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 어록
1.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별하십시오.
세상에는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사물에 대해 의견을 내고, 의욕을 느끼고, 그것을 갈망하거나 기피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 하는 의지적 활동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본디 자유로운 것이어서 아무런 제약도, 방해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 재산, 평판, 권력 등 우리 스스로의 행위가 아닌 것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다른 것에 예속되어 있는 부자유한 것으로, 남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본래 다른 것에 예속되어 있는 것을 자유로운 것으로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한다면 장애에 부딪치고 좌절하게 되어 자연히 신과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게 됩니다.
오로지 그대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만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남의 것으로 돌리십시오. 그러면 그대에게 강요하는 사람도, 그대를 제지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대 또한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게 됩니다. 그대의 의지에 거슬려서 무엇인가를 억지로 해야 하는 일도 생겨나지 않겠지요. 누구도 그대에게 해를 입힐 수 없으므로 아무런 고통도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적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길이야말로 행복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작은 노력만으로는 이 같은 삶을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은 완전히 포기해야 하며, 당분간 미루어야 할 것도 있습니다. 권력과 부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물의 겉모습에 좌우되지 마십시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아무리 그럴듯한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이것은 단지 거죽에 불과할 뿐’ 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을 길러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자신이 가진 이성의 잣대로 꼼꼼히 따져 보는 것입니다. 우선 그것이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인지를 살피고, 만일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언제라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2.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두십시오.
욕망에는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반면, 혐오감에는 원하지 않는 것은 한사코 피하고픈 바램이 들어 있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실망하고, 피하고 싶은 것에 말려들면 괴로워합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두십시오. 그리고 그 중에서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은 피하십시오. 그러면 원하지 않는 것을 겪게 되는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병, 죽음, 가난 등 외적인 것을 피하려고 하면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원망하지 마십시오.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그 중에서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을 피하십시오.
경우에 따라 욕망을 완전히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원한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면 그대에게 바람직하면서 그대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조차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물에 따라 어떤 것은 추구하고 어떤 것은 적절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3.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은 관심조차 가지지 마십시오.
그대의 뜻대로 되지 않는 싸움에 끼여드는 일만 없다면 그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명성이 자자한 사람, 권력이 많은 사람, 어떤 이유로든 칭송받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라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겉모양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행복은 그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깨달으면 남을 질투하는 일도, 부질없이 부러워하는 일도 없겠지요. 장군이나 원로원 의원, 또는 집정관이 되는 것보다는 자유인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대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바라지도 말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4. 전후 관계를 꼼꼼히 따진 후 행동에 옮기십시오.
어떤 행동을 하든 전후 관계를 살펴야 합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음에는 어떤 일이 따를지 꼼꼼히 검토하십시오. 그런 다음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의욕에 넘쳐 무작정 서두를 경우, 예기치 못한 일이나 어려움을 만나면 중도에 포기하게 됩니다.
누구나 올림픽 경기에 나가 우승을 하고 월계관을 쓰고 싶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렇다면 먼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는 무엇을 해여 하는지를 따져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행동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선 모든 것을 규칙에 따라 해야 합니다. 먹는 것도 엄격하게 가려야 하며, 때로는 맛있는 것도 못 본 척해야 합니다.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지정된 시간에는 열심히 훈련하고, 찬물이나 포도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습니다. 의사의 처방에 따르듯 트레이너의 말에 완전히 몸을 맡겨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손을 다칠 수도 있고 발목을 뺄 수도 있습니다. 흙먼지를 많이 마셔 기진맥진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혹독한 훈련에도 불구하고 경기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경기에 나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은 철없는 어린애와 다를 바 없습니다. 아이들은 씨름 놀이를 하다가도 어느새 검투사가 되고, 트럼펫을 불고, 또 다시 연극놀이를 하니까요.
영혼을 송두리째 바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저 순간순간 기쁘게 하는 것을 좇아 원숭이처럼 흉내만 내다 말겠지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자세히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아무렇게나 성의 없이 임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행히 유프라테스 같은 철인을 만나 스스로 그와 같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다음 과연 그대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5종 경기 선수나 레슬러가 되기를 원한다면 팔, 허벅지, 허리가 튼튼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각기 다른 일을 하도록 재주와 능력을 타고나는 법입니다.
남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어려운 것을 싫어해서는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잠도 줄여야 하고, 어려움도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할 때도 있고 하찮은 자들로부터 조롱 받는 경우도 있겠지요. 명예, 일, 지위, 그 밖의 모든 것에서 남보다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평정과 자유를 얻으려면 이 같은 난관을 기꺼이 헤쳐 나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각오가 없이 지혜로운 삶을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갈팡질팡하는 어린애같이 철학자에서 관료로, 다시 정치가로 목표를 바꾸지 말고 일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한 길 밖에는 갈 수 없습니다. 선한 길을 가거나 아니면 나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이성을 계발하거나, 아니면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면 철인의 삶을 살거나, 아니면 평범한 사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5. 신앙의 본질은 질서정연한 자연의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 명심해야 할 것은 신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입니다. 즉, 신은 존재하며, 만물을 질서정연하고 공평하게 주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질서를 믿고, 신에 복종하며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이 질서를 가장 지혜로운 여성이 이끄는 섭리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신을 원망할 일도, 신께서 우리를 버렸다고 비난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뜻대로 안 되는 일은 피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그대의 의지대로 되는 것에 대해서만 선악을 구별하십시오.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좋고 나쁨을 판단하게 되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반대로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길 경우 그 원인이 되는 것을 원망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해가 될 것은 기피하고 도움이 될 것을 추구하는 것이 모든 생물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를 끼친 원인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피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부목 되어 자식에게 올바른 견해를 물려주지 못하면 자식은 부모를 욕되게 합니다. 오이디푸스왕의 두 아들 포리니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서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등을 지고 말았습니다. 왕권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땅을 가는 농부, 뱃사람과 상인,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신을 원망하는 것 또한 모두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섬기기 마련입니다. 인생에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을 추구하고 피해야 할 것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신앙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선조의 관습을 지켜 제사에 올릴 술을 장만하고 첫 번째로 수확한 열매를 순수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너무 넘치지도 과하지도 않게 바치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6. 예언이나 점술보다는 이성에 의지하십시오.
예언이나 점에 의지하는 사람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전혀 모르는 채로 예언가나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그 어리석음을 알고 있습니다. 일어날 일이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가에게 갈 때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나 기피하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그 앞에서 불안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점괘이든 선도 악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으며 누구도 이를 방해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생기면 신께 가십시오. 신께서 어떤 신탁을 내리시건 그대가 도움을 위해 선택한 분이 신이며, 만약 그의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을 거역하는 것임을 상기하십시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같이 이성이나 다른 기술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점술가를 찾아가야 되겠지요. 하지만 위험에 처한 친구나 국가를 구하기 위해 싸움에 뛰어들어야 하느냐를 놓고 점술가를 찾아가서는 안 됩니다. 죽음이나 불구, 또는 추방을 의미하는 나쁜 점괘가 나왔다 하더라도 그대의 이성은 친구나 국가의 위험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명령할 테니까요.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위대한 신 아폴론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아폴론 신은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친구를 외면한 자를 자신의 신전에서 추방한 바 있습니다.
7. 지금 당장 삶의 원칙을 실천하십시오.
이제 삶에 대해 그대가 깨우친 원칙을 법으로 여기고 지키십시오. 그 원칙 중 하나라도 어기면 불경죄를 짓는 것입니다. 남들이 그대를 두고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마십시오, 그것은 그대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대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언제까지 미루기만 하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라도 이성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그 원칙에 동의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그대가 할 일입니다.
아직도 남이 대신 그대를 깨우쳐 주고 고쳐 주기를 바란단 말입니까? 그대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 완전한 어른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하여 날마다 공상이나 하며 계속 미루고 늑장만 부린다면 절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어리석은 자로 살다가 그렇게 미련하게 죽겠지요.
지금 당장 성숙한 어른으로 살 것을 결심하십시오. 날마다 삶의 지혜를 깨치고, 그대가 최선으로 생각하는 것을 법칙으로 삼고 이를 결코 어기지 마십시오.
즐겁거나 고통스럽거나 영광스럽거나 수치스러운 일이 그대에게 닥친단 하더라도 지금 그대는 미룰 수 없는 경기에 참가한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실패와 포기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느냐 또는 뒤로 물러나느냐가 결정됩니다.
소크라테스가 완전한 인간이 된 것 또한 이 같은 방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지혜를 닦았으며 이성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대 아직 소크라테스같이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소크라테스를 닮고자 애쓸 수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