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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보면 남에게 피해를 주었는데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고 떳떳하다고, 법치주의 국가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이것을 보면 분노가 느껴지는데 이런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볼지 모르겠습니다. 윤홍식 대표가 이 부분에 대하여 『논어』의 이야기를 들어서 설명해 줍니다. 

 

 

- 질문자 : 요즘은 법망만 빠져 나가면 떳떳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괜히 양심지키다가 피해나 본다는 생각들도 많은데요. 정말 법만 안 어기면 괜찮은 건지, 도대체 무엇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 윤홍식 대표 답변 : 공자님께서 『논어』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셨죠.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길 “정치상의 법률과 명령으로만 인도하고 형벌로 가지런히 한다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덕德’으로 인도하고(사단四端의 확충, 명명덕明明德) ‘예절’로 가지런히 해야만(사양지심辭讓之心의 확충),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바로잡을 것이다(수오지심羞惡之心의 확충)”라고 하셨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유명한 얘기입니다. 정책과 어떤 법률과 명령 만으로 만약에 사람들을 인도하고 형벌로, "말 안 들으면 잡아넣지 뭐." 이렇게 다스린다는 건 한비자가 주장했던 정치 방식입니다. 진시황이 그걸 택했었어요. 인간은 '호리피해'(好利避害)의 존재이다. 인간은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니까 잘하면 상주고 못하면 벌주면 통치되게 되어 있다라는 한비자의 주장을 적용했는데 진시황 아들 때 바로 망했죠.

 

인간이 이렇게는 안 되거든요. 상을 줄 때도 그냥 주면 안 돼요. 예의를 갖춰서 줘야 좋아합니다. "옛다, 상이다." 하고 100만원 던져주면 나를 뭘로 보고 이렇게 이렇게 해라고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은 그렇게 돌아가지가 않아요. 그래서 중국에서 진시황 때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충분히 써 보고 망하고 난 뒤에는 한나라 때 다시 유교를, 대아적 효율성을 어떻게든 제일 앞에다 걸어요. 법가를 추구하는 한이 있더라도 겉에다는 유교를 걸어요. 지금도 그럽니다.

 

자본주의는 솔직히 한비자와 똑같아요. 인간을 이렇게 분석하는데도 겉에다는 그렇게 안 하죠. 우리는 가족이고 뭐 우리는 한 식구고 딴 소리를 해요. 인의예지를 걸어야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이죠. 손님이 왕이네, 너를 위할거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호리피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인간이 싫어한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실험해서 체험한 겁니다.

 

그 뒤로는 절대 중국 2천년 간 인의예지를 앞에다 걸지 욕심을 앞에다 안 걸어요. 이걸 걸면 다 싫어한다는 걸 알아요. 망해버렸으면 해요. 저 집안 망해버렸으면 하고요. 왜냐하면 자기들만 이익을 얻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거잖아요. 그럼 그 얘기는 나한테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인간은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얘기가 이것을 얘기한 겁니다. 인간은 이렇게 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소아적 효율성만을 가지고 교육을 시키면 어떤 효과가 나느냐?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워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같은 사회입니다. 법망에 안 걸리면 그걸로 아주 만족해 하지 내가 그래도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했구나 하고 생각 안 한다는 겁니다. 이 양심이 활성화가 안 되어 있으니까요.

 

수오지심(정의,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을 부끄러워 하는 마음)을 활성화 시켰으면 아에 죄를 안 저질렀을텐데 수오지심이나 측은지심을 활성화를 안 시켜놓고 죄를 지은 다음에 잡아다 그걸 처벌만 한다는 식으로는 처벌 피하면 다행이다 하고, 자기 양심에는 전혀 반성을 안 한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이 양심이 부끄럽게 만드는 게 훌륭한 정치다 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려면 리더부터 잘 해야겠죠. 그래서 그 다음 얘기가 이겁니다. 덕으로 인도하고, 임금이 양심을 잘 지켜서 백성들도 양심을 지킬 수 있게 유도하는 겁니다. 이게 노자가 말한 진정한 '무위'(無爲)에요. 임금부터 백성까지 하나로 이렇게 양심을 회복하자 하는 거죠. 홍익학당 같으면 양심(4단)노트를 전 국민, 전 가정에 보급하라 하는 것입니다. 저의 '호리피해'의 마음, 욕심도 조금 있습니다만 세종대왕께서도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삼강행실도』를 만화로 만들어서 보급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보급을 했는데 그게 한문으로, 그땐 한글이 없었어요. 한문으로 한 편에 삽화를, 스토리를 한 그림에 그린 만화식이에요. 그것을 가지고 한문으로 써서 보급했는데 문제가 한문을 아는 사람만 읽을 수 있으니까 백성들은 못 읽어요. 그래서 세종대왕이 삼강행실도 보급해 보고, 윤리문제, 그때도 부모를 죽이고 하는 패륜사건이 났거든요. 세종대왕이 가슴 아파서 『삼강행실도』를 돌렸는데 한문이 통하지 않더라는 것과, 『농사직설』같은 기술서를 보냈는데 정작 농사짓는 사람들이 못 읽어요. 법조문을 못 읽어서 피해가 나요. 이런 사건들 때문에 한글을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윤리, 기술이나 정보, 법률문제 때문에 송사사건 때문에 한글을 만들어요. 세종대왕의 측은지심이 끝장이죠. 백성들이 불쌍해서 남 같지 않아서 밤 잠 안자고 연구해서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신하들은 다 머뭇거릴 때 임금이 주장해서 만든 거예요. 이런 경우가 덕으로 인도하는 겁니다. 나부터 해서, 내 양심이 못 견디겠다 라고 임금부터 해서 덕으로 인도한다는 게 양심(4단)을 확충하는 겁니다.

 

덕으로 인도한 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양심(4단)노트' 쓰라고 그래라고 하면서 자기는 안 지키는 이런 게 아니구요. 자기부터 잘 해서 신하들을 인도하는 겁니다. 국민과. 예절로 가지런히 해준다. 예절은 사양지심의 문제인데 왜 사양지심을 공자님은 자꾸 얘기 하냐면 사랑의 마음, 분노의 마음은 표현될 때는 꼭 사양지심으로 표현돼요. 사랑한다는 것도 예절(에티켓)에 맞아야 되고, 분노도 예절에 맞아야 돼요. 적절한 분노여야지 과하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밖으로 표현되는 건 예절로 표현되기 때문에 양심을 계발하되 밖으로 표현이 적절해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런 사양지심을 적절히 계발해서 밖으로 언행이 적절하게 나가게만 해 주면 백성들 스스로가 부끄러운 줄 알고 스스로 바로잡을 것이다. 백성들의 수오지심이 자극 받아서 감히 죄를 못 짓게 되게 만들거라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죠. 만약에 지금 교통법규나 여러 가지에 대해서 안 걸리면 장땡이다라고 우리가 쉽게 생각 하잖아요. 사안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상당히 중요한 사안들이 남한테 피해가 많이 가는 부분에 있어서 이런 식으로 국민들이 판단하게 방치하고 있다면 잘못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부끄럽게 양심 교육을 시켜줘야 된다는 거죠. 부끄럽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인간이 본래 갖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자극만 주면 원래 계발이 되게 되어 있다는 게 유교의 입장인 거죠. 재밌는게 아주 악인들도 거짓말할 때 보면 눈깔이 돌아가고 이렇습니다. 양심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게요.

 

이게 태연하게 하는 사람은 진짜 사이코패스, 아주 심한 사람들은 그래도 덜 하겠지만 그래도 달라요. 사람은 거짓말하기 힘들게 만들어졌다는 것도 아실 거예요. 여러분도 잘 못하시잖아요. 할 때 다 티나요. 자기는 최대한 평정심을 갖고 한다고 하지만 거짓말 탐지기 하면 걸리죠. 심장 박동부터 틀려지는데요. 이게 양심이 있다는 근거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안 할려면 한번 크게  결심을 하셔야 돼요. 내가 정말 우리 새끼들 때문에 내가 양심을 잠시 꺼 둬야겠다. 이런 비장한 각오가 없으면 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자신이 어떤 진짜 힘들어서 했더라도 편치 않은 게 이게 양심의 가책입니다. 그래서 범인들 중에 상당수가 자수하거나 잡혔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정말 힘들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인과법칙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주에 인과법칙이 있다. 어디있냐? 왜 죄인이 잘 살지 않냐? 죄인 속이 편치 않아요. 우주에 인과법칙이 있다는 근거가 이겁니다. 겉으로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냉정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심을 어긴 순간 자기로부터 벌써 부정당해요. 자기 양심으로부터 인정을 못 받고 남한테 드러나게 됐을 때는 쇠고랑을 안 차더라도 남한테 지탄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 상태가 이미 처벌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과법칙이 절대 없지 않아요.

 

여러분도 있다는 걸 아니까 되도록 죄 안 짓고 사시잖아요. 한 번 죄를 저질러 놓으면 그것 때문에 시달려야 된다는 걸 아시니까 되도록 안 어기실 겁니다. 요즘 애들이 친구 때리고 잠바 뺏어가죠. 이것을 친구 잠바 뺏지마라만 자꾸 가르쳐서 될 일이냐는 거죠. 수오지심과 측은지심이 발달되면 친구 잠바를 못 뺏게 되어 있죠. 잠바 잃어버리고 집에 갈 친구의 마음을 한 번 헤아려 보고 그 친구 입장에서 자기의 악행을 한 번 돌아보는 이런 감각만 발달해 있으면 죄를 못 짓는다는 겁니다. 차라리 잠바 안 입고 말지로 결론이 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양심노트를 권장드리는 건 이런 식으로 평소에 자기 양심을 계속 자극을 주시라는 겁니다. 그러면 중요한 순간에 죄를 못 짓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시간 되시는 분은 아래 양심노트 양식을 다운 받으셔서 본인의 사안에 한번 적용해 보십시오.

 

양심노트 양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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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한글 역주 1·2·3〉
김용옥 지음/통나무·각 권 2만6000원


도올이 안내하는 논어 읽기의 오르가슴

공자의 생애 세밀하게 추적 동서고금 주석문 두루 참조
“신 배제한 인간중심 사유로 가장 현대적 고대문명 열어”

도올 김용옥 (61)
 
도올 김용옥(61) 전 세명대 석좌교수가 한자문명권의 최고 고전인 <논어>를 번역하고 주석한 <논어 한글 역주>(전 3권)를 펴냈다. 권당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완역판이다. 1982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래 줄곧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스스로 번역의 범례를 세우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야 그 약속의 일단을 실천한 셈이 됐다.

“한 갑자를 돌고 난 내 인생을 회고해 보면서, 나는 갑자기 나의 학문세계의 초라한 모습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서삼경을 포함한 중국 고경 13경 전체를 번역하고 주석하는 작업이었다고 그는 이 책 서문에 밝히고 있다. 그 첫 작업이 <논어> 역주인 셈이다.

 
지은이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논어>의 세계사적·문명사적 위치와 의미를 찾는 긴 서문을 통해 ‘인류문명’을 ‘전관’하고 있다. 이 문명사적 조망은 그리스·로마 문명을 뿌리로 삼는 서구 문명을 상대화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이라는 세계 4대 문명이 범아시아 대륙에서 태어났음을 고려하면, 그리스·로마 문명은 그 문명권 바깥에서 일어난 역외의 문명이다. 고대문명 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원류 속의 말류’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 문명이 오늘날 지배문명이 된 것은 ‘연역적 사유’의 발견에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근대 서구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으며, 과학기술을 흥성시킨 것은 이 그리스 문명의 사유 방식에 기댄 성과였다. 지은이는 서구의 지배를 가능케 한 이 세 위업 가운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아시아가 어느 정도 따라잡았으며,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이 자연과학 분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것이 보편타당한 최종적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진리’ 이상의 어떤 새로운 진리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서 <논어>라는 서구 문명 바깥의 사유를 새로이 탐구할 필요성이 나타난다.


종교문명사적 차원에서도 <논어>의 자리는 의미심장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대 문명 초기에 등장한 다신교적 신앙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하여 일신교 신앙으로 나아갔고, 이어 인더스·갠지스 문명을 통해 일신교 자체의 극복인 불교를 낳았다. 불교가 보여준 신 없는 종교 체계는 중국 문명에서 그대로 재현됐는데, 그것이 유교 문명이다.

공자는 신을 배제한 인간 중심의 사유, “인문학적 윤리학”의 건설자였다. 그런 점에서 “고대 문명 세계에서 가장 콘템포러리한(현대적인) 문명”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논어>를 탐구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 사유의 새 지평을 탐색하는 일이 된다.


지은이는 공자의 생애에 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공자의 삶 자체를 추적하는 것은 공자가 살았던 구체적 삶을 알지 못하고 <논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공자의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책이 바로 <논어>라는 사실이다. “공자는 오직 <논어> 속에만 살아 있다.

나는 <논어> 이상 진실한 공자에 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공자의 숨결이 생동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55살 때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주유’를 한 뒤 고국에 돌아왔다. <논어>는 그가 귀환한 68살 때부터 73살 때까지 말년의 생각을 뼈대로 삼고 있다. 원숙기의 사상이 담겨 있는 셈인데, 그 사상이 수미일관한 체계 속에 추상적으로 기술돼 있지 않고 상황적 텍스트들의 콜라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이 경전의 특징이다.

“‘논어’의 ‘어’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이나 당시의 사람들과 대화한 말, 그리고 제자들끼리 토론한 말, 그리고 공자에게 접문한(가까이 가 들은) 말이다. ‘논’은 ‘집이논찬’이란 뜻으로, 그 말들을 편찬했다는 뜻이다.”


이어 <논어> 해석의 역사를 살핀 ‘논어해석사강’과 신주의 틀을 세운 주자의 ‘논어집주서설’ 번역문, 그리고 지은이 자신의 번역론을 본문 앞에 배치했다. 본문에서 지은이는 ‘학이 편’에서 마지막 ‘요왈 편’까지 20편을 차례로 번역하고 고주와 신주 등 동서고금의 주석문들을 가능한 한 폭넓게 참조한 뒤 지은이 자신의 시각으로 새 주석을 단다.

가령,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정명’(正名)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자로 편’의 해당 구절을 지은이는 이렇게 번역한다. “자로가 말하였다. ‘위나라의 군주가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하려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을 먼저 할 것이다.’ 자로가 말하였다. ‘역시나 했더니만, 선생님도 참 아둔하기 그지없으시구려. 왜 하필 이름을 바로잡는다고 하십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말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생한 현대 구어체로 이루어진 번역이다.


<논어>를 읽고 깨닫는 즐거움에 대해 정자가 이런 말을 했음을 지은이는 상기시킨다. “논어를 읽으매, (…) 어떤 자는 읽고 나서 그중의 한두 구절을 깨닫고 기뻐한다. 또 어떤 자는 읽고 나서 참으로 배움을 즐기는 경지에 오르는 자도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읽고 나서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기뻐 발을 구르는 자도 있다.” 이 책은 이 희열로 가는 긴 여행이다.
-한겨레신문-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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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14년간의 유랑생활을 끝내고 고국인 노(魯)나라로 돌아온 것은 기원전 484년, 공자 나이 68세 때였다. 그때 그는 이미 자신의 철학적 이상의 정치적 실현이라는 꿈을 접었고, 오직 학문에만 몰두했다. 『논어』‘옹야’ 편을 펼쳐 보면 이즈음의 사건으로 재미난 고사가 하나 수록되어 있다.

공서화(公西華)라는 매우 의례에 밝은 제자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주자는 이 사신이 공자 개인의 사적 심부름이라고 주석을 달고 있으나, 그것은 몹시 잘못된 해석이다. 공서화는 당시 노나라의 실권자이며 공식적 집정(執政)이었던 계강자(季康子)의 사신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염구라는 또 하나의 제자가 계강자의 가신 노릇을 하며 재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서화는 사신으로 떠나있는 동안 홀어머니가 외롭게 남아있게 되므로 그 어머니에 대한 생활비를 염구에게 요청했다. 염구가 이러한 상황을 공자에게 와서 의논했다. “공서화에게 얼마나 주면 좋을까요?”

공자는 속으로 ‘공무로 가는 놈이 그냥 가면 될 것이지, 뭔 엄마 생활비를 따로 청구한단 말인가’하고 불쾌하게 생각했다. 공서화는 노나라 사람인데 집안이 원래 부유했다. 그런 사정을 공자는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한 말이나 주려무나.” 옛날에는 생활비를 쌀로 계산했다. 염구는 실무관리형의 아주 약삭빠른 인물이었는데, 이왕 줄 것이면 뒤끝 없이 더 주자고 했다. 공자는 내심 불쾌하게 생각하면서도 하는 수 없이 이같이 말했다. “그럼 한 가마 정도 주렴.” 한 말에서 한 가마로 뛰었으면 공자로서는 크게 선심을 쓴 셈이다.

그런데 염구는 손 크게도 공서화에게 열 가마를 주고 말았다. 염구로서는 어차피 그 비용은 계강자의 창고에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공자는 그것이 다 노나라의 서민들의 피땀을 긁어 모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말에서 열 가마로 뛰었으니, 공자의 당초 계산에서 100배를 더 준 셈이다. 후에 공자는 공서화가 화려한 행렬을 차리고 제나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와 같이 말했다. “아 글쎄 공서화가 제나라로 가는데, 살찐 말 수레를 타고 가볍고 호사한 가죽옷을 입고 갔다는구나!(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88D8>). 나는 들었지. 군자는 곤궁한 사람을 도와주어도 부유한 사람을 보태주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그렇다고 공자가 짠돌이 노릇만 하는 것은 아니다. 『논어』의 편찬자는 이와 상반되는 사건을 바로 뒤이어 소개하고 있다. 공자가 노나라의 대사구(大司寇: 법무장관)였던 시절, 원헌(原憲)이라는 매우 청렴하고 강직한 제자를 가신으로 고용하면서 그에게 곡식 900말의 봉록을 주었다. 원헌은 너무 많다고 사양했다. 그러자 공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아서라. 사양치 말라! 그것을 너의 이웃과 향당에 나누어 주려무나.(毋! 以與爾<9130>里鄕黨乎!)”

종부세의 헌재 판결에 나는 크게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어떤 법제적 원칙에 의하여 심의를 거친 결론일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합산을 위헌으로 판결하는 내면에는 그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종부세를 헌재의 판결과정에서 위헌이라고 주장한 정부의 정책비전과, 종부세의 폐지를 유도해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20년 넘게 신뢰를 잃은 공화당 철학을 신봉해 왔습니다. 가장 많이 가진 자에게 더욱 더 많은 것을 주어라! 그리고 번영이라는 콩고물이 모든 이들에게 떨어져 내리기를 바라라! 워싱턴 정가에선 이것을 ‘소유권 사회’라고 하지요. 그러나 진짜 의미는 ‘알아서 하라’죠. 실직? 운이 없군요. 의료보험 없어요? 시장이 해결해줄 겁니다. 가난하게 태어났어요? 자수성가(自手成家)하세요. 손(手)이 없는데도 말이죠. 이제 우리가 미국을 바꿀 때입니다.”

오바마의 연설문 중 일부다. 종부세를 백지화시키고 싶어하는 정부와 한나라당 정책자들은 기껏해야 오바마가 부정하고 있는 그 논리를 이제 뒤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2500년 전 곡부에서 공자가 외친 말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군자는 곤궁한 자를 도와줄지언정 가진 자를 보태주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돈을 버는 자가 당당하게 대접을 받는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생각한다. 돈을 번다는 것은 영민한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요,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돈의 윤리에 관한 것이다. 돈은 가치며, 그 가치는 그 가치를 창출한 사회로 환원될 때만이 참다운 가치가 있고, 또 그 가치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자유경쟁의 토대 위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며 정상적 경제질서가 성립한다는 관념은 경제학의 기본적 확신이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을 뒷받침하려면 그 사회의 모든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가장 이상적 질서를 위해 조화로운 협력을 이루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가장 기본적인 ‘신뢰’를 상실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적 발상만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거지 취급하고 있다. 지금 와서 푼돈을 나누어 준다고 해서 경기가 부양될 이치가 없다. 국부의 증진을 위한 근원적인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국고만 고갈되어갈 뿐이다. 천하(天下)는 신기(神器)이다. 함부로 위(爲)할 대상이 아니다.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건축경기 등 경기부양의 즉물적 발상에 멈추는 것이라면, 그리고 부자들의 돈놀음에 의한 적하(滴下) 효과 정도라면 이 나라의 건강한 미래는 보장될 길이 없을 것이다. 시장과 정부, 자유와 통제의 대립적 문제를 논하기 전에 구체적 비전과 방안이 결여되어 있는 딱한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올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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