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메이지 시대는 학습열의 시대였다.
국가가 융성하려면 모든 국민들이 공부에 푹 빠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 속도에 발 맞추어 정치인들도 학습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어려운 상황을 뚫고 일정 수준 이상 올라선 것도 교육열 덕분이라 하겠다.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시대가 바로 그러했다.
“이름이 판명된 것만 해도 2,000여 개가 넘는 1880년대의 민중결사에서는 연설회나 토론회가 개최되어, 국회 개설을 위한 정치활동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독서회도 개최되어 정치, 법률, 경제 등과 관련된 서구 근대 사상 번역서들을 읽고 격론을 벌였다. 그 시대 민중결사의 대부분은 ‘학습결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를 자른 지 얼마 안 된 무사(부시)나 정인(조닌), 농민들은, 연설회나 독서회 등을 통하여 서구 근대의 자유나 평등사상을 배워 자신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국가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며, 그 틀이 될 헌법의 초안도 작성하고 있었다.” (책 ‘에도의 독서회’, 마에다 쓰토무 저)
2. 독서회는 세 가지 원리가 있었다.
독서회는 여러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책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다. 독서 토론의 경험이 있다면 누구든 그 책을 제대로 읽고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 대화를 주도해 나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독서회의 어떠한 특징 덕분에 일본의 성장에 도움을 준 것일까?
“회독(독서회)의 제1원리는 …. 참가자 간의 ‘토론’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성이다. 이 원리가 특필되어야 하는 이유는 근세 일본 국가가 상의하달(상명하복의 군대식 체계)의 일방향적이고 종적인 인간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회독의 두 번째 원리는 ‘토론’을 할 때 참가자의 귀천이나 존비의 구별 없이 평등한 관계에서 진행한다는 대등성이다. ….회독의 장은 이처럼 대등하게 실력만이 시험 받는 곳이었다. …. 세 번째 원리는 독서를 목적으로 하여 기일을 정하고 일정 장소에서 행한다는 것을 규칙으로 정하고, 복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집합한다는 결사성이다.” (책 ‘에도의 독서회’, 마에다 쓰토무 저)
3. 독서회는 왜 힘이 빠지게 되었을까?
근대 일본에서 독서회가 활짝 꽃피우다가 결국 오래 가지 못했다. 통상 책이 읽히는 분위기와 그렇지 않은 분위기를 떠올리면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지금도 먹고 살기 바쁘면 책을 읽지 않는다. 수험생이 책을 붙들고 있으면 혼나기 일쑤다. 경쟁이 코 앞일 때 책을 손에 잡기 어렵다. 경쟁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고, 그로 인해 독서회의 힘은 어떤 식으로 빠졌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학문이 입신출세와 직결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에도 시대의 학문이 지니고 있었던 유희성, 즉 ‘해체신서’ 번역에 도전하는 것 같은 학문연구 그 자체를 즐기는 ‘놀이’가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 서로의 이익과 상관없는 놀이가 아니게 되었을 때, 경쟁을 격렬해 진다. 이 때문에 서로 ‘도리’를 탐구하여 대등하게 토론하는 것도, 서로를 동지라 의식하는 일도 사라지며,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 경쟁 상대를 앞서 가기 위해 비밀리에 독서에 힘쓰게 된다. 이른바 과거에 합격하기 위한 수험 공부처럼 되었던 것이다.” (책 ‘에도의 독서회’, 마에다 쓰토무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