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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익학당입니다. 홍익학당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유투브에 370여개의 전세계의 철학고전들을 무료 강의로 제공을 해 왔습니다. 사서오경, 노자, 장자, 불경, 성경, 서양철학까지 유명한 철학고전 들의 상당수를 제공하였는데, 이러다 보니 먼저 공부할 내용을 추려 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홍익학당의 강의중에 각 분야의 뼈대가 되는 강의를 추려서 1주일 정도안에 학습하실 수 있게 제공해 드립니다. 이 강의를 들으시면 어떤 인문학/철학 고전을 읽는 것 보다 정확한 공부의 뼈대가 생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주일만 투자하시면 인문학과 고전의 전문가가 되실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이 강의만 들으셔도 되고, 좀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학당의 다른 강의를 더 들어 보시거나 관련된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고전/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직장인들께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우선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시리즈-동양철학편]을 제공해 드립니다. 아래 제시된 순서로 강의를 들어 보시면 동양철학의 핵심적인 뼈대와 가장 중요한 골자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일차. 대학 

대학은 동양철학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이루는 고전입니다. 주자는 책꽂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책이 학문의 전반적인 얼개를 잘 나타내 주고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책을 공부한 후에 다른 책들을 공부하시면 전반적인 얼개가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학문의 진도가 더 빠르게 나아가실 수 있습니다.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7- 대학.pdf

 

 


2일차. 중용 

중용은 양심리더십의 정수가 잘 들어 있습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인의예지의 본성을 프로그래밍하셨고, 그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고, 그 인간을 길을 걸음으로서 많은 분들이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모델이 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순간 가장 최선의 선택인 '중용'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강의입니다. 많은 분들이 중용을 지키라고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 강의를 들어 보시면 '중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강의는 PPT로 설명하고 있어서 강의자료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3일차. 논어 

논어는 깨어있는 리더는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공자님을 모델로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고전입니다. 이 강의를 통해서 깨어있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논어', 가장 많이 읽히는 동양 고전이라고 합니다만, 여기서는 그냥 고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성인에 이르는 길'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진정한 공부란 무었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 보실 수 있습니다. 성균관스캔들에 나왔던 '논어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인줄 몰랐어요.' 하는 대사가 생각납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3- 논어 성인에 이르는 길.pdf


 

 


4일차. 맹자 

예전부터 남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려면 맹자를 읽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양한 왕들을 깨우치는 맹자의 따끔하고 논리정연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 왠지 웅혼한 기상이 싹트게 됩니다.

 

왕도정치, 진정한 조직의 운영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는 필수적으로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진정한 정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싶은 분들께는 정치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강의입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4- 맹자, 리더의 길과 왕도정치.pdf


 

 


5일차. 노자 도덕경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노자의 도덕경은 많은 분들께서 사랑해 주는 고전입니다.

 

윤홍식 대표의 노자 도덕경은 체험에 기반하여 그동안 설명이 잘 되지 못하는 어려운 노자 도덕경을 아주 쉽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강의와 유학의 강의를 같이 들어 보시면 동양철학의 전모가 정확하게 들어 날 것 입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8- 노자 도덕경, 무위자연의 지혜.pdf

 

 

 

6일차. 주자의 공부법과 명상법 

주자라는 유명한 학자의 책을 통해서 학문을 하는 방법과 명상법을 아주 쉽게 설명합니다. 리(理) - 로고스에 대해서 이렇게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강의를 들으신 분들이 모두 너무 재미있게 들으셨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거경(居敬), 궁리(窮理), 역행(力行)과 기(氣)와 질(質)에 대한 설명과 함께 공부의 과정에 대해서 윤홍식 대표의 강의를 듣다보면, 성리학이 이런 것이구나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5- 주자의 명상법과 공부법-주자어류.pdf

 

 


7일차. 주자의 독서법

독서를 통해 현명해지는 비법이 제공된 강의입니다. 주자라는 유명한 학자의 책을 통해서 책을 어떻게 읽고, 몰입하며 그것으로 지혜를 얻는 방법이 잘 제공되고 있습니다.

 

독서를 할때, 특히 성현의 말씀을 적어 놓은 고전을 읽을때 어떠한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팁'들을 제공해 주는 강의입니다. 책으로 현명해지는 비법이 나온 강의이니 공부하는 학생들 또는 직장인들께 큰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강의자료

고전콘서트6- 주자의 독서법.pdf


[출처: http://hongikhd.tistory.c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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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이면 착하기만하고 당하고 사는 모습들이 머리속에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심을 잘 하는데 무능하다는 것이 맞는 이야기 일까요? 윤홍식 대표가 쉽게 이야기를 주십니다. 인의예지의 균형이 중요하네요. 관심이 있으신 분은 첨부된 양심노트를 다운 받아 본인의 문제를 한번 풀어 보십시오. 무엇인가 안 풀린다면 놓치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질문자 : 지도자가 양심은 있는데 무능해서 방향제시를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것도 양심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요?

 

- 윤홍식 대표 답변 : 양심적인데 재능이 없다 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양심적이기만 하고 재능은 없어도 되느냐? 그런게 아니라 재능이 있는 사람 중에 제일 양심적이거나 양심적인 사람 중에 그 일에 재능이 제일 잘 맞아야 효과가 나겠죠. 그런데 이런 것도 있어요. 양심적인 것 같은데 양심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못하면 부분적인 양심에 빠져서 크게 망치는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논어』에 보면 양심의 6단계가 나와요. 내가 15세에 '지우학'(志學)을 했고 하는 것이 공자님이 평생 연구한 것을 나이별로 설명해 놓은 양심의 단계입니다.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 '종심'(從心)까지 가는 것이 양심의 계발 단계인데, 이 부분에서 우리가 영성지능이 좀 있다, 양심적이다 라고 해도 그 분이 과연 지금 인의예지에 맞게 판단을 내렸는지는 또 따져봐야 하거든요.

 

예를 들자면 성리학이 우리나라를 망쳤다라고도 하는데요. 그런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리학을 했건 어쨌건 간에 양심에 문제가 있을 때 문제가 생기지요. 양심적이지 못했던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문제가 생겼을 것입니다. 완전한 양심이라는 것은 인간사에서 힘들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양심으로 했는데 문제가 생긴 확률보다는 무언가 양심에서 빠지는 부분이 있었을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눠드린 것이 그런 것을 체크하는 체크리스트(양심노트)입니다. 내가 아무리 양심적으로 보여도 이 체크리스트를 적어가면서 빠진 것을 보완하자는 것입니다. 저희는 언제든지 함정에 빠진부분이 있을 거라고 보고 끝없이 단련하자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공자님이 말씀하신 6단계를 하나씩 하나씩 정복해 가는 것을 도와드리는 방법론이기 때문에, 가정을 양심잘 한다고 하는 것이 저는 무리라고 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런 공부를 잘 안했는데 왜그러냐 하면요. 우리가 양심을 이야기 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도 양심적이라고 생각을 하고 계세요. 그래도 내가 죄는 안짓지 않았나라고요. 양심이 공부가 잘 안되는 이유도 대부분은 웬만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체계적으로 들어가 보면 어렵고 쉽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이 여기 계신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요. 인간에 대한 이해라든가, 제가 가진 정보의 명확성, 여러분 개개인의 사정을 제가 다 모르거든요. 현실이라는 것은 늘 정보가 불확실하다는 겁니다. 잘한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자님이 맞다고 보는 것이 『논어』에 보면 늘 못한다는 얘기만 하세요. 어느 바이블에도 그렇게는 안 되어 있죠. 나만 따르라하고 있는데, 공자님의 바이블을 보면 내가 동생한테 원하는 것을 가지고 형한테 못하고, 자식한테 원하는 것을 가지고 아버지한테 못하고, 친구한테 원하는 것을 가지고 다른 친구한테 못하고 등등 이런 얘기를 쭈욱 합니다.

 

아래 사람한테 원하는 것을 가지고 내가 윗사람한테 다 못해준다. 잘한다는 얘기를 아예 하지 않으세요. 저는 이런 태도부터가 하나의 교육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잘한다라고 가정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님이 70세에 도달했다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즉 욕심이 꼴리는대로 해도 양심에 어긋나지가 않더라는 경지를 우리의 목표로 삼으시면 좋고, 그게 쉽게 도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그런 경지를 얻었다고 하는 본인도 늘 부족하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노력을 하시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상당히 양심적인데 늘 치이고 살아요. 그러면 원가 양심에 문제 생기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중력법칙처럼 심리법칙이 있어서 어떤 사람이 착한데 자꾸 사기를 당해요. 잘 보면 인의예지중에서 빠지는 것이 있습니다. 지적인 부분에서 빠지고 있습니다. 자명함을 덜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거죠. 남에 대한 어떤 배려심 때문인데 이럴 때 우리가 겉으로 보면 양심적으로 보이지만, 양심에서 볼 때는 안 맞아요.

 

양심경영의 노하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웬만큼은 하지만 잘한다는 말은 하기 힘듭니다. 『중용』에 이런말이 나와요.

 

"이 도라는 것은 아주 평범한 부부도 알고 있는 거지만, 그 극치에 가면 성인도 모르는게 있다."


이것이 제일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알아요. 인의예지가 동물한테도 있다는게 조선 성리학의 입장이예요. 다만 인간이 제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않했을 때는 짐승만도 못해진다. 이게 조선 성리학의 큰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끝없이 공부해도 잘한다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고 잘 한다고 하는 순간 또 양심에 어긋나게 되는 미묘한 공부가 양심공부입니다. 이 느낌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은 아래 양심노트 양식을 다운 받으셔서 본인의 사안에 한번 적용해 보십시오.

 

양심노트 양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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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보면 남에게 피해를 주었는데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고 떳떳하다고, 법치주의 국가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이것을 보면 분노가 느껴지는데 이런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볼지 모르겠습니다. 윤홍식 대표가 이 부분에 대하여 『논어』의 이야기를 들어서 설명해 줍니다. 

 

 

- 질문자 : 요즘은 법망만 빠져 나가면 떳떳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괜히 양심지키다가 피해나 본다는 생각들도 많은데요. 정말 법만 안 어기면 괜찮은 건지, 도대체 무엇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 윤홍식 대표 답변 : 공자님께서 『논어』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셨죠.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길 “정치상의 법률과 명령으로만 인도하고 형벌로 가지런히 한다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덕德’으로 인도하고(사단四端의 확충, 명명덕明明德) ‘예절’로 가지런히 해야만(사양지심辭讓之心의 확충),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바로잡을 것이다(수오지심羞惡之心의 확충)”라고 하셨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유명한 얘기입니다. 정책과 어떤 법률과 명령 만으로 만약에 사람들을 인도하고 형벌로, "말 안 들으면 잡아넣지 뭐." 이렇게 다스린다는 건 한비자가 주장했던 정치 방식입니다. 진시황이 그걸 택했었어요. 인간은 '호리피해'(好利避害)의 존재이다. 인간은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니까 잘하면 상주고 못하면 벌주면 통치되게 되어 있다라는 한비자의 주장을 적용했는데 진시황 아들 때 바로 망했죠.

 

인간이 이렇게는 안 되거든요. 상을 줄 때도 그냥 주면 안 돼요. 예의를 갖춰서 줘야 좋아합니다. "옛다, 상이다." 하고 100만원 던져주면 나를 뭘로 보고 이렇게 이렇게 해라고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은 그렇게 돌아가지가 않아요. 그래서 중국에서 진시황 때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충분히 써 보고 망하고 난 뒤에는 한나라 때 다시 유교를, 대아적 효율성을 어떻게든 제일 앞에다 걸어요. 법가를 추구하는 한이 있더라도 겉에다는 유교를 걸어요. 지금도 그럽니다.

 

자본주의는 솔직히 한비자와 똑같아요. 인간을 이렇게 분석하는데도 겉에다는 그렇게 안 하죠. 우리는 가족이고 뭐 우리는 한 식구고 딴 소리를 해요. 인의예지를 걸어야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이죠. 손님이 왕이네, 너를 위할거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호리피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인간이 싫어한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실험해서 체험한 겁니다.

 

그 뒤로는 절대 중국 2천년 간 인의예지를 앞에다 걸지 욕심을 앞에다 안 걸어요. 이걸 걸면 다 싫어한다는 걸 알아요. 망해버렸으면 해요. 저 집안 망해버렸으면 하고요. 왜냐하면 자기들만 이익을 얻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거잖아요. 그럼 그 얘기는 나한테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인간은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얘기가 이것을 얘기한 겁니다. 인간은 이렇게 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소아적 효율성만을 가지고 교육을 시키면 어떤 효과가 나느냐?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워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같은 사회입니다. 법망에 안 걸리면 그걸로 아주 만족해 하지 내가 그래도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했구나 하고 생각 안 한다는 겁니다. 이 양심이 활성화가 안 되어 있으니까요.

 

수오지심(정의,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을 부끄러워 하는 마음)을 활성화 시켰으면 아에 죄를 안 저질렀을텐데 수오지심이나 측은지심을 활성화를 안 시켜놓고 죄를 지은 다음에 잡아다 그걸 처벌만 한다는 식으로는 처벌 피하면 다행이다 하고, 자기 양심에는 전혀 반성을 안 한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이 양심이 부끄럽게 만드는 게 훌륭한 정치다 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려면 리더부터 잘 해야겠죠. 그래서 그 다음 얘기가 이겁니다. 덕으로 인도하고, 임금이 양심을 잘 지켜서 백성들도 양심을 지킬 수 있게 유도하는 겁니다. 이게 노자가 말한 진정한 '무위'(無爲)에요. 임금부터 백성까지 하나로 이렇게 양심을 회복하자 하는 거죠. 홍익학당 같으면 양심(4단)노트를 전 국민, 전 가정에 보급하라 하는 것입니다. 저의 '호리피해'의 마음, 욕심도 조금 있습니다만 세종대왕께서도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삼강행실도』를 만화로 만들어서 보급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보급을 했는데 그게 한문으로, 그땐 한글이 없었어요. 한문으로 한 편에 삽화를, 스토리를 한 그림에 그린 만화식이에요. 그것을 가지고 한문으로 써서 보급했는데 문제가 한문을 아는 사람만 읽을 수 있으니까 백성들은 못 읽어요. 그래서 세종대왕이 삼강행실도 보급해 보고, 윤리문제, 그때도 부모를 죽이고 하는 패륜사건이 났거든요. 세종대왕이 가슴 아파서 『삼강행실도』를 돌렸는데 한문이 통하지 않더라는 것과, 『농사직설』같은 기술서를 보냈는데 정작 농사짓는 사람들이 못 읽어요. 법조문을 못 읽어서 피해가 나요. 이런 사건들 때문에 한글을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윤리, 기술이나 정보, 법률문제 때문에 송사사건 때문에 한글을 만들어요. 세종대왕의 측은지심이 끝장이죠. 백성들이 불쌍해서 남 같지 않아서 밤 잠 안자고 연구해서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신하들은 다 머뭇거릴 때 임금이 주장해서 만든 거예요. 이런 경우가 덕으로 인도하는 겁니다. 나부터 해서, 내 양심이 못 견디겠다 라고 임금부터 해서 덕으로 인도한다는 게 양심(4단)을 확충하는 겁니다.

 

덕으로 인도한 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양심(4단)노트' 쓰라고 그래라고 하면서 자기는 안 지키는 이런 게 아니구요. 자기부터 잘 해서 신하들을 인도하는 겁니다. 국민과. 예절로 가지런히 해준다. 예절은 사양지심의 문제인데 왜 사양지심을 공자님은 자꾸 얘기 하냐면 사랑의 마음, 분노의 마음은 표현될 때는 꼭 사양지심으로 표현돼요. 사랑한다는 것도 예절(에티켓)에 맞아야 되고, 분노도 예절에 맞아야 돼요. 적절한 분노여야지 과하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밖으로 표현되는 건 예절로 표현되기 때문에 양심을 계발하되 밖으로 표현이 적절해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런 사양지심을 적절히 계발해서 밖으로 언행이 적절하게 나가게만 해 주면 백성들 스스로가 부끄러운 줄 알고 스스로 바로잡을 것이다. 백성들의 수오지심이 자극 받아서 감히 죄를 못 짓게 되게 만들거라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죠. 만약에 지금 교통법규나 여러 가지에 대해서 안 걸리면 장땡이다라고 우리가 쉽게 생각 하잖아요. 사안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상당히 중요한 사안들이 남한테 피해가 많이 가는 부분에 있어서 이런 식으로 국민들이 판단하게 방치하고 있다면 잘못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부끄럽게 양심 교육을 시켜줘야 된다는 거죠. 부끄럽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인간이 본래 갖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자극만 주면 원래 계발이 되게 되어 있다는 게 유교의 입장인 거죠. 재밌는게 아주 악인들도 거짓말할 때 보면 눈깔이 돌아가고 이렇습니다. 양심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게요.

 

이게 태연하게 하는 사람은 진짜 사이코패스, 아주 심한 사람들은 그래도 덜 하겠지만 그래도 달라요. 사람은 거짓말하기 힘들게 만들어졌다는 것도 아실 거예요. 여러분도 잘 못하시잖아요. 할 때 다 티나요. 자기는 최대한 평정심을 갖고 한다고 하지만 거짓말 탐지기 하면 걸리죠. 심장 박동부터 틀려지는데요. 이게 양심이 있다는 근거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안 할려면 한번 크게  결심을 하셔야 돼요. 내가 정말 우리 새끼들 때문에 내가 양심을 잠시 꺼 둬야겠다. 이런 비장한 각오가 없으면 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자신이 어떤 진짜 힘들어서 했더라도 편치 않은 게 이게 양심의 가책입니다. 그래서 범인들 중에 상당수가 자수하거나 잡혔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정말 힘들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인과법칙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주에 인과법칙이 있다. 어디있냐? 왜 죄인이 잘 살지 않냐? 죄인 속이 편치 않아요. 우주에 인과법칙이 있다는 근거가 이겁니다. 겉으로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냉정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심을 어긴 순간 자기로부터 벌써 부정당해요. 자기 양심으로부터 인정을 못 받고 남한테 드러나게 됐을 때는 쇠고랑을 안 차더라도 남한테 지탄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 상태가 이미 처벌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과법칙이 절대 없지 않아요.

 

여러분도 있다는 걸 아니까 되도록 죄 안 짓고 사시잖아요. 한 번 죄를 저질러 놓으면 그것 때문에 시달려야 된다는 걸 아시니까 되도록 안 어기실 겁니다. 요즘 애들이 친구 때리고 잠바 뺏어가죠. 이것을 친구 잠바 뺏지마라만 자꾸 가르쳐서 될 일이냐는 거죠. 수오지심과 측은지심이 발달되면 친구 잠바를 못 뺏게 되어 있죠. 잠바 잃어버리고 집에 갈 친구의 마음을 한 번 헤아려 보고 그 친구 입장에서 자기의 악행을 한 번 돌아보는 이런 감각만 발달해 있으면 죄를 못 짓는다는 겁니다. 차라리 잠바 안 입고 말지로 결론이 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양심노트를 권장드리는 건 이런 식으로 평소에 자기 양심을 계속 자극을 주시라는 겁니다. 그러면 중요한 순간에 죄를 못 짓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시간 되시는 분은 아래 양심노트 양식을 다운 받으셔서 본인의 사안에 한번 적용해 보십시오.

 

양심노트 양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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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한글 역주 1·2·3〉
김용옥 지음/통나무·각 권 2만6000원


도올이 안내하는 논어 읽기의 오르가슴

공자의 생애 세밀하게 추적 동서고금 주석문 두루 참조
“신 배제한 인간중심 사유로 가장 현대적 고대문명 열어”

도올 김용옥 (61)
 
도올 김용옥(61) 전 세명대 석좌교수가 한자문명권의 최고 고전인 <논어>를 번역하고 주석한 <논어 한글 역주>(전 3권)를 펴냈다. 권당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완역판이다. 1982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래 줄곧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스스로 번역의 범례를 세우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야 그 약속의 일단을 실천한 셈이 됐다.

“한 갑자를 돌고 난 내 인생을 회고해 보면서, 나는 갑자기 나의 학문세계의 초라한 모습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서삼경을 포함한 중국 고경 13경 전체를 번역하고 주석하는 작업이었다고 그는 이 책 서문에 밝히고 있다. 그 첫 작업이 <논어> 역주인 셈이다.

 
지은이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논어>의 세계사적·문명사적 위치와 의미를 찾는 긴 서문을 통해 ‘인류문명’을 ‘전관’하고 있다. 이 문명사적 조망은 그리스·로마 문명을 뿌리로 삼는 서구 문명을 상대화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이라는 세계 4대 문명이 범아시아 대륙에서 태어났음을 고려하면, 그리스·로마 문명은 그 문명권 바깥에서 일어난 역외의 문명이다. 고대문명 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원류 속의 말류’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 문명이 오늘날 지배문명이 된 것은 ‘연역적 사유’의 발견에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근대 서구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으며, 과학기술을 흥성시킨 것은 이 그리스 문명의 사유 방식에 기댄 성과였다. 지은이는 서구의 지배를 가능케 한 이 세 위업 가운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아시아가 어느 정도 따라잡았으며,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이 자연과학 분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것이 보편타당한 최종적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진리’ 이상의 어떤 새로운 진리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서 <논어>라는 서구 문명 바깥의 사유를 새로이 탐구할 필요성이 나타난다.


종교문명사적 차원에서도 <논어>의 자리는 의미심장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대 문명 초기에 등장한 다신교적 신앙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하여 일신교 신앙으로 나아갔고, 이어 인더스·갠지스 문명을 통해 일신교 자체의 극복인 불교를 낳았다. 불교가 보여준 신 없는 종교 체계는 중국 문명에서 그대로 재현됐는데, 그것이 유교 문명이다.

공자는 신을 배제한 인간 중심의 사유, “인문학적 윤리학”의 건설자였다. 그런 점에서 “고대 문명 세계에서 가장 콘템포러리한(현대적인) 문명”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논어>를 탐구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 사유의 새 지평을 탐색하는 일이 된다.


지은이는 공자의 생애에 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공자의 삶 자체를 추적하는 것은 공자가 살았던 구체적 삶을 알지 못하고 <논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공자의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책이 바로 <논어>라는 사실이다. “공자는 오직 <논어> 속에만 살아 있다.

나는 <논어> 이상 진실한 공자에 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공자의 숨결이 생동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55살 때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주유’를 한 뒤 고국에 돌아왔다. <논어>는 그가 귀환한 68살 때부터 73살 때까지 말년의 생각을 뼈대로 삼고 있다. 원숙기의 사상이 담겨 있는 셈인데, 그 사상이 수미일관한 체계 속에 추상적으로 기술돼 있지 않고 상황적 텍스트들의 콜라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이 경전의 특징이다.

“‘논어’의 ‘어’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이나 당시의 사람들과 대화한 말, 그리고 제자들끼리 토론한 말, 그리고 공자에게 접문한(가까이 가 들은) 말이다. ‘논’은 ‘집이논찬’이란 뜻으로, 그 말들을 편찬했다는 뜻이다.”


이어 <논어> 해석의 역사를 살핀 ‘논어해석사강’과 신주의 틀을 세운 주자의 ‘논어집주서설’ 번역문, 그리고 지은이 자신의 번역론을 본문 앞에 배치했다. 본문에서 지은이는 ‘학이 편’에서 마지막 ‘요왈 편’까지 20편을 차례로 번역하고 고주와 신주 등 동서고금의 주석문들을 가능한 한 폭넓게 참조한 뒤 지은이 자신의 시각으로 새 주석을 단다.

가령,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정명’(正名)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자로 편’의 해당 구절을 지은이는 이렇게 번역한다. “자로가 말하였다. ‘위나라의 군주가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하려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을 먼저 할 것이다.’ 자로가 말하였다. ‘역시나 했더니만, 선생님도 참 아둔하기 그지없으시구려. 왜 하필 이름을 바로잡는다고 하십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말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생한 현대 구어체로 이루어진 번역이다.


<논어>를 읽고 깨닫는 즐거움에 대해 정자가 이런 말을 했음을 지은이는 상기시킨다. “논어를 읽으매, (…) 어떤 자는 읽고 나서 그중의 한두 구절을 깨닫고 기뻐한다. 또 어떤 자는 읽고 나서 참으로 배움을 즐기는 경지에 오르는 자도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읽고 나서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기뻐 발을 구르는 자도 있다.” 이 책은 이 희열로 가는 긴 여행이다.
-한겨레신문-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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