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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_문화

왜 기초 의학을 “연구”해야 하는가 - 밑 빠진 독에 물이 넘쳐 흐르게 더 많이 부어야 한다

by 성공의문 2021. 11. 22.

왜 기초 의학을 “연구”해야 하는가...

나는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의예과부터 졸업까지 대략 6년의 시간 중 본과 4년.. 그 중에서도 3년은 임상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때때론 환자를 보고 수술도 했으니, 완전히 임상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임상가라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임상의학을 논하기는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준에서 임상 의학을 평가한다면, 다른 어떤 학문보다 아주 “보수적”이고 “안전”한 지식을 추구한다.

특히 의학은 특정 행위가 “환자를 치료해 줄 것이다“는 믿음 아래, 사람에게 직접 적용하기 때문에, 그 행위가 안전해야만 하고, 검증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알려진 기존의 행위보다 더 효과가 있어야만 새로운 치료로 인정받기 때문에 새로운 치료 방법은 보수적으로 적용되어야만 하고, 실제로 대부분 의사들은 새로운 치료에 회의적인 스탠스를 취한다. 결국, 사람의 목숨은 하나뿐이고, 기계와는 달리 대치될 수 있다거나, 재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장기들이 많아서 더 그러하다.

그렇게 따지면, 안전하고 보수적이고 확실한 치료 행위만 추구하는 임상의학에서 왜 기초의학이 필요할까? 왜 1년이라는 본과시간, 그리고 의예과를 포함하면 3년이라는 시간을 써서 의대생들을 가르치는 것일까?

때로는 이 기초 의학이라는 것이 임상 의학과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치료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연구를 왜 해야만 하고 배워야만 하는 것인가... 많은 주변 임상가들과 의대생들은 여기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5년 전에 시신을 활용한 발생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서서히 결과가 나오고 초청을 받아 발표를 할 때 이야기이다.

유독 의대에서는 독특한 발생학 발표를 하면 그 연구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실용적”인 측면에 대해 묻는 분위기가 많았다.

이 연구는 어떻게 인간에게 적용이 될까요?
이게 어떻게 사람에게 응용될 수 있죠?
왜 이런 연구를 MD-PhD가 하는 것이죠?

라고 하는 질문을 들으면서, 반대로 나에게 "왜 나는 의대에서는 쓸데 없어 보이는 연구를 하고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많은 나날을 고민하면서 내가 내린 개인적인 결론은 “재미와 호기심”이다.

도대체 어떤 기전으로 이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마치 생일 때,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빨간 리본 달린 선물의 포장지를 뜯을 때의 두근거림처럼 자연이 포장해 놓은 “현상”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나에게는 과학을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이 기초 연구를 하는 가장 큰 목적이지 의대에서 기초 의학을 배우거나 연구하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내가 연구를 그만둔다면, 더 이상 흥미가 없어지거나, 궁금한 점이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주변에서 본 많은 연구자들이 나와 비슷하게 재미와 흥미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거창하게 기초 의학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냥 재미있고 궁금해서 하는 거다. 웹툰을 보면서 울고 웃는 것처럼.

하지만, 이런 재미와 흥미 말고도 기초 의학은 그 자체가 가진 도전성으로 임상의학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는 순기능이 있다.

즉, 임상의학의 보수적이고 확실한 성질의 원을 미래에 더 큰 외연을 가진 원으로 넓혀준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기초 의학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아주 큰 파괴력을 가지기 때문에, 소홀히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기초 의학은 기본적으로 실패를 전제하고 도전한다는 측면에서 임상의학과는 그 결이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임상의학이 이렇게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서구 유럽에서 수백 년 동안 외연을 넓혀 둔 기초 의학의 바탕에서 확실한 치료 방법을 정립한 임상의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근거 중심 의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인간을 치료할 수 있고, 그 효과가 재현되기 때문에, 현재 한국 의과대학의 교육 목적은 “서구의 임상의학”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이 현실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특유의 손기술과 근면 성실함 등이 없었다면 이런 급속도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고, 현재와 같은 세계 유수의 병원도 없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임상의학은 “안전”하고 “보수적”이고, 비교적 “재현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정확하고 확실한 “프로토콜”을 잘 만들어서 실천해 내는 것에 강점이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아주 큰 축복이다.

다만 이런 것을 해내는 것은, 무에서 유를 만든다거나, 새롭게 외연을 넓히는 것과는 “결”이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임상 의학에서도 분명히 외연을 넓히는 발명과 연구들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IVF같은 치료방법. 하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보았을 때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의학의 외연을 넓힌다는 것은 상당한 도전을 필요로 하고, 필연적으로 실패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외연을 넓히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치료법을 만들어 내는 것은 대부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영어로 이러한 기술과 발견을 “cutting edge” 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연을 깍아내면서 무언가를 만들면서 더 뾰족하게, 그리고 더 날카롭게 그 분야를 파고들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cutting edge technology이다. 이 기술들은, 임상의학에도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초의학의 테두리에서 이들 기술과 발견이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기초의학은, 단순히 “의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자연, 생물계에 존재하는 “외연을 넓힐 수 있는 모든 분야의 학문” 그리고 그중에서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학문”이 큰 의미의 기초의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기초 의학 연구는 태생적으로 현시점에서 의미를 모를 수밖에 없는 연구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당장 사람에게 쓰이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이들 분위기가 이제까지의 교육과 연구 패러다임을 좌우했던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의학 연구는 더욱이 쓰일 곳이 없어 보인다.

그 결과, 이제 매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기초의학을 하는 친구들은 전국을 통틀어 매해 의사 합격 인원 3000명 중에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요새는 Physician-Scientist라는 중개의학 연구자들이 전문의를 마치고 오긴 하지만, 여전히 이들 인원은 극소수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과 분위기를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의대생 개인에게도 그러하지만 의대라는 시스템에도 비난할 생각은 정말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게 꼭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의대는 남들이 가진 직업보다 조금 더 나아 보이는 직업인 “의사”를 배출하는 전문직업 양성소가 되었을 뿐이다.

실제로 의대를 졸업하는 의대생 대부분은 의사가 된다. 고등학교 때 꿈꾸던 그런 안정적인 삶, 그리고 부모가 원하는 모범생스러운 삶을 거의 고딩 시절 상상한 그대로 이루어지는 몇 안 되는 안정적인 곳이 바로 의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대는 그저 그 역할을 충실히 했을 뿐이다. 그리고 각 의대생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의대에 왔기 때문에 모두에게 잘못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윈윈이다. 따뜻하게 끓는 물 속의 개구리와 같이 행복하고 안정적인 시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큰 틀에서 외연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싶어라 하는 것 같다. Fast follower에서 First mover로 가고 싶어라 하는 것 같다.

어딜 가도 소위 말하는 CNS라 불리는 Cell, Nature, Science와 같은 탑 저널을 원하고, 실제로 이걸 해내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러니 이제는 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고. 외연을 넓히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이것이 쉽게 가능할까?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거나, 정말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발견해서 이들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결해 내는 것은 질문부터 출발이 달라야 한다. 혹은 그런 질문을 본인 스스로 할 수 없다면, 남들이 가진 아주 좋은 질문을 남들보다 아주 빨리 풀어 내야만 한다.

이 두 가지 방법만이 현재 아무도 모르는 분야를 cutting해 내어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고, 그 외에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방법 중에 우리는 그나마 두 번째 방법은 그럭저럭 해 왔고, 오늘날 우리나라가 발전한 모습이 그 성적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두 번째 방법보다 첫 번째 방법이 더 좋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좋은 질문은 남들이 잘 안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Cell지의 leading edge를 읽어보아도, 내가 먼저 풀 수 있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다.

만약, 좋은 리뷰 논문에서 내가 풀 수 있을 만한 문제를 누군가가 적어 놓았다면, 그건 이미 그 사람이 풀었거나, 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내가 그런 연구를 한다면, 그건 이미 태생부터 Follower이고, 아무리 빨라 봐야 Fast follower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교육은 임상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임상의학에서는 교육의 정답 자체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치료를 해내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첫 번째인 임상의학에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나의 도전은 대부분 돌팔이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해도, 이미 누군가가 그 질문에 대하여, 정형화된 틀로 “프로토콜”이라는 이름으로 NEJM이나 Lancet에 이렇게 치료하면 된다고 선전포고해 두었기 때문에, 나의 “새로운” 도전은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쳐도 그 공고한 “프로토콜”이라는 성을 깨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좋은 임상가는 최신 의료 지식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환자를 잘 치료하는 사람이고,  다양한 최신 프로토콜 지식을 무장하고 잘 활용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좋은 질문은 엉뚱한 생각에서 나온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답이 정해지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설에 따른 결과가 Yes든 No든 어느 방향으로 튈 수 있고, 그 결과가 또다른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좋은 질문에서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풀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만 현실적으로 “좋은” 질문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시간을 가로 질러 미래 혹은 과거로 갈 수 없을까”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는 좋은 질문일 수는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 낼 도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좋은” 질문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기초의학 분야가 “의학”의 영역에서만큼은 그런 좋은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게 의예과나 본과 1학년 수업에서는 밀려드는 지식의 양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대학원에서만큼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의학 외연에 있는 좋은 연구자들을 의과대학에서 많이 모셔와서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과대학 본연의 “의사 양성”이라는 교육적 측면도 분명히 중요하기에, (단순히 “의사”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서 “의대생”이라는 “피교육자” 신분으로 “의학”을 접해본 사람이 일정 부분 교육을 맡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의과대학은 의대생 교육만을 신경 쓰지 않고, 교원들에게 연구를 더 많이 요구한다. 임상 의사들에게 치료만을 요구하지 않고 연구를 더 많이 요구하는 이상, 기초 의학에 대한 본질적인 환기는 분명히 필요하다.

표현을 “환기”라고 했지만, 더 엄밀하게는 학교 차원에서 연구력 향상을 위한 좋은 도구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초 의학에 대한 관점을 단순한 교육에 머무르지 말고, 의학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교육 분야”로 기초의학을 바라보면, 교원 1인에게 주어지는 과중한 수업 부담과 지금과 같은 MD 선호 주의는 필연적이고,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외연을 넓히고, 기초의학을 의학을 넓힐 개척지로 바라보면 무수히 많은 세계적인 연구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의과대학이라는 틀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의대에는 대한민국에서 최소한 고등학교 시절에서만큼은 최선의 노력을 수행한 검증된 친구들인 의대생들이 있다.

이들 의대생이 진료를 보는 평범한 의사가 되는 것은 “그들의 고등학교 시절 꿈”이고, “세계적인 연구자로서 새로운 의학 지식을 만드는 꿈”을 가지게 만드는 것은 현재의 의과대학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들 의대생 친구들은 충분히 좋은 연구자가 될 자질이 있는 친구들이다.

다시 한번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왜 기초 의학을 “연구”해야 하는가.

좋은 의사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서 몇 십년 동안 이들을 안전하게 만들어서 “보수적인” 치료 방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기초 의학이 만들어 내는 연구 저변을 넓혀야만 한다. 바로 지금부터.

처음부터 좁게 파서는 결코 땅을 깊게 팔 수 없다. 넓은 영역부터 시작해서 깊숙이 파야지만 더 깊게 팔 수 있다.

그리고 의학은 태생적으로 보수적이기에, 실패할 것들을 감안해서 최대한 넓게, 최대한 다양하게 기초 의학 연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 우리의 미래 세대가 과거에 우리가 만든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실패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초 의학은 느림보 거북이 같아 보이고, 이에 대한 투자는 때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 보인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서조차도 빠지는 물보다 더 많은 물을 부으면 독에 물이 넘쳐 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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