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와 삶터 마련하기
-농지구입과 빈집수리, 집짓기-
이환의(귀농운동본부 前홍성귀농지원센터장)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대한민국의 농업의 중심(The Heart Of Korea), 충청남도 농업기술원이 운영하는 귀농대학에 입교하신 분들께 선배로서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직 이농(離農)이 대세인 마당에 상대적으로 안락했던 도시락(都市樂)을 버리고 시골살이를 생각한다는 건 낮설고 어려운 길일수 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생각나네요.
이제는 익숙한 말이지만 귀농ㆍ귀촌이란 ‘국내이민’이라고 부를 정도로 알아두어야 할 게 많고 그만큼 꼼꼼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이번 귀농대학처럼 안착을 위한 필수 코스가 마련되었으니 여러분들의 뒤가 든든해 보입니다. 부디 한 분의 낙오도 없이 100시간 모두 이수하셔서 어둡고 캄캄한 굴속에서 백일기도를 끝낸 웅녀(熊女)처럼, 각자의 마음에 커다란 변화가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Ⅰ. 농지를 마련하기 전에…
농민자격을 얻는 것이 관건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이 제일 궁금해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이 농지를 마련하는 일이다. 왜그러냐 하면 농민이냐 아니냐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땅의 크기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조금 골치 아프더라도 세부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요컨대 법적으로 농민임을 인정받으면 농촌에서는 모든 것이 수월하고 세금도 크게 절약된다. 하지만 농촌에서 십년을 넘게 농사를 짓고 살아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농민자격을 얻을 수 있을까? 일단 논이든 밭이든 1000㎡(303평)에서 농작물이나 다년생 식물을 재배해야 한다. 일년중 90일 이상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도 부대조건이다. 비닐하우스나 버섯재배사는 노지보다 노동력이 많이 드는 까닭에 330㎡(100평)만 경작해도 인정을 받는다. 요즘은 축산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축종에 따라 마릿수를 달리 정해 놓았다. 소나 말같은 대가축은 두 마리, 중가축은 10마리, 소가축은 100마리, 닭이나 오리는 1천마리, 꿀벌은 10군 이상이다. 역시 부대조건으로 일년중 120일 이상 일해야 한다. 여기에 공통조건 한 가지가 더 있으니 농산물 판매액이 연간 100만원을 넘겨야 한다.
이는 포괄적인 규정으로, 다른 조건은 몰라도 연간 노동일수나 농산물 판매액은 일일이 조사를 하거나 따지기가 어려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문제삼지는 않는다. 다만 농지의 넓이는 엄격히 규제되므로 구입시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내 소유의 농지가 없이 임대만으로도 법적농민이 될 수는 있다. 다만 농지임대차 계약서를 행정기관에 제출하고 농지원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주들이 계약서 작성을 꺼리는 점이다. 대개 구두계약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이때 잘 설득해서 농지원부만큼은 만드는 것이 수월하다. 아니면 축산이나 양봉 등 다른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귀농인에게는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어려움들이다.
도시에서 집이나 상가를 얻을 때 주인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는 것처럼 농지를 사거나 빌릴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땅에 대해 알아볼 때 토지대장, 지적도, 등기부등본 이 세가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토지대장에는 토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곧 지목, 면적, 소유자의 이름과 주소, 연도별 개별공시지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지적(임야)도는 땅의 모양과 지번, 도로의 위치와 유무, 필지의 수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다. 특히 맹지(盲地;지적도상에 도로가 없는 땅으로 귀농인이 흔히 구입한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된다. 등기부등본은 토지의 소유 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자료로 표제부(일반현황)와 소유자(갑구) 및 소유자이외의 권리에 관한 사항(을구)으로 나뉘어져 있다. 주의해서 봐야 할 곳은 을구로 근저당, 가압류, 압류 등 토지소유의 권리변동 사항이다. 등기부등본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하려면 인터넷 등기소(http//www.iros.go.kr)의 발급메뉴중 발급확인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번호를 통한 확인은 발행일로부터 3개월까지 5회에 한하여 확인이 가능하다.
농지구입은 도시의 주택이나 땅을 살때와는 달리 눈여겨봐야 할 것이 많다. 도시야 자기권리를 확실히 챙기는 곳이어서 서류와 실제현황의 불일치가 적지만 시골에서는 특유의 정서와 공동체적 문화로 인해 실제와 서류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예로 김씨가 이씨의 땅 오십평을 사서 축사를 지었어도 구두로만 계약하여 계약서가 없다. 당연히 해당 토지의 대장이나 등본이 있을리 없다. 여전히 남의 땅인 것이다. <문서계약-분할측량-지적측량 결과부 발행-등기접수-등기권리증 발행>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연유다. 필자도 비슷한 땅을 사서 등기하는데 삼년이나 걸린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밖에 농지와 전봇대의 거리나 주변에서 물(양수기)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전기와 물이 있어야 가뭄시에 작물에 물을 줄 수 있고, 집을 짓더라도 수도와 전기, 전화를 끄는데 한층 유리하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토질이나 자갈, 돌 등의 섞임 정도, 경사도, 토지모양 등도 고려할 사항이다.
만약 농사가 아니고 건축을 할 땅이라면 앞서 말한 진입로의 여부가 대단히 중요하다. 시군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진입로가 남의 땅이라면 땅주인의 토지사용승락서가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진입로를 포장한다든가 콘크리트 배수관 등을 묻을 때 우리 군에서는 지주의 승락서를 요구한다. 혹여 까다로운 땅이웃을 만났을 때는 타협을 해주지 않아 몇 년이고 공사가 늦어지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등기를 하려면 농지취득 자격증명이 필요하다
위의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내 맘에 드는 땅이 있더라도 농촌에서는 한가지 더 챙겨야 할 것이 있다. 농지취득 자격증명이다. 이 증명서를 손에 넣으려면 자격증명 신청 서류외에 농지에 관한 농업경영계획서를 덧붙여 읍ㆍ면사무소에 내면 된다. 서류 이름은 거창하지만 비교적 간단한 것으로 누구나 쉽게 써낼 수 있다. 간혹 사려는 토지가 허가구역으로 묶여있다면 해당 시ㆍ군에 일정기간의 사전거주 여부, 거주지와 농지의 거리가 20km이내(통작거리) 등의 요건이 적용되어 조금 복잡해므로 사전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농민의 농지소유 규모는 따로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농민이 아닌 도시민이 주말농장이나 농사체험을 위해 땅을 사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대원 모두의 농지를 더해 1000㎡(303평)를 넘을 수 없다. 땅은 경작하는 이가 소유한다는 경자유전의 대원칙 때문이다.
그러면 농지를 구입한 뒤에 농사를 짓지 않거나 다른 이에게 빌려주면 어떻게 될까? 바로 농지처분의무가 부과되어 일년안에 그 땅을 팔야야 한다. 일년내 팔지 않으면 다시 6개월내 처분명령을 받게 되고, 그래도 팔지 않으면 팔 때까지 공시지가의 20%를 해마다 이행강제금으로 물어야 한다.
최근에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중에는 일반 농사외에 축산이나 버섯, 선인장 등 특작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편이다. 축사 건축시에는 2006년부터 농지전용 규제가 완화되었다. 농업진흥지역 밖에 축사를 지을 때는 축종 구분없이 3ha(9000평)까지 전용을 허용하고, 진흥지역 안에서는 같은 면적만큼 농지보전 부담금을 면제(3ha가 넘을 때는 초과부분만 50%부과)한다.
그러나 임야를 허가없이 개간하여 논ㆍ밭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토지에 축사나 창고 등을 건축할 때에는 일단 임야로 원상복구한 뒤 전용절차를 밟아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 무단히 개간된 임야를 양성화하는 법안이 계류중임)
한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잘 아는 곳이 아니면 귀농전후 토지구입은 보류하라는 것이다. 귀농인을 포함한 외부인에게는 땅값을 비싸게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두 배로 올려 부르는 예도 경험했다. 나중에 그 마을 사람이 되면 서로 낯붉히는 일임에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덧붙여 경매를 통한 토지구입도 도시와는 상황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농촌은 법이나 규정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나 관계가 더 중시되는 곳이어서 적법하게 취득을 했어도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특유의 정서가 남아 있어서다. 이따금 매스컴에 보도된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니 토지 구입시는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첫 토지구입을 문제없이 했다면 농촌생활의 걸음마를 잘 떼었다고 할 수 있다.
Ⅱ.빈 집 수리, 어떻게 하면 좋을까?
‘농부는 반목수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처럼 농사를 짓게되면 필요한 장비와 기술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작은 하우스라도 하나 지으려면 줄자와 고속절단기, 수동절단기(커터), 해머드릴, 드릴과 망치, 펜치 등 기본 공구들이 필요하다. 여기에 축사가 있다면 용접기와 그라인더외에 파이프 렌치 따위의 배관용 공구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오만가지 공구와 이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기술이 있어야 시골살이가 편안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때마다 기술자를 불러야 하고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어차피 갖추고 배워야 할 것들이라면 그럴 기회가 됐을 때 과감히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시간 여유가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빈 집 고치기다. 베테랑 목수의 작품처럼 마무리가 반듯하고 깔끔하지 않으면 어떤가? 오히려 소재나 공간기획도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니 힘은 좀 들지만 신이나는 일이다. 누구에게 명령을 받거나 보고를 하지 않아도 좋은 시골살이의 참맛을 느낄 다시없는 기회다. 도시에서 망치질 한 번 해본 적이 없어도 고민할 게 없다. 자르고 잇고 붙이고 두드리다보면 어느새 요령이 생긴다.
기회가 되면 귀농학교의 집고치기나 구들놓기 과정을 이수하면 일이 더욱 수월해진다. 시골로 가기전에 한 번쯤은 참여해보자.
어디를 어떻게 손대야 하나?
흔히 빈집은 고쳐도 고쳐도 끝이 없다고 한다. 어떤 이는 집을 짓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다고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수리범위와 위탁여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역시 소유냐 임대냐에 따라 투입기준이 달라진다. 임대시에는 집주인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사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고치는 게 나을 것이다. 큰 돈을 투자해 고칠 경우 집주인의 마음이 변하면 회수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계약조항보다 앞서는 것이 시골의 습속이요 관례다. 정식계약서가 있고 재판까지 갈 경우 승소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 마을에서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남의 집이라면 입식 주방, 수세식 화장실과 욕실, 외부 화장실, 농산물 보관창고(특히 벼는 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비), 공구ㆍ농기구실 등 필요한 시설만 새로 들이거나 손을 보자. 재료도 재활용품을 이용하거나 중저가품으로 주거 공간에 투입하는 비용을 최소화한다. 시군마다 중고 문짝이나 창문, 보일러 등을 판매하는 곳이 있으니 찾아가 보자. 살기는 편리하게 하되 직접 고쳐서 비용을 줄이는 것이 임대농가 수리의 핵심포인트다.
임대농가를 수리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구체적인 수리범위와 이사할 때 설치 시설의 이전여부가 그것이다. 집주인에 따라서는 합의하지 않은 수리 범위 때문에 임차인과 갈등을 빚는 일이 가끔 있다. 요컨대 왜 ‘허락없이 마음대로 뜯어 고치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사전에 주인과 같이 둘러보면서 고칠 범위에 대해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한다. 수리도중에 변경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소소한 변화는 상관이 없겠지만 그 이상의 변동사항은 전화로라도 다짐을 받아두는 것이 뒤탈이 없다.
만약 빈 집을 산 경우라면 아마도 수리규모가 달라질 것이다. 아무래도 비용절감보다는 안락함과 완성도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까? 소재또한 중급 이상의 친환경재를 기본으로 하고(합판이나 몰딩도 친환경 제품이 따로 나와 있다)내구성이 좋은 것을 선택한다. 시간과 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가족회의를 통해 가족의 아이디어를 모아 수리의 기본방향을 정하고 공간기획도 함께 한다. 한 예로 문손잡이를 시판 제품이 아닌 자연소재를 이용하자는 안이 채택되면 미리미리 나뭇가지를 구해 껍질을 벗기고 말려 필요한 시점에 적용하는 것이다.
요즘 추세대로 태양광 발전 시스템이나 태양열 온수기 등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이 있다면 애초 설계에 반영하여 뒤에 구조재를 별도로 설치하는 등의 번거로움을 피한다. 지붕 함석을 갈기전에 전지판이나 집열기를 받칠 구조재를 미리 설치하는 식이다. 그외 오래도록 꿈꿨던 것을 실현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벽난로를 설치하고 싶었다면 보일러를 겸한 제품도 이미 시중에 나와있으니 참고하시라. 나무보일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연통의 폐열을 아궁이를 거쳐 나가게 하는 방법도 있다. 에너지 효율도 높이고 별도공사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이미 앞서 경험을 한 귀농 선배들의 집구석구석에 숨어있다.
임대든 소유든 빈집 수리의 공통점은 단열보강과 공간확장, 자연소재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도록 꾸미는 일이 될 것이다. 전통적인 농가주택은 두께 10cm 안팎의 심벽집(나무기둥사이에 나뭇가지나 수수대로 외를 엮은 뒤 안팎으로 흙미장으로 마감한 집)으로 문과 창에 틈새가 많아 단열에 취약하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천정과 벽 모두 단열재를 덧대 난방열이 허비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온수파이프를 다시 깔게 될 경우에는 바닥단열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집수리시에 바닥단열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얇은 매트 한 장만으로 마감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이런 집은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도 쉬 더워지지 않는다.
수리의 범위에 따라 이중벽 쌓기, 보온재 덧대기, 드라이비트(발포 단열재로 외벽을 감싼뒤 미장후 칠로 마감하는 외벽단열법)처리 등 빈집의 형태에 맞게 보강을 해준다. 이때 양수기함과 보일러실도 함께 손을 봐서 혹한기에 동파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 아직도 시골에는 얇은 함석이나 보온덮개 한 장으로 만든 천막형태의 보일러실이 많이 있다. 보일러실 벽뿐만 아니라 분배기에 연결된 온수 파이프도 적절한 보온재로 감싸줘야 새는 열기를 보존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신경써야 할 일은 보다 너른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전통 농가는 아궁이 부엌과 정사각형에 가까운 작은 방 2~3개와 사랑채(혹은 아래채)로 구성된다. 천정이 낮아 장롱이나 장식장이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간도 좁아 가구나 TV, 컴퓨터를 들여놓으면 겨우 잠자리 정도만 남는 경우도 있다. 도시의 넓은 거실에 익숙해진지라 답답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해결책은 아래 웃방을 트거나 아파트 거실을 확장하듯 마루까지 방을 넓히는 것이다. 이때 천정 반자를 일부 뜯어 안쪽의 상태가 좋으면 전체를 철거한다.
맞배지붕의 구조상 천정만 뜯어내면 장롱을 넣을 수도 있고, 서까래가 드러나면 흙과 나무가 조화된 심벽집의 멋스러움이 되살아날 것이다. 여기에 전통문양을 살린 전등을 달아주면 다른 인테리어가 필요치 않다.
집이 49%라면 창고가 51%
빈집 고치기가 이 장의 열쇳말이지만 실제 시골에서 살아보면 집보다도 창고가 더 절실한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도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양의 바깥 살림살이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수납공간이 필요한 까닭이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수납공간이 필요한 순서를 정한다면 농산물 저장고(곡류)>농자재 창고>공구ㆍ농기구 보관고>농기계고>차고>그외 비가림 공간쯤 되지 않을까? 좌우간 시골에서는 비를 맞지 않는 공간이 많을수록 좋다. 하다못해 마당에 널어놓은 콩 따위를 소나기에 젖지 않게 하려면 포장째 끌어들일 곳이 필요하다.
때문에 빈집을 고칠 때 자재를 같이 구입해 창고나 헛간까지 한꺼번에 손을 보자. 수납하기 불편한 옛시렁(굵은 나무 두어개를 가로로 길게 매단 선반)대신 다단 선반을 설치하고 문이 없는 공용 신발장 형태의 중고가구 몇개만 들여놓아도 공구나 농자재의 수납효율이 크게 좋아진다. 농가살림이란 게 어떤 때는 공구실에 하루에 열 번도 더 들락거리게 된다. 그럴 때 필요한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찾다가 시간보내기 일쑤다.
우리집은 아예 전용 공구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용접기, 대패, 원형톱, 그라인더, 엔진톱, 드릴(충전용 별도), 해머드릴, 고속절단기, 파이프렌치(크기별), 스패너(크기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귀농 동료들의 집도 비슷하다. 특별하거나 비싼 공구는 아예 목록을 만들어 카페에 올려놓았다.
집의 구조상 비가림 공간이 부족하면 차양을 길게 대어 달아내거나 작은 비닐 하우스를 지어도 무방하다. 단 창고용 하우스는 보관 물품들이 자외선에 손상되지 않게 차광막이나 가벼운 보온덮개로 덮고 비닐을 한 번 더 씌우면 강풍이나 많은 눈에도 안심이다. 이중 비닐이면 최소 5년은 끄떡없다. 문짝은 하우스 관련 자재점에서 파는 슬라이딩 도어를 달고 잠금장치를 마련해둔다.
아울러 빈 집 정비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이 배수로 정비다. 시골집, 특히 재래식 부엌과 아궁이가 남아있는 집은 장마철에 습하고 심지어 물이 차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아궁이와 불길(燃道)이 부엌 바닥보다 낮고 장독대가 놓인 뒤뜰이 대개 집터보다 높은데다 배수로가 자주 메어 물이 집터쪽으로 스며들어서다. 그나마 예전에는 사시사철 불을 때어 습해(濕害)가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러므로 매년 배수로 정비에 신경을 쓰든가 아니면 콘크리트나 플라스틱 재질의 흄관(U자관)을 설치해 물길을 확실히 유도한다.
빈 집 안팎이 살만큼 바뀌었으면 마무리는 조경이다. 전통 농가는 소박한 꾸밈이 더 어울리는 만큼 주변의 흙과 돌, 나무를 이용해 꾸며본다. 비싸고 화려한 조경석은 위화감을 주기 쉽다. 공간이 있으면 화단을 만들되 너무 평면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흙을 돋우어 낮은 구릉을 만들고 둘레를 돌로 한 두 단 두른다. 이어 화단에 꽃과 나무를 적절히 배치한다. 보다 너른 곳이라면 정원개념으로 살면서 천천히 꾸며가자. 서양식 데크나 작은 연못, 그네, 우체통, 래티스(넝쿨장미 등을 올리는 격자형 시설)등 자기집에 어울리는 것들을 틈나는 대로 만들다 보면 도시의 즐거움과는 전혀다른 세계를 경험할 것이다.
Ⅲ. 평생에 단 한 번, 살고싶은 집짓기
귀농 6년차에 흙집을 짓다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림같은 집을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글쓴이도 마찬가지다. 그랬기에 귀농준비 파일을 만들면서 한 권엔 <건축>이란 표제를 붙여놓고 틈틈이 관련자료를 스크랩했다. 하지만 농촌의 삶은 전원생활이 아니었고, ‘언덕위의 하얀 집’도 바쁜 농사일에 밀려 5년 동안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시골생활 6년이 되던 해 우리에게도 집을 지을 계기가 찾아왔다. 연초에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환경 다큐멘터리중 1부작『집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나에게 강렬한 경고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에 내려와 두 번의 집수리를 하는 동안 건강과 생태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몰랐다고 하는 편이 솔직한 답이다. 때문에 구들용 안방 바닥에 내화용 페인트 한 말을 서슴없이 쏟아부었다. 농사는 철저히 생태농을 지향했건만 나중에 알고보니 집은 건강한 삶터가 아니라 병을 부르는 곳이었다.
워낙 급한 성격인고로 외출한 아내가 돌아오자마자 3주를 졸라 건축 허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 뒤 홍성지역의 새집을 중심으로 답사를 다녔고 아무데고 지나는 길에 눈에 띄는 집이 있으면 초인종을 눌렀다. 거의 한 달여를 여기저기 돌아다닌 결과 아내와 함께 설계도 비슷한 걸 그려낼 수 있었다. 어떻게 지어야 할지를 결정하자 무슨 소재를 쓸까가 고민이었다.
답사하면서 집주인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정작 비용과 환경,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재료는 많지 않았다. 때로 전문가의 자문을 얻기도 하고 건축 관련 전시회를 비롯하여 이른바 친환경 슬로건을 부르짖는 건축 자재는 인터넷과 방문을 통해 직접 확인하였다. 고심 끝에 선택한 흙벽돌 역시 다섯 군데 이상 현장을 찾아가 유해물 첨가 여부와 생산과정을 점검하였다.
그해 3월 중순경 모든 준비를 끝내고 드디어 집지을 준비에 들어갔다. 구옥 철거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포클레인 대신 트랙터로 했고, 보나 서까래를 맞추는 골조 작업에도 크레인 대신 활용하였다. 처음에는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사이를 흙벽돌로 메우는 목구조 흙집을 생각하였으나 비용(약 3천만원)이 만만치 않아 1층은 벽돌을 쌓고 다락방은 목조주택으로 얼개를 짰다. 인근 제재소에서 켜 온 나무를 치수대로 깎고 다듬는 데 보름이 걸렸고 대패질만 다시 일주일을 넘겼다.
생태적이지만 까다로운 건축 소재-흙
봄장마라 부를 만큼 자주 내린 비 때문에 흙벽돌로 쌓은 벽체가 무너질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흙벽 전체를 하우스 비닐로 덮었다가 뜯어내기를 서너 차례 반복하니 농사지으랴 집지으랴 농번기에는 날마다 녹초가 되다시피 했다. 그래도 집 짓는 동안 눈쌀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도와준 아내와 공정이 한 단계 끝날 때마다 ‘아빠, 우리 언제 새 집에 들어가는 거야?’ 라며 묻던 아이들의 천진함에 쌓인 피로를 풀어가며 집짓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고추심고 나서 지붕 판자 덮고, 모낸 뒤에 미장하는 식이었으니 일은 한없이 늘어졌지만 무어 그리 서두를 것도 없었다. 2월말에 시작한 공사가 9월말에야 끝이 났으니 장장 8개월이 걸린 셈이다.
지붕의 기울기도 보통 23도 안팎으로 하지만 태양 전지판이 햇빛을 잘 받게 더 가파르게 하고, 창도 시스템 창호를 싼 값에 구해 따뜻함이 집밖으로 새지 않게 했다. 지붕속과 방바닥 아래는 열을 뺏기지 않도록 단열을 충분히 하고 처마를 길게 빼서 겨울에는 햇볕이 잘 들게 하고 여름에는 따가운 햇볕을 막을 수 있게 했다. 난방은 기름과 나무를 함께 쓰는 보일러를 놓았으나 지금까지 기름 사용량은 일년에 평균 두 드럼이다. 또 농사짓는 데 꼭 갖춰야 할 지하저장고를 발코니 아래에 앉혔는데 따로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생태적인 농사의 첫 걸음은 뭐니뭐니해도 똥과 오줌을 잘 쓰는 것 -. 집 안에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지만 밤이나 손님을 맞을 때에만 쓰고 나와 아내는 바깥의 뒷간을 쓴다. 그래서 집짓는 사이 헐어버린 뒷간 대신 집터 옆에 움막 뒷간부터 지었고 새 집에는 처음부터 건물에 붙여지었다. 새롭게 짓는 만큼 똥과 오줌을 따로 쓸 수 있게 만들고 똥에는 왕겨를 뿌려 냄새가 덜나도록 했다.
귀농 이후 늘 소박하고 아담한 집을 꿈꿨지만 농촌에서 몇년간 생활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애써 가꾼 늙은 호박이나 고구마를 썩지 않게 보관하려면 한겨울에 얼지 않는 넉넉한 공간이 필요했고, 도시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시골 살림살이를 갈무리하기 위해서는 다용도실이 제법 커야 했다. 고생한 아내를 위해 집터 중 제일 좋은 자리에 주방을 앉혔고 부모님이 오실 때를 대비해 화장실과 욕실을 분리했다.
겉에서 보면 흔히 어린시절 도화지의 그림처럼 맞배지붕을 한 지극히 단순한 모양새로,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다. 단순한 구조가 하자가 적고 무엇보다 기획에서 설계, 마무리까지 기초와 벽돌 쌓기, 미장 등을 제외한 전과정을 하나하나 즐기며 일했던 까닭이다. 정 필요할 때에만 사람을 불러쓰니 다른 이들과 부딪칠 일도 없었다. 즉 힘은 들었으되 마음 고생하는 일이 없었으니 지나간 일이 모두 재미난 추억으로 남았다.
모름지기 집을 짓는 일이나 삶을 꾸려가는 일이나 꽉 짜여진 계획에 맞춘다거나 누군가가 시켜서 해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이다. 집지을 나무를 마름질하거나 장부구멍을 깎는다면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겠지만 세상살이는 지금 돌아가는 것보다 한참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빡빡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살이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무와 흙집을 짓고 싶다면 시멘트와 콘크리트 집을 짓듯 서둘러서는 곤란하다. 천천히 느긋하게, 흙이랑 나무랑 말라가고 어우러지는 거 봐가며 짓는 이의 손길을 조금씩 조금씩 더해 갈 일이다.
나보다 앞선 이가 선생님이다
집을 지은지 7년이 되어가는 지금 살고있는 집을 돌아볼 때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중 하나는 도배를 하지 않고 맨흙으로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거실과 주방 하단 1m 정도만 사람이 기대어도 묻어나지 않게 나무널(루버)로 마감했을 뿐이다. 그 위는 수수와 녹말로 풀을 쑤어 흙물과 혼합해 칠을 한 덕에 아직까지 한 번도 도배를 하지 않았다. 한지가 좋다고 하나 흙벽에 잘 붙지도 않고 경제적인 부담도 큰 편이다.
많은 집을 돌아봤지만 아직 우리집만큼 편안함을 주는 벽을 별로 보지 못했다. 방문객들도 안온한 느낌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실 우리도 남의 집에 가서 보고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렇게 여기저기 찾아가 묻고 기록하다보면 설계에서 마감까지 어느새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지게 된다. 창작도 어차피 절반 이상은 모방 아니던가. 거기에 스스로의 작은 아이디어를 보태면 된다. 처음에 우리 부부도 수수풀이 좋다하여 실제로 해보니 너무 붉은 느낌이 나서 곧바로 녹말풀(시중에 파는 전분 이용)로 바꿨다. 그랬더니 더 자연스러워졌다. 집짓기 전에는 줄자를 차에 두고 다니다 들어가보고 싶은 집의 문을 두드려 자문을 구하고 실측(實測)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집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설명을 요구하면 십중팔구 차(茶)까지 대접하면서 경험담(대개는 고생담)을 술술 풀어놓는다.
여기에 더하여 건축 전반에 관해 미리 공부를 해두면 더할 나위가 없다. 짓고 싶은 건축의 형태와 소재에 대해 자세히 알게되면 직영(直營-건축주가 주관하여 짓는 일)을 하더라도 손실을 줄일 수 있고 실수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즉 목수나 인부들이 장난을 치거나 대충 넘어가기가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단열성이 뛰어 ALC(경량기포콘크리트)블럭으로 지을 때 소재의 특성상 모서리에 보호처리(코너비드)를 해야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이때 당당히 지적하고 설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집주인이 모르면 건축과정은 순조로울지 모르지만 나중에 그만큼 하자로 고생할 가능성이 크다하겠다.
요즘은 친환경 주택에 관심이 높지만 실제 현장에서 올바르게 시공되는 지는 의문이다. 건강에 좋다는 흙집을 지으면서 정작 내부 기둥과 보에 수용성 스테인대신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많이 나오는 오일성 스테인을 칠하는 예도 보았다. 이 문제 역시 집주인이 두가지 도료의 용도와 특성을 알면 막을 수 있는 일이다. 과거의 일이지만 구리나 크롬, 비소 등 중금속이 들어있는 이른바 CCA 방부목으로 욕실과 화장실 발판을 서비스로 만들어준 사례도 있다한다. 그 위에 맨발로 올라설 집주인이나 아이들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일이다.
평생에 단 한 번 짓게되는 집, 낭비나 후회없이 짓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는 준비가 필요하다. 낮은 산에 오르려해도 그에 걸맞는 복장과 신발이 필요한 것처럼 최소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평생의 숙원사업을 준비없이 발주하는 것은 모험과도 같다. 포장이사와 턴키베이스에 길들여진 도시적 사고방식으로 낯모르는 목수에게 모든 걸 떠맡기려 한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저그런 집을 만나기가 쉬울 것이다.
두 번 고치고, 두 채를 직영으로 짓고, 동료들의 집수리를 돕다보니 건축자재상에 참 많이도 들락거렸다. 거기서 만난 건축 관계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겨야 하는 현실’ 때문에 고민스런 표정이었음을 기억한다. 그중 어느 한 분의 외침이 아직 귀에 생생하다. “좀 더 싼거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