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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게임은 메타버스의 신이 될 수 있을까

by 성공의문 2021. 11. 23.

작년 이맘때쯤 메타버스를 회사 비전으로 공표했다.

그리고 신이 되겠다고도 말했다.

이게 왠 미친 소리인가? 라는 의아한 표정에 이렇게 대답했다.

앞으로 세계는 경제적 활동을 하는 인구가 지금의 1/10 아니 1/20 수준으로 적어질 것이라고 본다.

때문에 전세계적 주류 흐름이 되는 보편적 복지나 기본소득은 필연적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고 앞으로는 상위 10%의 인류만이 AI의 틈바구니에서 직업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은 90%의 인류는 국가가 제공 해주는 복지와 기본소득으로 오로지 소비적인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생산성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또한 인간은 직업과 직장을 통해 자아를 표현하고 자존감을 유지하기에 남은 90%의 인류도 사회적 위치와 자아를 유지 시켜줄 직업을 가지려 할 것이다.

훗날 "직업이 뭐에요?" 라는 질문에 "저 화염법사요" 또는 "방패기사요" 라는 답변이 너무 자연스러운 대답이 되고 "어디서 일해요?" 라는 질문에 "리니지요", "던전 앤 파이터요" 같은 답변이 자연스러워지는 시대가 올거라고 확신한다.

즉 가상의 세계인 게임의 직업이 현실의 직업보다 더 보편화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럼 왜 게임인가?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인간이 즐기는 수 많은 콘텐츠 중 유일하게 의식이 전이될 수 있는 콘텐츠는 게임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답변할 수 있겠다.

대단히 잘 만들어진 콘텐츠, 예를 들면 만화, 소설, 웹툰, 영화 같은 것들을 즐길 때 극도의 몰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잘 만들어진 콘텐츠라도 결국 해당 콘텐츠의 주인공을 온전히 나로 인식하지 않는다.

좋은 콘텐츠를 보고 느끼는 쾌락인 카타르시스조차 기본적인 원리가 주인공이 처한 비극적 상황에 극도로 몰입하지만 결국 그것이 현실의 내가 아니라는 긴장의 해소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극도로 몰입하더라도 소설, 영화 같은 콘텐츠에서 주인공을 나로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RPG류 게임은 다르다. 게임이 아무리 어설프게 만들어졌어도 기본적인 구성과 조건만 갖췄다면 우리는 게임 속 캐릭터를 나로 인식한다.

'캐릭터는 또 다른 나입니다' 라는 문구가 게임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그렇게 느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설에서 주인공이 패드립을 먹어도 읽는 나는 때론 불쾌할 수 있어도 진심으로 분노하지 않지만 게임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패드립을 치면 우리는 진심으로 분노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메타버스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며 게임은 이미 현실과의 경계를 무너트려놨다.

가상과 현실의 가치가 동등하거나 오히려 가상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기는 분명 도래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가상의 세계, 즉 플랫폼(게임)을 소유한 사람은 신이 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제도적 제약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영향력 발휘를 플랫폼 소유주는 자유롭게 부릴 수 있다.

우리가 커뮤니티 사이트를 사용할 때, 커뮤니티 내 생사여탈권을 커뮤니티 사이트 관리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리니지를 하는 유저에게 과연 김택진은 어떤 존재일까?

신이다.

그의 변덕으로 리니지라는 세계는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그는 절대자다.

나는 그런 측면에서 메타버스를 바라보고 있고 그렇게 신이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대충 이정도로 디야기를 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전략을 직원들에게 공개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전략이었고 나는 그 말을 뱉은 후 1년간 차곡차곡 진행하여 결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예상과 예측대로 세상은 흘러가고 사업은 자리를 잡고 있다.

원래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엘론 머스크 같은 좀 미친 공상가들이다.

나는 신이 될 수 있을까?

- 출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