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의 왜곡과 착각, '오리엔탈리즘'의 신화
'야만과 문명'이분화…'서구 문명의 연원은 동양' 외면
'서구문명의 운명, 너무나 짧은 인간의 운명이 현재 위협 받고 있다.(…) 오래 전부터 극동에서 온 여행자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 극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10세기 만에 이루어진 정신적인 변화보다 10년 만에 이루어진 정신적인 변화가 훨씬 강력하고 크다. 고분고분하다고만 알려진 아시아가 사실은 증오를 은근히 감추고 있었고, 그 증오를 행동으로 옮길 적절한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시아 전역은 해방되고 싶다는 마음을 은밀히 갈고 닦아 왔다.(…) 이제 아시아인들은 더 이상 서구가 우월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아시아인들은 다시 서로 손을 잡고 백인들과 대결하고 싶어 한다.'
다작을 통해 영향력을 확보한 작가 앙리 마시스가 1927년에 쓴 글이다. 앙리 마시스는 유럽의 가치와 정신이 점점 위협을 당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사실 앙리 마시스의 글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서구의 식민 지배에 놓였던 동방의 민족들이 여기저기서 일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와는 상황이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 9·11 테러,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세상을 뒤흔들만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중국과 인도 같은 새로운 강국이 부상하며 세계가 재편되면서 서구는 다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인 역사관에 영향을 받은 여러 작가들은 이 같은 '2천500년의 전쟁'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아보고자 과거를 돌아본다. '2천500년의 전쟁'은 안토니 파그덴의 저서 <전쟁 중인 세계>의 소제목이기도 하다.
서구 역사가들 '이분법적 사관'
안토니 파그덴은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저서를 통해 세계 역사를 전반적으로 묘사했다. '트로이에서 빛나던 불꽃은 몇 세기 동안 계속 탔지만 트로이인들, 페르시아인들, 페네키아인들, 파르티아인들, 사산조의 페르시아인들, 아랍인들, 터키인들이 차례로 세계의 주도권을 가졌다.(…) 이제 동양과 서양의 대결 라인은 변했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이라는 양대 축을 나누는 방식은 여전히 공고하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온 역사적인 기억이 기본을 이룬다. 정당한 역사적인 기억도 있고 왜곡된 역사적인 기억도 있다.'
저자 안토니 파그덴도 약간은 왜곡된 역사적 기억을 보이긴 한다. 기본적으로 그 역시 헤로도토스의 시각을 이어 받아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의 대결 구도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갖고 글을 풀어가기 때문이다.
안토니 파그덴에 따르면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인과 그리스인 혹은 아시아인과 유럽인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소소한 정치적인 분쟁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란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도시, 나아가 유럽 도시들은 성격이나 사회 구조가 다르긴 했지만 개인주의적 관점으로 인간을 보는 등 공통점도 안고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그리스 역사를 강의하는 폴 카틀지 교수도 테르모필레 전투1)에 관한 자신의 저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세상을 바꿔 놓은 전투였다. 다음 글은 폴 카틀지 교수 저서의 소개글이다. '테르모필레 전투, 즉 스파르타인과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 간에 벌어진 전투는 자유와 노예제 사이의 충돌이었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한 마디로 고대 그리스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바꿔 놓은 전환점이었다.'
폴 카틀지 교수는 저서의 서문에서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와 7월 달 런던에서 일어난 테러를 통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테르모필레 전투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 대단히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만남'이란 전제군주제와 자유 사이의 충돌을 의미할 뿐이다.
이 같은 폴 카틀지 교수의 관점은 2007년에 개봉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300'을 통해 대중적이 되었다. 테르모필레 전투를 다룬 2시간짜리 이 영화는 미국에서 인기를 모았는데, 마치 근육질의 남자들이 흑인 혹은 중동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야만인들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비디오 게임 같다는 인상을 준다. 스파르타의 레오니우스 왕은 페르시아의 대사를 죽이기까지 한다. 마치 야만인들은 고귀한 인간의 법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듯한 논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야만'적 서구와 '문명'적 동양
그러니까 야만인들을 학살하는 게 서구가 말하는 문명인가! 이미 1898년에 독일의 정치학 전문가 하인리히 폰 트레이슈케는 다른 여러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논리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야만인들에게 국제법의 원칙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국제법은 한낱 미사여구로만 전락하게 된다. 검둥이 종족들을 처벌하려면 마을을 불태워야 한다. 그러한 혹독한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만일 독일 제국이 야만인들에게 국제법을 적용한다면 그건 독일 제국이 인간적이거나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약해 빠졌기 때문이다. 약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독일인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이미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는 나미비아에서 헤데로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20세기 최초의 인종 청소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고 그 후에는 나치즘을 내세워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하지 않았는가.
영화 '300'을 보면 스파르타인들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기형아들을 죽이고 여성이 원로원에 진출하는 것을 금지시킨 무서운 스파르타인들이 아니던가! 영화에 등장하는 테르모필레 전투야말로 남성들의 정복 욕구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영화 '300'의 원작 만화를 지은 프랭크 밀러는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우리나라(미국을 지칭함)와 서구 세계는 현재 뭐든 할 수 있는 위험한 적과 마주하고 있다.'
폴 카틀지 교수는 페르시아 전쟁에 관한 페르시아의 자료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에 관한 정보는 쌓여가고 있으며, 이러한 정보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고전 역사를 가르치는 투라지 다리아애 교수는 페르시아 제국에는 노예 제도가 거의 실시되지 않았지만 그리스에서는 노예 제도가 대규모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또한 투라지 다리아애 교수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그리스에서의 여성의 지위보다 열악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페르시아의 시리우스 대왕이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는 최초의 헌장을 문서로 작성했다고 한다. 결국 유엔은 이 문서를 1971년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시리우스 대왕이 문서로 작성한 인간 권리 헌장에는 종교에 대한 관용, 노예제 폐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특별한 유럽'에 대한 신화
그렇다면 그리스의 승리가 야만인들에 대한 승리라는 관점은 문제가 없는가? 전쟁이 존재한 이래로 전쟁을 주도하는 인물들은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왔다. 미국이 수행한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에서도 지도자들은 '선과 악의 전쟁'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던가.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왜 4천50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서구인들은 여전히 그리스에 열광할까?
존스 홉킨스 대학의 마르셀 데티엔 교수가 냉소적으로 던진 대답을 들어보자.
"어네스트 라비스의 글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 서구의 역사는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그 사실을 중등 교육 과정에서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 서구의 역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맨 먼저 만들어 낸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우리 서구에게 아름다움과 보편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만큼 우리 서구인들은 세상에 완벽하고 이상적인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문명을 이어 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 그래서 우리 서구의 역사는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믿음에 더욱 강력한 믿음이 따라 붙는다. '그리스인들은 다르다', '그리스인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 아닌가'와 같은 믿음이다. 이 같은 믿음은 전통 인문주의자들과 국가를 사랑하는 역사가를 배출하는 국가 신화에 꼭 필요하다."
결국 라비스의 결론은 이렇다. 어느 화창한 날 하늘에서 정치가 떨어져 고대 그리스에 자리 잡았다. 이 정치는 민주주의라는 기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이 내려 준 이 같은 역사는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에 이어 현재의 서구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었다. 서구 사회의 믿음은 확고하다. 서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모든 민족을 진정한 민주주의 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다.
특히 19세기 역사가 쥘 미셸레는 고대 그리스 문명, 르네상스, 그리고 당시의 유럽을 하나로 연결하면서 유럽을 특별한 존재라고 했다.
서구 학자들, '선진 동양사' 몰이해
그런데 서구, 특히 유럽 중심주의에 새로운 반격이 일어났다. 존 M. 홉슨은 저서 <서구 문명에 존재하는 동양의 기원>에서 동양을 간과하고는 세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동양을 간과하게 되면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첫째, 동양은 500년 후에 자체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둘째, 동양은 세계 경제를 만들어 유지했다. 셋째, 동양은 유럽에 기술, 제도, 사상을 전파하며 서구의 태동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11세기 중국 송나라 시절에 최초의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송나라 왕조는 1078년에 철 12만 5천 톤을 생산했다. 영국이 철 7만 6천 톤을 생산하게 된 건 겨우 1788년이었다. 또한 중국인들이 주철 제조 같은 앞선 기술을 먼저 사용했으며, 이미 목탄 대신 코크스를 사용하여 산림 파괴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중국 송나라 왕조 때 운송, 에너지(물레방아 이용), 조세 및 무역, 대도시 개발, 농업 생산력과 녹색 혁명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먼저 이룩했다. 이 같은 변화를 서구가 따라잡은 건 20세기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 강대국들 가운데서도 중국은 1800년까지 최고의 위치였다. 그리하여 세계 경제는 중국 중심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한편 인도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인도의 많은 기술, 사상, 제도가 유럽으로 전파 되었으며, 근대 자본주의의 태동을 가능하게 했다. 중국의 기여가 없었다면 영국의 산업 혁명은 절대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강성한 무슬림 제국 역시 서구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많다.
존 M. 홉슨은 유럽 중심 사고를 가진 연구가들은 두 가지 타입의 질문을 한다고 했다. "서구는 어떻게 해서 근대 자본주의라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는가?", "동양은 무엇 때문에 이 같은 쾌거를 이루지 못했는가?" 그러나 이 같은 질문 속에는 서구의 지배는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내포하고 있으며, 역사가도 이를 바탕으로 과거에 왜 서구가 지배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연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서구가 발전한 것은 유럽이 지닌 저력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오게 되며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축이 나뉘어진다. 그 가운데에 만리장성 같은 벽이 가로 막고 있으며 이 벽 덕분에 서구가 야만인들의 침략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야만'이 두려워 '야만적'이 되다
하지만 서구가 가리키는 '야만인들'이란 과연 누구일까?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야만인들이란 야만적인 것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츠베탕 토도로프가 반박하고 나섰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일부 민족이 온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새로운 저서 <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의 소개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우리가 야만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오히려 나중에는 우리가 더욱 야만스러운 짓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야만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오히려 야만적이 된다. 문명화된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나와 다른 타인도 인간으로 존중할 줄 안다.'
이처럼 문명화 되려면 두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다른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다른 곳의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도 아니며 상대주의에 끝없이 빠져들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는 일은 어려운 과정이다. 서구의 지식인들 가운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또 이런 글을 썼다. '오랫동안 계몽주의 사상은 개혁과 자유 사조에 영감을 주었다. 개혁과 자유 사조는 보편주의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원칙을 내세워 보수주의와 맞섰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오히려 서구 우월주의 사상에 빠진 보수주의자들이 상대주의와 싸우겠다며 계몽주의 사상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19세기 초에 나타난 낭만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무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제대로 된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를 모두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독선주의와, 모든 문화는 가치가 있다는 어설픈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복종시키거나 파괴하려는 건 오히려 계몽주의 사상의 실종이다.'
그런데 정말로 계몽주의 사상의 실종이 맞는 걸까? 아니면 계몽주의 사상 자체가 잘못된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걸까?
존 M. 홉슨에 따르면 18세기와 19세기에 형성된 유럽 정체성으로 인해 유럽 문명이 그 어느 문명보다 최고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고 한다. 홉슨은 "당시 유럽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했는데 이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유럽이 최고의 문명이라는 자신감으로 세계 정복에 나섰고, 제국주의는 그리 나쁜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유럽인들이나 제3세계에 연대 의식을 갖는 유럽인들은 이 같은 입장을 거부하고 있다. 끊임없는 토론과 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 주요 관련 서적
- 안토니 파그덴《전쟁 중인 세계 - 2천 500년에 걸친 동양과 서양의 싸움》
- 폴 카틀지《테르모필레 전투 : 세계를 뒤바꿔 놓은 전쟁》
- 잭 스나이더 감독 영화 <300>
- 존 M. 홉슨《서구문명에 존재하는 동양의 기원》
- 츠베탕 토도로프《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무슬림 윤리와 자본주의- 존 M. 홉슨
"우리가 현재 900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제2장에서 밝혔듯이 중동과 이슬람 북아프리카는 이 당시 문명의 요람이었다. 중동과 이슬람 북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지역이었으며 세계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또한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도 대단히 성장했다. 이 지역이 왜 이토록 경제적으로 발전했는지 알아보면 다음과 같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이 곳은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도시는 성장했으며 자본가들이 원거리 국제무역에 나섰다. 둘째, 무슬림 상인들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합리적인 자본가 투자가였다. 이들 무슬림 상인들은 세계 자본주의 활동에서 거래하고 투자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셋째, 클리어링 시스템, 화폐를 교환하고 예치하고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해주는 은행을 포함해 합리적인 제도가 탄생했다. 넷째, 800년부터 과학적인 사상이 빠르게 발전했다. 다섯째, 이슬람은 특별히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표현 대신 "무슬림 윤리와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 그래야 왜 오직 이슬람만이 중요한 경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고 왜 유럽은 전쟁에 몰입하며 정체를 겪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저서<서구문명에 존재하는 동양의 기원>중 297페이지
테러리즘을 이해한다?-츠베탕 토도로프
"유럽 대도시를 뒤흔든 테러범들에 대해 국제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자신의 문화와 종교적인 정체성과 집단주의에 미쳐 테러를 벌인다고 생각한다. 이는 서구가 하는 행동은 이성적인 것이고, 그들이 하는 행동은 그저 비합리적인 명분에 집착한다는 의미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그나마 이성적이려면(…) 우리가 살인자들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글의 속뜻은 테러범들에게는 원래 논리라고는 없고 살인 충동만이 몸속에 꿈틀거리고 있다는 의미다.
엘리 바르나비는 "테러리즘을 우린 이해 못한다. 우리에게는 완전히 이질적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 표현은 우회적이다. 실제로 이 글의 속뜻은 이렇다. 우리 서구인들은 자유롭고 이성적이며 대단히 인간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테러리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혹은 이라크 사람들이 왜 자국 영토에 있는 외국 군대에 저항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이슬람이나 '문명의 충돌'이란 거창한 단어를 쓸 필요도 없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국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굳이 반유대주의란 말까지 쓰지 않아도 된다. 2006년에 자국의 인프라가 파괴된 것에 들고 일어났던 사건도 이해가 된다. 여기에 굳이 코란의 구절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야만인들에 대한 두려움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중 146-147페이지
* <중동이해를 위한 100개의 열쇠>(2006)의 저자.
1)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지역에서 벌어졌던 페르시아군과 그리스 연합군 사이의 전쟁으로 레오니우스 왕을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 대부분이 크세르크세스왕이 이끈 페르시아군에게 전멸당하였다.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