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주역의 12벽괘 중의 두 괘로서 태괘泰卦 라는 것과 비괘否卦라는 것이 있다. 

음식의 원칙은 바로 이 태괘와 비괘의 원리에 의하여 조절해야 한다.


이것을 한의학에서는 '수승화강의 대원리'라고 한다.


수水는 땅을 대표하는 것이고 화火는 하늘을 대표하는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했을 때 화가 위로 뜨고 수가 아래로 가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

항상 머리는 내설악의 백담처럼 맑아야 하고 하체는 사하라사막처럼 더워야 한다.

그래야 몸이 태泰하게 된다. 대체로 몸의 불을 아래에서 갈무리하는(잡아둔다는 뜻) 것이 정精이다.  


옛사람들이 음식에 관해 가지는 상식 중에 '덥다'는 말과 '차다'는 말도 이러한 '수승화강'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일본 사람들이 날생선을 먹을 때 그것을 매콤한 와사비와 같은 먹는 것은 날생선이 너무 차갑기 때문에 더운 음식과 같이 먹는다는 뜻이다. 


같은 과일이라도 오렌지는 덥고 수박은 차다. 

같은 과라도 호박은 덥고 오이는 차다. 

같은 물이라도 보리차는 뜨거워도 찬 것이고, 쌀 숭늉은 차가워도 더운 것이다.

같은 고기라도 돼지고기는 차가우며 닭고기는 덥다.

약재로 치면 부자는 대열大熱한 것이고 석고는 대한大寒한 것이다.


하여튼 이런 것이 동방인의 지혜에 속하는 것인데 잘 몰라도 상관없다.

무엇을 먹을 때 자기 몸의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먹을 줄 알아야 하고 

덥고 찬 것을 가려서 수승화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체질은,

평소 속이 냉한 사람은 더운 음식을 좋아하게 마련이고 속이 더운 사람은 찬 음식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이런 것은 자기 몸의 요구에 따라 자연히 조절이 된다.

속이 더운 사람이 즉, 잘 때 배때기 까놓고 자도 아무 탈 없이 잘 자는 사람이, 닭고기 먹고 오렌지 먹고, 카레라이스 먹고, 마늘 잔뜩 먹으면 금방 얼굴에 뭐가 돋는다.

상화되어 화산이 폭발하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상식 


첫째, 편식은 좋은 것이다.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으라는 음식법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서양의 칼로리계산법에 의한 획일적인 영양논리인데 과도한 편식은 나쁘지만 적당한 편식은 건강에 절대로 필요하다.

체질에 의하여 싫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또 생활의 리듬에 따라 음식을 돌아가면서 먹는 편식의 지헤는 매우 좋은 것이다. 


둘째, 어떠한 경우에도 육기가 곡기를 이기면 안된다.

과도한 육식은 나쁘다. 공자님께서도 "육수다肉雖多, 불사승사기不使勝食氣"라 하셨다.

쌀처럼 모든 체질에 공유되며 부작용이 없는 음식은 이 세상에 없다. 쌀밥을 사랑해야 한다.


셋째, 낙농음식은 다 나쁜 것이다. 

우유니 치즈니, 버터니 하는 낙농식물을 바탕으로 한 음식은 기본적으로 저열한 것이다.

산천초목이 척박한 지역에서 불가피하게 발달한 의식이며 

그것은 쌀과 채소처럼 곧바로 자연의 특혜를 활용한 제1차적 독립영양생물이 아닌, 여러 종속단계를 거친 음식이다.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독소가 쌓인 음식이며, 고단백이긴 하지만 인간의 몸에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빵과 낙농을 중심으로 한 서양음식은 그 기본이 저열한 것이다.

이 저열한 음식을 개화기 이래로 숭상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쌀밥과 김치, 그 이상의 위대한 음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  어차피 모든 세계의 음식이 공유되고 교류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기호에 따라 골고루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질에 따라 먹는 것도 현명하고, 기분에 따라 선택해 먹는 것도 재미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리는 "소식"이라는 것이다. 

무슨 음식이든지 적게 먹는 것, 배부르지 않게 먹는 것, 

남기더라도 과도하게 섭취하지 않는 것(남기지 않도록 처음부터 적게 취할 것)이 중요하다. 

소식의 원칙만 지키면 어떤 음식이라도 큰 해는 없다.

 

다섯째, 인공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일본 사람이 "아지노모토"라는 것을 만들어서 인류의 음식문화를 망가뜨렸다. 

일본의 미원회사가 한때 미원을 먹으면 머리를 좋게 만든다는 신화를 만들어 일본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미원을 퍼멕여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 사례도 있다. 

한국사람들은 미원을 안 넣었으면 다시다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인공조미료가 "허화가 뜨는" 근본이 된다. 

조미료가 몸에 축적되면 몸은 청기를 유지할 수 없다. 

모든 조미는 반드시 자연물을 써야 한다. 멸치·다시마·폐류 등등의 자연조미료를 써야 한다. 


여섯째, 일체의 깡통음식 또한 삼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햄버거류의 정크푸드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콜라 사이다와 같은 소다도 어려서부터 입에 안 대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일곱째, 될 수 있는대로 외식을 삼가고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서 건강한 가정생활이 있을 때 건강한 음식문화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나의 최종적 키워드는 "청혈淸血"이다.


- 도올 김용옥 『사랑하지 말자』 337~341쪽

 


책에서 다음 대목은


 "정말 중요한 원칙, 이것 하나만 잘 실천해도 평생을 해맑은 얼굴을 하고 무병장수할 수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오후불식"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정리는 다음 기회로 넘긴다.


 

도올 선생님의 음식론은 '태평농'의 이념과도 딱 맞아 떨어진다.

태평농 이영문 선생님 책을 처음 보았을 때가 1999년.

농사에 아무런 관심도 상식도 없었을 때였고, 농사를 짓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때였으니까.

농사 관련 글은 건성으로 넘어가다 어느 한 대목에 시선 고정하게 되었는데 '적게 먹는 즐거움을 누리자 (이영문 지음『모든 것은 흙속에 있다』양문출판사, 1999)'라는 글이었다.


다섯 쪽 분량의 그 글에 얼마나 매료되었든지 읽고 또 읽으며 적게 먹는 즐거움을 스스로 누려보게 되었다.

길게 이어지질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처음으로 소식의 재미를 맛 보게 되었던 것, 그건 참으로 짜릿한 쾌감이었다.

- 본래무일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인상깊은 구절
기독교는 2000여 성상을 거쳐 형성되어 온 것이다. 이 말은 곧, 모든 종교가 한 시점에서의 완성된 고정된 모습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물론 예수교(예수의 가르침)에서 발전한 것이지만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가 과연 누구인지 모든 신학자의 견해가 분분하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The New Testament)도 똑같이 2000여 성상을 거쳐 같이 형성되어 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의 정본은 어느 곳에도 없다. 오늘의 27서 체제 신약성경은 4세기 후반에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지만 4세기의 성경이나, 오늘날 한국인이 읽고 있는 한글 개역판 성경은 똑같은 자격을 지니는 성서의 다른 판본일 뿐이다. 

20세기는 인류 사상 가장 위대한 고고학 발굴 성과의 시기였다. 그 중 성서와 관련된 두 개의 발굴이 있다. 하나는 구약과 관련된 사해 부근의 쿰란 공동체 동굴 라이브러리 문서의 발견이고, 하나는 신약과 관련된 나일강 중류 나그함마디 체노보스키온 문서의 발견이다. 

책 소개 
1945년 12월 나일강 상류 아라비아사막의 게벨 알 타리프 절벽에서 발견된 콥트어 도마복음의 출현은 기독교신학의 신기원을 의미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19세기말, 20세기 초기로부터 독일신학계에서는 현행 4복음서(narrative gospel)에 앞선 “예수 가라사대” 파편만을 모은 어록복음서(sayings gospel)가 존재했다는 가설을 줄기차게 밀고 나갔는데, 그 가설이 놀라웁게도 물리적 현실로서 입증되었던 것이다. 도마복음은 “살아있는 예수the living Jesus”가 하신 말씀을 도마가 기록한 것이다. 이 복음은 114개의 예수의 말씀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요한 사실은 이 말씀파편들의 내용이 현행복음서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거의 다 현행복음서와 겹치는 동일한 내용을 담고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도마복음과 공관복음을 비교해보면 도마복음이 더 원자료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공관복음 중에서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쓰여졌는데 AD 70~75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도마복음은 이 보다 한 세대가 빠른 AD 50년경에 성립한 것이다(쾨스터, 로빈슨, 크로쌍, 패터슨 등 사계의 대가들이 이 설을 지지한다). 그러니까 도마복음의 출현으로 우리는 원래 예수의 말씀의 원형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말씀자료를 어떻게 공관복음서기자들이 초대교회의 문제의식 속에서 변형시켰나 하는 것을 명료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살아있는 예수”는 “죽은 예수”가 아니다. 그는 그의 죽음이나 부활이나 재림에 대한 생각이 없다.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삶”에 관하여 이야기할 뿐이다. 살아있는 예수는 수난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도마복음이 전하는 예수는 매우 상식적이며 심오하고 건강하다. 일체 신화적 윤색이 없으며, 기적이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의존이 없다. 도마복음의 예수는 아시아대륙의 아시아적 가치를 구현한다. 동·서회통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는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서구문명과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하고 사고한 인간이었다. 예수의 인성을 거부하는 자는 기독교의 이단이다. 예수의 인성은 도마복음 속에서 매우 정교한 언어로 그리고 매우 점잖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도마복음에 관한 모든 가능한 출전을 동원하여 도마복음을 해설한다. 우선 도마복음 구절과 관련된,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 그리고 바울의 서한을 독자들이 비교적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모조리 다 인용하여 상세한 주석을 가한다. 그리고 당대의 관련된 메소포타미아문명권의 자료들, 구약자료들, 그리고 『숫타니파타』 등의 초기불전자료, 유교·노장철학자료 등등 역사적 예수의 상(像)을 바르게 그릴 수 있도록 만드는 모든 자료를, 개방적인 자세로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기독교는 이제 바울이 제시하는 기독론·부활론이라는 초대교회의 종말론적 케리그마를 원점으로 고집할 수가 없다. 앞으로 오는 복잡다단한 정보의 세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본래적 모습인 예수운동(Jesus Movement)의 정체를 다원적으로 파악하여 기독교의 교리를 업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다. 앞으로 모든 신학논쟁에 있어서 도마복음은 배제할래야 할 수 없는 결정적 “함수”가 되어버렸다. 2007년, 2008년 2차에 걸쳐 도올의 학설을 검증하기 위하여 감리교신학대학 대강당에서 열린 신학대토론회에서도 신학자들은 “불편한 진실이지만 개방적 자세로 수용하면서 한국신학을 새롭게 발전시켜야 할 시점”이라고 견해를 모았다. 도마복음이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국면을 외면하는 자는 시대에 뒤떨어질 뿐이다. 

원광대학교 석좌교수 도올 김용옥이 행한, 크라운판 양장 전3권에 이르는 도마복음주석작업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가장 방대한 작업이며, 구미신학계에서도 그 유례를 볼 수가 없다. 그는 114개의 파편의 주제상관도표까지 그려가면서 종전의 신학논의에 새로운 차원을 도입하고 있다. 이 책은 도올의 스승 허혁, 그리고 허혁의 스승 요아킴 예레미아스와 루돌프 불트만에게 헌정되었다.

그리고 특기할 사실은 이 『도마복음한글역주』의 내용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게 하기 위하여 인터넷 강의를 개설하였다는 것이다. 책의 출간과 인터넷 강의가 동시에 출범하는 새로운 문화콘텐츠는 인문학에 갈증을 느끼는 이 땅의 지성인들 모두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다. www.hooz.com에 들어가면 『도마복음 한글역주』와 『대학· 학기 한글역주』에 관한 도올 김용옥 석좌교수의 열정적 강의를 누구든지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올은 말한다: “나는 동·서의 대표경전으로서 『논어 한글역주』 전3권과 『도마복음 한글역주』 전3권을 완성하였다. 내가 『도마복음』으로부터 받은 충격은 스물한 살의 나이에 『노자』로부터 받은 충격만큼이나 강렬했다. 『도마복음 한글역주』는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감당하기 어려웠던 영적 투쟁이었다.”

리 뷰  
도올의 <금강경강해>를 재미있게 읽고 편 책이다, 2000년간의 예수에 대한 왜곡을 풀 대단한 책이라고 본다.
 
"내가 반문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성서라는 문헌을 대하는 놀라운 단순성과 무지에 관한 것이다,...
그러한 신앙은 맹목과 맹종을 초래할 뿐이다, 맹목은 융통을 거부하며, 변통을 기피한다.
그것은 독단과 배타를 생산할 뿐이다, 결국 독선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한국의 신앙인들에게 만연된 독선의 질병이 우리 사회의 소통을 저해하고 있다면, 나는 우리민족이 성서라는 문헌에 대한 편협한 인식의 질곡에서 해방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도마복음 한글역주 2> 107쪽
 
"도마복음의 예수는 '하나님'이나 '신'에 대하여 종속된 위치로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유일신론자'가 아니다...
예수가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은 신이 아닌 인간이다."
-<도마복음 한글역주 3> 52쪽
 
(하나님의) "나라는 일차적으로 개인에게 임재하여야 하는 것이며, 그러한 자각적 인간들의 모임에 의하여서만 강력한 사회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집단최면적인 임재는 항상 허망한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이러한 예수운동의 핵심적 사상이 마태의 집단사상으로 변형되었고, 그러한 집단사상으로부터 교회라는 공동체가 성립한 것이다."
-<도마복음 한글역주 3> 51쪽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말한다 해서, 수신이 완료되어야만 제가가 시작되고, 제가가 완료되어야만 치국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31쪽
 
"예수는 원죄를 말한 적이 없다. 예수는 인간의 본성을 도덕적으로 규정하려는 생각이 근원적으로 없다."
-<도마복음 한글역주 2> 368쪽
 
"'종말'이란 시간의 종료가 아니라, 나의 삶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어적 표현에서도 끝이라는 뜻은 항상 목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도마복음 한글역주 2> 328쪽
 
"신앙이란 피안의 세계에 있는 초월적 존재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씨 뿌림의 체험을 통하여 성취되어가는 연속적 과정이며 기다림이다,"
--<도마복음 한글역주 2> 251쪽
 
"예수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예수 운동은 근원적으로 제도적 종교로부터 벗어나려는 운동이었다."
-215쪽
 
목 차
1권
서 
순례역정대강 
이집트 문명은 단합된 공동체 모습 과시한 것 
1. "나그함마디"로 가는 길 1600년 암흑을 뚫고 나온 도마복으의 첫 운명 
2. "함라돔"의 피비린내 "엘 카스르" 농가의 불쏘시개로 사라질 뻔한 도마복음 
3. 함라돔의 아이들 초기기독교 수도승의 降魔成道, "타리프" 절벽에 묻힌 비밀 
4. 파코미우스를 찾아서 개인수행에서 집단수행으로 옮겨간 초기기독교 
5. 파바우 수도원 본부 돌기둥만 뒹구는 인류 최초의 기독교 수도원 터 
6. 셉츄아진트와 콥틱기독교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이집트 콥틱기독교의 초대 교황 
7.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등대 세기적 영웅들의 로망 간직한 비감의 도시 
8. 알렉산드리아와 세례요한 알렉산드리아의 석학 아폴로,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 
9. 알렉산드리아와 삼위일체 삼위일체의 핵심,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냐 둘이냐? 
10. 삼위일체의 정치사적 맥락 예수는 하나님인가 인간인가? 
11. 아타나시우스의 도바리 AD 367년 이전에는 "신약성경"은 없었다 
12. 아타나시우스의 정경목록 신약 27서는 어떻게 생겨났나? 
13. 정경과 외경 성경이 교회를, 교회가 성경을? 
14. 묵시문학의 본색 선·악 대결의 파노라마, 계시의 세계 
15. 다신론과 유일신론의 문명충돌 기독교 공인 이후 파괴되어간 인류의 문화유산 
16. "함라돔의 피" 그 이후 투탕카멘의 저주, 그리고 예수의 저주 
17. 코우덱스의 여로 - 심리학자 카를 융에게 헌정된 제1코우덱스 
18. 프로이트와 융 나는 신을 창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19. 신화를 찾아서 너를 낳은 자궁을 축복하라! 
20. 삶의 의미 인간 실존의 자리는 증오 아닌 사랑일 뿐 
21. 역사적 예수에 관하여 예수는 누구인가? 
22. 사도바울의 예수 예수에서 그리스도로 
23. 엘레우시스의 비의종교 예수는 새로운 미스테리아일까? 
24. 케리그마 예수는 과연 부활했는가? 
25. 요세푸스의 증언 예수는 賢者였다 
26. Q자료의 발견 복음서 속에 나타나는 다른 예수들 
27. 도마복음서와 Q복음서 살아있는 예수의 말을 들어라 
28. 천당과 천국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9. 바울과 Q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냐? 
30. 산상수훈과 Q 가난한 자들이여! 천국이 너희 것이다 
31. 지혜담론과 묵시담론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주라 
32. 선민의식과 종말론 하나님을 버리고 돈을 섬기려느뇨?! 
33. 쿰란공동체와 예수 성서의 오리지날 정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4. 스토익과 그노스틱 종교란 하늘과 땅 사이의 도랑을 메우려는 노력 
35. 콥트어와 기독교 초기기독교는 이집트에서 대세를 형성했다 
36. 옥시린쿠스 사본 성서의 텍스트들은 어떻게 변형?獰駭째?? 
37. 디두모 유다 도마 예수에게 쌍둥이가 있었다? 
38. 노자(老子)와 도마복음서 도마복음서는 언제 집필되었나? 
39. Q복음서의 저작연대 지혜담론이 먼저냐, 묵시담론이 먼저냐? 
색인 

2권
도마복음 고대문명 제2차 탐방 보고서

40. 도마기독교 : 예수 생전에 예수를 초청한 에데사의 왕(王)
41. 마르코 폴로와 도마의 최후 : 기독교는 원래 서양종교가 아니다
42. 예수와 페니키아문명 :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43. 예수 자신의 이방선교 : 상 아래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44. 지브란과 견유(犬儒) 예수 : 샌달과 속옷,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
45. 에데사의 도마행전 : 예수가 편지를 쓰다
46. 콥트어와 성각문자 : 인간의 언어는 문자라기보다는 소리의 체계
47. 도마복음서 해독 기초자료 【서장】: 프롤로그에 숨은 뜻은?
48. 영지주의와 도마복음 : 교회 밖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나?
49. 메시아니즘과 도마복음 : 교회는 종말론적 회중이었다
50. 화자와 기록자 : 예수의 말을 예수의 쌍둥이가 기록하다
51. 메시아 비밀 :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52. 슈바이처와 도마복음 : 그대들은 내가 꿈꾸는 사람이라 말하겠지
53. 예수의 죽음 : 예수는 기묘한 과일이었다
54. 성서와 해석학 : 예수는 어느 나라 말을 했을까?
55. 은밀한 말씀과 나레이터 : 살아있는 독자들이여! 살아있는 예수를 만나라
56. 요한복음과 도마복음 【제1장】: 도마의 자각성에 대한 극단적 반동
57. 해석의 발견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58. 죽음의 해석 :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59. 소승과 대승 【제2장】: 구하라! 그러나 쉽게 얻을 것을 기대치 말라
60. 쉬움과 어려움 : 찾았을 때 너는 고통스러우리라
61. 지혜와 왕(王) : 구하는 자여! 그대 “몸의 왕국”의 왕이 되라
62. 주체의 혁명 【제3장】: 천국(나라)은 천당이 아니요, 주체의 개벽이다
63. 안과 밖 : 천국은 네 안에 있고, 네 밖에 있다
64. 소크라테스와 예수 : 너 자신을 알라
65. 아가페와 그노시스 : 네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66. 아니마와 아니무스 【제4장】: 남자 속에 여자가 있고, 여자 속에 남자가 있다
67. 자웅동체의 시간관 : 묵시를 완성치 말고 낙원을 회복하라
68. 어른과 아이 : 아기는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질 않는다
69. 시간의 반역 : 봄비에 솟아오르는 연두잎 같은 노인이 되라
70. 첫째와 꼴찌 : 어린이는 도덕적 순결의 상징 아닌 웅혼한 원초성
71. 그노시스와 아포칼립스 【제5장】: 천당도 지옥도 없다. 머리 위로 푸른 하늘만
72. 히포크리테스(위선자)의 경건 【제6장】: 문을 닫고 은밀하게 기도하라
73. 하늘과 알레테이아 : 숨겨진 것은 하늘 앞에 반드시 드러난다
74. 플라톤의 국가와 예수의 천국 【제7장】: 지배자가 철인이 될 때만 정의롭다
75. 이드와 사자 : 덮치는 사자를 먹어라!
76. 큰 고기와 작은 고기 【제8장】: 긁어모으는 자가 되지 말고 버리는 자가 되라
77. 마가복음과 도마복음 【제9장】: 예수의 비유가 과연 천국의 비밀일까?
78. 씨 뿌리는 자의 비유 :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씨처럼 자라나고 있다
79. 불씨와 세상 【제10장】: 불은 심판이 아니라 천국운동의 불씨였다
80.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 【제11장】: 저 하늘도, 그 위의 하늘도 사라지리라
81. 하나와 둘 : 구원을 얻었다고 하자! 과연 너는 무엇을 할 것인가?
82. 의로운 자 야고보 【제12장】: 말씀은 중간적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83. 가이사랴의 철학자 【제13장】: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천사? 철학자?
84. 도마와 노자 : 예수를 예수라 말하면 그것은 예수가 아니다
85. 기도와 구제 【제14장】: 금식하지 말라, 기도하지 말라, 구제하지 말라
86. 밥(食)과 말(言) : 더러운 것은 똥이 아니라 너의 마음이다
87. 태어난 자와 태어나지 않은 자 【제15장】: 나 예수는 여자가 낳았다
88. 평화와 충돌 【제16장】: 가정사에 집착 말고 홀로 서라
89.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제17장】: 나 예수는 황홀한 경지를 선사하노라
90. 시작과 끝 【제18장】: 종말은 끝에 있지 않고 시작에 있나니라
91. 페르시아적 사유와 초기기독교 : 종말론의 종말을 선포, 시작에 서라
92. 존재와 존재 - 전(前) - 존재 【제19장】: 돌이 떡이 되어 너를 섬길 때
93. 겨자씨와 백향목 【제20장】: 겨자는 어떻게 백향목 같이 거대한 나무가 될까? 
94. 수평적 확산과 수직적 확대 : 하늘의 나라여, 들판의 잡초처럼 퍼져라
95. 아해들과 주인들 【제21장】: 옷을 벗어라! 과연 이것은 무슨 뜻일까?
96. 아기와 천국 【제22장】: 네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될 때 너는 나라에 들리라 
97. 천 명과 한 명 【제23장】: 천 명 중 하나뿐인 자여! 단독자로 서라
98. 빛과 어둠 【제24장】: 평범한 너 자신 속의 빛이야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99. 형제와 이웃 【제25장】: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 이웃은 누구일까? 
100. 지로역정(地路歷程) : 한국의 교회여! 새롭게 울려퍼지는 예수의 복음을 들으라! 
찾아보기

3권 
◎ 탈고소감: 기존의 복음서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말씀의 황금광맥
◎ 탈고도마복음 제26장 ~ 제114장 본문역주
【제26장】네 눈에서 들보를 빼라, 그제야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리 / 【제27장】세상을 금식하라 / 【제28장】취하여 목마름을 모르는 자들이여 /
【제29장】어떻게 이토록 위대한 부유함이 이토록 빈곤함 속에 거하느뇨? /
【제30장】세 명의 하나님과 한 명의 인간 / 【제31장】선지자와 고향, 그리고 의사와 의사를 아는 자들 / 【제32장】높은 산 위에 지어진 동네 / 【제33장】등불은 등경 위에 / 【제34장】눈먼 자가 눈먼 자를 / 【제35장】지혜로운 도둑질 / 【제36장】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제37장】부끄러워 말고 발가벗어라 / 【제38장】나를 발견치 못하는 날들도 있으리라 / 【제39장】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쥐고 있는 지식의 열쇠 / 【제40장】아버지 밖의 포도나무/
【제41장】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될 뿐 /【제42장】방랑하는 자 / 
【제43장】나의 말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느냐? / 【제44장】성령에 대한 모독만은 용서받지 못한다 / 【제45장】포도는 가시나무에서 수확되지 않는다 / 【제46장】어린이가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하다 /
【제47장】옛것과 새것은 양립하지 않는다 /【제48장】산도 움직이리라 /
【제49장】너희는 나라에서 왔고 나라로 돌아간다 / 【제50장】빛의 증표는 동(動)과 정(靜) /
【제51장】새 세상은 이미 와있다 / 【제52장】이스라엘의 스물넷 예언자는 죽은 자들이다 / 
【제53장】영 속에서의 진정한 할례 / 【제54장】가난한 자는 버린 자 / 【제55장】부모·형제·자매를 버려라 /
【제56장】세상은 시체와도 같다 / 【제57장】좋은 씨와 가라지의 공존 /
【제58장】고통 끝에 생명, 고진감래(苦盡甘來) / 【제59장】너희가 죽은 후에는 나를 보지 못한다 / 【제60장】사마리아 사람이 걺어진 양 /【제61장】침대에서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 것이다 /
【제62장】너의 왼손이 너의 오른손이 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라 / 
【제63장】세속적 부의 축적의 허망함 / 【제64장】잔치에 초대된 자들 / 
【제65장】포도원 주인 아들을 때려죽인 사악한 소작농부들 /【제66장】모퉁이의 머릿돌 / 
【제67장】다 알아도 자기를 모르면 / 【제68장】박해받는 너희는 복이 있도다 / 
【제69장】가슴속의 박해, 나눔을 위하여 배고픈 자 / 
【제70장】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제71장】내가 이 집을 헐겠노라 / 【제72장】내가 분할자란 말이냐? / 【제73장】추수할 것은 엄청 많은데 일손이 모자란다 / 
【제74장】우물 속에는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제75장】단독자만이 혼방(婚房)에 들어갈 수 있노라 / 
【제76장】단 하나의 진주에 투자하라 / 【제77장】나는 빛이다, 나는 모든 것이다 / 
【제78장】황량한 사막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왕을 보려느냐? / 
【제79장】예수여! 그대를 낳은 자궁과 그대를 먹인 유방에 감사하라! / 
【제80장】세상이 육체임을 안 자에게는 세상이 합당치 아니 하다 /【제81장】풍요로운 자여, 다스려라! / 【제82장】나는 불이다 /【제83장】모습은 빛 속에 숨는다 / 【제84장】닮은 꼴만 보고 기뻐하지 말라 / 【제85장】너희가 아담보다 더 위대하다 / 
【제86장】여우도 굴이 있는데 인간의 자식인 나는 머리 누일 곳도 없다 /
【제87장】한 몸에 매달리는 그 몸은 비참하다 / 
【제88장】천사나 예언자보다 더 심오한 너희여, 자문해보라 / 
【제89장】어찌하여 너희는 잔의 겉만을 씻으려 하느뇨? /
【제90장】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다스림은 부드럽다 / 
【제91장】너희는 하늘과 땅의 표정을 읽을 줄 알면서 너희 앞에 서있는 나를 모르느냐? /
【제92장】왜 찾고있지 않느냐? /【제93장】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말라 /
【제94장】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 /【제95장】돈을 꿔주려면 아예 받을 생각마라 / 
【제96장】아버지의 나라는 빵 속에 효모를 숨기는 여인과도 같다 /
【제97장】아버지의 나라는 부지불식간에 밀가루를 흩날리며 걸어가는 한 여인과도 같다 / 【제98장】아버지의 나라는 엄청난 강자를 살해하는 사람과도 같다 /
【제99장】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자들이야말로 나의 형제요 나의 엄마다 /
【제100장】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나의 것은 나에게 /【제101장】하나님 엄마가 나에게 생명을 주셨다 /
【제102장】여물통에서 잠자는 개가 되지마라 /【제103장】도둑놈이 언제 들어올지를 아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제104장】신랑이 혼방을 떠난다면 그제서야 금식하고 기도하라 /
【제105장】세속적 엄마와 아버지만 아는 너는 창녀의 자식이다 /
【제106장】너희가 둘을 하나로 만들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 / 【제107장】가장 큰 양 한 마리 / 【제108장】예수 나 자신 또한 너희처럼 되리라 / 
【제109장】나라는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도 모르고 밭을 가는 농부와도 같다 /
【제110장】세상을 발견하여 부자가 된 자는 세상을 부정하라 /
【제111장】하늘과 땅이 두루말릴지라도 살아있는 너희는 죽음을 보지 아니 하리라 /
【제112장】부끄러울지어다! 영혼에 매달린 육체여! /
【제113장】아버지의 나라는 지금 여기 이 땅에 깔려있다 / 
【제114장】남성과 여성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정기가 되어라 / 토마스에 의한 복음

◎ 로기온 주제 상관 도표
◎ 콥트어 도마복음
◎ 우리말 도마복음
◎ 찾아보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 한글 역주 1·2·3〉
김용옥 지음/통나무·각 권 2만6000원


도올이 안내하는 논어 읽기의 오르가슴

공자의 생애 세밀하게 추적 동서고금 주석문 두루 참조
“신 배제한 인간중심 사유로 가장 현대적 고대문명 열어”

도올 김용옥 (61)
 
도올 김용옥(61) 전 세명대 석좌교수가 한자문명권의 최고 고전인 <논어>를 번역하고 주석한 <논어 한글 역주>(전 3권)를 펴냈다. 권당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완역판이다. 1982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래 줄곧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스스로 번역의 범례를 세우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야 그 약속의 일단을 실천한 셈이 됐다.

“한 갑자를 돌고 난 내 인생을 회고해 보면서, 나는 갑자기 나의 학문세계의 초라한 모습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서삼경을 포함한 중국 고경 13경 전체를 번역하고 주석하는 작업이었다고 그는 이 책 서문에 밝히고 있다. 그 첫 작업이 <논어> 역주인 셈이다.

 
지은이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논어>의 세계사적·문명사적 위치와 의미를 찾는 긴 서문을 통해 ‘인류문명’을 ‘전관’하고 있다. 이 문명사적 조망은 그리스·로마 문명을 뿌리로 삼는 서구 문명을 상대화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이라는 세계 4대 문명이 범아시아 대륙에서 태어났음을 고려하면, 그리스·로마 문명은 그 문명권 바깥에서 일어난 역외의 문명이다. 고대문명 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원류 속의 말류’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 문명이 오늘날 지배문명이 된 것은 ‘연역적 사유’의 발견에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근대 서구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으며, 과학기술을 흥성시킨 것은 이 그리스 문명의 사유 방식에 기댄 성과였다. 지은이는 서구의 지배를 가능케 한 이 세 위업 가운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아시아가 어느 정도 따라잡았으며,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이 자연과학 분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것이 보편타당한 최종적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진리’ 이상의 어떤 새로운 진리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서 <논어>라는 서구 문명 바깥의 사유를 새로이 탐구할 필요성이 나타난다.


종교문명사적 차원에서도 <논어>의 자리는 의미심장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대 문명 초기에 등장한 다신교적 신앙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하여 일신교 신앙으로 나아갔고, 이어 인더스·갠지스 문명을 통해 일신교 자체의 극복인 불교를 낳았다. 불교가 보여준 신 없는 종교 체계는 중국 문명에서 그대로 재현됐는데, 그것이 유교 문명이다.

공자는 신을 배제한 인간 중심의 사유, “인문학적 윤리학”의 건설자였다. 그런 점에서 “고대 문명 세계에서 가장 콘템포러리한(현대적인) 문명”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논어>를 탐구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 사유의 새 지평을 탐색하는 일이 된다.


지은이는 공자의 생애에 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공자의 삶 자체를 추적하는 것은 공자가 살았던 구체적 삶을 알지 못하고 <논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공자의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책이 바로 <논어>라는 사실이다. “공자는 오직 <논어> 속에만 살아 있다.

나는 <논어> 이상 진실한 공자에 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공자의 숨결이 생동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55살 때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주유’를 한 뒤 고국에 돌아왔다. <논어>는 그가 귀환한 68살 때부터 73살 때까지 말년의 생각을 뼈대로 삼고 있다. 원숙기의 사상이 담겨 있는 셈인데, 그 사상이 수미일관한 체계 속에 추상적으로 기술돼 있지 않고 상황적 텍스트들의 콜라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이 경전의 특징이다.

“‘논어’의 ‘어’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이나 당시의 사람들과 대화한 말, 그리고 제자들끼리 토론한 말, 그리고 공자에게 접문한(가까이 가 들은) 말이다. ‘논’은 ‘집이논찬’이란 뜻으로, 그 말들을 편찬했다는 뜻이다.”


이어 <논어> 해석의 역사를 살핀 ‘논어해석사강’과 신주의 틀을 세운 주자의 ‘논어집주서설’ 번역문, 그리고 지은이 자신의 번역론을 본문 앞에 배치했다. 본문에서 지은이는 ‘학이 편’에서 마지막 ‘요왈 편’까지 20편을 차례로 번역하고 고주와 신주 등 동서고금의 주석문들을 가능한 한 폭넓게 참조한 뒤 지은이 자신의 시각으로 새 주석을 단다.

가령,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정명’(正名)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자로 편’의 해당 구절을 지은이는 이렇게 번역한다. “자로가 말하였다. ‘위나라의 군주가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하려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을 먼저 할 것이다.’ 자로가 말하였다. ‘역시나 했더니만, 선생님도 참 아둔하기 그지없으시구려. 왜 하필 이름을 바로잡는다고 하십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말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생한 현대 구어체로 이루어진 번역이다.


<논어>를 읽고 깨닫는 즐거움에 대해 정자가 이런 말을 했음을 지은이는 상기시킨다. “논어를 읽으매, (…) 어떤 자는 읽고 나서 그중의 한두 구절을 깨닫고 기뻐한다. 또 어떤 자는 읽고 나서 참으로 배움을 즐기는 경지에 오르는 자도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읽고 나서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기뻐 발을 구르는 자도 있다.” 이 책은 이 희열로 가는 긴 여행이다.
-한겨레신문-고명섭 기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공자가 14년간의 유랑생활을 끝내고 고국인 노(魯)나라로 돌아온 것은 기원전 484년, 공자 나이 68세 때였다. 그때 그는 이미 자신의 철학적 이상의 정치적 실현이라는 꿈을 접었고, 오직 학문에만 몰두했다. 『논어』‘옹야’ 편을 펼쳐 보면 이즈음의 사건으로 재미난 고사가 하나 수록되어 있다.

공서화(公西華)라는 매우 의례에 밝은 제자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주자는 이 사신이 공자 개인의 사적 심부름이라고 주석을 달고 있으나, 그것은 몹시 잘못된 해석이다. 공서화는 당시 노나라의 실권자이며 공식적 집정(執政)이었던 계강자(季康子)의 사신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염구라는 또 하나의 제자가 계강자의 가신 노릇을 하며 재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서화는 사신으로 떠나있는 동안 홀어머니가 외롭게 남아있게 되므로 그 어머니에 대한 생활비를 염구에게 요청했다. 염구가 이러한 상황을 공자에게 와서 의논했다. “공서화에게 얼마나 주면 좋을까요?”

공자는 속으로 ‘공무로 가는 놈이 그냥 가면 될 것이지, 뭔 엄마 생활비를 따로 청구한단 말인가’하고 불쾌하게 생각했다. 공서화는 노나라 사람인데 집안이 원래 부유했다. 그런 사정을 공자는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한 말이나 주려무나.” 옛날에는 생활비를 쌀로 계산했다. 염구는 실무관리형의 아주 약삭빠른 인물이었는데, 이왕 줄 것이면 뒤끝 없이 더 주자고 했다. 공자는 내심 불쾌하게 생각하면서도 하는 수 없이 이같이 말했다. “그럼 한 가마 정도 주렴.” 한 말에서 한 가마로 뛰었으면 공자로서는 크게 선심을 쓴 셈이다.

그런데 염구는 손 크게도 공서화에게 열 가마를 주고 말았다. 염구로서는 어차피 그 비용은 계강자의 창고에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공자는 그것이 다 노나라의 서민들의 피땀을 긁어 모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말에서 열 가마로 뛰었으니, 공자의 당초 계산에서 100배를 더 준 셈이다. 후에 공자는 공서화가 화려한 행렬을 차리고 제나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와 같이 말했다. “아 글쎄 공서화가 제나라로 가는데, 살찐 말 수레를 타고 가볍고 호사한 가죽옷을 입고 갔다는구나!(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88D8>). 나는 들었지. 군자는 곤궁한 사람을 도와주어도 부유한 사람을 보태주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그렇다고 공자가 짠돌이 노릇만 하는 것은 아니다. 『논어』의 편찬자는 이와 상반되는 사건을 바로 뒤이어 소개하고 있다. 공자가 노나라의 대사구(大司寇: 법무장관)였던 시절, 원헌(原憲)이라는 매우 청렴하고 강직한 제자를 가신으로 고용하면서 그에게 곡식 900말의 봉록을 주었다. 원헌은 너무 많다고 사양했다. 그러자 공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아서라. 사양치 말라! 그것을 너의 이웃과 향당에 나누어 주려무나.(毋! 以與爾<9130>里鄕黨乎!)”

종부세의 헌재 판결에 나는 크게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어떤 법제적 원칙에 의하여 심의를 거친 결론일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합산을 위헌으로 판결하는 내면에는 그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종부세를 헌재의 판결과정에서 위헌이라고 주장한 정부의 정책비전과, 종부세의 폐지를 유도해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20년 넘게 신뢰를 잃은 공화당 철학을 신봉해 왔습니다. 가장 많이 가진 자에게 더욱 더 많은 것을 주어라! 그리고 번영이라는 콩고물이 모든 이들에게 떨어져 내리기를 바라라! 워싱턴 정가에선 이것을 ‘소유권 사회’라고 하지요. 그러나 진짜 의미는 ‘알아서 하라’죠. 실직? 운이 없군요. 의료보험 없어요? 시장이 해결해줄 겁니다. 가난하게 태어났어요? 자수성가(自手成家)하세요. 손(手)이 없는데도 말이죠. 이제 우리가 미국을 바꿀 때입니다.”

오바마의 연설문 중 일부다. 종부세를 백지화시키고 싶어하는 정부와 한나라당 정책자들은 기껏해야 오바마가 부정하고 있는 그 논리를 이제 뒤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2500년 전 곡부에서 공자가 외친 말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군자는 곤궁한 자를 도와줄지언정 가진 자를 보태주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돈을 버는 자가 당당하게 대접을 받는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생각한다. 돈을 번다는 것은 영민한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요,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돈의 윤리에 관한 것이다. 돈은 가치며, 그 가치는 그 가치를 창출한 사회로 환원될 때만이 참다운 가치가 있고, 또 그 가치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자유경쟁의 토대 위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며 정상적 경제질서가 성립한다는 관념은 경제학의 기본적 확신이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을 뒷받침하려면 그 사회의 모든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가장 이상적 질서를 위해 조화로운 협력을 이루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가장 기본적인 ‘신뢰’를 상실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적 발상만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거지 취급하고 있다. 지금 와서 푼돈을 나누어 준다고 해서 경기가 부양될 이치가 없다. 국부의 증진을 위한 근원적인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국고만 고갈되어갈 뿐이다. 천하(天下)는 신기(神器)이다. 함부로 위(爲)할 대상이 아니다.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건축경기 등 경기부양의 즉물적 발상에 멈추는 것이라면, 그리고 부자들의 돈놀음에 의한 적하(滴下) 효과 정도라면 이 나라의 건강한 미래는 보장될 길이 없을 것이다. 시장과 정부, 자유와 통제의 대립적 문제를 논하기 전에 구체적 비전과 방안이 결여되어 있는 딱한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올 김용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오바마는 하나의 혁명이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제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바뀔 것이다. 그게 좋은 방향이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을 바라보며 도올 선생님이 글을 쓰셨다. 오바마는 북한과 대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다. 강공 일변도로 치닫는 이명박 정권과 전혀 다른 해법이다. 이 부분을 선생님은 걱정하신다. 북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이니셔티브를 미국에 빼앗겨 버리면 우리는 다시 강대국의 한반도 전략에서 국외자로 남는 비극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 우리는 이미 일본이 히로시마 원폭으로 항복을 하면서 미국과 소련의 진주로 나라가 양분된 비극을 경험한 바 있다. 그 때 광복군이 흘린 눈물을 상기하면서 선생은 붓을 옮기셨다.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만큼은 꼭 막아야 한다. 대승적 차원에서 이명박이 북한에 접근했으면 한다. 오늘자 <도올고함>은 꼭 한번 정독하시기를....

-포카라-


-이하 전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올고함(孤喊)] ‘오바마 원폭’엔 대북 칼자루 내줄텐가


광복 주도권 빼앗아간 히로시마 원폭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졌다. 당시 그토록 독립을 갈망하던 조선 사람들에게, 히로히토 천황의 무조건 항복 방송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과연 구세의 복음이었을까? 원자폭탄 투하가 일본제국주의의 마지막 발악으로 생겨날 수 있는 더 많은 인명의 피해를 줄이고 일본의 패망과 세계대전의 조기 결속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다행스러운 사건이었을까?

우 리의 이러한 상식적 기대와는 달리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세계사적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원폭 실험에 참가했던 과학자들은 투하 소식을 들었을 때 땅을 치고 통곡했다. 자기들이 과학적 가설과 실험을 통해 만든 원자폭탄이 수많은 인명의 살상에 쓰였다는 사실에 대한 과학자적 양심의 발로 때문만은 아니다. 원폭 투하는 일본제국주의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를 대체하는 더 무서운 미 제국주의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출발에 자기들의 과학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과학 그 자체의 도덕적 근거를 박탈하는 비극을 의미했다.

중 국 대륙의 가장 화려한 고도(古都) 시안(西安)에서 동남쪽으로 20km 떨어진 종남산(終南山) 기슭에 흥교사(興敎寺)라는 절이 있다. 거기에는 우리나라 신라 고승으로서, 현장법사의 수제자였으며 유식과 반야경전에 탁월한 주석서를 남긴 원측(圓測·613~696)의 사리탑이 있다. 흥교사 부근 뚜취(杜曲)라는 곳에는 식량창고가 하나 있다. 이곳이 바로 일본의 패전을 대비해 광복군 제2지대의 70명이 미군들과 함께 OSS(미군전략특수공작대) 훈련을 받던 곳이다. 2005년 4월 나는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들은 일본의 패망을 앞두고, “요코하마 오사카 무찌르고 동경 드리쳐 동에 갔다 서에 번득 모두 한칼로 국권을 회복하는 우리 독립군 승전고와 만세소리 천지 진동해 나가세 전쟁장으로”라는 용진가(勇進歌) 가사대로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며 특수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나 는 나락이 쌓여 있는 그곳에서 1945년 8월 10일 오후 OSS 훈련 책임자였던 서전트 소령이 상기된 얼굴로 나타나 대원들에게 느닷없이 일본이 투항했다고 외치던 그 순간의 희비 엇갈린 장면을 그리고 있었다. 발표가 있자마자 미군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맥주병을 터뜨리고 좋아 얼싸안았다. 그러나 광복군 우리 병사들은 침통한 얼굴 위로 눈물이 얼룩질 뿐이었다.

“아 왜적이 항복! 이것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김구, 『백범일지』)

“진격하는 상륙군이 모두 십자가 하나씩을 내 무덤에 꽂아두기를 바랐건만, 아~ 나는 온몸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장준하, 『돌베개』)

왜 그랬을까? 일본이 투항했는데 광복군 병사가 왜 그토록 슬피 울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향후 역사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에 그 자랑스러운 승전의 기회를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드골의 파리 입성처럼, 시저의 로마 입성처럼, 광복군은 광화문이라는 개선문을 당당하게 통과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이후의 동족상잔의 비극도, 분단의 역사도, 좌우의 내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버 락 오바마의 미 대통령 당선은 나에게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것과도 같은 거대한 사건이었다. 히로시마 원폭은 새로운 분단과 냉전과 제국주의적 폭력과 강자의 횡포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오바마라는 원폭은 새로운 통일과 화합과 제국주의적 폭력의 거부와 약자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에 나는 기묘하게도 뚜취의 눈물로 얼룩진 광복군 병사들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 금 이 순간에 우리 민족이 스스로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분단 60년 역사의 비극을 또다시 되풀이할 수도 있다. 현 정권은 오바마가 그토록 저주했던 신자유주의적 발상에 모든 이념적 청사진을 그려왔던 것이다. “돈 많은 사람이 더 돈을 벌게 하라!”

“ 남부의 나무에는 기묘한 과일이 열린다. 잎사귀와 뿌리에 피가 흥건, 따스한 남풍에 검은 몸뚱이들이 흔들린다.” 흑인들의 모습을 ‘스트레인지 푸르트(Strange Fruit)’라고 이름하여 부른 전설적 재즈보컬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1915~59)의 노래 가사도 먼 과거가 아니다.

오 바마의 엄마가 케냐에서 온 루오족 흑인 유학생과 결혼을 했던 1960년 당시에도 미국의 대다수 주가 흑인과 백인 사이의 결혼을 중죄(felony)로 규정했다. “나의 아버지는 단지 엄마를 야릇한 눈으로 쳐다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나무에 목이 매달릴 수 있었다.”(오바마, 『아버지로부터의 꿈』)

이 오바마는 무엇을 외칠까? 시카고 빈민가의 아동이 글을 못 읽습니다. 그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노인이 약값을 낼까, 집세를 낼까 갈등할 때 그것은 나의 가난입니다. 아랍계 출신 미국인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해 부당하게 체포되었을 때 그것은 나의 인권이 훼손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는 그것을 물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가 당선되었다니까, 한다는 소리들이 누가 하버드를 나왔냐? 줄 대라! 운운하는 가소로운 소리들! 근원적인 정책에 대한 새로운 튜닝이 없이는 우리 정부는 세계사에서 뒤처지는 정권이 될 것이고 경제는 더욱 혼미하게 될 것이다.

결 국 광복을 우리 손으로 맞이하지 못하고 히로시마 원폭과 함께 미 군정의 손에 넘겼기 때문에 향후 모든 민족사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북·미 관계는 급진전될 것이다. 또다시 남북문제를 우리 손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오바마의 손에 넘길 때는 요번에는 우리 전 민족이 광복군이 뚜취에서 흘렸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빨리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의로운 사회가치를 구현하라! 그리하면 경제는 따라온다.


도올 김용옥 / 중앙일보 / 2008.11.12



신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