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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인터뷰中


"(현재 심경을 묻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정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죠. 비통한 일이고요..."  

"(앞으로 개인적인 계획을 묻자)....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수사 과정이나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정말로 세상이 참 싫어졌어요. 세상이 가진 악의들이 무섭구요. 그래서 세상하고 거리를 좀 둬야 되겠다... "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문재인은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치와 거리를 두며 그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지 2년이 지난 후에도 그러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2011년 2월 한 인터뷰中


- 온갖 출마 요청을 다 거절했는데, 정치가 그렇게 싫습니까.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요. 정치를 하려면 두 가지를 갖춰야 해요. 역사가 요구하는 방향과 함께 하는 통찰력, 그리고 그걸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현실정치 속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에요. 저는 그런 게 없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멤버를 중심으로 한 친노 그룹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문 고문을 차기 주자로 일찌감치 점찍어두고 있었다.


"출마하지 않는다는 말만 하지 말아 달라"



하지만 ‘정치인 문재인’은 청와대 멤버들이 보기에도 어색한 조합이었다. 본인 또한 정치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상태에서 결국 참모들이 찾은 돌파구는 책을 쓰는 것이었다. 각자가 있던 자리에서 겪은 참여정부를 기록하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이고, 매년 서거일에 맞춰 책을 내기로 한 약속을 그가 먼저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문재인의 <운명>은 출간 후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재인은 각종 여론조사기관에서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르게 된다. 분위기가 슬슬 달아오르자, 참모들은 북콘서트를 기획한다. 처음엔 끝까지 하지 않겠다던 문재인을 참모들은 독자들에 대한 예의라며 설득한다. 또한 참모들은 전국에서 요청이 밀려든다는 이유로 전국순회로 판을 키웠다.


당시 참모 중 한명이었던 양정철 전 비서관은 “과정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문 고문의 원래 말투는 건조하게 팩트를 나열하는 식이다. 대중 앞에 나서는 것도 쑥스러워한다. 그런데 북 콘서트 전국 순회에 들어갈 무렵부터, 말에 위트를 섞고 스스로를 연출도 하고, 조금씩 무대를 즐기기 시작했다." 

"됐다 싶었다.” 



2011년 북콘서트中


" 출판한 책이 사랑을 받아 좋습니다."

" 책을 읽으신 많은 분들이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지금 저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질문입니다. 실제로,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대안으로 기대를 걸고 계시고, 여론조사 지지도 상으로도 높아지니까 기대를 하시는데, 저로서는 과연 제가 대안이 될 만한 능력이나 자질이 있는지, 두렵기도 합니다."


처음엔 소극적이었던 문재인도 북콘서트 횟수가 늘어갈수록 점차 적극적으로 바뀌어갔다. 당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절망과 회의, 새로운 정권에 대한 희망과 염원을 관객들과 공유했다. 관객들의 반응또한 뜨거웠다. 북 콘서트를 보러 온 많은 관객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문재인 대통령’을 외쳤다. 공연장의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대선에 출마해달라”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문재인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웃기만 했다.



운명과 결심


문재인은 노무현의 벗이자 동료로서 30년이란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오며 늘 노무현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서  노무현의 모습을 지켜봐왔던 그는 정치에 엄청난 환멸을 느끼고 있었고 따라서 인생의 매 순간 자신을 속박해오는 정치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노무현 때문에 정치의 길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결국 노무현 때문에 정치의 길로 들어선다.

“만일 (노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정치의 길로 접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의 <운명>中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그를 정치의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면 문재인을 향한 간절한 민심은 문재인이 정치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문재인은 더 이상 국민들의 간절한 민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일하게 박근혜 여당후보를 위협할 수 있는 야당대선주자였고 이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의 절박한 민심과 맞물려 나날이 분위기가 고조되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문재인은 정치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된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며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이런 정부가 계속된다면 우리나라는 절단나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염원이 절실하고 절박하다.”



총선 출마, 그리고 2012 대선


문재인은 2012년 4.11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다.



그리고 6월 17일 대선 출마를 선언을 한 지 두 달 만에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끝내 피하고 싶었던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시대정신 때문에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국민의 마음속에서 찾을 것입니다."

"힘없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힘 있는 사람에게 엄격한, 진실로 겸허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2012.12.19 대선



박근혜 당선


그리고 


문재인의 낙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



"저의 실패이지 새정치를 바라는 모든 분들의 실패가 아닙니다."


문재인은 선거 이후 터져나온 총체적 부정선거 의혹에도 또한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당 내외의 집요한 공세에도 지지자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저 초연하고 담담한 얼굴로 모두 자신의 부족함 탓이라며 오히려 대중들을 위로해주었다.



정치적 동안거 그리고 달라진 문재인 


"권력의지가 없어 보인다"

"유약해 보인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주변의 권유때문에 마지못해 나온 것 같다."


문재인은 지난 대선 패배 후 1년여동안 정치적 동안거를 갖는다. 각종 세미나나 행사에는 참여하였지만 유의미한 정치적 행보는 없었다.


그리고 2013.11.29


문재인은 기자 간담회를 갖는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열정이나 절박함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게 그 열정과 절박함이 넘쳐나야 민주당에도 전염이 되는 법인데 그러지 못했다"

"2017년에는 반드시 정권교체가 돼야하고 저도 기여할 생각이다, 어떤 역할을 할 지는 국민들이 결정해 줄 문제"

"내가 꼭 (대선 후보를) 해야 한다고 집착하지는 않지만 회피하지도 않을 것"


'국민들의 뜻에 맡기겠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을 기대했던 기자들과의 예상과 달리 문재인은 차기대선 출마의 뜻을 밝히는 데 거침이 없었고 또한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박근혜 정권과의 허니문이 끝났음을 분명히 알렸다.


이는 분명 이전의 문재인에게선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문재인의 권력의지를 강력히 뒤흔든 세월호 사건이 터진다. 늘 어디서나 꼿꼿하고 신사적인 모습만 보이던 문재인이 무너져 내렸다.


'노무현의 죽음에도 눈시울만 불거질 뿐 잘 견디고 심지어 노무현의 장례식에서 정적 이명박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고고한 처세를 유지하던 그가 세월호의 죽음을 보고 부모가 죽은 듯이 울었다.'



'그때부터 문재인의 깡이 보이길 시작한다. 신사 문재인은 사라지고 정치가 문재인으로. 권력이 없으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었다는 자책감 피로감 눈물. 세월호의 영령 앞에서 느껴질 자괴감 분노,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절박함. 그 모든 것이 그를 삼키기 시작했다.'



(팽목항에서 유족들을 위로하는 문재인)



(진도체육관에서 유족들을 위로하며 곁을 지키는 문재인)



(유민아빠의 단식을 말리기 위해 시작한 광화문 단식)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행진)


무능한 정부, 잇따른 실책, 분노하는 여론.

문재인은 사건이 터지자 팽목항에 달려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유민아빠를 살리기 위해 10일간의 단식을 하기도 하고 청와대 앞에서 비를 맞으며 특별법 제정 촉구 시위에 나서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속은 끓어오르는데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전당대회 출마, 그리고 달라진 행보


그리고 2014년 12월 29일 문재인은 당대표 선거에 나선다.

그리고 그의 연설에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절박함과 간절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독해지겠다”

“흩어진 48%를 다시 모으겠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 다시는 1∼2%가 모자라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누가 총선 승리를 이끌 적임자입니까? 누가 정권교체를 가져올 최고의 적임자입니까? 여야를 통틀어 최고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저, 문재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당대표직은 분명히 독배였다. 당 내의 권력을 틀어쥐게 되지만 총선을 승리 시키지 못하면 당대표로서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정치인생을 건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당을 살리지 못한다면, 총선 승리 못한다면, 제가 어떻게 대선 후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사즉생(死卽生), 죽기를 각오하고 나섰습니다"



"친노라서 경상도라서 안 된다는 겁니까? 제가 목숨을 바쳐서 반드시 총선승리와 정권교체를 가져와서 이명박근혜 집권을 끝장내겠습니다. 제가 상처 받고 망가져서 저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어진다 해도, 우리 당을 이기는 당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제가 정치에 뛰어든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선



지난 총·대선, 지방선거 모두 패배 계파갈등에서 비롯된 내부적인 당 파열 그리고 당장 내년에 있을 총선거. 가까스로 대표는 되었으나 당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문재인은 말그대로 당 혁신을 위해, 내년 총선의 승리를 위해,그리고 나아가 대선 승리를 위해 본인의 모든 정치인생을 걸고 뛰어든 것이다.


'대표당선 이후 문재인은 대권행보를 시작한다. 노무현의 유산을 받은 고고한 선비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 스스로 서 버린 것. 이제까지는 노무현의 그늘 아래에 있던 그가 노무현의 길을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번째가 이승만 박정희 묘소 참배였다. 문재인으로서는 정말 고통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에 항거하던 그가 이제 정치가의 길로 들어선게 보이니까. 그렇지만 그들 역시 대한민국의 역사였다.'



문재인은 국민적 갈등과 논란을 종식시키고 과거의 공과를 분명히 인정하겠다고 천명한다. 문재인의 이러한 변신은 분명히 강렬한 권력의지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한 표라도 더 끌어 모아서 반드시 집권하여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강력한 집권의지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은 본격적으로 당의 체질개선을 위한 당 개혁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반발에 부딪힌다.



박지원과 조경태는 공천권, 안철수는 대선후보, 김한길은 당권을 두고 문재인과 대립한다. 문재인은 야권분열을 막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이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화합하려 노력했으나 이들은 끝내 분란과 갈등만 거듭하다 대거 탈당해버린다.


그리고 2015년 12월 28일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문재인은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겸하고 인재영입작업에 착수한다.

그리고 이는 곧 신의 한수가 된다.



문재인의 활약으로 표창원(전 경찰대학 행정학과 교수), 조응천(전 검사, 전 박근혜 대통령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박주민(세월호 변호사), 김병기(전 국가정보원 인사처장) 등 각계각층의 인재들이 영입됨으로써 거물 정치인들의 탈당으로 인한 당 내 불안감을 안정시키고 뿐만 아니라 새로이 영입된 인재들의 높은 전문성과 참신함은 당의 이미지 쇄신에도 기여한다.



20대 총선에서 문재인은 전국방방곡곡을 넘나드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후보 단일화와 지원 유세를 도와 총선승리에 기여하였고 또한 문재인발 영입인사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당 내 본인의 입지를 공고히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을 돕고 있으며, 준비된 대선 후보로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엔 역시나 전국순방을 돌며 각종 집회, 시위, 연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국민과 소통하며 관심을 환기시키고 민심을 끌어모으는데 앞장선다.



글을 마치며

4년 전 문재인은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였지만 여전히 정치가 두렵다고 말했다.

2012년 1월 9일 방영 힐링캠프中



그때의 문재인에겐 정치란 노무현이 건넨 '운명'이라는 독배를 받아들고 어쩔 수 없이 택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4년 뒤 지금의 문재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나 또는 정권교체,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너머 그 너머, 우리가 가야할 곳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리고 국민들께 그 방안도 제시하고, 정말 대한민국의 기적! 다시 한번 우리가 일으켜야 합니다. 제가 감히 그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

2016년 11월 23일 부울경 국제 아카데미 강연中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문재인을 보고 너무 유약하다고, 권력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노대통령의 서거 후 일련의 사건들은 문재인을 각성시켰고 문재인은 그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간절하고 절실하게 권력의지를 희구하게 되었다.



청와대 재직시절 문재인의 별명은 노무현의 그림자였다고 한다. 그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노무현의 한 발 뒤에서 그저 묵묵히 노무현의 뜻을 따랐다.

그러나 노무현의 뒤에서 늘 엷은 미소를 걸치고 묵묵히 그의 뜻을 따르던 점잖은 비서실장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오직 집요한 권력의지와 스스로의 강단만을 가지고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정치가 문재인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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