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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코튼로드 - 에릭 오르세나 Erik Orsenna

by 성공의문 2013. 1. 8.

에릭 오르세나 (지은이)  양영란 (옮긴이)  황금가지  2007-12-21  

원제 Voyage aux pays du coton : Petit precis de mondialisation (2006년)



 

기원전 326년 인더스 강을 건넌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는 인도사람들이 입은 희고 가벼운 천을 보고 놀랐다.

가까운 곳에 살던 아랍인들은 인도 사람들이 만든 천을 수입했고, 이집트와 알제리에서는 목화를 재배하기 시작해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세비야에까지 퍼뜨렸다.


16세기 에르난 코르테스를 선두로 멕시코에 상륙한 스페인 사람들은 주민들이 입고 있는 옷이 자신들의 옷보다 훨씬 부드럽고 포근한 것에 감탄했다. 고려 말의 경상도 산청사람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돌아오면서 붓두껍 속에 목화씨를 숨겨 들여와 그 중 한 개를 꽃피우는데 성공했다.


하얗고 폭신한 목화 꽃송이는 그렇게 인류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됐다. 그러나 부드러운 꽃송이 뒤에 감춰진 혹독한 현실은 수확기 목화의 잎처럼 날카롭고 섬뜩하다.


신간 '코튼로드'(황금가지 펴냄)는 세계화에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는 프랑스 좌파 지식인 에릭 오르세나가 세계 5개 대륙의 목화 생산지 6곳을 찾아 떠난 여행기다.


1980년대 미테랑 대통령의 문화보좌관 겸 연설문 초안 대필자, 최고행정재판소 심의관을 거치고 1998년 프랑스 학술원 회원이 된 저자 오르세나의 시각은 철저히 반식민지주의적이면서 반미ㆍ반자본주의적이다.


그가 고른 여행지는 목화 산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는 곳들이다.

프랑스 자본 덕분에 목화 생산지로 성장했지만 면직산업의 기반은 전혀 없는 아프리카 말리, 로비스트와 국회의원이 결합하고 유전자 변형 목화까지 만들어내는 목화생산대국 미국, 뒤늦게 목화생산에 뛰어들었지만 갖은 방법을 동원해 생산대국으로 도약하려는 브라질, 세계에서 가장 목화 품질이 좋지만 한동안 주춤했던 이집트, 사회주의의 여운 속에서 목화산업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노동경쟁력을 무기로 전세계 면직산업계를 위협하고 있는 중국.


그곳에서 저자는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못마땅하지만 딱히 반박할 여지도 찾지 못하는 구대륙 지식인의 무기력한 소회를 쓰디쓴 블랙유머와 함께 드러낸다.


저자는 왜 목화를 여행 나침반으로 삼았을까. 석유나 커피는 이미 세계화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단골 소재로 사용돼왔지만 목화는 훨씬 더 광범위한 용도로 사용되면서도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던 원자재다.

그러나 원자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목화는 각국에서 혹독하게 변형되고 조작되는 인공적인 재료이며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을 주도하는 첨병이다.


저자가 만난 브라질의 목화 전문가는 가늘고 유연하고 질긴 거미줄을 생산하는 거미의 유전자를 가장 우수한 품종의 목화에 투입하는 연구의 내용을 들려주고, 거미 유전자에 우유에 첨가해 만드는 우유 목화 개발 계획도 소개한다.


팝송 '목화밭(cotton fields)'을 흥얼거리던 미국 테네시주의 교수는 유전자 변형 종자의 위험을 질타하는 유럽인에게 "그게 싫은 사람은 얼마든지 중세식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제초제와 살충제를 사느라 번 돈을 모조리 들이부으면 되겠지요"라고 반박한다.


전세계 양말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중국 쑤저우(蘇州) 인근 도시 다탕(大唐)을 찾은 저자는 "공산주의 속에서 자본주의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거대한 생산라인과 그 속에 매몰된 노동자들의 삶에 동정심을 갖지만 "프랑스인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확실하게 준비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자칭 '구대륙의 구닥다리'는 "해마다 프랑스의 빚은 증가합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은 빚만 늘어가죠. 그러면 그 빚은 누가 갚아야하나요? 아이들이 갚아야 할테죠"라는 중국인의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다.


저자는 그래도 무차별적인 세계화의 흐름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는다. "경제와 축구의 차이점은 심판에 있다. 심판이 없는 축구 경기를 상상해보라. 어둠 속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벌이는 살벌한 게임. 누가 규칙 따위를 지키겠는가?"

- 호시탐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