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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진정한 실천은 사고에 대한 올바른 의향과 올바른 느낌을 전제로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고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고가 인간의 내부, 즉 자신의 머릿속이나 영혼 속에서 진행된다고 믿는 사람은 사고에 대한 올바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고에 필요한 요구조건을 세우면서, 올바른 사고실천을 찾으면서, 항상 잘못 된 느낌으로 인해 오도되기 마련입니다. 사고에 대한 올바른 느낌을 획득하려는 사람은 이렇게 단언해야 합니다. '사물에 대하여 사고하려면, 사고를 통하여 사물을 탐구하려면, 일단 사고가 사물에 내재하여야만 한다. 사물들은 사고를 통해 구축되었어야만 하며, 오로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물들로부터 사고를 도출해 낼 수 있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은 사고에 대한 올바른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문장에 과연 현대인은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외부의 사물이 내게 감각작용을 일으키고, 뇌의 신경작용에 의해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고 여기는 현대인에게 이 문장은 그야말로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가 아닌가? 인지학적 내용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저마다 각양각색이기는 하지만, 그 반응의 양상이 어떻든 간에 그 저변에는 '깊은 두려움' 이 깔려 있다. 살아오는 동안 철저히 진실이라 믿고 있었던 삶의 내용이 정면으로 부정될 때의 그 깊은 두려움, 그런대로 잘 짜인 듯이 보이는 자신의 현존재가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것 같은 근원적인 두려움이 인지학을 처음 대하는 사람의 영혼 속에 항상 존재한다. 수많은 경로를 통해 받아들인 지식으로 구축된 자신의 삶을 진실이라 믿고, 그 견고함을 결코 무너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이 인지학에 입문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신지학]이나 [자유의 철학] 등 그의 주요 저서들과 강연들에서 슈타이너는 세계인식을 향한 출발점이 인간의 '사고'라 역설하였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말하는 '사고'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으며, 오히려 "이미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게 존재하는 사고의 은혜로 인해 개인이 자신을 주체로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존재하는 사고의 힘이 물체적 세계의 사물로 응축되어 드러나며, 바로 그래서 사물 '에서' 그것을 구축하는 사고를 그대로 알아볼 때에 인간이 '실용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다. 

세 강연 모두에서 괴테의 '대상물적인 사고' 를 그런 실용적인 사고를 위한 구체적인 예로 들었다. 인용된 문단의 마지막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에 근거하였음을 세 번째 강연에서 읽을 수 있다. 철학사적으로 보면 12, 13세기의 '보편성 논쟁' 에서 '유명론' 에 그 실세를 내준 스콜라학파의 존재론이 괴테의 자연과학적 방식을 통해 오늘날 다시금 인간 영혼생활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슈타이너의 생각이 이 문단에 함축되어있다.

그 자체로는 전혀 어렵게 들리지 않는 이 문단이 실은 크게 보아 유명론의 결과물인 현대 자연과학적 감각론, 더 나아가서 인간의 인식 과정에 대한 통설을 뒤집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자연과학적 학설들을 진실이라 믿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이 문장이 자신의 영혼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외부의 사물이 내게 감각작용을 일으키고 내가 그것에 대해 두뇌로 생각한다는 그 이론이 겉보기에는 인간을 아주 주체적인 존재로 만드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을 외부 세계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기계 구조로 전락시키고, 인간의 현존을 물질적인 차원에만 고착시킨다. 

인간을 수동적인 반응 구조로 여기는 생각은 산업혁명과 함께 인간의 영혼생활 역시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는 단계로 진전하였다.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발달사를 추적해 보면 어떻게 인간의 영혼생활인 의지, 감성, 사고가 단계적으로 기계화되어 왔는지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다. 17세기 말 증기기관의 발명을 계기로 인간의 의지를 기계화하기 시작했으며, 18세기 말에 활동사진과 녹음기술의 발달을 통해 인간의 감성을, 20세기 들어 발명된 컴퓨터를 통해 마침내 인간의 사고 역시 기계화하기 시작했다. 그 기술들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달해 왔으며, 오늘날에는 인간의 영혼활동을 대체하는 그런 기술의 발달만 유일하게 '진보' 라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슈타이너에 의하면 오로지 인간의 의식으로만 정신적인 사고존재가 순수하게 들어설 수 있기 때문에, 세계와 관념이 연결되는 '공연무대' 로서의 개인적 의식을 진정한 의미의 도덕이 창조되는 산실이라 하였다. 바로 그 '순수한 사고' , '물체적 감각세계로부터 자유로운 사고' , '신체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 가 인간 내부에 들어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신경 체계를 통해 드러나는 피상적 사고를 '절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잡생각' 이 많으면 창조적인 생각이 들어서지 않는다고. 

현대인의 일상생활이 그렇지 않은가? 의식이 들어서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일상에 대한 온갖 생각들이 자신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도록 버려둔다. 말하자면 일상생활로 인해 '정신없이' 바쁘다. 잡생각으로 정신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쁠 수밖에 없고, 정신이 없으니 몸이 더욱더 바쁠 수밖에 없다. 차 안에서 차를 미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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