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업이 고용 및 자원의 사용, 보건을 위한 미덕으로 인식되면서 프랑스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농산물 가공업계는 날로 발전하는 유기농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이들은 유기농 기준 완화를 위해 EU 집행위에까지 압력을 행사하며 유기농업의 기반까지 흔들고 있다.
“일반 사과와 유기농 사과는 비슷해 보입니다. 가치는 다르지만요.”
비오쿱(Biocoop)의 CEO 클로드 그뤼파가 설명한다. 현재 프랑스 전체 농업에서 유기농업의 비중은 5.7%로, 2002년 대비 3배에 달한다. 이미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약 절반이 ‘Bio’ 마크가 붙은 유기농제품들인 상황에서(프랑스의 경우 2015년 기준 45%),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유기농 시장은 거대 농산물가공기업 및 유통기업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유기농은 더 이상 농학적 가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타 다른 니치마켓들과 동일하게 평가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푸아티에 대학의 사회학과 조교수인 브누아 르루는 말한다.
유기농업은 자본집약적 생산방식과 농산물 가공업계의 경제 모델에 대한 반발로서 탄생했다. 대안적 접근방식들이 등장한 것은 1920년대지만, 최초의 유기농 전문기업들이 설립된 것은 1950년대와 1960년대였다. 1964년 ‘나튀르 에 프로그레(Nature & Progrès)’가 설립된 이후, 유기농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농업인들이 유통업자들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유기농제품의 가치를 높이고 유기농업계를 성장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제도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붕괴 위기에 처한 유기농업 기본원칙
1978년, 나튀르 에 프로그레는 최초의 유기농업 규정서를 제작했고, 전국유기농연맹(FNAB)을 발족시켰다. 조금 더 지나,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이 4대원칙을 발표했다. 첫 번째, 토양과 동식물, 인간의 건강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돼야 한다. 두 번째, 생태학은 생태계 및 생태계 주기와 조화를 이루고, 생태계를 모방하고, 생태계의 보존에 기여해야 한다. 세 번째, 공정성은 인간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과 다른 생명체 간에도 적용돼야 한다. 네 번째, 사려 깊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통해 신중함을 견지해야 한다.
“프랑스 정부가 합성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농업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였습니다. ‘유기농업’이라는 명칭도 1988년이 돼서야 사용이 허용됐습니다.” 르루 교수가 설명한다. 그러나 정부는 유기농업에 대한 농민들의 사회적 인식을 무시한 채 살충제를 쓰지 않는 농업방식 정도로만 여겼다. 이런 논리는 1991년 EU 규제안이 마련되던 당시까지도 이어졌다. EU가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통일된 기준을 부과하면서 문제는 악화됐다. 그리고 2009년에 발표된 제1차 수정안에 따라,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 보다 엄격한 수준의 유기농업 규정을 적용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2013년 수정된 현재의 EU 규제안은 유기농업의 기본원칙들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이제 새로운 EU 규제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각료 이사회, 의회, 집행위가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으로 미뤄볼 때 일부 국가들이 유기농 산업에 특혜를 부여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자회담이 14번, 각료 이사회가 4번이나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민감한 부분들은 여전히 합의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첫 번째 쟁점은, 재배조건에 적합할 경우 무토양 재배를 허용하겠다는 각료 이사회의 결정이다. 산업화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식물을 용기에 넣어 재배하겠다는 발상인데, FNAB는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각료 이사회에 소속된 장관들은 미국에서도 이 재배방식이 허용되고 있으므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유기농업 규정서를 상호공유하려면 유럽 역시 무토양 재배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최대의 토마토 생산국인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룩셈부르크가 이 안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EU 의원인 조제 보베는 설명한다. 유럽 녹색당-자유 동맹(Greens–European Free Alliance)의 회원들이 이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힌 가운데, EU 규제안 수정을 위한 협상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두 번째 쟁점은, 수단에의 의무(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서 결과에의 의무(규정을 위반한 제품이 적발되면 유기농 인증 라벨을 박탈하는 것)로의 전환이다. 예를 들어, 유기농 재배 지역 주변의 농장들로부터 화학제품이 흘러들어 의도치 않은 오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각료 이사회는 피해를 입은 유기농업인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거나, 실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연구소장 이브 푸이유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농업인들은 생산자로부터 돈을 받는, 독립적인 사설 인증기관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이런 인증기관들은 공공기관인 프랑스인정기구(Cofrac)에 의해 평가되고 공인된다. 이와 같은 방식은 유럽기준을 따른 것이다. 또 다른 인증방식도 있다. 바로 인증참여 시스템인데, 브라질, 칠레, 인도에서 시행되고 있다. EU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이 방식을 현재 나튀르 에 프로그레는 사용 중이다. 농업인들과 소비자들은 지역별로 모여 각자의 인증 경험을 공유한다. “현재의 기준들은 상업적 사고에만 매몰돼 있으며 관련자들의 무관심을 초래합니다. 반면 참여 시스템은 당사자들 간의 경험 공유가 가능하며 소비자들, 시민들이 인증과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브 푸이유가 설명한다.
경제적 논리에 의해 흔들리는 국제기준
한편, 유기농업인들과 가공업자들의 면모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환경론적 담론 뒤에는 경제적 논리가 수익성이라는 명목 하에 각종 국제기준들을 뒤흔들고 있다. 카르푸, 모노프리, 시스템 유(U)는 유기농제품 시장을 겨냥해 새로운 부서, 유통 브랜드, 전문점을 만들고 생산자 컨소시엄들과 파트너쉽을 맺고 투자를 시작했다. “현재로서는 유기농제품 수요가 많기 때문에 가격이 적정선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유기농 우유의 가격은 일반 우유에 비해 30~40% 높습니다. 장기적으로도 이보다 더 가격이 내려가면 안 될 것입니다. 이는 대형 및 중형 마트들의 정책이기도 합니다.” 국립농학연구소(INRA) 유기농업 위원회의 부위원장이자 경제학자인 마크 브누아는 분석한다. 그러나 일단 대형 유통업체들이 유기농 시장에 진출한 이상 비용절감 압박을 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양계 분야가 현재의 트렌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현행 유기농업 규정에 따르면 양계장 건물 당 닭의 마릿수는 300마리 이하로 제한된다. 그러나 총 양계장 건물 수에는 제한이 없고, 닭 한 마리당 사육면적 기준은 라벨 루즈(Label rouge: 프랑스 품질보증표시)의 기준보다 낮다(라벨 루즈 기준은 5㎥, 규정서 기준은 4㎥). 이탈리아 기업 유로보(Eurovo)는 피렌체 인근 지역에서 9만~25만 마리의 유기농 닭을 사육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수익성에 대한 강박이 유기농의 진정한 가치를 뛰어 넘은지는 이미 오래다. 프랑스에서는 달걀의 78%가 대형 및 중형 마트와 할인전문점에서 판매된다. 동물 사료의 20%는 동일한 농장 또는 소속된 지역에서 유래한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생산자들은 사료 공급업체들에 대해 상당히 의존적이다.
“유기농 사료를 자급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곡물을 생산해도 대부분 식품제조업체에 판매합니다. 유기농 사료의 제조공정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가금사육기술연구소의 경제부 총괄자인 파스칼 막들렌이 지적한다. 생산자로부터 달걀을 사서 마트나 농산물 가공업체로 되파는 역할을 하는 포장센터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다. 코코레트(Cocorette)와 마틴느(Matines) 등 일부 기업들은 통합계약서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들은 양계장과 닭을 소유하면서 유기농 먹이까지 공급한다. 결국 생산자는 용역제공자에 불과할 뿐, 달걀가격은커녕 생산결과, 생산방식에도 전혀 관여하지 못한다. 유통 브랜드와 계약을 체결한 농업인들은 모든 독립성을 상실한다. “브랜드는 가격이 더 저렴한 포장센터로 손쉽게 갈아탑니다.” 가금사육노조의 유기농위원회장인 베르나르 드부쿠는 한탄한다.
유제품 분야의 상황도 나을 게 별로 없다. 생산자 뱅상 페리에는 소통의 문제를 지적한다. “저는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싶어서 유기농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모두에게 유익한 조화로운 개발모델을 원했던 거지요. 처음 납품을 시도한 곳은 ‘레 두 바슈(Les 2 Vaches)’라는 유기농 브랜드가 있는 다논(Danone)이었습니다. 다논 측은 정해진 가격에 맞출 수 없다면 경쟁력이 없으니, 다른 곳과 거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페리에는 비올레(Biolait)의 문을 두드렸다. 비올레는 생산자들을 연대시켜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비올레에서는 모두 함께 가격을 결정합니다.”
연대를 통해 더 강해지는 것, 이것은 현재로서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농업협동조합의 본래 목표이기도 하다. 비올레와 다른 조직들(예를 들어 유통업계 중에서는 비오쿱)의 회원들은 농업협동조합의 경우를 반면교사삼아,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공동의 비전을 유지하면서 기존 단체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생산자들의 집단적 권력은 사회의 변화를 견인하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올레, 비오루아르 오세앙(BioLoire Océan), 비오브레이츠(BioBreizh) 등 유기농 생산자들로 구성된 경제 조직들이 집중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사회학과 조교수인 로낭 르 벨리가 설명한다.
FNAB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농업인들과의 상생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다. 유기농 시스템의 경우 단순히 화학제품을 유기농 인증을 받은 다른 제품으로 교체하는 수준이 아닌, 재배방식 전체를 재구성해야만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연대에 참여하는 유기농업인들은 모두 고유의 복합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유기농업에는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농학적 지식도 풍부해야 하지만, 이런 기본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마크 브누아가 지적한다.
“오늘날 유기농업 농민들의 대부분은 유기농업에 초보거나 베테랑입니다. 요즘에는 유기농 관련 교육과정들도 있기는 하지만, 유기농업을 하려면 일종의 소명이나 사회적 인식이 필요합니다. 유기농업은 발전과 진보로 대변되는 기존 모델과 정반대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유기농법만을 고집해서는 전 세계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다는 비판도 여전합니다.”
르루는 설명한다. 생산성 지상주의를 표방하는 프랑스 농업조합연맹(FNSEA)은 최근 유기농 위원회를 산하에 설립했다.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불어넣으면서 농작물의 재배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한다는 말만 반복한다면, 어느 누구도 유기농업으로 전환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기농 위원회의 소속 의원인 레미 파브르는 말한다. 농업회의소는 경제적 효율성 문제 때문에 유기농업의 지원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우리의 자원은 제한적입니다. 농업 자문관은 유기농업 농장들뿐만 아니라 80~100개의 농장들을 관리해야 합니다. 결국 유기농업인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려면, 유기농 컨소시엄과 노조가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농민들 간에 편 가르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농민들을 고루 지원해야 합니다.” 농업회의소 상임위의 유기농업 개발 담당자 바크 피오르의 말이다.
2016년 말, 오베르뉴-론-알프스 주의 주지사 로랑 보키에(공화당원)는 본래 코라비오(Corabio, 론-알프스 지역의 유기농업인 단체) 측이 담당하던 기술적 지원을 이제부터는 농업회의소가 담당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테르 드 리앙(Terre de liens, 농민들의 토지 매입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시민운동단체)과 같은 농업지원 단체들에 대한 지원금도 없앴다. 그 결과 농업회의소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됐지만, 오로지 기술적 접근에만 집중한 나머지, 유기농업이 가진 철학적 윤리적 비전은 퇴색돼 버렸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유기농업이 전통적인 관행과 경제적 논리에 따르게 된다면 유기농업의 본래 취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이미 유기농업계는 양분화 되고 있다. 한 쪽은 유기농업계에 최근 뛰어든 부류들이 주도하는 움직임으로, 고전적인 유기농업 시스템과의 불협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소한의 기준만을 준수하겠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 쪽은 반대로 더 까다로운 조건의 인증서와 라벨을 내세우고 생산자 컨소시엄을 구성함으로써 유기농업만의 특수성을 보존하려고 애쓴다.
소비자들이 과연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