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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염 - 제럴드 N. 캘러헌 Gerald N. Callahan

by 성공의문 2012. 3. 8.

원제 Infection: The Uninvited Universe
감염 
제럴드 N. 캘러헌 (지은이) | 강병철 (옮긴이) | 세종서적 | 2010-07-09

 
2003년 전 세계는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공포에 휘청거렸다. 홍콩에서 시작된 사스는 16주 만에 사그러 들었지만 그 사이 전 세계적으로 8,737명을 감염시켰고 그 중 813명이 사망했다. 사스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 국내 상황도 국가 비상사태를 방불케했다. 또 2009년 신종플루가 퍼지면서 모든 모임들은 취소가 되었고 해외여행도 취소사태가 벌어졌다. 

사스와 신종플루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 전염병이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 전염병들을 예방하기 위하여 예방접종을 맞았다. 또 신종플루의 특효약이라는 타미플루를 구입하기 위하여 열을 올렸다. TV에서는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위생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며 이런 저런 손세정제들 광고가 나왔고 히트를 쳤다. 손세정제는 전철역이나 학교 등 공공장소 곳곳에도 설치되었다. 사람들은 세균과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서 시시때때로 손을 씻었다. 사람들의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반감은 전문가들도 별다르지 않다. 대학교에서 수의학을 배울 때 미생물학을 배운다. 세균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바이러스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그러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들이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지 배운다. 그리고 내과학이나 공중보건학, 전염병학, 면역학에서 그런 세균이나 바이러스들이 일으키는 여러 질병들과 그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배운다. 또 약리학에서 다양한 항생제의 기전과 효능을 배운다. 적을 알고 적들과 싸우기 위한 무기까지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세균과 바이러스는 무찔러 버려야 할 적일 뿐이라고 배운다. 

인류의 역사에는 많은 전염병들이 있었다. 흑사병, 홍역, 볼거리, 백일해, 파상풍, 광견병 등 여러 전염병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지 몰랐다. 그래서 때로는 마녀의 소행이라며 마녀사냥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파스퇴르가 미생물을 발견하면서 전염병의 원인이 눈에 보이지 않은 아주 작은 미생물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스퇴르는 백신 접종법을 개발했고 영국의 세균학자 플레밍이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이로써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작은 미생물들을 백신과 항생제로 정복할 수 있는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린 마굴리스의 『마이크로 코스모스』를 보면 지구의 생명체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나온다. 지구가 생성되고 화산연기가 자욱하던 때에 처음 나타난 생명은 세균이다. 이 세균은 20억년에 걸쳐서 지구를 생명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변화한 환경에 맞춰서 세균은 진화하며 다양한 생명체로 진화한다. 그렇게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세균은 각 생명들과 공진화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한다. 세균의 세대에서 다른 생명체가 태어났다고 해서 세균의 세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 세균을 기반으로 해서 또 다른 생명체가 탄생을 한 것이다. 

가령 모든 진핵세포에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소기관이 있다. 이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에서 발전소와 같은 것으로 먹이로 섭취한 유기물질에 축적된 에너지를 ATP 형태로 만들어 세포들이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미토콘드리아는 진핵세포와 다른 DNA를 가진다. 이것은 미토콘드리아가 진행세포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토콘드리아는 고대에 원핵생물로 매우 활동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원핵생물은 진핵생물을 뚫고 들어가 진핵생물을 먹이로 하여 번식했겠지만 진핵생물을 파괴시킴과 함께 자신도 파괴되었다. 반면 숙주세포를 파괴시키지 않고 공존하는 방식을 취한 미토콘드리아는 숙주세포와 함께 살아남아 오늘날과 같이 모든 세포들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이렇게 공생한 미토콘드리아가 살아남아 숙주세포와 함께 번성하게 되었다. 

그러한 결과로써 오늘날 지구상에 많은 생명체들이 있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지구상에는 눈에 보이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있다. 하지만 지구에는 눈에 보이는 생명체보다 더 많은 10²⁹(10의 29승)개의 세균이 있다. 이 세균들이 식물이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할 수 있도록 해주고 동물들이 섭취한 먹이를 소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나무를 썩게 해서 흙으로 돌아가게 하고 동물의 분비물을 분해시키며 오물을 정화시킨다. 그렇게 하여 자연의 생명체들이 끝없이 순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면역학, 병리학자인 제럴드 N. 캘러헌은 『감염』에서 기존 사람들의 세균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는 세균의 감염은 질병의 방식만이 아니며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감염』에서 그는 세균이 생명에 주는 이로운 점들과 해로운 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사스와 말라리아, 탄저병, 페스트, 광우병, 에이즈, 독감 등 갈수록 문제성이 심각해지는 전염성 질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은 무척 깨끗하거나 순수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몸 속에 얼마나 많은 세균이 있는지 알게 된다면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사람의 소화관 내에 있는 장내 세균만 하더라도 우리 인체를 이루는 세포의 수보다 많은 대략 100조~120조에 달하며, 그 종류는 300~400 종류에 달한다. 인간 게놈의 서열 분석을 마쳤을 때, 과학자들은 인간 염색체 속에서 고작 2만~5만 종의 유전자만을 발견했다. 평균적인 인간의 몸속에서 오직 10퍼센트의 세포만이 '인간 세포'라고 할 수 있다. 절대 다수인 나머지 90퍼센트의 세포는 세균이다. 또 우리가 인간 세포라고 부르는 10퍼센트 중 단 한 개의 세포도 완전히 인간 세포라고 할 수 없다. 이 세포들 속에도 세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생명체에 세균이 감염되어 있지 않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과학자들은 무균마우스를 이용하여 다양한 연구를 했다. 연구결과 세균에 감염되지 않은 동물들은 감염된 동물들에 비해 음식과 물이 더 많이 필요했다. 무균 마우스를 대상으로 한 여러 실험에서 무균 상태의 설치류는 정상 설치류보다 3분의 1의 물을 더 마셔야 했다. 물은 대장에서 대부분 재흡수된다. 그러나 무균 상태의 대장은 정상세균총이 자리 잡은 대장에 비해 물을 재흡수하는 능력이 훨씬 더 떨어진다. 세균은 복합당 등 고열량 식품의 소화를 도와준다. 그래서 미생물의 도움이 없다면 에너지가 풍부한 복합당은 그냥 몸을 빠져나간다. 이런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무균 상태의 동물은 단순당과 지방을 휠씬 더 많이 섭취해야 한다. 또 무균 마우스는 정상 마우스라면 체내에서 합성할 비타민과 기타 영양소를 공급받아야만 한다. 우리 위장관에 서식하는 세균이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것을 제공하는 셈이다. 

건강한 생명체는 세균에 감염되지 않은 상태가 아니다. 건강한 생명체는 세균이 감염된 상태에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균에 반복적으로 감염되면서 면역력을 갖는 과정과 면역세포가 병원균과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상세균총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세균에 대하여 배울 때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경각심을 갖도록 배우지만 생명체와 공생하고 있는 대다수의 세균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등한시한다. 몸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생명체와 공생하고 있는 세균집단을 정상세균총이라고 한다. 이들 정상세균총은 소화 흡수, 3000종 이상의 효소 생산, 위장관발달, 면역계발달, 감염예방, 화학물질 분해, 위장관 혈관 형성, 수분 흡수 등 숙주의 기능을 향상 시킨다. 또 어떤 세균은 숙주 세포와 상호 반응하여 항생물질을 생산하여 생명체가 심각한 감염증에 걸리지 않게 해준다. 

건강한 생명체는 병원균에 감염되더라도 면역작용으로 병원균이 병적상태를 만들지 못하도록 스스로 조절한다. 이렇게 스스로 조절할 줄 아는 상태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상시에 수없이 세균들과의 전쟁을 치루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군인이 훈련을 통해서 실전에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소아 천식과 알레르기의 원인에 관심을 갖고 있던 소아과 의사인 에리카 폰 무티우스가 통일 독일에서 동독과 서독의 아이들을 비교하면서 세워졌다. 무티우스 박사는 자란 환경이 지저분했던 동독의 어린이들이 천식과 알레르기가 더 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정반대였다. 중국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연구를 계속 진행한 무티우스 박사는 어린 시절에 세균에 노출된 정도와 천식 발생률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있음을 알아냈다. 조금 지저분한 곳에 자란 아이들이 면역력이 높았다. 

사람들은 페니실린이 발견되면서 세균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페니실린에 저항하는 세균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연구를 거듭하여 페니실린에 저항하는 세균을 죽일 수 있는 항생제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 항생제에 대해서도 내성을 가진 세균들이 생겨났다. 세균들은 항생제에 의해서 죽는다. 하지만 간혹 살아난 세균이 있는 경우 그 세균은 자기가 그 항생제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 정보를 플라스미드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른 세균들과 공유한다. 그래서 어떤 항생제에 대해서 내성균이 생기는 경우 내성균은 급속히 늘어난다. 인간과 세균의 공방전에서 여전히 세균이 유연하게 방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은 1867년 파스퇴르에 의해 세균의 존재를 밝혀내고 이후 항생제를 개발하는 등 세균과의 전쟁에 돌입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세균과 생명이라는 존재를 인간중심적인 시각에서 단편적으로 파악한 오류에서 기인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22억년에 걸쳐 세균에서 진화했으며 세균을 기반으로 생존하고 있다. 생명체는 세균의 협조를 바탕으로 생존한다. 세균이 없다면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 세균보다 월등하고 우월하게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생명이 존재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런 전체 관계망 속에서 인간을 파악하고 세균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 또한 세균들 속에서 지속가능할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지 ‘나’가 아니다. 나는 미생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소우주다. 
-해를 그리며