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칼 융은 젊은 시절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자들을 대상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정신병자들이 하는 말은 겉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는 헛소리였고, 따라서 의사들은 그들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죠. 융은 평소에 연금술에 관심이 많아서 연금술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어느날 정신병자들이 하는 말이 중세 연금술 서적에 나오는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과연 어떻게 정신병자들이 하는 말과 중세 연금술의 교리가 비슷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그는 인간의 무의식이 연관되어 있다는 집단적 무의식 (collective unconscious)의 개념을 발견합니다. 즉, 바다의 섬들이 각각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물 밑으로 연결되었듯, 인간도 무의식의 수준으로 내려가면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무의식의 흐름이 연금술로도 표현되고, 정신병자의 중언부언을 통해서도 표현된다는 해석이지요.
이는 어떠한 분야에서 직면하는 문제의 해답을 다른 분야의 지식에서 찾은 예입니다. 이러한 예는 학문과 산업 곳곳에서 찾을 수 있죠. 제프 호킨스가 팜의 입력 체제인 그래피티를 개발한 이야기도 그러한 예입니다. 호킨스는 원래 두뇌의 작동에 관심이 많았고, 전공도 두뇌 관련으로 하고 싶었지만, 당시만 해도 두뇌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했기에 연구를 하려고 해도 연구 거리가 없는 지경이었죠. 결국 그는 컴퓨터쪽으로 진로를 바꾸고, 나중에 Palm 기기 개발에 참여합니다. 당시 애플은 뉴튼이라는 PDA를 내놓았는데, 나름대로 관심을 끌었지만 대중화에 실패하고 맙니다. 뉴튼이 실패한 원인의 하나는 바로 입력 방식 때문이었죠. 뉴튼은 사람이 쓴 글씨 그대로 인식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문제는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호킨스는 인간의 두뇌가 불확실성을 대단히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필기 인식 기술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키보드가 개발된지 몇 백년 밖에 안되지만, 늘 정확한 결과를 내기에 인간이 키보드 쓰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에 주목하죠. 이에 근거해서 그는 글자를 쓰되, 특별한 공간에 컴퓨터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자를 쓰는 입력 방식인 그래피티를 개발합니다. 결국 그래피티는 팜 OS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쓰는 대중적인 방식이 됩니다. 그런데 당시 다른 엔지니어들은 그래피티라는 아이디어가 실패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생각은 "기술이 인간에 맞춰야지, 인간이 기술에 맞추면 안된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필기 인식 방식 입력은 에러가 많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90년대의 필기 인식 기술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호킨스는 두뇌의 작동에 대해 잘 알았기 때문에 다른 엔지니어들이 실패한 영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죠. 참고로, 호킨스는 현재 사업계를 떠나 신경 과학자 (neuroscientist)로 활동하며, 두뇌의 작동을 설명하는 On Intelligence라는 책도 썼습니다. 평소의 꿈을 이룬 셈이죠.
저는 다음 달에 독일로 가는데, 독일은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포괄하는 학풍이 강한 곳입니다. 물론 지금은 독일 학문계가 꼭 앞선다고 말하기가 뭣하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진정한 독일 학자는 자신의 전공 분야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해 아는 지식에서 영감을 얻곤 했죠. 불확실성의 원리를 발견한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도 그러한 예인데, 그가 쓴 '부분과 전체'에 보면, 그가 칸트 등 철학자들의 사상을 물리학에도 적용했고, 물리학의 개념을 설명할 때 철학의 개념을 빌려썼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나중에 물리학과 철학의 관계를 탐구한 '물리학과 철학'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죠.
하지만 분업을 강조하는 산업혁명의 영향이 학문계에도 미치면서, 점차 전문가는 곧 자신의 분야를 제외한 분야에 대해선 무지해도 괜찮다는 태도가 퍼지면서, 박식한 전문가는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철학에서는 헤겔, 역사학에서는 토인비 정도가 마지막 박식한 전문가의 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종합 (synthesis)능력을 갖춘 사람의 가치가 다시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에도 썼지만 외국에서 변호사나 의사가 되려면 학부에서 다른 분야를 공부해야만 하는 것도,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를 키워내려는 뜻이죠. 하긴 한 가지 문제를 한 관점에서만 보는 사람과 두 가지 이상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 중 누가 더 심도 있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제도의 타당성은 분명해 보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대입시험도 교과서에서만 문제가 출제되는 학력고사가 수학능력 고사로 바뀌었는데, 이것도 고등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식을 쌓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수능은 또 다른 학력고사로 변질 되었고, 지금 고등학생들은 과거보다 더 틀에 박힌 공부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 싶어서 안타깝습니다.
진정으로 21세기를 주도할 사람은 판에 박힌 지식을 잘 암기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한 분야에 대해서만 잘 알면 안되겠죠. 부디 다음 세대라도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능력을 키우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by cimio
이는 어떠한 분야에서 직면하는 문제의 해답을 다른 분야의 지식에서 찾은 예입니다. 이러한 예는 학문과 산업 곳곳에서 찾을 수 있죠. 제프 호킨스가 팜의 입력 체제인 그래피티를 개발한 이야기도 그러한 예입니다. 호킨스는 원래 두뇌의 작동에 관심이 많았고, 전공도 두뇌 관련으로 하고 싶었지만, 당시만 해도 두뇌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했기에 연구를 하려고 해도 연구 거리가 없는 지경이었죠. 결국 그는 컴퓨터쪽으로 진로를 바꾸고, 나중에 Palm 기기 개발에 참여합니다. 당시 애플은 뉴튼이라는 PDA를 내놓았는데, 나름대로 관심을 끌었지만 대중화에 실패하고 맙니다. 뉴튼이 실패한 원인의 하나는 바로 입력 방식 때문이었죠. 뉴튼은 사람이 쓴 글씨 그대로 인식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문제는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호킨스는 인간의 두뇌가 불확실성을 대단히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필기 인식 기술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키보드가 개발된지 몇 백년 밖에 안되지만, 늘 정확한 결과를 내기에 인간이 키보드 쓰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에 주목하죠. 이에 근거해서 그는 글자를 쓰되, 특별한 공간에 컴퓨터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자를 쓰는 입력 방식인 그래피티를 개발합니다. 결국 그래피티는 팜 OS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쓰는 대중적인 방식이 됩니다. 그런데 당시 다른 엔지니어들은 그래피티라는 아이디어가 실패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생각은 "기술이 인간에 맞춰야지, 인간이 기술에 맞추면 안된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필기 인식 방식 입력은 에러가 많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90년대의 필기 인식 기술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호킨스는 두뇌의 작동에 대해 잘 알았기 때문에 다른 엔지니어들이 실패한 영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죠. 참고로, 호킨스는 현재 사업계를 떠나 신경 과학자 (neuroscientist)로 활동하며, 두뇌의 작동을 설명하는 On Intelligence라는 책도 썼습니다. 평소의 꿈을 이룬 셈이죠.
저는 다음 달에 독일로 가는데, 독일은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포괄하는 학풍이 강한 곳입니다. 물론 지금은 독일 학문계가 꼭 앞선다고 말하기가 뭣하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진정한 독일 학자는 자신의 전공 분야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해 아는 지식에서 영감을 얻곤 했죠. 불확실성의 원리를 발견한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도 그러한 예인데, 그가 쓴 '부분과 전체'에 보면, 그가 칸트 등 철학자들의 사상을 물리학에도 적용했고, 물리학의 개념을 설명할 때 철학의 개념을 빌려썼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나중에 물리학과 철학의 관계를 탐구한 '물리학과 철학'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죠.
하지만 분업을 강조하는 산업혁명의 영향이 학문계에도 미치면서, 점차 전문가는 곧 자신의 분야를 제외한 분야에 대해선 무지해도 괜찮다는 태도가 퍼지면서, 박식한 전문가는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철학에서는 헤겔, 역사학에서는 토인비 정도가 마지막 박식한 전문가의 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종합 (synthesis)능력을 갖춘 사람의 가치가 다시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에도 썼지만 외국에서 변호사나 의사가 되려면 학부에서 다른 분야를 공부해야만 하는 것도,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를 키워내려는 뜻이죠. 하긴 한 가지 문제를 한 관점에서만 보는 사람과 두 가지 이상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 중 누가 더 심도 있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제도의 타당성은 분명해 보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대입시험도 교과서에서만 문제가 출제되는 학력고사가 수학능력 고사로 바뀌었는데, 이것도 고등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식을 쌓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수능은 또 다른 학력고사로 변질 되었고, 지금 고등학생들은 과거보다 더 틀에 박힌 공부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 싶어서 안타깝습니다.
진정으로 21세기를 주도할 사람은 판에 박힌 지식을 잘 암기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한 분야에 대해서만 잘 알면 안되겠죠. 부디 다음 세대라도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능력을 키우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