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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루돌프 슈타이너] 깨달음

by 성공의문 2018. 1. 5.


 깨달음은 아주 단순한 과정들에서 시작된다. ·········· 단순한 과정들을 인내를 다하여 엄격하고도 지속적으로 행하는 사람만이, 그 과정을 통해서 내적인 빛의 현현(顯現)을 지각할 수 있다. 최초의 시작은 여러 가지 자연 존재, 예컨대, 투명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띤 돌(수정), 식물과 동물 등을 일정한 방식으로 관찰하는 것으로써 이루어진다.


먼저 돌과 동물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비교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려고 시도하라. 여기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은 생생한 감정을 동반한 채 영혼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다른 생각, 다른 감정이 끼여들어서 집중적인 관찰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다음의 말을 유념하라. 


   “돌에는 형상이 있다. 동물에도 형상이 있다. 돌은 자기 자리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 동물은 자기 자리를 바꾼다. 동물로 하여금 자리를 바꾸게 하는 것은 충동(욕망)이다. 그리고 동물의 형상이 섬기는 것 또한 충동들이다. 동물의 장기(臟器)와 기관은 이러한 충동에 부합되게끔 형성되어 있다. 돌의 형상은 욕망에 따라서가 아니라 아무런 욕망도 갖지 않는 힘을 통해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생각에 깊이 몰두하면서 주의력을 모아 돌과 동물을 관찰하노라면, 영혼 속에서 두 가지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이 활기를 띤다. 우리 영혼 속에 있는 서로 다른 종류의 감정이 돌과 동물 각각으로부터 흘러 나온다. 아마도 처음에는 잘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진정으로 끈기 있게 수행하다 보면 이러한 감정이 생길 것이다.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수행뿐이다. 처음에는 관찰이 지속되는 동안에만 감정이 현존하지만, 나중에는 그 감정이 오래도록 작용한다. 그리고 나면 그것은 영혼 속에 생생하게 머물러 있는 것이 된다. 그러면 외적 대상을 관찰하지 않더라도 생각만으로 두 가지 감정이 항상 솟아오를 것이다. 이러한 감정, 그리고 거기에 결부된 생각에서 투시 기관이 형성되어 나온다. 관찰에 식물이 추가되면, 거기에서 나오는 감정은 그 성질과 그 정도에 따라서 볼 때, 돌과 동물에서 흘러 나오는 각기 다른 두 감정 한가운데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 형성되는 기관이 정신적 눈이다. 


··········


 ‘정신의 눈’ 으로 보는 능력을 획득한 사람은, 물리적 현실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 어떤 존재와 조만간 만나게 되는데, 부분적으로, 인간보다 고차적인 존재일 수도 있고 낮은 차원의 존재일 수도 있다.


 여기에 기술되어 있는 만큼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는 많은 길이 열려 있다. 그러나 신비학자가 말한 것들이나 그가 전한 내용에 유의하지 않고 무작정 전진하는 식의 태도가 권장되어서는 안 된다. 


··········


어떤 경우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신중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은 신비학으로 가는 길을 걷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신비 수행자가 될 사람은 고귀하고 선하며 모든 물리적 현실에 대해 다감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닌 특성 중 어떠한 것도 잃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도덕적 힘, 내적 순수성, 관찰력 등을 신비 수행 도중에 지속적으로 고양시켜야 한다. 한 가지 경우만 언급하자면, 깨달음의 기초적인 수행 과정 동안에 신비 수행자는 인간 세계와 동물 세계에 대한 동정심, 자연미에 대한 감각을 끊임없이 증대시키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수행을 통해 그런 감정과 감각은 계속 둔해진다. 마음은 돌처럼 굳어질 것이며, 감각은 둔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험한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


··········


   우리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신비학에 이르는 길을 찾고 있으며, 그 방식은 가지각색이다. 위험한, 심지어는 비난받아 마땅한 수많은 조치들이 행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들의 진정한 면모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신비 수행의 성과에 관해 약간이나마 알게 될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서 전달된 것은 그러한 가능성에 상응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착오로 인해 큰 해가 초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참된 것이 공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제시된 길을 통해 간다면,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만 유념하면 된다. 자신의 생활 처지, 자신의 의무에 따라서 그가 관장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힘과 시간을 그러한 수행에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신비의 오솔길을 통해서 자신의 외적 생활 상황의 어떤 것을 순식간에 바꾸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성과를 원한다면 끈기를 가져야 한다. 몇 분 동안 수행한 후에 멈추고 자신의 일상적 일에 조용히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 수행에 대한 생각이 일상적인 일에 섞여 들어와서는 안 된다. 최고 · 최선의 의미에서 기다림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신비 수행자가 되기에 부적합하며, 설사 그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 성과는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