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관한 루돌프 슈타이너의 가르침과 지금의 한국 실정을 비교해 보자 현재 일반 제도교육이 영성을 가다듬는 교육이 아니라 인성까지 말살시키는 교육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7년 주기로 큰 변화가 오는 인간 성장 가운데 첫 시기에 건강한 몸을 갖추게 하여 꿋꿋한 의지를 심어주고 두번째 시기에는 여러 예술 활동으로 풍부한 감성을 길러주고, 세 번째 시기에 생각을 깊이 이끌어주어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지가 제각기 따로 떨어져 모난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말들은 우리의 정서와 상관없이 지혜로 가득찬 말이다.
양심은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말리지만 남을 속이고 해치는 행동을 한다든지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든지,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다든지, 심한 우울증에 빠져 만사가 귀찮다든지 하는 모습들은 의지와 감정과 생각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 실정을 보자. 첫째 시기에 부모나 아이 교육을 맡고 있는 사람 들이 본을 보이는 대신에 무조건 금지시켜 아이들의 의지를 꺾고,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아이한테 사물의 이치를 설명하려 든다든지 또는 한정되어 있는 생명력을 일찍부터 두뇌로 돌려 몸이 약한 아이로 만든다든지, 학교에 들어가면 이제 너도 컸으니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며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한테 무리하게 판단을 미루어 우유부단한 아이가 되도록 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그리고 편파적인 지식 교육으로 감정을 거칠게 만들고 청소년이 되어 이제 스스로 사리의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할 때는 부모나 교사의 말에 무조건 순종토록 강요함으로써 자립 기회를 빼앗는다.
지난날처럼 순종이 으뜸가는 미덕이었던 시절에는 이런 교육으로 우유부단하고 의지와 자아의식이 악하고 옳고 그름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는 어른이 되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지배층에서 보면 백성이 우둔할수록 자기들 마음대로 백성을 부릴 수 있으니 그런 교육이 옳은 교육일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이런 교육을 밀고 나가는 것은 권력이나 돈을 가진 몇몇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이 노예처럼 얽매여도 상관없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민들레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