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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은 20세기 초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으로 세계 석유 산업을 선도했다. 열악하고 열악했던 아제르바이잔을 석유의 천국으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노벨상으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 노벨 형제였다. 이들의 경영방식은 우리나라의 재벌 경영과 비슷하다. 한 분야의 사업에서 성공한 후 이와 관련된 여러 산업을 종합적으로 발전시켰다. 생산과 수요 측면에서도 적극적으로 국제화를 도모했다. 우리나라 재벌들과 다른 점도 있다. 노벨 형제는 경영뿐만 아니라 사회 공헌도 몸소 실천해 아제르바이잔인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노벨가(家)와 아제르바이잔의 인연을 자세히 살펴보자. 




종합적인 글로벌 기업가 정신


노벨가의 첫째 아들인 로버트 노벨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은 후 총의 개머리판 및 군수품에 필요한 목재를 구하러 종종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이 나라의 석유 사업 가능성을 발견해 둘째 루드빅 노벨에게 아제르바이잔에서의 석유 사업을 제안했다. 당시 로버트와 셋째인 알프레드는 둘 다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건강도 좋지 않아 루드빅과 그의 아들이 아제르바이잔에 와서 석유 사업을 했다. 이에 루드빅은 형제들과 자금을 합쳐 1879년 Baronobel(Nobel Brothers라는 뜻) Oil Production Partnership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세계적으로 정유 기술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루드빅은 아제르바이잔의 석유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제하기 위해 실력 있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끌어들였다. 그는 석유를 추출하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해 석유와 관련된 제품을 개발하는 등 석유 사업을 크게 일으켜 무려 8만 개의 석유 관련 시설을 세웠다. 루드빅은 석유 생산의 현대화를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송유관 및 철제 석유 저장소를 만들고 조선 엔진에 필요한 녹물(black oil)과 분쇄 기술을 처음 도입했다. 


바쿠에 위치한 노벨 유정 / 출처 DBR



당시 석유 이동 비용은 석유 생산 비용보다 몇 배나 비쌌다. 낙타나 개가 끄는 수레로 석유를 운송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창출할 수 없었고 운송 시간도 길었다. 이에 루드빅은 저렴하고 안전한 석유 수송 방법을 강구했다. 그가 만든 운송 수단이 바로 세계 최초의 유조선(탱커)인 조로아스터(Zoroaster)다. 루드빅은 이후 탱커의 선단을 만드는 사업도 시작했고, 카스피해를 넘어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유조선 개발에도 큰 공헌을 했다. 1890년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Baku)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구였던 이유다.

하지만 유조선의 크기가 너무 거대했기 때문에 당시 스웨덴에서 이를 건조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래서 루드빅은 스웨덴에서는 선박의 일부분만 건조하고 발틱 해(Baltic Sea)에서 용접하는 방식을 취했다. 당시 이런 제조 방식은 굉장한 혁신이었다. 그는 철도 탱크도 처음으로 도입하고, 1878년에는 송유도관도 건설해 질 좋은 제품을 전세계적으로 빠르고 안전하면서도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초의 노벨 유조선 '조로아스터'/ 출처 DBR



노벨 형제의 사회적 책임


이후 47년간 쌓아온 노벨 형제의 석유 사업은 불행하게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끝을 맺었다. 당시 노벨 제국이라 불릴 만큼 큰 사업을 가지고 있던 노벨가는 모든 자산을 볼셰비키에 빼앗기고 한 푼도 없이 아제르바이잔을 빠져나가야 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볼셰비키가 혁명 후 금권정치가, 재벌(plutocrats)을 모두 살해하던 시기에 아제르바이잔의 현지 노동자들이 노벨가의 사람은 모두 ‘좋은 시민’이니 볼셰비키가 죽여서는 안 된다며 그들을 보호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노벨 식구들을 보호했던 노동자들을 ‘노벨 사람들(Nobelites)’이라 불렀다. 이들은 노벨 식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벨 집을 둘러싸서 인(人)의 장막을 치고 노벨 식구들을 외국으로 탈출시켜 준다. 이들이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노벨 일가의 탈출을 도왔던 이유는 무엇일까?


볼셰비키 지도부 / 출처 위키피디아



노벨 일가는 단순히 성공한 기업가가 아닌 사회에 대한 책임을 몸소 실천했던 사람들이었다. 루드빅 노벨과 그의 아들 엠마누엘 노벨은 선두적인 기업가였을 뿐 아니라, 종업원 및 사회에 파격적 공헌을 했다.이들은 직원들에게 이익의 일부를 공유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당시 노동자들을 단순히 소모적 자원(expendable resource)으로 여겼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매우 진보적인 행위였다. 노벨 일가는 직원들에게 숙박시설을 제공하고 복지 시설뿐 아니라 공원 및 문화생활의 공간, 더 나아가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비 및 유학 장학금을 제공했다.


엠마누엘 노벨은 특히 인재 양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회사 순이익금의 무려 40%를 사회사업과 아제르바이잔의 과학 연구 진흥을 위해 사용했다. 더 나아가 빌라 페트롤레아(Villa Petrolea)의 지역을 개발해 직원들과 그의 식구들을 위한 학교, 도서관, 병원 등을 지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일반화되기100여 년 전부터 노벨 일가는 이미 이를 실천한 셈이다.



노벨상과 아제르바이잔


노벨상 기금은 과연 다이너마이트로 번 돈으로만 모인 것일까 / 출처 노벨재단 홈페이지



노벨 형제들의 가장 의미 있는 유산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벨상이다. 우리는 흔히 노벨상하면 셋째인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로 번 돈을 가지고 만든 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상은 다이너마이트보다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산업과 더 관련이 깊다. 


당시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로 돈을 많이 번 것은 사실이지만 유전을 발견한 루드빅의 부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알프레드는 형인 루드빅의 석유 사업에 투자했고 막대한 지분이 있었던 그는 주식 배당으로 또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노벨상 기금의 원천은 다이너마이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3개 노벨상 비교 / 출처 DBR



더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벨상 이외에 2개의 노벨상이 더 존재했다는 점이다. 하나는 1888년 루드빅 노벨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들어진 노벨상이다. 이것은 석유 산업과 관련된 발명품이나 과학 기술에 대한 상이다. 다른 하나는 1907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에서 루드빅의 아들 엠마누엘 노벨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노벨상이다. 엠마누엘 노벨상은 석유 산업 발달에 기여한 과학자, 전문가, 경영 관리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현재 몇몇 노벨가의 자손들은 아제르바이잔 정부와 공동으로 엠마누엘 노벨상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아직은 추진 단계지만 석유 산업보다는 미래를 선도할 재생 에너지, 환경 오염,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으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노벨이 우리나라 기업에게 전하는 말


우리나라도 경제발전 초기에는 루드빅 노벨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공과 논란은 있지만 당시 몇 개의 재벌 기업들이 자사의 핵심 산업과 관련이 있는 여러 산업에 진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자사의 성장은 물론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거의 모든 산업 기반이 낙후돼 있는 상황에서는 큰 기업이 들어와 여러 분야를 한꺼번에 국제적으로, 빨리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 기업들이 노벨 일가처럼 사회적 책임을 다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물론 요즘에는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개념이 학계나 기업들 사이에서 확산이 되고 있고, 당연한 의무로 여겨지고 있다. 눈에 띄는 몇몇 CSR 활동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회 공헌에 대한 참여나 사회책임 경영에 대한 약속이 이해당사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의지나 자발적인 참여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들은 사회공헌을 자발적 활동이나 품질 경영, 혹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혹은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전략수단으로 생각한다(송원근,2007). 그래서 사회공헌규모가 크더라도 국민들의 여론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아직도 사회는 대기업에 대한 신뢰가 낮고 반기업정서도 만연하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여부가 뜨거운 감자일때, 국민은 대기업의 편이 아니었다. 삼성은 매년 40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사회 공헌에 지출하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은 사회공헌을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노벨가처럼 기업의 활동 영역인 지역 사회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해야될 때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75호

필자: 문휘창

동아비즈니스리뷰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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