, 

 


족보의 항렬, 장날을 정하는 원리  


족보의 항렬을 정할 때도 오행의 원리에 따랐다. 조선시대는 대가족 제도이고 대가족 제도에서 위아래를 구분하는 기준이 항렬을 정해놓고 이름을 짓는 방법이다. 예로 할아버지 항렬이 나무 木이 들어가는 植자라 하면 아버지 항렬은 불 火변이 들어가는 글자 중에서 정한다. 이런 돌림에는 오행의 상생순서법칙이 있다. 


오행의 상생순서는 수생목 목화생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에서 수는 목을 도와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수를 부모로 보고 목을 자식으로 보았다. 


산을 보는 풍수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시대 민사소송의 60퍼센트가 산송에 관계된 사건이라 한다. 산송은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소송이다. 풍수에서 산의 형태를 오행의 형태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수체의 산은 물이 흘러가는 모양이고, 화체의 산은 불꽃처럼 끝이 뽀쪽뾰쪽한 산, 예를 들면 영암의 월출산 같은 산이다. 


종교인들이 기도하면 기도발이 잘 받는 산이라 한다. 목체의 산은 끝이 삼각형처럼 되어 문필봉이라 불렀다. 필자가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4~5백년 된 명문가의 종가집이나 묏자리를 수십군데 답사하니 70퍼센트가 그 앞에 학자가 배출된다고 하는 문필봉이 포진하고 있었다. 금체의 산은 철모를 엎어 좋은 것처럼 생긴산이다. 이런 산세는 장군이 나온다고 한다. 토체의 산은 책상처럼 평평한 모양을 한 산이다. 제왕의 나온다는 산이다.  


한국의 장날을 정할 때도 이와 같은 5가지 형태의 산의 모습을 따라서 정하였다. 장은 경제행위와 정보교환의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그지역의 주산모양이 수체일 경우 1일과 6일이 장날이다. 숫자 중에서 1과 6은 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만약 주산이 火 일 경우 2일과 7일이 장날이다. 木체일 경우는 3과 8일 金체일 경우에는 4와 9이 土체일 경우에는 5와 10일이 장날이다. 

 



양지의 성리학과 음지의 명리학  


이와같은 음양오행사상으로 인간과 우주를 총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도표가 바로 태극도이다. 태극에서 음양이 음양에서 오행이 오행에서 만물이 성립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도표이다. 태극도는 성리학자들의 우주관을 압축시킨 그림으로 중요시 여겼다. 퇴계의 성학십도 남영의 태극도여통서표 송구봉의 태극문 우암의 태극문 한강의 태극문변 사미헌의 태극도설문답 화서의 태극서 노사의 문답류편 등이 그렇다. 


주자학에서 도를 통했다는 의미는 바로 태극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작업었다고 할 정도로 태극도는 조선시대 중요시 되었다. 명리학의 기본원리도 태극도이다.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성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완전히 똑같다. 조선시대는 태극도의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해 역사변천이나 왕조의 교체,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해석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태극도에서 파생한 성리학과 명리학 성리학은 인간성품의 이치를 다루고 명리학은 사람의 운명의 이치를 다룬다. 


그러나 같은 부모밑에 두아들은 다른 길을 걸었다. 성리학은 체제를 유지하는 학문으로 명리학은 체제 저항의 반체제의 술법이 되었다. 성리학은 양지의 역사로 명리학은 음지의 잡술로 되었다. 


임금주제 궁궐내 학술 세미나에서는 성리학이 토론의 주제이고 금강산 험난한 바위굴속에서는 당취들이 난산 토론에서 명리학이 단골메뉴였을 것이다. 


명리학과 성리학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면 진단과 서자평의 인간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陣단은 태극도를 중국화산의 석벽에 각인해 후세에 전한인물이다. 태극도가 성리학자들에게 전해진 계기는 진단의 덕택이다. 그는 북송초기의 저명한 도사이다. 후당때 무당산 구실암에 은거해 신선술을 연마했고 북송초기에 화산으로 옮겨살며 여러은사들과 교류했다. 이때 화산에서 같이 수도한 인물이 바로 명리학의 완성자인 서자평이다. 이때 화산에서 같이 수도한 이가 서자평이다. 


조선시대의 사주팔자, 이는 개인의 길흉화복을 예측한 점술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가들의 신념체계로 작동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신비적인 것이 곧 합리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는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신언서판이란 무엇인가 


身, 言, 書, 判 오랜 세월 동안 동양사회에서 인물을 평가할 때 적용하던 기준이다. 


신이란 그사람의 관사이다. 


남자관상의 포인트는 눈이다. 精氣는 눈에서 표출된다고 본다. 도교 내단학에서 인체의 세가지 보물 하단정의 精 중단전의 에너지 氣 상단전의 에너지 神이다. 눈빛에서 나오는 총기는 神 이다. 쉽게 말해 자연상태 원유가 精, 원유를 어느정도 가공해서 나온 석유가 氣이고 상당히 가공해서 나온 휘발유가 神이다. 


눈에 총기가 많으면 비싼 휘발유를 과소비하는 것이므로 빨리 고갈된다. 


따라서 回光返照 빛을 돌려 아랫배를 관조하라는 말은 눈의 총기를 밖으로 품어내지 말고 내면으로 감추하는 이야기이다. 가지몸을 감추는 둔갑술은 바로 눈빛을 감추는 일이다. 인도성자 마하리쉬의 눈빛을 보라. 


관상볼때 또하나의 포인트는 察色이다. 


필자는 관상은 돈오:한순간의 깨달은 사주는 점수:점진적으로 닦음에 비유한다. 


필자도 사주연구할때 그사람의 時가 불확실할때는 관상을 참고한다. 전성대 미대 이열모 교수가 재야에 알려진 관상의 고수이다. 이정호 전충남대 총장의 正易.  


언(言)이란 그 사람이 말을 얼마나 조리있게 하는 가를 보는 일이다. 


언을 조금 깊게 들어가면 목소리의 색깔을 분석해 보는 일이 중요하다. 목소리는 인체 내의 오장육부에서 기인한다. 사람마다 장기의 크기와 강약이 다르므로 목소리의 칼라도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오장가운데 상대적으로 비장이 강한 사람의 목소리톤은 음- 소리가 강하고 폐장이 강한 사람은 아- 간장이 강한 사람은 어- 심장이 강한 사람은 이- 신장이 강한 사람은 우- 소리가 강하게 나온다. 음 아 어 이 우의 음의 높이는 전통 음계인 궁 상 각 치 우와 배대된다. 


궁에 해당되는 음이 가장 낮은소리 우가 가장 높은소리이다. 그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보아 음 소리가 강하게 나오면 오장중 비장이 튼튼하고 그 성격은 군왕의 성품이 있다고 판단한다. 아 소리는 폐장에서 나오는 소리로 怒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어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이에는 슬픈마음이 우에는 음란한 마음이 들어있다. 


음상을 본다는 것은? 


음 아 어 이 우 와 같은 소리의 기준에 맞추어 그사람의 목소리를 분석해 보고, 그 분류 등급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양식을 미리 짐작해 보는 작업이다. 목소리는 인격의 표상인 것이다. 이는 또한 마음을 수양하는 수련방법에도 이용되었다. 신장이 약한 사람은 우 심장이 약한사람은 이 소리를 집중적으로 발성하면 효과가 있다. 이러한 음아어이우 발성수련법은 정역의 저자 김일부(1826~1898)선생이 체계있게 정리된 바있다. 


김일부는 조선초기 서경덕에 시작해 이지함 이서구 이운규로 내려오는 저선의 도맥을 이어받은 도학자이다. 그는 음아어이우를 길게 반복해 소리내면서 춤추고 노래부르는 영가무도 수련을 하였다. 이것은 정역파를 통해 전해진다. 이정호 권영원등에 의해 오늘날 전수되고 있다. 

 


사판을 거쳐 이판으로 가라 


서(書)는 글씨이다. 좁은의미로 글씨체 넓은의미로 문장력을 말한다. 


판( 判)이란 무엇인가? 판단력이다. 


신 언 서를 보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판단력을 보기 위해서다. 


결국 판단력에서 인간 능력은 결판이 난다. 인생사는 예스냐 노냐 판단의 연속이다. 결정적 순간 판단한번 잘못하면 만사가 끝장이다. 


판단에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理判 그리고 事判이다. 이둘을 합쳐 이판사판이라고 한다. 


이판사판의 어원은 불교의 화엄경에서 유래한다. 인간사의 범주를 이와 사로 파악한다. 이는 본체의 세계이고 사는 현상의 세계이다. 이는 눈에 안보이는 형이상의 세계이고 사는 눈에 조이는 형이하학의 세계이기도 하다. 화엄경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격은 이판고 사판에 모두 걸림이 없는 경지의 인격이다. 이판은 직관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내리는 판단이고 사판은 데이터를 분석 종합하여 내리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예를 들어 처녀총각 중매할때 신랑의 학벌, 직업, 외모, 집안을 따지는 것은 사판이고 사주와 궁합을 보는 것은 이판이다. 여기서 중요한점은 사주,궁합을 보기전 먼저 사판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그다음에 이판을 보는 것이 순서이다. 합리적인 것을 거쳐 신비의 영역오로 들어가는 수순이 지혜로운 자의 태도이다.  



한국의 명리학의 빅3 - 이석영,박재완, 박재현  


이석영 사주첩경 총6권 이 나오기전까지 한국에서 사주명리학 공부를 하려면 철저한 중국 원전에 의지했다. 연해자평, 명리정종, 적처수, 삼명통회, 궁통보감 등등 한문으로 된 고전들을 해독하느라 고생했다. 


박재완 명리요강 명리사전 그의 사후 제자들이 간행한 명리실관이 있다. 박재완의 제자 백영관의 사주정설 1982 검사이기에 실명을 안하고 가명을 썼다. 


명리실관의 한문이 유려하다. 변려문즉 한자4자 안에 내용을 함축한 것이다. 4자가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있어 리듬감을 느낀다.이는 사자소학이나 능엄경도 같은 변려문이다. 읽기 편하고 운율을 감상할 수 있다. 

 

박재현 維新 을 幽新  


명성이 알려진 도사는 익명의 다중을 상대해야한다.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은둔해야 한다. 


도사는 무대위에 서기전 삼십육계 놓을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도가에서 지향하는 인물은 세간에서 한몫챙겨 산으로 줄행항 놓는 것이 모범답안이다. 그래서 일급도사는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은둔을 고집한다. 성명규지 는 중국 명대의 내단서로 유 불 선 삼교합일의 입장에서 성명쌍수를 강조하는 일급비서이다. 


성명쌍수란 性 과 命 을 모두 닦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은 불교의 주특기로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는 방법이고 명은 도교의 주특기로 호흡법을 통해 몸을 강철같이 단련하는 방법이다. 선불가진수어록 개운조사 개운조사파에서 애호하는 수련서이다. 박재현이 발행인이다. 


수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의식의 집중이다. 문제는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이다. 화두에 집중할 것인가? 염불에 집중할 것인가? 능엄경에는 물소리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이는 쉽고 효과가 크다.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이 바로 이근원통이다. 주문수행은 기도나 참선보다 효과가 빠르지만 잘못하면 부작용이 크다. 마음이 강하지 못한이는 정신이 돈다 심하면 죽거나 병신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함부로 주문을 하지 못한다. 


사주는 이론만으로는 안된다 영발이 있어야 한다. 박재현은 구령삼정주는 어떤 주문인가? 조선후기 민간도교에서 유행했던 옥추경에 포함된 주문이다. 

 


역사의 최고의 점괘 , '너 자신을 알라! 


필자는 주문의 본질을 신들을 설득하는 소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소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신세계와 접속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소리였고, 그 소리는 주문이란 형태로 패턴화되었다. 따라서 주문은 가장 강력한 영적인 파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구령삼정주는 도교의 신들을 설득하는 주문이다. 불교의 준제주는 관음세보살에게 요청하는 구원이고 기독교의 주기도문 유고의 서경의 서문이 주문 대용품역할을 하며 옴 마 니 반 메 훔 6글자가 전부인 육자대명진언은 가장 유명한 주문으로 티베트에서 발효된 특유의 영성이 물씬풍겨나오는 주문이다. 비기자는 부전이라 감당할 그릇이 아니면 전하지 않는다.   


원광대 김낙필교수의 연구 조선후기 민간도교의 윤리사상 민심이 타락한 말세에 경을 입으로 외우면 구언받는다는 타력구원의 신앙이 내포되어있다.옥추경을 연구하며 추사 김정희도 옥추경을 좋아했음을 발견했다. 이는 운율이 좋았던 탓으로 사려된다. 


김일부의 정역의 핵심 메시지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주시계바늘이 정오를 지나 오후 3시쯤을 가리키고 있다는 주자이다. 낮12시가 지나 선천에서 후천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선후천 교체되는 변화를 금화송이라 노래로 표현했다. 


주문은 자기 마음대로 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구전심수의 세밀한 지도를 받아서 이뤄진다. 즉 스승으로부터 미묘한 부분에 은밀한 지도가 있어야 효과를 발생한다. 사주명리학에서 구령주를 주문해 효과를 보았다는 사실자체도 비밀이었다가 죽기전 제자에게 공개했다. 무노동이면 무임금이듯 무복채는 무적중이다. 



구령주의 뿌리는 계룡산과 청허선사  


박재현의 정신적 뿌리는 개운조사파 아라한과의 경지에 도달한 개운조사를 추종하는 개운조사파는 능엄경의 수행법인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노선을 가지고 있다. 계곡 물소리가 일품인 함양의 백운산 밑에 있는 백운암에서 수련을 했다. 윤청허선사는 함양읍 교산리 행교마을에서 한약방을 차려놓고 생계를 이어가다. 도교수행을 위해 산에 들어가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는 처음 10명의 제자를 받았는데 주문수행과정에서 3명은 죽고 4명은 정신이상 나머지 3명이 살아남았는데 그중 하나가 박재현이다. 나머지 두명은 정통 선도수련을 했고 박재현만 사주명리학으로 방향을 잡았다. 수행시절을 그리워하며 계룡산에 다시들어가 선불가진수어록을 발간했다. 


예언해도 누설을 말아야 하는데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앞에 곧잘 이에 허물어진다. 토정선생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조심하라 하기도 했다. 

 


발설과 은폐의 아슬아슬 줄타기  


발설하면 여러사람에게 시달리고 혹 틀리면 온갖 조롱을 듣는다 그러므로 숨는 지혜가 필요하다. 돈을 버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사실은 재물복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고향 서상면 옥산부락에 덕운정사를 지었다. 


박재현의 일생을 보면 너자신을 알라 희랍최고의 점괘이다 이는 헤로도토스의역사에서 나온다. 


자기자신을 객관으로 파악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통찰이다. 점의 궁극적 관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에 있다. 자기를 통찰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신탁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많은 술객 도사들이 빠지는 함정이 통찰력 부족이다. 다른사람 점은 잘봐주는데 자기자신은 보지 못한다. 말년의 박재현의 불행은 자기통찰에서 실패한 탓이다. 물론 자기를 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계율과 스승이 필요하다. 스스로 계율에 의지해서 자기자신을 체크해보고 스승으로부터 끊임없는 경책을 받아야만 스스로 반성할 수 있다. 


 

점이란 무엇인가  


기원전 3천년 전부터 존재한 직없이 점쟁이다. 내 미래에 대한 궁금중은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다. 

근래 직업가운데 점쟁이와 가장 비슷한 이가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이다. 

고스톱의 황금율도 운칠기삼이다 운이 70 기술이 30이란 말이다. 이 7할의 바탕에 깔려있는 원리는 무엇인가? 

 

첫째 相應 correspondence 상응의 원리 둘째 反復 의 원리 셋째는 鬼神 의 존재이다.  


상응의 원리란 시간,공간,존재 각기 다른 3차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리이다. 그 좋은 예가 카오스이론이다. 현대물리학에서 카오스이론은 북경상공의 나비 날개짓이 캘리포니아 상공에 가면 폭풍우로 변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언뜻 보며 혼돈같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상응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현대 물리학자들은 설파한다. 상응의 원리에 의하면 만물은 거미줄과 같은 미세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을 잡아 흔들면 다른 한쪽이 흔들린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풍수의 동기감응의 원리도 이와같다. 땅속에 묻혀 있는 조상의 뼈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 조상의 백과 후손의 백이 서로 감응한다고 본다. 그 감응현상은 꿈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나비의 날개짓은 점술가가 보면 하나의 징조이고 폭풍우를 예측한다. 점술가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지나치는 미세한 조짐을 주목하고 이를 잡아채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상응의 원리가 기초한 점서가 주역이다. 주역의 64괘는 뽑는 사람의 마음과 상응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해석해야 한다. 문제는 괘를 뽑는 사람의 상응능력에 달려있다. 즉 현실과 괘를 연결시키는 능력이다.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64가지 괘 중에서 과연 어느 괘에 배당할 것인가 그 사람의 주관적인 영역에 속한다. 


주역은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괘로 환원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경전으로 다가온다. 


환원시키기 위해서는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는 방법이다. 감각이 예민하게 다듬어지면 어떤 사물을 대하는 순간 즉시 괘로 환산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역은 책만 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예민한 감각의 확보가 관건이다.   


6시간은 부동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야 고요함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요할 줄 알아야 내면세계에 들어가고 내면세계에 침잠해 있을때 외부세계의 미세한 출렁거림도 그대로 포착된다. 부동자세의 시간과 내면세계의 깊이는 비례한다. 부동자세 훈련이 어느단계에 이르면 숲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어온다. 


이처럼 예민한 상태에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풍기는 냄새에서 부터 얼굴에서 풍기는 빛깔 목소리의 칼라 눈동자에서 나오는 빛의 강도와 크기등이 세밀하게 체크된다. 내면의 고요한 세계에 침잠하는 것을 가리켜 삼매라고 부른다. 

 


불교의 休休庵坐禪文 고승들은 삼매의 극치를 나가 대정에 들었다고 표현한다. 


나가는 큰 뱀을 지칭하는 단어로 큰 뱀은 똬리를 틀고 가만히 있으므로 깊은 고요함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고 그 고요함의 극치에서는 큰 지혜는 솟아난다. 비범한 지혜는 내부에서 솟아나지 밖에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그래서 고요함이 중요하다. 那伽大定 에 도달한 고승은 여서가지 신통력을 갖춘다 경전에 나와있다. 


누진통 정액이 나오지 않는 경지로 성욕에서 해방된 징표이다. 


신족통 하룻밤에 수천 리를 간다는 축지법. 


천이통은 하늘의 소리를 듣는 능력. 


타심통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 내는 능력. 


숙명통은 전생을 알 수 있는 능력. 


천안통은 천리박의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 


숙명통은 속세 중생들이 가지는 능력으로 숙명통에 도달하면 전생 현생 내생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천태종의 개창조인 상월조사는 숙명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 고승이었다 한다. 소백산 구인사는 그가 창간한 사찰이다. 

 


반복의 원리 - 규칙적인 반복은 예측을 가능케 한다.  


점이 70퍼센트 맞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반복의 원리이다. 밤낮을 보자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반복한다. 사계절도 계속 돌아간다. 음양오행이 여기에서 나왔다.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적의 순환이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그러니까 사계절의 가장 중간지점에 토를 배치했다. 봄은 목, 여름은 화, 가을은 금, 겨울은 수. 음양오행은 자연의 규칙적인 반복현상을 관찰한 결과이고 이를 이론화함으로써 다가올 일을 예측하는 쪽으로 이용되었다. 1년은12개월 12달이다. 12번 보름달을 본다. 보름달이 11번 이거나 13번 이었던 적은 없다. 12번 반복에서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라고 12지가 발생했다. 하루가운데도 12시간 이것이 12진법이다. 

  

12에다가 동물을 배당하였다. 서기2세기경 왕충의 논형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는 숫자에 인격성을 부여했음을 뜻한다. 이때부터 숫자는 인격을 가지고 의미를 지니고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2지와 운명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예가 당사주라고 불리는 운명감정법이다. 당나라때 사주라해서 당사주라 한다. 이는 완벽한 12진법을 사용한다. 子는 귀하다는 의미의 天貴에 해당, 丑은 고생한다는 의미의 天厄, 寅은 권력을 잡는 다는 天權 ,卯는 참을성이 부족한 天破 , 진은 꾀가 많은 天奸 , 巳는 글을 좋아한다는 天文 , 午는 복이 많다는 天福 , 未는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天驛, 申은 외롭다는 天孤 , 酉는 과격함을 상징하는 天刃 戌 은 사교성을 의미하는 天藝 , 亥는 건강함을 의미하는 天壽를 배대시켰다. 


오로지 12지만 가지고 생년 월 일 시를 판정하는 당사주시스템은 간단하다. 십이지에다 십간까지 모두 동원해 보는 육십갑자 시스템의 사주명리학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당사주가 구구단이라면 사주명리학은 인수분해에 비유할 수있다. 히사시 永田久의 '역과점의 과학' 동문선, 심우석譯 잘정리되어 있다. 정다운스님의 인생십이진법도 쉽게 잘설명되어 있다. 


사주명리학은 반복의 원리에 기초해 있음을 주목하자. 반복의 원리는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절, 그다음에 1년 12달의 주기에 유래한 12지 . 거기에다 한가지 덧붙이면 10 간이다.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를 십간이라 부른다. 태양의 행성 중에서 인간의육안으로 관찰되는 별은 5개 행성이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다. 육안으로 보인다는 것은 지구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서양의 고대 점성술에서도 가장 중시된 별은 해와 달 그리고 오행성이었다. 


음양오행설에서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천간의 10 이라는 숫자를 생각하면 2 음양*5 오행성에서 10 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매일 하늘에 떠오르는 달과 해가 절대적으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이고 오행성은 그 다음에 영향을 미치는 종속변수로 생각한다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결합은 2*5로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사주 명리학의 이론의 일차적 기반은 10간 12지에 있고 그다음에 10간 12지를 음양오행으로 인수 분해 한 것에서 모든 해석이 도출된다. 

 


풍수도참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오행, 십간십이지와 뗄 수 없는 관계가 풍수도참설이다. 도참이란 그림이나 글자를 사용한 예언을 말한다. 이것이 정권교체기마다 단골로 등장해 민심을 사로잡았다. 조선시대 정감록은 체제에 소외된 지식인에게 해방신학이자 구원의 복음서였다. 아직까지도 계룡파 태백산파 지리산파를 비롯 전국의 술사들에게 은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룡산파의 비결과 탄허스님 


우리에게 비결은 어떤 의미인가? 


비결이란 무엇인가? 과연 인생살이에서 비결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가르켜 비결파라 한다. 정감록 임오년에 문둥이 관상을 지닌 사람이 왕이 된다는 숙시비결 토덕의 균형감각을 갖춘 충청도가 대권을 잡는다는 오행상생론 등등. 이런 예측은 비결파들 특유의 세상 읽기 방법이다. 보통사람들은 사회과학적 조사방법에 의거한 여론조사에 의지하나 독특한 주관을 가진 비결파들은 하늘의 계시를 자신이 직접 중계방송함으로써 여론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일제때 조선총독부는 민간에 은밀히 떠도는 비결을 수집했다. 이는 민심의 향배에 영향을 미친다 진단했기 때문이다. 일제가 보기에 조선은 풍수도참을 원리로 하는 비결에 의해서 민심이 움직이는 특이한 사회였던 것이다. 비결을 신봉하는 사람치고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은 적었다. 조선시대 운동권의 교본이 정감록이다. 


정도령은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였고 메시아가 출현하면 민중은 부도덕한 체제의 탄압에서 해방된다고 믿었다. 총독부가 전국의 비결을 수집해 만든 소책자가 조선비결전집이다. 이 비결들이 전하는 메세지의 공통점은 언제쯤 좋은 세상이 온다. 좋은 세상을 몰고 오는 인물은 누구이다. 언제쯤 난리가 난다. 등등이다. 도탄에 빠진 민초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이다. 총독부는 한편으로 이런 비결의 유통을 저지하고 감시했지만 또한편으로는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용했다. 그중 하나가 무라야마가 저술한 조선의 점복과예언 무라야마는 조선의 풍수 저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비결을 이용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개인차원의 비결은 십승지이다. 풍기, 무주, 계룡산, 변산등등에 많이 이주했다. 

 


탄허스님과 숙신비결 


탄허스님은 불교고승이었지만 주역을 비롯한 역술과 풍수도참에도 깊은 식견을 가졌다. 선가적 입장에서 입장에서 주역을 해석한 주역선해 3권이 있다. 


탄허는 "삼라만상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와 "부분이 즉 전체요. 전체가 즉 부분이다"는 도리를 밝히는 화엄경을 體로 하고, 앞일을 예측하는 주역을 用으로 하여 나라의 앞일을 예견하며 1960~70년대 국사역할을 했다. 그는 주역의 육효를 사용해서 점을 치는 육효점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주역이 가지는 점서적인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 바로 육효점이다. 이는 역대 주역을 마스터 했던 공자, 주렴계, 주자, 소강절, 서경덕, 이지함과 같은 모든 학자들과 구루들의 실천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죽어라 배우기만 하면 무엇하는가 현실에 활용해야 할 것 아닌가.  


불가에서는 주역을 은근히 거부하는 분위기가 있기에 일체가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왜 괘를 뽑느냐는 것이다.  


탄허는 불교승려이면서도 유 불 선 삼교를 아울러 포용하는 포함삼교의 전통을 계승했다. 포함삼교는 최치원의 말이다. 유교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예를 배우고 불교로 마음의 구조를 밝히는 명심의 이치를 선교로 부터 몸을 다스리는 양생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탄허가 머무르던 오대산 월정사, 서울의 대원암, 계룡산 학하리의 자광사 

 


해운과 탄허의 운명적 만남 - 숙신비경의전수  


숙신비결은 탄허가 계룡산 학하리의 자광사에 머물던 시절에 입수한 것으로 추측된다. 학하리는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중국일대를 방랑하며 주역과 관상 그리고 수많은 비결을 입수한 해운은 그것을 탄허에게 주었다. 김일부의 정역은 매우 난해하다. 주역에다가 하도낙서, 음양오행, 십간십이지, 고천문학, 사서삼경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진 책이라 이를 알아야 이해가 가능하다. 


정역의 요점은 지축이 바뀐다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어마어마한 거대 담론이 후천개벽설이다. 365일이 360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구상의 총체적인 변화가 뒤따른다. 그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이 물속에 침몰한다는 것이다. 지축이 바뀌면 북극의 빙하가 녹아 일본과 동해안이 가라앉고 반대로 서해안은 올라와 육지로 변한다고 전망했다. 탄허스님이 밝혀놓은 그 예언이 주역선해 교림출판사 1982 3권 마지막 부분인 427쪽에 나온다. 김일부는 1880년 중반 정역을 완성하고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일본이 망한다는 예언을 한 것이다. 


탄허의 출가전 속명은 김탁성이다. 


김제 만경읍의 대동리 김씨 집안이다.아버지 김병일은 독립운동을 했고 민족종교에 가담했다. 당시 만주로 간사람이 총을 들고 싸웠다면 민족종교에 간사람은 주역에서 이야기하는 세상의 변화와 정역의 후천개벽에 인생을 걸었다. 해방이후 사회주의가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세대의 자손들이 좌익에 적극가담했다. 아버지 세대가 미신적인 후천개벽 운운하다 인생을 망쳤다 하면 우리대의 자손은 미신이 아니 과학적 사회주의를 가지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래서 왜정때 계룡산, 모악산 등지에서 민족종교 운동을 하던 세대 자손들이 대부분 좌익을 했다.


주역이나 마르크시즘이나 세상을 바꾸는 교과서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전자는 미신적 후자는 과학적방법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1980년 적극적으로 운동권에 가담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1990년대 입산수도로 돌린 사람들이 많다. 


秘訣 은 VISION을 내포한다. 비결은 결국 미래를 예언하는 작업이고 비전도 역시 미래를 이야기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국 산으로 가야 비전을 얻는다는 것이다. 산에 가면 비전 뿐아니라 마운틴오르가즘까지 부수적으로 얻는다. 산과 인간이 하나가 되었을때의 느낌을 말한다. 한국은 세계최고의 산국이다. 산국이란 의미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산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말이다. 


마운틴오르가증은 건강과 영성을 지향하는 목표이다. 

 

▲ 풍수에서는 산의 형태를 오행의 형태로 설명한다. 종교인들이 기도를 하면 기도발이 잘 받는 산이 화체(火體)의 산이다. 

불꽃처럼 끝이 뾰족뾰족한 산이 화체의 산으로, 영암 월출산(위 사진)이 대표적이다. 


 

음양오행으로 보는 산의 관상과 격국  


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산마다 관상이 다르고 격국이 다르다. 산의 관상과 격국을 인수분해하는 공식은 음양오행이라는 패러다임이다. 산은 음산과 양산으로 구분해 본다. 음산은 육산 대표적으로 지리산 오대산이고 양산은 골산으로 설악산, 가야산, 월출산등등 이다. 이런 바위산에는 불교의 사찰과 도교의 도관들이다. 바위로 이뤄진 산은 악산인데 지기가 강해 일반인이 살기 좋지않다. 그러나 정신수련자가 살기 좋다. 양산은 화강암이 주종을 이루고 바위중 강한바위가 화강암이다. 


화강암에서 나오는 지기는 사암이나 현무암보다 강하다. 비전을 얻으려면 화강암 산으로 가야 한다. 계룡산도 화강암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계룡산은 모두 통 바위로 되어있다. 통 바위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산 전체가 바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력한 지기를 발산한다. 

 


접신이란 무엇인가 


태극도설에 사시합기서 일월합기명 귀신합기길흉 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는 곧 길흉을 미리 알려면 귀신을 이용해야 한다. 


이성과 감성위에 영성이 있다. 앞으로 영성이 주목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한국사람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자본은 이 영성이다. 적어도 5천년 쌓아온 두터운 지층이 있다. 문제는 무성을 영성으로 승화시킬 자질이다. 자질의 핵심요건은 봉사정신이다. 


심령과학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에 빌면 이 고조부는 나의 보호령이다. 즉 수호천사이다.  


물은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매우 훌륭한 수단이다. 계곡의 물소리도 좋지만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해조음소리가 천하일품이다. 철썩 철썩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의식을 집중하면 삼매의 깊은 경지에 들어간다. 


관음의 숨은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음이란 소리를 관한다(집중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유명한 관음도량이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있는 것이 이때문이다. 동해안 낙산사의 홍련암, 서해안 석모도의 보문사, 남해안의 보리암이 모두 해조음을 잘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우리가 보통 역술이라 말할 때 그 범중는 주역과 사주명리학이 모두 포함된다. 역술의 대가는 양쪽모두 조에가 깊은 사람을 말한다. 주역은 8괘를 기본으로 64괘를 조합해 인간과 세계를 예측한다면 사주명리학은 십간십이지를 기본으로 한 육십갑자를 가지고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방법이다. 양자의 공통점은 예측을 위한 방법론이다, 차이점은?주역은 음양에서 출발해 사상 사상에서 팔괘 팔괘에서 육십사괘로 뻗어나가는 방식이다. 이를 수로 표시하면 그 뻗어나가는 방식이 명료히 드러난다. 


반면 사주명리는 숫자로 표현하기 어렵다. 육십갑자 모두를 음양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오행으로 곱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첨가되는 부분이 생년 월 일 시라는 네기둥이다.그래서 사주 보기가 훨씬 복잡하다. 주역은 어떤사람의 점을 칠때 지금 당장만 필요하지만 사주로 볼때는 년 월 일 시가 모두 필요하다. 주역이 압축적 결론을 내리는 장점이 있다면 사주는 서사적인 전망에 유리한 장점이 있다. 

 


주역을 대하는 세가지 입장 


주역은 기원전 5세기 이전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해 왔다. 주역에 대한 입장은 세가지 첫째 점서 상수학 송대 소강절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저서 황극경세서는 상수학적 입장에서 우주변화를 설명한 명저이다. 후천개벽이라는 한국의 민족종교자들에게 소강절의 상수학이 이어져 내려온다. 조선에서는 서경덕 이토정 이서구 김일부 김일부의 영향으로 후천개벽을 주장한 민족종교 지도자들은 동학의 최수운, 모악산의 강증산, 원불교의 박중빈을 예로 들 수 있다. 


두번째는 도덕적 입장. 점을 쳐서 미래의 길흉을 예측하는 것은 괴력난신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보고 여기서 벗어나려 했다. 괘를 보고 자기의 마음을 수양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자기수양의 차원에서 주역을 보고자했다. 송대의 정이천이 대표적이다. 조선중기 겸암 류운용이 있다. 


세번째는 도교의 내단적입장이다. 외단의 반대말이다. 외단은 유황등을 제련해 만든 불사약을 지칭하면 내단은 외부의 약물이 아닌 내에서 단을 찾았다. 인체 내의 하단정에 기를 모으는 방법이 진짜 신선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았다. 단전호흠을 중시하는 단학의 입장에서 주역을 본 것이다. 내면의 연금술을 설명한 책이 위백양의 주역참동계 오늘날도 단학의바이블로 존중받고 있다. 


조선은 주역의 나라였다. 식자층이라 하면 모두 주역에 골몰하였다. 주역은 이과에 관한 책이다. 사서는 암기하면 되지만 주역은 응용과 분석을 요한다. 더 들어가면 이과에서 다시 문과로 되돌아 온다. 


주역을 이해하려면 하도와 낙서 그리고 팔괘와 육십사괘의 수많은 조합을 파악하고 이를 실전에 적용하기까지는 대단히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야 한다. 주역을 했다는 이는 많아도 이를 실전에 응용하는 이가 매우 희소한 이유는 이처럼 공부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부패한 현실정치에 절망한 재야의 뜻있는 선비들은 주역을 가지고 시대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변화에 미리 대비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주역은 변혁을 꿈꾸는 이들의 성경이었다. 한자문화권 식자들은 주역 당시 사마천의 사기가 필수과목이었다. 주역은 철학 당시는 문학 사기는 역사이다. 


야산 이달1889~1958은 근세 한국주역사의 특출한 존재이다. 주역이란 무엇인가, 주역을 공부하면 어떤 능력을 갖게 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고 간 분이다. 아울러 주역이란 공부할만한 학문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간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근세 주역의 대가인 김일부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인물이 바로 이야산이다. 


김일부가 후천개벽에 초점을 둔 거시적 주역이라면 야산은 일상사에서 주역의 원리를 적용하는 미시적 주역에 능통했다. 김일부를 쳐다보면 우주사의 변천이 느껴지고 야산을 보면 시계바늘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은 정밀함이 감지된다. 


야산에게는 5남1녀가 있다. 사남 이이화는 토종 역사학자로 유명하다. 삼남 간화의 아들이 이응국, 이응문이다. 형인 이응국은 의리적해석이 밝다면 동생인 이응문은 상수적 해석에 능하다. 대둔산 석천암의 108제자 - 대둔산은 화강암이다. 야산이 자신의 학문의 포부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공개한 곳은 대둔산이다. 이후로 주역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야산의 생년월일은 1889 음력9월16일 진시 

 


관상의 세계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거사 출가하지 않고 재가에서 불교수행을 하는 남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거사가 주는 매력은 비승비속이다. 승도 아니고 속도 아니다. 뒤집어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까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다. 승의 세계가 지닌 신비도 탐구하고 세속의 저잣거리의 치열함도 아울러 맛볼 수 있다.  


유교에는 처사가 있다. 재야에서 학문과 도덕에 힘쓸뿐 벼슬에 나가지 않는 선비를 처사라 부른다. 남명 조식이 한국을 대표하는 처사이다.   


도교에서는 술사이다. 학이 이론이라면 술은 이론을 현실에 적응하는 방법이다. 한자문화권의 술사의 가장이상적 모델은 초한지에 나오는 장량이다. 술사는 광범위한 공부를 해야한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보고 그 사람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파아하는 힘이 바로 지인지감이다. 지인지감을 갖추기 위한 필수가 관상이다. 관상은 얼굴에 나타난 현상을 통해 그 사람의 심상을 읽자는데 목적이 있다.   


전주에 사는 황산 김동전 술사의 맥을 이어가는 이다. 


관상이란 좁은의미로는 그사람의 얼굴만 보는 것이고 넓은 의미로는 얼굴을 포함해 체격, 걸음걸이, 밥먹는 모습, 평소의 행동거지, 잠자는 모습, 목소리까지 포함한다. 정확히 보려면 어느정도 그사람과 생활해 보아야 한다. 관상은 중국의 의학서로 사용되던 영추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관상을 보려면 의학에 밝아야 한다. 


관상의 기본은 관형찰색이라고 한다. 관형이라는 것은 그사람의 이목구비이다. 이목구비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찰색은 얼굴의 빛깔을 보는 것인데 이는 수시로 변한다. 기찰은 얼굴에 표출되지 않은 기까지 볼 수있어야 한다. 이는 관상가의 정신수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신수련 없이는 기찰이 불가능하고 기찰이 불가능하면 관상의 핵심을 놓치는 수가 있다. 따라서 기찰이 가장 어려운 경지이다. 


기찰을 하려면 어느부위까지 보아야 하는가? 눈이다. 눈을 보면 그사람의 현재상태 그리고 잠재적인 가능성까지를 엿볼 수 있다. 



하늘의 이치는 곧 땅에 나타난다. 

두암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 


자기 인생이 지금 몇 시에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한자문화권 천재들이 고안한 것이 사주 명리학이다. 


사주명리학이란 천문을 인문으로 전환한 것이다. 하늘의 문학을 인간의 문학으로 하늘의 비밀을 인간의 길흉화복으로 해석한 것이 이분야이다. 


한의학과 사주명리학은 상호호환성을 지니고 있다. 대병은 팔자에 타고나고 소병은 관리소홀이다는 명제이다. 그 사람의 원초적인 성격이나 기질은 타고 난다. 편벽된성격이나 기질이 오랜 시간 쌓이면 대병이 된다. 


대병이란 고질병을 지칭한다. 이고질병은 성격과 기질에서 연유한 것이고 그래서 사주팔자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자잘한 병은 후천적인 건강 관리 소홀로 걸린다. 


사주를 보고 병을 미리 아는 원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우리 인체의 중요한 장기는 오장이다. 이는 오행과 연결되어 있어 어떤 오행이 그 사람의 사주팔자에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거기에 해당되는 장부에 이상이 생긴다고 본다. 


천지인 삼재에 모두 적용되는 공통분모를 좁혀가면 음양오행이라는 거대 담론체계가 나타난다. 명리학과 한의학도 마찬가지이다. 하늘에 해와 달 그리고 별이 있듯이 땅에도 역시 거기에 부합되는 형상이 있고 인체의 장부에도 음양오행이 적용된다. 음양오행이라고 하는 여의주를 하나 가지면 사주, 풍수, 한의학을 하나로 꿸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시스템적 사고이다. 이걸 건드리면 저것이 움직인다. 이것이 동양사상의 특징이다. 그래서 동양사상은 시간이 필요하고 연륜이 필요하다. 전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기본전제가 되는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오행은 그 이상의 포괄적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서 이해가 쉽지 않다. 영어는 상업적 언어라 간단 명료하나 한문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다의적이다.  


이런 오행에 대한 확실한 이해의 책이 두암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 가 있다. 1966년 초판되어 40년가까이 스테디 셀러이다. 그의 사주는 1966 음력6월8일 인시이다. 


대전대 한의학과 대학원 석사논문인 '한동석의 생애에 관한 연구' 권경인 논문이 눈에 띤다. 


한동석의 외할머니가 원씨였는데 그 외할머니의 오빠가 이제마 밑에서 공부를 했다한다. 그래서 한동석의 집안에서는 이제마의 일화가 전해져 왔다. 이제마와 한동석 모두 이북사람이다. 이북사람은 실용적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시대 이북사람은 관직에 오르기 어려웠고 정치적으로 차별당했다. 


한동석의 사상적 뿌리에는 계룡산이 있다. 그가 가장 영향 받은 장소는 계룡산 국사봉밑에 자리잡은 향적산방이었다. 우주변화의 원리의 중요 골간인 지구의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음에 주목하는 정역사상이고 정역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향적산방을 출입하며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의학과 주역을 연결해 주는 공통고리는 음양오행이나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근취저신 원취저물의 사상이다. 가깝게는 자신의 몸에서 진리를 구하고 멀게는 사물에서 진리를 구한다는 사상이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가 따로 노는게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주역이다. 

 


황제내경 일만 독의 집중력 


한동석의 수도방법은 독경이었다. 황제내경의 운기편을 일만독가까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라운 집중력이다. 무조건 외우는 법이 정공법이다. 사자사지 귀신통지라는 말이다. 밤낮으로 생각하여 게으리 하지 않으면 활연하게 깨닫는 바가 있다. 선가에서 말하는 몽중일여; 꿈에서도 낮에 생각한 마음과 같음의 경지이다. 


조선후기 유가의 도인이었던 이서구가 서경의서문을 9천번 읽어서 이름을 서구라고 지었다 전해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동석의 파워의 진원지는 황제내경 1만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느니 염불한다는 말이 그냥나온말이 아니다. 



인생 바꾸는 법 6가지 - 삼성 사장단에 천기누설? 


삼성 사장들이 모여 ‘팔자를 고치는 법’에 귀를 기울였다.  


삼성 사장단은 16일 수요사장단회의에 조용헌 원광대 교수(동양학연구소 소장)를 초청, ‘삶을 개척하는 6가지 방법’이란 강의를 들었다. 조 교수는 사주, 풍수, 한의학 등에 정통한 사주명리학의 대가다. 


조 교수가 꼽은 6가지 방법은 


△적선을 하라(선을 베풀어라) 

△좋은 스승을 만나라 

△하루 한 시간 정도는 명상이나 기도를 하라 

△독서를 많이 하라 

△편안한 집에서 휴식을 잘 취하라 

△자기 자신을 알아라 등이다.  


조 교수는 “한국에서 500년 역사를 지닌 명문가를 살펴보면 공통점은 적선”이라며 “선을 베풀어야 집안이 잘된다는 얘기는 500년에 걸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생의 고비엔 가르침이 필요하다며 스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루 1시간은 차분히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져야 하며, 숙면할 수 있는 좋은 집터를 골라야 운이 트인다고도 했다. “좋은 집이란 숙면을 할 수 있는 집”이란 설명이다.  


독서광이 되라고도 주문했다. 조 교수는 “책을 읽으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 생기고 나쁜 운을 집에서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명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을 알고 쓸데없는 과욕을 부리지 말란 얘기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도 “사장들이 특히 ‘적선을 하라’는 말에 많은 공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취미로 등산을 즐기다 스님들과 가까워져 한의학, 풍수, 사주 등을 연구하기 시작해 불교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 그는 사주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사주명리학을 정립했다.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조용헌의 백가기행’ 등 많은 저서가 있다. 

- 한경.2012.05.


자료참고 :

http://blog.daum.net/secom08/5782784 

http://dmoo.tistory.com/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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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 역사를 바꾼 고대 농법의 수수께끼

요시다 타로 (지은이) | 김석기 (옮긴이) | 들녘




한국에서는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안철환 선생님에게서 "위험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전통농업의 본래 목적이다."라는 견해를 들었는데, 이 책을 쓰면서 세계 각지의 전통농업도 '생산성'과 '안정성'을 저울질했을 때 안정성과 지속성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효율이냐 위험이냐'라는 본원적인 질문은 농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칼럼에서 잠시 소개한 '회복력'이란 개념을 이 자리를 빌려 약간 보충하여 설명하고 싶습니다. 원자력발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의 선진적인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회복력이 화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력이란 자연재해와 재해 등의 충격을 받았을 때 공황을 일으키지 않고 유연히 대응하는 힘 또는 타격을 모두 흡수할 수 없어도 즉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 '극복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염된 하천과 호수도 오염 유입을 중지시키면 다시 정화되고 다친 사람도 세월이 충격을 완화시키듯이, 자연에도 사회에도 개인에게도 회복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복력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어느 한계를 넘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그림을 봅시다. 2009년 회복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지구 체계의 경계, 인류가 안전히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탐구하다'에서 발표한 그림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환경에는 아홉 가지 넘을 수 없는 한계(그림 안쪽의 선)가 있는데, 그 가운데 기후변화, 생물다양성의 감소, 질소순환의 변화는 인류의 부하로 인하여 이미 지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외의 두 가지는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기에 그 경고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의 생명은 38억년 전 탄생한 이후 전례 없는 대멸종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공룡의 멸종으로 유명한 2억 5000만년 전의 폐름기 말에도 모든 생물종의 90~95%가 멸종하는 등 지구의 역사에서는 과거 5번 정도 대량 멸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멸종 속도는 과거보다 100~1000배나 빠르고, 더욱이 이번 세기의 멸종 비율은 10배 이상으로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질소의 혼란도 심각합니다. 인간은 대기의 질소를 공업적으로 암모니아로 전환시켜 화학비료(8000만 톤/년)를 생산하고, 콩과작물을 재배하여 고정(4000만 톤/년)시키고, 화석연료를 연소(2000만 톤/년)시켜서 질소의 자연적인 순환을 교란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현재의 25%인 1년에 약 3500만톤이 한계라고 합니다.


인도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미네랄인데 인 오염으로 인한 부영양화로 작은 호수의 바닥이 산소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듯이, 풍화로 자연적으로 유입되는 양을 넘어서 바다로 인이 흘러 들어가면 '해양 무산소 사태'를 일으킵니다.


폐름기의 대량 멸종은 이것이 요인의 하나였다고 생각되는데, 겨우 20% 늘어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화학비료로 쓰려고 인을 1년에 2000만 톤이나 땅속에서 캐어 900만 톤이나 바다로 유입시키고 있습니다. 무산소 사태를 일으키는 22만 톤의 40배나 되어, 지금 유입되는 양의 1/10 이하로 억제하지 않으면 앞으로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농지 개발도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지구에서는 얼어붙은 땅을 제외하고 약 12%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그 이상 개발할 수 있는 곳은 앞으로 3%(약 4000억 평)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이상 개발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면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무리하게 개발하면 지구 표면의 에너지 균형이 변하고 제트기류에도 변화를 일으켜, 티베트의 기온과 강수량이 변화하며 중국과 인도의 수자원에도 영향을 준다는 모의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구는 안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위약한 체계입니다.


이 책의 칼럼에서도 소개한 캐나다의 생태학자 버즈 홀링 박사는 "지금과 같은 초밀도 정보사회는 사고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상태이다."라고 훨씬 이전부터 경고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홀링 박사의 경고 내용을 읽을 때마다 이번 일본의 원자력발전 사고도 미리 예언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건너뛰어 처음 방문한 한국에 대한 저의 첫 번째 인상은 옛날 일본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30년 전의 일본처러럼 전통적인 공동체의 장점도 남아 있고, 또 경제적인 경쟁력도 있으며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는 등 사회에 성장에 대한 꿈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편 지금의 일본은 세계화 속에서 공동체의 기반은 끊어지고, 경제적인 활력도 잃고 젊이이들도 경쟁에 대한 의욕을 잃었으며, 사회 격차는 벌어지고, 이번 원자력발전 사고로 더욱 몰락해 나아가지 않을까 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앞에 이야기했듯이 지구 환경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이 더 이상 경제성장을 하더라도 좋을 것이 없고, 한국도 실패한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그 뒤를 따를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살아가려면 에너지도 식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회복되지 않는 지구의 경계를 넘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계속 늘어나는 에너지와 물과 식량 수요를 충당하여 인류가 살아남을 것인가? 


회복력 연구의 대가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라이언 워커 박사는 그 해결책은 '효율화'에 있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효율화와 합리성으로만 돌진하면 위험이 높아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경고합니다.


이 책의 칼럼에서도 이야기하는 '영고성쇠' 곧 자연 생태계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을 무리하게 경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합니다. 홍수를 댐으로 무리하게 막더라도 언젠가 그것을 뛰어넘는 큰 홍수가 일어납니다. 산불을 계속 억제하면 타기 쉬운 낙엽이 쌓여서 오히려 큰불이 일어납니다. 해충의 발생을 농약으로 방제한다면 더욱 피해를 높입니다. 


세계 각지의 생태계를 연구한 회복력 연구자들이 제창하는 철학은, 기존의 서양적인 자원 경영의 발상과는 매우 다른 언뜻 보면 쓸모없어 보이는 '중복성(필요 최저한도가 아니라 중복되고 여분이 있는)'을 소중히 하라고 합니다.


이 '회복력'을 주제로 2005년 가을에는 영국 남부 데번주의 작은 마을 토트네스에서 기후변화와 석유 생산정점이란 '두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 사회의 회복력을 높이는 '소도시 전환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영국 각지는 물론 유럽 각국 및 오세아니아와 세계 각지에서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 생태학을 검토한 회복력 연구자들이 도출한 최첨단 공동체 만들기와 사회 관리의 결론이 우리 동아시아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은 김석기 씨의 전문이기도 한 '동양철학', 특히 노장사상과 묘하게도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이 책은 농법이 중심 주제인데, 만약 전통농법과 생태농업의 추진만이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버리고 에너지 절약에 노력하며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고, 금전적인 경제 성장이 아니라 문화적인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서울대나 연세대에 진학하기 위한 시험공부를 위한 학력이 아니라 예술과 음악을 누리기 위한 교양 육성을 목표로 하고, 또한 재해 등의 위험에 강한 사회 만들기를 국가의 목표로 삼으면 어떻까?


이야말로 회복력을 갖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모델의 하나가 오랫동안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쿠바입니다.


카트리나보다 강한 허리케인이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만전의 준비와 공동체의 상부상조에 의하여 쿠바에서는 거의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자 요시다 타로.




'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 귀농총서' 30번째 신작. 


고대 농업 기술과 선주민들의 지혜를 돌아보고, 장단점을 찾아 비판하고 또 수용하면서 그것들이 지금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살핀다. 또 지속가능한 인류사회를 위한 지속가능한 농경법을 다룬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국내에 이미 소개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의 저자이다. 그는 2010년 9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농수산대학과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쿠바의 전통농법,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을 소개했다. 그때 들녘출판사와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는 “전통농업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며 집필을 의뢰했다. 한·일 양국의 전통농업에 대한 관심이 빚어낸 역작이라 하겠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_변경 농업의 탐색을 권유

현대농업은 석유로 움직이는 공업이다 | 2012년을 경계로 문명은 전환한다 | 문명 전환의 열쇠는 변경과 고대에 잠들어 있다


Ⅰ. Back to the Future

1. 왜 생태농업과 전통농업인가

유기농업이 번성하기에 생태농업으로 전환 | 농업생태계의 구조를 활용한 생태농업

라틴아메리카에는 500가지 농법이 있다

2. 세계 농업유산

위기에 처한 전통 유산 | 인류에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은

3. 생태농업과 전통농업을 평가하는 국제평가

녹색혁명에도 유전자조작에도 미래는 없다 | 생태농업을 평가하는 유엔 식량 고문 | 구미의 농업사관을 넘어서

전통농법 칼럼1 왜 가을이 되면 산이 물들까 ―질소와 에너지


Ⅱ. 미래의 유산 ―마야, 아즈텍, 아마존, 잉카

1. 고대 농법의 부활로 마을을 되살림

농업의 근대화로 마을을 버리고 떠난 농민들 | 세계에서 가장 앞선 농법 밀파·솔라

2만 종의 옥수수를 보전 | 풀투성이 옥수수밭 |고대 수로의 부활로 토양침식을 막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사람들을 설득하다

2. 거대 도시를 부양한 물위의 채소밭



책소개


전통농업은 아직까지도 변경농업, 혹은 문명의 한계지에서나 가능한 농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탈석유화를 달성함으로써 생태농업을 정착시킨 쿠바, 재래품종을 적절히 섞어지음으로써 식량과 환경은 물론 홍수문제까지 극복한 아즈텍의 전통농업, 토종종자의 부활로 마을을 되살린 인도의 전통농업 등은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농법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이고, 토양침식을 막으며, 병해충을 방제하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서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릴 수많은 슬기가 깃들어 있다. 


이 책은 ‘고대 농업 기술’과 선주민들의 ‘지혜’를 돌아보고, 장단점을 찾아 비판하고 또 수용하면서 그것들이 지금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살핀다. 또 지속가능한 인류사회를 위한 지속가능한 농경법을 다룬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국내에 이미 소개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의 저자이다. 그는 2010년 9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농수산대학과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쿠바의 전통농법,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을 소개했다. 그때 들녘출판사와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는 “전통농업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며 집필을 의뢰했다. 한·일 양국의 전통농업에 대한 관심이 빚어낸 역작이라 하겠다.


전통 농업이 희망이다 

석탄도 원자력도 석유를 대신해서 공업사회와 현대농업을 유지할 만한 힘이 없다. 안타깝게도 석유 생산은 2012년을 기점으로 생산량이 정점에 달했다가 급하락할 전망이다. 따라서 종자 생산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농사의 전 과정을 석유에 의존하는 현재의 농경법으로는 인류의 식량을 담보할 수 없다. 하지만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미래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 요시다 타로는 “옛날로 돌아가면 좋은 것이 있을까, 전통 농업으로 모든 세상사가 쉽게 해결될까?”라고 물음을 던지면서 쿠바, 마야, 인도, 스리랑카, 뉴기니, 발리 등 각 나라의 전통 농업을 소개한다. 


전통농업이란 몇 천 년에 걸쳐 시행착오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복잡한 농업생태계 안에서 축적하여 온,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기술이다. 불행히도 과거의 이러한 뛰어난 지혜의 대부분이 선진국에서는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는 아직 수많은 노하우가 남아 있다. 그는 또 전통 농업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사례들을 충분히 소개하면서 현대 사회는 이제 ‘전체론’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즉 농업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삶 자체가 ‘전통으로 회귀하든지 근대 과학을 추진하든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벗어나 과학이든 사회든 경제든 ‘통합’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위험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전통농법의 본래 목적인 바 세계 각지의 전통농법도 ‘생산성’보다는 안정성과 지속성을 중시했음을 밝히고 있다. 


회복력을 갖춘 전통사회 

자연재해나 재해의 충격이 있을 때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고 유연히 대응하거나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을 회복력이라 한다. 자연과 사회, 개인에게도 회복력이 있지만 어느 한계를 넘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특히 기후변화·생물다양성의 감소·질소순환의 변화는 이미 한계를 뛰어넘었고,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농지개발도 한계에 이르렀다. 질소순환 및 농지개발의 한계는 인간의 에너지원인 식량생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세계 각국의 전통농업은 우리 인류가 오래 전에 잊어버린 공동체와 전통사회의 미덕을 일깨우면서 동시에 가장 생태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농경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멕시코의 밀파 농법, 아스테카의 치남파스 농법, 토종종자 부활로 마을을 살린 인도농업, 생산성과 생물다양성 보존에 성공을 거둔 스리랑카, 두둑을 이용한 이어짓기로 수확량을 보장한 뉴기니의 흙무더기 농법 등 고대 전통사회에서는 자연의 특성, 지역과 기후의 특수성을 십분 수용한 전통농업을 발전시켰다. 또한 이들 공동체의 일원은 자연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고, 다 같이 사는 사회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생산성에 목을 매지 않아도 공동체가 충분히 먹고 살만큼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명실공히 자연과 조화한 농경에 기초한 평등사회를 구현했다. 그야말로 자생력과 회복력을 갖춘 사회체계였고, 진정한 의미의 문명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변경 농업의 탐색을 권유하다

저자는"문명의 기초는 사람을 부양하는 먹을거리이다. 먹을거리를 낳는 것은 농법이다. 따라서 농법이야말로 문명의 요람이라 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메소포타미아가 염해鹽害로, 고대 그리스가 토양침식으로 멸망했듯이 문명의 중심지는 농법에 따라 변동한다. 20세기의 개막과 함께 시작되어, 평원을 지배한 석유농법도 석유생산정점(peak oil)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질 운명이다."고 주장한다. 또 유전자조작과 녹색혁명에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이제 전통농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 영화의 땅에 매장된 전통농업에서 미래 문명을 뒷받침할 농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통에 묻힌 슬기를 되찾아오는 것, 고대인의 지혜를 재발견하는 것은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시대착오적인 노스탤지어도 아니다. 환경 파괴, 인구 증가, 빈부 격차, 빈곤의 증대 등 목전에 다가온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 석유생산정점과 함께 도래할 총체적인 전 지구적인 위기를 탈석유 시대 농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보면 어떨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문명의 돌파구는 정녕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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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서 발견한 과학

흔히 비판적 사회의식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한의학에 친밀도가 높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 중에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한의학적 치료를 선호하는 것만이 아니고 직접 한의대에 들어가 한의사가 된 사람이 적지 않다. 한의학 이외에도 한의학과 뿌리를 같이 하는 단전호흡이나 여러 가지 기공 수련을 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단순한 민족적 의식의 발로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배웠던, 그리고 지금도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근대 서양적 가치관이다. 이에 비해 한의학은 전근대의 동양(정확하게는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이론이며 그 동안 한의학 자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의 근간이 되는 세계관과 방법론은 아직도 전근대의 동양이다. 
 
따라서 오늘날 제도권의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한의학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필자 자신도 한의학을 처음 접하면서 느낀 당혹감은 일반적인 상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필자는 3대째 한의학을 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에 비해 한의학적인 분위기에 익숙했음에도 막상 들어가 본 한의학의 세계는 너무도 이질적인 것이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대부분 한의대에 들어간 학생들은 최소 1-2년의 방황기를 갖게 되고 때로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자퇴하거나 그럭저럭 졸업을 하더라도 한의학의 진수에 다가서지 못하고 무늬만 한의사인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정을 필자는 오래 전에 이렇게 쓴 적이 있었다. 
 
나의 직업은 한의사다. 한의대가 없는 대학 출신으로는 좀 드문 직업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경제과를 나와 한의학이라는 매우 생소한 분야를 접하면서 당혹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부딪친 것이 그때까지는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나의 인식 체계가, 한의학이라는 거울에 비춰지면서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대상화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어색한 것이기도 하였다. 학문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인식 행위를 스스로 대상화하고 느껴야 한다는 것은 어색함을 넘어서 괴롭기까지 한 일이다. 
 
그전까지는 음양(陰陽), 오행(五行), 기, 천지인(天地人), 우주, 운기(運氣) ... 이 모든 것들이 ‘이상한 것들’로써 ‘비과학적인 어떤 것’ 아니 별다른 관심의 범주에조차 끼어들지 못했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책 속에서는 물론 강의실과 진찰실에서 언제나 논의되고 이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런 당혹감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걸로 밥 벌어먹어야 한다는 비감한(!) 현실 앞에서 우선은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외우고 시험보고 나면 빨리 지우고 또 외우고 ... 그것도 서양 과학과 서양의학을 포함하여. 이런 세월이 지났다. 가뜩이나 외우는 데는 재주 없던 나에게는(그 열등감을 없애기 위하여 나는 늘 외우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고 늘 주장해 왔던 터였다) 너무도 과중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날로 먹어만 가는 나이와 이에 비례해 늘어만 가는 주력(酒歷+酒力)은 나를 더욱 곤경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논리들을 받아들이면서 점점 나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바로 그 ‘이상한’ 논리나 개념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아니었던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기가 막힌다” “감기(感氣) 걸렸다” “간(肝)이 부었다” “대담(大膽)하다” “비위(脾胃)가 좋다” “간담(肝膽)이 서늘하다”는 말들은 정확히 한의학 용어이면서 동양 사상의 바탕에서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융해되었던 말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한의학은 아니 동양 사상은 이질적인 어떤 것으로 바뀌어 버렸는가.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와 있는가. 피클은 감칠맛이 나지만 김치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치즈는 감미롭고 된장은 구린내가 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더욱 더욱 나를 혼란시킨 것은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과학’이 바로 그 이상하던 한의학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기존의 과학관을 포괄해 버리는 거대한 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는 한의학으로도 난치병을 고치는 수가 있고, 양방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면도 있고 하는 따위의, 그야말로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격으로 한의학에도 ‘어쩌다 과학’이 있다는 식의 발견과는 정반대로, 한의학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오늘의 의학은, 나아가 모든 과학은 진정한 과학에서 점점 멀어질 뿐이며 새로운 과학의 기초는 바로 한의학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는 발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김치와 된장이 아닌 피클과 치즈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더욱 심각하게는 왜 이런 사실조차가 여태껏 아무런 반성 없이 숨쉬듯 당연한 사실로 받아 들여져야 했는가 하는 충격이 나를 사로잡았다. 여기에는 ‘제국주의의 논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는 곧 주체의 문제이다.

지금 ‘집’이어야 할 우리의 집은 ‘집’이 아니라 ‘한옥’이라 해야 하며 옷도 ‘한복’이고 의학도 ‘한의학’이다. 서양의학을 일상생활 속에서 ‘양의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도 불편해져 버린 현재의 기원은 제국주의에 있지만, 이를 생명의 양식으로 생활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 것이 최고라는 고루한 국수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 것도 좋으니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는 저급한 절충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과학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밀한 부분을 보되 완전한 전체를 놓치지 않는 과학, 격렬한 투쟁을 보되 궁극적인 조화를 지향하는 과학, 정신과 물질을 통일하여 이론에서나 실천에서나 하나인 과학을 찾자는 것이다. 이것의 가능성을 한의학에서 본다.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을 한의학에서 본다. 
 
물론 그러한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요즘의 일이고 당시로서는 말 그대로 ‘가능성’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신경(神經) 개념의 도입과 기

“똑같은 몸을 보고 똑같은 병을 치료하면서 한의학과 근대 서양의학은 왜 그렇게 다른가? 혹은 서로 합쳐질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과 병을 보는 각 의학체계의 관점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한다. 두 체계의 관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니면 동일한 것인지를 밝히지 않는다면 위의 질문에 적절하게 답할 수 없다. 
 
모든 이론에는 그 이론이 탄생하고 실현되는 바탕이 되는 각자의 시대와 사회의 각인이 찍혀 있다. 이론의 사회 구속성이라는 말처럼 사회를 떠난 이론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볼 때 사회의 성질은 전근대와 근대를 경계로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근대 사회는 경제적으로 생산주체를 생산수단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사회적으로는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근대 사회가 완성한 근대적 분업은 생산과정에서 전체와 부분을 분리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식체계를 포함하여 문화, 예술 등 사회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게 된다. 이제 봉건 사회를 유지시켰던 자기 완결적 구조나 유기적 총체라는 개념은 생산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성립될 수 없게 되었다. 
 
근대 사회는 전체와 부분을 분리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체와 대상도 분리시켰다. 생산주체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소유관계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다. 생산수단으로부터 생산주체가 분리됨으로써 생산주체는 생산수단을 나와 분리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보게 된다. 근대 사회는 우리의 인식 자체를 변화시켰던 것이다.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차원에서 전근대 사회와 근대 사회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보통 내가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동일한 어떤 정치적 사건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다른 것처럼, 언뜻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몸과 병에 대해서도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마치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보는 관점의 차이를 가져오듯이,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 하는 그 사람의 실천적 관점의 차이에서 온다.

본다는 것은 눈에 비치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저 한낱 돌멩이에 불과한 것을 아이들은 소중한 보물로 삼기도 하고, 스쳐가는 눈빛 하나에 짝사랑하는 상대는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결국 본다는 것은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의 문제이며 이는 곧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하는 실천의 문제다. 그 실천적 관점은 사회 구성원의 사회적 지위나 입장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론이 탄생한 시대에 따라서도 변한다. 
 
물론 관점의 차이가 대상 자체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체와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라는 관점과, 주체와 본원적으로 결합된 대상이라는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상은 여전히 동일하다. 
 
권력의 한 형태인 의학은 역사상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왔으며 오늘도 변하고 있다. 권력은 단순히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타인에 대한 배타적 지배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권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실현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인정은 물론 그 사회와 그 사회의 바탕이 되는 자연에 대한 관계까지도 지배해야 한다.

정치가 자연에 대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그 권력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는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은 물론 자연과학까지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는다. 
 
이런 전제하에 이 글은 동양의 전근대 사회에 ‘신경(神經, nerve)’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특히 ‘기(氣)’ 개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한의학(漢醫學)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한다.


마음, 몸, 신경 그리고 근대적 개인의 탄생

한의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여기에서는 논의의 편의상 ‘한의학(漢醫學)’을 동양, 특히 한중일 삼국의 전근대사회에 탄생하여 실천된 의학체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한정해서 사용하고, ‘한의학(韓醫學)’은 현재 실천되고 있는 다양한 내용을 지칭하기로 한다. 이하 이 글에서 사용된 한의학은 따로 한의학(韓醫學)으로 지칭하지 않는 한 모두 전근대 사회에서의 한의학을 말한다. 
 
 
번역의 어려움 
 
번역(飜譯)은 말 그대로 뒤집는 것이다. 뒤집어서 뜻을 가리는 것, 고르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번역의 대상이 되는 언어가 특정 시대와 사회라는 바탕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쏘싸이어티society’라는 말은 오늘날 ‘사회(社會)’로 번역된다. 물론 사(社)와 회(會)는 기존에 있던 말이지만 ‘사회’처럼 연용해서 쓰인 예는 드물며 더욱이 오늘날의 사회라는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사(社)’는 원래 토지의 신을 의미하여, 새 왕조를 세우면 반드시 토지의 신인 ‘사’와 곡물의 신인 ‘직(稷)’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사직(社稷)은 곧 국가를 의미했다. 행정단위로는 25가(家) 또는 사방 6리(里)를 ‘사’라고 했다. 조선 중기 한 ‘가(家)’의 구성원 수가 100-200명을 상회하기도 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미암 유희춘의 경우) 그런 ‘가’가 25개씩 모여 있는 ‘사’는 매우 큰 조직인 셈이다.

또 사회에서의 ‘회(會)’는 원래 고기와 같은 음식을 담아 요리를 할 수 있는 그릇을 의미하며, 여럿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는 데서 모인다는 말로 뜻이 넓어졌다. 이처럼 ‘사’와 ‘회’는 각각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만들어진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든 좁은 의미에서든 전근대 사회에 도입된 ‘사회’라는 말은 근대적 개인의 결합을 기반으로 한 관계에서 형성된 관계를 말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전근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근대적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번역어들이 당시에 이해되기 힘들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전근대에서의 사회는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가(家)’의 결합이었고 그것도 봉건제를 바탕으로 하는 결합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자(自)’나 ‘기(己)’라는 단어는 있었지만 그것은 독립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가’에 속한 구성원으로서의 개별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었다.

특히 나를 가리키는 ‘아(我)’ 자의 어원은 낫처럼 생겨서 벨 수 있는 무기인데, 글자 속의 ‘과(戈)’는 적이 아니라 아군 혹은 공동체 내의 배반자를 처단하거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쓰였던 무기였고 동물을 희생(犧牲)으로 쓸 때도 썼다. 희생 역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아(我)’는 오늘날 나를 의미하는 글자지만 원래의 의미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글자였던 셈이다.

따라서 전근대에서 ‘가’를 떠난 개인은 있을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의 ‘호적을 판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로서는 호적에서 빠지는 것은 곧 사회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육체적인 죽음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전근대 ‘사회’에 근대적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가 있었던 것처럼 착각한다. 
 
‘자연’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전근대 문헌에서 자연은 오늘날의 ‘네이춰nature’의 번역어가 아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 자연스러움이라는 의미로, 여기에는 오늘날의 자연도 포함되지만 그것은 더 넓은 개념이다.

외부에서의 충격이나 자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운동을 하면서 거기에 일정한 법칙, 곧 도(道)를 실현하고 있는 것, 그러면서도 그 실현이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자연이다. 그러므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고 하면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의미로, 도는 자연에서, 스스로 그러함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는 의미다. 
 
또한 전근대의 ‘자연’은 명사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도 주체인 나와 분리된 대상이 아니다. 곧 ‘자연’은 주체와 대상의 합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전근대의 ‘자연’은 이를테면 내 몸 속으로 들어온 자연이며 내 마음까지 투영된 자연이다. 이에 비해 ‘네이춰’는 주체와 대립하는 대상이면서 정신과 대립한다. 
 
기(氣)의 경우는 번역의 어려움이 더 크다. 우리는 ‘氣’를 그냥 ‘기’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vital force’ 혹은 ‘vital energy’ 등으로 번역한다. 영역에도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氣’를 ‘기’라고 그냥 말하는 것보다는 한 단계 올라선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역된 용어는 적어도 기를 외국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외국어로 인식하는 것과 자국어로 인식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외국어로 기를 보게 되면 적어도 기를 반성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설혹 기 본래의 의미는 알 수 없거나 일면적인 이해에 그친다고 해도 대상을 대상화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氣’를 모국어로 보게 되면 ‘氣’ 본래의 뜻과 기존의 모국어로서의 기의 뜻이 뒤섞이게 되어, 마치 ‘nature’를 자연이라고 번역하면서 본래의 ‘自然’이라는 뜻을 혼동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점에서는 차라리 ‘Ch'i’ 같은 방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 
 
번역이 어려운 것은 어학상의 단어나 문법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려운 영어나 한자 단어 때문에 해석이 안되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문법을 잘 몰라서 해석이 안되는 것만도 아니다. 번역이 어려운 것은, 사실은 번역이 될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용이란 곧 그 글을 사용하는 사람의 인식 체계를 말한다. 바로 이 인식체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번역에 어려움이 생긴다. 
 
위에서 말했던 기를 예로 들어보자. 
 
기는 무엇인가. 많은 정의가 있어왔지만 오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근대 서양과학의 인식, 곧 대상은 주체와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인식과 대비하여 말한다면, 기는 주체의 몸으로 느끼는 현상이며 이런 점에서 신체적 인식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를 에너지로 정의하든 물질로 정의하든 아니면 물질도 정신도 아닌 어떤 신비한 것으로 정의하든 기는 몸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는 객관적으로 주체와 독립한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몸을 통해서만 느껴지는 어떤 것이다. 이런 관점은 사실 전근대 사회에서는 동서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리고 근대에 와서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일상적인 삶에서 우리는 오로지 생산과 유통과정, 곧 교환가치를 만들고 그것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의 경제활동(직업으로서의 정치나 외교 등도 포함된다)과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이론 작업, 곧 근대 서양과학(자연과학은 물론 인문과 사회과학을 포함한다)의 학습과 그 실천과정에서만 대상을 객관화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제외한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대상이 객관화되는 일은 없다. 특히 소비에서는 철저하게 대상과 하나가 되어 소비한다. 교환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 당신과 이제는 사용가치를 즐기기 위해 떠나야 하는 당신이 완벽하게 분리된다. 교환가치의 생산을 위해 머무는 곳(이곳도 자연이다)과 사용가치를 즐기기 위해 머무는 곳(이곳도 자연이다)도 분리된다. 
 
인간관계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아무도 어머니나 아버지, 가족은 물론 친분관계를 갖는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몸무게 몇 킬로그램에 키 몇 센티 등으로 수학화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모든 것이 대상화된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렇게 일상의 삶과 사회적인 삶이 분리됨으로써 사람들은 교환가치의 생산을 위해 일할 때는 자신을 하나의 동물, 기계로 느끼고 그 일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사람임을 느낀다. 일은 그 일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전근대에서의 자연은 나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 몸을 통해 느껴지는 대상이다. 다시 말해서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대상이다. 이런 점에서는 대상이라는 표현도 사실상 부적절하다. 동서양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보통 대우주(자연)와 소우주(몸)를 말하는데, 이런 발상은 바로 자연과 몸이 하나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고 작은 차이, 다른 말로 하자면 위계질서는 있어도 모두 하나의 우주일 뿐이다. 
 
기를 제대로 번역하려면 바로 이런 인식의 차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번역하려는 사람은 물론 번역된 글을 읽는 사람도 이런 인식의 차이를 이해할 때 그 말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 서양의 근대적 용어를 번역하면서 생긴 혼란과 어려움은 바로 이런 인식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다. 

 
신경(nerve)이라는 역어는 무엇을 도입했는가 
 
이제 ‘신경’이라는 말이 어떻게 도입되어 번역되었는지를 보자. 
 
1815년에 발행된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의 중영사전 1권은 ‘nerve’ 라는 영어를 중국에 소개한 최초의 책이다. 그는 기(氣)를 ‘nervous fluid’라고 번역했다. 기를 신경의 흐름(액체)으로 이해한 점이 특이하다. 모리슨의 기에 대한 이해 방식은 고체로서의 신경이 아니라 신경과 연관을 갖는 액체이다. 이는 기의 한 측면, 곧 몸 안에 흐르고 있는 무엇이라는 기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비해 1851년에 벤자민 홉슨은 전체신론에서 신경계를 중국어로 최초로 번역하면서 신경을, 뇌의 활력을 전달하는 건(腱), 또는 근육이라는 의미에서 뇌기근(腦氣筋)으로 번역하였다. 모리슨의 번역과 비교해보면 여기에서는 액체라는 개념이 배제되어 있다. 
 
홉슨이 신경을 뇌기근으로 번역한 것은 분명히 선교상의 이유에서였다. 홉슨은 인간이 느끼는 모든 의식과 경험, 감각은 모두 신경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말함으로써 그때까지 모든 의식과 경험, 감각이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性)이며 이것이 사건을 통해, 곧 몸과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 정(情)으로 드러난다는 인식체계를 부정한 것이었다. 이는 뇌를 정신의 본원으로 내세우기 장치였다.

이를 더 설명하기 위해 홉슨의 말을 들어보자. 
 
“눈에 뇌기근[신경]이 없으면 볼 수 없고, 귀에 뇌기근이 없으면 들을 수 없으며, 코에 뇌기근이 없으면 향과 악취를 가릴 수 없고, 혀에 뇌기근이 없으면 달고 쓴 맛을 알지 못한다. 온몸의 손발이 아픔과 가려움, 차고 뜨거움, 부드러움과 단단함, 껄끄러움과 미끄러움을 알고, 고금을 기억하고 만사에 응하는 것은 뇌가 지도하지 않음이 없다.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뇌는 머리뼈 안에 있는데 어떻게 온몸을 운용할 수 있는가?” 나는 이렇게 답한다. “뇌는 매우 높은 곳에 있어 한 몸의 주재자이다. 다만 그 기근이 새끼처럼 줄처럼 실처럼 나뉜 것을 함께 ‘뇌기근’이라고 말하니, 모두 온몸을 휘감아 5관(五官)·백체(百體)·피육(皮肉)·근골(筋骨)·장부(臟腑)의 내외로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온몸은 뇌가 시키는 것을 따르고, 뜻에 어긋남이 없게 하니 만일 손과 발과 살의 뇌기근이 망가지면 폐해져 쓸 수 없다.”(合信, '全體新論', 8 '腦爲全體之主論') 
 
“모든 사람의 영혼은 두뇌의 가운데 있고 영혼은 묘하게도 바탕이 없이 온몸의 뇌기근을 빌어 그 쓰임을 운용한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피차 모두 같으니 그 쓰임은 눈에 볼 것이 있으면 뜻하여 보게 하고, 귀에 들을 것이 있으면 뜻하여 듣게 한다. 언어 또한 이와 같고 행동 또한 이와 같다.”(合信, 앞의 책, 40 '靈魂妙用論')
 
여기에서 홉슨은 전통적으로 사고와 생명은 심장이 주관한다는 심주설(心主說)을 부정하고 뇌주설(腦主說)을 내세운다.

그는 자율신경의 작용을 예로 들면서 “뇌기근이 있어서 항상 스스로 행동할 수 있으니, 그 작용은 사람의 뜻이 명령함을 기다리지 안는다”(合信, 앞의 책, 8 '腦爲全體之主論')고 말한다. 나아가 홉슨은 “폐가 항상 호흡하고, 심장이 항상 열리고 수축하고, 위가 소화하며, 신장이 오줌을 만들고, 성기가 정(精)을 만드는 등의 이치가 이것이다.

충분히 잠에 푹 빠진 사람의 입에 물을 넣으면 입이 스스로 삼킬 수 있고, 그 발을 간질이면 그는 반드시 움츠린다. 그 눈을 들쳐서 불로 비추면 그 눈동자가 반드시 작게 수축하고 빛을 피한다. 이와 같은 종류가 뇌근이 스스로 감각하고 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기력(氣力)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니, 또한 그 사람의 의지가 아니다”(合信, 앞의 책, 8 '腦爲全體之主論')라고 말한다.

이제 사람은 마음과 분리되지 않은 몸으로 대상이 나에게 작용하는 효과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율신경이 그러한 것처럼 나라는 주체와는 별개의 객관적으로 독립된 물질, 곧 신경에 의해 느끼는 존재가 된다. 이 신경은 영혼이 작용하는 기틀이다. 
 
홉슨은 영혼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각오(覺悟)’로, 대상에 대해 이해하고 분별하며 사려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심성(心性)’으로, 욕망이나 바람, 성정(性情), 의지 같은 것이다.

영혼은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어서 태어나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위로 올라가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 벌을 받는다. 영혼을 더럽힌 사람은 문둥병 같은 병에 걸린다. 그리스도는 영혼의 좋은 의사이고 '성서'는 좋은 약이다. 그러므로 이 영혼은 신(God)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 
 
선교사로서의 홉슨의 목적은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홉슨이 신경(뇌기근)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식체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전근대 사회에서의 기(氣) 
 
전통적으로 인식의 출발점인 ‘의(意)’는 마음[心]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靈樞 本神第八)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心]은 외부의 대상과 접하여 반응하고 작용하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은 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心]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마음이 외부와 작용하는 통로가 아홉 개의 구멍[구규(九竅), 곧 눈, 코, 입, 귀, 항문, 요도]이며 이런 통로를 통해 나는 외부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외부를 느낀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아홉 개의 구멍은 내 몸의 기가 외부의 기와 상호 교통하는, 교제하는 곳이다.

이 교제는 몸 내외의 기를 전제로 한다. 사물은 빛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몸 안에 빛을 볼 수 있는 기가 없으면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없다.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한다”는 표현은 몸에 대한 이런 인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런 안 밖의 교제 과정을 통해 몸으로 느끼는 효과가 바로 기이다. 곧 기는 몸 밖의 대상이 나에게 작용하는 힘이나 작용(이것도 기이다)이 몸 안의 기와 작용한 결과 효과로서 느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외부의 기와 내부의 기가 상호 작용한 결과다. 예를 들어 전근대 사회에서 음식의 성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기미(氣味)가 있는데 여기에서 기는 차고 더운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때의 차고 더움은 그 음식 자체가 갖고 있는 객관적인 성질로서의 물리적 온도가 아니라 그것이 내 몸에 들어가 몸 안의 기와 작용하여(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사계절의 기에 의해 규정되면서) 내 몸에 차거나 더운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에서의 온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사물이 나를 미혹하게 할 수 있지만 그 유혹은 내 몸 안의 기와 작용하여 일정한 작용을 해야 느낄 수 있다(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작용의 결과 나타난 내 몸의 기를 상화(相火)라고 한다).

마음의 변화는 마음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몸이라는 기 덩어리의 변화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작용에 따른 변화나 효과를 느끼는 것은 특정한 몸의 한 부분이 아니라 몸 전체다.

다시 말해서 몸 자체가 하나의 기이기 때문에 외부의 작용은 그것이 음식이든 기후든 아니면 사건이든 그것 자체가 역시 또 하나의 기로서 내 몸의 기와 작용을 주고받게 되고 그 결과 변화된 기의 상태가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은 그것이 슬픔이나 기쁨과 같은 정서든(한의학에서는 슬픔이나 기쁨도 역시 하나의 기일 뿐이다), 아니면 판단과 같은 사고과정이든 모두 몸의 기라는 차원에서 설명된다. 
 
기를 이렇게 이해할 때 우리는 세계를 통일된 하나의 전체, 곧 기일원론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양념이 많이 된 음식을 좋아한다. 그 양념 중에서도 특히 매운 맛을 좋아한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때 자연을 내 몸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설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자연과 인간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다고 해도 자연은 자연 그 자체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위의 예에서 음식보관의 필요성 이상의 설명을 할 수 없다. 날씨가 덥기 때문에 음식이 쉽게 상하고 그러므로 음식을 소금에 절이거나 갖은 양념을 해서 부패를 막아야 한다는 식의 설명은 날씨와 음식과의 관계만을 고려하여 분석한 다음 사람을 거기에 결합시킨 것이다.

이런 설명은 자연을 주체인 몸과 분리시켜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분석한 뒤 소위 종합한 결과다. 그러나 이런 관점으로는 말리거나 훈제하는 방법도 음식보관에 유리한데 양념, 그 중에서도 왜 매운 맛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이에 비해 한의학에서는 더운 곳의 사람들이 매운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름과 같이 더운 날씨에는 사람의 몸속은 상대적으로 차게 된다(이를 복음(伏陰)이라고 한다). 날씨라는 자연은 이미 내 몸속에 들어와 있다. 거기에 따라 내 몸도 이미 변했다. 그러므로 내가 섭취할 자연은 아무 것이나 일 수 없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음양의 질서를 맞추기 위해 내 몸에는 필연적으로 속을 덥히는 자연이 필요하다. 그 자연은 매운 맛이다. 그러므로 더운 곳의 사람들은 음식을 말리거나 훈제하지 않고(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매운 맛을 중심으로 양념을 진하게 한다. 우리가 더운 여름에 삼계탕을 먹는 이유도 내 몸이 자연과의 교류를 통하여 닭고기와 인삼의 더운 기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설명 방식은 기일원론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자연이 분석과 종합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내 몸과 하나인 세계, 자연과 몸의 상호작용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 자연에 대한 실천이 곧 몸에 대한 실천이고 몸에 대한 실천이 곧 자연에 대한 실천인 세계, 그럼으로써 자연과 몸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서로 작용하면서 조화될 수 있는 세계(만일 조화되지 않으면 그것은 곧바로 병이라는 몸의 현상으로 나타난다)가 기일원론의 세계다. 

 
순환적 발전과 관계의 세계 
 
동양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모든 사물을 오행의 논리로 설명한다. 오행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의 양태를 각각의 성질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여기에서 분류라고 했지만 이 분류는 배제를 위한 분류가 아니라 그렇게 분류된 것들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분류다. 이는 생식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따라 하나의 종(種)을 다른 종과 구분하고 배제하는 근대 서양 식물학의 분류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세계의 모든 사물을 하나의 기로 보는 관점은 모든 사물을 그것이 생겨나 발전하고 성숙해져서 다시 쇠퇴하게 되는 일련의 순환과정으로 이해하게 한다. 오행에서 말하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는 현실의 나무나 불 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현실에서 하나의 기가 생장화수장(生長化收臧)하는 운동 양식을 정식화한 것이다.

생겨나서 자라며 무르익어 거두어지는 발전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눈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단계들은 서로에 대해 상대의 기를 낳아서 키워주거나[相生] 반대로 억누르는 작용[相克]을 한다. 예를 들어 사계절은 기후라는 하나의 기의 발전과정이지만 봄의 기는 여름의 기를 낳아 키우며[木生火] 여름의 기는 겨울의 기에 의해 제압된다[水克火]. 
 
또한 오행의 논리는 다양한 층차를 갖는 다양한 사물들을 다섯 단계의 기의 양태로 분류함으로써 같은 기의 발전단계에 있는 사물 사이에 마치 같은 음(音)이 공명하듯 동질적이면서 서로 작용하게 되면 그 기를 더 강화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다른 발전단계에 있는 사물 사이에는 낳아서 키워주거나 반대로 억누르는 관계를 형성한다.

이런 오행의 체계가 완성되면 이제 마음이나 색깔, 계절, 오장육부와 같이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가 기의 상호 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두렵고 무서운 감정은 여름의 기를 억누르기 때문에[水克火], 음양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공포영화는 여름에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마음과 몸, 그리고 신경 
 
마음의 경우에도 장기의 오행분류에 따라 예를 들어 성내는 감정은 간과 같은 기이고 기쁜 감정은 심장의 기와 같다는 식으로 배속된다. 같은 기라고 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때는 오히려 같은 기를 상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을 지나치게 내면 간을 상하게 된다. 이러한 작용은 상호 작용과 반작용이 가능한 열린 관계다.

따라서 간이 나빠지면 성을 잘 내게 된다. 다양한 감정 상호간의 관계 역시 오행에 따라 성립된다. 그러므로 성내는 감정은 슬픈 감정에 의해 누그러지게 된다. 이런 식의 관계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 사이에 성립하는 것이어서 이 세계가 하나의 기로 이루어졌다는 전근대의 사고가 완성된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마음과 몸을 나눈다는 것은 다만 기의 양태의 차이 혹은 기의 발전 단계의 차이를 나누는 것뿐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사유를 담당하는 뇌를 따로 설정하지 못한,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설정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유 역시 몸 전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뇌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그것은 생명의 근본 물질인 정(精)이 변화하여 만들어지는 수(髓)가 모이는 곳일 뿐이다.

전근대의 사유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두고 심주설(心主說)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심(心)은 사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역시 오장의 한 부분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의학에서의 사유는 몸 전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는 심주설이 아니라 몸주설(主說)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바로 이런 세계 속에 홉슨은 신경이라고 하는 객관적으로 독립된 물질을 도입함으로써 몸과 마음은 물론 세계는 기로 이루어졌다는 기일원론을 정면에서 부정하게 된다. 이제 세계는 상호 관계를 갖지 않는, 혹은 배제의 관계를 갖는 사물들의 세계가 된다.

홉슨이 도입한 신경이라는 개념과, 감각을 느끼는 몸과 관계없이 오로지 신경을 통해서만 작용하는 영혼이라는 개념은 바로 마음과 몸을 분리시키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기 개념의 부정이며 나아가 모든 전근대적 사고의 부정이었다. 

 
감각을 상실한 물질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의 성질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그에 따르면 물질의 제1성질은 물질에 속해 있으면서 인간의 감각기관의 인식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성질이다. 크기나 모양, 운동 등이 그러한 성질에 속한다. 이에 비해 물질의 제2성질은 인간의 감각기관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주관적인 성질이다. 여기에는 맛, 소리, 냄새, 색 등이 속한다. 
 
근대 서양의 과학은 데모크리토스가 말하는 물질의 제2성질을 배제함으로써 성립한다. 물질의 제2성질을 부정함으로써 자연은 주관적인 감각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수학화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대상을 양적(量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임의적인 작용을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표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기초다. 어떤 상품이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되기 위해서는 표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나아가 질적인 것도 표준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이 표준화되어야 한다. 특정한 색이나 냄새, 맛과 같은 것에 대한 인간의 감각이 동질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똑같은 입맛을 갖게 되며 입맛 이외의 다른 감각에서도 똑같은 대상에 대해 똑같은 느낌을 갖도록 강요당한다. ‘미스 코리아’라는 미(美)의 정형이 탄생하는 것도 이런 표준화의 요구다. 이제 사람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36-24-36이라는 숫자만으로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는다. 
 
거칠게 말한다면 인식 주체의 감각에 기초한 주관적인 물질의 제2성질은 상품의 가치라는 측면에서는 사용가치를 충족시키는 것이며 반면에 제1성질은 교환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가 말한 물질의 제2의 성질을 배제하면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유용한 쓰임이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교환을 위한 것으로 변한다.

그런데 어떤 상품이 다른 것과 교환되기 위해서는 거기에는 교환의 기준이 되는 동가(同價)의 무엇(동일한 단위)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환원되어야 할 무엇이 있어야 한다. 이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찾았던 ‘등질부분’이기도 하다('동물지'). 
 
이런 동가의 무엇은 노동이라는 측면에서는 구체적 노동이 아니라 추상적 노동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구체적인 노동은 주체에게 ‘유용하다’는 의미에서의 사용가치를 만드는 노동이고, 추상적 노동은 노동의 구체적 형태나 그 결과물의 유용성과는 관계없이 상품의 가치를 만드는 노동이다. 추상적 노동의 경우, 그것이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것이건 살기 좋은 집을 만드는 것이건 모두 단순한 인간 노동력의 지출로 파악된다.

옷을 만드는 노동과 집을 만드는 노동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지만 추상적 노동이라는 측면에서는 인간의 두뇌, 근육, 신경, 손과 같은 것들을 생산적으로 사용한 결과일 뿐이며 오로지 양적인 측면(노동 시간의 양)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에 비해 물질의 제2성질을 만드는 구체적 노동의 생산 결과물은 나에게 유용한 것이다. 그것은 교환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오로지 소비하는 주체의 감각을 통한 것,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 그러므로 유용한 것이다. 
 
기는 바로 이러한 물질의 제2성질, 감각에 기초한 개념이다. 이는 근대적 상품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한 기는 객관적으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추상적 물질로도 환원되지 않는 것이다. 기는 주체의 감각에 기초하여 성립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주체의 기의 상태에 따라 늘 변화한다. 같은 부류끼리는 통하며(공명하며) 다른 부류의 기와는 오행의 논리에 의해 상호 작용한다.

하나의 기(의 양태)를 다른 것과 교환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교환을 위한 기준, 곧 동가의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환원이 되기 위해서는 양적으로 비교가 가능한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는 그 자체가 양화(量化)될 수 없는 감각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환원은 불가능하다. 
 
데카르트는 감각적인 신체적 인식을 배척한다. 물질에서 정신을 배제함으로써 데카르트는 물질을 해방시킴과 동시에 물질에서 독립한 정신을 바탕으로 진정한 자기 인식을 추구할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추상적 노동의 대상으로서의 물질을 확보함과 동시에 사유의 자립성, 곧 근대적 주체를 확립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가장 정확한 의미에서 인식의 근대화다.
 
이는 감각적 인식, 신체적 인식에 기초한 전근대 사회의 부정이면서 동시에 봉건적 질서[家]에 예속된 전근대적 개인의 해방, 곧 근대적 개인의 탄생이기도 했다. 
 


"민중의료는 독자체계 구축 못하고 소멸"

오늘날 한의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그 내용에서도 과거의 한의학과는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모습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한의학의 근대 서양의학과의 결합 내지 근대 서양의학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의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은 변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학문의 대상 자체가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 특히 한의학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며 또 시대의 흐름에 따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한 변화가 과거와 어떤 점에서 다르며 어떻게 다른가를 규명하지 않으면 오늘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또 나아가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학문 체계로서의 한의학을 이해할 필요가 생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논문은 과거, 정확하게는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한의학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규명함으로써 한의학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근대의 한의학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의학의 내포와 외연을 확정짓는 것은 한의학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문헌이나 제도에 의해 전승되어 온 이론이나 임상이 사실은 전근대 사회의 일부분에 한정되어 이해되고 실천되었다는 점, 따라서 대다수 민중의 삶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는 점, 또한 대다수 민중의 의료를 담당한 계층과 그러한 임상 실천의 내용, 이론적 구성은 기존의 한의학과 일정한 층차를 갖고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전근대 한의학이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 짓는 잣대는 무엇인지, 그러한 잣대의 차이에 따른 근대와 전근대의 이해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또한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한의학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황제내경 이전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이후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이론적 경향과 분파의 성립은 무엇을 한의학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를 어렵게 한다. 
 
위의 몇 가지 어려움에 대해 본 논문에서는 나름대로의 입장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하려고 한다. 
 
첫째는 한의학이 전근대 사회의 모든 부분을 포괄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한의학은 당대의 사회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리고 가장 선진적인 이론과 실천 체계라는 점에서 다른 맹아단계 혹은 기술 수준에서의 의료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한의학은 자신의 고도한 이론과 임상 체계로, 당시 사회에서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여러 의료 체계 혹은 기술 체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며, 역사에서 양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비록 數的으로 적지만 그것이 미래의 변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그 역사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의학은 당대의 시대정신이었다. 양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던 것이 다음 시대에 소멸되거나 아니면 다른 체계로 흡수되어 버렸다면 그 존재 자체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로서의 의미는 갖지만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서는 그만큼 그 의미가 축소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의학 체계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소위 민중 의료의 역사적 경과에 관한 부분이다. 소위 민중 의료는 부분적으로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론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의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결국 한의학이라고 하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융해되어 가거나 아니면 자신의 전승 체계를 갖지 못함으로써 소멸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근 대체의학 혹은 대안의학(심지어는 보완의학)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행해지던 민중 의료의 내용이 근대 서양의학의 틀 속에 융해되어 일부는 소멸되어 갔지만 일부는 다시 부활하는 현실과 연관하여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두 번째로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하는 잣대에 대해서 본 논문에서는 사회경제사적인 관점을 택한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소유관계의 변화와 거기에 따르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바탕을 두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나타나는 문화 양태의 차이를 잣대로 삼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에서 언급할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의학사에 대한 전반적인 논구를 통해 검증되어야 할 작업이지만 일단 본 논문에서는 '황제내경'과 '상한론' 그리고 그 이후의 임상과 이론적 발전의 산물인 금원사대가, 이를 다시 종합한 '동의보감'에서 완성된 한의학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중국의 경우, 금원사대가를 종합한 시도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으며 명말청초에 도입된 근대 서양의학의 영향과 그에 따른 다양한 변모라는 사정이,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한의학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며, 일본의 경우에는 금원사대가로부터의 일탈(그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동의보감'이 '황제내경' 혹은 금원사대가의 이론과 임상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봉건적 사회 구조에 가장 적합한 의서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동의보감' 자체도 매우 방대한 체계를 갖고 있으며 또 그 안에는 매우 다양한 편차를 갖는 이론과 임상이 포함되어 있어서 한 마디로 규정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먼저 동의보감의 이해를 위한 전제로,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의 일반적인 특징을 알아보려고 한다.

이는 '동의보감'이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으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의 일반적인 성격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동의보감'에 접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의학만이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근대를 근대의 관점에서 보는 오늘날의 무반성적이며 비역사적인 관점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반성적 인식을 기본으로 하는 철학계에서조차 이런 태도가 보인다. 따라서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에 대한 본고의 접근은 그러한 학문 풍토에 대한 직간접적인 비판이 될 것이다. 
 
전근대 시대에 대한 비역사적 접근은 특히 한의학계에서는 ‘상식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황제내경을 황제가 직접 지은 것으로 간주한다거나(의학의 聖人 창조설) 그것을 절대적인 진리체계로 간주하는 연구자 혹은 임상가가 적지 않은 것이 한의계의 현실이다.

전근대의 한의학은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임상에서의 변화나 발전은 무의미하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이론과 처방을 그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한의학계에서는 한의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백안시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한의계에서 이러한 비역사적 접근이 가능한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의 몸이라고 하는 조건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점과 한의학은 서양의학에 비해 상당히 오래 전에 상대적으로 완결된 이론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 한의학 이론의 유기적 성격으로 질병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전근대와는 다르며 거기에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방식과 인식, 그리고 총체적으로 문화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음양오행을 믿지 않으며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현실적인 자연에 대한 태도는 정복과 약탈 이상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자연에 대해 전근대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은 경쟁에서 뒤지는 일이며 경쟁에서 뒤진다면 더 이상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더 직접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의학이 실현되는 사회구조가 바뀌었고 또 명백한 현실로 근대 서양의학이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한의학은 변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는 크게 임상적 측면에 대한 연구와 실험실적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일부 의사학적 측면에서의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우 작은 흐름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는 '동의보감'이 탄생하여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종적 연관(역사성)과 그것이 실현되는 당대의 횡적 구조(사회성과 철학성)를 도외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근대에 형성되고 사용되었던 개념들을 근대적인 것으로 이해하거나 아니면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함으로써(비역사성) '동의보감'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역사성과 철학성을 담보한 연구가 한의학, 좁게는 '동의보감'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특히 본고에서 다루려고 하는 전근대와 근대라는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고를 통하여 밝혀지겠지만, 전근대를 전근대로 이해하지 않는 관점은 전근대 혹은 근대를 초역사적인 것으로 설정하려는 경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의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비역사적이며 비철학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文史哲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공자는 '시경'을 정리했으며 주희의 글을 집대성한 '朱熹集'은 詩를 비롯한 文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은 근대적 학문 체계 속에서 文은 문학으로, 史는 史學으로, 哲은 철학으로 해체되었다. 그럼으로써 전근대를 전근대로 볼 수 있는 틀을 벗어나버렸다.
 
따라서 본고에서는'동의보감'이라고 하는 의학 분야를 다루지만, 그것을 전근대를 역사로서 볼 뿐만 아니라 철학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럴 때에만이 전근대 의학으로서의 '동의보감'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누구나 '동의보감'을 보아왔고 누구나 '동의보감'에 의거해서 임상실천을 해 왔지만 그것은 근대의 관점에서 본 '동의보감'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을 통한 나름대로의 '동의보감'일 뿐, 정작 '동의보감'을 '동의보감'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면 먼저 과거에 대한 역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먼저 동아시아의 전근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근대 의학의 특징과 전근대 의학의 대표적인 예로서 '동의보감'의 역사성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려 한다.

이를 '동의보감'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목차와 '동의보감'의 사상적 이론적 구조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동의보감' 제일권 '내경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한의학은 漢醫學, 韓醫學, 동양의학, 중국의학, 중의학, 한방, 한방의학, 전통의학, 민족의학 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한의학은 그냥 ‘醫學’이었다. ‘漢醫學’은 거란족의 국가인 遼에서 자신들의 國醫인 契丹醫와 구분하여 漢族의 의학이라는 의미에서 ‘漢醫學’ 혹은 ‘中原醫’라고 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던 것이 제국주의와 함께 서양의 문물, 특히 근대 서양의학이 들어오고 식민지화 과정과 함께 그것이 헤게모니를 장악함에 따라 ‘西醫’, ‘洋醫’ 등으로 불리던 근대 서양의학은 그냥 ‘의학’으로 불리게 되고 상대적으로 기존의 의학은 ‘漢醫學’으로 불리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한의학 말살정책을 편 명치유신의 정책 그대로 우리나라에서도 기존의 의학은 단순한 기술에 불과한 ‘漢方’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므로 ‘漢方’이라는 말에는 기존의 의학을 멸시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





"교환가치를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 몸인가"


1절. 전근대 사회의 일반적 특징 
 
전근대 사회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인식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대상과 주체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유기적 총체성(organic totality)에 기초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사회와 사람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작동하는 구조,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인간 사유의 양식도 유기적 총체성을 띈 사회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대상은 인식하는 주체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로서 대상 자체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내 눈 앞에 대나무가 있다고 할 때 대나무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대나무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곧 대나무와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이 가능하다. 
 
왕양명이 하루 종일 대나무를 보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대나무 자체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대나무와 나와의 관계라는 차원에서 문제를 던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왕양명은 대나무와 나와의 관계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곧 대나무에 대한 실천을 매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나무와 나와의 관계가 성립될 수 없었고 따라서 대나무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대상과 주체가 분리되지 않은 조건에서 대상과 주체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론적 해결, 소위 진리에 대한 문제는 儒家의 경우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의 해결책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리가 내 마음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고 간주하거나[心卽理] 아니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理[이를테면 天理]를 주체인 내가 일정한 틀을 갖고 궁구해나가는[格物] 방법이다. 주체와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 자체에 대한 궁구는 그 어느 경우에도 제기될 수 없는 문제였던 셈이다. 
 
道家의 경우에도 대상 자체에 대한 탐구라는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대상과 주체의 관계에서 볼 때, 도가는 대상의 진리는 道이며 주체인 나는 다만 도를 내 몸에서 실현하는 것, 곧 자연스러운 실천이 문제가 될 뿐이다. 유가와 도가의 차이는 유가의 理가 만물의 理라고 해도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사회적인 차원[특히 도덕]에 한정되고 있는데 비해[修己治人] 도가의 그것은 자연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물 자체라는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2절. 근대란 무엇인가 
 
이에 비해 근대 사회는 전근대와 근본적인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먼저 본고에서 말하는 근대란 경제사적 측면에서는 전자본주의 사회와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그것은 노동주체의 사회적 존재형태에서는 이중적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노동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생산관계의 형태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사회관계가 物象的 관계로 전화되어 物과 物의 관계로 현상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인식론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전근대 사회와 달리 근대의 인식에서는, 위와 같은 조건 하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면서 인간과 사회 혹은 자연과의 관계는 物化되어 객체는 물론 주체 역시 대상화된다. 이러한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통하여 이제 대상은 분석의 대상(곧 인간에 의한 자의적인 작용의 대상)이 된다. 
 
이 분석은 보편적으로, 또한 等價的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다시 대상의 질적 측면까지를 量化하거나 아니면 양화될 수 없는 부분은 배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대상을 분석함으로써 객관적으로(흔히 ‘과학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양화된 대상은 예를 들면 물리학에서는 세포, 물리학에서는 분자, 사회에서는 가치와 같은 것으로 환원된다. 
 
이제 객체와 분리된 주체는 대상화되어 특정한 요소로 환원되게 되며, 스스로도 생산과정에서의 분업에 필요한 한 부품 혹은 요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게 된다. 원자론적 사고가 일상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근대의 특징이다.
 
다른 한편 생산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전근대 사회에는 性的, 사회적 분업이 주요한 분업의 형태였음에 비해 근대 사회는 생산과정에서의 분업이 더 중요한 형태가 된다. 이에 따라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분업의 분해 정도만큼 분해되며 소외 역시 확대된다. 
 
근대적 분업에 기초한 소외는 이론에서도 반영되어 이론의 분석적이며 분절적인 경향이 강해진다. 물리학적으로 참인 것이 화학적으로도 참인지, 나아가 자연이나 사회, 그리고 몸에서도 참임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것이 교환가치를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의학에서 개별성[情]보다는 보편성[性]을 추구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한의학에서도 증상들을 변증하여 병의 본말을 가리고 개개인이 자연과 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드러내는 神을 알아내기보다는 病名이라는 보편성을 선호하게 한다. 
 
식물의 분류에서도 이런 예를 찾을 수 있다. '주례'에서 식물을 그것이 서식하는 토양에 따라 분류한 것은 그 식물을 자연과의 연관 속에서 분류한 것이다. 그 식물이 어떤 토양에서 자라는가 하는 문제는 그 식물의 성장조건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그것이 주체인 ‘나의 몸에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습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습기를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은 나에게 습기라는 기를 준다. 나는 기를 매개로 그 식물과 끊을 수 없는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이해방식은 우주 전체에 대한 보편적 인식으로 그 영역을 넓혀간다. 다음의 글은 대상에 대한 전근대적인 이해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아침저녁으로 화초들을 보니 그 性이 습기에 마땅한 것과 건조함에 마땅한 것이 있고, 또 차가움에 마땅한 것과 따뜻함에 마땅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심고 물을 주고 햇볕을 쪼일 때마다 한결같이 옛날 방법대로 하였고, 옛 법에 없는 것은 혹 전해들은 것을 참고하였다. ... 그런 뒤에야 제각각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서 본래의 자태를 드러내었다. 이것은 다만 화초 각각이 타고난 천리[天]를 온전하게 하고 각각의 성을 따랐을 뿐이지만 처음에는 그것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아, 화초는 식물이다. 지식도 없고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들을 기르는 이치와 갈무리하는 방법을 모른 채, 습한 데에 맞는 것은 마르게 하고 추위에 맞는 것은 따뜻하게 하여 그 天性을 거스른다면 반드시 시들어 말라죽게 될 것이니, 어찌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그 본래의 자태를 드러내겠는가.

식물조차 그러한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마음과 몸을 피곤하게 하여 성을 해쳐서야 되겠는가. 나는 그런 뒤에야 양생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 방법을 확충한다면 무슨 일을 하든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전근대의 인식은 습기나 한열과 같은 대상이 갖고 있는 자연과의 연관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주체인 나와 결합된 인식이기 때문에 그것을 확충하여 양생법으로 내 몸을 다스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면 나라를 다스리는 법과도 통하게 된다. 
 
이에 비해 근대적 인식은 대상을 대상 자체로 분리한다. 근대 학문에서 내거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cetreris paribus)’이라는 전제는 바로 이러한 분리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근대 학문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근대 학문에서 ‘다른 조건’은 불순한 요소로 배제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다른 조건이 변한다면 분석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거나 변화하는 모든 조건 하나하나에 대해 그 조건 이외의 다른 조건을 고정시킨 분석(아마도 무한한 경우가 나오겠지만)을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근대 학문에서 얻은 진리는 ‘다른 조건이 변한다면’ 더 이상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러한 ‘조건’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근본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는 전제는 현재 분석할 대상 이외에 그 대상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땅은 또 하나의 비유기적 육체"


3절. 전근대 한의학의 지리경제학적 특징
 
한의학은 동아시아 전근대의 모든 이론과 실천이 그러하듯이 농경사회에서 탄생한 의학이론이며 임상 체계다. 물론 한의학의 형성과정에는 인도의학과 티베트의학의 영향1)이 없을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는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다. 농경사회는 다른 사회, 특히 유목사회와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농업은 특정한 지역의 토지에 긴박(緊縛)되어 행해지는 경제행위다. 일정한 기간 동안 특정한 지역에서 경작(耕作)과 수확이 반복되는 농업의 특성상 전쟁이나 계절과 같은 조건에 따라 그때마다 이동해야 한다면 농업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정착에 대한 요구는 전근대 사회에 적용되었던 직업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하여 상업을 가장 천시했던 것은 상업이 본질적으로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은 자연, 특히 토지라는 조건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토지는 땅과 그 의미가 다르다. 땅은 거주를 위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하늘이 준 식량의 거대한 창고다. 땅은 인간의 모든 생산활동이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곳(작업장)이면서 최초의 생산수단을 제공하는, 모든 생산활동의 전제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땅은 또 하나의 비유기적 육체라고도 할 수 있다. 토지는 그러한 땅 중에서 생산활동을 위해 인간에 의해 점취(占取)된 땅을 가리킨다. 특히 인류의 초기 단계, 원시 공동체 단계에서는 인간 자신이 가축과 더불어 객관적인 자연물의 계열 중 하나를 이루어 땅의 부속물로서 매몰되어 나타난다.
 
둘째로 농업이 토지에 긴박되어 이루어지는 경제행위라는 조건은 거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곧 농민의 의식을 규정한다. 그러한 규정의 하나는 사람 중심, 땅 중심의 세계관이다. 농경사회에서의 세계는 땅에 묶여 있는 나를 중심으로 운동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은 내가 뿌리박고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유목사회에서는 자연의 변화, 곧 목초지의 이동에 따라 나도 이동해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유목사회의 세계관은 하늘 중심의 세계관이다.

셋째로 농경사회라는 특수성은 폐쇄적 공간을 전제로 한다. 농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고정적으로 점취된 땅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외부에 대해 열린 공간이 아니라 고립된 공간이어야 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물을 가두고 도랑을 쳐야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유목사회는 끝없이 움직이는 열린 공간을 생존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한다. 정착 생활에 필수적인 상하수도 시설이나 관개시설은 유목사회의 개방성을 위협하는 것일 뿐이다.
 
넷째는 기본적으로는 농경사회의 폐쇄성에서 오는 것이면서 봉건제라는 정치, 경제 체계에 의해 더욱 강화된 것이기도 하지만 폐쇄된 공간 속에서의 생활을 위해 자기 완결성을 강조하게 되며 폐쇄된 공간 속에서의 긴밀한 유기체적 관계를 불가결하게 요구하게 된다. 
 
이에 비해 유목사회는 외부사회를 자신의 생존 조건의 하나로 하며 톱니바퀴와 같은 완결된 유기적 관계보다는 각 조직 사이의 다양하면서도 신속한 교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다섯째로 농경사회는 관개의 필요성과 노동집약적인 전근대 농업의 특성상 상명하달식의 조직화를 필요로 한다. 이 조직화는 봉건제의 구조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가'(家)라고 하는 사회조직으로 나타나며 사회의식(조직을 포함하는 것이지만)에서는 '례'(禮)로 나타난다. 동아시아에서 영어의 ‘state’를 '국가'(國家)로 번역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國)은 '가'(家)가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농경사회가 다른 사회를 지배하고 그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는 철저하게 ‘가’와 ‘예’의 체계로 재편되어야 했다. 그리고 ‘가’와 ‘예’를 지탱해주는 이데올로기로서 유교, 특히 주자학이 강요되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사회는 모두 무례(無禮)한 야만사회로 간주된다. 
 
이에 비해 유목사회는 그러한 ‘가’나 ‘예’의 체계가 없었다. 거기에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경쟁하는 부족 혹은 나라가 있을 뿐이었으며 칭기스칸과 같은 강력한 구심점이 마련되면 곧바로 그들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정복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목사회가 다른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필요한 것은 그 사회의 최고 지배자를 지배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 사회가 갖고 있던 기존의 질서와 이데올로기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며 각 사회의 독자성과 다양성이 인정된다.

 
4절. 전근대 한의학의 봉건제적 특징
 
전근대 사회의 특징을 살피기 위하여 경제적인 측면 외에 정치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전근대 동아시아 의학의 배경을 알기 위하여 본고는 주(周)나라 당시의 봉건제적 상황을 검토한다.
 
주나라의 봉건제는 은나라의 '읍'(邑)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읍은 물가에 가까운 남향의 구릉 위에 수혈의 주거취락으로 형성되고 거주지는 동조동혈(同祖同血)의 관념 하에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씨족 내지는 분족(分族)이었다. 
 
읍에는 씨족적 결속을 위한 각 씨족마다의 사당이 있었고 읍 주위에는 경지나 목지, 임야 등이 있고 경지는 '전(田)이라고 하여 읍의 공유지가 있었다. 이 경지는 다른 목지나 임야 등과 함께 씨족 공동체에 의해 공동체적으로 소유되어 공동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읍은 상호간에 연합하여 씨족연합으로 성장하여 원시국가를 형성한다. 이것이 이른바 읍제(邑制)국가다. 읍제국가의 지배체제는 지배적인 씨족에 의한 지배 피지배 관계였다. 
 
이러한 읍제국가라는 틀 속에서 주나라로 왕권이 교체되게 되며 주나라는 새로운 지배질서로서 은나라 말기에 발전되어 오던 '봉건제'(封建制)와 '종법제'(宗法制)를 확립한다. 봉건제와 종법제는 중국의 서북지역 모퉁이에 거주한 낙후된 가족으로 출발한 주왕조로서 광대한 동방의 선진 지역을 통치할 경륜이 없었기 때문에 나온 자구책이기도 했다. 
 
‘봉건’은 주왕실이 새로이 자기의 지배권내에 편입된 분족(分族)을 그 지역의 지배자로서 파견하여 설치케 한 것이었으며, 그 분족의 중심이 된 것이 제후(諸候)다. 제후의 분봉은 실제로는 가족조직을 지방 행정조직으로 대체하여 새로운 점령지를 통치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제후가 '봉건'(封建)된 지역을 '국'(國)’이라고 하며, ‘국’이란 바로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을 말한다. 
 
따라서 봉건이란 주왕실을 분읍(分邑)과 동시에 분족(分族)의 과정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점령지를 통치하는 방식을, ‘읍(邑)을 설치하고 종(宗)을 세운다’고 한다. 이렇게 분읍된 읍은 다시 분족되어 도(都)라는 읍이 되고 국이나 도가 아닌 읍을 비(鄙)라고 했는데, 이러한 주실(周室), 국(國), 도(都)를 결속시키는 원리는 분족이라는 혈연적 연대의 관념이며, 현실적 혈연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의제화(擬制化)되었다. 
 
이러한 혈연적 연대를 나타내는 것이 '종'(宗)이었으며, 주실을 종주(宗周)라고 하였다. 종묘(宗廟), 종족(宗族) 등과 같은 것은 모두 이러한 관념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이 관념을 규범화한 것이 바로 종법(宗法)이라고 하는 예제(禮制)였다. 
 
주나라에서 봉건제와 종법제가 시행되었지만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은 은나라에서부터 시작된 읍제국가의 원리인 씨족 상호간의 지배 - 피지배 관계였다. 따라서 읍의 전답은 지배자층인 씨족의 공동체적 소유에 속하고 궁극적으로는 주실의 소유로 간주되었다. 여기에서 왕토(王土)사상이나 왕신(王臣)사상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러한 읍을 단위로 하는 계층적 지배관계에서 왕 또는 제후의 지배력이 반드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왕이나 제후의 정치적 지위는 동족(同族)에 의해 보장된 것인 만큼 국인(國人)이라고 불린 그 종족의 지배자층에 의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주왕(周王)은 ‘국’의 백성 혹은 제후가 도민(都民. 都의 피지배층)을 직접 지배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왕권은 아직 신장되지 않았으며 중국의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라는 실체도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성립된 봉건제와 종법제는 그 기초가 읍이었으며 읍은 다시 ‘가’라는 체계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읍의 지배적인 친족 관계는 부자간의 차별과 남녀간의 차별, 적서(嫡庶)간의 차별이다. 이러한 차별은 뒤에 유교적 례(禮)의 질서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한의학은 ‘아직’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동아시아 과학


5절 전근대 한의학의 황로학적 특징
 
주나라의 易인 『주역』은 소위 고대적 중국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 사상적 근원이 된다. 『주역』은 역사상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지만 오늘날 이해하고 있는 『주역』의 모습은 전국시대의 『주역』이다. 그러나 『주역』에는 전국시대에 발전한 陰陽이나 五行의 사상이 없다. 특히 오행은 주나라의 문화권에서는 배척하던 것이었다.

음양오행사상은 非周文化圈에서 연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비주문화권은 바로 산동성 북쪽을 포함한 발해만 주위의 여러 나라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齊나라였다. 이곳은 周 문화와는 다른 黃老學이라는 독자적인 문화가 성립한 지역이다. 바로 여기에서 음양과 오행이 결합하여 음양오행이라는 동아시아 고유의 사고체계가 탄생했던 것이다. 황로학은 이를테면 해안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는 소위 내륙문화라고 할 수 있는 주문화와 여러 측면에서 차이점을 갖고 있다. 
 
황로학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지만 황로학은 人事를 중시하는 주문화에 비해 자연(우주)과 사회, 그리고 몸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한다. 인사를 중시하는 전통에서는 의학이 발전할 수 없다. 그런 전통 속에서 의학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술에 불과한 것이다. 
 
황로학에서의 天은 우주, 자연, 역사, 인생 등을 포함하며 이는 氣象이나 物象을 통해 드러난다. 황로학에서의 ‘천’은 이를테면 자연의 질서다[自然天]. 그것은 사람의 자의적인 뜻으로 변화될 수 없는 것이며 그 질서는 예를 들어 봄여름가을겨울, 風寒暑濕燥火, 자연에서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드러난다.

사람은 그 스스로 자연의 하나로서 이러한 질서에 따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유체계 속에서 건강은 자연의 흐름에 따를 때 얻어지는 것이다.  


반면 주문화에서의 ‘천’은 역사적 의지나 사회적 운명을 말하며 그것은 ‘덕(德)’이나 백성의 ‘民心’ 등으로 드러난다[人格天]. 맹자는 마음[心]을 다하면 性을 알 수 있고 ‘성’을 알 수 있으면 ‘천’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주문화에서 ‘천’은 도덕의 근거가 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천’은 사람의 마음과 같은 수준에서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뭄이나 홍수, 유행병, 전염병과 같은 재해가 일어났을 때 이를 곧바로 정치적 상황과 연결한다. 그것이 바로 역사상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災異論이다. 재이론은 흔히 미신이라고 치부되지만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다음의 글은 재이론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릇 하늘과 인간은 한 가지 기로 되어 있고, 기가 통하기 때문에 感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應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 상서란 하늘의 기쁨이며, 變이란 하늘의 노함인 것입니다, 하늘의 기쁨과 노함이란 하늘의 기쁨이나 노함이 아니라, 바로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노함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노함은 임금님의 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임금님의 하시는 일이 至善이 아님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고, 기쁜 마음은 和氣를 낳아 이 화기가 위와 아래에 충만할 것입니다.”

첫째, 재이론은 황로학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이지만 자연과 사회, 그리고 몸의 보편적 연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보편적 연관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사회에서도 자연이나 몸에서 일어나는 재이를 곧바로 정치와 연결시킬 수 없다. 재이론은 자연과 사회를 객관적인 대상으로 분리하여 보지 않는 전근대적 사유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셈이다. 
 
둘째, 재이론은 주로 왕권과 臣權 사이에서의 정치투쟁의 수단이었다. 재이론이 논의되던 시기의 천문이나 의학 등의 문헌에서는 재이를 정치와 직결시켜 설명하지 않는다. 재이론은 대개 역사서와 같은 정치 문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7) 당시의 사람들이 미개하여 자연이나 몸에서의 재이를 정치와 직결시킨 것이 아니라 주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천’의 의지가 자연이나 몸에서 드러난 것으로 해석한 것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민심 조작용으로서 재이론이 역할했던 것이다. 황로학의 전통 속에 있는 한의학에서는 유행병이나 전염병의 원인을 자연 질서 자체의 어그러짐이나 자연의 질서를 어긴 사람의 잘못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황로학을 道家와 法家의 결합이라고 평가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황로학은 자연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정치에서는 엄격한 법의 질서와 힘에 의한 질서의 유지를 강조한다. 정치 역시 하나의 자연적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일견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 곧 법은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황로학에서의 자연은 대상화된 자연의 법칙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와 같은 차원에서 파악된 것이며, 사람 역시 그러한 질서의 하나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법 역시 자연의 질서로 이해된다. 
 
이에 비해 주문화에서는 禮를 중시하고 德을 숭상한다. 법은 일정한 사회적 틀[刑]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강제하지만 예는 일상생활을 규제하며 덕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까지 규제한다. 물론 황로학에서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황로학에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비울 것을 요구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외부의 대상에 의해 내 마음이 흔들리거나 어느 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연의 질서를 올바로 볼 수 있고 거기에 올바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비해 ‘예’와 ‘덕’은 항상 타인에 대한 것이다. 내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修身]은 자연의 질서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이 집안[家]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齊家]이며 나아가 나라 사람들을 다스리고 천하의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治國平天下]. 몸을 다스리는 원리와 집안을 다스리는 원리,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는 원리는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것은 예에 따르면서 덕을 키우는 것이다. 
 
황로학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다양성의 포용에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그 발생 초기에서부터 공자로부터 ‘怪力亂神’으로 불렸으며 맹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제나라 동쪽 野人들의 말’이라고 하였다(『맹자』 「만장」 상). 육로에 비해 자유로운 해상교통을 통해 해안문화는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그런 과정에서 경제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문명도 함께 발전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주문화권에서는 왕도가 무너지니 제자백가가 분분히 출현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황로학은 바로 그러한 다양성을 포함하여 용광로와 같이 새로운 사상을 융합해내었다. 그리고 그러한 황로학의 結晶이 바로 한의학이었다.

 
6절 한의학의 탄생 
 
한의학은 바로 이러한 총체적 맥락에서 형성되어 발전되어 온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농경사회와 그에 기초한 봉건제의 세계관과 방법론을 통하여 성립한 것이 바로 한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의학은 자기 완결적 구조를 지향하며 이론의 유기적 정합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이 한의학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까지에는 외부와의 교류가 없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근대로부터 하나의 국가가 오늘날의 근대적 민족국가로 일직선상의 발전을 해온 것이 아닌 것처럼 한의학 이론의 형성과정에는 다양한 종족과 나라 사이에서의 경합과 융합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본고에서는 한의학의 탄생이 지리사회학적인 융합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함의한다. 다시 말해서 한의학은 농경문화인 황하와 양자강지역에서 발생한 의학과 유목문화인 북방의 의학 , 유목문화를 계승하면서 농경문화를 집대성한 발해만을 둘러싼 지역의 의학, 인도의학 등이 융합되어 주로 중국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과 일본에서 발전된 의학체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융합의 중심은 발해만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의학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융합과 더불어 의학은 인류학적 역사의 총체적 산물이다. 흔히 생각하듯이 한의학은 단순한 인류의 의학적 경험을 종합한 경험의학이 아니다. 그것은 장구한 세월 동안 축적되어 온 인류의 경험과 이론을 종합한 것이다. 북방의 유목문화가 쌓아온 유산과 주문화로 대표되는 농경문화의 유산이 발해만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융합되어 나타난 결정이 바로 한의학이다. 
 
한의학은 춘추전국시대 해안문화의 황로학이라는 토양 속에서 발원하여 한나라, 특히 後漢 때에 현재와 같은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거기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무수한 임상경험이 있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인물은 잘 알려진 扁鵲이다.

편작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이미 그 때에 한의학의 기본적인 진단법이 어느 정도 완비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치료에서는 침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문헌의 기록으로는 외과적인 수술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경험과 이론이 축적되어 『황제내경』을 이루게 된 것인데, 대체로 진한시대에는 한의학의 이론과 더불어 임상에 관한 대부분의 기본적인 내용이 정리된다. 
 
한의학에서 쓰이는 약재를 本草라고 부르는데, 이는 약재의 상당 부분이 식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재로 쓰이는 것은 식물만이 아니고 동물과 광물은 물론 몸의 배출물이나 몸의 일부(예를 들면 머리카락이나 치아 등)도 사용된다. 그럼에도 약재를 가리키는 말로 본초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한의학이 기초하고 있는 농경사회가 식물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었던 사정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러한 약재에 관한 지식은 東漢 시대에 『神農本草經』이라는 책으로 집대성된다.
 
한편 남부 지역에서는 고온 다습한 지역적 특성상 각종 전염병이나 유행병이 많았고 이런 사정으로 외부의 나쁜 기운에 의해 생긴 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집대성한 『傷寒雜病論』이 나온다. 이처럼 한의학은 다양한 문화와 풍토 속에서 축적된 경험을 황로학이라는 틀 속에서 융합해낸 총체적인 이론 및 임상체계다.

여기에는 독자적인 진단 체계와 변증 체계, 그리고 치료체계가 있으며 치료의 방법으로는 침구와 약물요법은 물론 기공이나 방중술, 음악과 미술, 문학 등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방대한 체계인 것이다. 
 
한의학은 그 출발에서부터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그리고 해안문화를 아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체계를 이룬 이후에도 불교의학(아유르베다 의학), 한의학과 출발을 같이 했지만 독자적인 체계를 이룬 도교의학,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근대 서양의학과의 만남을 통해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근대 서양의학과의 만남은 한의학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은 근대 서양의학이 거의 모든 면에서 전근대의 한의학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화가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화와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 강화되었다. 불교가 중국에 도입되었지만 불교는 기존의 문화를 배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교는 그것이 도입된 지역의 전통 문화와 융합되어 새로운 모습의 불교로 재탄생하는 면모까지 보이고 있다.

유목민의 국가인 金元시대에는 오히려 한의학이 더욱 융성하여 전근대의 한의학 이론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 金元四大家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함께 들어온 근대 서양의학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유일신을 강요하였으며 기존의 전통문화를 배척하고 나아가 말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의학은 ‘아직까지’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동아시아의 과학이다. 
 
오늘날 우리는 ‘근대’라는 관점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탈근대를 말하면서도 거기에는 근대의 입장에서 보는 전근대만 있을 뿐 전근대를 전근대로 보는 시각은 없다. 한의학을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전근대를 전근대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는 근대 서양의학의 담당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전근대의 전통 속에서 근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특히 한의학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절실한 시각일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한의계의 변화는 자신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근대서양과학 일변도의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제도적, 법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전통을 갖고 있는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는 의료가 다원화 되어 있다. 이는 스스로 근대화를 이룬 나라에서조차 근대와 전근대의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또 어떤 면에서 그것은 해결되어서도 안 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만이 아니라 법적으로도 또 하나의 의료제도로 존재하는 한국의 한의학의 역사를 올바로 아는 일은 오늘날의 의료제도와 미래의 의료에 대한 전망에서 불가결한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역사와 철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7절 철학적 사유구조의 차이에서 오는 개념의 혼란
 
모든 개념과 이론은 그것이 만들어지고 실천되는 사회의 산물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든 이론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차원에서 실천되어야 하고 이때 그 실천은 항상 총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실천은 자연과 사회와 사람의 몸이라는 조건을 항상 동시적으로 포함하며 그런 의미에서 자연과 사회와 몸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가 깨졌을 때는 더 이상 그 사회에 적합한 이론 혹은 실천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정책이나 간단한 기술에 불과하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거기에는 항상 자연과 사회와 몸에 대한 관계가 동시적으로 실현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정치나 경제 이론 혹은 그 이론에 기초한 실천이 단순히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만 기반하고 있다면, 그래서 이를테면 자연에 대한 관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 그 이론이나 실천은 머지않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파괴하여 이론이나 실천 자체가 파기되든가 아니면 자연 혹은 사회, 나아가 몸이 파괴되는 수밖에 없다. 

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실천을 의미하는 의학 역시 그 시대의 아들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생명복제나 안락사와 같은 문제가 의학의 주요한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의학 자체가 사회적인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잘못된 혹은 일정 定度를 넘어선 실천의 결과로서 윤리문제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의학 이론이나 실천 자체에 이미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목이 마르고 나서 우물을 파고 전쟁이 나서야 무기를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그러한 가능성을 미리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있다. 역사는 단순한 史實이 아니라 그러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총체적 연관을 분석함으로써 현재를 되돌아보고 나아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의학의 철학적 사유구조를 알아보는 것은 한의학이 과거의 사회에서 실천되었던 총체적 연관을 분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을 통하여 현재의 한의학과 또 하나의 의학 체계인 근대 서양의학의 모습, 그리고 양자의 관계를 살펴보고 현재를 되돌아보면서 미래 의학을 발전적으로 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유구조의 차이는 번역에서 극명하게 볼 수 있다. 과거의 역사에 접근할 때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전근대를 보는 근대의 시각을 자각하는 것이다. 모든 연구는 일정한 틀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서양의 과학(science)이라는 말이 초기에 ‘格物’로 번역되었던 것처럼 모든 과학적 연구는 일정한 틀을 전제로 한다.

격물이란 物을 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상을 일정한 액자, 틀 속에 넣는 작업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틀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연구자 자신이 일정한 틀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반성적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그 틀은 사회적으로는 그것이 적용되는 사회의 역사적 발전단계에 의해 규정되며 주체의 측면에서는 그것을 적용하는 주체의 실천적 입장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본다면 틀 자체의 진리성은 역사적이며 상대적이다.
 
번역의 문제는 이러한 틀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본고에서는 이를 전근대 의학에 없었던 ‘신경’이라는 번역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알아보기로 한다. 
 
飜譯은 말 그대로 뒤집는 것이다. 뒤집어서 뜻을 가리는 것, 고르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번역의 대상이 되는 언어가 특정 시대와 사회라는 바탕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쏘싸이어티society’라는 말은 오늘날 ‘社會’로 번역된다. 물론 社와 會는 기존에 있던 말이지만 ‘사회’처럼 연용해서 쓰인 예는 드물며 더욱이 오늘날의 사회라는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社’는 원래 토지의 신을 의미하여, 새 왕조를 세우면 반드시 토지의 신인 ‘사’와 곡물의 신인 ‘稷’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社稷은 곧 국가를 의미했다.

행정단위로는 25家 또는 사방 6里를 ‘사’라고 했다. 조선 중기 한 ‘家’의 구성원 수가 100-200명을 상회하기도 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미암 유희춘의 경우) 그런 ‘가’가 25개씩 모여 있는 ‘사’는 매우 큰 조직인 셈이다. 또 사회에서의 ‘會’는 원래 고기와 같은 음식을 담아 요리를 할 수 있는 그릇을 의미하며, 여럿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는 데서 모인다는 말로 뜻이 넓어졌다. 이처럼 ‘사’와 ‘회’는 각각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만들어진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든 좁은 의미에서든 전근대 사회에 도입된 ‘사회’라는 말은 근대적 개인의 결합을 기반으로 한 관계에서 형성된 관계를 말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전근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근대적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번역어들이 당시에 이해되기 힘들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전근대에서의 사회는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家’의 결합이었고 그것도 봉건제를 바탕으로 하는 결합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自’나 ‘己’라는 단어는 있었지만 그것은 독립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가’에 속한 구성원으로서의 개별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었다.

특히 나를 가리키는 ‘我’ 자의 어원은 낫처럼 생겨서 벨 수 있는 무기인데, 글자 속의 ‘戈’는 적이 아니라 아군 혹은 공동체 내의 배반자를 처단하거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쓰였던 무기였고 동물을 犧牲으로 쓸 때도 썼다. 희생 역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我’는 오늘날 나를 의미하는 글자지만 원래의 의미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글자였던 셈이다.

따라서 전근대에서 ‘가’를 떠난 개인은 있을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의 ‘호적을 판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로서는 호적에서 빠지는 것은 곧 사회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육체적인 죽음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전근대 ‘사회’에 근대적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가 있었던 것처럼 착각한다. 
 
‘자연’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전근대 문헌에서 자연은 오늘날의 ‘네이춰nature’의 번역어가 아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 자연스러움이라는 의미로, 여기에는 오늘날의 자연도 포함되지만 그것은 좁은 의미의 자연만이 아니라 人事 등을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외부에서의 충격이나 자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운동을 하면서 거기에 일정한 법칙, 곧 道를 실현하고 있는 것, 그러면서도 그 실현이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자연이다. 그러므로 ‘道法自然’이라고 하면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의미로, 도는 자연에서, 스스로 그러함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는 의미다. 
 
또한 전근대의 ‘자연’은 명사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도 주체인 나와 분리된 대상이 아니다. 곧 ‘자연’은 주체와 대상의 합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전근대의 ‘자연’은 이를테면 내 몸 속으로 들어온 자연이며 내 마음까지 투영된 자연이다. 이에 비해 ‘네이춰’는 주체와 대립하는 대상이면서 정신과 대립한다. 
 
氣의 경우는 번역의 어려움이 더 크다. 우리는 ‘氣’를 그냥 ‘기’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vital force’ 혹은 ‘vital energy’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영역에도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氣’를 ‘기’라고 그냥 말하는 것보다는 한 단계 올라선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역된 용어는 적어도 기를 외국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외국어로 인식하는 것과 자국어로 인식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외국어로 기를 보게 되면 적어도 기를 반성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설혹 기 본래의 의미는 알 수 없거나 일면적인 이해에 그친다고 해도 대상을 대상화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氣’를 모국어로 보게 되면 ‘氣’ 본래의 뜻과 기존의 모국어로서의 기의 뜻이 뒤섞이게 되어, 마치 ‘nature’를 자연이라고 번역하면서 본래의 ‘自然’이라는 뜻을 혼동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점에서는 ‘氣’를 차라리 ‘Ch'i’ 같은 방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해체신서’는 무엇을 해체했는가?

‘해체신서’(1774)는 일본에 번역된 최초의 서양 해부학 책이다.

이 책은 서양의 해부학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소개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지만 한국이나 중국에서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기본적인 의학 용어를 번역해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또한 일본으로서는 이 책을 계기로 네덜란드의 학문인 난학(蘭學)이 대중화되면서 본격적인 근대 서양문물의 도입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갖는다. 
 
일본에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실용성을 추구하는 내재적 흐름도 있었지만 난학은 이를 강화하고 발전시켜 동양에서는 유래가 없을 정도의 근대화를 이루어낸 오늘의 일본이 있게 한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해체신서’는 적어도 일본에서는 근대화의 상징이라고도 할 만한 책이다. 여기에서는 이 책의 발간을 둘러싼 사정과 그 의미를 알아봄으로써 전근대와 근대를 대비하고자 한다. 
 
이 책은 독일의 쿨무스(Johann Adam Kulmus, 1689-1745)가 1722년에 펴낸 책(Anatomische Tabellen)의 네덜란드 번역서(Tabulae Anatomicae. 1743)를 기본으로 번역한 것이다. 네덜란드어-일어 사전 하나 없는 상황, 거기에다 그나마 네델란드어를 안다고 하는 마에노 료오다쿠(前野良澤, 1723-1803)가 겨우 7, 800 단어 정도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번역의 어려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정도의 상황이라면 번역은 거의 무모한 일이었겠지만 이들은 3년 반 정도의 짧은 시간 내에 번역을 마치고 출판을 한다. 그런데 이처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하도록, 이들을 몰아넣은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오늘날 한국에서는 서양 근대의대에서만이 아니라 한의대에서도 해부학은 기초과정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해부학의 도입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그만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규경(李圭景, 1788-?)에 의해 최초로 아담 샬(湯若望. Joannes Adam Shall von Bell, 1591-1661)의 ‘주제군징(主制?徵)3)’의 내용이 ‘서의(西醫)’로 소개되었고 그 뒤 최한기(崔漢綺. 1803-1872)는 홉슨의 ‘전체신론(全體新論)’을 비롯한 의서오종(醫書五種)을 소개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전체신론’은 해부학을 포함한 서의의 전반에 관한 해설서였다. 
 
그러나 이런 의서의 소개가 당시 대부분의 의사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양에서도 그랬지만 해부학 자체가 아직은 의학의 영역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이런 서적이 번역, 출판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그것이 도입된 나라에 적응하여 발전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을 비롯한 중국에 소개된 서의서(西醫書)들은 대부분 사상가들의 관심에 그쳤다. 

 
‘신경’이라는 번역어 
 
문법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의 번역은 모든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지만 ‘해체신서’를 번역한 사람들이 부딪친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도 기존에 없던 개념을 만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상 번역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모든 언어는 그 언어가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사회의 문화를 담고 있다.

사회가 다르고 따라서 문화가 다른 언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곧 번역하려는 언어가 담고 있는 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 곧 자신의 문화로 옮기는가 하는 것, 그리고 이런 과정 전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실천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로 된다. 
더군다나 자신의 사회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개념을 옮긴다는 것은 언어적으로 새로운 창작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새로운 개념, 곧 새로운 인식체계와 문화를 자신의 사회에 도입하게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유일한 인격신과 같은 신(神)의 개념이 없었던 중국이나 한국의 전근대에 기독교의 신이라는 단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단순한 언어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에서는 그 신의 승인 여부를 둘러싸고 분열되는 사회 집단 간의 사상적인 대립을 유발할 수 있는 문제였으며 이러한 사상적 대립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대립을 유발하거나 반영한다. 실제 신이라는 개념의 도입은 역사상, 사상적인 대립을 넘어서 그 나라에서는 사회 집단 간의 분열과 분쟁을 야기했고 국가 간에서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주의를 초래했다. 
 
이러한 예는 신만이 아니다. 성(性. sex)이나 예(禮)와 같이 그 문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곧 사람들이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는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의학이다. 
 
‘해체신서’를 번역한 사람들을 괴롭혔을 단어 중의 하나가 ‘신경(神經)’이라는 단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경은 전근대의 동아시아에서는 없었던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의 전근대에서도 분명히 해부가 있었고 또 분명히 전쟁과 같이 인체의 속을 들여다 볼 기회가 많았음에도 신경이라는 개념은 나오지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는 전근대 사회의 이론 자체가 해부를 기초로 한 체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기의 의학이다. 기는 객관적으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몸을 통해 느낀 것이다. 그러므로 기 의학에서는 해부와 해부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해부학이라는 관념이 생긴 데에는 당시 일본의 사상적 풍토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은 18세기가 되면서 사변적인 성리학을 부정하고 실증적인 경향으로 흐른다. 일본에서 흔히 고방파(古方派)라고 부르는 고의방파(古醫方派)의 ‘상한론’ 중시 경향은 이러한 사상적 흐름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 이들은 내경의학(內經醫學)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이주(李朱)의학’을 강하게 비판한다. 
 
야마와끼 도우요우(山脇東洋, 1705-1762) 역시 이러한 흐름의 하나로, 그는 의학을 공부하면서 가졌던 의혹을 해부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야마와끼에 의한 해부학 책, '장지(藏志)'(1759)라는 책은 이러한 흐름의 한 결절점이었다. 물론 일본에 '상한론'을 중심으로 한 의학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는 오히려 '내경'을 기본으로 의학이 형성되었으며 이런 점에서는 동아시아 3국이 거의 비슷한 체계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서 3국 공통적으로 전근대적 사유에 대한 회의와 의문이 일면서 후에 ‘근대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상적 흐름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장지'가 나오자 비판이 없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같은 고의방파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요시마스 토오도(吉益東洞, 1702-1773)는, 해부학의 지식은 병의 치료에 어떠한 가치도 가지지 않는다고 했고, 사노 야스사다(佐野安貞)는 '비장지(非藏志)'(1760)를 출판하여 죽은 내장의 관찰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즉 ‘장(藏)’의 의미는 외적인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기(氣)가 들어 있는 장소이고 기가 없어진 후에는 빈 통과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노의 견해다. 그는 기를 ‘기능을 가진’ 어떤 것이라고 보았다. 장은 단순히 그런 기능을 갖는 기가 들어 있는 장소일 뿐이다. 
 
기는 실체가 아니라 기능이라는 것이며 대부분의 근대적 관점에서 기능과 실체를 하나의 짝으로 보는 것과 달리 기능과 실체는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은 전근대에서 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람이 죽으면 기가 없어지고 기가 없어지고 난 뒤의 그릇(장부)은 더 이상 담을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 기는 몸으로 느껴지는 기능 내지는 효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는 해부나 해부학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해부학은 기 의학인 한의학(漢醫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해부는 병의 치료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요시마스의 말은 바로 이러한 기 의학의 관점에서 나온 말이다. 
 
신경이라는 말은 기존의 의학에 없던 개념이다. 신경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는 것은 신경을 의학의 대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대상은 신경이 아니라 기의 흐름인 경락이었다. 이에 비해 근대 서양의학은 신경을 비롯한 해부학의 내용을 의학의 대상으로 한다.
 
‘해체신서’에서의 ‘해체’는 ‘장분(臟分)’을 말한다. 장을 나누어 갈라본다, 해부(解剖)한다는 말이다. ‘해체신서’에 따르면 해부의 방법은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뼈와 관절을 조사하는 것이고 둘째는 선(腺. 편도선과 같이 분비작용을 하는 기관)이 있는 장소를 조사하는 것, 셋째는 신경을 조사하는 것, 넷째는 맥관(脈管)의 주행과 맥이 닿는 곳을 조사하는 것, 다섯째는 장기(臟器)의 형상과 그 작용을 조사하는 것, 여섯째는 근육의 주행을 조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해체신서’의 역자인 스기다 겐바쿠(杉田玄白, 1733-1817)는 선(腺)과 신경에 대해, 이것은 중국인도 지금까지 기술한 적이 없는 것이라고 주를 달고 있다. 또 혈관을 의미하는 맥관도 중국에서 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보면 스기다는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스기다 등이 해부학 책을 번역하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 네덜란드의 뛰어나 기술에 대한 감명이었다. ‘해체신서’의 도판을 그린 화가 오다노 나오다케(小田野直武, 1749-1780)는 범례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각컨대 네덜란드의 기술은 대단히 뛰어나다. 지식이나 기술의 분야에서 사람의 힘이 미치는 한 궁구(窮究)를 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속하게 세계에 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의학이다”.
 
이러한 감명은 상대적으로 기존의 한의학(漢醫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치료법이나 학설을 연구해 보면 그것은 무리한 억지가 많고 더구나 모자란 곳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명백히 하려고 하면 점점 알 수 없게 되고 이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면 더욱 틀려버리게 되어서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 치료법은 하나도 없다”.
 
'영추'에도 ‘해부해서 관찰한다’는 구절이 있고 또 해부도 분명히 이루어졌지만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여 마시(馬蒔)나 손일규(孫一奎), 활백인(滑伯仁), 장중경(張仲景)이 말하는 삼초나 추절[椎節. 등뼈]에 관한 학설이 서로 엇갈린다(이상 범례)고 보는 것이다. 

 
'기' 철학의 해체 
 
그런데 ‘해체신서’를 번역하게끔 추동한 최대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현실에 대한 변혁 의지였다. 이들에게 기존의 한의학(漢醫學)은 완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들의 질병 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의 한의학(漢醫學)이 갖고 있던 질병관, 곧 병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인 몸 안의 음과 양이라고 하는 기가 어긋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장소에 있는 몸의 구조의 이상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이 이러한 질병관을 갖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첫째는 기존의 한의학(漢醫學)이 외과가 아니라 내과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왔다는 점이다. 한의학(漢醫學)은 기 의학이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몸으로 느끼는 기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실체로서의 내장(內臟)과 신경은 의미가 없고 오로지 기의 작용 기전을 밝힐 수 있는 내경(內景)과 경락만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해부를 했어도 내장이나 신경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혹은 볼 필요가 없었다). 이런 점에서 외과라는 과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구조적 실체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질병, 예를 들면 골절과 같은 질환에서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에 도입된 초기의 서양의학은 남만류(南蠻類)나 화란류(和蘭類)라고 하는 외과가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도입된 외과는 의학만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학문과 문명을 가리키는 난학(蘭學) 전반에 대한 신뢰와 명성을 가져왔다. 
 
세 번째는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고의방파의 성립이다. 고의방파는 기존의 사변적인 한의학(漢醫學) 이론을 부정하고 오로지 병 자체의 진행과정과 그에 대한 치료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경’과 ‘상한론’이 재해석되고 수많은 저작과 논쟁이 꼬리를 물었다.

특히 고의방파를 만든 고또오 곤잔(後藤艮山, 1659-1733)은 모든 병은 하나의 기가 머물러 막혀서 생긴다는 일기류체설(一氣留滯說)을 주창했다. 이는 일견 전통적인 기 개념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에서 한의학(漢醫學)의 기는 이미 부정되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에게는 일기(一氣)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특정한 장소에 머물러 막혀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런 데서 복진(腹診)이 중요한 진단의 수단으로 발전한다. 이런 점에서 서양의 근대의학이 도입되기 이전에 일본에서는 단순히 서양의 근대의학을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를 부정하면서 해부를 받아들일 내재적인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사상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고학파(古學派)인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와 오규 소라이(荻生沮徠, 1666-1728)의 영향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해체신서’를 번역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열정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나왔다. ‘한 방울의 기름을 넓은 호수에 떨어뜨리면 그것이 퍼져서 연못을 가득 채우듯’이 ‘의도(醫道)’의 위대한 경전이자 위대한 근본[大經大體]인 신체의 내경(內景)을 다룬 책’을 하루라도 빨리 번역하여 세상에 퍼뜨리고 그럼으로써 치료에도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열망이 이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바로 이런 열망이 있었기에 네덜란드 언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감히 번역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의 열망은 단순한 해부학의 도입에 그치지 않았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해체신서’의 발행은 난학, 나아가 근대 서양의 문물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곧 일본 근대화(서구적 근대화)의 바탕이 되었다. 
 
그러면 한의학(漢醫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문제는 복잡하면서도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어서 다음의 과제로 삼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우선 질병관에서의 변화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해체신서’를 번역한 사람들은 고의방파에 속했거나 그러한 흐름 속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질병관은 앞에서도 본 것처럼 병의 원인을 특정한 장소에서 찾는, 이를테면 질병국재론(疾病局在論)이라고 할 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관심은 기의 상태가 아니라, 아마도 객관적 실체로서 인식했을, 기가 어느 장소에서 막혔는지에 있었다. 이렇게 되면 기는 질병을 이해하는데 과정에서 별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제 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체학, 곧 해부학의 도입은 그동안의 한의학(漢醫學)의 단점으로 간주되는 외과를 보충하는 것은 물론 기를 배제한 내과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곧 한의학(漢醫學)을 근대 서양 의학화 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된다. 결국 ‘해체신서’가 해체한 것은 단순한 인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의 해체였으며 나아가 한의학(漢醫學)의 해체였던 것이다.
-박석준의 의학철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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