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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인지학으로 본 세계사 : 인간정신을 인식하기 위한 기초 - 루돌프 슈타이너

by 성공의문 2014. 1. 16.



인지학으로 본 세계사


세계사 ― 인간정신을 인식하기 위한 기초

도르나흐, 1923년 12월 24일 - 1924년 1월 1일

루돌프 슈타이너

타카하시 이와오 / 유창완



제 1 강 기억의 삼단계

1923년 12월 24일

 


◎ 내면생활의 진화

 

금번 크리스마스회의 기간 중 밤에는 여러분에게 인류사의 발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기회에 지상의 인류 진화를 다시 한 번 개관함으로써 현재의 인간 본질을 지금보다 깊게 집중해서 의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회의는 모든 인류문화의 미래에 대단히 중요한 준비를 하려고 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바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현대인의 혼의 모습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현재 우리 혼의 모습은 과거와의 관련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진화에 관해서든 인류전제의 진화에 관해서든 현대인은 대단히 한쪽으로 편중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인간의 혼적 영적인 생활은 과거도 현재도 역사전체를 통틀어서 본질적으로 달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과학적인 문제에 관해서 고대인은 본질적으로 어린아이 같고, 각양각색의 미신을 믿으며, 인류는 극히 최근이 돼서야 겨우 과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연구를 별게로 하면 일반적으로 현대인의 혼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인이나 고대 동양인과 같은 혼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도, 인류전체도 역사상 어떠한 시대에도 기본적으로 같은 마음과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사시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시대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아직 동물의 모습을 한 인간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사 이래 인간의 마음과 몸의 활동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며, 그 이전의 모습은 안개에 둘러싸여있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은 아직 불완전한 고등영장류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이 거의 일반적인 현재의 사고방식인데, 그 사고방식은 대단히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한, 현대인과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11세기, 10세기, 9세기의 인간 사이의 혼의 모습에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를 전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인과 골고다의 성사(聖事) 시대의 인간, 현대인과 고대 그리스인 사이의 혼의 모습을 말하려 한다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집니다.


 

◎ 고대 동양인의 혼

 

그리고 고대 동양 세계에 이르게 되면,―그리스문화는 이 세계의 일종의 식민지, 마지막 식민지였는데―이 세계의 사람들의 혼생활은 현대인의 혼생활과 전혀 달랐습니다. 1만 년 전, 또는 1만5천 년 전의 동양인이 고대 그리스인 혹은 현대인과 얼마나 다른 존재였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뒤 곧 설명할 예정입니다.


우선 우리 자신의 혼에 시선을 향해봅시다. 무엇인가를 체험한다고 합시다. 보거나 듣거나 하는 체험을, 당사자로서 그와 같은 어떤 체험을 했다고 하면, 그 체험은 기억이 돼서 다시 의식 속에 되살아납니다. 예를 들면 10년 전의 체험을 오늘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10년 전 어떤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그 당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한 것, 모두 함께 무엇인가 한 일, 그러한 일들이 오늘 이미지가 되어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이 내적인 혼의 이미지는 10년 전의 사건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학문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 떠오릅니다. ―물론 현대인은 그러한 감정을 매우 적은 부분밖에 체험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감정에 의해서 떠오르는 기억이 발생하는 장소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머릿속에 그 위치를 정해놓고 있습니다. 머릿속에는 옛날 체험을 기억해내는 작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금 아득히 먼 과거로 건너뛰어서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가 동양의 거주민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현재의 중국인, 인도인 그 밖의 사람들은 이 거주민들의 자손입니다. 그러므로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인간을 보면 그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머릿속에는 외적인 생활 가운데서 체험한 것을 기억하는 기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법한 생활방식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내적인 체험은 그 사람들과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머를 그러한 생각(사고)이나 마음(감정)으로 채우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대의 피상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보면 ‘지금 우리와 같은 생각이나 마음을 옛날 사람도 품고 있었다.’고 해야 하지만 그러한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먼 과거를 영시하면 머릿속에 그러한 생각이나 마음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의 머리는 추상적인 내용을 체험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로테스하게 생각하겠지만―사람들은 머리 그 자체를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머리 그 자체를 느끼고 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의미의 추상작용과는 관계가 없는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던 것입니다. 머릿속의 생각을 체험하는 법을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를 체험하는 방법을 알고 있던 것입니다.


 

◎ 머리와 지구, 가슴과 대기권, 심장과 태양

 

우리의 경우 과거 체험을 떠올릴 때 이 기억상을 과거의 체험과 연결 짓습니다. 태곳적 사람들은 자기 머리의 체험을 대지와, 지구전체와 연결 지었습니다. ‘우주에는 지구가 있고, 지구에는 내가 있고, 나에게는 머리가 있다.’ 이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깨위에 얹혀있는 내 머리 그 자체가 지구에 대한 우주적인 기억이었습니다. 지구는 먼 과거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머리는 훨씬 뒤에 가서야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기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지구 존재를 향한 우주적인 기억이었습니다.


인간 머리의 형태, 모습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지구의 모상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태고의 동양인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구혹성의 본질을 느끼고 있던 것입니다. ― “신들은 지구와 자연의 모든 영역을, 산과 강을 우주 그 자체로부터 창조해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어깨 위에 이고 있는 이 머리는 지구 그 자체의 충실한 모상이다. 이 머리도 그 안에 흐르는 피도 지상을  흐르는 하천과 해류의 충실한 모상이다. 지상의 산계(山系)는 내 머릿속의 뇌의 모습이 되어 반복되고 있다. 내 어깨위에 나 나름의 지구혹성의 모상을 짊어지고 있다.” 그와 같이 태고의 동양인은 말했습니다.


현대인이 자신의 기억상을 과거 자신의 체험과 연결 짓듯이 태고의 동양인은 자신의 머리 전체를 지구혹성과 결합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내면생활의 본질적인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에는 태양으로부터 발산하는 열과 빛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자신의 힘들을 이 대기권에 방출하고 스스로를 태양의 작용에 맡깁니다. 그와 같이 해서 우주로부터 오는 작용을 받아들입니다. 그 경우 고대 동양인은 누구라도 지상에 있는 자신의 거주지를 이 대기권과 관련해서 특별히 중요한, 특별히 본질적인 장소이며,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대지도, 태양과 접하고 있는 위쪽 대기권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상의 다른 지역은 오른쪽, 왼쪽, 앞, 뒤로 저 멀리 멀어져감에 따라서 흐리멍덩하게 사라져갔습니다. (그림1 참조)


<그림1>


예를 들어 인도에서 생활하고 있던 고대 동양인이 그 인도의 땅을 성스러운 곳으로 느꼈을 경우 인도 이외의 동쪽, 서쪽, 남쪽, 북쪽 지역은 일반적인 토지로서 희미한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구와 지구이외의 우주공간의 경계에 대해서도 별다르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자신의 거주지는 특별히 소중한 땅이었습니다.(그림1의 붉은 색 부분) 그 사람에게 그 지역의 생활을 통해서 우주공간을 향해 영향을 주는 일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땅에서 어떻게 호흡했는지는 그 사람에게 특별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었다면 어떤 땅에서 어떤 호흡을 하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 날 사람들에게도 숨쉬기 좋은 환경 나쁜 환경이 있지만 그것을 각별한 마음으로 생각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고대 동양인은 특정한 땅에서의 호흡방식을 특별히 깊게 체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땅의 하늘이 어떤 식으로 우주공간과 연결되어있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고대 동양인은 머릿속에서 지구전체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단단한 뼈에 의해서 윗부분이나 옆, 뒷면이 닫혀져 있지만 아랫부분에는 통로가 있고 가슴을 향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그림1 좌측) 머리가 비교적 자유롭게 가슴 쪽으로 열려있음을 느끼는 일은 고대인에게 특별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고대인은 머리 내부의 형상을 지상의 모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구를 자신의 머리와 연결 짓고,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을 머리 이외의 신체와 연결 지은 것입니다. 머리가 아래를 향해서 열려있는 것, 심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지구가 대기권을 향해서 열려있는 것과 대응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지구는 대기권을 통해서 우주를 향해서 앞으로 열려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커다란 감동과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지구전체를 머릿속에서 느낀다. 이 머리는 작은 지구이다. 하지만 이 지구전체는 나의 심장을 짊어지고 있는 가슴을 향해서 열려있다. 그리고 나의 머리와 가슴, 심장 사이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은 지구와 우주, 대기권과 태양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들의 모상이다.”


거듭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의 머리 안에는 지구가 살고 있다. 더욱 깊이 들어가면 그 지구가 태양을 향한다.(그림1 화살) 그 태양이 안의 심장이다.”


이렇게 말하는 고대인은 우리의 감정생활에 대응하고 있는 혼의 생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의 생활을 감정으로 체험하고 있지만 자신의 심장을 직접 느끼지는 못합니다. 해부를 통해, 생리학을 통해서 심장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하지만 학문에 의해서 얻은 지식은 종이점토로 흉내 낸 심장에 대한 지식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정에 의한 심오한 세계체험은 고대인에게 없었지만, 그 대신에 고대인은 심장을 이와 같이 체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위 세계와 감정으로 결합되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좋아하고, 무엇인가를 싫어하고, 또한 나아가서는 확고한 이 세상의 현실로부터 공기처럼 추상화되고, 떨어져나간 세계과도 감정으로 결합하듯이 고대 동양인은 자신의 심장을 우주와 결부 지었습니다. 즉 자신의 몸으로 지구에서 대기권으로 나아가서 태양을 향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외출한다고 합시다. 그때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우리의 의지는 지체(肢體) 안에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동양인은 본질적으로 다른 체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의지’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사고, 감정, 의지가 고대 동양인 안에도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구인 머리의 체험과 태양에 이르는 대기권인 가슴과 심장의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지체와 행성

 

고대 동양인은 손발의 움직임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지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성을 지체 안에 보냄으로써 지구의 대기권뿐만 아니라 인간과 별 세계와의 관련도 감지했습니다. (그림1 참조) 자신의 머리 안에서 지구를 이미지화 하고, 머리에서 아래 방향의 가슴과 심장 쪽으로 자유롭게 퍼져나가는 것 안에서 대기권을 이미지화하고, 손과 발의 움직임 속에서 먼 우주공간 안에 살고 있는 별들과 지구의 관련을 이미지화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 동양인은 현대인과 같은 ‘의지’의 힘으로 ‘나는 나간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어상으로도 그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앉는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고대어가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살펴본다면 어떠한 고대어라도 ‘나는 나간다.’라고 말하는 대신 ‘화성이 나를 재촉한다. 화성이 내 안에 작용하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전진할 때 양 다리에서 화성충동을 실감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잡고, 무엇인가를 손으로 느낄 때의 감정은 ‘금성이 내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것, 누군가에게 충동을 부여하고 무엇인가 하도록 재촉할 때에는 ‘수성이 사람 안에서 작용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앉는 것은 인간 안의 목성의 작용이었습니다. 또한 휴식을 취하든 게으름을 피우든 눕는 것은 토성의 충동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손과 발의 움직임 안에서 외적인 우주의 펼쳐짐을 느낀 것입니다. 자신의 본성 안에서는 지구에서 우주로, 별의 세계로 가는 것과 머리에서지체로 내려가는 것은 같은 것이었습니다. 머리 안에 지구가 있고, 가슴과 심장에 대기권이 있고, 지체 안에 외적인 우주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완전히 가능합니다. ― “가련한 현대인인 우리는 추상적인 사색에 빠져있다. 그러한 것을 해서 무엇이 되겠는가? 우리는 자신들의 추상적인 사고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추상적인 사색에 몰두할 뿐 자신의 머리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머리는 우리의 어떠한 날카로운 사고보다도 훨씬 내용이 풍부한 존재이다. 대뇌피질의 어떠한 주름 하나를 떼어내더라도,―해부학이나 생리학에서는 대뇌피질의 주름이 가진 훌륭한 기능에 대해서 알지 못하지만― 어떠한 천재적인 과학자의 발상도 미치지 못할 위대한 작용을 하고 있다.”


예전의 지구상에는 인간이 자신의 빈약한 사고내용뿐만 아니라 자신의 머리도 의식하고 있던 시대가 존재했습니다. 그 시대의 인간은 머리를 감지하고, 시상(視床)과 네 개의 뇌실(腦室)을 감지하고, 그것을 대지에 놓인 산계(山系)의 모습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들은 추상적인 학문이론을 통해서 심장을 태양과 관련지은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리와 나의 가슴과 심장 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지구는 태양과 관계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인간은 일생을 우주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평생에 걸쳐서 이 공생을 소중히 생각했습니다. 머리 대신에 빈약한 사고력을 행사하게 된 뒤부터 인간은 사고와 결합한 기억을 갖고, 체험한 내용의 사고상을 기억내용으로서 머릿속에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사고내용이 아니라 머리를 감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와 같은 기억내용을 갖지 않았고,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자신의 머리를 감지하는, 사고와 기억을 가지지 못한 태고의 동양인이 살던 지역으로 간다면, 우리가 지금 다시 필요로 하게 될 능력이 발휘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오랜 기간 그와 같은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우리는 지금 다시 그것을 필요로 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의 혼작용이 가진 작은 태만 탓이기도 합니다.



◎ 땅과 결부된 기억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시대에 자신의 머리, 가슴, 심장, 지체를 감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간다면 작은 말뚝이 땅에 세워져있고 거기에 어떤 표시가 붙어있는 것을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는 어느 벽이라도 어떤 표시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모든 거주지, 모든 생활공간이 다양한 표식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직 기억을 사고내용으로서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일어났을 때 작은 기념물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 갔을 때 자신이 세운 그 기념물로 그때의 사건을 다시 체험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식으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구와 공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단지 머릿속에 메모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메모를 머릿속뿐만 아니라 수첩이나 그 외의 것들에 적어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태만 탓이지만, 점점 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태고 시대에는 그러한 것들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고내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표식으로 덮여있었습니다. 이 인간 본연의 소질로부터 ‘기념비’와 같은 것이 생겨난 것입니다.


인류역사상의 모든 것은 인간 본성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게 이렇게 자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현대의 우리에게는 기념비를 만든 근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우리는 특별히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기념비를 만들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기념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직 현재와 같은 기억력을 갖지 못한 상태로, 체험한 장소에 표시를 남겨두고 다시 그곳으로 향했을 때 그 땅과 결부된 모든 체험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한 태고시대의 흔적입니다. 머리로 체험한 것을 대지에 의탁하는―이것이 태고 시대의 원칙이었습니다.


태고의 오리엔트에는 기념비화된 기억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땅에 표시를  만들었습니다. 기억을 내부에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 여기저기에 만들어진 기념비에 의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지와 결부된 기억입니다.


현재 우리의 영성을 진화시키는 데에 매우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지 않은 이 토지와 결부된 기억능력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대지와 인간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기억능력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해내려고 하지 말고, 이런저런 장소에 표식을 만들자.”,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 바깥의 표시를 기준으로 해서 내적인 혼의 감성을 키우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 방 한 구석에 성모상을 놓고 그 성모상 앞에 서는 것에서 성모를 향한 나의 마음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모상과 같은 기념물과의 섬세한 연결은 지금이라도 우리가 동방을 향해 얼마간 들어가면 어느 가정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동유럽 중부에서도 보편적으로 발견됩니다. 이러한 습관은 모두 땅과 결부된 기억 시대, 기억이 특정 장소와 결합되어있던 시대의 흔적입니다.



◎ 리듬화된 기억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는 땅과 결합된 기억이 리듬화된 기억으로 이행합니다. 처음에는 땅과 결합된 기억, 다음은 리듬화된 기억입니다. 제2단계에서 인간은 기억술이 아닌 내적인 본성으로부터 리듬 안에 살고 싶다는 요구를 갖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들었을 때 리듬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요구를 발달시킨 것입니다. 소가 모우(서양의 경우)하고 울 때 모우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모우모우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더욱 오랜 시대에는 모우모우모우라고 외웠습니다. 즉 지각한 것을 중첩시켜 리듬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현재도 몇 가지 말에는, 예를 들면 가오가오, 쿡쿡쿠(모두 뻐꾸기라는 뜻)와 같이 이러한 표현법 행해지고 있습니다. 또는 아이들 말에는 반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도 리듬화된 기억 시대의 유산입니다. 체험하는 것만으로 기억을 떠올리기 어려울 때 리듬화하여 반복해서 체험하려는 것입니다. 그 경우 이어지는 앞뒤 말 사이에 유사성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만(남자)과 마우스(쥐)라든가, 슈토크(계단)와 슈타인(돌)과 같이 말입니다. 이 체험한 것의 리듬화는 모든 것을 리듬화하려는 강한 동경의 마지막 흔적입니다. 왜냐하면 이 제2기의 인간은 리듬화되지 않은 것을 기억으로 붙들어 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시문(詩文)은 모두 이 리듬화된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기억력은 제3단계가 돼서야 비로소 생겨났습니다. 즉 바깥의 공간 안에서 기억의 근거를 발견하는 것도, 리듬에 의존하는 것도 아닌 시간 속에서 경과한 사건을 나중에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시간적인 기억력’입니다. 참으로 추상적인 우리의 이 기억은 기억의 진화에서 제3단계에 해당합니다.


그럼 인류사에서 리듬화된 기억이 시간적인 기억으로 이행한 것은 언제일까요? 슬퍼해야할 현대인의 추상성을 완전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시간기억’, 기억해야할 것을 이미지로서 떠올리는 기억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언제일까요? 무의식 또는 반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기억해야할 때 리드미컬한 반복을 통해서 불러일으켜야만 했던 리듬화된 기억으로부터 이와 같은 시간적인 기억으로 이행한 시점은 고대 오리엔트인이 그리스에 식민지를 만들었던 시대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해서 식민지를 건설했던 시대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아시아와 이집트로부터 와서 정주한 영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본래 위대한 영웅들이 과거 리듬화된 기억의 땅을 떠나서 그 기억을 시간적인 기억, 시간적인 회상으로 바꾸기 위한 풍토를 찾아 나선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문화가 시작하는 시점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리엔트에 존재하고 있던 그리스문화의 어머니 나라, 본국은 기본적으로 발달한 리듬화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던 거주지였습니다. 그곳에는 리듬이 살아있었습니다. 본래 고대 오리엔트를 리듬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서에서 말하는 낙원은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리듬이 우주를 관통하여 울려 퍼지고, 그것이 인간 안에서 리듬화된 기억을 탄생시키고 있던 아시아라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리듬체험자로서 리듬 생산자인 우주(코스모스)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바가바드기타를 읽으면 그 안에서 과거의 그 장대한 체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다와 서아시아의 많은 시문에서도 이 과거의 체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근대적인 표현을 사용한다면 과거 아시아 전역을 장대한 내용으로 둘러싸고 있던 그 리듬의 여운이 그러한 문헌 안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슴 안에, 인간의 심장 안에 지구 대기권의 비밀을 반영하고 있던 리듬입니다.


그리고 시대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리듬화된 기억이 땅과 결합된 기억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시대의 인간은 아직 리듬화된 기억을 갖지 못했으며, 무엇인가를 체험했을 때 그 장소에 표식을 세우는 일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장소에 없을 때는 기억을 하지 못했지만, 그 장소에 오면 이전의 체험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체험을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표식이, 대지가 체험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지구는 인간의 머리를 자신의 모상으로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대지에 놓인 표식은, ‘땅과 결합된 기억’을 위한 표식은 인간의 머릿속에 이전의 체험을 모상으로서 다시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인간은 땅과 함께 살았고, 기억을 땅과 결합시켰습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가 땅에 무엇인가 기록하고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이 사실을 독자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과 결부된 기억이 리드미컬한 기억으로 이행한 시점은 옛 아틀란티스 몰락 이후 후 아틀란티스 초기 여러 민족이 동방 아시아로 이동했던 시점입니다. 먼저 사람들은 현재 대서양의 해저가 된 옛 아틀란티스대륙에서 아시아로 이동했습니다. 다음에 그 문화가 다시 유럽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림2 참조)


<그림2>


아틀란티스 민족들이 아시아로 이동했을 때 땅과 결부된 기억이 리듬화된 기억으로 이행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리듬화된 기억이 아시아의 정신생활을 완성시켰습니다. 이어서 그리스의 식화를 즈음하여 리듬화된 기억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기억으로 이행이 발생했습니다.


아틀란티스대륙의 파국에서 그리스문명에 이르는 모든 문명은 리듬화된 기억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역사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전승, 신화로서 고대 아시아에서 전해져온 모든 것들은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인류사의 발전은 역사의 바깥측면에 눈을 향하여 현존하는 사료를 조사하는 것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살고 있는 것의 발전을 봄으로써, 그리고 또한 기억력과 같은 능력이 바깥에서 안으로 진화해온 모습을 봄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이 기억능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우리들 누구라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병에 걸려 기억해야할 인생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나의 친구 중 한명은 죽음직전에 무서운 운명이 그를 덮쳤습니다. 그는 어느 날 집을 나와 역에서 표를 사고 어느 지역까지 간 다음, 그리고 열차에서 내려 다시 표를 샀습니다. 그의 기억은 이 표를 산 시점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는 모든 행동을 정확하게 했습니다. 지성은 완전히 건재했습니다. 기억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에게 기억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베를린의 노숙자수용소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때까지 그는 전 유럽의 거의 절반의 지역을 여행하며 돌아다닌 것입니다. 하지만 그 체험은 그때까지의 인생체험과 연결되지 못한 채 지나가버렸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베를린의 그 노숙자 수용소에 수용된 후 겨우 기억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조우하는 수많은 예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근대인의 내면생활은 만약 기억의 끈이 탄생 후 어느 시점부터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지 않으면 건재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토지와 결부된 기억의 소유자에게 이와 같은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기억의 끈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주위 대지에 자신이 체험한 사건을 상기시켜줄 각양각색의 기념물에 둘러싸여 있지 않았다면 우리의 경우 내적인 기억내용이 사라져버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은 불행에 빠졌을 것입니다.


자신이 세운 기념물, 선조, 부모, 형제들이 세운 기념물, 그러한 것들은 서로 유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념비는 친족과 친족을 서로 결합시켰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내적으로 필요한 자아의 조건으로 느끼고 있는 시간화된 기억은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외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인류의 혼의 변천에 눈을 돌릴 때에만 인류사의 진화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찰을 행할 때에만 역사는 올바른 조명을 받게 됩니다. 이번 기회에 나는 우선 특별한 예로서 인류 혼의 역사를 기억능력과 연관 지어 언급했습니다. 인간 혼에 대한 고찰로부터 얻은 빛으로 조명을 비출 때에만 역사상의 여러 사건이 그 진정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을 앞으로 수회에 걸쳐서 고찰할 예정입니다.




제 2 강

 


인류 진화의 역사적 경과과정을 보려면 각각의 시대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혼 상태에 시선을 향해야합니다. 어제 이야기에서도 이것을 이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아시아 ― 영계의 밑바닥

 

어제는 본래의 옛 오리엔트인 아시아계 여러 민족의 진화를 살펴보았습니다. 아틀란티스대륙 몰락 후 이 진화기에 아틀란티스 주민들의 자손이 서에서 동으로 향하는 여정을 거쳐, 서서히 유럽과 아시아에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래 이 민족 집단은 아시아에서 리듬을 기본으로 한 생활태도를 지속했습니다. 처음에는 ‘땅과 연결된 기억’이라는 아틀란티스 시대 기억형태의 분명한 여운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어서 그 여운은 오리엔트 진화 과정에서 ‘리듬화된 기억’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시대가 되자 시간화된 기억으로 옮아갔습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본래의 아시아적인 진화를 짊어지고 있던 것은 후세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체험한 외적인 사건은 후세의 체험보다도 훨씬 인간 심정의 작용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 심정의 작용은 인간존재 전체의 작용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몸으로부터 분리된 혼의 작용, 사고의 작용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머리의 내적인 경과와 관련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혈액순환과 관련성을 갖지 못한 추상적인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고는 내적으로 머리의 경과과정으로서 체험되는 사고였으며, 모든 감정은 호흡리듬 등으로서 체험되는 감정이었습니다. 인간 전체를 나눌 수 없는 통일체로서 체험하고 느끼고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닙니다. 세계와의 관계, 우주와의 관계, 우주의 영적 물질적인 것과의 관계, 그러한 관계도 후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체험했습니다. 현대인은 농촌이나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고, 많든 적든 숲이나 강,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또는 돌로 쌓은 벽으로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대인에게 우주적=초감각적인 것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현대인은 우주적=초감각적인 존재를 어디에서 구하면 좋을까요? 어디에서도 그럴만한 영역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디에도 실마리가 될 만한, 응답받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혼적=영적으로 말입니다.


태고의 동양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서 오늘날 우리가 환경이라고 말하는 것이 통합적으로 파악된 우주환경의 밑바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주위에는 광물계, 식물계, 동물계가, 산과 강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러한 존재에는 영이 침투하고 있고, 말하자면 영의 흐름에 노출되어있어 영에 의해서 짜여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산과 함께 살아있다. 강과 함께 살아있다. 그뿐만 아니라 산과 강의 사대령(四大靈)들과도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광계 안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광물계는 영계의 몸이다. 동시에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영계이다. 말하자면 가장 낮은 차원의 영계이다.” ―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로지 ‘지상계’로만 알고 있는 이 영역은 ‘밑바닥’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 이 그림의 이 부분(hell흰색)이 위쪽으로 사라지면 그곳에 다른 영역(gellrot노랑)이 나타나고 양자는 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위쪽에는 다른 영역(blau파랑)이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역(orange오렌지)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영역을 인지학용어로 말한다면, 최고 영역은 제1하이어라키의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의 영역입니다. 다음은 제2하이어라키의 예지령, 운동령, 형태령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다은은 제3하이어라키의 인격령, 대천사, 천사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제4의 밑바닥 영역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영역입니다. 현재 우리의 과학적 상식에 의하면 자연의 대상과 자연의 경과(經過)만이 존재하는 영역이지만, 과거 사람들에게는 자연의 경과와 자연물과 함께 물과 땅의 사대령들이 활동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영역이 ‘아시아’인 것입니다.


아시아란 인간이 존재하는 영계(靈界), 가장 저차의 영계를 말합니다. 물론 당시 동양에서는 현대인의 의식에 알맞은 사고방식, 느끼는 방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누군가가 영적이지 않은 물질이 존재한다고 말했다면 참으로 난센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산소와 질소 등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사고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산소는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것에 더욱 활력을 부여하고, 생명을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산소와 혼합된 상태로 공기 중에 존재하는 질소도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도처에서 살아있는 유기물에 작용하여, 그 유기물이 혼적인 것을 수용할 수 있도록 작용하는 힘입니다. 당시 사람은 예를 들면 산소와 질소를 그와 같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자연의 과정을 그와 같이 영적인 것과 관련짓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생활방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은 오늘날의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주위의 외적인 대상을 본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러한 시선도 가능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비의입문자들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백주몽(白晝夢)과 아주 비슷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비정상적인 상태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꿈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은 이 꿈에서 주위와 관계하고, 꿈에서 목초지나 나무들, 강, 구름과 관계했습니다. 꿈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현대인은 꿈에서 무엇을 할까요? 어떤 사람이 잠이 들자 갑자기 눈앞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부뚜막이 나타납니다. “불이야!”라고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밖에서는 어딘가로 불을 끄러 소방차가 달려갑니다.


냉랭한 인간 이성의 경험과 화재를 둘러싼 일상의 경험은 이 꿈의 정경과 정말로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고 동양인의 경우 모든 경험이 꿈속으로 흘러들었지만, 바깥의 모든 자연계는 꿈속에서 비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속에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령들을 체험했습니다. 당시 사람에게는 현대인인 우리가 알고 있는 둔감한 잠, 즉 정신도 모르고 잠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잠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누구나가 그러한 잠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수면 중에도 어슴푸레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 수면 중 하이어라키 체험

 

당시 사람은 잠드는 것으로 몸을 쉬는 한편, 마음은 밖으로 나가 활동하면서 제3하이어라키 존재를 지각했습니다. 사람은 통상적인 각성=꿈의식 속에서, 즉 당시의 일상의식 속에서 ‘아시아’를 체험하고 수면 중에는 제3하이어라키를 경험한 것입니다. 때로는 수면 중 더욱 어두운 의식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체험한 것을 자신의 심정에 깊이 각인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동양의 주민들은 모든 것을 비전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일상의식이 존재했습니다. 비전은 더욱 오래된, 예를 들면 아틀란티스기나 레무리아기 또는 월기와 같은 생생함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이 동양 진화 과정에서도 아직 이러한 비전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은 일상에서 비전을 체험했고, 수면 중에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 ‘통상적인 지상생활에서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천사, 대천사, 인격령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들 아래에서 지낸다.’ 당시 사람의 혼은 수면 중 몸에서 자유롭게 해방되어 고차의 하이어라키 존재들 아래에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아’에서는 그놈, 운디네, 지르페, 자라만타라고 하는 지수화풍의 사대령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을 쉬고 있던 수면상태에는 제3하이어라키의 본성들을 체험하고, 동시에 지구기에 속하는 혹성계 안에 살고 있는 존재들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수면상태가 더욱 심화되어 완전히 특별한 상가 발생했습니다. 그 때 사람은 다음과 같이 느꼈습니다. ― ‘전혀 알지 못하는 영역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무엇인가가 나를 붙잡아서 지상 생활로부터 나를 데리고 사라진다.’


제3하이어라키 안에 있을 때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그 이상의 깊은 잠에 빠지면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제3의 수면상태에 대해서는 도저히 분명한 의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2하이어라키의 체험은 인간존재 전체를 깊이 꿰뚫어, 사람들이 그곳에서 깨어났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 ‘혹성존재를 뛰어넘은 고차 존재들의 은총을 받았다. 그것은 지혜령, 운동령, 형태령이라고 하는 제2하이어라키의 영들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태고의 아시아에서는 잠을 자면서 깨어있고, 깨어있으면서 잠을 자는 상태와 제3하이어라키를 만나는 잠, 이 두 가지 의식 상태를 본래부터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보다 깊은 잠을 통해서 제2하이어라키가 인간의식 속에 끼치는 작용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 비의입문자의 각성의식

 

그렇지만 소수의 비의입문자들은 새로운 의식 상태를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놀랄만한 의식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낮 동안 지니고 있는 의식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2, 3세 때 자연스럽게 그러한 의식 상태를 발달시킵니다. 그러나 태고의 동양인은 결코 자연스럽게 그러한 상태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인위적으로 그러한 상태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깨어있는 꿈, 꿈꾸는 깨어남 속에서 그러한 의식 상태를 획득해야만 했습니다. 태고의 동양인은 깨어있는 꿈, 꿈꾸는 깨어남의 상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현재  뚜렷한 윤곽을 갖고 있는 것을 많든 적든 추상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비의입문자들은 사물을 현재 인간이 낮 동안 통상적인 의식으로 보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라면 어느 초등학생이라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같은 내용을 그 의식으로 배웠습니다. 물론 현재 아이들이 학습하는 추상적인 문자는 당시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문자는 세상의 삼라만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 태고시대에 읽고 쓰기가 가능했던 사람은 비의입문자뿐이었습니다. 읽고 쓰기는 현재 인간에게는 당연한 지적인 의식 상태에 들어가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평상시의 의식 상태로 태고의 동양에 가서 그 동양인 앞에 선다면, 여러분을 모두 비의입문자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차이점은 내용상의 차이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비의입문자라고 여기겠지만,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온갖 수단을 이용해서 여러분을 그 지역에서 추방했을 것입니다. 현재는 그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이지만 당시는 비의입문자라고해도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현재 인간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읽고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내면에 들어가서 생각해봅시다. 아주 보편적인 현재의 인간과 같은 유물론적인 비의입문자가 당시의 누군가 앞에 서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 ‘이 인물은 쓸 수가 있다. 어떤 의미를 가진 기호를 종이에 기록한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는 일이 얼마나 악마적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은 우주의 신들의 위탁을 받아서 행해야만 한다. 신이 손과 손가락에 작용하고 혼에 작용하기 때문에 혼이 문자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있을 때에만 어떤 의미 있는 기호를 종이에 쓰는 일이 허용된다. 이것을 모른 채 무엇인가를 쓰다니 대단히 악마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인 것입니다. 태고의 비의입문자는 이점에서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현대의 인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최근에 재판이 나온 《신비적 사실인 그리스도교》의 서두에는 태곳적 비의입문자의 본질이 바로 이점에 있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주 진화에 있어서 나중 시대가 되어 자연스럽게 인간 안에 나타나는 것은 항상 앞선 시대에 비의입문자를 통해서 획득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부터 선사시대 동양 민족의 마음 상태와 이후 문명사회의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아래에 위치한 하늘을 아시아라고 부르고, 그곳에 자신의 나라를 보고, 주위의 자연을 보았던 사람들은 우리들과는 다른 인류였던 것입니다. 하늘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비교해 보십시오. 현대인은 주위의 사물을 하늘의 끝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끝을 하늘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사고방식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 고대 전쟁의 의미

 

그런데 태고에는 영적인 것이 모든 자연에 깊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우리들이, 적어도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이 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현대인이 무엇인가를 쓰는 태도가 대단히 야만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분명 악마가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재 사람들에게는 태고의 아시아에서 아주 당연한 일이 분명히 야만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 민족 집단이 이미 정착하고 있던 다른 민족 집단을 굉장히 잔혹한 방법으로 제압하고, 그 토지를 빼앗고, 노예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시아 전체에서 일어난 동양 역사의 내용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영적은 높은 관점을 갖고 있었지만, 그 한편으로 외적인 역사 과정을 살피면 계속해서 타국을 정복하고, 그 나라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이와 같은 일은 많은 현대인에게 있어서 지극히 야만적인 행위입니다. 지금이라도 어딘가에서 침략행위가 일어났다고 하면 그것을 변호하는 사람들조차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이 침략전쟁에 종사하고 있을 때에는 최고로 양심적이었습니다. 침략을 신의 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대부분의 아시아 땅에서 평화를 향한 갈망이 퍼졌는데 그것은 문명 후기의 산물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문명 초기의 산물은 타국을 향한 끊임없는 침략과 타민족의 노예화였습니다. 선사시대를 아득히 멀리 회고하면 할수록 더욱더 이러한 경향이 뚜렷해집니다. 크세르크세스와 같은 사람들이 행한 것은 그 중의 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정복 원칙의 근저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사람은 앞서 말한 의식 상태로 인해 다른 인간과 세계에 관해서도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지구의 거주지 차이가 원칙적인 의미를 잃어버렸지만,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종종 현실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입각해서 그 차이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그림을 봐주십시오. 이 좌측에 유럽이 있고, 이 우측이 아시아입니다.


정복 민족(적색rot)은 아시아 북쪽에서도 와서 아시아의 특정지역에 정착하여 선주민(gelb노랑)을 노예로 삼습니다.

어째서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정복자로서 나타나는 민족 집단은 항상 젊은 민족, 청춘의 힘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 민족의 늙음과 젊음

 

현 지구진화기의 인간에게 ‘젊음’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현재의 ‘젊음’이란 인생의 어느 순간이라도 혼 안에 죽음의 힘을 짊어지고 있어서 죽음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혼의 힘을 언제라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 안에 싹트고, 꽃피우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력은 우리를 의식적으로 만들지 않고 의식을 무력하게, 무의식적으로 만들고 잇습니다. 우리 내부에서는 죽음의 파괴적인 힘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매일 밤 수면 중에 생명력에 의해서 이 힘을 극복하고 있지만, 이 죽음의 힘은 인생의 끝에 가서 처음으로 단 한 번에 한해서 죽음 속에서 다 타오릅니다. 그러나 (역주-죽음의 힘은)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우리 안에 존재하면서 의식을 고양시키고, 우리를 사려 깊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상은 바로 현재 인간성의 특질입니다.


태고의 젊은 인종, 젊은 민족은 자신의 넘치는 생명력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인간은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 ‘나는 끊임없이 자신의 피를 몸으로 부딪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의 의식은 사려 깊은 상태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젊음으로 인해 자신의 인간성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은 일반적인 인간이 아닌 비의에 입문한 입문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을 한 사람들이 당시 역사의 흐름 전체를 지도했습니다. 그 민족의 구성원은 과도한 젊음과 생명력을 갖고 있었지만 사려는 아주 적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민족은 이동하여, 오래된 민족의 거주지를 정복한 것입니다. 오래된 민족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죽음의 힘을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민족은 늙은 민족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정복자와 노예가 된 사람 사이에 혈연관계가 생겨날 필요는 없었으며, 정복자와 노예가 된 자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펼쳐지는 드라마가 한편에서는 다시 젊어지도록 작용하고, 다른 편에서는 사려 깊게 만들도록 작용했습니다. 궁정을 만들고 노예를 거느린 정복자 필요로 했던 것은 자신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이 노예들에게 주의를 기울인 젊은 혼은 이른바 무기력을 향한 동경 속에서 지나친 생명력을 누그러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인 태도, 사려 깊은 태도가 생겨났습니다.


현재 우리와 같은 개별화된 인간이 달성해야할 내용을 당시는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생활 속에서 달성한 것입니다. 지배민족이 된, 아직 젊고 충분히 사려 깊지 못한 주민들은 자신들보다 죽음의 힘을 더 많이 짊어진 다른 주민들을 가까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배하는 주민들은 다른 주민들을 정복함으로써 인류에게 필요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끔찍할 정도로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태고 동양인들의 전쟁은 단지 인류를 진화시키는 충동을 따른 것뿐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싸움이 없었다면 인류는 진화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끔찍하게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당시의 전쟁이 만약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상에서 진화를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 번개

 

비의입문자는 현재 인간이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단지 그 시각은 현대인에게는 없는 혼의 모습, 느끼는 방식과 연결되어있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뚜렷한 윤곽을 가진 외적인 사물을 감각을 통해서 체험하듯이 그들도 뚜렷한 윤곽을 가진 사물을 체험했지만, 신들에게서 유래하는 사물로서 그러한 것들을 체험했습니다. 당시 비의입문자에게 사물은 대체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그림(그림5)을 봐주십시오. 이것은 번개입니다. 현재 우리는 이런 번개를 볼 수 있습니다.(그림위쪽) 그러나 태고의 사람들은 이것을 우리처럼 보지 않고 그곳에 살고 있던 영적 본성의 작용을 보고 있었습니다. 번개의 뚜렷한 윤곽은 완전히 사라지고 우주공간을 나아가는 신적 존재들의 진군이 보인 것입니다. 번개 그 자체를 본것이 아니라 우주공간을 부유하는 영들의 행진을 본 것입니다.


비의입문자도 당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행진을 보았지만, 시력의 진화와 더불어 행진하는 모습이 점차 옅어지고 사라지면서 현재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번개가 보이게 된 것입니다.


현재 누구라도 보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태고 시대에는 비의에 입문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자연으로부터 무엇을 느꼈을까요? 현재 사람처럼 인식내용, 진리내용을 느낄 때의 무관심함으로 느낀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도덕적인 작용을 느꼈습니다. 비의의 학도들은 후세의 모든 사람들에게ㄴ 아주 당연한 자연관을 엄격한 내적 시련을 거쳐서 익혔습니다. 그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 ‘통상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사대존재들이 공기 중을 진행하는 것을 본다. 이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갖지 않고 신령의 세계에 완전히 귀의하여 그것을 보고 있다.’


실재로 깨어 있는 꿈, 꿈꾸는 깨어남이라는 상태에 있는 사람의 의지는 자유로운 의지가 아닌 사람들 안으로 흘러드는 신의 의지였습니다. 깨어 있는 꿈속의 형상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번개를 본 비의입문자는 ‘신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원했습니다. 신들은 이와 같은 비의입문자를 위해서 우주내용을 바깥 세상에 드러냅니다.


비의입문자는 신들에 의해서 드러난 우주내용을 신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뚜렷한 윤곽을 가진 사물로서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결과 비의입문자는 신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비의입문자가 아무런 보증 없이 신들로부터 독립해버렸다면 견딜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보증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비의입문자는 한편으로는 신령(神靈)에 등을 돌린 채 아시아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편으로는 제2하이어라키에 도달했을 때보다 더욱 깊은 의식 상태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을 잃어버린 세계와 더불어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의 세계를 알게 된 것입니다.


아시아 진화의 거의 중기에 ― 시대구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 비의입문자들은 그 의식 상태에서 지구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 근대인이 획득한 것과 같은 광물, 식물, 동물의 영역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통해서 그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신의 몸속에서 신이 없는 지상의 물질 속에서 신들로부터 해방되어있다고 비의입문자들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들은 이 신이 없는 땅에서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라고 하는 고차의 신들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숲의 모습, 나무들의 모습 그 자체는 녹회색의 영적존재를 나타내고 있지 않았고, 숲은 영적존재가 사라진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에 그 숲에서 제1하이어라키에 속하는 신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세라핌, 케루빔, 토로네 영역의 존재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사회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태고 동양의 역사적인 생성에서 본질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젊은 인류와 늙은 인류 사이를 조정하는 일이 그 후 역사적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 진화 과정에서 젊은 사람들은 오래된 사람들과 접함으로써 성숙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지배적인 사람들의 혼과 만나서 성숙을 이루어나간 것입니다.


우리는 아시아 저편을 향해 멀리 시선을 향하면 향할수록 도처에서 이 진화과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스로 사려 깊게 될 수 없는 젊은 사람들은 정복 과정에서 사려 깊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 고대의 생사관

 

그러나 눈을 아시아에서 그리스로 돌리면 어떤 다른 양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스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대에서도 그리스에는 물론 늙음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늙음이라는 것에 영성을 침투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종종 언급하고 있지만 ‘어둠의 나라에서 왕이 되기보다 현세에서 거지가 되는 편이 낫다.’라고 현명한 그리스인이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인은 외적인 죽음과도, 내적인 죽음과도 마주할 수 없었으며, 죽음을 자신 안에서 찾아냈을 때는 죽음을 자신 안의 사려 깊음을 향한 동경과 연결 짓지 못한 채 오로지 죽음에 대한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젊은 동양의 여러 민족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방법으로 죽음을 체험할 수 없었을 때에는 전쟁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인이 체험한 죽음에 대한 내적갈등은 트로이전쟁으로 그들을 내몰았습니다. 그리스인은 사려(思慮)를 획득하기 위해 타민족 아래에서 죽음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이 내면에서 생명의 왕성함을 느끼게 해준다.’라고 하는 ‘죽음의 비밀’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인과 아시아의 그리스인 선조들 사이의 갈등을 일으킨 것입니다.


트로이전쟁은 불안과 근심의 전쟁이었습니다. 트로이전쟁에서 소아시아 사제문화의 대표와 죽음을 자신 안에서 느끼고 있어도 그것과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의 그리스인이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복에 전념하고 있던 다른 동양 민족들은 죽음을 바래도 죽음이 가깝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인에게 죽음은 가까웠지만 그 죽음과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관계할 수 있도록 동양의 삶의 방식을 필요로 했습니다. 아킬레우스나 아가멤논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 안에 죽음을 품고 있었지만 그 죽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시아로 눈을 돌려 저편 아시아에 반대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장반대의 혼의 모습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리스인은 죽음을 가깝게 느끼고 있었지만 저편 아시아인은 죽음을 생명에 거스르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호메로스는 이것을 훌륭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라는 인물표현을 봐주십시오. 토로이인과 그리스인이 대비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항상 이 대립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립 가운데서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태고시대, 아시아에서는 이른바 죽음에 대한 넘치는 생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향한 동경이 존재했습니다. 그리스 땅 유럽에는 인간 안에 넘치는 죽음이 존재했지만 그 죽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유럽과 아시아는 제2의 관점에서도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즉 한편으로는 리듬에 의한 기억과 시간에 의한 기억의 대립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체의 죽음에 대한 전혀 다른 두 가지 대립하는 체험이 존재했습니다.


내일은 지금 암시한 이 대립을 더욱 자세히 고찰하고 인류 진화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아시아에서 유럽을 향한 이행과정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현재 인류의 진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 제3 후 아틀란티스기의 영과 혼

 

나는 지금으로부터 딱 13년 전 크리스마스와 신년 사이에도 슈투트가르트에서 이번 연속강의와 같은 테마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때와 같은 테마를 다루겠지만 관점을 조금 바꾸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지금까지 2회에 걸친 도입강의에서는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특히 선사시대 이래 인류의 심정, 혹은 혼이 얼마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졌는지 명확히 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명확히 하기 밝히기 위해서 적어도 처음은 역사를 수천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고 있는 대로 영학적으로 고찰할 때 이른바 아틀란티스대륙의 파국 이후 선사시대, 역사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 통상적으로 ‘빙하시대’의 ‘신빙기’라고 부르고 있는데 ― 아틀란티스대륙 몰락의 마지막 장이 내려지고, 이 대륙이 지금의 대서양 해저를 형성하기에 이르게 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아틀란티스 파국의 결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다섯 개의 대문화기가 지나갔습니다.


이들 문화기 중 처음 두 개의 대문화기에 대해서는 역사의 전승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저편 오리엔트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자료는, 훌륭한 베다도, 베단타철학도 나의 《신비학개론》에서도 언급한 본래의 인도기, 본래의 페르시아기의 단순한 잔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 고대 인도기, 고대 페르시아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후 아틀란티스 제3기에 해당하는 칼데아=이집트문화기 시대를 다루어보겠습니다. 그리스=로마기가 그 문화기의 뒤를 잇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대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틀란티스대륙의 붕괴에서 그리스문화기에 이르기는 시대까지 인류의 기억력, 회상능력의 변화를 고찰하고, 그 위에 인간 공동생활의 변화에도 눈을 돌렸습니다. 현재 우리의 기억,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경험을 찾아나서는 기억은 제3 후 아틀란티스기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말한 것과 같이 리듬체험과 결합된 기억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리듬에 의한 기억에 앞서 존재했던 것은 아틀란티스시대에 특히 분명히 나타나는 땅과 결부된 기억이었습니다. 당시 인간은 본래부터 그때그때의 현재의식밖에 갖지 못했으며, 바깥세계에 존재하는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자신의 개인적인 과거뿐만 아니라 인류의 과거와도 관계가 있는 표식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상의 표식만이 표시였던 것은 아니었으며, 천체, 특히 혹성의 상호위치관계도 기억을 위한 표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별의 위치가 이동하는 것이나 되풀이되는 것으로부터 과거의 사건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바깥 땅과 결합된 태고 인류의 기억을 육성하기 위해 하늘과 땅도 서로 함께 일한 것입니다.


아틀란티스기의 인류는 후세, 또는 현재 인류와 신체적으로도 달랐습니다. 현재 인류는 각성시에 자아와 아스트랄체를 당연한 듯이 몸 안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육체와 에테르체가 자신보다 훨씬 중요한 조직인 아스트랄체와 자아를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대개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관계를 알고 있지만, 태고의 인류는 자기 존재의 모습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와 똑같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3 후 아틀란티스기인 이집트=칼데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인간은 각성시에 육체와 에테르체 이외에 자신의 혼과 영을 분명하게 체험했습니다. ― ‘그것은 나의 영이고 혼이다. ― 이 영과 혼을 영학은 자아와 아스트랄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그것은 나의 육체와 에테르체에 결합되어있는 존재이다.’ 당시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은 이중존재로서 이 세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육체와 에테르체를 자아라고 부르지 않고 자신의 영과 혼만을 자아라고 불렀습니다. 영적이면서 아래로 육체, 에테르체와 두드러진 관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자아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은 이 영과 혼, 이 자아와 아스트랄체 안에서 하이어라키의 활동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현재 인간이 자신의 육체 안에서 자연성분의 작용을 느끼고 있듯이 말입니다.


실제로 인간의 육체는 양분과 호흡을 통해서 외적인 자연계의 성분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 성분은 그때까지는 바깥에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 안에 있습니다. 자연계의 성분은 육체 안을 통과하면서 육체의 성분이 됩니다.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육체=에테르체를 나누어서 느끼고 있던 당시 사람은 천사, 대천사로부터 지고한 하이어라키 존재에 이르기까지 영적=본질적인 것이 자신의 영혼을 통해서 자신의 자아와 아스트랄체의 성분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은 인생의 어느 순간이라도 ‘자신 안에는 신들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자아는 육체, 에테르체의 성분에 의해서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은총에 의해서 위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하이어라키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육체, 에테르체를 물질계에서 앞으로 나아기 위한 짐차처럼, 인생을 위한 탈것처럼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알맞은 방법으로 우리의 혼의 눈에 비치지 않는다면 인류사의 경과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길가메시와 엔키두

 

이 인류사의 경과를 다양한 예를 통해서 더듬어나갈 수 있겠지만 오늘은 바로 13년 전에도 언급했던 끈을 다시 다루어보겠습니다. 그 끈이란 길가메시서사시라고 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적이고 전설적인 자료를 말합니다. 길가메시서사시의 일부 전설적인 이야기를 오늘은 영시를 통해서 직접 더듬어나가려고 합니다.


소아시아의 도시 우루크 ― 길가메시서사시는 그렇게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 에 어제 말했던 정복자들 중 한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제 말한 바와 같은 바로 그 혼, 그 사회성으로부터 성장한 인물로, 서사시는 이 인물을 길가메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지금 다루고 있는 제3후 아틀란티스 시대에 살았으며, 또한 그 이전 인간성의 특징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인물 안에서는 신들이 영향을 끼치는 영혼과 지구=우주의 물질적, 에테르적인 성분을 짊어진 육체=에테르체 사이의 이중성이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길가메시서사시의 주인공이 활동하고 있던 시대의, 특히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음 진화기를 향한 이행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행이란 바로 그 전 시대까지는 높은 영계에 존재하고 있던 자아의식이 이른바 육체적=에테르적인 곳까지 가라앉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길가메시는 자신 안에서 신들의 작용을 느낀 영혼에 대해서가 아닌 자신의 지상적=에테르적인 부분에 대해서 ‘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사람들 중 한명이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혼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아는 자기의식적인 자아로서 영적=혼적인 곳에서 육체적=에테르적인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혼의 모습 안에는 옛 습관도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즉, 리듬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만을 기억하는 옛 습관입니다. 그리고 제2강에서 말한 죽음의 힘을 알려고 하는 , 바로 그 내적인 감정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깊이 생각하는 인물이 되려면 죽음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길가메시라고 하는 인물의 혼은 당시 이미 수많은 윤회전생을 거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혼은 지금 제가 말한 새로운 혼의 모습을 갖게 됨으로써 지상에서 어떤 종류의 불확실함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정복자로서의 기억과 리듬화된 기억, 이 두 가지가 지상에서 더 이상 정당하게 통용되지 않게 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길가메시의 체험은 이행기의 혼 체험이었습니다.


이 인물이 예 습관으로부터 도시 우루크를 정복했을 때 이 도시에서 여러 알력이 생겼습니다. 우선 그는 이 도시에서 반기는 인물로 평가받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혼자만으로는 이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났습니다. 이 서사시에서 에아바니(엔키두)라고 부르는 인물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제가 《신비학개론》에서 말한 의미에서 지상의 인류를 일정기간 이끈 혹성으로부터 비교적 늦게 지상에 내려왔습니다. 잘 알고 있듯이 아틀란티스기에 혼들이 점차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떤 혼은 더 빠르게, 어떤 혼은 더 늦게. 이러한 혼들은 지구기의 매우 이른 시기에 지구에서 우주의 여러 혹성으로 떠나가 있던 혼들이었습니다.


길가메시는 비교적 빨리 지구에 돌아온 혼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이미 지상에서 많은 전생을 체험했습니다. 우루크로 옮겨온 다른 한 명의 인물은 비교적 오랜 동안 혹성에 머물다 나중이 돼서 다시 지구로 향한 것입니다. 이것은 13년 전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연속강연에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늙은 혼과 젊은 혼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강한 우정으로 묶여 서로 도와가며 소아시아 우루크라는 도시에 견고한 사회제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제2의 인물 에아바니가 지구바깥 우주에 머무르고 있을 때부터 몸에 지니고 있던 지식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슈투트가르트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인물은 일종의 영시, 영청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 인물의 오랜 정복자의 습관과 리듬화된 기억에 이 인물의 우주지혜가 융합함으로써 이 소아시아의 도시에 훌륭한 사회질서가 세워진 것입니다. 도시에는 평화가 주민들에게는 행복이 지속되었습니다. 만약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아무 일 없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도시의 생활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일종의 비의가, 여신 이슈타르의 비의가 존재했고 대단히 많은 우주의의 비밀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의미로 일종의 종합적인 비의였습니다. 즉 아시아의 다양한 비의가 이 이슈타르 비의 안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시대의 비밀내용을 변화하고 변용된 형태로 이 장소에서 육성하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길가메시는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비의 장소에서 모순된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 도시의 지배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매우 중요한 인물이 비의를 비난함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결국에는 비의의 사제가 이 일로 비의의 신에게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제 고대에서 아시아는 하이어라키의 밑바닥이며, 이 밑바닥에서 사람들은 신령들과 교류하고 있었다고 말했으므로 비의의 사제가 진지하게 고차의 하이어라키 존재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들과의 교류는 특별히 비의의 강소에서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슈타르비의의 사제들은 계시를 얻기 위해 항상 기도를 올리고 있던 영적인 존재들에게 호소했습니다. 그 결과 신들로부터 이 도시에 벌이 내려졌습니다.


고차의 영적인 힘이 우루크에서 동물적인, 요상한 괴물 같은 모습을 띄고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의 몸을 병들게 하고 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길가메시의 한쪽이 되어 활동하고 있던 에아바니는 이 재난 아래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지상에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사후에도 길가메시에게 협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후 길가메시의 인생에서도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이 이어졌고 에아바니는 길가메시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길가메시는 혼자가 되었지만 자기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의지의 결합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의 일은 고대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고대인의 심정은 현대인의 심정과 같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인처럼 자유를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지상에 육화하지 않은 신령존재가 인간의 의지에 영향을 주는 일이 있었고, 길가메시의 경우와 같이 죽은 자가 지상의 인간의 의지를 통해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두 의지의 결합으로부터 길가메시는 자신이 지금 어떤 역사적인 상황과 마주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자아’가 죽을 수밖에 없는 몸(육체와 에테르체) 안까지 내려온 사실을 길가메시는 영감을 부여하는 영적존재의 작용에 의해서 알게 되었고, ‘불사’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사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지상에서 불사의 문제에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비의의 장소였지만, 길가메시는 아직 비의에 입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비의의 전통은 태고 아틀란티스 시대라고 하는 ‘근원의 지혜’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의 ‘살아있는 인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원의 지혜의 전수자는 과거에는 영적본성인 채로 지상을 편력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본성은 아주 오래전에 지구를 떠나 달에 ‘우주거주지’를 세워놓았습니다.


오늘날의 천문학은 ‘달은 응축되고, 차가워진 물체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이해방식만을 고수하는 것은 대단히 유치한 사고방식입니다. 달은 지구 인류의 첫 번째 교사로서 지구의 인류에게 근원적인 지혜를 전해준 영적본성들의 거주인 것입니다. 이 본성들은 물질적인 우주체인 달이 지구로부터 분리되어 태양계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게 되었을 때 곧 이 달에 머물렀습니다. 실제로 달을 영시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도 과거 인류에게 근원의 지혜를 가져다 준 교사들이 이 우주거주지 안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의는 이 가르침의 내용이나, 인류 스스로 이 근원의 지혜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근동(터키에서 이란까지)의 비의와 길가메시는 아직 연결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된 길가메시의 친구로부터 초감각적인 영향을 통해서 혼의 불사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내적인 충동이 길가메시 안에 강하게 생겨났습니다.


중세에는 영계를 알려고 할 때 자신의 내부 깊숙한 곳으로 침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근세에는 그 내적인 과정이 더욱 철저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 있는 시대에서는 지구가 오늘날의 지질학자가 말하는 암석덩어리가 아닌 살아있는 것이며 혼적이고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작은 벌래가 인간에 대해 알려고 피부 위를 기어 돌아다니고, 코와 이마를 통해서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당시 인간은 지상을 편력하고, 여러 토지의 여러 지형을 알고, 그것을 통해서 지구를 영계로서 직관한 것입니다. 피타고라스와 같은 사람들이 영적인 인식을 획득하기 위해 이곳저곳 여행을 계속한 것은 결코 표면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상을 편력하는 것은 각양각색의 지형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영적, 혼적, 몸적인 형상을 통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현대에도 사람들은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지만 인심, 풍속을 접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의 집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지역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본질적인 차이를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은 감수성이 마비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을 편력하는 것으로 불사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충동은 길가메시에게 대단히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 길가메시와 에아바니의 비의입문

 

이렇게 해서 길가메시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여행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성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느 땅에서 오랜 비의와 만난 것입니다. 그 땅은 근대에 들어 많은 화제를 제공해준 지역인데 물론 이 지역의 상회상태는 시대와 함께 본질적으로 변화해나갔습니다. 그곳은 ‘부르겐란트(역주-오스트리아 동쪽 끝, 슬로바키아·헝가리·슬로베니아와 접해 있는 주)’로 알려진 땅입니다. 현재 이 지역은 치스라이타니아(역주-오스트리아·헝가리의 헝가리령이 아닌 부분[오스트리아령 부분]을 흔히 ‘치스레이타니아[라틴어: Cisleithania, 독일어: Cisleithanien 치스라이타니엔<라이타 강 이편’이란 뜻>’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 영토 대부분이 라이타 강[독일어: Leitha, 헝가리어: Lajta 러이터 강]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에 속하는지 헝가리에 속하는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비의의 대사제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시스트로스(우트나피시팀)로 불리고 있습니다. 길가메시는 아틀란티스비의를 올바로 이어받은 비의와 만난 것입니다. 물론 나중 시대의 이미 다른 형식의 비의였습니다.


길가메시의 인식능력은 이 비의의 장소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비의에 입문하는 많은 제자들과 같은 시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일곱 날 일곱 밤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시련이었지만 그는 이 시련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대신 다른 시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를 위해서 조제된 어떤 약을 복용하고 그것을 통해서 특정한 영적 체험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 언제나 그렇듯이 정해진 특정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진정한 체험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길가메시는 이 시련에 합격하여 특정한 영적체험을 갖고 우주의 영적인 구조를 통찰할 수 있게 됩니다. 이 편력을 완수하여 다시 귀국했을 때 길가메시는 실제로 고차의 영적인 통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나우강 남쪽기슭을 거쳐 다시 고향, 제2의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고향땅에 도착하기 전에 첫 번째 유혹에 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방금 말한 것처럼 말하자면 정통하지 않은 방법으로 후 아틀란티스기의 비의에 입문했기 때문에 고향 도시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전해 듣고 격심한 분노의 발작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일어난 거센 분노의 발작은 그가 얻은 깨달음을 완전히 어둡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길가메시의 특징인데 죽은 친구와 함께 영계를 영시하는 능력은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영계에서 보내오는 소식을 받을 수는 있었습니다. 비의에 입문하여 직접 영계를 통찰하는 것과 죽은 자로부터 계시를 받는 것은 다르지만 어쨌든 불사의 본질을 향한 통찰은 완전히 살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사후의 생이 어떻게 경과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사후의 모든 현상은 오늘날도 당시도 다음 지상의 각성의식 가운데서 충분히 강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길가메시와 그의 친구 에아바니, 두 사람은 서로 거의 제3 후 아틀란티스 문화기 중기 인간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의 방식에서 인간이 이중의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길가메시는 자아의식이 육체=에테르체 안에 육화했다는 것을 안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다른 인물은 지상의 인생을 불과 조금밖에 되풀이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적인 인식을 소유한 인물로 물질, 소재는 본래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영적이고 소위 소재는 영적 존재의 다른 존재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인간은 현대인이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생각할 수도,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인간의 사고와 감정은 오늘날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당시 인간이 알 수 있었던 내용은 우리가 초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정신적, 문화적, 문명적인 모든 사항은 비의에서 유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비의의 장소에서 온갖 경로를 통해서 일반대중에게 전해졌습니다. 본래의 지도자는 비의의 사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은 방금 전 말한 혼의 모습으로 인해 그 지역의 비의에는 관여하지 않은 채로 있었습니다. 에아바니는 비의에 사후 세계에 머무름으로써 비의와 관계했습니다. 길가메시는 후 아틀란티스의 비의에 입문했지만 그 결과는 어중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의 작용에 의해서 이 두 인물은 태고 지구기의 모든 사정을 느끼고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존재가 되었는가? 우리가 지구 진화를 어떻게 경험해나갔는가? 지구 진화를 통해서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된 우리가 그 진화 과정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가?’ 이 두 사람은 그와 같이 물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의 혼에게 길가메시가 알려고 했던 불사의 문제는 태고의 지구기 진화에 개한 통찰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당시 ‘혼의 불사’ 그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지구기의 태고 진화단계에서도, 월기, 태양기에도 이미 인간 혼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혼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상의 환경과 자신과의 연관성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지구에 속해있다고 느낀 것입니다.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지구와의 관련을 통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아시아의 비의의 장소에서 지켜지고 육성되고 있던 비밀은 우주적인 비밀이었습니다. 우주와의 관련 아래 지구 진화를 아는 일이 비의의 교의이며 지혜였던 것입니다. 이 비의의 입문자는 대단히 생생하고 이념화된 방식으로 태양기, 월기, 지구기 진화를 통찰하고, 인간이 모든 우주사상과 함께 진화해온 과정을 분명히 바라보았습니다. 



◎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비의

 

이 과정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는 비의 중 하나는 훨씬 나중 시대까지 전해진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비의입니다. 에페소스의 비의의 장소 중심에는 여신 아르테미스 신상이 안치되어있었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상 모작 중 하나를 보면 매우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받습니다. 그것은 여성상(像)으로 수많은 유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상을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대 사람들이 이러한 상을 어떻게 체험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대에는 신상을 어떻게 체험하는지가 문제였습니다. 비의의 제자들은 충분한 준비기간을 보낸 뒤 비의 본래의 중심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 중심은 아르테미스상을 말합니다. 이 중심으로 인도된 제자들은 이 신상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상 앞에 선 사람은 피부에 둘러싸여 존재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이 상이라고 의식하게 됩니다. 자신과 에페소스 여신상과의 일체화 결과 ─더 이상 주위의 돌이나 나무, 강의 흐름이나 구름에 시선을 향하지 않고 오로지 아르테미스상에 심안을 집중한 결과, 에테르계와 자신과의 관련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별들의 세계와 자신이 하나임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피부 안에서 지상의 물질성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주적인 본모습을 느꼈습니다. 즉 자신을 에테르적으로 느낀 것입니다.


자신이 에테르계에 존재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됨으로써 지구기와 지구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과거 상태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지구는 앞서 말했듯이 일종의 암석 덩어리이며, 그 표면의 대부분은 물러 덮여있고, 주위는 산소, 질소 그 밖의 것들을 포함한 대기로 둘러싸여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통상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고찰하고 관찰할 때 그러한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의 지구 상태에 이르기 이전의 태고의 지구 상태는 영시하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에페소스의 제자들은 자신과 신상을 일체화시켰을 때 지구와 인류의 태곳적 상태를 영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지구의 대기가 태고 시대에는 지금과 같지 않고 극도로 정묘한 유동하는 단백질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재 지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성립했을 때에 지구를 둘러싼 끊임없이 유동하는 단백질 성분의 작용을 필요로 했으며, 이 성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백질 성분 안에는 미묘하게 구별되고, 금방이라도 결정화하려는 ‘규산’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그림 가운데 붉은 부분) 그리고 그것이 일종의 지구의 감각기관으로 기능하며 우주로부터 영시내용을 여기저기서 지각하고 있었습니다. 단백질 성분으로 된 지상의 대기에 포함된 규산 속에 현실의 영시내용이 외적으로 바뀌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 영시내용은 거대한 식물상의 유기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나중에 대기성분을 받아들여 식물존재가 처음에는 지구의 주변을 유동하며 나타났습니다. 훨씬 뒤에 그 식물존재는 대지에 가라앉고 현재의 식물이 되었습니다.


이 알부민(수용성단백질) 대기 안에는 규산질 성분 외에 석회질 성분도 미세한 형상으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단백질의 응고작용의 영향 아래 동물이 그 석회질로부터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모든 것들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태고의 인간은 지구전체와 하나였습니다. 당시의 인간은 영시내용을 통해서 식물존재 안에서 살고 있었으며, 지금 말한 지상에 생겨난 동물 안에도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인간이라도 지구 전체로 퍼져 지구와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비적 사실인 그리스도교⟫에서 플라톤의 학설에 대해 인간의 이념능력과 관련해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서로 뒤섞여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슈투트가르트의 연속강연에서도 말씀드린 길가메시와 에아바니, 두 사람은 다시 태어나서 에페소스의 비의입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말한 것을 혼에 깊숙이 새겨 넣었으며, 이를 통해서 두 사람은 내적으로 강해졌습니다. 이전에는 체험으로서, 그것도 무의식적인 체험으로서 가지고 있던 것을 지금은 비의를 통해서 ‘지상의 지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두 번의 환생을 통해서 이 두 사람은 인간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과 영계의 깊은 연관성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두 개의 것이 있을 때 그 두 개가 분명히 분리되지 않고 뒤섞여있으면 양쪽 모두 모호해집니다. 분명히 구별되어있으면 양쪽을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길가메시와 에아바니는 이전의 되풀이해온 지상생활의 여운으로 가지고 있던 영계의 영적내용을 평가할 수 있었던 한편, 여신 아르테미스의 영향아래에 있는 에페소스 비의에 입문한 지금 사물이 지상에서, 인간의 외부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인간 이외의 것이 인체를 포함하고 있는 근원의 성분으로부터 어떻게 서서히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두 사람은 만년의 헤라클레이토스가 살아있던 시대에 에페소스에서 풍성한 내면생활을, 우주의 비밀에 정통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인간 혼의 활동이 수면위로, 지면위로 넓어져 갈 뿐만 아니라 위로도 펴져나가는 것을 분명히 의식했습니다. 이집트=칼데아기에 강력한 우정으로 결합된 이 두 사람의 인격이 이어지는 헤라클레이토스 시대에 만나 함께 지내면서, 함께 에페소스 비의에 입문한 결과 그 다음 인생에서도 두 사람의 혼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두 사람이 죽음의 문을 통과하여 영계로 옮겼다가 다시 지상에서 생을 받았을 때 물론 다른 방식이었지만 전생으로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인류사에 관여해온 방식이 카르마적으로 다음 인생에 영향을 끼쳐 이 두 사람은 인류의 진화를 위해 전혀 다른 인체형식을 두르고 나타났습니다.


내가 이 예를 언급하는 것은 이 두 사람이 인류사의 지극히 중요한 시점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점도 13년 전 슈투트가르트의 연속강의에서 언급했습니다. 그 때 말씀드린 것처럼 이 두 사람은 이집트=칼데아기에 위대한 인생을 거쳐 그 다음 인생에서 그것을 내적으로 심화시키고 혼을 강화시켰으며, 나아가 그 다음 인생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대왕이 되어 지상을 살아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대왕의 이 혼의 심층에 시선을 향할 때 그리스문화 쇠퇴기에, 그리고 로마지배의 시작 시점에서 무엇이 이 두 사람의 혼을 충동하여 움직이게 했는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무엇이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내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휴베르니아 비의

 

어제는 각각의 인물을 예로 들어 세계사가 진화 발전하는 양상을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영학을 심화시켜나가려고 한다면 인간 안에 반영된 역사상의 사건을 보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주위의 세계로부터 분리된 개별적인 존재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우주전체의 한 가지로 느끼고 있었으며, 앞으로 모든 시대의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것입니다. 몇 번씩 말한바와 같이 손가락은 몸으로부터 따로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몸에서 떨어져나가면 더 이상 손가락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패되어 다른 것이 되어버립니다. 손가락은 몸에 붙어있을 때 바로 손가락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지상의 인생에서도, 사후 인생에서도 전우주와 결합되어있을 때 비로소 인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인식은 옛날에도 존재했었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입니다. 단지 현재만이 구름에 가려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를 완전히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투명한 우주의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먼 과거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우주에 함께 속해 있다는 의식을 더욱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길가메시와 에아바니라는 두 사람을 들어, 동일한 두 인물이 칼데아=이집트기에 당시에 알맞은 방식으로 지상에서 생활하였고, 다음에 에페소스 비의에 의해서 삶의 방식을 심화시켰다고 말했습니다. 어제는 나아가서 이 두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으로 환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다시 태어난 시대의 지구는 어떠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을까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이 두 사람의 혼이 세 번에 걸친 지상 생활을 통해서 지구환경으로부터 무엇을 수용했는지 더욱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과 같이 길가메시는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 서쪽의 후 아틀란티스 비의에 입문했습니다. ‘후대의 비의의 형태’를 이해하기 위해 이 시대의 비의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대 아틀란티스 비의의 여운을 오랫동안 이어온 비의를 찾아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비의로서 우선 최근 여기서(도르나흐)말씀드린 휴베르니아 비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앞서 말씀드린 것 중 몇 가지를 여기서 다시 한 번 되풀이하겠습니다.


아일랜드 비의인 휴베르니아 비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존재했으며, 그리스도교 성립 당시에도 아직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아틀란티스 주민의 오랜 지혜의 가르침이 가장 충실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후 아틀란티스기에 아일랜드의 비의에 입문한 사람은 대체 어떤 체험을 가졌을까요? 이 비의를 전수받아야할 사람에게는 엄격한 준비를 요구했습니다. 본래 고대에서 비의에 대한 준비는 대단히 엄격했습니다. 그 기간에 혼의 모습을, 인간으로서의 태도를 내적으로 개조해야만 했습니다. 휴베르니아 비의의 경우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물, 감각세계의 모든 대상이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내적으로 강하게 의식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진리를 탐구할 때의 모든 방해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기본적으로 감각세계의 환경은 모두가 환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각은 환각을 발생시키고 진리는 이 환각의 배후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진실한 존재는 감각적인 지각에 의해서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분명히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의 인지학 연구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그러한 것이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이 이해하고 있는 감각세계의 환각적인 성격은 결코 현대인의 마음을 진동시키기 못합니다. 당시 휴베르니아 비의입문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은 진정으로 마음을 진동시키는 내적인 비극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환영이며, 마야이다 라고 이론화시켜 말할 경우 우리는 매우 안이한 태도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휴베르니아 제자의 준비는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까지 나아갑니다. ─‘환영을 꿰뚫고 진정한 현실존재에 이를 가능성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제자들의 준비는 우선 절망에 빠지고, 혼은 내적으로 환영 속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단계까지 진행합니다. 제자들은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 세상의 환영적인 성격이 대단히 강력하고 압도적이기 때문에 완영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통감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준비기간 동안의 생활 중에서 ‘그러므로 이 환영 속에서 계속 머물러야한다.’라고 하는 마음을 되풀이해서 체험하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확고하게 설 수 있는 지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영위에 굳건히 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고대 비의에서 이루어지는 준비의 엄격함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현대인은 내적인 발전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 앞에서면(내적인 발전을 촉진하는 것 앞에 서면) 그곳에서 뒷걸음질 칩니다.


존재와 그 환영성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진리탐구에 대해서도 사정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어둡고 압도적인 감정이 진리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고 인식의 빛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오류와 허위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때가 옵니다. 그 때 자신의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존재와 진리에 절망하지 않으면 비의입문의 때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궁극의 목표와 정반대를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이 목표를 향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실제로 오류와 환영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면 존재와 진리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모를 것입니다. 휴베르니아의 제자들은 진리와 존재를 정말로 깊이 평가할 수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도달해야할 단계의 정반대를 졸업한 제자는 다음에 성역으로 인도되고 매우 암시적인 인상을 부여하는 두 개의 상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휴베르니아 비의에서 그 때 실제로 일루어진 일을 이미지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 중 하나는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안쪽은 공동(空洞)이었습니다. 이 상은 바깥쪽만 만들어져있었으며 겉면은 탄력이 있어서 어디를 눌러도 움푹 들어가는데 손을 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상 전체는 주로 머리부분이 잘 만들어져 있고 그 앞에 서면 머리에서 작용하는 힘이 다른 거대한 몸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물론 내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눌러봄으로써 내부를 눈치 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눌러 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머리 이외의 부분은 머리의 힘이 미치고 있으며 이 상은 머리가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는 인상이 남습니다.


물론 현대인 중 누군가가 현대의 산문적인 마음으로 이 상 앞에 선다면 단지 그것을 추상적으로만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은 온몸과 마음으로 환영의 힘, 오류의 무서움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이 거대한 상의 암시적인 힘을 체험했기 때문에 전혀 다른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상은 남성상이었습니다. 이것과 나란히 서있는 다른 상은 여성상이었습니다. 이 상의 내부는 공동이 아니었습니다. 소재에 탄력성은 없었지만 가소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 상의 표면을 누르면─또다시 누르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모양이 허물어지고 거기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제자는 한쪽 상은 탄력성으로 인해 모양이 곧 원래대로 돌아오고 다른 한쪽 상은 압력을 가하면 금방 모양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제가 곧 말할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이 방을 떠납니다. 그리고 탄력이 없는 여성상에 가해진 손상을 모두 복구한 다음 다시 이 방으로 인도됩니다. 상에 아무런 상처가 없는 상태가 된 다음 다시 그곳으로 인도된 것입니다. 이 과정을 극히 대략적으로 말씀드리고 있는데 이러한 모든 준비를 통해서 제자는 여성상 앞에서 자신의 모든 영, 혼, 몸으로 혹독한 추위의 땅에 서있는 것 같은, 하나의 내적인 체험을 가졌습니다. 이 내적 체험은 이미 그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바로 지금 상 그 자체의 암시적인 힘에 의해서 완벽하게 체험된 것입니다. 제자는 자신이 내적으로 경직화되고 얼음과 같이 얼어버렸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 결과 혼이 겨울 대지의 이미지로 채워지고 겨울의 본질을 영시하게 됩니다.


남성상 앞에 섰을 때는 이와 같았습니다. 제자는 마치 일생 동안 생명력이 자신의 피 안으로 흘러들어와 그 피가 모든 작용력을 발휘해서 피부를 압박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습니다. 한쪽 상 앞에서는 얼어붙은 해골이 된듯했지만 다른 한쪽 상 앞에서는 자신의 내적인 모든 생명이 뜨거움에 녹아 자신이 팽팽하게 긴장된 피부 안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피부의 표면을 눌렀을 때의 체험은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통찰을 갖게 했습니다. ─‘만약 우주에서 특히 태양만이 너에게 영작용을 끼쳤다면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을 너는 지금 느끼고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주적인 태양의 작용을, 그 각각의 경우를, 그리고 인간과 태양과의 관계를 알게 됩니다. 그 때 태양의 상의 암시적인 작용 아래에만 서있다고 생각했다하더라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다른 방향으로부터 다른 여러 작용이 이 태양의 작용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그와 같이 해서 우주와의 관계를 심화시켜나갑니다. 달의 상의 암시적인 작용을 느꼈을 때에는 내적으로 겨울 풍경 속에서 얼어붙는 듯한 추위를 체험했지만 태양의 상 앞에서는 자연스레 여름 풍경을 체험했습니다. 그 때 사람은 다음과 같은 작용밖에 존재하지 않는 듯이 느꼈습니다.


여러분 현재 우리들은 우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쑥갓 꽃은 노랗고 장미는 빨갛고 하늘은 파랗다고 말하듯이 우주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상은 거의 마음을 흔들지 못합니다. 가장 가까운 생활환경에 대해서만 확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주의 비밀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더욱 집중하는 태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감각기관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태양 상의 암시적인 힘을 통해서 혈액순환 전체에 집중시킵니다. 자신 안의 이 암시적인 작용을 체험함으로써 스스로를 태양존재로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상의 암시적인 힘을 체험함으로써 자신을 달 존재로 이해합니다.


이렇게 해서 태양과 달이 어떻게 인간에게 작용하는가를 자신의 내적체험으로부터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인간이 자신의 눈의 체험에 따라서 붉은 장미가 어떤 작용을 미치는지를 말할 수 있고, 자신의 귀의 체험에 따라서 cis라는 소리가 어떻게 울리는지를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비의의 제자들은 후 아틀란티스 시대에서도 인간이 우주 안에 엮어져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직접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드린 것은 하나의 소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상은 실로 장대한 방식으로 서기 초 수세기까지 휴베르니아 비의의 장소에서 제자들이 경험한 우주체험의 스케치였습니다. 이 우주체험은 사람들을 태양체험, 달체험으로 인도함으로써 가능했습니다.



◎ 에페소스 비의

 

에페소스 비의의 경우 ⟪요한복음서⟫ 서두에서 언급하고 있는 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리고 말씀은 신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말씀은 신이었다.’를 매우 집중적인 방식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체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수행자는 유명한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여신상’ 앞에 서서, 생명으로 가득 넘쳐흐르는 이 조상과 자신을 일체화시킴으로써 우주에테르 안에서 살게 됩니다. 이 내적인 체험과 함께 지상생활을 초월하여 우주에테르에 입문하는 것입니다. 그때 수행자 먼저 배우는 것은 인간의 말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인간의 로고스, 즉 인간의 모상을 앎으로써 우주로고스가 전우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때 수행자는 특히 인간이 말함으로써 날숨에 말을 각인할 때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체험하도록 요구를 받습니다. 말한다고 하는 내적인 행위를 통해서 ‘바람’ 안에서 생명이 활동하는 것을 체험하는데 ‘바람’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은 두 가지 다른 경험을 발생시킵니다.



말을 함으로써 말의 형태가 날숨에 각인됩니다. 날숨이 말의 형태를 띠면서 흉부로부터 밖으로 흘러나갈 때 아래쪽 전신에 흐르는 ‘물’ 원소 안에 율동적인 파도가 밀려옵니다. 사람이 말할 때 후두부의 발성기관 부근에서 바람의 리듬이 생성되는데, 그것과 나란히 말하면서 신체내부에서 체액이 파도를 치며 흐릅니다. 언어기관의 아래쪽에 있는 체액이 발성하는 말과 조응하여 진동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말하는 행위가 항상 감정을 동반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신체의 액체부분이 함께 진동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말이 중립적인 상태에서 밖으로 나온 것뿐이라면 우리는 소리를 낸 말에서 공감, 반감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할 때에는 열 또는 ‘불’(빨강=rot)이 위쪽 머리 부분으로 향합니다. 날숨에 각인된 말이 열의 파도를 동반하여 위쪽으로 흘러 사고내용과 결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말을 내뱉으면 바람이 불, 물(또는 체액)과 결합합니다.


인간의 언어활동에 대한 모든 체험을 나타내고 있는 이 경험이 에페소스 비의입문체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다음 수행자는 인간의 이 언어활동이 다름 아닌 의인화된 우주체험이라는 것을, 과거에는 지구 그 자체가 ‘바람’뿐만 아니라 유동하는 단백질 상태의 ‘물’(파랑=blau) 안에서 언어활동과 같은 파상(波狀)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작은 규모로 인간이 말할 때 ‘바람’이 날숨이 되어 생겨나는 것처럼 과거에는 유동상의 단백질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우 위쪽에서 ‘바람’이 ‘불’로 변하듯이 지구에서는 주위가 일종의 ‘바람이 되고 아래쪽에서 일종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우 인체 안의 ‘물’에 의해서 감정이 생기고 지구에서는 대지의 형성. 대지의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위쪽에서는 ‘바람’ 안에 우주사고의 활동이 일어나 대지에 영향을 끼치고 대지를 형성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언어는 대우주적인 형성력의 소우주적인 여운입니다. 에페소스 비의는 압도적인 방식으로 이것을 수행자에게 체험시켰습니다. 수행자는 음성을 낼 때 우주로고스의 활동을 언어의 체험으로 느꼈습니다. 과거 우주로고스는 유동상의 ‘원소’(물)를 움직여서 위쪽으로는 창조하는 우주 사고에 영향을 끼치고, 아래쪽으로는 생성되고 있는 대지의 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네 안에 인간 로고스가 있다. 그리고 인간 로고스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구기를 살아가는) 네 안으로부터 작용하여 나간다. 그리고 인간인 너는 바로 인간 로고스다.’ ─ 이렇게 말하는 수행자는 우주로고스 안에  살려고 했습니다. 우리 지상의 인간은 로고스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아래로 흐르는 ‘물’에 의해서 인체를 갖고 위쪽으로 흐르는 ‘불’에 의해서 사고내용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네 안의 가장 인간적인 것이 소우주의 로고스이듯이 과거 처음에 로고스가 있었다. 그리고 로고스는 신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로고스는 신이었다.’ ─ 에페소스에서 이러한 사실을 처음으로 근본적으로 받아들였고 이해했습니다.


길가메시라고 하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인물은 비의의 영향권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고대의 모든 문명, 문화는 본래 비의의 현시였습니다. 길가메시는 고향 우루크에 있었을 때 우루크의 비의에 입문하지 않았지만 본질적으로 우주와 연결된 문명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쪽 여행에서는 휴베르니아 비의와 직접 만나지 못하고 직접적인 비의를 체험하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휴베르니아 비의의 땅에서 육성된 문화를 알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현재의 브르겐란트 지방에 이 비의의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 문화가 길가메시의 혼 안에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의 충동이 그의 사후 영계에서 더욱 육성되어 다음 지상생활에 즈음하여 에페소스 비의 안에서 혼을 심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두 인물이 이렇게 해서 혼을 진화시켰을 때 일반적인 문명으로부터 이 두 인물의 혼에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 이래 우주의 미적 표현이 현실의 힘이 되어 밀려왔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도 살아있던 에페소스에서는 과거 인류가 신령과 직접 만났을 때의 현실을 기원전 6세기, 5세기까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시아 또는 천계의 최하층이었던 시대에는 신령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아시아에서는 자연령이나 그 위의 천사, 대천사, 나아가서는 그 위의 형태령과 그 밖의 다른 존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본토에서는 과거 현실이었던 것이 영웅전설이 되어 체험되고 있었고, 또한 근원적인 현실이 아이스큐로스의 비극 중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있었으며, 에페소스에서는 여전히 비의의 심연에 침잠하고 있어서 인간과 신령계의 직접적인 연결에 대한 체험을 아직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문화의 본질은 그리스인이 과거 우주와의 직접적인 연결을 인간에게 친근한 신화 안에, 그리고 미와 예술 안에 침잠시켜 가상으로, 미적인 가상으로 표현한 것에 있습니다.

 

 

◎ 알렉산드로스의 노래

 

여기서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그리스문명이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페르시아전쟁에서 보는 것처럼 옛 아시아로부터 오는 영향을 보기 좋게 물리쳤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그 즈음부터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과거 신령이 지상에 존재했고 인간의 영과 혼과 몸 안에서 활동하고 있던 것을 여운으로 느끼고 있던 사람들은 이 몰락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대왕과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불편한 세계에 살고 있었고 그 세계를 비관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위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계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사모트라케(역주-에게해 북동부에 있는 그리스령 섬) 비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의 혼은 사모트라케 비의의 카베이로스신들(역주-헤파이스토스와 프로테우스의 딸 카비로(카베이로)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제우스와 칼리오페의 자식들이라고도 한다.)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기에 걸쳐 이 두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13, 14세기에 이를 때까지 적어도 아시아지역에서는 온갖 신분의 사람들에게서 명확한 영적인 직관이 아직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중세 그리스도교 사제가 지은 ⟪알렉산드로스의 노래⟫라고 하는 시문은 매우 중요한 중세후기의 문헌입니다. 오늘날 역사서에서는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왜곡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그에 비하면 사제 란플레히트 12세기경에 쓴 ⟪알렉산드로스의 노래⟫는 알렌사드로스대왕에 의해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고대인에 정통한 위대한 견해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음 표현내용을 마음속에 느껴보도록 노력해보십시오. 성직자 란플레히트의 ⟪알렉산드로스의 노래⟫ 안에는 훌륭한 표현이 들어있습니다. ─ 매년 봄이 오면 사람들은 꽃이 핀 숲 근처로 갑니다. 그곳에는 햇빛이 숲의 나무 그늘을 숲 가장자리에 피어있는 풀꽃에 드리워져있습니다. 그러면 숲속의 나무 그림자 가운데 봄의 풀꽃으로부터 꽃의 정령들이 아이들 모습으로 나타나 왈츠를 추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성직자 란플레히트의 이 기술 가운데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아직 가능했던 고대인의 경험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거기에 풀꽃이 있고 그곳에서부터 숲이 되는 등 산문적으로 대화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숲 가까이 다가가면 햇빛이 숲 저편에서 그림자를 던지고, 그 숲의 나무그림자 사이에서 꽃의 정령들의 세계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정령들은 사람들이 숲 속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숲속에서는 다른 사대령들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성직자 란플레히트가 특히 정성들여 그리고자 했던 것은 들꽃의 정령들이 추는 원무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을 쓰려고 했을 때 사대령이 활동하는 원소계와 결합한 대자연에 대한 묘사를 거기에 덧붙였습니다. 왜냐하면 란플레히트의 생각으로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원정이나 대왕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말하려면 지상세계를 산문적으로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사대령의 영역도 언급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역사서는─물론 이것은 당연한 것이지만─다음과 같은 기술밖에 하지 못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야만인을 문명인과 하나로 결합하여, 문명화된 그리스인인 헬라스인, 마케도인아니과 야만인으로 구성된 하나의 평균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와 같은 관점은 현대인에게는 올바르지만 진정한 현실에게 있어서는 어린애 속임수입니다. 중세의 성직자 란플레히트는 이 아시아 원정에서 전혀 다른 목적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압도적인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자연의 물질영역 안에서 자연의 영적인 작용이 나타나 있다는 것, 란플레히트는 이점을 역사기술의 도입부처럼 그리고 잇습니다. 그러면 성직자 란플레히트의 ⟪알렉산드로스의 노래⟫가 말하는 아시아원정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알렉산드로스는 낙원의 문 앞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 그리스도교적인 표현으로 치환되어있지만 지금부터 말씀드릴 것과 같이 그것은 진실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사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은 정복만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충고를 무시하고 야만인과 그리스인의 혼합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진실로 고차적인 목표를 향하고 있으며 영적인 사명을 따른 행위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시대로부터 15세기가 경과한 시대에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을 심오한 귀의의 마음으로 그린 성직자 란플레히트에 의하면 알렉산드로스는 낙원의 문 앞까지 왔지만 낙원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직자 란플레히트가 말하기를 정말로 겸허한 자만이 낙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아직 진정한 겸허함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겸허함은 그리스도교에 의해 처음으로 인류에게 전해졌습니다. 어찌됐든 좁은 마음이 아닌 넓은 마음으로 이러한 기술을 읽으면 그리스도교의 성직자인 란플레히트가 알렉산드로스 원정의 비극적인 측면을 어떻게 느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노래⟫의 이 기술을 소개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싶었던 것은 인류역사상 서양이 동양과 결합했던 때의 전후관계를 말하기 위해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을 이 전원시풍의 시문으로 시작하더라도 그것이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문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감정은 중세의 비교적 후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감정으로 존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알렉산드로스의 노래⟫가 써질 정도로 구체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정말로 위대하고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저 두 혼의 활동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 세계사적인 비극

 

마케도니아 역사에서 이 시점은 한편으로는 아득히 먼 과거로 통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로 통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우리가 의식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에게서 일어난 모든 일 위에 세계사적인 비극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사적인 비극은 외적인 측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은 특별한 세계사의 운명에 의해 극히 적은 부분만 유럽으로 전해졌고, 극히 적은 부분만 교회에 의해서 육성되어 왔습니다. 본질적으로 단지 논리학적인 저술이나 논리학의 옷을 걸친 저술만 전해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논문으로서 남겨진 일부 저술에 침잠하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우주와 인간의 관련성을 향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이 얼마나 압도적인 것을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예 하나만을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우리는 땅, 물, 불, 바람의 원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한 에테르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땠을까요? 그는 지구에 대해서 말할 때 땅과 물, 바람을 포함한 전체에 불이 관통하고, 불로 덮여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와 같은 지구가 달까지 이르고 있으며, 한편으로 우주로부터는 별에서 달에 이르기까지, 즉 더 이상 지구의 영역이 아닌 아득한 우주저편에서 달에 이르기까지, 황도12궁으로부터, 별들로부터 공간적=우주적으로 제5원소인 에테르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에테르는 아득한 저편에서 달까지 이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번역]

우리는 오늘날 흙상태의 엘리멘트(원소), 물상태의 엘리멘트, 공기상의 엘리멘트, 불상태, 혹은 열엘리멘트에 대해,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것, 에테르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아리스토테레스는 어떻게 기술했을까요? 그는 지구를 기술합니다. “고체상 지구(그림참조, 밝은 색의 핵), 액체상 지구, 물(밝은 빨강), 공기(파랑), 전체는 불이 관통하고 불이 둘러싸고 있다.(짙은 빨강)”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지구는 달까지 닿아있습니다. 그리고 우주로부터, 별에서부터 달까지 ─ 즉 더 이상 지상영역 안이 아닌 달까지, 여기까지인데 ─ 황도대에서, 별들에서 공간적=시간적 에테르(바깥쪽 밝은색)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에테르는 달까지 하강합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논한 학자들이 쓴 문헌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제자인 알렉산드로스에게 뒤풀이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의 열 작용권에서 작용하는 에테르, 즉 빛에테르, 화학에테르, 생명에테르는 과거 지구와 결합되어있었다. 모든 에테르가 지구까지 닿아있었다. 하지만 태고시대에 달이 뒤로 물러섰을 때 에테르가 지구로부터 떠났다. 그리고 외적인 공간이라고 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속하는 지상은 에테르가 관통하고 있지 않다. 단지 봄이 되면 달의 사대령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식물, 동물, 인간들을 위해서 에테르를 달의 영역에서 이 존재들 속으로 가져다 넣는다. 그때의 달은 형성자로서 작용하고 있다.”


지난번 말한 것과 같이 휴베르니아 성역에서 여성상과 대면한 사람은 에테르가 본래 지구에 속해있지 않고 매년 사대령들이 생명활동에 필요한 만큼의 에테르를 지상에 보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인간과 우주 사이의 깊은 관련성을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 테오프라스토스(역주-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배웠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설한 리케이온학원의 후계자가 되었다. 식물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는 이것을 논한 그의 저작들을 서방으로 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저작들 중 몇 개는 동방으로만 전해졌고 동방의 우주관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이 저작들은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의 유대인, 아랍인의 손으로 서유럽으로 전해졌고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휴베르니아 비의에서 출발하는 사상들과 만나게 됩니다.



◎ 방위와 에테르의 작용

 

하지만 지금 말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준 가르침의 출발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은 전적으로 내적인 체험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여기에 기록한 것처럼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외적인 세계에는 땅과 물과 바람(공기)과 불의 원소가 살아 활동하고 있고 인간 안에도 그것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점에서 하나의 진정한 소우주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우고 내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인간의 뼈에는 땅의 요소가 살아있었고, 피와 그 밖의 체액에는 생명의 물이 있었으며, 호흡과 말 안에 바람의 원소가 활동하고 있었고, 사고 속에 불의 원소가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대원소를 자신 안에서 생생하게 느꼈을 때─알렉산드로스도 그것을 깊이 체득했는데─ 사람은 자신과 지구 사이의 깊은 친화성을 느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여행을 떠나도 자신을 향해 영향을 끼치는 에테르의 힘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적인 감각이 지각하는 것만을 주위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대원소가 자신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지 않고 자기 안에서 작용하는 지상의 성분만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 동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너는 더욱더 건조하게 만드는 원소 속으로, 건조한 토지를 향해 들어갈 것이라고.

아시아를 향해 가면 정말로 말라버린다고 말이 아닙니다. 당연히 더욱 섬세한 작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와 같은 섬세한 작용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따라서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에 있었을 때 그는 자신 안에 어느 정도의 습기가 살아 있지만 동방을 향해 가면 이 습기가 감소할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정 도중에 이와 같은 식으로 지상의 에테르적인 상황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몸을 손으로 어루만져보면 코와 눈과 입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로 건조한 지방으로 갈 때의 체험과 반대로 서쪽의 습한 지방으로 갈 때의 체험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우리는 둔감해져버렸지만 그럼에도 지금도 북으로 향하면 냉기을 남으로 향하면 온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서로 향할 때 냉기와 습기의 결합을 느끼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길가메시가 서쪽을 여행했을 때 무엇을 체험했는지 알렉산드로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제자는 북서의 습기와 냉기의 중간지대에서 물을 체험한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인물이 북서를 향해서 진군한다고 말하지 않고 물의 원소가 지배하는 곳으로 향해 진군한다고 말한 것은 착상이 아니라 진실한 체험에 뿌리를 둔 말입니다.



습기와 온기의 중간지대에는 바람의 원소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대지의 비의’에서는 그와 같이 가르쳤습니다.  고대 사모트라케 비의에서도 똑같이 가르치고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도 직접 제자에게 그와 같이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냉기와 건조한 기운의 중간지대에는, 즉 마케도니아에서 볼 때 시베리아 방향에서는 땅 그 자체, 지상적인 것, 고체요소가 지배하는 영역을 체험했습니다. 온기와 건조한 기운의 중간지대, 즉 인도 방향에서는 불의 원소가 지배하는 영역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는 북서를 가리키고 이 방향에는 물의 영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고, 남서를 가리키고 여기서부터 바람의 영들을 느낀다고 말하고, 또한 북동을 가리키고 땅의 영들이 떠다니는 것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냉기와 습기의 원소에서 불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한다, 인도로 진군해야만 한다.”라고 말렉산드로스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분명 이 말투 속에서 자연과 도덕의 깊은 연관성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과도, 도덕과도 연결된 이 말투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세계사 진화에 있어서 일대 전환점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 사이에서 함께 이야기된 내용 중에 투영되고 있습니다. 당시는 아직 내밀한 (수업)시간에 과거 시대의 위대한 비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인류는 논리적, 추상적인 내용, 범주론 등을 배우려고 다른 것들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로인해 여기서 인류의 세계사적인 진화에서 거대한 전환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리엔트와의 관련에 있어서 유럽문명의 행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