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호수, 매사추세츠.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만을 마주하면서 삶이 가르쳐 주는 것들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진정한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p.15~16)
나는 숲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의 중요한 이유로 숲을 떠났다. 내 앞에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삶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그래서 숲에서의 생활에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쉽게 어떤 정해진 길을 밟게 되고 스스로를 위해 다져진 길을 만들게 되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숲 속에서 살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내 오두막 문간에서 호수까지 내 발자국으로 인해 길이 났다. 이 세상의 큰길은 얼마나 닳고 먼지투성이며, 전통과 타협의 바퀴 자국은 또 얼마나 깊이 패였겠는가! 나는 선실에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생의 돛대 앞에서, 갑판 위에 있기를 원했다. 이제 갑판 아래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p.16~17)
월든 호수, 매사추세츠.
자신이 믿는 올바른 삶을 추구하고, 그것에 다가설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십시오. 마치 개가 주인을 따르듯,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십시오. 자신이 원하는 뼈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아내십시오. 그것을 파고들고, 묻어두었다가 다시 파내고, 또다시 파고드십시오. (p.23)
평범한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육신을 부양하기 위해 일 년 내내 삽으로 땅을 파는 일에 열중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범한 사람은 1년의 하루하루를 온전히 자신의 영혼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심지어 신의 대리인인 성직자들조차 자신의 육체를 지탱하는 일에 열중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면 자신의 영혼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앞서 있는 실질적인 사람입니다. (p.79)
월든의 오두막
엎드려서 책만 읽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이 또 있겠는가. 장작 패는 법이라도 배우라. 학자도 땀 흘려 일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며,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 봐야 한다. 노동은 책 읽는 것 못지 않게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신의 글 속에서 쓸데없는 잡담과 감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몸을 움직여 일을 하면 당신은 그 시간 동안 생각의 흐름이 끊어졌다고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녁에 방 안에 앉아 그 날의 경험을 단 몇 줄로라도 적어 보라. 상상력은 뛰어나지만 게으른 공상에 불과한 글보다는 더 힘 있고 진실성이 담긴 글이 될 것이다. 작가란 노동의 경험을 글로 옮겨야 하며, 그 자신의 삶의 원칙도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p.84)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여행자! 나는 이말을 사랑한다. 여행자는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존경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여행만큼 우리의 생을 상징하는 말은 없다. 개인의 역사란 결국 '어디'에서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닌가. (p.127)
늘 다니던 길을 습관적처럼 다시 밟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당신의 발길로 닳은 안정되고 익숙한 길에는 독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모든 길을 낯설고 새로운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밥을 먹고 옷을 입는 이유입니다. (p.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