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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미국 자본주의] 실리콘밸리 · 워런 버핏

by 성공의문 2017. 9. 15.

로비의 제왕, 이젠 월가 금융권 아닌 실리콘밸리 기술기업

가디언 "구글·페이스북 등 5대기업 로비자금 월가보다 2배 많아"


미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뉴아메리카재단' 연구원 배리 린은 지난 15년 동안 구글과 페이스북 등 거대 기술기업의 독점을 연구해왔다. 그런 그가 지난주 해고됐다. 이유는 재단의 최대 후원자인 구글이 그의 연구방향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 그는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 거대 기술기업들을 독점세력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위에서부터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구글 로고


린이 언론에 공개한 이메일을 보면 재단은 린의 비판으로 기업의 기부금을 받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단 대표인 앤-매리 슬로터는 한 이메일에서 "우리는 핵심 연구분야에서 구글과의 관계를 확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당신이 다른 이의 연구 후원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드는지 생각해보라"고 적었다. 슬로터 대표는 린이 구글을 비판해 해고됐다는 점을 부인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4일자에 따르면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회장 에릭 슈미트는 1999년 이래 뉴아메리카재단에 2100만달러(약 238억원)를 기부했다. 슈미트 회장은 수년간 재단의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재단 주회의실도 그의 이름을 따 '에릭 슈미트 아이디어 랩'이라 붙였다. 


싱크탱크에 후원하는 건 미국 거대 기업들이 정부 당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방법 중 하나다. 싱크탱크 업무 대부분은 백악관 반경 400미터 안에서 이뤄진다. 이 곳은 대중에 덜 알려진 정치적 파워 본산으로, 'K스트리트'라는 별칭으로 볼린다. 로비업계의 중심지다. 


지난 수십년 간 월가의 거대은행과 제약사들이 워싱턴에서 경제적 힘을 행사하며 로비를 벌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뛰어넘는 신흥강자가 나타났다. 바로 실리콘밸리다. 가디언은 "지난 10년 간 미국 5대 기술기업들이 워싱턴에 로비자금을 뿌렸다"며 "이제 월가보다 2배 많은 돈을 로비자금으로 쓰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구글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아마존은 워싱턴 로비자금으로 4900만달러(약 554억원)를 썼다. 또 실리콘밸리 기업 대표들은 정부 고위직에 들어갔다 나오는 등 회전문 인사 관행을 즐긴다. 



90년대 MS 반독점 소송이 분수령


가디언에 따르면 이들 기술기업은 애초 워싱턴 정가와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MS다. 당시 MS는 막대한 부와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다. 세계 최대 기업 중 한 곳이었지만, 당시 MS는 워싱턴 정가를 멀리했다. 1997년 로비자금으로 쓴 돈은 고작 200만달러였다. 


하지만 MS의 거대한 규모와 반경쟁적 기업 관행이 클린턴 행정부의 조사를 불렀다. 당시 경쟁업체였던 선마이크로시스템즈와 IBM, 노벨 등이 지속적인 탄원과 비난을 가했기 때문이다. 1998년 미 법무부는 MS를 기소했다. 독점적 점유율을 자랑하는 윈도우 운영시스템에 자사 브라우저인 인터넷익스플로러만 구동하게 만들면서 경쟁업체들에 심각한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였다. 


기나긴 법정소송 끝에 결국 MS는 백기투항했다. 경쟁업체 브라우저도 윈도우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지루한 법정공방은 MS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전과 같이 공격적인 방식보다 신중하고 부드러운 사업방식을 택하게 됐다. MS의 힘이 약화된 환경을 틈타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경쟁업체가 힘을 키웠다. 


기념비적인 소송을 보며 실리콘밸리 기술기업들은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정치적으로 놀지 않으면 워싱턴 정가는 언제든 목숨을 빼앗으려 달려든다'는 것. 


특히 에릭 슈미트는 그 교훈을 깊이 각인했다. 당시 노벨 CEO이자 직전 선마이크로시스템즈 CEO였던 그는 MS가 공개적으로 거세당하는 걸 생생하게 지켜봤다. 2001년 구글 CEO로 취임하면서 슈미트는 그 교훈에 집착했다. 그가 대표로 있으면서 구글은 워싱턴 정가의 인맥을 얻기 위해 로비자금을 늘려갔다. 


구글은 2003년 8만달러를 로비자금으로 썼다. 반면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은 올 상반기에만 950만달러를 썼다. 지난해엔 1540만달러를 썼다. 실리콘밸리 기업 중 최고액이다. 2013년 구글은 의회 근처에 5만5000평방피트(약 1546평) 건물을 임대했다. 대략 백악관 건물과 비슷한 규모다. 구글뿐 아니다. 페이스북과 아마존 애플 MS 역시 워싱턴 정가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일리노이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인 로버트 맥체스니는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들이 돈과 로비스트를 동원해 워싱턴 정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CEO들은 공화당 의원과 대화할 땐 탈규제, 저세율을 주장하는 자유의지론자들이었다가 민주당 의원들과 어울릴 땐 마리화나를 피우며 동성애 권리를 옹호하는 진보주의자처럼 행세한다"고 꼬집었다. 


이들 기업은 워싱턴 거물 정치인과 사귀는 데에만 돈을 쓰는 건 아니다. 독과점을 보호하는 차원도 크다. 주된 고민거리는 반경쟁 행위로 제재를 받는 것이다. 막대한 세금이 부과될 수 있고, 망중립성이나 개인보호 등 조치를 받을 수 있다. 


그같은 걱정에 슈미트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무릎을 꿇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을 앞두고 "구글이 사악한 짓을 한다(do evil things)"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슈미트 회장은 지난 6월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칭송했다. 그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에 깊숙이 관여했던 바 있다. 


최근 '재빨리 움직여 파괴하라(Move Fast Break Things) : 페이스북과 구글 아마존은 어떻게 문화를 궁지에 몰고 민주주의를 파괴했나'를 출간한 저자 조너선 태플린은 "이들 기업에게 정치란 단지 주고받는 거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로비자금을 넘어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비밀스런 '소프트파워' 기법으로 정부와 시민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부와 시민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싱크탱크와 리서치업체, 각종 직능단체 등에 막대한 기부를 하는 방법이다. 


MS와 페이스북을 포함해 실리콘밸리 기업 여러곳에 고용됐던 워싱턴 정가의 한 내부자는 "비밀스러운 영역"이라며 "실리콘밸리 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싱크탱크들은 '정부 규제가 온라인 시장을 죽이고 있다'는 내용의 백서를 내놓는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기업 대표들이 정부 고위직을 오가는 회전문 인사 관행도 주목거리다. 미국 비영리단체 '책임운동'에 따르면 구글 임직원 중 오바마 행정부 연방정부에서 일하다 자리를 옮긴 사람이 183명이다. 반대로 구글에서 일하다 행정부로 들어간 사람은 58명이다.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졌지만 이들 기업은 따뜻함과 안락함을 연상시키는 표어를 세심히 고안했다. 구글은 '사악해지지 말자', 페이스북은 '전 세계를 보다 가깝게'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회전문 인사 감시 프로젝트' 선임국장인 제프 하우저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월가와 전혀 다른 특성을 지녔다고 믿게 하기 위해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실리콘밸리 기업이 인류에게 선을 가져다주기 위해 노력하는 '최첨단 공붓벌레 집단'이라는 환상을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상은 이들 기업이 미국 내 가장 비정한 기업인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이다. 태플린은 "페이스북의 실체는 스냅챗 사람들에게 물어보라"며 "규모가 작은 경쟁자의 혁신적 상품을 무분별하게 베껴 고사시키는 곳이 바로 페이스북"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스냅챗은 재정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놓였다. 그는 "거대 기술기업들은 누군가를 죽이고자 할 때 진짜 죽인다"고 덧붙였다. 



민주-공화 만날 때마다 바뀌는 카멜레온


1990년대 닷컴시기 초기에 인터넷 기업들은 실리콘밸리로 몰려들었다. 법을 우회하기 위해서였다. 그같은 기술자유주의는 '경계가 없는 사이버공간은 물리적 영역과 분리된 곳이기 때문에 실생활의 법규정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믿음에 기반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클린턴 행정부의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큰 도움을 받았다. 클린턴 행정부는 인터넷 기업들에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등 디지털 자유무역 지대를 만들었다. 


정부가 손을 떼자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승자독식' 기업이 등장해 디지털 경제 내에 전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검색 부문의 구글, 소셜네트워킹 부문의 페이스북, 온라인 전자상거래의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돈을 버는 대로 데이터센터 등 독점영역을 늘리는 데 투자했다. 소비자정보를 모으고 알고리즘을 연마하고 경쟁기업을 인수하거나 베끼는 데 막대한 돈을 썼다. 이들 기업의 규모는 점차 방대해졌고, 감히 다른 기업이 넘볼 수 없는 독점적 경쟁력을 갖게 됐다. 


이들은 자신이 독점력을 행사한다는 주장을 배격한다.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한다.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터넷협회 대표 마이클 베커만은 "특정 서비스가 싫으면 클릭 한 번으로 빠져나가 다른 기업의 웹사이트나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리노이대 교수 멕체스니는 "명망 있는 경제학자 가운데 그들 기업이 독점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거대 기술기업의 시장 왜곡 능력을 인지한 유럽 규제당국은 다양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애플과 아마존의 탈세혐의 조사도 그 일환이다. 애플은 145억달러의 세금을 내야했고,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위반한 페이스북은 곧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을 예정이다. 


지난 6월엔 구글이 검색결과를 자사 서비스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했다는 반독점 혐의로 유럽연합으로부터 27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미국 역시 독점금지 업무를 맡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유럽과 같은 결론을 냈다. FTC는 160쪽 조사보고서에서 "구글의 행위가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고 온라인검색과 광고시장의 혁신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FTC는 행정부에 반독점 혐의 기소를 요청했지만, 워싱턴 정가에서 이를 거부했다. 구글이 자발적으로 검색결과를 수정할 수 있게 내버려두자는 것이었다. 가디언은 "그와 같은 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불분명하다"며 "하지만 구글이 워싱턴 로비에 2500만달러를 썼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많은 이들은 실리콘밸리 기업에 대한 유럽의 규제가 반미 정서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그런 규제는 유럽 내 기술기업의 혁신 능력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인터넷협회 베커만은 "실리콘밸리 기업의 성공한 이유는 미국 행정부가 규제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 성공한 인터넷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미국에서 설립돼 성장한 곳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같은 논리는 1998년 MS 빌 게이츠의 언급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그는 "인터넷의 성공은 정부의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실리콘밸리 기업인의 기억력이 매우 짧다"고 지적했다. 그들 기업이 성공한 기반은 바로 정부의 개입과 공적인 자금이었기 때문이다. 구글 등 기업들은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1960년대 미 국방부 산하 '고등군사연구계획국'(ARPA)은 장기 연구과제와 최첨단 기술 개발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었다. 현재의 기술기업이 발딛고 선 바로 그 기술들이다. 비영리 연구기관인 스탠퍼드연구소를 혁신과 개발의 중심지로 삼고 자금을 댄 것도 마찬가지다. 이 연구소는 완전 전자식 디지털컴퓨터와 마우스, 인터넷 초기 버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요즘 스마트폰에 담긴 각종 기능들, 즉 위성항법시스템(GPS)과 셀룰러 방식 전화통화, 인터넷, 마이크로칩, 음성인식 서비스, 터치스크린 등은 모두 미 정부와 군사기관이 지원했거나 연구한 결과물이다. 구글의 검색엔진 알고리즘 역시 미 국가과학재단(NSF)의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 덕분에 현재의 기술기업 존재


맥체스니 교수는 "인터넷산업이 용감한 기업가 몇몇에 의해 개발됐다는 신화가 퍼져 있지만, 실상은 지난 수십년 간 연방정부의 노력과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정부는 또 기술기업의 퇴행적인 독과점을 깨는 데 핵심 역할을 하면서 전체적인 인터넷 분야 발달을 도왔다. 


1970년대 IBM은 대형범용컴퓨터 본체 부문을 지배했다. 이에 미 정부는 IBM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부문을 분할하는 소송을 걸었다. 결국 IBM은 다른 기업도 자사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수있도록 양보했다. 이 소송은 MS의 탄생을 이끌었다. MS 역시 최정상에 오르면서 독점 성격을 띠게 됐고, 정부의 소송에 굴복했다. 이는 마찬가지로 구글의 탄생을 이끌었다.


현 세대 기술기업을 규제하려는 워싱턴 정가의 시도가 지금으로선 무력해 보이지만, 이는 곧 변할 전망이다. 우선 미국 민주당이 향후 4년 동안 핵심 의제로 '반독점'을 선정했다. 미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은 지난 5월 연설에서 "지금은 테디 루스벨트가 했던 것을 따라야 할 때"라며 "반독점 몽둥이를 다시 꺼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도 페이스북이나 구글을 전기와 가스 등 공공시설로 보고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같은 서비스가 이미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필수품이 됐기 때문이다. 


거대 기술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은 날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가짜뉴스의 확산, 끊임없는 개인정보 유출, 디지털 자동화에 따른 노동자의 실직, 탈세조장 등 기술기업이 가진 문제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맥체스니 교수는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이 가진 막강한 경제력, 정치력은 실물경제가 지지부진하고 소득불평등이 커지는 현 시대에 용인되기 어렵다"며 "본질적으로 미 경제가 현 상태로 된 데는 거대 기술기업이 큰 몫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정과 갈망은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전문 인사 감시 프로젝트'의 하우저 선임국장도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쇠스랑을 든 성난 대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FT 칼럼니스트 로빈 하딩 "워런 버핏이 미국 자본주의 망친다"


워런 버핏(사진)은 역사상 최고의 투자자다. 그의 성과는 탁월하다. 시장은 이기기 힘든 적이다. 하지만 그는 해를 거듭할 수록 시장을 이기는 사람이었다. 무일푼에서 순 재산가치 776억달러(약 88조원, 지난달말 기준)를 벌어들인 세계 4대 부호다. 누가 봐도 지혜롭고 매력적이다. 겸손하고 윤리적이기까지 하다. 그 어떤 축구선수나 정치인, 사상가가 그에 비할까.



87세의 고령인 버핏은 여전히 미국 경제와 금융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물론 긍정적 영향력이다. 기업들을 압박해 스톡옵션에 돈을 쓰도록 만들고 금융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설파한다. 대중들에게 저비용의 인덱스펀드를 이용한 장기투자를 권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로빈 하딩은 12일자 칼럼에서 "자라면서 누구보다 워런 버핏을 존경했다"고 고백했다. 그렇지만 버핏을 존경하는 것과 별도로, 그의 영향력은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딩에 따르면 1000여 종의 투자안내서에서 칭송하는 버핏주의(Buffettism) 투자이론의 핵심은 경제적 '해자'(moat)다. 해자란 적들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곽을 따라 파놓은 못을 의미한다. 버핏주의는 높은 진입장벽과 확고한 경쟁우위로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을 중시한다. 경쟁자를 따돌리는 동시에 실물경제에 자본투자를 최소화해 이익을 극대화하라는 말이다.


최근 쏟아지는 연구보고서는 경쟁 회피와 이익 극대화, 투자 최소화 등 버핏주의의 핵심요소가 미국 경제를 멍들게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프린스턴대 얀 데 뢰커 교수가 지난 8월 24일 공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마크업(판매가에서 원가를 뺀 이윤)은 1980년 18%에서 현재 67%로 크게 늘었다. 지난주 브루킹스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익 대비 투자는 지속 하락하는 추세다.


하딩은 "물론 이같은 흐름에 대한 책임이 버핏에게 있는 건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흐름이 버핏에게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한 원동력인 것은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버핏은 경쟁을 배제하고자 하는 자신의 바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버핏은 2007년 "해자를 넓혀라"(widening the moat), "경쟁자가 쉽게 따라오는 사업을 싫어한다. 매우 가치 있는 성이 중앙에 있고, 그 주변에 넓은 해자를 파놓은 기업을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자들에게 매년 '해자를 넓히라'고 요구한다. 버핏에게 경영을 잘한다는 의미는 명확하다. '두려운 상대가 있다면, 사업을 잘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버핏은 자신의 철학을 직접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그는 1977년 버펄로이브닝뉴스를 3250만달러에 사들였다. 한해 영업이익을 170만달러 내는 회사였다. 인수 직후 버핏은 일요판 발행을 강행하면서, 경쟁지인 버펄로쿠리어익스프레스를 시장에서 몰아냈다. 1986년 버펄로뉴스로 개명했다. 당시 세전이익 3500만달러를 내는 지역 유일 신문이 됐다. 이는 버핏이 단일 회사로 가장 많은 액수를 투자한 건이었다.


하딩은 "해자에 대한 버핏의 개념은 자본투자의 관점과 연관돼 있다"며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으로,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는 생각에 기반한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칭송받는 버핏의 투자는 씨즈캔디(See's Candies)다. 1972년 2500만달러를 들여 사들인 회사다. 매년 버핏은 캔디 가격을 올렸다. 판매는 거의 늘지 않았지만, 씨즈캔디의 브랜드 가치는 여전히 높았다. 이익은 점진적으로 늘었고, 설비투자를 요하지 않았다. 버핏은 지난해 "이상적인 사업은 자본투자가 필요치 않은 것, 그럼에도 계속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그의 조언을 신줏단지 모시듯 대한다. 국민경제에서도 버핏의 패턴은 재생산된다. 투자는 최소화하고 이익은 극대화하는 것이다. 앨리스 슈뢰더가 집필한 버핏의 일대기 '스노볼'(Snowball)에 보면 버핏의 오랜 파트너인 찰리 멍거가 "당신의 경영 테크닉은 회사 현금을 모조리 취하는 것이고, 상품가격을 올리는 것"이라고 놀리는 장면이 나온다. 버핏의 방식을 한마디로 요약한 구절이다.


하딩은 "탁월한 능력의 버핏이 몇개의 기업을 골라 싸게 사들인 뒤 높은 수익을 내는 건 이슈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추종자들이 경제 전반을 아울러 그의 방법을 따라한다는 게 이슈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요즘 버핏은 두 가지 방법으로 돈을 투자하고 있다. 하나는 유형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다. 진입 규제가 높아 적정한 이윤이 보장되는 전기, 철도 등에 한정해서다. 둘째는 브라질 사모펀드 '3G'와 합작해 버거킹이나 식품기업 크래프트하인즈에 투자한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비용을 줄이고 대신 주주이익은 높이는 방식을 강제한다.


그 덕분에 크래프트는 23%의 영업마진을 기록했다. 유형자본(토지 건물 기계 등) 대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보통의 경쟁시장에서 그같이 높은 마진은경쟁기업들을 불러들여 동일 부문에 투자토록 하는 유인책이 된다. 그 결과 원래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하락한다.


하지만 버핏의 영역에선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크래프트의 경쟁자인 유니레버나 네슬레는, 버핏의 방식을 따라하는 행동주의 투자자와 인덱스펀드 등 주주들로부터 '크래프트처럼 높은 마진을 달성하라'는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투자와 경쟁에 힘을 쏟기보다 크래프트처럼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이윤을 맞춘다. 유니레버나 네슬레가 비용을 줄이면 줄일수록, 크래프트는 더욱 더 비용을 줄이는 데 매진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버핏이 말하는 '균형'(equilibrium)이 확고해지는 방식이다.


하딩은 "물론 버핏의 방식이 미국 내 투자가 감소하고 주주 이익은 높아지는 상황을 야기한 유일한 요인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눈여겨볼 대목은 버핏이 독점이윤을 추구하는 데엔 비상한 재주를 발휘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에 기반한 기업을 키우거나 과감한 모험을 강행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미국에는 그와 같은 기업들이 많다. 인공지능 자동차를 개발하고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탐험하겠다는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꼴보수'라는 험담을 듣는 석유재벌 코흐 형제도 실물경제에 투자하면서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라며 "지금 미국에 필요한 사람은 버핏이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 실물경제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